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4년 4월 6일
☞ 참석인원: 진권이 아우님과 함께
☞ 산행코스: 옥산고개-중봉-100봉-산음고개-무명봉-신틀봉-신틀재-곤봉산-팔바위-제비산-산수목장☞ 소 재 지: 전남 함평군 함평읍 / 무안군 무안읍, 현경면
얼마 전 여당 원내대표라는 분이 야당대표인 安 某의 질문에 ‘너나 잘해’ 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사과하는 해프닝을 매스컴 보도를 접하면서 民意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천박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해지만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의식수준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하긴 그 천박스러움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긴 하지만... 民草들을 잘살게 해달라고
뽑아더니만 하는 짓거리라고는 저잣거리의 시정잡배보다도 못하니...ㅉㅉㅉ
민초들은 하루하루가 살아가기가 정말 힘드는데 저 자들은 민의는 대변하지 않고
자기들의 밥그릇과 이해관계에 몰두하는 저 짓거리... 언제까지 참아야 할 지?
야당 대표가 된 그 분도 처음에는 젊고 참신해 보이더만 몇개월만에 기성 정치인이
다되어 버려 참신함은 눈을 비비고 찾아 볼 수 없을 지경이다.
여의도쪽의 물은 좋지 않은지... 이 나라의 국민들이 참으로 불쌍하기만 하다.
저런 자들을 지도자로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제발 민초들 생각해주소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광주행 17시 55분 버스표
이제 나 홀로하는 영산기맥도 서서히 막바지에 접어드는 느낌이다.
악명높은 잡목과 가시 때문에 봄이오기 전에 끝내기 위해서 많은 조바심을
냈는데 이번구간부터는 조금은 쉬운 것 같지만 산이란 그리만만한 곳은 하나도 없다.
오늘은 2.4주에 진행하고 있는 백두대간 산행 대장을 맡고 있는 진권이 아우님이
동참하는 바람에 그리 외롭지는 않을 듯 싶다... 난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고
아우님은 용인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하여 광주에서 만나기로 한다
광주고속버스 터미널(22:00)
버스에서 내리니 지난주와는 달리 상당히 추운 느낌이다.
20분후에 도착한 진권이 아우님을 만나서 식당에서 김치찌게에다가
반주로 소주 한병을 마시고 찜질방을 찾으니 터미널 2층에 사우나가 있다
유 스퀘어 사우나 24(23:00~05:00)
이곳은 사우나에다 찜질방이 아닌 수면실인데 시설도 깔끔하다
요금은 가운을 포함하여 11,000원이라서 조금 비싸긴 하지만
깨끗한 시설에다가 2층 침대로 되어있어 하룻밤 산꾼들이 묵어 가기는
참으로 좋은 곳인데, 특이한 점은 코를 고는 사람 수면실이 따로 있다.
※ 주의: 코골이 수면실은 따로있고 코골이는 절대금지라는 표시가 있다.
새벽에 일어나 샤워를 마친 다음 지하 식당으로 와서 해물순두부 한 그릇을
시켜먹고 빈 도시락에 산에서 먹을 점심으로 밥을 한공기 사서 베낭에 넣고
지하도를 지나 고속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광천버스 터미널 정류소로 향한다
광천버스 터미널(05:50)
이곳 버스 터미널에서 20분을 기다린 끝에 광주에서 함평가는 500번 함평운수에 오른다.
그런데 이 버스는 광주시내를 빠져 나온 후 함평군 마을 구석구석 다 들린 다음에
함평 공영터미널에 도착하니 07시 30분이다... 지난번 양림삼거리에서 히치하여
광주 터미널까지 오는데 35분정도 밖에 안 걸리던데 그렇다고 손님이 많아서 정류장에
서는 것도 아니고... 광천터미널에서 4명이 타고 가다 중간에 2명이 내리고 아우와
둘이서 전세내어 함평 공영터미널에 도착한다
함평버스 공영터미널(07:30)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시간이 촉박하여 택시를 탄다.
