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3년 10월 20일
☞ 산행날씨: 맑은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22.2km / 12시간 소요
☞ 참석인원: 쑥맥, 온누리, 등산조아, 천불동님과 함께
☞ 산행코스: 주암계곡쉼터-고사리분교 갈림길-사자평전 입구-죽전삼거리-배내골-청수우골-한피기재
시살등-한피기재-죽바우등-체이등-함박재-함박등-천정삼거리-영축산
단조늪-단조성 갈림길-백련천 갈림길-신불재-신불산-전망대-간월재-나무화석
전망대-간월공룡능선-등억리 간월산장
☞ 소 재 지: 경남 밀양시 산내면, 양산시 원동면, 상북면,하북면 /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상북면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영남 알프스 2일차 식수 구할 수 있는곳
○ 영축산 정상 : 대피소, 영업 잘 안함
○ 신불재 우측 대피소 옆 : 식수 풍부
○ 신불산 정상 : 대피소, 라면 가능
○ 간월재 : 간월재 휴게소
○ 간월재-배내봉-배내재 : 식수 없음
저녁을 먹고 너무 피곤하여 일찍 잠자리에 든 탓인지 밤 11시에 주변 텐트에서 동료산꾼의
코고는 소리에 잠을 깬다. 술을 마신 탓인지 목이 많이말라 물을 마시기 위해 침낭에서
몸을 빼서 텐트 밖으로 나오니 이슬이 많이 왔고 쉼터 맞은편의 재약산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음력 9월 열섯새날의 달은 구름속에 가려져 있고 겨울옷을 입었는데도 날씨는 상당히 춥다.
내일 새벽 4시에 산행을 시작하기로 했는데 동료산꾼들은 분위기상 재약산으로 오르지
않을 것 같아 넉넉잡아 1시간 반이면 재약산을 갔다올 것 같은데하고 헤드렌턴을 찾아 재약산을
가려고 나서다가 아무리 산에 미쳐도 그렀지하고 재약산 산행을 포기하고 침낭속으로 들어간다.
새벽 3시 30분에 기상을 하여 부지런히 베낭을 정리하고 침낭과 매트를 묶은 다음
텐트를 걷어서 베낭속에 넣고 새벽 4시에 산행을 시작하는데 예상대로 재약산을
포기하는데 아쉽지만 동료산꾼들과 보조를 맞추고 배내골로 향한다.(04:00)
고사리분교 갈림길(04:13)
쉼터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데 우측 개울은 작년 산행때와 마찬가지로
여름에 온 비 때문인지 많이 파손되어 있어 어둠속에 상당히 위험하다.
길은 미끄럽고하여 조심스럽게 걷는데 동료산꾼들은 뭣이 그리도 급한지
엄청난 속도로 정신없이 도망을 간다.
고사리분교 갈림길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건너편 재약산이
자꾸만 아쉬운 듯 눈에 아른거린다.
사자평전 끝자락(04:25)
능선 숲을 빠져나와 억새들이 춤을추는 사자평전 끝부분을 지나
다시 능선으로 접어들면서 재약산과 아쉬운 이별을 한다.
이정표를 카메라에 담는 사이에 또다시 동료들은 도망(?)을 가버리는데
계속해서 어제부터 아픈배가 이른 아침부터 또 배가 아파온다.
잠시후 죽전 삼거리에 도착하여 등로를 벗어나 볼일을 봤는데도 그칠 기미가 안보인다.
죽전삼거리(04:40)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향로산이 나오고 죽전마을 내려가는 길은
1.8km를 급경사로 내려가야만 하는데 짙은 숲때문인지 상당히 어둡다.
35분에 걸쳐 죽전마을에 내려서니 캠핑족들이 엄청나게 큰 텐트 4동을 쳐놓고
발전기까지 돌려가면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있는데 예전에 대나무가 많아서
죽전(竹田)이라 부르는 마을은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梨川里)에 속해 있는데
옛날 지명은 대밭마실이라 부른다.
배내골(05:15)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에서 발원하여 양산시 원동면을 거쳐 밀양댐으로
흘러가는 계곡을 말하며 배내고개에서 시작하여 70리(28km)나 이어진다.
수려한 경관 덕분에 울산, 밀양, 양산에서 각각 울산배내골, 밀양배내골,
양산 배내골로 부르지만 흔히 말하는 배내골은 양산지역에 가장 많이 걸쳐있어
양산 배내골로 보는게 타당하며 69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있다.
배내골의 유래를 보면
배내골(梨川洞)의 지명유래는 몇 가지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 '맑은 개울가에 배나무가 많이 자란다' 하여 梨川洞,
우리말로 배내골이 되었다는 유래와 옛날 밀양부사가 이곳을 유람하다 '
마신 물이 달고 시원한 배맛과 같다'하여 梨川 (이천/배내)이 되었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배내골은 영남알프스에서 밀양 쇠점골과 최고의 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배내골 상류에는 백련계곡과 주암마을 있는 철구소로 나누어진다.
