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5년 3월 15일
☞ 산행날씨: 맑은날씨... 엄청나게 쌓인 눈으로 굉장히 힘듬
☞ 산행거리: 도상거리 10.5km + 어프로치9.8 km / 9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안내 산악회 따라서
☞ 산행코스: 화동2리 버스정류장-방개골 고개-767봉-NO174송전탑-들메지임도-830.2봉
941봉-974.4봉-970봉-1,077봉-백덕지맥 분기점-1,142봉-1,135봉
군부대 후문-태기산-군부대 정문-군사도로-1,134봉-1,080봉-1,096봉
1,107봉-1,065봉-갈림길-1,072봉-삼계봉-1,125봉-덕고산-1,090봉
큰성골계곡-하늘아래 첫집-신대교-신대리
☞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청일면 / 평창군 봉평면 / 홍천군 서석면
어제 도봉산을 홀로갔다 오다가 조금 과하게 마신 술 때문에 조금 힘들지 않나하는 생각에
오늘 영월지맥을 과연 따라 갈 수 있으려나 우려에 많은 갈등을 하다가 베낭을 메고 나선다
7시에 양재역에 도착하여 버스에 오르니 오늘은 인원이 많이 빠져서 겨우 15명이다
여주 휴게소에 들려서 해물순두부로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 둔내I.C를
빠져나와 둔내면 화동2리 마을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곧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화동2리 버스 정류장(09:25)
횡성군 둔내면에 있는 화동리(禾洞里)는 태기왕이 피난을 와서 식량이 부족했는데
화동 골짜기에서 볍씨가 나와 농사를 짓게 되었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또는
괴화나무가 있어서 괴화골이라 했다가 고야골, 화동이 되었다고 하였다
방가곡,정문거리, 무사골, 버덩마을, 고시곡 등이 있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곧바로 산행을 시작하는데 원칙을 고수하는 맥산꾼은 달랑 9명이고
나머지 6명은 컨디션을 이유로 양두구미재에서 태기산으로 향할 모양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농로를 따라서 400m정도 올라가니 오늘의 들머리인 방개골 고개에 도착한다
방개골 고개(09:32)
횡성군 둔내면 화동리 방개골에서 청일면 신대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지명유래는 고개 아래에 있는 화동리에 있는 방가곡(芳佳谷:방가골이라고도 함)이라는
평촌 북쪽에 있는 마을 이름에서 따온 지명이다
방개골 고개에서 능선으로 오르는데 벌목을 한 곳이라 모든게 시원스럽다
우측 백덕지맥 능선 방향으로는 아직도 하얀 설산이 그대로 보인다
초반부터 오름길에 힘이 부치기 시작하는데 아마 어제 마신 술 때문이 아닌가...
NO 175 송전탑(767m:09:48)
NO 175 송전탑에 도착하니 초반부터 심한 갈증증세가 나와 베낭을 내리고
물 한모금 마신 다음에 후미가 오길 기다리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NO 175 송전탑 우측으로 넓은 임도에 선답자들의 반가운 시그널이 보인다
임도를 따라서 1분정도 내려선 다음에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등로에 접어드니 초반부터 잡목의 저항은 시작되고 키작은 산죽들을 만난다
신대리 너머로 2년전에 걸었던 한강기맥 능선이 산꾼을 반긴다
NO 174 송전탑(09:55)
NO174 송전탑을 지나면서 부터 등로에는 잔설(殘雪)의 양이 많아지고 잡목들의
태클이 상당히 심하긴 하지만 그런대로 등로는 뚜렸하게 보이니 다행이다
등로 나뭇가지 아래는 돔 형태의 커다란 교회가 보이는데 평강교회란다
요즘 산행을 하면서 심심찮게 산속에 있는 교회를 의외로 많이 보게된다
절이 산에 많은 것은 조선개국의 1등 공신인 조선초에 정도전이 불씨잡변(佛氏雜辨)을
저술하여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탄압하는 숭유억불(崇儒抑佛)으로 인해 사찰이 조정의
핍박을 피해 산속으로 숨어 들었지만 지금 이 나라는 대다수 고위공직자가 기독교인라
그런일은 절대 그런일일 없을텐데 산속에 교회가 많은지 아둔한 범여로선 이해가 안된다
이 나라에 개신교가 들어온 지 200년밖에 안되었지만 조직적인 면에서 1,700년이 넘는
역사의 불교는 기독교에 게임이 안된다... 불교도인 범여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기독교의 순 기능은 참으로 많다... 많은 대학과 병원을 세워서 교육과 의료부문에서
사회에 혁기적인 공헌을 세워지만 반대로 역기능도 무시할 순 없다
얼마전 매스컴에서 없는 자들의 약점을 악용하여 사기를 쳐서 사회의 공분을 산 신목사 사건
종교와 성직자라는 신분을 십분 활용하여 生死의 막바지 기로에서 선 환자들에게 소금물
관장으로 40억이라는 거액을 사기친 장 목사부부 등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야할 저 자들이
과연 주님의 종이 맞은지... 예수님은 저렇게 안 가르쳤을텐데...기독교는 저런넘 잡아가는
귀신과 염라대왕은 없는 모양이지?... 정말 나쁜 사람들이야
제발 정신 좀 차려서 어두운 곳을 살펴 낮은곳으로 향하는 빛과 소금이 되시길...
