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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일반산행 ♣/100대名山 山行記

도봉산

by 범여(梵如) 2015. 3. 14.

☞ 산행일자: 2015년 3월14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약간의 박무산행거리: 도상거리 11.7km / 4시간 4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망월사역-원도봉산 입구-서울외곽 고속도로-덕천사-원각사-원도봉 탐방지원센터

                 엄홍길 생가터-뚜꺼비바위-덕제샘-망월사-포대능선-716봉-Y계곡-신선대

                 마당바위-천축사-다락능선 갈림길-용어천계곡 갈림길- 약수터-광륜사-산림박물관

                 도봉탐방지원센터-도봉산역

소 재 지: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 양주시 장흥면 / 서울 도봉구 도봉

 

요즘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로 인해 가슴이 답답하다... 되는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아니고...

난 토요 산행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나 이른 새벽에 일어나 소파에 멍하니 않아 있다가

오늘이 관음재일(음력 24일)이라 간단한 산행겸 절에나 갔다 오려고 베낭을 메고 무작정

집을 나서서 버스와 지하철을 3번이나 갈아타고 무작정 도착한 곳이 망월사역이다

역에서 내리니 5년만에 온 탓인지 주위는 상전벽해가 된 느낌이다

예전에 있었던 산악인 엄홍길 기념관은 온데간데가 없고 예전에 국회의원을 역임했다가

비리로 문제가 됐던 신흥대학이란 곳은 신한대학교로 교명이 바뀌었다

역에서 내려 입구에 있는 김밥집에서 들려 김밥으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도봉산으로 오른다

내가 이 코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번잡하지 않고 망월사란 名刹이 있기 때문이다

 

<도봉산 등산코스의 개념〉

도봉산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고양시 및 의정부에 걸쳐있는 산으로 북한산과 더불어

북한산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는 산이다. 북한산과는 우이령을 사이에 두고 구분이 되어 있다.

우이령 일대가 군사지역으로 출입통제된 관계로 북한산과의 연계 산행보다는 도봉산만의

독자적인 산행이 주로 이루어진다. 남북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의 북쪽 끝에 사패산이 있지만

도봉산에 속한 봉우리 개념으로 인식이 된다. 도봉산 산행 들머리는 도봉산지역(도봉산역,

도봉역과 다름), 원도봉지역(망월사역), 송추지역, 우이동지역, 회룡사지역(회룡사역), 안골,

범골 등 다양하지만 가장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지역은 도봉산 지역이라 할 수 있다.

 

매표소는 모두 15개로 대부분 도봉산 주능선을 중심으로 동쪽에 몰려있다.

이는 주능선 서쪽 지역이 군사지역으로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이다.

서쪽에서 오를 수 있는 송추지역의 2개 매표소와 원각사 방향의 1개 매표소가 전부이다.

북한산에 비해 산세의 규모와 코스의 다양성이 떨어져 등산객들이 모이는 지역이 한정되어 있다.

 

가장 많이 등산객들이 찾는 들머리는 도봉매표소이고 두 번째는 망월매표소, 세 번째는 오봉매표소라

할 수 있으며 이 세 군데를 제외하고는 휴일에도 비교적 한산하다.

덕분에 인기 있는 코스는 인파에 등산로가 정체현상을 빚기도 한다.

도봉산 지도를 보면 등산로가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처음 지도를 보는 사람은 코스 선택을 어떻게 할지 상당히 망설여진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도봉산은 남북으로 주능선이 길게 뻗어있으며 동서 좌우로 능선이 갈라지는 형태이다.

도봉산 주능선은 북쪽에서부터 사패능선, 포대능선, 도봉주능선, 우이능선으로 이어지며

이 중 도봉산의 정상으로 가는 길은 포대능선과 도봉주능선을 주로 목표로 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능선을 이용하여 오르느냐 아니면 계곡을 따라 올라가느냐의 차이뿐이다.

 

도봉산의 정상은 자운봉이다. 자운봉 앞에는 만장봉 그리고 우이동에서 쳐다보았을 때

거대한 암벽이 있는 봉우리는 만장봉 앞의 선인봉이다. 북한산의 인수봉 같은 봉우리이다.

하지만 정상 부위의 이 세 봉우리는 암벽 산행지로써 일반 등산객들에게는 보는 봉우리에 불과하다.

일반 등산객이 오를 수 있는 최정상 봉우리는 자운봉 앞의 신선대. 그래서 도봉산의 등산은

일반적으로 신선대를 목표로 이루어진다.

 

신선대는 포대능선(648m봉, 산불감시초소 봉우리~717m봉, 포대능선 정상)과

도봉주능선(신선대~우이암)의 분기점 역할을 한다.

 

신선대와 더불어 또 다른 주요 산행지는 포대능선 정상. 신선대와 포대능선 정상인 717m봉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철난간구간으로

상당히 힘든 구간으로 휴일의 경우 정체가 일어나는 구간이다.

일반적으로 포대능선 정상에서 신선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정체를 가능한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도봉산 산행의 가장 중심에 있는 도봉매표소에서 오르는 코스는 다양하다.

 

첫째 신선대로 향하는 길

① 도봉매표소-도봉서원-도봉산장-천축사-마당바위-신선대 (가장 일반적인 길)

② 도봉매표소-도봉서원-도봉산장-구조대-신선대 (가장 일반적인 길)

③ 도봉매표소-문사동계곡-성도원-마당바위-신선대

 

둘째 포대능선 정상으로 향하는 길

① 도봉매표소-광법사-광법사지능선-다락원능선-포대능선정상(가장 일반적인 길)

② 도봉매표소-녹야원-샘터-미륵봉암릉-미륵봉-다락원능선-포대능선정상

③ 도봉매표소-샘터-청룡사터-다락원능선-포대능선정상

④ 도봉매표소-도봉산장-망월사-포대능선정상

 

셋째 우이암으로 향하는 길

① 도봉매표소-보문능선-우이암

② 도봉매표소-문사동계곡-우이암

 

넷째 도봉주능선으로 향하는 길

① 도봉매표소-문사동계곡-거북골-도봉주능선(칼바위)

② 도봉매표소-문사동계곡-오봉갈림길-도봉주능선(휴식년제)

도봉산은 서울 근교의 산으로 북한산과 함께 북한산 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으며 교통이 편리하고 산세가 아 름답다. 주능선상에는 최고봉인 자운봉을 비롯 만장봉,

선인봉, 주봉 등의 암봉과 서쪽으로 다섯 개의 암봉이 나란히 줄 지어 있는 오봉이 있다.

