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3년 10월 18일~19일
☞ 산행날씨: 흐린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32.5km /14시간 소요
☞ 참석인원: 쑥맥, 온누리, 등산조아님과 함께
☞ 산행코스: 석골사-사자봉 갈림길-헬기장-억산-깨진바위-팔풍재-범봉분맥갈림길
범봉-딱밭재-927m봉-상운암갈림길-운문산-아랫재-백운산 갈림길-1080m봉
1092m봉-1208m봉-헬기장-가지산-중봉-매점-석남고개-석남터널 위-813.2m봉
배내고개 갈림길-능동산-쇠점골약수터-능동2봉-헬기장-기상측정탑
얼음골케이블카장-샘물상회-얼음골삼거리-천황산-천황재-주암계곡쉼터
☞ 소 재 지: 경북 청도군 금천면, 운문면 / 경남 밀양시 산내면 /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지난주 친구아들 결혼식 때문에 가지못한 백두대간 땜방을 가려고 삼척가는 버스표를 예매해놨는데
4년전 낙동정맥을 같이한 동료산꾼들이 영남알프스 비박을 간다기에 대간땜방을 잠시 미루고
오랫만에 텐트, 침낭, 매트등을 챙겨서 금욜 저녁에 1무1박3일 일정으로 영남 알프스로 간다.
분당 야탑역에서 일행과 만나 승합차에 올라 들머리인 밀양 석골사 초입에 도착하니
산이라 그런지 상당히 춥게만 느껴진다. 장비를 점검한 다음에 석골사쪽으로 향한다
영남알프스 종주지도
영남알프스 전체지도
영남 알프스는 영남 동부지역에 위치한 해발 1,000m 이상의 산악군을 유럽의
알프스 산맥에 빗대어 이르는 말로서 고헌산(1,032m), 가지산(1,240m), 능동산(983m)
운문산(1,188m) 천황산(1,189m), 재약산(1,108m), 영축산(1,059m) 신불산(1,208m)
간월산(1,083m) 등으로 그 중에서 가장 높은 가지산의 이름을 따서 가지산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낙동 정맥의 남쪽 끝자락인 경북 경주와 청도, 울산광역시, 경남 밀양과
양산에 걸쳐서 5개 시.군에 걸쳐있는 山群이다.
영축산에 있는 불보종찰 통도사를 비롯하여, 가지산에 있는 석남사와 운문산 아래에
있는 운문사 등등 이곳이 불교의 성지라 할 만큼 골짜기 곳곳에 사찰들이 많다.
이곳을 영남 알프스라고 부르게 된 연유는 일제시대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자국에 있는
북 알프스를 닮았다고 해서 불렀다는 설과, 1971~72년에 일본의 북알프스를 등반한
부산의 원로 산악인인 성산씨와 곽수웅씨가처음 불렀다는 설도 있고, 영남산악연맹
회장을 역임하신 김동인 회장이 1978년에 처음 언급하였다는 설도 있다.
알프스(Alps)는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걸쳐있는 산군으로서
평균 2,500m이며 최고봉인 몽블랑(4,807m)은 이다
Alp, Alb라는 겔트어는 산이란 의미이며 빙설로 뒤덮인 희고 높은 산이라는 의미이다.
2차 포에니 전쟁때에 한니발 장군이 넘고 1786년 몽블랑을 정복한 것이
근대 산행의 효시라고 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영남 알프스 1일차 식수 구할 수 있는곳
○ 석골사 음수대
○ 석골사 출발후 운문산 조금아래 상운암에 들러 물 보충 ○ 운문산 넘어 아랫재에서 왼쪽(심심이골방향) 약 3-4분 내려가면 샘
○ 가지산 정상 : 대피소
○ 중봉 아래 : 석남재 휴게소
○ 능동산에서 천왕산으로 약간 가면 쇄점골 약수터
○ 얼음골 케이블카 탑승장
○ 사자평 샘물상회 : 천왕산 조금 못미쳐 있음
○ 재약산 아래 주암계곡 쉼터 휴게소
석골사 초입(03:00)
우리를 태운 차량은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청원~상주간 고속도로 화서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난 너무 피곤하여 차에서 계속잔다. 다시 차는 경부고속도로를 거쳐서 대구~김해로
연결되는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밀양I.C를 빠져나와 석골사로 접어드는데 좁은 길옆에는
빨간사과가 엄청나게 많이 달려있다. 잠시후 석골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날씨는 영상 4도밖에 되지 않아 상당히 춥다.
오늘 처음뵌 천불동님이 이곳까지 태워주고 자기는 운문령으로 향하는데 석골사로
향하는데 좌측에 엄청나게 큰 층층대 바위가 있고 물이 흐르는데 이곳을 석골폭포라고 부른단다.
밀양 석골사(石骨寺)
석골사는 밀양시 산내면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통도사의 말사로
창건 당시의 자세한 기록이 전하지 않고, 또 이후의 역사도 대부분 공백으로 남아 있다.
경내에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작은 석탑과 부도의 기단석이 있어 고려시대 법등의
흔적을 전해 줄 뿐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임진왜란 때 삼랑진 작원관 전투에서
패퇴한 밀양부서 박진과 의병을 모집한 손기양등이 석골사에서 왜적과의 항전을 치렀다.
당시 절은 많은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 짐작되지만, 여전히 법등은 계속되었다
신라 진흥왕 12년(560년)에 비허(備虛) 선사가 창건하였다고 하고
신라 혜공왕 9년(773년)에 법조(法照)선사가 창건했다고도 한다.
비허선사가 작은 암자를 짓고 보양(寶壤)과 서로 왕래하며 수도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므로 비허선사가 절을 창건하고 법조선사가 절을 중창한
인물로 추정된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주어
고려 건국후에는 부속암자가 9개나 거느릴 정도로 발전하였으며,
한때 석굴사(石窟寺) 또는 노전사(老殿寺)라고도 불렀다.
