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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9기맥 자료및 산행후기 ♣/땅끝기맥(終)

땅끝기맥 제6구간 - 오소재에서 닭골재까지

by 범여(梵如) 2014. 11. 17.

☞ 산행일자:  2014년11월 16

☞ 산행날씨:  흐린 날씨지만  조망은 뛰어남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2.5km / 8시간 05분 소요

☞ 참석인원: 우연히 만난 젊은 1명과 산꾼과 함께

☞ 산행코스: 오소재-222m봉-비박바위-너덜지대-통천문-노승봉-천년수 갈림길

              가련봉-암릉구간-만일재-두륜봉갈림길-구름다리-진불암갈림길

              두륜봉-두륜봉갈림길-산죽길-주봉갈림길-폐헬기장(1)-폐헬기장(2)

              508m봉-띠밭재-도솔봉-KBS.MBC 송신소-대둔산-620m봉-560m봉

             308m봉-암릉지대-삼형제바위-410m봉-417m봉-400m봉-280m봉 우회

             NO125송전탑-235m봉-230m봉-145m봉-NO65송전탑-김해김씨 묘지

             13번국도-닭골재

소 재 지:  전남 해남군 북일면, 삼산면, 현산면, 북평면

 

열흘정도 조그만 현장 한곳 마무리 하느라 정신없이 쫒아 다니다 세월가는줄 모르고

또 한주를 보낸다... 이제 9기맥의 마지막 한 구간 남았는데 지난주 산악회 따라 나서서

3시간 가량을 어둠속에 눈감고 산행한 것이 너무나 아쉬워 남도의 멋진 仙景을 감상할 겸

나홀로 산행을 준비하는데 늘 맘 한구석에 찜찜하다... 은사 스님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더군더나 내일을 음력으로 24일이라 관음재일 법회가 열리는 날인데

스님 죄송합니다... 이제 이번구간 마무리하고 자주 뵙올께요

 

오전에 서둘러 잔무를 처리하고 집에와서 휴식을 조금 취한 다음에 오후5시 20분경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 가서 17시 55분발 해남가는 버스에 오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5년 11개여월에 걸쳐서 목적 산행을 마무리 하는 날이다

백두대간 왕복, 9정맥, 9기맥 거기다가 12개 지맥까지 덤으로 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약간 맛이 간게 아니라 한참 맛이 간 느낌이다... 그리도 쥔장 잘못 만나었도 말썽부리지

않고 묵묵히 같이 걸어준 내 두다리(足)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 밖에... 고마워

 

그리고 祝詩를 써 준 시화님 고마워요... 젊은이 복받을 겨

서울발→해남행 17시 55분발 막차 티켓

토욜일 늦은 오후에 땅끝기맥 한 구간을 마감하기 위해 해남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11월이라 그런지 해가 많이 짧아졌다... 저녁 6시가 조금 지났는데 컴컴하다

고속버스는 천안을 지나서 정안 휴게소에 들려 15분간 정차를 한 다음에 다시

서해안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군산, 목포를 지난 다음 밤 10시 35분에 해남에 도착한다

서울 해남간 고속버스 시간표

해남버스 터미널(22:35)

버스에서 내려 터미널을 빠져나와 근처에 있는 찜질방으로 향한다

해남 참숯 불가마(22:40 ~ 05:40)

찜질방에 들려 락카에 베낭을 넣고 탕 안으로 들어서니 너무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탕 안에 물은 다 빼버렸고 샤워만 할 수 있게 해놔서 샤워를 마치고 찜질방으로 향한다

이곳의 찜질방 요금은 9,000원이나 받으면서 영산 기맥길에 묵었던 장성, 영광의 찜질방에

비해 시설도 낙후되어 있고 요금도 비싼되다 사람들이 많아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를 못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늦게 잠이 들었다가 05시쯤 일어나서 탕에 들어가서 느긋하게

목욕을 하고 베낭을 메고 찜질방을 나온다

조그만한 소도시에 묵으면 아침 식사가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다

동료산꾼 온누리님께서 지.지난주에 이 구간을 탄 경험으로 정보를 카톡으로 보내 오셨는데

찜질방 옆에있는 식당에서 작업 인부들이 있는 날이면 아침 일찍 식사를 한 다고해서

혹시나 문이 열렸나 가봤더니 불이 켜져 있어서 들어가 식사가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몇명이냐고 묻길래 혼자라고 하니까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들어오라고 한다

원래 일찍 문을 안 여는데 지금 해남에서 태권도, 합기도 대회가 있어서 학생들

밥 준비 때문에 일찍 식당 문을 열었다고 한다... 감사 감사합니다

정갈한 남도의 아침밥상

김치찌게를 시켰는데 반찬이 무려 11가지이고 상당히 맛깔스럽다.

먹은만큼 걷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제 저녁을 먹지 않았던 탓에

반찬까지 몽땅 다 먹고 밥 반공기(요건 서비스)를 더 시켜서 든든하게 먹은 다음에

커피까지 한 잔 마시고 여유로운 걸음으로 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식대 7,000원)

터미널 화장실에 도착하여 느긋하여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양치질을 한 다음에

버스 매표소로 향한다

오소재가는 버스표

오소재가는 버스표를 달라고 하니 둔주포가는 버스표를 준다.

첫차가 06시 40분에 출발하며 좌일/내동행 버스를 탑승해야 한다

 

해남교통 ( TEL 061-533-8826)

오소재 가는 버스 시간표

06:40,  08:15, 09:00, 10:10, 12:00, 13:10, 15:10, 17:10, 18:20, 19:30

오소재가는 해남교통 버스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끝낸 다음에 버스표를 끊어서 탑승구 입구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베낭을 젊은 친구 한 명이  두륜산을 가려고 하는데 나보고 어딜가느냐고 묻는데

나도 두륜산을 가긴 하는데 두륜산만 가는게 아니고 땅끝기맥을 걷는다고 하니까

호기심을 나타내면서 나에게 선생님 따라 가고 싶다고 하기에 그러라고 하면서 같이 동행한다

06시 40분에 버스는 출발하는데 나와 동행한 젊은 친구, 그리고 중학생 하나만 싣고 버스는 출발한다

오소재 약수터(07:20)

