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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고흥지맥(終)

고흥지맥 제5구간 - 철쭉공원에서 단장마을 갯바위까지

by 범여(梵如) 2015. 4. 13.

☞산행일자: 2015년 4월 12일

☞산행날씨: 흐린날씨에 강한 바람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6.8km (실제거리:18.5km) / 7시간 50분소요 (휴식 32분포함)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철쭉공원-안장바위-503봉-441봉-404봉-오치음성-우마장산-339봉

                서오치재-201봉-지등고개-172봉-밀양박씨 묘-209봉-400봉

                유주산-너덜길-상동고개-129봉-115봉-임도-136봉-구암고개-106봉

                125봉(봉화대)-너덜길-855번 도로-104봉-함안조씨 묘-군사도로-108봉

                군사도로-136봉(군부대 정상)-헬기장-폐건물-단장고개-단장마을-79봉

                22봉-갯바위

소 재 재: 전남, 고흥군 풍양면, 포두면, 도화면

요즘은 내가 우찌 사는지도 모르고 사는데 마치 혼이 나간 기분이다

33여년 동안 한 자리에서 운영하던 매장과 사무실을 재건축으로 인해 이전공사를 하는데

일이라는게 해도해도 끝이 없고, 직원과 인부들이 하는 일이 있고, 꼭 내가 해야할 일이

있다보니 정말 정신줄을 놓은 기분인데 설상가상으로 공사 현장이 서너군데가 한꺼번에

터지는 바람에 몸뚱아리가 열개라도 모라잘 지경이다

거기다가 지난주는 개포동 친목회에서 속초로 2박3일 동안 여행을 갔다오는 바람에 산엘

가지 못했더니만 생체 리듬이 깨져버려 몸이 상당히 피곤하다

그래서 이번주는 일욜날 할 작업 지시서를 만들어 놓고 서울에서 그리 멀지않은 춘천지맥

1구간을 일욜 새벽에 떠나려고 산행지도와 구간 안내를 만들어 놓았는데 고흥군 녹동에 사는

지인의 부인이 별세하였다는 소식을 접한다

하는 수 없이 조문도 할 겸 마지막 한 구간 남은 고흥지맥을 마치려고 지도를 복사하고

 베낭에다가 검정 양복과 넥타이를 챙겨넣고 서울로 호남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광주행 버스표

지난달 4구간 진행할 때 고흥의 찜질방에서 깍두기(?)들의 소란으로 잠을 설쳐 산행을 하면서

굉장히 피곤함을 느껴서 오늘은 고흥으로 안 가고 광주에 가서 수면실에 자기로 하고 광주로 향한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호남고속터미널에 도착하니 19시경이다

그런데 오늘은 광주가는 승객이 많은지 버스표가 20시 40분껏 밖에 없어서 서둘러 예매를

마치고 대합실에서 신문 한 장을 사서 광고까지 다 봤는데도 시간이 남아돈다

20시 40분 버스에 오른 다음에 늘 해오던 습관처럼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니 정안 휴게소다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가 눈을 떠보니 광주 고속버스 터미널에 자정이 넘은 시간에 도착한다

광주고속버스 터미널(00:01)

터미널에서 도착하여 2층에 있는 수면실겸 사우나로 향한다

유 스퀘어 사우나 24(00:10~04:10)

영산. 땅끝기맥과 고흥지맥을 하면서 대여섯번 정도 이용한 경험으로 인해 전혀 낮설지가 않다

거기다가 시설도 깔끔하고 관리가 아주 잘되어 있는데다가 코고는 사람과 안고는 사람들의

수면실이 분리되어 있고 2층 침대에 이불까지 주기에 주머니가 가벼운 산꾼들이 하루밤

이용하기에는 정말 멋진장소가 아닌가 싶다... 거기다가 사우나를 2번이나 하니...(가격11,000원)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사우나에 들어가 면도와 샤워를 한 다음 욕탕에 들어가서 20분정도

뜨거운 물에 푹 담그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운 느낌이다... 수면실을 나와 매표소에 가서 고흥가는

첫차 버스표를 예매한 다음에 지하도 건너에 있는 돌솥밥 뼈다귀 해장국 한그릇으로 이른 아침을

해결하고 가지고 도시락에 점심때 먹을 공기밥 한그릇을 사서 베낭에 넣고 다시 터미널로 향한다

광주고속버스 터미널의 모습

이곳은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고 신세계백화점을 비롯한

복합쇼핑몰이 들어서 있는 엄청나게 큰 곳으로 금호그룹 계열사이다

요즘 사주가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으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는데 돈 앞에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광주발 고흥행 버스표
광주에서 고흥가는 첫 차는 05:03분에 출발하는 직행버스인데 화순, 송강, 벌교,

과역을 거쳐서 1시간 45분이 걸린 다음에 고흥공용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손님이라고는 달랑 6명이 타고 가는데 그것도 벌교에서부터 고흥까지는 나혼자 간다 

고흥버스 터미널(06:50)
고흥버스 터미널에 내려 풍양가는 군내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출발시간이 07시 30분이란다

풍양가서 또 다시 택시를 타고 철쭉 공원까지 가야하기에 고흥에서 택시를 타고 철쭉공원으로 향한다 

고흥군내버스 시간표

천등산 철쭉동산(07:20)

고흥 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먹국재를 지나 풍양면 사동마을에서 꼬불꼬불한

비포장도로를 따라서 철쭉동산에 도착하니 택시비가 15.500원 나오는데 500원을 깍아준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넓은 공터에 내려서니 바람이 상당히 세차게 불어오는데 추울 정도다

철쭉동산 광장에는 서 있기조차 힘들만큼 세찬 바람이 불어온다

서둘러 산행준비를 끝내고 쉼터옆 데크목 계단을 따라서 능선으로 오르니

철쭉동산에는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데 봄은 봄인 모양이다

딸각산 뒤쪽으로 보이는 거금도(巨金島)

거금도는 고흥군 금산면에 속해 잇는 섬으로 지명의 유래는 섬 안에 큰 금맥이

뻗어 있어 거금도라 불린다는 이 섬의 한가운데 솟아 있는 적대봉은 북쪽으로

천등산, 마복산, 서쪽으로 장흥 천관산과 마주보고 있는 섬인데 이곳에서 빤히 보인다 

고산 윤 선도가 보길도에 운둔하면서 거금도에 놀러와 거금도의 비단같은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거금팔경(巨金八景)을 읊었다고 한다.

