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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영월지맥(終)

영월지맥 제2구간 - 관음당고개에서 중산재까지

by 범여(梵如) 2014. 12. 15.

☞ 산행일자: 2014년 12월 14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오후 늦게 약간의 눈이 내림 

산행거리: 도상거리13.7km / 7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관음당 고개-고사골 고개-492봉-442봉-해고개-이동통신탑-817봉-안부

                 삼태산-누에머리봉 갈림길-누에머리봉-임도-채소밭-투구봉-무두리 고개

                 산불감시초소-388봉-군사봉-398봉-어상천 고개-496.5봉-475봉-임도

                 양천허공 묘지-무명봉-벌목지-중산재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남면 / 충북 단양군 영춘면, 어상천면

 

民草들은 어느때보다 참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건만 지도층 인사들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대한항공 부사장이라는 젊은 여인이 하는 형태는 정말 쪽발려서 얼굴을 못들겠다

부모 잘 만나 부사장에 올랐으면 그에 맞는 품격이 있어야 하거늘 格이라고는 남대문

시장 지게꾼 수준도 안되니 이를 어쩐다... 저급한 수준에 역겨움을 느낀다

그뿐인가... 청와대를 둘러싼 알력싸움에 젊고 유능한 경찰관 하나의 목숨을 잃었다

이유야 어쨌던간에 대통령 주변에 일어나는 불미스런 사태... 정말 우려 스럽다

이 양반들은 권력이 마치 자기들 소유물인줄 아는가 보다.

대통령 측근의 자리는 군림하는게 아니라 국민에게 下心으로 봉사하는 자린줄 잃어 버렸나

그것도 대통령이 아닌 주변 사람들의 형태... 처신 좀 제발 똑바로 하셔요

요즘 박 대통령에게 惻隱之心을 느낀다... 혼자서 정말 잘 해보려고 이리뛰고 저리 뛰건만

주변의 인물들은 도와 주기는 커녕 자꾸 고추가루만 치는 느낌이니... 본인이야 얼마나 답답하겠소

나룻배는 강을 건널때 필요한거요... 강을 건너 길을 갈 때는 나룻배가 필요 없드시

아무리 대선 공신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이 되었으면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인재를 쓰셔야죠

각하!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만 저런 측근들은 과감하게 내치시고 여.야를 불문하고 정말

국민과 국익만을 생각하고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인재를 등용하여 부디 성공한 대통령이 되시길...

無十日紅이라 하지 않았소...대통령 측근에는 茶山 선생같은 인재는 정말 없단 말인가?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 영월행 버스표

어제(13일) 40살 먹은 막내처남 장가 보내고, 늦은 오후 5시에 친목회원 딸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지인들과 술 한잔한 다음 늦은 시간에 집에와서 내일은 산행을 하루 쉴

생각이었는데 이 넘의 역마살이 사람을 괴롭히네...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건만

매주 다니던 습관 때문에 새벽 4시쯤에 어김없이 잠에서 깨는데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서 컴퓨터에 들어가 선답자들의 산행기 몇번을 읽고 지도를 출력한 다음에

평소처럼 베낭을 꾸려서 06시에 버스를 타고 동서울 터미널로 향한다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니 06시 35분이다.

얼른 표를 예매하고 따뜻한 순두부 한그릇으로 아침을 먹고

화장실에 들려서 이빨까지 딱고나니 06시 55분... 부지런히 버스에 오른다

오늘은 날씨가 추운 탓인지 28인승 버스에 승객은 달랑 4명, 그것도 영월에선 나혼자 내린다

영월시외버스 터미널(09:05)

영동고속도로에 교통량이 적었던 탓인지 지난번보다 10분 먼저 도착하기에

조전리가는 버스시간을 알아보니 첫차가 10:00에 출발한단다

하는 수 없이 터미널 앞에 있는 택시 정류장으로 향한다

택시를 타고 오늘의 날머리인 관음당 고개로 향하는데 길은 미끄러우

이곳 영월은 생각보다 눈이 오지않아 조금은 다행스럽다

택시기사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태백산을 경계로 하고있는 영월은

백과는 달리 그리 눈이 오지 않을 뿐더러 여름엔 비도 그리오지 않는다고 한다 

나를 태우고 온 택시기사는 산도 없는 곳에 혼자 다니는 날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조심해서 다녀가시라는 인사를 하고 영월로 되돌아 간다 

