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09년 4월 19일
산행구간: 늘재(충북 괴산) - 청화산(해발 984m) - 갓바위재 - 조항산 - 고모치 - 농우리
거리/시간: 날머리 포함 18km / 약 6시간 소요
산에 가는 의미는 나를 비우는(空( 나를 낮추는(下心) 연습이 아닌가 싶네요 내가 좀더 주면 될것을 내가 좀더 손해보면 될것을 내가 좀더 기다리면 될것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주기 보다는 받기를 바라고 손해보다는 이익을 바라며 노력보다는 이익을 바라며 기다리기보다는 한 순간에 얻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런 인간들의 오만함을 깨우쳐 주는게 산이 아닌가 싶네요 늘재(충북 괴산소재)에서 산행은 시작되고 들머리에서 약 50여m 떨어진 곳에 성황당이 하나 서 있다. 이 성황당에는 ‘백두대간 성황당’이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즉 백두대간을 지키는 수호신을 모시고 있다는 의미이다. 다녀오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가는 대간을 지킨다니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멀치기 서서 목례를 한다. 대간 길이 어느 덧 나에게 신앙으로 자리를 잡은걸까. 오늘 산행은 늘재-청화산-조항산-고모치로 연결되는 구간이다. 늘재에서 청화산 오르는 길은 분명 된비알이다. 소요되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오름길이 생각보다 힘들지 않으며 지겹지도 않다. 올라가면서 도중 도중 펼쳐지는 산 아래 마을의 조망 그리고 건너편 속리산의 파노라마에 취해 걷다 보면 어느새 청화산 정상에 도착한다. 청화산 중턱 정국 기원단 앞에서 늘재에서 청화산으로의 오름길은 꽤 잘 정비된 계단길로 시작되어 40여분 된오름 끝에 마루금 능선 안부에 올라선다 . 안부 끝 조망바위에 예쁜 소나무 병풍을 펼치고 白頭大幹 中元地 靖國祈願壇 표지비가 잘 정비되어 마련되어 있다. 향이라도 피우고 이 땅의 안녕과 대간능선 좌우를 넘나드는 영혼들의 안녕을 빌어 볼만한 제단이다. 잠시 묵념하고 서둘러 청화산 된오름 암릉 능선을 밟아 나간다. 30도를 오르내리는 초여름 날씨는 청화산 중턱에는 남의 나라 얘긴지 아직까진 봄이 올 생각도 안하고 春來不似春이라 어쩜 요즘 범여의 심정과도 같을까 청화산(경북 상주와 문경의 경계 능선) 정상에서 청화산에 서면 청화산을 찾았다가 요즘 시쳇말로 청화산 경치에 뿅 가서 자신의 호를 ‘靑華山人’으로 起名했다는 인물이 생각난다. 이중환이다. 조선 중기 인문지리서의 바이블이라 일컬어지는 택리지의 저자이다. 그가 청화산의 경치를 두고 각종 최고급 형용사를 동원하여 극찬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청화산의 경치가 아니더라도 이중환하면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점이 두어가지 있다. ‘대간’이라는 명칭을 그가 처음 택리지에서 사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은 약 1,000년 전 고려 건국이념(신화 혹은 설화)에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지만 지리 개념으로서의 대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는 이중환이 처음이다. 그가 조선 중기 대표적인 실학자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이중환은 청화산 일대를 福地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런데 청화산 아래 마을(상주시 화북면 용유리)은 오래 전부터 도참사상(풍수)적 측면에서 실제 소의 배속(牛腹洞)처럼 안온하다는 十勝地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시루봉-청화산-문장대-천황봉-형제봉-갈령-도장산으로 이어지는 둥근 산줄기 안의 분지에서 바깥세상으로 트인 곳은 시루봉과 도장산 사이 용유리의 병천뿐이니 이 일대가 바로 우복동이라는 것이다(요즈음 상주시는 충북 보은시의 ‘충북알프스 트레일 상품’에 대응하여 이 구간을 ‘우복동천 코스’로의 트레일 개발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중환은 실학자이면서도 많은 부분을 풍수사상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멀리 시루봉도 보이고 풍수사상! 다소 초현실적이며 객관적이고 합리성을 추구하는 서구 학문에 비해 검증 면에서 한계를 지닌 풍수사상은 미신으로 치부되어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풍수는 환경오염 및 생태계 파괴를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이를 테면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 수 있었던 것이 좋은 예가 된다. 평양일대가 배가 떠가는 行舟形이라 우물파기가 금지되어 있었다. 우물(구멍)을 파면 배가 가라앉는다는 풍수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지금 검증할 방법이 없지만 평양 일대의 지반이 실제 우물을 파면 침하의 우려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검증된 사례도 있다. 안동 하회마을이다. 이 지역 역시 行舟形이어서 우물을 파지 않는 관행이 있었다. 그런데 실제 하회마을은 지반이 뻘과 모래로 이루어져 帶水가 형성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런 땅에서 나오는 물은 식수로도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이 밖에 풍수사상이 환경보호, 조경 및 생태보호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 문·무과를 제외한 잡과에 해당하는 실용 기술학이었던 풍수학이 오랜 기간 동안의 찬밥대우에서 벗어나 다시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셈이다. 