선인봉, 만장봉, 주봉, 우이암은 각기 거대한 암벽들이다. 도봉산은 우람한 기암괴석과

뾰족히 솟은 암봉들이 장 관을 이루며, 사방으로 뻗은 계곡을 따라 녹음이 우거져 명소를

만들고 있다. 사계절 모두 즐겨 찾는 산이지만 가을이면 단풍의 물결이 어느산 못지 않다.

도봉산의 3대 계곡은 문사동계곡, 망월사계곡(원도봉계 곡), 보문사계곡(무수골) 이다.

이 계곡들이 바로 산행기 점과 연결되고 있다. 도봉산은 등산코스가 다양하다. 그 중에서

도봉동 도봉 산역, 망월사역, 우이동코스가 대표적이다. 포대능선은 동에서 서쪽으로

일방코스이다. 따라서 다락능선이나 포대능선 방행에서 정상방향으로 코스를 잡아야 한다.

인기명산 [16위] 우람한 기암괴석과 암봉, 아기자기한 암릉 등이 있는 도봉산은 경관이

수려할 뿐아니라 전철 도봉산역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할 수 있어 접근성도 뛰어나 사계절

두루 인기가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최고봉인 자운봉을 중심으로 만장봉, 선인봉, 원도봉계곡,

용어천계곡, 송추계곡 등 경관이 수려하고 국립공원 으로 지정(1983년)되어 있으며,

수도권 시민의 휴식처 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암벽등산에 최적지이며,

회룡사(回龍寺), 망월사(望月 寺), 천축사(天竺寺), 보문사(普門寺) 등이 유명하다

도성도(도봉산의 옛지도)

도봉산과 북한산을 배경으로 하여 백악산, 인왕산, 목멱산, 타락산의 내사산을 중심으로 서울의 빼어난

자연 환경을 산수화처럼 그린 서울 지도의 걸작품, 도성 안 시가지의 인문 현상은 평면적으로 처리하여

풍부한 지명을 기록하고 주위의 산세와 대비되도록 하였다. 여백에는 행정구역, 도성의 크기와 도로를

기록하였는데,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기점으로 삼았다. 이 당시 창덕궁이 실질적인 정궁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원본은 남쪽을 바라보며 정사를 보는 왕의 시각에 맞추어 그려 지도의 위쪽이 남쪽으로 되어 있다.

망월사역(06:40)

오랫만에 망월사역에 도착하니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등산객은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역을 빠져 나오니 예전에 역앞에 있었던 산악인 엄홍길 기념관은 온데간데 없고 그 대신

넓은 도로가 나 있고 예전에 신흥대학이란 곳은 신한대학교로 校名이 바뀌었고 학교에

화려한  예식장이 들어서 있는데 학교인지 상업시설인지 혼란스럽다

역 근처에 들려서 김밥 한줄로 아침을 해결하고 도봉산으로 향한다

원도봉산(原道峰山) 입구

원도봉산은 ‘원래 도봉산’이란 뜻으로 예전에 도봉산이란 뜻이라... 뭔가 설명이 부족한듯 하다

도봉산과 북한산은 우이령이란 고개를 깃점으로 엄연히 구분되는 곳이건만 두 산을 합쳐서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묵어 버린 바람에 庶子 취급을 받는 느낌이다

이곳은 도봉산 등산로 중에서 한가한 곳으로 호젓한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아련한 옛날 淸眼과 함께 사연이 많은 곳...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네

사연이 많은 식당을 지나니 서울외곽 도시고속도로가 지나가는데

지금 이곳은 인터체인지 공사를 하느라 등로가 완전히 변해 버렸다

도시고속도로 아래를 지나니 덕천사라는 사찰 입구가 나온다

엄연히 도봉산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산 둘레길이라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과 같은 신세이구나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나 보지...

다락원 갈림길(07:15)

원도봉산 자락에는 사찰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 원도봉산 자락입구에는 아직도 음식점과 가옥들이 많다

같은 북한산인데도 지난번 구파발에서 오르는 북한산 구간은

국립공원내에 정비를 해서 깨끗하더니만... 이곳은 아직도 지저분하다

이래저래 庶子는 서러운 모양이다

원도봉 탐방지원센터(07:25)

망월사 계곡물 참으로 맑다... 이곳은 도봉산의 3대 계곡중에 하나이다

도봉산의 3대 계곡은 문사동계곡, 망월사계곡(원도봉계곡), 보문사계곡(무수골) 이다.

이 계곡들이 바로 산행기점과 연결되어 있고 도봉산은 등산코스가 다양하다.

그 중에서 도봉동 도봉산역, 망월사역, 우이동코스가 대표적이다

호젓한 등로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아 사색하기에는 더없이 좋다

산악인 엄홍길 生家터(07:03)

5년전 낙남정맥에 고성에 들렸더니만 고성 터미널 근처에 엄 홍길이

고성사람(본적: 경남 고성군 영현면)임을 엄청나게 강조하던데....

