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5년 5월 23일
☞ 산행날씨: 맑고 쾌청함... 산행하기 아주 좋은 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18.5km + 어프로치3.2km / 9시간 20분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곧은치 탐방센터-곧은치-헬기장-971.2봉-원통재-다리골갈림길-입석사갈림길
데크전망대-쥐넘이재-1,223봉-비로봉감시초소-구룡사갈림길-치악산 비로봉
사다리병창 갈림길-암릉-무명봉-배넘이재-1,064봉-1,105봉-1,121봉-1,131봉
1,092봉-1,114봉-1,109봉-1,053봉-세렴재-마당바위-천지봉-어령재-1,002봉
966.8봉-수레너미재-헬기장-매화산-헬기장-600봉-전재
☞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소초면 / 횡성군 강림면,우천면, 안흥면
요즘 내가 어케 사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다
사바세계에 사는 자체가 苦이긴 하지만 자꾸만 갈수록 삶 자체가 힘이드니...
내가 세상을 잘못 사는건지 아님 전생의 업보가 많은건지 모르겠다
지난주 동호인 산악회를 따라서 영월지맥 5구간 치악산 구간을 했는데 이번주는 월욜이
석가탄신일이고 화요일은 우리 집이 이사를 해야 하기에 일욜에는 평소에 은혜를 입은
스님들을 찾아뵙고 연등을 달아야 할 사찰들이 몇군데 있어서 동호인 산악회를 따라서
일욜에 산행을 하면 아무래도 정신이 없을것 같아서 스님들에게 인사를 하려면 토욜에
산행을 하는게 나을것 같아 이른 아침에 혼자서 영월지맥 6구간을 나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토욜 새벽 우리 아파트 주차장
평소 같으면 차들로 가득차 있을 우리 아파트 단지는 이웃들이 다들 이사를 가버리고 몇집 안 남았다
내 나이 약관 28세에 이 아파트로 와서 어언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재건축으로 인해 이사를
해야하니 참으로 맘이 착잡하다... 4년후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재회해야 할텐데
이른 아침이라 상가 셧터는 굳게 닫혀있고 우리 매장 간판만이 쥔장에게 잘다녀오라는듯 한다
사무실과 매장도 6월 20일경에는 옮겨야 하니...내 인생을 다 바친 이 정든곳... 맘이 착잡하다
재건축 조합에서는 빨리 이주하라고 난리부르스다... 나갈끼다 걱정하지 말그라
서울발→원주행 고속버스표
이른 아침에 베낭을 챙겨서 부지런히 집을 나섰건만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출발 10분 전...부지런히 탑승구에 도착하여 버스에 오르는데 연휴라 그런지
초반부터 고속도로는 정체가 시작되고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보니 원주 터미널이다
원주고속버스 터미널(07:55)
초파일이 끼인 황금연휴라 그런지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많이 밀렸고 그 바람에
예정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원주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터미널에 내려서 아침을 해결하려고 터미널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마땅히 식사할 곳이 없다
강원도의 제1도시인 원주가 왜 이러나...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서 편의점에 들려서
김밥 2줄과 쥬스2개, 도넛 2개를 사서 베낭에 넣고 택시를 타고 들머리인 행구동으로 향한다
오늘 나홀로 산행을 하면서 들머리를 어디로 잡을것인가 많이 망설였다
곧은치로 향할 경우 산행의 연속성을 위해서는 좋으나 들머리인 곧은치 탐방소에서
곧은치까지 급경사의 오르막이라 힘이들고 날머리인 진재에서 대중교통이 문제이고
진재에서 곧은치로 역산행할 경우 접근성은 좋은나 산행 리듬이 문제일 것 같아서
곧은치로 들머리를 정하고 택시에 오른다
산행 들머리(08:25)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로 곧은치 탐방소 초입까지 가서 택시에 내려 산행을 준비한다(택시비 9,000원)
등로 초입에서 만난 매발톱꽃의 뒤쪽으로 길게 튀어나온 부분을 꽃뿔이라고 하며 이 꽃불이 안쪽으로
휘어진 모습이 마치 매의 발톱처럼 생겼다고 해서 매말톱이라고 부른다
양지바른 곳에서 잘자라는 여러해살이 풀로서 꽃은 5월에서 7월사이에 핀다
키는 50cm 정도 자라며 꽃의 직경은 3cm 정도이고 빨간색, 노란색, 하늘색이 있다
학명은 Berberis amurensis이며 속명인 아킬레지아(Aquilegia)도 ‘독수리’를
의미하는 라틴어 aquila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꽃 모양이 삐에로의 모자를 닮았다고 해서 삐에로의 달이라고도 부른다
원산지는 한국이며, 중국과 러시아에서도 서식하며 꽃말은 승리의 명세이다
장비를 점검하고 산행을 시작하는데 날씨는 무지좋고 아침에 베낭도 없이 산보하는
사람들이 가끔 보이나 나처럼 큰 베낭을 메고 가는 사람이 별로없는 탓인지 사람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가는게 생각보다 상당히 신경이 쓰인다
하늘색 매발톱곧은재탐방지원센터(08:27)
이곳 해발이 394m이고 곧은재 정상이 860m이니 2.2km의 짧은 거리를 급경사로 치고 올라야 한다
왜 맥산꾼들이 이 구간을 역산행하는지 이해를 할 것 같으나 산이란 어디 쉬운 산이 하나라도 있드냐?
