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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일반산행 ♣/梵如의 山行記

충남 홍성 오서산(烏棲山)

by 범여(梵如) 2013. 8. 16.

 

☞ 산행일자:  2013년 8월 15일

☞ 산행날씨: 맑음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0.8km / 5시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상담 주차장-안심사-정암사-문수골 갈림길-중담마을 갈림길-오서정-용못 갈림길

                   헬기장-쉰질바위 갈림길-성동마을 갈림길-공덕고개 갈림길-오서산(왕복)

소 재 지:  충남 홍성군 광천읍, 장곡면 / 청양군 청라면 / 보령시 청소면

 

광복절 아침에 아무런 목적도 없이 뜬금없이 자동차 가는대로 도착한 곳이 충남 홍성군 광천읍이다.
광천하면 생각나는게 새우젖 밖에 없는데 사실이 지난 젖갈을 상당히 싫어하는 편이라 관심이 없고,
김이 많이 난다는데 난 김도 그리 안 먹는다.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 중에 한 사람인 장사익 선생이
이 지역 출신이다.

 

발길 닿는대로 도착한 광천읍... 아침 9시경이라 배도 고프고 하여 광천역전 앞 허름한 식당에 도착하여
식사를 시키는데 곰팡이 냄새가 캐캐하여 비위가 상한다.나올까 생각하다 아무데서나 한숟갈 먹지하고
해장국을 시켰는데 나온 밥이 백반이다.이런 제기럴... 그러면서 주인 아줌마 왈 아침에는 백반이 좋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변명을 늘어 놓는데, 듣고 싶은 생각도 없고 음식도 입에 맞질않아 밥을 물말아 먹고 나와
인근 구멍가계에서 쥬스와 두유 하나를 사고 그옆 제과점에서 빵 2개를 산 다음에 오서산을 향해서
차량을 가지고 간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광천읍 담산리 상담마을

오서산 오름길은 여려곳이지만 광천에서 오르는 등산로 중에 가장 알려진 곳이

담산리 상담마을에서 정암사로 해서 올라가는 곳이 비교적 편한 코스라 이곳으로 올라간다.

이곳은 넓은 주차장에 차량이 서너대 밖에 없는데 그 중에 등산객 차량은 내 차 뿐이다

오서산 도로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오가면서 2.8km를 1시간 정도

걷는데 산으로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벌써 옷은 다 젖어 버리고 얼굴은 익는 느낌이다

콩밭 그물망에 매달린 방아개비

정암사 올라가는 도로에서 바라본 오서산의 모습

정암사 입구

정암사 아래에 도착하자 시원한 그늘에 의자가 있고 계곡물이 흐른다.

이곳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수건에 물을 적신 다음에 몸속에 넣고 정암사로 향한다

정암사 입구로 접어드니 엄청나게 높은 축대위에 요사채인듯한 건물을 만난다.

정암사 일주문 겸 범종각

청석(靑石)을 깐 계단을 올라가니

정암사(淨巖寺)의 범종루는 일주문과 사천왕문 역할도 동시에 한다.  

입구에서 사찰을 향해 합장 저두삼배(低頭三拜)의 예를 올리고 사찰 안으로 접어든다

정암사 (靜菴寺)극락존 삼존불

충남 홍성군 광천면 담산리 오서산북쪽 사면(斜面)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정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의 말사로 전통사찰 68호이다.

오서산 아래의 주차장에서 약 2.5㎞ 정도 산길을 오르면 정암사에 이르게 되는데,

전형적 산지 가람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소규모 도량이다

 

 본전인 극락전과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불탑. 정암사는 백제 성왕때 창건되었다고 하나 

그 근거를 찾기 어렵고,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결성현(結城縣) 편에 "정암사(正菴寺)는

오서산(烏栖山)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어림잡아 조선조 초기 이전부터 있었던 사찰로

짐작할 수 있는데,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 산신각, 적묵당, 심검당, 범종루 등이 있으나

거의가 근래에 신축되었거나 증축한 건물들이다.

절 마당에 들어서니 주지인듯한 스님이 신도분과 담소를 나누고 있어서 스님에 대한

예를 올린 다음에 법당에 들려 부처님께 예를 올린다.

정암사 산신각

정암사 마당에서 본 광천읍내와 홍성군의 모습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가시거리가 꽤나 멀리 보인다.

