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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백두대간 2차 남진(終)

백두대간 남진 제11구간 - 피재에서 화방재까지

by 범여(梵如) 2013. 10. 28.

 

어머니 품안보다도 더 포근한 함백산을 넘으며...

 

☞ 산행일자:  2013년 10월 26일~27일(무박산행)

☞ 산행날씨:   맑은날씨에 약간추움

산행거리: 도상거리 21.5km / 8시간 소요

☞ 참석인원: 봄.여름.가을.겨울산악회 13명과 함께

☞ 산행코스: 피재-삼대강꼭지점-낙동정맥 분기점-1145m봉-매봉산(천의봉)

              비단봉-쑤아밭령-1,233m봉-1256m봉-안부사거리-금대봉-두문동재

              은대봉-제1쉼터-제2쉼터(적조암 갈림길)-중함백-제3쉼터-함백산

              함백산기원단-만항재-1238m봉 -수리-화방

소 재 지: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 정선군 고한읍 / 태백시 화전동,창죽동,

             삼수동, 혈동 /영월군 상동읍

 

지난주에 영남알프스 태극종주를 하면서 오랫만에 비박을 하였더니 기분은 쿨하고 좋았으나

20kg가 넘는 베낭에다 55km의 장거리 산행에 베낭무게 줄여 보려고 식수를 안가져 가고 도랑에서

개울물을 먹여댔더니 그게 탈이 났는지 1주일내내 장염으로 고생을 한다.

아직도 하루에 5번 이상을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면서도 저녁에 대간길을 나서기 위해 베낭을 꾸린다.

사실 낼(27일:일요일)이 내가 존경했던 해명당 무진장 큰스님의 49재이라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지난번에도 친구 아들 결혼식이라 빠져서 어쩔 수 없이 49재에 불참하고 대간길에 동행하기 위해

재역에 도착하였는데 오늘따라 동료산꾼들이 이런저런 행사로 인하여 버스에 좌석이 텅텅 빈채로

14명의 정예 멤버만 강원도로 향한다.

 

큰 스님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당신의 큰 가르침. 절대 잊지는 않겠습니다.

버스는 영동 고속도로를 달리다 중앙고속도로 치악휴게소에 도착할 동안에 깊은 잠에

빠져있다가 이곳에서 저녁을 먹지 않은 탓인지 배가 고파서 해물볶음밥을 시켜먹고 버스에

올라  다시 잠에 빠진다... 1시간 반이상 걸린 다음에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오늘의 들머리인 피재에 도착한다.

 

 

오늘의 산행구간 지도와 고도표

버스가 태백에 접어들어 피재로 향하는 꼬불꼬불한 길은 올라가는 바람에 잠에서 깬다.

잠시 후에 피재라고 부르는 삼수령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예전에

북진길에 맥주를 시원하게 마셨던 삼수령 휴게소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고

하늘에는 음력 구월 스무사흘날의 하현달과 초롱초롱한 별이 금방이라도 쏟아질듯 하다

피재(980m:03:20)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서 태백시 삼수도으로 넘어오는 고개로 35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예전에 삼척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이상향으로 알려진 황지(지금의 태백)로 넘어온 고개란

뜻에서 피재라고 알려진 이 고개는 지금은 삼척을 거쳐 동해로 빠지는 오십천과 낙동강과

한강의 분기점에 있어 삼수령(三水嶺)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태백시가 피재의

어감이 좋지 않다며, 한강·낙동강·오십천 세 물길이 갈리는 곳이란 뜻의 삼수령으로 바꿨다

피재라는 지명이 붙기전에는 사람의 왕래가 없는 고독한 산이란 뜻에서 고적령(孤跡嶺)이라 했다고 한다

삼수령 조형물

조형물에는  '빗물의 운명'이 적혀 있다.'하늘이 열리고, 우주가 재편된 아득한 옛날 옥황상제의 命으로

빗물 한 가족이 大地로 내려와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겠노라고 굳게 약속을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 빗물 한 가족은 한반도의 등마루인 이곳 三水嶺으로 내려오면서 아빠는 낙동강으로 엄마는

한강으로 아들은 오십천 강으로 헤어지는 운명이 되었다. 한반도 그 어느 곳에 내려도 행복했으리라.

이곳에서 헤어져 바다에 가서나 만날 수밖에 없는 빗물가족의 기구한 운명을 이곳 三水嶺만이 전해주고 있다

오늘부터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다고 하여 동계 자켓을 입고 단단히 준비를 하였는데 이곳에

도착하니 온도계가 영상 3도를 가리키고 있지만 바람이 불지 않은 탓인지 생각보다는 춥지않다.

이곳에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좀 푼 다음에 장비를 점검한 다음에 길을 건너 산행을 시작한다.

피재에서 좌측 도로를 따라서 올라서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서

자켓을 벗어 베낭에 넣은 다음에 산행을 시작한다

피재에서 도로를 따라 7분 정도를 오르다가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등로로 접어든다.

이곳은 이정표가 너무 잘되어 있어서 알바할 위험이 전혀없다.

좌측으로는 목장의 철조망이 계속해서 만나고 북성초지라는 표시판이 있다.

삼수령 목장(03:30)

산행시작 10분만에 삼수령 목장 초입을 만나는데 이 목장은 예수원의 소유인 모양이다.

대부분의 산행지도에는 주로 예수원 목장으로 표기가 되어있다.

잠시후에 또다시 도로로 들어섰다가 곧바로 등로로 접어든다.

이곳에는 4년전에 없었던 삼대강꼭지점이란 걸 만들어놨다.

삼대강 꼭지점(03:40)

이곳이 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꼭지점이란다.

한강은 이곳에서 흘러 서해로 가고, 낙동강은 남해로, 오십천은 동해로 간단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삼해(동해, 서해, 남해)로 흘러드는 곳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20m 정도가다가 좌측 능선으로 오른다.

삼대강 꼭지점 조형물

낙동정맥 분기점(03:50)

洛東正脈이란?

백두산에서 남으로 뻗어내려 지리산까지 내려가는 백두 대간이 피재에 이르러 양분되면서

 대간은 서쪽으로 꺽어지며 함백산(1573m)으로 맥을 잇고, 또 한가닥은 동남쪽으로 갈라져

나가면서 백병산(1259m)으로 맥을 이어나가는데 바로 이 줄기가 동해와 나란히 달려

다대포 몰운대 낙동강 하구까지 뻗어 나가며 낙동정맥을 일구게 된다.

 

낙동정맥은 국내 제일의 오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낙동강의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의

황지연못과 한몸이 되어 남쪽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산줄기다.

낙동강의 수계를 형성하는 유역권 전체가 낙동강 물줄기를 중심으로

한쪽은 백두대간이고 한쪽은 낙동정맥이 된다.

 

낙동정맥은 경상도 전체를 가로 지르는 거대한 산줄기로 아직까지 제대로 조사나 연구된 바 없는

산줄기로 우리의 인식에서도 '미지의 세계' 로 남아있는 자연의 보고다.

지도상의 능선 거리만도 약 410km이고 고도와 기복을 감안한 실제거리는 약 700km가 넘는다.

이곳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매봉산으로 향한다.

낙동정맥을 시작하면서...(2010년 1월 10일 사진)

어둠속에서 만난 고랭지 채소밭

이곳은 지나온 강릉 안반데기와 지난구간의 귀네미골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고랭지 채소밭으로 규모가 엄청날 뿐 아니라(약 20만평) 풍력발전기와 함께

태백시에서 바람의 언덕이란 걸 만들어 관광자원화 하고 있는데 꽤나

성공을 거두고 있단다... 어둠속에 채소를 수확하고 난 밭에는 뭔지모를

파란풀이 많이 보인다. 채소밭가의 등로는 서리가 많이내려 상당히 미끄럽다.