조선 선조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활약한 곳이었으며
조선 영조 11년(1753년) 함화선사(含花禪師)가 중창한 뒤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오다가 1950년 6.25동란때 소실되었고
지금의 가람은 1980년대에 새로 중창하였다고 한다
석골사를 좌측에 끼고 등로를 오르다가 석골사 경내로 들어선다.
이틀간 55km의 대장정의 무사산행을 기원하며 부처님께 예를 올린다.
조그만 절이라 그런지 새벽예불을 할 시간에 적막강산처럼 조용하고
그 대신 가람을 지키는 개짖는 소리만 요란하다.
하는 수 없이 극락전을 향해 저두삼배(低頭三拜)의 예를 올리고 가람을 빠져 나오니
같이 온 동료들은 어둠속에 멀찌감찌 사라져 버렸다.
석골사 극락전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전하는 바에 따르면 1735년(영조 11)에
함화(含花) 스님이 중창한 법당이 1950년까지 보전되어 왔으나 6·25 직전에
공비토벌이란 이유로 소각되었다고 한다. 이후 1962년에 신도들의 성금으로
재건되었으며, 법당이 퇴락하자 1999년 선운스님이 지금의 건물을 건립하였다
내부에는 불단의 중앙에 아미타삼존상과 후불탱을 봉안하고,
그 좌우에 지장보살상과 지장탱ㆍ신중탱을 봉안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아미타삼존상은 모두 옥돌로 만든 석불이다.
중앙에 아미타 수인(手印)을 한 본존불이 있으며, 좌·우에는 화불(化佛)과 정병(淨甁)을
보관(寶冠)에 새긴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해 있다.
삼존상 외에 단독으로 봉안된 지장보살상은 2001년에 금동으로 조성되었으며,
불화는 모두 근래에 조성하여 봉안한 것으로 아미타후불탱은 1999년,
지장탱은 1994년, 신중탱은 2000년에 각각 조성되었다고 한다
석골사 칠성각과 산신각
건물의 전면 2칸에는 칠성각과 산신각 편액을 걸고 있으며,
내부에는 2001년에 조성한 칠성탱ㆍ독성탱ㆍ산신탱을 봉안하고 있다.
또한 독성탱 앞에는 이들 불화들과 함께 조성된 목조나반존자상이 있다
상운암 갈림길(03:15)
원래 산행 공지에는 억산을 거쳐 운문산으로 가기로 했는데 같이온 쑥맥님이 맘이 변했는지
억산으로 가지않고 상운암쪽의 넓은 길로 가버린다. 왜 억산을 가지 않는냐고 하니
다음에 가면 된다고 하면서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난 억산을 가고 싶은데 거리 계산을 해보니 5km 정도의 차이가 나는데 어차피
천황재에서 비박을 할 것이라 생각해 동료 산꾼들과 헤어져 억산으로 향한다.
안부 갈림길(03:50)
상운암 갈림길에서 35분간을 계속해서 치고 오르니 추운 날씨에도 이마에 땀이 흐른다.
비박 장비인 텐트, 침낭, 매트, 버너, 코펠에다 다섯끼의 식량과 추위에 대비한 겨울옷을
합치니 베낭무게가 20km가 조금 넘는 무게라 상당히 힘이든다... 야심한 새벽에 나홀로 걸으니
좋아도 너무 좋다.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 걷다보니 안부 능선이 나온다.
능선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산꾼을 반기고 계사년 음력9월 보름달이 나무사이로 비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다시 힘들게 계속 고도를 높혀간다.
다시 치고 오르니 커다란 암릉 사이로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멋진 전망바위 위에
소나무 한그루가 도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보름달로 인하여 저멀리 운문산이
시원스럽게 보이고 그 아래 상운암에도 불이 켜져있다.
북암산 갈림봉(04:30)
구조목도 이정표와 같이 서있고...
헬기장(04:40)
억산(億山:954m:04:43)
경북 청도군 금천면과 경남 밀양시 산내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국가 공식 지형도는 ‘억산’이라 표기하고, 등산객들은 ‘범봉’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억산도 범봉도 아니다. 그 전래명칭은 ‘호거산’이다
억산이란 하늘과 땅 그리고 우주라는 의미의 억만건곤(億萬乾坤)에서 유래된것으로 전한다.
즉! 하늘과 땅사이의 수많은 명산 가운데 명산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할수있다.
정상에 서면수려한 경관과 계곡이 자리하고 있어며 좌측으로는 구만산 우측으로는 운문,가지산이 조망된다.
전설에 의하면 1000년을 기다리다 1년을 남겨두고 스님에게 정체가 드러나 용이되지 못한 이무기가
하늘로올라가면서 꼬리를 산봉우리를 내려쳤는데 두봉우리가 갈라지면서 하나는 가지산 하나는 억산이 되었다고 한다.
어둠속에서도 보름달에 비친 억산의 모습은 정말 감탄사가 나올만큼 멋지다.
일부 산꾼은 억산이 '억(화폐 단위)을 벌게 해 준다'며 새해에 표석을 붙잡고 부귀와
사업번창을 빌기도 한다고 하는 산이란다.
청도산악회가 세운 표시석은 정상 높이를 944m로 표기했다.
반면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2만 5천 분의 1 지도는 954m이다.
지리정보원의 지도는 억산을 동쪽으로 1.5㎞쯤 떨어진 범봉에 표시했다.
억산에서 바라본 음력 9월 보름달
억산 정상에서 물한모금을 마시며 주위를 조망하는데 야심한 밤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멋지다. 저 멀리 밀양시내 불빛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잠깐 쉬는 사이에 추위가 엄습해와서 우측으로 내려서니 데크목 계단이 나오고
좌측에 엄청나게 큰 암릉군이 나오는데 지도상에 표기된 ‘깨진바위’이다.
카메라 앵글에 담고 싶지만 너무 어두워 똑딱이의 한계로 담지 못하고 그냥간다.
깨진바위가 풍수학적으로는 이곳이 옥녀가 음부를 드러내고 엎드려 있는 곳이라 한다.
