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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백두대간 1차 북진(終)

백두대간 제14구간 - 우두령-황악산-괘방령

by 범여(梵如) 2010. 3. 11.

산행일시: 2009년 10월 31일(토)

산행코스: 우두령-삼성산-바람재-여정봉-형제봉-황악산-운수봉-여시골산-괘방령

거리/시간: 13km /3시간30분 소요

 

지난번에 KIMA(한국 인테리어 경영자협회) 산악회 시산제 땜에 빠졌던(3월 8일) 구간을 땜방 산행을 하러

아침 일찍 경부고속도로를 탔다. 일기예보는 남부지방에 꽤 많은 양의 비가오고 날씨가 춥다고 하기에

우의와 윈드 자켓을 비롯한 3벌의 여유분으로 옷을 챙기니 장비 무게만도 장난이 아니다.  

근데 왠걸 경부도로를 달려 대전을 지나니 화창한 날씨에 더위마져 느낄만큼 더운날씨이다.

황간 I.C를 지나 우두령 가는 길에 온 천지가 감으로 뒤덮인 느낌. 역시 이곳이 곶감으로 유명한

충북 영동이란걸 실감할 수 있는 곳이구나.

 

우두령에 도착하니 날씨는 너무 좋고...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산행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상당히 깔닥고개 부지런히 치고 올라오니 여정봉이 나타난다.

어라 삼성산이 어디갔노. 이정표가 없어 지나치고 말았다.

여정봉에서 바람재로 고도가 뚝 떨어지다 다시 형제봉을 치고 올라오니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부지런히 걸어 황악산에 도착하니 바람 한점없어 옷을 땀으로 범벅이 되고 정상에서는 연무(煙霧)로 인해

가야산, 수도산, 금오산은 고사하고 바로 아래 있는 직지사도 보이지도 않았다.

정상에서 가져온 동동주로 목을 축이고 나니 살것만 같았다.

 

서울에 있는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천둥번개에 비가 많이 오니 산행 조심하라고...

무신 소리야 여긴 날씨만 좋은데 여기서(황악산 정상) 괘방령까진 특별히 볼것도 없고

쭈~욱 내리막길이라 시간상 얼마나 줄일수 있나 테스트 해보기로 하고 거의 산악 마라톤

수준으로 내달려 괘방령에 도착하니 3시간 30분 소요    범여 정말 멋없는 산행 함 해봤다  

우두령의 심벌

“直指由中路曲何(곧다고 했는데 꼬부랑길은 웬말인가)”
조선 후기 최고의 풍류 시인 김병연(김삿갓)이 直指寺(직지사)를 두고 한 말이다. 오늘은 우두령을

 출발하여 직지사를 품고 있는 황악산-운수봉을 거쳐 괘방령까지 간다.

그러나 전반적 오르내림이 적어 비교적 편한 산행을 할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우두령(牛頭嶺720m) - 경북 김천시 부항면과 충북 영동군 상촌면을 연결하는 분수령으로 낙동강과 금강

수계의 발원지이며 우등령(소의 등)이 구전(口傳)되어 변했다고 전해지면 질매재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대간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山竹길은 보이지 않고 낭만적인 억새길도 가을을 타는 산꾼의 맘을 흔드네 

사랑하는 울님의 수줍은 볼만큼이나 빠알간 이름모를 열매도 보이고 

수많은 대간 산꾼들의 흔적으로 얼룩진 여정봉(1034m) 정상에서

바람도 넘어가다 힘이들어 쉬어 간다는 바람재 정상에서

남녁의 산에도  서서히 겨울옷으로 갈아 입기 시작하고...

형제봉(1040m) 정상 - 지나가는 산꾼하나 없어 범여의 베낭과 스틱이 모델이 되고

연무(烟霧)에 휩싸인 신선봉

황악산 가는 길에서 바라본 형제봉

황악산(1111m) 정상에서

비로봉을 중심으로 백운봉(770m), 신선봉(944m), 운수봉(680m)이 치솟아 직지사를 포근히 감싼다.

옛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黃鶴山)이라고 불렀으나 직지사 일주문

 현판이나 택리지에 보면 황악산(黃嶽山)으로 되어있다. 정상에서 서면 서쪽으로 민주지산, 남쪽으로

수도산과 가야산, 도으로는 금오산, 북쪽으로는 포성봉이 보인다.

오늘은 아무래도 직지사를 품고 있는 황악산부터 이야기를 풀어야 할까 보다.

이름의 유래에서부터 시작해보자. 황악산의 黃(황)자는 靑(청), 赤(적), 白(백), 黑(흑)의

다섯 방위의 색 가운데 중앙을 상징하는 글자이다. 황악산 아래 직지사를 東國第一伽藍으로

불리었다고 하니 직지사가 나라의 중심부에 있다는 뜻이다. 나라의 중심 직지사의 뒷산 이름에

황(중앙)자가 포함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岳자는? 사실 황악산은 전혀 岳스럽지 않다. 부드러운 육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岳자가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온갖 추측이 난무하다. 그 가운데 추풍령 이후 처음으로 우뚝 솟은

산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 백두산에 시작된 대간은 추풍령에서 키를 크게 낮춘다.