산악인 엄홍길(嚴弘吉)은 1985년 9월 에베레스트(8,848m) 남서벽 원정을 시도하였다가 실패하였으나

1988년 9월에 다시 도전하여 등정에 성공하였다. 이후 1993년 9월 10일 초오유(8,201m), 9월 29일

시샤팡마(8,012m), 1995년 5월 8일 마칼루, 7월 12일 브로드피크(8,047m), 10월 2일 로체(8,516m)

등정에 성공했고 1996년 5월1일 다울라기리(8,078m), 9월27일 마나슬루(8,163m), 1997년 7월 9일

가셔브룸1봉(8,068m), 7월 16일 가셔브룸2봉(8,035m), 1999년 4월29일 안나푸르나(8,091m),

7월 12일 낭가파르밧(8,125m), 2000년 5월19일 캉첸중가(8,603m), 7월31일 K2(8,611m)를

등정함으로써 히말라야의 8,000m급 14좌를 모두 등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어 히말라야 고봉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8,000m 이상인 2개의 봉우리, 얄룽캉(8,505m)과

로체샤르(8,400m)를 2004년과 2007년 5월 31일에 등정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8,000m 이상의

모든 봉우리를 완등한 산악인이 되었다. (다음 백과사전 인용)

망월사 방향으로 향한다

뚜꺼비 바위

두꺼비 바위를 지나니 등로옆에 암릉에 “安國”이라 새겨놨다.

요즘은 “安國”이 아니라 “難國”이 맞을듯 싶네요

民草들은 폭등하는 전세에다, 일자리 때문에 난리이고, 나같은 자영업자들은

경기가 안 좋아 난리인데, 여의도 나리들은 無所不爲로 살기 좋아 난리(?)다

이런 난국임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니... 참으로 걱정이다

장관들은 대통령만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고... 여당은 어설픈 정책으로 민초들을

힘들게 하고 야당은 사사건건 정부, 여당을 발목을 잡고 있는 사이에 民草들은 골병이 든다

 

요즘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懲毖錄)을 보면서 요즘같은 難國에 진정

서애선생(유성룡)같은 애국자는 진정 없단 말인가?

 “安國”이란 새겨진 바위를 지나니 호스를 박아놓은 약수물이 나오는 곳에 오석을 박아놓은 곳에

국민병원에서 기증했다는 오석에 “拂 一切唯心造”  라 새겨놓은 글씨에 뭐가 맘에 안 들었던지

“一”를 없애려고 애를 쓴 흔적이 보이는데... 참으로 고약한 놈일세

나무아미타불... 아미타 부처님 불쌍한 중생들을 잘 돌봐주소서 

망월사 계곡은 아직도 겨울입니다

덕제샘(德濟泉:07:55)

망월사 가기 직전에 있는 약수터로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YS가 만든

민주산악회에서 덕제샘과 선인봉 아래에 있는 민초샘을 만들었다고 한다

오늘은 베낭에 사과 하나와 초콜렛 하나만 달랑 가져왔다... 이곳에서 물 한바가지 마신다

민초샘 갈림길(08:00)

苦行中

망월사 경내로 들어선다

계총선사 부

망월사 解脫門(08:05)

세속의 찌든 때와 번뇌망상을 잊어버리려고 해탈문을 통과하는데 될란지 모르겠습니다

망월사 문수굴(文殊屈)

굴법당으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모시고 있는 곳이다

 통천문(通天門)

천중선원(天中禪院)과 영산전을 가려면 이 문을 통해야 한다

천중선원(天中禪院)
망월사 천중선원(天中禪院)은 나같은 재가자들의 출입금지으로 스님들의 수행공간이다
1981년 문경 봉암사와 더불어 조계종립 특별선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이 선원은 용성(龍城) 스님과
인연이 깊었다고 하는데 스님은 네 번씩이나 확철대오하여 도인들과 법거량을 나누는 등 조선 최고의
고승으로 이름을 떨치셨는데 1905년 서울에 상경한 뒤 다음해 망월사에서 법문을 했다 한다.

그것을 계기로 망월사에 처음으로 선원이 개설되었다고 하며 스님께서 3ㆍ1만세 운동을

주도한 이유로 옥고를 치르자 제자인 동산(東山) 스님은 이곳과 종로 대각사에 머물며 은사

스님의 옥바라지를 했다 다.

 

1920년대에 들어 일제의 한국불교 말살 정책이 더욱 노골화 되어 참선을 수행방법으로 삼는 청정비구승단의

고유 가풍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음을 걱정하여 62세의 노구를 이끌고 스님은 전통불교를 지키기 위해

참선납자들을 중심으로 망월사에서 ‘만일참선결사회’를 조직했다.

 

 

정수별전선종활구참선결사’(精修別傳禪宗活句參禪結社).이 긴 이름의 결사를 조직한 이유는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한국불교의 계율이 파괴되고 禪이 몰락하는 것을 활구 참선을 통해 견성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자는 뜻이다.
결사대중들은 이를 지키기 위해, 오후불식, 묵언, 동구불출(洞口不出) 등 7항목의 청규를 만들었으며 만일결사라 하니
27년이 넘는 세월이다. 당시 조실은 백학명스님이었으며 석우ㆍ고송ㆍ운봉ㆍ설봉ㆍ동산ㆍ경운ㆍ고암ㆍ상월ㆍ춘성스님 등
이후 한국선종을 일으킨 걸출한 선승들이 대거 참여했다

영산전 가는 길에서 바라본 망월사(望月寺)의 모습

망월사(望月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 말사로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8년(639) 해호(海浩) 조사(祖師)가 여왕의 명에 의해 창건하여
서라벌 월성(月城)을 향하여 기원하는 뜻에서 망월사(望月寺)라 이름하였다
혹은 망월사 대웅전격인 낙가보전의 동쪽에 토끼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남쪽으로는
모양의 월봉(月峰)이 있어 망월사라 했다고도 한다.

 

그후 고려 제11대 문종(文宗) 20년(1066)에 혜거(慧炬) 국사가 재창(再創)하고 이후 열네 차례의
중수(重修)를 거쳐 오다가 조선 제22대 정조(正祖) 4년(1780) 삼창(三創)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그후 1969년 주지 춘성()이 퇴락한 선실(禪室)을 철거하고 2층의 석조 대웅전을 지었으며, 1972년에는
주지 도관() 스님이 본래 있던 염불당과 낙가암()을 헐고 현대식 건물의 낙가암을 새로 지었다.

1986년부터는 주지 능엄() 스님이 대웅전을 헐고 선방, 관음전, 영산전, 요사채신축하였다.