2년전에 걸었던 금북지맥 능선인 홍성 백월산과 용봉산과

그 너머  수덕사를 품고있는 예산 덕숭산도 보인다.

정암사 이곳 저곳을 둘러본 다음 사찰을 빠져나오니 해후소가 나오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이곳 정암사에서 시작되는 오서산 등로는 정말 기가 막히게 잘해놨다.

말 그대로 일반적인 산행하기는 더 없이 좋은 곳이지만 나처럼 목적산행을

위해 기맥, 지맥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재미없는곳 중이기도 한 곳이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시작되는 데크목 계단이 한없이 나오는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발바닥이 바늘로 찌르는듯이 아파오기 시작하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오늘이야 목적산행도 아니고 시간제약도 받지

않으니 편하긴 하다. 할 수없이 베낭을 벗고 신발과 양말까지 벗은 다음에

발끝에 침으로 피를 좀 뽑고 아스피린 50ml 2알을 먹고 다리를 맛사지

한 다음에  다시 산행을 시작하는데 느낌이 그리 좋지는 않다

데크목 계단 사이로 멋진 암릉도 보이고...

아차산 갈림길

데크목 계단을 올라서니  다시 안부 능선이 나오고 우측으로 아차산 가는 길이

나오는데 또다시 발바닥이 바늘로 찌르듯이 아파 오는데 미칠지경이다.

하는 수 없이 베낭을 내려놓고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휴식을 취한다.

10분정도 휴식을 취한후에 다시 멋진 암릉사이로 난 데크목 계단사이로 오르니

7부 능선에 전망대가 나오면서 내포문화의 중심지인 홍성땅과 천수만이 한 눈에 들어온다.

7부 능선 전망대에서 바라본  홍성땅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전망이 시작되는데 저 멀리 천수만에서 시작되어

안면도와 홍성, 보령을 에워싸고 있는 천수만이 공천 내륙 깊숙히 들어와 있다.

북쪽으로 눈을 돌리니 광천읍내 너머 홍성과 예산사이에 새로 이전한

충남 도청이 아련히 보이고 2년전 내가 걸었던 금북정맥 능선이 일월산과 홍동산

정맥 약간 떨어진 용봉산,  그리고 수덕사를 품고있는 덕숭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를 지나면서 앉은뱅이 소나무들이 즐비한  등로를 걷는데 안부

아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힘든 범여를 응원한다.

다시 베낭을 내려놓고 웃통을 벗은 다음에 휴식을 취한다.

오서산 등로는 억새로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지금은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는다.

등로에 구급약품 보관소까지 비치되어 있다.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나오고 조금을 더가니 문수골 갈림길이 나온다.

그런데 갑자기 푸드득하는 소리에 놀라 뒤돌아보니 까투리 새끼 2마리가 날아간다

이곳에서 우측 내리막길로 내려가면 문수골이 나오는데  문수골의 유래는

승당 동북쪽 오서산 중봉골짜기에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이 문수골이다. 

옛날에 문수대사란 고승이 이곳에 문수암이란 절을 지어 불도를

위하였다 해서 문수골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만장암이라고도 한다.

전망대 바위에 오르니 보령시 청소면이 한눈에 보이고 성연저수지(용못)가 한 눈에 들어온다.

용못의 유래는 단적골 동쪽에 성골 서북쪽에 맑은 못이 있는데 이 못을 용못이라고 부른다.

층암절벽 아래 맑고 깨끗한 물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풍경이 아름다운 곳인데, 옛날에는

 이 못 속에 용이 살아서 수도를 하여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남아있는 곳이다.

소나무 숲이 끝나면서 오서산 억새 군락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름모를 버섯도 만나고...

며느리밥풀꽃 전설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효성이 지극한 아들과 어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아들이 커서 한 처녀와 백년가약을 맺게 되었습니다.이 며느리는 아들보다도 더 효성이 지극했습니다.

 

시집 온지 얼마 안돼 신랑은 먼 산 너머 마을로 머슴살이를 떠나게 되어 집에는 착한 며느리와 시어머니만 살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떠난 후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학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며느리가 빨래터에 가서 빨래를 해 오면 그동안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하다 왔느냐고 다그치고,

깨끗이 빨아 온 빨래를 더럽다고 마당에다 내동댕이치고 발로 밟아 버리면서 며느리를 구박하였습니다.

