端宗의 哀歡의 서린 兩白之間의 대간길을 걷다
☞ 산행일자: 2017년 4월 29일~30(무박산행)
☞ 산행날씨: 맑은날씨에 약간의 미세먼지에 더운 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6km / 10시간 27분 소요
☞ 참석인원: 봄.여름.가을.겨울산악회 18명과 함께
☞ 산행코스: 좌석리-고치령-폐헬기장-자개지맥 갈림길-877m봉-폐헬기장-미내치-830m봉
854m봉-1,097m봉-952m봉-마구령-894m봉-이정표-암봉-안부-안부-무명봉
1,057m봉-925m봉-안부-918m봉-920m봉-무명봉-안부-갈곶산-늦은목이-돌탑
어래산 갈림길-선달산-암봉-옹달샘 갈림길-암봉-무명봉-무명봉-1,246m봉-무명봉
왕바위골 갈림길-무명봉-박달령-958m봉-무명봉-문수지맥 갈림길-옥돌봉-무명봉
550년생 철쭉-무명봉-철쭉터널-도래기재
☞ 소 재 지: 경북 영주시 단산면, 부석면 / 봉화군 물야면 춘양면 /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정신없이 살다보니 영국의 T.S 엘리엇이 “황무지”란 시에서 읊었던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데
난 그것을 느낄 시간조차 없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에 사무실로 걸어가면서 아파트 담벼락에 붙은
대통령 선거 포스트를 보면서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으로 하야한 후임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있구나
근데 이건 뭐야... 대통령 출마자가 15명이라니...그 불행하고 골치아픈 자리를 왜 저리도 앉고 싶어
안달이 났를까... 아둔한 범여의 짧은 생각으론 전혀 이해가 안되는 구나
그러다 4월은 다 지나가고 ... 오늘은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인다
모교에서 연등축제가 있는 날이라...행사가 끝나고 광화문까지 제등행렬이 시작되는데
이제 이곳에서도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꼰대 취급(?)을 받는다
나보다 한참 아래의 기수가 회장을 맡고 있는 탓에 선배라 예우를 해주는지 모든걸 열외를 시켜주는
꽃보직(?)을 주는 바람에 행사에 참석하여 출석 체크만 하고 앉았다가 행렬이 시작되는 걸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맥 산행을 계획하는데 정신없이 바쁜 탓에 자료 준비를 하지 안했더니
마땅히 갈데가 없다... 맥 산행이란 나홀로 가다보니 대중교통에서부터 모든걸 공부를 해서
가야 고생을 안하는데 준비를 하지 못했으니 마땅히 갈데가 없다
그래서 따라 나서게 된게 후배들이 떠나는 백두대간 길을 무조건 따라 나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오늘 산행 구간의 고도표
佛記2561년 연등축제
모교에서 열리는 연등축제 진행요원으로 참석을 하는데 이젠 이곳에서도 꼰대 취급을 받는다
단장이 나보다 한참 아랫 기수이다보니 선배로 예우를 해주는지 출석 체크만 하면 할 일이 별로없다
연등축제는 부처님 오신날 1주일전에 열리는 축제로 불교계에서 큰 행사로 동국대 운동장에서
광화문까지 제등행렬이 이어진다
연등축제가 시작되는 걸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오랫만에 후배들을 보기위해 베낭을 챙겨 대간길에 나선다
좌석2교(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 소재:02:40)
밤 11시 30분에 사당역에서 도착하여 후배 산꾼들과 조우를 한 다음에 버스에 올라 참을 청하는데
오늘은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잠은 오질않고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날머리인 좌석리에 도착한다
참으로 오랫만에 무박산행이라 그런지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어둠속에 걷는 건 딱 질색이라 적응이
될런지... 모르겠다
트럭을 타고 고치령으로 향하다
이곳 좌석리에서 들머리인 고치령까지는 5여km정도 되기에 대간길도 아닌데 걸어서 가기는 좀 뭐하다
산악회에서 좌석리 이장에게 미리 부탁을 해놨는지 야심한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트럭이 대기하고 있다
좌석리 이장 이 양반 참 오랫동안 이장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벌써 3번은 이 트럭을 탔으니...
내가 농담으로 ‘이장직 너무 오래하는거 아니오 하니까’ ...허허허 웃기만 한다
트럭을 타고 산길을 20여분 달려 고치령으로 향하는데 하늘의 별들이 금방이라도 쏱아질 듯 밝다
고치령에 도착하여 이장님과 작별을 하고 산행 준비를 한다
고치령(古峙嶺:760m:02:58)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와 백두대간 너머 단산면 마락리를 잇는 고갯마루로서 현지인들은 ‘고치재’라 부른다.
국토지리원 자료에 古峙(옛 고개)로 기록되어 있는 고치령을 양백지간(兩白之間)또는 “고치재” 로 부르기도 하며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를 가르는 고치령은조선 중엽까지만 하더라도 죽령 다음으로 중요한 고개였으나 세조에 의해
유배당한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던 이곳 사람들의 노력이 발각되어 폐쇄되었다는 설도 있는 곳이다.
고치령은 또한 한강 수계와 낙동강 수계를 나누는 중요한 고개이기도 하다.
백두대간 죽령을 지나 동북으로 흐르던 소백산 줄기가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처음 만나는 큰 고개가 바로 고치령이다.
