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唯識)]
만물을 인식하는 근원은 무엇인가?
유식이란 글자 그대로 오직 식(識)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외계(外界)로 이해되고 있는
일체의 것이 마음에 비친 표상(表象 : 識)에 지나지 않으며, 외계의 존재물은 없다는 사상이다.
이 표상이 나타내는 것은 대상을 식별하는 마음의 작용인 식(識)이 변하여 나타난 마음의 그림자라고 본 것이다.
이 유식 사상은 중관파와 함께 인도 대승불교의 2대 학파를 형성하고 있는데, 유식의 사상을 신봉하는 학파를
유가행파(瑜伽行派), 또는 유식론자라고 한다.
이와 같은 유식 사상은 용수의 공사상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원래의 뜻과는 달리 지나치게 공허한
사상으로 치우치게 되자 중관 철학의 진리에 대한 부 정적 접근 방식에 만족하지 않고 공사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이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이론을 전개한 것이다.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사물들이 자성이 없이 공하며 순전히 우리의 마음에 의하여 구성되거나
조작된 것이라면, 결국 이들 사물은 우리의 식(識)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존재를 인식으로
환원하는 사상을 전개한 것이다.
유식의 식(識)은 근본적으로 아뢰야식(阿賴耶識, 제8식)이며, 혹은 8종 의식(八識 : 眼識, 耳識, 鼻識, 舌識,
身識, 意識, 末那識, 阿賴耶識)을 가리킨다. 유식학에서는 일체 제법의 분류가 아비달마구사론과 비슷한 면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아비달마 사상까지는 6식을 들고 있는데, 유가행파는
6식속에 이들 식을 일으키는 근원적인 식으로서 아뢰야식을 발견하고, 이어서 아뢰야식을 자아라고
집착하는 말나식을 상정하였다.
[아뢰야연기론(阿賴耶緣起論)]
윤회의 주체는 과연 무엇인가?
『해심밀경』, 『유가사지론』, 『성유식론』 등의 경론을 소의 경전으로 하는 유식종, 법상종이 주장하는
연기설로 제8식인 아뢰야식을 두어 연기를 설명한 이론이다.
부파불교에서는 자기가 지은 업의 세력에 의해서 삼계가 생사윤회한다는 업감연기설(業減緣起說)을
주장하였는데, 과연 그 업의 영향이 결과를 초래할 때까지는 대체 어디에 보존되었다가 차례로
나타나는가라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이에 업의 영향을 저축하여 윤회를 반복케 하는 윤회의 주체를
상정하게 되었다. 이처럼 윤회의 주체를 추구해 간 정점에서 발견된 것이 아뢰야식이다.
본래 아뢰야라는 말은 ‘물건을 넣는 창고’ 내지 ‘곳간’을 의미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숨는 것[能藏],
받아들이는 것[所藏], 집착하는 것[執藏]의 의미가 있다.
즉 선악의 행 위에 의한 업력을 받아들여 보존하는 의미가 있으며, 수행에 의하여 아집이 없어지면
그 명칭마저도 사 라지게 되는 것이다.이처럼 아뢰야식은 모든 업의 종자를 보존하면서 선악 업력을
다른 식에 공급하여 발동케 하며 모든 선악의 행동을 나타나게 하는 기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윤회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도 과거세의 업력을 보존한 이 식이 최초로 태어난 것이며, 내생으로 떠 날 때도
금생의 업력을 보존하고 있다가 육체로부터 최후에 떠난다.
이와 같이 아뢰야식은 다른 식에 비하여 그 체성이 단절되지 않고 과보를 받는다는 점에서
과보식(果報識)이라 하고, 또 전생과 금생 그리 고 내생의 삼세에 윤회하면서 다른 과보를 받게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숙식(異塾識)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아뢰야식에 보존된 업력 가운데 별업(別業)은 자신만이 수용하고, 공업(共業 : 공동으로 선악의
행위를 하고 공동으로 과보를 받는 업)은 다른 이와 함께 수용하면서 중생의 현실을 전개함으로 이를
아뢰야연기라고 하는 것이다.
[근본번뇌(根本煩惱)]
번뇌란 무엇인가?