잠시후 고랭지 채소밭을 지나니 넓은 콘크리트 포장 농로가 나온다.

포장도로에서 우측으로 가면 풍력발전단지가 나오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 매봉산으로 향한다.

어둠속에서도 이정표가 너무 잘되어 있어서 길잃을 염려는 없다.

대간 등로에서 20m 정도 벗어난 매봉산(천의봉)으로 향한다

반가운 시그널... 자연과 송정님 반갑습니다... 최근에 지나가셨나봐요?

매봉산(鷹峰山:1303.1m:04:20)

강원도 태백시 삼수동과 삼척시 하장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천의봉(天誼峰)이라

부르는 매봉산 아래 대명광업소가 있던 아래쪽에 작은 연못이 하나있고 그 윗쪽에

영일 정씨 묘지가 하나 있는데 금계포란형의 명당이라 하여 그곳에서 바라보면

천의봉이 (매(鷹)처럼 보이고 이렇 때 매나 수리가  이곳 명당을 노려보고 있어야

된다는 풍수론 때문에 인위적으로 천의봉이 매봉산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또다른 설은 옛날 어느 때인가 강릉 일대에 해일이 일어 산봉우리에 매 한 마리만

앉을 수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침수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 봉우리의 이름이 매봉산이 되었다고 한다

 

여암 신경준 선생의 山經表에는 수다산(水多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매봉산 산줄기에서 3개의 강줄기가 흐르고 있으니 수다산이란 이름이 어울린다.

 

 

하늘의 봉우리라는 천의봉은 영남에서 산을 거슬러 올라와  황지로 접어들면

북쪽에 가장 높이 솟아 있는 산이 천의봉이라고 한다.

 정상석 앞면에 매봉산이라 표기되어 있고 뒷쪽은 천의봉으로 기록되어 있는

일봉이명(一峰二名)으로 정상석 옆에는 삼각점과 통신탑이 있고 통신탑 뒤로는

데크목으로 만든 넓은 전망대가 있는데 황지읍의 야경과 두문동재 터널이 보인다

천의봉(天誼峰)

일명 매봉산이라고도 불리는 천의봉은 동강과 남한강의 근원이 되는 산이기도 하다. '하늘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천의봉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분기점을 이루는 산으로 그 의미가 깊다.

천의봉은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산맥
이 금강, 설악, 오대, 두타산을 만들고 그 맥이 남쪽으로 달리다가

이곳에서 이르러 두 가닥으로 갈라진다. 서쪽은 금대봉,함백산,태백산으로 이어져 백두대간이 되고

멀리 지리산까지 뻗어나간 산줄기는 해남반도의 땅끝(土末)까지 이어진다.

그 줄기는 다시 남해안을 따라 김해 구지봉까지 이어지며
동쪽 가닥은 백병산, 면산, 일월산으로 이어져 멀리 부산의 용두산까지 뻗어가는 낙동정맥의 등마
루가 된다.

천의봉이야말로 백두대간, 낙동정맥이 갈라지는 분기점이 되는 산으로 한민족의 기상이 담겨 있는 산인 것이다.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를 품고 있는 금대봉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깊고 넓은 한강의 탄생을 알리는 곳이기도 하다.

 

천의봉은 중국의 천의무봉에서 따온 것으로 고대 중국 郭翰이라는 사람이 어느 여름 밤

하늘에서 내려 온 선녀와 여러 밤을 함께 지내며 즐기다 우연히 그녀의 옷을 보니

바느질 자국이 없어 그 연유를 물은 데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매봉산 정상 삼각점

어두운 밤이라 표식이 제대로 인식이 안된다.

매봉산 정상 통신탑

데크목 광장에서 바라본 태백시 황지동의 새벽야경

두문동재 터널 가로등의 불빛

매봉산 정상에서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와 풍력발전단지로 향한다.

잠시후 고랭지 채소밭이 나타나면서 어둠속에 풍력 발전기가 보인다.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려면 연평균 풍속이 초속 5~6m는 되어야 경제성이 있는데

매봉산 바람의 언덕은 평균 8.3m라고 한다. 현재 매봉산에 설치된 풍력발전기 하나의 용량은

850kW급으로 태백시의 1,000여 가구가 쓸 수 있는 전기를 만들고 있다.

 

태백시에서 초기에 설치한 8개의 바람개비는 덴마크에서제작한 것이고, 나머지 효성이라고 쓰인

바람개비는 효성그룹이 자체 개발해 설치한 한국형 풍력발전기인데 태백시에서 인수했다고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효성 외에도 두산중공업, 현대중공업, 대우해양조선-유닉슨 등이 그린에너지인

이 풍력발전기 시장에 직간접으로 뛰어든 상태라고 한다,

 

이 곳을 한국관광공사가 가볼 만한 관광지로 꼽은 곳이라고 하는데 어두워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바람개비 모형물이 만들어져 있다.지난 2009년도 북진 때에는 멋진 풍차도 있었는데

오늘은 어두워 보지못했는지 아님 철거를 했는지 도무지 보이지가 않는다.

바람의 언덕(04:30)

엉뚱한 곳에 서있는 매봉산 정상석(04:40)

바람의 언덕에서 충력발전기를 따라 도로를 걷는데 예전에 없던 매봉산

정상석이 나오는데 참으로 황당하다... 물론 관광객 유치를 위해 세운지는

몰라도 돈 몇푼을 벌려고...  제발  惑世誣民하지 마시길.

가짜 매봉산 표시석에서 등로로 내려서니 어둠속에 넓은 고랭지 채소밭을

만나는데 등로에 서리가 많이 내려서 상당히 미끄러워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농기계보관창고(04:50)

고랭지밭을 지나니 다시 포장된 농로가 나오면서 농기계보관창고가 나오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오기 시작하여 동료산꾼이 간 다음에 넓은 채소밭에 들어가서

볼 일을 보는데 계속해서 설사가 나오면서 시원한 느낌이 없다.

볼 일을 보고 농로에서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서 포장도로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포장도로에서 우측으로 꺽어져서 고랭지 채소밭을 가로질러  등로로 접어든다.

등로에 들어서면서 만난 늦통목이재  이정표 (05:03)

다시 오르막을 오르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고 완만하게 어둠속을 걷는다.

다시 능선으로 내려서니 비단봉 구조위치 안내판이 나오면서 비단봉에 오른다.

이곳은 정말 멋진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인데 비단봉 아래로 지나가는 38번국도

가로등 불빛만이 산꾼을 반기고 있다. 일출이 가까워지면서 자꾸만 추위가

엄습해오기에 베낭에서 자켙을 꺼내입고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비단봉(1281m:05:15)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에 위치한 봉우리로 주위 전망이 멋진 곳이긴 하지만

야심한 새벽의 어둠속에 아쉬움만 남기고 추위를 피해 급경사를 내려선다.

 

추전마을 고랭지채소 단지의 서족 봉우리로 채소밭의 경계에서 능선길로 들어와 15분 정도면 도착한다.

남쪽 아래로 추전역이 아스라하게 보인다. 정상에는 잡목이 많아 전망이 좋지 않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내려서면 직벽에 가까운 암릉이 나타나는데 높지는 않다.

