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09년 4월 26일
산행구간: 버리미기재(경북 문경)-곰넘이봉(해발 733m) - 촛대봉(해발 668m) - 대야산(해발 930.7m) - 밀재 -
고모치(해발 680m) - 삼송리(해발 200m)
거리/시간: 마루금 7.5km 들머리 날머리 7km 합이 14.5km/약 6시간소요
3일간의 제주도 일정을 마치고 토욜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비는 내리고 계속 내리면
낼 대간을 안뛸 생각을 했다. 낼은 부처님 오신날의 연등축제도 있고 해서 전임 팀장으로서
후임자가 도와 달라고 사정도 하고 해서 뿌리칠 수도 없는 입장이고...
근데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는 상당히 춥고해서 전날 비가 온 관계로 공기가 너무 상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산행하기에는 너무 좋을것 같애 얼른 후임 팀장인 포교사에게 사정을 했다
그 대신 28일 개운사에서 있을 초파일 경로잔치에 책임지고 열심히 봉사하는 조건으로...
오늘은 버리미기재(경북 문경)에서 곰넘이봉(해발 733m) - 촛대봉(해발 668m) - 대야산(해발 930.7m) - 밀재 -
고모치(해발 680m) - 삼송리(해발 200m)의 거리로 이 곳은 마루금 7.5km 들머리 날머리 7km 합이 14.5km로
대간 코스로 길이는 얼마 안되지만 엄청난 악산 코스로 산행 사고가 가장 많이 코스로도 유명하서
엄청난 체력과 거리에 비해 많은 시간(6시간)이 소요되는 곳이자
백두대간을 타려니 가정도 버리고 친구도 버리고 부처도 버리고 뭘 얻으려는지
아직도 산에 미친 내 자신을 알수가 없으니 이목고 ?
산불 감시요원을 피해 도망자 신분으로 산행을 시작하고
오늘은 고모치에서 출발하지 않고 고모치로 하산하는 역방향의 길을 잡았다.
들머리인 버리머기재에 도착하자 ‘빨간 모자’ 아저씨들의 눈길이 매섭다.
버리미기재는 이제(향후 수년간은) 대간꾼들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고개 길로 변했음을 실감한다.
빨간 모자 아저씨들의 눈길을 당해낼 재간이 없으니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이전 수 차례 그렇게 한 것처럼 옆구리를 가르고 오르는 것이다.
불법행위도 거듭되니 어느 새 무감각해졌다.
양심의 가책 따위(?)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는 이야기. 버리미기재인지 빌어먹을 재인지가
올려다 보이는 전나무 숲길을 감시요원을 피해 마구 내달린다. 아무 생각이 없다.
걸리면 벌금이 50만원... 그러나 전문산꾼들을 농번기에 차출된 감시요원을 따라오지는 못하는가보다
마루금 능선에 올라서니 저 밑에서 호루라기 소리만 나지 인기척은 없다.
고도가 낮은 버리미기재(해발 450m)에는 철쭉이 피기 시작하고
길이라고는 없는 가파른 언덕을 네발로 기어 올라간다.
‘빨간 모자’의 매서운 눈길을 충분히 피했을 무렵 그제서야 두발로 진행한다.
네발 걷기와 두발 걷기는 힘들기에서 하늘과 땅 차이이다.
인간의 진화 가운데 가장 큰 선물이 直立步行이라는 사실을,
인류가 직립보행을 시작한지 수백 만 년이 지난 오늘에도 깨닫는다.
직립보행 만세!!
그런데 오늘 구간은 대야산 정상 오르기 직전 또 한번의 네발 걷기를 강요한다.
다리뿐만 아니라 팔에도 적지 않은 힘을 주어야만 올라설 수 있다.
대야산에 올라서니 두발로 걸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다시 한번 구호를 외친다. 호모 에렉투스(최초의 직립인간) 만세
처음부터 급경사를 지나 첫 관문인 곰넘이봉(해발 733m 경북 문경 소재)에서
산불감시요원을 따돌리고 40여분의 된오름에 시작부터 비오듯 흐르는 땀으로
온 몸이 적셔지고, 습한 기운이 산허리를 감싼 채 따라오르니 첫 워밍업에서
머리가 몽롱해지는 기분이다.
왼쪽 경사를 택하여 안부로 올라서니 따가운 햇살이 산꾼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 쪼인다.