10여분만에 양림삼거리를 지나서 오늘의 들머리인 옥산고개에 도착하여
장비를 점검하고 산행을 준비하는데 조금전에 사용한 똑닥이 카메라를
택시에 두고 내린 모양이다... 다행히 택시기사에게 받은 명함으로
전화를 하니 카메라가 뒷좌석에 있다고 한다... 다시 택시기사가 카메라를
갖다 주는 바람에 천금같은 10분을 한 다음에 산행을 시작한다
내가 요즘 왜 이러지는 모르겠다.
옥산고개(07:50)
함평읍 옥산리에 있는 고개로 811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으로 고개 정상에는
관리가 되질않아 쓰러져가는 인동장씨 재각이 있고 ‘仁洞張氏 世葬山’비가
서 있는 곳으로 옥산마을은 옛날에는 마을 앞에 연방죽이 있어서 "방죽안"이라 불렀으며
동쪽 300m 지점에 옥녀봉(玉女峯)이 자리 잡고 있어서 "옥산동(玉山洞)"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마을은 김해김씨 문경공파 파조(派祖)의 9대손인 대기(大器)가 중종 29년(1534년)에
입촌 정착하였고 현재 그 후손은 12호로 마을에서 제일 많은 씨족이다.
이어 김해김씨가 입촌 하여 현재도 그의 후손이 살고 있다. 마을 앞 정자 옆에
조선버드나무라는 500여년 된 고목 3그루가 있는데 이 나무의 수령과 초초의
입촌 년대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옥산고개에서 좌측 포장도로를 따라서 양림농장쪽으로 향한다
양림농장을 들어서서 우측오로 돌아 능선으로 진입하는데 초반부터 잡목이 태클을 건다
잠시후에 희미한 능선이 나타나면서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기 시작한다
중봉(中峰:134.5m:08:05)
옥산고개에서 출발하여 15분만에 중봉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는 표식을 알 수 없는 삼각점이 있고 최근에 지나간 송정님이 붙혀준 코팅지가
이곳이 중봉임을 알려 주는데그저 반갑기만 하다... 잘 계시는 지 궁금하다.
이곳에서 기맥길을 이어가는데 등로가 애매하다.
직진으로 잘 나있는 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져 암릉으로 내려오는데 길이없다
겨우 잡목을 헤치고 내려오니 커다란 밭이 나오는데 밭가운데를 질러서 내려간다
아무런 표식없는 중봉 정상의 삼각점
중봉 정상에서
가야할 영산기맥길을 미리보고...
중봉 정상 암릉에서 바라본 함평읍 옥산리 흥룡(興龍) 마을의 모습
마을 형국이 용이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 모양 같다 하여 마을 이름을 "흥룡(興龍)"이라 했다고 하나
용촌의 원명(原名)인 용촌( 村)과 관련지어 방앗간이 흥하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이름인 듯싶다.
이 마을에는 선조 때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주부를 지낸 박응주(朴 柱)가 1581년(선조14년)에
아들 대봉(大鳳), 대린(大麟) 형제를 데리고 이주 정착하였고 현재도 그 후손이 주종을 이루며 살고 있다.
대봉의 7대손 우성이가 식목한 소나무 2그루가 현재 당산나무로 마을을 지키고 있는데 둘레는 5m가 넘는다
중봉 정상에 우측으로 잡목을 치고 내려오니 꽤나 큰 밭이 나오고
밭 가운데는 참봉 벼슬을 지낸 朴公과 부인 晋州姜氏 묘지가 나온다
참봉 박공의 묘지
참봉(參奉)이란 조선시대 여러 관서에 두었던 종9품직 벼슬로서
관상감·군기시·군자감·내의원·돈녕부·봉상시·사역원·사옹원·사재감·사직서
선공감·소격서·예빈시·오부·전생서·전연사·전옥서·전의감·제용감·종친부·혜민서
활인서·각릉(各陵)·각원(各園)·각전(各殿) 등에 소속되어 있었다.
초기에는 9품관을 두지 않았다가, 1466년(세조 12) 1월 관제개정 때 9품관을
모두 참봉이라 했으며 제릉(諸陵)·전직(殿直)도 참봉이라고 불렀다
밭 가운데를 지나 포장 농로로 내려선다.
직진하여 도로를 따라 86봉으로 올랐다가 좌측으로 꺽어지는게
영산기맥길이나 오르자마자 내려서야 하고 10분도 안되어 다시
마을길로 가야 하기에 눈팅이로 86봉을 산행하고 흥룡마을길로 접어든다
흥룡마을을 가로질러 영산기맥길을 이어간다
가는 길에 한우축사도 만나고...
