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13년 6월 8일~9일(무박산행)
☞산행날씨: 맑은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2km / 16시간 45분소요
☞참석인원: 서울 00산악회 34명과 함께
☞산행코스: 미시령-울산바위 갈림길-너덜지대-1,318m봉-황철봉-너덜지대
저항령-1,250m봉-1,326m봉-마등령정상-마등령-나한봉-1,275m봉-천화대
신선봉-무너미 고개-희운각-소청봉-중청대피소-대청봉-중청대피소-끝청봉
1474m봉-1397m봉-귀떼기청 갈림길-1307m봉-한계령
☞소 재 지: 강원도 인제군 북면 / 고성군 토성면 / 속초시 설악동 / 양양군 서면
오랫만에 장거리 산행이라 상당히 부담스럽긴 하지만 어차피 피할 수없으면 즐기라하지 않았던가.
지난주에는 오랫만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보낸 한 주였다.
대학원 동기들과 오랜만에 골프 라운딩도 같이했고 보고 싶은 책도 한권 읽고...
더운 날씨에 텃밭에 고추대도 세우고 밭도 매고...
토요일 용산에서 있는 행사에 참석하려고 나서는데 급한 견적서 하나 제출해야 할이
생겨서 참석을 못해서 도반들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점심때 쯤 지인이 사무실로 찾아와 같이 냉면 한 그릇을 같이 먹고 헤어진 다음에
내일이 음력 오월 초하루인데 초하루 법회에 참석하지 못하기에 절에 들려서 은사스님을 뵙고
집에와서 저녁에 대간가는 장비를 꾸린 다음 조금 휴식을 취하려는데 월요일 시작하는 현장일
때문에 미팅을 하잔다.하는 수 없이 미팅을 끝내니 시간이 촉박하다... 그 바람에 버스 승차가 5분 이나 늦었다.
근데 점심에 맛있게 먹은 냉면이 아무래도 조금은 이상했던 모양이다.
배는 계속 아파오고 머리에 약간의 미열도 있다... 내설악 휴게소 도착하여 아스피린한 알을 먹은
다음에 미시령을 지나서 개구멍을 통해 설악산으로 진입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오늘 산행구간의 고도표
내설악 휴게소(0:10~0:45)
평소보다 1시간 먼저 서울에서 출발을 한 탓에 조금 일찍 휴게소에 도착하여
종은이 아우님과 이야기를 좀 나누는데 아무래도 점심때 먹은 냉면이 좀 이상햇던
모양이다. 화장실에 들렸다가 감기 기운같은 미열이 있어서 아스피린 한 알을 먹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이곳에서 산행장비를 완벽하게 준비하고 황철봉 침투작전(?)에 나선다.
내설악 처마밑에 있는 제비집
미시령(彌矢嶺:767m:01:20)
시간이 오래 걸리고 험준한 고개라는 의미로서 년중 안개가 많다고 한다.
미시령 휴게소를 지나 내리막길을 조금 지난 곳에서 헤드렌턴도 켜지 않은채 설악산 초입으로
월담을 시도한다. 30여명이 철조망을 불도없이 넘는데 걸린 시간은 채 2분 남짓...공작 안내조 처럼
음력 오월 초하룻날이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칡흙같은 어둠을 뚫고 철조망을 넘어 입산에
성공하여 산으로 올라 서는데 나뭇가지에 걸려 코밑에 피가 흐른다.
잠시후에 헤드렌턴을 켜니 불빛을 보고 미시령 초소에 있던 국공파들이 가지 말라고 소리친다.
에이! 이 사람들아 대간 산꾼들이 가지 말라고 한다고 안 가는거 봤나... 멍청한데는 약도 없는데
울산바위 갈림길(02:20)
본격적인 등로에 접어들어 숨 한번 돌리고 물을 한모금 마시려는데 이런 낭패가...
철조망을 넘으면서 베낭 옆 주머니에 있는 1L짜리 수통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참으로 난감하다. 오늘 산행이 아주 길지만 휘운각과 중청 대피소에서 식수
보충이 가능하여 물 1L만 가졌왔는데 생명수를 잊어 버렸으니, 그리고 흔히
산에서는 흔히 산꾼들이 하는말로 마누라는 빌려줘도 물은 안 빌려 준다고 했거늘
그리고 물을 달라고 하지 않는게 불문율이라 난감해 하니까.
어둠속에 누군지 모르는 동료 산꾼이 선뜻 물한통을 건네준다... 너무나 고마웠다.
1,318m봉 가는 너덜길(02:40)
내 나라 내땅을 걸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늘 범법자 취급을 받는게 서럽기만 하다.
그렇다고 대간 산꾼치고 이곳을 안 간 산꾼은 아무도 없다.
물론 희귀 동,식물도 중요하다. 동.식물과 산꾼이 공존하는 방법을 없을까?
국공파들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듯 싶다. 늘 국민들이 주는 祿으로 살면서
祿을 주는 국민들에게 봉사할 생각은 하지않고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수퍼 갑’이 국공파다.
애꿎은 산꾼들을 범법자로 만들지 말고 좋은 대안을 제시했으면 한다.
집채만한 암릉이 즐비한 너덜길을 두발이 아닌 네발로 기어간다.
이곳에서 조금만 삐끗하면 사고나기 십상이기에 상당히 조심한다.
이곳을 3번째 가는데 항시 밤에만 왔기에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된다.
그 와중에도 국공파들이 산꾼들의 안전을 위해서 야광봉과 로프, 그리고 바다에서
등대처럼 비춰주는 LED 램프도 설치해놨다. 가지 말라고 하면서 안전장치를
설치한 너덜길... 이율배반의 현장을 보는 느낌이다.
1,318m봉(03:05)
너덜길을 지나 조금 평지를 지나다가 다시 너덜겅이가 나오는 정상이
북봉이라 불리는 1,318m봉이다. 이곳에는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1318m봉 삼각점(△설악22 1987 재설)
삼각점에서 내려와 너덜겅이에서 5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음력 오월 초하루
칡흑같은 어둠을 헤드렌턴에 의지한 채로 너덜길을 기어서 조심스럽게 간다.
비박하는 산꾼
앏은 비닐속에 침낭으로 비박하는 산꾼을 만난다.
부럽기만 하다. 근데 조심하소... 최신 정보에 의하면 비박산꾼을
색출하려고 국공파들이 산을 다니면서 단속을 한다오.
어느 산꾼이 등로에 세워진 국립공원 표시석에 황철봉이라 매직으로 써놨는데
황철봉이 이곳에서 50분정도를 가야만 나온다... 정확한 정보에 의해 기록하시길.
