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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강화지맥(終)

강화지맥 동.서 제2구간 - 고비고개에서 황청포구까지

by 범여(梵如) 2013. 10. 13.

 

☞ 산행일자:  2013년 10 월 12일

☞ 산행날씨:  맑고 청명함 

산행거리: 도상거리 12km / 4시간 3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고비고개-1봉-2봉-3봉-혈구산-삼각점봉-퇴모산-NO35송전탑-시멘트 임도-내가고개

                   갈멜산 기도원-290m봉-270m봉-덕산(망산)-국수산-육각정자-황청리-황청포구

소 재 재: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선원면, 양도면, 내가면

 

원래 이번주 토욜 저녁에 무박으로 백두대간 가는 날인데 형제간보다도 더 자주보고
학교 동창에다가 같은 업에 종사하다가 보니 같이하는 모임만 서너개인 둘도없는
불알친구인 바람친구 아들이 일요일날 장가가는 날이라 부득히 대간길을 포기하고
그 대신에 서울에서 가까운 강화지맥을 마무리 하기 위해서 이른 새벽에 차를 몰고강화로 간다.
처음엔 마눌님 예식장 보내고 대간길을 가려고 했으나 바람 본인은 갔다오라고 하는데
다른 친구 넘들이 하는 말  ‘國籍은 바꿀수 있어도 學籍은 바꿀 수 없으니 알아서 하란다’는 말에
찍소리도 못하고 일요산행을 포기하고 토요 산행을 대신한다.

 

집에서 06시 20분에 차를몰고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올림픽대로로 접어들어 김포공항을
지나 한강제방길로 가니 신호가 하나도 없는탓에 애기봉 아래  김포 하정까지 30분밖에 걸리지않는다.
이곳에 있는 병천순대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먹고 강화에 도착하여 강화버스 터미널 건너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터미널에서 고비고개 버스를 타려고 가니 방금 버스는 출발했단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고비고개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강화도는 면적 302.4㎢, 남북길이 27km, 동서길이 16km, 해안선길이 99㎞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가장 큰 섬으로, 최고점은 마니산(摩尼山:468m)이다.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고구려의 영토에 속하였던

400년경에는 혈구(穴口)·갑비고차(甲比古次)라고 하였고, 신라에 귀속된

뒤에는 해구군(海口郡)·혈구진(穴口鎭) 등으로 개칭되었다.

939년 강화현, 1895년 강화군으로 개칭되었고, 1915년 교동면과 통합되었다.

1973년 강화면에서 읍으로 승격하였고, 1995년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통합되었다.

고려시대 몽골항쟁의 근거지였으며, 조선시대에 병인양요(丙寅洋擾)·신미양요(辛未洋擾)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본래는 김포반도와 연결되어 있었으나 오랜 침식작용에 의해 구릉성 섬으로 분리되었다가,

한강·임진강에서 유출되는 토사가 쌓이면서 다시 김포반도와 연결되었다. 그후 염하(鹽河)가

한강에서 분류하여 김포와 강화 사이에 해협을 이루면서 다시 섬으로 독립되었다.

기후가 온화하여 남서부에 동백나무·초피나무·비목나무(보얀목)·탕나무 등의 난대림 자생한다.

지질은 결정편암과 화강편마암으로 구성되어 있고, 마니산·고려산·낙조봉·혈구산 등 산지가 있으나

험준하지는 않으며, 간척사업으로 인해 곳곳에 넓은 평지가 발달하여 벼농사가 활발하다.

연근해에서는 민어·밴댕이·새우류·꽃게·어패류 등의 해산물이 많이 잡히고,

지역 특산물로 인삼·화문석·순무 등이 유명하다.

강화도 지도

『택리지』에는 “강화부는 남북 길이가 100여 리이고 동서 길이는 50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의 강화도는 남북 길이가 약 28킬로미터(약 71리), 동서 길이는 약 16킬로미터(약 40리)이고,

면적은 405.2제곱킬로미터다. 북쪽으로 풍덕의 승천포와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으며 강 언덕은 모두 석벽이다.

석벽 밑은 곧바로 진흙 수렁이어서 배를 댈 곳이 없었다. 오직 승천포 맞은편 한 곳에서만 배를 댈 만하였다.

그러나 만조 때가 아니면 배를 댈 수가 없으므로 위험한 나루라고 일컬었다.

한편 김정호가 지은 『대동지지』 「강화부」편 ‘진도’조에 따르면, 강화부에는 다섯 개의 큰 나루가 있었다.

바로 갑곶진, 인화석진, 광성진, 정포진, 승천포를 일컫는다.

지금의 송해면 당산리에 있던 승천포는 개성으로 통하는 나루였고, 인화석진에서는 교동도로 건너갈 수 있었다.

내가면 외포리 정포마을의 서북쪽 모퉁이에 있던 정포진에서는 석모도로 건너갈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역사학자 호암 문일평이 『조선사화(朝鮮史話)』 「고적(古蹟)」편에서 강화를

“역사의 고장, 시의 고장, 재물의 고장”이라고 했던 것처럼 강화는 역사 속에서 수난의 땅이었다.