2차선 도로(08:25)
축사를 지나니 2차선 도로가 나오고 도로 우측에는 밀양박씨 세적비가 있고
묘비 앞에는 ‘BM6 영산강’이라는 수준점이 있다. 기맥길은 좌측 밭 가장자리로 이어진다
밀양박씨 세적비와 수준점도로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밭 가장자리로 들어선다
잔디를 심어논 밭을 지나니 좌측으로 축사가 나오고 잠시후 축사앞 도로로 내려선다
축사를 지나서 포장도로를 들어선 다음 좌측 양파밭을 끼고 농로를 걸어간다
공작산 아우님의 발자취... 아우님 고마우이
포장도로 사거리에서 직진을 한 다음에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좌측에는 잘 가꾸어진 묘지가 있다.
농로를 지나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진입한다
묘지를 지나서 능선으로 진입한다
능선으로 올라선 다음에 우측으로 꺽어지니...
군 벙커같은 시설물이 나오고...
100봉(08:45)
정상에는 군 시설물 같은 건물이 방치되어 있고 식별할 수 없는 삼각점이 있다
이곳에서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지니 등로는 보이지 않고 잡목만 무성하다
잡목을 헤치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겨우 내려오니...
임도가 나오고 임도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임도가 끝난 지점에 양파밭이 나오고 우측으로는 양념채소 냉동공장이 보인다
마늘밭을 가로질러 내려서니 좌측으론 축사가 보이고 곧 이어서 도로가 나온다
산음고개(09:00)
함평군 함평읍 대덕리와 장교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815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이 지역 사람들은 산음고개가 아닌 여시고개라고 부른단다
고개를 가로 지르니 철제문이 있고 철제문을 넘어 들어가니 辛州奇氏 묘지가 나온다
신주기씨 묘지를 지나 양파밭 가장자리로 기맥길을 이어간다
능선으로 오르니 묘지가 나오는데 대리석이 아닌 시멘트로 만든 묘지비를 만난다.
묘지를 지나니 다시 잡목이 산꾼을 괴롭히는데 우측으로
시누대 군락지와 좌측으로 산딸기 군락지가 나온다
이 산딸기 나무들은 산꾼을 괴롭히는데 악명이 높다
능선에서 바라본 함평읍 대덕리 대천(大泉)마을의 모습
현재의 마을에서 500m 가량 떨어진 "꾸서기"라는 곳에 광산김씨가 살았는데 조선조
명종 때 함평이씨 영(嶺)이 해제 칠금(七琴)에서 처가살이를 와 터를 잡았다고 한다.
임진란 때 행주산성에서 전공을 세우고 순국한 이우춘(李遇春)이 이 마을 출신이며
마을에 맨 먼저 입촌(入村)한 이령(李嶺)의 아들이다.
마을에 샘이 둘 있는데 하나는 식수샘이고 또 하나는 약수샘으로 시원하기 이를 데 없는데
이 샘물을 마신 환자가 병이 나았다 하여 외지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고 한다.
물이 찬 샘이라 해서 한샘(寒泉 발음 한삼)이라 했는데 그 후(1789년 호구총수지명) 큰 샘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대천(大泉)으로 표기되었으며 마을 앞에 있는 한샘 방죽은 함평군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가운데 하나이며 방죽 바로 앞의 밭 가운데에 소나무가 몇 그루 서 있는데
이곳에 서현내면사무소가 있었다. 서현내면사무소는 1906년 동현내면과 서현내면이 합쳐
기성면(箕城面)이 될 때 기각리로 옮겨져 함평면이 되었다.
지금은 집이 한 채도 없으며 기와장만 남아 있다.
능선에 오르면서 양호한 길이 나오는데 잠시후에 발봉산가는 우회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직진하여 조금만 가면 신틀봉이 나오고 신틀봉 직전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신틀봉 정상 직전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잠시후에 우회길과 만나는데 이곳은 함평읍 사람들이 많이
운동을 오는 곳인지 등로도 좋고 이정표도 잘되어 있다
능선에서 바라본 함평군 장교리 산음마을
풍수지리학상 현재의 산음은 가야금의 몸통이라 하여 금동골이었다.