그러나 착한 며느리는 한마디의 군소리도 하지 않고 시어머니가 호통을 치면 치는 대로 용서를 빌고

다시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저녁밥을 짓다가 밥이 다 되어

갈 무렵에 뜸이 잘 들었는지확인 하기 위해 솥뚜껑을 열고 밥알을 몇 개 입에 물어 씹어 보았습니다.

 

방에 있던 시어머니는 솥뚜껑 소리를 듣고, 어른이 먹기도 전에 먼저 밥을 먹느냐며 다짜고짜

며느리를 마구 때렸습니다.며느리는 밥알을 입에 문채 쓰러져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아들은 단숨에 달려와 통곡하고 색시를 불쌍히 여겨 마을 앞 솔밭이 우거진

길가에 고이 묻어 주었습니다.얼마 후, 이 며느리의 무덤가에는 하얀 밥알을 입에 물고 있는 듯한 꽃이 피었습니다

 

사람들은 착한 며느리가 밥알을 씹어 보다 죽었기 때문에 넋이 한이 되어 무덤가에 꽃으로 피어난 것이라 여겼습니다

꽃도 며느리의 입술처럼 붉은 데다 하얀 밥알을 물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으므로

이 때부터 이 꽃을 며느리밥풀꽃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데크목 계단에서 바라본 오서산 억새 군락지

이곳이 오서산  8부 능선쯤 되는 곳이다.  우측에 펼쳐진 보령시 청소면 성연리 일대가 일대 전경이

한 눈에들어오고 그 너머로 보령 시가지와 대천 앞바다가 보이고 용못이라 물리는 성연저수지가 뚜렸하다

산 위에서 내려다 보는 푸른 들녘은 우리네 마음까지도 풍요롭게 채워준다. 

그러나 이곳에서 바라본 오서산의 스카이 라인은 생각보다도 밋밋하고 각종 인공물을

너무도 많이 설치하여 보기가 좋질않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둬야 멋진 법인데

중담마을 갈림길

오서산 정상가는 스카이라인

오서정 정자가 서있는 자리에 정자는 철거되고 인공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둬야 정말 멋진데 인간의 오만한 탐욕이 자연을 망쳐 버렸다.

이곳 오서산은 전국 5대 억새 군락지 중에 하나이고 인기명산 100대 순위중에 77위에

해당될만큼 멋진 산이라고 한다. 10월~11월에 등산객이 집중된다고 하는데 그때 등산객의

호주머니를 털기 위해서 홍성군에서 이런 시설을 설치한 모양인데 스카이 라인을 망쳐버렸다.

 

마치 동화책에서 나오는 ‘황금닭’이야기 같은 내용처럼...

매일 닭이 황금알을 하나씩 나으니까... 닭은 잡아 한번에 알을 다 챙기려고 하다가 하나도 못 챙긴것처럼...

그리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홍성군 관게자들은 제발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시길...

내포문화(內浦文化)의 중심지 홍성의 모습

충청의 원류에 의하면 충남을 4대문화권으로 분류한다.

금강문화권, 백제문화권, 내포문화권, 기호유교문화권이 있는데

이곳 홍성(옛지명: 홍주)이 내포문화권의 중심지이다

 

내포문화(內浦文化)란 바닷물이 내륙 깊숙히 들어온 것을 말하면 지역적으로 충남 서해안지역의

바다가 호수나 육지를 변한 지역을 중심으로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한 지역을 말하는데 서해안의

교류의 관문 역할을 했으며 옛날 백제와 신라 등이 중국과 교류를 했던 창구 역할을 했던 곳이며

불교문화와 천주교 등 외래문화의 창구이자 거점이기도 한 곳이였다.

 

충남지역 면적의 48.35%에 해당하는 415,365㎢의 면적으로 서산, 홍성, 예산, 당진, 태안, 보령

서천 전역과 아산의 일부가 내포문화권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 중심이 이곳 홍성이란다

2년전(2011.12 .25) 금북정북 정북을 등반할 때 걸었던 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생뚱맞은 광천에서 설치한 오서산 표지석

지도상에 오서정으로 되어있는 곳에 정자는 온데간데 없고 광천 청년회의소(JCI)에서 새운

생뚱맞은 표시석이 산꾼을 맞이하건만 이 코스를 처음 온 범여는 헷갈리기만 하다.

실제 오서산 정상은 이곳에서 1.3km를 더 가야 하건만 무슨 근거로 이곳에 설치한 이유를 모르겠다.