시원한 계곡물을 바라보면 계속해서 고도를 높이는데 초반이라 아직까지 걸을만하다
오름길에는 옛 집터인지 성터인지 모를 오래된 돌담도 보인다
주막거리 쉼터(08:50)
나무 다리를 지나니 휴게용 의자가 있는 주막거리 쉼터가 나오는데 어차피
아침을 먹지 않았던 탓에 베낭을 내려놓고 편의점에서 산 김밥 한줄과
캔커피 하나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곧은치로 향해서 올라간다
계속해서 고도를 높히는데 좌측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더덕 냄새가 진동을 한다
당장이라도 베낭을 내려놓고 더덕을 찾고 싶지만 갈 길이 멀어 아쉬운 맘으로 곧은치로 향한다
곧은치(860m:09:30)
소득이 없는 접속구간을 끝내고 본격적인 영월지맥 구간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물 한모금 마시고 좌측 능선을 따라서 본격적인 맥산행이 시작된다
먹물을 묻힌 붓의 모양처럼 생겼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그리스어로 아이리스(Iris)는 식물의 학명에 해당하는 것으로 붓꽃 전체를 일컽는
것으로 “무지개 여신”뜻을 가지고 있다
치악산국립공원이라는 제도권 등로라 그런지 길은 무지 좋으나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등산객이 보이지 않아 호젓하게 홀로 걷는다
나무계단을 따라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낙동정맥에서 만난 십지송(十指松) 만큼이나 멋진 소나무 한그루를 만나고...
헬기장(946m:09:45)
마치 활공장(행글라이더장) 겸용의 넓은 헬기장에 올라서니 원주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원주(原州)란 글자 그대로 지역이 개활하고 넓은 벌판이라는 뜻이다
옛 이름 평원이나 북원도 이 지역이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벌판이었음을 뜻한다.
이 지역은 4통 8달의 요충지로서 싸움때마다전략적으로 중요시된 곳이다
원주는 54개 부족국가로 형성된 마한의 가장 동쪽에 하였으며 백제가 마한을 통일하였를 때는
백제의 영토였고, 고구려의 남하정책으로 장수왕 57년(469년) 원주지방을 평원군이라 불렀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북원경이라 불렀고, 9세기말 통일신라가 쇠퇴하자 각처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양길은 원주지역을 근거로 세력을 확장하여 오늘날 강원도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큰 세력
이었지만 결국 고려에 멸망하고, 고려 태조 23년(940년) 북원경을 폐쇠하고 원주라 불렀다
조선시대 때인 1395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강원도와 교주도를 합하고 강릉의 ‘강’ 자와 원주의
‘원’ 자를 합하여 강원도라 불렀으며 원주에 강원감영이 설치되어 강원도의 수부로서 행정, 치안,
사회, 문화 등의 중심지였으나 1896년 조선팔도의 행정구역 개편때 원주에 있던 강원감영을
춘천에게 내주고 지금은 강원도 제1의 도시로 만족해야만 한다고 한다
민백이꽃
박주가리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서 30~60cm 정도의
높이로 자라며 줄기를 자르면 우유같은 흰즙액이 나온다
5~6월에 줄기의 끝과 윗부분의 앞 겨드랑이에 자란 꽃대의
신형 꽃차례의 흰색 꽃이 피며 5개의 꽃잎에 5개의 부화관이 있다
뿌리는 백전이라는 약재로 사용하는데 냄새가 거의없고 맛은 조금
맵고 쓰며 성질은 약간 따스하다
백전은 氣를 하강시키고 담을 없애며 해수, 천식, 잔기침, 열기침에
쓰며 감기, 기침에 잔해, 거담해소 작용을 한다
참꽃마리
우리말에 "참" 이란 용어가 들어가면 질적으로 우수하거나 진실성을 강조할 때 붙이는 접두어다
행복의 열쇠라는 꽃말을 가진 참꽃마리... 마리꽃 종류중에서 제일 늦게 꽃이 핀다
971.2봉 삼각점(△447 / ?)
922봉(10:00)
922봉 구조 이정목
등로 좌우에는 간간히 취나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내리막길을 가는데 주위에는 산죽군락지다
눈개승마 (꽃말: 산양의 수염)
장미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 높이 30~100센티미터 정도로 자라며, 잎은 겹잎이고 어긋난다.
자웅 이주(雌雄異株)로 5~6월에 황백색 꽃이 원추 꽃차례로 핀다. 우리나라 곳곳에 분포한다.
학명은 Aruncus dioicus var. kamtschaticus이다.
꽃은 흰색으로 작고 꽃자루가 없으며 8~10송이씩 잎이 달리지 않은 가지에 모여 피는데 길이가
10~25㎝ 정도이며 종종 화단의 가장자리에 심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눈개승마 외에도 한라산에서만 자라는 한라개승마가 있다.
눈개승마는 약간 노란빛이 도는 꽃이 피나 한라개승마는 흰빛이 도는 꽃이 핀다
원통재883m:10:10)
횡성군 강림면 부곡리 원통골에서 원주시 행구동 황골로 이어지는 고개로 원통골 방향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이정표(←비로봉 3.1km, 상원사 7.4km→)가 서있다.
치악산은 크게 외치악과 내치악으로 나눠 지는데 산세가 가파르고 험난한 원주지역을
외치악이라면 산세가 완만하고 부드러운 횡성군 강림면 지역을 내치악이라 부른다
원통재로 내려서는 부곡리는 ‘가마솥 부(釜), 골 곡(谷)’ 을 쓰며 가마솥 형태의 지형을
이루고 있는 마을로 다리골, 원통골, 고둔치골이 있는데 치악산의 주봉인 비로봉에서
향로봉, 망경대가 깜싸고 있는 부곡리는 조선 초기 태종과 그의 스승 원천석과 관련된
태종대가 있는 곳으로 강림면소재지까지 이어지는 정도의 긴 계곡이 있다
자란초(紫蘭草:학명:Ajuga spectabilis)
꿀풀과에서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서 높이는 약 50cm이며 줄기는 곧게 서고
땅속 줄기는 옆으로 퍼진다... 잎은 마주나고 넓은 타원 모양이며 길이는 약 17cm
이고 너비는 약 9cm로 잎자루가 있다
가장자리에는 거칠고 불규칙한 톱니가 있고, 털이나며 양면 맥 위에도 털이있다
꽃은 6월경에 진한 자줏빛으로 피며 줄기 끝이나 잎 겨드랑이에 층상꽃차례로 달린다
꽃받침은 종처럼 생기고 5갈래로 갈라지며 갈래조각은 줄모양의 바소꼴이다
화관은 통처럼 생긴 입술모양으로 윗입술 꽃잎은 짧고 2갈래로 갈라지며 아래 입술은
길고 3갈래로 갈라진다...가운데 조각은 다시 2갈래로 갈라지며수술은 2개가 길고
열매는 둥굴며 작은 견과로서 겉면에 주름이 생기고 8월에 익는다
넓은 공터가 있는 무명봉을 지나 다시 편한 길을 걸어가는데...
