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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백두대간 3차 북진(終)

백두대간 제6구간 - 무령고개에서 육십령까지

by 범여(梵如) 2016. 11. 21.

 

첫사랑 찾아가듯 生涯 맨 처음 시작한 白頭大幹 길을 걷다

☞ 산행일자:  2016년 11월 20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약간의 박무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12.5km + 어프로치 0.5km   / 3시간 52분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무령고개-영취산-구조등 1-1-무명봉-쉼터1-부전계곡 갈림길-쉼터2-무명봉

                 구조등 1-3-논개 생가 갈림길-덕운봉 갈림길-조망바위-전망대 바위-이정표-무명봉

                 무명봉-산죽길-961.5봉-북바위-대곡호갈림길-민령-육십령터널 위-구시봉

                샘터-산삼 휴양림 갈림길-884.5봉-무명봉-이정표-육십령

재 지: 경남 함양군 서하면,서상면 / 전북 장수군 번암면, 장계면


토요일에 까칠한 딸래미 결혼식을 끝내고 집에오니 긴장이 풀리는지 갑자기 온 몸에 氣가 빠지는 느낌이다

물 한모금 마시고 초저녁인 7시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어나니 새벽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잠이 오질않아 거실에 나왔다가 평소처럼 딸래미방의 문을 열어보니 텅비어 있다.

 

늘 아빠에게 까칠한 딸년이 보이지 않으니... 아! 이 넘이 이제 내 품을 떠나는구나.조금은 아쉽다...

조금 더 잘해줄 걸... 이런저런 생각 때문인지 도대체 잠을 이룰수가 없다

그래 모든걸 잊어 버리고 산이나 가자 생각하고 베낭을 챙기지만 막상 갈 곳이 생각나질 않는다.

그러다가 생각난 곳이 내가 2009년 1월 맨처음 백두대간이란 곳에 처음 발을 들여논 곳이

무령고개에서 육십령 구간인데... 웬지 이곳이 가고 싶어 무작정 남부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잘 살아야 할터인데...

서울 남부 터미널 → 전주행 버스표

집에서 15분 거리인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05시 45분 표를 예매하고 잠시 후 버스에 오르니

새벽에 일어난 탓인지 차에 오르자마자 잠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버스는 호남고속도로 여산휴게소를 지나고 있었다.

잠시 후에 버스는 전주 시내를 들어서고 곧이어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전주시외버스 터미널(08:40)

전주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08시 40분...

다시 09시 10분에 출발하는 장계행 버스표를 산 다음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라면에 김밥 한줄로

아침을 해결하고,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빼서 마신 다음에 버스 계류장으로 향한다 

전주발 장계행 버스표

전주에서 출발한 버스는 진안을 거쳐 장계 터미널로 향하는데 손님이란 달랑 대여섯명

그러다가 진안과 천천이란 곳에서 4명이 내리고 난 장계에서 내린 다음 1명만 태우고 장수로 향한다

진안과 장수방향의 버스 시간표

장계시외 버스 터미널(10:25)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무령계곡으로 향한다

꼬불꼬불한 743번 지방도를 따라서 가는 무령고개 가는 길에는 대곡호라는 커다란

저수지가 보이고 잠시 후 임진왜란 때에 진주성이 함락되자 19살의 나이에 촉석루에서

왜장인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껴안고 남강물에 몸을 던진 충절의 여인 논개의

생가를 지나 구절양장의 도로를 따라서 무령고개로 향한다


무령계곡(930m:10:45)

장수군 장계면과 번암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743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고개 윗쪽으로는 영취산에서 장안산으로 이어지는 금.호남 정맥의 시발점이 되는곳에

동물이동통로가 설치되어 있고 장안산으로 오는 길에는 등산객들이 미어 터질듯많이 올라가지만

내가 오르는 대간길의 영취산 방향으로는 달랑 나혼자 뿐이다

지도상에는 무령고개로 표기가 되어 있지만, 안내 표지판에는 무룡고개로 표기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도에 '무령고개'로 표기되어 있는 무룡고개는 전북 장수군 번암면과

장계면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해발 930m의 높이로서 장안산(1075.6m)과

영취산(1236.7m)이 만나는 안부의 고개로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는 '금남호남정맥'이란 이름으로 이 고개를 거쳐서 장안산으로 넘어간다.