백련계곡은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시살등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으로
천혜의 심산유곡을 빚고있다. 이를두고 청수골과 백련골로 불리는
청석골, 그리고 간월재로 이어지는 왕봉골로 영남알프스 계곡을 대표한다.
또다른 설은 배내골의 배내는 갓난아기의 저고리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산으로 옴푹 둘러쌓인 배내골이 어머니의 자궁(뱃속)처럼 모든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땅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양산시 원동면 선리에
태봉(胎峰)이란 마을이 이 유래와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배내골로 흐르는 배내천은 원동면 배내에서 발원하여 밀양시를 거쳐 흐르다가 다시
원동면소재지 앞을 역류하는 냇물로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드문 역류하는 시내라 한다.
죽전마을에서 내려와 69번 지방도로를 따라서 한없이 걸어가다가 베내치아 산장을
보면서 다리를 건너서 주택 사이를 요리조리 지나서 청수골로 향하는데 이곳에서
어제 차를 태워준 천불동님과 조우를 한다.
청수골 입구(05:50)
입구에는 파래소2교의 다리가 있고 다리 건너에는 청수산장이 있다.
청수골에서 영축산으로 오르는 길은 청수좌골, 중앙능선, 청수우골이 있는데
우리는 청수우골을 택하여 가기로 하고 어둠속에 초반에 약간 헤매다가 능선에 접어든다.
아직도 약간의 어둠이 덜 걷힌 상태에서 오르막을 오르다가 휴식을 취하는데
평소에 비주류인 등산조아님이 시원한 캔맥주 하나를 주는 바람에 이른 새벽에
맥주와 소주를 섞어서 한잔하고 사과 한조각씩 나눠 먹은뒤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계속해서 옆사면길을 걸으면서 올라가다가 너덜길옆 계곡이 있는 곳에서 아침상을 펼친다.
아침이래봐야 라면에다가 햇반 그리고 소주 한병이다
밥을 먹고 난 다음에 계곡에서 계곡물을 물통에 가득 채운다.
가야할 길이 멀기에 물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
다정스런 나무
이곳은 등산객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탓인지 계곡에 흐르는 물은 상당히 깨끗하다
멋진 암릉구간을 지나고...
산죽길을 지나 오르막을 오르니 한피기재가 나타난다.
한피기 고개(08:55)
양산시 원동면 한피골에서 하북면 초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한피기의 '한'은 크다는 뜻이고 , '피'는 비탈이란 뜻인데 한피기고개 란
큰비탈고개라는 의미로 시살등에서 영취산 정상까지의 능선이
멀고도 긴 비탈이란 뜻을 포함하고 있다.
한피기재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300m 떨어져 있는 시살등으로 향한다.
시간적으로 맞지않아 오르지 못했던 재약산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린다.
재약산(載藥山:1,119m)
울산 광역시 울주군 상북면과 경남 밀양시 단장면의 경계에 우뚝 선 준봉으로 산세가 부드러우면서
정상 일대의 거대한 암벽들은 장관을 이루며, 주변에는 표충사, 층층폭포, 흑룡폭포 등의 명소와 함께
영남알프스 명산들과 이어지는 광활한 억새능선이 산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흥덕왕의 셋째 아들이 이 산의 영정약수를 마시고 고질병이 나은 뒤‘약수를 가지고 있는 산’이라 하여
재약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재약산 동쪽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억새평원인 사자평이 있고서쪽 기슭에는 명찰인 표충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
표충사는 귀중한 문화유산의 보물 창고로 국보, 보물, 중요 민속자료등 수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재약산 남쪽의 옥류동천과 북쪽 금강동천에 있는 폭포들은 아름다우면서신비로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며,
재약산 산들늪은 7부 능선 자락에형성된 고산습지로 환경부에서 지정한 습지보호지역이다.
진퍼리새, 오리나무, 복주머니난, 큰방울새난, 노랑무늬붓꽃과 멸종위기동물인 삵, 하늘 다람쥐가 살고 있는 곳이란다.
시살등(981m:09:05)
경남 양산시 원동면과 하북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멀리서 보면 활등처럼 생겼다고 하여 ‘시살등’이라 한다.
시살등은 그 의미에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처절한 투쟁의 역사를 담고 있다.
신불산 억새밭 너머 단조성에서 왜군의 북상을 저지하던 의병들이 왜군의 기습으로 끝내 성을 내준다.
의병들은 이곳 시살등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이면서 왜군을 향해
화살을 많이 쏘았다고 해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고 전하고 있다.