부부 같지는 않은데 뭔 이야기를 하는지 계속해서 재잘거리면서 걷기에 추월한다
1,004봉10:30)
다시 편한길을 계속 걸어간다
서서히 고도를 올린다... 암릉구간이 있는 곳을 올라서니...
앵초(꽃말: 젊은날의 고뇌, 첫사랑)
학명은 Primula sieboldi E. MORR이다. 우리나라의 각처에서 널리 자라고 있는 식물로
잎은 밑동에서부터 모여 자라며, 잎줄기는 길고 대체로 타원형이다.
줄기는 곧게 서며 길이 20㎝에 달한다.
잎과 줄기에는 흰털이 많이 있으며, 꽃은 7월에 홍자색으로 핀다.
화서(花序)는 산형화서(繖形花序)로 줄기 끝에서 자라며 화경(花莖)이 길다.
총포편(總苞片)은 피침형이며, 소화경(小花梗)보다 짧고 화관(花冠)은 높으며 깔때기 모양이다.
5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있고, 꽃받침은 다섯 조각으로 가운데가 갈라졌다.
갈라진 면은 삼각상 피침형이며 끝이 예리하다.
열매는 삭과(蒴果)로서 둥글고 원추형이며, 익으면 갈라진다.
어린싹은 나물로 먹고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기른다.
앵초의 뿌리는 땅 속에서 옆으로 뻗는데 이것을 약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8·9월에 채취한다.
진해·거담 효과가 있으며, 1회에 8∼12g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효능은 다른 진해·거담제에 비하여 그 작용이 미약하다
좌측 능선 아래에 멋진 암릉이 보이고 능선으로 올라서니 산죽길이 나온다
입석사갈림길(10:55)
좌측 입석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데 이곳부터는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휴게용 의자와 탐방안내도가 있고 등로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할 치악산 비로봉이 보인다
정상부의 돌탑도 보일만큼 가까워졌고 살짝 올라선 봉에서는 좌측으로 황골, 입석사 갈림길이다
이정표(입석사1.2km← 비로봉↗1.3km남대봉 8.5km)와 자연경관 해설조망판이 있다.
입석사(사진 - 펌)
입석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사찰의 지명은 입석대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되며 자세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이 절의
뒷쪽 토굴에서 수도했다는 전설이 있다
원래 입석사는 입석대에서 원주쪽으로 1km정도 떨어진 곳에 암자로 있었는데
현재의 위치에 신축한 것이라고 한다
옛 절터에 있던 폐석재들을 모아 높이 2.2.m정도의 청석탑 1기를 세웠는데
옥계석 5개중 3개에 연화문이 새겨져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추정된다
입석사 갈림길에 서있는 탐방로 안내판
오르막 계단은 잘꾸며 놨다
전망대(1,179m:11:05)
멋진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는 1,179봉에 오르니 원주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은 원주시 행구동과 소초면, 그리고 횡성군 강림면이 맞닺는 3면 경계봉이다
이곳 전망대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물 한모금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데크목 전망대의 모습
전망대에서 바라본 원주시내의 모습
동료산꾼 낡은모자님의 고향이 원주랬지... 최근에 커다란 오더를 하나 받았는지
무지하게 바쁜지 통 연락이 없네... 새마을 시장에서 탁배기 한잔 해야 할 터인데...
치악산의 주봉인 비로봉은 점점 가까워지고...
좌측으로는 삼봉, 투구봉, 토끼봉이 뚜렸이 보인다
쥐넘이재(11:15)
등로 좌측 삼봉으로 이어지는 등로에는 출입을 금한다는 국공파의 경고판이 붙어있다
삼봉과 투구봉, 토끼봉으로 이어지는 이곳이 지형도상으로 쥐넘이재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실제 쥐넘이재는 좌측 등로 아래로 조금 내려가 삼봉가기 직전의 안부가 정확한 쥐넘이재이다
치악산 경관 해설판에 쥐넘이재 유래가 적혀있는데
이 고개는 옛날 쥐떼가 넘어간 고개라 하여 쥐너미재라고 한다.
옛날 범골에 범사(凡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쥐가 너무많아 스님들이
쥐들의 등쌀에 견디지 못하고 절을 떠났다고 한다.
하루는 그 많은 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을지어 범사를 떠났는데 그 후로는
이 범사(凡寺)를 찻는 사람이 없어졌고 절은 폐사 되었다고 한다.
비로봉 가는길은 참으로 편안하다
약간의 암릉길도 지나고...
갈림길(11:20)
좌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보인다
1,223봉(11:23)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고, 비로봉이 빤히 보인다
헬기장을 내려서니 암릉이 나오고 좌측으로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계단을 따라서 내려가다가... 뒤돌아보니
암릉의 뒷태가 훨씬 멋져 보이고...
다시 편한길을 조금 더 진행하니...비로봉 감시초소가 나온다
비로봉감시초소(1,195m).. 바로 아래에 구룡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구룡사 갈림길(11:30)
치악산의 주봉인 비로봉으로 오르는 등산객들은 이곳으로 많이 올라오는지
이곳부터는 등산객들이 많이 보이고 왁자지껄하는 모습이 보인다
구룡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월정사의 말사로서 원주시 소초면 학곡2리 치악산 국립공원의
자리잡고 있으며 황장목 금강송 일주문 원통문을 지나 사천왕문에 들어서 구도의 계단을 올라
문화재인 보광루 밑을 나오면 대웅전이 자리잡고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천년이 지난 신령스러운 거북이 연꽃을 토하고 있고 영험한 아홉바다의
용이 구름을 풀어놓은 형상을 한 천하의 승지” 구룡사는 서기 668년(문무왕 8년)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였으며 나말려초 시절 도선국사의 비보사찰중의 하나로 수많은 고승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보물은 탱화 강원도 유형문화재 136 호 보광루 강원도 유형문화재 145 호 용다사 동종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133 호 등이 있다
비로봉으로 오르는 데크목 계단
우측으로는 금강초롱 서식지 보호 철조망이 있고...