관음당재(觀音堂峙:352m:09:25)

영월군 남면 연당리 승당(昇堂)에서 조전리(진밭)의 상촌으로 넘어가는 험한 고개로 영월에서 충북 단양군 영춘면으로

통하는 2차선 도로가 지나가며 고개 정상에조전리’라는 표시석이 서 있는 조그만 소공원이 자리를 잡고있는 고개이다

 

고려 인종의 아들인 충희(沖曦)대사가 태화산 서쪽의 흥교사에 있을 때, 그 절에 봉안할 부처님(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이 고개에서 쉬었다가 넘어갔으므로 '관음당재'라 불렀다고 하는데 지도상에는 ‘관암당’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아마 오류인 듯 싶다
오늘의 들머리 관음당 고개
고개 정상에는 ‘조전리’라는 마을 표시석이 있고 표시석 뒷쪽은 폐비닐 수집소가 보인다
우측으로는 ‘지시골’이라는 표지판도 보인다... 고개 정상에는 생각보다 춥다
이곳에서 완전무장(?)을 하고 산행을 준비한다

 

조전리(助田里)의 유래를 보면
충청북도와 강원도 경계지점에 위치한 조전리(助田里)는 이레동안 소를 갈아야 할 정도로
긴 밭이 있었다하여 진밭(긴밭)으로 불리다 언제인가부터 조전(助田)으로 바뀐 지명으로 상
촌(上村)과 하촌(下村)으로 나뉘는데, 하촌마을 동북쪽에 위치한 골짜기가 쉰패랭이골이다.
1965년경 이 쉰패랭이골에는 철을 캐던 광산이 있었다. 나무로 버팀목을 쓰고 기술도 그리
발달되지 못한 터라 사람들의 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던 시절이야기다. 갑자기 무너진 굴
에서 단 한사람도 살아 나오지 못했고, 그 후 몇 사람이 죽은 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광부들
이 썼던 이 패랭이의 숫자로 숨진 사람들을 수를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들머리에 접어드니 양지바른 곳에 묘지 한기가 있고...

뒤돌아본 관음당 고개의 모습

능선에 올라서니 눈은 하나도 없다... 걷기는 편하나 초반부터 잡목이 태클을 걸기 시작한다

능선을 조금지나 좌측으로 꺽어져 안부 능선으로 내려섰다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봉불사 안부(09:33)

안부에서 올라서니 좌측으로 잣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고사골(09:45)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사람이 거주하는 비닐하우스가 지맥길을 가로막고 있고 하우스를

지나니 관음당고개에서 이어지는 임도가 나오며 임도를 오르다 절개지 능선으로 오른다

 

고사골은 영월군 남면 조전리 상촌(上村) 북쪽인 지당골 꼭대기에 있다는 고개로 24절기 중에 하나인

소만(小滿)이 되면, 보리가 익어가고 냉이는 꽃씨가 달리며 모내기와 함께 심한 가뭄이 계속된다.

이때 비가 안오고 가물면 조전리 사람들은 이곳에서 하늘에 기우제(祺雨祭)를 올렸으므로

 '고사골' 또는 '천제당골'이라 한다. 마을 사람들은 돈을 추렴하여 돼지를 잡고 삼색 과일과 술을

준비하여 제(祭)를 지냈는데 제관(祭官)은 마을에서 존경받고 덕망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1943년의 제관은 엄경하 씨가 맡았다고 한다. 이곳에는 1946년에 엄경섭 씨의 시주로

최대희 스님이 건립한 태고종인 『봉불사』라는 절이 있으며, 지금은 4가구가 살고 있다.

오늘 내가 걸어야 할 삼태산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임도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능선으로 올라야 하는데 능선입구에는 음지라 그런지

눈이 제법 많이 쌓여있어 우측으로 약간 우회하여 과수원을 가로질러 능선으로 오른다

과수원에는 움막이 하나있고 과수원에서 사용하는 커다란 물탱그가 보인다

잠시후 뚜렸한 등로가 나타나며 우측 아래에는 밭이 보인다

음지라 그런지 눈이 쌓여있어 꽤나 미끄럽다... 그렇다고 아이젠 착용할 정도는 아니고...