번뇌란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거나 어지럽히고 괴롭히는 등 미혹하게 하는 정신작용을 말하는데,
혹(惑)이라고도 한다.중생은 번뇌에 의해 업을 짓게 되며, 괴로움의 과보를 받아 미혹의 세계를 헤 매게 된다.
이것을 혹(惑)ㆍ업(業)ㆍ고(苦)의 삼도(三道)라고 한다.유식에서는 번뇌를 근본번뇌와 지말 번뇌(枝末煩惱)로 구분한다.
근본번뇌란 번뇌의 체(體)로서 모든 번뇌의 근본이 되며, 본혹ㆍ근본혹이라 하거나 수면(隨眠)이라 한다.
지말 번뇌란 근본 번뇌에 수반하여 일어나는 종속적인 번뇌로서 수혹ㆍ지 말혹ㆍ수번뇌라 한다.
다만 수번뇌는 ‘심왕에 붙어 다니는 번뇌’란 의미로 이해하고 근본 번뇌를 가리키 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유식에서는 아집(我執) 때문에 중생을 미혹의 세계에 유전시켜 열반의 길을 방해하는 혹을
번뇌장(煩惱障)이라 하고, 법집(法執) 때문에 진리의 체득을 방해하는 혹을 소지장(所知障)이라 구분하고 있다.
근본 번뇌에는 탐욕(貪)ㆍ분노(瞋)ㆍ어리석음(癡)ㆍ교만(慢)ㆍ의심(疑)ㆍ악견(惡見)이 있는데,
이 가운데 악견을 다시 신견(身見)ㆍ변견(邊見)ㆍ사견(邪見)ㆍ견취견(見取見)ㆍ계금취견 (戒禁取見)으로
나누어 10번뇌라 한다.
[5위100법(五位百法)]
인간의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어떻게 분류할 수 있는가?
인간의 내면세계와 객관세계를 분석하여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방법은 불교의 여러 학파에서 행해져 왔다.
이러한 제법의 분류로서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에서는 5위75법, 유식학에서는 5위100법으로 분류 하였다.
여기서 5위란 정신과 물질세계를 다섯 가지로 분류한 것이고, 75법과 100법은 5위의 내용을 세분한 것이다.
즉 5위란 일체 만유를 다섯 가지로 분류한 것으로, 색법(色法 : 물질), 심법(心法 : 정신 ㆍ사물을 의식하는 마음),
심소법(心所法 : 심법에 따라 일어나는 정신작용), 불상응법(不相應法 : 심법 에 따르지 않는 것, 물질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면서 법인 것), 무위법(無爲法 : 인과관계를 여의어 상주 불변하는 법)을 말한다.
다시 5위를 설일체유부에서는 색법 11종, 심법 1종, 심소법 46종, 불상응법 14 종, 무위법 3종으로 세분하여
이 75법이 삼세에 걸쳐서 법의 실체가 존재하며 공간적으로도 항상 변화없이 존재한다고 하는 삼세실유
법체항유(三世實有 法體恒有)의 사상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유식에서는 5위를 심법 8종, 심소법 51종,
색법 11종, 불상응법 24종, 무위법 6종으로 세분하였다. 또 유식학에서는 성불을 위한 보살의 길을 다섯
단계로 구분한 것을 유식5위라고 하는데, 자량위(資糧位), 가행위(加行位), 통달위(通達位), 수습위(修習位),
구경위(究竟位)를 말한다.
[아승기겁(阿僧祇劫)]
불교에서 겁(劫)이란 어느 정도의 시간인가?
아승기란 아승기야(阿僧企耶), 아승가(阿僧迦), 아기(阿祇)라고도 쓰며, 무수(無數), 무진수(無盡數)라 번역한다.
그리고 겁(劫)이란 인도에서 큰 수,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시간의 단위를 말한다.
따라서 아승기겁은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을 말하며, 대개 아승지겁이라고도 한다.
겁이라는 시간은 인도에서는 범천의 하루, 곧 인간세계의 4억 3천 2백만 년을 1겁이라 하며, 불교에서는
보통 연월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대개 겁으로 표현하는데, 『대지도론』에서는 개자겁(芥子劫)과
불석겁(拂石劫)의 비유 가 설해지고 있다.개자겁이란 사방 4천리 되는 성(城) 중에 개자를 가득 채워놓고
장수천인(長壽天人) 이 백년마다 한 알씩 가지고 가서 모두 없어질 때까지를 말하는 것이다.
