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4년 3월 31일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사간고개-군유산-차경고개(북성리고개)-228봉-가는고개-202봉-183.4봉-노승산갈림길건김재-172봉-수철리고개-옷밭골재-감적고개-153봉-144봉-석령고개-발봉산
장동고개-함평터널-149봉-함평생태공원-135봉-팔각정-3번지방도-폐교-23번국도
학천마을버스 정류장-벽유마을 버스 정류장-함평논공단지-금산교차로-함평고 정류장
어린양 기도원-함평I.C 회차로-영태산-예비군 훈련장-옥산고개
☞ 소 재 지: 전남 영광군 군남면 /함평군 신광면, 손불면, 대동면, 함평읍취하려고 고속터미널에 일찍 갔더니만 17시 40분 버스인데 이 넘은 우등이라 차비가
너무 비싸서 망설이다가 이곳 터미널에서 멍하니 기다리기 뭐해서 표를 끊어 버스에 오른다
영광 터미널(21:10) 터미널과 붙어있는 영광시장 수퍼에 들려서 내일 산에서 먹을 이 지역 특산물인 대마 막걸리 2병을사서 베낭에 넣은 다음에 수면실로 향하는데 이곳은 비가 꽤나 내린다... 낼 아침은 그치겠지?
낼 아침에 타고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예약을 하고 10여분을 걸으니 태정호텔이 나온다
태정호텔(21:20~05:00)지난번처럼 늦잠을 자지않기 위해 스마트폰에 알람을 설정한 다음 잠자리에 든다.
04:30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샤워에다 면도까지 마치고 호텔문을 나서는데 아직도
이곳 영광에는 비가 내린다... 산꾼들은 비가 올때는 참으로 난감하다.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서 터미널 근처에 있는 김밥집으로 향한다.
지난번 먹었던 김밥집이 아닌 맞은편 김밥집에 들려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집에서 가져간 빈도시락에 점심에 먹을 맨밥과 국 대용으로 먹을 컵라면을
끓이기 위해서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부탁하여 베낭에 챙긴다
아침으로 오징어 덮밥을 시키고 뜨거운 물과 밥 한그릇을 부탁하여 도시락에 담는다식사가 5,000원이라 도시락에 싼 밥과 계산하려니 식사비만 받고 도시락값은 받지 않는다.
05시 30분 정확하게 예약한 택시가 식당앞에서 기다린다... 잠깐만 기다리게 해놓고
화장실에 들려서 비우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양치까지 한 다음에 택시를 탄다
사간마을까지 태워주고 돌아가는 택시2주전에 나를 태워준 택시 기사분에게 이번구간을 예약을 했는데 자기가 동갑내기 계모임에서
여행을 간다고 하면서 친구분을 추천해 주셨는데 참으로 친절하시고 영광에서 사간마을까지
요금이 19,000원인데 17,000원만 달라고 하신다... 너무 고맙기만 하다
사간마을(05:50)택시를 타고 지경재를 지나 함평군 신광면 송사리 사간마을 에 도착하니 비는 계속 내리고
짙은 안개로 인하여 10여m 앞도 보이질 않을 정도로 심한데 난 지난번에 사간마을이 아닌
송계마을로 내려왔는데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니 사간마을로 오르는 길이 빠르다고 하여
이곳에서 내려 마을을 가로질러 사간고개로 오르는데 이른 새벽에 나타난 이방인을 경계하는
동네 개쉬끼를 합창을 하는 바람에 온 동네가 소란스럽기만 하다.
근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이 된다... 06시가 넘었는데도 아직도 컴컴하고 짙은 안개로 앞을
분간할 수가 없어서 계속 오르는데 길은 계속 엉뚱한데가 나오고 다시 다른곳으로 오르니
잠시후에 또다시 그곳이 나온데 마치 귀신에 홀린듯한 기분이 든다.
하는 수 없어 무작정 밭 가운데로 접어들어 위로 10여분을 치고 올라서니 지난번 내려왔던
임도가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후에 사간고개에 도착한다.
오늘 가야할 30여km나 되는데 예정된 시간을 20분을 넘게 허비하여 괜스레 맘이 급해진다
사간고개(06:20)날이 밝아도 한참 밝아야 할 시간이건만 이곳은 아직도 어둡고 짙은 안개로 사물 구분이 안된다
사간고개에서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편안 임도가 나오는데 잠시후에 묘지가 나오고묘지에서 우측 2시방향 시누대 숲속으로 영산기맥길이 이어지는데 이곳부터는
길이 아예 보이질 않는다... 조금전에 좋았던 길은 산소로 오는 길인가보다.
