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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일반산행 ♣/梵如의 山行記

억새를 찾아서... 영남알프스 1박 2일중... 이튿날에

by 범여(梵如) 2012. 10. 17.

☞산행일자:  2012년 10월 14일(제 2일차)

☞산행날씨: 흐린 날씨,(오후에 맑음) 바람이 차가움

산행거리: 도상거리 14.6km / 7시간 20분 소요

☞산행코스: 배내산장-파래스 유스호스텔-청수골산장-청수중앙능선-958m봉-함박재-함박등-1060m봉

                 영축산-1026m봉-신불평원-1046m봉-신불재-신불산-서봉-간월재-간월산

                 850m봉-912m봉-890m봉-배내봉-배내고개-언양터미널

  소 재 재:  경남 양산시 원동면, 하북면 /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상북면

                    

             
순서 지명 고도(m) 거리(km) 누적거리(km) 예상시간 식수
1 배내산장          
2 1020봉 1,020 m 3.3 3.3 85 분  
3 함박등 1,020 m 0.6 3.9 30분 20분 휴식 
4 영축산 1,092 m 1.3 5.2 35 분
5 신불재 1,000 m 2.5 7.7 40 분 대피소(샘)
6 신불산 1,208 m 0.5 8.2 20 분 20분 휴식 
7 간월재 910 m 1.3 9.5 30 분 샘,40 휴식
8 간월산 1,083 m 1.1 10.6 30 분  
9 배내봉 966 m 2.5 13.1 70 분  
10 배내고개 680 m 1.5 14.6 20 분  
             
    14.6   7시간20분  

 

 

 

 

 

 

 

 

 

 

 

 

 

 

 

 

 

 

 

 

영남알프스 등산개념도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배내산장(06:40)

저녁에 닭백숙에다가 맥주+소주를 말아먹고 샤워를 한 다음에

일찍 잠자리에 든다. 이곳 배내산장 쥔장도 산을  상당히 좋아한단다.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데 상당히 친절하고 방값도 합리적이다.

 도로 건너편에 있는 수퍼에서 쌀과 꽁치 통조림과 김을 사서 방안에 놓고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압력밥솥에 밥을하고 꽁치 통조림에다가 가져온 김치를 넣어

찌게를 끓여서 아침을 든든히 먹는다. 거기다가 해장술로 4홉들이

뚜꺼비 한놈을 깔끔하게 작살내고 배내산장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영축산으로 출발한다. 

도로를 건너서 파래소 폭포 이정표를 따라 다리를 건너니 파래스 유스호스텔이 있고

그 뒤의 신불산 자연휴양림 도로를 따라서 청수골 산장에 도착한다.

 

파래스 폭포는 우리나라 민족 분단의 아픔으로 이념의 산물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곳이다.

파래소 폭포
간월산과 신불산에서 발원한 물이 서쪽 배내골로 내려와 이룬 폭포가 파래소 폭포이다.

물이 차갑고 수심이 매우 깊어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것이 특색이라고 한다.

물은 푸른 편이며 물고기가 많이 서식하고 있고 수중에 바위층이 있어 굴이 있다고

전하고 있지만 아직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길이 떨어지는 높이는 15m 정도이고

소(沼)의 둘레는 100m 정도 된다고 한다. 옛날에 이 폭를 바래소라고 했는데

이것은 가뭄이 심할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바라던 비가 내렸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요즘도 울산과 부산 등지에서 기도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비가 오고나면 수량이 많아 폭포 주위에는 안개처럼 물보라가 생기고 때로는 무지개가

생기며 여름철에 시원한 물줄기가 직하(直下)하며 하얀 포말을 토해내는 모습은 장관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이 모습을 묘사하여 ‘요림비폭파래소(搖林飛瀑波來沼)’ 라 일러 彦陽八景의 하나로 꼽았다.

이념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파래소의 공비지휘소

영남알프스 일대에는 한국동란을 전후로 남도부(하준수) 등이 지휘한 빨치산이

신불산 아래 파래소 근처 폭포 근처에 거점을 두고 군경 토벌대와 대치하였는데

신불산 자락인 995봉에 그 빨치산 지휘소가 있었다고 한다.

 

남도부란 인물은 본명이 하준수로 경남 함양출신이라고 한다.

동경 유학생 시절에 학병징집을 거부하고 지리산 칠선골로 들어가서

 ‘보광당’이란 조직을 결성해 일제에 대항해서 싸운 대표적 아나키스트라고 한다.

해방후에 함양군 ‘안의사건’을 거치면서 사회주의자로 변신하였다고 한다.