십승지지(十勝之地)의 길...고치령
참위설(讖緯設)과 풍수지리설을 신봉하던 술가(術家)들의 말로는 풍기(豊基)의 금계촌(金鷄村)
안동(安東)의 춘양면(春陽面:지금의 봉화), 보은(報恩)의 속리산(俗離山), 운봉(雲峰)의
두류산(頭流山), 예천(醴泉)의 금당동(金堂洞), 공주(公州)의 유구(維鳩)와 마곡(痲谷)
영월(寧月)의 정동상류(正東上流), 무주(茂州)의 무풍동(茂豊洞), 부안(扶安)의 변산(邊山)
성주(星州)의 만수동(萬壽洞)을 가리킨다.
고치령 서북쪽 마락리에서 계속 서북쪽으로 내려가면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로 이어지고,
의풍리에서 김삿갓 유적지가 있는 강원도 영월의 와석리는 지척이다. 그리하여 마구령 아래의
남대리, 고치령 아래의 마락리, 그리고 충북의 의풍리, 강원도의 와석리 등 3개 도의 마을들은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의 오지 중의 오지 마을들로서 더불어 하나의 생활권을 유지해 왔으며,
참위설에서 10승지(十勝地)라는 곳이다.
고치령 산령각
단종대왕과 금성대군을 모시는 고치령의 산령각(山靈閣)은 좌. 우 기둥에 주련(柱聯)은 다음과 같다.
왼쪽에는 차산국내지령지성(此山局內至靈至聖) "산이 모두 영역이 모두 지극하게 성령스럽고
성스러웠으면 한다"라고 쓰고 오른쪽에는 만덕고승성개한적(萬德高勝性皆閒寂) 수만가지 덕이 높고
번성해서 모든 사람의 본성이 여유로우면서 고요하기를 바란다"고 써 있다.
우리 민족은 산을 중심으로 애환이 있는 곳에 산신각을 세워 안녕을 기원하였다.
고치령의 소백산 입구에 자리잡은 장승은 ‘小白地將軍’이라는 간판을 그리고 맞은 편
태백산이 시작되는 곳에 서 있는 장승은 ‘太白天將軍’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소백산은 땅을, 태백산을 하늘을 의미하며 하늘과 땅 사이라는 뜻이다.
갈곶산을 소백산권으로 보았는데 이곳의 장승을 보면 고치령을 중심으로
양백을 나눈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고치령은 바로 단종 복위운동을 벌이던 사람들이 뜻을 세우고 수시로 넘나들던 대표적인 장소다.
이곳이 단종과 인연을 맺은 것은 수양대군의 동생이자 단종의 숙부인 금성대군을 통해서다.
1455년 6월 금성대군은 형인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하다 이곳 순흥에 유배당한다.
그는 이곳에서 순흥도호부사인 이보흠의 도움을 받아 단종 복위를 계획한다
옛날 이곳을 지나던 백성들이 무사히 산을 넘을 수 있도록 산신령에게 기도하던 장소다.
또 과거 순흥지역에서 영춘으로 말을 이용해 세곡을 옮길 때 사고 없이 무사히 넘어갈 수 있기를
기원하던 신당(神堂)이기도 하다.
산행을 시작하다(03:03)
야심한 새벽에 사진 몇커트 찍는 사이에 동료들은 다 도망을 가버리고(?) 졸지에 후미가 된다
등로에 들어서자말자 출입금지 플랑카드와 목책을 만나는데 다들 개의치 않고 가버린다
2017,03,02~04,30이니 오늘까지다.
폐헬기장(03:10)
고치령에서 오르는 국립공원에서 인위적으로 많이 손 을 댄 모양이다
지난해 10월 23일 자개지맥 첫 구간때와도 영 딴판이다
이곳 헬기장에도 나무를 많이 심어놔서 알아볼 수가 없다
폐헬기장을 지나 다시 오르막을 오르는데 이정표(←마구령 7.0km →고치령 1.0km)를
지나 2분정도 오르니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엔 나무로 막아 놨는데 자개지맥 갈림길이다
자개지맥 갈림길(950m03:22)
지난해 10월 23일날 첫 구간을 할때 왔으니 6개월만에 다시 온 셈이다
자개지맥 (紫蓋枝脈)은 지리산에서백두산으로가는백두대간이소백산을 넘어 고치령에서 동남쪽 1.1km,
미내재에선 서남쪽 1.9km 되는 959m봉 턱 밑에서 ( 높이 약 920m) 남쪽으로 가지를 쳐
자개봉(紫蓋峰.858.7m),무넘어고개,천마산(386m),국모봉(349m.→0.3km),수나리고개,대마산(373m),
노인봉9364m.→1.7km), 마근당이고개,삽재,박봉산(389.9m.→1.7km),유릉산(299m.→1.4km)를 지나
서천(西川.32km)이 내성천(乃城川.108.2km)에 합류하는 영주군 문수면 승문리 물섬마을앞 무섬교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48.4km되는 산줄기를 말한다.
이산줄기 서쪽으로 흐른물은 서천(西川.길이 32km)으로 들고 동쪽으로 흐른 물은
내성천(乃城川.길이 108.2km)이 된다
어둠속에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되는 곳에서 야심한 밤중이라 모든게 적막강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두에서는 대장을 비롯한 산꾼들이 무조건 내빼는 바람에 찍소리도
못하고 죽기 살기 따라가려니 범여로서는 죽을 맛이다
2032년 12,31일까지 출입금지라니... 그때까지 산을 탈라나 모르겠네?
