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이 말했지
“산에 오르려면 겨울산에 오르라고!”
☞산행일자: 2017년2 월 11일~12일 (무박산행)
☞산행날씨: 맑은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19.6 km + 어프로치 0.5km 포함(실거리 약21.5km
/ 10시간 40분 소요
☞참석인원: 봄,여름,가을,겨울 산악회 14명과 함께
☞산행코스: 삼도봉 터널-임도-부항령-묘지-970m봉-백수리산-973m봉
삿갓봉 삼거리-1,107.4m봉-늪지대-1,117m봉-안골 삼거리
삼도봉-삼막골재-헬기장-1,124m봉-밀목재-1,089m봉-서낭당재
미역나무넝쿨지역-폐광지역-헬기장-1,175m봉-안부-석교산
1,165m봉-815m봉-NO234송전탑-우두령
☞소 재 재: 전북 무주군 무풍면, 설천면 / 경북 김천시 부항면, 구성면
충북 영동군 상촌면
정신없이 한 주일을 보낸다.
이번주는 현장 스케줄상 산행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예 지맥길을 계획하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공정이 하루 먼저 마무리가 되는 바람에 갑자기 갈 곳이 없다.
거기다가 진권아우는 히말라야 로체를 간다고 빙벽 훈련을 가버리는 바람에 혼자서
북한산이나 한번 갔다올까, 생각하고, 정월 대보름이라 절에 들렸다가 집으로 오는데
산으로 아우님이 33km짜리 흑석지맥이나 가자고 꼬시는데, 심야버스로 광주까지 가서
새벽부터 산행을 한다 치더라도 산행을 끝내고 귀경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난번 사고로 다친 발목땜에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이리저리 생각하다 3년전 대간 남진을 같이했던 동료 산꾼들이 지금 대간 북진 중이다
오랫만에 아그들 얼굴도 함 볼겸 대간길에 나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밤 11시 30분 사당역에서 버스에 오르니 반가운 얼굴들이 산꾼 범여를 반기는데 생각보다
인원이 적어서 대형 버스안은 썰렁하기만 하다... 버스가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 인삼랜드
휴게소에 도착하여 1시간정도 쉬었다가 무주I.C를 빠져나가 삼도봉 터널 입구에 도착하니
03시 45분쯤 되었나 싶다
삼도봉 터널입구(03:45)
추운 날싸라 버스 안에서 완벽하게 산행 준비를 마치고 버스에서 내리니 세찬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2013년 4월말에 이곳을 왔으니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
버린 셈인데, 지금이 3번째 대간길이긴 해도 맨 처음 대간을 시작했던 2009년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앞사람의 등산화 뒵굽만 바라보며 죽기 살기로 걸었기에
이곳에 대한 기억은 나지도 않는다
무주군 무풍면과 김천시 부항면의 경계에 있는 이곳 삼도봉 터널은 1089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으로 예전에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였다.
이곳에서 멀지 않는 곳에는 나제통문이 있다
산행을 시작하다 (04:00)
터널 옆에는 부항령 표시석이 서 있는데 2008년도 설치한 것이란다
원래 부항령에 설치할 것이지 쌩퉁맞게 이곳에 설치한 이유를 모르겠다
터널 이름도 그렇다... 기왕이면 부항령 터널이라 했으면 외지인들이 헷갈리지나 않지
삼도봉은 이곳에서 약 7km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 말이다
괜스레 씰데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벌써 아그들은 저만치 가버리고 급경사의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임도가 나오고 임도 바로 아래는 묘지가 보이는데 야심한 새벽에 잠을 깰까
조심스럽다
부항령(釜項嶺:680m:04:10)
부항령은 경북 김천시부항면과 전북 무주군 무풍면의 경계를 이루는 삼도봉(1,177m)과
대덕산 사이 백두대간에 자리 잡은 고개로 약간 움푹 파인곳에 앙증맞은 정상석과
이정표가 산꾼을 반긴다
백두대간의 능선은 경북, 충북, 전북의 경계를 이루는 삼도봉을 지나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면서 천천히 낮아져 부항령 부근에서는 약 680m, 부항령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남쪽으로 약 4㎞ 떨어진 덕산재에서는 약 650m로 낮아지고 덕산재를 지나면서 급격하게
높아져 대덕산에서는 약 1,290m로 높아진다.