청도 쪽에서나 밀양 어느 쪽에서 바라보아도 이 곳은 마치 여인의 갈라진 음부 형상을 하고 있다.
맞상대가 되는 남근석에 해당되는 것은 호거대와 범봉이라 이곳 사람들은 주장한다
깨진바위의 유래
전설에 따르면 억산 북릉 자락에 있는 대비사에서 주지 스님과 상좌가 수양했다.
상좌는 밤마다 뭣에 홀린 듯 밖으로 나갔고, 이를 이상해 여긴 주지 스님이 뒤를 밟았다.
상좌가 대비사 앞에서 옷을 벗고 못으로 뛰어들자 이내 몸이 이무기로 변했다.
놀란 주지 스님이 "거기서 무얼하느냐?"라고 호통 치자,
상좌는 "1년만 있으면 천 년을 채워 용이 되는데…"라며 억산으로 울면서 도망쳤다.
이때 이무기가 꼬리로 산봉우리를 내리치는 바람에 꼭대기가 두 갈래로 나뉘었다고 한다.
팔풍재(05:05)
청도 금천면 사람들이 밀양 산내면 송백리 팔풍 장에 갈 때 넘었던 고개였다.
청도 사람들은 '억산 아랫재'로 부른다.
여기서 대비사, 운문산, 상운암 계곡으로 길이 갈린다.
지금도 5일장이 서고, 한때는 극장까지 있었던 대처다.
그러나 재 북쪽 박곡리나 남쪽 석골마을 어디서도 그걸 ‘팔풍재’라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양쪽 공히 ‘억산재’ ‘억산고개’라 했다
억산재는 특별한 경우에나 넘어 다닌 고개라고 했다.
밀양 쪽에서 ‘대비재’라고 부르는 경우는 있다고 했다.
팔풍재 이정표
팔풍재를 지나면서 안부 능선을 걷는다. 그리 험하지 않는길을 아무런
생각도 없이 걷는데 이런 시간이 너무 좋다... 나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어서.
호거대 능선 갈림길(05:18)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작은범봉이 나오고 우측 옆사면을 치고 오르는데
꽤나 땀을 쏟아야만 하는 경사도인데 다시 8분정도 오르니 길은 만난다.
작은범봉 갈림길(05:26)
작은범봉 갈림길에서 범봉으로 향하는데 숲이 우거져서 그런지 상당히 어둡다
어둠속에 몇개의 잔봉을 오르락 내리락을 계속하는데 경고문이 보이고, 난 이곳
운문산 일대가 국립공원인 줄은 처음 알았다... 이곳에서 국공파를 만날줄이야?
쑥 영감 버전으로 표현하면 정말 짜증나네...
범봉(962m:05:40)
경북 청도군 운문면과 경남 밀양시 산내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범봉의 이름도 호랑이(虎)에서 따온 듯하다. 조금전 지나온 작은 범봉도 나오는데
작은 범봉에서 가까운 장군봉을 한때 호거대라고 불렸는데 '호거(虎踞)'는 호랑이가
무릎을 구부려 웅크리고 앉아있는 형국을 말하며 범봉 좌측 아래에 있는 운문사 입구
석주와 현판에 '호거산(虎踞山) 운문사'라고 적혔는데 이 봉우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선생도 범봉을 중심으로 운문사를 둘러싼 산릉을 호거산으로 표시했다
가장 높은 봉우리지만 조망은 숲에 가렸고 정상석도 허술하다
범봉 정상의 이정표
범봉에서 10시 방향으로 어둠속에 내려서는데 아직도 숲속이라 어둠이 걷히지 않는다.
다시 내리막길을 20분정도 내려서니 딱밭재라는 특이한 지명을 만난다.
딱밭재(楮田峴:820m:06:00)
경북 청도군 운문면과 경남 밀양시 산내면으로 연결되는 고개로이정표에 ← 운문사 4.5km, 석골사 2.5km → 라는 표기가 있다.
‘딱밭’은 닥나무가 많은 곳이다. 한자로는 ‘楮田’(저전)이라 표기된다. ‘삼밭’과 더불어 전국 곳곳서 지명으로 쓰인다.
닥나무는 한지, 삼은 삼베 원료다. 한데 그 재의 이름을 두고도 혼란이 생겨 있다. ‘딱발재’라는 명칭이 뒤섞인 것이다.
“재가 딱 버티고 서서 행인의 발길을 묶는다고 해서 딱발재라 한다”는 장난 같은 설명이 청도 ‘마을지명유래지’에 실려 있다.
그러나 재 남쪽 밀양 석골마을이나 북편 청도 신원리·박곡리에서는 모두 ‘딱밭재’라 했다.
남쪽 넓은 계곡에 ‘딱밭’이라 부르는 땅이 있다는 얘기다. 닥나무가 없는 지금도 여전히 ‘안딱밭’ ‘바깥딱밭’으로
세분해 부르기까지 한다고 했다.
딱밭재에서 다시 힘든 오르막을 치고 올라선다
조금씩 주위의 사물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자꾸만 베낭의 무게가 무거워짐을 느낀다.
옳은말씀이죠
힘든 오르막을 오르는데 운문사 가는 또다른곳이 나온다.
새벽에 만난 구절초
날이 밝으면서 멋진 소나무가 외로이 걷는 산꾼을 반긴다
새벽에 나홀로 걸었던 능선이 그려진다.
우측으로는 밀양시 산내면이 한 눈에 보인다.
청도쪽 운문사 주변의 산그리메
잠시후에 가야할 운문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운문산 아래 고즈늑히 자리잡은 상운암
1735년(조선 영조 11)에 함화당(含花堂) 의청(儀淸) 스님이
석굴사를 중건할 때 상운암(上雲庵)도 함께 중수했다고 한다.
운문산 정상 서쪽의 산을 함화산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연유다.
구름위의 암자라 하여 상운암라 하였다하며 상운암은 또한 함화암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다시 능선을 올라서니 칼날 능선에다 암릉구간이 계속된다.
