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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백두대간 3차 북진(終)

백두대간 제7구간 -육십령에서 안성대피소까지

by 범여(梵如) 2016. 7. 25.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폭염주의보속에 대간길을 걷는 범여...용감한 건지 무식한 건지?

 

☞ 산행일시: 2016년 7월 24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고습다습한 기온에 폭염 주의보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19.5km + 어프로치 4.2km   / 12시간 10분소요

☞ 참석인원: 봄.여름.가을.겨울산악회 20여명과 함께

☞ 산행코스: 육십령-산성터-폐헬기장-할미봉-대포바위 갈림길-암릉구간-공터-경남덕유교육원 갈림길

                 공터-삼자봉-영각사갈림길-헬기장-소나무쉼터-영각사갈림길-전망암-조망바위-서봉-철계단

                 안부-황새목이 능선-공터-남덕유산-남덕유산우회-월성치-전망암-데크목 계단-1,340봉

                 삿갓봉-삿갓봉대피소-헬기장-조망바위-1,280봉-원추리 군락지-무룡산-KTF중계탑

                 1,428봉-주목-돌탑봉-1,380봉-동엽령-칠연폭포 삼거리-문덕소-안성탐방지원센터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서상면, 거창군 북상면 / 전북 장수군 계북면, 장계면, 무주군 안성면

 

요즘 다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몇개월전부터 시작되는 롯데그룹의 권력다툼에다

모 검사장의 주식 대박 사건,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지체높은 분에 관련된 사건

그것 뿐인가 맨날 매스컴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의 밥그릇 쟁탈전을 대하면서

안 그래도 더운 날씨 불쾌지수가 높아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민초들은 너무 힘들다

언제쯤 이런 기사를 읽지 않고 훈훈한 미담만을 접할 기회가 올란지...

정녕 이 나라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없단 말인가

 

월요일이 모친 기일이라 고향으로 가야 하기에 이번주엔 혼자서

서울 근교의 계곡 산행이나 하면서 휴식을 취할까 생각하며 하였는데

범여의 몸속 깊이 꿈들거리는 그 넘의 역마살이 사람을 가만 두질 않는구나

 

낮에 절에가서 부모님의 위패에 예를 올리고 사무실로 와서 일정을 마무리 한 다음

베낭을 메고 집을 나선 시간이 밤 10시 45분... 2년전 백두대간 남진길에서 동고동락한

동료 산꾼들과 반갑게 조우를 한 다음에 육십령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는데 요즘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인해 더워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흐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육십령 동물 이동통로(02:35)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2번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육십령 휴게소(전북 장수쪽)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니 해발 700고지가 넘는

이곳에도 고온다습한 후덥지근한 날씨가 오늘 산행을 쉽지 않음을 예고한다 

육십령(六十嶺:734m)

경남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장계면을 통과하는 26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육십현(六十峴) 또는 육복치(六卜峙)라고도 하는데, 백두대간 중의 덕유산(德裕山)과

백운산(白雲山) 사이에 있으며 신라 때부터 요충지로 알려져 왔다.

오늘날 이 고개는 영남과 호남지방을 연결하는 주요교통로로 전주~대구 간 국도가 지나간다.

예부터 함양-장수 주민들의 물류를 교환했던 고개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육십령이라는 지명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신라 적부터 요해지였으니, 행인이 이곳에 이르면 늘 도적에게 약탈당하므로

반드시 60명이 되어야만 지나가곤 했는데 그것이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육십령이라는 지명에 담긴 이야기는 또 있는데 첫 번째는 안의감영에서

이 고개까지가 60리고, 장수감영에서도 60리라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고

두 번째는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60개의 고개를 넘어야 겨우 닿을 수 있다는 설이다.

육십령 수준점

육십령 충령탑

1950년 6.25 사변 직후 국군 8사단, 11사단, 수도사단에서 덕유산 지구 공비토벌을 위하여

작전을 수행하다 산화한 국군 영령들의 혼을 기리기 위해 1954년 6월 16일 장계 남산공원에

육군 7839부대장 대령 김동혁이 세웠으나 백화여고 설립으로 1991년 덕유산과 인접한

육십령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당시 비문에는 “육군소령 신창식 이하 55명은 덕유산지구 작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고이 잠들다”라고 새겨져 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본 충혼비를 2003년 12월 8일 현충시설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충령비 안내판 적힌 기록

산행을 시작하다(02:55)

휴게소에서 약간의 휴식과 스트레칭을 한 다음에 데크목 계단으로 오르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예전에는 이곳 장수쪽이 아닌 함양쪽 주막앞에서 옆구리를 치고 올랐는데 이곳에 생태이동통로가

생기면서 장수쪽에서 대간 능선으로 올라 생태이동통로를 지나면서 산행을 시작하는데

참으로 오랫만에 헤드렌턴을 끼고 산행을 시작하다보니 뭔가 조금은 어색한 느낌이다

능선에 오르자마자 동료 산꾼들은 습관적으로 빠른 속도로 숲속으로 사라진다

가던지 말던지... 난 날이 밝기 전에는 내 방식대로 천천히 움직이다 보니

초반에는 언제나 늘 꼴찌이다... 우측의 서상면 지역으로는 양계장이 많은지

鷄舍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등로에는 닭똥냄새가 진동을 한다 

엉터리 구조 이정목(03:10)

육십령에서 0.7km지난 지점에 ←서봉 7.4km, 육십령 0.2km 구조 이정목이 서 있다
핸드폰의 트랭글 앱에서는 0.7km라고 하는데 ... 이런것도 제대로 하나 못하나...

등로에는 바람 한점 불지않다보니 산행 시작 15분만에 벌써 옷은 땀으로 범벅이다

산성 흔적터(03:25)

육십령에서 출발한 지 30분...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앞 사람의 헤드렌턴 불빛을 쫒아

불나방처럼 등로를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산성의 흔적이 보이는 로프지대가 나타나고

먼저간 동료들이 휴식을 취하는지 바로 윗쪽에는 동료산꾼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난 어둠속에 산행은 정말 질색이다... 그래서 나홀로 산행을 선호하는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동이 트려면 1시간 30분은 더 걸어야 할 터인데...