503봉 오르는 길 양옆으로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

데크목 계단에서 바라본 철쭉 동산과 그 뒤 천등산의 모습

503봉(07:30)

503봉 정상에는 철쭉을 조망할 수 있는 데크목 광장과 산불감시 CCTV가 설치되어 있고

좌측으로는 마복산과 비봉산, 팔영산이 시원스레 조망되고 우측으로 눈을 돌리니 바로

코 앞에 딸각산과 거금도... 그리고 고흥에서 두번째로 높은 적대봉이 보인다

안장바위(07:35)

안장바위에서 바라본 딸각산의 모습

등로에서 바라본 거금도

거금도는 1970년대에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면서 희망을 주었던 박치기왕 김일 선수의 고향이란다.

김일선수가 프로레슬링에서 세계를 제패하고 귀국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로 불러

‘임자 소원이 뭐야’라고 물으니 고향 거금도에 전기가 들어오는게 소원이라고 하자 박 대통령이

그 소원을 들어줘서 그 당시에 고흥에서 제일 큰 녹동읍보다도 먼저 전기가 들어왔다고 한다.

참으로 곱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인가?

花無十日紅

지난주 20여년전 처절하게 불교공부를 할 때 불교대학에서 만난 보살님이

이 세상을 하직하였다... 우리 동기중에 가장 활달하고 열심히 봉사하시던

분이셨는데 아직도 한창 나이인 69세에 저승길이 뭣이 그리도 급하셨는지

가버렸다... 도반들과 시다림(염불)봉사를 갔다오면서 느낀것은 世上事가

참으로 허무하다는 걸 참으로 많이 느낀다

 

그 뿐인가 며칠전 국회의원까지 지낸 모 그룹 회장이 자살을 하여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온갖 구린내가 진동하는 정치적 사건이 될듯싶다

왜 다들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다...花無十日紅이라 떨어지는 저 꽃을 바라보며

세상사가 참으로 별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면서 능선 안부는 상당히 유순하다

암릉구간을 지난다

지난구간의 천등산과 철쭉공원이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고...

441봉(07:50)

정상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고 묘지 한기가 있는데 移葬을 했는지 파묘(破墓)를 한듯이 보인다.

지난 구간의 천등산이 보이고 고흥앞 바다에 있는 거금도를 비롯한 조그만 섬들이 많이 보인다

441봉을 내려서는 길에는 쓰러진 소나무가 길을 가로막고 있다

아직까지 오늘 길은 무지하게 좋은데 어떻게 변할지 두렵다

441봉을 내려서니 소사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

소사나무는 다루기가 쉬워 분재감으로 사랑받는 나무이며 한 때에

사람들에 수난을 많이 당했으나 뿌리가 강해 해풍이 있는 바닷가에

주로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능선에서 바라본 가화제의 모습(도화면 가화리(加禾里) 소재)
고흥군 도화면의 서쪽 끝에 위치한 마을로 도화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에는 가화, 지등, 이목동, 원도동, 화옥, 황촌, 대통, 여의천이 있고
가화는 쌀이 부족하여 벼를 더한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고 여의천은 마을에
여의천이라는 하천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해안 낚시터와 여의천의 자갈밭이 관광명소이다

급경사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을 오르니 멋진 전망암이 나타나고 南道의 멋진

앞 바다가 시원스레 보이고 오늘 산행중 가장높은 유주산이 시야에 들어오며

등로 주위에는 하얀 제비꽃, 보라색 제비꽃 등 제비꽃 종류들이 많이 보인다

보라색 제비꽃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싯점에 피는 꽃이라 제비꽃이라 부르며 꽃말은 '겸손', '겸양' 이다.

흰제비꽃은 티없는 소박함을 나타내고, 하늘색은 성모마리아의 옷 색깔과 같으므로 성실,

정절을 뜻하며, 노란제비꽃은 농촌의 행복으로 표시하고 있다.

제비꽃은 전 세계에 약 400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1속 64종 이상, 9변종

이상이 분포되어 있다고 하며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며 주 자생지는 주흘산이라고 한다

 

제비꽃의 전설은 옛날 아름다운 이아라는 소녀가 양치기 소년인 아티스를 사랑했다

그러나 아티스를 귀여워 하던 美의 여신 비너스는 그녀의 아들인 큐피드를 시켜 아이에게'

영원히 사랑이 불붙는 황금 화살을 아티스에게는 사랑을 잊게하는 납화살을 쏘개하여 이들을

갈라 놓았다

이아는 애타게 아티스를 원했지만 아티스는 거들떠 보지도 않자 이아는 결국

비통한 나머지 울다 지쳐서 죽고 말았다. 이를 본 비너스는 안쓰러운 마음에

이 아이를 작고 가련한 꽃으로 만들어 주었는데 이 꽃이 바로 제비꽃이다 

노루귀

우리나라 맥산꾼의 大家이신  분의 시그널은 산에서 처음보네

소사나무 군락지를 지나면서 등로는 무지하게 좋아지고 다시 측백나무 단지를 만난다

조금을  더 걸어가니 무너진 고흥 오치음성 석성이 나온다

고흥오치음성(高興烏峙陰城:08:00)

전남 고흥군 도화면 신호리와 포두면 봉림리 일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라남도 시도기념물 제210호이다. 천등산 내려오는 남쪽 끝자락에서

동쪽으로 산중턱까지 내려가는 포곡식 산성이다.