877m봉(03:48)
877m봉에서 내려오니 어둠속에 희미한 고개가 나오는데 똑딱이 카메라로는 주위 사물을 잡을수가 없다
이곳이 미내치(美乃峙:820m )정도 되는데 어둠속이라 확신이 서질 않는다
오랫만에 백두대간 남진 동료인 장동건 아우님과 후미에서 둘이서 걸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폐헬기장(16:20)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 20분이 지나서야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이곳은 북쪽이라 그런지 춥지도 덟지도 않은 날씨라 산행하기는 딱 좋다
다시 고도를 높이며 조금은 빡센 오르막을 오는데 그래도 지맥길에 비하면 누워서 떡먹기다
1,097m봉(04:58)
폐헬기장이 있는 1,097m봉까지 빡세게 올랐다가 다시 마구령으로 향하는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952m봉(05:10)
마구령이 1km이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오는데 선두는 여전 빠른 속도로 도망을 간다
그 넘 참으로 희한하게 생겼네
리기다 소나무 숲으로 내려서는데 마구령의 도로가 보인다
국공파들이 막아논 출입금지지역 철책을 넘어서 마구령으로 내려선다
마구령(馬駒嶺, 810m:05:25)
경북 영주시 부석면 임곡리에서 남대리로 넘어가는 곳에있는 마구령의 유래는
이 길이 충청도와 강원도를 있는 관문으로 장사꾼들이 말을 몰고 다녔던 고개라 하여
마구령이라 하였으며 경사가 심해 마치 논을 매는 것처럼 힘들다하여 매기재라고도 불렀다한다
마구령은 고치령, 죽령과 함께 소백산을 넘는 세 개의 고갯길 중 하나였다.
영남 선비들의 과거길로 ‘영남대로’라 불렸던 죽령 길과 영월 하동과 이어지는 마구령 길,
마구령 표시석 뒷면에 있는 수준점
마구령 정상에서의 인증샷
오랫만에 동행한 후배산꾼들과 함께...
국공파들이 막아논 철책
마구령에서 동료산꾼들과 과일과 떡을 나눠 먹으면서 15분간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이곳은 북쪽 지역이라서 그런지 이제사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기 시작하고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기 시작하는데 남쪽지역과는 계절적으로 한달 가까이 차이가는 나는듯 하다
894m봉(05:54)
일출이 시작되는데 나뭇가지에 가려서 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첫사랑
고 재 종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려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 백번.
바람 한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어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트린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걸려있는 詩
이 곳은 이제사 새싹이 돋아 난다... 아랫녘과는 달리 정상적인 계절을 맛보는듯 하다
지대가 높은 탓인지 아직 싹이날 기미도 안보이는 곳도 있다
이정표(06:10)
암릉구간도 지나는데 산이란 곳은 올 때마다 다른 느낌이다
이 길을 벌써 3번째 걷는다마는 올 때마다 걷는 맛이 다르니...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는데 부지런한 넘은 꽃을 피우기 시작하나 게으런 넘은 생각도 안하고 있다
일출은 벌써 저만치 올라와 버렸다
새벽에 고치령에 도착했을때 하도 별빛이 영롱하여 날씨가 아주 좋을줄
알았는데 날이 밝으니 미세먼지가 이곳에도 그리 만만치 않아 視界가 뚜렸하지 않다
암봉(06:23)
곱디 고운 진달래 능선을 지나니...
멋진 암릉구간이 이어지고...
안부(06:27)
안부에서의 오르막길을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좌측으로 우회하면서 올라서니...
무명봉(06:33)
진달래 능선을 2분정도 걸어가니 헬기장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1,057m봉이 나온다
1,057m봉(06:35)
이곳 우측 아랫쪽엔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10찰중 하나인 부석사가 있는 곳이다
벌써 부석사가 가 본지도 10년이 넘은듯 싶구나... 당시 주지 소임을 맡고 계신
근일 큰스님께서 주장자를 내리치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감로법문을 하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잘 계시는지?.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서 걷는데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나홀로 산행시 걸으면서 잠을 자는데 이제 거의 수준급이다
뫼봉님! 멀리도 오셨네요... 백두산 아우님도 잘 계시죠?
누굴 기다리시나?
925m봉(06:50)
고비나물의 새순... 딸까말까 망설이다가 너무 어려서 포기한다
도시는 한여름인데 이곳은 이제사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안부(07:00)
고사리보다 맛있다는 고비나물
엄나무순
조금이지만 너무 맛있을 거 같아 수확을 한다
918m봉(07:05)
920m봉(07:12)
등로가 좋으니 계속 졸음은 쏟아지고...
밋밋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봉우리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좌측 사면길로 따른다
지맥길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대간길은 그만큼 절박함이 덜한 모양이다
우측 능선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능선 아래에 있는 부석사의 풍경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나 혼자 걸으면서 가수 정태춘이 부른 ‘탁발승의 새벽노래’를 흥얼거린다.
‘주지스님의 마른기침 소리에 새벽 옅은 잠 깨어라 하니
만리 길 너머 파도소리처럼 꿈은 밀려나고,
속세로 달아났던 쇠북소리도 여기 산사에 울려 퍼지니,
생로병사의 깊은 번뇌가 다시 찾아온다. 번뇌란!!! 요즘 자꾸만 나를 괴롭히는 단어이다.