삼별초의 난으로 뻘겋게 피로 물들었고, 병자호란 이후 조선 말기에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가 일어났다.

1866년 9월 프랑스의 선박 세 척이 수비가 허술한 틈을 타 영종도를 지나 한강을 거슬러 올라

서강의 언저리 양화진까지 왔고, 뒤를 이어 미국과 여러 나라들이 ‘조선의 문호를 연다’거나

‘마실 물을 구한다’는 핑계로 몰려들어 수호조약을 체결하였다.

결국 그 조약들은 조선이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우리 역사의 소용돌이 중심에 있던 지역이 강화도이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강화도는 섬전체가 관광단지라고 할 만큼 문화유적지와 기념관 등이 즐비하고,

산에서 내려다보는 서해바다의 풍광은 거의 환상적이다.

특히 강화도 최고봉인 마니산 암릉등반은 시원한 바닷바람이 더해져 속세의 시름을 눈녹듯이 녹여버리고,

고려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진달래는 그 색이 진하고 아름다운 것은 물론 봄이 오는 북한 들녘이

한눈에 들어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고, 민통선 이북지역에 위치한 강화평화전망대는

타지역에서 전망하기 힘든 이북의 독특한 문화생태를 가까이서 보고, 느낄 수 있다.

 

강화지맥은 강화도 최고봉인 마니산에서 강화도 최북단 봉우리인 별악봉을 연결한 산줄기로 마니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분오리돈대를 끝으로 바다로 잠기고, 마니산에서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진강산.덕정산.퇴모산.혈구산.고려산.봉천산.성덕산.별악봉을 거쳐 불장돈대를 끝으로 바다로 흘러든다.  

 

'강화지맥 남북종주'는 강화지맥과 동일한 코스로서 강화도 최남단인 분오리돈대와 최북단인 불장돈대를 잇는 산줄기이고, 

'강화지맥 동서종주'는 강화도 최동단(경도 기준이 아닌 산줄기 기준임)인 월곶동대와 강화도 최서단인

삼암동대(경도 기준이 아닌 산줄기 기준임)를 잇는 산줄기이고, 이 두 종주코스를 '강화지맥 열십자종주'라고 한다. 

 강화지맥하면 흔히들 제적봉(평화전망대)에서 출발하여 택리나루까지의 남.북구간만

강화지맥으로 규정하고 그걸로 끝내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가슴속에 응어리진 아쉬움에

동.서구간을 시작했다마는 남.북구간의 자료와 지도를 구할 수 있다마는 동.서구간은

하는 산꾼도 거의없고 자료가 없어서 시작하면서 참으로 애를 많이 먹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고려산에서 퇴모산까지 중복되는 바람에 조금은 났긴 했지만...

지난 8월 여름에 한번에 끝내렸던 동.서구간을 컨디션 난조와 식수부족으로

마무리 못한 것을 백두대간 대신 하려고 이른 아침에 차를몰고 집을 나선다.

강화공영 주차장(08:00)
愛馬를 주차장에 세워놓고 도로를 건너 시외버스 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강화시외버스 터미널앞 도로
강화시외버스 터미널
오늘은 강화읍내 장날에다가 인삼축제와 새우젖 축제를 하는지 현수막이 붙어있다. 
강화 여인들의 강한 생활력

강화에는 ‘넉살 좋은 광해년(강화년)’이라는 말이 전해온다.

광해란 강화를 강화 사투리로 발음한 것으로 흔히 강화 여자가 부끄럼을 타지 않고 검질기다고

하여 체면과 염치를 모르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암 강화, 숫 통진’이라는 말도 있다.

이 말은 강화 처녀가 김포 땅으로 시집가면 잘살지만 김포 처녀가 강화 땅으로 시집가면 잘 못산다는 말이다.

그만큼 강화 처녀가 억척스럽다는 이야기다. 

 

터미널 상가 앞에는 조금씩 농사지은 물건들을 가져온 노인들이 농산물 수집상과

흥정하는 장면이 눈에 띄는데 강화사람들의 억척스런 생활력을 보는것 같다.

 

이것저것을 구경하다가 터미널 대합실 안으로 들어가 고비고개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버스가 조금전인 08시에 출발을 해버렸다. 하는 수 없이 터미널 앞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를 타고 고비고개까지 간다

터미널에서 고비고개까지 택시를 타고 오는데 시간은 10분 남짓 걸리고 요금은 6,800원이다.

고비고개(08:20)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에서 강화읍 국화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8번 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이곳에서 고려산과
혈구산 가는 등산객이 많다... ‘고비’는 강화의 옛 행정관서가 있었던 곳으로,‘고읍(古邑)’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고읍’은 ‘고비’고부’로도 부르며 지도상에는 나래현으로 표기되어 있다.

 고려시대 강화로 수도를 옮기고 39년 동안 몽골과 맞서 싸우다 개경으로

돌아갈 때 강화의 궁궐과 성곽이 몽골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 무렵 강화의 옛 행정관서가 내가면 고천리로 옮겨와‘ 심주(沁州)’라고도

불렸는데 이후 심도(沁都)’는 강화의 별칭이 되었다.