 

대구폭동사건에 개입후 지리산으로 도피, 칠선골, 초암릉, 천왕봉을 근거지로

빨치산을 조직하여 무장투쟁을 하다가 48년에 월북, 강동정치학원 교관을 거쳐

인민군 소장(또는 중장) 계급으로 유격대를 이끌고 남하하여 신불산, 사자산 등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1954년 1월에 대구에서 체포되어 1955년 7월에 향년 35세의 나이에 총살형을 당했다고 한다 

파래소 폭포의 유래

신불산 자연 휴양림을 올라가는 길가에는 펜션과 음식점이 즐비하다.

흐린 날씨에 혹 비라도 올까 노심초사한다.

길가에 흐드르지게 피어있는 쑥부쟁이가 가을임을 알려준다.

청수골 산장(07:00)

다리 건너에 있는 청수골 산장이 이곳의 산행에 포스트 역할을 하는 곳이다.

다리를 건너 신불산 휴양림쪽으로 올라가면 단조늪으로 올라가는

청수좌골이고 다리를 건너지 않고 우측으로 올라가면 영축산 가는 길의

청수우골인데 이곳은 사유지라 출입을 많이 막는다고 하여 다리를

건너지 않고 청수계곡 안부를 따라서 새로운 루트인 청수중앙능선으로 오른다.

청수계곡 옆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넓은 계곡을 건너서 우측 능선으로 오른다.

이곳은 아주 급경사의 깔딱고개이고 힘이 드는 고개라 일반등산객이 전혀없다.

그러다보니 길은 좋으나 오지 산행을 하는 기분인데, 오지산행에는 버섯과

도라지, 잔대,하수오, 밤 등 수입이 짭짤하데 이곳은 수입이 전혀 없다는게 좀 다르다.

한참을 급경사를 치고 올라가는데 많이 먹은 아침밥 때문에 엄청 힘이든다

958m봉(07:40)

1시간 정도를 치고 올라온 후에 베낭을 벗고 5분정도의 휴식을 취한다.

이번 산행에서 처음 만난 멋쟁이 크놀프 아우님과 어제 저녁에 수퍼에서

산 가지산 막걸리 한병을 비운다. 정말 꿀맛인데 설악반달 아우님은 입에도 안댄다.

급경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맥, 지맥길에비해선 완전히 고속도로다.

등로를 오르락 내리락을 계속 한다. 그러면서 급하게 고도를 높인다. 

우측 아래에는 나뭇가지 사이로 시살등이 보인다.

조릿대가 있는 호젓한 길도 나타나고...

시살등의 유래는

임진왜란때 단조성에 있던 아군과 왜구가 이곳에서 비오듯이

서로 화살을 쏘았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신평에서 보면

이곳 능선이 활 등처럼 보인다고 해서 시살등이라 부른다는 설도 있다.

 시살등은 임진왜란 때 외군의 북상을 최후까지 저지하면서 활을 쏘았다고하여 유래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영축산이 "취서산고성"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등로에서 내려다본 청수골과 저너머 신불산의 모습

우측에 시살등과 좌측에 죽바우등이 보인다

죽바우등은  봉우리 주위에 산죽(山竹)이 많이 자생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채이등

우뚝 솟은 봉우리가 통도사쪽에서 보면 알곡을 까부릴때쓰이던 채이를 닮았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1020m봉(08:05)

이곳에서 능선으로 올라가지 않고 산허리를 끼고 편안 걸음을 한다.

이곳부터는 행정구역 양산시 하북면 지역으로 양산시에 100m 단위로

구조목을 설치하여 산꾼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다.

멋진 단풍과 고즈늑한 나무사이로 걸어가며 가을을 한껏 만끽한다.

함박재(08:20)

영축능선 6 있는 이정표(←영축산 1.7km ↑ 백운암 0.7km  채이등 0.7km, 오룡산 4.4km)가

있고 이곳에서 멋진 암릉인 함박등으로 올라선다.

함박등의 모습

함박등의 유래는 통도사 방향에서 보면 그 모양이 함지박 형상으로 생겼다고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조금전 내가 올라온 청수중앙능선의 모습

영축산 가는 길의 능선

영축산은 동쪽 사면은 깎아지른 듯 급경사이고 서쪽 사면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경동 지형을 이룬다.

산정이 화강암으로 된 예리한 톱니바퀴형으로 되어 있어 멀리서 보면 하나의 성채 같다.
영축산 정상에서 바라본 남쪽과 북쪽의 풍광은 극적으로 다르게 보인다.

 남쪽으로 함박등과 체이등으로 가는 능선 길은 가파르다.