이 금동골은 구전해오면서 금동굴, 금덩굴로 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후에
공식명을 산음(山陰)으로 표기했는데(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도 山陰으로 표기됨)
마을 바로 앞에 있는 산 그림자에 가려 해가 늦게 뜬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원래 이 마을은 경주이씨 대운(大運)이 1680년경에 개촌 했으나 풍수지리학상
이 마을이 경주이씨 터가 아니라하여 이웃 칠언으로 이거하였고 이어 함평이씨
유신(儒臣 1705~1752)이 1720년경에 이거 정착했으며 그 뒤를 이어 정성화(鄭成和)가
입촌 했는데 그 후손은 현재 한 집도 살지 않는다.
그 뒤를 이어 120년 전에 진주강씨 병운(炳運), 평산신씨 경국(敬國), 광산김씨
행서(行西)가 입촌 했고 90년전에 도광김씨 제옥(濟玉)이 들어와 살았다.
신틀재(09:20)
함평군 함평읍 장교리 산음마을에서 내교리 대화마을로 넘나드는 고개로
신틀재의 지명유래는 짚신을 삼을 때 꼴박는 것 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혀진 지명이란다
안내판들도 잘되어 있다
곤봉산 가는 길은 그야말로 고속도로 수준이다.
운동기구들도 비치되어 있고...
등로에서 바라본 함평읍의 모습
곤봉산(坤峰山:190.4m:09:30)
전남 함평군 함평읍 내교리, 수호리, 장교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정상에 서니 함평읍내가
한 눈에 들어오고 사각정자와 이정표와 3등 삼각점이 있으며 기산봉이라고도 부른다
정상에서는 함평만과 서해안 고속도로가 한 눈에 들어오고 지나구간
걸었던 군유산과 동쪽으로는 무등산이 아련히 보인다
정상석 뒤에 기록되어 있는 곤봉산의 지명유래
곤봉산 정상 안내판
곤봉산 정상 삼각점(△나주 312 / 2008복구)
곤봉산 정상 삼각점
영산기맥길은 초동마을 쪽으로 이어간다
곤봉산 아래에는 골프장이 보이는데 오늘같은 일요일에도 라운딩하는 골퍼들이 별로 없다
곤봉산 등로에 피어있는 붓꽃
이곳은 함평읍 인근에 있는 산이라 그런지 가끔 등산객이 보인다
팔바위(09:40)
이곳에서 기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는데 좌측(유모사 방향)으로도 기맥 띠지가 붙어있어
약간은 혼란스러웠다... 무심코 좌측으로 가다가 예감이 이상해 지도를 보고 다시 돌아왔다
지도상에 나타나지 않는 팔바위를 지나니 등로 가운데 全州李公 묘지가 있다.
全州李公 묘지
길은 무지하게 좋다... 지도상의 제비산이 이곳에 있다는데 어딘지 모르고 지나왔고
아무런 표식도 없고 산같은 봉우리조차도 없으니...
Y자의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Y자의 갈림길에서 편안한 임도를 따라 2분정도 내려오다가 임도를 버리고 좌측 숲속으로 꺽어진다
잡목을 헤치고 들어서니 길이없다시피 하고 잡목과 가시가 자꾸만 태클을 건다
그런데 사람이 다니지 않는 이 길이 두릅이 지천이다... 음지라 그런지 이제 갓 피는 넘
조금 일찍 피어 먹기 곤란한 넘까지 있는데 오늘은 완전히 노마크 찬스다.
앞서가는 진권이 아우는 욕심을 버렸는지 그냥 지나가는데 두릅은 안따냐 하니까
‘행님아! 어느게 두릅인데 하면서 눈이 휘둥그레 진다’ 둘이서 아무리 가는 길이 멀어도
베낭을 내려놓고 10여분을 땄더니만 꽤나많은 수확이다... 이런 재미로 나홀로 산행하는 거 아이가...
두릅밭을 지나 내려와 찔레꽃 군락지의 가시밭을 지나니 감나무를 심어논 밭이 나오고...
우측으로 약간 꺽어져서 나오니...
경주정공 묘지와 파란색 물탱크가 있고 넓은 잔디밭을 가로질러 시멘트 포장 농로로 내려선다
양파밭을 가로 지른 다음에...