전통지리학자 k는 이러한 모습을 수도꼭지에 호수를 꽂아 물을 멀리 보내고자 할 때 손가락을

누르는 형국이라고 한다. 즉 추풍령은 龍(산줄기)을 멀리 뻗도록 하기 위해 준비하는 곳이며,

추풍령에서 터져 나온 氣가 뻗어 가장 먼저 웅장한 자태를 보이고 있는 곳이 여기 직지사 뒷산이기

 때문에 ‘岳’자가 포함된 황악산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직지사 가는 길

직지사는 각종 이야기와 전설을 품고 있다. 창건자 아도화상, 사명대사, 왕건 등등………

이 가운데 관심을 끄는 대목은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신라 경애왕 4년,

고려 태조 10년에 후백제왕 견훤이 서라벌을 함락하고 경애왕을 살해하자 왕건이

이를 구하러 갔다가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대패한다.

그리고는 황악산 아래 숨어든다. 왜 왕건이 황악산 아래 숨어들었을까?

전투에서 패했으니 당연히 본국(고려)으로 도망가야 했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가장 편한 길은 상주를 통과하는 길. 그러나 이 길은 노출이 너무 심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실제 상주를 통과하는 대간 길은 화령 인근으로서 산책로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그래서 숨어든 곳이 팔공산과 상주에서 가까운 깊은 산 황악산이 아닌가 싶다.

황악산 골이 깊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김삿갓의 詩 ‘꼬부랑길은 웬말인가’에서도 나타나 있다.

이렇게 보면 대간은 우리 역사를 지킨 셈(?)이 된다.

직지사는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임란 때 수난을 당한다.

소실되고 폐허가 되었었다. 히틀러도 나폴레옹도 상대국을 침략하면서

박물관만은 손대지 말라고 했다 하는데 어째서 왜군들은 우리의 많은 사찰을

 파괴했을까? 여기에 대한 해답도 대간에서 찾을 수 있다.


황악산에서 본 직지사
우리 땅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산을 신성시하고 숭배했다.

산 자체가 종교나 다름없었다. 불교가 도입되면서 산에 대한 신앙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난다.

즉 불교사상과 산악숭배 관념이 융합되면서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군들이 많은 사찰을 파괴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를 파괴하려는 것이었다.

많은 사찰들이 명산에 포진하고 있으며, 명산이 가장 많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 곧 대간이니,

왜군들의 사찰 파괴에는 대간 파괴를 통한 민족 정기 말살 의도도 포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직지사는 최근에 까지 바람 잘 날이 없다. 08년 8월 대웅전이 보물로 지정되는 경사가 있었다.

그런데 이 대웅전 현판을 이완용이 썼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지금 사실 여부를 확인 중이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일제가 잔재가 참으로 깊고 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직지사의 直指는 이완용 등 친일세력을 노려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직지사의 일주문이 1000년 묵은 싸리나무와 칡나무로 만들어졌다 한다.

싸리나무와 칡나무는 비짜루나 광주를 만들 때 주로 이용된다.

싸리나무가 비짜루 등의 본체라면 칡나무는 이들을 엮어 ․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양자가 보완관계에 있다는 의미이다. 일주문, 싸리나무, 칡나무 무언인가가

예사롭지 않은 깊은 뜻이 담겨져 있는 듯하다.

황악산 정상에서 직지사를 한 참 내려다 본 다음 길을 나서려는데 또 다시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정상 표지석이다. 황악산의 높이가 공교롭게도 1111m이다.

순간적으로 연상되는 것이 생뚱맞게도 ‘빼빼로 데이’이다.

'빼빼로' 과자를 주고 받는다는 11월11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숫자 '1'을 닮은 가늘고

길쭉한 과자 '빼빼로'처럼 날씬해지라는 의미에서 청소년 친구(여중생)끼리 빼빼로 과자를

주고받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청소년은 물론 직장여성들에게도 널리 퍼져있다. 그

래서 빼빼로를 생산하는 모 제과회사는 매년 11월이 되면 매출이 폭증한다고 한다.

직지사는희미하게 보이고 - 직지사(直指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본사이며 신라 418년에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신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선산 도리사(挑利寺)를 개창할 때 함께 지었던

절이라고 한다 국보와 보물이 수도없이 많으며 사명대사가 득도(得道)한 절로도 유명하며 현재 주지로

계시는 성웅 큰스님은 범여의 동국대 불교대학원 목탁과(불교학과)선배님이시다

운수봉 정상에서

운수봉 하산길에  정신없는 진달래 -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그렇지. 다른 넘들은 겨울준비 하느라 바쁜데

이 넘은 지금 꽃피우고 있으니 (정신없는 넘인가 아님 환경 재앙 때문일까)


여시골산 직전 여시(여우의 경상도 사투리)굴

여시골산(620m) 정상에서 - 여우가 살았다고 해서 여시(여우의 경상도 표현)라고 했나보다 여우가

살았다는 굴에 여우는 보이지도 않고 낙엽만 수북하다

오늘의 하산깃점 괘방령에서

괘방령(掛榜嶺) - 김천시 대항면과 영동군 매곡면의 경계로 조선시대때 이 고개로 넘어 과거를 보러가면

 급제를 알리는 방(榜)이 붙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인근의 추풍령이 국가업무 수행에 중요한

관로(官路)였다면 괘방령은 과거 시험보러 다니던 선비들이 즐겨넘던 과거길이며 한성과 호서에서

영남을 왕래하던 장사꾼들이 관원들의 간섭을 피해 다니던 상로(商路)로 추풍령 못지않은

큰길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