특히 풍수학은 최근 백두대간 마루금 타기가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잡으면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고 있다고 한다. 원래 풍수사상이 신라 말 선승 도선의 水根木幹(백두산과 지리산을 연결하는 백두대간 개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대간꾼들은 충분히 가슴 뿌듯하게 생각할 만하다. ……… 그러고 보니 대간은 죽었던 학문까지 살려내는 별난 재주도 가지고 있다 시루봉과 조항산 가는 갈림길에서 시루봉 갈림길을 지나 20도 방향으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꾼채 1시간 남짓 계속되는 비교적 평탄한 암릉길이 날카로운 사량도 능선처럼 반복된다. 작은 봉우리 마다 어김없이 계속되는 기암과 거암들이 줄을 서서 발길을... 범여를 맛이가게 하는 산의 마력은 뭘까(?) 넘넘 힘이들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을 주는 갓바위재 조항산 오름길은 비록 몇번의 암릉 줄잡이는 거치지만 다소 완만하여 사위를 둘러싼 둘러 볼 경치나 조망할 능선이 너무도 뚜렸하여 이 산을 홀로 걷는다. 선두는 이미 앞선지 오래다. 갓바위재를 배경으로 내가 걸어온 능선을 뒤돌아 보면서 산에 대한 희열을 느끼고 조항산 정상(경북 문경소재)에서 청화산을 지나 조항산에 이르는 능선에서의 조망 또한 빼어나다. 특히 조항산 정상 직전에서 뒤를 돌아보면 커다란 그리고 누구도 떼어갈 수 없는 산수화가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속리산 문장대에서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碧空에 걸려있는 그림이다. 조항산에 서면 진행방향으로 또 다른 한 폭의 그림을 볼 수 있다. 맑디맑은 하늘색 도화지 위에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대야산, 장성봉, 구왕봉, 희양산이 손에 잡힐 듯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중환이 청화산의 아름다움을 강조했지만 이날만큼은 분명 청화산이 조항산을 따라갈 수 없는 듯하다. 아마도 이중환이 청화산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것은 청화산뿐만 아니라 조항산을 포함한 이 일대 모두를 청화산 영역으로 파악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대간을 시작하면서부터 오늘처럼 아름다운 조망을 한 적은 없다. 인간의 탐욕심에 의해 백두대간은 만신창이가 되고 그런데 조항산 정상에서는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장면도 보게 된다. 마루금 좌우에 있는 채석장들이다. 지리산에서 이어온 마루금이 속리산에서 바위산으로 변했으니 이 일대야 말로 채석 사업가들에게는 군침을 흘릴만한 장소지만 대간꾼들에게는 가슴 아픈 자연 파괴의 현장으로 와 닿는다. 다행히도 이들 광산의 활동은 중단되었으며, 이는 자연 파괴 및 환경오염을 염려한 대간꾼들의 노력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직 복구가 덜 된 상태의 흉물스러운 모습이긴 하지만 대간 선답자들의 산을 사랑하는 열정과 관심에 고맙기도 하고 가슴 뿌듯하기도 하다. 십 수 년 전으로 기억한다. 강원도 대간 마루금상의 시멘트 광산 개발(자병산인 듯)을 두고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거세게 반대한 적이 있다. 당시 유력한 중앙 모 경제신문은 “풍수사상이 경제발전을 해친다”는 해괴망칙한(?)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이 신문사는 아직도 이러한 思考를 견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수줍어하며 숨어서 피어 있는 붓꽃도 산꾼을 반기도 고모치 고개에서의 범여 왼편 급경사 내리막 크랙들을 보조 로프의 힘을 빌어 조심스레 30여분 밟아 내리니 734 안부를 지나 고모령에 내려선다. 죽은 질녀를 찾아 헤메는 고모의 영혼이 고모샘을 돌아나와 적신다 아직은 농촌이 한가하기만 하고 하신지점인 충북 괴산군 칠성면 농우리 마을 울엄니 맘씨만큼이나 고운 복사꽃도 피었고 요즘 백두대간을 타는 산꾼들은 가슴이 타들어 간다 오랫동안의 가뭄으로 인해 입산을 통제하는 지역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에 말이다 원래 오늘은 속리산 구간을 종주하기로 했으나 한달동안 입산금지구역으로 묶는 바람에 밤티재에서 산행을 하기로 했는데 가는도중에 산악회에서 연락이 왔다. 밤티재에 입산통제를 하니 늘재에서 시작하란다 그래서 늘재(충북 괴산) - 청화산(해발 984m) - 갓바위재 - 조항산 - 고모치 - 농우리코스로 18km를 약 6시간에 걸쳐 산행을 하였다 충북과 경북 내륙을 통과하는 지점이다 보니 산세도 험하고 멋이 있었다 특히 청화산과 조항산은 우리 나라 40대 명산에 들어가는 코스이다 늘재(해발 380m)에서 청화산(해발984m)까지의 급격한 고도차로 2km를 1시간반이나 걸리는 급경사에 시작부터 산꾼들은 질려 버리고 청화산을 거쳐 시루봉 가는 삼거리에서 좌회하여 갓바위재의 암릉은 너무나 멋이 있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조항산(해발950m: 경북 문경소재)과 고모치재를 거쳐 하산지점인 농우리에 도착하여 산악회에서 준비한 문어와 곡차파티로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풀었다 그래 이 맛이야 꿀맛같은 산행의 즐거움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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