지명의 유래는 부항면 월곡리 가목마을에 있는 고개여서 마을 이름을 따서 가목령 또는
부항령(釜項嶺)이라 하였고, 마을이 자리 잡은 곳의 형상이 가마솥과 같아서 가매실·
가매목이라 하던 것이 줄어든 이름으로 한자로는 ‘釜項’으로 표기한다... ‘가목’을 다시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면목(面目)’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무명봉(04:22)
이곳에서 살짝 꺽어져 오르막을 오르는데 사진 한 컷 찍는 사이에 아그들은 저만치 도망을
가버리고 어디가던 나는 꼴찌를 도맡는다... 근데 우측 능선에 다른 산악회 산꾼들 같은데
여기저기서 헤드렌턴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명묘지(04:30)
고도를 높여 갈수록 적설량은 많아지지만 날씨는 생각보다 그리 춥지는 않다
지난 1월에 강원도의 산을 타면서 개고생했던 학습효과의 탓인지, 추위에
내성이 많이 생긴 모양이다
970m봉(04:48)
예전에 없었던 나무의자를 설치해놨는데 이곳에서 선 채로 1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백수리산(1034m:05:20)
경북 김천시 부항면과 전북 무주군 무풍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겨울이면 이 산에 특히 많은 눈이 쌓이는데, 무주군 설천면에서 볼 때 수리(鷲)를
닮은 이 봉우리가 눈에 쌓여 하얗게 보여서 '백수리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백수리산을 지나면서 적설량이 많아지고 음지쪽에는 무릎까지 빠지면서
눈이 녹아 빙판이 되어 상당히 미끄럽고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산꾼을 괴롭힌다
정유년 정월 대보름달은 서서히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고...
올 한해는 우짜든지 나와 인연이 있는 모든 분들이 모든게 소원대로 이뤄졌으면 한다
삿갓봉 갈림길(06:40)
꽤나 넓은 공터인데 눈이 잔뜩 쌓여있어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된다
이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따르면 무주쪽에 삿갓봉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이곳부터는 무주군 무풍면에서 설천면으로 面界가 바뀌는 지역이다
여명이 서서히 밝아오면서 주위의 사물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은 후미 그룹에서 대간길의 살림살이를 맡고있는 총무 시화님과
같이 가는데 詩的인 감각이 탁월한 젊은 친구이다
사물이 보이면서 상고대가 가히 환상적인데 시화님은 뭔 생각을 할까?
내가 2대간 9정맥 9기맥을 졸업할 당시 축시를 써 준 인연... 늘 잊지않고 있소이다
1070.4m봉(06:55)
백두대간 남진길의 동료였던나의 카친인 시화, 까치샘님
늪지대로 내려서는 능선에는 바람의 영향 때문인지 엄청난 눈이 쌓여있다
늪지대(07:05)
늪지대를 지나 임도를 따르다가 우측 능선으로 오르는데 앞서가던 산악회
산꾼들을 만나는데, 2010년도 낙동정맥을 같이했던 산악회인데 예전에
역전의 용사들처럼 날고 뛰던 산객들은 이제 고물(고문)이 되어 퇴출이 되었는지
꼬빼기도 안보이고 대부분 얼굴을 모르는 분이다..설사 얼굴을 안다손 치더라도
알카에다의 전사들처럼 얼굴을 감싸고 있어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후미대장을 맡고있는 젊은 친구한테 “내가 범여인데 선두대장한테 무전을
쳐서 삼도봉에다 막걸리 한통만 남겨놓고 가라고 하소” 하니 그러겠다고 한다
선두대장을 맡고있는 봉사맨은 나와 갑장이고 낙동길에 같이한 친구이다
예전에 날고 뛰었던 쑥영감, 강영감은 퇴출이 되었나...