주변의 초원능선이 시원스럽고, 929봉 서쪽 사면에는 빨치산 지휘본부로 사용되었다는 심종지굴(신동대굴)이 있다.
깨진 시살등 정상의 삼각점
시살등 정상에서
시살등에서 바라본 밀양 단장면의 송전탑
요즘 한참 사회이슈로 떠오른 밀양 송전탑의 모습이 보인다.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여 대승적 차원에서 해결되었으면 한다
시살등에서 바라본 영축지맥의 능선
영축지맥(靈鷲枝脈)이란 낙동정맥의 영축산에서 분기하여
시살등(981m),염수봉(816m),금오산(765m),구천산(630m),만어산(670m),청용산(354m)을
거처 밀양시 삼량진읍 낙동강과 밀양강 두물머리에서 45.8km 의 맥을 다 한다.
다시 한피기재(09:20)
한피기재에서 영축산으로 향하는 구간은 개인적으로는 영남알프스 구간중에
가장 멋있는 구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멋지며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영축산에서 시작하여 밀양강으로 떨어지는 영축지맥 능선이기도 한 이곳
멋진 기암괴석과, 시원한 조망... 거기다가 등산객들이 없어서 좋아도 너무좋다.
양산시내와 통도사를 내려다보며 멋진 조망을 감상하고 있는 온누리님과 쑥맥님
가야할 영축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5대총림의 하나이며 불보종찰인 통도사도 보이고...
통도사는 또한 삼보사찰(三寶寺刹) 가운데 하나인 불보사찰(佛寶寺刹)로 통한다.
창건주 자장율사가 643년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부처님 사리와 가사, 대장경 400여 함을
봉안하고 통도사를 창건했기 때문이며, 봉안된 불보(佛寶)로 인해 당시부터 매우 중요한 절로서 부각됐다.
고려 초에는 사세가 더욱 확장되어 절을 중심으로 사지석표(四至石標),
즉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를 들 만큼 대규모로 중축했다.
1592년 조선 선조에 이르러 임진왜란의 발발과 함께 영남지방이 왜구의 수중에 들어가자
의승장 사명 유정은 통도사의 사리를 대소 2함에 나누어 금강산에 있던 청허 휴정에게 보냈다.
휴정은 "계를 지키지 않은 자는 오직 금은 보화에만 관심이 있다"며 1함을 다시 통도사로 돌려보낸적도 있다.
이 때 금강계단 앞 대웅전이 전소되기도 했으나, 1654년 (인조 23) 우운(友雲)이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0년 낙동정맥길에 리더였던 쑥맥대장님과 함께
죽바우등의 모습
죽바우등(1064m:09:50)
경남 양산시 원동면과 상북면의 경계에 있는 암봉으로 주위에 山竹이 많아서 죽바우등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지금은 산죽은 보이지 않고 조그만 표시석과 최근에 설치한 듯한
울산 산사랑산악회에서 설치한 추모비가 와석(臥石)으로 설치되어 있다.
영남알프스 남동쪽 산군에 위치해 있는 죽바우등은 1000m가 넘는 높은 암봉으로,
주위에는 수려한 계곡을 끼고 있어 전망 또한 너무나 빼어나다.
멀리 천황산(사자봉)이나 재약산(수미봉)과 향로산, 가야할 영축산이 한 눈에
들어오며 아래로는 양산시내와 통도사와 부속암자들이 조망되고 남서쪽으론 오룡산이 보인다
죽바우등 정상에 설치되어 있는 추모비
죽바우등에서 바라본 오늘 내가 걸어야 할 능선의 모습
죽바우등 정상에서
뒤돌아본 죽바우등의 모습
가을하늘 뭉게구름에 쌓여 신비스러움을 자아내는 영축산의 모습
아쉬워서 다시한번 더 바라본 죽바우등
채이등 삼거리 이정표
이곳에서 초코파이 하나를 먹으면서 5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채이등(10:15)
우뚝 솟은 봉우리가 통도사쪽에서 보면 알곡을 까부릴때 쓰이던 채이를 닮았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함박재(10:25)
함박재 이정표
함박재에서 오르는 길에 멋진 암릉을 만난다.
암릉을 지나 안부능선을 걷는데 함박등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함박등(1052m:10:35)
경남 양산시 원동면과 하북면의 경계에 있는 암봉으로 정상에는 손바닥보다
더 적은 앙증스런 표시석이 설치되어 있고 바로 아래에는 통도사 부속암자인
백운암과 비로암, 극락암이 보이고 통도사I.C 와 경부고속도로도 보인다.
함박등의 유래는 통도사 방향에서 보면 그 모양이 함지박 형상으로 생겼다고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영축산이 점점 더 가까워보이고...