 톱날처럼 뾰족 선 봉우리들이 아슬아슬하게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 길 동쪽 사면을 타고 내려가면 천년고찰 통도사고, 서쪽 사면으로

가면 청수우골을 거쳐 배내골로 갈 수 있다.

 북쪽은 단조늪을 거쳐 신불산 간월산 가지산으로 이어진다.

북서쪽에서는 재약-천황봉-능동산과 그 너머로 배내재-상운산이 산너울 처럼 일렁인다

영축산 아래 그즈늑히 자리잡고 있는 불보종찰 통도사

通度寺  一柱門

경남 양산에 위치한 영축총림 통도사는 영취산(靈鷲山, 해발 1,081m, 영축산 또는 취서산으로

불리기도 함) 남쪽 기슭, 얕으막한 언덕을 등지고 60여개에 달하는 건물이 촘촘하고 우아하게

들어서 장엄한 가람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통도사는 인도에 부처님이 설법하신 영취산과

통한다 하여 통도사(通度寺)로 이름을 지었다

 하는데 당나라에서 공부하신 자장율사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가져와 신라

선덕여왕 재위 중인 645년에 창건한 불보사찰(보물인 부처님을 의미)로 팔만대장경이 있는

 법보사찰 해인총림 해인사, 국사를 많이 배출한 승보사찰 종계총림 송광사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3대사찰중의 하나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어 24개 교구본사 중 대웅전에 불상이 없는 것도

통도사의 특이한 점이다.

이곳도 역시 임진왜란의 전화로 불탄 것을 1603년에 재건하고 1641년에 중건하는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른다.

 총림(叢林)은 사찰내에 강원(講院), 율원(律院), 선원(禪院)이 있는 곳으로 원래는

많은 스님들이 모인 모양이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 것과 같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현재는 국내에 가장 권위있는 5개 사찰(수덕사, 백양사,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만이

총림으로서의 지위를 누린다. 

통도사 대웅전(金剛戒壇)

통도사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다. 적멸보궁이라 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보궁 참배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만 참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금강계단은 스님들께서 출가하여 戒를 받을 때 이곳에서 받는다.

범여도 이 통도사와 인연이 꽤나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이 기억이 남는것은 2006~7년 가을에

이곳 대적광전에서 교육을 받고 심야 사경지를 태우면서 환희심을 느꼈을 때, 그리고 일주문에서

대적광전까지 삼보일배로 오체투지 하면서 느꼈던 그 기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통도사는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하는 계율 도량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교학과 선(禪)을 소홀히 하는

계율 일변도의 사찰은 아니다. 율사뿐만 아니라 경과 논에 해박한 논사(論師), 선리(禪理)에 밝은

 승려들을 많이 배출한 명실상부한 영축총림(靈鷲叢林)이다. 통도사는 자장율사가 창건한 후

왕실과 대중의 비호 속에 한국 불교의 불보 사찰로서의 구심체 역할을 했으며, 근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구하(九河)· 경봉(鏡峰) 벽안(碧眼)·월하(月下) 등 무수히 많은 뛰어난 선사들을 배출하였다.

자장율사(慈藏律師)는 신라(新羅) 진덕왕(眞德王) 때 고승으로서 속성은 김씨(金氏), 위명(僞名)은 선종(善宗), 진골(眞骨) 출신 소판무림(蘇判茂林)의 아들이다. 어머니가 별이 떨어져 몸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잉태하여 4월(月) 8일(日) 석가의 탄신일에 그를 낳았다고 한다. 일찌기 양친을 여의고 세상을 싫어하여 처자를 버리고 원영사(元寧寺)를 지어 고골관(古骨觀)을 닦았다.

선덕여왕(善德女王)이 대보(大輔)에 임명하였으나 불응하고 “하룻동안 계(戒)를 지니다 죽을지언정
 계(戒)를 파하고 백년(百年) 살기를 원(願)치 않노라 ”라고 하였다. 선덕여왕(善德女王) 5년(636) 왕명(王命)으로 제자 승실(僧實)등 10여명과 당(唐)나라 오대산(五臺山)에 가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하고 가사와 사리를 받았고 종남산(終南山) 운제사에서도 도(道)를 닦았고 화엄종(華嚴宗)의 두순(杜順)과 계율종(戒律宗)의 도의선사(道宜禪師)에게 배웠다. 선덕여왕(善德女王) 12년(643)에 장경(藏經) 일부와 불구(佛具)를 가지고 귀국, 분황사(芬皇寺) 주지로 있으면서 궁중과 황룡사(皇龍寺)에서 대승론(大乘論) ·보살계본(菩薩戒本) 등을 강론하였다. 대국통(大國統)이 되어 승니(僧尼)의 규범과 승통(僧統)의 일체를 주관하였으며, 황룡사(皇龍寺) 구층탑(九層塔)의 창건을 건의 645년에 완성하였고 통도사(通度寺)를 선덕여왕(善德女王) 15년(646)에 창건하였다.

