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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영월지맥(終)

영월지맥 제8구간 - 황재에서 방개곡 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15. 1. 26.

 

☞ 산행일자: 2015년 1월 25일

☞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오후부터 진눈깨비 

산행거리: 도상거리 18.9km +0.5km / 7시간 15분 소요

☞ 참석인원: 동호인 산악회 따라서

☞ 산행코스: 황재-산불감시탑-602봉-횡성한우연구센터-칠송고개-NO178송전탑-614봉-620봉

                 느릅재-670봉 659봉-꼬부랑재-705봉-719.6봉-698봉-686봉-검두재-644봉-임도 

                 620봉-넘은재-589봉-곧고개-628봉-상마암고개-임도-푯대봉-꺽은재-612봉-말영재

                 615봉-NO178송전탑--651.3봉-NO177송전탑-623봉-방개골고개-화동2리정류장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둔내면, 갑천면, 청일면

 

1주일만에 또다시 동호인 산악회를 따라서 영월지맥 8구간을 나선다

오늘 구간은 사실 썩 내키지 않은 구간이지만 그래도 안 갈 수 없어서 따라 나선다

20여km를 걸어가지만 산이란 명칭이 붙은 건 하나도 없고 봉우리란 명칭은 푯대봉 하나뿐.

나머지는 고만고만한 고개로 이루어졌고,  강원도라 그런지 지대는 높으나 고도차가

그리 많이않아 마치 오지 트레킹하는 기분으로 걸어야 하는 코스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베낭을 챙긴 다음에 6시 45분에 집을 나선다.

양재역에 도착하니 지난번 만났던 산꾼들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고 버스에 올라

여주휴게소에 도착하여 국밥 한그릇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09시 20분에 황재에 도착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황재(黃峙:500m:09:20)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와 우천면 하궁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6번국도가 지나는

2차선 도로로 고갯길이 다른 곳보다 진한 황토색을 띠어 ‘황재’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황재에 도착하여 베낭을 내리고 잠깐 쉬~이하는 사이에 동료들은 산으로 쏜살같이 사라진다

졸지에 맨 후미가 되어 버리고 하는 수 없이 부지런히 쫒아가는데 지난주와는 달리 며칠전에

내린 눈으로 인하여 등산화가 빠질정도의 눈이 능선에 쌓여 있어서 걷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눈 덮인 묘지를 치고 오르니 산불감시초소가 나온다

산불감시초소(09:45)

1분만에 602봉에 도착하고...

602봉(09:46)

횡성축산기술연구센터(09:50)

산불감시초소에서 5분정도를 걸으니 눈 덮인 넓은 초지가 나오는데 이곳이

횡성축산기술연구센터이다... 지맥길은 철조망을 따라서 진행한다

횡성군 둔내면 축산기술연구센터에는 ‘강원한우’라는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특성화 작업을 통해 한우보증 씨수소를 생산하는 한편 가축유전자원관리,

유전생명 신기술개발, 축산농가 교육 등에 주력하고 있으며 이른바 종자소,

씨수소로 불리는 이들은 한 마리당 10억 원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한다.

1910년 국립종묘장으로 시작된 이곳은 풀 사료 생산을 위한 32만 평의 넓은 목초지란다

철조망을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높이가 낮아 키 큰 산꾼들은 조심해야겠다

草地 너머로 지난주에 걸었던 덕고산도 보이고...

철조망을 따라 가다가  좌측으로 꺽어지니 임도가 나오고...

조그만 고개를 무명 고개를 넘는다

오늘 산행은 20여km를 걸어면서도 산이름을 가진 봉우리는 하나도 없고 봉이라 붙은

명칭은 푯대봉 달랑 하나인데 고개는 개념도에 기록된 것만도 9개에다 이런 무명고개도

있으니 바짝 신경쓰야 할 구간이다... 거기다가 강원도라 해발고도가 높긴 하지만 고도차가

거의 없어서 마치 백두대간길에 중화지대인 상주구간과 같은 그야말로 非山非野 지대이니

일반 등산객은 올 일이 아예 없을테이고 그러다보니 지자체인 횡성군에선 관심조차

가질 일이 없을 테이고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등장하는 ‘산친구산악회’에 등장하는 표지판마져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는지 보이지 않으니 산행을 하면서도 상당히 답답한 느낌이다

이틀전에 서울에 비가 왔을때 이곳은 눈이 온 모양이다

등로에는 눈이 제법 쌓여있고 좌측에는 자작나무로 잘못 알려진 사스레 나무 군락지가 보인다

무명봉을 지나 편한길을  내려서니...