娑婆世界에 사는 衆生의 苦, 執着... 다 내려놓고 싶다.
그런데 그게 아직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衆生의 修行이 부족함이련가?
부석사 능선위의 大幹길을 걸으면서 모든걸 털고싶다.
무명봉(07:16)
890m봉(07:21)
890m봉을 지나면서 또 하나의 봉우리가 보이는데 저 곳이 갈곶산인줄 알았는데
정상을 오르지 않고 좌측 사면길로 휘돌아서 가니 다시 안부가 보인다
대간길은 조금만 힘들다 싶으면 사면길이 나오니 마치 양넘 지갑줏는 느낌이다
무명봉을 오르지 않고 사면길로 내려서 다시 오르막을 오르는데 산객들의 소리가 들린다
먼저 도착한 동료들이 밥상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도 이곳에서 밥상을 펼친다
갈곶산(966mm:07:30~08:00)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와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갈곶산은 지나온 다른 봉우리보다 낮고 조망할 수 없으며 특이사항이 없는데 산이란 지명을 갖고 있다.
황장산을 지나 촛대봉-투구봉-솔봉-도솔봉-삼형제봉-연화봉-비로봉-국망봉-상원봉으로 이어지다
갈곶산이란 이름이 붙었다.
소백산권은 모두 봉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갈곶산은 소백산에서 벗어나 태백산권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갈곶"이란 뜻을 알 수 없지만 소백과 태백의 양백 중간에서 어느쪽으로 붙어야 할지 정말 갈 곳을 모르는 산으로
예전엔 표지판도 없었는데 3번째 와보니 이정목 아래 표지판이 붙어있다
갈곳산에서 우측으로 가면 부석사를 품에 안고 있는 봉황산으로 향하는 길인데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다
기간이 2015년 12월 31일에서 2034년 12월 31일까지다... 난 그땐에 아마 올 일이 없을것 갔소이다
봉황산 방향으로 가면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화엄10찰(華嚴十刹)로 유명한
부석사(浮石寺) 향하는 길이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거리가 너무 멀어 접어야 할 듯싶다.
부석사 무량수전을 갑곳산(甲串山)이라 불리우니 어디에서 흘러와 어디로 가는 배가 머물렀던 선착장이던가
갈곶산 정상에서 30분간의 여유로운 아침만찬을 끝내고 늦은목이로 내려간다
등로 좌측으로 늘씬하게 생긴 리기다소나무 군락지가 보이는데 원래 이곳은
춘양목으로 유명한 금강송 군락지인데 재선충으로 인해 금강송은 자꾸만
사라지고 신갈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들의 식생대로 바뀌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고치령에서 늦은목이까지 출입금지 구간인데 이곳부터는 자유의 몸이 되는 셈이다
늦은목이 탐방로 안내판
이곳부터 여태껏 같이해 온 소백산군과 작별을 하고 태백산 국립공원군으로 접어든다.
늦은목이가 소백산군(小白山群)의 마지막 구간이자 가야할 태백산군(太白山群) 의
시작점이지만 모든게 대비되는게 시사하는 바가 확연히 구분된다.
소백산이 참선, 수행, 부처 등 불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면 태백산은 배달, 단군, 선도 등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 및 사상과 연계되어 있는데 소백산의 마지막 구간인 갈곶산을 통해 우리 땅이 어떻게
형성되는 지를 설명하고 있으며, 오늘 구간의 선달산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 즉 한류의 원천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를 그리고 박달령은, ‘박달’이 무슨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알게 한다
늦은목이(800m:08:20)
늦은목이는 선달산과 갈곶산 사이의 안부로서 백두대간 동쪽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생달마을과 백두대간 서쪽 영주시 단산면 남대리를 잇는 고갯마루로
일반적으로 낮은 산능선이라 부르는데 이곳이 해발 800m 이니 이해가 잘 안된다.
예전엔 보부상들이 넘나들었으나 지금은 대간 산꾼들이나 가끔 드나드는 고개이다.
이곳부터 소백산국공원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늦은목이의 ‘늦은’은 ‘느슨하다’의 뜻이며
‘목이’는 노루목이나 허리목같은 고개를 뜻하는 말로 ‘느슨한 고개’ 또는 ‘낮은고개’로 볼 수 있다
늦은목이 좌측 오전리 생달마을 쪽으로 약30여m 정도 내려가면 내성천 발원지가 있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늦은목이 옹담샘이 있는데 오늘은 후미라서 그냥 통과한다
늦은목이 옹달샘(2013년 11월 24일 남진때의 사진)
이곳이 내성천의 발원지이고 옹달샘 아래에 있는 마을이 생달마을이다.
백두대간 기슭에 ‘생달’이란 마을이 두 군데 있다. 즉 문경의 대미산 아래에도
생달이란 마을이 있고, 이곳 선달산 아래에도 생달마을이 있다.
갈곶산에서 늦은목이까지 급하게 내려온 만큼보다 훨씬 더 높이 약440m 고도를 높혀야 한다
이정표는 계속 만나지만 고도는 높혀야 하고 간간히 불어오는 션한 바람이 산꾼을 훨씬 편하게 해준다
고도를 높혀서 오는데 이곳의 식생대가 4년전 남진때와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 당시에는 춘양목이라 불리웠던 금강송이 꽤나 많이 보였었는데 지금은 드문드문 보인다
춘양목이란 우리나라 토종 소나무인 적송을 일컫는 별칭으로 강원도와 경북 북부지방에서 벌채된
적송을 춘양역으로 운반해 와서 봉화군 춘양역에서 기차에 적재되어 타지방으로 반출됐다.