비로봉 오르는 길에는 멋진 암릉을 자주 만난다
조금전에 지나온 1,223봉의 모습
비로봉 직전의 이정표
치악산 정상에 오르자 꽤나 많은 등산객들이 보인다
바로 앞 여인은 더워서 속에 천불이 나는지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옷을 벗어 제낀다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所草面)과 영월군 수주면(水周面)의 경계에 있는 해발 1,282m의
1984.12.31. 건설부 고시 제564호에 의거 국립공원 지정(면적:175.668㎢) 되었다.
치악산(稚岳山)을 옛날에는 단풍이 아름다워 적악산(赤岳山)으로 불렸으나,
상원사의 꿩(또는 까치)의 보은전설에 연유하여 꿩치(雉)자를 써서
치악산이라 불리게 되었는데, 그 유래는 옛날 경상도 의성 땅의 한 나그네가 이곳을 지나다
꿩을 잡아먹으려는 구렁이를 발견하고 꿩을 구해주었고 이 꿩도 구렁이가 나그네를 해치려는 것을 구해주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구렁이가 꿩을 잡으려는 것을 살려주어 은혜를 갚은 꿩” 의 종소리에 유래되어
꿩을 의미하는 치(雉)자를 써서 치악산(雉岳山)이라 이름을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남대봉 상원사에 은혜를 갚은 보은의 종이 복원되어 있다고 한다.
치악산은 단일 산봉이 아니고 1,000m 이상의 고봉들이 장장 14㎞나 능선으로 이어져 있어
치악산맥으로 불리기도 하며 원주시 동쪽에서 횡성쪽으로 평행선을 그으며 장대한 산줄기는
설악산, 오대산과 더불어 강원도를 대표하는 3대 명산으로 꼽힌다
주요 봉우리는 주봉인 비로봉(1,288m), 남대봉(1,181m), 향로봉(1,043m), 매화산(1,085) 등이다.
"치악산에 왔다 치를 떨고 간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치악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험하다
주봉 비로봉에서 남대봉까지 남북 14km에 걸쳐 주능선 양쪽으로는 깊은 계곡들이 부채살처럼 퍼져 있다.
주봉인 비로봉은 치악산의 최고봉으로 이곳 정상에서는 원주, 횡성, 영월지방이 한눈에 들어오며
이를 중심으로 남대봉(1,181m), 향로봉(1,043m), 매화산(1,085) 등의 고봉들이 솟구쳐 있고
4계절마다 그 모습을 달리하여 많은 산악인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치악산 곳곳에는 산성과 수많은 사찰 사적지들이 있다. 남대봉을 중심으로 꿩의 보은지라는 상원사를 비롯해서
서쪽으로 세존대, 만경대, 문바위, 아들바위 등 유래 깃든 경관이 있다.
그외 영원산성, 해미산성, 금두산성, 천연동굴과 북원적 양길이 궁예를 맞아들여
병마를 정돈했다는 성남사가 또한 이곳에 있다.
치악산은 단풍으로도 유명하다. 우뚝우뚝 하늘로 치솟은 침엽수림과 어우러져 자아내는 치악산 단풍 빛은
신비하리만치 오묘하다. 구룡사 입구의 우거진 단풍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연상시킨다.
10월 중순께 단풍이 절정을 이루면 치악산은 또 다른 운치를 자랑한다. 특히 구룡사 계곡은 설악산,
오대산 못지않게 단풍이 곱게 물드는 곳. 폭포와 바위가 멋진 조화를 이뤄 쾌적한 단풍을 즐길 수 있다.
치악산 비로봉 정상에서 원주시내를 배경으로...
미륵불탑
치악산 비로봉에 세워진 돌탑은 원주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던 용창중(일명:용진수)이라는
사람이 꿈에 비로봉 정상에 3년 안에 3기의 돌탑을 쌓으라는 신의 계시가 있어 혼자서 쌓았던 탑인데,
1962년 9월 처음 쌓기 시작하여 1964년 5층으로 된 돌탑을 모두 쌓았으나 1967년과 1972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무너졌던 것을 용창중씨가 각각 그 해에 복원 하였다.
1994년 이후 두차례에 걸쳐 벼락을 맞아 무너진 것을 치악산 국립공원사무소가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륵불탑 중 남쪽의 탑은 "용왕탑" 중앙의 탑은 "산신탑"그리고 북쪽의 탑을 "칠성탑"이라고 한다.
(용창중씨는 1974년 작고 하였음)
미륵불탑 안내판
돌탑에 쓰인 돌들은 3개도(강원도, 경기도, 충청도)에서 가져온 것으로 탑의 높이는
7~8m 정도이며 용왕탑, 산신탑, 칠성탑을 합쳐서 미륵불탑이라고 부른다
치악산 비로봉(飛盧峰:1,288m:11:40)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과 횡성군 강림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치악산의 주봉이다
정상에는 원주출신 용창중씨가 쌓았다는 3개의 커다란 돌탑이 있고 주위의 산들이
시원하게 조망되는 그야말로 일망무제이다.
“비로(毘盧)”는 범어 바이로차나(vairocana)를 음역하여 비로자나라고 한다.
“높다”라는 뜻으로 청정법신이라고 불리는 과거불인데 우리나라 명산의 주봉중에
유난히 비로봉이 많다...금강산, 묘향산, 오대산, 소백산 정상이 모두 다 비로봉으로
비로봉(毘盧峰)인데 유독 이곳 치악산의 비로봉은 毘盧峰이 아닌 飛盧峰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한문으로 풀어쓰면 ‘날 비(飛), 밥그릇 로(盧)’라는 얘기덴 말이 되질 않는다
큰 산의 최고봉에 비로봉이라고 지명을 사용한 것은 부처님의 큰 광명을 내비치어
고통받는 수많은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뜻인데 이곳 치악산의 한자 지명은 기록을
한 사람이 아마도 한문을 잘 몰랐던 사람이 한 오역(誤譯)이 아닌가 싶다
영서지방의 명산 치악산은 주봉우리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향로봉, 남대봉 등 봉우리가
연결돼 있으며 예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의 국경을 접하고 있어 `호국명산'으로도 알려졌다.