폐헬기장(06:48)함평군 신광면 송사리와 영광군 군남면과 용암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이 산은 토산의 성격을 갖고, 각종 약초가 많이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서상사(瑞祥寺)가 군니산(君尼山)에 있다. (중략) "군니산은 현의 북쪽 3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고려와 조선 초기에는 군니산으로 표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광여도』와 『지승』(함평)에 군유사(君遊寺)가
『함평군지』에 고려의 공민왕이 탐승래유(探勝來遊)하여 '군유산(君遊山)'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은 고려31대 임금이었던 공민왕이 3일간 노릴다 갔다하여 군유산이라 칭하였다는 설이있는
군유산은 산세가 군주의 위풍을 닮았다고 해서 군자산이라고도 불리우는 함평의 진산으로 이곳에 서면
서해 바다가한 눈에 보인다고 하는데 범여의 德이 모자람인지 짙은 안개로 한 치앞도 안보인다
군유산 정상의 모습
구전에 의하면 한반도에 최초로 불교를 전파한 인도 간다라 출신의 마라난타( 摩羅難陀) 세존이 백제 최초의
판독이 안되는 군유산 정상 삼각점
이제 비는 그쳤지만 젖은 나뭇잎과 잡목으로 인해 옷은 다 젖어 버렸다 삼각대를 이용하여 오늘 산행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증샷을 남긴다
삼거리 갈림길(07:15)
군유산 정상에서 300m 정도 내려오니 삼거리에는 등산객들이 쉴수있는 휴게용 의자 2개가 있고
이정표(←군유산 정상 300m ↓주차장 1.7km →삼천동입구1km) 이정표가 나오는데 영산기맥
길은 삼천동 방향으로 내려선다
이정표에 표기된 신광면 송사리 삼천동(三泉洞)은 부터 극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좋은 샘이 세 개가 있었다하여 삼천동(三泉洞)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고, 김유신 장군의 기마병
삼천 군사가 주둔했던 곳이라 하여 삼천동(三千洞)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삼천동 산 52-1번지내에 고인돌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이곳에는
선사시대부터 촌락이 형성되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삼거리 갈림길을 지나니 무인산불감시초소가 서있고...조금 내려서니
스텐레스 로 만든 용굴이란 표지판이 서있는데 주위를 찾아봐도 용굴을 찾아볼 수 없다
군유산에서 복성이재(차경고개)까지의 등로는 좋다.
비에젖은 등로로 내려서니 무명묘지 1기가 나온다
비에젖은 야생란이 꽃을 틔울 준비를 한다
김해김씨 종중묘를 가로질러 내려서니 지도상의 북성이(차경)고개로 내려선다.
북성이(차경) 고개(07:30)
함평군 손불면 북성리 차경마을과 신광면 송사리 삼천동을 잇는 고개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가며 도로 입구에는 김해김씨 세장산비가 서있고 지도상에는 차경고개로 표기되어 있다.
고개 아래에 있는 차경(且京)마을은 1583년 경 밀양박씨(密陽朴氏) 박수만이 정착한
이래 거의 자작일촌을 이루었고 그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살고 있으며 그 외 다른 성씨도
몇 가구가 살고 있으며 군유산 동쪽 밑의 옥녀채즐 형국에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채경동"이라
부르다가 군유산에서 고려 공민왕이 놀다간 후 "여기가 또한 서울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해서
"차경(且京)"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공민왕의 전설은 무근한 전설이며 고려태조 왕건이
태봉국의 장수일 때 후백제군과 싸우기 위해 신광면 송사리 삼천동에서 군사 조련을 했으며
왕건이 되었기에 서울이 되려다 말았다는 전설이 신빙성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북성이재 입구에 있는 김해김씨 세장산비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에 오르니 길은 참으로 좋다
산동네님, 보라 아우님 다들 잘있는지 모르겠다
220봉(07:35)
울님처럼 청순하게 보이는 비맞은 현호색
230봉(07:40)
덜컥산(07:43)
산꾼 백사님이 걸어둔 표지판엔 ‘덜컥산’이라고 해놨는데 지도상에도 없고
어디에도 자료를 찾아볼 수 없는 덜컥산의 유래를 아시는 분은?
진달래가 거의 다 피어있고 내리막길은 마사토 지질이라 상당히 미끄럽다
이 지역 사람들은 모두 다 놀부심보인지?
간벌을 했으면 가지런히 정리해야지 왜 꼭 등로 가운데 버리는지...
이노무 시끼
등로 끝나는 지점 양파밭이 나오고...
양파밭 들머리에는 羅州林氏之阡(나주임씨지천) 비석이 있다. 천(阡)은 무덤가는 길을 뜻한다
비석 우측 농로를 따라서 걸어가니 포장도로가 나온다
가는고개(153m:07:50)
함평군 신광면 송사리 해안마을에서 손불면 대전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2차선 포장도로가 있다.