멀리서 보면 비단처럼 부드러운 곡선 형태여서 붙여진 이름같다. 우리말 지명이다.

수아밭령(水禾田嶺:1115m:05:35)

수아밭령은 한강 최상류 마을 창죽과 낙동강 최상류 마을인 화전을 잇는 백두대간 상의 고개다.

옛날 화전에서 벼를 재배한 관계로 수화전(水禾田)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가 다시 줄여서 화전(禾田)이 됐다.

 지역민들은 ‘쑤아밭’이라고 불렀다고 안내문에 소개하고 있다.

수화밭고개라도 하는데 옛날 화전으로 밭벼를 재배하던 관계로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수화밭령이 구개음화 현상에 의해 수아밭령이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쑤아밭령의 유래 표시판

쑤아밭령의 노거수

이곳을 넘던 화전민들의 애환이 서린 고개에는 커다란 노거수 한그루가 고개를 지키고 있다.

아직도 어둠이 걷히지 않고있고 민초들이 넘던 고개를 지나 금대봉으로 향한다.

수아밭령에  서있는 이정표

1233m봉 삼각점(05:50)

1256m봉(06:05)

계속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는데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면서

오늘 같이 걸어가는 산까치, 깔끄막, 시화님과 휴식을 취하면서 초코파이와

밀감 하나를 먹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에 금대봉으로 향하는데

저 멀리 금대봉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서너개의 잔봉을 오르락내리락 한 다음에 금대봉에 도착한다.

금대봉(金臺峰:1418.1m:06:40)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과 태백시 삼수동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금대봉이라는

이름의 어원은 그 옛날 정암사를 세울 당시 모셨던 금탑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또다른 설은 옛사람들이 이곳을 '신이 사는 곳'이라 하여 금대봉이라 하였다고 한다.

 '금'은 '검'이고 '검'은 '신'(神)을 의미하고 '금대'는 곧 '검대'와 같은 말이란다.

'검대'는 '신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고 그러니까 금대봉은 '신(神)이 사는 대(臺)'라는 뜻이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가 있고 야생화 온 산에 흐드러져 산 아래에서는 볼 수 없는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다.


 

금대봉은 자연 생태계 보고로 약26만평의 산상의 야생 화원 으로 환경부가 자연 생태계 보존지역 으로

지정 되여 있다  한강과 낙동강 발원지 금대봉 정상 에서 좌측 으로 내림길에 자리한 고목나무 샘 에서

흘러 내린 물이 북동쪽 검릉소로 모인다 검릉소로 모여든 수온9c물은 하루에 200톤 씩 분출 된다고 한다

이물은 정선군 임계면과 충주을 거쳐 장장 515km흘러 한강으로 흘러들고 동남쪽 너덜샘 에서 흘러든

물은 강원도 태백시 黃池에 모여 낙동강 발원 하는 양강 발원지 이다

금대봉 정상에 서 있는 초라한 양강발원봉 표시목

금대봉에 올라 오늘 처음으로 동료산꾼들이 다 모였다.

예전 북진때 있었던 산불감시초소는 철거되고 발원봉 표시목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거기다가 삼각점도 표식을 인식하지 못할만큼 망가져 있고 모든게 명성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잠시 후에 동해쪽에서 일출이 시작되고 동료산꾼 원일님이 사진을 찍어준다.

금대봉에서 맞이하는 일출

금대봉 삼각점

 동료산꾼 원일님이 찍어주신 인증샷

백두대간 분수령을 끼고 자리 잡은 강원도 태백은 ‘강의 고향’이다. 백두대간 금대봉(1,418m)

기슭의 검룡소(儉龍沼)는 한반도의 젖줄인 한강의 발원지고,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황지(黃池)는

영남 땅을 적시며 흐르는 낙동강의 발원 연못으로 유명하다.

창죽동 검룡소 주차장에 차를 대고 이깔나무 빼곡한 널따란 산길을 1.3km 걸어 오르면 검룡소가 나온다.

 

금대봉의 고목나무샘·물구녕석간수·제당굼샘 등에서 처음 솟은 샘물은 각각 지하로 1~2km쯤 흘러 내려와

검룡소에서 솟구치는데, 웬만한 샘물은 엄두도 못 낼 하루 2,000~3,000톤이나 되는 양이다.

 

예전엔 조선 시대에 최상품의 샘물로 인정받던 평창 오대산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었으나,

1980년대 정밀측정 결과 검룡소에서 흐르는 물줄기의 길이가 32km나 더 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묻혀 있던 검룡소는 일약 한강의 발원지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검룡소는 오랜 세월 동안 솟아 흐른 물살로 인해 깊이 1~1.5m, 넓이 1~2m의 석회암반이 푹 파였는데,

곧바로 20m에 이르는 와폭이 계단을 이루며 용틀임한다.

또 검룡소에서 솟은 검룡수(儉龍水)는 사계절 내내 9℃를 유지하기 때문에 물이 흐르는

 주변 바위엔 한겨울에도 푸른 이끼가 자라고 있다. 물맛 역시 그윽하게 혀끝을 감돈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한강 상류를 향해 거슬러 오르다가 검룡소에 이르러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갈 곳이 없음을 알고 그 자리에서 용이 되는 수업을 쌓았다고 한다.

이때 이무기가 못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 친 흔적이 검룡소에서 쏟아지는 와폭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검룡소에서 머물며 용이 되는 수업을 쌓던 이무기가 부근에서 풀을 뜯다가 물을 마시러 오는

소들을 잡아먹자 화가 난 마을 사람들이 검룡소를 메워버렸고, 이무기는 결국 용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검룡소는 1980년대에 복구되었다.

 

이렇듯 특별한 전설이 서려있는 검룡소는 어느 계절에 가도 항상 신령스러운 분위기가 철철 넘친다.

온갖 야생화가 다투어 피어나는 요즘 같은 계절이라면 식물 생태계의 보고로 꼽히는

금대봉의 아름다운 풍광도 덤으로 감상할 수 있어 더없이 좋다.

금대봉 정상 이정표

금대봉은 태백산과 함백산 그리고 청옥, 두타산의 가운데 있는 봉우리다.

태백산은 '큰 지혜를 품은 산', 함백은 '지혜를 널리 펴는 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또한 두타산은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버리고 부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한다는 의미'이고 청옥산은 '극락'을 의미하고 있으나 의미 깊은 이름에도 불구하고

금대봉의 정상은 ‘신이 머물던 산'이라며 경외하던 산의 모습도 보잘 것 없어 보인다.

금대봉에서 일출을 감상한 뒤에 조금 오랫동안 봉우리에 있었더니만

추워서 서둘러 베낭을 메고 두문동재로 내려간다.

금대봉에서 두문동재로 내려가는 능선을 '불바래기 능선'이라 부르는데

이는 과거 화전을 일구기 위해 사면에 불을 지르고 그 불을 끄기 위해

반대사면에 맞불을 놓은 후 이 능선에서 그 불들을 바라본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목나무 샘 갈림길(06:55)

금대봉에서 불바래기 능선을 내려오는 길은 내린 서리로 상당히 미끄럽다.

7분정도 걸어 내려오니 넓은 임도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는 금대봉

아래에 있는 한강의 발원지라는 고목나무 샘으로 가는 길이다.

 

한강발원지 고목나무샘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택리지' '대동여지도' 등에 오대산의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자라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 한강 하구에서 가장 긴 물줄기 끝에 위치한 지점이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 북쪽 계곡 최상단 정상

가까이에 있는 고목나무샘이다. 물이 나는 샘 근처에 고목인 수령 200년된 신갈나무 고목이 있어 붙인 이름이다. 

