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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9기맥 자료및 산행후기 ♣/한강기맥(終)

한강기맥 제3구간 - 구목령에서 먼드래재까지

by 범여(梵如) 2013. 7. 8.

 

☞ 산행일자:  2013년 7월 6일~7일(무박산행)

☞ 산행날씨:  흐린날씨에 짙은 운무, 오후에 비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7km+ 어프로치 8km /11시간 30분 소요

☞ 참석인원: 동료산꾼 붕어잡이, 산과스키, 벙글이님과 함께

☞ 산행코스: 생곡2리-구목령-1,031봉-1,100봉-1,075봉-1,070봉-삼계봉-덕고산

                 신대리갈림길-1,094.2봉-1,031봉-봉막재-959봉-삼년대 갈림길

                 원넘이재-운무산-951봉-헬기장-851봉-804봉-능현사 갈림길-내촌고개

                 717.6봉-먼드래재

소 재 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 홍천군 서석면 / 횡성군 청일면

 

한강기맥 구간중에 접속구간이 가장 힘든구간을 걷는 길이라 부득히 차량을

가져가야 하는데 1주일내내 정신없이 다니다보니 휴식을 취하지 못해서

상당히 피곤하다... 너무 피곤하여 토욜에는 작업일정을 그리 급하지 않은것은

다음주로 미루고 토욜 예식장 2곳을 들린 다음에 휴식을 취하려고 하는데

또다시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접한다.

객지에서 만난지 30년이 넘은 봉사활동을 같이했던 친구가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단다.

예전엔 자주 만나긴 했지만 봉사활동을 그만둔 이후론 직업도 다르고 사는곳이 멀다보니

연락도 뜸했는데, 갑자기 悲報를  접하다보니 가족들이 나의 연락처를 몰랐던 모양이다.

어제(7.5) 발인을 했다는 것을 친구한테서 연락을 받았다. 참으로 애석하다.

금형공장을 운영하면서 부도를 맞아 갖은 고생을 하다가 이제 조금 살만하다고 들었는데.

친구여! 미안하오... 부디 왕생극락을 발원하오.

 

 

밤 11시에 동료산꾼들과 만나 영동고속도로 횡성 휴게소에서 휴식을 겸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둔내I.C를 빠져나와 홍천군 서석면 생곡2리 마을 제일 끝집 위에

차를 세워놓고 산행을 준비하는데 이곳은 말 그대로 강원도의 최오지라 그런지

차량 주위에 반딧불이 많이 보인다.

장마철이라 그런지 습도가 상당히 높고 음력 오월 스므여드랫날 칠흙같은 어두운

밤에 해드렌턴 하나에 모든것 의지한채 구목령까지 8km의 임도길을 나선다.(03:00)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오늘 산행구간의 고도표

임도 차단기(03:20)

산행을 시작한 지 20분만에 임도 차단기를 만난다.

이곳에서 구목령까지  차량이 올라갈 수있는 곳인데 차단기가 닫혀있어

마을 끝에다가 차량을 세워놓고 왔는데 이럴줄 알았으면 더 올라올걸 아쉽다.

어둠속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임도옆 계곡에는 水量이 많은지 물소리가 요란하다.

차단기 옆에는 새로 전원주택을 신축하고 있고 이곳 생곡2리에서 구목령 아래로

1300m와 650m 터널 2개를 뚫어 봉평면 무이리 방향으로  연결한다고 후답자들은

이곳 접속구간이 조금은 수월할 듯 싶다.

이 임도는 서석에서 봉평으로 이어지는 408번 지방도로이나

지금은 강원도에서 유일하게 차량이 다니지 않는 지방도로라는데

조만간 이 도로 아래로 터널이 뚫린다고 하니 그때쯤 편한 산행을 하겠지.

생곡리 사방댐(03:30)

차단기를 지나 10분정도 임도를 따라 올라가니 어둠속에 생곡리 사방댐이 산꾼을 반긴다.

선답자들은 이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좌측 계곡옆으로 올라서서 거리를 줄였다고

하는데 우리도 조금을 올라가보니 길은 험하고 잡목에다 비가 온 뒤라 그런지 길이

상당히 미끄러워 어둠속에 사고라도 나면 힘들것 같아 100m 정도 올라가다 다시

임도로 와서 임도길을 따라서 구목령으로 향한다.

구목령(九木嶺:05:15)

구목령은 홍천군 서석면과 평창군 봉평면을 넘나드는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오랜된 고목이 아홉그루가 있다고 해서 구목령이라고 불린다고 하는데 현재의

구목령에는 고목나무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구나무재라고도 한다.

생곡리 마을에서 구목령까지 8km를 임도를 따라 계속 올라오니 참으로 힘이든다.

지난주 내내 휴식을 취하지 못한 탓인지 임도를 걷는데 어찌나 잠이 쏟아지던지

계속 졸면서 걸어가다가 눈을 떠보니 동료산꾼들의 렌턴 불빛은 보이지도 않는다.  

거기다가 높은 습도가 몸을 무겁게만 만든다. 중간에서 벙글 아우님이 참외하나에

초콜릿 하나를 주는 것 먹고 구목령까지 2시간을 넘게 어둠속에 올라와 뒤돌아 보니

온 천지가 산으로 둘려쌓여 있고 거기에다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날이 훤히 밝았는데도 금방이라도 하늘에서 비가 쏟아질듯 잔뜩 찌푸려 있다.

이곳에서 물한모금 마시고 5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에  본격적인 마루금 산행을 시작한다.