송사리 해안마을은 옛날에 바닷물이 들어왔다 하여 "해안(海岸)"이라는 마을 이름이 붙여졌단다.
이곳에서 영산기맥길은 좌측 묘지로 통하는 도로로 가는데 약 500m 정도 가다가
다시 가는고개 삼거리로 내려와야 하기에 많은 영산기맥 산꾼들이 2차선 도로를 따라
내려가지만 정통을 자처하는 산꾼이 얄팍한 꼼수는 부리기 싫어서 좌측 능선으로 오른다
능선으로 오르니 金海金公의 묘지가 있고...
묘지를 가로질러 좌측으로 가니...
새로 조성한 묘지를 가로 지른다
묘지를 가로질러 우측 임도로 내려서니 등로 가운데 노거수 한그루가 있다
등로 좌측에는 조그만 마을이 보이고...
가선대부를 지낸 김해김공 묘지를 지나니 16번 군도가 나온다
도로 우측으로 올라 가다가 좌측 농로로 접어든다
가는고개 삼거리(08:00)
농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져 파란색 이동식 화장실을 따라 올라선다
파란색 이동식 화장실이 있는 묵밭을 지나 능선에 오르자마자 잡목이 산꾼을 괴롭힌다
202봉(08:10)
능선에 오르니 숲속에 파묻힌 벤치하나가 산꾼을 반기는데 이곳이 지도상 202봉이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안부 능선을 따라서 영산기맥길을 이어간다
183.4봉(08:14)
무덤 한기가 있고 무덤위에 식별이 안되는 삼각점이 있다고 했는데
시간에 쫒겨서 삼각점 찿는걸 잊어버리고 그냥 지나친다
183.4봉에서 조금 진행하니 흐미한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이 노승산 갈림길이다
노승산(老僧山:262m)은
전라남도 함평군 손불면 대전리와 신광면 동정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군유산의 남동부 줄기로 이어지며 함평천이 발원하는 곳이다.
조선 시대 사료에는 노승산을 찾아볼 수 없다.
『조선지지자료』의 손불면에 노승봉(老僧峰)이 응암리 뒤편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신광면 자료에는 노승산(老僧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해안리 동쪽에 있다고 되어 있다. 『
조선지형도』(포천리)에 노승산으로 기재되어 있다.
옛날 어느 노승이 함평에서 옷밥골재를 넘어와 좋은 절터를 찾고 있던 중
마을 뒤를 둘러싼 산의 형세가 좋아 보였으나, 자세히 지형을 살피더니
앞산마루에 화귀(火鬼)가 서려 있고, 저수지 동쪽의 뒷산 형국이 나빠
명당을 망쳤다고 탄식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노승은 노승산으로 올라가는 재에 이르러 앞산 마루를 쳐다보고
다시 계곡을 내려다보면서 울었다.
이후 이곳을 '중울음재'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전한다
문패없는 묘지 2기를 지나고...
마을로 이어지는 임도를 지나니 등로는 양호한 편이다
160봉을 지나서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좌측에 초지인듯한 밭이 나오고...
초지를 가로질러 내려오니 도로가 나오는데 건김재이다
건김재(08:40)
함평군 신광면 동암리에서 손불면소재지가 있는 대전리를 넘어가는 고개로
838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도로 좌측에는 ‘古阜李氏世葬山’비가 폐기물 야적장 안에 있다
이 고개에서부터 남쪽으로 계속 같이해 온 신광면계와 이별을 고하고 온전히 손불면으로 접어든다
고개 이름은 우측 아래 동네인 손불면 대전리 저전(楮田) 마을에서 따온 것으로
이 마을에는 본래 함풍이씨가 살았다고 전해오나 밝힐 자료가 없고 1550년 경
나주임씨 임열(林悅)이 아들 첩(堞)과 함께 입향하였고 1750년경 김해김씨(金海金氏)
김광재(金光載)가, 1790년경 밀양박씨(密陽朴氏) 박중백(朴重伯)이,
1,810년경 광산김씨(光山金氏) 김기채가 입촌하였다.
은곡(隱谷)과 저전(楮田) 마을로 분리되었으나 마을이 연결되어 있어 한마을이 되었으며
지금은 "수문"이라 부르는데 "은곡(隱谷)"이 먼저 형성 되었는데 은선독서형국이라 하며
마을 동편에 닥나무밭이 있었기에 "동편" 또는 "저전"이라 부르게 되었다.