공터(881m:03:28)

조금 넓은 공터에는 먼저온 동료산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고 구조 이정목 11-3이 있다

(←서봉 6.4km, 육십령 1.2km) 기록되어 있는데 트랭글 앱에서는 1.7km로 나온다

이곳은 예전부터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이라서 산성터의 흔적이 보이는걸로 봐서는

할미성(합미성)의 성터인듯 싶으나 어둠속이라 확인할 길이 없다

선 채로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폐헬기장(03:40)

폐헬기장을 지나면서부터는 급격하게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어둠속에 암릉구간에 로프를 잡고 힘들게 올라서니 할미봉 정상에 도착한다

할미봉(1,026m:04:00)

경남 함양군 사상면과 전북 장수군 장계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멋진

암릉으로 된 멋진 곳이 있으면 주위 전망이 일품으로 장상에는 삼각점이 있다.

 

할미봉 유래를 보면 할미봉 아래에는 성터가 있는데, 할미봉의 이름은 이 성터에서 유래한다.

옛날 어느 할머니가 치마폭에 돌을 날라 성을 쌓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할미봉이라 했다는 설과

 

할미봉 서쪽 산자락에 있는 반송 마을 사람들은 할미봉이 원래 ‘쌀미봉’인데 할미봉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조선 시대 때 이곳에 합미성(合米城)이 있어 합미봉(合米峰)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1961년 국토지리정보원 지명일람표에는 합미봉으로 고시)

 

옛날 한 도승이 할미봉 정수리의 암장을 보고 우리나라 군사가 수년간 먹을 쌀이

여 있는 형상이라 했다 하여 합미봉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지명 유래가 전한다.

할미봉 정상 삼각점(함양 304/2002 복구)

낮에 이곳에 오르면 주위의 조망이 그야말로 일망무제이고 우측으로는 고찰인

영각사가 한 눈에 들어오고 좌측으로는 종마장이 멋지게 조망되는 곳이건만

어둠속에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하며 잠시 사진 한 컷 남기고 서둘러 서봉으로 향한다

영각사(靈覺寺)

영각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 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로

876년(신라 헌강왕) 심광(深光)이 창건하였고,

190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강용월(姜龍月)이 중창한뒤 한때 많은 불제자들의 수행처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6,25 때 또 다시 법당내에 보존되오던 화엄경판과 함께 소실되었으나

1959년에 국고보조를 얻어 해운이 법당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창건 뒤의 역사는 거의 전래되지 않고 있는 영각사.

다만, 1770년(영조)에 상언(尙彦)이 화엄경 판목(板木)을 새겨서 이 절에 장격각을

짓고 봉안하였는데 봉안한 상언에 대한 이야기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글. 사진 - 펌)

대포바위 갈림길(04:05)

좌측으로 0.43km 지점에 대포바위가 있다는 이정표가 나오건만 어둠속에 가봤자

뭔 소용이 있으리오...거기다가 사진을 찍어면서 꿈덕거리다 맨 꼴찌이니 부지런히 가는 수 밖에...

대포바위(일명:남근바위 안내판)

임진왜란 때 장수를 치기 위해 육십령을 넘던 왜군들이 대포바위를

조선군의 대포로 착각하여 함양으로 우회해 남원을 쳤다고 한다.

그래서 장수군 일원이 피해를 면했다는 설이 있다.

한 가까이 보면 남자의 성기와도 비슷하여 남근석으로 불리는데,

남자 아이를 못 낳는 여인들이 이 바위에 다가와 절을 하고 치마를

걷어 올리면 남자아이를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대포바위를 지나면서 악명높은 암릉구간을 만난다

산꾼들의 편의를 위해 데크목을 설치해놨지만 거의 직벽에 가깝다
이런 곳에서 발한번 삐껏하면 한방에 황천길을 갈것 같은 느낌이다

데크목 계단구간을 지나니 이젠 완전 암릉구간에 로프와 나무 사다리를 
이용하여 내려서는데 어둠속에는서 상당히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어둠속에 미끄러운 마사토 지역을 지나니 또다시 데크목 계단이 나오고

그 이후로는 조금 편안한 등로를 걸어간다

경남덕유교육원 갈림길(04:40)

삼자봉(04:48)

해가 많이 짧아진 모양이다... 05시가 넘었건만 아직도 어둠속이다

영각사 갈림길(05:02)

이곳에서도 우측으로 내려서면 영각사와 경남덕유교육원으로 향하는 길인데

국공파들이 가지 말란다... 우리같은 대간꾼이야 그리 가라케도 갈일 없으니 신경쓰지 마셔

다시 오르막은 시작되고 조금 힘들게 올라서니 주위의 사물이 보이면서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05:15)

완전히 날이 밝았다... 헤드렌턴 벗어 베낭에 넣고 선 채로 휴식을 취한다

2시간 20분간이나 어둠속으로 걸어 왔으니... 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헬기장을 지나면서부터 서봉까지는 계속해서 급경사의 오르막 구간이라 체력안배에 신경을 써야한다

시누대 골짜기를 지나고...

멋진 쉼터가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살짝 돌아 우회한다

영각사 갈림길(05:40)

암봉(05:45)

일출이 시작되려나 보다... 영각사가 있는 계곡에는 완전히 구름바다(雲海)이다

그 너머로는 진양기맥으로 이어지는 금원산, 기백산은 구름속에 가렸고 또 그 너머로는

지리 능선이 夢幻的 분위기로 범여의 가슴속을 설레게 하는데 그러기에 매주 산에 오른다

암봉에서 바라본 덕유산 서봉의 모습

산과 여인은 멀리서 봐야 예쁜 모양이다... 암봉에서 서봉까지는 빡세게 올라야 한다

암봉에서 급하게 내려섰다가 조금은 편안하게 서봉으로 향한다

일출

솔나리(꽃말:새아씨, 깨끗한 마음)

나리 종류는 참으로 많아 왠만한 야생화 전문가가 아니고는 구분이 그리 쉽지는 않다.