이듬해에 통도사(通度寺)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세우는 등 전국 각처에 10여개의 사탑(寺塔)을 건조했다.
 중국(中國)의 제도를 본떠 신라(新羅)에서도 처음으로 관복을 입게 했으며, 진덕여왕(眞德女王) 4년(650)에는 당(唐)나라 연호를 쓰도록 하였다. 만년에도 강릉군(江陵郡)에 수다사(水多寺)를 짓는 등 태백산(太白山) 석남원(石南院)(지금의 정암사(淨巖寺))에서 일생을 마치기까지 우리나라 남산율종(南山律宗)의 개조(開祖)로서의 사명을 다하였다.

통도사(通度寺) 개창주(開倉主)로서 통도사(通度寺)에 봉안된 이 영정은 조선(朝鮮)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견본채색(絹本彩色)이며, 의자 위에 가부좌(跏趺坐)한 모습으로 왼손에 특물(特物)인 불자(佛子)를 들고 있는 원만상호(圓滿相好)이다. 옷자락의 주름은 강열하면서도 섬세한 화풍을 보여주고 있으며 암갈색(暗褐色) ·백색(白色) ·녹색(綠色)을 주 색조로 사용하여 그 조형미를 더해주고 있다. 현재는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멋진바위 능선을 계속해서 걸어간다.

신불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칼날 능선의 끝지점에 영축산이 보인다.

양산시에서 1020m봉부터 영축산까지 100m 단위로 설치한 구조목

청수골 산장으로 가는 길

꾸미지 않은 순수함 - 그래서 난 니가 좋다.

등로에 한가운데 있어서 수난을 당하는 갈참나무

울님의 입술만큼이나 빨간 단풍나무

양산 저 너머 낙동강 건너 김해 진례면이나 한림면도 저 어디쯤이겠지

흐린 날씨에 짙은 운무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는게 아쉽기만 하다.

저기에 사는 어리버리000가 보고싶다. 벌써 2년이란 세월이 지났구나.

영축산 가는 길에 쌓아놓은 돌탑들

내가 오늘 지나온 능선들

등로에서 내려다 본 양산시가지

이곳 양산하면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지난 9월에 호미기맥길의 치술령에선

만난 신라의 충신 박 제상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다

박제상(朴提上)은 4세기말에서 5세기 초반에 활동한 신라 사람으로, 신라의 변경지대인

양산 지방의 관리( 혹은 세력가)로 있었다. 당시 신라는 고구려, 왜, 백제로 부터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었고,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왕자 2명을 고구려와 왜에 각각 인질로 보내야 할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다. 두 아우를 구하고자 하는 눌지마립간의 명을 받들어 박제상은 목숨을 걸고

적국에 들어가서두 왕자를 생환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박제상은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려야 했다.

회유하는 왜왕을 향해 “차라리 신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자(臣子)가 되고 싶지 않으며

차라리 신라의 형장(刑杖)을 받을지라도 왜국의 작록(爵祿)을 받고 싶지않다” 고 일갈하였다.

박제상은 충의를 먼저하고 자신을 뒤로 여기며 지절을 소중히 하고 그 자신을 가볍게 여기는 장부였다.

이 때문에 후대 사람들은 박제상을 충신의 사표로 삼아 그 충절을 본받아 기리고 있다.

박제상이야말로 양산이 낳은 전례없는 충절이라 할 수 있다.

영축산 가는 길에서 바라본  억새밭 너머 단조늪과 신불산의 모습

영축산이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다.

산부추꽃이 참으로 이쁘게 피어있다.

비로암 갈림길 이정표

영축산 아래 매점과 대피소

깨지고 망가져 식별할 수 없는 영축산 정상 삼각점

영축산 정상에서 동료산꾼들과 인증샷을 남기고...

영축산(靈鷲山:1081m:09:25)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원동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상북면에 자리잡은

영축산은 일반인에게는 취서산, 영취산, 축서산으로 알려져 지명과 관련하여

혼란스러웠으나 지금은 양산시에서 영축산으로 지명을 통일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이에 근거한 것으로는 양산을 대표하는 통도사의 사적기등에 영축산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과 석가모니의 법화경 설파장소가 영축산이란점 이에 신라의 자장율사사

통도사 창건할 때 이를 참고했을것이란 점이 영축산으로 확정되게 되었다 한다.

