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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백두대간 3차 북진(終)

백두대간 제5구간 - 복성이재에서 무령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16. 11. 28.

☞ 산행일자:  2016년 11월 26일~27 (무박 산행)

☞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올해 첫눈을 밟으며 산행을 하다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19km + 어프로치 1km  / 9시간 30분소요

☞ 참석인원: 기분죤산악회 23명과 함께

☞ 산행코스: 복성이재-매봉-치재-꼬부랑재-다리재-봉화산-임도(정자)-연비지맥 분기점

                 무명봉-944봉-936봉-광대치-약초시범단지-월경산 갈림길(왕복)-월경산

                 중재-묘지-중고개재-묵계암 갈림길-백운산-암릉-안부-암봉-싸리나무 군락지

                 1,066봉-선바위 고개 갈림길-영취산-무령고개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백전면, 서하면, 서상면 / 전북 남원시 아영면 / 장수군 번암면, 장계면


정확히 6년전 낙동정맥을 같이 걸었던 산악회에서 백두대간을 간다기에 오랫만에 같이 길을 나선다

지난 7월 중순에 남원으로 귀촌한 동료산꾼 젠틀맨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후배산꾼과 셋이서 여원재에서

복성이재까지  걸었던 그 다음구간을 이어가기 위해 기분죤산악회 대간팀에 합류를 한다

 

지난주 딸래미를 출가 시키고나니 바로 청첩장이 날아들기 시작한다

토요일날 결혼식장이 3군데나 된다... 축의금을 받았으니 인사를 안 할수도 없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집에오니 몸뚱아리는  파김치가 된 느낌이다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에 평소의 습관대로 주섬주섬 베낭을 챙겨서 탑승장소인 모란역으로 향한다

모란역에 도착하니 서너명의 산꾼이 모여 있는데 어느 분인 아는척 하며(닉이 기억나지 않음) 인사를 한다

 

잠시 후 몇명이 더 탄 다음에 버스는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서서 산악회 회장님이 나를 인사 시킨다

이십 몇명이 가는데 6년전의 멤버들은 잘 안보이고 새로운 멤버들이니 완벽하게 물갈이된 느낌이다

예전의 쑥 영감, 강 영감은 고물(고문)로 물러난 모양이다... 하긴 세월앞에 장사있나영감님들! 너무 서러마소...

세상사가 諸行無常이요, 諸法無我인데... 그래도 영감탱이들이 보고싶다.

 

그 와중에도 이  준항회장님과, 짱아 총무, 김진일대장,  나하고 갑장인 친구(닉이 생각 안남)등

예전의 멤버들이 반갑기만 하다...안성 휴게소를 지나면서 피곤했던 탓인지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오늘의 들머리인 복성이재에 도착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복성이재(福星峙:550m:03:45)

전북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시 아영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산줄기는

시리봉과 봉화산을 잇고 물줄기는 낙동강과 섬진강으로 이어진다.

복성(福星)마을로 연유해서 생긴 이름인데 그 유래가 전해오고 있다.

복성이 마을은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와 남원시 아영면 성리 사이에 있는

조그만한 산골마을로 행정구역으로 번암면 논곡리에 속한다.

 

이 마을은 백두대간의 능선이 크고 작은 봉우리를 이룬 첩첩산중이어서 농로도 제대로 없었다.

엣날에 변도탄 이라는 기인(奇人)이 있었는데 나라의 군량미를 관리하는 양관(糧官)으로 있었다.

어느 날 천기를 보고 삼년 내에 국가에 큰 전란이 잇을 것을 알았다.

앞으로 전란에 대비하여 국방을 튼튼히 할 것을 상소 했으나 평화시에 흑세무민(黑世誣民)한다는

이유로 삭탈관직을 당했다. 변도사는 하는 수 없이 피난처를 물색 하던 중 지리산을 의중에 두고

천기를 보니 북두칠성의 복성(複星)이 갑자기 남쪽에서 비치므로 별빛을 따라 지리산 쪽으로 가

다가 별 빛이 멎은 곳에서 쉬었다.

 

이곳이 오늘날 복성부락에서 약간 떨어진 웃 복성마을이다.

변도사는 이곳에 움막을 짓고 피난을 했으며 전란 후에도 머물러 살게 되었다.

그로 인해 이같이 이름이 되었다고 전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주변에는 눈이 꽤 많이 쌓여 있으나 그리 추운 느낌은 아니였다

아이젠을 착용할까 생각을 하다가 이렇게 포근한 날씨면 지금까지의 경험상 착용을 하지 않아도 될듯 싶다...