그러니 나이먹어서는 설움 안 당하려면 독립군(나홀로산행)이 최고지 뭐
그래도 그 영감탱이들이 보고 싶다
주변의 상고대는 환상 그 자체이다
대간길 5기 동료들...참으로 오랫간만이라 더없이 반가웠다
일출은 벌써 시작된 모양이다
무릎까지 빠지는 힘든 산행...그래도 든든한 동료산꾼들이 있어서 즐겁기만 하다
누가 말했던가...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자연이라고...
산죽길을 올라서니...
적설량은 점점 많아지고...
1,117m봉(07:40)
그래도 능선길은 바람이 차갑기만 하다...하긴 겨울산은 추워야 제 맛이지
멋진 상고대를 바라보면서 시인이 안되면 비정상이지
겨울산
문 현미
절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달을 정수리에 이고 가부좌를 틀면
수묵화 한 점 덩그러니
영하의 묵언 수행!
폭포는 성대를 절단하고
무욕의 은빛 기둥을 곧추 세운다
온 몸이 빈 몸의 만월이다
희뿌연 운무속에서 오로라와 같은 빛내림은 시작되고...
다시 산죽 오름길
앞에간 산악회 선두팀들은 러셀하느라 개고생했겠다...복받을겨
넓은 공터가 있는 능선을 지나면서...
많은 적설량으로 인해 시간은 지체되고 설설 배가 고파오기 시작한다
안골사거리(08:10)
전북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 안골에서 경북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넘어가는 고개로 길은 뚜렸하고 특히 해인리쪽으로는 해인산장이 있어
등산객이 많이 다니는 곳이다.
능선에는 바람이 세차다...아침 식사장소의 자리가 마땅찮다
나홀로 지맥길 걸을때는 이런 걱정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
해인리쪽으로 내려서니 조금 넓은 임도에는 다행히 바람이 불지 않는다
이곳에서 자리를 잡아서 떡만두를 따끈하게 끓여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하늘마음 아우님이 가져온 따끈한 사케 두어잔을 얻어 마시니 세상 부러운 거
하나도 없다...요즘 탄핵 정국에 갖은 고생을 다하는 VIP나 특검 사무실에
맨날 불려 다니는 재벌총수보다 내가 훨 낫지 않을까...너무 힘들게 사지마소,
모든걸 비우면 만사가 편한 걸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이리저리 헤매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흔적은 반드시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리니.”
1시간 15분 가량의 여유로운 아침 만찬을 끝내고 다시 길을 나선다
삼도봉 오르는 길
알싸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오던 길을 뒤돌아보니 설천면 지역은 모든게 운무에 휩싸여 버린다
무주군 설천면의 지명유래는 조선 영조 때 이봉상(李鳳祥, 1676~1728)이
이곳에 살면서 자신의 호를 설천(雪川)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또한, 이 고장에 9천 명의 승려들이 수도하였는데, 이들의 밥을 짓기 위해서
아침 저녁으로 쌀을 씻던 하얀 쌀뜨물이 계곡을 따라 온통 눈과 같이 하얗게
흘러 내렸다 하여 '설천'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1914년에는 이전의
금산군에 속했던 구천동 지역을 설천면에 통폐합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도봉(三道峰:1,176m:09:35)
전북 무주군 설천면, 경북 김천시 부항면, 충북 영동군 상촌면 3도에 걸쳐 있는
봉우리로 1989년부터 영남, 호남, 충북의 삼도 화합의 상징인 거북, 용, 검은
여의주의 돌탑을 세우고, 매년 10월10일 삼도의 산악인과 주민들이 동서화합의
제를 올린다고 한다.
