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4년 5월 24일~25일(무박산행)
☞ 산행날씨: 약간 흐린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17.5km+어프로치 약 1.2km / 9시간 50분 소요
☞ 참석인원: 봄.여름.가을.겨울 산악회원 16명과 함께
☞ 산행코스: 안생달-차갓재-923m봉-981m봉-826m봉-새목재-(H)-문수봉갈림길-눈물샘
대미산-삼거리-부리기재-1,062m봉-1,034m봉-1,032m봉(꾀꼬리봉 갈림길)
884m봉-꼭두바위봉-관음리 갈림길-능선 삼거리-마골치-관음재-포암산
754m봉 갈림길-명품 소나무-약수터-포암산성터-하늘재
☞ 소 재 지: 경북 문경시 동로면, 문경읍 / 제천시 덕산면 / 충주시 수안보면
요즘은 가급적이면 매스컴을 접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다
이 나라의 모든 치부는 다 보는듯하여 말이다
지난 화요일 조계사에서 있었던 세월호 참사 추모법회에서 아들을 잃은
故 제 세호군의 아버지가 읽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를 듣고 눈물없는
나 역시 한없이 눈물을 흘렸던 까닭에... 자식 키우는 아비의 입장에서...
그런데도 아직까지 정신을 못차리고 있으니 말이다
연일 봇물처럼 터지는 대형사고에다가 정신을 못차리는 지도층들
세월호 참사의 주범이나 마찬가지인 구원파 교주 유 병언이라는 자는 종교라는 가림막
뒤에 숨은채 사라져 버리고 허술하게 대처하는 이 나라의 한심한 검찰.
거기다가 세월호에 관한 법안처리 하는 국회의 위원회라는 곳은 지체높은
여의도 나리들의 지각사태와 무관심으로 제때 회의 한번 못여는 나라
그것도 모잘라 기독교 최고위층의 목사라는 자는 돈없으면 불국사나 가지
왜 가난한 학생들이 배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냐고 비난을 하지않나...
어린나이에 한번 피어보지도 못하고 바닷속에 묻혀버린 불쌍한 영혼의
눈물은 누가닦아 준단 말인가
다들 제 정신이 아닌 이 나라 과연 세금내고 살만한지 갈수록 회의를 느낀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오늘산행 구간의 고도표 안생달마을(문경시 동로면 소재:03:30)
문경에서도 가장 오지인 안생달마을에 도착하니 모든게 컴컴하다5년전 북진길에 오미자 막걸리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남아있던 옛 한백양조장 자리에는 ‘피플와인’이라는 낯설은 상호가 붙어있다 야심한 새벽에 도착한 버스의 굉음소리에 곤한 잠을 자고 있을 민초들이 깨지나 않을까 걱정스런 마음으로 버스에 내리니 워낙 오지라 그런지 공기가 참으로 상큼하다. 버스에 내려 스트레칭을 한 다음에 10분후에 산행을 시작한다(03:40) |
생달마을에 대한 재미있는 지명유래가 있다.
생달리(生達里)는 '산달' 또는 '산다리' 로 불리웠는데 '안산다리'와
'바깥산다리'가 있다.
생달은 산과 달만 볼 수 있는 두메산골이라는 뜻으로 산(山)월(月),
산다리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고, 그 후 생달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마을 어귀에 다리가 있고 그 다리에서 사람이 떨어졌으나
죽지 않고 살았다 하여 산(生)다리라 해서 산다리라는
마을 이름이 되었다는 속설도 있으며,
또한 마을 뒷산에 고불형(顧佛形)의 명당(名堂)이 있다는
풍수설(風水說)에서 안산다리 마을입구에 '고불목'이라는
자연부락이 위치하고 있다.
양조장에서 조금 올라서 Y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작은 차갓재가 나오고
우리는 좌측의 조그만 다리를 건너서 좌측으로 오르는데 이곳에 오미자밭이 나온다.
이곳 문경시 동로면은 우리나라 오미자 생산의 45%를 생산하는 곳이란다.
초반부터 국공파의 플랑카드가 태클을 걸지만 그렇다고 안 갈것도 아니고...
NO 65송전탑
차갓재(740m:04:00)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 차갓마을과 명전리를 거쳐 충북 단양군 단성면으로 이어진다.
안생달 마을에서 백두대간길에 올라서면 차갓재와 작은차갓재가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있으며, 차갓재의 유래는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동로면 생달리 안생달 마을과
생달리 차갓마을을 이어주는 고개로서 차갓마을에서 유래된 고개이다.
일설에는 재 넘어 또 재가 있다는 차가(且加)재에서 유래했다는 고개다.
‘차갓’은 ‘차가’의 본디말로 ‘막힌 집’ 즉 ‘산골의 마지막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2주전에 이곳에서 술 한잔 붓어놓고 쓰러져 있는 장승을 세웠던 그대로이다
다시 반갑게 조우를 하고 물 한잔 마신 다음에 좌측으로 꺽어져 대미산으로 향한다
NO 64 송전탑 (04:05)
본격적인 대간 능선으로 들어오니 온 천지가 컴컴하다
음력 사월 수므이렛날의 하현달은 보이질 않고 구름만 잔뜩낀 채
모든게 어둡기만 하다... 헤드렌턴 하나에 몸뚱이를 맡긴체 걷고 또 걷는다
선두는 벌써 저만치 도망(?)을 가버리고 후미에서 부지런히 쫒아가지만
선두의 불빛은 자꾸만 멀어진다. 그러나 홀로걷는 이 길이 난 너무나 좋다
백두대간 정중간탑(04:40)
어둠속에 경기 평택 여산 산악회에서 세운 백두대간 중간지점 탑을 만난다.
지나온 차갓재에는 문경산돌 산악회에서 세운 중간표시석을 만나긴 했지만
이곳 돌탑은 포항 셀파산악회에서 50m 단위로 일일히 측측정한 것을 여산 산악회에서
이곳에 돌탑을 세웠다고 하는데 측량을 한 포항 셀파 산악회나 이 높은 곳에 탑을 세운
평택 여산 산악회 다들 대단해요... 대간 산꾼으로서 고맙기도 하고요
981m봉(04:48)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지도상 981봉이다.