포곡식 산성은 성곽이 하나 또는 여러개의 계곡을 감싸며 쌓은 산성을 말하며

음성은 주변에 고려시대에 도화면 치소(시호리 동백마을 추정)가 있어

도화현과 관련된 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의하면

신호리 오치(烏峙) 국유림에 있는 성을 둘레를 1200~1300칸의 석축이며

성벽은 골짜기 유역을 싸고 있는데 대부분 붕괴되었다고 한다.

무너진 성곽을 따라서 조금 내려가니 y자 갈림길이 나오지만 우측 성곽을 따라간다

우마장산에 있는 이 음성은 성이 자리를 잡은 위치와 쌓은 방법, 출토 유물등을

보아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대규모의 산성으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우마장산에 있는 음성(陰城)에 대한 문헌기록은 거의 없지만, 주변에 고려시대의

도화현 치소(신호리 동백 마을로 추정)가 있어 도화현과 관련된 성(城)으로 추정된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신호리 오치(烏峙) 국유림에 있는

성을 ‘둘레 1200-1200칸, 석축이며 성벽은 골짜기 유역을 둘러싸고 있는데 대부분

붕괴되었고 주민들은 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는 기록이 있지만,

다른 기록에서는 목장성에 대한 내용이 확인되지 않는다.

 

1,200~1,300間의 규모는 약 2,172~2,353m에 달하는 대규모 성으로 고흥반도에

소재한 성 가운데 가장 크다. 이 성은 고흥 도화면 신호리와 포두면 봉림리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555m의 천등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능선의 끝자락 해발 389.5m정도의 산마루서

동쪽을 산 중턱[中腹]까지 내려가는 포곡식(包谷式) 山城이다. 평면형태는 사다리꼴에 가까운 방형이다.

체성은 내외협축(內外夾築)과 내탁(內托)을 병형하여 축조되었는데, 계곡을 막고있는 동벽을

제외한 나머지는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성의 총 둘레는 2.642m이며, 단곽(單郭)의 석축성으로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성의 북서쪽 정상에서 북쪽으로 독치성(전라남도 기념물 208호) 백치성(전라남도 기념물 제209호),

남서쪽으로는 거금도 [절이도]가 관찰된다. 관련 시설로는 서·남·동쪽의 체성에서 문지(門址)3개소가 확인이 되었다.

서문지(西門址)는 해발 389.5m의 북서쪽 정상에서 남쪽으로 260m 거리에 위치하는데, 너비는 6m이다.

무너진 성곽을 내려오니 안부가 나온다

둘레길같은 편한 길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삼지닥나무

붓꽃(꽃말:좋은 소식)

오늘의 등로에는 노루귀와, 진달래, 붗꽃, 철쭉, 제비꽃 등 각종 야생화가 만발했다

우마장산(牛馬場山:342.8m:08:20)

전남 고흥군 도화면 가화리와 신호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에는 오치음성이 자리를 잡고있는 그저 밋밋한 산이다

우마장산에 대한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고, 고흥군의 산에 대한 무관심은

인근의 보성, 화순, 영암, 장흥, 해남의 풍부한 자료에 비하면 그야말로 무지에 가깝다 

이곳은 진달래와 철쭉이 동시에 피고있다

진달래와 산벚꽃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天上의 花園이다 

무너진 채로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오치음성의 모습

339봉(08:30)

오늘 내가 걸어온 능선을 한번 뒤돌아보고...

가야할 201봉과 유주산의 모습

암릉구간을 지난다

등로에서 바라본 고흥앞 바다

339봉을 넘어서며 Y형 갈림길이 나오며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지맥길은 우측 방향으로 이어진다.

오늘은 고수들의 시그널을 많이 만난다

Y자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5분 정도를 내려오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뚜렷한 등로인 11시 방향은 도화면소재지가 있는 당오리 내려가는 길이고

지맥길은 우측으로 직진하여 201봉으로 이어간다

유주산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하고...

서오치재(08:48)

직진의 뚜렸한 길을 따라 내려가면 도화면 당오리 서오치 마을 내려가는

길이고 고흥지맥은 희미한 y자 등로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201봉으로 향한다

고흥군 도화면 당오리에 있는 서오치는 당곤과 오치 두 마을의 이름을 합하여 지은 이름이다

 

당오리는 도화면 소재지가 있는 마을로서 주요기관이 위치하고 있는 농.어촌 혼합구조로

되어 있는 마을로서 당곤, 신오치, 동오치, 서오치가 있다. 과거에는 당곤과 오치라는

두 개의 마을이 있었는데 오치가 커지면서 동쪽은 동오치, 서쪽은 서오치가 되었으며

새로 마을이 생기면서 신오치가 되었다.