 무룡(舞龍)은 '용이 춤을 춘다'는 뜻으로 무룡궁(舞龍宮)이라 부르는 큰 명당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며

산세가 마치 용이 꿈틀꿈틀 살아서 무룡고개에서 장안산으로 올라가는 형상이라 한다.

 

또한 선인들은 호남인의 재질과 예기가 이상의 무룡궁의 산경에서 부터 보았다는 것이다,
무룡궁의 산세가 힘차게 치솟아 장안산에 좌정한다. 그러므로 장안산은 호남과 호서의 조산이며 진산이다.
무룡궁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서북으로 금강의 최상류지대이며, 서남은 섬진강의 최상류이고, 동남은 낙동강의 상류지대가 되며 장안산과 영취산을 이어주는 무룡고개는 풍수지리학상으로 입수(入首)라 표현하는데 이는 머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곳 무룡고개에는 연산군 때 역적으로 몰린 유자광이 참수된 후

금부에서 그의 뒤를 추적한 결과 조상의 묘가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조상의 묘소 덕분으로 왕후장상이 끊이지 않았다며 나졸을 보내 묘소를 파헤쳤다는 설이 있다.

 

장수군은 '무진장'이라 불리는 전북 3대 오지 중 한 곳이다. 
게다가 무룡고개는 장수에서도 오지 취급을 받았으므로 그야말로 오지 중 오지인 것이다.
그러니 이곳을 찿기가 얼마나 어렵고 외졌던 곳인가를 이정도의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실감하고도 남을 것이다.

내가 대간과 정맥, 기,지맥을 처음 시작한 곳이 이 곳...

사랑으로 치면 첫사랑 같은 곳이라 더욱 기억이 뚜렸한 곳이다 

2009년 1월4일 백두대간이 뭔지도 모르고 친구따라 왔다가 지금까지

산에 미쳐서 이곳 저곳을 헤맨지가 어언 8년이 다되어 간다

 

그 동안 백두대간 2회, 9정맥, 9기맥, 40여 지맥을 했으니 쥔장 잘못 만난

범여의 두 다리(足)에겐 늘 미안하다예전엔 보이는 저곳에선 기타를 치면서

등산객들의 호주머니를 턴(?) 아저씨는 오늘 보이질 않고 지대가 높은 탓인지

세찬 바람에 날씨는 생각보다 차갑다

초입에 선답자의 시그널이 지저분하게 느낄 정도로 많이 걸려있다


등로 초입에 있는 백두대간 안내 표지판 안에서 산행을 시작하다(10:50) 

예전에 없었던 계단을 따라서 부지런히 오르니 영취산 정상이 나타난다.

영취산(靈鷲山:1075.6m:09:30)

전북 장수군 장계면과 경남 함양군 서상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영취산(靈鷲山)은 원래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그리하 주위에 있는 산으로 부처님께서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달음 얻은 뒤

설법을 하시던 곳이 영취산(영축산이라고도 함)이다.  양산 통도사 뒷산이 인도의 영취산과 마주보고

있다고 해서 영취산이라고 하며 통도사 대웅전(금강계단)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불상이 없다  

 

영취산 하면 철쭉으로 유명한 여수의 영취산이나 양산 통도사를 외호하고 있는

영취산을 떠올리며 대간상의 영취산은 산꾼들 사이에 그다지 회자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오르는 영취산 또한 예사롭게 여길 수 없다.

특히 백두대간의 학습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백두대간은 山自分水領 원칙에 따라 이어진다.

 

그리고 대간은 정맥과 함께 10대강을 나눈다 10대 강 가운데 3개의 강 유역을 나누는 곳은

한남금북정맥이 갈라지는 속리산 천왕봉과 금남호남정맥을 낳는 이 곳 영취산 등 단 두 곳뿐이다.

속리산 비로봉은 낙동강, 금강, 그리고 한강(남한강)의 유역을 가르며, 영취산은 낙동강,

섬진강, 금강의 유역을 나눈다...그래서 이 두 곳을 三派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취산 정상에 오르니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질 않는다

이런 명산을 전세내다 시피하여 삼각대를 이용하여 인증샷을 남긴다


넓은 공터로 이루어진 영취산 정상에는 돌탑이 있고, 삼각점(함양 309, 2002 복구)이 있다.