불석겁은 사방 4천리 되는 돌산 을 천인이 무게 3수(銖)되는 천의(天衣)를 입고 백년마다 한 번씩 스쳐
그 돌산이 잘라져 산가지를 만들 어 놓고 백년에 한 가지씩을 취하여 이것을 모두 취하였을 때를 1겁으로
하는 초목겁(草木劫), 갠지스 강의 너비 40리 중에 가는 모래를 묻어 놓고 백년에 한 번에 한 알씩 집어내어
그것을 모두 취한 때를 1 겁으로 하는 세겁(細劫) 등이 있다.한편 세계가 성립하고 계속 파괴를 거쳐 다음의
성립에 이르기까지 의 과정을 4겁이라 하고, 4겁의 기간을 일대겁(一大劫)이라 하기도 한다.
[십법계(十法界)와 육도윤회(六道輪廻)]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삼라만상은 모두 십계의 범주에 들어가 서로 다른 경계를 형성하는데 이를 십법계라고 한다.
『법화경』 에서는 지옥(地獄)ㆍ아귀(餓鬼)ㆍ축생(畜生)ㆍ수라(修羅)ㆍ인(人)ㆍ천(天)의 미혹한 세계와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불(佛)의 깨달음의 세계를 합하여 십법계라고 하였다. 중생들은
자기가 지은 죄업에 따라 죽은 다음 그 과보로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하늘 등에 떨어진다고 한다.
이를 육도윤회라 부른다. 특히 이 중에서 지옥, 아귀, 축생은 인간이 죄악을 많이 범한 과보로 태어나서
온갖 고통을 받는 세계로 삼악도(三惡途, 三惡趣)라고 한다. 불교의 경전에서는 이러한 지옥의 세계를
비교적 상세하게 설하고 있는데,예를 들면 지옥에도 뜨거운 불길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팔열지옥(八熱地獄)과
차가운 냉기가 있는 팔한지옥(八寒地獄) 등이 있다.
팔열지옥에는,
①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이라고도 하며, 쉴새없이 고통을 받는 지옥)
② 대초열지옥(大焦熱地獄 : 뜨거운 고통이 더욱 심한 지옥)
③ 초열지옥 (焦熱地獄 : 뜨거운 불길이 몸을 둘러싸서 그 뜨거움을 견디기 어려운 지옥)
④ 대규환지옥(大叫喚地獄 : 지독한 고통에 못 견디어 통곡을 터뜨리게 되는 지옥)
⑤ 규환지옥(叫喚地獄 : 온갖 고통이 못 견디 게 해서 원망하는 슬픈 고함 소리를 지르게 되는 지옥),
⑥ 중합지옥(衆合地獄 : 여러 가지 고통을 주는 기구가 한꺼번에 닥쳐와서 몸을 핍박하여 해치는 지옥)
⑦ 흑승지옥(黑繩地獄 : 뜨거운 쇠사슬로 몸과 팔 다리를 묶어 놓고 큰 톱으로 끊는 지옥),
⑧ 등활지옥(等活地獄 : 고통을 받아 죽었다가 찬바람이 불 어와서 살아나면, 또 다시 뜨거운 고통을 받는 지옥)이 있다.
그리고 전생에 탐욕과 질투를 한자가 받게 되는 아귀지옥은 육체적인 고통은 덜 받으나 마실 수도 먹
을 수도 없어 심한 고통을 받게 되는 세계로 이곳에 사는 중생들은 음식을 보면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항상 매를 맞는다고 한다.
또한 축생지옥은 성질이 어리석어서 탐욕과 음욕만을 가지고 부모나 형제의 구별도 없이 사는 사람이 받게되는
세계로 서로 다른 동물을 자기 생존의 먹이로 하고 살아가는 고통스러운 세계를 말한다.
그 외에도 수라의 세계 는 노여움이 가득 찬 세상으로서 싸우기를 좋아하는 사람, 질투와 교만이 가득찬 사람,
분명한 주관 없 이 다른 사람의 말에 잘 끌려 다니는 사람이 받게 되는 세계로 아수라(阿修羅)라고도 한다.