 

이 절은 고려조의 혜거(慧炬), 영소(靈沼) 두 국사와 조선의 천종(天峰), 영월(映月) 도암(道庵) 3선사(三禪師)를
배출하였으며, 근대의 도인으로 숭앙받는 만공(滿空), 한암(寒岩), 오성월(吳性月), 춘성(春城)스님이 주석했던 곳입니다

망월사 영산전(靈山殿)

망월사에서 가장 멋있는 곳에 위치한 곳으로 사진작가들의 출사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망월사 서쪽 끝 절벽위에 세워져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1987년에 세워졌으며, 망월사 가람 전체와 도봉산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건물 좌.우 외벽에는 신선들의 모습이, 포백에는 대나무, 난초, 매화, 모란이 그려져 있다.

정면과 우측 측면에는 “靈山殿”이라는 편액이 걸려있고, 기둥에는 4개의 주련이 있다.

 

 

주련의 내용을 보면

有山有水乘龍虎(유산유수승용호)   산이있고 물이있는 곳에 용과 범을 타고

無是無非伴松竹(무시무비반송죽)   옮음도 그름도 없으니 소나무와 대나무를 벗삼아

曾昔靈山蒙授記(증석영산몽수기)   지난날 영산회상에서 수기를 받았는데

而今會坐一堂中(이금회재일당중)   지금 이 한 당에 모두모두 모였네

영산전에서 바라본 수락산의 모습

영산전을 지나 호젓한 숲속을 지나니 혜거국사 부도탑이 나온다

혜거국사(慧炬國師) 부도탑(浮屠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22 호

고려 초기의 승려인 혜거(慧炬)의 부도(浮屠)로 높이가 1. 8m 이며, 탑신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팔각원당형 구조이다. 팔각원당형 부도는 기단ㆍ탑신ㆍ지붕이 모두 팔각형이고

단층인 부도로 지붕과 기왓골 등 세부는 목조건물의 양식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지대석은 삼단의 괴임으로 되어 있으며 자연 암반과 같은 종류의 돌로 만들어져 있다.

기단부는 팔각형이며 탑신부는 둥근 공모양으로 기단에 홈을 파서 올려놓아 안정감을 준다.

부도의 앞에 배례석으로 놓인 돌의 한 면에 "혜거탑(慧炬塔)"이라고 새겨져 있어 부도의

주인공을 알 수 있게 한다.

전체적인 조형감각 및 세부수법으로 보아 조선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옆에서 바라본 영산전의 모습

마치 절벽위에 세워진 제비집처럼 보인다

영산전내 목조삼존불상과 십육 나한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70호)

목조석가여래좌상과 목조미륵불상, 목조제화갈라보살, 소조가섭존자입상, 소조아난존자입상

소조16나한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소조동자상 1구가 결실된 것을 제외하곤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조선 후기 영산전에서 많이 보이는 목조삼존불상과 소조십육나한상 일괄과 같이 나무와 흙을

이용하여 조성됨으로써  당시 조성방식의 시대상을 알려줄 뿐 아니라 석가모니불과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을 중심으로, 16나한상을 함께 봉안하던 조선시대 후기의 전통을

계승해 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천중선원과(우측 아래)과 고불원(古佛院:우측 위)의 모습

망월사는 만해(卍海) 한용운 스님의 상좌이셨던 춘성스님이 주지를 지내는 등

주로 선승들이 많이 찾는 선불교의 참선도량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천중선원(天中禪院)은 조계종종립선원으로 간화선(看話禪)의 수행 도량이다

간화선은 화두(話頭)와 내가 하나가 되어 모든 생각이나 작용을 단칼에 베어 버린다

이렇게 단 한번에 핵심으로 들어가 깨달음을 얻는 것을 돈오(頓悟:한번에 깨달음)라

하고 이러한 돈오의 가치를 최초로 표방한 禪이 달마조사로 시작되는 조사선(祖師禪)인데

간화선은 이 조사선의 정신을 그대로 잇고 있으며 그것을 가장 발달시킨 수행법이다

무위당(無爲堂)

인연에 의해서 작위(作爲)되는 것이 아닌 생멸변화를 여읜 상주절대(常住絶對)의

법을 무위법(無爲法이라고 하는데 무위당 아래는 망월사 종무소로 사용되고 있다

망월사의 가람형태는 좁은 면적을 활동한 게 마치 단양 구인사의 가람형태와 비슷하다

무위당은 망월사의 지장전이라고 보면 된다

낙가보전에서 마당에서 바라본 영산전의 모습

망월사의 대웅전격인 1층은 낙가보전(洛迦寶殿) 2층은 적광전(寂光殿)

망월사 관음전이라고 보면 되는데 2층 건물로 보이지만 속은 하나이며

편액도 아래에 洛迦寶殿 위엔 寂光殿이 걸려있고 법당 안에는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세음을 비롯한

사십이수(四十二手) 관세음보살 등이 목각탱(木刻幀)으로 조성되어 있다

 

낙가보전(洛迦寶殿)은 관세음보살을 주존(主尊)으로 하는 전각을 말하며

낙가(洛迦)는 관세음보살의 주처(住處)인 보타락가(補陀洛迦山)에서 온 말이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은 낙가보전(洛迦寶殿) 외에도 보타전(寶陀殿), 관음전(觀音殿),

원통전(圓通殿), 대비전(大悲殿) 등 많은 이름이 있다

 

옛 낙가암(洛迦庵) 자리에 1993년에 새로 지은 곳으로 건물 정면에는 낙가보전(洛迦寶殿)
적광전(寂光殿) 등 2개의 편액이 걸려 있으며, 외벽에는 팔상도와 나한, 신선들이 그려져 있고,
각 문살에는 대나무와 새, 벌, 꽃들을 조각하였고 기둥에는 6개의 주련이 걸려있다.