정상 한곳에 지자체의 경쟁으로 2개의 정상석을 세운 경우는 비일비재하나 분명 이곳은 오서산

정상이 아닌 곳임에도 불구하고 보령사람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이곳에 세웠나...

웃음거리 되지말고 얼른 철거하시요... 등산객들을 유치원생쯤으로 보이시나.

생뚱맞은 오서산 표시석 뒷면

충남에서 계룡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인 오서산은 홍성군에서는 '광천 오서산',

보령시에서는 '보령 오서산'이라고 제각기 자기네 고을의 이름을 붙여서 부른다.

홍성군 광천읍과 보령군 청소면의 경계를 이루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데, 산 정상의 능선에도

양쪽에서 제각기 만들어 세워 놓은 정상 표지가 따로 서있어서 보는 이들의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멋있는 모습으로 산꾼 범여를 맞이하는 왕꼬들배기의 모습

오서정에서 부터 오서산 정상까지는 고도차없이 그냥 편하게 길을 걷는다.

오늘은 이곳까지 오는동안 등산객 딱 1명을 만났는데 그만큼 여름엔 사람이 없는가보다

성연(용못 갈림길)

금마타리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헬기장이 나타나면서 우측 청소면쪽에서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온다

왕꼬들빼기 군락지

쉰질바위 갈림길

쉰질바위는 쉰은 50이고 질은 길(사람의 키 정도:충청도사투리)이니 바위 높이를 환산해보면 80m쯤으로 추측된다.

쉰질바위 갈림길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쉰질바위가 나오고 복신굴이 나오며 행정구역상으론

홍성군 장곡면 광성리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오서산성이 있었던 터가 나오는데

백제가 신라에 멸망한 후 백제부흥 운동을 일으키는 전초기지 역할을 한 곳이란다.

 

성터에는 백제의 충신이었던 기대 복신과 도침의 일대기에 대해 생각한다.

왕족과 불교지도자였던 그들은 왕조 교체기에 구 왕조와의 의리를 위해 목숨을 던졌다.

왕족들에게 새 왕조는 한편으로 기회였다.

통일신라에 협조만 하면 지방 토족으로서의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백제의 정통을 내세우며 산성을 쌓고 피로 맞섰다.

대열을 흩트리지 않고 끝까지 왕조와 운명을 함께했다.

이 또한 굽힘을 모르는 까칠한 오서산의 산세 탓인가.

성동마을 갈림길

갑자기 저 아래 성연저수지쪽에서 먹장구름이 몰려온다... 우의도 안 가져왔는데

먹장구름은 순식간에 오서산 정상을 집어 삼켜버린다

공덕고개 갈림길

짚신나물

원추리

오서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서산(烏捿山:791m)

충남 홍성군 광천읍과 장곡면, 그리고 보령시 청소면과 청양군 청라면에

걸쳐있는 오서산은‘평지돌출형산’으로서 금북정맥의 최고봉이며

위용과 기상이 빼어나고 신령스런 기운을 지닌 호서제일의영산(靈山)이다.                                                                   .
『삼국사기』권32에 오서악(烏西岳)이라고 기록되어있고, 당시에는 명산대천을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나누어 국가차원의 천제를 올렸다고 한다.

 

백제 때는 오산(烏山)으로 불리며 대사 격에 해당되었고 통일신라에 와서는 중사의

위치에 있었으며, 이후 백제부흥운동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다.

또한 중국지리서인 『한원』의 백제전에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오산(烏山:오서산)과

계람산(鷄藍山:계룡산)을 소개하고 있으며 정암사(淨巖寺) 중수기에는
“금강산,구월산,묘향산에 버금가는 호서지방 최고의 명산으로 수륙(水陸)의 기운이

 크게 맞닿아 중천(中天)에 우뚝 여유 있게솟아있다”고 적고 있다. 

                                                        .
이처럼 오산 또는 오서악으로 불리며 민족의 영산으로서 태양숭배사상과 산악신앙의

중심이 되어왔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오서산(烏栖[棲]山)으로 바뀌었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까마귀산”으로 비하되면서 영산의 의미는 완전히 퇴색되었다.                        .
오서산이 단군조선에서부터 백제로 이어지는 동안 “신령스러운
기운이 넘치는 산”으로 받들어 진 것은 풍수지리적으로는 물론 그 정기와 위용이

 “태양 안에는 세발달린 까마귀인 삼족오가 살고, 신의 사자로서 천상과 인간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우리민족의 태양숭배사상을 담기에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
이와 같이 오서산은 영산으로서 민족의 정기를 이어오고 있으나 후손들의 무관심으로

“까마귀 산”으로 잘못 알려졌다. 늦게나마 광천농협과 정암사와 뜻있는 지역민들이

 힘을 모아 “오서산 정기회복운동”에 나서고 있다. 