그리고 전일상호신용금고에서 세운 이정표에는 '1,075.6m/(북쪽)깃대봉 7.5km, (서쪽)무령고개 0.4km,

(남쪽)백운산 3.8km'라 적혀 있고, 또 하나 서부지방산림관리청에서 세운 이정표에는 '육십령 11.8km,

중치 8.2km'라 적혀 있고 장수군에서 세운 안내판에는 '낙동강, 금강, 섬진강 분수령'이라

적혀 있으며, 육십령 약 11km(7시간), 장안산 약 3.5km(2시간), 백운산 약 3.5km(2시간),

샘터(무룡궁) 약 0.5km(30분)이라 적혀 있다.

영취산 정상 이정표

영취산 정상 삼각점(△함양 309 / 2002 복구)


나뭇가지 사이로 장안산이 살짝 보인다

장안산은 육당 최남선이 산의 명승과 종산 개념 등을 고려하여 선정한 12명산에

호남의 산을 대표하며 전국의 8대 종산중에 제일 광활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전국 8대 종산이란 종주산(宗主山)을 말하는 것으로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 덕유산, 치악산, 장안산을 말한다

영취산에서 조금 머무르는 사이에 세찬 바람으로 인해 서둘러 길을 떠난다

119구조대 1-1 이정표(11:12)

쉼터1(11:20)


부전계곡 갈림길(11:21)

산꾼들이 쉴 수있는 넓은 공터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일반 등산객들의

시그널들이 마치 굿당에서 쓰이는 오방번처럼 어지럽게 걸려있는 이곳이 부전계곡 내려가는 길이다

이곳으로 내려가면 함양징으로 유명한 꽃부리 장터(서상면 꽃부리)가 나온다

 

징은 농악놀이 중 빠질 수 없는 악기로 농악기 중 '바람소리'라 하며, 소리가 가장 멀리까지 울리는 악기라 한다.

또 여러 소리를 아우르는 기운을 가진 악기라 집에 징을 걸어두면 잡음 없이 늘 화평하다 하여 집집마다

하나씩은 있었다.

징은 노동과 놀이가 따로이지 않았던 시절 그만큼 가까웠다는 뜻이다.

 

함양징은 해방 이후 전국에서 제일 알아주는 징이었다 한다.

함양군에 따르면 함양 방짜 징(꽃부리징)의 명장 오덕수가 1947년 이곳 서상면 꽃부리

(또는 꽃뿌리)에서 징점을 열고 1978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30여 년 동안 징을 제작했다.

당시 이곳 꽃부리는 물론 서하면 송계리, 봉전리, 안의면 석천리 등에 수십 채의 징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현재 거창에서 두부자공방'을 하고 있는 경남무형문화재 제14호 이용구 대정이

(징 작업의 최고 기술자를 이르는 말)도 이곳 오덕수 명장으로부터 배웠다 한다.(경남도민일보 자료 인용)

쉼터2(11:25)

시야가 트이면서 덕운봉으로 이어지는 제산봉(霽山峰:852.6m)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진양기맥 능선이 아련하다

무명봉(11:27)

함양군에서 등로 관리를 아주 잘해놔서 역시 백두대간이야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쉽다면 웬만한 봉우리는 무시하고 봉우리 아랫쪽에서 사면길을 만들어서 봉우리에 오를 수 없다는

점인데 2년전 남진길엔 어둠속에 걷느라고 그냥 지나친 무명봉에 오르니 잡목만 무성하다 

야간 산꾼을 배려함인가 보다

기.지맥길에서 구세주처럼 느껴지는 시그널이 고속도로처럼 등로가 있는 대간길에서는 공해처럼 느껴진다

참으로 인간이란 존재는 간사한 동물인가 보다...


논개생가 갈림길(11:32) 논개의 영정

1574년 영취산 북쪽의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왜장을 껴안은 채로 죽은 논개의 묘는

백두대간 육십령 동남쪽으로 십리쯤 떨어진 함양 서상면 금당리 방지마을 뒷산에 있다.