그릇된 종교관으로 인해 약간의 혼란스러운 점은 기독교에선 많이 일어난다.
예전에 MB가 서울시장 재직시 기독교 행사에 참석하여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 하여 불교계의 공분을 산 적도 있었고, 최근에는 현 제주도지사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제주도민의 國泰民安을 기원하는 한라산 산신제 행사에
제주도지사가 당연직인 초헌관을 본인이 기독교인라는 이유로 거부하였다고 한다
제주도민이 100% 기독교인이 아닐터고, 그리고 도지사 역시 기독교인 도지사가
아닐지언정 왜 그리 거부하였을꼬... 자기를 찍어준 불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
신자들은 뭐란말인가?... 다름을 인정하였으면 大人輩로 보였을텐데... 조금은 아쉽다
잔설이 있어 약간 미끄럽긴 해도 아직은 그런대로 그럴만하다
무명봉(10:03)
무명봉에서 다시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임도가 보인다
들메지 임도(819m:10:10)
들메지란 횡성군 청일면 신대리에 있는 자연부락인데 들메지 마을 위 태기산 아래에
있는 임도로 U자 형태의 넓은 도로가 버스가 올라와도 될만큼 넓은 임도이다.
들메지의 지명유래는 진한(辰韓)의 태기왕이 신라 시조 박혁거세에게 축출되자
이곳 태기산에 들어와 성을 쌓고 후일을 도모할 때, 아라왕비를 위해 매화를 심은 곳이라 한다
들메지 임도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능선으로 오른다
잣나무 둥치에는 멧돼지의 소행인지 상처가 많이 보인다
830.2봉(10:25)
941봉(10:35)
태기산이 가까워질수록 눈이 많아지면서 굽이 높은 등산화가 묻히기 시작한다
974.4봉(△봉평 451, 2009 재설:10:45)
974.4봉 삼각점 주위로는 굉장히 큰 두릅나무와 엄나무가 많이 보인다
얼어있어 내용이 보이지 않는 삼각점을 파헤치는 산꾼들970봉(11:00)
태기산 임도가 가까워질수록 눈의 양은 점점 많아지고...
이곳은 겨울에 적설량이 많아 맥 산꾼들이 다니지 않았는지 등로가 전혀없다
등로 가운데는 바람의 영향으로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도저히 갈 수가 없어 조릿대를
헤치면서 양지 바른곳의 눈이 없는 곳으로 우회하여 걸어가는데 예상보다 많이 지체된다
1,077봉(11:10)
1,077봉에서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힘들게 능선을 치고 오르니
양두구미재에서 올라오는 넓은 임도가 나오면서 힘든 구간을 종료한다
백덕지맥 갈림길(11:15)
백덕지맥(白德枝脈) 개념도영월지맥의 태기산(1259m) 남서쪽 1.3km에서 분기하여 남쪽으로 뻗어 내려가며
양구두미재(980m), 청태산(1194m),술이봉(897m),오봉산(1126.2m),문재,사자산(1180m),당재,
최고봉인 백덕산(白德山.1350m)을 비롯하여 1000m이상되는 산들이 주류를 이루며
지맥이 끝나는 마지막구간은 지형이 한반도 지형을 빼 닮은곳이다.