육십령에서 출발하여 서봉 오르는 암릉구간에는 원추리와 털중나리, 말나리 등이 군락을

이루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조금 보기 힘든 빨간색의 솔나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800미터 이상의 고지대 암벽이나 능선에 산다는 솔나리를 만나기는 그리 쉽지가 않다

솔나리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풀로서 높이는 70cm 정도이며 잎은 어긋나며 가늘고 길다.

초여름에 붉은 자주색 꽃이 피고 열매는 삭과로 거꾸로 된 달걀 모양이다

원추리(꽃말:기다리는 마음)

서봉 오르면서 뒤돌아본 암봉의 모습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것은

너무 일찍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가장 불행한 것은

너무 늦게 사랑을 깨우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잘났다고 뻐긴다 해도

결국 하늘아래 놓인 건 마찬가지 인 것을...

 

그냥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며 살았으며 좋겠다.

 

하늘아래 있는 것은

다 마찬가지 이니까...

다시한번 빡세게 치고 오르니 서봉 바로 아랫쪽의 암릉구간은 야생화 천국이다

비비추와 원추리, 솔채... 그리고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귀한 솔나라도 많이 보인다

덕유산 구간을 10여번 등정을 했지만 전부 겨울 산행을 했던 탓에 야생화를 구경할 수 없었다

여름 산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이렇게 야생화 천국인줄은 몰랐다

2년전 백두대간을 같이했던 시화님

시인 류시화님을 좋아한 탓에 닉도 “시화”라는 여인

참으로 재주도 많고 능력도 뛰어난 수퍼우먼이다

근데 또다시 북진길에 총무 소임을 맡았단다... 참으로 대단한 여인이다

내가 2대간 9정맥, 9기맥 완주했을 때... 祝詩까지 써 주시고...

진부령가는 그날까지 늘 안산 하시길...

참취꽃

태양대장님과 군이 대장님... 강인한 체력에다 출중한 산행실력... 범여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해발 1400고지가 넘는 지역이라 그런지...벌써 하얀 구절초가 피기 시작한다

솔채꽃

저 바위 이름은 뭔지?

서봉으로 가는 길

영각사 계곡너머로 펼쳐지는 지리능선은 완전히 구름바다이다

동자꽃(꽃말:영원한 기다림)

석죽과의 여러해살풀, 줄기는 높이가 40~100cm이고, 몇개씩 뭉쳐나며 마디가 약간 길다,

잎은 마주나고, 긴 달걀모양 또는 타원형이며 6​~7월에 짙은 붉은색에 흰색 또는 적백색의

무늬가 있는 아름다운 꽃이 줄기 상부의 가지끝과 잎겨드랑이에 한씩 피고, 열매는 삭과이다.

산지에 나는데 한국, 만주,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동자꽃의 전설

옛날 어느 깊은 산 속의 암자에는 젊은 스님이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 젊은 스님에게는 부모를

잃은 어린 조카가 있었는데 갈대 없는 조카를 대려와 동자승이 될 수 있게 해주어 함께 지냈다.
하지만 겨울이 되자 스님은 먹고 살 식량을 구하기 위해 동자를 놔두고 잠시 산을 내려왔다.

그런데 젊은 스님이 산을 내려온 동안 그만 폭설이 내려 암자로 올라가는 길은 막혀버렸고

동자승은 산 위에서 혼자 고립되어버렸다.

 

일주일동안이나 계속되던 폭설은 엄청난 눈으로 산의 모든 길을 막아버렸고

봄이 되서야 눈이 녹아 산 위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스님은 눈이 녹자마자

어린 조카를 걱정하며 산으로 뛰어 올라갔지만 이미 어린 동자는 죽어있었다.
얼마 후 동자의 무덤가에서 어여쁜 주황색 꽃이 피어났는데 사람들은 이 꽃을 보며

동자꽃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말나리(꽃말:순수, 순결)

꽃 이름의‘나리’는 백합과 꽃을 의미하는 우리말로 나리꽃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는데

주로 7~8월 꽃을 피우는데 나리의 종류는 하도 많아서 야생화 도감을 보지않고는 구분이 잘 안된다

꽃이 아래를 향하면 참나리, 하늘을 향해 피면 하늘나리, 옆을 향해 피면 말나리·중나리다

산꿩의 다리(꽃말:평안)

그늘진 곳에서 핀다. 가느다란 줄기가 꿩의 다리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7~8월 눈(雪)의 결정을 연상시키는 하얀색 꽃을 피운다.

중부 이남에선‘은꿩의 다리’, 강원도 이북 산지에선 ‘연잎꿩의 다리’가 피어난다

서봉 아래에 있는 이정표와 돌탑이 있는 곳을 올라서니 정상이 나온다

서봉(西峰:1,510m:12:10)

경남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계북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남덕유산(동봉 1,507.4m)

서봉(1,492m)은 주봉인 향적봉(1,614m.북덕유산)을 먼 발치에 두고, 남도 산의 조종산(祖宗山)인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드는 곳이기도 하다.이제까지 남덕유산 하면 1,507.4m의 동봉을 두고 일렀다.

그러나 장수 사람들은 절대 서봉이라 부르지 않고 장수 덕유산이라 부른다

 

산꾼들이 백두대간 종주가 성행하면서 서봉을 거치는 등산인들이 많아졌고,

서봉이 동봉보다 높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서봉을 남덕유산의 주봉이라

주장하고 있는데 지도상에는 서봉의 높이를 1,492m로 표기해 놓고 있다

 

옛날에는 남덕유산 또는 서봉을 봉황산이라 하여 매우 신성시 했다고 한다.