산행준비를 마치고 어둠속에 사진 몇 카트 찍는 사이에동행한 산꾼들은 벌써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달랑 나 혼자다새벽 4시가 안되었는데 뭣 그리도 급한지...

 

이 산악회도 맥산행 전문 산악회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중증에 걸린 조급증 환자가 많은 모양이다

아마 오늘 3시간 반이상을 어둠속에 걸어야 할 듯 싶다... 오랫만에 어둠속에 걸어본다

범여는 어둠속과 비맞으며 걷는게 딱 질색이라 나홀로 산행을 즐겨하는 편인데근데 어찌하리...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거늘... 먼저간 산꾼들의 렌턴 불빛을보면서 느긋하게 걷는다...

3번째 걷는 백두대간 길... 이 정도 여유는 있어야 하는거 아닌감

소나무 숲을 지나 오름길 좌측의 농장 철조망에 산꾼들의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병신년 음력 시월 스므여드렛날 새벽 하늘의 별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밝다.

참으로 오랫만에 별을 본다... 예전에 변도탄이란 도인이 저 별들을 바라 보면서미래를 예언 했을까?... 

요즘처럼 어려운 시국에는 어케해야 하는지 답을 주소서

매봉(鷹峰:712.2m:04:05)

남원시 아영면 성리(흥부마을)와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 복성이 마을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2010년 백두대간 북진 길에는 없었던 봉우리였으나 2014년 남진길부터 만난 봉우리이다

이곳 매봉부터 봉화산까지 철쭉 군락지가 형성되어 해마다 봄이면 아영면에서 철쭉제가 열린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봉화산은 진달래가 아닌 억새로 유명하고 매봉이 진달래로 유명하다

정상에 있는 데크목에는 비박족들의 텐트 2동이 있기에 조심스레 지나간다

치재(660m:04:12)

남원시 아영면 성리 마을에서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 역적재를 잇는 고개로 깊은 계곡에 양 옆으로

진달래가 배꼭히 군락을 이루는 곳으로 이 지역은 각종 버섯류와 산과일, 산채나물, 고랭지채소 등을 많

이 생산하는 지역으로 주로 대간의 동쪽 사면에서 이루어지며 고개라는 뜻의 ‘峙’와 ‘재’가 합쳐져 지명이 되었다.

치재에 서면 흥부마을로 유명한 아영리 성리마을도 내려다보이는 곳이지만 어둠속이라 모든게 아쉽다 

이 마을에는 판소리에 나오는 화초장 바윗거리, 흰죽배미, 노리다리 등의 지명이 실제로 있다고 한다.

치재에 있는 이정표우측으로는 흥부마을로 이어지는 아영면 성리인데  포도가 유명한 곳이다

지난 7월에 복성이재에서 산행을 마치고 젠틀맨님, 진권아우와 걸어서 가본 곳이다

 

좌측 주차장 방면으로 내려가면 번암면 노단리인데

근세 조선초 중엽에 형성된 흥성장씨 취락이다.

지명의 유래는 어느날 이곳을 지나던 도사가 명명했다 하는데, 이 마을의 주룡을 이루는 산이 성현이

명기를 띠었다해서 대성산이라 이름하였다 하며, 이 마을의 형국이 노나라에서 태어난 대성인(大聖人)

공자님의 집터와 같다고 하여 노단(魯壇)이란 이름을 붙혔다는 것이다.

이렇듯 명당이라 그런지 시골답지 않게 날로 번성해 가고 있다.

치재에서 올라서니 지대가 높은 탓인지 등로에 눈이 꽤 쌓여 있으나 생각보다 그리 미끄럽지는 않다

잠깐 사이에 선두는 어둠속에 줄행랑을 치고, 사각정자와 데크목 광장만 산꾼 범여를 반긴다

꼬부랑재(04:40)

어둠속에 꼬부랑재를 지나가는데 조급증 환자(?)들은 어디까지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무박 산행때는 언제나 꼴찌이다... 어둠속에는 아무리 성능좋은 카메라라도 기록이 안된다

우측으로 아영면 구상리로 내려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이 방향으로 띠지도 한두개씩 보인다.

백두대간길에서는 민밑한 안부를 지나며 꼬부랑재라는 느낌을 느낄 수 없다.

 

대간길 능선과 동쪽 655봉과의 사이에 있는 고개로 치재와 연결되는 꼬불꼬불한 임도를 두고 

꼬부랑재라는 이름이 형성된것 같다.(범여의 생각 中에서)

다리재(04:58)

아영면 구상리 송리마을 내려가는 고개인데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고 이곳에서 중간 그룹을 따라 잡는다.

선 채로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다시 도망을 가버리고... 