치악산의 옛 이름은 적악산(赤岳山)이다. 적악산이 치악산으로 바뀐 것은 흔히 알려진 꿩 보은 설화 이후부터다.
적악산을 넘던 한 나그네는 뱀이 나무 위에서 꿩을 칭칭 감고 잡아먹으려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곧 잡혀먹힐 운명에 처한 꿩을 나그네는 활로 쏘아 뱀을 죽여 꿩을 살려주었다고 한다.
적악산 깊은 골짜기에서 밤을 맞은 나그네는 절간에서 잠을 청했고 몸이
조여오는 것을 느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뱀이 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고 한다.
나그네의 활에 맞아 죽은 뱀의 암놈인 이 뱀은 절 뒤에 종각의 종이 세 번 울리면 목숨을 살려줄 것이라 했다.
나그네는 세 번의 활을 당겨 종을 울리려 했으나 빗나간 화살은 종을 울리지 못했다.
탄식도 잠시, 나그네의 구원으로 살아난 꿩이 머리로 종을 세 번 쳐 나그네에게 보은했다고 전해진다.
이때부터 적악산은 치악산으로 바뀌었다. 적악산 전설 등은 치악산의 역사를 더욱 그윽하게 한다.
특히 조선 초 석학 서거정은 치악산의 터를 잡은 원주를 가리켜 “땅은 넓고 백성은 많으며 산천의
아름다움과 토지의 비옥함과 물산의 풍부함이 여러 고을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며
실로 동쪽의 아름다운 고을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 변계량은 “치악산은 동해지방에서 이름이 높다”고 읊고, 원주목사로 왔던 민정은
“치악의 한자리가 서쪽으로 잇따라 여러 백리를 달려와 주(州)의 진산이 되었다”고 했다.
이처럼 치악산은 원주 지역주민의 숭앙을 받으며 치악산이 뻗어 있는
원주, 횡성, 영월 등 지역주민의 신앙 처가 된 것이다
우째 이런일이!!!..
비로봉까지는 지도를 볼 필요가 없기에 신경도 쓰지 않았으나 국공파의 눈을 피해서
희미한 등로를 내려선 다음에 지도를 보려고 베낭을 내리는데 이런 황당함을...
최근에 계속해서 바쁘게 생활하다가 베낭을 챙겼는데 어젯밤에 출력한 지도를 책상위에
올려놓고 그냥 온게 이곳에 왔어야 알았으니 참으로 황당하다
하는 수 없이 얼마전 이곳을 지나간 온누리님에게 SOS를 치니 카톡으로 지도를
보내주시는 바람에 편하게 산행을 한다... 정신머리 하고는 장가가는 넘이 거시기 빼놓고 가는 것처럼...
비로봉 정상에서 이곳저곳을 두루 구경을 한 다음에 사다리병창으로 내려서는 길에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비로봉에서 바라본 사다리병창 능선의 모습
사다리병창이란 능선상에 마치 기차바위처럼 길게 이어져 있는 5~60m 가량의 암릉길을 말한다
사다리병창길에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암릉 아래로 내려선다
이곳에서 국공파의 눈을 피해 넘지 말아야 할 금선(禁線)을 넘는다
이곳은 치악산 비법정 탐방로로서 가지말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지맥길을 갈 수 없기에...
‘탐방로 아님’ 이라는 경고판을 뒤로하고 급경사로 내려서니 뚜렸한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강림면 부곡리 다래골로 내려서고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1,220봉(12:10)
나도옥잠화(꽃말:기다림,조용한사랑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서 잎은 뿌리에서 2~5개가 나며 긴타원형으로 양끝이 좁다
학명은Clintonia udensis이고 깊은 산의 나무그늘에서 자라며 짧게 벋은 뿌리줄기에서 수염뿌리가 나온다.
꽃줄기는 곧게서고 높이가 20~30cm(열매를 맺을때는 40~70cm이고 꽃줄기에는 잎이 달리지 않는다
잎은 2∼5개가 뿌리줄기에서 나오며 긴 타원 모양으로 길이가 15∼30cm, 폭이 3∼9cm이고 잎몸이
두텁고 광택이 있으며 녹색이고 양 끝은 좁으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털이 있다.
꽃은 6∼7월에 흰색으로 피는데, 총상꽃차례를 이루며 꽃줄기 끝에 작은 꽃이 3∼5개 달린다.
꽃잎 조각은 6개이고 옆으로 퍼지며 길이가 12∼15mm이고 좁은 타원 모양이다.
수술은 6개로 꽃잎 밑에 달리고 꽃잎보다 짧으며 꽃밥은 긴 타원 모양이고 암술대는
끝이 3개로 갈라지며 씨방은 3칸으로 나뉜다.
꽃이 핀 다음 꽃줄기가 길게 자라고 짙은 남색의 열매가 달린다. 열매는 지름이
10mm 정도인 장과이고, 종자는 달걀 모양이다. 어린 순은 식용한다.
이곳에는 앵초를 비롯한 야생화들과 취나물이 많이 보인다
부지런히 걸으면서 취나물을 채취하는 재미도 솔솔하다
급경사를 내려서니 암릉길이 나오고...