우측 등로 사이로 둔내면 궁종리 강궁종 마을이 눈 덮인체 평온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궁종리(弓宗里)의 지명유래는 이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활같이 생긴 꼬불꼬불하게

생긴곳을 지나간다는 이유와 태기왕이 군사들을 훈련하던 활터로 사용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멋진 소나무가 있는 무명봉을 지나자마자...넓은 임도를 만난다

임도(10:05)

직진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지니 묘지가 나온다.

잘 관리된 묘지 앞을 가로 지르는데 묘지 상석에는 아무것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무슨 연유일까?

묘지를 지나자마자 다시 조금전에 헤어졌던 임도를 만나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우측으로 꺽어지니 좌측 아래로 꼬나 큰 축사가 보이고 전기가 통하는 철조망이 처져있다

능선 좌측 아래에 있는 축사가 보이고...축사 안에는 한우들이 보인다

이곳 횡성은 한우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요즘 겨울철만 되면

구제역(口蹄疫)이란 몹쓸넘의 전염병이 소 키우는 사람들을 괴롭히는데

올해는 제발 그런일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축사 뒷쪽의 능선은 눈이 무릎까지 빠지고 잡목의 저항이 상당히 심하다

다시 능선 아래로 내려서니 목장의 넓은 초지가 나타나고 길게 뻗은 도로가 보인다

칠송고개로 이어지는 도로... 마치 비행장 활주로같은 느낌이다

칠송고개(567m:10:10)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 ‘칠송배기’ 마을에 있는 고개로 이 마을에 큰 가지가

일곱 개로 뻗쳐있는 소나무가 있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란다

칠송고개가 있는 현천리는 ‘검을 현(玄)에 내 천(川)으로 일명 ‘가무내’로 불리며 조금만

가물어도 강물이 마른다는 뜻이란다.

 

칠송배기 마을은 횡성축산연구센타가 들어오면서 마을 자체가 통채로 이주 당했는데

6번국도에서 축산기술연구센타로 가는 길을 따라 들어가면 왼편으로 넓은 초지가 펼쳐지며

횡성한우의 종자개량, 육질 등을 연구하는 곳이다.

칠송고개에서 능선으로 올라 5분정도 걷다보니 우측에 눈덮인 초지와 인도가 나온다

임도를 따라 1~2분정도를 가다가...

다시 좌측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별의미가 없다... 임도로 갈걸... 다시 1~2분만에 임도로 내려선다

능선에 오른 후 1~2분만에 다시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로 내려서자마자 다시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이곳은 한전에서 송전탑 공사를 하면서 등로가 넓어졌는데 눈이 무릎까지 차오른다

NO 8송전탑(10:25)

점점 눈의 양은 많아지고...

송전탑을 만들면서 닦은 넓은 임도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614봉(10:30)

이곳에 삼각점이 있는 곳이데 이 많은 눈을 치우고 삼각점을 찾을 생각은 없다

소나무 숲사이를 홀로 호젓하게 걷는다

느릅재(592m:10:50)

횡성군 둔내면 둔방내리에서 갑천면 상대리를 잇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느릅재는 영월군 서면에서 제천으로 넘어가는데도 있고, 충주시 산척면에도 느릅재가

있는데 대체적으로 느릅나무가 많아서 붙혀진 지명인데 이곳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눈덮인 묘지를 지나 우측으로 꺽어진다

이곳에서부터 오늘 처음 가져온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에 에러가 발생한 것도

모르고 한 동안 신나게 카메라 셧터를 눌러됐는데 꽤나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그 사실을 인지하는 바람에 짧은 구간이지만 기록이 안되어 상당히 아쉽다.