 관아터, 향교터, 형옥터와 장터라 전해오는 곳이 있으며 조선 세종때
행정관서가 현재의 읍내로 다시 돌아갈 때까지의 강화의 행정 중심지였다고 한다.

“(강화 역사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퍼옴)

고비고개에서 택시에 내려 간단하게 워밍업을 한 다음에 산행을 시작한다.
혈구산 오르는 등로에서 바라본 고비고개의 모습
지난번에 2번이나 걸었던 고려산도 보이고...
약간의 추위를 느낄만큼 바람이 불긴하지만 자켓을 입을 정도는 아니다.
시원한 바람에다 날씨가 좋아 산행하기는 참으로 좋은 날씨이다.
5번에 걸친 강화지맥길에서는 한결같이 날씨가 좋다. 

지난 5월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새로운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혈구산 1봉(08:35)
1봉을 조금 지나니 1봉을 오르지 않고 편한 옆사면으로 혈구산 오르는 길이 나오고...
이별을 준비하는 패랭이꽃
혈구산 1봉 오르는 등로 
등로사이로 가야할 혈구산이 보이고...

 과남풀

혈구산 2봉(08:45) 

1봉 아래에서 헤어졌던 옆사면 길을 다시 만나고...
물개처럼 생긴 바위도 만나고...(범여의 생각 中에서)
잠시후 3봉으로는 능선에 올라서니 가야할 황청포구와 내가면이 보이고...
북으로 눈을 돌리니 멋진 별립산(別立山)도 보인다.

강화군 하점면과 양사면 사이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산으로

 ‘강도지’에 “강화부 서쪽 2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있으며

 ‘대동지지’와‘대동여지도’ ‘조선지지자료’에서 별립산이라는 지명이 확인된다.

강화도의 다른 산들과 산줄기가 연결되어 있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다고 해서

별립산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었다고 전해지며 산 전체적으로 바위가 많고

호랑이가 앉아 있는 모양 이라고 해서 준호산이라는 별칭도 있다.

혈구산 가는 길에서 만난 구절초

 구절초의 유래는 음력 9월 9일 전후하여 채취하면 약성이 뛰어나다고해서 붙혀졌으며,

9월에 절취한다고해서 구절초입니다.  대구구절초, 영덕구절초, 한라구절초, 하남구절초 등의

지역명이 붙은 것들은 크게  보면 가는잎구절초, 넓은잎구절초로 분류가 가능하지만,

해당 지역에서 발견되어서 지역명을 붙인 경우가 많다.

 

국화과에 속하는 구절초는 종류가 비교적 많은 편이며, 잎이 넓은 구절초,

서흥구절초, 수원구절초, 낙동구절초 등이 있으며 잎이 좁은 종으로는 산구절초(가는잎구절초),

바위구절초, 한라구절초,포천구절초, 설악구절초 등을 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잎이 넓은 종류들은

주로 높은 산에 서식하고, 잎이 상대적으로 좁은 종류들은 높은 산지나 비교적 온도가 낮은 곳에

분포하며 구절초 종류는 백두구절초, 왜구절초, 넓은잎구절초 등등 15~30여종이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구절초로는 담금주로 사용하기도 하고, 해열제, 해독제, 감기예방, 면역기능강화, 여성 갱년기장애,

고혈압, 위장장애, 관절염(소염제), 강장 등등 다양하게 쓰인다.

개똥쑥도 만난다.

 개똥쑥이란 이름의 유래는 개똥처럼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개똥쑥은 6~8월 사이 민가 황무지에서 자라는 초롱꽃 목국화과 쌍떡잎식물 한해살이 풀로 높이는 약 1m다.

개똥쑥은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한약재로 지정됐다.

 “미국 워싱턴대학 연구팀은 암을 죽이는 능력이 기존 약보다 1200배 되는 약초에 대해 보고했다.

 

고서에 의하면 개똥쑥은 효과가 다양하며, 암은 물론 혈압, 당뇨 등 3대 고질병에 좋으면서

말라리아에 의한 뇌성마비, 소아경련, 청열,조열, 양혈, 도한, 해열제로 결핵의 열, 만성 간혈열,

산욕열, 신경성 열병, 황달에 복용하거나 악창, 개선(옴), 지혈, 변혈, 벌독에 외용제로 사용한다.

 

기생충과 잡열과 염증을 제거해 주고 항암제나 방사선을 하더라도 그 후유증을 덜어주며,

개똥쑥의 원리는 개똥쑥에 포함되어 있는 프라보노이드는 암세포가 좋아하는 철분으로

코팅된 특이한 것으로 암이 스스로 찾아먹고 죽게 된다고 한다.

노란색 감국도 만난다.
혈구산 가는길은 이미 가을이다.
혈구산 3봉(09:00)
시원스레 강화앞 바다가 보이고 가야할 덕산과 국수산이 보인다.
지난 9월에 걸었던 덕정산, 진강산, 마니산도 보이고...
쑥부쟁이의 꽃말은 그리움, 기다림이란다
.대장장이의 큰딸로 병든 어머니와 열한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돌보면서
가족들을 위해 쑥을 캐러 다녀서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 딸"이라고는 뜻으로
"쑥부쟁이"라고 불렀던 슬픈 전설을 간직한 쑥부쟁이가 오늘 등로에서 계속 만난다.
가야할 길을 다시한번 바라보고...
혈구산 가는길은 억새가 가을을 재촉한다.
지난구간과 오늘 아침에 걸었던 능선들

 혈구산 정상 직전의 이정표(09:10)

혈구산 정상 바로직전에 우측으로 퇴모산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다.