영축산이란 신령스런 독수리의 산이란 뜻으로 예전에는 독수리가 많았던 곳으로 보인다.

영축산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곳곳기암괴석과 노송이 어우러지고 무엇보다 영남 알프스의

 중심 산으로 천년고찰 통도사를 품고있는 후덕한 산으로 알려진 명산이다.

 

인도에 왕사성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영축산은 영취산이라고도 하며 부처님의 8대 성지중의

하나이며 고타마 붓다와 빔비사라왕과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부처님께서 정각(正覺)을 이루신 후에 최초로 법화경을 설법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 영축산부터 다시 2년전에 걸었던 낙동정맥길과 조우를 한다.

정상 우측에는 낙동정맥길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영축산 정상 이정표

2년전에 걸었던 낙동정맥길 이곳으로 내려가면 지내마을이 나온다.

취서산장에서 임도의 내림길에서 못안마을이 나오는 곳이다

못지(池), 안내(內)의 지내마을을 칭하는 곳이다.

   영축산에서 이어지는 낙동정맥길

가지산도립공원 구역 안에 있는 영축산은 정상에서부터 신불산 정상에 이르는 드넓은

억새능선으로, 취서산 정상에서 신불산,간월산으로 이어지는 산행길은 정말 멋지다.

간월산 입구 홍류동 쪽의 단풍이 먼저 물들었다가 낙엽지기 시작하면 솜털처럼 하얀 억새꽃이 만발한다.

 

 영남 알프스는 해발 800미터 고지에 펼쳐진 125만평의 사자평고원 과 신불평공원

가을에 사색을 즐기며 황금물결속에 별을 헤어보고  바람소리를 들어본다.

사색을 즐기는 자는 억새를 찾는다고 한다

영남 알프스 억새길 안내도

억새밭 아래로 울주군 삼남면이 보인다.

산의 경계도 양산에서 울주로 바뀌고 있다.

단조늪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선리의 영축산에 있는 습지로「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등의 문헌에 따르면 늪의 중심에 신라시대 축성된 것으로 보이는 단조성이 있어 이를 따서

단조늪이라 불리게 되었다.

 

주변부에는 고산 초원이 발달하였고, 동쪽과 남쪽은 암벽, 서쪽은 참나무류의 숲으로 둘러 싸여 있고

 북쪽은 단조봉~신불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으로 되어 있다. 동·식물은 식물 183종과 동물 64종이 서식하고 있다.

 습지 식물은 방울고랭이·동의나물·물매화·흰범꼬리 등 30여 종, 고산 식물은 동자꽃·노랑제비꽃·쥐오줌풀·

잠자리란 등 24종이 발견되었다. 또한 희귀 식물로는 환경부 지정 특정 관리 식물인 설맹초·솔나리·개족도리풀

 등과 습지 군락으로 진퍼리새 군락·방울고랭이 군락·박새 군락 등이 있다.

 

영축산 북쪽 능선 해발 940~980m에 위치한 국내 최대 규모의 고산 습원으로 각종 희귀 동·식물이

 자라고 있다. 늪의 크기는 습지부가 약 7,000㎢이고 습지부 주변의 고산 초원 지대를 포함하면

약 30만㎢로 정족산 무제치늪의 3~4배이며, 지금까지 보고된 것 중 가장 크다.

고산 습원 내에는 5~6개의 작은 샘이 있고 5~6개의 물길이 있다. 수원으로서의 역할은 매우 미미하고 평시에

 물이 흐르는 것은 1개 뿐이다. 최근 헬기장, 방화선 설치, 수련장 등으로 인해 무분별하게 파헤쳐지고 있어

심각한 훼손 위기에 직면해 있다. 파괴가 가장 심한 곳은 늪 중앙부로 습지부 약 70만㎡이 방화선에 의해 3등분되었다.

습지의 약 10%는 완전 파괴되어 식물이 전혀 살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습지 중앙부에 헬기장이 들어서 있고,

습지가 행락객들의 놀이장 등으로 이용됨으로써 고층 습원의 특징인 물이끼층이 파괴되고 있다.

그리고 수분 보존이 안 되어 습원의 사막화, 육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전체 습지의 25%가

 파괴된 상태이다. 따라서 습지 보존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영축산에서 仙景을 감상하고 신불산으로 향한다

1046m봉 남서쪽 아래의 아리랑릿지-쓰리랑릿지-에베로릿지의 모습

영축산에서 신불산 정상으로 가는 길의 우측에 완만한 등산로가 있는데 여기가 금강골재이다.