4년전 대간길에서의 황철봉 정상에서
황철봉(黃鐵峰:1,381m:03:55)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속초시 설악동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이곳을
3번이나 왔는데도 상시 단속구간이라 늘 어둠속에만 와서 아쉬만 남는 곳이다.
설악산의 서북릉, 즉 미시령과 마등령 중간의 미시령에서 남쪽 4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백두대간 상에 있다.
산세는 육산으로 분류할 수 있으나 산 주변에 엄청난 너덜과 색다른 식생을 지니고 있어서
설악산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대청봉이나 천불동 쪽과는 또 다른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무슨 연유인지 오랜 기간 동안 자연휴식년제에 묶여 통제구역이 되어 있고, 설악산의 다른 곳에 비해
특출한 기암괴석이나 아름다운 계곡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대간 종주꾼과 황철봉의 의미를 아는 사람 이외에는
찾는 사람이 없어서 어떻게 보면 설악산에서 소외되어 있는 형편처럼 되어 있다.
이곳 너덜의 암릉에는 황(sulfur)과 철분같은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나침판이 작동이 잘 되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다.
속초문화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에 가을에 낙엽이 지고 햇빛을
받으면 산 전체가 누런 색깔의 쇠(鐵)같은 모습으로 비친다는 구전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데 기록으로는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조금만 있으면 일출이 시작될것 같건만
08시까지는 단속구간 끝지점인 마등령까지 통과해야 하기에 서둘러
너덜길을 내려가니 저항령이 나타나고 우리 일행이 아닌 다른 산악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와는 공범(?)인 셈이다.
저항령(低項嶺)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속초시 설악동을 넘나드는 고개로 넓은 공터가 있다.
우측으로는 백담사와 용대리로 연결되고 좌측으로는 긴 저항령 게곡을
내려가면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가 잇는 신흥사가 나오는 곳이다.
북주 능선(北主綾線)에 있는 고개 중의 하나로 동쪽으로는 정고평(丁庫坪)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길골(路洞)을 거쳐 백담사(百潭寺)에 이른다.
늘목령이라고도 하며, 저항령(低項嶺), 늘목령 모두 노루목 고개, 목우(牧牛)재와 마찬가지로
길게 늘어진 고개라는 의미의 늘으목, 늘목에서 유래하였다.
즉 늘목령은 늘목에 다시 고개 령(嶺)자가 합쳐져서 늘목령이 된 것이고, 저항령(低項嶺)은 늘목이
노루목으로 변하고, 이것을 한자로 장항(獐項)이라고 표기하여, 거기에 다시 고개 령(嶺)자가
합쳐져서 장항령(獐項嶺)이라고 하던 것이, 발음상 저항령(低項嶺)으로 변하고, 이것을 의미와는
관계없이 한자로 저항령(低項嶺)이라고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으로 볼 때
저항령(低項嶺)도 마등령(馬登嶺)처럼 옛날부터 이용된 길인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너덜겅이로 올라서며 두발이 아닌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서 1,250봉으로
향하는데 황철봉 저너머로 일출이 시작된다.
황철봉 너머로 일출은 시작되고...(05:00)
늘 산악회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시칠리아 마피아들
1,250m봉 정상에서 같이 모여서 휴식을 취하면서 과일로 원기를
보충하는데 몸에서 음식물을 받아주질 않는다... 억지로 과일을 먹는다.
주원이 아빠
오늘 처음 산행을 나온 젋은친구의 닉이 주원이 아빠란다.
얼른 보기에도 앳되 보이는데 올해 나이가 서른넷이란다.
참으로 대견하다... 우리 아들보다 조금 더 많은 나이에 은근과 끈기
지구력이 없으면 도전 자체가 힘드는 대간길을, 요즘 젊은이답지않아 부럽기만 하다.
내가 저 나이에 대간길을 알았으면 대한민국 산길은 두루 섭렵했을텐데. ㅋㅋㅋ
1,250m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황철봉의 모습
인제쪽 내설악의 산그리메
조팝나무의 한 종류인 당조팝나무가 산꾼을 반기고...
이 코스를 3번째 걷는데 오늘만큼 날씨가 좋기는 처음이다.
맑은 공기에 상쾌한 이 기분, 육체적 컨디션은 안 좋지만
정말 도시의 찌든때가 말끔히 씻기는 기분이다.
가야할 마등령 정상과 그 너머 설악산의 주봉(대청봉)이 시원스럽다.
능선에서 바라본 저항령 계곡
깊은 계곡 너머 신흥사가 있는 설악동은 운해로 덮혀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설악동과 관련하여 가장 빠른 기록인 《여지도서(與地圖書)》에는 승려들만이 거주 한 것으로 나와 있다.
<《여지도서(與地圖書) 양양 방리조》. “도문면, 신흥사 관문으로부터 서북 사이 40리 에 있고,
편호 20에 승 49명(道門面, 神興寺自官門西北間距四十里編戶二十僧四十九口)”> 우리나라의 대부분
사찰에는, 사찰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이를 사찰 마을이라고 한다. 신흥사(新興寺)
부근에도 이런 마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14년 행정 구역의 개편으로 도문면(道門面)과 소천면(所川面)이 합쳐져 도천면(道川面)으로 되었고,
도문면(道門面)이 있던 지역 중 설악산(雪嶽山) 부근에 장항리(獐項里)가 행정 지역으로 신설되었다.
1966년 동(洞)제 실시 때 장항리(獐項里)를 설악동으로 행정 구역이 개편되었으나 또 다시
1998년에 대포동과 설악동을 합쳐 대포동으로 통합하였다.
설악산 일주문 - 산조아 감사님 사진 인용
신흥사의 유래
이 가람은 신라(新羅) 진덕여왕 6년(서기652)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향성사(香城寺) 라고 하였다.
처음 향성사지는 지금의 켄싱턴호텔 자리에 세워져 46년간 존속하다가 효소왕 7년(서기 698)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 당시 9층이던 향성탑이 현재 켄싱턴호텔 앞에 3층만 남아 있어 옛 향성사의 역사를 말해주듯 옛날을 잊지 않게 하고 있다.
향성사가 화재를 당한지 3년 후 의상조사께서 능인암(현재 내원암)터에 다시 중건하고 사명(寺名)을 선정사(禪定寺)라고
개칭 하였다.
그 후 946년간 수많은 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 정진하여 왔으나 조선 인조20년(서기1642)
또다시 화재가 발생하여소실된 것을 2년후 영서(靈瑞), 혜원(惠元), 연옥(蓮玉) 세분의 고승들께서
중창을 서원하고 기도 정진 중 비몽사몽간에 백발신인이 나타나서 지금의 신흥사 터를 점지해 주며
“이곳은 누 만대에 삼재가 미치지 않는신역(神域)이니라” 말씀 하신 후 홀연히 사라지는 기서(奇瑞)를
얻고 절을 중창하니 지금의 신흥사이다.