삼남의 기(氣)가 한 곳으로 모이는 꼭지점인 이곳 삼도봉, 원래 지명은 화전봉이었으나
조선조 3대 임금이었던 태종대왕 시절인 1414년에 조선을 8도로 나누면서
이 봉우리에서 충청, 전라 경상 3도가 나눠진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또한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이루었던 곳이기도 하다
삼도봉의 물줄기는 서쪽은 금강의 품에 안기고, 동쪽은 부항천을 통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조망 또한 사방으로 확 트여서, 서북쪽으로는 석기봉, 민주지산,
각호산으로 이어지고 북동쪽으론 화주봉을 비롯한 대간 능선과 황학산 줄기를
달리며, 남동쪽으론 해안리 산곡마을 지나 가야산 줄기가, 남쪽으로는 삼봉산
너머 덕유산으로 이어진다
삼도봉 정상에서 인증샷
백두대간 능선에는 세 군데의 삼도봉이 존재하는데 실질적인 삼도봉은 아마
이 곳이 아닐까 싶다...지리산에 있는 삼도봉(날나리봉)은 경남, 전남, 전북이
만나는 삼도봉이고 이곳의 남동쪽에 있는 초점산 삼도봉은 경북, 경남, 전북의
삼도봉이지만 이곳은 충청도(충북 영동). 전라도(전북 무주), 경상도(경북 김천)가
만나는 삼도봉이다.
먼저 도망간(?) 기분죤산악회 선두대장이
나 먹으라고 막걸리 한통을 숨겨놓고 갔다
이보시게... 친구...세세생생 복받을걸세
삼도봉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각호지맥 능선
지난해 2월말에 혼자서 첫구간을 걸으면서 추워서
개고생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
각호지맥(角虎枝脈)
백두대간 삼도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민주지산, 각호산, 도마령을 건너고
천만산, 삼봉산, 백마산을 지나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에서 금강으로 빠지면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7km의 산줄기로, 남으로 천만산에서 발원한 영동천과
북으로 초강을 나누는 분수령이며, 동시에 상주 봉황산부터 영동 삼도봉까지의
백두대간과 북쪽의 팔음지맥과 함께 초강물을 오롯이 가두어 금강으로 흘려보내는
울타리가 되는데, 산으로님이 작성한 대한산경표에서는 초강지맥이라고 부른다
해인리 마을 너머로 해인사를 품고있는 가야산은 운무에 가려 잘 보이질 않는다
해인리의 유래는
신라 시대에 마을 뒤 삼도봉(1,176m) 골짜기에 있던 해인사(海印寺)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일설에 삼도봉 해인사가 경상남도 합천군으로 옮겨간
것이라고 하나 확인할 길은 없다...조선 말 지례군 상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윗두대·해인동이 통합되어 김천군 부항면 해인리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부항면 해인리로 개칭되었고, 1995년 다시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가 되었다.
백두대간 준령인 삼도봉을 비롯하여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삼도봉에서 발원한 부항천의 상류 하천이 지난다.
해인동에서 삼도봉 오르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해인산장 못 미쳐 도로변에
마치 우람한 몽둥이처럼 생긴 큰 바위가 불쑥 튀어나와 있는데 예부터 유명한
고추방골의 남근석(男根石)이다...이 남근석은 효험이 좋기로 명성이 자자해
아들 낳기를 염원하며 치성을 올린 많은 여성들이 효험을 얻었다고 한다.