마을 옆 나주임씨 선산을 풍산등이라 하는데 쥐혈이라서 자손이 번창한다고 하며,
임씨와 김씨 두 집안에서 대대로 인물이 끊이지 않고 석학을 배출시켜 외지에서는
두 성씨가 용호상박하는 실태라고 전해오며 김씨들이 건금재 밑에 「건금동천」이라는 표석을 세웠다
건김재로 내려와 손불면 방향으로 향하다가 고부이씨 세장산비를 끼고 좌측
도로로 간다... 원 기맥길은 우측 능선으로 올라 고부이씨 묘지가 있는 140봉을
돌아서 내려오는 길이나 절개지에 폐기물 야적장 펜스를 막아놓아 묘지로 가는
도로를 따라서 기맥길을 이어간다
고부이씨 세장산비
고부이씨 묘지 앞을 지나서 숲속으로 접어든다
숲속으로 들자마자 좌측으로 꺽어지니 등로는 뚜렸하다
비를 맞으며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하는 할미꽃
뚜렸한 등로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희미한 능선이 나오는데 다시 잡목구간이
시작되는 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오니 임도가 나온다
임도를 따라서 우측으로 내려가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수철리 고개이다
수철리 고개(09:05)
고개 좌측 아래에 손불면 죽장리 수철(水哲)마을은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풍천임씨 임상문(任相文)이 입촌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고 1800년경에
전주이씨, 압해정씨, 광산정씨 등이 입촌하여 살고 있다.
손불면 자연마을 중 해발상 제일 높은 마을으로 남수철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하여
"수철동(水哲洞)"이라고 부른다는 전설이 있으나 고증할 자료는 없다.
이웃 죽사와 관련된 듯한 이름모를 절터에 탑이 있었던 듯 마을 맞은편 고랑 탑골에서
기왓장과 토기 등이 발견되고 있으며 풍수설에 전해오는 서출동유수의 근원지이다
이곳에서부터 계속해서 비포장도를 따라서 기맥길을 이어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안개가 잔뜩 낀 손불면소재지의 모습
함평군 손불면(孫佛面)은
산세가 손자인 스님이 할아버지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자세(孫僧拜祖佛)라는
명당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함평에서 불교와 관계되는 이름을 가진 유일한 면이며,
함평군 서북쪽에 위치한 해안산간 평야지대로 남북으로 지방도 808호선,
동서로는 지방도 838호선이 국도 23호선과 연결 광주광역시와 영광으로 연결되어 있다.
특산물로는 뛰어난 맛과 미질을 자랑하는 간척지쌀과 함평한우, 우리 전통그대로의
비법을 재현해 만든 함평천지토속주, 입맛잃기 쉬운 여름철 식탁에서 입맛을 돋구는
엽삭젓 등이 있으며 게르마늄해수찜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효도관광지이다
수철리 고개에서 편안한 비포장도로를 따라서 10분정도를 걸어간다
고사리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는 엄청나게 넓은 밭들이 개간되고 있고 능선아래에는 축사들이 보인다
개간된 밭 끝자락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길이 보이지 않고 잡목이 태클을 건다
잡목에 얼굴이 할키면서 겨우 등로를 찾아 나가니 묘지 2기가 나오고
묘지 위를 지나 조금 지나니 이동통신탑이 나온다
이동통신탑(09:23)
이동통신탑을 가기 직전에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니 묘지가 나오고...
묘지로 내려서면서 좌측으로 내려서니 공터가 나오고 곧바로 도로가 나온다
옷밭골재(09:20)
함평군 손불면 죽장리에서 산남리를 넘어가는 2차선 포장도로로 이 고개를 식의동(食衣洞)이라고도 한다.
산으로 둘러싸인 좁은 골짜기지만 물이 좋고 땅이 기름져 흉년이 드는 일이 없기 때문에 옷과 밥은 걱정하지 않는다
하여 '옷밥골'이라 불리었다 한다.
고개를 내려서서 죽장리쪽으로 올라가서 우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등로에 오르면서 바라본 죽장리 수철마을의 모습
능선으로 오르니 이곳은 아예 길이없고 잡목과 가시 종류들이 뒤엉켜 있다
15분정도 잡목과의 전쟁을 치른 다음에 임도로 내려선다.
감적고개(09:35)
비포장도로가 나오고 다시 좌측 능선으로 오른다
산속에 식수용 스텐레스 물탱크가 있고 이곳에에서 좌측 능선으로 접어든 다음
오르막에 오르는데 새벽에 아침을 먹은 탓인지 배가고파 오기에 10분정도
휴식을 취하면서 어제 떡집에서 산 찹쌀모찌에다가 쥬스 한병을 마신다.