문헌비교와 산경표에는 백두대간은 대덕산을 경유 덕유삼봉-백암봉-봉황산을 거처 육십령으로 간다 

서봉 이정표 아래에 있는 인식할 수 없는 삼각점

장쾌한 골산으로 이루어진 남덕유와 부드러운 육산인 북덕유(향적봉)로 나뉘는 덕유산

한반도 남쪽에선 지리산 다음으로 크고, 넉넉하며 덕이 있는 덕유산.. 그 덕유산의 연봉들이

남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덕유산에 남(南)자를 앞머리에 붙여 불리우는 이름..남덕유산.

 

덕유산 일대는 대표적인 다설다우(多雪多雨) 지역으로 강원도 못지않게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다.

덕유산은 한반도의 남부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백두대간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기에

겨울철 시베리아 고기압이 확장하며 서해를 건너면서 수증기를 가득 머금은 대기는

빠른 속도로 내륙으로 진입하며 이 때 백두대간 덕유산의 높은 산을 만나 냉각되어 많은 눈이

내리게 되는데...여름에 비가 많이 오는 연유도 이 때문이라 하겠다.

아침만찬(06:50 ~07:40)

서봉 정상에서 조금 이른 시간에 참으로 오랫만에 백두대간 남진을 했던 동료산꾼들과

아침상을 펼쳐지는데 동료들이 싸가지고 온 반찬을 내놓으니 즉석으로 산상부페가 되고

산에 대한 얘기를 꽃피우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1시간여가 지난다

덕유산은 워낙 동계 산행지로 유명하다보니 요즘같은 여름에는 등산객이 별로없다

이곳 서봉 정상에는 비박족의 텐트 2동이 보이는데 이곳은 지리산, 설악산과는 달리

비박이 허락되는 모양이다... 비박족! 범여에게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

짚신나물(꽃말:임 따라 천리길)

갈고리 모양의 털이 발달한 열매가 짚신에 달라붙어 짚신나물이라 부른다.

주로 길가나 등산로, 풀밭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 전국에 분포한다.

줄기 전체에도 잔털이 발달했기 때문에 촉감이 까칠까칠한 편이다.

 

늦봄과 여름 사이에 볼 수 있는 노란색 꽃은 꽃잎이 5장이고 수술은 보통 5~12개이다.

꽃은 줄기의 끝에서 총상꽃차례 방식으로 피며 열매는 수과로 술잔 모양인데 열매를

둘러싼 꽃받침에 갈고리 모양의 털이 발달해 바지 깃에 잘 달라붙곤 한다.

보통 바지 깃에 달라붙은 열매가 다시 떨어져 번식하기 때문에 길가나 등산로에

짚신나물이 많은 것은 사람의 바지 깃에 달라붙은 열매가 번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짚신나물의 꽃말은 재밌게도 ‘임 따라 천리길’이다.
잎은 어긋나며 서로 크기가 다르지만 줄기 끝에 달린 3장의 잎은 크기가 엇비슷하다.

봄철에는 어린순을 나물로 먹을 수 있고, 어린잎은 염료로 사용할 수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열매를 잘 말려 가루를 낸 뒤 국수가루로 혼합하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짚신나물을 ‘용아초(龍芽草)’ 또는 ‘선학초(仙鶴草)’라 해 이질,

위궤양, 구충, 지혈, 혈변, 각혈, 설사 등의 약제로 사용한다.

용아초는 여름에 캔 짚신나물을 말하며 선학초는 가을에 캔 짚신나물을 말한다.

약용할 때는 전초를 잘 말려 달여 먹거나 생즙을 내 먹는데 대장암, 위암 등의 항암 치료제로도 복용할 수 있다

사라져버린 서봉 정상석의 흔적

예전에 이곳에 서봉 정상석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기단석만 보인다

사연인 즉 장수사람들이 자기네 땅에 있는 서봉에 함양군이 표시석을 세웠다고

기분이 나빠서 뽑아서 30m 아래로 굴러 버렸다고 하는데... 좁디 좁은 땅어리에

뭔 벤뎅이 소갈머리인지... 하기사 북진하면서 괴산과 문경, 영주와 단양사이의

산을 두고 벌이는 해프닝... 계속 볼텐데 뭐

 

며칠전 소백산 명칭을 두고 단양군이 영주시를 상대로 가처분 신청을 했는데

대법원에서 기각한 사건이 매스컴을 통해 보도가 되었는데... 하였던 기가 찰 노릇이다 

1차 북진길때의 서봉에서(2009.12.26)

서봉 정상에서 모닝 커피한잔 마시고...

구름 한점이 황새목이를 넘어 마실 가는 중...

'德이 많고 너그러운 어머니의 산'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덕유산 그 연봉중에

'작은 히말라야'라고 불릴만큼 설경 산행의 백미를 자랑하는 남덕유산(1,507m)..

 

속리산을 지난 백두대간의 굵은 마루금은 한반도 남쪽을 동서로 나누며 남하하고,

산줄기는 지리산을 만나기 전 천미터가 넘는 멧부리를 뿜어내는데 바로 덕유산의 연봉들..

조선중기의 풍수가인 격암 남사고(南師古)는 '덕유산 일대에 사람을 살리는 기운이 가득차 있다'며

병란을 피하는 십승지로도 예언한 곳이기도 한 이곳

 

조선시대에는 남덕유산을 봉황산(鳳凰山) 혹은 황봉(黃峯)이라 불리웠다는데...

 

"여지도서"에는 '황봉은 덕유산에서 남쪽으로 달려 나와 이 산봉우리를 이루고,

관아의 서북쬭 65리에 있다' 라고 하였으며 "대동지지"에는 '봉황산 즉 덕유산 동쪽 지맥은

서북쪽 70리에 있다'라고 적혀 있다. 