곰넘이봉 정상에서 마주하는 안부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사위를 조망하니 저 앞 대야능선이
산꾼을 제압하듯 떡 앞을 버티고 있다.
불란치재(해발 500m)에도 녹음이 시작되고
'불이 났던 고개'라는 붙임보다는 '不寒嶺'에서 유래됐음이 그럴싸하다.
아무튼 문경 완장리와 관평리를 통하는 이 길이 버리미기재에 포장도로를 빼앗기고
점점 풀섶으로 뒤덮혀지는 통에, 옛 영화는 온데간데 없고 그냥 마루금 능선으로만
산꾼에게 기억될 뿐이다. 앞에 버티고 있는 대야산을 높은 자세로 마지막 유격을 예고한다.
촛대봉(일명: 미륵바위 해발 668m 경북 문경) 후배 산꾼과 함께
비교적 덜 가파른 오름길을 밟아 마루금 안부에 올라서니 미륵바위 유연한
자태에 잠시 날개달린 여인의 아름다운 몸매를 느낀다.
크고 작은 봉우리마다 집채 만한 암봉을 머리에 이고 우회를 허락치 않으며,
비록 짧지만 지친 가랭이가 힘주어벌리기엔 너무 높아 보이는 촛대봉을 힘겹게
넘어 내리니 불란치재 표지가 매달려 있다.
서쪽 관평리 산골 언덕에서 올라오는 4월의 마지막 훈풍이 감미롭다.
저아래 구름으로 가려진 천수답 어느 귀퉁이에서, 春耕의 수고로움에 젖은 이마를
닦아주는 노부부의 사랑담은 영혼이 50대 시골스런 남정네의 머리속으로 그림처럼 스며든다.
대야산 가는 길목에서 날씨가 너무 추워 장롱속 겨울 옷을 입었는데도 춥기만 하다
대야산 정상은 힘들게 올라온 만큼 그 만한 보상을 해준다.
조령산, 희양산 그리고 장성봉이 북쪽 하늘에 막힘없이 펼쳐져 있으며,
아득히 먼곳에 월악산도 모습을 드러낸다.
남쪽으로는 조항산이 우뚝 솟은 모습으로 마주하고 있으며 속리산도 어렴풋하게 전체의 능선을 보여주고 있다.
이 땅을 지탱하고 있는 대간이 주변의 크게 작은 산줄기를 품고 있는 모습이다.
이래서 大幹(큰 줄기)이라고 하는가 보다.
촛대봉에서 바라본 대야산 산꾼들에겐 악명 높기로 유명한 위협적인 존재의 산이다
자일이 없이는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곳이다
대야산 오름길에 아래로 내려다 볼 수록 아찔한 현기증이 날 만큼 직벽 크랙이
짧은 다리로서는 확보가 불가능한 길이로 디딜 틈을 만드니, 로프에 매달린채
미끄러운 직벽 경사면에 점프 접지를 시도할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 훈련소의 고마움을 새삼 실감한다.
앗불싸! 혁대에 찬 디카가 400m 저밑으로 빠져 버리네.
베낭을 겨우 나무에 동여메고 20분을 헤맨끝에 다시 찾아 로프에 몸을 의지한다
20여미터 로프를 너댓번 번갈은 후에야 대야산이 비로소 정상을 허락한다.
주위 전망은 참으로 좋다
대야산(해발 930.7m경북 문경소재)정상에서
세숫대야를 거꾸로 업어 놓은 모습이라 해서 대야산이라고 한단다
가슴이 확트이며 저 멀리 조양산과 백화산이 한눈에 들어 온다.
이 맛에 힘든 산을 오는가 보다. 용추계곡을 비롯한
유원지가 많은 탓인지 대간답지 않게 정상주위에는 산꾼들로 가득하다
높이는 931m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에 걸쳐 있는 산이다.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백두대간의 백화산과 희양산을 지나 속리산을 가기 전에 있다.
계곡이 아름다운 산으로 경상북도 쪽에는 선유동계곡과 용추계곡, 충청북도 쪽으로 화양구곡이 있다.
대하산·대화산·대산·상대산 등으로도 불리지만 1789년 발행된 문경현지에 대야산으로 적혀 있다.
내 가슴을 적시며 흐르는 동서 양편의 선유계곡 은 물살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암초에 부딪치며
흰 물결을 뽐내며 대간 마루금으로 거꾸로 솟아 흐른다.
문경 가은 용추골 선유구곡을 노래하는 고운 최치원의 영혼이 괴산 선유동으로 구름속에서 훨훨 넘나든다.