최고봉인 백덕산(白德山.1350m)의 이름을 따 백덕지맥(白德枝脈)이라 부르며
주천강(95.4km)의 우측,평창강(149.4km)의 좌측 분수령이 된다
힘들게 임도에 오르니 선답자들의 많은 시그널이 바람에 나부끼고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풍력발전기를 바라보면서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도로가에는 군경계 표시목이 서있고...
처음으로 만나는 N05 풍력발전기
여유롭게 도로를 따라 오르는데 강한 바람은 계속되고 생각보다 날씨가 춥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개념도상 1,142봉인데 풍력발전기 공사때 만든 절개지가 되버렸다
이곳은 해발고도가 1,100이상 되다보니 아직까지 눈이 많고 날씨도 생각보다 춥다
방개골 고개에서 벗은 고어텍스 자켓을 다시 베낭에서 꺼내 입는다
도로 능선 아래로는 둔내면이 아련히 보이고...
1,132봉(11:28)
NO7 풍력발전기가 서 있는 곳이 개념도상에 1,132봉인데 임도가 되버렸다
임도 정상에 오르니 2년전에 걸었던 한강기맥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봉복산, 운무산, 그 너머로 대학산이 아련히 보이는데... 2년전 추억이 되살아 난다
태기산 풍력발전소의 모습
2008년 10월 28일 포스코건설이 시공한 태기산 풍력발전단지는 2MW급 20기,
총발전용량 40MW/h 규모로, 이는 2만 50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선자령, 매봉산과 함께 강원도가 역점 추진하는 친환경 무공해 재생에너지 사업이라고 한다
도로에서 바라본 태기산 정상의 모습
태기산 오름길(11:35)
백덕지맥 갈림길에서 20분동안 도로를 따라서 걷다가 태기산 능선길로 접어든다
능선으로 접어드는데 군부대에서 철조망을 막아놨다... 그런다고 안 가나... 우회하여 걷는다
능선 오름길은 양지바른 곳이라 오르기는 편하다
태기산 정상에 오르면서 조금전 왔던 길을 뒤돌아 본 모습
저 멀리 보광그룹에서 운영하는 휘닉스파크 스키장이 보인다
좌측으로 눈을 돌리니 백두대간 능선들이 아련히 보이고...
태기산 정상 아래에서 바라본 양두구미재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서 평창군 봉평면으로 넘어가는 6번국도의 고갯길이기도 하다.
태기산(泰岐山, 1,261m)의 8부 능선에 위치한 고개로 마을 사람들은 양구데미라 불렀다 한다.
옛날 어느 가난한 선비가 묘를 잘 쓰면 부자가 된다는 말을 듣고 용한 지관을 통해 아버지의
묘를 쓴 곳이 바로 이 고갯마루였는데 한참이 지나도 재산이 늘어나지 않자 선비는 묘를 이장하기
위해 관을 들어냈는데 땅 속에서 두 마리의 황금 비둘기가 나와 고개 너머로 날아가버렸다 한다.
그 후로 이 고개를 양구(兩鳩)데미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양구두미재는 강원 영서 내륙의 고개답게 높이도 꽤 높은데 고갯마루의 정상은 대관령보다
높은 해발 900m정도의 고지를 통과한다. 하지만 횡성땅 둔내면 일원이 해발 500m이상의
고원지대라서 둔내면에서 바라본 태기산은 그리 높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잘 다듬어진
고갯길은 누구나 쉽게 넘을 수 있다. 고개 정상에는 송신 중계소가 있고 신기하게도 고개
정상에 솟는 샘이 수질이 뛰어나 이 길을 지나는 차량들이 물을 길어 간다.
12월로 접어들면 날씨가 더 내려가면서 아침 일찍 고갯길을 넘거나 구름이라도 덮히는 날은
온 산이 하얗게 설화로 장식되어 환상적인 모습으로 장식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태기산의 유래는 태기왕의 전설로부터 비롯되었는데, 옛날 삼한시대말 태기왕이 이곳에 와서
성을 쌓고 신라군과 대적하였다는 전설이 있으며 지금도 산 중턱에는 그 당시에 축성한 성터가
허물어진 채 남아있고, 이같은 태기왕의 전설이 담긴 "태기산성" 표지석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높이 1,261m로 육중한 모습을 보여주는 태기산은 산세도 웅장해 멀리 대관령부근의 오대산,
원주의 치악산 등지에서까지 그모습을 뚜렷이 가늠해 볼 수 있다.