가야할 삿갓봉과 무룡산... 그 너머로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도 뚜렸하게 보인다

산오이풀

장미과의 여러해살이 풀로서 높이는 40~80cm이며 잎은 어긋나고 8~9월에

붉은 자주색 꽃이 수상(穗牀) 화서로 피고, 열매는 수과(藪果)를 맺는다

뿌리는 지혈제로도 쓰고 관상용으로 재배하며 높은 산 중턱에 주로 분포한다

1시간 가량의 산상만찬을 끝낸 다음에 남덕유산을 향해서 다시 길을 떠난다(07:50)

700여개의 철계단을 밟으며 고도를 500이나 낮춘 다음에 다시 남덕유산으로 오른다

지난 겨울에 만났던 고사목도 그대로이다

암릉(07:55)

모싯대(꽃말:모성애)

도라지과로 분류하기도 하고 초롱꽃과로 분류하기도하는 모싯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를 정도로 혼동되는 꽃이다. 풀잎을 보면 초롱꽃이요, 뿌리나 꽃을 보면 도라지과기 때문이다.

잎이 살구와 닮았다고 행엽채(杏葉菜). 더덕이나 잔대 같다고 행엽사삼(杏葉沙蔘)이라고도 한다.

여름이 지나면 긴 꽃대에 청보라색 종모양의 꽃이 여러 송이 달려 피는데 아름답기 그지없다.

특히 도라지모싯대는 한국 특산물로 꽃 모양이 더 빼어나며 봄에 피는 새싹은 산나물로 유명하여

중부 이북 지역에서는 특용작물로 재배하기도 하는 이 모싯대는 남부 지역에서는 잘 보기 힘든 꽃이다.

어린잎은 나물로도 좋지만 쌈이나 생잎 무침해도 맛있으며. 꽃모양이 아름다워서

관상용으로도 뛰어난데 풀 전체의 쓰임새가 많아 널리 사랑받는 우리 풀꽃이다.

잔대 뿌리와 흡사하다고 제니라 하는 뿌리는 말려서 감초처럼 다른 약의 독성을

풀어주는 해독제로 많이 쓰이고 경풍·진해·거담·인후염 등에 좋은 약재로 쓰인다

 ‘모성애’라는 꽃말을 갖고 있는데 이는 줄기를 따면 흰 즙이 나오는 데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산수국(꽃말:변하기 쉬운 마음)

산수국은 산에서 피며 물을 좋아하는 국화처럼 풍성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흰색으로 피기 시작했던 꽃들은 점차 시원한 청색이 되고 다시 붉은 기운을

담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자색으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


또 토양의 조건에 따라서 알칼리 성분이 강하면 분홍빛이

진해지고 산성이 강해지면 남색이 더욱더 강해진다.

이러한 꽃의 특성 때문에 인위적으로 토양에 첨가제를 넣어 꽃색을

원하는 대로 바꾸기도 하며 그래서인지 산수국의 꽃말도 변하기 쉬운 마음이다.

 

산수국의 가장 큰 특징은 유성화와 무성화를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활짝 핀 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짜 꽃으로 나비를 유인하고

가운데 있는꽃이 암술과 수술이 있는 참꽃봉오리이다

 

한방에서는 수국류를 그 중에서도 수국의 기본종이 되는 종류를

수구, 수구화 또는 팔선화라고도 부르며 뿌리와 잎과 꽃 모두를 약재로 쓴다.

 

심장을 강하게 하는 효능을 가졌으며 학질과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세에 처방하고

열을 내리는데도 많이 쓰인다 .

서봉에서 고도를 500이상을 낮추며 내려섰다가 다시 내려온 만큼 남덕유산으로 올라야 한다

남덕유산으로 오르지 않고 월성치로 우회하는 등로를 지나 남덕유산 정상으로 향한다

하늘 말나리

황새목이 등로에서 바라본 서봉의 모습 

공터(08:25)

이곳에다 베낭을 내려놓고 남덕유산 정상으로 향한다

남덕유산(南德裕山:1507m:08:28)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계북면의 경계 능선에 솟아있는 산으로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에서 남쪽으로 15km지점에 위치한 덕유산의 제2고봉(高峰)이며

마루금에 놓인 봉우리는 하봉, 중봉, 상봉으로 이루며 상봉이 되는 봉우리는

동봉(東峰)은 남덕유산, 서봉(西峰)은 장수 덕유산으로 불린다.

 

향적봉이 있는 북덕유는 마치 부드러운 육산으로 여성의 산으로 불리는 반면, 무령산을

경계로 하여 남덕유는 멋진 암릉과 거친 남성상을 연상케 할만큼 험한 능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향적봉은 백두대간에 2km 넘게 떨어져 있는 반면 남덕유산은 백두대간의 분수령을

이루므로 전문 산꾼(?)들에게는 향적봉보다는 남덕유산이 더 의미있는 산으로 회자된다.

지도상 적힌 이름은 제 1 덕유산이며 옛날엔 황봉 (黃峰), 봉황산 (鳳凰山) 으로 불렸다.

2008 년 11 월 1 일부터 옛 이름인 봉황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남덕유산은 북덕유산과는 달리 장쾌한 기상으로 솟은 바위 뼈대는 개골산이라 불린다.

 

산 경치가 묘향(妙香)과 금강(金剛)을 닮아 황홀할만큼 아름답다.

남덕유와 장수 덕유로 불리는 동봉과 서봉사이 황새 늦은목이라는 능선을 갖고 남쪽으로

육십령의 대령을 안고 자수정 산지로도 유명하다.

또한 장수쪽의 토옥동(土沃洞) 계곡을 거느리며 그 아래는 장수온천이 분출되고 있으며

동봉은 삿갓봉을 거느리고 구한말 거창의 의병사의 빛난 한쪽을 기록하고 있다.

 

남덕유산은 3대강의 발원샘을 갖고 있는데 육십령은 금강(錦江)의 발원샘이며 정상 남쪽

기슭에 있는 참샘은 진주 남강(南江)의 첫 물길이 되며 북쪽 바른골과 삿갓골샘은

낙동강의 지류인 황강(黃江)의 첫 물길이다.