아래로 내려다보니 운문사가 아련히 보이기 시작한다.
연이어 나타나는 암릉구간
아래로 쳐다보니 오금이 떨릴정도로 직벽이다.
등로에서 바라본 청도 운문사의 아련한 모습
운문사(雲門寺)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인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21년(560) 신승이 북대암 옆 금수동에 암자를 만들어 3 년간 수도한 끝에 득도하여
7년간 동쪽에 가슬갑사, 서쪽에 대비갑사, 남쪽에 천문갑사, 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하고 진평왕 30년(608) 원광국사가 중창한 후 보양이 중창하면서
오갑사로 부르다 943년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위해 도왔던 보양의 공에 보답하기위해
운문선사라 사액하고 전지 50결을 하사하면서 오갑사는 중 천문갑사를 운문사라 불렀다
고려 숙종 10년(1105) 원응국사가 중창하면서 전국 제2의 선찰로 자리 잡고
화랑도인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오계를 내려 화랑정신의 발원지가 된 후 임진왜란 당시
일부 건물이 소실되고 숙종 16년(1960) 설송대사가 중창을 하였다.
그 후 중창은 1835년 운악대사를 거쳐 1912년 긍파대사, 1913년 고전선사를 이어
지금의 모습은 1977년 명성스님이 대웅보전과 범종루 및 각 전각을 신축 중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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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는 비구승이 있는 곳으로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되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된 후 많은 수도승을 배출하고 있다. 1277년 일연선사가 운문사 주
지로 있을 당시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운문사 대웅보전
운문사 비로전
운문사쪽 위에는 우리나라 사찰중에 기도발이 잘받는 사리암이 있다.
사리암(邪離庵)
경북 청도군 운문산 내에 있는 아담한 사찰로서 영남지방에서 많은 불교신도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고려초에 보량국사가 930년에 창건하였고 1845년(조선 헌종 11년)
에 정암당 효원대사가 중창하였다.
운문사 사리암은 나반존자를 모시는 기도처로서 기도발 잘받는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도발이 잘받는 5대 기도성지
* 남해 보리암
* 팔공산 갓바위
* 강화 보문사
* 양양 낙산사의 홍련암
* 청도 운문사 사리암
이곳은 특히 ‘홀로 깨친 이’라는 나반존자(那畔尊者) 가도처로 널리 알려졌는데
나반존자는 부처님이 입멸 후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동안
중생을 제도하려는 원력을 세우고 천태산 위에서 홀로 선정을 닦았다고 한다.
나반존자는 법당의 바깥쪽 높은 계단위에 있는 천태각에 봉안 되었다.
천태각(天台閣) 밑에 있는 사리굴은 운문산 4굴의 하나로서 이곳에 머무는
사람의 수만큼 쌀이 나왔다고 한다. 어느날 더많은 쌀을 나오게 하려고
구멍을 넓히자 그 뒤부터는 쌀대신 물이 나왔다고 한다.
청도쪽의 시원한 조망을 바라보면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부드러운 산죽길이 나오고...
능선에서 바라본 독수리 바위
상운암 갈림길(07:00)
상운암 갈림길을 지나니 헬기장이 나오고 잠시후에 운문산에 오른다.
산 정상에는 석골사에서 상운암쪽으로 올라온 등산객을 만난다.
운문산(雲門山 1,188m:07:10)
밀양시 산내면과 청도군 운문의 경계에 솟아 있는 산으로 운문산은 영남알프스에서 가지산(迦智山 1,240m)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이라는 점 외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기암과 암릉, 계곡 등 비경을 품고 있는 명산이다.
특히 원시림이 우거진 상운암계곡 딱밭골, 천문지골 등 여러 개의 계곡과 아름다운 폭포 등, 비경을 품고 있다.
사방 거칠 것 없는 정상부의 조망은 영남알프스 산군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히기도 한다.
운문산은 예로부터 호거산이라 부르며 명산으로서 조건을 모두 갖추어진 산이다.
천문지골, 심심이골, 복숭아골, 상운암 계곡등 깊은 골짜기를 품고 대 사찰 운문사와 천상에 걸린 상운안 및
부속 암자를 두고 있고 동의 보감의 허준이 반위에 걸린 스승의 시신을 해부 한곳이 운문산의 얼음굴이라는 설이 전해 온다.
심산 유곡의 깊은 골짜기에는 약초와 나물이 천지이고 기암과 산세가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운문산이라는 이름은 '운문사'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불가에서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공부하는 수도승에 비유해 '백운(白雲·흰 구름)'이라 부르고,
어느 절이나 암자에 머무르며 수도하는 승려를 '청산(靑山)'에 비유했다고 한다. 그래서
운문사는 수도하는 승려들이 불현듯 왔다가 소리 없이 가기도 하는 '구도자의 문'과 같은
절이라는 의미도 내포돼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운문산은 단순히 '구름의 문'이라는
의미 이상의 '그 무엇'을 담고 있다고 할 만하다.
운문산 정상에서
갑자기 건너편 가지산이 먹구름에 휩싸이면서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일기예보만 믿고 베낭무게를 줄이기 위해 우의를 가지오지 않아 불안하다.
가야할 천황산도 먹구름에 휩싸이고..
운문산 정상에서 내려와 서둘러 가지산을 향하는데 예전에 세운 표시석이 있고 급경사로 내려선다.
이제 가지산 정상은 이제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고도를 낮추니 가지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가 힘든 산꾼을 격려하고...
데크목과 나무계단을 걷다가 다시 자갈길... 한없이 고도를 낮춘다.
건너편에는 백운산 그너머로는 케이블카장이 설치되어 있는 1058봉도 보인다
계속해서 고도를 낮춘다. 옆사면을 걸어내려가는 멋진 암릉도 나오고
그 후에도 한참을 내려가니 아랫재가 나타나면서 이곳은 등산객들이
많이 모여서 아침식사를 한다. 대체적으로 일반 등산객들은 아랫재에서
올라와 가지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아랫재(723m:07:58)
경북 청도군 운문면과 경남 밀양시 산내면 삼양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운문산과 가지산,백운산및 남명과 운문사로 통하는,심심계곡 저지대로 연결되는
산꾼들에겐 중요한 고개로 마전부락 아랫쪽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라 한다.