나홀로 산행이면 다시 돌아가 다시 기록을 하련만 지금은 그럴수도 없는 형편이다

719.6봉(11:40)

이곳은 오늘 산행구간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이곳에서도 삼각점 찿기를 포기한다

719.6봉에서 바라본 성우리조트 스키장의 스로프도 아련히 보이고...

임도를 만난 다음에 가로질러 올라선다 

잠시후 양지바른 곳에 묘지 2기를 만나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698봉(11:50)

686봉은 오르지 않고 옆사면으로 통과한다

686봉으로 내려서는데 이곳 역시 눈의 양은 많고 잡목의 저항은 상당히 심하다

능선 우측으로는 횡성군 둔내면 마암리 방향으로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횡성군 둔내면 마암리는 서쪽으로 주천강이 흐르며 태기산자락의 서쪽에 위치한 중산간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검두골, 뒷골, 하마암, 모중안, 버덩말 등이 있다. 검두골은 이 마을이 검두재 옆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하마암은 마암리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하마암이라 부른다.

마암리는 옛날 이 곳에 말무덤이 있어서 말무덤 또는 마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가야할 검두재의 모습

사스레 나무(자작나무)의 겨우사리

참으로 보기 힘든 휘귀한 겨우사리다

검두재(590m:12:00)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둔방내리에서 갑천면 상대리로 넘어가는 길에 위치한 고개로

빨딱고개라고도 부르면 예전 상대리 마을명이 '검대'라고 하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개를 경계로 고개를 넘으면 하대리이고, 안쪽은 상대리이다

 

예전엔 상, 하대리를 합쳐서 검두(劍頭)마을이라고 불렀는데 마을지명을 ‘칼 검(劍)’

‘머리 두(頭)’를 써 살벌한 지명 때문인지 옛날에 큰 사건이 자주 발생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을의 원님이 마을 이름 때문이라고 하여 ‘거문고 금(琴), 집 대(臺)’자를 써

금대리(琴臺里)로 바꾸라고 했는데 그 이후로 마을은 평온해졌고, 이 마을에 살기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강원도로부터 범죄없는 마을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검두재에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등로는 아예 없고 잡목만 무성하다

능선으로 올라선 다음 좌측으로 꺽어지니 낡은 철조망이 나타나고...

644봉(12:07)

임도(12:15)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랐다 내려서니 우측으로 눈덮인 묘지가 나오고...

능선에서 바라본 횡성군 청일면 갑천리의 모습

태기왕의 한맺힌 갑천리가 보인다... 늘 역사서에는 패자는 늘 역사의 뒤안길이다

갑천(甲川)지명은 진한()의 태기왕()이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에게 쫓겨

태기산에 웅거하면서 재기를 꾀할 때, 군사를 훈련시키다가 여기에서 갑옷을 씻었던

일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한다

능선에서 만난 자작나무

흔히들 산꾼들이 자작나무로 알고있는 하얀껍질의 나무는 사스레나무를

자작나무로 잘못 알고 있는듯 하다... 이 그림이 자작나무이다

이곳까지 거의 논스톱으로 오다시피 한 탓에 너무 허기가 져서 앞에가는

동료산꾼들을 못가게 해놓고 이곳에서 대여섯명이 막걸리와 맥주, 과일로

원기를 보충하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베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620봉(12:30)

620봉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내리막을 내려서니 좌측으로 요양원이 보인다

내리막길에는 벌목을 하여 방치한 잡목으로 걷기는 불편하다

드디어 넘은재(현지인들은 하마암도로라고 부름)로 내려선다

넘은재 좌측 청일면 갑천리쪽에 있는 스마일요양원의 모습

넘은재(553m)

횡성군 둔내면 마암리 백정골에서 갑천면 갑천리 텃골 넘어가는 고개로 420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고개 좌측에는 스마일 노인 요양원이 있는데 하마암으로 가는 2차선 도로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넘은재라 부르지 않고 하마암(下馬巖) 도로라고 부른다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오르니 묘지 2기가 나오고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른다

589봉(12:45)

묘지의 봉분 뒤를 돌아서 우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간다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 내려서니...