이러한 지옥 세계와 인간, 천상의 세계는 인간이 현세에 지은 업에 따라 태어나게 되는 세계이다.
그러나 이 윤회의 여섯 세상에는 절대적인 영원이란 없다. 수명이 다하고 업이 다하면 지옥에서 다시 인간으로,
천상에서 아귀로 몸을 바꾸어서 태어난다. 이것이 불교의 윤회관이다. 이 윤회는 철저하게 스스로 지은대로
받는다는 자업자득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할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행복이 두루 갖추어진 천상의 세계라도 윤회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괴로움이므로 영원히 윤회에서 벗어나는 해탈과 열반의 경지를 불교는 추구하는 것이다.
[37도품(三十七道品)]
깨달음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과 단계는 무엇인가?
불교의 목적인 깨달음을 실현하고 또한 지혜를 얻기 위한 실천 수행법이란 뜻으로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 37보리분(三十七菩提分)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도를 닦는데
보조적인 역할이 되는 것’, ‘깨달아 가 는 단계’에 나타난 4념처(四念處), 4정단(四正斷),
4여의족(四如意足), 5근(五根), 5력(五力), 7각분(七覺分), 8정도(八正道)의 수행법을 합한 것을 말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념처 : 신념처(身念處)ㆍ수념처(受念處)ㆍ심?처(心念處)ㆍ법념처(法念處)
▶사정단 : 단단(斷斷)ㆍ율의단(律儀斷)ㆍ수호단(隨護斷)ㆍ수단(修斷)
▶사여의족 : 욕(欲)ㆍ염(念)ㆍ정진(精進)ㆍ사유여의족(思惟如意足)
▶오근 :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전근(定根)ㆍ혜근(慧根)
▶오력 : 신력(信力)ㆍ정진력(精進力)ㆍ염력(念力)ㆍ정력(定力)ㆍ혜력(慧力)
▶칠각분 : 택법각분(擇法覺分)ㆍ정진각분(精進覺分)ㆍ희각분(喜覺分)ㆍ제각분(除覺分)ㆍ사작분(捨覺分)ㆍ정각분(定覺分)ㆍ염각분(念覺分)
▶팔정도 : 정견(正見)ㆍ정사(正思)ㆍ정업(正業)ㆍ정어(正語)ㆍ정명(正命)ㆍ정정진(正精進)ㆍ정념(正念)ㆍ 정정(正定)이는 신ㆍ수ㆍ심ㆍ법을 상(常)ㆍ락(樂)ㆍ아(我)ㆍ정(淨)으로 보는 전도된 생각을 버리고 부정(不淨)ㆍ고(苦)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로 관하라는 것이며, 이미 일어난 악을 없애려고 부지런히 노력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을 미리
막으려고 부지런히 노력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은 생기도록 부지런히 노력하며, 이미 일어난 선은
잘길러 내어 더욱 증장하도록 부지런히 노력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갈등 없이 자기 확신의 땅에 마음의 뿌리를 내리게 하려는 것이며, 오근의 뿌리를 바탕으로 정진하여
불선법(不善法)에 동요되지 않고 나아가 모든 불선법을 엎어 버릴 힘을 얻도록 수행하라는 것이다.
또한 불도를 수행하는 데 지혜로써 참과 거짓, 선과 악을 살펴서 골라내고 알아내야 하며, 마음이 혼침하거나
들뜨면 마음을 일깨우고 가라 앉히도록 하였다.뿐만 아니라 고통을 소멸하여 열반을 증득하기 위해 닦아야
할 여덟 가지의 구체적인 중도적 실천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 37도품은 삼학(三學)의 입장에서 보면, 사정단은 계학(戒學)에 해당하며, 사념처는 혜학(慧學)에 해당하고,
오근, 오력, 칠각분, 팔정도는 삼학을 모두 겸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불교에서 모든 불자들이
닦아야 할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계정혜(戒定慧) 삼학이라고 할 수 있다.
[3해탈(三解脫)]
해탈의 실체는 무엇인가?
삼공(三空), 삼해탈문이라고도 한다.
즉 해탈을 얻어 가는 세 가지 방법으로 공해탈문(空解脫門)은 일체 만유가 모두 공(空)이라고 관하는 것이요,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은 공이기 때문에 상대적 차별이 없다고 관하는 것이고, 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은
일체 만유가 공이고 무상이기 때문에 원해서 구해야 할 것 이 없다고 관하는 것이다.