이젠 주위의 사물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이른 새벽에 홀딱벗고새의 울음소리가 왜 저리 처량하게 들리는지...
홀딱 벗고
아득한 옛적부터 들려오는 소리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들려오는 소리
강당으로 향하는 길목에 어김없이 들리는 소리
온종일 가슴 한켠 메아리치는 홀딱 벗고 새 소리
공부는 하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다가
세상을 떠난 스님들이 환생하였다는 전설의 새
공부하는 스님들에게 더 열심히 공부해서
이번 생에는 반드시 해탈하라고 목이 터져라 노래한다.
홀딱 벗고
홀딱 벗고
모든 상념을 홀딱 벗고...
홀딱벗고새의 원래 이름은
'검은등뻐꾸기'( Indian Cuckoo)이고,
학명은 Cuculus micropterus이며,뻐꾸기, 벙어리뻐꾸기, 두견이 등과 함께 주로 산림에서 서식한다.
다만, 뻐꾸기보다 산 정상부에서 자주 볼 수 있으며 소리로 구별할 수 있다.
뻐꾸기와 비슷하나 배의 검은색 가로줄이 굵고, 머리와 가슴은 회색이며,
등과 꼬리는 균일한 어두운 회갈색이다.
꼬리 끝 부분에 검은색의 띠가 있으며 끝은 희다.
눈의 테두리가 다른 뻐꾸기류에 비해 뚜렷하지 않다.
야외에서는 주로 소리로 구별한다.
새목재(05:20)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와 명전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명전리의 주변산세가 학(鶴)이 날아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형세이다
명전리에는 건학(乾鶴)마을이 있는데 건학마을의 목에 해당되는 곳이다
날은 밝아지고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내려섰다가 오르막으로 오른다
등로는 편안하다...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걷기는
조금 불편하지만 그런대로 걸을만 하다.
대간 식구들이 그리많지 않아 무리로 지어 걸으면서 이런저런 세상사를 논한다
1년을 넘게 같이 걷다보니 쌓인 情이 많고 할 얘기도 너무들 많은가 보다
오르막을 오르는데 나무사이로 저만치 올라와 버린 아침 햇빛이 인사를 한다
헬기장05:45)
넓은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고 넓어빠진 할미꽃 수술만 무성하다
2분 정도를 올라가니 문수봉 갈림길이 나온다
문수봉 갈림길(1,046:05:47)
문수봉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야하고 대간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5년전 북진길에는 2개의 이정표가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는 없어졌고
또 하는 부러지고 망가진 채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몰골이 흉하다
월악산국립공원에서 아마 비법정탐방로라해서 없애버린 모양이다
산을 관리하는 기관치고 참으로 치졸하고 벤뎅이 소갈머리 같다
이곳에서 동료산꾼들과 과일과 물한모금 나눠 마시고 대미산으로 향한다
백두대간 북진길때의 문수봉갈림길(2009.08.31)
등로에서 만난 풀솜대대미산 가는길은 조금전에 그랬는지 멧돼지 넘이 등로를 마구 파해쳐놨다
한마디로 산속의 폭군이다. 이곳은 더군더나 산꾼들에겐 자연을 홰손한다고
막아논 비법정 탐방로라는 곳을... 결국 대간길 산꾼은 멧돼지보다 못하단 말인가.
등로 아래로는 생달리 마을과 그 너머로 옥녀봉이 아련히 보이고 주위에는
단풍치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 등로 아래 70m에 있을 대미샘 표지판은
보이지도 않는다... 북진길에 분명히 있었는데 말이다
대미산 눈물샘 낙동강의 수많은 지류 중 하나인 문경 금천의 발원지로 등로에서 70여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대미산이 멀리서 보면 눈썹처럼 보인다해서 부른 지명인데 그래서 눈물샘이라 부르는 모양다 눈물샘은 차진 황토흙에서 솟아 나오는 약수로 일년내내 물이 마르는 법이 없고 가슴속 깊이 스며드는 물맛은 무어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또 눈물샘이 위치한 곳은 겨울 혹한기에도 바람이 없어 샘 바로 옆에 야영을 할 수 있는 장소도 있어 대간길을 가는 종주자들의 좋은 휴식처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눈물샘에 세워놓은 눈물샘 유래 안내판에 적힌 글귀는 다음과 같다. 이제 산 사람들을 위해 1990년 샘을 다듬과 2003년 다시 정성어린 손길로 그 모습을 되찾으니, 아름다운 대미산과 백두대간 산꾼들의 젖줄이 되어 오래도록 사랑받는 샘터로 그 맥이 길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샘물이 금천으로 흘러들어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2003. 11. 30 문경 산들모임산악회 |
고비나물 군락지
눈물샘을 찾아 헤맸으나 결못하고 조금을 지나니 대미산 정상이 나타난다.
대미산 눈물샘대미산 오르기 직전 등로에서 70m 떨어진 곳에 있는 샘으로
낙동강의 수많은 지류 중 하나인 문경 금천의 발원지이다. 대미산을 멀리서 보면 눈썹처럼 보인다고 보인다고 했는데 그런 이유때문에 붙혀진 지명이 아닐까? 눈물샘은 차진 황토흙에서 솟아 나오는 약수로 일년내내 물이 마르는 법이 없고 가슴속 깊이 스며드는 물맛은 무어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또 눈물샘이 위치한 곳은 겨울 혹한기에도 바람이 없어 샘 바로 옆에 야영을 할 수 있는 장소도 있어 대간길을 가는 종주자들의 좋은 휴식처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눈물샘에 세워놓은 눈물샘 유래 안내판에 적힌 글귀는 다음과 같다. 이제 산 사람들을 위해 1990년 샘을 다듬과 2003년 다시 정성어린 손길로 그 모습을 되찾으니, 아름다운 대미산과 백두대간 산꾼들의 젖줄이 되어 오래도록 사랑받는 샘터로 그 맥이 길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샘물이 금천으로 흘러들어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2003. 11. 30 문경 산들모임산악회 |
고비나물 군락지
대미산 오름길에 분명히 있었던 눈물샘 표지판은 아무리벤뎅이 소갈머리같은 국공파들이
비법정 탐방로라는 이유로 표지판을 제거해 버린 모양이다... 설치는 못할망정 민간인들이
설치한 걸 없애는 저 놀부같은 심보, 언제쯤 저꼴 안보고 산행을 할 수 있을라나
대미산(大美山:1,145m:06:15)
경북 문경시 동로면과 문경읍 그리고 충북 제천시 덕산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문경제산지조(聞慶諸山之祖), 문경 지역 모든 산의 주맥(主脈)이라는 산이다.
