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 - 나부상과 은행나무의 전설
나 부 상 |
전등사의 대표적인 건물인 대웅보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전등사 대웅보전이 더욱 유명하게 된 것은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裸婦像) 때문이다.
대체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신성한 법당에 웬 벌거벗은 여인인가 하고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나부가 아니라 원숭이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원숭이는 사자나 용과 마찬가지로
불교를 수호하는 짐승으로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의 사찰에 모셔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등사 대웅전의
조각상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나부상이라는 데 의견이 더 많다.
이 나부상과 관련해서는 유명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전등사는 16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가운데 여러 차례 화재를 겪고 이 때문에 대웅보전도
여러 번 중건되었다. 그 중 지금의 나부상이 만들어진 것은 17세기 말로 추측된다.
당시 나라에서 손꼽히는 도편수가 대웅보전 건축을 지휘하고 있었다.
고향에서 멀리 떠나온 그는 공사 도중 사하촌의 한 주막을 드나들며 그곳 주모와 눈이 맞았다.
사랑에 눈이 먼 도편수는 돈이 생길 때마다 주모에게 모조리 건네주었다.
“어서 불사 끝내시구 살림 차려요.”“좋소. 우리 그림 같은 집 한 채 짓고 오순도순 살아봅시다.”
도편수는 주모와 함께 살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대웅보전 불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사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그 주막으로 찾아가보니 여인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며칠 전에 야반도주를 했수. 찾을 생각일랑 아예 마시우.”이웃집 여자가 말했다.
도편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여인에 대한 배반감과 분노 때문에 일손이 잡히지 않았고 잠도 오지 않았다.
그래도 도편수는 마음을 다시잡고 대웅전 공사를 마무리했다. 공사가 끝나갈 무렵 대웅전의 처마 네 군데에는
벌거벗은 여인이 지붕을 떠받치는 조각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전등사 대웅보전에 얽힌 전설이다.
이 나부상이 더욱 재미있는 것은 네 가지 조각이 제각각 다른 모습이라는 점이다.
옷을 걸친 것도 있고 왼손이나 오른손으로만 처마를 떠받든 조각도 있으며 두 손 모두
올린 것도 있기 때문이다.이 대웅전의 나부상은 희랍의 시지프스 신화를 연상케 한다.
그런가 하면 부처님을 모신 성스러운 전각이지만 그런 조각상을 세운 당시 도편수의 익살과 풍자,
그런 파격을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전등사 스님들의 자비로운 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과연 그 대웅전을 중건했던 도편수나 스님들은 무슨 뜻으로 나부상을 올려놓았던 것일까? 단순히 사랑을 배신하고
욕심에 눈 먼 여인을 징계하고자 하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도망간 여인이 잘못을 참회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염원도 들어있는 것이다. 또 그런 조각상을 보게 될 후대의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본받으라는 뜻도
담겨 있으리라. 그렇기에 전등사 대웅보전의 나부상은 보면 볼수록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은행나무
전등사에는 두 그루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다. 수령이 5백 년이 넘는 나무들이다.
한 나무는 노승나무, 다른 한 나무는 동승나무로 불리는가 하면 암컷, 수컷으로 불리기도 한다.
은행나무는 암컷과 수컷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그
런데 전등사 은행나무는 꽃은 피어도 열매가 맺지 않는다고 한다.
이 신기한 나무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강화도령 철종 임금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전등사에 관가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아주 어려운 요구를 하였다. 절에 있는 은행나무의 은행이 열릴 쯤 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열매를 회수해 갔는데 이번에는 은행열매 스무가마니를 조정에 바치라고 요구하였다.
그런데 그 은행나무에서 열리는 은행의 양은 기껏해야 열가마니 정도였다. 그
러니 관가(조정)에서 수확량의 두 배를 요구하는 것이다.
관리들의 횡포가 이만저만 심한 게 아니었다.
이 지시를 듣게 된 동승이 노스님께 고했다.『스님! 정말 관가에서 너무들 하는 것 아닙니까요?』
『허허,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얘야,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미워해선 안 되느니라.
참아야 하느니…….』노스님은 이렇게 타일렀지만 자신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은행 스무 가마를 내놓을 수도 없었고 관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더욱 더 불교를 탄압할 것이 분명했다.