절 이름을 신인(神人)이 길지(吉地)를 점지해 주어 흥왕(興旺)하게 되었다 하여 신흥사(新興寺)라 한 것이다.
6·25사변때 고성군 건봉사는 전소되었고 영북지역의 대본산 기능이 마비되었을 무렵 고암, 성준 두 스님의
원력으로 여기 신흥사를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로 승격하여 업무를 이관하게 되었다.
▲ 신흥사 목조 아미타삼존불좌상아버지의 산으로 불리는 설악산. 신비로운 기운과 빼어난 자태로 태고적부터 묵묵히 자리한 설악산의 웅장함은 기암괴석을 안고 어우러진 봉우리들과 계곡들로 경관을 이룬다. 그중 석가봉, 문수봉, 노적봉, 보현봉, 미륵봉과 달마봉이 둘러쳐진 골짜기로 천불동과 문수담이 있다. 그 이름만 들어도 불국토임을 말해주는 그런 지명이다. 그 미륵봉과 달마봉 사이에 천년가람 신흥사가 자리하고 있다. 신라시대 삼국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신흥사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미래에 출현할 미륵부처를 기다린다는 뜻에서 창건의 유래를 찾는다. 이 절은 신라 진덕여왕 6년(652)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향성사(香城寺)라고 하였다. 향성사는 불교의 중향성불토국(衆香城佛土國)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으로 중향성(衆香城)은 금강산(金剛山) 철위산(鐵圍山)을 의미하며 불토국은 부처님께서 교화 할 대상적 국토라는 의미와 정치적 형태의 국가라고 하는 뜻과 어울린 말이다. |
▲ 신흥사 통일불. (사진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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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雪岳山)의 장쾌한 모습
설악산은 김부식이 저술한 삼국사기에는 설화산(雪華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불교에서는 설산(雪山) 또는 설봉산(雪峰山)으로 불려왔다.
지금은 거의다 설악산으로 불러지만, 옛 지도와 문헌에는 대부분 ‘산’를 빼고
설악이라 기술되어 있으며, 대부분 눈(雪)과 관련지어 설명해놓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한가위부터 내리기 시작해 쌓인 눈이 하지에 이르러 비로소
녹으므로 설악(雪岳)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증보문헌비고」에는 ‘산마루에
오래도록 눈이쌓여 바위가 눈같이 희다고 하여 설악으로 이름지었다는’는 기록이 있다.
설악산을 또 한계산(寒溪山)이라고 불렀다고 하나 엄밀히 말해서 설악산과 한계산은
같은 산은 아니였다. 다산시문집의 산수심원기(汕水甚尋源記)에 보면 ‘소양수의 발원지는
두곳에 있는데 하나는 강릉 오대산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기린(基麟)의 옛고을을
지나니 춘천부 동쪽 140리에 있다. 이른바 기린수(基麟水)요, 또 하나는 인제현 한계산에서
나와 (지금의 설악산 남쪽능선) 남쪽으로 흘러 서화(瑞和)의 옛고을을 지나니
이른바 서화수( 瑞和水)이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설악산과 한계산은 같은 산이 아니다.
설악산은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1435~1493)과 인연이 깊은 곳이기도 하다
단종이 세조에게 폐위 당하자, 김시습은 책을 다 불사르고 집을 떠나 절로 도피하여
속세와 인연을 끊었다. 양주의 수락산과 수춘(壽春:지금의 춘천)의 사탄향(史呑鄕), 동해가의
설악산과 한계산, 월성의 금오산 등이 매월당이 머물렀던 곳이다.
스스로 호를 췌세옹(贅世翁)이라 하였고 청한자(淸寒子), 동봉(東峯)이라고도 불렀다.
생열귀나무꽃은 이쁘게 단장하고 누굴 기다리시나...
1,275m봉 삼각점(△ 설악 414. 2007 재설:06:00)
가야할 마등령은 멀어만 보이고...
멋진 설악은 산꾼을 유혹하고... 이래서 산에 오는가 보다.
젊은 여인의 탐스런 乳頭처럼 생긴 함박꽃 봉오리
마등령 정상 올라가는 너덜길
마등령 너덜길에서 만난 털개회나무꽃은 짙은 향기를 내뿜고...
마들령 정상가는 너덜길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해발 873m 이고, 화강암으로 둘레가 4km나 되는 하나로 이루어진 바위산으로서
예전에는 '천후산' 또는 '연화반계산'이라 불리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칠때 바위에 반동이 되어 나오는 메아리가 마치 하늘에서 사자가 울부짖는 소리와
흡사하다하여 '천후산'이라 불리었으며,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기후가 접하는 지역이다보니
운해가 자주끼고 이 운해가 바위산 중턱쯤에 끼었을때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연꽃이 반쯤피다만
봉우리와 흡사하다하여 '연화반계산'이라 불리었다 한다.
'울산바위'는 바위산 자체가 설악산을 안쪽에 두고 울타리를 쳐 놓은 형태를 하고 있다하여,
또는 우는 산과 같다하여 '울산바위'라 불리게 되었다하며, 경남 울산의 지명과 같다보니
전설이 나오기를 울산에 있던 바위로서 옛날 태고적에 금강산에 일만이천봉을 모은다는
소문을 듣고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이곳에 쉰다는 것이 영원히 쉬게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산이다.
마등령 정상가는 너덜길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
1,326m봉(06:50)
너덜길을 올라오니 1,326m봉이 산꾼을 반긴다.
정상에는 3등 삼각점(△설악304 2007 재설)이 있고 어느 산꾼이
이름을 마등봉이란 써놓았다. 마등령 위에 있는 봉우리라 마등봉인가?
날씨가 너무 좋은 탓인가. 가야할 대청봉과 공룡능선이 손에 잡힐듯하다.
그리고 화채능선에 잇는 화채봉, 칠성봉, 집선봉도 너무나 뚜렸하게 보인다.
1,326m봉 정상에서
1,326m봉에서 바라본 설악산의 멋진 仙景
공룡 능선(恐龍稜線)의 모습
마등령(馬登嶺)에서 희운각 대피소(喜雲閣待避所) 못 미처 바로 북쪽 신선암(神仙岩)까지의
바위 능선으로 바위가 뾰족하여 마치 공룡(恐龍)의 등같이 생겼다.
나한봉(羅漢峰, 1275m), 노인봉(老人峰, 1184m)이 위치하고 있다.