표식이 지워진 이정표(05:05)

봉화산(烽火山:919.8m:05:20)

전북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 동화리의 경계산령과 남원시 야영면의 최북단 접경 지역에

위치한 산으로 역사적인 유적지를 간직하고 있다.봉화산은 봉수대의 유적이 지금도 선명히

남아있을뿐만 아니라 오래된 봉화 봉수대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하겠다.

 

고적조사자료에 따르면 "번암면 동화리 장안산 주 140 간 석축 남원 함양 계라 하여 곧 봉수대는

번암면 동화리 장안산에 있고 봉수대의 둘래 약 252m이 되는데 돌로 쌓은 것으로

남원과 함양 간의 경계선에 있다.

이 봉수대는 대체로 통일신라이후부터 폐지된 것으로 보이며 백제와 신라의 국경 분쟁이 잦았던 운봉과

아영면 부근에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봉화산은 위 기록에서와 같이 봉화산은 전에는

장안산으로 불리워졌고 봉화, 봉수대가 봉화산으로 불리운 것이 확실하다.

 

봉화산 정상에서 88올림픽 고속도로와 지리산의 수많은 연봉들을 한눈에 조망할수 있는 곳이다.

봄철에는 봉화산을 오르는 산등성이가 철쭉꽃으로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현재는 정상에 산림 측량 기점인 삼각점이 있어 동화리 노단지역 산의 기점지역이다.

용담을 품은 봉화산은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급한 소식을 알리던 통신수단인 봉수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길 없어 아쉽다.

 

지역주민들은 일제시대에 깃대를 꼽고 측량을 했다는 의미로 깃대봉으로도 부른다.

전북지역에는 많은 봉수대 터가 있는데, 산경표상의 금남정맥에 자리잡은 803봉의

태평봉수대가 가장 크고 원형이 그대로 복원돼 관심을 끌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가락국 시조인 김수로왕, 삼국사기에는 백제 온조왕이 봉수대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눈 속에 묻혀버린 봉화산 정상 삼각점(( 함양23 2002 재설)

봉화산 정상에 있는 무인산불 감시 카메라와 돌탑 형태로 지어진 봉수대, 데크목 광장은 어둠속에 묻혀 버렸고...

하늘의 별빛만 초롱초롱하게 보인다 바람도 불지않고, 그리 춥지 않은데 조급증이란 중병(?)에 걸린 선두는 

벌써 무명봉 아래까지 간 모양이다... 헤드렌턴 불빛만 아른거릴 뿐이다

저리다가 어둠속에 대간길을 끝내려는 모양이다

어둠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장쾌한 저 지리산의 능선... 쳐다만 봐도 가슴 벅차 오른다.

 

저 아래 보이는 흥부마을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고 마을의 가로등만이 세상을 빛추고 있다.

시국이 어두선 요즘 왜 흥부처럼 착하게만 사는 사람들은 보이질 않는가?

광화문에서 嚴冬雪寒에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며 몰려드는 촛불의 행진... 이 나라의 미래는어찌될 지...

나같은 힘없는 民草들은 언제쯤 두 다리 쭉뻗고 편하게 살 수 있을런지

흥부한테 물어보려 해도 깊은 잠에 빠졌는지 대답이 없다

봉화산 쉼터 임도(05:32)

봉화산에서 억새밭을 누비면 내려오니 구상리에서 올라오는 넓은 임도를 만난다

어둠속에 육각정자와 산악기상 관측장비가 설치되어 있는 곳에서 데크목 등로로 올라선다
다시 편안길을 따라서 조금을 더 가니 연비지맥 분기점이 나온다

연비지맥 분기점(05:40)

내년 2월쯤에 남원으로 귀촌한 젠틀맨님과 한번 걸어볼 계획인데 우째 될런지...

연비지맥(鳶飛枝脈)은 ?

백두대간 봉화산(△919.8m) 북쪽 1km 지점인 전라북도 장수군, 남원시와 경상남도 함양군의 경계인 약 945봉에서

남동쪽으로 가지를 쳐 전북과 경남도계를 따라 옥잠봉(680m),88고속도로,연비산(842.8m),오봉산(879m),

팔량재를 지나 삼봉산(1186.7m)에서 전북도경계를 벗어나 경남 함양군으로 넘어가 동북진하여 지안재,팔두재,

화장산(586.4m)을 지나 임천(臨川)이 남강에 합류하는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8.2km의

산줄기로 임천의 우측 분수령이다

무명봉(無名峰:870m:05:41)

전북 장수군 번암면, 남원시 아영면, 경남 함양군 백전면의 경계에 있는 3군 경계봉이다

어둠속에 서부지방 산림청에서 설치한 무명봉이라고 표기한 팻말은 보이질 않고, 문패없는

묘지 2기만 눈 속에 묻혀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亡者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백두대간 남진길의 무명봉 사진(2014년 2월 23일)

944봉(06:05)

무명봉을 지나면서 지리산에서 이곳까지 대간길을 같이 걸어온 남원시와

작별을 하고 이젠 우측으로는 경남 함양군 백전면으로 접어 드는데

아직까지 어둠이 걷힐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곳 너럭바위의 전망 좋은

곳에서 지리산의 멋진 설경을 감상할 기회는 놓쳐 버리고 암릉 아래로 내려선다.