그리하여 타지방 사람들이 춘양에서 온 적송이라 하여 다른 고장의 적송과
구별하기 위해 춘양목이라 부른 데에서 이런 별칭이 생겼으며,
적송(赤松), 금강송(金剛松), 황장목(黃腸木) 등으로 불리는 춘양목은
잔가지가 적고, 곧게 자라며, 잘 썩지 않는 우수한 목재여서 예전엔 궁궐이나 사찰 건축, 혹은 관곽을
만들 때 주로 사용되었으며, 일본의 국보 제1호인 목조반가사유상을 만들었다는 바로 그 소나무이다.
일본 교토의 광륜사에 모셔져 있는데 일본이란 나라는 적송이 생산되지 않는데 2002년 일본 교토, 나라,
오사카로 졸업여행을 갔어 교토의 고류우지(廣隆寺)에 들렸을 때 일본에서 만난 한국인 가이드는
일본사람들은 죽어도 한국에서 만들어진 불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불상이 이곳 봉화에서 생산되는 춘양목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한 관람객이 불상이 너무
아름다워 불상을 만지다가 새끼 손가락이부러졌는데 일본 전체가 발칵 뒤집어졌다고 한다. 일본내에서는
적송 자체가 없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 것이라고 우기던 일본 사학자들은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인데 그 흔적을 없애기 위해일본의 형태로 불상을 성형했다고 한다
돌담 사이에 하얀 제비꽃이 이제사 피기 시작한다
우회 사면길(08:45)
급한 오름길이 시작되는데 코 앞에 곧추 서있는 봉우리로 오르지 않고 좌측 사면길로
오르는데 이게 대간의 묘미인가...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대간에서 떨어진 어래산이 보인다
내가 알고있는 온누리님은 아닌듯 하고...
이정표(08:50)
계속해서 고도를 높혀야 하는 오르막길...날씨는 자꾸만 더워지고 힘이든다
그래도 동료산꾼들은 잘만 간다
돌탑(09:58)
늦은목이에서 선달산으로 향한 계속해서의 오르막길... 힘이 너무 부친다
오는 산행중 가장 연장자이신 노바형님도 힘이 부치시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는데...
산에 대한 대단한 열정...참으로 존경할만 하다... 늘 안산하십시요
개별꽃(꽃말: 귀여움)
꽃이 마치 별처럼 생겼다고 해서 별꽃인데, 개별꽃도 그 중 한 종류로 10㎝ 내외로
키는 작지만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날, 산과 들에 마치 별이 솟은 것처럼 앙증맞다.
흔히 꽃에 ‘개’ 자가 붙으면 본래의 꽃보다 못할 때 붙여지곤 하는데, 개별꽃은 별꽃에 그다지 뒤지지 않는다.
단지 다섯 장으로 된 꽃잎은 같지만 별꽃의 꽃잎은 V자로 갈라져 모두 10장으로 보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특히 자줏빛에 가까운 5개의 꽃술이 하얀 꽃잎에 하나씩 놓이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곤 한다.
개별꽃은 산과 들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햇볕이 잘 드는 곳이면 어디서나 잘 자라는데,
흔히 신갈나무가 무리지어 있는 근처에 많이 분포한다.
잎은 마주나고, 길이는 1~4㎝, 폭은 0.2~0.4㎝이다. 꽃이 피는 시기는 4~5월이며, 열매는 6~7월에 둥글게 달린다.
비록 ‘개’ 자가 붙어 있지만 동삼이나 태자삼이라는 멋진 이름도 있으며, 동삼은 이 식물의 뿌리가 어린 인삼의 뿌리와
비슷해서 붙여졌으며, 태자삼이라는 이름은 옛날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태자 묘에 많이 자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봄꽃은 대부분 어린순을 먹을 수 있듯 이 식물도 나물로 먹을 수 있고, 뿌리는 약재로도 사용된다. 석죽과에 속하며,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에 분포한다
어래산(御來山:1063.6) 갈림길(09:20)
어래산쪽으로도 시그널이 많이 보이는데 이곳이 외씨버선길이란다
어래산은 한자를 뜻풀이하면 임금님이 다녀갔다는 의미가 되지만, 충북, 경북, 강원도 3도의
접경을 이루고 있어 주민들은 '삼도봉' 이라 부르기도 하며, 특히 이 산 아래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과 경북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 진때배기,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 용담 등
세 마을이 '삼도마을'을 이루고 있다
외씨 버선길 구간
외씨버선길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청정구역인 청송.영양, 봉화, 영월 4개군이 모여
만든 4色의 길로 이 4色길이 합쳐지면 영양 출신인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 나오는
외씨버선과 같다고 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선달산과 어래산 갈림길 사이에 있는 외씨버선길 안내판
선달산 정상으로 오른다
선달산(仙達山:1,236m:09:21)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과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영주시 부석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봉이 김선달을 연상케 하는 선달산의 유래는 여러 갈래로 다양하다.
신선이 노닐던 산이란 뜻의 仙達山이 먼저 올라야 할 산의 先達山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남쪽 산기슭 부석사의 浮石을 일컫던 우리말 [선돌]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혹자는 이 산 북동쪽 지능선상의 마대산 동쪽 산기슭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 일대에 위치한
조선시대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언 봉이 김선달)의 신위를 모신 당집과 묘소에서 그 이름을 유추하기도 한다.