다시 밭 두덕을 지나서 좌측으로 꺽어지니 산수목장이 나온다
산수목장(10:20)
산수목장을 끼고 농로를 따라서 7분 정도를 걸으니 811번 지방도가 나온다
도로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작동마을 버스 정류소로 향한다
작동고개(10:30)
함평읍 장교리에 있는 고개로 811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주위에는 농가들이 많다.
그런데 작동마을에 대한 자료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는데 이곳이 작동고개이고
조금전에 지나온 마을 앞산이 제비산인 점을 비추어 볼 때 ‘ 까치 작(鵲)’을 쓰는
점으로 보아서 제비와 관련된 지명이 아닐까 싶다 (범여의 생각 中에서)
작동고개를 지나서 서해안 고속도로로 향한다
서해안 고속도로(10:35)
서해안 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자마자 좌측 양파밭으로 접어든다
양파밭을 가로질러 우측 멀리있는 컨테이너를 바라보며 걷는다
양파밭에서 바라본 함평읍 장교리 월봉마을의 모습
원래 기성면(箕城面)에 속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교리에 편입되었고
마을의 형국이 달의 형국이라서 "월봉(月峰)"이라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전의 장동(長洞)마을 까지를 합해 월봉이라 한다.
1789년 호구 총수의 지명에 월봉마을이 없는 것을 보면 그 이후에 형성된 마을임을
알 수 있는데 입향조의 내력에서 여실히 이를 증명한다. 이 마을의 개촌자는 전주리씨
량(樑 1798~1858)으로 1810년경 신광면에서 이거 정착하였으며 이어 경주이씨
집호(集鎬 1864년생?)가 1870년경에 칠언에서 이주 정착한 후 1876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경주이씨 족보에 집호의 생년이 1864년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20대에 문과 급제했다는
전언에 비추어볼 때 1854년(甲寅)생이 갑자(甲子 1864)생으로 잘못 오기된 듯 하다.
양파밭을 지나서 농로로 접어드니 오늘이 한식날이라 그런지 이곳에 있는 광산김씨
묘지에는 서울에서 관광버스까지 대절해와서 조상에 대한 예를 표하는데 존경스럽다
광산김씨 묘지를 지나 농로로 올라서니 벚꽃이 만개한 곳이 나오고...
단풍나무가 식재된 농장을 끼고 등로로 올라선다
좋은 길이 끝나고 다시 잡목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른다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는데 양지라 그런지 토실토실한 고사리를 꽤 많이 꺽었는데
감방산 가다가 베낭을 정리하려고 보니 베낭에 묶어둔 고사리 봉지가 없다... 에공 아까운 거
반갑습니다
능선에 올라서 좌측 능선으로 꺽어져 감방산으로 향한다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니 좌측으로 편백나무 숲을 만나고...
滿開한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고...
170봉(11:10)
무명묘지를 만나고...
함평천지
진권이 아우
시원스럽게 보이는 함평만
200봉(11:25)
감방산 가는 길 능선에는 멋진 암릉들이 이어지고...
이곳은 바닷가라서 그런지 아직도 생강꽃이 필 생각도 않는다
계속되는 암릉구간
지난구간 안개속에서 지나온 손불면과 군유산도 아련히 보이고...
감방산 가는 호젓한 길
감방산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
감방산(坎方山:257.5m)
전남 함평군 함평읍과 무안군 현경면과 무안읍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여지도서』(무안)에
"함평 기산에서 뻗어 나와 고을의 으뜸이 되는 산줄기를 이룬다. 관의 북쪽 5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무안군지』에 "칠현산으로부터 남쪽으로 내려와서 옛 읍의 북쪽으로 십오리이다.
현경의 동쪽 끝이다. 일명 감악산(坎岳山)에서 3가지로 나누어 졌다."고 기재되어 있다.
『면성지(綿城誌)』에 "면의 북쪽 15리에 있으며, 곧 면성의 주산이다.
함평 군유산(君遊山)으로부터 돌아 남으로 내려와 불쑥 솟아올랐다.
산의 좌우에 기암 괴석은 범이 싸우고, 새가 나는 듯 하니 세상이 말하기를 선암(仙岩)이라 한다.