구목령에서 덕고산까지는 고도가 950~1,150으로 고도편차가 그리 크지않고
안부 능선이 완만하기는 하나 한강기맥길을 걷는 전문산꾼 이외는 다니지 않은

등로라 그런지 길은 보이질 않고 등로에는 미역줄기 나무와 잡풀과 산죽들이

자꾸만 태클을 거는 바람에 산행 속도를 전혀 낼 수가 없  거기다가 등로가

비로 젖어 있어서 상당히 미끄럽다.

산나리가 이른 새벽에 길을 걷는 산꾼에게 수줍은 새색시처럼 산꾼을 반긴다.

폐헬기장(05:25)

초반에는 잡풀과 미역줄기가 산꾼을 괴롭히더니 폐헬기장을 지나면서는
허리까지 차오르는 조릿대가 산꾼을 괴롭힌다. 거기다가 이슬에 젖어있어

산행을 시작한 지 30분도 안되어 옷과 신발은 다 젖어 버린다.

이곳은 진드기가 많은 곳이라 상당히 신경을 쓴다 

시간이 갈수록 능선 아래에서 밀려오는 안개가 짙어진다.

1,031봉(05:50)

지난구간 흥정산 갈림길에서 부터 홍천 국유림 사업소에서 500m마다

설치한 이정목 덕분에 알바 걱정없이 상당히 편안한 산행을 한다

위험구간에는 로프를 설치하는 등 한강기맥 산꾼에게 상당히 배려한 흔적은
보이는데 고맙긴 하지만 등로에 잡목과 잡풀은 그대로 두어 아쉽기만 하다.

요즘말로 하면 소프트웨어에는 상당히 신경을 썼지만 하드웨어에는 약하다 

낙엽이 수북히 깔려있는 조그만 능선을 지난다.

이곳은 수령이 오래된 갈참나무 노거수들이 많이 보인다.

특이한 건 소나무가 보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이나 보기가 어렵다.

능선에서 우측으로 꺽어 키작은 산죽길을 걸어간다.

비온뒤라 그런지 노거수에 붉은 덕다리 버섯이 잔뜩 붙어있다.(식용불가)

서로 죽고 못사는 사이인 나무도 보이는데 너무나 정겹다.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山竹을 헤치면서 걸어간다.

이곳 구간은 특별히 볼 것이 없어져 그런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탓에 주위의 숲은 원시림에 가까울 정도이지만 산림청에서

이정표 하나만은 정말로 잘해놓아 기맥길 산꾼에겐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빗내림(06:45)
안개와 짙은 綠陰사이로 빗내림이 시작되는데 지난구간처럼 환상적이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24절기 중에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는 소서(小暑)라

그런지 무척이나 덥지만 그래도 지대가 높은곳이라 그런지 간간히 불어주는

바람과 짙은 녹음 때문에 그래도 아직은 걸을만하다. 

동료산꾼 산과스키님은 커다란 대포(대형 카메라)를 꺼내 빗내림 잡기에 한창이다.

 

1,075봉(06:55)

죽어서도 멋진 자태를 뽐내고...

삼계봉(三界峰:1,105m:07:10)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과 횡성군 청일면 그리고 홍천군 서석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삼계봉(三界峰)이란 명칭은 고시지명은 아니고, 초창기에  한강기맥을

답사하신 신산경표의 저자이신 박성태님이 명명했다고 하며 이름으로 행정구역도 셋으로

나뉘고 물길도 세 방향 골짜기로 홍천강 평창강 섬강쪽으로 갈라지니 셋으로 갈라진다.

지난구간 청량봉에서 이곳 삼계봉까지 한강기맥과 영춘지맥이 이곳과 같이 오다가

이곳부터는 좌측 태기산쪽으로 영월지맥으로 가는 길이고 기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이곳부터는 지난구간 계속 같이해온 봉평면과 이별을 하고 횡성군 청일면으로 접어든다.

이정표 기둥에 적힌 위도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북위 37도 37분 37초이다.

한강기맥과 영월지맥이 갈라지는 삼계봉 정상의 모습
2105년 봄부터 영춘지맥길을 함 걸어볼 생각이다.

삼계봉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영월지맥 지도

영월지맥이란 한강기맥 상에 있는 삼계봉(1,065m)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태기산(1,261m),덕고산(705m),봉화산(670m),풍취산(699m),매화산(1,085m),

치악산 비로봉(1,288m),향로봉(1,043m),남대봉(1,182m),감악산(954m),감악봉(886m),

석기암(906m),용두산(871m),왕박산(598m),가창산(820m),삼태산(876m),국지산(626m)

영월의 태화산(1,027m)을 거쳐 남한강에서 가라앉는 약 136km 의 산줄기를 말한다

 

삼계봉은 홍천,평창,횡성군등 3개군이 만나고 홍천강,평창강,섬강등 세 강이 갈리는 곳이나 

이름이 없어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셋의 경계가 되는 뜻으로 삼계봉으로 부르기로 했다 한다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을 종주한 후 지맥이 갈리는

한강기맥상의  청량봉-장곡현-구목령-삼계봉 구간 11km를 합하여 약 272km를 영춘지맥 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한다

 

그리고, 영춘지맥은 지맥중에서 가장 긴 지맥이다

대한민국 - 강원도 - 횡성군

  

횡성군 위치도

횡성군은 고구려 때는 횡천현(橫川縣) 또는 어사매(於斯買)라 부르다가 신라 때에 황천(潢川)이라

고치고 삭주(朔州:지금의 춘천)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다시 횡천이라 고치고 종전대로 삭주에 예속시켰다가 후에 원주(原州)의