오서산 표시석 뒷면

오서산의 오서(嗚棲)는 ‘까마귀가 서식하는 산’이라는 뜻으로 기독교 국가에서 까마귀는 악마로

통하고 유럽이나 중국에서는 흉조로 분류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 하여

반포조(反哺鳥), 효조(孝鳥)로 불리고 새끼를 끔찍이 위한다고 해서 자오(慈烏)라고도 한다.

호두를 도로에 떨어트려 차가 지나가면 알맹이를 쪼아 먹을 정도로 지능도 높다고 한다.

 

오서산이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시대. 삼국사기32권 ‘제사’ 편에는 오서산이 전국에

제사를 지내던 명산 중의 하나로 기록되었고 백제 멸망 후 오서산 일대는 복신(福信), 도침(道琛) 등

유민들이 나당연합군에 저항했던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지였다.

풍수가들은 이 산이 지세는 낮지만 여기서 시원(始原)된 물이 북쪽으로 역류해 풍수적으로 강단 있고

지조 있는 인물이 많이 나오는 형국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인지 한용운, 이응로, 김좌진, 윤봉길,

추사 김정희 같은 야성(野性)이 강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금북정맥의 중심, 호서지방의 최고봉 자랑=금강의 북쪽에서 서해를 향해 달려온 금북정맥은

수몰 직전 산을 하나 일으켜 세우니 바로 오서산이다. 정맥의 적자답게 사방 100리에서 최고봉을 자랑한다.

토정 이지함 선생도 산을 둘러보고 “호서(湖西)의 산 중에 이만한 산이 없다”고 칭찬한 바 있다.

청양군에서 세운 표시석

보령과 홍성에 비해 청양은 郡勢가 약한 탓인지 표시석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오서산 정상에서 시선을 먼바다로 던지면 청정바다 수면 위로 안면도, 원산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오서산의 거침없는 조망은 바다 쪽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옛날 해도(海圖)가 부실했던 시기에

오서산은 주변을 오가는 선박들의 등대구실을 했다

오서산 정상에 있는 이정표

오서산 정상 삼각점(△ 대천 23 / 1986 복구)

오서산 정상에 있는 억새군락지 표지판

오서산 정상에서 2명의 젊은 산꾼을 만나 인증샷을 남긴다

오늘 오서산 정상을 오면서 달랑 5명의 산꾼만 만난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차량을 거기에다 두었기에...

참으로 예쁜 무릇

절굿대가 피기 시작한다

돌아가야 할 오서정은 안개에 휩싸이고...

내원사 갈림길

쌍둥이 원추리

재난 구조목

보령 잡도리님... 정맥길에서 낮익은 시그널, 반갑습니다

되돌아 가야할 오서정의 모습

돌멩이가 많은 넓은 공터도 나오고...

2시간전에 정암사에서 올라왔던 능선이며 되돌아 가야할 능선

오서산 안부 능선에서 바라본 천수만(淺水灣)의 모습

지나온 오서산의 모습

헬기장을 지나 오서정으로 향한다

2년전 겨울 크리스마스에 나홀로 걸었던 금정정맥 능선들이 走馬看山처럼 보이고...

2시간전에 지나갔던 오서정을 철거하고 세운 데크목 광장으로 되돌아 오고...

홍성의 전경

홍성군은 옛 홍주군과 결성군을 합한 군이다.

홍주는 본래 고려의 운주로 995년에 도단련사를 두고, 1012년 지주사로 고쳤다가 홍주로 다시 고쳤다.

1358년에 목으로 승격하여 1368년 지주사를 두었다가, 1371년 다시 목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차례의 변혁을 거쳐 1895년에 군이 되었고, 1914년 옛 결성군을 합쳐 홍성군이 되었다.

결성은 본래 백제의 결기현인데 신라 때 결성으로 고쳐 서림군의 영현이 되고,

고려시대인 1018년 운주에 이속되었다가 1172년에 감무를 두었다.

우왕 때 왜구의 침입으로 주민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1390년 에는 진성을 두고 유민을 정착시켰다.