495봉(10:00)

495봉에서 직진 등로를 버리고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고만고만한 무명봉을 서너개 정도 넘고나니 좌측으로 간벌한 산이 보인다

 

간벌한 산 아래에는 조그만 밭이 보이고 계속해서 등로를 따라서 걷는다

묘지와 갈라지는 y자 길이 나오고...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잠시 지나니...

무명묘지 2곳을 지나 오르막으로 오른다

또 다른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442봉(10:50)

이곳에서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 급경사로 내려선다

급경사로 내려서니 잘 다듬어진 묘지를 만나고...

묘지에서 조금을 더 내려오니 우측으로 논.밭과 함께 단양군 영춘면 유암리가 보인다

본래 영춘군 차의곡면의 지역으로서 놀암 또는 유암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어상천면의 대전리 일부를 병합하여 유암리라 해서 단양군 차의곡면에

편입되었다가 1931년에 차의곡면이 폐지됨에 따라 영춘면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조그만 무명봉을 지나니 절개지가 나오고 해고개를 만난다

해고개(日峴:330m:11:00)

충북 단양군 영춘면 유암리와 사이곡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59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이 지역 사람들은 해현(日峴) 또는 갈고개라 부르며 지명의 유래는

지대가 높아서 뜨는 것을 제일 먼저 본다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도로 우측인 영춘면 유암리쪽으로 내려간 다음 도로를 건너 수로로 올라선다

수로와 같이있는 넓은 임도를 따라 오르다 임도를 버리고 좌측 수로를 따라 오른다

수로를 따라 오르다가 우측으로 꺽어지니 묘지 2기가 나오고...

바로 위해 또다른 묘지 한기를 지나면서 능선으로 접어드니 또다시 잡목이 태클을 건다

우측으로는 꽤나 넓은 밭이 보이고...

지나온 442봉의 모습

SK telecom 중계기지(11:10)

이동통신 중계기지를 지나 잡목 헤치면 등로를 빠져 나오니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고 지맥길은 밭으로 변해 버렸다... 도시도 아닌 오지에...

가야할 등로의 궤적

단양군 어상천면과 영춘면의 경계를 이루는 농우재는 삼태산과 오기산을 잇는 경계이기도하다.

하늘높이 삐죽삐죽 솟아오른 삼태산을 남자라 한다면 오기산(五溪山. 玉鷄山)은 삼태산에 비해

순하므로 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삼태산을 남자 산으로 오기산을 여자 산으로 불러왔다.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지맥길을 이어간다

무우값 폭락으로 인해 수확을 포기한 무우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무우밭을 지나 양지바른 묘지에서 바람을 피하며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이른 아침에 밥을 먹었던 탓인지 배가 고파오기에 앙꼬빵 하나에다

쥬스 하나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선다

이곳은 묘지들은 비교적 잘 관리되어 있지만 특이한 점은 묘비가 없다는 점이다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영산기맥이나 땅끝기맥에서 만난 묘지들처럼 화려함은 전혀없다

능선 안부에 오르니 유인 온양방씨 묘지를 만나고 본격적인 급경사의 오르길이 시작된다

孺人溫陽方氏之墓(11:35)

온양방씨 묘지에서부터 급경사의 오름길이 시작되는데 이곳은 음지라 잔설(殘雪)이 많이

쌓여있고 그 아래는 낙엽이 수북한데 초반에 이것을 우습게 보고 스틱을 이용해 올라가는데

낙엽으로 인해 상당히 미끄러워 베낭에서 아이젠을 꺼내서 착용했지만 올라가면 미끄러지고

또다시 올라가면 다시 미끄러지는 바람에 이곳에서 생각보다 시간이 상당히 많이 지체된다

음지 급경사에서 한참을 버벅거리는 바람에 예상시간보다 30분이상 시간이 허비된 바람에

너무 지쳐서 안부 능선에 올라서 그냥 주저않고 싶지만 그래도 가야할 길이 멀기에 계속 걷는다

이곳 우측 오기산 방향으로 뚜렸한 등로가 있어서 약간은 혼란스럽지만 좌측으로 꺽어진다

817봉(12:30)

이곳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지는데 급경사에다가 잡을것이 없어서 상딩히 힘이든다

내려오면서 너무  다리에 힘을 줬던 탓인지 다리에 무리가 왔는지 통증이 온다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이곳 817봉을 서레아 박건석님 ‘상자봉 817m’ 라고 코팅지를

붙혀 놨는데 난 빠르게 걷느라 그걸 놓쳐 버렸다

상자봉을 정감록 비결에는 영춘 삼타산 아래 십승지라고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안부(715m:12:37)

7~8분정도 걸려 급경사를 지나 안부로 내려오니 오늘 산행중 처음으로 이정표를 만난다.