대간에서 나고 대간에 묻힌 것.논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보통 경상우도의 병마절도사인

최경회(崔慶會)의 후처로, 임진왜란 때 최경회가 전사하자 촉석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본군의

잔치에 참석하여 일본 장수인 게야무라 로구스케(毛谷村六助)를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 정도까지만 알고 있다.

 

원래 양반가의 딸이었으나 아버지가 사망하고 집안에 어려움이 겹쳐 가산을 탕진하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의 후처가 되었다고 전한다.

그 밖의 자세한 성장과정은 알 수가 없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5월 4일에 이미

서울을 빼앗기고 진주성만이 남았을 때 왜병을 맞아 싸우던 수많은 군관민이 전사 또는

자결하고 마침내 성이 함락되고 최경회는 일본군에 의해 전사한다(제2차 진주성 싸움).

일본군 왜장들은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촉석루(矗石樓)에서 주연을 벌이는데 논개는

최경회의 원수를 갚기 위해 기생으로 위장하여 참석하게 된다.

 

이 자리에 있던 그녀는 계획대로 열손가락 마디마디에 반지를 끼고 술에 취한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毛谷村六助]를 꾀어 벽류(碧流) 속에 있는 바위에 올라 껴안고

남강(南江)에 떨어져 적장과 함께 죽었다.

훗날 이 바위를 의암(義岩)이라 불렀으며, 사당(祠堂)을 세워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다.

1846년(헌종 12) 당시의 현감 정주석(鄭胄錫)이 장수군 장수면(長水面) 장수리에 논개가 자라난

고장임을 기념하기 위하여 논개생향비(論介生鄕碑)를 건립하였다. 그가 비문을 짓고 그

의 아들이 글씨를 썼다.

1956년 '논개사당(論介祠堂)'을 건립할 때 땅 속에 파묻혀 있던 것을 현 위치에 옮겨놓았다.

비문에는 "矗石義妓論介生長鄕竪名碑"라고 씌어 있다

논개 생가 이정표를 지나니 덕운봉 서봉이라 불리는 갈림봉이 보인다

덕운봉 갈림길(11:42)

덕운봉 갈림길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백운산

우측에 보이는 덕운봉은 째려만 보고 그냥 패~스

전통적인 육산이 이 구간의 등로에 간간히 멋진 암릉도 만난다

조망바위(11:47)

가야할 구시봉과 지난 7월에 걸었던 남덕유산과 서봉(장수 덕유산)의 모습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저곳 어디쯤에 논개의 묘가 있는 곳이다

저 곳은 논개의 할아버지와 조상들이 살던 곳으로

지금도 신안주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멋진 암릉이 보이는데 전방대 바위(978m)이다

이곳에서 오늘 처음으로 산에서 산꾼을 만난다

정상에 오르니 전망대 바위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가슴이 확 트일것만 같은 그야말로 一望無際이다

논개 생가가 있는 대곡리 주촌마을과 대곡지(大谷池)의 모습

잠시후에 내가 걸어야 할 능선의 모습

전망대 바위에서 내려오니 예전의 대간길에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지던

산죽길은 함양군에서 아주 깔끔하게 등로를 정비해놔서 편하게 길을 걷는다

이정표(12:05)

이정표(←육십령9.0km →덕운봉 1.2km)라고 되어 있다

다시 편안한 등로를 벗어나 무명봉에 올라 보지만 잡목만 무성하다

잘 관리된 산죽길... 함양군수님! 복받을 겨... 다음 선거에 재선하셔서 등로관리 잘해주소

또다시 편안한 사면길을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무명봉(12:25)

무명봉에서 내려오니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12:26)

이정표가 있는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니...

961.5봉(12:30)

961.5봉 내려가는 길에는 로프가 처져있고...급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풍력발전 설치 반대 플랑카드가 있는 북바위로 내려선다

북바위 이정표

북바위(12:45)

지금이야 전북과 경남의 경계이지만 삼국시대에는 이곳이 백제와 신라의 영토분쟁이 치열한 곳이였다.

신라와 백제가 전쟁을 할 때 자기들이 이기면 이곳에서 북을 쳤다고해서 붙혀진 이름이라고 한다

북바위에 오르니 산꾼 한명이 조망을 즐기고 있다.