 

낙가보전(洛迦寶殿)의 주련
曾於觀音如來會上(증어관음여래회상)   일찌기 관음여래회상에서
聞勳聞修金剛三昧(문훈문수금강삼매)   금강삼매를 닦으셨네

仍號觀音跡居寶陀(잉호관음적거보타)   그로인해 관음이라 불리면서 보타산에 계시며

示現此土區和無方(시현차토구화무방)   이 땅에 나타나시니 그방편이 끝이 없어라

欲識大聖感應有實(욕식대성감응유실)   그 분의 감응을 헛되지 않음을 알고자하는가

道峰山頂秋月春花(도봉산정추월춘화)    도봉산정에 가을달 봄꽃일세

 

주련(柱聯)이란?

기둥(柱)마다에 시구를 연하여 걸었다는 뜻에서 주련이라 부르며 좋은 글귀나 남에게

자랑할 내용을 붓글씨로 써서 붙이거나 그 내용을 얇은 판자에 새겨 걸기도 한다.

판자 아래위로 하엽(荷葉)을 양각(陽刻)하든지 연꽃을 새기든지 당초무늬를 새기든지

하여 윤곽을 정리하고 그 가운데에 글귀를 적어 새김질한다

낙가보전 내부의 모습

본존인 관음보살좌상과 용왕, 선재동자입상을 협시로 모셨고, 42수관음목각탱을

봉안하였는데 좌우의 목탱에는 무수히 많은 관음보살의 화신이 표현되어 있어,

중생의 고통에 부응하여 구제하는 것을 나타냈다 

월조문

낙가보전에서 천중선원으로 가는 문인데 재가자들은 출입금지다 

가람 뒷쪽에서 바라본 낙가보전과 적광전의 모습

古佛院

용성스님의 아홉 제자 중 고암스님과 인곡스님이 이곳에서 스승을 친견하고, 동산스님은

참선정진하며 스승을 옥바라지 하는 인연을 맺었으니 망월사가 한국선종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하다였다
만일결사가 통도사 내원암으로 옮겨 간 뒤 또 다른 도인이 이곳을 지켰으니 그 분이 바로 1930년대 말 망월사 조실로
후학을 제접한 금오스님이었으며 스님이 조실로 있을 당시10여명의 납자와 30여명의 청신녀들이 망월선회의 가풍을
이어갔다고 한다.

6.25동란으로 망월사는 또다시 참화를 겪지만 간화선풍의 맥은 도도히 이어갔는데 치열한 전투현장으로 변한 사찰을

버리지 않고 홀로 지켜낸 분이저 유명한춘성(春城) 스님이다.
만해(萬海) 스님의 유일한 제자인 춘성스님은 ‘욕쟁이 스님’이라는 별호로 더 유명하다. 뒤 스님의 뒤를 이어 정영스님이
선원장으로 주석하며 또 한 번 선풍을 드날렸으며,1981년 망월사 선원은 조계종립 특별선원으로 지정되어 수많은
납자들의 정진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주지 능엄스님이 선원을 외호하며 오늘의 모습으로 변모했으며 능엄스님은 선원 이름을 천중선원으로
바꾸고 선원 큰방과 요사채인 심검당을 신축했다.1994년 종단이 혼란한 와중에 종립선원의 지위를 잃었지만
오늘도 납자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고불원 목조삼존불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71호)

고불원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 맞배지붕 건물로,  삼세불인 석가모니,

약사여래불, 아미타좌상을 봉안하였고,  뒷쪽으로 삼세후불탱화를 봉안하였다.

삼세불좌상은 모두 나발의 머리에 정상에는 육계가 솟았고 얼굴은 방형 모습이다

상호는 이마에 백호가 있으며, 반원형 눈썹과 반쯤 뜬듯한 두 눈, 입술 위에는

인중이 뚜렸하게 나있고,  법의는 두 어깨를 감싼 통견이다

 

수인은 석가여래좌상은 오른쪽을 펴서, 무릎위에 올려놓는 항마촉진인이며,

약사여래좌상은 왼손을 올려 결인한 손바닥이 바깥으로 보이게 하였고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위에 올려 놓았고 아미타여래좌상은 약사여래좌상의

반대의 수인을 하고 있으며  이 불상은 전형적인 조선후기의 조각양식이다

七星閣

칠성각 내부에는 칠성탱, 독성탱, 산신탱과 석고독성상이 봉안되어 있다.

오랫만에 走馬看山격이지만 망월사를 둘러보고 종무소에 들려 지인스님을

친견하려 했는데 하필이면 가는날이 장날이라 출타중이란다... 아쉽다

망월사는 의정부 관내에선 가장 큰 절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이 관음재일인데 조용하다

망월사를 나와 도봉산 능선을 타고 오르니 포대능선이 나온다

포대능선(砲隊稜線:09:00)

도봉산의 주봉인 자운봉에서 북쪽으로 뻗은 이 능선은 능선 중간에

대공포진지인 포대가 있어서 붙혀진 이름으로 길이가 약 1.4km이며

사패산 방향으로 원도봉계곡, 회룡계곡, 안골계곡, 송추계곡,

원각사계곡으로 산행이 가능하며 우이암을 경유하여 우이동 계곡으로

산행할 수 있는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지구의 주요 탐방로이다

포대능선 안내판

도봉산 주봉을 배경으로 인증샷

능선 맞은편에는 수락산이 보이고...

포대능선에서 바라본 의정부시

의정부의 지명유래는1400년 방원이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입하고 왕위에 오르자

태조 이성계는 태사왕이 되었고 태조는 두 차례의 골육상쟁 때문에 심경이 매우 불편해있었다.

그는 방원에게 옥새를 남겨주지 않은 채 소요산으로 떠났다가 다시 함흥에 머물렀다.

이때 태종은 함흥에 계신 부왕을 모시기 위해 여러 명의 차사를 차례로 보냈으나,

부왕은 물론 차사마저도 돌아오질 않았다. 이때 심부름 가서 돌아오지 않거나 아무 소식이

없음을 비유해서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태조는 태종이 보낸 무학대사의 간청으로 환궁을 하게 되고 태종이

지금 호원동전좌 입구까지 나와 부왕 태조의 환영준비를 하게 된다.