속현(屬縣)으로 하였고, 1389년(공양왕 1)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시대인 1413년(태종 13) 현감(縣監)을 두고, 1414년 횡천과 홍천이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횡성으로 개칭하였으며 1627년(인조 5)에 역적 이인거(李仁居)로 인하여

원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636년 다시 현이 되었고, 1760년(영조 36)에는 원주로부터 토포사(討捕使)가

이설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현감이 관할하던 횡성현이 횡성군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3월 1일 원주군 고모곡면(古毛谷面)을 편입하고, 같은해 군면 폐합에 따라 군내면(郡內面)과

청룡면(靑龍面) 일부를 합하여 우천면(隅川面)으로 고쳤습니다. 1937년 정곡면(井谷面)을

안흥면(安興面), 군내면을 횡성면, 고모곡면을 서원면(書院面)으로 고치고, 1963년 1월 1일

 영월군 수주면(水周面)의 강림(講林)·부곡(釜谷)·월현(月峴) 등 3개리를 안흥면에 편입하였다.

1983년 2월 15일 전국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서원면 산현리(山峴里)·매호리(梅湖里)·압곡리(鴨谷里)

일부가 원성군 호저면(好楮面)으로 이속되고 우천면 추동리·정암리(正庵里)가 횡성읍으로 편입되었다.

2003년 현재 횡성읍·우천면·안흥면·강림면·둔내면·갑천면·청일면·공근면·서원면의 1읍 8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 중부지방 강원도의 서남부 즉 영서지방에 위치해 있으며 군의 경계는 동쪽은 평창군과

서쪽은 양평군, 남쪽은 원주시와 영월군 그리고 북쪽은 홍천군과 각각 접하고 있다.

위.경도상의 위치로는 위도상 북위37도 32분(남쪽)에서 37도41분(북쪽)사이에 걸쳐있고, 경도상으로는

동경127도 46분(서쪽)에서 128도 20분(동쪽)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단은 둔내면 삽교리,

서단은 유현리, 남단은 강림면 부곡리, 청일면 봉명리이다. 횡성읍을 중심으로 한 거리상 위치는

서울이 125.9㎞, 춘천이 62.9㎞, 원주가 17.2㎞, 강릉이 110.3㎞로 시간상 거리는 2시간 이내로 교통이 편리하다.

 

횡성한우

 

 

횡성은 예로부터 전통적인 한우의 고장으로 이름난 곳으로, 강원도 횡성 우시장은 옛날부터

4대 우시장에 들어갈 정도이다 추운 산간지방이기 때문에 소에 지방축적률이

높아 육질이 부드럽고 향미가 뛰어나며, 또한 한우사육이 발달하려면 산간지방이면서도

논농사가 발달해 볏짚 구입이 용이해야 하는데, 이러한 조건 역시 갖춘 곳이 바로 횡성이다.

또한 기온 역시 낮과 밤의 일교차가 뚜렷해 육질 고유의 맛을 생성해 줄 수 있으며 깨끗한

자연환경으로 최적의 사육환경을 두루 갖춘 곳이다.

 

횡성한우고기는 육즙이 풍부해 감칠맛이 나고 부드러우며 씹는맛이 훨씬 풍부하다.

또한 혈액순환과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주는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가장 높으며 가열 후에도

부드러운 육질과 풍부한 육즙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필수아미노산 라이신과 함유황

아미노산을 다량 함유한 고급 단백질 식품이며, 또한 맛을 결정하는 글루타민산이

다량 함유되어 다른 브랜드 쇠고기보다 품질과 맛에서 월등히 앞서간다.

 

 

 

 

횡성더덕은 산더덕과 똑같은 더덕을 생산한다는 집념으로 재배에 성공한 전국 최고품질의 더덕으로

더덕은 자생하는 환경에 영향을 받는 작물로 예로부터 산더덕으로 유명한 태기산중턱의 청정한

지역에서 자연조건 그대로 재배하고 있다.

더덕은 재배환경에 따라 약효는 물론 맛과 향기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예로부터 산더덕으로 유명한 횡성 더덕은 유기물이 풍부하고 기후가 알맞으며 물이 맑고

토심이 깊은 더덕재배의 최적지에서 화학비료나 농약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더덕 재배의

최적지인 태기산 기슭의 청정 고산지대에서 끊임없는 연구와 기술개발로 농림부로부터

품질인증을 받은 전국 최고의 더덕을 생산하고 있다.

 

태기산더덕은 육질이 연하고 아삭아삭하며 향이 강하고 주성분인 사포닌과 인우린등의

성분이 위장은 물론 폐와 신장에도 좋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어 더덕이 최상의

 건강식품이라는 데에는 이론이 없을 정도로 최고급 제품이다.

전국 더덕수요의 20%를 생산 공급하는 횡성은 우리나라 최대집산지로 매년 10월이면 더덕과

관련된 태풍문화제와 더덕아가씨 선발대회를 개최할 만큼 옛부터 이어온 명품 횡성더덕의 명예를

소중히 지키며 가꾸고 있으며,「오래 묵은 더덕은 산삼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더덕은 약효가 인삼 못지 않다는 사실은 예로부터 더덕이 「사삼」이라 불리며

인삼, 현삼, 단삼, 고삼과 함께 5삼으로 꼽히고 있다는 점에서도 잘 알수 있다.