공식적으로는 고목나무샘과 인근의 제당굼샘(제당궁샘)에서 흘러나온 물길이 땅속으로 잦아들었다가

다시 솟아나는 검룡소를 한강의 발원지로 보고 있지만 진정한 한강발원지는 최상단 물길이 열리는 고목나무샘이다.

오대산에서 흘러내리는 오대천, 황병산에서 흘러 내리는 송천(松川), 금대봉에서 흘러내리는

골지천(骨只川) 등 세 물줄기의 합수점에서 길이를 계측한 결과 금대봉에서 흘러 내리는 골지천이

가장 길고 그 골지천의 최상단 물길이 열리는 곳이 고목나무샘이다.

이곳 금대봉에서 두문동재, 은대봉을 잇는 능선은 야생화가 많아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곳인데

이젠 한겨울로 접어드는지 야생화가 만발했던 곳엔 서리가 만발하다

금대봉과 두문동재 그리고 은대봉으로 이어지는 이곳 야생화는 유명한 곰배령에도 뒤지지 않는다.

환경부와 전문학자 조사단은 1993년 금대봉·대덕산 일대를 조사한 후 이 곳이 우리나라 자연생태

자원의 보고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 지역 126만평을 자연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하고,

무분별한 출입과 산림 훼손을 막기 위해 현재는 '사전 예약제'로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지역에는 꿩의다리, 기린초, 터리풀, 금강제비꽃, 당단풍, 도라지모시대, 홀아비바람꽃, 종덩굴 등

한국특산식물 15종과 모데미풀, 가시오갈피, 미나리아제비, 양지꽃, 쐐기풀 등 희귀식물 16,

고려엉겅퀴, 도둑놈의갈고리, 박쥐나물, 층층나무, 갈퀴나무, 짚신나물, 흑느릅, 동자꽃, 호랑버들,

모시대 등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식물들이 자생하면서 꽃을 피워 '산상화원'이란

이름으로 불린단다.

임도를 따라서 편하게 두문동재로 향하는데 백두대간  강원도 구간중에 가장 편한 구간이다.

산행이라기보다는 트레킹 코스에 가까울 정도지만 아쉽다면 낙엽이 다 저버려서 주위가 삭막하다.

오늘 산행에는 공교롭게도 여성산꾼이 다 빠져버려 유일한 홍일점인 시화님

시인 류시화님을 너무 좋아해서 닉이 시화라신다... 완전히 여왕대접을 받는다.

두문동재 헬기장

두문동재 헬기장에서 바라본 은대봉의 모습

드디어 두문동재가 보이기 시작한다.

두문동재(杜門洞嶺:1268m:07:05)

강원도 태백시 삼수동과 정선군 고한읍을 잇는 38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로 우리나라에서 자동차가 다니는

재로서는 만항재 다음으로 높은 고개이다.예전에는 차량왕래가 꽤나 많았으나 지금은 이 재 아래로 터널이

뚫리는바람에 나처럼 대간꾼이나 찾는 한적한 고개가 되고 말았다.

 

두문동(杜門洞) 본래 북녘개풍군의 지명이다.

개성 송악산 서쪽 자락 만수산과 빈봉산에 각각 곳의 두문동이 있었다.

'개풍군지'에 따르면 만수산의 두문동에는 고려의 문신 72인이 은둔했고, 빈봉산의 두문동에는

무신 48인이 숨어 살았다고 전한다. 이들을 출사 시키려고 회유하던 조선의 태조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자 곳의 두문동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불에 죽고 살아남은 일곱 충신이

흘러간 곳이 바로 정선의 고한 땅이었다. 그들 또한 변함없이 두문불출하였으니 이름 역시 두문(杜門)이다

 

정선땅에 두문동(杜門洞)이라는 자연부락이 있어 이곳 이름에서 연유된 것이다.

두문동재는 화전동 호명골에서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두문동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두문동에 있던 고려 유신(遺臣)들이 넘던 고개에서 지명이 유래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불사이군(不事 二君)을 외치던 고려 유신들은 두문동으로

들어가 과거 시험에 응하지 않는 등 사회와 단절, 신왕조에 출사하기를 거부했었다.

조선이 이를 강력하게 핍박해오자 전오륜(全五倫),  변귀수(邊貴遂), 김위(瑋) ,이수생(李遂生) 신안
(申晏) 김충한(沖漢) 고천우
(高天佑) 등 7 명은 이곳으로 피신했었다.

 

이에 조선왕조는 군사를 풀어 두문동을 포위하고 모두 불살라 죽였다고 전한다. 이후 세인들은 이들 72명의

충신들을 일러 두문동 72현이라 부르며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말로 그들의 충절을 기렸다.

두문불출이란 말의 유래가 이곳이라는 설이 있어 유래한 이름이다.

 

일명 '불바라기' 또는 '싸리재'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잘못된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다.

호명골 안쪽에서 싸리밭골로 넘어가는 싸리재라는 고개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고려 유신 7 명이 은거해 있던 정선군 남면 낙동리 마을은 거칠현동(居七賢洞)으로 불렸으며

이들이 한맺힌 심정으로 지어 부르던 한시는 <정선아리랑>으로 전승됐다.                                          

정선군은 1997년 정선아리랑 계승발전과 이들 고려 유신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거칠현 유적공원을 조성,

공원 내에 칠현비를 세웠다. 600여년 전 고려 유신들의 애절한 사연이 깃들어 있는 두문동재가 근래 들어선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주머니를 털린 사들이 한숨을 내쉬며 넘나드는 고개가 되고 있기도 하다.  

두문동재에서 오랫만에 단촐하게 모든 산꾼들이 같이 아침식사를 한다.

날씨가 추운 탓인지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서 버너를 꺼내 떡라면을 끓여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하는데 자꾸만 옆에서 막걸리와 소주를 권하지만

아직도 장염으로 고생이 심한 탓에 정중하게 사양을 한다.

 

오늘은 거리도 짧고 코스도 편한 탓인지 다들 여유가 있어 보인다

50분간의 여유로운 아침식사를 마치고 따끈한 모닝커피에 후식으로

사과까지 먹은 다음에 도로를 가로질러 은대봉으로 향한다.

두문동재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을 그냥 지나갈 수 없다.

고사성어가 대개 중국에서 유래하는데 토종인 듯해서 반갑다. 그

러나 반가워하기에는 얘기가 묵직하다. 고대 중국의 백이숙제(伯夷叔齊) 설화에

불사이군(不事二君, 두 임금을 섬기지 않음) 정신이 깔려서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조가 개국하는 무렵 송도(개성) 두문동에서 칩거해 새 왕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다가 선비들이 화를 입었고 그 일부가 정선땅으로 피신했다.  

 

우리의 대표 민요라 할 아리랑 중에 정선아리랑이 가장 오래됐다고 한다.

정선아리랑(아라리)의 시원(始原)이 바로 600여 년 전 두문불출한 사람들 사건이라고 한다.

그들 나름의 의(義)를 생각해서 부귀영화 대신 초로에 묻혀 살다 죽은 사람들 얘기.

거기다가 남녀 간의 사랑 얘기, 민초들의 온갖 애환을 버무린 것이 정선아리랑인 듯하다.

두문동재를 지나는 38번 국도를 가로질러 은대봉으로 오르는 도로에도 차단기가 내려져 있다.