타는 사람도 없고 내리는 사람도 없으니 오소재까지 버스는 논스톱으로 온다

원래 버스 정류소는 땅끝기맥 들머리인 오소재 쉼터 공원 입구인데 남도지방에서

아주 유명하다는 오소재 약수물 한바가지 마시고 싶어서 약수터 입구에서 내려서

약수물 한바가지 마시고 오소재로 향하는데 주위에는 날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한다

오소재(烏所峙:164m:07:10)

해남군 삼산면과 북일면을 가로 지르는 827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예전에 오시미재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산적들의 행패가 하도 심해서

50명이상의 사람들이 떼를 지어서 넘어야 했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이란다

또다른 설은 주작산의 암릉들이 까마귀의 집처럼 생겼다고 해서

오소재(烏所峙)로 부른다고 하며 우측으로 오소재 약수터가 있고

좌측에는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오소재 쉼터가 있다

이곳 약수터는 주말에 줄을서서 물을 받을정도 물맛이 좋은 곳이라고 한다

그러한 명성 때문에 목포,진도, 완도, 강진 사람들도 물을 받으러 온다고 한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수기 판매가 안되는 곳이 해남이라고 한다

약수터에서 걸어서 오소재로 올라오니 관광버스 2대가 등산객을 가득싣고 도착하여

차에서 내려서 찌개를 끓여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인천에서 온 안내 산악회인데

두륜산에 오르는데 대장인듯한 분이 들머리를 잘 모르는지 우리를 따라온다.

이곳은 길이 험하고 일반 등산객이 다니지 않는 곳이라 약수터 옆길을 가르쳐 주고 들머리로 들어선다

오소재 공원 설치되어 있는 수준점

수준점(BM; Bench March)이란 수준원점으로부터 표고를 정밀측정하여 영구적인

말뚝을 설치하고, 차후 부근의 수준측량에 이용할 수 있도록 그 표고를

국토지리정보원의 수준측량 성과표에 등록해 놓은 기준점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준점은 인천만의 평균해수면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인천시 남구 용현동에 수준원점을 측설하고 그 표고를 정밀하게

결정해 놓았는데, 이 수준원점의 표고값은 26.6871m이다.

아울러 주로 국도 주변에 수준점을 설치하여 놓았는데 1등 수준점은 약 4㎞,

2등 수준점은 약 2㎞간격 설치되어 있다.

오소재 소공원 뒤로 접어드니 오솔길이 나있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산꾼을 반긴다

소공원 뒤로 올라서자마자 漢陽 趙公과 부인 南陽洪氏의 묘지가 있고 묘지의

특이한 점은 묘지 양 옆에 서 있는 망부석이 자연석으로 세워진 점이다

초반이라 그런지  등로는 아주 양호한 편이다

222m봉(07:20)

222m봉을 지나면서 사철나무가 있는 너덜지대를 지나 좌측으로 올라선다

산죽과 사철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잔뜩 흐린 날씨에

뭔가 쏟아질 것 같은 예감이 초반부터 산꾼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비박바위?(07:45)

너덜겅을 지나니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자주 등장하는 비박바위를 만난다

비박바위에 올라서니 좌측에 누군가 바위위에 바위 하나를 올려 논 것처럼 멋진 암릉이 환상 그 자체다

비박바위에서 바라본 주작,덕룡구간의 모습

덕룡봉 그 너머로 서기산과 천관산, 어둠속에 눈감고 걸었던 북배산과

다산선생의 유배지로 유명한 다산초당이 있는 만덕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해남의 용아장성이 불리는 덕룡산, 공룡능선으로 불리는 주작산이 정말 멋지다

비박바위를 지나 잡목구간을 거치면서 드디어 너덜길에 접어든다

선답자의 산행기에 악명높은(?) 설악산 황철봉 구간과 비교하곤 하지만

범여가 보기에는 황철봉 너덜겅과는 쨉도 안될 정도로 외소해 보이니

그리 겁먹지 말고 차분히 안전하게 걸으면 좋을듯 하다... 다만 어둠속엔 조심하길

너덜겅에서 바라본 노승봉과 가련봉의 모습

너덜겅에서 다시 한번 주작, 덕룡산을 뒤돌아 본다

흐린 날씨치고는 가시거리는 상당히 멀리까지 보인다

주작, 덕룡은 물론이고 서기산과, 그 너머로 월출산까지 보이니 말이다

너덜겅을 지나고 다시 산죽과 잡목지대로 올라서니 암릉구간에 로프가 나온다

조금을 더 진행하여 ‘등산로 없음’ 표지판에서 우측 암릉으로 조심스럽게 오른다

노승봉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강진만(도암만)의 모습

노승봉 아래에서 바라보니 주작산 앞으로 강진군 도암면과 신전면의

넓은 들판이 보이고 그 앞으로 마치 여성의 자궁처럼 보이는 강진만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저 지형 때문에 강진군이 잘살단고 하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바다가 마치 고기의 통발에 한번 들어오면 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강진으로

재물이 들어오면 빠져 나갈 수 없는 구조라고 하니 강진군이 잘 사는가 보다

통천문 갈림길(08:15)

힘들게 암릉을 오르니 철 사다리가 있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는 오소재에서 오심재를 지나 올라오는 일반 등산로와 만나는 곳이다

通天門이라... 하늘로 오르는 문은 늘 힘든 구간인가

어느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개구멍이라 표기하였지만

통천문이라 부르는게 훨씬 멋진 표현이 아닐까?

세속에 찌든 모든 번뇌와 망상, 오만과 편견을 벗어 버리고 통천문을 통과한다

버스 터미널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산꾼도 통천문을 통과하는게 즐거운가보다

부산에서 왔다는 이 친구 아직까지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통천문을 통과하고서도 또다시 로프를 타고 더 올라야만 노승봉에 도착할 수 있다

통천문에서 바라본 고계봉(高髻峰, 638m)과 오심재

철계단으로 올라서니 북쪽방향 정상에 케이블카가 설치된

고개봉이 보이고 그 아래에 오심재가 있다

고계봉(高髻峰, 638m)의 ‘계(髻)’는 상투를 뜻하는 단어로

높은 상투봉이라고나 할까?

 

오심재는 옛날 산이 험하고 수목이 울창하여 산적들이 숨어서

민초들을 괴롭히므로 50명의 사람이 넘었다고 하여 오십치(五十峙)

라고도 불렀는데 마치 백두대간길의 육십령과 같은 유래를 지니고 있다.