여암선생의 산경표에 검은 눈썹의 산이라 하여 대미산(黛眉山)으로 올라 있고,
대동여지도에는 ‘두루 크다’의 대미산(大彌山)으로 올라 있다는 산으로
퇴계이황 선생이 여인처럼 부드럽고 크게 아름답다는 대미산(大美山)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울창한 참나무 숲과 돼지골과 심마니골, 제천 덕산면 방향으로는
용화구곡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다양한 식물의 보고(寶庫)로 불리는 대미산 정상에 오르니
문경이 산그리메가 한 눈에 보인다.
월악산 영봉을 비롯한 운달산, 조령산, 주흘산 등 산꾼 범여의 맘을 설레게 한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다. 백두대간의 태백산에서 이어진 대미산, 주흘산.희양산 같은 고봉들이 충북과 경북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문경은 골이 깊고 계곡이 아름답다.
정상에는 정상석과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고 좌측 능선으로는
운달지맥 능선으로 향하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달려있다
운달지맥 개념도
운달지맥(雲達枝脈) 이란?
백두대간 대미산(1,145m)에서 남으로 가지 치는 능선이 운달지맥이다.
운달지맥이 여우목고개(해발 약 600m)를 지나 911.9m봉에 이르면 남동으로
공덕산(功德山 912.9m) 천주봉(天柱峰 839m)으로 능선을 하나 분가시키고,
911.9m봉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마전령(馬轉嶺 661.7m)에서 지맥의
이름을 낳은 운달산(雲達山 1,097.2m)으로 이어진다.
이 운달산에서는 서쪽으로 성주봉(891m 聖主峰)이 가지쳐 나간다.
운달산에서 계속 남진하는 운달지맥은 조항령(鳥項嶺)을 지나 현재 활공장으로
변한 866.9m봉을 살짝 들어올린 다음 남쪽 단산(壇山 956m) 배나무산(813m)~월방산(月芳山
360.1m) 약천산(藥泉山·212.3m)에서 천마산으로 이어진 다음 금천이 낙동강에 합수되는
삼강나루에서 맥을 다한다. 혹은 천마산에서 남쪽으로 곧장 내려 영강(潁江)이
낙동강에 합수하는 말응리로 긋기도 한다만 이는 각자의 몫이다.
운달산 이름은 ‘구름에 닿는다’는 뜻으로, 즉 하늘에 오른다는 얘기가 되지만,
‘해탈이 경지에 올랐다’는 뜻으로 운달조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는 설도 있다.
김룡사사적서(金龍寺事蹟序)에는 운달산이 ‘운봉(雲峰)’으로 기록되어 있고,
문경시 산북면에서 세운 정상석에는 ‘용뢰산(龍磊山)’이라 새겨져 있다.
(참조 : http://www.alpinenews.co.kr)
대미산 정상에서 좌측 능선방향으로 운달지맥 능선이 보이고 저 멀리
지맥길의 주산인 운달산이 아련히 보인다
운달산(雲達山:1,100m)은 경상북도 문경시의 문경읍 용연리와 당포리, 산북면 김룡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운달' 지명은 『여지도서』(문경)에 "용뇌산(龍磊山)은 다른 이름으로 운달산이라고도 하는데,
관아의 동쪽 20리에 있다. 호항령에서 뻗어 나오고 기우제를 지내면 효험이 있다."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신라시대 사찰인 김룡사(金龍寺)를 창건했다고 하는 운달조사와 관련된 이름으로 보인다.
『해동지도』와 『청구도』에는 신북면에 운달산이 표시되어 있다. 금선대(金仙臺)를 비롯한 많은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고 있고, 동남 기슭에 김룡사 외에 화장암·양진암·대성암(大成庵) 등의 고찰이 있다.
대미산 정상에서
대미산 정상에 서니 비법정 탐방로에 있어서 그런지 명성에 비해 상당히 초라하다
예전에 보였던 멋진 전경은 숲으로 가려 버렸고... 이것저것 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잠시동안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베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대미산 정상에서
대미산에서 5분정도 지나니 멋진 전망바위가 나오는데 맞은편의
운달산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오며 능선 아래로는 911번 지방도가 보인다
우측으로 눈을 돌리니 주흘산의 멋진 仙景도 보이고...
전망바위에서 멋진 선경을 감상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이곳이 예전에는 유명한 소나무 군락지라고 했는데 멋진 소나무는
가뭄에 콩나듯이 한 그루씩 드문드문 보일뿐 갈참나무를 비롯한 잡목만 무성하다
거기다가 이곳은 이제서야 철쭉이 만개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오늘 산행중에 구간에서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동반자가 있는데 바로 주흘산이다.
오늘뿐만 아니라 다음 구간인 탄항산에서 시작하여 부봉-마패봉-신선암봉-조령산을
거쳐 이화령까지 동행할 듯하다.
대간 마루금이 마치 주흘산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주흘산을 이 고장 문경의 진산(鎭山: 도읍지나 각 고을에서 그곳을
보호하는 주산으로 정하여 제사 지내던 산)이라고도 하는가 보다.