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1시간만 늦게 출발했어도 멋진 작품하나 건질 수 있었을텐데...

이정표(06:11)

암릉구간의 로프를 잡고 눈쌓인 등로를 조심스럽게 내려서니...

예전의 직등구간을 산림을 복원한답시고 우회 등로를 만들어 놨다

산약초 재배단지 표지판을 지나고...

936봉(06:42)

후미팀 4명과 같이 걸어오다가 아무것도 볼 것없는 곳에 천천히 걸어봐야 소득도 없고 하여

이젠 몸땅아리가 예열도 된 상태이고 하여 후미에서 먼저 출발하여 부지런히 걸으니

바로 앞에 3명의 산꾼을 만난다... 이준항 회장님, 김진일님, 그리고 산악회 회장님

다시 오르름길은 시작되고 이제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광대치(廣大峙:07:05)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 광대동과 경남 함양군 백전면 대안리를

잇는 고개로, 우측으로 내려서면 장수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지지리계곡이 있다

광대치는 ‘넓고 큰 고개’라는 뜻이다. 동서 양족에 계곡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쪽의 능선과 동쪽의 능선도 해발이 높아 산 속에 갇혀 있는 형상이다

월경산에서 ‘달이 크게 비치는 고개’라고 하여 광대치라 부르며 그 아래에 있는

마을을 광대동(廣大洞)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6년만에 같이 산행을 하는 3분과 인증샷을 남기고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약초시범단지(07:25)

이정표(←중치 2.6km 봉화산 5.3km)가 있고  넓은 임도를 따라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약초시범단지의 철조망에는 대간 산꾼들의 시그널이 어지럽게 걸려있다

그리고 먼저 도착한 산꾼들이 아침상을 차리고 식사중이다

나도 이곳에서 밥상을 펼치고 가지고 온 버너에 라면을 끓여 막걸리 한잔을

얻어 먹으면서 여유롭게 식사를 끝낸다

아침식사(07:25~08:05)

40분간의 식사를 끝내고 다시 길을 나선다(08:05)

약초시범단지 철조망과 작별을 하니 눈 앞엔 무명봉이 나타나지만 3번째

대간 길이라 그냥 눈팅이만 하고 우측 사면길을 따라서 편하게 걸어간다

월경산 갈림길(08:20)

백두대간 능선에서 300여m 정도 떨어진 월경산을 향해 베낭을 벗어놓고

가는데 이곳은  음지라 그런지 눈이 꽤 많이 쌓여 있어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월경산(月鏡山:980.4m:08:28)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와 경남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

능선에서 약 300m정도 떨어져 있는 산으로 명성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는 산이다.

지명의 유래는 약 200년쯤 한 사람이 고향을 떠나와 지지리 계곡에 살게

되었는데 어느 날 밤 달빛이 밝아 밖을나와 하늘을 쳐다보니 유난히 보름달이

빛을 더해  고향생각을 그리게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산 이름을 월경산이라 불렀고 살던 마을을 광대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월경산 정상 삼각점(△ 함양 315 / 1981 재설)

낙동정맥길에 회장님이셨던 이 준항 회장님과 6년만의 해후

등로에서 바라본 백운산과 중재마을(함양군 백전면 소재)

옛날 중재(중기마을)에는 바람둥이 소금장수가 보따리 장사처럼 바람처럼 왔다

갔는데 어느 과부가 소금장수의 감언이설에 정을 주어 임신을 하였다고 한다.

산달을 4개월 앞두고 소금장수가 다시 왔길래 과부가 임신 사실을 말하니

결혼할 입장이 아니라고 하면서 기다리란다.

그리고는 주막에서 주모와 정쌓기를 하고 밤새 몰래 동네를 빠져나가다가

연못(沼)에 빠져 죽었는데 중기 마을에서는 이 소(沼)를 소금쟁이 소(沼)라고

부르며 과부도 해산하다가 아이와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다시 월경산 갈림길(08:35)

월경산에서 중치로 내려가는 편한 길에도 눈이 꽤나 많이 쌓여있다

 

오늘 구간은 남덕유산, 영취산, 백운산의 험한 구간을 내려와 지리산을 거쳐, 남원, 장수를 

나면서 함양 백전면에서 백운산 올라가기 직전까지 숨을 고르기 위한 구간으로  900~1200m의

대간 능선 타는 맛이 쏠쏠하다.