대홍수때도 대야만큼 남았다면 우리말 세숫대야가 어울릴텐데 억지 한자글이 그런데로 중후하게
적혀있으니, 역시 한자는 뜻이고 소리고 간에 우리네 머리에 이미지로 한 품위 자릴 잡고 있는 모양이다.
(용추계곡)
仙遊九谷(문경 가은, 고운 최치원)
옥하대(玉霞臺) 영사석(靈梭石) 활청담(活淸潭) 세심대(洗心臺) 관란담(觀瀾潭)
탁청대(濯淸臺) 영귀암(泳歸岩) 난생뢰(鸞笙瀨) 옥석대(玉釋臺)
仙遊九谷(괴산 송정, 퇴계 이 황)
仙遊洞門(선유동문),경천벽(擎天壁), 학소암(鶴巢岩), 연단로(鍊丹爐),와룡폭(臥龍瀑),
난가대(爛柯擡), 기국암(碁局巖), 구암(龜岩), 은선암(隱仙巖)
아랫 쪽 괴산의 선유구곡이 많이 알려져 있으나, 그 원림은 문경 쪽으로 최근 학술조사 되었음.
할매 통시바위
대야산 정상에 서있으면 발걸음을 쉬이 옮길 수 없다. 이런 볼거리를 두고 진행을
서두른다는 것은, 당초 대간 마루금을 밟으며 이 땅의 아름다움을 찾아보면서
산이 가져다주는 가르침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초심과도 배치된다.
아득히 먼 곳 속리산 능선이다
대야산 정상에서는 조망뿐만이 아니라 능선 그 자체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서
온갖 형상을 만들어내며 눈을 즐겁게 한다. 소나무들도 여기에 합세한다.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는 암릉과 이들 암릉의 틈을 비집고 들어선 소나무는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조선 시대 윤선도가 해남 보길도 금쇄동(金鎖洞)에 은거하면서 지은 시조 五友歌(오우가),
이 오우가에 나오는 돌(石)과 소나무(松)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나무가 바위틈을 비집고 서 있다>
이왕 五友歌 그리고 오우가의 소재인 돌과 소나무를 언급했으니 나머지
소재인 물(水)과 대나무(竹)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대야산은 동쪽으로 용추계곡을 낳고 있는데 이 계곡은 국내 어느 계곡에
비해도 손색이 없는 가경을 보여주고 있다.
용추계곡 상단부와 마루금의 밀재 사이에는 산죽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용추계곡은 윤선도의 五友 가운데 하나인
물과 견줄만하며, 산죽 군락은 비록 키가 작긴 하지만 대나무에 대체할 수 있을 게다.
이 정도면 윤선도가 노래한 五友 가운데 四友는 오늘 구간에서 다 만나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대야산은 산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보여주면서
윤선도가 보길도에서 느꼈던 낭만을 전달해주는 대간 최고의 경치를 간직한 곳이라 할 만하다.
대문바위에서
그렇다면 수시로 산을 오르내리면서 소나무 이외 다른 나무들이
바위틈에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대비를 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대야산 石松의 조화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오래 오래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실행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단언컨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닐 터이다.
다른 나무로의 천이를 거부하고 소나무를 고집하는 것은 자연을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섭리란 곧 변화와 발전이 아닌가.
인간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아가며 발전한다.
인간 세상이 늘 안정적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지만 자유 및 평등 등 기본적 인권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행복 추구권이 확장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만약 새로운 변화 없이 방향만을 뒤로 돌리려 하는 변화는 발전이라고 할 수 없다.
방향만을 되돌리려는 변화는 필연적으로 실패를 수반한다.
동서양 및 국내외의 수 많은 사례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고모치재 가는 길에서 바라본 849봉(충북 괴산소재)
변화를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두는 것 이는 곧 法이다. 法이란 물(氵)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去)는 뜻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고 보니 역사의 발전이 곧 법을 지키는 것이겠다.
‘자연이 곧 법이다’ 오늘 구간에서의 배움이다.
밀재를 지나 고모치를 향하는 길에서도 대야산의 아름다움은 지속된다.
다음 기회에는 야간에 대야산을 찾아야겠다.
그것도 달 밝은 밤에. 달이 더해지면 윤선도의 다섯 벗을 다 볼 수 있고
그래야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온전하게
윤선도를 만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에 달(月)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 > 백두대간 1차 북진(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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