 (횡성문화원 자료인용)

 

삼계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덕고산으로 향하는데 좌측으로 영월지맥

능선이 아련히 보이고  태기산 정상에는 풍력발전기가 여러대 돌아가건만

녹음이 너무 우거져 카메라 앵글에 잡을 수가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덕고산(德高山:1125m:07:35)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과 홍천군 서석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오늘 산행중 가장 높은 산이나

정상에는 이정목과 모 산악회에서 걸어둔 표지판이 깨진 채 떨어져 있다.

 성골계곡을 사이에 두고 태기산과 마주하고 있으며

삼한시대 말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새로 일어나는 신라군에 쫓겨 이곳에 성을 쌓고 군사를

길러 신라군과 싸웠다는 전설을 안고 있다.

 

덕고산은 고시지명이 아니며 산경표와 대동여지도 현재의 백과사전에도 나오고, 청일면 신대리

봉복사(鳳腹寺)의 사찰명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奉福寺在德高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정작 국토지리정보원 자료(지명고시, 지형도)에는 없다.

 (덕고산 명칭은 두 군데 나온다만 모두 다른 곳이다). 봉복사 입구에도 “德高山鳳腹寺” 표석이 있다.

 

산경표에서는 태치산( 泰峙山 또는 일명 덕고산)으로 표기가 되어있고 대동여지도에는 덕고산(德高山)과

태기치(泰岐峙)로 따로 기재되어 있으며 1:50,000 지형도에는 산 높이만 되어있는 덕고산은

그 산자락에 천년고찰 봉복사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봉복사에는 덕고산봉복사(德高山 鳳腹寺)이

편액이 걸려있어 덕고산이라 불리는 것이다.

단촐한 아침식사
덕고산 정상에서 아침식사를 하는데 날씨도 덥고 밥맛도 없지만 억지로라도

밥을 먹어야만 걸을 수 있기에 싸가지고 온 도시락에다가 물을 말아서

시원한 가지나물이 식사의 전부이다.

그리고 막걸리 한병을 혼자 마시고 나니 살것만 같다 

식사를 마치고 동료산꾼과 함께 커피에다가 과일로 후식까지 먹는 여유로움을 가진다.

종주 산악회에서는 상상도 하지못할 정도의 여유로운  40분간의 휴식을 취하고 길을 나선다.

덕고산을 내려서자마자 급경사의 암릉이 나오고 산꾼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이곳에

홍천군 국유림사업소에서 설치한 로프로 암릉구간을 가볍게 통과한다.

지난번 백두대간 길 설악산 구간을 통과할 때 국공파들은 산꾼의 안위는 眼中에도

없고 자신들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로프를 짤라버린 벤뎅이 속보다도 더 좁은 

짓거리와 비교하면 훨씬 어른스럽고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 보인다.

 

구목령을 출발한 지 3시간만에 처음으로 능선을 본다.

초반에 짙은 안개로 遠景을 감상할 수 없기도 했지만 워낙 오지이고 원시림에 가까운

綠陰이 우거져 암릉 내리막길에서 1,094.2봉의 모습이 보인다.

처음으로  능선을 바라본다. 가야할 1,094.2봉의 모습

노루오줌꽃이 산꾼을 반기고...

로프지대를 내려오니 또다른 암릉구간을 통과해야 하는데 초반 구목령에서

덕고산까지 구간은 등로는 온순하고 여성스러우나 잡풀과 산죽이 훼방(?)을

놓는 바람에 산행시간이 많이 지체되나  덕고산부터는 등로는 뚜렸하고

좋으나 암릉구간이 많은 남성적인 등로라서 시간이 많이 지체되는 편이다.

기맥길 등로를 엄청나게 큰 암릉지내가 나오고 거기를 통과할 수가 없어 너덜지대로 우회한다.

한남대 계곡 갈림길(08:30)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횡성군 청일면 신대리로 이어지는 한남대 계곡이다.

봉복사 들머리에 있는 한남대는 대학교가 아니고 마을이름으로 신라시대에

봉복사에 ‘한남대’라는 스님이 처음으로 이곳을 개척해 살았다하여 스님의 법명을

따라서 이 지역의 지명이 한남대로 불리웠다고 한다.

한남대가 있는 신대리는  자연이 비교적 잘되어 있는 청정지역으로  주변 산기슭에

산죽이 많이 자라고 있어 예로부터 복조리 산지로 유명하며 신대리의 지명유래도

산죽과 복조리와 관련된 유래로 생겨난 이름이리고 한다

너덜길을 우회하여 돌아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산죽지대에 로프가 있다.

비 온뒤라 그런지 나무에 독버섯이 많이 보인다. 

1,094.2봉(08:50)

 산 정상에는 이정목과 4등삼각점 있으며 좌측으로는 신대리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지만 정작 정상에는 잡목들이 우거져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1,094.2봉 삼각점(△ 청일 426. 1989 복구)

 

오늘의 날머리가 10.2km나 가야한다

1,031봉(09:24) - 봉복산 갈림봉
넓은 공터가 나오고  이정목에는 이정표가 떨어져 나뒹둘고 있어 보기가 않좋다.

이정표( →운무산 4.16km 덕고산 2.18km)가 있고 좌측으로 봉복산가는 등로가 뚜렸하다.

봉복산을 까지 1.2km이니 왕복으로 2.4km라 1시간 가까이의 거리는 좀 부담스러워

아쉬운 마음을 접고 운무산으로 향한다

봉복산(鳳腹山:1,022m)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과 홍천군 서석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산세가

봉황을 닮아 붙혀진 이름으로 사계절의 명성을 갖춘 횡성의 명산이다.