 

함양쪽에 있는 영각사는 신라 헌강왕 2년(876)에 심광대사(審光大師)가 창건 했으며

조선 세조 31년(1449) 원경(圓鏡)대사가 중건 하였으며 중종 18년(1523)에 성묵(性默)

대사가 중창한 절로 6.25때 설파(雪坡)대사가 감수하여 만든 화엄경판까지 불타버려 1959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남덕유산 정상에서의 인증샷

동료산꾼들과 남덕유산 정상에서

이곳 데크목에서 시작되는 진양기맥 길...2011년 12월 18일 그 당시 얼마나 추웠던지

체감온도가 영하 35도 정도에 서 있기조차 힘들만큼 바람이 세차게 불었던 그날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되고 말았으니...겨울에 오면 이곳 정상석을 놓고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치열한 쟁탈전을 벌여야 했는데 오늘은 우리 일행이외는 아무도 없다

진양기맥 개념도

남덕유산 정상에서 바라본 함양군 서상면의 모습

남덕유산 정상에서 바라본 장수군의 모습

가야할 삿갓봉과 무룡산 오늘따라 왠지 멀게만 느껴진다

남덕유산 우회 갈림길(08:43)

아직까지는 걸을만하다

월성치(月城峙:09:10)

이정표(↑ 삿갓대피소 2.9km ↓ 남덕유산 1.4km→ 황점마을 3.8km)와 덕유산 국립공원

안내도가 서 있고 우측으로는 황점마을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와 띠지가 보이나

좌측의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로 이어지는 등로는 뚜렸하기는 하나 국공파가 출입금지란다

황점마을로 내려가면 월성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거창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월성계곡은 백제 서동왕자와 신라 선화 선화공주의 로맨스가

서려있는 곳으로

전설에 따르면 백제 왕자 서동

(薯童)이 신라 공주 선화를 꾀어서 백제의 도읍

부여로 돌아가던 길에 쉬어 간 곳이라고 한다. 또 신라의 사신이 후백제의 구원을 얻기 위하여

가는 도중 신라가 고려에 항복하였기에 신표 인장을 버리고 달아났던 곳이라고도 한다.

월성계곡의 첫머리는 강선대(降仙臺)와 모암정(帽岩亭)이다.

 

강선대는 조선 인조 때 척화신 동계 정온(鄭蘊) 선생이 남한산성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살았던

덕유산 모리재 초입에 있는 명소로 경치가 좋아서 신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노닐었다는 전설이 있다.

대를 들러리하고 있는 맞은편 고숲(古林)에는 모암 임지예(林芝藝)를 기려 세운 모암정이 물과 어울린다.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계곡을 돌 때마다 마을이 있고 넓은 반석이 개울을 따라 펼쳐진다.

 

창선리에 이르면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 흐름이 마치 눈이 흩날리는 모습같다 하여 분설담(濆雪潭)이라 부르는 명소가 나온다.

바위 벼랑을 끼고 돌아 흐르는 물길 아래 누운 반석이 물결에 패이고 패여 물고기 비늘 형상을 이룬다.

분설담 위쪽에는 마치 양 날개로 병사들의 사열을 받고 있는 듯한 당당한 위풍의 장군바위가 서 있다.

17세기 화가 진재 김윤겸(金允謙)의 진경산수 화첩에 그려진 경치를 그대로 빼닮았다

월성에서 황점으로 오르는 길 중간 지점에는 사선대(四仙臺)가 있다.

 

동춘당 송준길(宋浚吉) 선생이 이곳에 은거하면서 머물러 송기(宋基) 또는 송대(宋臺)라고 불렀다.

1909년 고종의 5남 의친왕 강()이 나라가 어지러울 때 전() 승지 정태균을 찾아와 머물면서

북상·위천 지방의 우국청년들과 이곳 일대를 뒷날 의병의 근거지로 삼으려고 준비하던 중 일제에

발각되어 뜻을 이루지 못한 구국의 한이 서린 곳이다.

 

왕실의 선원(璿源)을 뜻한 이름으로 사선대(思璿臺)라 부른 것을, 바위 포갬이 4층이고

돌 위에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에 의해 사선대라고 부른다.

기단 위의 3층 석탑을 방불케 하는 사선대 맨 위 바위 모양은 마치 거북 같기도 하고,

봉황새 모양 같기도 한데, 그 머리 부분이 남덕유산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동료들과 휴식을 취하면서 과일로 원기 보충을

하는데 국민안전처에서 보낸 폭염주의보 메시지가 핸드폰 화면에 뜬다

해발 1,300고지가 넘는 이곳에도 덥기는 마찬가지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오듯 흐른다 
그 사이에 선두는 사라져 버리고 할 수 없이 우리도 길을 떠난다

조망바위(09:25)

능선에서 바라본 황점마을(경남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 소재)

황점은 옛 이름이 삼천동(三川洞)으로, 조선조 때 쇠(鐵)가 많이 나던 곳이라 한다.

유황(硫黃)을 많이 구웠다는 데서 황점(黃點)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지금도 월성광산이 있다.

神仙으로 살아갈 수 없어 세속적인 가치를 떨쳐버릴 수가 없기에 그 가치를 틔워내기 위해서

고통스러울 수 있는 세속의 삶을 살아가면서 못다핀 꽃을 피워야 한다.

 

아직은 그리움과 집착으로 그것을 터트려 겉으로 끄집어내지 못한다면

내 삶이 마음 속에서 곪아 썩는 못난 아픔으로 그칠 것 같아 세속적인

삶일지언정 꽃을 피우는 일이 꼭 고통스럽고 아프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프지 않으니 흔들리지도 않아야 한다. 그러나 아프도록 그리워는

해야 하는데,감정이 마모되거나 무미건조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런

통과 절실함이 메말라가면 그리움의 향기도 탈색된, 그저 그리워하던

것이니까? 라는 정도의 집착으로 남아갈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향기를 잃은 그리움은 본질적인 것을 상실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픈 만큼의 진실성이야말로 그리움을 향기롭게 하는 것일 텐데...