금강골재에서 동쪽으로 하산하다 보면 4개의 릿지(아리랑ㆍ쓰리랑ㆍ에베로ㆍ 탈레이)가 있다.

영축산(靈鷲山)은 영남 알프스의 일부로 신불산 아래에 위치하며울주군 삼남면과 양산시 하북면의 경계에 있다.

아리랑리지. '아리랑'이라는 민족 고유의 전통이 고스란히 담긴 우리말 단어와 '리지(Ridge)'라고 하는 외국어가 결합된

아리랑리지는 그 이름에서부터 왠지 모를 멋스러움이 묻어나면서 동시에 가슴 설레게 한다. 얼마나 운치 있는 이름인가.

 

※ 릿지란 산능 또는 암릉을 의미하며, 영남알프스의 릿지는 전국 클라이머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히말라야 등반 준비를 위해 아리랑ㆍ쓰리랑ㆍ에베로릿지에서 등반하는 경우가 많다.

멋진 억새밭이긴 해산 이곳이 재약산과 천황산구간보다는 못한 느낌이다.

단조성(丹鳥城)

영축산에서 신불산을 가기 위해 내려서면 좌측으로  60여 만 평의 억새평원을 볼 수 있는데

이 억새평원을 가로지르는 긴 돌담이 단조성(丹鳥城)이다.

신라시대 때부터 축조되었다고 추정되며,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부산에서 양산 ~ 언양 ~ 경주로

쳐들어갈 때 언양 의병들이 몰사한 곳이기도 하다.

산정에는 산성을 쌓아 그 둘레 4,050자에 이르며 그 안에는 천지가 있어 사철 마르지 않는다 하였다.

현재 이 돌담은 서북쪽으로는 많이 허물어졌으나 동남쪽으로는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조선조 암행어사 박문수가 영남을 시찰하는 도중 이 산성에 올라 "산성의 험준함이 한명의 장부가

만 명의 적을 당해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해 이곳이 천연의 요새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 성을 일러 단지 같다하여 단지성이라 하며 또한 단조성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의병이 흘린 피가 얼마나 많았던지 피로 못을 이루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지금도 이 지역 마을사람들은 백발등으로 쳐들어온 왜병을 원망하며 "원수로다 원수로다,

발등이 원수로다"라는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매주 이렇게 산으로 다닐 수 있다는 것도 부처님의 가피력이 아닐까.

가야할 산은 너무도 많은데 세월은 너무 빠르니... 이것도 집착이련가?

신불평원의 모습

신불재에서 영취산 정상 사이에 펼쳐진 1,983㎢의 억새평원이 신불평원이다

신불산억새평원은 '울산 12경'의 하나로 재약산 사자평과 더불어 전국 최고 억새평원이다.

봄이면 억새밭의 파릇파릇한 새순이, 가을이면 은빛물결 일렁이는 억새를보기 위해서 수많은 등산객이 몰려드는 것이다. 푸른물이 뚝뚝 떨어질듯한가을하늘과 은빛 물결의 억새는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할 정도이다.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억새꽃도 10월이 절정기이고 11월에 접어들면고산지대라 억새의 허리가 꺽이고 흰 눈꽃같은 억새꽃이 다 져버린다.금강골 바위 절벽은 금강산 만물상을 연상할 만큼 아름답고 신불공룡능선은영남알프스 최고의 험란 암벽능선으로 이 칼바위 능선을 걸으면 오줌이저릴 정도의 아찔아찔한 쾌감을 느끼는 곳이라 등산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금강골에 있는 금강폭포는 겨울철 빙벽 등반가의 훈련장소이고아리랑, 쓰리랑, 에베로 릿지는 암벽 등반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능선 암릉에서  막걸리 한잔을 하면서 30분간의 휴식을 취한다.

억새 능선에서 바라본 신불공룡능선(칼바위능선) 신불산정상에서 우쪽 500m 정도에 있는 험한 능선을

신불공룡능선 또는 칼바위 능선이라 하는데, 영남알프스에서 가장 험하고 멋있는 긴 능선이다.

데크목으로 너무 편하게 해놓아 너무 맘에 안든다.

산은 산다워야 하고 자연은 있는 그대로가 좋은데

이곳은 한라산처럼 인간들의 손때가 너무 많이타서 싫다.

신불재 쉼터에는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참으로 오랫만에 이번 영남알프스 길에서 人間群像들을 많이 만난다.