잠시후에 대간길로 오르는 숲은 막아놨고 우회인 임도로 가라고 했놨지만

그래도 우린 정상적인 대간길로 올라서서 대간 산줄기를 이어간다.

두문동 갈림길(08:05)

정통 대간 숲길을 지나서 능선에서 내려서니 조그만 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정선군 고한읍 두문동이 나오고 이

능선 아래로 두문동재 터널이 지나가는 곳이다.

가야할 은대봉 정상이 보이고...

오늘 아침에 지나온 능선의 모습

백두대간 설악산권이 남방식물과 북방식물의 교차구역으로 대표된다면,

남쪽으로 내려온 태백산권은 야생화와 주목으로 대표되는 구간이다.

함백산과 그 주변 금대봉을 중심으로 한 인근지역은 한국 최고의 야생화 군락지로 꼽힌다.

금대봉과 대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자연생태경관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주목 군락지인 태백산은 2011년 산림유전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천연기념물 주목군락지로 유명하다.

주목은 특히 ‘산림행정 3.0’ 정책 일환으로 추진하는 산림생태축 복원 관련 보호 수종이다

 

백두산에서 뻗어내려 온 백두대간 태백산권은 아직 강원도 고산의 위력을 그대로 과시한다.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함백산(1,573m)을 기점으로 북쪽으로는 금대봉(1,418m),

남쪽으로는 태백산(1,567m)이 버티고 있다. 태백산과 함백산 사이에는 화방재, 함백산과

금대봉 사이엔 두문동재(싸리재), 금대봉 북동쪽엔 낙동정맥이 갈래를 치는 피재(삼수령)가 있어

이 높은 산봉들이 백두대간을 이어주고 있다. 특히 태백산권의 피재는 백두대간에서 분기하는

낙동정맥의 결절점으로서 중요한 의미와 특징을 지닌다.(月刊 山에서 기사 인용)

은대봉 오르면서 동료산꾼 원일님이 찍어준 사진

은대봉 오름길 아래에는 우리나라에서 철길 터널로는 제일 길다는

정암터널(1505m)지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높은 위치한 해발 855m에

위치한 추전역이 태백시 화전2동 싸리골에 있다

태백지역에 오면 최대 최고 말이 자주 쓰인듯하다

최대의 탄광지 최고로 높은곳에 위치한 추전역  최고의 만항재 최고의 정선카지노 최고의 정암터널

최고의 고냉지 겨울이 가장 긴 고장 최고의 고원 휴양도시 모두 태백에 관한 내용이다

오늘 아침에 내가 걸었던 길

금대봉으로 올라 가는 갈림길과 이곳 구 도로(두문동재)사이 산 속으로 2개의 터널이 지나고 있다.

먼저 만나는 것이 나중에 개통한 싸리재 터널이고 그 다음 것이 먼저 완공한 두문동재 터널이다.

두개의 터널은 각기 2차선으로서 일방 통행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서 있는 이곳 두문동재는 맨 처음 생긴 구 도로이며

고한 쪽에서 올라오면 산 비탈을 돌고 돌아 험하고도 험한 꼬부랑길 이다.

고개 마루에서 태백 쪽으로 내려서면 싸리재, 싸리밭골이라는 마을을 만난다.

그 싸리밭골 가운데 추전(싸리 추, 밭 전) 역이 자리하고 있다.

산에 오르면서 늘 희열을 느낄 땐, 내가 왔던길을 뒤돌아 볼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내 조그만 두 다리가 저렇게 많고많은 능선을 걸었는지...그 맛에 자꾸만 산에 미치는가보다

다시 임도를 만나 미끄러운 길을 치고 오르니 은대봉이 나타난다.

은대봉(銀臺峰:1442.3m:08:20)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삼수동의 경게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금대봉과 마주보고 있으며 상함백산이라 부르기도 하며 지명의 유래는

정암사의 금탑, 은탑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곳은 금대봉, 대덕산, 두문동재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야생화 군락지로 유명하면

천상의 화원이라는 곰배령보다도 야생화 종류가 더 많다고 한다.

정상에는 헬기장과 삼각점이 있으며 봉우리 남서쪽 사면에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정암사(淨巖寺)가 자리잡고 있으며 저멀리 하이원 스키장과 장산콘도가 보인다.

은대봉 정상 헬기장

정암사를 세울 때 조성된 금탑, 은탑에서 금대봉과 은대봉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두문동재(예전 이름 싸리재)를 통해 바로 이웃에 있는 금대봉과 이어진다.

정상에는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북쪽으로 금대봉·비단봉·천의봉, 동쪽으로 태백시와 백병산·면산·묘봉으로

이어진 낙동정맥, 남쪽으로 중함백산, 서쪽으로 백운산·두위봉 등이 보인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아래로는 죽령터널에 이어 한국에서 두번째로 긴 정암터널(4,505m)이 지나간다.

 

낙동강의 원류 발생지는 이곳에서 가까운 천의봉의 동쪽계곡에 자리한 너덜계곡으로 공식 인정되었지만

은대봉의 은대샘에서 태백시 화전동쪽으로 흘러내리는 황지천(黃池川)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산자락에는 태백광업소와 한국 기차역 중 제일 높은 곳(855m)에 위치한 추전역이 있다. 부근에 정암사, 용연동굴이 있다.

은대봉 정상 삼각점(태백 305 / 2004재설)

은대봉 정상에서 자꾸만 정암사 쪽으로 눈길이 간다.

30여년전부터 불교에 심취하여 이 절, 저 절을 다니면서 공부한답시고

껍적거렸지만 알맹이는 하나도 못건지고 겉만 번지르르 한 내 몰골이 초라하다.

 

12~3년전인가 눈이 엄청나게 쏟아지던 날  음력 정월에 영월에 있는

지장사 사자산 법흥사 그리고 저 아래 정암사를 순례한 기억이 아련하다.

법흥사 주지셨던 도완스님에게 새뱃돈으로 빳빳한 천원을 받았던 기억과

정암사에 들려서 관음전에서 도반들과 신묘장대다라니 108독을 하면서

목탁을 들었다가 재가자가 목탁을 친다고 스님에게 혼났던 기억까지...

 

오늘이 마침 지난 9월초에 원적하신 혜명당 무진장 큰스님의 49재인데

이렇게 산에 왔으니... 큰 스님 죄송합니다. 스님의 가르침 늘 잊지않고

初心으로 사는거 잊지 않겠습니다 

정암사(淨岩寺)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태백산(사실은 함백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한다.

신라 선덕여왕 5년(636년)에 자장율사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전수받아 643년에 귀국한 뒤 금탑, 은탑, 수마노탑

3기를 세우며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정암사에는 적멸보궁과 수마노탑(보물 410호)이  있다.

 

사적기(事蹟記)에 의하면 자장율사는 말년에 강릉 수다사(水多寺)에 머물렀는데,

하루는 꿈에 이승(異僧)이 나타나 내일 대송정(大松汀)에서 보리라.”라고 하였다.

아침에 대송정에 가니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내현하여 태백산 갈반지(葛磻地)에서 만나자.” 하고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어느 날 칡넝쿨 있는 곳에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이곳이 갈반지라 이르고 구렁이를 제도한뒤

석남원(石南院)을 지었는데, 이 절이 정암사이다.

 그후 산정에다 불사리탑(佛舍利塔)을 세우려 하였으나, 세울 때마다 붕괴되므로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가 끝나는 날 밤, 눈 덮인 산위로 칡 세 줄기가 뻗어 내려와 지금의 수마노탑(水瑪瑙塔적멸보궁·

사찰터에 멈추었으므로 그 자리에 탑과 법당과 본당(本堂)을 세우고,

이 절을 갈래사라 하고 지명을 갈래라고 했다고 전한다.