그만큼 여유롭고 수월하다는 얘기이다... 이곳은 상주구간의 非山非野 구간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중치로 향하는 길은 계속되는 내리막길... 조그만 무명봉을 만나지만 등로는 옆사면길로 이어진다

암봉(08:42)

암봉을 지나면서 급한 내리막길이 시작되는데 눈으로 인해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좌측으로 우회를 한 다음에 내려서니...

잣나무숲 계단을 지나...

중재로 향한다

중재(中峙:650m:09:10)

경남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 중기마을과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백운산과 월경산 사이에 있으며 중치와 중기마을은 임도로 연결되어 있다.

이정표에는 복성이재 12.1km백운산 4.6km라고 쓰여있는 이정표가 있고

 ‘가운데에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이곳에서는 ‘백운산과 월경산의 가운데’라는 의미다.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에 이 고개 이름을 딴 중재마을이 있다.

중재의 이정표

인간의 오만과 탐욕으로 인해 또 대간길이 망가질 모양이다

제발 그대로 두면 안될까... 자연이 망가지면 인간도 망가지는데...

중재에서 백운산 방향으로 오르니 무명묘지 하나가 보이고 노거수 옆에는 벤치 2개가 있다.

이곳에서 맨 후미로 처진 예전의 낙동정맥 멤버였던 이 준항회장님과 매너남님... 물한모금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안부(09:15)

묘지(09:30)

편안한 등로를 따라 걷다보니 잠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동료산꾼들과 얘기로 잠을 자지는 않는다.

독립군(나홀로 산행)으로 활동(등산)을 많이하는 탓에 편안 길이 나오면 졸면서 걷는데는 도사급이다

2년전 남진길에서 만난 벤취도 예전 그대로이다

다시 약간의 오르막으로 올라 섰다가 내려서니 펑퍼짐한 고개가 나온다

중고개재(755m:09:55)

동쪽은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중기마을에 이어지고, 서쪽은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에 이어지는

고개로 조금전에 지나온 중재와 이름이 비슷해서 산행하는 사람들이나 지방 주민들도 자주 혼돈하는 곳이다

고개 동쪽 백운산 자락은 신라시대 영은조사(靈隱祖師)가 창건한 영은사지를 비롯해

많은 암자가 있는데 특히 선농일치(禪農一致)에 의한 선농불교를 제창한 용성스님이

평소 선사의 지론인 선농일치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호미를 들고 세운 농장인

화과원(華果院)이 이곳에 있으며 화과원 동쪽 백운산을 넘는 고개를 절고개라 하였는데

이 절고개가 중(스님)들이 많이 넘나드는 고개라 하여 중(衆)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용성스님은  장수군 번암면출신으로 기미독립선언서 대표 33인중 한 분이다

진종(震鐘) 백용성(白龍城) 대선사(1864~1940)

전북 장수군 번암면에서 탄생하신  백용성 대선사는 16세 때 해인사로 출가하여 화월화상을

은사로 혜조율사를 계사로 수도 정진하였으며 한일합방 후 국권 침탈을 일본에 대항해서

불법(佛法)에 의해 민족을 구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으로 선농불교의 대각사상을 바탕으로

독립계몽운동에 온 힘을 다 기울렸다.

1919년  독립선언 33인에 만해(卍海) 한용운 선사와 함께 불교대표로 서명하여 3.1독립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으며 그로인해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혐의로 1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악명높은 서대문수용소에 수감되었으며 출옥 후에는 불교종단 정화에 힘을 쏟았다.

 

1927년 경남 함양군 백전면 백운산 자락에 화과원(華果院)을 설립하고 선농일치(禪農一致) 운동을

통한 민족구제 및 사원경제 자립운동을 전개하면서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내는

기지로 활용하면서 독립운동에 크게 기여하신 분이다 

표식이 없는 이정표를 지나..(10:15).

오늘 산행중 가장 힘든 구간인 백운산 오름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힘이 부치기 시작한다

조금을 더 진행하니 앞서가던 중간 그룹과 합류를 하고 이곳에서 동료 산꾼들이 가져온 막걸리

한잔을 얻어 마시는데, 이쁜 여성 산꾼이 깨강정을 만들어 와 나눠 주는데 맛나게 먹었다(복받을 깁니다)

등로에서 바라본 장안산의 모습

우리나라 8대 종산(宗山)의 하나이며 장수의 진산인 장안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영취산에서

시작하여 조약봉(주즐산)까지 연결되는 금.호남정맥 능선이 다시한번 오라는듯 손짓을 한다

우람한 저 장안산 역시 한민족 분단의 슬픔을 안고있는 산이다

장안산은 해방후 좌.우 이념의 대결속에 국군에 쫓겨 남진하던 빨치산의

이현상 휘하부대가 지리산을 들어가면서 거쳐 지나간 산이기도 한 곳이다.