횡성군 둔내면소재지에 이르면 멀리 북동쪽 방향으로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태기산의
전경이 바라보이고 이곳은 11월 중순이면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4월말까지 설경이 유지되는 곳이다
저 멀리 지난 1월에 걸었던 풍취산과 덕고산, 그 너머로 치악산이 아련히 보인다
다른 지역은 봄소식이 여기저기 들려오건만 이곳은 아직도 겨울잠에 푹빠져 있다
태기산(泰岐山:1,261m:11:47)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청일면. 평창군 봉평면, 홍천군 서석면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횡성군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본래는 덕고산(德高山)이라 불렀는데, 삼한 시대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산성을 쌓고 신라에 대항하던 곳이라 하여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 산에서 발원하는 갑천도 원래는 주천(酒泉)이었으나 태기왕이 박혁거세의 추격을 받아
산으로 들어올 때 더러워진 갑옷을 씻었다 하여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이 지역 일대의 지명은 태기왕과 관련된 이름이 많다.
산 정상에는 길이 약 1㎞의 태기산성과 태기산성비가 있다. 태기산성은 해발 750~1,000m
정도 되는 고지에 축성되었는데 산세가 급하고 낭떠러지가 많아 천연적 은폐물의 역할을 하는
요새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태기왕은 이런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설욕을 다짐하며 산마루에서
약 500m 정도 남쪽으로 내려와서 둘레가 3,653척이나 되는 성벽을 구축하고 정예 병사를
육성하는데 노력하는 한편, 친히 산성 안의 전답을 개간하여 군량을 보충하였다.
4년의 세월이 흘러 신라군은 공격이 가능한 지형을 찾아 홍천군 서석면 생곡리 방면을 통해
자연림으로 위장하고 정상을 차지한 뒤 일제히 공격하니 결국 역부족임을 깨닫고 태기왕은
남은 병사들을 인솔하고 서문(西門)을 통해 지르매재를 넘어 율무성으로 도주했다고 한다.
산성 주변에는 허물어진 성벽과 집터, 샘터가 남아 있다. 태기산에는 횡성군내 현존하고 있는
사찰 중에 가장 유서가 깊은 절로 647년(신라 선덕여왕 16)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봉복사가 있다.
봉복사는 대한불교조계종 3대교구 본사인 평창군 오대산에 있는 월정사에 소속된 말사이다.
태기산은 『해동지도』, 『여지도』, 『광여도』, 『지승』, 『1872년지방지도』,
『여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갑천면에 소재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태기산 정상은 국군통신 지휘사령부가 자라잡고 있어 오를 수 없고 바라만보다 그냥간다
그 흔한 정상석 하나 없는데 유명산 같은 다른 곳처럼 정상 아래에 정상석 하나 세워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원래는 우측으로 가야만 지맥길이나
이곳은 응달이라 눈이 허리까지 쌓여있어, 도저히 갈 수가 없기에 좌측 양지바른 곳으로 간다
군부대 정문(12:00)
정문으로 이어지는 군사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뒤돌아 본 태기산 정상의 모습태기산에는 항상 흰구름이 있어 시인묵객들이 태기백운(泰岐白雲)이라고
부르고 있고 태기산 정상에 흰구름이 떠도는 풍경은 장관인데 둔내 11경중 하나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기산백운(岐山白雲)이라는 시제로 漢詩를 남겼으니 다음과 같다
岐山白雲(禾洞里)
雲白岐山太古眞(운백기산태고진) 태기산 흰구름은 태고적 같고
天畿地秘景維新(천기지비경유신) 하늘을 감추고 땅이 신비로우니 경치가 더욱 새롭구나
來牟農也時康夏(래모농야시강하) 보리가 풍년되니 때는 여름이요
童子欲乎序暮春(동자욕호서모춘) 동자가 목욕을 하니 시기는 모춘이구나
名振四方稱別界(명진사방칭별계) 이름이 사방에 진동하니 별계라 칭하고
功過三國熱風塵(공과삼국열풍진) 공은 삼국보다 나으니 풍진을 겪었더라
無心出峀徘徊虛(무심출수배회허) 바위에서 나서 무심히 배회하는 꽃
中有登仙老畿人(중유등선노기인) 산중에 선경이 있으니 몇사람이나 올랐는가?