이 재가 운문령보다 100여m나 더 높다는 게 실감나지 않을 정도다.
북으로 내려서면 운문사계곡 안 ‘아랫재골’(심심이골)이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삼양리 상양마을에 금방 닿는다.
이 재를 밀양 쪽에선 그냥 ‘아랫재’라 부른다. 하지만 청도 쪽에선 으레 ‘시례아랫재’라 한다.
‘시례’(詩禮)는 아랫재 남쪽의 밀양 얼음골 일대 여섯 마을 통칭이다.
왜 아랫재라 했는지를 두고도 설이 엇갈린다. 천화령(석남고개)보다 낮아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아랫재를 분계선으로 해서 동편은 가지산, 서편은 운문산으로 나뉜다고 했었다.
하지만 재에서는 운문산 정상이 훨씬 가깝다. 평면거리가 1.3㎞밖에
안 되고, 역시 굴곡 없는 단순 오르막이기도 하다
아랫재에 있는 환경감시초소
이곳까지 오면서 5시간동안 동료 산꾼들을 만나기 위해서 두유하나에 소세지 2개, 초코렛 1개로
행동식으로 먹으면서 따라 붙으려 했지만 아시다시피 500m만 차이나도 따라가기 힘드는데
5km의 갭은 거의 불가능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무모하게 이곳까지 와서 온누리님에게 전화를
하니 아랫재를 떠난지 20분정도 됐으니 천천히 갈테니 빨리오라고 한다.
20분이라... 동료산꾼들이 쉬지 않으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아침도 먹지않고
무모하리만큼 가지산으로 향하는데 아랫재에서 가지산은 고도를 500이상 높혀야하는 오르막이다.
이제 체력저하로 인해 자꾸만 발걸음이 느려지고 베낭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거기다가 서울에서 버스 3대가 왔다는 안내 산악회 등산객에다가 가지산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도 만만찮다... 허기가 져서 도저히 못걷겠다
베낭을 벗고 가지고 온 찹쌀모찌에다가 쥬스하나로 허기를 면하고 다시 치고 오른다.
등로옆에 깊은 골을 만나고 다시 능선을 치고 오르는데 차가운 바람이 불고
산봉우리는 모두가 짙은 먹구름이 가득하다. 거기다가 등산객들 땜에 시간을 지체된다.
기맥, 지맥길에 나홀로 산행에 익숙한 범여는 상당히 불편하기 그지없다.
백운산 갈림길(08:55)
등로 아래에 백운산이 아련히 보인다.
안부 능선을 걷는데 계속해서 암릉구간이 이어지는데 길은
편하나 등산객들이 많아서 시간이 자꾸만 지체된다
가지산 아래 헬기장(09:55)
헬기장이 지나니 짙은 안개속에 산죽길을 만나고...
가지산 대피소 앞의 이정표를 만난다.
가지산 대피소(09:58)
동료산꾼들을 따라가기는 애시당초 틀렸고 거기다가 가져온 라면을 끓여 먹으려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것 같아 대피소에서 매식을 한다.
낙동정맥길과 가지산 산행 때 만난 쥔장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라면 하나에 막걸리 반병을 먹고나니 이제 사물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베낭을 메고 가지산 정상으로 향한다.
가지산(加智山:1,240m:10:25)
울산 광역시 울주군 상북면과 경북 청도군 운문면과 경남 밀양시 산내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해발1,000m 이상의 고산으로 이어져 영남 알프스의 산 중에서 가장높다.
석남산(石南山)이라고 부르며, 봄에 진달래, 여름에 녹음, 가을 단풍, 겨울 설경을
연출하며 울산 12경중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석남사와, 쌀바위, 귀바위 등 기암괴석과
억새밭이 어우러져 산꾼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
가지산은 울산의 석남사쪽보다는 청도의 운문사쪽이 더 깊다. 청도쪽에서 유서깊은
비구니 사찰인 운문사를 비롯해 사리암, 학소대, 삼계리 계곡 등이 있다.
기반암은 화강암이며, 쌀바위에서 산 위를 잇는 능선은 기암괴봉과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을 제외한 전사면이 비교적 완경사이며, 남·북서 사면에서는 산내천·무적천이 각각 발원한다.
가지산의 원래 이름은 석남산(石南山)라 하다가 그 기슭에 있는
석남사(石南寺)가 중건되면서 가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밖에도 이 산이 화산의 분화구 지대라 해서 천화산(天火山)이라 하였고,
이 산에 실혜촌 또는 부요(富饒)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실혜산(實惠山),
돌이 어지럽게 많다 해서 석면산(石眠山)이라고도 하였다.
가지산의 옛 이름은 ‘까치산’이었다.
그래서 이 산을 한자어로는 작갑산(鵲岬山)이라 한다.
이 ‘작갑산(鵲岬山)’이 가지산(加智山)이라는 지명으로
바뀌게 된 것은 이두식 표기에서 왔다는 것이다.
이두식 풀이로는 ’가(加)‘는 까치의 ‘까‘, ’지(智)‘는 ’치‘의 음차(音借)에서 왔다는 것이다.
이두(吏讀)란 신라와 고려 시대에 한자의 음(音)과 뜻(訓)을 따서우리말의 ‘소리’를 적던 문자이기에 위와 같은 설이 가능한 것이다.
가지산(加智山)의 옛 이름이 ‘가치메’인 것은 까치의 옛말이 「가치」였기 때문이다.