등로 우측으로 민가가 보이고... 곧고개가 나타난다

곧고개(561m:12:55)

횡성군 둔내면 마암리 하마암에서 청일면 갑천리로 연결되는 고개로 하마암쪽에는

민가와 밭이 있고 개쉬끼가 산꾼들을 향해 잡아 먹을듯이 짖어댄다

그러나 갑천리 방향은 등로가 거의 보이지 않은 그냥 절개지에 불과한 고개인데

25,000지형도에 ‘절바우골고개’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곧고개를을 올라 선 다음 무명봉을 지나 다시 내리막을 내려서니...

우측으로 축사같은 건물과 눈덮인 밭이 나타나고... 다시 좌측으로 꺽어져 간다

밭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능선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둔내면 화동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등로에서 바라본 횡성군 둔내면 화동리(禾洞里)의 모습

화동리(禾洞里)는 태기왕이 피난을 와서 식량이 부족했는데 화동 골짜기에서

볍씨가 나와 농사를 짓게 되었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또는 괴화나무가

있어서 괴화골이라 했다가 고야골,화동이 되었다고 함. 방가곡,정문거리,

무사골,버덩마을, 고시곡 등이 있다

잣나무 사이로 지나가니...

눈 속에 파묻힌 亡者의 천년주택을 만나 조금을 더 진행하니 특용작물 재배지가 나온다

특용작물 재배단지 휀스의 무시무시한 문구

이 양반이 지금 지맥 산꾼들을 도(盜) 선생으로 아나... 기분 나쁘게...

江陵金公 묘지(13:15)

628봉(13:20)

또 다른 묘지 능선을 지나고...

묘지 뒤 능선에서 바라본 치악산의 모습

ㅜ자형 임도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니...

공작산 아우님이 지나간 모양이다

넓은 임도를 따라 내려가는데 눈은 무릎까지 차오른다

임도 안부(13:25)

안부 좌측 아래는 샌드위치 판넬로 지은 창고같은 건물이 보이고 다시 조그만 무명봉으로

올랐다가 내려서는데 눈에 길이 묻혀버려 등로는 아예 보이질 않고 이리저리 헤매면서

내려서니 우측에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조금을 더 내려서니 상마암도로로 내려선다

상마암고개(13:35)

횡성군 둔내면 마암리 상마암에서 청일면 고시리로 넘어가는 12번 군도가 지나가는

고개로 고개 정상에는 이동통신 중계탑과 비닐하우스 단지 그리고 둔내면과

청일면의 면계 이정표가 서 있고 청일면쪽에는 노인요양원이 보인다

아침에 우리를 황재에서 내려준 버스가 이곳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그 바람에 점심에 먹으려고 가지고 온 올갱이국과,소주, 휘발유 버너와

코펠 등 취사장비를 차에 두고 산행을 하는 바람에 훨씬 편하게 산행을 했다.

이곳에서 좀 늦은 시간에 이곳의 비닐하우스 단지 안에서 바람을 피하며

편하게 45분간의 느긋한 점심만찬을 즐기고 여유롭게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상마암 고개의 모습

고개 정상 아래에는 조금전 지나온 하마암고개처럼 이곳에도 노인요양원이 보인다 

횡성이 청정지역이라서 노인 요양원이 많은가... 요즘은 핵가족시대에다

자식들이 부모들을 봉양하지 않으려는지 아니면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노인들이 조금만 아프면 자녀들이 요양병원으로

모시는 바람에 요양병원이 성업중이란다... 난 우짜든지 저런곳에서는 生을 마감하지는

말아야 할터인데 걱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을때 까지 건강을 유지해야지

상마암도로에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의자 3개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능선을 조금 지나니 상마암 마을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나자말자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능선에서 바라본 조금전에 지나온 상마암 고개의 모습

임도에서 우측 능선으로 들어서자마자 우측의 뚜렸한 길을 버리고 희미한 좌측 능선으로 꺽어진다

소나무 숲을 지나 능선  안부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빽빽한 소나무 숲을 지나 오르막으로 오르니...