오랫만에 동행한 쑥맥, 온누리님과 함께...
함박등에서 내려와 편안한 길을 걷는데 마산에서 오셨다는 4분이 등로위의
바위에 앙꼬빵 하나에 멸치와 소주 한잔을 부어놓고 제를 올리고 있다.
차림으로 봐서는 등산객 같지는 않고 약초꾼같은 행색인데 이곳에는
약초가 나올곳은 아닌데 이유를 모르겠다... 사연이 있겠지?
한피기재에서 영축산까지는 양산시 100~200m 단위로 이정목을 설치해놨는데
낭비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런데는 아무나 잘 찾아 다니지만
정작 구조목이 필요한 청수골 능선에는 구조목하나 없으니...ㅉㅉㅉ
어제 가지산에서 부터 계속에서 이정목에다가 메직으로 ‘대장과 쫄병지나가다’라는
글씨를 써놨는데 어느 얼빠진 자가 해놨는지는 모르지만 보기가 영 좋지않다.
이보시요 산에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게 기본 예의요... 아시겠소
편안 능선을 계속해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등로가운데 자리잡은 나무
자리를 잘못잡아 고통이 심하구먼...
오늘따라 쑥부쟁이가 왜 저리도 처량하게 보이는지...
암릉도 지나고...
지나온 능선을 다시한번 뒤돌아보고...
능선 맞은편 밀양지역의 산그리메
양산쪽의 모습도 바라보고...
영축산 전위봉으로 오른다. 이곳은 곳곳에 조그만 돌탑들이 있고 추모비와 철구조물이
있는데 마주 보이는 영축산에는 등산객이 어찌나 많은지 산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가야할 신불산이 보이고...
영축산 전위봉 정상의 철구조물
암행어사 박문수가 감탄했다는 단조산성과 늪지대도 보이고...
어제 걸었던 산들도 시원스레 보이고...
쑥맥대장님과 온누리님
영축산을 바라보면 천정사거리로 내려가다가 우측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서 조금 이른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영축산으로 향한다.
천정사거리(12:00)
영축산 오름길에서 바라본 오늘 내가 지나온 길
영축산 대피소의 모습
영축산(靈鷲山:1081m:12:10)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원동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상북면에 자리잡은
산으로 영축산, 영취산, 취서산, 축서산 등으로 표기되어 많은 혼란이 온다.
이같은 현상은 한자의 취(鷲) 또는 축(鷲)에 대한 한글 표기에서 문제가 발생되었다.
옥편에서는 ‘독수리 취(鷲)’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그러나 불교에서는
‘축(鷲)’이라고 발음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취’또는 ‘축’자 원래 ‘축’으로 표기되었다는 근거는 146년(세조9년)에
간경도감에서 간행된『법화경언해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영축산이 "취서산고성"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산 이름의 혼돈의 원인은 불교에서 유래된 축(鷲)자를 일반인들이 접하기 쉬운
한자사전의 표기 ‘취(鷲)’로 읽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근거한 것으로는 양산을 대표하는 통도사의 사적기등에 영축산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과 석가모니의 법화경 설파장소가 영축산이란점 이에 신라의 자장율사사
통도사 창건할 때 이를 참고했을것이란 점이 영축산으로 확정되게 되었다 한다.
이러한 혼돈을 염려한 양산시 지명위원회에서 2001년 1월9일 영축산으로 표기를 통일했다고 한다.
영축산이란 신령스런 독수리의 산이란 뜻으로 예전에는 독수리가 많았던 곳으로 보인다.
영축산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곳곳기암괴석과 노송이 어우러지고 무엇보다 영남 알프스의
중심 산으로 천년고찰 통도사를 품고있는 후덕한 산으로 알려진 명산이다.
인도에 왕사성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영축산은 영취산이라고도 하며 부처님의 8대 성지중의
하나이며 고타마 붓다와 빔비사라왕과의 만남의 장소이며 부처님께서 정각(正覺)을 이루신
후에 최초로 법화경을 설법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식별을 할 수 없는 영축산 정상 삼각점
어제부터 영남알프스를 산행하면서 가지산, 능동산 오늘의 시살등,영축산에
이르기까지 이곳의 삼각점은 한결같이 부서지고 망가져 있다.
삼각점이란 엄연한 국가의 재산인데 이렇게 망가뜨린 사람들이나
관리를 소홀히 하는 국립지리원도 문제가 참 많아 보인다.
대수롭게 생각할 지 모르나 나홀로 산꾼들은 바다에 있는 등대같은 존재인데...
영축산 정상에서 동료산꾼들과...
영축산 정상에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10분정도 줄을 선 다음에야 인증샷을
남기고 신불산으로 향하는데 낙동정맥 가는 능선을 만나니 무척이나 반갑기만 하다.