先達이란 ‘과거에 급제하고도 아직 벼슬길로 나아가지 않는 신분’이라는 뜻과 ‘먼저 올라야 할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선답자 최창남 선생은 '먼저 깨달은 산'이라는 뜻으로 보고 '선(先)'자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시간적 의미에서의 '먼저'가 아니라 '선험(先驗)적인 지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 仙達이란 ‘仙道를 추구하는 무리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아무래도 先達이라는 이름보다 仙達이라는 이름이 더욱 끌린다.
그렇게 보아야 태백산의 가치와 맥이 통하기 때문이다.
儒道(유도), 佛道(불도)와 함께 동북아 사상계의 큰 줄기를 형성하는 仙道(선도)는 최치원의 풍류도와
닮아 있다고 하며 고달픈 현실 생활 속에서도 늘 마음의 여유를 갖고 즐겁게 살아갈 줄 아는 삶의 지혜와
멋을 풍류라고 하는데 이러한 풍류는 철따라 물 좋고 산 좋은 경관을 찾아 춤과 노래를 즐기면서
자연과 친해지는 생활로 표출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선도가 중국에서 건너 온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것이라는 점이다.
정리하면, 선도 즉 풍류도는 산을 찾아 춤과 노래를 통해 각박한 세속적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인생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순수함에 잠겨보는 우리 고유의 ‘삶의 멋’이라 할 수 있다.
선도 즉 풍류도가 우리민족의 DNA이며, 한국인들의 삶과 문화가 곧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이다.
우리의 한류가 왜 강세를 보이고 있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러한 강세가 산(대간)에서 탄생했다는 점도 공감할 수 있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대간팀 리딩을 맡고있는 태양아우가 선달산에서 무사산행을 기원하며
간절한 소망을 담아 여법하게 山神에 禮를 올리는 모습이 참으로 기특해 보인다
4년전인가 백두대간 남진할 때 산에 대해 완전 생초보였는데 어느새 巨木으로 크버린 느낌이다
아우님!... 향로봉까지 무사산행을 기원하마... 졸업식땐 꼼 참석하꾸마
선달산을 지나면서 우측으로는 경북 영주에서 강원도 영월로 행정구역이 바뀌었다가 박달령에서 경북으로 바뀐다
태양아우님이 제를 지내고 난 후의 祭物로 음복을 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난다
박달령으로 향하는 길은 큰 고도차가 없어서 편하게 길을 걷는다
암봉(09:52)
구조 이정목(09:58)
선달산 옹달샘(10:00)
우측으로 150m지점에 선달산 옹달샘이 있다는 이정표가 있으나 식수가 여유가 있어 내려갈 일이 없다
암봉(10:05)
골짜기 아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산꾼 범여를 조금은 수월하게 하는듯 하다
무명봉(10:08)
암봉을 우측으로 우회하면서 걷는다
다시 오르막을 올라서니...
무명봉(10:13)
1,246m봉(10:24)
정상에는 벤취 2개와 참나무 식별 안내판이 있는데 이곳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
고속도로같은 편안길을 걸어간다
매주 지맥길을 타느라 개고생을 했는데... 오늘은 그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무명봉(10:42)
뒤돌아 보니 조금전에 지나온 1,246m봉과 선달산이 나무가지 사이로 보인다
왕바위골 갈림길(10:54)
내리막길에는 멋진 선돌(立石)이 보이고...
박달령으로 향하는 계속되는 내리막길
화사하게 피어있는 진달래꽃
무명봉(10:58)
지루할 정도로 계속되는 내리막길... 졸음은 계속해서 쏟아지고...
나무계단(11:10)
이곳에서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서 박달령으로 향한다
드디어 헬기장이 보이고 박달령으로 내려선다
박달령(朴達嶺:1009m:11:17)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에 있는 박달령은 선달산과 옥돌봉 중간에 있는 고개로 고치령,마구령,
도래기재와 함께 과거 보부상들이 경상도와 강원도 영월을 드라들던 길목이다
정상에는 널따랗게 잘 정비된 헬기장이 있고, 한쪽에 산신각이 있으며,전각 형태의 쉼터와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어서 야영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박달”은 배달이라는 용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배달이란 곧 고대한국을 가르키는 말이니
박달이란 상고시대 우리의 국가명이다...또한 박달(朴達, 또는 白達)은 檀(박달나무)을 뜻하며,
이는 곧 단군의 ‘단’을 의미한다는 인식도 널리 퍼져있다
박달령 헬기장 우측에는 봉화군과 경상북도에서 세운 자세한 "백두대간 등산 안내도"가
서 있고, 그 옆의 이정표에는 "(서쪽)선달산 4.8km,(동쪽)옥돌봉 3.08km" 라 적혀 있다.
그리고 박달령 북쪽 50m 아래에 샘터가 있다고 이정표가 서있다.
박달령 정상에는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와 오전약수쪽에서 이어져 온 임도가 있어서
사륜구동형 차는 올라 올 수 있을 정도로 넓다
.박달령 산령각(山靈閣)
박달령은 고치령, 마구령과 함께 조선시대 보부상들이 경상도와
강원도 영월을 드나드는 길목으로 유명하며 뒤에 있는 산신각에서는 이들의
安寧을 기원하며 매년 4월 초파일에 지금도 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이 숭배하던 고향마을의 성황당이 1960년대 후반부터 많은 수난을 당했다.