 

* 5대 적멸보궁

佛家에서 적멸보궁이란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모셔둔 건물을 말하며 따라서

적멸보궁은 일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이 없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가져와 다섯곳의 사찰에

봉안했는데 이를 5대 적멸보궁이라고 한다.

설악산 봉정암(인제),  오대산 상원사(평창),  사자산 법흥사(영월), 태백산 정암사(정선),

영축산 통도사(양산)이며 부처님 생전에는 별도의 법당과 경전이 필요없었고 부처님이

머물고 설법하면 그곳이 법당이고 경전이었다.

따라서 부처님의 진신사리이야말로 최고의 신앙대상이다.

수마노탑적멸보궁 뒤쪽의 수마노탑은 보물 제4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장율사가 643(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자장율사의 신심에 감화되어

마노석(瑪瑙石)을 배에 싣고 동해 울진포를 지나 신력으로 갈래산에 비장해 두었다가, 자장율사가

이 절을 창건할 때 이 돌로써 탑을 건조하게 했다고 하여 마노탑이라 하였다 한다.

 또한, 물길을 따라 이 돌이 반입되었다고 해서 수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탑을 세운 목적은 전란이 없고 날씨가 고르며, 나라가 복되고 백성이 편안하게 살기를 염원하는 데 있다고 한다.

현재 있는 탑은 고려시대 양식의 탑이다

 

 

우리나라의 탑은 대부분이 돌탑(石塔)인데 비해 중국은   벽돌로 쌓아올린 전탑(塼塔)이다.

수마노탑은 전탑처럼 쌓아 올렸지만 전(塼)은  아니고  물속의 마노라고 불리는 수마노로

벽돌처럼 쌓은 탑으로 가까이서보면 두께 4~7cm, 가로 5~70cm, 세로5~50여cm 의

다양한 크기로 정교하게 쌓은 탑으로 돌의 색깔도 옅은 회색에서 짙은 회색, 옅은 황토색까지

다양하며, 햇살에 따라 하얗게도 보이며 아주 신비스럽다. 

대간길 같지 않은 아주 편한 길

이곳이 해발 1,400m 가 넘는 곳이지만 대간길이라 부르기엔 너무 수월하다.

마치 우리동네의 양재천을 걷는 느낌인데 파란 산죽에다 낙엽이 수북한 길

같이 동행한 원일님은 낙엽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에 불만이다

마치 어머니의 포근한 젖가슴속같은 길을 따라 함백산으로 오른다.

새벽에는 날씨가 꽤나 추운 탓인지 곳곳에 서리 상고대가 보인다.

제1쉼터(08:55)

이곳에서 먼저가던 동료산꾼들과 만나서 과일을 나눠 먹으면서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편한 오르막을 올라 함백산으로 향한다.

이곳은 신갈나무를 비롯한 활엽수가 주종을 이루는데 노거수들의  멋진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하나같이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노거수

다시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제2쉼터가 보인다.

제2쉼터(09:25)

제2쉼터를 지나서 다시 오르막으로 치고 오르는데 이곳은

온 천지가 다 보이는 그야말로 一望無際이다. 지나온 천의봉과

금대봉, 은대봉 그 너머로 두타, 청옥산도 보이고 우측으로 눈을

돌리니 두위지맥 능선인 두위봉, 백운산, 장산도 시원스레 보인다

전망암(09:30)

전망암에서 바라본 정선 카지노가 있는 강원랜드의 모습

오늘 이곳을 지나면서 우리 선조들의 지은 지명(地名)에 대한 선견지명에

그저 감탄사가 나온다. 지금 내가 가고있는 함백산의 옛 지명이 대박산(大朴山)이다.

여암선생이 쓰신  산경표에 의하면 태백산 북쪽에 大朴山이라는 곳이 있는데

지금의 함백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크게 밝다’는 뜻의 大朴과 ‘밝음이 두루 미친다’는 咸白은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현 세대에서는 대박은 ‘크게 한건 터트린다’라 통용되고 있으니

큰 돈을 벌다’라는 뜻의 同音(동음)인 대박이 더욱 널리 보편화되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박은 오늘 가는 함백산 주변과 깊은 연관이 있기도 하다.

이 땅의 개발 초기 농업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시절 석탄을 비롯한 지하자원이 풍부한 이곳에 광부들이

큰 돈을 만지던 시절이었고 전국 농촌에서 대박을 쫓아 여기 태백산 아래 그리고 함백산 주변에 모여 들었다. 

예전엔 장성, 철암, 황지라 불리던 이곳에 커다란 탄광들이즐비하여 우리나라 술집 색시들이 가장 예쁜데가

이곳이 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또 어떤가. 대박(잭팟)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데, 함백산 주변에는 대박의 꿈을 부추기는

카지노들이 들어서 있다. 대박’에는 항상 ‘쪽박’이 따르는 법. 날마다 불야성을 밝히던 탄광촌은 시대가 변하고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쪽박이 되어 폐허로 변했으며, 잭팟(대박)의 온상(?)인 카지노 주변에는

쪽박을 차고 거리에 나가 앉은 사람 또한 적지 않다.

대박과 쪽박 그리고 大朴(함백)이라는 지명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지나온 금대봉과 은대봉이 보이는데 볼록하게 튀어나온 게 마치 울님의 젖가슴처럼 보인다

우리 산악회의 아이돌 주원아빠

중함백(1,505m:09:35)

중함백 정상엔 인공으로 깍은 듯 자연스레 깎인 넓은 돌 판 쉼터가 있다.

동남쪽으로 시야가 열려 있어 황지 시가지 일대가 내려다보이고, 함백산 방송 중계탑과 함백산 스키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중함백에서 함백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유명한 주목군락지가 있다.

오늘의 최고봉인 가야할 함백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제3쉼터(09:45)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朱木)은 주목과에 속하는

상록침엽교목으로 한국, 중국 북동부, 일본이 원산지이다.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주목에서 자연의 위대한 순리와 이치를 깨닫는다.

심재의 색이 홍갈색을 띠어 '붉은나무'라는 뜻의 주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수피(樹皮)를 삶은 물에 백반을 첨가하여 염색하면 붉은빛으로 염색된다

돌탑이 있는 너덜길을 지나니...

만항재 갈림길이 나오고...

마지막 쉼터(09:55)

함백산 오름길에서 만난 朱木

지나온 길을 아쉬워서 뒤돌아보고...

좌측으로 눈을 돌리니 4년전 걸었던 낙동정맥 능선들이 보이고...

朱木

함백산은 정상에 KBS 송신소와 kt기지국이 있어 정상까지 차가 올라온다.

함백산 정상 헬기장(10:05)

함백산 (咸白山:1572.9m:10:10)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소도동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여암신경준 선생이 저술한 <山經表>에는 대박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선총쇄록>에는 ‘상함박, 중함박, 하함박 등의 지명이 나오는데,

왜 함백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태백(太白), 대박(大朴)과 함백(咸白)이라는 말은 모두 크게 밝다는 뜻’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함백산을 묘범산(妙梵山)으로 기록했는데, 묘범산은

묘고산(妙高山)과  같은 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과 같은 뜻이다’고 전하고 있다

 

 

지하에 무진장의 석탄이 매장되어 있어 유명한 함백탄광이 있었다.