노승봉(老僧峰:685m:08:20)

두륜산 도립공원 안에 있는 봉우리로 해남군 북일면 과 삼산면의 경계 능선에

있으며 정상은 넓고 편편한 암반위로 오석으로 된 앙증스런 표시석이 서 있다

좌측 다도해 너머로 완도의 상왕봉이 한 눈에 보이는 그야말로 일망무제이다

 

노승봉을 능허대(凌虛臺)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하늘높이 나른다’는 뜻으로

중국의 경승지나 건물에도 많이 등장하는 단어로 우리나라에서의 지명에도

많이 보이는데 황해도 해주, 강원도 고성, 경북 울진의 지명에서도 보인다.

허공을 가른다, 승천하다, 비상하다의 뜻으로 길상어로 관용화 된 표현되었으며

중국과 조선시대에 보편화되어 해변 절경지에 많이 등장하는 지명이라고 한다

노승봉에서 바라본 대흥사의 모습

대흥사(大興寺)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22교구의 본사로 언제 누가 지은

사찰인지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고,  

신라 눌지왕 10(426) 정관(淨觀)스님이 창건했다는 만일암 기원설을 비롯

신라 진흥왕 5(544) 아도화상이 지었다는 설과 신라 무열왕 8(508) 무명의

비구승이 중창했다는 설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설은 신라 진흥왕의 어머니 소지부인(昭只夫人)을 위하여

아도화상(阿道和尙)으로 하여금 창건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가 이끈 승군의 총본영이었던 곳이고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년동안 흐트러지지 않을 땅(萬年不毁之基)”이라 하여

그의 의발(衣鉢)을 이곳에 보관토록 한 도량이기도 하다.

 

17~18세기 서산종의 종찰로 선·교 양종의 대도량역할을 한 사찰이며,

풍담스님에서 초의스님에 이르는 13인의 총사와 만화스님에서 범해스님까지

13인의 강사(불교 경론을 강의하는 승려)를 배출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대흥사는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草衣禪師)가 40년동안 수행한

일지암(一枝庵)이 있는데 이 때문에 예로부터 이 일대에 한국 고유의 차와 다도로 유명하고

유자산지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경내에는 서산대사 의발을 비롯, 국보 제308호 ‘대흥사북미륵암마애여래좌상’을 비롯하여,

천불전, 천불상, 표충사 등 국가지정문화재 7점과 시도지정문화재 6,

그리고 13대종사와 13대강사 등의 부도와 비석들이 소재한 역사적·학술적으로 중요한 유적지이다. 

노승봉에서 바라본 고계봉의 모습

고계봉 정상에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

노승봉에 바라본 주작, 덕룡의 모습

마치 붉은 봉황(朱雀)이 금방이라도 날개짓하면서 비상을 하려드는듯 하다

잠시후에 가야할 두륜산의 최고봉인 가련봉의 모습

가련봉으로 가야할 등로의 궤적

노승봉에서 가련봉을 가기 위해서는 급경사의 내리막길에 쇠사슬 로프를 잡고

내려오는데 어찌나 급경사인진 오줌이 저릴정도 아찔한 구간을 내려선다

노승봉 이정표(08:30)

마치 릿지하듯이 암릉을 내려오니 노승봉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0.4km 가면 천년수가 있다는 이정표가 나오는데

만일암 터에 있는 천년수는 물(水)가 아닌 천년묵은 느티나무(樹)를 말한다

 

만일암의 만일(挽日)은 해를 잡아 맨다는 뜻으로 북미륵과 남미륵의 조성 전설과

관련하여 천년수(千年樹)에 해를 매달았다는 설이 전해져 내려오며 만일암터에는

오층석탑이 서있다

가련봉 가는 길은 험하고 험하지만 그래도 해남군에서 설치한 계단과 로프가 있어 다행이다

가련봉(迦蓮峰:703m:08:40)

두륜산 도립공원중의 최고봉으로 해남군 삼산면과 북일면의 경계 능선에 있다

두륜산은 가련봉을 비롯해 두륜봉(630m), 고계봉(638m), 노승봉(682m),  도솔봉(672m)

혈망봉(379m), 향로봉(469m), 연화봉(613m)의 8개 봉우리(두륜8봉)가 능선을 이루며

8개 암봉이 둥근 원형으로  天上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땅에서 연꽃이 솟아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서산대사는 두륜산의 地勢를 말하기를 “북으로는 월출산이 있어 하늘을 괴는 기둥이 되고

남으로는 달마산이 있어 지축이 튼튼히 연결되어 있고, 동의 천관산, 서의 선은산이 홀연히

마주 솟아있다. 바다와 둘러 싸 지키고 골짜기는 깊고 그윽하니이곳은 만세토록 불훼의 땅이다”라고 하였다

이 예언에 따라 산내의 고찰 대둔사와 산림은 임진왜란 때와 한국동란 때도 戰禍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한반도 최남단 해남반도에 솟아있는 산으로서 왕벚나무(천연기념물 제173호)의 자생지가

있으며 다도해를 조망하기 적합하며 1972년도에 전라남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중의 하나이다 

조금전에 지나온 노승봉의 모습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이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장남 정학연(丁學淵)이 찾아왔다가

다산의 제자 황상(黃裳)과 함께 1805년 12월 24일부터 27일까지 아암 혜장(兒菴 惠藏) 스님이

머물고 있던 대둔사에 들렀다가 26일 두륜산을 올랐다.

정학연은 3박 4일의 여행을 「유두륜산기(遊頭輪山記)」로 남겼다

 

정학연이 가련봉 정상에서 읊은 시

「登可憐峰絶頂(등가련봉절정, 가련봉 절정에 올라)」

 

天風吹拂袖 絶頂一欷歔(천풍취불수 절정일희허)

異域寒潮外 殘城夕照餘(이역한조외 잔성석조여)

千年愴無極 萬里杳何如(천년창무극 만리묘하여)

更植歸笻立 依然在碧虛(갱식귀공립 의연재벽허)

 

 

하늘 바람 소매를 휘불어 가니/ 절정에서 한 차례 큰 숨 내쉰다.

이역에 와 차가운 조수 밖에서/ 잔성(殘城)에 저녁볕 비치는 이때.

천년 세월 가없음 구슬퍼하니/ 만 리의 아득함 그 어떠한가.