 

환영식장은 임시로 노천에 큰 천막을 설치키로 했는데 이때

신하 하륜이 아름드리 고무로 고주기둥을 세워야한다고 건의한다.

때마침 도착한 부왕태조는 태종에 대한 노기가 충천해 활에 철전을 매어 잡아 당겼으나

살은 천막 기둥 연대에 꽂히고 태종은 목숨을 건지게 된다.

태조는 백발백중의 명사수였으나 한 신하의 지략으로 태종은 무사했다.

또한 두 임금이 잔치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앉은 다음, 부왕에 올리는 헌주는

반드시 아들 태종이 바쳐야 마땅하나 신하 하륜이 신관을 시켜 술잔을 올리도록 귀뜸했다.


그러자 태조는 옷소매에서 철퇴를 꺼내 던지며 웃고 말았다. 태종이 가까이 오면 철퇴로 죽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하륜의 뛰어난 지략으로 태종이 두 번의 위기를 모면하였고 태조도

 ‘이것이 모두 천운이로구나’라며 태종을 인정하게 된다.

이때 두왕이 서로 대좌하였던 곳이 지금의 호원동 전좌마을이 되었다.
그 후 태조는 끝내 환궁치 아니하고 이곳 의정부에서 잠시 머물러 있다가

남양주시 진접면 내각리 풍양궁에서 지냈다고 전한다.

 

태조가 의정부 지역에 머물러있는 동안 조정대신들이 여기까지 와서 태조와 함께 정사를 논의

결정하는 한편, 태상왕의 윤허를 받았다고 하여 조선시대 최고 관청의 명을 따서 ‘의정부’라 했다.
의정부는 원래 조선시대 행정부의 최고 기관으로 임금을 보좌하며, 나라의 중요한 일들을 논의 결정하던 기관이었다

서울 근교에 있는 산이면서 4년만에 오르니 감회가 남다르다

예전엔 1년에 20번은 넘게 오르던 산을 6년을 넘게 대간, 정맥, 기맥,

지맥을 헤메고 다니다보니 도봉산 오름길이 소홀하였나 보다

그래도 널 반갑게 날 맞아주는 산이 마치 어머니의 품안같이 포근하다 

요즘 너무 힘들어서 도봉산에서 올라왔더니만 산이 나에게 묻는다.

 

여보게 부처를 찾는가

 

여보게 친구
산에 오르면 절이 있고
절에가면 부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절에가면 인간이 만든 불상만
자네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던가

부처는 절에 없다네
부처는 세상에 내려가야만
천지에 널려있다네

내 주위 가난한 이웃이 부처고
병들어 누워있는자가 부처라네

그 많은 부처를 보지도 못하고
어찌 사람이 만든 불상에만
허리가 아프도록 절만 하는가

천당과 지옥은
죽어서 가는곳이라고 생각하는가

천당은 살아있는 지금이
천당이고 지옥이라네

내 마음이 천당이고 지옥이라네
내가 살면서 즐겁고 행복하면
여기가 천당이고
살면서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하면
거기가 지옥이라네

자네 마음이 부처고
자네가 관세음보살 이라네

여보게 친구
죽어서 천당가려고 하지말고
사는동안 천당에서 같이 살지않으려나

자네가 부처라는걸 잊지마시게
그리고 부처답게 살길 바라네

 

부처답게,,,,,,,,,,,,,(법정스님)

도봉산 다락능선의 모습

다락능선은 도봉동 다락원(多樂院)에서 도봉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능선으로 원(院)이란

조선시대 상인이나 여행객들의 숙소로서 인마(人馬)의 보행 속도와 맞추어 보통 30리 간격으로 세워졌다

그러나 이 원칙에서 비켜선 곳이 있으니 바로 이곳 도봉산이였다고 한다.

양주, 의정부 쪽 동쪽 사면엔 원이 5리(里)마다 들어서 있었고 무수원(無愁院), 다락원(多樂院),

장수원(長水院)등…. 교통의 요충지였다는 점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의문. 아마도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인간 본성이 이런 기형(?)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포대능선에서 바라본 은봉산과 노고산을 비롯한 감악지맥의 줄기들

저 능선이 1968년 1.21사태에 김 신조를 비롯한 31명의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내려왔던 루트이고 그 너머로 북녘땅이 아련히 보인다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분단국가인 이 나라의 슬픔은 도봉산은 아는지 모르는지...

스릴을 즐기기 위해 능선을 타고 가는데 위험하다고 가지 말란다..알았구마

Y계곡가는 길에 만난 멋쟁이 바위는 예전 그대로네... 나만 변했나?

헬기장(09:20)

예전에 저 헬기장 아래 숲속에서 라면끓여서 소주 마시다가 국공파에 글려서 뒤지게 혼나고

젊은 국공파 직원에게 손발이 닳토록 싹싹 빌어 벌금을 면한적이 엊그제 같은데 허허허...

포대능선 정상 오름길

나만큼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또 있는 모양이다

뒤돌아 본 사패산의 모습

사패산(賜牌山:552m)은 조선시대 선조의 여섯째 딸인 정휘옹주가 유 정량에게 시집올 때

선조가 하산한 산이라 하여 붙혀진 이름으로 백두대간 추가령에서 뻗어나온 한북정맥으로

내려오면서 백암산, 적근산, 대성사,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운악산을 이루고, 도봉산으로

오르기 전에 사패산으로솟아올라 동쪽으로 수락산, 서남쪽으로 도봉산을 끼고, 안골계곡과

회룡사를 끼고도는 회룡계곡, 송추계곡, 원각사 계곡을 통해서 사패산 정상을 오를 수 있으며

사패, 포대능선을 지나 도봉산으로 연결되며 엄격히 말하면 도봉산의 한 줄기로 보면 될듯 싶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읍의 모습

예전에 없었던 데크목 계단도 새로 생겼고...