201봉(08:55) 

201봉을 지나면서 내리막길인데 등로는 전혀 보이질 않고 길이 難解하다

거기다가 간벌을 한 다음에 마구 버려진 동백나무가 엄청나게 태클을 건다

맥 산꾼에게는 저승사자만큼이나 괴롭히고 성가시게 하는 청미래(망개나무)도 잎사귀를

틔우는데 그나마 다행인게 오늘이 고흥지맥 마지막 구간이라 그리 큰 걱정은 안된다

가시넝쿨 사이로 다소곳이 핀 철쭉

길이 전혀 보이질 않는 등로에 오늘도 빨간 리번이 나를 인도한다

길이 없는곳을 길을 만들다시피 내려서니 감나무밭이 나오고 77번도로가 지나가는 지등고개가 보인다 

감나무밭을 가로질러 지등고개로 내려서는데 바닷가라서 그런지 바람이 상당히 거세다

지등고개(池嶝峴:09:10)

고흥군 도화면 당오리 서오치마을과 가화리 지등마을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

77번국도가 지나가며 우측 밭에는 태양열 집열판이 설치되어 있는 밭이 보인다

지등고개 좌측에 있는 도화면은 풍양면과 포두면을 경계로 하고 있으며

77번 국도가 동서남북으로 관통하고 잇어 교통이 아주 편리하고 .3일과

8일에 5일장이 열린다. 해안지도로 지죽도를 비롯한 24개 섬이 산재하고 있어서

주민들은 미역, 꼬막, 바지락 등 양식에 주력하는 농, 어업의 혼합형 구조로

취나물과 참장어 등 지역 특산물이 유명하다

유주산 가는길에서 뒤돌아 본 지등고개와 201봉의 모습 

지등고개를 가로질러 포장도로 우측 사동마을 방향으로 접어든다

구암1리에 있는 사동마을은 이 마을이 생길 무렵에  이 유주산 중턱에 절이 있어서

사동(寺洞)이라 불렀는데 이 절이 폐사가 된 이후에 뒷산의 지형이 뱀(巳)처럼 생겼다고 하여

사동(巳洞)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등로에 접어드니 길은 전혀 보이질 않고 망개나무(청미래)를 비롯한 온갖 잡목들이

경상도 출신 산꾼이라고 어찌나 텃세(?)를 하는지 정말 미치겠다... 한번만 봐주라

오늘만 오고 절대 고흥지맥길 오지 않으마... 등로옆에 있는 엄나무순을 전리품을 챙긴다

점심때 싸가지고 온 된장으로 싸 먹어야지

172봉(09:35)

잡목의 태클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은 안드시는지요?

오늘의 고흥지맥 능선길은 극락과 지옥으로 오가는 느낌이다

잠시후에 희미한 등로가 나오면서 묘지가 보이고 임도 너머로 시루(232.4m)봉이 보인다

덕흥마을쪽인 유주산 동북쪽 자락은 다섯마리의 용(五龍)이 한마리의

뚜꺼비를 덮치는 형국이라 하였으며 그 중 시루봉쪽 용의 목에 일제시대에

일본놈이 쇠말뚝을 박아 마을의 용기(龍氣)를 꺽어 버리자 사흘 밤,낮동안

붉은 피가 낭자하였는데  그곳에는 지금 저수지가 생겨서 마을의 용수를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사덕리(덕흥, 덕촌, 덕방, 화덕) 주민들은 이 저수지의 용혈(龍血)로

이 마을 사람들은 건강하고 장수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한다.

密陽朴公 묘지(09:40)

지등고개에서 올라오는 임도인데 개고생하지말고 이곳으로 올라올걸... 뭔 개고생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밀양박공 묘지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니 유주산으로 향하는 넓은 임도가 나온다

고비나물 새순도 싹을 튀우기 시작하구먼

209봉(09:48)

209봉을 지나 유주산 가는길은 마치 우리동네 뒷산인 대모산 둘레길 걷는 기분이다

고맙습니다... 아직까지는 걸을만합니다

400봉 오름길 등로 양쪽에는 소사나무와 동맥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특히 고흥지방의 산에 소사나무 군락지가 많이 보인다.

소사나무는 단풍이 아름다워 공원수나 관상수로 많이 쓰이고 있다.

등로 우측으로는 철조망이 보이고...

성터같은 흔적도 보이고...

고흥군수 나리께서도 일말의 양심은 있으셨나보죠... 등로를 정비해놨네요

십자(十) 임도를 가로질러 유주산으로 향한다

남산 제비꽃
어느 일본인 식물학자가 남산에서 발견하여 남산제비꽃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일본말 '난잔(ナンザン)'이 우리말 '남산'으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남산제비꽃은 잎의 모양이 독특해서 다른 제비꽃과 구별하기가 쉽지요.

3개로 완전히 갈라지며 측렬편이 다시 2개로 갈라져 새발모양을 하고 있지요.

편하게 다른 제비꽃과 비교할 때 쑥이나 코스모스 잎을 연상되며 한국의 제비꽃속 중에서

꽃이 흰색이고 잎이 갈라지는 것은 남산제비꽃과 단풍제비꽃  2종류뿐이다

제비꽃 중에서 제비꽃, 남산제비꽃, 호제비꽃, 졸방제비꽃, 콩제비꽃, 등등은

나물로 먹을 수 있으며, 생식할 수 있다.

제비꽃 잎에는 오렌지의 4배나 되는 비타민C가 함유되어 있으며 향암효과도 있다고 한다

현오색

대산꾼 준.희님을 닮아가시는 분을 만나다

이른 새벽에 아침을 먹은 탓인지 배가 고파오기에 이곳에서 과일과 커피한잔을

마시면서  20분정도 휴식을 취하니 바람탓인지 상당히 춥다... 서둘러 길을 떠난다

서울 제비꽃

제비꽃은 꽃자루 끝이 굽어 꼭 물음표처럼 생겼다고 해서 '여의(如意)'에 비유되기도 했다.

여의는 가려운 등을 긁을 때 쓰는 도구로 어디든 긁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여의는 귀금속으로 만들어져 귀인들이 지니고 다녔는데 만사형통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동양화에 그려진 제비꽃도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길 기원하는 의미를 가진다.