신불재 이정표

신불재(10:45)

울산광역시 삼남면 가천리에서 상북면 이천리 하단지구로

통하는 고개이다. 이곳 쉼터에는 하도 사람들이 많아 시장통을 방불케 한다.

신불재에는 하도 사람이 많아서 숨도 안 쉬고 신불산으로 향한다.

정상 오름길에도 데크목 계단이 계속 연결된다.

경상도 사람들의 산사랑 정말 대단하다.

이곳 신불산 정상에는 정상석이 자그만치 4개가 있기에 어느 지점이

정상인지 헷갈린다. 자기를 과시하기 위한 이기주의처럼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이곳에도 등산객이 바글바글하다.

2년전 낙동정맥길에 없던 시설물들도 많이 보이고 인증샷 하나

남기려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냥 포기를 한다.

신불산 2등 삼각점(△언양 24/ 1989 재설)

신불산(神佛山:1,159m: 11:20)

경남 양산시 하북면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과 상북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태백산계의 내방산맥(內方山脈)에 속한다.

북서쪽 2km 지점의 간월산(肝月山)과 남쪽 2.8km 지점의 영축산과는 연속적인

형제봉을 이루는데, 특히 남쪽 영축산 사이의 3km 구간에는 넓고 평평한 능선이

이어지면서 광활한 억새밭이 펼쳐진다. 예전에 신불산 아래 산허리에 신불사가

있어서 신불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정상부근에는 남,북 3km의 큰 절벽이 있고 동쪽으로는 선상지가 발달해

언양분지(彦陽盆地)가 펼쳐진다. 또 간월산 사이 북서쪽 비탈면에는

기암괴석이 많고, 남쪽과 서쪽 기슭에는 낙동강 지류인 단장천(丹場川)과

남천(南川)이 발원하며, 동쪽과 북쪽 기슭에는 깊은 계곡이 발달하였는데

북동쪽 계곡에 있는 홍류폭포(虹流瀑布)가 유명하다.

영암알프스의 1,000m 급의 7개 산 가운데  가지산(1241m)다음으로 높다.

1983년 12월에 간월산과 함께 울주군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신불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언양분지의 모습

신불공룡능선의 모습

신불산 정상석중에 가장 인기없는 정상석(?)에서 인증샷을 남긴다.

신불산 서봉(11:35)

이곳 서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간월재로 향하는데 예전에 없었던

전망대도 설치되어 있고 오르내리는 사람도 엄청 많은데 이곳에선

산행 매너가 꽝인 등산객들이 꽤나 많아서 눈쌀을 찌푸린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가야할 간월재와 간월산이 보인다.

지난번 산행때 없었던 산악인의 추모비가 보인다.

간월재 이정표

간월재(11:50)

울산광역시 상북면 이천리(배내골)와 등억리를 연결되는 고개이다.

간월재(왕봉재)는 배내골 사람들과 밀양사람들이 언양 장터로 넘어가던 고개라고 한다. 330,578㎡의 억새평원이

있으며, 억새꽃이 만발하는 가을이면 산상음악회, 패러글라이딩 등이 열려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간월산 가는길

이곳에서 라면과 누룽지를 끓여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예전과는 달리

취사가 전혀 안되고 예전에 대피소에는 화장실과 식수를 보충할 수 있는

수도를 막아 버렸다. 하는 수 없이 막걸리 한병과 사과 한개, 그리고 라면에

넗을려고 가지고 온 날게란 하나로 점심을 대신한다.

간월재 이정표.

새로 생긴 간월재 대피소

얼마전에 생긴듯한 간월재 휴게소의 영업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예전의 대피소의 수도꼭지를 막아버리고 이곳 휴게소에 모든 걸 구매하란다.

정말 밴댕이 소갈머리하고는...쯧쯧쯧. 필경 국민의 세금으로 대피소를 지어놓고선

영업을 한답시고는 민초들 위에 굴림하려는 인간들...참으로 가소롭다.

약이 올라서도 너희들 것은 못 사먹겠다. 꼴값 좀 떨지마라

간월재를 뒤로하고 간월산으로 향하는데 덕현재와 긴등재도 보인다.

 배내골에서 언양으로 덕현재, 긴등재,간월재(왕봉재)는

배내골 사람들과 밀양사람들이 언양 장터로 넘어가던 고개이다.

등에 젖먹이를 업고 손에 콩보자기를 들면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는 아낙네의 한숨,

주막에서 노름하다 소 판돈을 날린 사내의 울음이, 아이에게 줄 먹거리를 등에 맨

농부들의 웃음이 깔린 민초들의 애환이 서려잇는 고개들이다.