백운산 중봉과 하봉의 모습

막걸리 한잔을 얻어 마시고 다시 기운을 차려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젊은 남녀 산꾼 3명이

힘들게 올라오는 산꾼들에게 단감을 나눠주며 격려를 한다... 오랫만에 산행에 참여한 이 산악회

6년전 낙동길에서 만난 영감들은 이제 고물(고문)로 뒷방 신세이고, 젊은 친구들로 완벽하게 세대

교체를 한 모양이다... 고물님들 서러마소... 세상사가 다 그런걸 어쩐다오... 그래도 보고싶소

엉터리 이정표(10:55)

중재에서 4km 가까이 올라왔는데 1.7km라니...하였던 간 공무원들이 확인도 안하는 탁상행정

국민들은 일류인데,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들의 하는 짓거리라곤...ㅉㅉㅉ

백운산 오름구간은 암릉구간에다 눈이 많이 쌓여 생각보다 미끄럽다

철계단이 나오고 오름길이 시작되는데 우리 일행이 아닌 산꾼들의 소리가 들린다

울산에서 온 산꾼들을 오늘 산행중에 처음 만난다... 서로의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등로에서 바라본 지지계곡(知止溪谷)

이 계곡은 번암면 지지리와 장계면 대곡리 상단이 서로 면계를 이루며 영취산에서 한 맥은 경남 함양군 백전면을

거쳐 지리산으로 가고 정맥은 장안산으로 이어진 협곡에서 시작하여 지지리, 동화리,남원, 구례, 곡성을 지나

삼백리 하동포구에 이르는 섬진강의 최상류임 장안산과 백운산 사이에 위치한 10km의 계곡으로 울창한 수림과

청류수가 조화를 이뤄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특히 만추의 계곡은 온통 붉어지니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울창한 수림을 이루고 있는 나무 중의 하나인 고로쇠 나무에서 2~3월에는 고로쇠물을 채취해 농가의

소득을 높이고 있으며 두릅, 더덕, 도라지, 취나물, 고사리, 표고 버섯, 한봉등이 채취되고 있다고 한다

묵계암 갈림길(11:25)

눈 속에 파묻힌 묘지와 이정표가 있고, 우측으로 내려서면 백운산 중봉, 하봉을 지나

묵계암이란 암자와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신촌마을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있다  

묘지에서 바라본 백운산 중봉과 하봉의 모습

백운산(白雲山:1278.6m:11:30))

백운산은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와 경남 함양군 서상면, 백전면에 경계를 하고 있다.

백운산의 이름은 흰백(白), 구름운(雲)을 써서, 산이 높아서 산봉우리에 항상 흰 구름을

감싸안고 있는 산이라 뜻이다. 백운산의 물줄기는 서쪽은 백운천을 통하여 섬진강으로

흘러들고, 동쪽은 옥산천을 통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백운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서

쪽으로는 장안산과 괘관산, 북쪽에는 깃대봉과 남덕유산, 남쪽으로는 월경산과 봉화산 등이 보인다.

백운산을 만산홍엽의 가을 단풍과 금상첨화로 산허리마다 흐드러진 갈대와 싸리나무,

리고 산죽이 한데 어우러져 비경의 극치를 이루는 산으로 유명하다.

백운산은 한북정맥의 백운산(포천), 한남정맥의 백운산(경기도 의왕시와 성남시의 경계),

호남정맥의 백운산(광양), 낙남정맥의 백운산(사천), 낙동정맥에서 가지를 친 밀양 백운산 등등

수없이 국토지리 정보원에 수록된 약 6,000여개의 산 가운데 백운산이라 명명되는 산만 해도 

약 40여개에 이르며, 맥 산꾼들이 많이 응용하는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에도 33개의 백운산이

수록되어 있지만, 수많은 백운산 중에 백두대간 상에는 오늘 오르는 백운산이 유일하다.

 

왜 백운이라고 불리워졌을까? ‘白雲’이라는 말은 ‘밝은’의 음차에서 유래되었다.

산 이름에 ‘밝은’이 이토록 많은 이유는 옛사람들이 산을 속세에 광명을 주는

신성한 곳으로 생각하여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마다 산신령 운운하는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백두산, 태백산, 소백산, 함백산 등도 결국 같은 ‘신성하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곳 백운산에서의 조망은 많은 선답자가 최고급 형용사를 동원하여 표현하고 있다.