다시금 지팡이 세워 꽂으니/ 푸른 허공 변함없이 그대로일세

암릉구간을 곡예하듯이 힘들게 걸어가야 하지만 그게 뭔들 대수랴... 눈이 너무나 호강하는데

버스터미널에서 우연히 만나 내가 2대간 9정맥 9기맥에 졸업하는날 축하 산행에

동행한 젊은 산꾼... 이름도 모르고 부산에 산다는 구모씨 일반 등산객으로 생각보다

산행도 잘하고 멋진 친구다... 약간의 역마살 10년전에 내 자화상을 보는 느낌이다

동행한 산행 너무너무 즐거웠습니다

가련봉에서 바라본 위봉으로 잘못 알려진 주봉(胄峰)의 모습

해남군 북일면 동해리에 솟아올라 있는 주봉(胄峰:530m)의 모습이

완도 앞바다의 다도해와 더불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흔히들 이 지역 사람들은 투구봉((胄峰)으로 부르는데 지도상에도

산꾼들의 산행기에도 대다수가 위봉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오류임에 분명하다...주봉은 한문으로 ‘투구 주(胄)’를

‘밥통 위(胃)’로 오역하여 지도 표기에 위봉으로 해놨다

1918년 지형도(일제발행)를 살펴보면 한자표기가 胃(밥통 위)가 아니라 (투구 주)字이다.

 

하루빨리 다시 잡아야 할듯 싶다... 그리고 우리나라 지명의 80%이상이

한자를 모르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데 한문을 안 배우니 이런 오류가 생길 수 밖에...

조금전에 지나온 가련봉 정상에는 아침에 오소재에서 만난 산꾼들이 점령했다

암릉사이의 이런곳도 지나면서 만일재로 향한다

오늘 걸어야 할 능선의 모습

완도 앞바다와 주봉의 모습

이곳은 육.해.공(땅, 바다, 하늘)을 다 볼수 있는 정말 멋진 곳이다

어렵사리 급경사를 지나 전망암에 올라선다

전망대 계단(08:55)

계단 좌측으로는 마치 수석전시장을 연상케하는 멋진 암릉들이 즐비하고...

계단에서 바라본 두륜봉의 모습

마치 거북이를 연상케하는 멋진 모습이다

만일재 가는 길의 암릉구간을 내려서니 산죽길의 호젓한 길도 잠시 만난다

너덜길 곳곳에는 해남군에서 철제로 만든 계단이 산꾼을 상당히 편하게 해준다... 감사합니다

능선에서 바라본 두륜봉과 만일재의 모습

대흥사에서 두륜산을 바라보면 마치 부처님이 누워있는 형상(臥佛)이라는데

앞에 보이는 두륜봉(부처님 얼굴), 노승봉(부처님의 왼손), 가련봉(부처님의 오른손),

백년수(부처님의 심장), 고계봉(부처님의 발)에 해당된다고 한다

초겨울인데 쑥부쟁이는 뭔 미련이 남아 있는지 아직도 등로에서 피어 산꾼을 반긴다

만일재(挽日峙:549m:09:05)

해남군 북일면과 삼산면을 잇는 두륜산 내에 있는 고개로 가련봉과 두륜봉

사이에 있으며 고개 정상에는 넓은 헬기장과 이정표가 있으며 지명유래는

만일암지(挽日庵址)에서 따온듯 하며 ‘해를 당겨 놓았다’라는 의미하고 한다

가을이며 억새가 지천으로 피어 억새천국을 이루는 곳이란다

 

만일재(挽日峙)는 천년수 설화와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옛날 天童과 天女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지상으로 내려가

불상을 조각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낮동안 불상을 조성하지 못하면 다시는 천상으로 갈 수 없게된

두 사람은 꾀를 내어 천년수에 해를 묶어 해가 지지 못하게 하고

天童은 남암에서 天女는 북암에서  각각 불상을 조각했다

그러나 천동보다 일찍 조각을 끝낸 천녀가 빨리 천상으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에 해를 묶어놓은 줄을 끊어버린 바람에 천동은 영원히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실제로 북암과 남암을 가보면 이 전설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는데

북암에서는 마애여래좌상이 남암에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륵불입상이 있다고 한다

만일재이 있는 넓은 헬기장의 모습

이정표( ←두륜봉 0.3km ↑ 대웅전 2.35km 오심재1.4 km, 천년수 0.2km  →가련봉 0.5km, 오심재 1.5km)가 있다

두륜봉가는 길에서 바라본 가련봉의 모습

두륜봉 갈림길(09:15)

두륜봉 정상은 기맥길에서 우측으로 약간 벗어나 있다

이곳에 베낭을 벗어놓고 두륜봉의 멋진 仙景을 감상하기 위해서 급경사를 오른다 

두륜산 구름다리

구름다리 위에는 바위의 형상이 강아지 입맞춤이라고 하는데

산꾼들의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를듯하며 일명 키스바위라고도 부른다

두륜봉( 頭輪峰:630m:09:23)

두륜산 도립공원 봉우리중에 4번째로 높은 봉우리이지만

두륜산의 주산으로 대접을 받고있는 봉우리다

원래는 커다란 바위덩어리란 뜻으로 “한듬산”으로 불리다가

그 이후 한듬, 대듬,대둔으로 변해 대둔산(大芚山)으로 불리다가

백두산의‘두(頭)’와 중국 곤륜산의 ‘륜(輪)’을 따 두륜산(頭輪山)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과거에는 대둔산을 한듬절로 불렀다고 한다

 

정상석 아래 누워있는 烏石에 해남 청년 사랑회에서 “산은 오르되 이름은 없고

천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젊은 피땀으로 세웠다”라는 문구가 왠지 가슴에 와닿는다 

두륜봉 정상에서 바라본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의 모습

만흥부락과 신촌부락이 합쳐서 흥촌리(興村里)라 부른다고 한다 

두륜산에 폭 쌓여 있는 대흥사 자락은 지금 단풍으로 불이 붙었어요

 두륜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가련봉이지만 주봉의 명칭은 4번째 높은 이곳으로 되어 있다

이 구간은 어느 능선에 오르던지 그야말로 一望無際이다

바로 앞에 대흥사의 가람이 한 눈에 들어온다... 교구본사다운 위용을 자랑한다

대흥사를 향해서 저두삼배의 예를  올린다... 오늘이 관음재일인데 절에 가지못한 아쉬움으로...

