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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經典講解

금강경 -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 제27

by 범여(梵如) 2013. 9. 12.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 제27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일체의 상이 끊어진 텅 비어 적멸(寂滅)하기는

하나 아무 것도 없기만 하는 단멸(斷滅) 또한 아닌 것입니다.
여래는 상호(相好)를 쓰지 않음으로써 보리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며,

여래는 모든 법이 텅 비어 없음만을 말한다고도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중생의 병이 깊어 말만 떨어지면 거기에 매달리고 집착합니다.
무상 무주가 되어야 여래를 본다고 하니 거기에 집착하여 또 상을 만듭니다.
‘무상(無相)’,‘무주(無住)’의 상을 만들어 가지고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흐뭇해 합니다.
진정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습니다.

 

須菩提야 汝若作是念호대 如來가 不以具足相故로

수보리 여약작시념 여래 불이구족상고
 
得阿縟多羅三먁三菩提아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야 莫作是念호대 如來가 不以具足相故로
수보리 막작시념  여래 불이구족하고
 
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라하라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야, 네가 만약 이런 생각을 하되‘여래는 구족한 상을 쓰지 않는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하느냐.

 수보리야,‘여래는 구족한 상을 쓰지 않는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

 

부처님만이 갖춘 삼십이상을 통해서도 여래를 보지 못한다고하니 이번에는 구족한 상을 쓰지 않아야

 여래를 볼 것이라 생각합니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실상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거울 앞에 섰을 때 나 아닌 다른 모습이 비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거울에 비친 나와 실제의 내가 둘이 아닌 것입니다.
큰 물이나 작은 물결이든 수분이라는 성질에서 보면 동일한 것입니다.
여래의 입장에서 볼 때도 구족한 상호(相好)외 진실한 여래가 관계없는 것이 아닙니다.
일차적으로는 상에 매달리지 않고 툭트인 마음으로 너른 인생을 살아야겠지만 또 반드시 상이

 없어야된다라고만 생각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부대끼고 매순간 만나는 모든 현상에서도 얼마든지 보리를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발한 사람은 형상으로도 말하지 않고 꼭 형상 아닌 것으로도 말하지 않습니다.
상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주저함이 없이 보리를 구하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汝若作是念호대 發阿縟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수보리 여약작시념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說諸法斷滅가 莫作是念이니 何以故오
설제법단멸 막작시념 하이고
 
發阿縟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於法에 不說斷滅相이니라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어법 불설단멸상
 
"수보리야, 네가 만약 이런 생각을 하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모든 법이 단멸했다고 말하는가’

한다면이런 생각도 하지 말지니, 무슨 까닭인가 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법에 있어서

단멸상을 말하지 않느니라."

 
지금까지 계속 파상(破相)하여 왔습니다.
제발‘있다’는 데에 떨어지거나 매달리지 말라고 하니 이제는 ‘없다’에 집착하게 됩니다.
이것 또한 마찬가지로 상(相)입니다.
그래서 이 두가지 문제를 조화시키기 위해 단멸(斷滅)이 아닌 것을 말합니다.
상에 매달리는 그 마음을 고쳐 주자는 것이지 상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처럼 어떠한 고정된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발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모든 법이 끊어지고

 없어져 아무 것도 없는 무기공에서 보리심을 얻는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 속에서 쉽게 생각해 봅시다.흔히 불교 공부를 조금하고 난 사람들이 잘 걸리는 병이 있습니다.
‘있는 것은 전부 다 무상하다, 마음이 부처다’하여 외형적인 불교 행사를 무시하고 마음 일변도로 나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불교적인 행사나 노력은 하지 않고 불교인으로서의 의무를 게을리하는 것은 바른 불자의 태도라 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의 정신 세계와 교화 할동이 함께 중요하듯이 우리들의 마음 공부와 봉사 활동이 조화를 이루어야

참 불자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불교에서는 ‘한 번 죽고 나면 그만이다’하는 단멸상이나‘극락에서 영원히 산다’는
상견(常見)을 정견으로 보지 않습니다.
마냥 아무 것도 없기만 하는 무기공(無記空)에 빠지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것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극락에서 열반에 머무르는 것은 행복할 것 같지만 그것 역시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복을 다 쓰고 나면 다른 세상으로 떨어진다는 것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마냥 무기력하고 심심할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보람이나 결과가 없는 무기공이나 나태하고 무기력한 열반에 머무르지 말고 원력을 가지고서

 열심히 열심히 뭔가를 하면서 한껏 자신의 삶을 펼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