특히 윤제학은 그의 대간 산행기에서 백운산에 올라서면“왜 백두대간이 이 땅의 등뼈인가를

털끝만큼의 의심 없이 실감하는 순간이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어차피 대간을 배우러 나선 산행길, 이들 모두 백운산이 좋은 길잡이가 될 것임을 

기대케하는 어법들이다...그러나 오늘 범여의 德이 모자람인지 薄霧로 인해 아무것도 안보인다

1차 백두대간 때의 모습

백운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봉과 남덕유산(2010.01.16 백두대간 북진때의 모습)

눈 속에 묻혀버린 백운산 정상 삼각점

다시 길을 떠난다(11:35)

암봉(11:45)

예전의 대간길에 없었던 시설물도 보이고...

올 겨울에 처음 만나는 상고대는 환상 그 자체...

함양군에서 산죽 등로를 잘 정비해놨다... 군수님! 복받을 겨

안부(11:58)

안부를 지나 나무 계단으로 오른다

암봉(12:00)

다시 로프에 몸뚱이를 의지한 채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영취산 가는 길은 모든게 오리무중

이정표(12:20)

→백운산 1.7km, ←영취산 1.7km이니 정중간인 셈이다

등로에서 선 채로 동료산꾼들에게 가져온  단감을 얻어 먹으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영취산을 향한다

싸리나무 군락지를 지나고...(12:35)

1,066봉(12:37)

벤취 2개가 있는 1,066봉을 내려서니 등로 나뭇가지 사이로 선바위가 보인다

선바위 갈림길(12:45)

선바위 이정표

이정표를 지나 오르막에 올랐다가 편안 능선을 조금 걸으니 영취산이 보인다

영취산 오름길

영취산(靈鷲山:1075.6m:12:53)

전북 장수군 계남면과 경남 함양군 서상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영취산(靈鷲山)은 원래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그리하 주위에 있는

산으로 부처님께서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달음 얻은 뒤 설법을 하시던 곳이

영취산(영축산이라고도 함)이다.  양산 통도사 뒷산이 인도의 영취산과 마주보고

있다고 해서 영취산이라고 하며 통도사 대웅전(금강계단)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불상이 없다  

 

영취산 하면 철쭉으로 유명한 여수의 영취산이나 양산 통도사를 외호하고 있는

영취산을 떠올리며 대간상의 영취산은 산꾼들 사이에 그다지 회자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오르는 영취산 또한 예사롭게 여길 수 없다.

특히 백두대간의 학습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백두대간은 山自分水領 원칙에 따라 이어진다.

그리고 대간은 정맥과 함께 10대강을 나눈다 10대 강 가운데 3개의 강 유역을 나누는 곳은

한남금북정맥이 갈라지는 속리산 천왕봉과 금남호남정맥을 낳는 이 곳 영취산 등 단 두 곳뿐이다.

속리산 비로봉은 낙동강, 금강, 그리고 한강(남한강)의 유역을 가르며, 영취산은 낙동강,

섬진강, 금강의 유역을 나눈다.

그래서 이 두 곳을 三派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취산 표시석 뒷면

넓은 공터로 이루어진 영취산 정상에는 돌탑이 있고, 삼각점(함양 309, 2002 복구)이 있다.

그리고 전일상호신용금고에서 세운 이정표에는 '1,075.6m/(북쪽)깃대봉 7.5km, (서쪽)무령고개 0.4km,

(남쪽)백운산 3.8km'라 적혀 있고, 또 하나 서부지방산림관리청에서 세운 이정표에는 '육십령 11.8km,

 중치 8.2km'라 적혀 있다. 그리고 장수군에서 세운 안내판에는 '낙동강, 금강, 섬진강 분수령'이라

적혀 있으며, 육십령 약 11km(7시간), 장안산 약 3.5km(2시간), 백운산 약 3.5km(2시간),

샘터(무룡궁) 약 0.5km(30분)이라 적혀 있다.

 

 강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리면 이 비는 정상석과 부딪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

즉 낙동강 유역으로 흘러들어가야 할 빗물이 정상석과 부딪쳐 섬진강 혹은 금강유역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섬진강에 스며들어야 할  너무나도빗물이 금강 혹은 낙동강 유역으로

스며들 수도 있다는 것인데 “운명은 뜻하지 않게 바뀔 수 있다” 는 인간세상의 원리와 너무나도 닮았다.

속살을 드러낸 영취산 정상 삼각점(함양 309 / 2002 복구) (

지난주 일요일에 무령고개에서 육십령 구간을 걸었으니 1주일만에 다시 온 셈이다

영취산은 범여 개인적으로는 첫사랑같은 아려한 추억이 있는 이곳 영취산...