마등령가는 넓은 공터에 있는 조그만 돌탑
나한봉(羅漢峰)의 모습
마등령 가는 길에서 화채 능선(華彩綾線)
대청봉(大靑峰)에서 시작하여 화채봉(華彩峰), 칠성봉(七星峰), 집선봉(集仙峰),
권금성(權金城)까지 이어진 능선으로 일명 동북 능선(東北稜線)이라고도 한다
화채(華彩)란 꽃처럼 고운 빛깔을 수놓은 능선을 일컬음을 말한다.
화채능선은 설악산의 VIP석이라고 한다.
자연휴식년제로 오랫동안 등산코스를 개방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보존상태가
뛰어나au 또한 곳곳에 협곡과 절벽으로 인해 일반 등산객들이 개별적으로 산행하기는 위험하다.
설악의 멋진 풍경사진등은 대부분 화채능선에 찍은 사진들이 많다고 한다.
화채능선을 찾는 사람은 산꾼보다는 사진작가들이 더 많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조망이 빼어날 뿐만아니라, 화채능선은 항상 출입이 통제돼 왔던 설악의 성역과도 같은 곳이다.
설악 매니아들 중에서도 화채능선 한번 가보는게 꿈이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마등령 정상(07:00)
미시령에서 이곳까지 8.5km의 단속구간을 이제사 벗어난다.
벗어나면서 범칙금 10만원 벌었다는 희열을 맛보면서 쩐 좀 벌어볼까 하고
수선화님을 카메라에 담는데 그 쪽도 나를 찍어면서 물귀신 작전을 펴는 바람에 포기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금강굴과 비선대를 내려가는 길이고
우린 우측 마등령으로 내려간다.
마등령(馬登領:07:07)
내 ·외설악(內 ·外雪嶽)을 연결하는 고개 중의 하나로 동으로 금강굴(金剛窟), 비선대(飛仙臺),
서로는 오세암(五歲庵), 백담사(百潭寺), 남으로 공룡(恐龍)능선, 대청봉(大靑峰),
북으로는 저항령(低項領), 황철봉(黃鐵峰), 미시령(彌矢領)으로 연결된다.
지금은 등산객들만이 넘어 다니나, 예전 도보시대에는 행상인, 민간인들이 동·서를 넘어 다닐 때
이용한 옛길 중의 하나였다. 말 등처럼 생겼다고 하여 마등령(馬登領)이라고 하였다 한다.
현재는 대부분 마등령(馬登領)으로 표기하나, 옛 기록에는 모두 마등령(馬等領)으로 되어 있다.
또 《설악(雪嶽)의 뿌리》에는 마등령(摩登嶺)으로 표기하여, 산이 험준하여 손으로 기어
올라가야 한데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오세암(五歲庵) 가는 길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내설악 백담사에서 10km 쯤 떨어진 해발 1,200m고지에 오세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옛날 매월대사가 두 살 된 자기 조카를 동자로 데리고 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암자를 짓고 매월암이라 하였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어느 해 늦은 겨울, 대사는 암자의 식량이 떨어지자 당시 4살 된 동자에게 식량을
구하러 양양 큰 절에 가서 3일 간 있다가 올터이니 기다리라 하고 떠났다. 대사는 3일분 식량만 남겨
놓은 채 길을 떠났으나 양양에서 식량을 구해 가지고 돌아올 무렵 공교롭게도 큰 눈이 내려 다섯 자나
넘게 쌓였고 겨울이 다 지날 때까지 눈이 녹지 않아 비통 속에서 해를 넘기고 이듬해 3월에야 절로 돌아오게 되었다.
대사가 암자 못미쳐 망원대에 올라 바라보니 신기하게도 암자에서 목탁소리가 들려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급히 달려가 보니 동자가 불상 앞에 앉아 목탁을 치고 있는데, 몸은 오래 전에 이미 죽었으나
가느다란 목소리로 계속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대사는 지난 겨을 식량을 구하러
절을 떠나기 전에 동자에게 너의 어머니는 관세음보살이니라 하고 일러 주었었다.
대사는 다섯 살 된 동자가 견성득도한 것을 보고 암자의 이름을 오세암으로 고쳤다고 한다.
마등령 좌측 아래에서 동료산꾼들과 30여분간 같이 식사를 하는데
싸가지고 온 밥에다가 물김치를 말아 먹는데 영 밥맛이 없지만
억지로 밥을 목구멍으로 밀어넣긴 했지만 속은 계속해서 불편하다.
지난해 여름에 능경봉을 같이 간 하양님은 음식을 바라바리 싸오셔서
먹으 보라고 권했는데 몸에서 받아주질 않으니 그림의 떡이다.
식사를 마치고 하양 고문님과 오랫만에 같이 걸어보는 종은이 아우님과
베낭을 메고 예전에 독수리상이 있었던 곳에서 사진을 찍는데 평소에
사진을 잘 찍던 종은이 아우님이 역광으로 찍어 새카맣다.
이곳 마등령에서 시작하여 무너미고개까지 시작되는 공룡능선길에 5.1km에 발을 들인다.
우리나라의 최고의 명산답게 일반 등산객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산행시간이 지체된다.
마등령(馬登領)에서 희운각(喜雲閣) 못미쳐 바로 북쪽 신선암(神仙岩)까지의 바위 능선으로
바위가 뾰족하여 마치 공룡(恐龍)의 등같이 생겼다하여 붙혀진 이름으로
나한봉(羅漢峰), 1,275m봉, 노인봉(老人峰), 1,184m봉이 위치하고 있다.
1963년 겨울 선우중옥, 정규현, 채태웅 팀이 처음으로 공룡(恐龍)능선을 주파하였다고 한다
아름답게 피어있는 핑크빛 큰앵초
멋진 공룡능선과 대청. 중청봉의 모습
꼭 가보고 싶은 용화장성 능선
용아장성은 내설악 그 중심부에 있으며 동으로 가야동계곡과 만경대, 공룡능선이
펼쳐지며, 서로는 수렴동, 구곡담계곡을 끼고 서북 주릉이 장대하게 펼쳐져 있다.
내설악의 중심에 자리한 용아장성은 용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20여 개의 바위봉우리가
연이어 성처럼 길게 둘러쳐 있다.
좌측으로 눈을 돌리니 세존봉과 계곡 끄트머리에 비선대도 아련히 보이고...
세존봉(世尊峰) 은 마등령(馬登領) 밑(동쪽) 금강문(金剛門) 바로 위(북동쪽)에 있는
봉우리로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존칭인 석가세존(釋迦世尊)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암릉 사이에 게으름뱅이 키작은 붓꽃은 이제사 핀다.
다시 급경사의 암릉 계곡을 로프에 의지한 채 내려가는데
이곳은 일반 등산객이 많아서 자꾸만 시간이 지체가 된다.