신불산 가는 길에서 아리랑릿지를 배경으로...
단조늪(12:25)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선리의 영축산에 있는 습지로「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등의
문헌에 따르면 늪의 중심에 신라시대 축성된 것으로 보이는 단조성이 있어 이를 따서 단조늪이라 불리게 되었다.
주변부에는 고산 초원이 발달하였고, 동쪽과 남쪽은 암벽, 서쪽은 참나무류의 숲으로
둘러 싸여 있고북쪽은 단조봉~신불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으로 되어 있다.
동·식물은 식물 183종과 동물 64종이 서식하고 있다.
습지 식물은 방울고랭이·동의나물·물매화·흰범꼬리 등 30여 종, 고산 식물은 동자꽃·
노랑제비꽃·쥐오줌풀·잠자리란 등 24종이 발견되었다.
또한 희귀 식물로는 환경부 지정 특정 관리 식물인 설맹초·솔나리·개족도리풀
등과 습지 군락으로 진퍼리새 군락·방울고랭이 군락·박새 군락 등이 있다.
늪지대 아래로 보이는 단조산성의 모습
단조산성(丹鳥山城)은
영축산 아래 넓은 평원에 있는 산성으로 통도사 8景의 하나인 단성낙조로 유명하다.
단조(丹鳥) 즉, 붉은 새란 학을 말하며 학(鶴)이 길게 목을 뽑아 세운 목줄기 위에
머리가 있고 그 머리 위에 한 점의 붉은 점처럼 솟아있는 성(城)이라 해서 붙혀진
이름으로 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연 암벽을 이용하여 성을
쌓았으며 둘레가 4,050자 (약 12km)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 안에는 못(池)이 있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은 천혜의 요새로서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수가 이곳에 올라와
“참으로 하늘이 지은 요새” 라고 감탄하였으며 조선조 영조때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곳에 와 보고는
“한 사람이 빗장(關)을 지키면 만 사람이능히 열지 못하는 곳”이라고 감탄을 하였다고 한다.
이 성을 일러 단지처럼 생겼다고 하여 ‘단지성’이라고도 하며 성 아래로는
홍류폭포가 흘러 작괘천을 이루며 유명한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부산에서 양산 ~ 언양 ~ 경주로
쳐들어갈 때 언양 의병들이 몰사한 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이 흘린 피가 얼마나 많았던지 피로 못을 이루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지금도 이 지역 마을사람들은 백발등으로 쳐들어온 왜병을 원망하며 "원수로다 원수로다,
백발등이 원수로다"라는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1046m봉 남서쪽 아래의 아리랑릿지-쓰리랑릿지-에베로릿지의 모습
영축산에서 신불산 정상으로 가는 길의 우측에 완만한 등산로가 있는데 여기가 금강골재이다.
금강골재에서 동쪽으로 하산하다 보면 4개의 릿지(아리랑ㆍ쓰리랑ㆍ에베로ㆍ 탈레이)가 있다.
영축산(靈鷲山)은 영남 알프스의 일부로 신불산 아래에 위치하며울주군 삼남면과 양산시 하북면의 경계에 있다.
아리랑리지. '아리랑'이라는 민족 고유의 전통이 고스란히 담긴 우리말 단어와 '리지(Ridge)'라고 하는
외국어가 결합된 아리랑리지는 그 이름에서부터 왠지 모를 멋스러움이 묻어나면서 동시에 가슴 설레게 한다.
얼마나 운치 있는 이름인가.
※ 릿지란 산능 또는 암릉을 의미하며, 영남알프스의 릿지는 전국 클라이머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히말라야 등반 준비를 위해 아리랑ㆍ쓰리랑ㆍ에베로릿지에서 등반하는 경우가 많다
울주군 언양읍의 모습
‘언양(彦陽)지방’이란 옛 언양현(군) 지역이었던 현 언양읍,상북면,
삼남면,삼동면 지역 등 오늘날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부 4개 읍면지역을 지칭(指稱)한다.
언양읍은 울주군의 12개 읍면(4읍 8면)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고읍(古邑)으로 군 서부지역의 중심지이다.
남북으로 경부고속도로와 국도, 동남으로 언양↔울산간고속도로와 국도가 각각 교차되는
교통의 요충이고 서북으로 태백산맥의 남단, 이른바 영남알프스가 병풍처럼 에워싸인
산악지대로 천혜의 경승(景勝)과 관광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지형상으로 예로부터 영남의 동남에 위치한 벽읍(僻邑)으로 동해에 가까워 왜구의 침탈이
잦은 관문(關門)이었고 땅이 기름져 많은 토산물이 산출되었으며 인심 또한 순후(醇厚)하였다.