晋州姜氏 가족묘가 나오고 묘지 뒷쪽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면서 진눈깨비가 날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리 많이 오지도 않고 나홀로 산행이 아닌 일행이 있기에 그리 겁나지는 않는다

잠시후 급한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체육시설과 육각정이 있는 푯대봉이 나타난다

푯대봉(652.6m:14:40)

횡성군 둔내면 마암리와 청일면 고시리에 접해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이정표와 육각정자

그리고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전국에는 푯대봉이 상당히 많이 있는데 지명의 대부분은

일제강점기에 토지조사사업이 이루어지면서 그때 일본인들이 토지를 측량을 하기 위해 산봉우리에

삼각기점을 잡은 푯대를 박았다 하여 푯대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아마 이곳도 그런 지명이 아닐런지?

횡성군을 산행하며 느낀건데 횡성군은 이웃인 홍천군에 비해 지명유래에 대한 자료는 상당히 빈약한 편이다

오늘 산행중에 유일하게 지명이 있는 봉우리다

오늘 산행중의 유일한 인증샷

표식을 알 수없는 푯대봉 정상 삼각점

푯대봉 정상에서 직진하여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급경사의 내리막길에 미끄러지면서 오늘 한번 꼬꾸라진다

급경사를 내려와 안부를 만나고...

안부 우측에는 꽤나 큰 인삼밭이 보이고...

눈발은 점점 굵어지고 주위는 자꾸만 더 어두워진다

고시골(古時谷) 임도(14:50)

횡성군 청일면 고시리(古時里)이 있는 임도로 고시리에 대한 정확한 유래는 알 길이 없지만

이웃 지역인 신대리보다 먼저 생겼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이라 보여지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청뚜루, 숯대배기를 병합하여 고시리라 불렀으며 청뚜루는 마을 앞에 있는

소(沼)가 깊어서 파랗게 보인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며, 마을 사람들은 이 소를 청소(靑沼)라고

불렀으며 청평(靑平)이라고 한다

 

또 다른 유래는 예전에 강릉에서 횡성으로 갈 때는 봉평에서 화동리, 고시리를 거쳐서 가는 길이

지름길이었는데 그 당시 이 길은 나무가 너무 우거져서 사방이 어두웠으나 고시리 청뚜루에 오면

푸른 글과 하늘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고 한다

안부를 조금 지나서 다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섰다가 다시 능선으로 오른다

깍은재(削峴:595m:15:00)

횡성군 둔내면 화동리와 청일면 고시리의 접경에 있는 고개로

고개가 매우 험하고 경사가 급하며 깍아지른듯 하다하여 붙은 지명이란다

우측으로 넓은 임도처럼 보이는 벌목지가 보이고 좌측 사면을 따라간다

다시 별 특징이 없는 612봉을 지나서 내려서니 말영재가 산꾼 범여를 반긴다

말영재(569m:15:15)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화동리 무사골 위에 있는 고개로 둔내면에서도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마을인 화동마을의 위에 있으며 ‘술(酒)이 내(泉)를 이룬다’는 주천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태기산 정상에 항상 떠다니는 흰구름이 장관을 이뤄 시인들로 부터 태기백운(泰岐白雲)이라

불리기도 했다.

수려한 계곡과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화동저수지를 비롯해 인근에 보광휘닉스파크, 허브나라,

이효석 문학관, 성우리조트, 둔내 자연휴양림, 청태산 자연휴양림 등 사계절 관광지가 위치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고개 아래에 있는 화동리의 지명 유래는

신라시조인 박혁거세에게 패한 진한의 태기왕이 이곳으로 피난을 와 태기산에 산성을 지었는데

수행한 군사와 주민들의 식량이 부족하자 화동 안 골짜기에 있던 볍씨로 농사를 짓게 된 후

부터 벼화(禾)자를 써서 화동리(禾洞里)가 되었다고 한다.
화동 꽃마을 뒤편 태기산에는 아직도 태기왕이 신라군을 맞아 싸우기 위해 건설한 태기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말영재 - 청일면 고시리 방면의 모습

615봉(15:20)