동료산꾼 순배씨와 함께
군사도로를 따라서 영월지맥 마지막 길을 이어간다
12시가 넘어가면서 배는 자꾸만 오는데 조금 앞에가던 산꾼들 이도로 가운데서 베낭을
내리고 막걸리 한잔씩을 하고 있는데 동료산꾼이 주는 막걸리 2잔으로 허기를 달랜다
군사도로 아래에 있는 태기산 등산 안내도
군사도로 옆에 쌓여있는 눈의 모습
군사도로 끝지점에 도착하니 휀스로 막아놨다
지나온 태기산의 모습
NO13 풍력 발전기가 있는 곳에 가니 양두구미재에서 올라온 산꾼들이 점심상을 펼치고 있다.
정통으로 걸어온 맥산꾼들도 이곳에서 어울려 점심을 먹는데 날씨는 꽤나 춥다
50여분동안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산행구간을 이야기하는데 아무래도 오늘 산행이
구목령까지는 무리일듯 싶다... 현재 이곳에서 삼계봉까지 남은 거리가 4km이고
삼계봉에서 구목령까지 3.72km, 구목령에서 생곡리까지가 6.5km이니 걱정이
앞서건만 산꾼들은 이런건 아랑곳하지 않고 먹고 마시면서 떠들고 난리다
산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건지... 모르는건지 독립군으로 다니는 나로선 이해가 안된다
50분간의 느긋한 점심 만찬을 즐기고 다시 삼계봉으로 향한다 (13:25)
1,149봉(13:27)
NO13 풍력발전기 지나 도로를 따라가다가 NO14풍력발전기가 보이는 50m 전방
못미친 지점 좌측에 엄청나게 쌓인 눈덩이 너머로 선답자의 시그널이 보인다.
산더미처럼 많이 눈덩이 너머로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을 만난 다음에 참으로 난감하다
겨울내내 산꾼들이 다닌 흔적은 전혀 안보이고 눈이 무릎까지 차오르는데 어떤곳은 허리까지 묻힌다
길이없는 곳을 알아서 가는데 그래도 가끔씩 만나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반갑기만 하다
잘못된 이정표(13:40)
태기산 방향 위치가 틀렸다, ↑이 방향으로 표시해야 하는데,←방향으로 해놨다
남진으로 진행하는 산꾼들은 상당히 혼란스럽겠다...횡성군청은 업자에게 돈만 주지말고, 확인하시길...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눈의 양이 장난이 아니다
안부에서 능선으로 오르는데 산죽에다가 잡목... 최악의 힘든 산행을 한다
1,080봉(13:55)
이곳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태기산성지(泰岐山城址)로 가는 길인데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된다
태기산성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무이리에 있는 산성으로 태기산(泰岐山) 서쪽에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신대리가 있어 군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 태기산성은 그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옛날에는 덕고산으로 불려 《세종대왕실록》지리지에는 덕고산성(德高山城)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둘레 1022.4m, 높이 1.5m로 샘이 있고 군창 5간(間), 관청 2간이 있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돌로 쌓은 성이 1095.9m로 안에 우물이 있었으나
오랜 풍상을 겪는 동안 황폐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태기산에는 태기왕을 주인공으로 하는 초기 철기시대의 전설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때부터 산성이 축조되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두산백과 자료 인용)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 산죽과 잡목의 심한 태클... 거기다가 산죽 아래의 눈도 장난이 아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곳, 그러나 꼭 가야하는 길
동료산꾼들은 뒤로 처져 버리고 내가 선두로 섰는데 무릎까지 빠지는
눈으로 인해 자꾸만 시간은 지체되고 힘은 부치고 참으로 힘든 산행이다
1,096봉(14:10)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서 능선으로 올라선다
넘어진 老木마져 갈길 바쁜 산꾼 범여에게 시비를 건다
산죽 아래에도 눈은 꽤나 쌓여있고 등산화 발목까지 묻힌다
잡목에다가 산죽, 미역줄기나무, 넘어진 老木까지 왜이리 산꾼 범여에게 불만이 많은지...