전망봉(09:45)
전망봉에서 눈에 미끄러지면서 힘겹게 내려오니 삼마골재가 나온다
삼막골재(森幕谷嶺:09:55)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여기서 영동군 상촌면
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일명 삼마골, 삼박골로 불리는 삼도봉 준령의 하나이며
지명유래는 나무가 우거져 장막을 쳐놓은 것 같다하여 나무빽빽할 삼(森)자와
장막 막(幕)자를 따서 삼막골이라 하는데 산마골재는 산막골재의 誤記로 보인다
삼마골재는 삼마골에서 비롯된 명칭으로 본래 '산막골'이라 불리다가 '삼마골'로
변음된 것으로 본다... 일제시대부터 이곳에 화전민들이 정착해 숯을 구워 팔며
살았고 한국전쟁 전후로는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까지 이곳에 들어와 화전민
그룹에 합류했는데, 그들은 생활력이 강했고 참나무를 베어 일주일만에
산막 한 채를 뚝딱 지었다고 한다
백두대간에 걸친 마을이 대부분 그랬듯 한국전쟁 동안, 그리고 휴전 후에도 한동안
이곳은 국군과 빨치산 사이에 놓인 접전지였으며 산을 점령한 군인이 주야로
바뀌던 시절, 화전민들은 며칠씩 산 밑에서 피신해 지내다가 산막으로 올라오고,
또 내려갔다가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당시 전쟁으로 같은 날 희생을 당한 화전민들이 많았다.
삼마골 아래 해인리만 해도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집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휴전 뒤 숯은 더 이상 팔리지 않았고 이후 화전민들은 산비탈을 골라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생계를 해결했다...외부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었던 소금 정도를
제외하곤 모든 것을 산 속에서 생산했던 것이다...그러다가 1960년대 말기
김신조 사건 같은 일들이 터지면서 정부 정책에 따라 화전민들은 산을 내려와야 했다.
그게 삼마골에 살던 화전민들의 숨겨진 역사다
삼마골재에서 능선으로 오르니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09:57)
삼마골재를 지나면서부터는 양지에는 눈이 별로 없으나 능선에는 예상외로 눈이 많다
정상적인 등로로는 산행이 불가하다... 약간씩 우회하면서 걷는데
선두로 간 팀들이 직진의 대간 능선으로는 불가능한 한 지 좌측의
사면길로 등로를 만들어 갔다... 덕분에 나도 편하게 걷는다
등로에서 바라본 삼도봉, 석기봉, 민주지산으로 이어지는 각호지맥의 능선들
1,124m봉(10:25)
정상에는 이정목과 함께 4등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고 이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우두령으로 향하는 백두대간이 이어지는데 삼각점은
찾을길도 없고 찾을 힘도 없다
1124m봉 삼각점(△ 영동459 1980 재설)...2013년 4월 28일 남진때의 사진
1,124m봉 이정표
나홀로 산꾼에겐 이런 전화번호가 꼭 필요하제
안부(10:28)
이정표(↓삼도봉 2.1km, → 밀목령 700m)에서
우측으로 꺽어서 편안한 내리막길로 향한다
다시 능선길에는 눈이 많은데 이곳은 눈이 다저져 있어서 상당히 미끄럽다
다행히 양지쪽은 눈이 없는곳도 보인다
밀목재(密木峙:1089m:10:45)
충북 영동군 상천면 물한리 한천 마을에서 면목골로 올라 이 고개를 지나 경북 김천시
부항면 대야리 넘어가는 고개로 사람들이 왕래가 있는지 길은 뚜렸이 보인다.
밀목재는 경상도 지역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나무가 빽빽히 들어선 고개’라
해서 부른 이름이고 영동쪽에서는 ‘면목재’라고 부른다.
이른 아침과는 달리 날씨는 아주 청명하다
이 광고는 3년전 그대로고...
서낭당재(10:55)
예전에 민초들이 넘었던 고개 옆에는 서낭당 돌무덤이 그래로 있다
부산 낙동산악회에서는 서낭재를 밀목령이라 표기를 해놓고 있다
지맥길 하다가 운제 대간길에 접어드셨는지?...