단양군 영춘면 만종리는 삼태산 동남쪽에 자리잡은 마을로  농촌마을로 삼태산()

밑이 되므로 만마루 또는 만종(滿宗)이라 한데서 만종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울미, 절골, 평말 등이 있다. 울미는 효자문거리 남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 말에 면소재지였던 곳이었고 경치가 아름다웠다고 한다.

절골은 돌토반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큰절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며

평말은 평촌이라고도 하며 만종리의 중심 벌판에 있는 마을이고

효자문으로 평말 남쪽에 있는 조시영의 효자정문이 있다

안부 이정표를 지나 커다란 소나무를 만난 다음 또다른 이정표를 만난다

어느게 맞는지?

조금전에 만난 이정표와 30m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 이정표상 삼태산 거리가 320m나 차이가 난다

등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오기산(五溪山)의 모습

이 지역 사람들은 삼태산을 남성의 산으로 오기산을 여성의 산으로

부른다는데 내가봐도 다소곳이 수줍하는 여인의 산으로 보인다

좌우지간에 여인들은 저런 맛이 있어야 하는데 이 시대의 여인들은 왜그리 억센지?...

모 항공사 부사장이란 여인도 꼴값을 떨다가 국제적으로 개망신을 당하질 않나...

옛 성현들의 말씀에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을

땅콩 한봉지 때문에 꼴값을 떨다가 얼마나 많은 손해를 회사에 끼치다니...

주주들의 손해는 누가 보상하나...ㅉㅉㅉ

조금전에 지나온 817봉의 모습

817봉에서 급경사로 내려온 만큼 다시 삼태산의 급경사로 올라선다

이곳은 아무도 다니지 않은 탓인지 길도 미끄럽고 시간이 상당히 지체된다

삼태산 8부능선에서 만난 이정표

이정표(←삼태산 정상 60m ↑ 방살미 → 삼태산주차장 1.56km) 를 만나는데 미끄러운 길을

걸어온 지 12분(정상으로 걸으면 3~4분정도) 얼마 안되어 삼태산 정상 60m란다

나중에 계산해보니 이 이정표가 가장 정확했다 

 

이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가면 방살미라는 마을이 있는데 어상천면 대전리에 있는

자연부락으로 사기막골 동쪽 삼태산 중턱에 위치한 마을로 자연 경관이 뛰어나며

웃방살미와 아랫방살미가 있다고 한다

삼태산 오르는 길은 음지라 눈이 그리 많이 쌓인것은 아니지만 아무도 다니지

않았고 눈 아래에 낙엽이 있어서 얼마 안되는 거리지만 시간이 꽤나 걸린다

드디어 삼태산 정상에 오른다

삼태산(三台山:876m:12:55)

충북 단양군 영춘면 만종리와 어상천면 임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삼태기 세개를 엎어 놓은듯 하여 "삼태산(三台山)"이라 불리고 있으며,

산의 형상이 누에가 기어가는 듯 하여 "누에머리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어상천면과 영춘면  사이에 있는

농우재고개가 삼태산과 오기산을 이어주는데, 예로부터 주민들은 하늘 높이 솟아오른

삼태산을 남자산, 산세가 부드러운 오기산은 여자산으로 불러왔으며 두 산이 서로

바라보면서 항상 그리워한다고 여겼다.

정상에는 이정표와 어상천면소재지→ 이정표, 그리고 1등 삼각점만 있는 밋밋한 봉우리다

삼태산 정상 삼각점(영월 24 / 1995 재설)

해고개에서 817봉 지나 이곳까지 오는데 미끄러운 눈길로 인하여 내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1시간 가량을 더 허비하는 바람에 상당히 마음이 급해진다... 안부 능선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누에머리봉으로 향하는데 로프가 처져있는 일광굴을 지나니  용바위골 갈림길인 물푸레나무

군락지를 만나고 조금을 더 지나니 어상천면에서 심어논 구상나무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일광굴

일광굴은 어상천면 임현리 고수동에 있는 거대한 석회석 자연동굴로 굴 입구는 좁으나

굴 속은 매우 넓어 면적이 수백평이나 되고 높이는 60여m에 이른다고 한다

굴 천정의 높은곳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햇빛이 굴 안을 비추고 있다

 

이 굴은 다음과 같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이 마을에 쳐들어 왔을 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굴 속으로 피신을 하였고

며칠 후 한 노인이 바깥 사정을 알아보려고 마을에 나갔다가 왜군에게 잡혔다.