1,065봉(14:47)
신대리 하산길(15:05)
아무래도 구목령 지나 생곡리로 갔다는 건 무리일것 같아서 총 15명중에 9명은
이곳에서 삼계봉 가는 걸 포기하고 이곳에서 신대리 방향으로 하산을 결정한다
등로에는 안부에서 불어온 바람으로 인해 눈이 허리까지 차오른다
스틱으로 눈을 쑤셔보니 120cm짜리 스틱이 눈속에 완전히 묻혀 버린다
도저히 갈 수가 없어서 좌측 사면 산죽길로 가는데 산죽 아래 쌓인 눈이
장난이 아니다... 갈길은 먼데 해는 저물고... 자꾸만 맘이 급해진다
무릎까지 차오는 능선을 정통으로 가야하는 곳이다
동료 산꾼들은 아무도 오질않아 삼계봉 정상까지 혼자 러셀하며 걷는다
오늘 영월지맥길의 종점인 삼계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전에 걸어온 눈길을 뒤돌아 보고...
다시 양지 바른곳을 오르는데 이곳 역시 산죽 아래 눈이 얼음으로 변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1,072봉(15:15)
또 다시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러셀하며 걸으니 삼계봉이 나온다
이정표 기둥에 적힌 위도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북위 37도 37분 36.9초이다
삼계봉에 도착하니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긴장이 풀린다
이곳에서 독립군(나홀로 산행)으로 산행을 하면서 올 한해 무사산행을 기원하며
山王大神에게 잔 한잔 부어놓고 나홀로 간단하게 영월지맥 終山祭겸 始山祭를 지낸다
독립군의 시산제
香에다가 茶(막걸리) 삼색나무(고사리, 시금치, 도라지 나물), 대추, 밤, 감
사과 배에다가 시루떡에 간단하지만 산왕대신에게 여법하게 禮를 갖춘다음
셀카로 인증샷까지 마치고 나니뒤 따라오던 5명의 산꾼이 삼계봉에 도착한다
祭를 지내고 남은 막걸리 2병에다 과일과 시루떡으로 음복을 하고 덕고산으로 향한다
한강기맥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도 눈이 장난이 아니다
덕고산(德高山:1125m:16:10)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과 홍천군 서석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이정목과 모 산악회에서 걸어둔 표지판이 깨진 채 떨어져 있다.
성골계곡을 사이에 두고 태기산과 마주하고 있으며 삼한시대 말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새로 일어나는 신라군에 쫓겨 이곳에 성을 쌓고 군사를 길러 신라군과 싸웠다는 전설을 안고 있다
덕고산은 고시지명이 아니며 산경표와 대동여지도 현재의 백과사전에도 나오고, 청일면 신대리
봉복사(鳳腹寺)의 사찰명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奉福寺在德高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정작 국토지리정보원 자료(지명고시, 지형도)에는 없다.
(덕고산 명칭은 두 군데 나온다만 모두 다른 곳이다). 봉복사 입구에도 “德高山鳳腹寺” 표석이 있다.
산경표에서는 태치산( 泰峙山 또는 일명 덕고산)으로 표기가 되어있고 대동여지도에는 덕고산(德高山)과
태기치(泰岐峙)로 따로 기재되어 있으며 1:50,000 지형도에는 산 높이만 되어있는 덕고산은
그 산자락에 천년고찰 봉복사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봉복사에는 덕고산봉복사(德高山 鳳腹寺)이
편액이 걸려있어 덕고산이라 불리는 것이다.