우리 신화에서는 산은 신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공간이자 인간이 신선이 되려고
하거나 산신이 되어 들어가는 신성한 공간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산신은 우리 민족을 있게 한 최고의 민족신이자 처음으로
민족국가를 수립한 최초의 국가신인 셈이다.
이런 힘에 대한 믿음이 국가뿐만 아니라 각 지방에서도 진산의 개념을
발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문경에도 당연히 진산이 존재하는 법.
문경을 둘러싼 최고봉은 마루금상의 대미산이다.
그러나 대미산은 문경만의 산이 아니라 제천의 산이기도 하다.
대미산을 문경의 진산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반면 주흘산은 산 전체가 온전히 문경에 있으면서도 우뚝 솟아 있다.
주흘산이 바로 문경의 진산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진산은 높이보다는 인간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하여 정해진다는 점이다.
花無十一紅이라 했던가 많은 걸 시사해주는 대간길을
우매한 衆生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세상사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데
어차피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세상 왜이리 아둥바둥하고 사는지...
아침만찬(06:40~07:10)
부리기재(879.1m:07:20) 문경시 문경읍 중평리에서 대미산을 넘어 제천시 덕산면의 용하구곡을 연결하는 고개로 옛날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 짊어진 짐을 내린후에 넘을 수 있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는 설과 새의 부리인 옛말인 부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새의 부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리기재라고 부른다고 하나 지금은 용하구곡과 대미산을 경유하는 등산로로 쓰이거나 주민들의 약초채취에 이용되고 있어 매우 양호한 상태의 오솔길이 유지되고 있다. 백두대간을 당일 산행으로 하는 산악회들이 이곳에서 한 구간으로 끊는곳이 많은 탓인지 중평리 밖마을쪽으로 띠지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이곳도 5년전 북진길엔 스텐레스 이정표가 분명히 있었는데.. 등로에 나무가 넘어져 있다... 下心으로 살아란다 자연은 인간의 영원한 스승이다 부리기재에서 완만하게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좌측으론 성터같은 돌무덤이 보인다 잠시후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서지만 길은 참으로 좋다 그런데 오늘은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진딧물이 베낭과 옷, 스틱에 묻는 바람에 끈적거림에 영 기분이 껄적지근하다... 숲이 우거져 피할수도 없고, 다시 고개로 내려선다 민백이꽃 |
조금 힘들게 치고 오르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3등 삼각점(△덕산315 2003 재설)을 만난다.
1,062m봉 삼각점 등로에서 만난 노거수 고도차가 그리많지 않은 편안한 등로를 걷는다.울 산악회에 서너번 나오신 닉이 코뿔소란 님과 같이 걷는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비슷한 연령대 같아서 편안하게 대화를 한다
이곳은 날씨가 추웠던 탓인지 이제사 철쭉이 만발하기 시작한다 1,032m봉(08:15)정상에는 너덜겅처럼 된 돌무덤이 있고 다른곳에 비해 시그널이 많이 달려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는 뚜렸한 등로가 있는 꾀꼬리봉 가는 길이다
아침 식사후에 먼저 도망간 젊은이들(노루, 배왕초,주원아빠)이 쉬다 다시 도망간다
북쪽으로 눈을 돌리니 마치 산양의 뿔처럼 생겼다는 월악산의 정상영봉이 시원스럽게 보이는데 한 눈에 봐도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1,032m봉 정상에서 물한모금을 마시면 여유로운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걷는다단촐한 식구라 그런지 조급증(?) 걸린 젊은이들 빼고는 대간 산꾼답지 않게
마치 일반 등산객들 처럼 황소걸음(牛步)이다 ... 볼것 다보고 즐길 것 다 즐기면서...
봉우리에서 20여m 정도 내려오다가 우측으로 능선을 벗어나니 너덜겅이 나오는데
이곳이 오늘 산행중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다
1,032m봉 아래에 있는 너덜겅 가야할 포암산과 그 너머로 다음구간의 탄항산과 주흘산이 보이고포함산 우측으로는 마골치에서 갈라지는 능선인 만수봉도 보인다
월악산 정상인 영봉이 또렸히 보인다 너덜겅에서 포암산을 배경으로... 오늘 가야할 등로의 궤적 얼마나 아팠을까? 넓은 공터꾀꼬리봉 갈림길에서 30분정도를 걸으니 넓은 공터가 나온다
다들 여유로운 맘으로 산행을 하다보니 마음의 여유가 더 생긴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는다.
오늘 처음 산행을 왔다는 젊은 친구 2명... 얼굴로 봐서는 울 산악회의
아이돌인 주원아빠와 비슷한 연배인 것 같은데 첨 봤는데도 상당히
예의가 있어 보인다. 꽤나 베낭이 무거워 보이는데 베낭에서 바짝
얼려서 가져온 1.8L짜리 피처 맥주 2병을 꺼내서 동료 산꾼 전체가
나눠 마시는 데 상당히 미안하고 고맙기만 하다
우리처럼 장거리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베낭 무게와의 전쟁을 해야 하는데...
요즘들어 젊은 산꾼들이 많이 동참하는 바람에 산악회의 평균 연령이
급속히 다운되는 느낌이다...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나 나와 김포오야지님은
상당히 위기의식을 느낀다... 논내라고 팽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ㅋㅋㅋ
대간길 등로 가운데 소나무 뿌리가 수난을 당하는데 참으로 고단한 삶이다하긴 고단한 삶을 사는게 어찌 그때 뿐이던가... 그게 다 운명인 것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도 그대보다 훨씬 고단하게 사는 이가 얼마나 많은데...