내가 백두대간이란 것을 처음 알려준 산이기도 하다.

 

사연은 이러하다... 옛부터 산을 좋아하긴 했지만 맨날 가는 산이라곤 북한산이다.

1년에 40번정도는 북한산을 갔을정도이니  알만하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으면 도봉산이였는데 같이 다니는 친구가 갑자기 김포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삶이 바뀌어 버렸다.

그러던 중에 어느 친구가 백두대간 한번 가보자고 하여 따라나선 첫 구간이 이곳 영취산에서 육십령 구간이었다...

그땐 백두대간이 뭔지도 모르고 따라 나섰는데그 친구는 중간에 포기하고 난 그 해(2009년)부터

지금까지 매주 산에 돌아 다닌게 벌써 8년째이니...

영취산 하산길에서 바라본 무령고개

대부분의 지도에 '무령고개'로 표기되어 있는 무룡고개는 전북 장수군 번암면과

장계면 경계에 위치해 있다.
해발 930m의 높이로서 장안산(1075.6m)과 영취산(1236.7m)이 만나는 안부의 고개다.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는 '금남호남정맥'이란 이름으로

이 고개를 거쳐서 장안산으로 넘어간다.

 무룡(舞龍)은 '용이 춤을 춘다'는 뜻으로
무룡궁(舞龍宮)이라 부르는 큰 명당에서 연유한 것으로 본다.
산세가 마치 용이 꿈틀꿈틀 살아서 무룡고개에서 장안산으로 올라가는 형상이라 한다.

 

또한 선인들은 호남인의 재질과 예기가 이상의 무룡궁의 산경에서 부터 보았다는 것이다,
무룡궁의 산세가 힘차게 치솟아 장안산에 좌정한다. 그러므로 장안산은 호남과 호서의 조산이며 진산이다.
무룡궁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서북으로 금강의 최상류지대이며, 서남은 섬진강의 최상류이고,

동남은 낙동강의 상류지대가 된다.
장안산과 영취산을 이어주는 무룡고개는 풍수지리학상으로 입수(入首)라 표현하는데 이는 머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곳 무룡고개에는 연산군 때 역적으로 몰린 유자광이 참수된 후에

금부에서 그의 뒤를 추적한 결과 조상의 묘가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조상의 묘소 덕분으로 왕후장상이 끊이지 않았다며 나졸을 보내 묘소를 파헤쳤다는 설이 있다.

 장수군은 '무진장'이라 불리는 전북 3대 오지 중 한 곳이다. 
게다가 무룡고개는 장수에서도 오지 취급을 받았으므로 그야말로 오지 중 오지인 것이다.
그러니 이곳을 찿기가 얼마나 어렵고 외졌던 곳인가를 이정도의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실감하고도 남을 것이다.  

무령고개(13:10)

금.호남 정맥길에 걸었던 장안산가는 들머리

예전에 이곳에서 기타를 치며서 노래하는 쥔장... 아직도 있는 모양이다...기타소리가 들려온다

무령고개 주차장(13:15)

후미가 오기를 기다린 다음 잠시후 식사 장소인 논개 생가지로 향한다

논개 생가지

충절의 여인인 의암 논개가 태어난 곳에 생가지(生家地)를 조성해놨다

姓은 朱氏(신안)요, 이름은 論介로 ... 논개라는 이름은 四甲成이 겹치는 특이한 사주를 타고 났다고 한다

사갑술이란 天千 地支로 甲成年 甲成月 甲成日 甲成時를 말하는데 地支로 성은 개에 해당하여 논개라 했단다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태어나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속에 어렵게 성장하여,

장수현감이었던 최경회의 후실로 들어가 훗날 최경회가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진주에 입성할 때 따라 갔었다.

 

최경회가 진주성 전투에서 패하여 남강으로 투신하자, 논개도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 를 껴안고

촉석루에서 남강으로 투신하였다. 원래 생가지는 이곳 아래에 있는 대곡호쪽이었는데 1986년 대곡호 저수지를

만들면서 수몰이 되자 현재의 위치에 생가지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의랑루(義娘樓)

생가지를 들어서면서 처음 맞이하는 곳이 의랑루이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情)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娥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石榴)속같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江)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 번영로님의 詩 논개 -

생가지 뒷쪽으로 보이는 백두대간 능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이곳저곳을 두루 살펴 보련만 동료 산꾼들은 역사엔

무관심한지 아무도 오질않고 식당으로 가버린다...

혼자서 튀는게 싫어서 생가지론 올라가지 않고 식당으로 향하는데 많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