-‘해동고승전’, ‘삼국유사’ 등 참고
가지산 정상 1등 삼각점(△ 언양11 / 1998복구)
운문지맥 분기점
가지산 정상 이정표
영남알프스 최고봉인 가지산 정상에서
가지산 정상석 뒷면
배도 부르겠다 가지산의 조망을 두루두루 구경하고 가지산 아래로 내려서니 어디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바라보니 아침에 같이 출발했던 온누리, 쑥맥, 등산조아님이
쉬고 있는게 아닌가... 어찌나 반가웠던지...
중봉(1,168m:10:50)
이곳에서부터 가지산으로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이 눈에 뛴다.
그런데 산행을 하다보면 경상도 지역의 산에서는 음악을 크게 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만나는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당히 거슬린다... 좀 자제해줬으면 한다.
데크목 계단을 내려서니..
.이곳도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가지산 석남재 대피소(11:10)
가지산 정상에는 짙은 구름으로 한치 앞도 잘보이지 않더니만 대피소로 내려오니 잘보인다.
가지산 품에 푹싸인 석남사의 모습
석남사(石南寺)란 이름은 가지산(迦智山)을 석면산(石眼山)이라고 하는데
이 산의 남쪽에 있다해서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헌덕왕(신라제41대:憲德王:809-826)에 한국에 최초로 禪을 도입한 도의국사 (道義國師)가
일찌기 영산 명지를 찾다가 이 곳 가지산의 법운지를 발견하고 터를 정한 뒤, 신라의 호국을
염원기도하기 위해 창건한 이 사찰은 울산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에 위치한 절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석남사는 영남인들에게는 사찰보다 유원지로 더 많이 알려져 있을 정도로 계곡 등 주변 경관이 수려하다.
가지산의 남쪽에 위치해 석남사로 불렸다는 이 사찰은
임진왜란때 모두 소실되는 등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중건 및 증축됐다.
석남사는 지난 1957년 비구니 인홍 스님이 주지로 오면서 침계루, 종각, 심검당, 무진료, 상락료 등을
신축해 현재는 건물동수가 23동에 이르는 국내·외 가장 큰 규모의
비구니 종립 특별 선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청도 운문사, 수덕사 견성암(見成庵), 화성 봉녕사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 비구니 도량이다
울주군 상북면의 모습
상북면은 울주군 12개 읍, 면 중의 하나로 상북면 길천리 지화(知火)는
변진 24국중의 하나인 기저국(己抵國)이 있었던 곳이라는 학설이 있다.
그 후 신라 초 이 땅에 거지화현(居知火縣)을 두어 지화에 치소를 두었다가,
경덕왕 16년에 언양읍 쪽으로 옮겨갔다.
1899년(광무3)에 나온 <언양읍지>에는 하북면과 상남면으로 나누어 하북면은
지내(池內),능입(陵入),산전(山前),수피(禾皮),석남(石南)의 5개 리를 관할하였고,
상남면은 양등(楊等),거리동(巨里洞),길천(吉川),명촌(鳴村),등억(登億),천전(川前),이천(梨川)의
7개 리를 관할한 것으로 되어있다.
1928년 1월 28일 경상남도령 제1호에 따라 동년 4월 1일부터
하북면과 상남면을 합쳐 상북면(上北面)이라 하였다.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두서면의 소호리(蘇湖里)를 편입하였다.
현재 13개 법정동리와 21개 행정마을을 관할하고 있다.
이 지역이 경북 경주시 내남면에 접해 있으며, 동학을 창시한 수운(水雲) 최재우(崔齋愚)선생의
천도교가 맨 먼저 포교되어 정착하였고, 그 천도교인들이 언양 고을의
기미년 3.1운동을 주도하였다는 것이다.
석남사 주차장 가는 갈림길(11:45)
영남 알프스 울주 7산중의 하나인 고헌산도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다.
전망대 바위에서
전망암에서 바라본 69번 도로
예전에 석남사 앞을 지나 배내고개를 넘어 양산 원동면으로 넘어가는 도로로
배내고개와 배내골을 지나는 도로였는데 지금은 나란히 가는 24번 국도에
모든걸 다 빼앗기고(?) 서서히 잊혀진 도로가 되어가고 있다.
석남고개(11:50)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에서 밀양시 산내면 얼음골로 넘어가는 길이다.
조선시대에 암행어사 박문수가 울산에 민정을 살피고 밀양으로 넘어가면서
이 곳 山水에 감탄하며시를 읊어면서 넘었다는 고개라고도 한다.
지나온 중봉의 모습
석남터널 위(11:57)
고맙습니다
민망한 소나무(12:30)
능동산으로 가는 길은 여태껏 걸어온 길과는 달리 참으로 편안하다.
한참을 걸어가니 등로에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나타나는데 마치
여인이 사타구니를 벌리고 있는듯한 느낌을 주는듯한 민망한 모습이다.
마침 내 뒤에 40대 후반의 부부 등산객이 따라오기에 여자분은 보지말고
남자분만 보라고 하니... 뭐가 그리 궁금한 지 여인이 먼저 쫒아가서 본다.
무슨 느낌이 드느냐고 묻자... 아무말도 않고 씨익 웃기만 한다 ㅋㅋㅋ
813.2m봉(12:40)
813.2m봉 삼각점(△언양450 / 1982 재설)
이곳은 2개의 삼각점이 있다.
능선에서 바라본 백운산의 모습
배내고개 갈림길(13:10)
능동산(陵洞山:981m:13:15)
울주군 상북면과 밀양시 산내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영남 알프스의
山群중에 하나이며 가지산과 천황산, 재약산의 유명세에 가려서 그 이름을 잊어버렸다.
산 정상에는 정상석과 돌탑 2개, 이정표, 3등 삼각점이 있으며 맞은편의 배내봉이
보이는 곳이건만 오늘은 짙은 운무로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능동산은 봄이면 진달래꽃이 멋드러지게 피어 있는 산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영남 알프스의 요충지인 능동산은 북쪽으로는 가지산, 문복산, 상운산 북서쪽으로는
운문산, 억산, 구만산, 북동쪽으로는 고헌산이 있고, 남서쪽으로는 태극모양의 천황산과
재약산, 코끼리봉, 향로산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가지산에서 낙동정맥을 이어받아
간월산,신불산, 영축산과 시살등, 오룡산 등을 거쳐서 그 맥을 전해주는 분수령이다.