반갑습니다 하니까.. 가지고 온 사과와 호두과자를 간식으로 먹으라고 하면서 권한다

나 역시 이곳에서 점심 대용으로 가지고 온 떡에다가 전주에서 산 막걸리 한병으로 점심을

대신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까

자기는 전주에서 왔다고 하면서 서로의 통성명을 한다

이 분은 나와 같은 연배로 2년전 검찰직 공무원으로 퇴직하고 전주지검 앞에서 법무사를 하고

있다고 하면서 육십령에 부인이 차를 대기 시켜놓았다고 하면서 전주까지 태워 주겠단다

어제 좋은 꿈을 꾸지 않았는데..ㅋㅋㅋ

범여의 단촐한 점심밥상

북바위에서 바라본 논개 생가가 있는 대곡리 주촌마을의 모습

장계는 예로부터 산수가 잘 어우러진 곡창지대로 살기 좋은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 그런지 호남 좌도 농악의 이름난 상쇠들이 많이 배출됐던 고장이 장수라고 한다.

이 부근에서는 가장 높은 봉우리여서 전망이 트여 함양군 서상면 일대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고, 서북쪽엔 오동저수지와 장수군 일대가 내려다 보인다.

어둠속에 5년전 북진때의 상상을 하니 좌쪽 금당리 추상,추하 마을이 손에 잡힐듯하다.

논개의 출생지와 사당은 우측 장수군 궐촌(주촌) 마을에 있으나, 그 무덤은 경남 함양에 있다

 

북바위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에 내려면서 만난 후배산꾼들의 흔적...반갑기만 하다... 다들 잘 있는지?

다시 무명봉에 올랐다가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선다

편한길을 걸어가는데...

능선 좌측으로 폐헬기장이 보인다

오랫만에 만난 멋진 소나무도 늘 같은 모습으로 대간길을 지키고 있다 

억새밭을 지나니...

오늘 산행중에 2번째로 높은 구시봉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낙동정맥길에 만난 십송지(十松指)만큼이나 멋진 소나무도 예전 그대로다

대곡호 갈림길(13:25)

예전에는 없었던 이정표가 보인다

민령(岷嶺:13:26)

경남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와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를 잇는 고개로 민령은 바로 논개의 생가와

무덤을 오가는 대간의 고갯길로 밋밋한 고개’라는 우리 이름인데, 소리에 따라 ‘岷’이라는 한자를 음차하여 부른 이름이다.

논개의 출생지는 고개너머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이지만 묘지는 서상면 금당리에 있다.

지금에 와서는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상태여서 퇴화한 고개가 되어 길의 흔적조차 희미하다.

교통이 편리해진 지금에야 이곳 민령을 넘너들 사람이 없어졌으니 등로가 제구실을 못하므로 고개도

퇴화하여 민령을 쉽게 확인할 수조차 없으니...

철쭉 군락지 터널을 따라서 구시봉으로 향한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터널위(13:40)

대전에서 통영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시원스럽게 보인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부지런히 걷다보니 구시봉 정상에 도착한다

구시봉(1,014.8m:05:10)

경남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장계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옛 이름은 깃대봉이었는데

2006년도에 지명을 구시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옛날 임금님이 신하나 백성들 중에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땅을 하사했는데,

이를 사패지(賜牌地)라 했고, 이 땅에는 누구의 사패지라고 하는 깃대를 꽂아 놓은 데서 깃대봉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깃대봉은 덕유산 남쪽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명소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가을 억새가 장관인 곳이다.

이곳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역으로, 두 나라 영토에 주둔하던 병사들이 번갈아 기를

꽂았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며 깃대봉 동쪽 물은 추상천을 지나 낙동강으로, 서쪽 물은 장계천을 따라 금강으로 향한다.

 

구시봉 표시석 뒷면

구시봉 정상석 뒤에 새겨져 있는 깃대봉과 구시봉 유래: 산림청에서 세운 푯돌에는 「구시봉」이라

적어놓고 “삼국시대 때 신라와 백제의 국경 지대로 그 아래 주둔하던 군사들이 기를 꽂은 곳이라 하여

깃대봉이라 불렀으나, 옛날 한 장수가 이 산에 올라보니 산 형태가 구시형이라 2006. 1. 6 「구시봉」

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고 적고 있다.