누워있는 노거수를 지난다... 비로봉에서 전재까지는 비법정탐방로의 통제구간이라
그런지 원시림을 방불케하지만 그렇다고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지는 않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지맥을 이어가는 나홀로의 호젓함을 맛본다
1,065봉(12:25)
1,065봉은 정상으로 오르질 않고 우회하여 걸으니 등로는 희미하고 산죽길이 시작된다
용쟁호투
배넘이재(1,004m:12:40)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세렴골에서 횡성군 강림면 부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좌.우측의 고개길은 인적이 끊긴지 오래됐는지 길의 형태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배가 넘었다는 배너미재는 구룡산과 천지봉에 관한 전설과 연관이 있다
배너미재와 구룡사와 관련된 전설
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원주지방을 찾아와 절터를 찾고 있다가 치악산 구룡골에 멎었다
의상대사께서 사방을 살펴보니 동쪽으로는 주봉인 비로봉이 솟아있고 다시 천지봉의 낙맥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데다가 계곡의 경치 또한 아름다웠다
그런데 대웅전을 짓자면 연못을 메워야하는데 그 큰 연못에는 아홉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
용을 내쫓으려고 한다는 말을 들은 용들이 의상대사에게 내기를 걸었다
스님과 서로 내기를 해서 이기는 쪽으로 마음을 정하자는 것이다
용들은 연못에서 날아 하늘로 치솟더니 뇌성벽력과 함께 우박같은 비를 쏫아 부었다
이 바람에 근처의 산들이 삽시간에 물에 잠기고 스님 또한 물에 빠져 죽는가 했으나
대사는 태연하게 앉아다가 비로봉과 천지봉 사이에 배를 메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 동안 비를 퍼부은 용들은 이만하면 의상대사가 물속의 귀신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비를 거두고 내려왔다
그러나 뜻밖에도 스님은 배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홉마리의 용들이 다 내려오자 스님은 “너희들의 재주가 고작 그것 뿐이냐
이제 내가 조화를 부릴 것인 즉 너희들은 크게 눈을 뜨고 잘지켜 보아라.”
하고 부적 한장을 그려서 연못속에 넣었다.
얼마 안 있어 연못속에는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오르며 큰 연못의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물 속에서 뜨거움을 참지못해 용들은 튀쳐나와
한 달음에 동해바다로 달아나 버렸고 용이 달아나자 의상대사는 그 자리를 메우고
구룡사 대웅전을 지었다고 한다
암봉 구간의 우측 사면으로 낑낑거리며 올라서니 오늘 산행중에 처음으로
산보님의 반가운 시그널을 만난다... 더군더나 지도를 챙겨오질 못해서
등로를 의심 또 의심을 하면서 신경을 바짝 세우면서 걷는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사실상 통제구간인 비법정탐방로에는 시그널을 안 붙이는게 불문율인데
산보님의 그 용기... 대단히 존경합니다
무너진 암릉을 올라서 등로는 암봉 정상이 아닌 우측 사면길로 연결되지만
혹 정상에 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잡목을 헤치고 암봉 정상으로 오른다
암봉으로 형성된 1,084봉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은 상당히 험하다
조금 빠른길로 가려고 암릉구간을 넘었다가 낙엽에 미끄러져 10m정도 굴렀다
아무 연고도 없는 강원도 땅에서 졸지에 황천길 갈뻔했네
우측 횡성군 강림면 부곡리 방향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지형도상으로 치악산 부곡공원지킴터 쪽 방향인데 이곳은 태종대가 있다
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이방원)이 그의 스승 운곡(원천석)을 찾아 부곡리에
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곳에서 쉬어 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후에 주필대(駐蹕臺)라는 비석과 정각을 세웠다
단촐한 점심식사
이빨이 너무 아파서 막걸리가 빠졌다... 요즘 사는 재미를 못 느낀다
1,114봉(13:40)
비법정 탐방로에서 처음으로 맥 산꾼을 만난다
전재에서 오는 중이라는데 이 분도 나를 엄청 반가워한다
서로 안산을 하라는 인삿말을 남기고 아쉬운 작별을 한다
1,109봉(13:45)
1,109봉은 암봉으로 형성되어 있어 오르지 못하고 좌측으로 우회한다
안부(14:00)
암릉아래 아래 안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참으로 시원하다
지나온 비로봉이 자꾸만 멀어진다
고도차가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을 걷는다
세렴재(14:25)
좌측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데 이곳으로 내려가면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세렴골에 있는 세렴폭포로 내려서는 등로인데 비법정탐방로라 길이 거의 없다
산죽길이 계속되고 조그만한 봉우리의 오르내림은 계속되지만 아직까지 걸을만하다
마당바위에서 바라본 치악산의 모습
마당바위에서 천지봉가는 길은 무지하게 좋다
천지봉(天池峰:1,086.5m:14:40)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와 횡성군 강림면 강림리에 걸쳐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스텐레스로
만든 팻말과 삼각점이 있는데 지명의 유래는 아무래도 이 아래에 있는 구룡사와 관련이 있다.
천지봉의 유래는 구룡사의 현 대웅전 터에 원래 커다란 연못으로 아홉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는데
의상대사가 절을 짓기위해 도술로 용을 쫓아낸 뒤 연못을 메워 구룡사를 창건하였는데
이때 여덟마리의 용은 천지봉쪽으로 도망을 쳤는데 도망을 친 앞산이 천지봉이란다
천지봉에서 구룡사로 뻣어내린 여덟개의 크고 작은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으며 나머지
한마리는 미쳐 도망치지 못하고 숨어든 곳이 구룡사앞 계곡에 있는 구룡소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아홉마리 용 중에 한마리는 눈이 멀어 같이 가지 못하고 구룡폭포 밑의 용소로
도망을 갔다가 1936년대 병자년 대홍수 때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천지봉 삼각점(안흥 444 / 1985재설)이곳을 베낭을 내려놓고 시원 바람에 바지를 내리고 거풍을 즐긴 다음 다시 길을 나선다
천지봉 정상의 모습
정상에서 좌측 8시방향으로는 구룡사 방향으로 내려서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영월지맥길은 11시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지맥길로 들어서니 등로는 희미하다
이곳부터는 나물들이 많이 보이는데 취나물과 곰취들이 심심찮게 보여 제법 수확을 한다
이곳부터는 진달래 군락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약간의 경사진 곳을 내려오니 암릉을 만나고...
어령재(15:00)
횡성군 강림면 부곡리 어령골에서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구룡사로 연결되는
고개로 고개 좌.우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긴 해도 인적의 흔적은 보이질 않는다
1,002봉에서 내려서면서부터 좌.우로 곰치와 취나물이 지천을 이루고 있는데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가랴... 곰취를 채취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곰취를
따는 순간에 조그만 뱀 한마리가 곰취가 있는 곳에서 도망을 가는게 아닌가
얼마나 놀랬는지... 좌우지간에 난 뱀은 정말 싫어...