여기서 해탈이란 고통으로 가득 찬 윤회로부터 단호하게 벗어나서 두 번 다시 생존의 세계에 이르지 않은 것을 말한다. 모든 욕망이 소멸하였다는 점에서는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열반(깨달음)과 같은 의미이다.
이러한 해탈은 다시 육체를 동반한 상태에서의 해탈인 ‘생신해탈(生身解脫)’과, 육체의 속박을 완전하게
벗어난 해탈인 ‘이신해탈(離身解脫)’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불교에서는 번뇌를 끊고서 마음의 속박을
없게 하여 신체를 갖춘 제자의 교육이나 사람들의 구제에 힘쓰는 이타적 해탈의 상태를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 : 나머지가 있는 불완전한 깨달음),’ 죽음과 동시에 심신과 함께 속박을 떠나서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을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이라고 한다.
특히 부처님의 죽음을 ‘반열반(般涅槃 : 완전한 깨달음)’이라 하여 따로 구분한다.
그리고 초기불교에서는 윤회의 근본적 인 원인인 욕망과 무지로부터 벗어난 심해탈(心解脫 :
마음에 탐욕을 없앤 것)과, 혜해탈(慧解脫 : 지혜에 의해 무명에서 벗어난 것) 등으로 구분함으로써
지혜와 선정을 동시에 갖춘 수행자를 지향하였다.
- 이러한 번뇌와 깨달음을 실체적 존재로서 파악하려는 부파불교의 해탈에 대한 해석은 대승불교에
- 이르러서는 깨달음 그 자체도 공이라고 파악한다. 즉 대승불교에서는 미혹함도 깨달음도, 윤회도
- 해탈도 실체가 없는데, 다만 인간의 고통은 아뢰야식에 의해서 이미지화된 환영(幻影)에 구속되어
- 있기 때문에 생긴다고 하여 명상의 실천에 의해서 깨닫고 나아가 다른 사람의 구제를 지향할 것을 주장하였다.
- [일승(一乘)과 삼승(三乘)]
- 성불에 이르는 보살의 길은 하나인가?
- 승(乘)이란 타고 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일체 중생이 모두 성불한다는 견지에서 그 구제하는 교법이
- 하나뿐이고, 또 절대 진실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일승이라면, 삼승으로 설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 깨달 음에 이르는 하나의 길을 셋으로 분별하여 설한다는 것이다.
- 삼승은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을 말한다.
- 성문승이란 가장 원시적인 해석으로는 부처님의 음성을 들은 불제자를 말하지만, 대승의 입장에서
- 보면 부처님의 교법인 사성제와 팔정도를 닦아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게 하는 교법을 말한다.
- 연각승이란 12연기를 잘 닦아 모든 법의 인연을 잘 아는 길인 벽지불(隻支佛 : 구역에서는 緣覺,
- 신역에서는 獨覺)의 깨달음을 얻게 하는 교법을 말한다.
- 보살승이란 성불하기를 이상 목적 로 삼는 보살들이 수행하는 육바라밀 등의 법문을 말한다.
- 대개 성문승과 연각승은 소승, 보살승은 대승에 해당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두승은 전혀 차원을
- 달리하고 있는데, 소승은 생사와 열반을 분별하 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으며, 대승은 생사와 열반을
- 분별해서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부처님께서는 “아라한이나 벽지불을 자처하면서, 모든 부처님이 오로지 보살만을 교화한다는
- 사실을 모른다면 이는 불자가 아니며, 또 스스로 이르기를 구경열반을 얻었다고 하면서 무상정등정각을
- 다시 구하지 않는다면 이 야말로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설하셨다.
- 한편 『법화경』에서는 불교를 실천하는 데에는 삼승의 수행 방법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유일한 부처의
- 입장인 일불승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설하고 있다.
- 이는 삼승이 한결같이 성불에 이르는 보살의 길임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결국 이러한 일승 사상은 성문이나 독각의 수행자들도 미래에는 성불할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모든
- 사람에게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으며, 대승과 소승, 또는 삼승으로 상징되는 사회의
- 분열과 반목, 대립을 해소하여 조화와 평등의 통일된 사회를 실현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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