등로 옆에 조그만 영지버섯 하나가 보인다
엄청난 잡목과 칡넝쿨이 태클을 거는데 정말 미치겠다
잡목을 헤치고 나가니 희미한 등로가 약간 보이면서 문패없는 묘지 2기가 나오고
묘지 가장자리에 심어놓은 8번째 측백나무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다시 능선으로 진입한다
이제서야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면서 산그리메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최근에 초여름을 방불케하는 더운 날씨탓에 진달래가 滿開하였다
또다른 묘지를 만난 다음에 다시 좌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편백나무 사이를 지나 좌측으로 걸어간다
144봉(10:30)
이곳은 산불이 난 지역이라 불탄 나무들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능선아래 석령제가 한 눈에 들어온다
144봉 정상에서 바라본 석령마을과 석령제
손불면 죽암리 석령(石嶺)마을은 본래 박진사의 터로 박진사는 큰 부자였으나 동학란 때
생계가 어려워지자 그 터를 광산김씨에게 팔고 이촌했는데 그 후손의 종적을 알 길이 없다.
1790년경 양성이씨 중영(重英), 시광(始光) 부자가 죽사동에서 이주해 왔고 강릉유씨
일성(日成)이 입촌하였으며 뒤이어 광산김씨, 파평윤씨 등이 입촌하였다.
이 마을은 발봉산 기슭에 있어 담골로 통하는 석현과 죽사동으로 통하는 석령재 밑에 있어
돌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석령(石令)이라 하였다
산불이 난 지역에는 잡목만이 가득하다
가야할 발봉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산불 피해가 아주 심하다
석령고개(10:37)
이곳은 진달래가 벌써 지기 시작한다
발봉산(鉢峰山.180.8m:10:55)
함평군 손불면 죽암리와 죽장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삼각점(△와도429 1986재설)과
아무런 표식이 없는 삼각점 2개가 있지만 그 어디에도 발봉산이란 흔적도 없고 잡목만이무성하여
이 지역 사람들이 산에대한 무관심을 대변하는 듯 하다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다가 어느 산꾼이
코딱지만하게 붙혀둔 코팅지로 표시한 발봉산만 보인다.
이 발봉산은 산 아래 장동마을에 살았던 조선말기의 성리학자 김 두삼이 고종과 마지막 왕인
순종임금이 승하했을 때 유생들을 데리고 발봉산에 올라와 망곡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김두삼의 우국충정의 시(詩)
'국상을 당하여 산에 올라 곡함(國喪登山望哭)
오래사 시라 축수했더니 어이 그리 가셨나요
국상의 예의범절 엄숙하고 장중하네
유생들 울어울어 깊은 원한 사무치고
간흉들 죄상만은 또렷또렷 더해가네
무궁화 삼천리 집집마다 눈물이요
창오산 저문날에 만백성 수심일레
조선의 긴긴 역사 여기서 끊기다니
목메인 피눈물 한없이 흐를레라
假壽長年祝難求 綴衣麻冕禮儀優 哭班士子冕沈結 誤國凶奸罪益浮
翠槿殘花千朶淚 蒼梧落日萬家愁 春秋史筆朝鮮號 鳴咽長江不盡流
발봉산 정상에 있는 2개의 삼각점
발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장동마을의 모습
가야할 영산기맥 능선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광산김씨 4세묘비
시누대 군락지를 지나니...
절개지가 나오면서 좌측으로 장동마을이 보인다.
절개지에서 우측으로 나오면 철계단이 있다
철계단으로 내려오니 장동고개가 나오고 수령 200년이 된 노거수가 있다
장동고개(11:05)
함평군 손불면 죽암리에서 죽장리 장동마을을 넘는 고개로 200년 된 노거수 한 그루가
고개를 지키고 있으며 발봉산으로 오르는 들머리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장동(墻洞)은 1960년 무렵의 전성기에는 130여 호로 손불면에서 제일 큰 마을을 이루었으나
현재는 60여 호 되는 마을이다.
죽장리 1구를 등촌, 잿몰, 양지, 골몰로 나눌 수 있으나 통상 "담골(墻洞)"로 총칭한다.
담골은 발봉산과 계동산, 호두산, 우마산 등이 담장처럼 에워싸고 있어 담골이라 부른 듯하다.
1789년 호구총수 지명을 보면 장동(墻洞), 장동양지(陽地), 장동등촌(登村)으로 표기하는 자연부락이다.
장동(墻洞)부락에는 조선 말기 성리학자인 영빈(潁濱) 김두삼(金斗三 1844헌종~1931)의 강학소였던
영빈정사(潁濱精舍)가 자리하고 있다. 정자의 현판을 석방(石邨) 윤용구(尹用求 1853년 철종 4∼1939년. 문신·서화가)가
쓴 것으로 보아 구한말 일제감정기에 지은 정자로 여겨진다. 정내에는 영빈정사상량문(穎濱精舍上梁文) 등이 현액되어 있다.