 

불교에서 법회나 설법 때, 법사가 손에 드는 구부러진 자루를 여의(如意)라 하는데

법사가 드는 여의에는 ‘심(心)’자를 나타내는 고사리 모양의 머리가 있고 한자쯤의 자루가 달려있다

본래는 등 따위를 긁어주는 도구였으나,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법구(法具)의 하나로 썼다

여의는 법사스님들이 설법할 때 요점을 그 위에 적어 잊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400봉(10:55)

바로 앞의 바다에 있는 거금도의 적대봉(積臺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섬 산이면서 고흥군에서는 팔영산(八影山) 다음으로 높은 산으로서

평지와 같은 산세와는 달리 전망이 아주 뛰어난 곳으로 날씨가 좋은

날은 제주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잠시후에 가야할 유주산 봉수대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 한 눈에 들어 오는데 해상공원의 범위는

고흥의 남해안 일부지역과 외나로도, 지죽도도 포함이 되며

내발은 충무공의 전적지가 있으며 해수욕장 부근에 활개바위

삼불암 등이 저기 보이는 지죽도 근방에 위치하고 있다.

유주산 가는길에는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열흘가는 붉은꽃이 있다더냐... 다들 알고 있는데 유독 정치인들만 그걸 모르는 모양이다

뇌물 받아먹고 개망신 당하고 있는 정치인들... 저 자들은 언제쯤 자연의 섭리를 알 수 있을까?

진달래 군락지 사이로 유주산가는 길은 너무나 좋다

진달래 군락지 터널을 지나니 사각으로 된 석성이 나오는데 유주산 봉화대이다

유주산 봉수대

유주산 봉수는 조선조 성종6년(1475년) 전라도 관찰사 계본(啓本)에 의해

마복산(馬伏山) 봉수와 함께 복설되었으며 따라서 그 이전에 설치되었다가

폐지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언제 어느 경위로 치폐되었는지 기록은 없다

 

단종 즉위이후 왜구들의 심심찮은  조짐에 긴장한 조정에서는 예종1년(1469년)

5월에 김국광(金國光), 이극배(李克培)등을 하삼도(下三道)에 파견하여 연변의

방어 상태와  연해의 진(鎭).포(浦)로서 혁파할 곳과 복구할 곳을 조사하는 한편

보수와 성자*城子)에 대해서도 적간(摘奸)토록 조처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처에도 불구하고 왜구들의 침입과 그로 인한 피해는 끊이질 않았는데

특히 성종이 즉위하고서는 그 피해가 극심하였다

 

그 피해는 경상.전라도 남해안 일대의 전 지역에 걸친 것이다

흥양(지금의 고흥)지방의 경우만 하더라도 성종 원년(1470년)1월에 발포 선부(船夫)

4인이 살상된데 이어 성종 5년(1474년) 9월에는  흥양현 선부 3인이 살상당하는 등

인면 피해가 커서 유주산 봉수의 복설은 그 대비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낮에는 연기와 밤에는 봉화로써 해안의 상황을 중앙에 전달하는 것을

말하며 조선시대의 중요한 통신수단으로 고흥의 9개의 봉수대 중에서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곳은 유주산 봉화대, 금산의 적대봉 봉수대

마복산 봉수대, 봉래산 봉수대이며 수덕산, 천등산, 도화산, 봉화산은

훼손이 된 상태라고 한다.

유주산 정상에 피어있는 복사꽃

유주산 정상에서 바라본 다도해 국립공원과 잠시후에 가야할 상동마을의 모습

고흥지맥의 입수점인 지죽도와 지죽대교가 아련히 보이기 시작한다

유주산(楡朱山416.6m:11:10)

고흥군 도화면 구암리 고흥반도의 남쪽 끝에 솟아있는 산으로, 산 정상에서 거금도를

비롯한 다도해가 한눈에 조망되고 주위에 내발해수욕장, 백치성 등의 명소가 있다.

조선 시대에는 정상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왜구의 침입을 알리는 역할도 수행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현의 남쪽 4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여지도서』에는

 “천등산 서남쪽 기슭에서 뻗어 나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정상에 보존 상태가 양호한 봉수대와 삼각점, 꽤나많은 돌탑들이 조성되어 있고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 한 눈에 들어오며 유주산 봉수대 남쪽에 우물이 있는데

옛날에 3년간 극심한 가뭄으로 나무와 풀이 다 말라죽고 식수마저 메말라 생계가

막연할 때 구암리주민들이 이곳에 물을 떠더 먹을 정도로 유명한 우물이 있는데

지금도 물이 흐르고 있다고 한다

유주산에서 바라본 구암저수지와 채석장

유주산 자락에 석산개발로 산자락이 망가지고 있다.

여기서 캐낸 돌은 품질이 좋아서 전량 일본으로 수출이 된다고 한다.

뒤돌아 본 유주산 봉수대의 모습

유주산 정상 삼각점(△손죽301 / 2002년 복구)

봉수대 삼각점에서 우측의 구암리쪽으로 내려서니 등로가 사라진다.

급경사를 내려서는데 가시나무와 망개나무 등이 등로를 막아 버렸다

억지로 치고 나가니 바지가 찢어지고 다리에 상처가 났는지 너무 쓰라리다

너덜길은 시작되고 겨우겨우 길을 만들어시피 가는데 백두사랑 이 대장 이친구 참으로 대단하이...

너무 그렇게 몸뚱아리 혹사 시키지 마소... 가야할 산이 울매나 많은데

또 다시 길은 사라지고...너덜길을 지나 우측으로 약간 꺽어져 내려선다

또다시 찔레꽃 나무와 전쟁을 치르면서 안부로 내려서니 백두사랑 산악회 시그널을 만난다

전봇대와 폐가재도구가 흩어져 있는 예전의 집터의 흔적이 보이고...

시누대 군락지를 지나니...

묘지 2기가 나오고 뒤돌아보니 유주산이 산꾼 범여가

心이 드는지 물끄러니 내려다 본다

뚜렸한 등로를 만나서 상동고개로 내려선다

스텐레스 물탱크를 지나서 상동고개로 내려선다

 고흥군 도화면 구암리 상동마을이 나타나는데 고흥지맥 지도상에 상동고개에

표기되어 있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강선고개라고 부른다.

