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제3(3)
何以故오 須菩提야 若菩薩이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하면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 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卽非菩薩이니라
즉비보살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이나 인상이나 중생상이나
수자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또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는 존재이다 하는 한계의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대로이며, 우리들 내부에 온갖 만행만덕(萬行萬德)을 다 갖추고 있다 하여도 흔히들 "나는 업보(業報)가
많고 업장(業障)이 두터워 무엇이 안돼."하고 부정적인 생각즉 중생상에 빠져 있기 쉽습니다.
남김없이 활용하여 성취해가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저절로 부처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불교는 본질적으로 나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들 마음자리가 진실한 삶이라면 마음은 나이를 먹지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들의 마음자리에는 "천지보다 먼저 되었으되 그 비롯함이 없고, 천지보다 뒤에까지
있으되 그 마침이 없다(先天地而無基始 後天地而無基終)"라고 하였으니 어디를 토막내어
몇살이다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며, 한 생(生)만을 기준으로 해서 '젊다', '늙다', '몇 살이다'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세 소년이 전생(前生)의 나이까지 합쳐 60세 노인보다 더 나이가 많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부처님의 무량 공덕 생명에 어디 나이가 있겠습니까?
그게 우리의 참모습입니다.
옛날 '구자불성(拘子佛性)'으로 유명한 조주 스님은 120세 까지 살았는데
그 조주 스님에게 제자들이 여쭈어 보았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어떻게 그토록 오래 사실 수가 있으십니까?"
"나는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하루 24시간에 부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24시간을 부린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나이나 시간에 부림을 당하지 않으면 늙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영원히 젊게 살고 무엇에든지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좀 돕자."고 하면 "이 나이에 무얼 해. 젊은 사람들이나 하도록 내버려 두지."
하며 뒤로 물러나고 안으로 숨으려 듭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젊은 아이들만 봉사 하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남을 위해 무엇인가 도움이 되고 작은 한모퉁이라도 비추는 등불이 되고저 노력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당장 시간과 정성을 쏟아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좀 주책없다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용기를 내어 열심히 작은 한 모퉁이를 비추다 보면 차츰차츰 더 넓은 곳,
더 많은 사람을 비추게 됩니다.
적어도 불교인이고 보살이라면 최소한 나이에 대한 고정 관념을 떨쳐내고 적극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의상대사께서는 법성게(法性揭)에서 '파식망상필부득(파息妄想必不得)'즉 "망상을 쉬지
않을래야 쉬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처럼 불교를 통해서 우리의 참생명을 바르게 이해하면 본래로 없는 아상(我相),
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을 낼래야 낼 수가 없고 번뇌도 저절로 쉬어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원력(願力)과 생명력(生命力)이 넘치는 반야의 삶을 펼쳐 보이는 보살의 인생,
부처의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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