왜군을 노인을 고문한 결과 마을 사람들이 굴 속으로 피신하여 있는 것을 알고는 굴 입구에 불을 지폈다.

굴 안에 있던 수백명의 사람들이 연기에 질식하여 모두 죽고 말았다.

이 참혹한 일이 있은 후 7일이 지나서 연기가 삼태산 정상 부근으로 솟아 올랐다고 하며

지금도 굴 속에는 당시 사람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들이 발견된다고 한다

용바위골 갈림길(13:15)

드디어 누에머리봉 도착한다

누에머리봉에 도착하니 이곳은 화려하다

어상천면에서 ‘삼태산’과 ‘晩秋’라는 시를 써놓은 나무판이 있고 정상과 그 아래에

원형 탁자 2개와 이정석만 해도 3개이며 그 밖에 시설물로 인하여 오히려 지저분해

보이는 느낌이다... 누에머리봉은 삼태산의 한 봉우리에 불과한데 主客이 전도된 느낌이다

단양군 어상천면에서는 이곳을 삼태산 정상이라 주장하는 모양이다

누에머리봉(864.2m:13:17)

충북 단양군 영춘면과 어상천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삼태산의 한 봉우리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산의 지세가 누에가 기어가는 듯한 형상이라 하여 누에머리봉이라

하지만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세개의 삼태기중에 하나라 보면 되니 삼태산이나

누에머리봉이나 하나의 산이라 보는게 가장 정확할 것 같다

주봉인 삼태산 정상은 홀대받고 부봉인 이곳이 훨씬 대접받는 느낌이다

이곳에서 삼각대를 펴서 인증샷을 남기고 서둘러 가야할 길을 나선다

누에머리봉 갈림길(13:25)

누에머리봉에서 삼태산 방향으로 5분간 되돌아와서 커다란 갈참나무 한그루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90도 급경사로 꺽어지는데 얼마나 경사가 급한지 내려오면서 죽을똥을 싼다

혼자서 이곳 겨울산행은 아무래도 무리일듯 싶다

급경사로 꺽어지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누에머리봉에서 임도로 내려가는 능선은 길은 뚜렸하나 경사도가 75도나 될 정도로

급경사에다 잔설이 쌓여있고 나뭇가지 하나 잡을데가 없어서 상당히 위험하다.

스틱을 이용해 내려가보지만 팔과 다리에 힘이 너무 들어가다보니 무릎 통증이 심하다

오늘은 무릎보호대까지 착용을 했지만 별 소용이 없는듯 하다

임도(512m:13:50)

500m 정도밖에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25분이나 소요하며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에 내려서서 좌측으로 30여m 정도를 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지니...

측으로 꺽어져 산 속으로 들어서니 길은 아예없다 

그래도 반가운 것은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등대 역할을 해준다

등로가 없는 길을 걸어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지니...

대구에서 오신 비실이부부님의 시그널이 나오고 ...

잡풀을 헤치고 밭 가장자리로 올라서는데 저멀리 컨테이너를 포스트 삼아 걸어간다

이곳을 지나면서 스틱 케이스를 잊어 버린다... 에공 아까운거

영월지맥길을 점령해버린(?)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가는데 수확을

포기한 배추들이 많이 보인다... 농부의 자식으로서 가슴이 아프다

배밭을 가로질러 컨테이너 쪽으로 향한다

寒한 자의 점심 도시락(14:05 ~ 14:25)

컨테이너를 바람막이 삼아 양지바른 곳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점심이래봐야 집에서 보온도시락에 싸온 밥과 씨래국에다 얼른

말아먹고 보온병의 따뜻한 물에 커피 한잔을 타서 마시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컨테이너에서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조그만 숲속으로 들어간다