정자 주인 김두삼은 한말 우국지사(憂國之士)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 ~ 1905)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학문적 경지와 문학적 자질이 뛰어났던 1887년(고종 24) 초시(初試)에는 합격하였으나
조선조 말엽의 매관매직 풍조를 개탄하며 과거를 단념하고 영빈정사(潁濱精舍)에서 성리학(性理學)
연구에 몰두하며 후학양성에 전념 많은 제자를 배출하는 데 힘을 썼다.
그래서 그의 문집 영빈유고(潁濱遺稿)에서는 급변하는 세태와 병든 몸 상태가 반영된 것으로
생각되는 우울한 느낌의 작품들이 많으며, 직접 지은 기문(記文)들이 다수 실려 있다.
장동고개를 수호하고 있는 노거수
장동고개를 가로질러 임도로 올라선다
임도로 올라서니 대밭이 나오고 ...
대밭을 지나니 무명 묘지를 만나면서 묘지 뒤를 돌아 능선으로 진입한다
묘지를 지나 시누대 군락지를 만난다.
잠깐동안의 잡목과의 전쟁을 치르고 나니 넓은 임도가 나오고...
넓은 임도를 가로질러 묘지를 돌아 능선으로 진입한다
능선으로 오르니 우측에 간벌을 하고 편백나무를 조림하였는데
간벌한 나무를 등로에 마구 넘어져 있어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커다란 암릉을 치고 오르니 한산이공 묘지가 나오고...
간벌한 후에 어린 편백나무를 심어놨다.
함평터널 위(11:30)
능선 아래로 서해안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이동통신 중계탑
잠깐동안의 편안 임도를 걸어가다가...
수줍게 피어나는 소담스런 산자고를 만나고...
편안 임도길을 버리고 좌측 능선을 오르는데 무서운 가시나무가 버티고 있다
고생끝에 樂이라 했던가, 가시나무를 치고 오르니 두릅나무가 많다.
이제 올라오는 부드러운 두릅을 그냥두고 갈 수 있으랴.
베낭을 내려놓고 혼자서 두릅 채취를 한 다음에 기맥길을 이어간다
가시나무가 너무 심하다... 도저히 헤치고 나갈 엄두가 나질않아 우회하여 간다
무명 묘지를 지나니...149봉이 나온다
149봉(11:55)
이곳에서 90도 우측으로 꺽어져 영산기맥길을 이어간다
능선에 서니 시원스레 달리는 23번 국도와 함평생태공원이 한 눈에 보인다
149봉에서 바라본 함평생태공원과 23번국도
149봉 내리막길에서 만난 붓꽃
음성박공 묘지가 있는 쪽으로 내려간다
잠시후에 걸어야 할 영산기맥의 등로
음성박공 묘지
장성, 영광, 함평구간을 지나면서 만난 묘지들... 이 지역 사람들 조상님들에 대한 예경심 대단들해요
묘지를 내려오니 음성박씨 세장비가 서 있고...
세장비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보리밭을 지나 비닐하우스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방금 지나온 영산기맥 능선의 궤적
23번 국도 건너편에 있는 함평생태 박물관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우측에 함평 무화과 선별장이 있고...
무화과 선별장 옆에는 거북이 펜션이 있고...
23번 국도 육교를 지나니... 함평생태 박물관이 나온다
23번 국도
함평자연생태공원(12:10)
함평자연생태공원은 함평 일대를 비롯하여 주변 지역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들을 보존하고, 또 이것을 전시,관람해놓아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자
설립된 생태 체험장으로 예로부터 함평에는 다양한 종류의 난이 자생하고 있는 곳으로
한국춘란의 최대 분포지역이며 나비가 많이 서식 하고 있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러한 함평의 특징들을 접목시켜 『하늘에는 나비와 잠자리, 땅에는 꽃과 난초,
물에는 수생식물과 물고기』 라는 것을 주제로 다양한 생태체험 전시관들을 포함하고 있다
생태공원 입구에 있는 뱀 형상의 조각 우측으로 돌아서 기맥길을 이어간다
생태공원 도로 좌측으로 올라서니 정크아트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정크아트 작품들
정크아트는 폐품, 쓰레기, 잡동사니를 의미하는 정크(Junk)를 활용해서 만든
미술작품으로 엄청난 쓰레기를 양산하는 현대 도시문명의 비판을 담고 있기도 한단다.