특히 이 산에서 천황산과 배내봉 방향의 능선이 갈라지고 있으므로 영남 알프스 종주길에
반드시 거치게 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고, 영남 알프스 중앙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정상에 오르면 전망을 두루두루 관망할 수 있다.
능동산 정상 3등 삼각점(△ 언양312 / 1982 재설)
영남알프스의 지맥이 능동산에서 둘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천황산(사자봉) 재약산(수미봉)으로 이어지는
서부능선과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의 동부능선으로 갈라진다. 오룡산 정상에 올라서면 전망이 빼어나
영남알프스의 주봉을 비롯한 맞은편의 대운산, 정족산, 원효산, 천성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는
동해바다 와 천황산(사자봉), 재약산 (수미봉) 부산, 양산의 지역의 산의 형태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능동산 정상에서 약간 내려와 등로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가져온 가스오 우동에다가 햇반으로 점심을 먹고 겯틀여 쑥 영감님과 함께
소주 한병을 간단하게 비우고 다시 베낭을 메고 천황산으로 향한다.
쇠점골 약수터(14:10)
능동산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약수터가 나오는데 쇠점골 약수터다
쇠점골이란 이름은 석남재를 오르내리던 말들의 말발굽을 갈아주고
술도 팔던 주막 ‘쇠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옛날 밀양 산내면쪽 사람들이 지금의 석남터널이 뚫리기전에 언양장을
보러 다니던 옛길이었으며 암행어사 박 문수가 넘었다고 전해지는 길이다.
쇠점골 물길따라 내려가면 애기호박소, 와폭, 형제폭포, 오천평반석, 호박소 등
크고 작은 소(沼)와 담(潭)이 심심찮게 있으며 오랫 세월에 걸쳐 계곡은 천상의
석공들이 빚은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영남 알프스 종주에 가장 큰 장점은 지리산처럼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이 많아서 좋은것 같다.
저녁에 비박하면서 식사할 물을 가득 채운다음 임도로 내려서지 않고 우측 능선을 타고 오르다가 임도로 내려선다.
능선에서 임도로 내려서서 10분정도 걸어가다가 다시 우측 능선으로 오른다.
다시 능선으로 접어든다.
능선에 올라서니 멋있는 억새들이 보이지만
좌측 건너 간월산과 신불산은 짙은 운무로 오리무중이다.
능동2봉 (968m:14:35)
짙은 운무로 오리무중인 간월산과 신불산의 모습
임도로 내려섰다가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니 미역줄기 나무가 태클을 건다.
곱디고운 단풍나무도 만나고...
기상측정탑(15:15)
기상측정탑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거친 잡풀을 헤치고 나가니...
다시 임도가 나오고...
다시 임도로 올라서서 등로에 들어서 조금을 더가니 케이블카장이 나온다.
등로에서 벗어나 케이블카장으로 오르는데 입구를 막아놔서 개구멍으로 통과한다
얼음골 케이블카장(15:25)
밀양시 산내면 얼음골 아래에서 1058봉 바로 아래인 이곳까지 몇년전 케이블카가 설치되었다.
이곳 광장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쑥영감님과 오뎅에다 막걸리 한병을 사서 나눠 마시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천황산으로 향하는데 오후라 그런지 추워지기 시작한다.
케이블카장 광장에서 내려다본 밀양시 산내면의 모습
아침에 지나온 운문산과 백운산이 보이고...
백운산 아래에 하얗게 보이는 암릉이 밀양 얼음골의 수호신인 백호바위라는데
흰 바위의 모습이 마치 호랑이의 형상처럼 보인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란다.
어둠속에 지나온 억산도 보이고...
케이블카장에서 1058m봉가는 길은 데크목으로 되어있다.
1058m봉 삼각점
데크목 사이로 내려서서 샘물산장으로 향한다
가야할 천황산은 짙은 박무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샘물산장(15:55)
샘물산장 이정표
샘물산장에서 천황산으로 향한는데 조금전에 먹었던 막걸리 탓인지 배가 아파온다.
그래서 급하게 볼일을 보려고 등로에서 벗어나 볼일을 보고나니 동료들은 온데간데 없고...
얼음골 갈림길(16:10)
밀양에는 3대의 신비스러운 곳이 있다고 한다.
두드리면 종소리가 나는 만어사의 경석과 國難이 있을때 마다 땀이나는 표충비
그리고 여름에 얼음이 어는 얼음골이 있다.
얼음골은 천황산 북쪽 중턱 해발 600m 지점 계곡에 약3,000평쯤 되는
돌밭(石田)에 해마다 6월중순부터 바위틈에서 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더위가
심해질수록 얼음이 더욱 많아져 삼복더위가 한창이면 기이한 현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목재 계단을 딛고 천황산으로 향하는데 드센 바람과 추위가 엄습해와서 두꺼운 자켙을 꺼내 입는다.
신명마을 갈림길(16:22)
돌탑도 만나고...
천황산이 가까워 질수록 짙은 안개는 더 심해진다
천황산( (天皇山1,189m:16:35)
경남 밀양시 단장면과 산내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영남알프스의 중앙에 위치하여 산 정상에 서면 영남알프스의
거대한 산줄기와 사자평 억새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세가 아름다워 한반도의 영산, 또는 삼남의 금강산으로 불린다.
천황산의 주봉은 사자봉으로 정상에 있는 서쪽 바위 부분이 사자의 머리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사자봉 아래의 사자평에는 사자암이라고 하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신라 화랑들과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이끈 승병들이 훈련하던 곳으로 우리 민족의
씩씩한 기상이 넘치던 곳이다. 해발 700~800m의 고도에 펼쳐진 고산평원은 습기를 많이 머금은
지형적인 요인과오랜 벌목, 화전,방목 등 인위적인 요인이 겹쳐 국내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경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사자봉 아래 북쪽 산비탈에 있는 밀양 얼음골은 여름날 피서객들이
즐겨 찾으며, 3월에 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삼복더위가 지나 처서가 되면
바위 틈새의 냉기가 점차 줄어드는 신비한 곳이라고 한다.