언양에는 반구대 암각화와, 신라시대때부터 명성을 떨친 자수정과 언양불고기가 유명하다
억새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단조산성
억새밭사이로 호젓하게 걸어가는 동료산꾼들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엔 이곳 고산평원에 펼쳐져 있는 억새만큼 좋은데가 없을듯 싶다.
이곳에 오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예술가가 되니 시인 묵객의 안목 따위도 필요 없다
가을의 思索을 만끽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영남알프스에 열광하나보다.
고산 평원은 사람의 마음을 그곳을 지나는 바람의 크기로 확장시킨다.
거침없이 지나면서도 점령군 행세를 하지 않는 바람처럼,
조금의 소유욕도 없이 천하를 얻은 듯한 기분에 젖어들게 한다.
그것은 보는 대로 느끼는 마음이다.
아리랑릿지가 있는 정상봉인 1046m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1046m봉(12:40)
반가운 사람을 만나다.
지난해 진양,팔공, 호미기맥을 같이했던 가을바람님을 등로에서 만난다.
나와 반대방향으로 진행을 하고 있는데 요즘은 나홀로 산행을
비박으로 진행한다고 하면서 서로의 시간이 없어 아쉽게 헤어진다
신불평원의 모습신불재에서 영취산 정상 사이에 펼쳐진 1,983㎢의 억새평원이 신불평원이다
신불산억새평원은 '울산 12경'의 하나로 재약산 사자평과 더불어 전국 최고 억새평원이다.
신불재(13:00)
영축산과 신불산 사이에 있는 고개로 억새가 장관이다.
이곳에는 조금전에 지나온 영축산과는 달리 얼마나 사람들이 많은지
이거 산에 왔는지 남대문시장을 왔는지 분간이 안될정도이다.
저러다가 신불산이 내려 앉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서둘러 삶을 피하려 신불산으로 오르지만 가면 갈수록 사람들이 더 많으니...
신불재 이정표
신불산(辛佛山:1,159m:13:25)
경남 양산시 하북면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과 상북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영남 알프스에 속해 있는 산으로 울산광역시에서 2번째의 높은 산이다.
광활한 면적의 억새평원은 사자평과 함께 울주7봉의 대표적인 억새군락지로서
매우 아름다우며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중에 하나이다.
신불산의 유래 고려말 공민왕과 함께 개혁을 시작 인물인 승려 신돈(辛旽)이 14세기 중엽인
1371년 지금의 신불산 일대에서 수행중 깨달음을 얻고 “내가 곧 부처다”라고 외쳤다.
그리하여 신돈의 신(辛)자와 佛家의 불(佛)을 합쳐서 신불산이라 불리워지고 있다.
정상부근에는 남,북 3km의 큰 절벽(신불공룡능선)이 있고 동쪽으로는 선상지가
발달해 언양분지(彦陽盆地)가 펼쳐진다. 또 간월산 사이 북서쪽 비탈면에는
기암괴석이 많고, 남쪽과 서쪽 기슭에는 낙동강 지류인 단장천(丹場川)과
남천(南川)이 발원하며, 동쪽과 북쪽 기슭에는 깊은 계곡이 발달하였는데
북동쪽 계곡에 있는 홍류폭포(虹流瀑布)가 유명하다.
영암알프스의 1,000m 급의 7개 산 가운데 가지산(1241m)다음으로 높다.
1983년 12월에 간월산과 함께 울주군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곳도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인증샷을 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만 하는데
5분이상을 기다린 끝에 단체로 인증샷을 남기고 간월산으로 향한다
신불산 정상에 오르니 이곳은 사람도 많지만 꼴상사나운 모습도 많이 보인다.
50대 초반쯤 된 사람들이 술에 많이 취해서 고성방가로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는 모습이 마침 70년대 산행때 보는 모습이고, 곳곳에 쓰레기가
난무하고 리시버도 안낀채 음악을 틀고 다니는 인간들 참으로 꼴볼견이다.
술이 취했다고 모든 행동이 용서되는 건 절대 아니며 제발 남에게
민폐를 주는 행동을 자제주었으면 좋으련만... 썩 유쾌하지는 않다.
신불산에서 간월재가는 길목에서도 내려가고 올라오는 등산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오늘 내가 가야할 능선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간월산 가는 길에서 바라본 고헌산의 모습
고헌산은 상북면과 언양읍 두서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해발 1,033m의 높은 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도성이나 각 고을을 진압하는 주산을 진산이라 하였는데,
울산도호부의 진산은 무룡산이었으며 언양현의 진산은 이 고헌산이었다.