동쪽으로 극락사(極樂寺) 유지(遺址)가 있고, 또 용추가 있어 깊고 검어서 헤아릴 수 없다.
남쪽에는 현천(懸泉)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동여지도』에 무안읍성 북쪽 함평현의 경계에 있는 감악산에서 산줄기가
뻗어내려 남쪽으로 연징산 · 승달산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감방산의 정상에는 용굴이 있는데 용이 하늘로 오르려다 못 오르고,
그 꼬리로 감방산 꼭대기를 쳐서 무너졌으며, 용은 이무기가 되어 칠산바다로 통하는 용굴로 사라졌다."고 한다.
무너진 흙더미가 계속 칠산바다를 메워서 감방산이 낮아지게 되었고
바다 일부가 평야가 되었는데 이 평야를 경신평야라고 부른다.
감방산 정상에 용굴과 무재샘이 있어 가뭄이 들면 함평과 무안군민이 함께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감방산 정상에는 넓은 헬기장이 있고 등산 안내도와 이정표 삼각점(△와도21 1990재설)이 있다
정상에서 멀리 광주 무등산까지 조망이 된다. 산 정상에서 주위를 조망하는데 갑자기 사람소리가 난다
대여섯명쯤 되어 보이는데 부산 맥클럽 영산기맥 팀이다
지금 이곳까지 오면서 영산기맥 딱 2팀을 만났는데 참으로 반갑기만 하다
감방산 정상 이정표
이정표 도산마을 방향으로 내려서서 도산재로 향한다.
이곳 감방산을 넘어서면서 함평군과의 작별을 하고 완전히 무안군으로 접어든다
나무계단을 내려서니...
묘지 5기가 나타나고 이곳에서 우측 임도를 따라서 감방재로 내려간다
도산재로 내려서서 좌측 임도를 따라간다
감방재(125m:12:05)
무안군 무안읍 매곡리 도산저수지에서 현경면 해운리 해운제로 연결하는 고개로
현경면 방면으로는 도로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어나 매곡리쪽은 비포장이다.
도로 옆에는 감방산 등산로 안내판이 서 있다
감방재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능선으로 올라선다
잠시 후 너덜길같은 등로를 지나 안부에 올라서니 소나무 한그루가 우뚝 서있다
도도한 모습으로 서있는 소나무
능선에 올라서니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 봉우리가
나오는데 사람들이 오지 않는지 잡초만이 무성하다
186봉(12:15)
정상에는 망가진 산불감시초소와 표식이 없는 삼각점이 있고 서쪽으로 함평만 일대가 한 눈에 보인다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5분 정도를 내려오다가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길이 없는 곳을 치고 내려오니 희미한 등로가 나오고 다시 뚜렸한 등로를 만나면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잠시후 동백나무 숲을 만나고...
茂安朴公 묘지(12:25)
묘지 아래로 내려서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오니 편안한 임도가 계속된다
좌측으로는 도산제가 보이고 우측 영산기맥 능선에는 한국농어촌 공사 영산강사업단 현경양수장이
기맥길을 점령한 바람에 좌측 임도로 내려 선 다음에 조금 더 진행하니 24번 국도를 만난다.
도산재(12:40)
무안군 무안읍 매곡2리에 있는 도산재는 24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무안읍과 현경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곳으로 고개 우측에 있는
도산마을의 유래는 마을이 도를 수양하는 곳이라 하여 「道山」이라 부른다.
마을에는 예전 배가 닿았는데 배의 닻줄을 매었다는 소나무가 있고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가 산봉우리를 헐므로서 용굴과 금굴이 생겼다는 얘기가 전한다
영산기맥길은 우측 도로로 가야하나 점심시간이 지나 허기가 지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 버너를 켜기가 곤란하여 좌측으로 내려가 버스정류소에 자리를
잡아서 아침에 식당에서 산 밥과 라면 2개를 끓여서 막걸리 한병과 든든하게
점심을 먹은 다음에 후식으로 커피에다가 사과까지 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다시 마루금 복귀(13:40)
1시간의 여유로운 점심식사와 오랫만에 아우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현경 양수장 앞(13:42)
도로를 따라서 계속 걸어간다
드래곤 농장(13:45)
드래곤 농장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걸어가니 무안공항에서 광주로 연결되는 12번
도로위를 지나는 매곡육교가 보인다... 이곳도 도시화가 되버려 마루금이 마치
한남정맥의 용인구간과 한북정맥 파주 구간을 걷는 느낌인데... 산꾼으로선 안타깝다
매곡육교(13:50: 무안읍 매곡리 소재)
무안공항 ~ 광주간 고속도로
육교를 지나자마자 y자 도로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도로 우측으로는 특이한 형태의 효부 전주이씨 묘지가 있고...