고원전지 훈령장인 대한체육회선수촌(태극분촌)이 있고 동쪽에 맑은 산소를 뜻하는

O2 스키골프리조트가 생겨서 영업중이며 하이원 스키장과 정선쪽 스키장과 더불어

강원도의 유명한 스키골프장이다. 함백산은 예부터 천제단이 있는 태백산(1567m)에

딸린 산으로 쳐왔지만, 높이는 함백산(1573m)이 더 높다.  

함백산은 국내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정암사를 품고 있는 산으로도 유명하다.

함백산 정상에서

함백산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KBS 송신소와 kt 중계기지

함백산 하산길에서 바라본 두위지맥과 운탄고도 능선

두위지맥(斗圍枝脈)의  개념과 지도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은 주천강과 합류한 평창강(유역면적 1,773.39㎢)이

골지천을 거쳐 온 한강 상류(유역면적 2,447.85㎢)와 합류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동쪽의 한강 본류를 동강이라 부르고, 서쪽의 평창강을 서강으로 부르며,

이 두 강이 합친 이후를 남한강이라 부른다.

 

동강을 둘러싸는 산줄기를 살펴보면 영월 합수점에서 계족산을 거쳐 이어지는  두위지맥(斗圍枝脈)을 따라

백두대간 만항재에 이르고, 백두대간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오대산 두로봉에 이르러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강기맥(漢江岐脈)을 따라 가다가 계방산 어깨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주왕지맥(住王枝脈)을 따라 영월의 발산에 이른다.

서강을 둘러싸는 산줄기는 영월 합수점에서 국지산을 올라 영월지맥(寧越枝脈)을 따라 한강기맥에 이르러 백두대간을

향해 올라가다가 계방산 정상을 지나자마자 남쪽으로 꺾어 주왕지맥을 따라 영월의 발산에 이른다.

이 두 강을 에워싸는 산줄기가 겹치는 한강기맥의 계방산 어깨에서 영월의

발산에 이르는 주왕지맥은 동강의 물과 서강의 물을 구분하는 경계가 된다.

운탄고도란?

한국의 차마고도라 불리는 운탄고도는 1960~70년대에 석탄차가 지나는 길로서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신동읍과 영월군 상동읍,중동면에 있는 백운산과 두위봉 일대에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임도중에서 해발 1000m  높이로 이어지는 백운산과두위봉 7부능선을

휘감는 둘레길을 개발하여 운탄고도라고 이름을 붙혔다.

 

만항재에서 새비재까지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길은 겨울철에는 심설,봄에는 야생화로

또 산악 바이크족에게 각광을 받는 길이 되었다.

만항재에서 시작하여 화절령을 거쳐 정선군 신동읍 새비재까지 이어지는 40km의 거리에 1000m가 넘는

고원지대에 길고도 완만하게 이어지면서하늘과 거의 맞닿아 상쾌한 공기와 접하며 장쾌한 산세와 함께하는 멋진 코스이다.

함백산 중턱에 자리잡은 대한체육회 태백선수촌의 모습

백두대간의 설명과 함백산의 유래,

이곳이 광산이 많은 지역이라 “불의 나라”, 낙동강의 발원지가 있는

황지못이 있어서 “물의 나라”, 수많은 야생화들의 세상이 있어서 “천상의 화원”이란다

급경사를 내려오니 편한 임도가 나오면서 정상으로는 도로를 만난다.

함백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도로

도로에서 뒤돌아 본 모습

도로의 삼거리에서 길을 건너 산불감시초소 컨테이너 뒤로 간다

화살표 방향으로 올라가니... 임도파는 우측 도로를  따라 만항재로 향하고...

돌무더기와 나무 한그루가 서있는 함백산 기원단을 만난다.

함백산기원단(10:45)

태백산 천재단은 국가의 부용과 평안을 위해 왕이 천재를 지내던 민족의 성지인 반면

이곳 함백산 기원단은 옛날 백성들이 하늘에 제를 올리며 소원을 빌던 민간 신앙의

성지였다고 전해오며 과거에는 함백산 일대에 석탄이 많아 광부 가족들이 함백산 주변으로

이주하게 되었으며 광부들이 지하막장에서 석탄을 생산하던 중 잦은 지반 붕괴사고로

목숨을 잃자 가족들이 이곳에 찾아와 무사안전을 위해 정성을 다해 기도하던 곳이란다.

기원단을 지나니 폐건물을 만나고 이윽고 송전탑이 나온다.

NO91 송전탑(10:50)

트레킹 코스같은 편안한 등로를 걷는다.

N087 송전탑(11:05)

송전탑을 내려오니 새 한마리가 희생되었다...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다시 도로를 만나 도로를 따라 만항재로 향한다.

만항재로 오르는 길

만항재(晩項嶺:1330m:11:10)

강원도 태백시 혈동과 정선군 고한읍 그리고 영월군 상동읍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국내에서 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만항재라는 지명은 원래 동네말로 능목재(늦은목이재)라고 불리던

이름을 한자로 ‘晩項(만항)’이라고 붙인 데서 비롯됐다.

 

국가대표선수들의 고산 적응 훈련 장소가 있는 만항재는 정선, 태백, 영월의 경계에 위치한 재로 함백산 줄기가

태백산으로 흘러내리면서 잠시 쉬었다 가는 곳으로, 1980년대까지 일대에서 캐낸 석탄을 옮기던 운탄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정암사 입구를 지나 고개에 오르는 동안 만나게 되는 만항마을은 본래 주변 탄광의 근로자들이 살던 마을이다.

그러나 인근 탄광들 이 문을 닫으면서 마을 주민들이 밭농사에 손을 대 삶을 이어 간다.

 

만항재의 북쪽 일대는 비교적 완만한 능선이 이어져 파릇파릇 잎이 돋아나는 봄부터 야생화 천국을 이룬다.

정제된 느낌이나 향기는 덜하지만 자유와 생명력 만큼은 오히려 정원을 장식하는 관상용 꽃이 따라오지 못한다.

그래서 천상의 화원이라 불린다.

晩學재의 뜻이라고 하며, 늦은목이재도 비슷한 뜻이라고 한다.

만항재 표시석 뒷면

이곳에 도착하니 싸이클을 타는 사람들, 이곳에서 함백산까지 산행을 시작하려

도착한 사람들, 그리고 관광객이 어울려 북새통을 이루니 번잡하기 그지없다.

우리 일행도 이곳에서 마지막 베낭털이를 하면서 과일과 떡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다시 베낭을 짊어지고 화방재로 향한다.

만항재에서 국가시설물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공군부대로 향한다.

군부대 헬기장(11:30)

군부대 철조망을 끼고 좌측으로 돌아서 가니...

쑥부쟁이가 다소곳이 피어있고...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 등로로 접어든다.

오늘은 대간길이 아닌 트레킹 코스를 걷는 기분이다.

부드러운 능선의 낙엽을 밟으며 편한 걸음을 한다.

멋진 편백나무 숲을 만나고...

우측 양지바른 곳에 무명묘지 2기가 있고...

부드러운 낙엽이 깔려있는 등로 좌.우에는 산죽이 산꾼을 반기고...

등로가에 있는 속새

속새는 산속 계곡의 물가에서 많이 볼 수 있고 습지에서 자란다.

줄기 속이 비고, 줄기에 마디와 홈이 있다.

높이 약 1m이며 줄기는 원통형이고 분지하지 않으며 진한 녹색이다.