로프지대가 나오면서 안부가 나오고 다시 로프지대가 나온다 힘겹게 로프를 타고 오르니 꼭두바위봉이 나온다 꼭두바위봉(878m:08:20)넓은 암릉으로 능선에 오르니 능선 아래로 문경읍 관음리가 보이고
그 너머로 주흘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가야할 포암산도 보인다
꼭두바위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포암산의 모습다시 고도차 없는 없는 암릉 능선길을 따라 가다가 급경사로
뚝 떨어지니 안부 능선에 민초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돌무더기가 나온다
관음리 갈림길(08:40)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문경읍 사점마을이 나오는 곳이다
하늘재로 오르는 길 아래에 있는 이곳은 옛부터 사과와 찻사발(窯)의 고장답게
하늘재 가는 길은 온통 사과밭과 가마터로 하얀 사과꽃처럼 순백의 눈꽃을 활짝
피운 사과밭은 어김없이 대미산과 포암산 기슭을 오르다 가마터를 감싼다.
현암요 문경요 심천요 뇌암요 묵심요 조선요 중점요 포암요 금우요 등 문경을 대표하는
가마터가 이곳에 모인 까닭은 도자기의 원료로 이용되는 산토의 질이 우수하고 땔감이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경이 일찍이 찻사발의 고장으로 뿌리를 내린 것은 혼으로 구운 도자기를
하늘재와 남한강 수로를 이용해 손쉽게 한양에 공급할 수 있었던 데서 기인한다.
897m봉(10:20)안부 능선을 치고 오르니 이젠 온 몸에 진딧물이 끈적거린다
능선 정상에 올라 또다시 베낭을 풀고 휴식을 취한다
내 베낭에서 마지막 남은 막걸리 한병에 아침에 캔 더덕을 까서
넣어 흔든 다음에 더덕 막걸리를 나눠 마시는데 맛이 기가 막히다
지나온 능선의 모습저너머 대미산이 작별이 아쉬운듯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된다
뒤털린 심사 능선 갈림길(10:55)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이곳도 멧돼지의 횡포가 극심하다등로 주위에는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잠시 후 마골치에 도착한다
벌재에서 이곳 마골치까지 약 22km 구간을 비법정 탐방로로 지정하여단속을 실시하는 곳이란다... 그러니 오늘 난 결국 범법자로 걸어 왔다.
드디어 목책을 넘어 안전지대로 들어와서 숨한번 크게 내쉬고 물한모금을 마신다
마골치(麻骨峙:880m:11:00)충북 제천시 덕산면과 경북 문경시 문경읍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마골산가는 고개라는 뜻으로 포암산을 마골산이라 부르기도 하니
포암산 가는 길이라고 부르면 될 것 같다
고개 정상에는 이정목과 출입금지 안내판이 있고 우측 2시
방향으로는 만수봉 가는 길이다
이제 맘놓고 길을 걷는다... 가슴 졸이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운 길을... 목책을 쳐놓은 옆사면 길을 따라서 걷는다 이정표(11:20)이정표(←만수봉 3.1km → 포암산 1.9km, 하늘재 3.5km)와 구조목 월악13-07이 서 있다
포암산으로 가는 길은 부드러운 육산으로 고도차가 거의 없다.거기다가 여태껏 불지 않았던 바람까지 살랑살랑.
옛말에 말타면 종부리고 싶다고 했던가... 편한 걸음을 걸으니
졸음이 밀려온다. 늘 일상의 버릇처럼 나만 그런게 아니라
동행한 천리마님도 그렇단다. 무명봉에 도착하여 커피 한잔
끓여 먹으려고 버너를 꺼내 주전자에 물을 붓고 불을 붙이는데
이게 뭘 짓거리람... 펌프질하고 불을 갇다 붙이는데 휘발유가 없네
졸지에 동료산꾼들에게 뻥쟁이가 되버렸는네 ㅋㅋㅋ
무명봉에서 커피대신 물과 과일로 원기를 보충하고 등로로 들어서니 길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중국 송나라 스님 無門慧開(무문혜개)의 말씀 大道無門(대도무문)이 생각난다.
큰길에는 문이 없다는 말로서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으로, 누구나
그 길을 걸으면 숨기거나 잔재주를 부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千差有路(그렇지만 길은 어디에나 있다)
透得此關(이 관문을 뚫고 나가면)
乾坤獨步(온 천하를 당당히 걸으리라)
그러고 보니 적지 않은 관문을 뚫고 마침내 편하게 진행한 오늘 구간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무문계혜 스님의 의도를 완전히 왜곡하고 信佛者(신불자)들을 화나게 할 만한 것이지만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정치인이 사용하는 것보다는 순수한 것이니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어쨌든 오늘의 교훈은 대도무문을 다시 한번 새겨보는 것이다.
관음재(觀音峙:11:55)
문경 관음리에서 충주 미륵리로 가는 옛고개로 불교의 佛性이 관음(觀音) 세계에서
미륵(彌勒) 세계로 현세(現世)에서 내세(來世)로 가는 희망의 상징 고개였다고 한다.
지명처럼 이곳 주변은 마에불 미륵불상과 문화재급이 다수가 있으며 佛家의 요람으로 되어있다.
관음재 정상의 이정목관음재에서 포암산 오르는 길은 계속 고도를 높인다
좌측 능선의 옆사면 길을 걷는데 능선 위로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댄다.
문경읍 중평리와 관음리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포암산 오르는 급경사가 나온지만 젊은이들이 쓰는 비속어로 맨날 선두로졸라 도망만 가는 천리마님이 왠일로 도망을 안가고 같이 동행을 하고
코뿔소님과 셋이서 걷는데 천리마님의 연애학 개론을 듣는다.
남자들이야 늙어나 젊으나 여인들의 얘기를 안주거리로 하면
다들 귀가 쫑깃한 법, 여성 산꾼들은 없고 비슷한 연배의 셋이서
걸으면서 듣는 천리마님의 여성 편력과 무용담... 정말 부럽다
강의를 함 해달라고 하니... 강의료가 비싸단다... 에~~이 우리가 남인감
무명봉에 오른 다음 다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섰다가 오르니 포암산이 나온다포암산(布岩山: 961.7m:12:20)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사이에 우뚝 솟아 있다.