아픔이 사라지면서 그 진실성도 가벼워지는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아픔은 그리움을 존재의 안으로 새긴 흔적이 되어야 한다.

아픈만큼 처절한 그리움도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직은 아프도록 그리워하라.

그늘이 없는 퇴약볕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체력저하 현상이 오기 시작한다

능선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니 동료산꾼들이 너나 할것없이 그 자리에 서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선 채로 휴식을 취한다... 살 것만 같은 느낌이다

예전에 이곳에 묘지가 있었나?...묘비처럼 생긴 곳에 글짜가 새겨져 있어나 판독불가

다시 고도를 높이니...

안부가 나오고...

백두대간을 3번이나 하면서 이 길을 걷건만 올때마다 다른 느낌은 나만의 생각일까?

남덕유산을 지난지가 한참이나 되었건만 이제 겨우 2.2km라니...

계단을 올라 능선에 도착하니 뾰족한 봉우리가 나온다

삿갓봉인줄 알고 올랐더니... 1,340봉인데 전망하나는 끝내준다

가야할 삿갓봉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1,340봉(10:15)

삿갓봉인줄 알고 올랐더니 삿갓봉은 아직도 멀게만 보인다

오늘 후미에서 나와 보조를 맞춰주는 대단한 산꾼 군이대장님과 시화님

군이 대장님과 같이 대간길을 걸어보기는 처음이다

삿갓봉 우회 갈림길(10:23)

人(사람)이 山(산)에 오르면 仙(신선)이 된다는 의미를 되새겨 본다.

거꾸로 人(사람)이 谷(계곡)을 벗어나면 그것이 바로 俗(속)이니,

우리는 대부분 신선이 아닌 속세의 삶에 찌들려 살아가고 있다.

신선으로 사는 것과 속세에서 사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

 

신선으로 산다는 것은 꿈,사랑,돈,권력,명예... 등의 세속적인 가치를 초월하여 사는 것일 것이고,

속세에서 산다는 것은 그런 가치를 그리워하고 추구하면서 꽃을 피우며 살아가야 하는

큰 차이... 그게 사바세계에 살아가는 衆生의 한계일까?

삿갓봉(1,418.6m:10:30)

경남 거창군 북상면과 전북 무주군 안성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멀리서 보면 삿갓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으로 남덕유산이

손에 잡힐듯이 보이고 바로 아래에는 월성계곡 끝자락에 황점마을이

보이고 바로 아래에는 가야할 삿갓재대피소가 있다.

삿갓봉 우회 갈림길 이정표(10:30)

삿갓봉 정상에서 진양기맥 능선 사진 몇장 찍는 사이에 마지막으로 같이가던

군이대장과 시화님마저 먼저 가버리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오기에 능선에서

살짝 벗어나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일어서니 시간차는 더 벌어진다

삿갓재 대피소(10:50)

먼저 도착한 동료산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지난번 남진길에는 발디들 틈이없어 마치 남대문시장 노점상만큼이나

번잡했는데 여름철인 지금은 마치 절간처럼 조용하다

그래도 담당자가 있는지 물이 모자란 동료들이 생수를 사서 보충하고 있다

맨 나중에 도착한 범여도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잠깐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을 떠난다

대피소를 지나면서 오르막이 나오고 기상관측 장비가 설치되어 있다

뒤돌아 본 삿갓봉의 모습

이곳을 지나면서부터는 숲이 그리많지 않고 퇴악볕에 많이 노출된다

헬기장(11:05)

이곳이 해발 1,300고지 지점... 덥기는 도시와 별반 차이가 없는듯 하다

보이는 무룡산이 왜그리 멀게만 느껴지는지...여기서부터 체력저하가 시작되고

다리는 무겁고 발걸음은 자꾸만 느려지는 느낌이다

자주색 꿩의 다리

나만큼 힘들게 사는구나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다면 업신 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긴다.

성인이 말씀하시길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다

                                                       보왕삼매론 中에서

구조 이정목(11:30)

이곳부터 무룡산 정상까지의 30분정도 걷는 등로는 나뭇가지 하나없는 그야말로 苦難의 대간 길이다

조금을 더 오르니 꽤나 긴 데크목 계단이 나오고 좌.우로는 비비추와 원추리 군락지가 조성되어 있다

더워도 너무 더워 이젠 걸어갈 힘조차 없어 주저앉아 쉬고 있으니 하늘마음, 백두한라, 노바님이

힘들게 계단을 올라 오는데... 이곳에서 베낭을 내리고 막걸리 한병을 나눠 마신다

비비추와 원추리 군락지

무룡산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 덕유능선

데크목 계단에서 바라본 진양기맥 능선

진양기맥 능선인 남령, 월성산, 그리고 금원산, 기백산, 거망산, 황석산 등

거창의 명산들과 그 너머 지리산인듯한 봉우리가 보이건만 확인할 길은 없다

공터(11:50)

2년전 남진길(2014년 1월 27일)에는 이곳 암릉에서 덕유 일출을

촬영하던 찍사들이 엄청 많았던 곳인데...

드디어 헬기장이 있는 무룡산 정상에 오른다

삿갓재를 지나면서부터는 황점마을에서 올라온 등산객들이 보인다

무룡산 정상에는 어느 산악회에서 자리를 점령(?)하고 술판을 벌이고 있다

무룡산(舞龍山:1,492m:12:00)

경남 거창군 북상면 산수리와 무주군 안성면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산수마을 사람들은 ‘흰덤뿌대기’라고 부르는 깨끗하고 신령스런 산이다.

옛 이름은 불영봉(佛影峰)으로 백두대간상의 남덕유산과 북덕유산(향적봉)을 이어주는

산으로 용이 춤추는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삿갓재 대피소에서 내려가는 길인 황점마을은 용의 꼬리에 해당한다

무룡산 정상 2등 삼각점(△무주 27 / 1987재설)

덕유능선의 가운데 위치한 무룡산. 이 산의 중심으로 산의 형세는 판이하게 다르다.