주영한우농장을 지나고...
한우농장을 지나서 조금 올라가니 오리농장이 있고 잠시후에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양파밭 둔덕을 따라서 능선으로 진입하는데 잡목과 가시가 뒤엉켜
있고 길이 없어서 개고생을 하는데 차라리 임도로 따라 양림마을로 갈걸... 후회스럽다
5분만에 숲을 빠져나오니 가시에 바지가 찢어진다... 무안박공 부부묘를 지나서
양림마을로 접어드는데 이곳에서 다시 마을 뒷산 능선으로 올라야 하지만
자신이 없어서 마을회관 앞으로 우회하여 기맥길을 이어간다
양림부락 마을회관(무안읍 매곡리 소재:14:05)
양림마을 지명유래는 마을이 형성되던 시기에는 감방산을 중심으로 마을이 옥여봉과 임자봉이
소반을 받은 형국이라 하여 「盤谷」이라 불렀으나 후에 매곡리로 개칭되면서 「楊林」으로 부른다
양림마을 회관을 지나자마자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로 올라선다
저 위에 보이는 무안박씨 묘지를 기준으로 걷는다
꽃보다 남자
무안박공 묘지를 지난 다음에 양파밭을 돌아 좌측 공장 굴뚝을 보고 걷는다
잡초가 무성한 공장굴뚝 뒤로 오른 다음에 맥길로 보면 직진이 맞는데
그곳은 공장 철조망이 길을 가로 막아서 부득히 우측으로 우회하여 맥길을 이어간다
무안박공의 묘지와 밭을 지나니 2차선 포장도로가 나온다
60번 구도로를 따라서 좌측으로 계속 걸어간다
양림.수반마을 버스 정류장도 보이고...
양림.수반마을 입구(14:20)
무안읍 매곡3리에 있는 수반마을은 신촌서쪽에 있고 감방산을 중심으로 옥녀봉과 임자봉이
소반을 받은 형국이라 하여 「盤谷」으로 부르다가 후에 「水盤」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계속 직진하여 병산으로 향한다... 도로가에 피어있는 벚꽃이 환상적이다
도로 우측으로는 무안스포츠파크가 있고 가야 할 병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성동리 고인돌(14:30)
발굴지: 무안군 무안읍 성동리 안골
발굴기간: 1995년 3월 3일부터 5월 16일까지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큰 돌(上石)이 땅위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는 이를 바침 받침돌(支石)과 주검(屍體)이 놓인 네모난 무덤방(墓室)이 있다.
고인돌의 형식은 무덤방이 땅 위에 있는 북방식(卓子式)과 땅 밑에 있는 남방식(基盤式)이 있다.
이곳의 고인돌은 서해안고속도로(무안-목포간) 공사가 이뤄짐에 따라 파괴가 불가피하여
목포대학교에서 발굴조사 후 이전 복원한 것이다. 이 고인돌은 지상석관형 석실구조를 한
북방식, 받침돌로 고인 남방식 그리고 판석과 지석이 고인 북방식과 남방식이 혼용 형태를 이루고 있다.
또한 묘실을 강해 주거나 묘역을 나타내주는 기능인 적설 시설도 확인 되었다.
중요한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고인돌의 관리는 그야말로 엉망이다.
무안군의 문화 수준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쓰럼하다... 고인돌 잔디내에는
텐트를 쳐있고 고기굽는 불판까지 갖다놓고 고기굽고 술마시고 정말 가관이 아니다
고인돌 공원을 지나 60번국도 굴다리를 통과한 다음에 우측으로 꺽어진다
60번 국도를 우측에 두고 계속 걸어올라가니... 병산(상봉산) 입구가 나오고...