신앙을 떠나 마을사람들의 공동체 형성의 공간이라는 긍정적인 면은 깡그리 무시되고
미신이라는 이름하에 많이도 때려 부셨던 메카시즘의 광풍이 몰려와 수많은 성황당이
폐쇄되는 운명을 맞았던 시절이 대한민국에도 있었다.
그때 박달령 산령각도 꽤 많은 오명과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까? 그
래도 용쾌도 살아남은 박달령 산령각을 만날 수 있었다. 피할 수 없는 만남이 되었던 그때
그시절에 있었던 광풍의 이름이 안타깝게도 농촌부흥의 기치를 내건 새마을운동이었다.
태백산신을 모시던 산령각은 ‘朴達嶺城隍神位’라는 위패가 놓여 있다.
성황당 문을 열고 문을 열고 영혼들의 안부를 물어본다.
배지붕의 기와가 우람하고 탱화 없이 단장된 커다란 신령 위폐가 엄숙하고 단정해 보인다.
박(밝고큰)달(산,언덕)재는 제천의 금봉/박달도령 쪽이 알려져 있지만 높이로는
이곳이 더 높은 고개다.(1009m) 또한 박달나무의 단목령(檀木嶺)도 같은 의미겠지만
억지 漢譯보다는 우리말이 정겹다. 선달산과 옥석산 사이에서 수많은 보부상들을 맞이하며
봉화와 영월의 소식을 물어보던 영혼들이 이젠 마루금 지나 다니는 대간 꾼들에게서
무슨 소식을 들어려 할 것인가... 예를 갖추고 다시 문을 닫는다
박달령 쉼터에서 잠깐동안 휴식을 취하는데 오늘 처음본 남.여 산꾼 2명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조금 늦게 도착한 3명과 같이 휴식을 취하는데 남은 경주빵과 처음 본 분이 주신 홍삼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다시 능선으로 치고 오르는데 예전에 비해 등로 정리는 잘해놨다
958m봉(11:38)
958m봉 안내판
958m봉 좌측 아랫쪽으로는 금강송이라 부르는 赤松이 간간히 보이지만 이곳은 예전에 금강송
군락지였는데 자꾸만 개체수가 줄어들고 신갈나무를 비롯한 활엽수가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금강송 군락지에는 리기다소나무가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아직도 겨우사리가 많이 보인다
무명봉(11:45)
편안한 길을 따라서 걷는데 새순이 돋아나는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할 옥돌봉과 문수지맥 분기봉이 보인다
4년전 남진길에는 없었던 생태복원지구가 간간히 보인다
이정표(11:54)
조금전에 지나왔던 늦은목이에서 선달산 오르는 길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이곳 역시 체력이 슬슬 고갈된 시간대라서 그런지 오름길이 꽤나 힘이 든다
돌양지꽃도 보이고...
이곳은 생강나무도 이제서야 꽃을 피우기기 시작한다
오름길이 힘들어 베낭을 벗어논 채 약간의 휴식을 다시 길을 나선다
무명봉(12:27)
문수지맥 갈림길:1,015m:12:32)
문수지맥 갈림길에 올라서니 이정표가 3개에다가 안내판까지 등로가 어지럽다
문수지맥(文殊枝脈)이란?
낙동강의 서쪽과 내성천(乃城川)의 동쪽을 흐르는 산줄기로, 백두대간 박달령과
도래기재 사이에 솟은 옥돌봉(1,244m)에서 남으로 갈래친 산줄기는 문수산(文殊山 1,207.6m)으로
내려와 봉화군을 북에서 남으로 가로질러, 명호의 만리산(791.6m), 도산의 용두산(665m)을
거쳐 녹전의 봉수산(569.6m), 북후의 불로봉(482m)으로 이어진 뒤 안동의 조운산(朝雲山 635m)을
지나 학가산(鶴駕山 874m)에 이른다.
학가산으로 향하는 문수지맥은 조운산에 이르기 전에 다시 한갈래를 나누어 봉정사가
있는 명산 천등산(天燈山 575.4)를 만들어 놓는다.
그러나 문수지맥의 원 흐름은 학가산에서 보문산(641.7m)으로 이어진 뒤 풍천의
검무산(331.6m)을 거쳐 예천군 지보면의 나부산(334m)을 지나 내성천과 금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삼강리(三江里)를 돌아 예천의 명물로 알려진 의성포(義城浦)의
맞은편 절벽인 회룡대(回龍臺)에서 끝난다.
박달령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힘든 구간의 보상이라도 받으려듯 편하게 옥돌봉으로 향하는데
등로 주위에는 개별꽃이 군락을 이루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이 예쁜꽃이 별꽃이 아닌 ‘개’자 붙었을까?
저 암릉이 옥돌봉을 상징하는 걸까?... 옥돌봉 정상으로 올라선다
옥돌봉 정상에 있는 안내판
옥돌봉(玉石峰:1242m:12:38)
경북 봉화군 춘양면과 물야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옥석산이라고도
부르며 정상 아래의 하얀 바위 탓에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바위는 햇빛을 받으면 예천에서도 보인다 해서 예천바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산 아래 마을은 그 빛이 비친다 해서 서벽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대동여지도는 백병산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태백산에서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같은 산으로 서북쪽으로는 선달산과 이어지며,
옥돌봉은 한자로 옥석산(玉石山)으로 기록되어서인지 두 가지 이름으로 불러진다.