나한봉(羅漢峰:08:25)
공룡 능선(恐龍稜線)에 있는 봉우리 중의 하나. 마등령(馬登嶺)과 1,275m봉
사이에 있으며, 불교의 수호신인 나한(羅漢)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나한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은 성자를 가리킨다.
불교에서는 누구나 불성이 있기 때문에 ‘부처’ ‘보살’ ‘나한’ 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각자(覺者)라는 점에서는 같다. 나한은 불교가 발달하면서 변화의 과정을 겪는다.
처음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 뿐이었다. 그 뒤 부처님이 성도한 뒤 최초의 제자가 된 교진여 등
다섯 비구가 아라한과의 경지를 얻었다. 이어 야사와 그의 친구 54인, 가섭과 그의 제자 등 당시는
깨달은 사람은 모두 나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승불교가 나타나면서 나한은 소승의 성자로 격하됐다.
이타를 강조하는 보살에 비해 자신의 해탈을 추구한다는 이유에서 나한의 의미가 낮게 평가된 것이다.
나한은 중국으로 건너가면서 신앙의 대상으로 전환한다. 나한은 그 수가 16, 500, 1200 등 다양하지만
보통 16나한과 500나한을 이르는 말이라 한다.
나한봉 이정표
끈질긴 생명
이곳 공룡능선길은 화강암의 1억년 풍화작용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으로 왜 설악산인가를 보여준다.
이 멋진 공룡능선은 미국의 뉴스채널 전문방송인 CNN이 한국의 명소 50곳 중에 하나란다.
누에봉공룡능선은 외설악과 내설악을 남,북으로 가르는 설악산의 대표적인 능선으로
백두대간 코스중에 가장 멋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대간길을 걷다보면 산이 높고 웅장한 곳만 멋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아마 이곳만은 그 예외를 둘 만하다.
능선으로 오르니 이정표(←마등령 1.7km →희운각 대피소 3.4km)가 나온다.
일반 등산객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꽤나 많아 걸림없이 다니는 다니는
습성을 가진 범여로서는 이런곳이 왠지 불편하고 어색하기만 하다.
4년만에 같이 산행을 한 종은이 아우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걷는다.
공룡능선상에 있는 멋진 암릉들
억년의 풍화작용에 의해 빚어진 암릉은 신이 만든 최고의 예술작품이다.
평소에 사진찍기를 즐겨하는 종은이 아우님이 야생화를 찍는 장면
1,275m봉을 향해서 간다.
지금의 공룡능선은 예전에 걸을때 비해서는 완전히 고속도로 수준이다.
잘 관리가 되어있고 우회로 많이 만들어서 시간이 많이 단축되는 느낌이다.
지나온 공룡능선의 모습
짙은 붉은색을 띠고 있는 병꽃나무도 만나고...
1,275m봉(09:05)
칠형제 바위도 보이고...
볼수록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능선 좌측 속초쪽의 모습
첫째, 속초는 속새(높이 30~60㎝의 상록 양치식물)가 많으므로 황무지, 원야(原野)의 의미로 속새,
또는 한자로 표기하여 속초(束草)라고 불리었는데, 이 두 땅이름이 함께 사용되다가
속초라는 땅이름만 남게 되었다.
둘째, 지금의 영금정 옆에 솔산이 있을 때, 바다에서 이 포구를 들여다보면 그 솔산이 소나무와
풀을 묶어서 세워 놓은 것 같은 형태라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셋째, 풍수지리학 상 속초 지형이 와우형(臥牛形)으로 소가 누워서 풀을 먹고 있는 형국이므로,
누워서는 맘대로 풀을 뜯지 못하기 때문에 풀을 묶어서 소가 먹도록 해야 한다는 뜻으로 지었다.
넷째, 울산바위에 관한 전설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설악산에 구경 왔던 울산 고을의 원님이
신흥사 승려에게 울산바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가로 세금을 내라고 하여 해마다 세금을 받아갔는데,
어느 해에 신흥사의 동자승이 이제 세금을 주지 못하겠으니 이 바위를 도로 울산 땅으로 가져가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울산 고을의 원님이 이 바위를 재(災)로 꼰 새끼로 묶어 주면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동자승이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 곧 지금의 속초 시가지에 자라고 있는 풀을 새끼로 꼬아 울산바위를
동여 맨 후 불에 태워 재로 꼰 새끼처럼 만들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에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가
한자로 ‘묶을 속(束)’자와 ‘풀 초(草)’자로 적는 속초(束草)로 불리게 되었다.
--- 속초문화원 발간 [속초(束草)의 옛 땅이름]에서 인용
칠형제 바위산행을 시작한 지 8시간이 넘어가고 있다.
그 동안 설악산의 커다란 뒷간에다
볼 일을 4번이나 보고나니 자꾸만 힘이 빠지고 물이 부족하여 아껴먹다 보니
몸에 수분이 모자란 지 자꾸만 입이 바짝 마른다... 아무래도 어제 점심때 먹은
냉면에서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 먹는 자체가 무섭기만 한데 산행대장인
진권이 아우님이 사과 반쪽을 건낸다. 그건 괜찮겠지하고 억지로 먹는다
왜냐면 장거리 산행은 먹는만큼 걸어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종은이 아우가 사진 한장을 찍어준다.
샘터(09:40)
이정표도 만나고...
가야할 범봉이 지근거리에 있건만 다리는 자꾸만 무거워지고...
설악산은 ‘한가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여름 하지 때가 되어야 비로소 녹기 때문에 설악이라 불린다’고
옛 기록에 나온다. 우리나라 굴지의 명산으로 남한에서 한라산, 지리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이 산은 지난 1994년 9월 1일 설악산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바 있다. 점점 다리는 무거워 지는데 아직도 희운각이 1.8km나 남았으니...범봉이 왜 이리도 멀게만 느껴지는지...
보면 볼수록 공룡능선의 매력에 빠져든다.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고...
문화재청은 세계자연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돼 있는 강원도 설악산 지역 내 중요 10경에 대해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18일 밝혔다. 이번에 명승 지정예고된 곳은 설악산내에서
웅장하고 경관이 빼어난 외설악 6곳과 내설악 4곳 등 총 10곳이다. ▲비룡폭포 계곡 일원▲토왕성 폭포
▲대승폭포▲십이선녀탕▲수렴동ㆍ구곡담 계곡 일원▲비선대와 천불동 계곡 일원▲용아장성▲공룡능선
▲울산바위▲내설악 만경대 등이다.
