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단종비각(端宗碑閣)
태백산 망경사 용정에서 천제단(정상)으로 오르는 도중 100여미터 지점에 위치하는 비각으로
팔작지붕에 나무살로 짜여진 비각 안에는 오대산 월정사 조실 김탄허(金呑虛)스님의 글과 글씨로 된 비석이 있다.
비석에는 "조선국 태백산 단종대왕 지비(朝鮮國 太白山 端宗大王 之碑)"라고 써 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자 고을 추익한(秋益漢,전 한성부윤)이 태백산의 머루 다래를 따서 자주 진상하였는데,
어느날 꿈에 산과를 진상차 영월로 가는 도중 곤룡포(袞龍泡) 차림으로 백마를 타고 태백산으로 오는 단종을 만나게 되었다.
추익한이 이상히 여겨 영월땅에 도착해 보니 단종이 그날 세상을 떠난 것이다.
1457년(단기 3790년) 영월 청령포(淸怜浦)에서 승하한 뒤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그후 주민들이 의논하여 단종의 영혼을 위로하고 산신령으로 모시기로 하여 그 후 500년간 매년 음력 9월3일 제를 지내고 있다.
지금의 비각은 서기 1955년 망경사 박 묵암 스님이 건립하였으며 조선국 태백산단종대왕지비 라고 쓴 비문이 안치되어 있다.
비문과 현판 글씨는 오대산 월정사 탄허스님의 친필이다.
(강원도 태백시 문곡소도동 태백산)
조선 제6대 단종은 1441년 음력 7월 23일 당시 왕세자였던 문종과 왕세자빈이었던 현덕왕후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나
몸이 약한 현덕왕후가 단종을 낳은 지 3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세종의 후궁인 혜빈 양씨의 보살핌 아래에서 자랐다.
8살이 되던 1448년에 왕세손으로 책봉된 단종은 할아버지 세종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세종은 자신의 병이 악화되어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예감하고 있었으며,
몸이 약한 아들 문종 역시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늘 어린 단종을 몹시 걱정했다.
문종마저 일찍 죽고 나면 야심으로 가득 찬 둘째 아들 수양대군을 비롯한 혈기왕성한 여러 대군 사이에서
어린 손자가 아무 탈 없이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전에 황보인·김종서·성삼문·박팽년·신숙주 등에게 왕세손을 지켜줄 것을 부탁하였다.
세종의 뒤를 이어 문종이 즉위한 그 해에 단종은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세종이 우려했던 대로 문종은 왕으로 즉위한 지 겨우 2년 3개월 만에 병으로 승하하고 말았다.
1452년 단종은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단종은 어릴 때부터 세종의 칭찬이 자자했을 만큼 영리하였으나 12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므로 혼자서 나랏일을 결정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경우 궁중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대비의 도움을 받아 정사를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지만,
당시 궁중엔 대비는 물론 대왕대비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결정은 신하들이 도맡아 했고, 단종은 형식적인 결재를 하는 데 그쳤다.
특히 인사 문제는 ‘황표정사(黃票政事)’라는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이렇게 왕의 권력이 축소된 것에 반해 세종의 아들이자 문종의 동생인 수양대군 등 왕족의 세력은 나날히 팽창되어 갔다.
특히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세력 경쟁은 단종이 즉위한 지 1년 만인 1453년 음력 10월, 계유정난을 불러왔다.
계유정난으로써 수양대군이 정치적 실권을 거의 장악하자 단종은 단지 이름뿐인 왕이 되고 말았으며,
안평대군은 강화도로 유배를 가서 사약을 받았다.
이듬해에 수양대군이 단종의 나머지 측근들을 모두 죄인으로 몰아 유배하는 일이 일어나자
1455년(세조 1년) 단종은 수양대군의 측근 세력인 한명회·권남 등이 선위를 강요받아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1456년 음력 6월에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응부·유성원 등 이른바 사육신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 바람에 1457년 단종은 그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으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었다.
같은 해 숙부인 금성대군 역시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사약을 받고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일로 단종은 서인(庶人)으로 내려지고 마침내 1457년 음력 12월 24일 17살의 어린 나이에 사약을 받았다.
단종은 죽은 뒤 묘호도 없이 노산군으로 불리다가, 1681년(숙종 7년)에 노산대군 (魯山大君)으로 추봉되고,
1698년(숙종 24년)에는 복위되어 묘호를 단종이라 하였다. 능은 영월에 있는 장릉(莊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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