쉽게 버리는 폐품을 예술작품으로 재탄생 시켜서 사회에 환원하는 경제적이면서도
대중 친화적인 예술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정크아트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조각을 감상한 다음에 우측으로 올라서야 하는데
조각이 끝나는 지점에서 묘지로 오르는 도로를 따라 치고올라 기맥길로 접어든다
조금 빡세게 치고 오르니 129.2봉이 나타난다.
129.2봉(12:35)
봉우리 정상에는 삼각점 하나만 달랑있고 아무런 표식도 없고 ‘광주 문규한’님의
시그널 하나만 달랑있는 걸로 보아 대다수 영산기맥 산꾼들이 이 곳을 생략하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등로가 뚜렸한 좌측 능선을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129.2봉 삼각점(△와도 425 1985 재설)
129.2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오니 함평생태공원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나온다
도로를 건너서 오르막으로 오른다
오르막 등로에서 만난 선답자들의 시그널
생태공원 출입문(13:00)
절개지에 설치되어 있는 초록색 철문을 지나서 우측으로 올라서니 넓은 임도가 십각정까지 이어진다
130봉(13:10)
봉우리 정상에는 2층으로 된 정자가 있는데 산 정상에 지은 정자는 대분분이
육각정 아니면 팔각정인데 이곳은 자세히보니 십각정이다... 이런건 처음본다.
정상에 올라서니 바로 앞에는 엄청나게 큰 대동저수지가 시원스레 보인다.
더운 날씨에 바람은 산들산들 불어오고 하여 이곳에 휴식겸 점심상을 펼친다
130봉 정상에서 조망한 대동저수지(함평군 대동면 소재)
단촐한 점심식사(13:10~35)
오늘 점심은 단촐하다... 어제밤에 영광시장에서 산 대마 막걸리 한 통과
아침에 식당에서 공짜로 얻은 밥 한공기(집에서 가져온 빈 도시락) 그리고
보온통의 따뜻한 물로 컵라면을 끓여서 점심을 먹고 25분간을 머문 뒤 길을 떠난다
가야할 135봉이 조망되고...
좌측의 멋진 대동 저수지를 조망하며 7~8분 정도 안부 능선을 편하게 걸으니
다시 엄청나게 심한 가시밭길이 길을 막는데 앞이 캄캄하다
길을 만드는 젊은 부부
오늘 산행중에 처음으로 사람을 만나는데 왜 그리도 반가운 지?
이 분은 고향이 이쪽인데 광주에 살면서 이 봉우리 아래에 집을
지어놓고 주말에 여기 내려와서 쉬다가 올라간다고 하는데 이
능선이 하도 가시가 심하여 부부가 전지 가위와 손톱을 가지고
다니면서 등로의 잡목을 제거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기 집으로
놀러 오라고 하는데 내가 이 산 앞으로 또 올일이 있을까 ㅋㅋㅋ
135봉(13:55)
135봉에서 봉우리 오르기 직전에 우측으로 꺽어져서 내리막으로 향한다
또다시 가시밭길을 만나는데 이곳은 우회할 곳도 없어서 그냥 치고 나가는데
베낭이 걸리고 옷에 가시가 걸려서 죽을 맛인데 그야말로 가시밭길이다
가시밭길을 빠져 나오니 좌측엔 망가진 비닐하우스가 나오고 잠시 후 묘지가 나온다
平山申氏 묘역(14:00)
평산신씨 묘지를 내려와 양파밭을 가로 질러서 마을 도로로 들어선다
마을도로를 빠져나온 다음에 3번 군도를 따라서 우측으로 걸어간다
도로를 따라서 2분정도를 걸어가다가 앞에 보이는 이정표
직전에서 좌측으로 꺽어져서 논두렁을 따라서 영산 기맥길을 이어간다.
가야할 논두렁의 궤적
조금전에 내가 걸었던 영산 기맥길
논두렁을 지나 농로로 올라서니 우측에 정성욱님의 묘지가 있고...
능선위로 오르니 이곳에 밭을 만드는지 마구 파헤쳐져 기맥길이 끊겨 버렸다.
개간지를 가로 질러서 폐교가 되어버린 대광초등학교로 향한다
舊 대광초등학교(14:20)
학교 뒷문으로 들어가서 운동장을 거쳐서 정문으로 빠져 나간다
폐교된 운동장에 설치되어 있는 수준점
구 대광초등학교 정문을 빠져나와서 23번 국도 지하차도로 향한다
23번 국도 지하도
여기서부터 함평고 버스 정류장까지 32분에 걸쳐 2.5km정도를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학천마을 버스 정류장(14:35)
함평군 신광면 유천리 학천(鶴川)마을은 마을 앞에 있는 개울가에 버드나무가 있었는데
이 버드나무에 수 십 마리의 학이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살았다하여
"학천(鶴川)"이라고 했다 하며 또 다른 지명은 "와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마을에는 달성배씨 위(緯)가 1590년경에 입주 정착하였으며
현재도 그 후손이 주종을 이루며 살고 있으며 그 뒤를 이어 김해김씨가 들어왔다
23번 신도로와 구도로가 나란히 가는데 나는 지금 구도로로 걷고 있다.