덕고산 정상에서 인증샷
덕고산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니 신대리로 내려가는 일반 등산객들이 많은지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잠시 후 오르막으로 오르니 이곳은 북사면 지역이라 눈도 엄청나게 쌓여있어 도저히 자신이 없다
조금을 진행하니 안부 능선이 가야할 1,090봉쪽은 눈이 엄청나게 쌓여있고 좌측은 양지인데
눈이 전혀없는 큰성골 계곡으로 이어지는 능선인데 약초꾼들이나 다닐법한 희미한 길이 보인다
무조건 내려 가다가보면 도로가 나오겠지 하는 생각에 무작정 내려서는데 5년전 낙남정맥을
같이했던 동료산꾼 동동님이 내 뒤를 따라온다... 잠시 후 길은 보이질 않고 급경사에다
너덜길에 마사토, 잠시후에는 잔자갈로 이루어진 급경사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20여m를
미끄러지는데 뒤따라오는 동동님이 엄청나게 놀란 모양이다
잠시후에 엄청난 절벽의 낭떠러지에 길이 막혀 버린다... 이젠 방법이 없다 무조건 치고 내려가는 수 밖에...
너덜길이 나오고 또 다시 엄청난 낭떠러지가 나오는 바람에 옆사면을 치고 서쪽으로 향한다
계속해서 끝이나지 않은 苦行의 길
이곳에도 봄이 오긴 오는군요
굴러 내려오다가 나무에 박혀버린 바위... 나무는 얼마나 아플까?
다 내려왔나 싶었는데 또 다시 엄청난 절개지가 길을 막고있어 난감하다... 우이~~~씨 미치겠다
또다시 옆사면 오르막을 치고 오르는데 체력은 고갈되고 얼굴은 나무에
긁혀 피는 나고 장갑은 다 째지고... 옷은 흙투성이... 거지중에 상거지다
큰성골 계곡(17:25)
드디어 큰성골 계곡으로 내려서니 계곡 옆에는 덕고산으로 오르는 등로가 보인다
동료산꾼 동동님은 속에서 천불이 나는지 계곡물을 수통에 담아 벌컥벌컥 마셔댄다
이 계곡은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섬강을 거쳐 남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갑천(甲川)이다
갑천이 시작되는 곳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신대리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군의 갑천리를 지나
갑천면과 청일면의 경계에서 계천(桂川)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지명은 진한(辰韓)의 태기왕(泰岐王)이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에게 쫓겨 태기산에 웅거하면서
재기를 꾀할 때, 군사를 훈련시키다가 여기에서 갑옷을 씻었던 일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한다
1시간 20여분의 길고 험난했던 고행길이 끝나고 편안한 등로를 걷는다
이곳은 태기산과 덕고산 오르는 등로로 뚜렸한 임도에다 이정표가 자주 보인다
내려오는 등로 곳곳에는 2,000년전 태기왕과 아라왕비가 살았던 곳인지 궁궐터인지
집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등로 좌우에 집터의 흔적같은 돌무더기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편안한 등로로 내려 가는데 어둠이 몰려오긴 하지만 길이 좋아서 큰 두려움은 없다
드디어 등로가 끝나고 민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폔션 하늘아래 첫집(15:55)
이곳에서도 마을 도로를 따라서 한없이 내려가야 신대리가 나온다
성골마을 앞에서 도저히 허기가 져서 더 이상 걸어갈 힘이없다
베낭을 뒤져보니 조금전에 시산제를 지내고 남은 시금치 나물과
떡, 그리고 디팩속에 포켓용 소주 한병이 나오는게 아닌가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만큼 반갑기만 하다
동료산꾼 동동님과 소주를 나눠 마시고 다시 버스가 있는 신대리로 향한다
날은 어둑어둑 해지는데 반가운 愛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신대리 버스 정류장(18:45)
정말 힘들게 한 산행이다... 이젠 쉬고 싶다
20여분 후 후미가 온 다음에 버스가 출발하고 둔내면소재지에 도착하여
육개장에다가 소주 두어병 마시고 버스에서 깊은 잠에 빠진다
신대리(新垈里)는 횡성군 청일면에 속한 마을로 예전엔 갑천면에 속해 있었다
횡성군내 최고 높이인 1,261m의 태기산과 1,022m 봉복산이 에워싸고 있으며,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는
봉복사와 송덕사 등이 있고, 신대리 3층석탑 등 유적이 있으며 적송암, 낙수대 등 명승지와 시누대(山竹)를 이용한 복조리가 유명하다. 한남대, 여내골, 들메지, 성골 등 자연마을이 있으며 지명의 유래는 시누대가 많아서 붙혀진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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