우측으로는 약초 재배지가 보인다
미역줄기나무 군락지(11:25)
함몰된 폐광터를 지난다
폐광터(11:40)
이곳 폐광터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니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폐광터 남쪽으로 산 아래 김천 부항면의 '대야동'이란 마을이 있는데
다른 이름으로는 대동(大洞)이라고 불렸는데, 일제시대까지 마을 뒷골
일대에서 금맥이 발견돼 큰 규모의 금광이 생겨나 전국적인 명성을
누렸고 실제로 김천은 선산과 함께 신라시대부터 이름난 금 생산지로
각종 고문헌에 기록돼 있다
이곳 금광굴 깊이에 대해 멀리 해인동 앞까지 뻗었다는 등의 여러 설이
떠돌지만, 전 마을노인회장 임차랑씨에 의하면 어릴 때 동굴 끝까지
들어갔었는데 수평과 수직갱도를 합해도 100미터는 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일제시대에 이곳에는 많은 금이 생산되면서 이 마을에 일본인 기술자들과
인부들이 밀려들어와 크게 번성했는데, 자연히 인부들을 상대하는 술집까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 수시로 분쟁이 발생되자 급기야 일개 마을에 지서가 들어서기도 했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은 시작되고...
힘들게 능선을 치고 오르니...
먼저간 동료 산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1,175봉이 나온다
1,175m봉(12:25)
조금전에 지나온 능선 너머로 삼도봉과 초점산 대덕산 그너머로
덕유산 자락에 있는 무주 스키장이 육안으로 뚜렸하게 보이건만
똑딱이 카메라의 한계인지 그림을 잡을 수가 없다
북서쪽으로는 민주지산에서 각호산으로 이어지는 초강(각호)지맥 능선이
산꾼 범여를 부른다...2구간 남은 초강지맥길도 올해안에 끝내야 하는데
가야할 지맥길이 너무 많아서리 어찌될 지 모르겠다
1,175m봉에서 바라본 대야리 계곡
김천시 부항면 대야리의 지명유래를 보면
원래는 천지동(天地洞)이었는데, 신라 경순왕은 서민들이 사는 동리가
천지동이라 함은 부당하다 하여 지명을 고치게 하여 天자에서 一자를 떼어
'大', 地자에 土자를 떼어 '也'로 하여 대야로 개칭하였다 한다.
또 다른 유래에 의하면, 이 마을 주위는 큰 산이 둘러 있어서 지형이 대야처럼
생겼다 하여서 대야동·대야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며, 마을 아래 에 5백년 이상
묵은 전나무가 있다.
지난해 진권아우와 둘이서 걸었던 금오지맥 능선과
그너머로 법보종찰 해인사를 품은 가야산도 보이기 시작한다
1,175m봉은 암봉으로 되어있고, 오늘 산행중에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
그야말로 一望無際이다...이곳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서는데 상당히 급경사 암릉구간이다
가야할 능선 맨 끄트머리가 석교산이다
안부(12:48)
석교산으로 오르는 등로는 완만하여 페이스 조절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석교산 바로 아랫에는 묘지의 흔적이 보이고...
석교산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조금전에 걸었던 능선과 초강지맥 라인
서남쪽으로 눈을 돌리니 아침에 걸었던 삼도봉과
백수리산 그 너머로 덕유산이 흐릿하게 보이고...
석교산(石橋山:1,207m:13:10)
충북 영동군 상촌면과 경북 김천시 부항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화주봉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화주봉(花朱峯)이라 부르는 연유는
여러가지의 설이 있다.
백두대간 높은산에 운해(시냇물 처럼)로 가득차 봉우리만 보이게 될때,
석교산은 황악산과 삼도봉 사이에서 흐르는 운해(시냇물)에서 돌다리 같은
산이라 하여 불려진 이름이란다.
온 민초들이 화전을 일구며 민생고를 해결하면서 화주봉이라는 설도 있다.