마을길로 내려서니동맥나무꽃이 도로옆에 동백나무꽃이 산꾼를 반겨준다

커다란 느티나무 옆에는 송 봉섭 사적비가 있으며 도로 건너편에는 마을정자가 보인다.

상동고개(11:40)

고흥군 도화면 구암리 상동마을에 위리한 고개로 이 지역 사람들은 강선고개라 부른다

1956년 리동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암리에서 분동돈 상동마을은 구암리 윗쪽에 위치한다

하여 상동이라고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구암리(龜岩里)는 5개(사동, 상동, 하동, 단장, 내촌)마을로 마을 뒷산에 거북이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어 ‘거북이 귀(龜)’와 ‘바위 암(岩)’이라 불렀으나 세월이 지나 구암으로

불렸으며 유주산 남쪽 해안가에 위치한 조그만 마을이며 25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이다.

길을 건너 정자 뒷쪽의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초촐한 점심식사(11:40~11:55)

이른 새벽에 아침을 먹은터라 배가 고파오고 유주산 오기전에 간식을 먹긴 했지만

상동고개 정자에서 점심상을 펼치는데 새벽에 해장국집에서 1,000원 주고 산 공기밥과

김치에 풋고추 2개와 된장, 그리고 등로에서 수확한 보들보들한 엄나무순에 캔맥주

한 개가 오늘 점심상의 전부이지만... 마음은 억수로 부자같은 느낌이다

서 있기조차 힘들정도로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캔맥주 하나를 얼른 마시고

베낭을 메고 묘지 뒤에 있는 129봉으로 올라선다

정자위로 올라서니  묘지가 나오고...

등로에서 바라본 상동(좌측)과 하동마을(우측)의 모습

여러기의 묘지가 있는 129봉 정상으로 향한다

129봉(12:02)

어느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니 정상에 삼각점이 있다고 풀이 수북한 곳 여기저기를 헤매도 찾을길이

없어서 포기하고 우측으로 내려서 대각선 방향의 가운데  전봇대를 바라보며 소나무 숲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129봉에서 내려서니 高靈 鄭公과 부인 礪山 宋氏 묘지가 나오고 묘지를 지나 좌측으로 꺽어진다

우측에 136봉이 바라보이는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꺽어서 묘지 1기가

있는 곳으로 내려서니 상동마을에서 올라오는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시멘트 도로를 가로질러서 136봉으로 향한다

포장도로로 들어서자마자 비포장도로로 바뀌고 새로 공사중인 도로에서 좌측으로 오른다

새로 공사중인 도로를 가도 만나긴 하지만 그렇게되면 136봉을 포기해야 한다

새로 공사중인 도로위로 오르니 김녕김공과 배부인 경주이씨 묘지를 비롯한 4기의 묘지가 나온다

묘지에는 고사리가 지천으로 널려있어 잠시 가던길을 멈추고 고사리를 꺽은 다음에 위로 오르니

이곳 역시 새로 도로를 개설중이라 좌측으로 올라서서 136봉으로 향한다 

136봉에 올랐다가 우측 능선으로 접어드니 우거진 잡목으로 인해 도저히 걸을수가 없다

후답자들은 136봉을 가지말고 편한 도로를 따라서 우측으로 가시길 권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형제섬의 모습
등로에서 잡목을 헤치고 내려오니 조금전에 헤어진 도로를 만난다
도로가 ∩자로 굽어지는 곳에 커다란 암릉이 있는데 암릉뒤로 가야 한다

길은 아예 보이질 않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질 않아 지도를 꺼내서

한참동안 독도를 한 다음에 확신을 갖고 등로에 접어드는데 흐미~~~

이게 뭐야! 주위에는 온 천지가 엄나무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게 아닌가

가던 길을 멈추고 베낭을 벗어놓고 한참동안 부드러운 엄나무 순을 채취한다

흐미 이쁜넘들...쑥 영감탱이가 봤으면 이거 하나도 안남았을텐데... 

암릉구간을 넘어서니 나를 인도하는 빨간 리번이 보이기 시작한다... 감사!감사!감사!

후손들이 돌보지 않는건가 꽤나 호화롭게 꾸며진 金海金公 묘지는 잡목에 묻혀 버렸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 내려오니 무명묘지를 만나고 조금을 더 진행하니 칡넝쿨을 비롯한 잡목이 무성하다
여름에는 고흥지맥 산행은 절대하면 안될듯 싶다
집터의 흔적처럼 보이는 곳을 지나고...
이곳에서 조금 뚜렸한 우측 옆사면길을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암릉에 누런 철분 형태의 색깔을 띠고 있는 곳을 지나고...
지나온 유주산의 모습

암릉 주위에는 유난히 부처손이 많이 보인다

수덕산과 발포항(鉢浦港)의 모습

고흥군 도화면 발포리에 있는 항구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육군에서 수군으로

첫 부임한 곳이다. 발포만호로 첫 부을 한 곳으로 유명하며 근처에 충무공을 기리는

사당인 충무사와 전라남도기념물 제33호로 지정된 ‘고흥 내발리 백로 및 왜가리 도래지’가 있다

또 다른 암릉구간에도 누런색을 띄고 있고 이곳 역시 부처손이 많이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거금도와 형제섬의 모습

마지막 암릉구간을 올라선다

험한 길을 지나니 갑자기 길이 좋아진다

원추리의 씨방... 이 넘은 아직도 지난해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나보다... 집착을 버리시게나

Y자 갈림길(12:40)

약간의 내리막길에서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희미한 길로 들어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바람에 휘날리는데 이곳은 잠깐 방심하면 알바하기 딱 좋은 곳이다