천황산 정상 이정표
흔히들 천황산을 일제 강점기에 일본 천황을 위해 천왕산을 천황산으로
바꿨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곳 천황산은 아닌것 같다. 조선시대의 문헌에도
천황산이 나오는 걸로 봐서는 예부터 천황산(사자봉)으로 불린것 같다.
천황산 정상에는 어찌나 바람이 센지 몸을 가누기가 힘이들 정도이다.
그리고 저녁 무렵이라 그런지 급격하게 기온이 떨어져 서둘러 천황재로 향한다
천황재 내려가는 암릉구간에는 예전에 없었던 데크목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천황재로 내려오는 길목에 에전에 있었던 가건물과 천황재 대피소도
철거되고 없고 표충사가는 표지판 덩그러니 남아있다.
재약산 표충사 (表忠寺) - 수충루(酬忠樓)
표충사는 신라 무열왕 원년 (645)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이름을 "죽림사"(竹林寺)라 하였다가
"영정사" 로바뀌었고 신라와 고려에 걸처 보우국사, 일영선사, 등 많은고승들이 머물렀다,
특히 표충사는 임진왜란 당시에 승려로서 조국을 구하신 사명대사의 유적지로, 임진왜란때
의승대장인 서산, 사명, 기허, 등 3대사의 영정을 봉안한 표충서원을 사찰안에 둠으로서 "사명"
(寺名)이 "표충사" 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경내에는 국보,보물, 중요 민속자료 등 ,많은 문화유적이 있으며, 표충사계곡은 그 경관이 수려
하여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삼국으로 나누어진 민족을 한국가로 통합할 수 있다는 정신적 토대를
제공하고 병마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는 치유할 수 있는 약과 의술을 주고,
외적의 침입으로 위협받고 있는 국가에 대해서 외침을 막을 수 있는 호국정신을
심어주고,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수 인재들을 기르기 위해 교육한 영산 명찰이 있다.
표충사 대광전
표충사를 품고 있는 재약산(載藥山)이 바로 그 영산이며, 표충사가 명찰이다.
재약산은 신라시대때 삼국통일을 이루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화랑들이
호연지기를 연마했던 수련장이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께서 승병을
훈련시켜 호국정신을 계승한 호국불교의 본산이다.
또한 한국 최고의 명의 허준에게 스승인 유의태가 자신의 시신을 마지막으로
선물하며 더욱 깊은 의학의 세계로 이끌었던 곳도 바로 이곳이다.
표충사는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경내에 서원을 건립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여 경내에 유교의 상징인 사당과 서원이 있는 것이 바로 표충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재약산이라는 이름은 표충사 경내에 있는 영정약수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신라 흥덕왕 셋째왕자가 나병에 걸려 명약을 찾던 중 표충사의 영정약수로 치유하자 산
이름을 재약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정약수는 아직도 표충사를 참배하는 사람들에게
심신의 피로를 해소해주는 감로수로서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원효대사가 창건할 당시 표충사는 죽림사로 불렀으며, 흥덕왕때 황면선사가 재건하여
영정사로 부르다가 조선 헌종 때 청허 사명 기허 대사의 진영과 위패를
옮겨오면서 표충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사명대사의 공적을 기리는 표충비는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면 땀을 흘려 미리 알려주고
있다고 하며 갑오경장을 비롯 한일합방, 3.1운동, 8.15해방,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쿠데타 전에 땀을 흘려 어려움을 예고하였다고 한다.
천황재(16:50)
경남 밀양시 산내면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에 위치한 천황재는
천황산과 재약산 사이에 있으며 멀리서 보면 재약산과 천황산이 여인의
유두처럼 보인다. 천황재 주위로 125만평의 광활한 사자평전의 억새밭이 펼쳐져 있다.
오늘은 이곳에서 비박을 하려고 했으나 이곳 광장에는 먼저온 산꾼들 몇몇이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고 있으나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고 광장옆에 있던
대피소도 철거되고 없어서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주암계곡 간이매점으로 간다.
125만평의 광활한 사자평전의 억새밭
사자평은 산림청에서 지정한 100대 명산의 하나로 천황산과 재약산 사이에 펼쳐져 있다.
사자평의 넓이는 약 413만㎡, 즉 125만평의 넓은 평원에는 바람에 강한 억새가 가득하다.
해발 700~800m 고도에 펼쳐진 사자평은 독특한 경관을 보여준다.
사자평에는 조선시대 백자를 생산했던 유적이 사적 제 12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또한 사자평은 신라 화랑들이 무술을 연마 하였고,임진왜란때에는
사명대사가 승병을 훈련 시킨 곳으로도 유명하며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스키장을
만들기위해 빽빽한 수목을 배어내어 버렸기 때문에 억새밭이 되었다고 한다
오랜 벌목, 화전, 방목 등의 이유로 산정 부근이 거의 민둥산이다.
대신 습기가 많은 지형적인 요인으로 엄청난 규모의 억새가 자라났다.
사자평은 영남알프스를 이루는 9개 산 가운데 하나인
천황산의 주봉 사자봉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정상 서쪽에 사자머리를 닮은 바위가 있어 사자봉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샘물상회 방향으로 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져 주암계곡으로 내려가서
매점앞에 있는 데크목 광장에서 텐트를 설치한다.
주암계곡 매점앞 광장(17:00)
새벽 3시에 시작하여 14시간에 걸쳐 32.5km의 대장정을 끝내고 이곳 매점앞 광장에서
텐트를 치고 베낭을 정리한 다음에 동료산꾼들과 저녁밥을 지어먹고는 저녁 7시반에
침낭속으로 들어가 깊은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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