특히 겨울의 설경은 산악인들이 자칫 하산을 잊게할 정도로 환상적인 산이란다.

산 아래에는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봉복사가 있다.

 

설악산에서 여주 봉미산에 이르는 장장 120km에 이르는 산줄기가  한마리의

큰 봉황이 누워있는 형상인데 봉황의 배(腹_에 해당하는 곳이 이곳 봉복산이란다.

 

그래서 설악산에는 봉황의 머리를 의미하는 유명한 봉정암(鳳頂菴)이 있고

여주 신륵사가 자리잡고 있는 봉미산(鳳尾山)은 이름 자체가 봉황의 꼬리를 뜻한다.

 

신륵사앞 남한강에 꼬리를 담근 봉황이 동북쪽을 향해 설악산 소청 아래의 봉바위에

머리를 두고 있는 형상이며 그 양쪽에 직선을 두고있는 중심에서 남쪽으로 약간'처져있는

횡성땅에 봉황의 배를 뜻하는 봉복산이 자리를 잡고 있다.

봉황의 머리를 뜻하는 소청에는 봉정암이 있고, 배를 뜻하는 봉복산에는 자장율사가

창건한 봉복사가 있고 꼬리를 뜻하는 봉미산에는 나옹선사의 부도가 있는 신륵사가 있다

봉막재(09:33)

이곳에서 희미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청일면 속실리 봉막마을 내려가는 길이다. 

고사목도 멋진 모습으로 산꾼의 눈을 즐겁게 하고...

959봉을 지나서 내리막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멧돼지 4마리가 나무 뿌리를 캐먹다가 인기척이 들리니 새끼 2마리는 도망을 가고

수컷인듯한 큰 넘이 나를 향해 째려보며 굉음을 지르다가 숲으로 사라진다.

내가 제일 먼저 내려오는 바람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멧돼지는 특성상 새끼 보호본능이 강해서 새끼가 있을때는 엄청나게 난폭하다.

그리고 숫컷은 항상 새끼와 암컷이 같이 다닐때는 가장 뒤에 다니기에 사냥꾼들에게

표적이 된다고 하며 실제로 포수들에게 가장 많이 잡히는게 숫컷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꿩의 다리

이곳은 둥글래, 꿩의 다리, 노루오줌, 하늘 말나리와 털나리 등, 각종 야생화와

노거수와 고사목 등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멧돼지가 출몰한 지역

동료산꾼 맞어?

사실 산행을 하면서 멧돼지는 야행성 동물이라 낮에 만나긴 그리 싶지 않은데

이곳은 워낙 오지라서 그런지 지난구간에도 만났지만 이번에도 만나 너무

위급하여 동료산꾼에게 구원을 요청했는데 붕어잡이님은 달려오긴 했지만

나를 구하기보다는 멧돼지가 출몰한 지역에 카메라를 가지고 촬영하러는데 열심이다.

나 원참! 동료산꾼 맞어 ㅋㅋㅋ

고도를 조금씩 낮추다가 좌측으로 90도 꺽어져서 내려서니 이곳은

등로에 낙엽이 수북하여 걷기는 좋으나 잡목들이 태클을 많이 건다.

그리고 이 지역은 아무리 봐도 소나무 한그루는 보이지 않고 활엽수가

주로 서식하는 식물분포도를 이루고 있다.

양탄자처럼 푹신한 마루금 능선을 걷는다.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하늘 말나리

말나리와 비슷하나 하늘을 향해서 핀다고 하여 하늘말나리란다.

다른 이름으로는 우산말나리, 산채, 소근백합이라고도 부르며

하늘에 피는 상상의 꽃으로 대개 마음이 따뜻하고 사려깊은 사람을

빗대어 부르기도 하며 관상용으로 이용하거나  참나리와 같이 약용으로

쓰이며 비늘줄기는 식용으로도 쓰인다.

 

한방과 민간요법에서 종기, 토혈. 강심, 해독 등에 약재로 쓰이며

한국과 중국 산동성에서 주로 자라며, 꽃말은 순진, 순결, 변함없는 귀여움이란다.

능선에서 다시 서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다.

삼년대 갈림길 안부(10:20)

삼년대는 이 안부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에 있는데

어느 원님이 원넘이재를 넘어와서 삼년대 마을에서 삼년을 기거하였다하여

삼년대 마을이라고 불렀단다

 

해발 450m인 삼년대마을에는 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이 마을에서 남동쪽으로 패어 든 청량천 상류를 이곳 주민들은 삼년대계곡 또는 큰통골이라 부른다.

큰통골은 삼계봉이 발원지다. 아직 청정지구로 남아 있는 큰통골은 겨울이 6개월이라

할 정도로 겨울이 봄과 가을을 1~2개월씩 잠식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또다시 동료산꾼들과 휴식을 취한다.

다들 여유가 있어 좋다. 차량을 가져와서 歸京에 대한 걱정도 없겠다.

넷이서 가져온 과일과 간식을 서로 풀려고 경쟁이다.

빨리 풀수록 베낭이 가벼워지니... 근데 오늘따라 내가 계속 경쟁에서

밀리니 내 베낭에는 아직 집에서 가져온 것 중에 줄어든거라곤 막걸리와

아침식사, 물만 조금 줄었고 과일과 오이 같은건 그대로 남아있다. 

10분을 넘게 여유로운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난다.

다시 조금씩 고도를 높혀가니 커다란 암릉이 길을 막는다.

하는 수 없이 옆사면으로 우회하여 기맥길을 이어간다.