포자낭 이삭이 줄기 끝에 달린다.줄기에는 다량의 이산화규소가

함유되어 있어 단단하며 목재나 금속 연마에 이용된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약용되어 왔으며, 이뇨 작용이 현저하여 신장성 질환에 이용되고

장출혈·이질·탈항 등으로 출혈이 될 때에도 쓰인다.눈에 백태가 끼는 것을 치료하기도 하며,

간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원예용으로 정원에 심는 경우도 많다.

창옥봉 삼각점(11:50)

특이한 점 없는 흙길의 능선봉우리와 이어지는 안부 능선 길. 표지석이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창옥봉’이란 걸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인데 삼각점이 있고 수리봉과 높이가 같아 헷갈린다

오늘 처음으로 단풍다운 단풍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수리봉(1,214m:12:00)

수리봉 정상 표시목

이 곳 수리봉 정상의 높이가 1,214m 로 표기되어 있고 조금전에 지나온 삼각점이

있는 창옥봉도 1,214m로 표기되어 있어 지도상 높이가 같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우측 전망이 좋은 곳에 도착하니 장산과 백운산이

보이는데 그야말로 滿山紅葉이다... 장쾌한 백운산이 참으로 멋있게 보인다.

우리나라 국립지리원에 등록된 백운산이 33개가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남한에만 26개가 있는데 남한의 백운산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이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두위지맥 능선에 있는 백운산(1426.3m)이라고 한다

북한에는 1600m 급도 있지만 백두대간 능선에 있는 함양의 백운산과

호남정맥 능선에 있는 광양의 백운산(1,200m급)에 비해 200m 정도 높다.

억새밭을 지나 화방재로 내려간다

드디어 오늘산행의 날머리인 화방재가 보인다.

화방재 입구 폐가 지붕밑에 걸어둔 씨래기의 모습

화방재(花房嶺:12:20)

강원도 태백시 혈동에서 영월군 상동읍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

31번 국도가 지나가며 어평재라고도 불린다. 고개에는 어평휴게소가 있다.

고갯마루 서쪽 기슭(상동읍)의 ‘어평’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했다.

어평(御坪)이라는 말은 태백산신이 된 단종의 혼령이 이곳에 이르러

 ‘여기서부터 내 땅(御坪)’이라 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태백의 지명유래>에는 고갯마루 기슭에 진달래와 철쭉이 많아 화방재라 불렀다고도 전한다.

 

예전에는 서울에서 영월을 지나 이 고개를 넘어 태백(황지)로 접어 들었는데

지금은 정선 카지노가 있는 고한에서 두문동재 터널 아래로 통과하여 황지로

가는 바람에 지금은 아주 한산한 도로가 되어 버렸다. 

 

오늘은 아주 편한 걸음으로 8시간의 짧은 시간에 산행을 마치고 맥주 한잔씩

한 다음에 황지에 있는 음식점으로 향한다.

화방재 수준점(7-14-25-09 / 2004)

수준점(BM; Bench March)이란

수준원점으로부터 표고를 정밀측정하여 영구적인 말뚝을 설치하고, 차후 부근의 수준측량에

이용할 수 있도록 그 표고를 국토지리정보원의 수준측량 성과표에 등록해 놓은 기준점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준점은 인천만의 평균해수면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인천시 남구 용현동에 수준원점을 측설하고 그 표고를 정밀하게 결정해 놓았는데, 이 수준원점의

표고값은 26.6871m이다. 아울러 주로 국도 주변에 수준점을 설치하여 놓았는데 1등 수준점은

약 4㎞, 2등 수준점은 약 2㎞간격 설치되어 있다.

화방재에서 태백시내 중심지인 황지동으로 들어와 목욕탕에서 30분정도 깔끔하게

목욕을 한 다음에 지난번에 먹었다는 닭갈비집으로 갔는데 사람이 많아 1시간정도

기다려야 한 다기에 동료산꾼 깔끄막님과 근처에 있는 황지(黃池) 구경을 간다

백두대간 은대샘(너덜샘)에서 발원한 낙동강 물줄기는 황지에서 숨을 고른 뒤 낙동강 1,300리를 흘러간다.

황지의 옛 이름은 ‘하늘 못’이란 뜻의 천황(天潢). 세월이 지나면서 황지(潢池)라 부르다

나중에 삼수변이 떨어져나가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태백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황지(黃池)’는 영남 땅을 적시며 흐르는 낙동강의 발원 연못으로 유명하다.

"낙동강(洛東江) 1,300리의 첫여울"로서, 사시사철은 물론 가뭄이 들거나 장마가 져도 연못의 물이 줄거나 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물굴에서 솟는 폭 20여m의 연못 주위를 돌아볼 수 있도록 커다란 바윗돌이 놓여 있으며,

물 속의 황금빛 잉어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黃池)

이곳은 옛 신라와 가야의 문화를 꽃 피우며 이 겨레와 순결을 같이 한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 연못은 옛날 황부자의 집터였는데 어느 날 노승이 시주를 청하자

외양간을 치고 있던 인색한 황부자는 시주대신 두엄 한 가래를 주었다고 한다.

 

이를 본 며느리가 시주를 물리며 용서를 빌자 이 집은 운이 다했으니

어떠한 일이 있어도 뒤돌아보지 말고 따라오라는 말에 며느리는 노승을

따라가다가 뇌성벽력이 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노승의 당부를 잊은 채 뒤

돌아 보는 순간 아기를 업은 며느리는 돌이 되어 버렸고 집터는 연못으로 변해 버렸다고 한다. 

황지라는 지명의 유래도 뇌성벽력과 함께 황부자 집 옛터가 연못으로 변했다는 전설에서 따온 것이다.

황지에서

 

연못의 시발점인 ‘상지 上池’인 큰 연못에는 물고기들이 유유자적하게 노닐고 있고,

상지의 물과 더불어 중지 및 하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인공이 가미된 수로를 따라

돌 거북이 등을 적시고 난 후, 저 멀리 떨어진 경남 김해평야를 향해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듯하다

 

황지에서 이곳저곳을 두루 구경하고 다시 식당으로 돌아와도 자리가 나지않아

한참을 기다린 다음에야 식사를 하는데초반부터 기분을 잡친다.

두번 다시 가고싶지 않은 불친절의 극치인 김서방네 닭갈비 식당

흔히들 사람들이 많이 북적거리고 시간을 기다리는 식당은 2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음식맛이 뛰어나거나, 아니면 친절로서 손님들의 호감을 갇는데

이곳은 1시간 30분을 기다린 다음에 식당에 자리를 잡았는데 직원들은

음식을 시켜도 본체만체, 거기다가 밑반찬은 아주 엉망이다.

거기다가 한 테이블에 4명이 앉았는데 밑반찬이라곤 김치 4조각에 고추2개

동치미국물 2그릇이 고작이다... 김치 한점 집고나면 다음에 먹을 것이 없어서

다른 산꾼들의 눈치를 봐야하고... 거기다가 더 달라고하니 몇번만에 와서는

남기면 버리니까 그런다고 한다... 정말 짜증이 난다.

이 식당의 블로그 점수로 따지면 100점 만점에 5점정도 수준이다.

이보시요 쥔장 한가지만 분명히 아시요!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간사하오. 그리고 입맛이란 대개 비슷하오

그렇게 영업하면 한번갔던 사람은 다시 안갈거요

흔히 돈이란 개도 안물고 가는거라 하지 않았소

손님은 있을때 잘해야 하시요 興하고 亡하는거 찰나이니까.

별로 좋지않은 추억만 만들고 식사가 끝난후에 서울가느 버스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