병산 등산로 입구(14:35)
차량이 다닐만큼의 넓은 임도가 계속되고...
임도를 버리고 병산 정상으로 오른다
상봉산(上鳳山:130.7m:14:45)
무안군 무안읍 교촌리와 현경면 양학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도상에는 병산(炳山)에는 표기가 되어있어 외지 산꾼들은 혼란스럽다.
상봉산의 지명유래는 산의 형상이 마치 봉이 날아가는 형국이라 하여
상봉(上鳳)이라 부르다 일제시대 때 상봉(上峰)으로 바뀌었다
정상에는 운동기구와 무안기업도시 조망도와 삼각점이 2개가 있다
이곳도 정상에는 송정님이 붙혀둔 표지판 이외는 아무것도 없다
상봉산 정상의 모습
상봉산 정상에 있는 2개의 삼각점(△목포304 / 1999 복구)
병산에서 내려와 조금전에 헤어졌던 임도와 만난다
고속도로같은 편안한 임도를 10분정도 내려오니 뼈바위재가 나온다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서 좌측으로 꺽어져서 올라간다
뼈바위재(15:00)
이곳 등로도 임도로 계속 이어지는데 완전히 고속도로이다
인공 저수지를 만나고...
좌측으로 양파밭이 보인다
무안은 경남 창녕과 함께 우리나라 최대의 양파 주산지이다.
몇년전 겨울에 이곳 무안으로 2박3일간 골프를 치러 온 적이 있었는데
이곳은 다방에서도 양파로 만든 차를 파는 곳이다
인공 저수지를 지나 100m 지난 다음에 임도를 버리고 좌측 묘지로 내려선다
晋州柳公 묘지로 내려서니 수선화가 소담스럽게 피어있다
묘지가에 피어있는 수선화
수선화의 꽃말은 첫사랑이라나 뭐라나... 울 대간 총무도 닉이 수선화인데
묘지에서 우측으로 조금 가다가 양파밭으로 내려선다
도로로 내려서서 좌측으로 가니 꽤나 큰 축사가 나오고 평룡 교차로가 보인다
평룡교차로의 모습
평룡 교차로 옆에 있는 평룡 마을은 마을 뒷등이 용처럼
생겼다 하여 「平龍」이라 부르며 198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무안읍 평용과
청계면 삼노동을 통합하여 평용리라 하고 무안읍에 편제 하였다.
청계면 태봉·청천·청수리와 같은 달성배씨들의 터전이었으며 이 마을에서는
위의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배회가 입향조 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실질적인 이마을의 입향조는 그의 후손이었을 것으로 보이나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는다.
이 마을은 또한 장수촌으로 유명하여 삼노동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평룡교차로(15:20)
신 1번 국도가 지나가는 평룡 교차로에서 아무래도 오늘 산행을 접어야 할듯 싶다.
아침에 너무 늦게 출발하였고 오늘이 한식이라 서울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처음에 계획했던 초당대학교 후문까지 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스틱을 접는다
진권이 아우님 중딩이 동창이 이곳에서 자동차로 기다려 줘 고맙기만 하다
베낭을 정리하고 무안읍에 들려서 소주 2병을 산 다음에 우 대장 친구가
가져온 봄 도다리에 새꼬시 회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진권이 중딩이 동창 신데렐라님
봄도다리에 새꼬시까징... 정말 입이 호강하고 발이 편했습니다
세세생생 복 받을 깁니다
광주고속버스 터미널(18:00)
무안에서 회를 배터지게 먹고 신데렐라님이 광주터미널까지
태워 주시는 바람에 오랫만에 입과 발이 즐겁고 편하게 왔다.
오늘이 한식이라 그런지 서울로 5분마다 출발하는 버스가 꽉꽉찬다
일반버스는 20시 15분에야 있다고 하면서 우등고속버스 18시 55분 버스
그것도 맨 뒷좌석 맨 가운데다... 승객들이 가장 기피하는 좌석이란다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때인가... 표를 산 다음에 화장실에서 수건에
물을 적신 다음 몸을 닦고 옷을 갈아 입는다
차가 천안에서 오산까지 엄청 밀리는 바람에 예상시간보다 1시간 20분정도
늦게 서울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니 5분전 24시다... 아! 피곤하다
오늘 산행의 전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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