오름길에 고사목을 만나는데 고사목 위에는 일엽초가 가득하고

조금 아래에는 엄나무 한그루가 꿋꿋이 자라고 있다.

일엽초는 위암 유방암 자궁암 등에 좋다고 한다.

엄나무가 자라고 있는 고사목

777봉(11:00)

암릉을 치고 오르니 뾰족한 777봉이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급경사로 내려선다.

비에젖은 등로가 엄청나게 미끄럽다... 결국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한번 찧는다.

막내인 벙글이가 오라버니 땅 계약하는겨 하는 바람에 폭소를 자아낸다.

수줍은 색시처럼 다소곳이 피어있는 나리꽃

급경사의 미끄러운 곳에서 된통 한바퀴를 굴런다

원넘이재(698m:11:14)

옛날 어느 고을 원님이 횡성군 속실리에서 홍천 청량리를

넘어 다녔는데 원님이 넘어 다녔다하여 원넘이재라고 부른다.

원넘이재에서 운무산으로 오르는 길은 고도를 급하게 300이상을 높혀야 하기에

높은 습도에다가 바람의 협조도 없고하여 엄청난 땀을 쏟아야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나무 계단을 밟고 고도를 높이다가...

편안한 안부 능선을 조금 가다가 다시 급경사로 고도를 높인다.

코가 땅에 닫을만큼 급경사를 치고 오르니 땀은 비오듯 흐르고 높은 습도로 인해 쉽게 지친다.

아직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우측에 아주 큰 암릉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운무산 안부(11:35)

땀을 한바가지 정도 흘린 다음에 운무산 안부에 오른다.

이곳에 오르니 오늘 처음으로 雲霧로 인해 잘보이진 않지만

지나온 능선과 능선 아래로 청일면 속실리와 서석면 청량리가 보인다.

나보다 먼저 올라온 동료산꾼들이 간식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난 베낭을 벗어놓고  우측 암릉 정상에서 능선을 바라보며 카메라

셧터를 연신 눌러대지만 마음에 드는 장면이 하나도 안 잡힌다.

마침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바지와 팬티를 내리고 나홀로 시원하게 거풍을 즐긴다.

니들이~~~ 이 맛을 알어 이 상쾌하고 시원한 이 맛... 정말 쥑인다.

암릉에서 바라본 운무산의 전위봉

암릉 정상에서 바라본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의 모습

운무산이란 이름이 말해주듯이 주위에는 운무로 가득하다.

암릉에서 10분정도 거풍과 주위의 仙景을 감상하고 운무산 안부로

돌아오니 동료 산꾼들은 운무산으로 가버렸다.

혼자서 베낭을 메고 등로로 올라서는데  암릉구간이긴 하지만

로프 시설등이 잘 되어있어  큰 걱정은 없다. 잠시후에 능선에

오르니 동료산꾼들이 범여를 기다리고 있다.

조금전에 지나온 능선의 모습

오늘 처음으로 능선을 바라본다.

계속되는 숲속을 걷다보니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넘어진 소나무에서  忙中閑을 즐기는 동료산꾼들

운무산 가기 전 전위봉으로 가는 길엔 거대한 바위 슬랩이 나타난다.

그리고 오늘 전망중에 최고로 멋진 곳으로 슬랩구간엔 긴로프가 설치되어

있지만 로프를 잡지 않고도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구간이다.

암반 슬랩구간을 오르는 동료 산꾼들

운무산 가기전 능선에서 바라본 서석면 청량리의 산그리메

운무산 가기전부터 이곳은 그 이름의 명성만큼이나 주위의 능선은 운무로 가득하다.

지나온 덕고산과 청일면의 진산인 봉복산은 짙은 안개로 휩싸여 있다.

멋진 고사목 한그루가 산꾼을 반기고...

운무산은 그리 호락호락 정상은 그리 허락하지는 않는다.

암릉구간을 우회를 하여 로프로 오르내림을 한참을 한 다음에야 정상을 도착한다.

암릉 사이의 안부 능선에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산꾼의 어깨를 가볍게 한다

나무뿌리에서 싸리버섯처럼 보이는 버섯도 자라고...

운무산으로 오르는 마지막 로프를 잡고 올라서니...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산꾼을 반긴다.

운무산(雲霧山:980.3m:12:10)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과 횡성군 청일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에 항상 구름과 안개가 끼여 있는 산이라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고 한다.

운무산은 그리 높지는 않은 산이지만 아기자기한 바위와 암릉에 어우러진 노송과 철쭉,

진달래, 산나물이 온산을 뒤덮고 있으며 산행길에는 삼근암, 치마바위, 바위굴 등 곳곳에

수십미터 절벽과 급경사가 있어 등반이 그리 쉽지 않은 코스이다.

 

 

 운무산은 '율무성'이라고도 하는데 세종대왕의 신하들이 피신했다는 설이 내려오며
임금바위(관을 쓴 것 같다 하여 붙여짐), 말뚝바위 등 사방 각도에 따라 틀려 보인다고 한다

운무산은 안말(청일 속실리) 뒷산이라고도 불리며, 산이 높아 항상 구름과 안개가 낀것 같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산의 높이는 980m이며 정상의 남방 800m 되는곳에 이르면 수십미터의

 높은 절벽이 가로막고 있고, 좌우 모두가 급경사 지형으로 주변에는 석축의 흔적이

 남아있어 성지(城址)일 가능성을 짐작케 한다.
구전에 의하면 고구려, 혹은 궁예가 활동하던 시기에 쌓은 것이라 하며,

태기왕이 덕고(태기)산성에서 신라군에 패하여 운무산성으로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운무산 정상 삼각점(△ 청일 22 / 1989 복구)

운무산 전위봉과 암반 대습립구간에는 운무가 끼긴 했으나 주위 조망을 볼 수 있었으나

정작 정상에는 주위 전망은 별로다.  정상에는 이정목과 지도와 2등 삼각점이 있고

정상석도 2개나 있는데 횡성군에서 설치한 “운무봉”과 홍천군에서 설치한 “운무산이 있다.