설악산의 주봉은 대청봉(1708m)으로 태백산맥 북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강원도 인제군과 양양군,
고성군 일부와 속초시까지 4개 시·군에 걸쳐있다. 동쪽은 외설악, 서쪽 인제방면을 내설악, 남쪽을 남설악이라 부른다.
외설악은 천불동계곡을 끼고 양쪽에 솟은 기암절벽의 봉우리로 남성적인 절경을 이루는 데 비해,내설악은
우아한 계곡미로 백담, 수렴, 백운, 가야의 여러 계곡동천으로 갈라져 은은하고 여성적인 경관을 이룬다.
더운 날씨탓에 온 몸에 땀이 비오듯 흘러 내린다.
희운각 가는 길이 왜이리도 멀다 말이냐?
설악반달아 넌 맨날 하지말라는 얘기만 하냐
다시 범봉을 향해 오르막을 치고 오르는데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아무래도 종은이 아우님이 아침에 오버페이스를 하는 바람에 인대가 이상 신호를 보내는 모양이다.
나 역시 너무 힘들어 범봉 올라가는 중턱에서
새로온 주원이 아빠와 하늘마음님과 휴식을 취한 다음에 범봉으로 향한다.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울산바위의 모습새벽에 걸었던 황철봉이 아련히 보인다...
그리고 마등령도. 참으로 내가 생각을 해도 대단하고 대견스럽다.
쥔장 잘못만난 범여의 다리(足)에게 늘 미안하고 고맙기만 하다.
전생의 지은 업이려니 생각하고 來生에는 편한 쥔장을 잘 만난시게나.
지나온 공룡능선의 모습
신선봉(10:40)
신선봉에 설치된 봉우리 안내판
오늘 가야할 길
천화대의 모습범봉은 천화대의 암봉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설악산에 하늘에서 꽃이 내려와 앉았다는
천화대(天花臺)에 석주길 이라고 하는 릿지코스가 있다.
"천 가지의 꽃이 피어있다"
"바위에 피어있는 꽃" "하늘 꽃"이라는
숫한 설을 남긴 천화대는 그 만큼
아름답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천화대는 비선대에서 철 계단을지나
천불동 계곡방향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초입이 시작되며
끝 지점인 공룡능선에서는
비선대 방향으로는 동북쪽으로 연결되어 있고
외설악을 대표하는 30개 이상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야하는 구간이다.
무너미 고개(11:00)
천불동(千佛洞)계곡과 가야동(伽倻洞)계곡의 경계에 위치하여 내 ·외설악(內 ·外雪嶽)을
구분지으며, 고개 바로 북쪽에 희운각(喜雲閣)대피소가 있다.
무너미의 무는 물에서, 너미는 넘는다(건넌다)에서 왔음이 틀림없다.
물을 넘는다(건넌다)란 뜻의 무너미를 한자(漢字)로 수유(水蹂), 수월(水越)이라고도
표기하는데, 이 지명도 전국에 무수히 많이 분포한다.
무너미 고개 지나서 만난 헬기장
희운각(喜雲閣) 대피소(11:10)
천불동(千佛洞)계곡과 가야동(伽倻洞)계곡의 경계인 무너미고개 바로 북쪽에 위치한 대피소로
1971년 한국산악회 최 태묵(崔 泰默)씨가 건립했다. 지금은 그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 됐다.
동쪽으로는 천불동(千佛洞)계곡, 서쪽으로는 가야동(伽倻洞)계곡, 남쪽으로는 대청봉(大靑峰),
북쪽으로는 공룡(恐龍)능선으로 갈라지는 교통의 요지이다.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하니 한참을 앞서갔던 김포 패밀리 일행이 돼지 불백에다
라면을 끓여서 점심을 먹고있다. 난 우선 물 5개를 사서 베낭에 넣고 김포 오야지님
한테서 라면을 얻어 먹는다. 컨디션은 최악이었지만 먹지 않으면 갈 수 없기에
억지로 라면을 꾸역꾸역 입으로 넣고 캔 커피 한잔 마신다.
조금후에 도착한 하늘마음님도 컨디션이 말이 아닌 모양이다.
오늘 김포팀들은 대청봉을 대간길이 아니라고 가지 않는단다. 그래도 명색이 설악산에
와서 대청봉을 가지 않으면 안되냐고 하니까. 여러번을 왔다 갔다고 한다.
누군 안와봤나... 다행이 김포대님이 동행해 주시는 바람에 둘이서 대청봉으로 향한다.
소청가는 데크목 계단에서 바라본 신선봉의 모습
소청가는 천불동 계곡의 모습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은 비선대(飛仙臺)에서 대청봉(大靑峰)에 이르는 설악산(雪嶽山)의
가장 대표적인 골짜기로 협곡을 이룬 계곡 양쪽의 기암 괴봉들이 마치 천불(千佛)이 꽉
들어차 있는 듯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설악을 대표하는 절경들이 거의 이 골짜기에 밀집되어 있다.
비선대(飛仙臺)에서 대청봉(大靑峰)으로 올라가면서 오른편(서쪽)으로 토막골, 설악골, 잦은
바위골, 용소(龍沼)골, 왼편(동쪽)으로 칠선골, 염주(念珠)골, 죽음의 계곡이 갈라진다.
소청가는 길에서 만난 서낭당의 흔적같은 돌무더기
지나온 공룡능선의 모습
소청봉(小靑峰:1,550m:12:30)
소청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소청대피소가 있고 그 아래에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봉정암이 있고 그 아래로 용화장성이 연결된다.
4년전 백두대간 북진길에 소청 대피소에서 비박을 하면서 밤새 폭탄주 마신 기억이 선한데...
4년전 젊은 산꾼들과 이슬이에 션한맥주에 폭탄주로 비박을 즐거움을 만끽하고( 2009.07.04)
이른 새벽(03:00) 봉정암 사리탑까지 내려가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2009.07.05)
봉정암 석가 사리탑 (사진 펌)
부처의 뇌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하여 ‘불뇌보탑’이라고도 부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인 백담사의 말사로 대표적 불교성지인
5대적멸보궁 가운데 하나로 불교도들의 순례지로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은 지리산 법계사가 해발 약 1400m로 가장 높고
다음이 봉정암(1244m)이며,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형국의 산세에 정좌하고 있는 봉정암은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가섭봉·아난봉·기린봉·할미봉·독성봉·나한봉·산신봉이 감싸고 있다.
자연암석을 기단부로 삼아 그 위에 바로 오층의 몸체를 얹었다.
이 자연암석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데, 1면에 4엽씩 16엽이 탑을 포개고 있어 부처가
정좌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맨 위에는 연꽃인 듯한 원뿔형 보주가 높이 솟아 있다
원효성사와 보조국사 등 여러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으며 지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봉안하여 창건하였다.