 

두륜산은 원래 대둔사라는 절이 있어서 대둔산이라 불리다가 대둔사가 대흥사로

사찰 이름이 바뀌자 대흥산으로 불리기도 한 곳인데 언제부터 두륜산으로 바뀐지는 모르겠다.

 

두륜(頭輪)이란 산 모양이 둥글게 사방으로 솟아 날카로운 山頂을 이루지 못하고 둥글넓적한

모습을 이루고 있는데서 연유된 것으로 한듬산으로 불리기도 한 곳이다

한(限)이란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저 아래 있는 대흥사를 ‘한듬절’로 부르기도 했다

대흥사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풍전등화 같은 조선을 구한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 사명대사와 처영대사의 영정을 봉안한 표충사(表忠祠)가  있다

 

당시 禪과 敎, 그리고 좌선, 진언, 염불, 간경 등 여러갈래로 나뉘어져 있던 불교계에

“선(禪)은 부처님 마음이고, 교(敎)는 부처님 말씀이다” 라고 설파한 서산대사는

선조 37년(1604)에 입적을 앞두고 그의 제자인 사명당 유정과 뇌묵당 처영에게

자신의 금란가사(金欄袈裟)와 발우를  해남 대둔사에 두라고 유언을 남겼다

서산대사는 무언지 궁금해하는 제자들에게 ‘대둔사는 병란을 비롯한 삼재(三災)가

미치지 않을 유일한 땅이며 만년을 지나도 일그러지지 않을 곳’ 라 하였다.

 

대흥사의 말사인 일지암은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 차(茶) 연구서인 동다송(東茶訟)을

저술한 초의선사(草衣禪師)가 주석한 곳으로, 차와 선이 하나라는 다선일미(茶禪一味)를

바탕으로 다도(茶道)의 이론을 정립한 초의선사는 “모든 법이 서로 다르지 아니하며 평상심이 곧 道이다”는

선사께서는 禪과 敎, 어느 하나만 주장하는 것은 서로에게 이롭지 않다고 했다

그는 오르지 禪에만 주력할 것을 주장했던 벽파선사와 논쟁을 벌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밝은 촛불삼고 또한 벗을 삼아

흰 구름 자리하고 또한 병풍도 하여

죽뇌인 양 송도인 양 시원도 하고

몸도 마음도 맑고 또 맑아

흰 구름 밝은 달 손님으로 맞으면

도인의 앉은 자리가 이보다 나을쏜가

 

초의선사는 일지암에서 강진으로 유배온  24살 연상인 다산 정약용을 스승처럼 모시며

교류를 했고 제주도에 유배되었던 추사 김정희를 만나러 가기도 했다고 한다

진불암 갈림길(09:28)

두륜봉에서 되돌아 오면서 바라본 강아지 입맞춤 바위의 모습 

다시 두륜봉 갈림길(09:30)

두륜봉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벗어둔 베낭을 메고 닭골재로 향한다

키작은 산죽과 잡목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는 보이지도 않는다

다행이라면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왜그리도 반가운지...

조금전에 내가 걸어왔던 능선을 또한번 뒤돌아 보고...

인간이나 산이나 뒷테가 멋있어야 하는가보다... 이곳은 멋지다 못해 환상적이다

산죽길을 지나니 100m 가까운 직벽능선을 로프에 의지한 채 내려서야 한다

90도 정도의 직벽으로 내려서니 아찔하다 못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선 다음에 다시 내려선 만큼 또 로프를 타고 올라야 한다

脈 산행이 처음이라는 부산에서 온 젊은 친구

처음엔 같이 동행하면서도 상당히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따라온다

내려온 만큼 다시 로프를 타고 암릉을 올라선다

전망암(09:45)

전망암에 올라서니 잠시후에 가야할 도솔봉과 410m봉 그 너머로 달마봉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완도의 관문인 완도대교와 완도 상왕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주봉 갈림길(09:50)

이곳에서부터는 잡목과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구간으로 여름에는 절대 오지마소.

엄청난 잡목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대둔산 도솔봉으로 가야하니 앞이 캄캄하다

좌측으로는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투구봉으로 불리워지고 산꾼들에겐

위봉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주봉의 멋진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해남군 북일면 용산리에 있는 두륜산 투구봉은 마치 장군의 투구모양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매년 겨울이면 이 투구봉에 비친 햇빛에 의해 생긴 그림자가 마치

옆으로 뉘어진 우리나라 지도처럼 그려지며 특히 투구봉에 지도가 그려지는 것은

매년 11월말쯤에서 2월 말정도까지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

시간도 아침 8시에서 9시 사이. 그 중 8시 30분정도가 가장 정확하게 지도모양이

그려지며, 용산리 마을입구에서 약 3백미터 지점에서 가장 잘 보인다고 한다.

(해남신문 자료인용)

지나온 두륜봉의 모습

조릿대 사이를 헤치면 겨우 등로를 찾아서 땅끝기맥길을 이어간다

첫번째 폐헬기장

계속되는 조릿대 군락지를 지나니...

두번째 폐헬기장을 만나면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가야할 도솔봉이 지척이건만 잡목들의 저항은 예상외로 강하다

지나온 두륜산의 멋진 봉우리가 환상적으로 보인다

강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다산 정약용 선생이지만

해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아마 고산 윤선도가 아닐까 싶다

고산 윤선도의 고택 녹우당(사진 - 펌)

고산 윤선도(山 尹善道:1587~1671)

 

조선시대 중기, 후기의 시인·문신·작가·정치인이자 음악가이다.

남인 중진 문신이자 허목, 윤휴와 함께 예송 논쟁 당시 남인의 주요 논객이자

예송 논쟁 당시 선봉장이었으며 1차 예송논쟁 때 송시열이 체이부정설을 주장하자

이에 반발, 효종의 종통을 부인했다는 과격한 상소를 올렸다가 서인의 맹공을 받고

자신이 삼수(三水)에 유배되었다.

1667년(현종 9) 그의 나이 81세에 이르러 겨우 석방되고, 숙종 때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다.

본관은 해남, 자는 약이(約而)[2]이고, 호는 고산(孤山) 또는 해옹(海翁)이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풍수지리에도 능하여 홍재전서에는 제2의 무학(無學)이라는 별칭이 등재되기도 했다.

정철, 박인로, 송순과 함께 조선 시조시가의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의사로 민간요법에 관련된 저서인 약화제(藥和劑)를 남기기도 했고,

오우가와 유배지에서 지은 시인 어부사시사로 유명하다.