이곳에서 혈구산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되돌아와야 한다. 

지난 봄에 걸었던 강화지맥 남.북구간의 능선도 시원스레 보이고...

혈구산(穴口山:466m:09:12)

강화읍과 선원면,불은면,양도면, 내가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용혈의 근원이자 고려 정기를
품은 산으로 여신의 성격을 띠었으며, 예로부터 용이나고 국가의 재난을  알리는  곳으로

대운산(戴雲山)이 하늘에 닿아 있다는 의미를 지닌 산으로 마니산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머리부분에 해당하는 곳이라 전해진다. 

혈구산이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정상에 올라 주위를 보면 가슴이 벅차고 힘이 저절로 솟구치는

살아 숨쉬는 산으로 정기가 산 정상으로 항상 넘쳐 흐르고 있다.

또한, 강화 중앙부에 위치하여 강화 전경을 고루볼 수 있는 산이다.

혈구산 표지석 뒷면

이곳이 한반도의 중심이란다. 이른 아침부터 5명의 등산객이 정상에서 막걸리판을 벌리고 있다.

강화에서 올라왔다고 하면서 강화인삼 막걸리를 권하는데 예전같으면 주지 않아도 달라고하여

먹을판인데 며칠전부터 20년전에 이빨을 떼워서 씌운곳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는데

별거 아닌것 같아 신경을 쓰지않고 이틀전인 목요일 청계산에서 맛있게 먹은 막걸리로 인해

밤새 잠을 못자고 병원에 갔더니마 잇몸이 퉁퉁붓고 입천정이 다 헐어 버렸단다.

막걸리를 사양하니 초콜렛 하나에 사과하나를 주기에 그걸 얻어먹고 퇴모산으로 향한다.  

혈구산 정상 지적삼각점

지적측량을 목적으로 시.군에서 지적삼각점을 설치하고 있다.
혈구산 정상에서의 인증샷
혈구산에서 북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지나 8월에 걸었던 1구간과 한강과 임진강의

합수점이 보이고 그 앞에 유도(留島)가 외롭게 떠있고 우측으론 지난해 7월

1대간 9정맥의 종착지였던 보구곶리가 보이고

좌측으로 북녘땅인 황해도 장단지역과 그 너머 개성 송악산이 뚜렸하게 보인다.

내나라 내땅을 70년이 다 되도록 철조망으로 인해 가보지 못하는 땅...내 생전에

언제쯤 저너머 보이는 예성정맥을 걸어보려나?... 착잡한 마음으로 퇴모산으로 향한다. 

다시한번 북서쪽으로 눈을 돌리니 별립산이 아쉬운듯 작별을 고한다.
오늘 가야할 능선들이 뚜렷히 보이고...
되돌아온 혈구산 삼거리(09:20)
빨간 찔레꽃 열매
안양대학교 강화캠퍼스 갈림길(09:25)
오던길을 뒤돌아서 혈구산을 다시한번 뒤돌아보고...
삼각점봉(09:33)

이곳도 좌측으로 내려가면 안양대학교 강화캠퍼스가 나오고 지맥 등로에서

좌측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군삼각점(△ A-8540, 351F08)이 설치되어 있다.

삼각점봉에 설치되어 있는 군삼각점
삼각점봉에서 만난 산부추
퇴모산 가는 길에서 만난 소나무 한결같이 앉은뱅이이다.
능선 좌측에 멋진 전망대 바위가 나온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화읍 불은면(佛恩面)의 모습

고려시대 불교가 융성할 때 이곳 고릉리에 자은사(慈恩寺)가 있었는데 이절의 이름에서 은(恩)자를 따서

부처님의 은혜를 입은 지역이란 뜻으로 불은면이라 칭하였다고 하며,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불은면과 인정면을 병합한 후에도 그대로 불은면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등로에서 만난 도장버섯 
퇴모산(退帽山:338m:09:50)
강화군 내가면과 불은면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단군 왕검이 혈구산에서 
모(帽)를 세우고 퇴모산에서 끝맺음을 하셨다는 유래가 있는 산이다
산 아래에는 안양대학교 강화캠퍼스가 있고 커다란 채석장이 보이며
마니산이 하얀 뭉개 구름에 가려 신비로움을 더해 준다.
산 정상에는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한 3등 삼각점이 있다.
퇴모산 정상 이정표
퇴모산 정상 3등 삼각점(△ 강화 305)

퇴모산에서 강화지맥은 남.북과 동.서로 갈리는 곳이다.

고려산에서 이곳까지 같이해온 남북구간과 같이해 온 강화지맥은 이곳에서

이별을 고하고 직진으로 황청포구로 강화지맥 동.서구간을 이어간다.