조금전 내가 지나온 등로의 궤적

등로로 접어드니 희미한 길이 보이고 선답자들의 시그널과 쓰러진 나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투구봉(鬪具峰:(478m:14:35)

단양군 어상천면 임현리에 있는 봉우리로 이곳이 지대가 높아 그런지

478m라는 높이가 실감나지 않으며 그저 밭 가운데 자리잡은 밋밋한

봉우리이며 아무런 표식도 없는데 박건석님께서 ‘투구봉 478m’라는 표지판을 붙혀놨다

산의 지세가 군사들이 썼던 투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란다

투구봉에서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2분정도 내려오다가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선답자들이 대부분 직진길로

내려가 마을을 돌아서 산불감시초소로 향했는지 길이 아예 없다.

그러나 한발자국을 가더라도 원칙대로 가고 싶어 좌측으로 꺽어진다

개척자의 심정으로 없는 길을 만들어 내려가니 산행지도를 만드시는 진혁진님의 시그널을 만난다.

역쉬! 정통파는 어디가 달라도 달라... 존경스럽다

투구봉 아래 등로에서 3분정도 숲을 헤치며 내려오니 임도를 만나고...

임도를 내려와 다시 잡목과의 전쟁을 치른 다음에 양지바른 곳의 묘지 3기를 만나고...

곧이어 묘지 2기를 만난 다음에 무두리 고개로 내려선다

무두리 고개(14:45)

단양군 어상천면 임현리 고시골 북쪽에 있는 고개로 대전리와 임현리를 잇는 뱀처럼

꼬불꼬불한 새로 생긴 도로가 지나가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지형이 접시처럼 생겨서

물이 들어오기만 하고 빠져나갈 곳이 없으므로 결국은 밑으로 스며들어 빠지는 분지(盆地)

형태의 地勢라서 붙혀진 지명으로 그래서 무두리 마을을 수입촌(水入村)이라 부른다고 한다

고개를 가로질러 밭 가장자리로 올랐다가 능선으로 접어드는데 간벌된 잡목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잡목을 헤치고 가니 잘 관리된 묘지가있고, 묘지 좌측에는 선돌(立石)이 서있는데

‘멸공, 백전백승’ 이란 글씨가 써 있다... 공산주의에 얼마나 恨이 맺혔으면 저랬을까?

근데 말이예요... 요즘에 어느 재미동포와 모 진보정당의 부대변인까지 지냈다는 50대의

여인 2명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북한을 찬양하고 미화하면서 토크쑈네 뭐네 하면서  돌아

다니는데 저걸 어쩌죠... 평양에서 남한을 찬양하는 토크쑈를 하는 자들은 없으니 말이예요

묘지를 지나니 kt 이동통신탑과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산불감시초소(14:52)

산불감시초소가 있는곳에 도착하니 3개의 돌탑이 서있고 감시초소에서 근무하는

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왜 혼자 다니냐고 걱정을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오늘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나니 무척이나 반갑다

나도 인사를 하고 무두리의 지명유래를 물으니 이곳에 온 지가 1년밖에 안되어 모른다고 한다

다시 인사를 하고 좌측으로 꺽어져 중산재로 향한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바라본 수입촌(水入村)이라 불리는 무두리 마을의 모습

삼태산의 지세가 이곳에서 바라보니 마치 누에가 기어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약간의 경사진 곳을 내려서니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그런데 특이한 점은 묘지 주변에 담장 형태로 되어있는 돌들이 한결같이 새카맣다

海州吳公 墓(14:55)

해주오씨의 묘지를 지나 다시 숲속으로 접어든다

388봉(15:00)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영월지맥길을 이어간다

능선에는 소나무들이 도열하듯 늘어 서있고 잠시후 안부에 내려서니 가슴이 폭삭

내려않은 여인의 젖가슴처럼 생긴 묘지 2기를 만난 다음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또 다시 무명봉에 올랐다가 조금을 더 진행하니 군사봉이 나온다.
군사봉(軍事峰:396m:15:15)
단양군 어상천면 임현리 고수골 서쪽에 있는 봉우리로 그저 밋밋하다
주변에 소나무들이 있고 이곳도 설레아 박건석님이 표지 코팅을 붙혀놓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봉우리이며 봉우리의 지세가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장군대좌형’이라 하여 붙혀진 지명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어상천고개로 향한다