포대능선 정상에 오르니 그야말로 일망무제이다

맞은편의 수락산과 그 아래의 상계동, 의정부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도봉산 정상을 바라볼 수 있는 데크목 전망대가 새로 설치되어 있다

포대능선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봉산 정상 - 좌측으로 부터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신선대

도봉산은 북한산과 함께 북한산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다. 도봉(道峰)이라는 이름은

산 전체가 큰 바윗길로 이루어져 있어 불린다는 설과, 무학대사가 천축사, 회룡사 등의

사찰을 중창함으로써 조선왕조 창업의 길을 닦았다는 데서 유래한다는 설이 있다.

도봉산은 우이령(牛耳嶺)을 경계로 하여 북한산과 나란히 솟아 있으며, 북으로는 사패산이

연이어 있고, 해발 739.5미터의 주봉인 자운봉을 비롯하여 만장봉, 선인봉, 그리고

서쪽으로 5개의 암봉이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오봉 등, 여러 봉우리의 기복과 굴곡이

다양하여 절경을 이루며 면적은 24㎢로 북한산의 절반 크기도 안 되지만 아기자기한

산세는 한수 위라고 할 수 있으며 등산로도 더 조밀하다.

산중에는 천축사, 망월사, 회룡사 등 무려 60여 개의 사찰과 암자가 있어 연중 참배객과 관광객이 줄을 잇는다.

도봉산은 깊은 골짜기도 많이 품고 있는데 그 가운데 문사동계곡, 원도봉계곡(망월사계곡),

보문사계곡(무수골)이 3대 계곡으로 꼽히며 특히 문사동의 풍광이 빼어나다.

 

문사동(問師洞)은 '스승을 모시는 곳' 또는 '스승에게 묻는 곳'이라는 뜻이다.

계곡이 수려하고 깊은 산의 정기가 어린 이곳에서 스승과 문하생들이 시를 읊고 학문을

논하던 옛 정취가 떠오른다. 문사동은 서울에서 으뜸가는 일급 계곡 피서지이기도 하다

도봉산 주봉인 자운봉((紫雲峰:740m: 좌측에서 3번째 가장 높은 봉우리)

보라색 구름을 뜻하는 자운(紫雲)' 은 자하(紫霞) 등과 같이 예로부터

불교나 도교에서 관용적인 쓰임으로 사용하는 단어이다 

포대능선 정상(716m:09:25)

포대능선 정상에서 물 한모금 마시고 Y계곡으로 향한다

도봉산 Y계곡

바위로 된 칼날같은 능선이 끊기면서 남쪽 능선으로 급경사를 내려갔다가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는 200m 되는 바위구간으로 능선 북쪽으로는 400여m의

우회길도 있으며 Y계곡이라 부르긴 하나 계곡은 아니고 능선이라 보면 된다

예나 지금이나 Y계곡은 아랫도리가 후덜거릴정도 위험하긴 하지만 그 반대로 짜릿한 스릴이 있다

오늘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나혼자 밖에 없어서 예전에 이곳을 지날때 엄청난 시간이

걸렸는데 오늘은 마치 Y계곡을 전세낸 듯한 호젓하고 여유로움을 맛본다

Y계곡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저 멀리 북한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부터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등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내리막길에

예전에 없던 초소가 보이면서 데크목 계단을 지나 도봉산 정상부분 암릉중

유일하게 오를 수 있는 신선대로 향한다

능선에 줌으로 당겨본 자운봉 정상 모습

도봉산 정상인 자운봉의 모습

신선대 정상에서(10:00)

도봉산 정상의 봉우리에서 유일하게 트레킹으로 오를 수 있는 봉우리인 신선대

神仙臺라... 과연 신선이 살만큼 정말 멋진 곳이다

오늘은 운이 좋은 탓인지 생각보다 視界가 좋아 맞은편의 북한산 인수봉이 손에 잡힐듯이

보이고 그 너머로 북한산의 영봉들이 뚜렸한데 저 멀리 상장능선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도봉산과 주위의 북한산, 수락산, 노고산을 비롯한 멋진 仙景을 감상하고 마당바위로 향한다

신선대 정상에서 바라본 도봉산 오봉쪽의 모습

도봉산은 최고봉인 자운봉(740m)을 비롯해 만장봉·선인봉·주봉·오봉·우이암 등 암벽이 아름답기로 이름나 있다.

선인봉을 오르는 암벽 등반코스만 37개나 개척돼 있고 이 봉우리들 사이로는 도봉계곡·송추계곡·오봉계곡·

용어천계곡 등 수십개의 맑고 아름다운 계곡이 형성돼 있다.

 

조선시대 세종 때의 문장가이며, 한성부 판윤(지금의 서울특별시장)을 두 번이나 지낸

서거정(徐居正:1420 ~1488)은 만장봉 아래에서 도봉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이렇게 읊었다고 한다

 

 “높은 다락에서 술잔 들고 한 번 웃어 보는데

수많은 푸른 봉우리 뾰족뾰족 무더기를 이루었고

십 년 세월 하는 일 없이 귀거래시만 지었는데

백발이 다정하여 자꾸만 재촉하누나.”

 

도봉산 자락의 방학동 골짜기에는 조선 제10대 임금인 연산군의 묘역이 있다.

연산군묘는 중종반정으로 왕위를 박탈당했기에 능이 아니라 묘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연산군은 1506년 유배지 강화도 교동에서 죽었고, 사후 7년 뒤 시신이 방학동으로 이장됐다

신선대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오니 집터의 흔적같은 곳이 나오고 마사토의

미끄러운 길을 내려오는 등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소나무

한 그루가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아랫도리를 다 들어내놓고 있다

마당바위(10:20)

도봉산 정상으로 오르내림길에 쉼터 역할을 하는 곳이다

오르는 사람은 힘들어서 쉬고 내려오는 사람들은 막걸리 생각나서 쉬는 곳이다

이곳은 항상 등산객들이 북적거리고 국립공원 해설사들이 상주하다시피 하는 곳이다

마당바위에서 바라본 도봉 주능선의 모습

마당바위를 지나 조금 더 내려오니 천축사가 나온다

등로에서 살짝 떨어진 천축사로 향한다

천축사 입구에 들어서니 수많은 청동불상이 만나고 삼배의 예를 올린 후 대웅전으로 향한다

혹시 범여님! 아니셔요?