퇴모산에서 가는 동.서구간은 지맥 산꾼들이 다니지 않아 내가 개척해서

가야할 형편인데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탓인지 내려서자마자 독사 2마리를 만난다.

고천리 갈림길(09:55)
퇴모산 정상에서 5분정도 내려오니 고천리와 외포리 갈림길이 나오는데
지맥길은 이곳에서 좌측 외포리 방향으로 이어진다. 
등로는 생각보다 뚜렸하다. 이 아래 동네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모양이다.
안부 사거리(10:08)
안부 사거리에는 이정표(↑내가시장(외포리, ↓ 혈구산, ←양도)가 있고 소방서에서
설치한 ‘119 혈-5’ 구조목 표시판이 서있다.  좌측으론 양도면 내려가는 길이다.

 

양도면은 조선시대 이후 하도면과 마주하면서 옛 진강현의 부치쪽 곧 위쪽에 자리하고 있어

상도면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위량면(位良面)과 합하고 위량면에서 양(良)자와

상도면에서 도(道)자를 따서 양도면이라 칭하였다.

때죽나무 열매
열매나 잎 속에 작은 동물을 마취시킬 수 있는 에고사포닌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어서 예부터 물고기를 잡는데 이용하였다.
열매나 잎을 찧어 물속에 풀면 물고기가 떠오른다. 또한 에고사포닌은 물에 풀면 비눗물처럼 기름때를 없애 주기 때문에 세제가 없던
시절에는 때죽나무 열매를 찧어 푼 물에 빨래를 하기도 했다. 민간에서는 꽃을 인후통이나치통에, 잎과 열매는 풍습(風濕)에 썼다.
이곳을 지나는데 등로 주위에 산초나무에는 까만 산초열매가 산꾼 범여를 유혹한다.

그냥갈 수 없이 정신없이 열매를 따는데 갑자기 등산화 아래가 물끄덩한 느낌이

들어 아래를 보니 독사 한마리가 따리를 틀고 있는것을 내가 밟은 것이다.

그 넘이 내 등산화를 물었는데 굽이높아 등산화 중간을 물었는데 갑자기 다리가 풀린다.

뱀도 놀라고 나도 놀라 스틱으로 쳐버리니 그 넘도 놀라 도망을 간다.

그 바람에 많이 열려있는 산초나무 따는것을 포기하고 열심히 지맥길만 걷는다. 

ㄴ자 갈림길(10:15)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직각으로 꺽어져 내려가니 로프를 설치해놨다.
청순한 구절초의 모습
NO35 송전탑(10:30)

34번과 35번 송전탑을 지나 내리막길을 향해 내려가다 좌측으로 꺽어지니...

무명묘지가 나오고 묘지를 지나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시멘트 임도가 보인다.

임도(10:37)

임도에서 우측 임도로 들어서니  기독교인인 故김동규님의 묘지가 나오고...
등로에서 만난 묘지를 지나 3분을 더 걸어가니 최근에 생긴듯한 시멘트도로를 만난다.
새로생긴듯한 도로(10:40)
도로를 가로질러 우측 절개지로 올라선다.
절개지로 올라서니 강화나들길이 나오고 좌측에 컨테이너 박스가 있다. 
등로로 올라서니 뚜렸한 길이 보이고 주변에는 海松들이 즐비하다.

편안한 등로를 걸어가니 김해김공의 묘지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10:50)

잘 관리된 묘지를 지나니 삼각점(△ 강화409 1989 복구)이 있는 조그만 봉우리를 만난다.

국립지리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삼각점은 1910년부터 1918년에 일본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서
토지수탈을 위한 지적도 제작과 기간산업 건설 및 군사적 이용을 위한 1:50,000지형도제작을 목적으로
우리나라 전역에 일정한 간격으로 삼각점을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약 72%이상이 파괴 또는 망실이 되었고, 미 군정하에서 현 국립지리원과

미군이 전후복구시설 등을 위하여 파손 및 망실된 기준점복구 측량사업을 착수하였으나 국가재건이 시대적 상황으로서
일관성이 결여된 임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하였다. 1960년 이후부터 1970년초까지 현 국립지리원에서 지도제작, 국토건설
등을 위하여 파손 및 망실된 기준점에 대한 복구측량을 완료되었고  그 이후, 사회적 및 경제적 환경변화에 의하여 높은 정확도의
삼각점성과가 요구됨에 따라 국립지리원에서는 1975년부터 정밀측지망구축 사업을 착수하여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삼각점은 우리나라 토지의 형상과 경계, 면적 등 정확한 지리학적 위치결정을 위해서 전국적으로 통일된 높은

정확도를 갖춘 것으로서 지도제작, 국민의 재산권 관리, 각종 국가기간산업 건설 등의 평면위치 결정을 위한 우리나라
모든 측량의 기준으로 이용이 되고 있는 국가중요시설물로서 측량법령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으나 불행하게도 국민적
무관심과 무분별한 각종 공사 등의 인위적 요인에 의해서 파손되거나 망실되는 경우가 있다.