조선시대 1413년 현감을 두었다가 1895년 군으로 승격, 1914년 홍주군·결성군 및 보령군의 일부를 통합하여 홍성군이 되었다.

1941년 홍주면이 홍성읍으로 승격하고, 1942년 광천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 2월 전국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서산군 고북면 대사리와 결성면 와리를 갈산면에,

홍동면 월림·대평·운용리를 광천읍에, 결성면 중리를 서부면에, 홍북면 내법리, 홍동면 구룡리를

홍성읍에 각각 편입하여 현재와 같이 홍성·광천읍, 갈산·결성·구항·금마·서부·은하·장곡·홍동·홍북 등

 2개읍 9개면으로 개편되었다.

 

홍성은 역사적 인물이 참으로 많은 고장이라 일일이 다 열거하긴 힘들지만

유난히 독립운동을 한 인물이 많은 지역이다.

 

☞ 백야 (白冶)김좌진 장군(金佐鎭:1889~1930) 약관 31세에  만주 북로군정서를 조직하여

서백리아에 출전중이던 일본의 가납연대 (嘉納聯隊) 3,000명을 화룡현 청산리로 유인하여

연대장 가납 이하 1,200명을 함몰시키고 천수백명 을 전상자로 만든 7일 간의 전투가 바로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금자탑을 이룬 1920년 10월 21에 있었던 청산리 전투 이다.

 

 ☞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 선사가 이 지역 출신이며 조선조 단종의 복위를 꾀한 사육신의

한사람인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 :1418~1456)이 이 지역이 외가인  홍주 노은골에서 출생했다.

 

☞ 고려말 명장이자 재상이었으며 홍건적과 왜구를 대파하여 흔들리는 고려말 정권 안정에

일조를 하였으며 명나라가 철령과 이서, 이동을 요동에 예속시키려하자 요동정벌을 결심하고

출정하였으나 이 성계가 배신하여 위화도회군을 하여 고려를 멸망시킬 때

끝까지 충절을 지킨 고려 마지막 충신 무민공(武愍公) 최영(崔瑩:1316-1388) 장군이 홍주 적동

(현재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 출신이다.

홍성군 지도 

광천읍의 모습

오서산을 말하면서 광천을 빼놓을 수 없다. 광천은 우리나라 새우젓 집산지 중의 하나.

조선시대 말엽부터 옹암포(독배마을)에서 젓갈시장이 형성되어 1970년대에는 하루

100여 척의 어선들이 들어올 정도로 서해 물류의 요충지였다.

광천 새우젓, 광천 맛김, 남당항 대하. 광천에는 ‘오서삼미(三味)’가 있다.

독배마을 토굴에서 나오는 새우젓은 빛과 향에서 전국 최고로 친다.

21번 국도변에 자리 잡은 독배마을은 새우젓 숙성 토굴로 유명하다.

옛 폐광 터를 개조한 이 굴은 총 30여 개에 이른다.

이 천혜의 저장시설 덕에 광천은 근방에서 남부럽지 않은 풍요를 누렸다.

오죽하면 당시에 ‘광천 독배로 시집 못 간 내 팔자’란 유행가가 있을 정도였다.

정암사가는 길에 뒤돌아 본 오서정의 모습

멋진 암릉을 만나고...

당겨본 광천읍의 모습

다시 숲으로 들어와...

7부 능선에 있는 전망대

마지막 데크목 계단을 내려오니 상담주차장 이정표가 나오는데...

정암사 해후소가 나온 다음 일주문 겸 범종루가 보인다.

일주문을 향해 예를 올리고 내려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사람소리에 꽹과리 소리까지...

아래를 내려보니 절마당 아래 포장도로에서 가족인지, 친구인지 모를 3쌍의 남.녀가

고기를 굽고, 술파티를 벌이면서 어느 한 넘은 술이 취한체 쾡과리를 미친듯이 쳐댄다

내가 보기에도 너무하다싶어 갑자기 큰소리로 ‘이보소 신성한 절입구에서 이게 뭐하는

짓거리요’ 하고 소리를 지르니 이 양반들 내가 절에 있는 사람인줄 알고 갑자기 미안하다고

하면서 조용해진다... 정신나간 자들!

절마당 아래에서 고기굽고 술먹는 인간들... 예의는 전당포에 잡혀 먹었나?