벽유마을 버스 정류장(14:40)
신광면 유천리 벽유마을은 지명유래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학천 동쪽에 있는
적당뫼(笛峰)에서 신선이 한가하게 냇가의 푸른비들을 바라보며 피리를 불고 있다는
뜻에서 "벽유동(碧柳洞)"이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을은 제일 먼저 풍산홍씨 한신(漢信)이 입향 정착하였다 한다.
벽유마을을 지나니 우측 함평농공공단에 있는 사료공장도 보이고...
함평논공공단(14:50)
금산교차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금산 교차로 가기 직전에 우측 대밭에 전주이씨 비가 있고...
금산 교차로(14:57)
도로를 건너서 좌측 버스 정류장을 끼고 직진을 한다
금산 교차로 버스 정류장
23번 신국도 건너편에는 산행기에 자주 등장하는 삼거리 상회도 보이고...
함평고 버스 정류장(15:02)
함평고 버스 정류장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포장도로 걸어간다.
어린양기도원(15:05)
기도원을 끼고 좌측 밭을 지나니...
묘지가 나오고 묘지를 지나 농로를 따라 가다가 숲으로 들어선다
맞은편에 함평고등학교가 보인다
잡목 숲을 가로 지르고...
조그만 포장도로를 지나 밭을 지나 솔밭 사이로 내려오니...
함평I.C 회차로 지하차도가 나오고...
지하차도를 지나면서 좌측으로 올라선다
능선으로 오르니 잡목으로 인해 걷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겨우 능선을 넘어 묘지를 지나 양파밭 가장자리로 내려서니 장년3교로 지나는 도로를 가로 지른다
도로를 가로지르니 우측으로 소나무를 심어논 곳과 좌측에는 축사가 보인다
축사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지니...
서해안 고속도로옆 계단으로 오른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시멘트로 된 넓은 공터가 나오고 이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오른다
서해안 고속도로와 함평읍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능선에 오르니 멋진 암릉들이 나오면서 영태산으로 향한다
영태산(135.2m:15:55)
함평군 함평읍 진양리에 위치한 산으로 멋진 암릉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주위의 조망을 다 볼 수 있는 곳이지만 이 산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예전에 몇번 같이 산행을
했던 송정님의 표지판만이 산 정상을 지키고 있다... 자연님도 잘 계시죠?
영태산 정상 삼각점(△와도421/1985재설)
영태산 내려오는 길이지만 그리 어렵지는 않다.
암릉구간을 내려오니 길은 참으로 좋다... 오랫만에...
타이어로 되어 있는 등로를 지나니 산죽길이 나오고 다시 길을 가는데
잠시후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져 희미한 등로를 택한다
인동장씨 묘지를 내려온 다음에...
묘지를 내려오다가 우측으로 꺽어져 대밭을 지나니...
인동장씨 세장산비가 나오고 도로가 나오는데 이곳이 옥산리 고개이다
도로 옆에는 다 쓰러져가는 고택이 보이고...
옥산리 고개( 16:15)
원래 계획은 산음고개까지 가기로 했는데 새벽에 들머리에서 헤매는 바람에
아무래도 여기에서 산행을 접어야 할듯 싶어 스틱을 접고 산행을 종료한다
옥산리고개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4차선 도로인 23번 국도가 지나가는 양림삼거리로 향한다
양림삼거리 버스 정류장(16:25)
버스 정류소에서 수통에 남은 물로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버스를
기다리다 1톤 트럭이 지나가기에 손을 드니 차를 세워준다
서울을 가려는데 차를 탈 수 있는데를 좀 세워 달라고 하니 이곳 함평은 교통이
그리 좋지 않다고 하면서 자기가 광주를 가는데 터미널까지 태워 주겠노라 한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40대중반 양반 넘 고맙소... 오늘도 양넘 지갑 줏었네 ㅋㅋㅋ
광주고속버스 터미널( 17:20)
고마운 분 때문에 광주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유아용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땀냄새를 제거한 다음에 식당에서 부대찌게를 시켜 베낭에
남은 막걸리 한병으로 든든하게 저녁을 먹은 다음에 버스에 오른다.
서울가는 버스표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졌다 일어나니 천안 삼거리 휴게소를 지나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베낭을 정리하여 집에 오니 밤10시가 조금 넘었다
오늘 산행의 전리품
오늘 산행중의 전리품인 두릅과 고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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