간월재를 뒤로하고 간월산으로 향하는데 덕현재와 긴등재도 보인다.

풀섶에 피어있는 용담이 오랫만에 여유로운 산행을 하는 산꾼에게 유혹의 꼬리를 친다.

 간월공룡능선의 모습 

간월산에서 배내봉으로 이동하다 우측에 바위절벽위로 하산하는 험로가 있는데 이 능선을 간월공룡이라 한다.

지나온 간월재와 신불산의 모습

간월산 이정표

간월재에서 왕방골로 향하는 길이 뱀처럼 보인다.

 왕방골에 아래에 죽림굴(竹林窟)이 있다.

간월재 서쪽의 왕방골에 있는 죽림굴은 구한말 천주교신자들이 관의 박해를 피해서

동하던 장소로 로마의 지하교회인 '카타곰베(Cata combe)'와 유사한 곳이라고 한다.

간월산(肝月山1083m:12:40)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배내골과 등억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북쪽에 가지산을 두고 서쪽으로 재약산을 바라보며 남쪽으로 신불산과 맞닿아 있으며

간월산의 간(肝)은 "곰"등과 함께 우리민족이 써오던 신성하다는 뜻을 가진 말로서

 월(月)은 넓은 평온을 뜻하는 말로 주변에는 널찍한 억새밭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울산지명사에는 왕봉재에서 긴등고개 사이의 해발1083m 의 고봉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상북 화천에서 배내에 걸쳐있다라고 지리적 위치를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왕봉재라함은 지금의 간월고개이고 긴등고개는 간월산에서 배내고개까지를

 두고하는 말인것 같다. 간월산은 또다른 이름으로 단조봉 또는 왕봉이라 부르기도 하나

이는 신불산을 일컫는 것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라 한다.
주변으로 홍류폭포 등의 절경을 거느리고 있으며 최근 자연휴양림이 조성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 간월산에서 발원해 언양 쪽으로 흐르는 시냇물 작괘천은

 각양각색의 바위들 사이로 옥류가 굽이치는 아름다움의 절경이다.

간월산과 신불산. 기슭의 등억온천은 게르마늄 함량이 높아 피부병과 무좀에

 특효가 있고 당뇨와 고혈압, 신경통 등에도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월산은 바람도 많고 사연도 많은 눈물겨운 곳이다.

 왕방골에는 죽림굴(竹林窟)이 있는데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믿음을 이어가던 곳이다.

로마시대 지하교회 카타곰베 (Catacombe)와 같은 역할을 했던 곳으로

조선시대 천주교 신자들의 고달픈 삶을 엿볼 수 있다

간월산을 포함한 영남알프스 일대는 빨치산과 토벌대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던 아픈 역사의 장소이기도 하다.

간월산에서 배내봉 가는 길에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어제 지나온 능동산과 그 너머 가지산이 보인다.

지나온 간월공룡능선의 모습

날씨가 꽤나 무덥다. 지나온 간월산이 자꾸만 멀어진다.

배내봉(966m:13:40)

배내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져서 배내고개로 향한다.

저 건너에는 어제 지나온 능동산이 보인다.

배내고개(14:00)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와 덕현리 사이에 있는 경계고개이다.

배내(梨川)는 '하늘의 기운을 받는 곳'이란 뜻을 가진 지명으로 배내골에 살고 있는

토착민은 아직도 배내골이 신성스러운 기운이 남아 있는 곳으로 여기고 있다.

배내고개에 동료산꾼들보다 좀 일찍 내려와서 화장실 세면기에서 머리를 감고

타올에 물을 적셔서 화장실 안에 들어가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고 노점에서

캔맥주 하나를 마시니 맛이 정말이지 기가 막힌다. 잠시후에 동료 산꾼이 도착하고

어제 새벽에 탔던 택시를 콜하여 언양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배내고개 아래에는 새로 터널이 뚫려있고 이곳을 따라서 내려오니

석남사가 나오고 덕현리와 궁근정리를 지나 언양 터미널에 도착한다.

택시 요금이 18,600원이 나오는데 20,000원을 택시를 운전하는

어르신에게 드리니 잔돈대신 5000원 주고 샀다는 밀감 한봉지를 주신다.

언양시외버스 터미널(15:50)

시외버스 터미널 매점에서 우유와 도넛츠 하나를 먹고 버스에 오른다.

언양읍내의 모습

시외버스 시간표

언양에서 동서울 오는 버스표

언양에서 버스가 출발하여 양산을 경유하여 김해~대구간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경부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경유하여 밤 10시 조금 지난 시간에 서울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