태양을 숭배하는 민족들은 한 발자국이라도 태양에 가까운 높은 산은 태양신에 접근하기
쉬운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또 하늘의 신이 하계할 때는 하늘에 가까운 높은 산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이 고헌산은 언양 사람들이 가뭄이 되면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기도 한데,
기우제를 지내는 것은 비가 내리고 안 내리는 것이 오로지 신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 믿는
우주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용샘이 있는 높은 정상에서 부정을 피해
하늘과 산신과 비를 다스리는 龍神에게 정성껏 비를 빌었다한다.
경부고속도로 언양 인터체인지에서 서북방향으로 9㎞(석남사길)쯤 들어간 장성리 쪽에서
북으로 보이는 산으로 서쪽으로 가지산이, 남으로는 신불산 간월산과 영취산(취서산)이
이어져 있으며, 산꼭대기는 돌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 아래 동쪽에는 사연댐이 있다.
간월산가는 이정표
가야할 간월재와 간월산이 보이고... 어제 걸었던 운문산과 가지산도 보인다.
울산지명사에는 왕봉재에서 긴등고개 사이의 해발1083m 의 고봉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상북 화천에서 배내에 걸쳐있다라고 지리적 위치를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왕봉재라함은 지금의 간월고개이고 긴등고개는 간월산에서 배내고개까지를
두고하는 말인것 같다. 간월산은 또다른 이름으로 단조봉 또는 왕봉이라 부르기도 하나
이는 신불산을 일컫는 것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라 한다.
주변으로 홍류폭포 등의 절경을 거느리고 있으며 최근 자연휴양림이 조성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 간월산에서 발원해 언양 쪽으로 흐르는 시냇물 작괘천은
각양각색의 바위들 사이로 옥류가 굽이치는 아름다움의 절경이다.
간월산과 신불산. 기슭의 등억온천은 게르마늄 함량이 높아 피부병과 무좀에
특효가 있고 당뇨와 고혈압, 신경통 등에도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울주군 상북면과 언양읍의 모습과 오늘의 날머리인 등억온천단지도 보인다.
간월재는 산허리에 걸린 여느 고갯마루와는 사뭇 다르며 광활한 평원 같다.
이곳 평원의 주인은 억새인데 그 무리는 약 10만 평에 이른다고 한다.
간월산에서 또는 신불산에서 구름을 밟고 이곳으로 내려선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넉넉하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사람의 모습이다. 사람들이 고산 평원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이곳은 바람도 많고 사연도 많은 눈물겨운 곳이다.
왕방골에는 죽림굴(竹林窟)이 있는데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믿음을 이어가던 곳이다.
로마시대 지하교회 카타곰베 (Catacombe)와 같은 역할을 했던 곳으로
조선시대 천주교 신자들의 고달픈 삶을 엿볼 수 있다
간월산을 포함한 영남알프스 일대는 빨치산과 토벌대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던 아픈 역사의 장소이기도 하다.
간월재 이정표간월재 소망탑
간월재(900m:14:00))
울산광역시 상북면 이천리(배내골)와 등억리를 연결되는 고개이다.
옛날 사람들은 '왕방재(王峰峴)' 또는 '왕뱅이 억새만디'라 불렀다.
간월재(왕봉재)는 배내골 사람들과 밀양사람들이 언양 장터로 넘어가던 고개라고 한다.
330,578㎡의 억새평원이 있으며, 억새꽃이 만발하는 가을이면 산상음악회, 패러글라이딩
등이 열려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아주 옛날 간월재 일대는 맹수들의 정글이었다고 한다
신불산에는 호랑이, 간월산에는 늑대, 배내봉에는 표범이 우글거렸는데, 사람들은 지축을 흔드는
괴성을 들으며 간월재를 올랐던 것이다. 간월재를 오르는 사람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맹수 때문에
일곱 사람 이상이 모여야 출발할 수 있었다.
간월산 오름길에서 바라본 간월재의 모습
과거 간월재를 넘나든 사람들은 배내골 주민과 언양 장꾼들이었다.
언양 면포장수, 울산 소금장수, 강동 건어물장수, 서생 미역장수, 밀양 개다리소반 장수,
똥장군 따위의 생활용기를 만드는 배내골 목기꾼과 언양 소 장수 등이 간월재를 넘나들었다.
원석을 녹여 쇠를 뽑아내는 달천 쇠부리꾼과 걸빵을 맨 떠꺼머리 숯장이, 숯을 나르는 짐꾼들의 발길도 잦았다.
언양장은 울산에서 팔십 리, 경주에서 팔십 리, 양산에서 팔십 리의 요충지로, 없는 게 없는 큰 장이었다.
특히 언양장의 나물과 목물은 팔십 리 떨어진 고을 사람들도 알아주었다. (기행시인 배성동님의 기사인용)
간월재 오름길에서 만난 멋진 암릉간월산 목재화석
간월산 목재화석 안내판
오늘 산행은 간월산으로 오르지 않고 간월산 아래 데크목에서 우측으로 내려서
간월공룡능선으로 향하는데 간월산까지 300m 밖에 안되지만 이곳에서 내려선다.