또 하나는 화주[化主]는 불교에서 ‘부처’의 다른 이름. 중생을 교화하는 주인이라는 뜻이 있고,석교[釋敎]는 불교(佛敎)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에 불교와 관련된 봉우리가 아닌가 싶다.
古山子 선생이 펴낸 대동여지도에는 석교산이 황악산 좌측으로 표현되어 있다.
‘황악산 좌측이라면 지금의 곤천산’인데 지금의 석교산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어 보인다.
석교산에 도착하니 먼저간 태양대장이 후미에 오는 우릴 기다리고 있다
오랫만에 무박산행이라 힘은 들었지만, 태양대장, 노루아우와 같이 걸어 오면서
지난번 대간 남진길에서 걸었던 추억을 되살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그리고 아무래도 아우들보다 걸음이 느려 내가 먼저 우두령으로 향한다
석교산을 조금 지난후에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는데 이곳부터는 또다시
눈과의 전쟁(?) 앞서간 기분죤산악회 팀들의 수고로움 때문에 완전히
양넘 지갑줏은 느낌으로 편하게 걷는다
기분죤산악회 봉사맨 선두대장... 갑장 고생했어...고마우이
여유로움
1,058m봉(13:50)
이곳이 헬기장인데 눈으로 인해서 흔적이 잘 안보인다
북쪽 골짜기로는 충북 영동과 황간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슬슬 날머리가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는 생각보다 거리가 많이 남아있다
815m봉(14:15)
희미한 헬기장 방향에서 우측으로 꺽어져서 능선에 오르면 815m봉이고 4등 삼각점이
있는 곳인데 이곳이 생각보다 눈이 많아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옆사면으로 앞 팀들이 갔다
초행길이면 악착같이 올라가서 삼각점을 확인하겠지만 3번째의 대간길...
그래까진 하고 싶지 않다
815m봉 삼각점(△영동 461.1980. 재설)...2013년 4월 28일 남진길때의 사진
김천시 구성면에서 영동군 상촌면으로 이어진 579번 도로가 보인다
저 끄트머리에 오늘의 산행 날머리인 우두령이 있는 곳이다
무명봉(14:25)
무명봉에서 내려오는 급경사의 음지라 상당히 미끄럽다
모든게 말년에 조심하라지 않았던가...
얼마 남지않은 대간길...조심 또 조심
NO234 송전탑(14:32)
경고판이 나오고...
대부분의 산꾼들이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난 우측으로 내려선다...
왜냐고! 이 길이 대간길이기에...
우측으로 내려서니 우두령에 있는 매일유업 김천농장 후문이 나온다
우두령(牛頭嶺:720m:14:40)
경북 김천시 구성면 삼거리와 충북 영동군 상촌면 흥덕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579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고개 정상에는 동물이동통로가 백두대간
길을 이어주고 있으며, 고개 너머 김천쪽은 매일유업 김천목장이 있고
영동쪽은 소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감시초소가 보인다
우두령의 지명유래는 이 고개가 소의 등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인데 이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김천 대덕면과 거창 웅양면의
경계에도 우두령이 있어 약간 혼란스러운 곳이다
이곳은 생각보다 지대가 높은 곳으로 낙동강과 금강의 수계가 갈라지는
곳으로 북쪽으로 떨어진 빗물은 금강으로 흘러가고 남쪽으로 떨어진
빗물은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오랫만의 무박산행 탓인지 조금은 피곤하지만 후배 산꾼들과 같이한
산행이어서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오늘 같은 구간을 산행한 기분죤산악회에
가니 선두대장을 한 봉사맨과 김단장, 그리고 채송화님 뭉쌤 등 옛날 낙동동지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차량으로 돌아간다
우두령 정상에서 인증샷
우두령 정상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추풍령으로 와서 샤워장이 있는 식당에서
닭도리탕으로 식사를 마치고 소주+맥주를 말하서 거하게 마시고 귀경 차량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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