화가 공재 윤두서의 증조부이며 다산 정약용의 외5대조부이다.

 

특히 그가 남긴 시조 75수는 국문학사상 시조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진다.

그의 시문집으로는 정조 15년에 왕의 특명으로 발간된 《고산유고》가 있다.

그의 시조는 시조의 일반적 주제인 자연과의 화합을 주제로 담고 있다

 

오우가(五友歌)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 빛이 좋다 하나 검기를 자로 한다.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

좋고도 그칠 뉘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곶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아닐손 바위 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곶 피고 추우면 닢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다.

 

구천(九泉)에 뿌리 곧은 줄을 글로 하여 아노라.

나모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둏아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취니,

밤중에 광명이 너만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 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508m봉(10:05)

띠밭재(498m:10:10)

산죽밭에 푹 쌓여 있는 띠밭재... 그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인명구조를 하는 무인 감시카메라가 있고 우측으로 ‘하산하는길 도로까지 0.4km’의

표지판이 있는데 대둔산 집단시설지구로 내려서는 길이다.

당일 산행을 하는 기맥꾼들은 이곳에서 한 구간을  끊는 곳이기도 한다

띠밭재에서 만난 시그널

김해토요 한마음 산악회도 보이는데 김해의 백곰 아우님과 손 회장님도 잘 계시곘지?

청미래(망개나무 열매)

열매는 빨갛게 열정적이만 맥 산꾼들에게는 정말 귀찮은 존재이다

이곳도 이 넘이 엄청 많아서 오늘 입고온 바지가 온통 상처투성이다

가야할 대둔산 도솔봉을 바라보면 걷는데 이른 아침에 밥을 먹었고 3시간 가량

한번도 쉬지않고 산행을  한 탓인지 배가 상당히 고파서 동행한 젊은 친구와 넓은

암릉에 퍼질러 앉아서 가지고 온 막걸리에다 군만두로 허기를 면한다

터미널에서 만난 젊은 친구와 서로의 살아온 이야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와의 유사점이 너무나 많아서 상당한 친근감을 느낀다

어린 나이에 자기 사업을 시작한 것과 무지하게 많은 역마살... 마치 젊은시절 나를 보는것 같다

40분 가까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휴식을 취한다

많은 시간을 쉬었더니만 땀이 식은 탓인지 약간의 추위를 느껴 다시 베낭을

메고 도솔봉으로 향하는데 너덜길에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을 만난다

능선 우측으로는 두륜산 8봉중에 하나인 연화봉이 보인다

잠시후에 걸어야 할 대둔산 정상의 모습

해남군 북평면 동해리와 완도 앞바다의 모습

힘들게 능선위에 오르니 동행한 젊은 친구가 포즈를 취하란다

전망암 위에는 컨테이너 시설물이 나오고 그 뒤쪽 우측 도솔봉 정상석이 있다

도솔봉(兜率峰:672m:11:25)

해남군 삼산면과 현산면,북평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도솔봉정상은 여기서 조금 더가서

통신탑이 있는 곳인데 그곳은 갈 수 없으니 이곳에다가 정상석을 세워놨다.

 

우측으로는 연화봉, 혈망봉, 향로봉으로 이어지고 기맥길은 통신탑이 있는 직진으로 이어진다

도솔이란 도솔천을 말하며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서 12만 유순(:인 잇수의 단위, 40리에 해당함.)이

되는 곳에 있는 천계(). 여기에는 칠보(七寶)로 된 궁전이 있고 수많은 하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다음 구간인 달마산 구간에도 도솔봉이 있는데 그곳 정상에도 공군부대가 자리잡고 있다

도솔봉 정상에서의 인증샷

잠시후에 걸어야 할 등로의 궤적

5년 10개월 10일간의 대장정

2009년 1월4일 털보 산악회란 곳에서 친구따라 백두대간이 뭔지도 모르고 첫구간인

영취산에서 육십령 구간에 첫발을 내디딘 후에 매주 베낭을 메고 미친듯이 다닌 끝에

백두대간 왕복, 9정맥, 9기맥, 12정맥을 오늘 이 구간을 마치면서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가족들에겐 왕따, 친구들에겐 미친 넘, 소속된 동호회에선 약간 맛이 간넘 소리 들으며 이곳까지 왔다

그러나 이 짓거리에 후회하고픈 맘은 추호도 없다

 

산이란 스승에게서 下心을 배웠고, 배려와 양보하는 것도 배웠다

이젠 한동안 산에 대한 그리움으로 우울증에 시달리겠지

그러나 다들 고마웠습니다... 不狂不及이란 祝詩를 써준 시화님 고마워요

그리고 오늘 험한 산행길을 따라와 축하해 준 젊은 친구도 고마웠고요

다들 인연이라 생각하고 소중한 인연 곱게 이어 나가겠습니다

능선 좌측으로 완도 앞바다가 시원스레 보인다

신라시대에 해상왕 장보고가 천하를 호령했던 그 앞바다

지금은 너무나 한가롭게 보이기만 하다

조금전에 지나온 도솔봉 정상석이 있었던 그 봉우리 너머로 연화봉도 보이고...

정작 정상에는 kt 송신소에게 정상을 내주고 저 곳에 초라하게 서있다.

담 구간의 도솔봉도 공군부대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작명 탓인가?

아님 미륵 부처님께서 내원궁에서 來世를 기다려서 그런가?

대둔산(大屯山 673.2m)

대둔산 정상부는 KBS, 목포mbc, kt 등 여러 기관이 점령을 했다.

휀스 담장을 끼고 좌측으로 가다가...

목포mbc와 KBS 건물 사이의 건물로 사이로 내려선다

조금전에 지나온 길

두 방송국 건물 사이로 내려서니 kt 송신소 정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철조망 옆 임도를 따라서 걷는다

kt 송신소를 한바퀴 빙돈 다음에 다시 270도 좌측으로 꺽어진다

kt  황창규 회장님 천하의 명산인 도솔봉을 점거 하셨으면 주변의

등로라도 좀 정리해주는게 예의가 아닐런지... 이곳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원형 철조망에 바지하나 해 먹고 길이 없어니 너무 심하구먼

40년을 넘게 당신네들의 고객인 산꾼을 홀대해야 되겠소

가야할 410m봉과 닭골재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철조망을 따라 도로로 내려선 다음 정문으로 올라갔다가

정문 직전에서 정문 아래로 우회하여 울타리를 따라 계속 직진한

다음에 좌측으로 꺽어져 kt 송신탑을 바라보며 정상으로 올라선다

잡목으로 인하여 아예 등로는 보이지도 않으니 무조건 철조망을 따라 걷는다

철조망 암릉위로 올라선다

등로에서 산당귀 씨앗을 채취한다... 내년 봄에 텃밭에 함 심어 보려고...