희미한 등로로 내려서니 함안조씨 가족묘지가 나오고 묘지 가운데로 지난다

함안조씨 가족묘

구암고개(12:55)

구암고개에서 맨 좌측 임도로 올라선다

임도로 올라서자마자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좁은 임도로 올라선다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내려서니 무명묘지가 나오고 묘지로 내려서 좌측으로 간다

너럭바위가 나오고 잠시 후 오를 106봉의 모습

너럭바위에서 바라본 고흥앞 바다... 우측으로 큰 섬이 프로레슬러 김일의 고향인 거금도다

106봉(13:15)

지나온 유주산이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한다

106봉을 지나서 조금 지나니 무너진 봉화대가 나타난다

봉화산(烽火山:125m:13:20)

고흥군 도화면 구암리 가인동(속칭: 봉화골) 봉화산 봉수지인데 지도에는 125봉으로 되어있다

가내포(가인동) 봉수는 이 지역이 포구로서 적합한 지형을 갖추고 있으며 봉화산에

현존하는 유구가 서로 기록과 일치하고 있는 점에서 가인동의 봉화산으로 추정된다.

125봉에서 바라본 가인동의 모습

봉화산에서 내려다보니 봉래면 나라도가 보인다.

원래 이곳 지죽도는 봉래면 사양리에 속해 있었다.

 

사양리는 봉래, 사양, 수락도 등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섬이 수락도(水落島)이다. 수락도는 외나로도에서 8km 정도 떨어져

있는 섬으로 경관이 아름다운 섬으로 섬 정상에 있는 봉우리가 마치 일본의

후지산(富土山)처럼 보이며 섬이름은 섬이름은 수락도(水樂島)로 부르다가

수락(水落)으로 표기되었으며, 옛 문헌에는 수락도(水樂島)로 표기되어 있다.

봉화산(125봉)에서 내려다 본 고흥앞 바다

125봉에서 내려서서 정상에 군부대가 있는 136봉을 바라보며 걷는데 잠시 후 삼각점을 만난다

물뿌레 나무

너럭바위를 지나면서 또다시 등로는 사라진다

멋진 앉은뱅이 소나무도 만나고...

무명봉 능선에 올랐다가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잡목들이 자꾸만 범여 몸뚱아리를 후려쳐 엄청 쓰라리다

길이없는 잡목을 헤치고 능선 아래로 내려서니 단장마을과 지죽도로 연결되는 855번 지방도가 보인다

855번 지방도(13:50)

도로에서 좌측으로 가서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에서 바라본 855번 지방도의 모습

104봉(14:00)

104봉 정상에는 무명묘지가 자리를 잡고있고,  고흥지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咸安趙氏 가족묘

등로가 거의 보이질 않는 길을 내려서니 함안조씨 가족묘지가 나오고 묘지 가운데를 지난다 

묘지로 내려서니 넓은 도로가 나오고 바리게이트가 있는데 곧이어 군사도로를 만난다

군사도로(14:10)

이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오르면 108봉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귀경 차량시간 때문에

108봉을 생략하고 군부대 도로를 따라서 편안한 고흥지맥길을 이어간다

108봉을 갔다 내려오는 길을 만나 계속 군사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군사도로 아래 묘지 너머로 구암리 하도(蝦島)가 보이는데 하도마을은 지형이 새우처럼

생겼다하여 ‘하섬’이라 불렀는데 1980년도에 구암간척지가 완공되면서 육지가 되어 버렸다.

군부대 정문으로 향해서 걸어가는데 갑자기 신호등에서 빨간불이 켜지면서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방송이 나오고, 용무가 있으면 인터폰으로 연락을 하란다

인터폰으로 등산객이라고 신분을 밝히며 철조망 좌측으로 가겠다고하니 허락을 한다

군부대 정문에서 철조망을 끼고 좌측으로 돌아간다

바다 건너 좌측으로 마복산이 아련히 보이기 시작한다 

철조망을 돌아서 헬기장으로 오르는데 당직사관인듯한 중사 한명이 무전기를 들고 나를 계속 예의주시한다

136.4봉(14:30)

헬기장 좌측 잔디밭에 숨어버린 삼각점

헬기장에서 내려서니 군부대로 올라오는 식수 파이프가 등로를 안내한다

지죽도 금강죽봉(202.8m) 뒷쪽으로 시산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시산도는 섬의 지형이 간조때 보면 화살모양의 돌무지가 마을을 감싸고

있다고 하여 시산도(矢山島)라고 하였으나 주민들은 1995년 12월 1일

군 회의를 열어 ‘矢’ 자를 ‘詩’로 변경하여 마을입구에 詩山島라는 입석을 세웠다고 한다

군부대 식수 파이프를 따라서 단장마을로 향하는데 산 허리에는 산벚꽃이 滿開해 있

136.4봉을 내려오니 포장도로가 나오고 직진하여 임도를 따라서 걷는다

고흥지맥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141봉의 모습

임도옆에 있는 폐가를 지나서 넓은 임도를 따라서 단장고개로 향한다

복사꽃

단장고개(丹粧峴:14:50)

고흥군 도화면 구암리에 있는 고개로 855번 지방도를 타고 오다가 지죽도로

향하는 길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오르면 우측에 단장고회가 있는 고개이다

고개를 가로질러 올라서니 단장교회가 나오고 교회 좌측으로 올라선다

교회에서 식수로 사용하는 물탱크가 보이고...

바람둥이꽃

언 넘의 쉬끼가 이딴 짓거리를...

사르리님 반가워요... 잘 계시죠?

허리까지 차오르는 억새밭을 지나니...

본격적인 고흥지맥의 마지막 苦行길이 시작되고...