백두대간 주능선에 속해 대간꾼들이 종주를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하는 산으로
베바우산, 마골산, 계립산 등 여러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포암산은 관음리에서 옛고개 하늘재를 보고 오르면 마치 큰 베(布)를 펼쳐 놓은것 처럼
보이기도 하고, 껍질을 벗겨 놓은 삼대처럼 보인다 하여 마골산(麻骨山)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하였지만 오늘날 포암산으로 불리우고 있다.
또한 산의 형세가 닭처럼 보인다고 하여 계립산(鷄立山)이라 하였다고 옛기록이 전해지기도 한다.
만수계곡에서 들어가면 쌍봉의 육산처럼 보이지만 문경시 쪽에서 보면 암봉으로 보인다.
이 산은 오래전부터 ‘베바우산’으로 불려왔는데 한겨울 눈발이 날려 바위에 붙은 모습이
마치 베옷을 입은 것처럼 질감이 거칠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는 반듯한 암벽이 키대로 늘어서 있어
거대한 베 조각을 이어 붙여놓은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희고 우뚝 솟은 바위가 삼대 즉, 지릅같이 보여서 마골산(痲骨山)으로
불렸다는 기록도 전해오고 있으며, 하늘재의 옛지명인 계립령에서 이름을
빌려 계립산(鷄立山)으로도 불리었다.
산 전체가 큰 바위 덩어리인 포암산은 멀리서 보면 부처가 손을 벌리고 중생을 맞이하는
형상으로 하늘재부터 시작되는 월악산 국립공원 지역으로 첫머리가 포암산이다
포암산 이정목
정상에서 후미에 처진 동료산꾼들을 기다리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코뿔소님이 위에서 망을 보는 사이에 천리마님과 난 바지를 내리고
시원하게 거풍을 즐기는데 이건 해본 사람만이 아닌 산행의 별미이다
포암산 정상에서
포암산 정상에 핀 병꽃
포암산 정상에서 후미 산꾼들이 도착을 하고 이곳에서 인증샷을 하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하늘재로 향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동행하는 주흘산
문경의 진산은 주흘산이지만 주흘산체에서 최고봉은 주흘산(1030m)이
아니라 주흘영봉(1106m)이다. 주흘산이 더 낮음에도
주봉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문경 현장에 가면 쉽게 알 수 있다.
문경에서 영봉은 잘 보이지 않는 반면 주봉은 마을을 내려다보고 모습을
뚜렷이 볼 수 있다. 문경에 무슨 일이라도 발생하면 도와줄 산이 바로
주봉이라고 보고 진산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신 1106미터 고지를 영봉이라는 이름을 붙여 대우를 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산은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인간과의 친밀도가 낮으면 제대로 대접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겠다.
주흘산이 문경의 진산이니 주흘산과 얽힌 이야기도 많다.
전설에 의하면 주흘산은 산 아래를 도읍으로 정하려 마음먹고 치솟았으나
솟구치고 보니 이미 삼각산이 우뚝 솟아 있어 실망한 나머지 되돌아 앉았다한다.
실제 주흘산은 한양을 향해 혹은 대간의 태조산인
백두산을 향해 돌아서서 등을 보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전설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한양 또는 백두산을 등지고 있으니 반역자가 나올 수 있는
마을이라는 전설 혹은 사기꾼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설들이 그것이다.
특히 등을 돌린 산에서는 사기꾼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은 풍수에서 통용되고 있다.
山背人欺(산배인기) 바로 그것이다.
문경 출신 가운데 사기꾼 이름을 들어본 적은 별로 없는 듯하다.
이 고장 출신 반역자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이 마을 출신 가운데 큰 뜻을 품은 자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다.
문경 가은 출신인 후백제 견훤왕이 그렇고 이 곳에서 약 3년 가까이 초등학교
교편을 잡았던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렇다
급경사의 철계단을 내려서는데 맞은편에는 미륵리의 뒷산인 754봉이 보인다
5년전 북진길에는 로프하나 달랑 있던 곳에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급경사로 내려서니 주절상리의 암릉이 나타나는데 내려가기가 아주 고약하다
마사토의 미끄러운 지대를 조심스럽게 내려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어느 산꾼은 포암산 내려가는 길이 너무나 험악하여 포악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포암산 내려가는 등로에서 만난 잔나비걸상 버섯
흐~~~미 아무도 이 넘한테 눈길을 안줬단 말이여
쨉싸게 따서 전리품으로 챙기고...
754봉 갈림길(12:50)
포암산에서 내려오니 예전에 없었던 목책이 나오고 좌측으로 하늘재로
향하는 좋은 길이 나오는데 목책 넘어로 시그널이 보이면서 등로가 보인다
기.지맥길을 타면서 흔히 좋은길로 가면 거의가 알바인 길이 많아서 이곳에서
지도도 보지않고 목책을 넘어 등로를 접어 들었는데 이 길이 알바 코스다
덕분에 보지못할 내세의 부처님인 미륵불이 계시는 미륵리까지 보는 호사를 누린다
대간길에서 300m 정도를 진행하니 하늘재가 아닌 미륵리가 보인다
소득도 없는 알바를 한 다음에 다시 목책이 처져있는 곳까지 되돌아 간다
알바구간 암릉에서 바라본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미륵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든 뒤 56억7000만 년이 지나면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는 부처님이다.
또한 인간의 수명은 8만4000세나 되며, 지혜와 위덕이 갖추어져 있고 안온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데, 이 나라에는 수많은 보배들이 길거리에 즐비하지만, 사람들은 이 보배를 손에 들고
“옛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서로 싸웠지. 그러나 오늘날은 이것을 탐하거나 아끼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고 한다.
미륵사지
충주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미륵사지는 사적 317호로 충북과 경북을 연결하고 있는하늘재 사이의 분지에 남죽향으로 펼쳐져 있다.
미륵리 사지(彌勒里寺址)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꿈에
관세음보살로부터 석불을 세우라는 계시를 받고 하늘재를 넘자마자 지세를 확인하고는
지금의 미륵리에 석불을 세워 절을 만들었다고 하며 또한 미륵사지의 석불은 국내 유일의
북향 불상이다.