어느것이 맞는지 헬갈리는데 지도에 표기된 운무산이 맞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2개 군이

서로 자기것이 맞다고 우기는 것 같아서 씁쓸함을 느낀다.

지자체에서 이런것까지 이기주의 발상인가?

 

호남정맥길에서 진달래 축제로 유명한 일림산을 보성군에서는 일림산이라 부르는데

장흥군에서 지도상 표기된 일림산을 절대 일림산이라 부르지 않고 삼비산이라 부르지 않았던가

운무산 정상에서 10여분을 넘게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난다

서낭당 흔적같은 돌무덤을 만나고...

특이한 이정목을 만나고...

875봉(H:12:40)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삼근암이 나온다.

875봉 이정목

875봉에 또다른 이정목

세워놓긴 하면 뭘하나 관리를 잘해야지... 홍천군에서 세운 것인데 산림청에서

이정목을 잘 세워 놨는데 홍천군에서 스텐레스로 또 세워논 것이 넘어져 있어

보기가 않좋은데 홍천군수 나리! 민초들의 혈세로 헛돈 쓰지 마시길...

넘어진 나무가 길을 막고...

너덜길 같은 등로를 오르락 내리락을 하면서 걸어가는데 예상외로 시간이 걸린다.

돌탑(13:00)

다시 오르막을 오르니 우측에 돌탑이 있고  암릉이 기맥길을 막고 있어서

좌측 옆사면을 치고 오르는데 비에젖은 등로가 미끄러워 애를 먹고있다.

힘들게 안부 능선을 올라서서 우측으로 꺽어져 안부 능선을 걷는다.

851봉(13:10)

851봉 정상에는 기맥, 지맥길에서 자주 보는 낮익은 시그널을 만나고...

851봉을 내려오는 멋진 암릉이 나오고 주위가 조망이 된다.

지나온 운무산과 좌측으로 청일면 속실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지나온 운무산의 모습

가야할  등로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와 능현사도 보이고...

속실리는 ‘속이 꽉 찼다’ 또는 ‘좁쌀 농사가 잘되는 마을’이라는 유래에서

비롯됐다고 하며 마을 뒷편에는 운무산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섬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지나온 능선의 모습

암릉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되돌아와서 우측 옆사면을 내려오는데

지금부터는 계속해서 암릉길을 만나면서 걸어가니 시간이 많이 지체가 된다

암릉구간을 곡예하듯이 아슬아슬하게 걷는다.

능현사 갈림길(13:30)

기맥, 지맥길을 그리도 많이 다니면서 이번구간처럼 이정목을 많이 본 적은 없다.

산림청 산하 홍천국유림사업소가 너무 고맙기만 하지만 딱 2%가 부족하여 아쉽다.

이정목 표지판이 너무나 많이 떨어져 있어 안타깝다... 담당자는 산에 한번 올라와서

확인을 하시고 제작업체에 시정조치와 함께 보수를 해주시길...

암릉길을 치고 오르다 다시 내려서는데 길이 너무 미끄러워 로프에 의지한 채 조심스럽게

내려서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주위에 먹구름이 몰려오니 괜스레 마음이 급해진다.

 

내촌고개(14:00)

내촌고개에서 우측으로 가면 삼근암이 있다고 한다.

삼근암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는데, 이 커다란 바위의 무게가 무거울 것 같아

달아보았으나  세근 밖에 안나갔다 하여 삼근암 또는 서근바위라고 전해진다.

717.6봉(14:10)

빗줄기는 굵어지기 시작하여 베낭은 카메라, 네비게이션 등 전자장비 때문에

레인커버를 씌우고 몸뚱이는 그냥 비를 맞는다. 비에 젖으나 땀에 젖으나

젖기는 마찬가지라 차라리 비를 맞는게 훨씬 시원할 것 같다.

이곳은 길은 좋고 거의 육산(土山)이라 뛰다시피 먼드래재로 향하는데

동료산꾼 붕어잡이님이 생곡2리 이장에게 전화를 하여 먼드래재까지 차량을 부탁한다.

이 구간인 횡성군 청일면과 홍천군 서석면에는 택시가 한대가 없다고 한다.

이곳 농가들이 대체적으로 잘사는지 집에 거의가 차량이 다 있어서 영업이 안된다고 한다.

마지막 봉우리를 지나서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엄청난 절개지가

나타나며 먼드래재가 보이기 시작한다.

먼드래재 내려가는 데크목 계단

산림청에서 설치한 한강기맥 구간 지도

먼드래재 - 횡성군 청일면 방향

청일면(晴日面) 은 평창군 대화면에서 대관대리로 통하는 큰 굴이 있어

이 굴로 드나드는 개 한 마리가 있었는데, 개의 모습이이상하여 털이 눈빛같이 희고

두눈의 붉기는 꽈리 같고 턱은 뾰족하여 네 다리가 짧은데 비해 허리가 유난히길었다고 한다.
이 개는 어떤 때는 대화에서 돌아다니다 자취를 감추면 대관대리에 나타난다고하여
귀신개라

 불렀으며, 이런현상이 되풀이되자 사람들은 앞서 말한 굴이 있으리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개가 나왔다고 하여 「개나오리」라 하였고 다음에 「개날리」라고

변하게 되었으며 또한「개나리가 되었다.
(횡성군지) 일설에 의하면 타지역에 비해 갠날이 많다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 갠날(晴日)로 표기하였다고 함.