 

삼각점은 전국에 약 2.5km-5km간격으로 대부분 산정상에 화강암(일부 동판)으로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숫자(11, 21, 303, 423 등)은 삼각점의 등급으로.11번부터 19번까지는 1등 삼각점은 대삼각본점이라는
명칭으로 우리나라(남한)에 189개 21부터 29까지는 2등 삼각점으로  대삼각보점으로 1,102개  
301부터 399는 3등삼각점은 소삼각일등점으로 3,045개,
401부터 499까지는 4등 삼각점으로 소삼각
2등점으로 11,753개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숫자의 기준은 1:50,000지형도의 1도엽 단위이다.
내가고개(10:55)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와 외포리를 잇는 고개로 301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내가고개를 가로질러 절개지로 올라선다
절개지로 올라서니...
밤나무 몇그루가 서있는데 밤이 꽤나보여 약 한됫박 정도 줏었다.
등로는 잘 보이지 않고하여 험한길을 내가 만들다시피 하여 올라서니 겨우 희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밋밋한 등로에서 올라서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좌측으로 강화공설공동묘지가 보이고...
묘지 우측으로 내려서 덕산으로 향한다.
공동묘지에서 바라본 가야할 덕산(망산)의 모습

강화공동묘지(11:10)

공동묘지를 지나니 다시 좌측에 호화묘지가 나오고 잠시후 우측 갈멜산기도원이 보인다

갈멜산기도원(11:12)
갈멜산기도원을 우측에 두고 등로를 걸어간다.
기도원을 지나니 산악자전거 길을 새로 만들어놨고 지맥길을 자전거 길을 가로 지른다.
희미한 길을 조금 지나니 우측에 기독교인들 묘지가 보이고...
기독교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우측에서 올라오는 편안한 일반 등산로와 만나고...
등로 가운데 서있는 소나무
나무 계단을 올라서니 좌측으로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덕산 직전에서 만난 전망대(11:22)

전망대에서 지난 9월1일 친구 淸眼과 걸었던 남.북구간 덕정산에서 마니산구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외포리 선착장과 석모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외포리에는 지금 새우젖축제로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마이크의 소음이

이 산위에까지 들리는데 얼마나 큰지 공해수준이다.

외포리(外浦里)는 포구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외포리라 부른다.

석모도 본문 이미지 1

석모도 지도

석모도의 면적은 42.841㎢, 해안선길이 41.8km으로 외포항에서 서쪽으로 1.5㎞ 해상에 위치한다.

고려시대 말엽까지는 석모도·송가도(松家島)·어류정도 사이에 조수(潮水)가 드나들어 선박이 왕래하였는데
주로 예성강(禮成江)과 한강을 드나드는 화물을 수급하였다. 1895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교동군에 속하였다가
1910년 강화군에 편입되었다
 
남동쪽 끝의 해명산(海明山:327m)과 중앙의 상봉산(316m)으로 인해 중부와 남부는 산지를 이루고,
북부와 서부의 간척지는 평지를 이룬다. 평지에서는 서해안으로 작은 시내가 흐르는데, 그 유역의 토지가
기름져 경작지 또는 취락으로 이용된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한다.

주요 농산물로 쌀·보리·콩·감자 등이 생산되며, 근해에서는 병어·새우류·숭어·꽃게 등이 잡힌다.

넓은 간석지를 이용한 굴양식이 활발하며, 삼량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한다. 지역 특산물로 섬쌀
·순무·밴댕이젓갈·새우젓·천일염 등이 유명하다
섬 중앙부의 낙가산(洛伽山) 기슭에 자리잡은 보문사(普門寺)에는 지방유형문화재 제27호인 보문사
석실(普門寺石室)이 있다. 섬에서 유일한 민머루해수욕장은 썰물 때면 개펄이 드러나 자연학습장으로도 이용된다.
외포항에서 석모도 석포항 사이를 운항하는 배가 평일에는 30분 간격으로 다니고, 주말이나 휴일에는 수시로 다닌다
전망데크 옆에는 휴게용 의자들도 보이고...

덕산가기 전에 만난 이정표

강화 망산(덕산)봉수(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4호)

덕산(망산)봉수는 내가면 외포리 산 13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덕산봉수는 사방 8.3m 내외의 기단에 원형 연대를 갖추고 있었으나 현재에는 돌무더기로 변해버렸다.

동쪽 기단은 단수가 2단이며 높이가 0.8m이다. 서쪽 기단은 단수가 4단이며 높이가 1.3m이다.

남쪽 기단은 단수가 5단이며 높이가 1m이다. 북쪽기단은 거의 붕괴되었으며 높이가 0.4m이다.

면석은 110×40cm, 100×35cm, 25×10cm이다. 연대는 지름이 4.5m이고 높이가 3.4m이다.

면석은 65×15cm, 30×8cm, 18×10cm이다. 

 

덕산봉수와 관련한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世宗實錄地理志(세종실록지리지)권 148 강화도호부 봉수 망산봉수조에는

 “부의 서쪽에 있으며 북쪽으로 별립산에 응한다”라고 하였다.

新增東國輿地勝覽(신증동국여지승람) 권 12 강화도호부 봉수 망산봉수조에는

 “동쪽으로는 진강산 봉수에 응하고 서쪽으로는 교동 화개산에 응한다”라고 하였다.