대둔산 정상 kt 중계소 울타리 끝부분(11:55)

KBS중계소 휀스에서 철조망 바깥으로 따라오면 10분도 안걸릴 거리를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따라서 걷다보니 30분이 넘어서야 이곳까지 왔다

후답자들은 KBS 중계기지 휀스에서 좌측으로 내려서서 직진해볼 것을 권한다

kt 중계소 철조망을 끼고 내려서는데 이곳부터는 지나온 두륜산 구간과는

달리 일반 등산객들이 다니지 않는 탓에 길도 없고 험하여 상당히 난해하다

땅끝기맥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산꾼을 반기고...

전망암 바위에 올라서니 가야할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고 완도 상왕봉이 손에 잡힐듯 가깝게 보인다

전망암에서 바라본 주봉의 모습

뒤돌아서 바라본 대둔산 정상의 모습

오늘 내가 걸어온 노승봉과 가련봉, 두륜봉을 다시 한번 아쉬운 듯 바라본다 

잠시후에 가야할 560m봉의 모습

산꾼을 겁박하기 충분할 정도로 위압감이 느껴진다

620m봉에서 내려서는데 이곳부터는 정말 바짝 신경을 써야할 듯 싶다

이곳에서 410m봉 지날때까진  일반 등산객들은 다니지 않은 탓인지 로포같은 안전장치는

전혀없고 오직 두손과 다리에 의지한 산꾼들의 테크닉에 의지하여 산행을 해야만

하는 땅끝기맥 구간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구간이라 산악사고가 가장 빈번한 곳이기도 하다

정말 조심해서 걸어야 하는 구간이다

잡목을 헤치고 암릉구간을 힘들게 지나니 잠깐의 산죽지대를 만나고...

또다시 험한 암릉구간을 만나 개구멍만큼이나 좁은 공간을 힘들게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산꾼을 반긴다

급경사를 내려서니 과남풀이 산꾼을 반기고...

또다시 급경사를 내려서니 거친 잡목을이 산꾼을 괴롭힌다

410m봉을 바라보며 걷는데 후답자들께서는 이곳을 산행할 땐

옷은 집에서 한번입고 버릴만큼 낡은 옷을 입으시고 신발은

꼭 릿지화를 신어야 할듯 싶다... 나도 15,000원짜리 바지하나 해먹었습니다

조금전에 지나온 등로의 궤적

지나온 대둔산의 모습

다시 전망이 기가 막힌 암릉을 만나고...

또다시 암릉구간을 만나서 두 다리가 아닌 네발로 기어서 암릉구간을 통과한다

암릉구간을 내려서니 너덜겅이 나온는데 삐껏하면 헬기 신세지기 딱 좋은 코스이다 

산꾼들에게 땅끝기맥중에 가장 악명높고 난해한 구간인 410m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가롭게만 보이는 동해리의 모습 (해남군 북평면 소재)

평평한 안부 능선으로 내려오니 산죽길이 나오고...

늘 고맙고 감사해요

308m봉(12:30)

308m봉을 지나 조금을 걸으니 너럭바위가 나오고...

완도의 관문인 완도대교와 상왕봉이 보이고 썰물때인지 갯펄이 훤히 보인다

예전에 민초들이 다닌듯한 이름없는 고개를 지나 410m봉 오름길로 접어든다

410m봉 초입부터 산죽과 동백 그리고 잡목들의 저항이 심하다

좌측으로 주봉과 동해저수지가 보이는데 저수지 둑에는 공룡 2마리가 보인다

지나온 대둔산의 모습

가야할 410m봉이 보이고...

410m봉 오르는 길은 상당히 난해하다

이곳은 일반 등산객이 다니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로프같은 시설물이

전혀없으니 모든게 전적으로 본인이 판단해야 할 문제이라 상당히 조심스럽다

이곳도 철없는 넘의 향연은 계속되고...

두발이 아닌 네발로 곡예하듯 아슬아슬하게 암릉구간으로 오른다

공룡의 등을 곡예하듯 걷는데 날씨가 꽤나 추움에도 불구하고

등허리에는 식은땀이 흐른다... 한발 삐끗하면 황천길일 정도로 천길 낭떠러지다

대둔산 아래 현산면쪽으로 최근 생긴듯한 채석장이 보이는데

인간의 오만과 탐욕으로 저 대둔산이 없어지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네

일반 등산만 다녔다는 젊은 친구는 이곳까지는 잘 따라온다

조금도 방심할 수 없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걷는다

계속되는 암릉구간의 연속

암릉구간에서 우측으로 우회하여 걷는데 뒤따라오는 젊은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

워낙 산행 센스가 뛰어난 거 같아서 신경쓰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걸어간다

삼형제바위(13:15)

삼형제 바위를 지나서 급하게 2분정도 치고 오르니 410m봉이 나온다

410m봉(13:17)

정상에는 준.희님의 표지이 있는데 너무 좁아서 이곳에서 쉬기를

포기하고 조금 더 진행하여 417m봉의 넓은 곳에서 베낭을 내린다

417m봉(13:22)

410m봉에서 5분정도 걸으니 정상이 넓은 417m봉이 나오길래 이곳에서

베낭을 내리고 젊은 친구가 오길 기다리면서 오전에 먹다 남은 막걸리에

집에서 가져온 사과와 고구마로 간식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울린다.

난 일욜 산에서는 전화를 잘 안받는데 그것도 모르는 전화이다

받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전화를 받으니 아침에 만난 젊은 친구이다

‘선생님 길을 잃어 버렸어요’ 하면서 어디냐고 묻길래 417m봉에 있다고 하면서

지금 어디쯤이냐고 물으니 포장임도가 보인다고 한다.