향적봉, 중봉 등은 ‛德裕’라는 이름에 걸맞게 편안한 느낌을 주는 반면

반대편의 동봉(남덕유산), 서봉(장수 덕유산)및 삿갓봉은 위압적이고 고압적이다

전혀 덕유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룡산을 중심으로 남덕유와 북덕유가 분리되길 원했던 것일까?

안부(12:15)

무룡산을 지나 예전에 없는 데크목 계단 아래 그늘에서 마지막 베낭털이를

하면서 동료들과 휴식을 취한 후 내려서니 안부가 나오는데 또 다시 퇴약볕이다

KTF이동통신탑(12:25)

지나온 무룡산이 뭐가 아쉬운지 지쳐서 걸어가는 산꾼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1,428봉(12:38)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무주군 안성면 원통골로 향하는 길이다

朱木(12:42)

돌탑봉(12:55)

누군가가 메직으로 가림봉이라고 표기를 해놨다

돌탑봉 이정표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아직도 가야할 동엽령이 2km나 남았다

다음 구간의 향적봉과 백암봉이 보이고...움푹 꺼진곳이 동엽령이다

1,380봉(13:05)

1,359봉 이정표(13:15)

1,359봉은 다행히 봉우리로 오르지 않고 좌측으로 우회하며 동엽령으로 이어진다

구조 이정목(13:28)

고무판 계단을 따라서 내려가는데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백암봉이 보인다

동엽령(冬葉嶺:1,320m:13:35)

경남 거창군 북상면과 전북 무주군 안성면의 경계에 있는 동엽령은 '겨울잎'으로

해석되는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 일대에서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기가 어렵다.

무주와 동엽령을 마주하고 있는 거창군에서 동엽령을 '동업이재'로도

부르는 것을 보면 이런저런 짐작을 해볼 수는 있다.

거창군이 발간한 <거창군사(居昌郡史)>는 동엽령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의 토산품을 교역하기 위해 넘나들던 재이다.

재로 오르는 병곡 대하골(현재 거창군 북상면 병곡리)에는 옛날 동업이재를

넘나들던 나그네를 위해 술을 빚어 팔았다고 하는 주막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엽령에서 다시 안성대피소까지 4.2km라는 거리를 내려가야

하는데 무더위에 너무 지친 탓인지 도데체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누가 대신 걸어주지 않을 길... 죽어나 사나 가야지

등로에다가 돌을 깔아놓아 관절에 엄청난 대미지가 오는 느낌이다

얼마나 지루한 지 0.5km 지점에 도착했는데 느낌상 30분은 더 걸린 느낌이다

이정표(14:15)

이정표(←안성탐방지원센터 2.9km, 칠연폭포 2.0km →동엽령 1.3km)

아직도 가야할 길이 2.9km... 왜 이리 길이 줄어들지 않는지 그 자리에서 주저않고 싶다

다리(14:30)

바로 앞에서 걸어가는 시화님도 힘이 들기는 나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칠연계곡의 모습

칠연계곡 갈림길(14:50)

이곳에서 0.3km 밖에 안되는 여름의 칠연계곡을 가보고 싶지만 지금

컨디션으로는 도저히 힘들것 같아 포기하고 그냥 안성탐방지원센터로 향한다

칠연폭포(七淵瀑布)

무주군 안성면 통안마을 뒤 덕유산 쪽에 반석으로 형성된 계곡과 그 일대를 칠연암동이라 하는데,

무주구천동에 비해 그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기암괴석과 크고 작은 폭포, 소와 담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작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뒤지지 않는다.

 

이곳의 대표적인 명소는 칠연폭포로 일곱개의 폭포와 못이 연이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폭포는 위에서 아래로 소와 소 사이를 맑은 물이 완만한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린다.

 

2014년 1월 12일 백두대간 남진때의 모습

자동차가 다닐만큼 넓은 임도를 따라 마지막 힘을 내며 걸어간다

문덕소(問德沼:14:55)

칠연계곡과 문덕소에 얽힌 전설

옛날에 한 도사가 신선이 되기 위해 하늘에 기도를 하는데, 하늘에 계시를 받기를 비법이

들어있는 비책이 안성면 봉산마을 책바위에 있음을 알고 무주 안성으로 찾아와 책바위에서

책을 얻어 비법을 전수받고 용추폭포 부근에 이르렀는데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허기를 느껴

길가에 있는 노랭이 영감집에서 점심을 청하게 되는데 그 집 주인인 노랭이 영감이 쫓아버린다.

 

그러나 며느리는 몰래 쌀을 가져와 도사에게 주게 되는데 이에

도사는 신선이 되기위해

공부한 것을 잊어빌고 화를 참지못해 도사를 도와준 며느리를 불러내고는

노랭이 영감집을 폭포로 만들어 버린다.

이를 알게된 옥황상제께서는 도인에게 호통을 치며 덕을 배풀었는지를 물었던

장소라 해서 문덕소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옥황상제에게 벌을 받은 도사는 칠연폭포에서 한 폭포마다 1년씩 7년에 걸쳐

반성을 하며 도를 닦아서 옥황상제의 용서를 받아 향적봉에 올라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무주군지에 전해온다

드디어 오늘의 날머리인 안성탐방지원센터가 보인다

안성탐방지원센터(15:05)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씨에 12시간이 넘는 범여...무식한 건지

용감한 건지 알길이 없고 미처도 보통 미친게 아닌지 모르겠다

기진맥진 상태로 내려오니 먼저 내려온 태양 아우가 션한 맥주를 권한다

연거푸 3잔을 마시고 계곡으로 들어가 홀라당 벗고 깔끔하게 알탕을

한 다음에 식당으로 옮겨 닭도리탕에 소+맥을 말아 너댓잔을 마시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니 아~~~ 피곤하다

낼 아침에 또 모친 기일이라 고향(경남 의령)으로 가야 하는데 갈란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