먼드래재(466m:14:30)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와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를 잇는 고개로

19번 국도가 지나고 있는 곳으로 지명의 유래는 홍천군에서는 옛날

이 고개에 고을의 원님이 3년간 계시다가 넘어가신 고개라 하여 원령(阮嶺)

이라 부르며, 횡성군에서는 고개가 멀고 넓다하여 원령(遠嶺) 또는 먼드래재라 부른다.

 

이곳에 내려서 비를 맞고 있는데 생곡2리 이장님은 도착하지 않았다.

잠시후에 갤로퍼RV 차량으로 우리를 태우러 왔다.

우선 음료수와 주류를 사기 위해서 서석면소재지로 향한다.

서석면소재지에 있는 시장에서 가서 주류와 음료를 사서 愛馬가 있는 곳으로 간다.

강원도 최오지에서 비를 맞으며 묵묵히 쥔장을 기다리는 나의 愛馬(15:30)

이곳에서 도착하여 도로 아래에 있는 냇가에 가서 알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차를 가지고 내려와 생곡저수지 옆에 있는 정자에 도착하여 파티를 연다.

원래 계획은 13시까지 산행을 마치고 삼겹살 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산에서

너무 여유를 부리는 바람에 예상보다 1시간 30분이나 늦게 산행이 끝났다.

즐거운 삼겹살 파티

오늘의 모든 준비는 4인방중에 홍일점인 벙글이 아우가 다해왔다.

4인방중에 가장 막내인데도 산도 잘타고 모든걸 똑소리나게 한다.

막내인데도 큰 누님깥이 행동을 하면서 배려를 해주니 고맙기만 하다.

오늘도 고기굽고 모든 일을 다 하면서 정작 본인은 고기 한점도 안먹는다.

정말 미안하다... 이 보시공덕 복받을깁니다

생곡저수지의 모습

저수지에서 바라본 생곡2리(피리골)의 모습

피리골은  한자어로 피리 생(笙) 고을 곡(谷)자를 써서 생곡이라고 부른다.

홍천군 서석면 동쪽 부분에 위치한 피리골은 동쪽으로는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

서쪽은 상군두리, 북쪽은 생곡1리, 남쪽은 청량2리와 접경하고 있으며 서석면과

봉평면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노고산(할미자리:1,300m)을 주봉으로 긴 골짜기 형태의

지형으로 형성된 피리골은 간촌(사잇말), 교동(다리골), 상비(생비), 이목동(배나무골) 등

5개의 자연부락이 주로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

 

마을중간에는 담수면적 22헥타의 생곡 저수지(1983년 준공)가 위치하고 있으며,

구목령(구나무재:967m)을 넘어 봉평면을 연결하는 408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피리골이란 지명유래의 기록은 없지만  구전에 의하면 골짜기가 피리모양으로

생겼을 뿐 아니라, 옛날에 전란시마다 피리를 불어 군호를 삼았다하여 피리골이라

부르는데 그 피리는 흔하게 자생하는 구릿대(구리당 또는 한약명 백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지명의 뒷받침으로 현재 생곡1리에 대(피리의 재료)월, 상대월, 핟월, 곱은대월(곡죽동) 등의

피리의 재료와 연관된 지명이 많이 남아있다. 

 

동학농민항쟁 때에는 동학군이 구목령을 넘어 피리골을 거쳐 풍암리 자작고개 전투에

참여했던 흔적이 마을에서 발견되고, 6.25사변 전초전이라 불리는 불발령(불바래기)

사건 때에는 마을 주민들이 전투하는 국군의 식사를 전담했다고 한다.

 

구목령은 서울에서 강릉으로 연결하는 직선상에 위치한 고개로 영도의 해산물과

영서지방의 농산물들이 이 고개를 넘나드는 도보 장꾼들, 또는 주민들에 의하여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옛길이어서 1960대까지도

구목령 정상까지피리골 주민들과 흥정리 주민들이 여름철에 풀을 제거하여 통행이

원할하도록 했으나 아직은 강원도내에서 차량통행이 이루어지지 않는 유일한 지방도란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생곡저수지를 품고있는 연화봉(蓮花峰)은 연꽃이 물에 뜬 형국의

연화부수(蓮花浮水) 명당이 있다고해서 옛부터 풍수지리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명산이었다고 한다

 

문화유적으로는 박치휴(朴治畦) 효자각이 간촌에 있는데 이조말 성균관에서 내린

효자문과 비문에 의하면 어머니의 위독함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임으로서 운명

직전의 어머니가 소생하여 그 후 20여년을 더 살았다는 박치휴 효성에 관한 애기가 있다.

삼겹살을 나는 얼른 먹고 동료산꾼들이 삼겹살 파티를 하는 사이에 나는

정자 옆에서 잠깐동안의 꿀맛같은 단잠을 이룬다... 그래야 서울까지 운전을 해야 하기에...

정자에서 파티를 마치고 벙글아우가 식사를 하지 못해서 막국수집으로 향한다

서석면 주변에서는 꽤나 유명한 막국수집에 들려서 원님 덕분에 나팔 분다고

벙글아우님 때문에 덩달아 막국수 한그릇을 시켜먹고 서울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