청동불상을 지나 천축사로 향하는데 의자에 앉아있는 국립공원

직원이 나를 보더니 ‘혹시 범여님! 아니셔요?’ 하면서 나를 부른다

내가 뒤돌아보는데 안면은 있는데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맞는데 누구시죠?’ 하니까....‘ 나 안레아 입니다’하는게 아닌가... 그때서야 생각난다

5년전 모 산악회에서 낙남정맥을 같이 걸었던 동료산꾼이다

천축사 참배를 포기하고 평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 분은 공직에 계셨는데 얼마전에 정년퇴직하고 북한산국립공원에 촉탁직으로 근무한단다

천축사(天竺寺:10:30)

도봉산 만장봉 동쪽 기슭에 자리잡은 천년고찰로 관음영험기도도량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신라 문무왕13년(673년)에 의상조사가 문도들을 이끌고 만장봉 동북쪽 기슭에 왔다가

그 산세의 빼어남에 감탄하여 현재의 위치에 절을 창건하고 옥천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고려 명종 때에는 근처 영국사의 부속암자가 되었었고 조선 태조 7년(1398)에 함흥으로

갔다가 돌아오던 태조가 옛날 이곳에서 기도하던 것을 상기하고 절을 중창하여 천축사라고 사액을 내렸다.

천축사라고 한것은 지공화상(指空和尙)이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에게 이곳의 경관이

인도 천축국의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하며 성종 5년(1474)에 왕명으로 중창되었고,

명종 때에는 문정왕후가 화류용상을 헌납하여 불좌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현재 대웅전 안에 불탑으로 보존되어 있다

맑고 깨끗한 석간수가 유명하며 백년 묵은 보리수나무가 샘물 위쪽에서 천축사를 지켜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 원통전, 독성각, 산신각, 요사 등이 있고, 참선도량 무문관이 있는데 1959년에 중수한 것이다.

부속암자로 약 50년 전에 창건된 석굴암과 만월암, 그리고 태조 이성계가 기도했던 장소로 전해지는

관음암이 있었으나 지금은 별개의 사찰로 독립되었다

안레아님과의 인증샷

안레아님과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느라 시간을 허비한 바람에 천축사 참배를 다음으로 미루고

서로의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담 기회에 술한잔을 약속하고 천축사 일주문을 지나서 하산을 시작한다

도봉산 하산길

등로에서 바라본 만장봉의 모습

만장봉이 보이는 포토존을 지나니 우측 계곡에 고산앙지가 나온다

고산앙지 안내판

계곡물에 잠겨있는 고산앙지(高山仰止:10:58)

이 글씨는 1700년(조선 숙종26년) 7월에 곡운 김수증(金壽增:1624~1701)이

쓴 글씨로 고산앙지(高山仰止)란 시경(詩經) 나오는 것으로“높은 산처럼 우르러 사모한다”는

뜻이며, 김 수증이 정암 조광조의 학덕을 우러러 사모한다는 의미에서 새긴것으로 추측된다 

이제사 등산객들이 많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 그렇군요

도봉분소(11:15)

예전에 없던 으리으리한 북한산 국립공원 도봉분소를 지나니... 광륜사가 나온다

광륜사(光輪寺)

도봉산 광륜사는 신라시대(673년)에 의상조사(義湘祖師)가 창건한 사찰로서

당시의 사명(寺名)은 만장사(萬丈寺)였으며 천축사, 영국사와 더불어 도봉산의

대표적인 가람었으나, 조선조 숭유억불(崇儒抑佛)이 극성을 부리던 시기에

양주목사 남 언경에 의해 영국사(현재 도봉서원)가 폐사되었으며, 도봉산 입구에

있는 만장사(현재 광륜사) 또한 극심한 탄압을 받아 그 명맥만 유지해 오다가

임진왜란으로 대부분 소실되었고, 그 후 조선후기 조대비 신정왕후(神貞王后)가

부친인 풍은부원군 조 만영이 죽자, 풍양조씨 선산과 인접하고, 산수가 수려한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여 기도와 정사를 보던 곳이기도 하였으며 고종때 흥선대원군이

이곳을 자주 방문하여 국정을 논한 역사적 도량이다.

 

1970년대 이후 금득보살께서 대대적으로 중창불사를 하였으며, 2002년 5월5일

상욱거사와 명정욱 보살의 시주와 근대불교의 최고 선지식인 무주당 청화대종사의

증명법사로 하여 광륜사로  새롭게 개원하였으며, 대종사께서는 재가선방 상설운영,

아미타 기도와 천도재,  청화대종사의 육성법문, 금강불교대학, 등 염불과 수행정진으로

도심포교로 크게 앞장서고 있는 사찰이다

예전에 없는 산악박물관도 보이네... 너무 오랫만에 왔나?

도봉산 입구(11:20)

오랫만에 강건너 와서 막걸리 한 잔 생각에 어느 한 넘 (?)에게 점심시간이니

시간나면 꼬라지 한번 보자고 카톡을 보냈는데 이 짜샤가 시간이 없다네

인정머리하고는... 참으로 많이 컷네.... 입구 표지석 옆에 있는 도봉동문으로 향한다

도봉동문과 안내판

도봉산을 빠져나와 한참을 걸어내려 오니 버스 정류장이 나오고 예전에

지저분한 주택가를 깔끔하게 정리하여 정비가 아주 잘되어 있다

참으로 착한 집

주택가를 지나는데 이른 아침에 김밥 2줄로 아침을 해결한 탓이라 배가 고픈데

주택가에 손칼국수 3,000원이란 식당이 보이고 안으로 들어가니 앉을 자리가 없다

조금을 기다려 칼국수 한그릇에 막걸리 한병 합이 6,000원인데 참으로 맛있다

이곳에서 배불리 먹고 7호선 열차를 타자마자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니 강남구청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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