안부(15:30)
안부를 지나서 다시 조그만 능선에 올랐다가 내려서니 수레너미 고개가 나온다
수레너미고개(706m:15:38)
횡성군 강림면 강림리 수레너미 고개에서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를 잇는 고개로
횡성쪽 아래에는 수레너미 마을이 있고 거대한 노거수가 있으며 양쪽 등로는 뚜렸하다
원래 고개이름은 ‘수리재’인데 강림과 통하는 옛길로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이 스승인
운곡 원천석이 있던 각림사라는 절을 찿아 강림으로 갈 때 수레를 타고 넘었다고 하여 유래 하였다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와 통하며 각림사는 현재 남아있지 않지만 강림면의 지명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헬기장(754m:15:40)
헬기장을 지나면서 올라야 할 매화산을 바라보니 눈 앞이 캄캄하다
급경사의 오르막인데 날씨는 덥고 다리의 힘은 빠지고 에라 모르겠다
베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쥬스 하나를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선다
계속되는 급경사의 암릉길
초반에 대피소에서 곧은치까지 힘들게 온 구간을 빼놓고는 오늘 산행은
그리 힘든줄 모르고 걸었는데 여긴 코가 땅에 닿을만큼 힘이 무척이나 든다
힘들게 암릉구간을 올라서니 지나온 비로봉과 천지봉이 보이고...
암릉에서 바라본 치악산의 모습
전망바위(16:30)
암릉에서 바라본 학곡저수지(원주시 소초면 소재)
우측 능선 아래로 우회길이 있지만 천길 낭떠리지의 암릉길을
곡예하며 걷는데 조금 위험하긴해도 전망하나는 정말로 끝내준다
암릉구간에서 바라본 매화산 정상의 모습
갈림길(16:40)
좌측으로는 학곡리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우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20여m 정도 걸어가니 오늘의 마지막 산인 매화산이 나온다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과 횡성군 강림면, 우천면, 안흥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정상석과 건설부에서 설치한 2등 삼각점과 약간의 넓은 공터에 허물어진 묘지 1기가 있다
매화산 기슭의 횡성군 우천면 오원리에는 오원저수지가 있으며 남사면은 주천강발원지다
서쪽 기슭에는 구룡사와 구룡폭포가 있다
옛날 이 산에는 가난한 농부가 늙은 부모님을 모시고 나무장사를 하면서 살았는데
하루는 나무를 하러 갔다가 이상한 새를 만나서 쫒아 다니다 날이 어두워져서
산에서 잠을자게 되었는데 자다가 목이 말라서 물을 먹었다고 한다
이상한 새가 필경 봉황일 것이라는 뜻에서 물을 마신 샘을 ‘봉담’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다음날 이 새가 또 나타나서 자꾸 쫒아가다가 한 곳에 이르니 꽃이 활짝 핀 매화나무밭이었다
이에 이곳을 매화산이라 불렀는데 그래도 계속 새가 따라 오라는 것 같아서 계속 따라가니
새는 안보이고 신선들이 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신선들이 바둑을 두던 자리를 신선봉이라 한다... 바둑을 두는 것을 보고있던 농부가
갑자기 신선들이 없어져 자신도 집에 가려고하자 손에 들고있던 도끼자루가 썩었다고 한다
집에 와보니 가족들이 자신이 죽을줄 알고 3년째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식구들을 이해시키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새덕이라는 벌판을 지나 매화산을 거쳐
신선봉까지 갔다 온 것이다... 새덕이란 지명은 새의 덕으로 신선을 만나 3년을
굶었어도 죽지않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우천면 오원리에 있는 것으로 소개하고 ‘매지산’ 이라는 한글 표기를 하고있다
매화산에서 봉분이 없는 묘지를 내려오자 직진으로 뚜렸한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조금은 더 가니 멋진 암릉이 나오고 뚜렸한 등로는 이어지는데 어~~~랴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고 좌측 아래에 헬기장이 보이는데 내가 가는 등로는 자꾸만 헬기장이
등로에서 멀어지기에 지도도 없고 感이 이상하여 온누리님에게 전화를 하니
아니나 다를까 잘못가고 있는게 아닌가... 다시 매화산으로 향한다
잠깐의 외도(?)길에서 만난 멋진 암릉구간
이곳에서 올라서니 우측으로는 지난 구간의 치악산 남대봉과 향로봉, 그리고 오늘 지나온
비로봉과 천지봉이 한 눈에 들어오고 동남쪽으로는 백덕지맥 능선과 백덕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암릉에서 바라본 동남쪽 지역의 강림면 지역과 백덕산의 모습
멋진 산그리메를 감상하고 소득있는 알바(?)를 하고 다시 매화산 정상으로 향한다
정말 그것도 아주 오랫만에 매화산 아래 급경사에서 선답자의 시그널을 만난다
급경사를 내려오니 편안한 등로가 나오고...
헬기장(881m:17:20)
헬기장에서 뒤돌아 본 매화산의 모습등로 좌.우에는 취나물이 지천이다... 아무리 급해도 나물을 뜯으면서 전재로 향한다
농장 철조망(17:30)
농장 철조망을 따라서 전재로 향한다
철조망을 따라서 내려오는데 아직도 토실토실하고 먹을만한 두릅이 꽤나 많이 보인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등장하는원두막은 철거가 되어있다
우측으로 어마어마하게 큰 구진농장과 지난 겨울에 걸었던 풍취산도 보이고...구진농장 철조망과 이별을 하고 능선으로 올라서니 잣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잣나무와 개별꽃이 화원을 이루는 편안 등로를 빠르게 걷는다
잠시후에 철조망이 보이고 절개지 비슷한 곳을 내려서면서 전재로 내려선다
전재(橧峙:540m:18:00)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안흥리와 우천면 오원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1917년 발행된 지형도에는 증치(橧峙)라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42번 국도가 지나가며 우측으로는 안흥찐빵으로 유명해진 안흥면 소재지가 있고
도로 좌우로 교통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옛날에는 그 고개가 워낙 높고 험하여 지나가는
소장수를 노리는 산적들이 더러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산행을 마감하고 지도상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우측 안흥면은 찐빵으로 유명한 곳이다
안흥지역은 강원도의 땅이 대개 그러하듯 토질이 척박해
예로부터 논농사보다는 팥농사를 많이 지었다고 한다.