東國地志(동국지지) 봉수조에는 望山(망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江華府志(강화부지) 하권 봉수 望山(망산)봉수조에는 “서남쪽 10리에 위치한다”라고 하였다.

江都志(강도지) 봉수 망산봉수조에는 “동쪽으로는 진강산에 응하고 서쪽으로 교동 화개산에 응한다”라고 하였다.

續修增補江都志(속수증보강도지) 제8장 제3절 봉수 요망대 덕산봉수조에는

“동쪽으로 진강산에 응하고 서쪽으로 화개산에 응한다”라고 하였다.


이런 기록을 토대로 요약하면, 덕산봉수는 부의 서남쪽 10리 지점의 정창성 뒤편 산정상에 위치해 있었고

동쪽으로 진강산봉수에 응하고, 서쪽으로 교동의 화개산봉수에 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봉수는 望山(망산), 網山(망산), 綱山(강산)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으로 덕산봉수의

異名(이명)을 확인할 수 있으며 또 시대마다 기록을 답습하는 과정에서 필사의 오류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어쨌든 덕산봉수는 여러 명칭으로 불렸다고 하겠다. 

덕산(德山:280m:11:22)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북쪽에 있는 산으로 망산, 또는 봉화대라고 부른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남으로는 덕산(망산, 즉 강화봉수)에 응하고

동으로는 하음 봉천산에 응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상에는 봉수대와 정자, 덕산산림욕장 안내판이 있고 정자옆에는

삼각점(C-8606, 336FOB)이 있다.

덕산 정상 바로옆에 있는 정자에서 5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에 국수산으로 향한다.
가야할 국수산도 보이고 내가면의 황금들판도 보인다.
교동도도 보인다.

덕산에서 국수산으로 향하는데 갈라진 나무사이를 지난다.
오늘의 날머리인 황청포구와 바다건너 석모도도 보인다
가야할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국수산이 보이고...
등로가의 바위에 누군가가 멋진 글을 써놨다.
아까 독사땜에 놀라서 그냥 지나가려다 등로옆에 산초나무를 보고 또 산초를 채취한다.

 산초나무 옆에는 귀하디 귀한 능이버섯 하나가 주인을 잃고 비틀어 말라 버렸다.

국수산 갈림길(11:45)
덕산 정상에서 15분정도를 걸어 내려오자 이정표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이곳도 산악자전거 도로를 만들어놔서 험한 기맥길이 고속도로가 된 기분이다. 

산악자전거(MTB)도로를 따라 걸어가는데 도로 옆에 묘지가 있고 잠시 우측에 꺽어진다

이윽고 조그만 고개가 나오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밤나무 단지를 지나간다.
밤나무 단지를 지나니 우거진 잡풀로 길이 보이지 않다가 조금을 더 올라가니
우측으로 올라오는 일반 등산로를 만나 편하게 국수산으로 오른다. 
지나온 덕산(망산)의 모습
조그만 벤치 2개가 있는데 전망은 정말 굿이다. 석모도가 한 눈에 들어오고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가져온 떡과 커피 한잔으로 점심을 대신하는데
자꾸만  이빨이 아파서 미칠것만 같다... 베낭에서 구급약통에 있는 사리돈 한알을 먹는다.

벤치에서 바라본 석모도의 모습

국수산(193m:12:25)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와 황청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외포리 선착장 북서쪽

방향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상은 돌로 담장을 쌓아 참호 형태로 되어 있으며

표식을 인식할 수 없는 삼각점과 벤치가 있다.

옛부터 이름난 영산(靈山)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자신의 소월을 비는

천기신명한 곳으로 산중턱과 정상에는 옛 칠성당터가 남아있다고 한다.

 

등산로와 약수터가 잘 정리되어 있으며 바로 앞에 석모도와 서해바다가 보이고

북쪽으로 눈을 돌리니 개성의 송악산과 예성강이 시야에 들어온다.

 

강화군수나리! 이곳과 덕산에 정상 표지판 좀 세워주소. 이정표만 세우지 말고...

국수산 정상에 서니 그야말로 일망무제이다.

바로밑에 오늘의 날머리인 황청포구가 보이고 저 너머 교동도 뒷쪽으론

북한땅인 황해도 해주 지역이 아련히 보이고 건너편에는 석모도가 손에 잡힐듯 가깝다

국수산 정상에서 바라본 황청리와 황청포구의 모습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黃淸里)는황극운(黃極運:세계의 운세) 맑은 물이 흘러서 큰 인물이 날곳이라 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이곳 국수산에서  강화지맥 동.서구간의 날머리를 삼암돈대냐, 황청포구냐 하는 문제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는 것 같다. 산행기를 쓰기 위해 지도를 인용한 ‘산어림카페’에서 만든

지도를 보면 국수산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삼암돈대를 날머리로 잡았지만 그리 많이

다니지는 않지만 가끔 다니는 산꾼들은 거의 다 황청포구로 날머리로 내려선다.

국수산 정상에서 바라보니 산줄기는 삼암돈대보다 황청포구로 내려서는게 맞는것 같다.