 

410m봉 아래 암릉구간에서 우회하는 길에서 길이 좋은 아래로 빠진 모양이다

다시 원위치해서 오라하기는 너무 늦을것 같아서 그쪽으로 내려가서 버스를

타라고 하고 나는 부지런히 닭골재로 향한다 

417m봉에서부터는 산행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완도대교가 시원스럽게 보이고 완도를 잇는 13번 국도가 보인다

우측으로는 마치 수석전시장을 방불케하는 멋진 암릉구간이

펼쳐지고 해남군 북평면의 산그리메가 한 눈에 들어온다.

280m봉을 바라보며 좌측으로 우회를 한다

우회길을 내려서니 너덜길이 나오고 다시 우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서 정상적인 땅끝 기맥길을 이어간다

우회하면서 돌아온 280m봉 정상의 모습

다시 정상 등로로 접어드니 힘든 암릉구간을 다 지났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려야 하는데 지금부터 잡목구간에 등로가 거의 보이지 않아

긴장감을  끝까지 늦출수가 없는 구간이다

등로 앞에 보이는 송전탑 그 뒤로 250m봉을 포스트 삼아 걷는데

지난 9월에 걸었던 달마봉이 다시한번 오라고 손짓을 한다

NO 125 송전탑(14:10)

완도대교와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의 모습

지난 4월에 저 다리를 통과하여 제주도까지 배타고 여행을 간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남창리라는 지명은 예전에 창고가 있었던 곳이라 해서 붙혀진 이름이란다

등로가 거의 보이질 않는 길을 걸으니 성곽의 흔적같은 석축도 보이고...

다시 등로는 험해지고...

정말 힘들게 걸어온 구간을 또 한번 뒤돌아보고...

235m봉(14:25)

이곳부터는 등로가 거의 보이질 않아서 길찾기가 상당히 難解하다

능선에서 약간 좌측으로 내려서니 잡목이 너무 우거져 길이 보이질 않는다

길도 보이지 않지만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거의 보이질 않아 바짝 신경을 써야 한다

조금을 더 내려오니 海松들 사이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조금 더 내려서 직진의

남창리 내려가는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져 반원의 형태의 등로가 닭골재로 이어진다 

우측으로 꺽어져 145m봉으로 향하는데 이곳 역시 잡목의 저항이 강하다

산불이 났는지 불탄 나무들이 종종 보인다

해송잎 사이에 숨어있는 영지버섯 하나를 수확하고... 

145m봉 정상직전에서 우측으로 꺽어지고...

닭골재는 점점 가까워지고...

145m봉에서 내려서니 좌측 남창리로 향하는 뚜렸한 임도가 나오고

땅끝기맥 등로는 희미한 우측으로 꺽어져야 길이 보인다

2분정도를 걸으니 우측으로 호화로운 창원황씨의 가족묘가 보인다

昌原黃氏 監司公派 가족묘(14:55)

뒤에는 산이고 앞에는 저수지니 배산임수의 명당자리인듯 하다

묘지 뒷부분에서 넓은 임도로 내려서기 직전에 좌측으로 꺽어져야 한다

잠시후에 또다른 南陽洪公의 묘지를 만난다

南陽洪公의 묘지

묘지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숲으로 향한다

NO65 송전탑(15:00)

송전탑을 지나자마자 金海金公의 호화묘지가 나오고 묘지 앞으로 13번 국도가 지난다

묘지 우측의 계단 도로를 따라서 닭골재로 향한다

13번 국도

4차선 국도이기는 하나 교통량이 한산하여 주위의 상황을 살핀 다음에

도로를 무단횡단하여 13번 구도인 2차선 도로로 올라선다

조금전에 지나온 13번 국도의 모습

닭골재(楮洞峙:58m:15:15)

해남군 현산면 구산리와 북평면 남창리를 잇는 고개로 새로 생긴

4차선의 도로가 시원스레 뚫려있고 그 옆에는 잊혀져가는 구 13번 국도가 있다.

 

海南地志에 기록된 닭골재를 보면 고개 아래에 있는 ‘딱골’이란 지명에서

비롯된 듯 하며 딱골은 닥나무가 많은 동네라는 뜻으로 ‘저동(楮洞)’으로

기록되어 있다고한다. 그렇다면 이 고개의 원 지명은 저동치(楮洞峙)

즉 딱골재인데 변음이 되어 닭골재로 된 모양이다

 

닭골재에 도착하여 산행을 종료하는데 나무에 걸리고 철조망에

걸려서 바지는 찓어지고 옷에는 도둑놈이란 씨방과 나뭇잎들이

붙어서 거지도 상거지 축에 들 정도로 지저분하여 히치 전문가(?)인

범여도 지나가는 차량을 상대로 이꼴로는 도저히 자신이 없다

모든걸 포기하고 닭골재에서 월송마을로 구도로를 따라서 15분정도 걸어가니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월송 버스 터미널(15:30: 해남군 현산면 소재)

월송에서 해남까지 직행버스로 20분정도 걸린다 (요금 2,600원)

월송에서 해남가는 버스표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표를 끊으니 16시에 해남가는 직행버스가 있다.

30분의 여유가 있기에 정류소 옆에 있는 수도에서 간단하게 씻고

캔맥주 하나로 목을 축인 다음에 베나에 붙은 낙엽에 바지에 묻은

도둑놈이라는 걸 떼내고 다시 의관정제를 하고 난 다음 버스에 올라

해남으로 향하여 버스가 해남읍에 도착하는데 아 글쎄 차창밖에

산에서 헤어진 젊은 친구가 터미널쪽으로 걸어가고 있는게 아닌가...

얼른 전화를 걸어서 터미널로 오라고 하여 만난 다음에 서울가는

버스표를 구입한 다음 1시간정도 시간이 있어서 아침 먹었던 식당으로 향한다

이산가족 만난것 만큼이나 반가웠던 젊은친구

이 친구도 터미널에서 나를 꼭 만날줄 알았다고 하면서 무척이나 반가워 한다

둘이서 삼겹살 2인분에 소주 각 1병씩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차량 출발 2분전에 터미널에 도착한다... 내가 밥값을 내려고 하니 그 친구가

한사코 선생님에게 수업료 내야 한다고 하면서 식대를 지불하네

허허허... 체면 안서게서리... 잘 먹었소

그리고 차량시간 때문에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헤어진게 미안하이

내년봄에 김해 용지봉에서 불모산으로 향하는 신낙남정맥길에 초대하리라

해남발 서울행 버스표

젊은 친구에게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진게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정안 휴게소

다시 잠에 빠졌다가 터미널에 도착하여 지하철 타고 집에오니 밤 11시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