조금을 더 내려오면  쉰질바위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운동기구가 비치되어 있고

수도꼭지가 여러개 달려있다. 이곳은 아무도 없고하여 머리를 감고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을 닦은 다음에 옷을 갈아입고 베낭에서 한개 남은 빵과 두유로 점심을 대신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절에서 승용차 한대가 내려온다

 

손을들고 좀 태워달라고 하니 차를 세워서 태워 주는 바람에 주차장까지 편하게 내려온다.

주차장에 내려 차를 태워준 처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내고 내 차에 오르니

완전히 찜질방이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 다음에 광천역에 도착한다.

이곳 광천역은 금북정맥을 걸으면서 2번정도 와 봤던 곳이다

광천읍 (廣川邑)은 북쪽으로 구항면(龜項面)에 접한다. 원래는 결성군에 속하였으나 1914년

결성군과 홍성군이 통합되면서 홍성군에 편입되었으며, 1942년 10월 읍으로 승격하였다.

대체로 산지와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동부에 오서산(烏棲山:791m), 북서부에

지기산(智基山:321m)이 있으며, 두 산지 사이의 읍의 중앙부를 상정천(湘井川)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다가

하구부에서 오서산에서 발원하는 광천천과 합류하여 천수만(淺水灣)으로 흘러든다.

 

천수만의 안쪽은 두 하천의 하구부에 접속되어, 그 좌안(左岸)에 있는 옹암리(瓮岩里)는 광천읍의 유일한 항구이다.

광천천연안의 내죽평야(內竹平野)·중방평야, 상정천 연안의 상정평야가 쌀 주산지를 이루고, 그 밖에 무·배추 등

채소류와 과수재배 및 양봉이 활발하다. 특산물로는 토굴새우젓과 조선김이 있다.

 

장항선이 상정천과 병행하여 달리고, 대천·청양에 이르는 도로, 안면도(安眠島)에 이르는 정기선편(定期船便)

등이 열려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그로 인해 농산물·수산물의 집산이 활발하다.

 

문화재로는 홍성 댕댕이장(충남무형문화재 31)이 있다.

광천읍은 젓갈의 마을이라 할 정도로 주변이 온통 젓갈 상가들이다.

광천토굴새우젓 재래시장이 있는가 하면 토굴 새우젓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도 있다.

이 곳에서 판매하는 새우젓은 토굴에서 숙성되어 나온 것들인데 맛과 향이 다른지방보다 월등하다.

광천에서 새우젓 장터가 아루어지기는 고려때 물물교환으로 매매가 형성되었던 때 부터라고 한다.


이때 광천에는 두 개의 장이 이루어졌는데 그 하나가 옹암포구의 새우젓 장이었는데 번창기에는

조선시대말 서해안의 10여개 섬에서 광천장을 보기 위하여 선박들이 새우를 잡아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새우젓 시장이 전국적으로 활성화되었다. 그 후 1960 년 윤명원씨가 새우젓이 숙성기간 썩어버리거나

맛이 달라지는 것이 큰 고민거리여서, 굴속의 온도가 일정하다는 것에 착안해 산중턱에 토굴을 파서

새우젓을 저장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영상 14 ℃의 일정한 온도에서 약 3개월간 숙성시켜 맛이 들게한 후

팔기 시작하여 그 맛과 향이 타 지방 새우젓보다 월등하기 때문에 소문이나기 시작하여 광천하면

토굴새우젓으로 유명해져 지금은 김장철이 되면 전국에서 상인, 소비자가 모여 성시를 이루고 있다.


광천토굴 새우젓 재래시장은 광천역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고,
또한 토굴 새우젓 상 가는

토굴 가까이 도로변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광천토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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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뒤편 야산에 암반을 꼬불꼬불 파들어간 토굴이다. 폭과 높이가 각각 2m 정도,

200여m의 20여개의 토굴속에 수백개의 새우젓을 담은 드럼통이있다.

토굴안을 구경할 수도 있고 토굴안에서 새우젓을 구입할 수 있다.

2,500t의 새우젓이 광천토굴에서 만들어 진다 

 

광천토굴새우젓축제 [廣川土窟─祝祭] 예로부터 젓갈의 마을로 유명한 홍성군 광천읍에서 

지역 특산물인 토굴새우젓을 주제로 하여 매년 10월 중순경 3, 4일간 개최하는 축제이다. 

1996년부터 광천특산물 상인조합이 주관하고 있다. 광천읍에서는 일찍이 고려 때부터 

옹암포구 등에 새우젓 장터가 생기기 시작하였으며, 조선말에 서해안 10여 개 섬의 선박들이 

새우를 팔기 시작하면서부터 더욱 활성화되었다. 