그러나 발굴 당시 미륵대원이라고 쓰인 기와가 발견되어 삼국유사에 미륵대원 등이 기록
된 것으로 보아 일연 스님이 살았던 그 이전에 지어진 사찰이라는 것이 확실히 고증되므로
고려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즉 관련 유물과 기록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사찰은 고려초기인
11세기경에 창건되었다가 고려후기인 고종때 몽고병의 침입으로 소실된 듯하며 사찰
이름은 미륵대원 이었다.
사각석등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15호)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고려 초기와 중기에 걸쳐 건립된 석등으로특정 사찰에서만 적용된 석등 양식이다
오층석탑 (보물 제95호)
5단의 지붕돌 밑면받침과 직선의 처마는 신라시대 석탑의 양식을 따른 것이며
지붕돌의 급경사와 형식적인 기둥새김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워진 탑으로 보인다.
미륵리 석불입상
높이가 9.6m로 거대하며 모두 5개의 화강암을 이용해 조성한 불상이다.
머리에는 얇은 돌 1개로 만든 팔각형의 보개를 얹었으며 얼굴은 둥글고 온화한 인상이다.
이마에는 백호가 크게 양각되어 있고 눈은 반개하여 길게 표현하였으며 눈썹은 반달 모양이다.
코는 나지막하며 입은 도톰하게 표현하였다. 귀는 큼직하게 만들었으나
어깨에 닿지 않으며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불상을 둘러싼 석실은 웅장한 규모로 6m로 큰 무사석을 쌓아올렸다
(부산 해돋이 산악회 자료인용)돌탑
전망바위 약수터 하늘재 산성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해발 961m의 포암산(布巖山)과
해발 925m의 부봉(釜峰)사이의 안부(鞍部)인 해발 525m의 하늘재를 막아 쌓은 행성(行城) 형태의 석축산성이다.
사료의 기록은 없으나 죽령과 함께 신라의 북진로였던 이곳 계립령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되었던 산성으로 보인다.
계립령은 『삼국사기』에 신라 아달라왕 3년 4월에 개척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라측에서 북쪽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한편 북방 진출을 위한
통로로서 일찍부터 계립령을 중시하였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현존하는 석성이 계립령의 개척 시기인 2세기에 축성되었다고 할 수 는 없으나 이 성을
신라측에서 쌓았음은 하늘재 정상부에서 서쪽으로 250m정도 아래에 설축한 것으로 보아서 알 수 있다.
대략 신라의 북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6세기 이후에 축성되지 않았을까 추측되며,
훨씬 후대인 고려 후기 몽고의 침입 때 이 일대에서 공방전을 벌인것으로 볼 때 고려 후기에
축성하였거나 그 이전분터 있던 산성을 이용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늘재와 4km 정도 떨어진 미륵리 서쪽의 지릅재에서 신선봉(神仙峰)을 거쳐 조령 3관문
사이에 있는 석성과도 서로 연관되어 신라의 북변을 방어하도록 구축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하늘재 남쪽, 즉 부봉쪽 산기슭에 쌓은 성벽의 일부가 없어져서 전모를 알 수 없고
오직 포암산의 암벽 아래에서 시작된 690m 정도의 성벽만이 확인되는데 협축(夾築)으로
높이 3.7m, 너비 2.4m 정도이다. 그 밖에 문터와 수구 등 성곽의 제반 시설은 확인할 수 없으며
유물은 성벽 주위에서 신라계의 토기편이 약간 수습될 뿐이다.
미륵리 마을 주변에는 고구려 온달(溫達) 장군의 공깃돌이라 전해지는 둥근 바위와 온달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고분 등이 있어 주목되는데, 이는 하늘재 산성이 신라 북진의 거점과 전초기지가
되는 동시에 죽령과 계립령 이북의 옛 영토 탈환을 위해 결사남진(決死南進)한
온달의 최후 목표가 되었던 최종 보루였음을 나타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포암산성을 지나니 콘크리트로 만든 군 교통호가 나오고 길은 편하다 교통호를 지나고 하늘재 이정목이 보이면서 산행을 종료한다하늘재(525m:13:30)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觀音里)로 시작해서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彌勒里)로 연결되는 길로서 관음리쪽은 2차선 포장도로이지만
미륵리쪽은 비포장도로로 되어 있는 곳에 탐방 안내소가 있다
자료에 따르면, 신라 아달라 이사금 3년(156년)에 “여름 4월에 계립령
(鷄立嶺 :하늘재의 옛 이름) 길을 열었다”라는 <삼국사기> 제2권 ‘신라본기’에
최초의 기록이 있어서 문헌상 가장 오래된 옛길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증보문헌비고, 문헌비고, 만기유람, 동국여지승람 등
다수의 고문헌과 자료에 나타나고 있는 옛길이다
하지만 조선 초기에 문경새재가 개척되면서 하늘재는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된다.
가장 오래된 옛길로 알려진 <하늘재>의 얽힌 역사적 사실(史實)을 살펴보면
고구려(高句麗) 온달(溫達) 장군이 “계립령(鷄立嶺)이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나도 돌아가지 않겠다” 라며 출사표(出師表)를 던질 정도로
삼국의 요충지(要衝地)였던 곳이다.
불교 용어로 관음은 현세불이고 미륵은 내세불이다
문경읍 관음리는 현세이고 상모면 미륵리는 내세이니
하늘재는 미래와 현세를 넘나드는 고갯길이란 뜻인가?
아니면 그 그 중간쯤 되는 고개일까.
2000년 가까운 세월 만큼이나 고개가 품은 역사는 깊다.
계립현, 마목현, 마골산, 마골참, 대원령, 한훤령 등 시대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여럿인
하늘재는 삼국시대에는 정치·군사적 요충지였고, 민초들의 삶의 통로이자 불교문화의 전승로였다.
또 온달장군의 기백이 서려 있고, 궁예는 상주지방을 치러 갈 때 이 고개를 넘었다.