어상천고개(漁上川峙:335m:15:25)

단양군 어상천면소재지인 임현리에서 대전리를 넘어가는 519번 지방도로

어상천(漁上川)이란 고기가 사는 최상류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말기에 영춘군에

속한 어상천현이 있었는데 1914년 일제 강점기에 있은 행정구역 개편 때 영춘군이

폐지되고 단양군으로 흡수되면서 영춘군 어상천면에서 단양군으로 바뀌었다

도로를 건너 좌측으로 가다가 이동통신탑이 있는 절개지로 올라선다

고개 좌측 아래에는 절골이란 마을이 있는 곳이다

 

단양군 어상천면 임현리 절골은 옛날 을아현(乙阿縣) 관아가 영춘현(永春縣)으로

옮겨 갈때까지 절이 있었다고 하며 을아현 관아가 있던 양지말은 여자의 성기 모양을

하고있고, 그곳에서 마주 보이는 중바위(僧巖)는 남자의 성기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두 모양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에 절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절에 있는 승려는 불공을 올리거나 수도를 하려 하여도 地勢에 눌려

맑은 마음의 경지에 이르기가 어렵고 늘 음란한 기운이 일어나곤 하였다

 

마침 신임 현감이 부인과 권속을 이끌고 을아현으로 부임해왔다

그 현감의 부인은 신앙심이 깊어서 가끔 절에 불공을 드리러 다녔는데 이 절의 승려는

그만 평소의 수양을 잃고 현감부인의 미색에 홀리게 되었고, 부인도 역시 승려의 꾀임에

빠져 은밀한 내통을 하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사실이 현감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대노한 현감은 승려를 절에서 멀리 내쫓고

절을 헐어 버렸다...사람들은 절에서 바라보이는 두 곳의 지세 때문에 그런 일이 있게 되었다 믿었다.

지금은 절골이라는 마을 이름만이 남아 있을 뿐 절터는 찾아 볼 수 없다.

절개지로 올라서니 고추를 심었던 밭이 나오고 밭고랑을 따라 올라서니 농로를 만난다.

農路를 따라가다가 우측으로 향하는 넓은 농로를 버리고 좌측의 임도를 따른다

농로에서 바라본 삼태산의 모습

농로를 버리고 능선으로 접어드니 넓은 임도를 만나고...

넓은 임도를 따라서 잠시 오르다가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져 능선으로 올라선다

등로에서 바라본 어상천면 임현리(任縣里)의 모습

어상천면소재지가 있는 곳으로 조선시대 말기에 임현창이 두어

임현이라 하였는데 이곳은 평균 300~600m의  고산지대로

어상천 수박이 유명하다고 한다

어상천 고개에서 백마산으로 오르는 길은 급경사에다가 음지라 낙엽위에

눈이 살짝 쌓여있어 생각보다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이든다.

능선에는 약초를 심어둔 약초재배단지라 그물을 쳤는지 이나면 겨울잠을 자러가는

뱀을 잡기위해 그물을 쳤는지는 몰라도 백마산 정상까지 계속해서 그물을 만난다. 

잠시 무명봉을 만났다가 또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갑자기 눈발이 쏟아지기 시작하더니만 뒤돌아보니

지나온 삼태산이 보이질 않을정도로 눈이 쏟아지는데 갑자기 맘이 급해지기 시작한다

백마산(白馬山:469.5m:15:50)

단양군 어상천면 대전리 느르메기(黃鶴洞) 서쪽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표식을 인식할 수 없는 삼각점만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백마산이 있는 대전리(大田里)는 넓은 들이 있는데 그래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하며 유명한 어상천 수박이 생산되고 단양마늘 시험장이 있는 곳이다

표식을 인식할 수 없는 백마산 정상 삼각점

백마산 정상 풍경

백마산 정상을 조금 지나면서 그물망과 헤어지고 급경사로 내려서는데

안부가 나타나고 다시 급오르막으로 올라가는데 힘이 배로 드는 느낌이다

475봉(16:00)

475봉에 올라 우측으로 꺽어져 능선을 따르다 내려서니 넓은 임도를 만난다

임도(16:10)
어상천면 대전리 양지말에서 임현리를 넘어가는 고개로 4륜차가 다닐만큼의 넓은 임도이다

陽川 許公과 부인 昌寧曺氏 부부 합장묘

임도를 가로질러 오늘 산행중 마지막 봉우리로 오르는 길에 양천허공과 창녕조씨

부부 합장묘를 만나는데 가운데 상석이 있고 좌우에 부부 각각의 묘비가 서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묘비가 서로 원수가 진 것처럼 각각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生前에 사이가 좋지 않았나? (범여의 생각中에서) 