봉정암을 들리지 못하는 진한 아쉬움을 남기며 저두삼배릐 예를 올리고 중청으로 향한다.
설악산에는 조계종의 발상지인 진선사와 대한불교조계종의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 계조암, 금강굴, 만해 한용운이 기거했던 백담사, 오세암, 봉정암이 있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해발 1224m에 위치한 암자인 봉정암에 들러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석가사리탑을 보고 와야 설악산에 오른 보람이 있다.
설악산은 1000번을 가도 질리지 않는 산, 천의 얼굴을 가진 산이라 부른다.
화채능선과 천불동 계곡이 산꾼의 마음을 유혹한다
우측으로는 서북능선의 주봉인 귀때기청봉이 보이고...
가야할 백두대간 능선길
지나온 공룡능선은 雲海를 이루고 있다.
뒤돌아보니 백담사로 연결되는 수렴동계곡도 뚜렸이 보이고...
힘든 범여를 끝까지 동행해 준 김포대님 넘 고마웠습니다
대청봉과 중청 대피소가 보이기 시작하고...
끝청갈림길(12:50)
끝청갈림길에서 대부분의 산꾼들은 백두대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곳에서 한계령으로
향하는데 그래도 설악산의 최고봉인 대청봉을 안 들리고 간다는게 말이 된 단 말이냐...
중청대피소(12:53)
중청 대피소에다 베낭을 벗어놓고 스틱과 물 한병만 가지고 대청봉으로 향한다.
중청대피소와 대청봉 인근에서만 자란다는 눈잣나무
대청봉 정상에 오르니 봉정암으로 성지순례를 온 서귀포불교대학
출신들이 대청봉 정상에서 봉정암을 향해서 예불을 올리고 있다.
대청봉(大靑峰1,708m:13:10)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과 양양군 서면, 그리고 인제군 북면에 걸쳐있는 봉우리로 상청봉(上靑峰),
또는 청봉(靑峰)이라고도 하는 설악산(雪嶽山)의 주봉이다. 바로밑(북서쪽)에 중청봉(中靑峰)이 있고,
그 밑(북쪽)에 소청봉(小靑峰)이 있다.무진자(無盡子)가지은 《오세암사적(五歲庵事蹟)》에는 청봉(靑峰)을
봉황대(鳳凰臺)라고 했으며, 성해응(成海應)의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는 봉정(鳳頂)으로 기록되어 있다.
「봉황대(鳳凰臺)의 정상인 봉정(鳳頂)은 설악(雪嶽)의 맨 꼭대기이다. (鳳頂卽嶽之極處)」
청봉(靑峰)이란 명칭의 유래에 대하여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는 「멀리서 보면 아득하게 청색으로 보인다.
그런 까닭으로 그 봉우리를 가리켜서 이름을 청봉(靑峰)이라고 하였다.(遠見只標渺而靑故指其絶頂而名日靑峰)」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 은상(李 慇相)은 봉황대(鳳凰臺), 봉정(鳳頂), 청봉(靑峰) 등은 우리 조상들의 옛 신앙의 근원이었던 광명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한다.지금은 정상 부위에 대청봉이라고 새긴 자연석 비석과 요산요수(樂山樂水)라고 새긴 비석이 있으나,
이전에는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한다. 제단에는 가운데에 설악상봉국사천왕불신지위(雪嶽上峰國司天王佛神之位),
왼쪽에 팔도산신중도신령(八道山神中道神靈), 오른쪽에 설악산신령(雪嶽山神靈)이라고 쓴 위패가 모셔져 있어
봄,가을로 산신제를 모셨다고 한다.
대청봉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요산요수(樂山樂水)예전에 이곳에 제단이 있어서 설악산 산신제를 지내던 곳이라 한다
양양에서 설치한 대청봉 표시석
광여도에 표기한 설악산
대청봉 정상에서 바라본 지나온 공룡능선과 천불동 계곡의 모습
대청봉에서 바라본 중청의 모습
대청봉 아래에는 이제서야 진달래가 핀다.
중청대피소로 되돌아 가는 김포대님의 뒷모습
다시 중청대피소(13:37)
이곳에 도착하여 너무 배가 고파 우유 하나와 포도당 사탕 2알을 먹고 끝청으로 향한다
김포대님과둘이서 끝청을 향하는데 조금을 더 능선으로 올라가니 평소에 배신(?)을
잘 때리던 수선화님과 길빛 아우님이 가는것이 보인다.
어찌나 반가운지... 그런데 대청도 가지 않았던 2분이 오늘따라 계속 뒤쳐진다.
중청대피소에서 마지막으로 구름바다에 휩싸인 공룡능선을 함 더 바라보고...
끝청 갈림길 이정표에서 좌측 한계령으로 향한다.
용화장성에 둘러싸인 봉정암의 모습
끝청봉(1,610m14:15:)
끝청봉 정상에서
설악산을 10번도 넘게 올라와 봤지만 오늘만큼 좋은 날씨는 없었다.
세상사 한가지를 잃어면 한가지를 얻는법... 설사로 인한 육체적 고통은
엄청났지만 또 이렇게 좋은 날씨로 雪岳의 멋진 仙景을 얻지 않았던가.
남설악 너머로 다음구간인 망대암산과 점봉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눈을 약간 우측으로 돌리니 서북능선과 귀때기청, 봉정암과 수렴동 계곡이
손에 잡힐듯한 이 一望無際... 三代가 복을 지어야 볼 수 있다는 이 장관
난 분명히 오늘만큼은 복받은 사람이 분명하다
다음구간에 가야할 남설악의 산그리메들
끝청봉 정상에서 바라본 서북능선과 귀때기청봉(1,578m)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있는 봉우리로 설악산 봉우리중 자기가제일 높다고 으시대다가,
대청, 중청, 소청봉 삼형제에게 귀싸대기를맞았다고해서 귀때기청봉이라고 부른다.
끝청 갈림길에서 한계령까지의 거리는 7.7km 내리막길이 많지마는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이 13시간정도 걸었는가 보다, 설사로 인해 고통을
받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잘 버텨왔는데 갈수록 다리는 무거워지고
걷는 속도는 느려진다. 같이가던 수선화님과 길빛 아우님은 뒤쳐지고
같이 동행한 김포대님에게 미안한 감정만 든다.
4년전 북진길에서도 만난 명물
고개를 낮춰서 下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자꾸만 쉬는 시간이 길어진다.
발바닥에 불이나는 느낌이다... 잠시후 뒤쳐진 일행과 만나서
아예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무릎과 발목에 스프레이 파스를
뿌리고나니 조금은 나은 느낌이다.
설악 09-10이라 그러면 아직도 한계령까지 5km 나 남았다는 얘기가 아닌가?