 

1960년대부터는 대천항 등에 주도권을 빼앗겼다가, 1960년 지역주민인 윤명원이 굴(窟) 속은 

온도가 일정하다는 것에 착안하여 독특한 새우젓 저장법을 개발한 이후 다시 젓갈시장으로서 활기를 찾았다. 

토굴새우젓은 14℃의 일정한 온도에서 약 3개월간 숙성시키기 때문에 맛과 향이 다른 지방의 새우젓보다 월등하다. 

옹암리 독배마을 바위산 밑으로는 활석암 암반을 꼬불꼬불 파들어간 새우젓 토굴이 40개가 넘는데, 주로 

폐광을 활용하였고 높이가 2m, 길이가 200m나 된다. 새우젓을 담은 수백 개의 드럼통에서는 연간 2,500톤의 

새우젓이 생산된다.매년 전국 젓갈의 70% 정도가 이 지역으로 들어와 토굴에서 발효·숙성된 뒤 다시 전국으로 

판매되는데, 성수기는 8월 초부터 12월 초이며 특히 김장철이 되면 전국에서 많은 상인과 소비자가 모여든다. 

 

축제기간 동안에는 여행사들이 젓갈구입 여행상품을 운영하고 있으며 서울~광천 간 관광열차도 운행된다. 

토굴새우젓 외에 까나리액젓, 어리굴젓 등 각종 젓갈류를 판매하며, 국악인 초청공연, 연예인 초청공연, 

군민 노래자랑, 풍물 놀이패 공연, 군민씨름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관광객은 토굴 안을 구경하거나 

그곳에서 새우젓을 구입할 수 있다. * 새우젓 새우젓을 담글 때는 새우에 이물질이 섞이지 않도록 잘 가려낸 뒤 

물에 깨끗이 씻어서 소쿠리에 밭쳐 물기를 뺀다. 

 

새우의 1/3 되는 분량의 소금을 넣고 잘 섞어서 항아리에 담아 꼭꼭 누른 다음 웃소금을 두껍게 얹고 

봉해서 그늘에 둔다. 새우젓은 보통 육젓, 오젓, 추젓, 뎃데기젓, 자젓, 곤쟁이젓 등으로 나뉜다. 

그중 가장 상품은 6월에 잡은 것으로 담근 육젓이다.색깔이 희고 살이 통통하며 맛이 고소하고 주로 

김치 양념으로 사용된다. 육젓 다음으로 좋은 오젓은 5월에 잡은 새우로 담근 것으로 육젓과 추젓의 중간 크기다. 

대체로 흰색이며 깨끗하고 육질이 좋다. 추젓은 가을철에 잡은 새우로 담근 것으로 육젓보다 작고 깨끗하다. 

뎃데기젓, 자젓, 곤쟁이젓은 하품에 속한다. 뎃데기젓은 껍질이 두껍고 단단하며 누런색에 가까운 

보리새우(뎃데기)로 담근 것이다. 흔히 잡젓이라고 하는 자젓은 크기가 작은 새우를 선별하지 않고 담근 것이다. 

 

곤쟁이젓은 보통 2~3월에 잡히는 보랏빛을 띠는 어린 새우를 사용한다. 새우젓은 껍질이 얇으며 밝은 

분홍색으로 살이 굵고 비린내나 구린내가 나지 않는 것이 좋다. 새우는 다른 어패류보다 부패하기 쉬우므로 

새우젓을 담글 때는 소금의 양을 넉넉하게 잡는 것이 안전하다. 새우젓이 변질되면 검게 변하고 단맛이 없어지며, 

육질이 녹아서 젓국이 혼탁해지고 악취를 풍긴다.  

* 장 서는날 : 매월 4, 9, 14, 19, 24, 29일 광천장은 근처 어장에서 잡힌 어물의 집산지로 규모가 크고 값싸다.
새우젓만을 전 문적으로 파는 상가도 20군데 있다. 
광천장은 새우젓 말고도 갈수록 번 창하는 우시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도로에서 바라본 오서산의 모습

오서산에서 내려와 광천의 이곳저곳을 본 후에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와

오산에 들려 늦은 점심겸 이른 저녁을 먹은 다음에 서울로 귀경한다

 

광천출신 장사익 선생의 노래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