 

구시형이란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몰라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구시(1) - “ ‘구덩이’의 경상도 사투리”, 구시(2) - “소나 말 따위의 가축들에게 먹이를 담아 주는 그릇.

흔히 큰 나무토막이나 큰 돌을 길쭉하게 파내어 만든다.” 고 표기해 놓았는데, 구시봉이란 여기서 구시(2)를 두고 한 말이다.

구시봉 정상 2등 삼각점(△함양21 / 2000복구)

구시봉 정상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

구시봉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능선과 진양기맥 능선의 모습

구시봉에서 편하게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안부가 나오고 맞은편의

봉우리가 보이는 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깃대봉 쉼터(14:00)

山自分水嶺의 원칙으로 걷는 백두대간을 하면서 종주하면서 등로 옆에서 만나는 샘터는 그리 흔치않다

지리산을 제외하면 미시령 구간의 상봉 아래의 샘터와, 능경봉 아래에 인풍비 단망비 샘터, 백봉령 남쪽

갈미봉의 샘터, 포암산의 하늘샘, 조령산 제3관문 약수터와, 조령산의 조령샘, 대덕산 오르기전에 만났던

 북사면에 있었던 얼음골 약수터, 앞으로 가야할 지리산 아래 남원 운봉읍 노치리에 있는 노치샘,

그리고 이곳 깃대봉의 약수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약수터에서 목을 추기는 길손이시여!

사랑하나 풀어던진 약수물에는 바람으로 일렁이는그대 넋두리가 한가닥 그리움으로 솟아나고...

우리는 한모금의 약수물에서 구원함이 산임을 인식합니다.

우리는 한모금의 약수물에서 여유로운 벗이 산임을 인식합니다."깃대봉 약수터를 사랑하는 사람들

이곳에서 물한모금 마시고 부지런히 육십령으로 향한다

산삼휴양림 갈림길(14:08)

뚜렸한 사면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선 다음에...잡목을 헤치고 또 오르니

아무것도 볼 것이없고 잡목만 무성한 884.5봉이 나온다

884.5봉(14:20)

다시 뚜렸한 등로로 내려온다

나무 계단을 따라서 육십령으로 향한다

암봉(14:32)

이정표를 따라서 육십령 방향으로 가지않고 예전에 내려섰던 함향쪽 육십령으로 향한다

함양쪽 육십령(14:40)

예전엔 백두대간을 육십령에서 마치면 산꾼들 거의 대다수가 이쪽으로 내려와서

산행을 종료했는데 새로 생긴 동물이동통로가 생기면서 요즘 대간꾼들은

100% 장수쪽 휴게소로 내려서면서 함양쪽은 파리만 날리고 있다

예전엔 저곳 매점안의 식당에서 할머니가 해준 김치찌게 맛이 기가

막혔는데 지금은 폐업을 했는지 문이 굳게 잠겨있다

육십령 함양쪽 표시석

함양쪽의 육십령 표시석에는 물레방아골 함양이라고 써있다.

이것은 청나라의 기행문 열하일기의 저자 연암 박 지원이 조선시대에 함양 안의 현감으로

봉직시 국내 최초로 물레방아를 만들어 곡식을 찧는 디딜방아에 활용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2003년부터 함양군내의 모든 축제를 물레방아 축제로 통일하여 개최한다고 한다

육십령 마을의 모습

육십령(六十嶺:698m:14:42)

경남과 전북의 도계이지만 옛날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으로서 군사 요충지이다.
지금의 육십령 마을은 1930년 경 경남과 전북을 잇는 국도가 개통되면서 생겨난 마을이며

이전에는 북쪽으로 두루봉 뒤 군장동(軍藏洞)이란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군장동은 북으로 합미봉, 남으로 두루봉 골짜기에 자리하여 옛날 군사무기를 저장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남쪽의 두루봉은 지금도 성터가 남아 있으며 적에게 위장하기 위하여 섬꺼치(꺼적데기)를 엮어서

산봉우리를 둘러 덮어 적에게 군량미 노적가리로 보이게 속였다고 한다


육십령이란 이름은 옛날 이곳에 도둑떼가 많아 고개 아래 주막에 육십인 이상 모여야 산을 넘을 수

있다고 해서 육십령이라 했다고 하며. 또 하나는 이곳에서 안의 감영까지의

거리가 육십리요, 장수감영까지의 거리가 육십리라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또 안의에서 이 고개까지 오르려면 육십고개를 돌아오게 된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6.25 한국전쟁 당시에 북한군이 남진할 때 경남지방에는 이곳으로 제일 먼저 들어왔는데