옥돌(玉石)이란 귀한 것과 천한 것, 선과 악 등 상반된 뜻이 합성된 말이다.
세상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다 함께 존재한다는 뜻이다.
나쁜 것이 있어야 좋은 것이 있으며, 좋은 것은 나쁜 것으로 인해 더욱 드러난다는
의미이니 옥과 돌은 서로 화답하며 뒤따르는 존재일 것이다
옥돌봉 정상 이정표
옥돌봉 정상석 앞에는 헬기장이 있고 맞은편엔 봉화군에서 설치한 노란 표지판이 있다
봉화군에서 설치한 표지판
봉화군의 설명에는 “단군신화에 환인(단군)이 머물다간 산이라 하여 옥석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산 아래에는 탄산수로 유명한 오전약수와 두내 약수탕이 있다고 한다
옥돌봉에서 도래기재로 내려서는 길은 철쭉군락지인데 아직까지 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무명봉(12:50)
철쭉군락지로 내려서니...
550년된 철쭉(12:53)
보호수 앞에는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 지저분할 정도이다
처녀치마(꽃말:절재)
산 속의 습한 응달에서 자라며 뿌리와 줄기는 짧고, 뿌리에서 로제트를 이루며 나오는
잎은 길이 7~15㎝, 너비 1.5~4.0㎝의 피침형으로 끝은 뾰족하며, 표면은 광택이 있다.
3월초에 꽃대가 30㎝까지 올라와 하순에 꽃대 윗부분에서 3~10개의 보라색 꽃들이 고개를 숙이면서 총상꽃차례로 달린다.
수술 6개는 길어 꽃덮이조각[花被片] 밖으로 나오며 8월경에 익는 역3각뿔 모양의 열매는 삭과로 겉에 3개의 능선이 있다.
번식은 이른봄에 포기나누기를 하거나 여름에 씨로 번식한다. 이 풀은 겨울철에 마르지 않고 땅에 깔려 겨울을 나고 봄에
바로 꽃대가 올라오는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잎은 보이지 않고 꽃대만 올라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잎이 땅에 퍼져 있어 치마폭을 펼쳐 놓은 듯한 모습이지만
처녀치마라는 이름은 일본이름을 잘못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무명봉(12:59)
내리막길 등로에는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노거수들의 응원을 받으며 계속되는 내리막길
이정표(13:05)
영주국유림관리소에서 설치한 안내판
철쭉터널(13:15)
철쭉터널을 지나니...
사면길이 나오고 차량소리가 들리니 도래기재가 가까워진 모양이다
산림청 안내판을 지나니... 고무판을 깔아논 데크목 계단이 나온다
아는 시그널이 있나 없나 보자...
계단으로 내려서니 동물이동통로가 있는 도래기재가 보이고 우리가 타고온 버스도 있다
도래기재(導驛峙:936m)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와 우구치리를 이어주는 고갯길로서 고갯마루에는 금정굴로 불리는 터널이 있어
사람과 차량이 통행하였으나 근래에 폐쇄되고 현재는 고갯마루를 관통하는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과
경북 봉화군 춘양면을 이어주는 2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인 88번지방도가 지나간다.
산행 들머리의 도래기재 안내판에는 “서벽리 북서쪽 2Km 거리에 있는 마을이름을 따와서 도래기재라고 한다.
도래기 마을에는 조선시대에 역(驛)이 있었기에 역촌마을이라 하여 도역리(導驛里)라 부르다가 이것이
변음이 되어 현재는 도래기재로 통용되었다. 재넘어 우구치는 골짜기 모양이 소의 입모양을 닮아서
우구치(牛口峙)라 불린다.”고 적혀있는데 영주,봉화의 윤승일님의 글은 금정으로 불리는 우구치는
금광이 열리면서 인구가 수천 명에 이르고 극장이 설치될 정도로 번성했다고 한다. 당시 캐낸 금이나
은 등의 광물을 수송하기 위해 도래기재 아래에는 1925년 터널이 뚫렸다.
통행이 금지된 지 오래지만 터널은 ‘금정수도’라는 이름표를 단 채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
우구치리에서 금정수도까지 광물을 운반하는 삭도를 ‘도래기’라고 부른 데서 고개 이름이
연유했다는 것이 금정광산의 내력을 아는 이들의 말이다. 송아지만 한 금이 묻혀 있다는
금광은 폐광된 지 오래고 금정수도 역시 통행이 금지된 지 오래라고 한다.
10시간이 넘는 무박 산행이라 약간의 두려움은 있었지만 오랫만에 대간 동기들과
같이 걸었던 탓이라 맘이 편했고, 거기다가 험한 지맥길을 다니다가 편안 대간길을 걸었던
탓인지... 피곤한 줄은 모르겠다. 먼저 도착한 공작산 아우님이 주는 션한 맥주 3잔을 얻어 마시고
버스를 타고 봉화읍내에 도착... 목욕탕에 들려 깔끔하게 샤워를 마치고 의관정재를 한 다음에
삼겹살에 소+맥주거하게 마시고 밥까지 먹고는 귀경하는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진다
또 그것도 모자라 오랫만에 만난 대간 5기 후배들과 사당동에서 치맥 파티까지... 다들 반가웠시요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 > 백두대간 3차 북진(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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