 

나 역시 삼암돈대가 아닌 선답자들이 걸었던 황청포구로 내려선다

 

삼암돈대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35호 (강화군)

지 정 일 1999.03.29

소 재 지 인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산223-1

돈대란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 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두는 초소이다. 대개 평지가 높은 곳에 마련해두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둔다.

 

강화도 외포리 마을에 축조된 이 돈대는 다른 것과는 달리 둥글게 쌓여 있으며, 대포를 올려놓는

받침대가 4곳 설치되었다. 성위로 낮게 쌓은 담이 55개 있었다 하나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그 흔적만 남아있다.

조선 숙종 5년(1679) 강화유수 윤이제가 병조판서 김석주의 명을 받아 쌓은 것으로,

경상도 군위어영군 8천여명이 동원되었다 한다.

엉터리 이정표
국수산을 내려서니 이정표가 나오는데 이곳은 덕산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황청포구 방향으로 덕산 이정표를 달아놨다. 혈구산에서 계속되는 이정표들이
오류 투성이다. 정말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잠시후에 만나는 정자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지 정자에 소나무 낙엽만 수북하다.
정자를 지나니 밀양박씨 묘지들이 보이고 다시 내리막을 향한다.

 또다시 묘지군을 만나고 또다시 내려선다

석모도 앞에 떠있는 돌섬과 섬돌모루의 조그만 섬이 앙증스럽다.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석각돈대란 표지판이 나오고 숲을 헤치고 내려오니 4번 군도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걸어서 황청포구로 향한다 
드디어 황청포구 삼거리가 보인다

우측 용두레마을은 석모도 가는 길목에 위치한 마을로 내가면 황청1리이며 예부터 맑은물이 흘러 큰 인물이 많이 난다는 전설이내려오는 마을이다.

용두레마을은 구수한 노랫가락에 맞춰 물을 푸는 아름다운 전통이 전해져 오는데
이 용두레란 영농방법이 기계화되기 이전에

낮은 곳에 있는 물을 높은 곳에 있는 천수답에 퍼 올리는 연장으로 농경지 구조에 알맞게 5단계까지 설치하여 물푸기를 하였던 재래식 양수시설이다.

 

용두레질 노래는 예부터 논에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용두레질을 할때 마을사람들이
다같이 흥겹게 부르던, 용두레마을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전승민요로, 1986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구수한 우리가락이다.
 어야 용두레~물올라 간다/물줄은 하난데 용두레는 열일세
이월 초하루 쥐불 놓는 날/삼월 삼일에 제비가 온다네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오월 단오날 그네를 뛰며는
모기가 안물어 잠자기 좋구나/육간 대청에 전후퇴 달구요
호박 주추에 부연 달구요/건드러지게도 잘두 살았네
황청포구 삼거리(12:45)

황청포구(黃淸浦口:12:50)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에 있는 포구로 예로부터 강화도를 찾는 관광객에게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라고 한다.

석모도가는 선착장이 있는 외포리의 유명세에 밀려 아는 사람은 그리많지 않지만 활어횟집 촌으로 유명한 포구란다.

 

충남 태안, 전북 부안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낙조 명승지로 알려진 황청포구는

강화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을 끼고있는 드라이버 코스로도 유명한 곳이다.

 

5번에 걸친 강화지맥 남.북구간과 동.서지맥을 무시히 마친다.

지붕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강화도... 참으로 공부 많이하고 간다.

이런날 강화 인삼막걸리에 벤뎅이로 축하주 한잔 해야하는데 아픈 이빨 때문에

모든걸 포기해야하니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황청포구 선착장에서 셀카로 인증샷을 남기고... 강화지맥 산행을 종료한다.
황청리 버스 종점(13:00)
황청포구에서의 아쉬움을 남기고 버스를 타려고 버스 정류소에 도착하여 시간표를 확인하니
아뿔싸 버스가 조금전인 12:50분에 출발을 해버린게 아닌가... 그 다음 버스가 14:40분이란다.
1시간 40분을 기다려야 하니 난감하기만 하다... 하는 수 없이  요즘 백두대간을 같이하는
이곳 강화출신 산까치님에게 전화를 하여 택시를 운행하는 친구분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하니 본인이 직접 차를몰고 이곳까지 와서 나를 태우러 왔다... 정말 미안하다.
 
그런데 강화까지 오셨는데 하면서 강화에서 제일 유명한 꽃게집으로 가서 맛있는 점심까지
사주는데 이 웬쑤를 어케 갚아야 할지... 저녁에 대간으로 무박 가야하는데 암튼 잘 먹었습니다 
식사 대접을 받고 강화읍내 주차장까지 태워주는 바람에 편하게 지맥을 마치고 집으로 온다.
산까치님! 다리아픈 사람 태워주고, 배고픈 사람 밥사준 공덕 세세생생 복 받을깁니다
황청리 종점 오후 버스 시간표
황청포구에서 강화읍까지 35분 소요
12:50. 14:40. 16:45. 18:40. 20:05. 21:05 
강화지맥길에서 수확한 전리품
밤, 개똥쑥, 산초열매, 관절에 좋다는 돌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