615봉에 올라서서 우측으로 꺽어지다가 다시 좌측으로 꺽어지니 우측엔 전원주택이 보인다 

이곳이 적어도 해발 600m는 될터인데 전원주택인지 농가주택인지 멋진 주택과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전원주택의 철조망을 따라가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철조망과 이별을 하고 직진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등로를 조금 더 진행하니 잡목의 태클이 심한 절개지가 나오고 좌측으로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온다

절개지에서 우측 사면길을 따라서 걷는데 눈이 꽤나 많다

곧이어 임도를 만나고 다시 우측 능선으로 접어들어야 하나 이곳은 아무도 다니질 않아 눈이 허벅지까지

차오르고 곧바로 임도를 내려와야 하기에 잠깐의 안위(?)를 위하여 마루금을 포기하고 임도를 따른다 

임도에서 바라본 고시골을 통과하는 송전탑

임도를 따라 올라가는데 임도에도 눈은 장난이 아니다

NO 178송전탑(15:50)

NO 178송전탑이 있는 임도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임도에서 올라서자마자 그냥 밋밋한  개념도상의 651.3봉에서 급경사로 내려서니

좌측으로는 조금전 헤어진 임도를 만나지만  계속해서 희미한 등로를 따라간다. 

NO 177송전탑(16:00)
송전탑 아래를 가로질러 완만한 등로를 지나가니 간간히 山竹들이 보인다

산죽 군락지를 직진을 하자마자 조그만 능선에서 좌측길로 꺽어진다 

ㅜ자 갈림길(16:08)

이곳에서 뚜렸한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꺽어져야 하는데 아마 산꾼들이

알바를 했는지 우측으로 시그널이 걸려있다... 알바를 해서 잘못 걸었으면

다시 회수했으면 후답자들이 고생을 안하련만... 조금 신경쓰시기 바랍니다 

조금을 더 진행하니 비포장 임도가 나오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올라서니 묘지 한기가 보인다

진주강씨 묘지를 지나니 623봉이 나오고 다시 여러기의 묘지가 있는 곳을 만난다

기독교인 묘지(16:14)

묘비에 한결같이 십자가를 표시한 걸로 보아 기독교인 묘지인지 교회의 묘지인지는

모르겠으나 묘비엔 본관을 모두 다 ‘의령남씨, 밀양박씨 등등’ 한글로 표기를 해놨다

다시 묘지르 내려서니 좌측엔 임도가 보이고 아래는 오래된 묘비가 보인다

오랜된 묘비를 바라보면서 임도로 내려선다

觀察使南公秉哲 永世不忘碑(16:15)

임도로 내려서는데 관찰사를 지내신 분의 영세불망비가 있는 묘지를 만난다 

관찰사라 함은 지방행정의 감찰을 맡은 행정조직의 수반으로 요즘의 행정직제를

따진다면 도지사에 해당되는 직책인데 영세불망이라 아마 南公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늘 생각하여 잊지 않겠다는 묘비를 세웠으니... 

임도로 내려와 고속도로(?)같은 넓은 임도를 따라서 걷는다.

주위에는 묘지 주위로 철조망같은 휀스로 묘지 주위를 쳐놨는데 짐승들의 피해가

많은 모양이다...잠시후 오늘의 날머리인 고개에 도착한다

방개골 고개(629m:16:20)

횡성군 둔내면 화동리 방개골에서 청일면 신대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고개의 지명유래는 고개 아래에 있는 화동리에 있는 방가곡(芳佳谷:방가골이라고도 함)이라는

평촌 북쪽에 있는 마을 이름에서 따온 지명이다

 

이곳에서 후미를 기다리면서 마지막 남은 캔맥주와 과일로 베낭털이를 하며

휴식을 취한 다음에 지맥 주능선에서 0.5km 떨어진 버스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방개골 고개에서 바라본 방가곡 마을의 모습

화동2리 버스 정류장(16:35)

산행을 종료하고 서울로 향하는데 진눈깨비가 내리는데 눈반, 비가 반이다

둔내I.C 빠지기 직전에 유명하다는 횡성한우 육회를 산악회에서 제공하여

육회에다가 소주 서너잔을 마시고 서울로 오는길은 참으로 많이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