불교 탄압이 심했던 조선조 시절. 나라에 공물을 바치고 사역을 해야 했던 스님들은 깊은 산으로 들어가 은거했다.
따라서 많은 절이 폐사 또는 퇴락해 갔다. 이럴 즈음 강화도 전등사에도 벼슬아치와 토호들의 토색질이 심했다.
젊은 스님들은 강화성을 쌓는 데 사역을 나갔고 나이든 스님들은 절에서 종이를 만들어 바쳐야 했다.
그러나 스님들은 이에 저항하지 않고 이런 어려움을 수행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노스님은 하는 수 없이 백련사에 있는 추송 스님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추송 스님은 도력이 높기로 소문이 난 분이었다. 바람과 비를 몰아오는 신통력을 지녔으니
은행 20가마 열리게 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며칠 후 추송 스님을 전등사에 모셔 왔다. 추송 스님은 곧장 주지실로 들어갔다.
수인사를 마친 두 스님은 한동안 무엇인가 의논했다. 이윽고 노스님이 동승을 불렀다.
『선재야, 모든 대중을 일주문 밖 은행나무 아래로 모이도록 일러라.
그리고 별좌 스님은 은행나무 아래 제단을 마련하고 3일 기도 올릴 준비를 하도록 해라.』
『스님, 은행을 많이 열리게 하는 기도인가요?』
『그렇다. 어서 전하기나 해라.』
노스님은 동승을 재촉했다.
이튿날 아침부터 은행을 더 열리게 하는 3일 기도가 시작되었다.
전등사 은행나무에서 은행이 두 배나 더 열리게 하는 기도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은
곧 인근 마을에서 마을로 알려져 강화섬 전역에 퍼졌다. 구경꾼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구경 나온 아낙들도 추송 스님을 따라 절을 하면서 함께 기도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올리는 재는 그 열기가 점점 고조되어 갔다.
당대의 도승 추송 스님이 친히 3일 기도를 올린다 하니 강화섬 벼슬아치들도 호기심을 갖고 기도장에 나타났다. 『노인, 당신이 주지요?』 『그렇소.』 포졸 서너 명과 함께 나온 군관이 노스님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 재는 왜 올리는 거요? 나라에 공물을 바치기 싫어서 상감마마와 백성을 저주하는 기도가 아니오?』
『어찌 그런 무엄한 말을… 우리는 상감마마에게 진상할 은행이 많이 열리기를 기원하고 있을 뿐이오.』
『하하하, 은행이 어디 사람 맘대로 더 열리고 덜 열릴 수 있단 말인가. 정말 어리석은 소리로군.』
군관은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비웃었다.
그때였다. 웃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군관은 얼굴을 감싸고 땅 위에 나둥그러졌다.
새파랗게 질린 군관이 정신차리고 일어섰을 때 군관의 한쪽 눈은 부은 채 멀어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구경꾼은 자꾸만 늘어났다.
그런 일이 있은 후 3일정성의 막바지에 다달았을 때 목탁과 바라소리, 그리고 염불소리가 일시에 멎었다.
신비로운 적막이 천지를 뒤덮었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추송스님은 낭낭한 목소리로 축원을 읽기 시작하였다.
『… 오늘 남섬부주 해동 조선국 강화도 전등사에서 3일 기도를 지성 봉행하여 마치는 대중들은
두 그루 은행나무에 열매가 맺지 않게 해주기를 축원하나이다. 백년이고 천년이고…』
모였던 대중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축원의 내용은 두 그루 나무의 열매를 앞으로
맺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뜻밖의 축원에 모인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축원이 끝나자 사람들은 저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로 그때 때 아닌
먹구름이 전등사를 뒤덮더니 비가 무섭게 내렸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일제히 땅에 엎드렸다.
얼마 후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을 땐 추송 스님은 물론 노스님과 동자승까지 모두 사라졌다.
사람들은 보살이 전등사를 구하기 위해 세 명의 스님으로 변해 왔다고 믿게 되었다.
그 때부터 전등사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았으며, 관리들의 전등사에 대한 탄압도 없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전등사에는 그 은행나무만이 그 사연을 안은 채 서있다
출처 : 정족산 전등사 홈페이지 http://www.jeondeungs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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