찔레꽃과 아카시아를 비롯한 잡목들이 산꾼 범여를 괴롭혀도 너무 괴롭힌다

천신만고 끝에 능선을 내려오니 아담한 주택이 나오고...

주택과 보리밭 사이를 지나고...

79봉을 바라보며 단장마을을 빠져 나온다

단장마을의 모습

마을 뒷산이 풍수지리상 옥녀장대 형국임으로 마을명을 옥녀가 내려와서

화장을 한다하여 단장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흥지맥의 제일 끝에 있는 마을이다

폐가를 지나서 마지막 힘을쏟으며 79봉으로 향한다

79봉(15:05)

고흥지맥의 맨 끝 봉우리이나 잡목으로 인해 도무지 길은 보이질 않는다.

잡목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겨우 치고 올라가니  준.희님의 아크릴 표지판이

힘들게 이곳까지 힘들게 온 산꾼 범여를 참으로 반갑게 반겨준다.

79봉에서 우측으로 길을 따라가다가 Y자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선다

등로 좌측 아래로는 무명묘지 한 기가 보이고...

또다시 길은 없어지고 잡목사이를 이리저리 피해서 고흥지맥 마지막을 향해서 간다

잠시 후 암릉구간이 나오고 지죽도를 잇는 다리와 등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들 대단하십니다... 길도없는 이 험한길을 그 먼 곳에서 말입니다

길은 금방 없어지고  좋은 길을 버리고 희미한 등로를 따라 22봉을 간다.

암릉에서 내려서니 우측에 민가인지 농장인지 모르는 주택 한채가 보이고

뭘 하려는지 중장비로 마구 헤쳐진 임도를 건너서 등로로 들어서니 또 길은 보이질 않는다

대염도의 모습

갯바위 좌측으로 대염도, 소염도, 머구섬이 보인다.

이곳 지죽도 일원은 감성돔, 농어 등이 많이 잡히는 낚시꾼들에겐

유명한 곳이란다. 범여는 평생 낚시를 해보지 않아서...

22봉(15:15)

상석과 양 옆의 돌기둥이 있고 멋진소나무 노거수 한 그루가 묘지가 산꾼을 반긴다

아마 후손들이 묘지를 이장한 듯한 흔적이 보인다

22봉을 지나면서 또다시 길은 보이질 않고 잡목이 괴롭힌다

힘들게 잡목지대를 치고 나오니 고흥지맥 마지막인 갯바위가 보인다

호남정맥 모암재에서 분기하여 100km를 넘게 걸어온 고흥지맥이 드디어고흥 앞바다로 입수한다

백두대간 왕복, 9정맥, 9기맥, 20여 지맥을 걸었지만 고흥지맥만큼 힘든 구간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 더 애착이 가고 기억에 남는듯 하다

갯바위(15:20)

오늘 처음으로 고흥지맥을 마감하는 삼각대를 세워놓고 셀카질을 해본다

너무나 힘들었기에 감회가 남달랐던 고흥지맥길

고흥지맥의 끝자락인 지죽도(가운데 뾰족한 섬)가 손에 잡힐듯 가까이 있다.

좌측에 대염도(大鹽島) 와 우측에 죽도(竹島)가 있다.

지죽도는 조선 말기 순조때에 경남 김해에 김 영장이 이곳으로 유배를 당해서

거주하였으며 풍수지리에 의하면 소가 누워있는 와우(臥牛)형이라 섬 안 호수가에

지초(支草)라는 풀이 있었는데 소가 이 풀을 좋아했다하여 섬의 이름을 지호도라고

부르다가 지호도 옆에있는 죽도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죽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단장마을 갯바위에서 지죽도는 육지와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 물살이 세고

암초가 많아서 등대 표시가 있다.

등대표시는 지죽도 방향으로는 배가 다닐 수 있고 단장리쪽은 암초가 많아서

항해가 불가능하며 물살이 세고 암초가 많아서 등대가 생기기 전에는

한국에서 해상사고가 가장 많이나는 지역중에 하나였다고 한다.

2001년도에 지죽도를 연결하는 연륙교가 생겼으며 대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절경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고흥지맥의 끝자락인 단장마을 갯바위에 도착했다.

위도상으로는 해남의 땅끝마을이 한반도의 땅끝이지만 이곳은 이웃에

위치한 장흥에 이어 우리나라 3번째의 땅끝마을이 아닌가 싶다.

갯바위에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닷가 바위구간을 아슬아슬하게 곡예하듯

기어서 뭍으로 나와 둑방길을 나오니 지죽도 한 눈에 들어온다 

장비를 정리하고 둑방길을 따라서 855번 도로를 향해간다
다시한번 뒤돌아 본 고흥지맥 합수점

둑방길을 걸어나와 대하 양식장을 지나서 855번 지방도를 나와서 버스 시간을 알아보는데

지죽도에서 1톤 트럭 한 대가 나오기에 손을 드니 차를 세워고 나를 태워 도화면소재지까지 태워준다

이곳에서 일단 샤워를 해야 되겠다싶어 목욕탕에 들려서 샤워를 마치고 검은 정장으로 갈아 입으니

옆에있던 사람이 상가집에 가는가보죠 하고 묻기에 녹동 상가집을 간다고 하니 000 상가집 가냐고

하기에 그렇다고 하니 자기도 그 상가집에 간다고 하면서 태워 주겠다고 한다

고마운 분의 도움으로 녹동 현대병원 장례식장에 들려서 조문을 하고 녹동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녹동버스 정류장(18:15)

상주 친척이 버스정류장까지 태워주는 바람에 편하게 정류장까지 와서 18시 30분발

녹동발 광주행 버스에 올라서 2시간 20분만에 광주에 도착한다

광주에서 서울로 가는 21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니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다

오늘 산행하면서 수확한 고사리와 엄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