홍건적을 피해 내려온 고려 공민왕의 피란행렬도 이 땅을 밟았고,
마의태자와 누이 덕주공주의 한이 스며 있는 고개이기도 하다.
높이 4m로 된 하늘재 정상석은 도로위의 능선에 있다
하늘재의 전설
고려에 의해 멸망한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麻衣太子)는 이 고개를
넘어 부활을 꿈꾸다가 고려의 호족들에 의해 마의태자는 미륵리에 있는
미륵사에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있는 덕주사에 머무른다.
나라가 망해 정처없이 떠돌이가 된 오누이의 생이별한 고통과 사무치는
그리움은 끝내 미륵리에 미륵불을 덕주사에 마애불을 세워 마주보게 했다고 한다
참고로 범여가 경순왕의 56대 孫으로 경주 김씨 태사공파이다( 아~~~ 불쌍한 울 할아버지)
관음리에서 바라본 포암산 - 베 포(布) 바위 암(巖)으로 삼베로 바위를 싼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포암산이라고 한다.
계립령 유허비에 세겨진 글
『청아(淸雅)한 기운을 가득 머금고 솔바람 들꽃 향기 그윽하게 피어내며 구름 한 점 머무는 고즈넉한백두대간의 고갯마루. 태초(太初)에 하늘이 열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영남과 기호지방을
연결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장구(長久)한 세월 동안 역사의 온갖 풍상(風霜)과 애환(哀歡)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이 고개가 계립령(鷄立嶺)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청북도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이 고개는 속칭 하늘재, 지릅재, 겨릅재, 대원령(大院嶺)이라 부르기도 하며, 신라가 북진을 위해
아달라왕(阿達羅王) 3년(156) 4월에 죽령(竹嶺)과 조령(鳥嶺) 사이의 가장 낮은 곳에 길을 개척한
계립령은 신라의 대로(大路)로서 죽령보다 2년 먼저 길을 열렸다. 계립령을 넘어서면 곧바로 충주에 이르고,
그곳부터는 남한강의 수운(水運)을 이용하여 한강 하류까지 일사천리로 나갈 수 있는 길로서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신라는 물론 고구려, 백제가 함께 중요시한 지역으로 북진과 남진의 통로였으며,
신라는 문경지방을 교두보로 한강유역 진출이 가능하였고, 이곳 계립령을 경계로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시켰다.
계립령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 온달장군과 연개소문의 실지(失地)회복을 위한 노력이 시도되었고 왕건과
몽고의 차라대가 남하할 때, 또한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의 어가(御駕)가 남쪽으로 몽진(蒙塵)할 때도
이 고개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등 숱한 사연을 담고 있는 곳이다. 고려시대(高麗時代) 불교의 성지(聖地)인
충북과 문경지방에 이르는 계립령로 주변에는 많은 사찰이 있었으나 전란(戰亂)으로 소실되었고, 그 유적과 사지(寺址)만 전한다.
조선조(朝鮮朝) 태종 14년(1414) 조령로(지금의 문경새재)가 개척되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조령로가 험준한 지세로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시되자 계립령로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점차 떨어지게 되어
그 역할을 조령로에 넘겨주게 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애환을 간직해 온 계립령로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고 고개를 넘는 길손들에게 지난 역사의 향취(香臭)를 전하고 그 뜻을 기리고자 이곳에 유허비를 세운다.』
하늘재 산장
하늘재에 있는 산장에서 오늘은 점심식사를 하는데 초장부터 기분이 잡친다
산꾼들이 하산하여 가장 중요시 하는게 씻는 일이다
그런데 마당에 있는 수둣물 조금 쓴다고 쥔장 부인인듯한 여인이 속된말로
X000을 한다... 못마땅하지만 관광버스 박사장이 예약해서 꾹 참고 밥을 먹는데
밥을 설어서 꼬드밥이고 찌게라고 나온게 정성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없다
거기다가 4인분이라고 준 찌게는 두사람이 먹어도 모자랄만큼 주는데
밥을 먹다보니 찌게가 모잘라 조금 더 달라고 하니 리필이 안된다고 한다
산악회의 가장 연장자인 영만어르신께서 소리를 지르니 그때서야 고양이 쥐생각
하듯이 조금을 더 주는데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
울 산악회에서 가장 멋쟁이인 산까치님은 꼬라지나서 밥을 안먹는다
그러면서도 밥과 막걸리값을 몽땅 다 내어준다
아~~~예 하늘재 산장을 사버리시지
산에서 살면 산을 닮아가는게 자연의 이치인데... 하늘재 산장 쥔장은
아직 산에서 살 준비가 덜되어 있는듯 보인다
유쾌하지 못한 기분으로 산장을 나오는데 쥔장이란 자가 미안했던지
따라 나오면서 갑자기 부탁을 해서 그렇다고 하면서 사과를 하는데
그러면 손님을 받지 말아야지... 내야 두번 다시 이곳에 와 식사할 일이
없지만... 산꾼들이여 행여! 이곳에서 식사를 하려거던 필히 유념하소
산행이 조금 일찍 끝난 관계로 버스를 타고 10분정도 내려와서
큰 개울 다리밑에서 단체로 알탕을 하고 서울오는 버스에서
깊은 잠에 빠지다 괴산 휴게소서 잠에서 깬다
코뿔소님이 아이스크림을 쏘는 바람에 아이스 크림을 먹고 다시 버스에 오른다
이른 시간에 서울에 도착하여 사당동에 몽땅 다 내려서 사당치맥(치킨+맥주) 파티를 한다
하필이면 우리 선배님 건물 1층에 있는 호프집을 갔다
오늘은 대간길을 몇번 빠진 길빛님이 쏘시는 바람에 잘먹긴 했지만
참으로 미안하다... 범여가 요즘 어려운 줄 알긴 아는 모양이다
산까치, 코뿔소, 길빛님 ...오늘의 보시공덕 다들 복받을깁니다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 > 백두대간 2차 남진(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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