넘어올 때에 오백여명의 아군이 이곳을 지키다가 많은 희생자를 내기도 한 곳이다

동물이동통로를 지나 장수쪽 육십령으로 접어든다

베낭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육십령 고개에 있는 수준점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매점에서 전주에서 오신 분하고 이곳에서 돈가스로 점심 식사를 한다

매점 안에는 늦은 시간인데도 돈가스로 식사를 하시는 분이 꽤나 많이 보인다

전주분의 얘기로는 이 식당의 주방장이 워커힐 호텔에서 왔다고 하며 음식을 잘한다고 한다

돈가스에다가 맥주 한병을 마시는데 맛은 있느나 장사가 잘돼서 그런지 서빙은 영 아니다

계산도 선불이고 서빙하는 여인이 불친절하기 그지없다... 기분은 별로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자동차를 얻어타고 전주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전주시외버스 터미널앞(16:40)

이곳까지 차를 태워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터미널로 가서 서울가는 버스표를 예매하는데

서울가는 표가 매진이 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황당하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전주역으로 향한다

전주역(17:00)

전주역에 도착하여 표를 예매하려는데 이곳 역시 표는 없고 앉아서 가려면 밤 10시가

넘어서야 앉아서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참으로 황당하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기관사들의 파업 때문이란 이야기를 듣고 분통이 터진다

연봉이 억대에 달하는 자들이 파업이라니... 정작 파업을 해야 할 비정규직들은

짤릴까봐 찍 소리도 못하고 묵묵히 일하고 있는데... 저런 배부른 자들은 당장 짤라야 하는데...

하는 수없이 18시 26분 무궁호 열차 입석표를 사서 열차에 오르는데 이건 열차가 아니고

콩나물 시루같은 느낌이다...승무원에게 이유를 물은니 이 열차가 오늘 마지막 열차라서 그렀타고 한다

거기다가 기관사가 초짜인지 열차가 엄청 버벅거린다

그러다가 삼례를 지나는데 어느 승객이 문에 다리가 끼었다가 난리를 친다

그런데도 열차는 계속 달리고... 함열인가 하는 곳에서 열차는 서고 승객은 다리를 뺀다

그 바람에 많이 연착이 되고 영등포에 도착하니 밤 10시 20분이 훌쩍 지나 버렸다


 무령고개 교통편

 

○ 대중교통
① 서울-장수 :남부터미널에서 하루 5회 운행하는 직행버스 이용
② 서울-전주 직행/고속 수시운행, 전주-장수 직행버스 수시운행
③ 부산-장계 직행버스 1일 4회, 장계-장수 직행버스 수시운행
▷ 광주-장수 직행버스 수시운행
▷ 장수군 현지교통
1) 장수-덕산(장안산군립공원) : 군내버스 1일 2회(08:30, 17:00)
2) 장수-방화동 입구 : 군내버스 1일 7회(8:15,09:50,11:50,13:10,15:20,17:30,18:30)
3) 장계-장안리 괴목 : 군내버스 1일 6회 (07:20,08:40,11:30,14:20,17:10,18:20)
4) 장계-대곡리 주촌(논개사당) : 군내버스 1일 4회(09:00,13:00,16:20,19:10)
5) 번암-광대동(지지계곡) : 군내버스 1일 4회(09:00,13:00,16:15,17:00(지지리 종점))
※ 현지교통 문의
장수 버스터미널 063-351-7788,
장계 버스터미널 063-352-1514,
번암 버스정류장 063-253-2614

○자가운전
① 호남고속도로 서울 - 전주IC - 진안(임실) - 장수(또는 경부고속도로 서울 - 대전 통영고속도로 덕유산 IC-

장계방면 19번 국도 - 장계 - 11.5km -장수 - 교촌교 - 7.7km -덕산용소주차장)
② 고속도로 부산 - 진주 - 함양 - 남장수IC -장수 (대구 - 함양 - 남장수IC - 장수)
③ 고속도로 광주 - 남원 - 남장수IC -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