간월산(肝月山:1083m)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에서 배내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간(肝)이란 우리 민족이 오래전부터 ‘신성’이란 뜻이 내포되어 있으며
월(月)은 신명이라 하여에서 유래되어 평원을 의미하는 ‘벌’의 뜻이다
간월산은 평원이 있는 신성한 산으로 신불산과 밝얼산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간월이란 肝月, 看月, 澗越 , 肝越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기도 한다.
예로부터 간월산으로 떨어지는 저녁노을을 두고
'석양낙조간월봉'(夕陽落照肝月峰)이라 하여 헌양팔경 중에서 최고의 비경으로 꼽았다.
간월산 정상 직전에 데크목에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넓은 암릉이 나오고 돌탑하나가 서있다.
암릉에서 바라본 배내봉의 모습
간월공룡능선으로 접어들다.
간월산 아래에서 간월산장이 있는 등억리 온천입구까지 2.7km의 능선을 말한다.
맞은편에 있는 신불공룡능선(3.4km)에 비해 거리도 짧고 난이도도 떨어지지만
그래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은 코스로 오늘 날머리를 잡았다
공룡능선은 하늘로 승천하려는 용의 등처럼 바위가 삐쭉삐쭉 솟은 데서 명칭이 비롯됐다고 한다.
주위의 조망도 멋지고 능선을 걷는 암릉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라서
아찔한 느낌을 주지만 발한번 삐껏하면 말그대로 저승길로 가는 지름길일듯 싶다.
우측에는 간월재에서 등억리 내려가는 5km가 길이 마치 뱀처럼 꼬불꼬불한데
울굿불굿한 등산복으로 치장한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간월재에서 등억리 내려가는 길의 모습
계속해서 로프를 잡고 암릉을 내려간다.
암릉길은 계속되고 공룡능선이라 부를만하다
가야할 간월산장이 있는 등억리 온천단지가 보이고...
간월공룡능선이 끝나고 편안한 임도길을 만난다.
간월산장 (16:00)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임도로 내려가니 간월재와 신불공룡능선에서
내려온 등산객들이 만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데 잠시 후
넓은 냇가가 온다. 이곳에서 수건에다 물을 적셔 몸을 딲아 땀냄새를
없애고 다시 간월산장으로 들어서면서 영남알프스 1무1박3일에 걸친
55km의 대장정을 25시간에 마감을 하고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참으로 힘들었던 여정... 해냈다는 그 희열 그 무엇에 비할손가.
같이 걸어준 동료산꾼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등억리 신불산 주차장
울주군 「상북면지」에서 등억리의 유래를 보면등억(登億) : 등억의 지명유래에 관하여는 두가지 설이 있다.
첫째, 등억은 <등어리>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등(登)”은 높다 내지 오르다라는 뜻을 가졌으며,
<어리>는 <밝>이 음전(音轉)한 것으로 본다면 높고 광명한(밝은)마을이 된다.
둘째, “등어귀(登口)”로 보는 것이다. 즉 억(億)은 어귀(於口)이고 어귀는 안(內)에
대응 하는 말로 드나드는 목(項)의 첫머리인 것이다. 또 어귀의 옛말은<입>이라고도 하였다.
이러한<입>은 옛 지명에<入>으로 쓴 용례가 있다. 이 <어귀>가
준말이 “억”이라 하니 등억의 “億”은 이 “억”의 음차이다.
그러므로 등억(登億)은 높은 곳(신불산이나 간월산 등)을 오르는 어귀(들머리) 또는
“岳“의 어귀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 된다. 오름(登)은 곧 악(岳)을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후자의 설이 더욱 타당성이 있고 합리적이라고 보여진다.
이곳에서 차량을 타고 천불동님이 맛있다고 추천한 청도의 추어탕집으로 향한다.
올때갈때 차량봉사를 해주시는 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등억에서 출발하여 24번 국도를 타고가다 김해~대구간 고속도로 밀양I.C를 접어
들었다가 잠시후에 청도I.C를 빠져나와 청도역전에 있는 추어탕집에 도착한다.
청도역전에 있는 추어탕거리 이곳의 추어탕집으로 들어가 추어탕을 시켰는데 흔히들
추어탕이라면 미꾸라지인데 이 집은 특이하게 민물 잡고기로 만든게 추어탕이란다.
한 그릇에 6,000원인데 먹을만하고 음식도 리필이 되어 좋긴한데
자리에 앉자마자 음식이 나오는 바람에 조금은 성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추어탕에다가 막걸리 2통을 마시고 6시경에 서울로 출발하여 밤11시에 집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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