수확한 팥을 오랜시간 달여 속을 만들고 전통방식인 막걸리를 사용하여
밀가루를 반죽한 후 숙성, 발효시켜 찐빵을 만들어 명성이 널리 알려졌다
안흥지역에는 찐빵을 직접 사람 손으로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17개의 업체가 있었는데
4개업체가 공장형, 기계식 생산방식을 도입하면서 떨어져 나갔고 2개업체 역시
별도로 분리되면서 현재는 11개업체가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의 정부"시절 심순녀 씨가 신지식인으로 선정되면서 안흥찐빵이 더욱 많이
알려졌으며 요즘에는 농민들의 새참거리로, 도시인들의 간식으로 각광받고 있다.(자료 -펌)
안흥은 강원 횡성군에 속하는 조그만 면 단위 지역이다.안흥면에는 현재 20여 곳의 찐빵집이 있다. 안흥찐빵, 옛날안흥찐빵, 우리밀안흥찐빵, 안흥고향찐빵
물론 이곳에도 분명히 원조는 있다. 국민의 정부시절 신지식인으로 인정받은 심분녀 할머니다
영동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이전 서울 강릉간 필수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중간 지점으로서
서울에서 출발하든 강릉에서 출발하든 비포장 도로를 4시간 정도 달려오면 이 곳에 와서
점심식사를 하지 않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지역이라 당시 안흥의 식당집에서는 점심준비를
위해 쌀을 2~3가마씩 씻어 밥을 준비해야 하는 번성함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왕래객은 다시 먼길을 가야하는 부담감 때문에 고민을 하였으나 먹거리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도시락을 손쉽게 준비할 수 없었던 그 시절부터 안흥찐빵은
허리춤에 끼고 먼길을 가는 나그네와 함께 장도에 오르던 식품으로서 근세에 와서는
고랭지 채소 경작으로 대부분 생계를 유지하는 농촌지역에 농부들의 새참거리로 허기진
배고픔에 든든한 먹거리가 되어줌으로써 농가들이 큰 각광을 받아 오고 있었다.
어렵던 시절 중요한 먹거리가 되어 주었던 찐빵의 전통적 제조 방식을 고수하면서
그 명맥을 그대로 유지해옴에 따라 경제적, 문화적 풍요로움으로 삶의 여유를 갖기
시작한 현대인에게 잊혀져가던 옛 고향의 정취와 향수를 서서히 자극하여 안흥찐빵을
통하여 그 맛을 느끼고자 하는 이들이 점점 증가하게 되었고 한번 맛 본 이들에 의한
소문이 이제는 전국에 퍼져 안흥찐빵을 찾는 이들이 점차로 늘어나 어느새 우리고장의
전통상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글 - 심할머니 사이트 인용)
날머리인 전재를 한번 뒤돌아보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버스정류장 가는 길에서 만난 수준점
전재에서 도로를 따라서 조금 내려오니 버스 정류장 표시가 있지만 버스는 오질 않는다
전재 정상에는 차량 통행을 금하는 바리게이트가 처져 있는데 이 도로는 42번 구 국도로
예전에 평창에서 횡성군 안흥면, 우천면을 거쳐 원주로 연결되는 도로였는데 지금은
이 아래로 전재터널이 뚫리면서 차량 통행이 전면 통제되고 있는 곳이다
예전에 전재쉼터가 있던 자리에는 나물과 약초를 파는 삼바농원이란 곳이
자리를 잡고있고 그 옆에는 조그만한 교회 기도원이 있는데 다들 조용하다
농장옆 고추밭에 물을주고 있는 村老에게 이곳에 버스가 오냐고 물으니
이곳은 버스가 안 다니고 여기서 1km 정도 더 가야 한다기에 양해를 구하고
수도가에 수통에 물을 채우고 먹을것이 다 떨어져 물로서 주린 배를 채운 다음
세수를 하고 있는데 촌로가 다가와서 이곳은 아무도 없어니 아예 옷을 벗고
씻으라고 하기에 등목을 하는데 물을 부어주면서 등까지 밀어준다
깔끔하게 씻고 속옷까지 갈아입고 의관정제를 한 다음에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안흥2리 버스 정류장(18:30)
이곳 버스 정류장에서 지나가는 차량을 상대로 40여분간을 히치를 해보건만
어느 한 사람도 태워주지 않는 바람에 멍하니 서 있는데 원주가는 버스가 온다
이곳에서 원주역까지 거리가 24km인데 손님이라곤 달랑 나혼자... 전재터널을 지나
우천면의 동네동네를 다 들리고 횡성읍을 거쳐서 원주역에 도착하니 1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버스요금 2,600원)
원주역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원주역으로 향하는데 배가 너무 고프다
원주역(20:30)
일단 열차표를 예매하는데 차표는 조금 비싼 새마을호는(13,300원)은 금방 들어오고
무궁화호는 35분 후에 있는데 좌석은 없고 입석만 있다고 하는데 빈한한 산꾼이 비싼
열차를 탈 수 있나 무궁화 열차 입석표를 끊고 역 광장옆 순대국집에서 국밥 한그릇에
막걸리 한병 비우고 나니 이제사 모든 사물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21시 05분에 도착한 열차에 오르는데 오랫동안 나홀로 산행의 노하우는 열차 입석표를
끊어서 좌석에 앉아 가는 방법은 무조건 4호차인 식당간으로 가서 좌석을 차지한다
4호 열차가 서는 곳에 있다가 재빨리 열차에 오르니 명당자리 자석이 비어 있구나
혹 부처님의 가호인가... 부처님 감사합니다... 좌석에 앉자마자 깊은 잠에 빠지는데
얼마나 잤을까 잠에서 깨어나니 열차는 덕소역을 지나고 있다
청량리역(22:25)
청량리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갈아타고 집에 도착하니 11시 30분
힘들지만 영원지맥 마지막을 깔끔하게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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