무명봉(16:20)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선 다음 우측 능선으로 꺽어진다

좌측 능선 아래로는 벌목을 해서 시원하고 그 너머로 다음구간인 가창산이 보인다

벌목현장 너머로 보이는 가창산의 모습

눈발은 그치고 서산 너머 구름사이로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중산재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조금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데 간벌한 잡목이 태클을 건다

도로에 내려서기 직전에  밭옆에 있는 망가진 움막을 만나고...

중산재(中山峙:343m:16:30)

단양군 어상천면 연곡리에서 대전리를 넘어가는 고개로 제천에서 영월과 쌍용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있고 우측 아래 대전리에 참나무쟁이 마을이 보인다.

예전에 참나무가 많아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하며  중산재라는 지명은 산과 산사이의

중간에 위치한 고개라하여 붙혀진 지명이라고 하는데 이 지역사람들은 장재(場峙)라고 부른다

교통이 불편했던 옛날에 이곳 어상천 사람들이 제천에 있는 장(場)에 다닐 때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하여 ‘장재(場峙)’ 또는 ‘장고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바람에 이곳에는 장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도둑들이 득실거리기도 한 곳이란다

오늘의 산행기록

산행거리가 그리 길지 않은 구간이나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낙엽위에 쌓여있는 적설량이 그리 많지는 않았으나 시간은 상당히 지체가 된다

이곳에서 스틱을 접고 베낭을 정리한 다음 지나가는 차량을 상대로 히치를 시도하는데

10분이 지나도 차량 한대 보이지 않으니 택시를 부를까말까 상당히 고민을 하는데

까만 승용차 한대가 지나 가길래 아예 길을막고 차를 세운다

이 분은 산불감시를 봉사하는 차인데 어상천면소재지에서 어상천부동산을 운영하시는

분이란다... 고맙게도 어상천면소재지까지 태워주는 바람에 편하게 왔다 

차를 타고오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면소재지까지 오는데 직업이 뭐냐고 묻길래

인테리어업을 한다고 하니까... 명함을 달라고 하여 서로 명암을 주고받은 다음 차에서 내린다

어상천면소재지(16:45)

면사무소 버스 정류장에 들려 버스 시간을 물어보니 제천가는 버스는 19시밖에

없다고 하며 잠시 후 단양가는 버스는 도착하건만 단양으로 가면 서울가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에 일단 후미진 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구멍가계에서 캔맥주 하나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이곳에서 제천까지 택시를 타면 요금이 20,000원 이상 나온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돈으로 택시를 탈수야 없지... 지나가는 차량을 상대로 히치를 시도하건만

이곳이 얼마나 오지인지 20분이 지나도 차량은 커녕 개미새끼 한마리도 안보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면소재지 안으로 안들어오고 우회도로가 생긴 탓이다

30분정도 지났나... 차부 안 구멍가계에 카니발 승합차량 한대가 세우고 운전수가 우유를 산다

밑져봐야 본전이지 혹시 제천가는 차를 탈수있는데가 어디냐고 넝청스레 물으니

자기가 지금 제천을 가려고 한다면서 차를 타라고 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구먼

젊은 친구의 차량을 타고 제천으로 넘어오는데 벌써 어둠이 짙게 드리우고 눈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20분이 넘게 걸려 제천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버스터미널로 들어선다

어상천면에서 출발하는 버스 시간표

제천 버스터미널(17:40)

터미널에 도착하여 18시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산 다음에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고 빵과 우유하나를 사서 허기를 면한 다음에 서울행 버스에 오른다

제천→동서울행 버스는 항상 밀리는 영동고속도로로 가질 않고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오다가 동홍천에서 서울→춘천간 고속도로를 타고 오는데 전혀 정체되질

않고 정확하게 2시간만에 서울에 도착한다

터미널을 나와서 집에 가봐야 그렇고해서 터미널 근처 감자탕집에서

뼈감자탕에다가 소주 한병을 마시고 집에 오자마자 깊은 잠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