1,474m봉(15:35)
1,474m봉에서 바라본 남설악의 운해
그냥 구름바다에 풍덩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1,474m봉부터 여태껏 버텨왔던 육체적 과부하가 걸리면서 체력이 고갈된다.
자꾸만 시간은 지체가 육산 등로가 아닌 너덜길을 계속 오르내리다 보니
그냥 주저 앉고 싶은 마음뿐이나 여기서는 중간 탈출로가 없기에 죽으나사나
한계령까지는 가야 한다. 계속해서 고갈된 체력과의 사투를 벌이면서 가는데
산행대장인 진권이 아우님이 걱정이 되는지 중간에서 기다리고 있다.
1시간이나 이곳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우린 먼저 출발하고 대장은 후미를 기다린다.
환상적인 장관은 연출되지만 이젠 아무것도 싫다.
귀때기청 갈림길(16:35)
이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는 곳이 설악산 서북능선으로
귀때기청봉을 지나 대승령과 장수대로 이어지는 곳이다
좌측으로 내려서니 한계령이라는 표지판이 나오고 계속해서 오르내림을
계속하건만 이젠 젖먹던 힘까지 다 빠져버려 탈진상태 일보직전이다.
지나온 길과 비교를 하면 훨씬 좋은 길이지만 시간당 1km 가기가 힘이든다.
조금을 내려오니 데크목 계단이 나오고 또다시 오르막내리막
두번을 반복하고 나니 완전히 그로키 상태이다.
1,474m봉에서 이곳까지는 ⊂ 형태로 등로가 이어진다.
한계령 출입문(17:55)
드디어 한계령 휴게소가 보이건만 다리는 천근만근이고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설악산 위령비
설악루라는 정자에 내려서니 한계령 휴게소가 한 눈에 들어오고 우리를
태우고 온 愛馬가 저 앞에 보이는건만 긴장이 풀린 탓인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같이 동행한 김포대님이 시원한 캔맥주 2개를 가져와서 하나를 마시고나니 살 것만 같다.
설악루에서 바라본 한계령의 모습
한계령 휴게소(18:05)
16시간 45분간의 死鬪 끝에 설악산 종주를 마치는 스틱을 접는다.
한계령의 유래는
조선 영조시대 인문 지리학자 이중환 저서 택리지 에서 백두대간 강원도 지역 이름난 嶺 여섯개을
꼽히였는데 함경도 와 강원도경계 철령 그 아래 추기령 금강산 연수령 오색령(한계령 그 아래 대관령
백복령 이였다 그중 으뜸 으로 알려진 곳이 오색령 이다 오색 한계령 점봉산을 이은 삼각형이 한축
이 되는 산마루 고개 이다 원래 오색령 이다
1968년 공병부대가 한계령 도로 공사가 인재군 한계리 에서 시작 1972년에 개통되였고 1978년에
포장은 완공 되였다 공병부대 막사가 한계리 주둔 하여 그 이름을 따서 한계령 이라고 부르게 된다
인재군 북면과 양양 으로 넘어 가는 44국도가 지나 가는 고갯마루 영동과 영서을 가르고
내설악 외설악 분기점 이기도 하다
차에서 옷가방을 가지고 화장실에서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이곳 한계령은 얼마나 추운지 오한이 밀려온다... 얼른 바람막이 자켓을 입는다.
차에서 한계령에서 인제쪽 넘어가는 길에서 바리게이트 넘어에 있는 수준점
한계령 (寒溪嶺:920m)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북면과 양양군 서면을 잇는 고개로 대청봉과 그 남쪽의 점봉산을
잇는 설악산 주 능선의 안부이며,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의 분수령을 이룬다.
과거에는 양양군에 해당하는 산을 설악산이라 하고 인제군에 해당하는 산을 한계산이라 했다.
고개의 이름은 한계산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산도둑이 들끓어, 해가 지면 이 고개를 넘지 말라는
뜻으로 고개의 길목인 양양군 서면 오가리의 길 옆 바위에 금표라고 새겨두었다.
지금도 그곳에 바위가 있으며, 한계령에 오르는 길에는 금표교가 있다
일명 재내·와천이라고도 한다. 고개의 동쪽은 동해쪽 사면으로 경사가 급하고,
오색을 거쳐 양양을 지나 동해로 흘러드는 남대천의 계곡으로 이어진다.
서쪽은 북한강의 지류인 소양강 상류에서 동쪽으로 분기하는 북천의 계곡과 연결된다. 따라서,
도로도 이들 양 계곡을 따라 개통되고, 예로부터 인제군을 중심으로 하는
영서 중부 지방과 양양군을 중심으로 하는 영동 중부 지방을 연결하였다.
특히, 한계령에서 인제에 이르는 서쪽 사면의 도로는 한계리를 거치는 길 외에 한계령에서
남서 방향의 계곡을 따라 가리봉(加里峰, 1,525m)의 남쪽을 돌아 흑석리를 거쳐가는 두 갈래의 길로 분기된다.
옛날에는 소동라령(所東羅嶺)이라고도 불려 해안 지역과 내륙 지방을 잇는 험한 고개였다.
그러나 1971년 12월에 도로가 확장되고 양양에서 인제까지 도로가 포장, 정비되어 내설악과
외설악을 연결하는 구실뿐 아니라, 설악산국립공원의 관광 자원 개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고개 서쪽 계곡에는 대승폭포·장수대가 있고, 고개를 넘어 남대천의 상류 오색천에 이르면
개울가의 암반에서 솟는 오색약수가 있고, 약수터에서 온정골 쪽으로 2㎞쯤 올라가면 오색온천이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한계령은 동해안의 낙산사·의상대를 거쳐 비선대·비룡폭포·신흥사의 외설악을
잇는 관광 도로의 요충지 구실을 하고 있다. 오색계곡의 한계령 능선상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한계령풀(매자나무과의 2년초, 높이 30∼40㎝, 5월에 황색꽃이 핌.)로 유명하다.
또한, 한계령 위에 돌로 쌓은 둘레 6,287척, 높이 4척인 한계고성(寒溪古城)터가 있는데 지금은 그 문자리만 남아 있다.
이 지역은 몽고침입 때 조휘(趙暉)의 모반으로 원나라에 투속되었다가 공민왕 때 탈환된 곳으로서,
‘至正十八年’(1358)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된 바 있다
양양군에서 세운듯한 오색령 표시석
후미가 도착하고 19시가 넘어서야 서울로 향한다.
인제읍에 들려서 저녁을 먹는데 아마도 한계령에서 먹은 맥주가 탓이난 모양이다.
계속 설사만 나서 저녁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서울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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