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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백두대간 3차 북진(終)

백두대간 제24구간 - 죽령에서 고치령까지

by 범여(梵如) 2017. 5. 29.

        이래저래 살아봐도 일백년 인생이요!

                아둥바둥 살아봐도 일백년 인생이라네

 

☞ 산행일자:  2017년 5월 27일~28(무박산행)

☞ 산행날씨:  맑은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6.5km / 10시간 25분 소요

☞ 참석인원: 봄.여름.가을.겨울산악회 38명과 함께

☞ 산행코스: 죽령-죽령탐방지원센터-이야기 쉼터-잣나무 쉼터-혜성쉼터-바람고개 전망대

                 제2연화봉-전망대-목성쉼터-곰바위-소행성나루-소백산 천문대-연화봉

                 폐헬기장-전망대-제1연화봉-1,382m봉-1,333m봉-전망대-암봉-1,405m봉

                 천동리 갈림길-주목군락지-비로봉-조망바위-어이곡리 갈림길-소백산성 터

                 초암사 갈림길-국망봉-상월봉 갈림길-상월봉-1,100m봉-늦은맥이재

                 신선봉 갈림길-헬기장-1,060.6m봉-연화동 갈림길-헬기장-1,243m봉-1,002m봉

                 연화동 갈림길-994m봉-1,031.6m봉-1,000m봉-암봉-마당치-형제봉 갈림길

                 헬기장-863m봉-고치령

소 재 지: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순흥면, 단산면 / 충북 단양군 단양읍, 영춘면


여름철이 다가 오면서 곳곳에 시한폭탄(잡목과 가시)들이 수도 없이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는

지맥길을 독립군(나홀로 산행)으로 활동하려 하니 상당히 힘든 부담으로 다가온다

거기다가 체력 소모가 너무 많기도 하지만 늘 동반자로 많이 다녔던 진권아우가 다시

히말리야 로체 등반을 추진을 하는지 행님한테 변심(?)을 했는지 젊은것이 통 연락이 없다

래서 만만한게 홍어 ?라고... 2년전 백두대간 남진을 같이한 대간 동기들이 진행하는

대간 북진길에 동행하기 위해 좀 이른 시간에 베낭을 메고 집을 나서 사당역 근처에서 스크린

골프장을 운영하는 친구와 함께 간단하게 스크린 골프 한 게임을 하고 사당역 1번 출구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죽령에 도착하다(03:00)

사당역 버스타는 곳에 도착하니 늘 커다란 관광버스에 십사오명만 타고 다녀 을씨년스럽기만 하던 분위기가

오늘은 40여명의 대간꾼들이 소백산의 철쭉을 보기위해 간다면서 왁짜지껄하여 오랫만에 사람사는 냄새가 난다

그 바람에 산행 안내 멘트를 하는 대장 태양아우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있고, 늘 간당간당하는 찌든 살림살이에

적자를 면해 보려고 애를 쓰는 총무님의 얼굴에는 和色이 도는데 참으로 보기가 좋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2번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들머리인 죽령 정상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날씨는 춥질 않다

음력 오월 초삼일 야심한 새벽, 정상에 있는 주막과 휴게소는 깊은 잠에 빠져있고, 동료산꾼들의 목소리만 들린다

嶺南第一門

흔히들 영주하면 선비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이 문이 선비의 고고함이 배여있는 곳이다.

 

대구·경북지역에는 문경시 새재 도립공원에 있는 영남 제1관문, 대구 망우공원 안의 영남 제1관,

김천시 영남제1문 등 영남 제1이란 이름이 들어가는 문이 3곳이나 된다고 한다.

문경의 영남 제1관문은 조선 숙종 34년(1708년)에 새재에 쌓은 3개의 관문 중 1관문인 주흘관문을 일컫는 말이다.

영남지방에서 서울로 통하는 고갯길로서 교통 및 군사상의 요충지였던 문경새재는 죽령·추풍령과 함께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던 세 고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곳인데 그 세 고개중의 하나인 이곳

죽령 정상에도 영남 제일문이 있어서 조금은 헷갈린다

죽령(竹嶺:696m)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영주시 풍기읍 경계의 소백산맥에 있는 고개로 5번국도가 통과하는 고개로 

도솔봉(兜率峰:1,314m)·연화봉(蓮花峰:1,394m)·국망봉(國望峰:1,421m) 등 높이 1,400m 내외의

높은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는 험한 지세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조령과 더불어 영풍-단양 간의 주요교통로로

기록상으로 백두대간 분수령 두번째 열린 고갯길이다

첫번째 고개는 죽령보다 2년전인 계립령 지금의 하늘재다 죽령은 하늘재와 더불어 고구려

신라가 치열하게  패권을 다투던 곳이었는데

이곳에서 가까운 상월봉 아래 영춘의 온달산성에 그 흔적이 있다

 

옛날 어느 도승이 짚고 가던 대지팡이(竹)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죽령이라 했다 한다.

서쪽 사면은 충주호로 흘러드는 죽령천의 상류 하곡과 연결되며,〈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아달라이사금 5년(158년) 3월 죽죽(竹竹)장군에 의하여 죽령 길이 개통되고 그의 이름을 따서

죽령이라 부르게 되었으니 연륜이 1850년이 넘는 고개이다.

죽령은 단양까지의 서쪽 사면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여 높은 곳까지 개간되었고 동쪽 사면인

풍기 쪽으로는 산림이 우거져 있으며, 부근에 죽령 봉수와 보국사·희방사·죽죽사가 있으며, 중앙선을

따라 중앙고속도로(춘천-대구 간)가 있고, 옛날에는 죽령 고개를 넘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고 한다. 

 

문경새재인 조령, 추풍령과 함께 영남과 기호지방을 잇는 3대 관문의 하나였던 죽령

또한 소백산을 남북으로 가르며 북서~남동 방향으로 발달한 단층선을 따라 양쪽으로

침식이 크게 이루어진 결과로 저지대를 이루게 됐다.

죽령은 이곳 양쪽의 저지대인 계곡을 따라 나란하게 길을 낸 고개다. 뿐만 아니라

지구온난화가 심해지기 전에 대나무 북방한계선이라고 해서 죽령이라 이름 붙여졌다 전한다. 

지난해 나홀로 풍기(금계촌) 십승지를 4번에 거쳐 걸어면서 이곳에서 파전에다 막걸리 한사발 걸쭉하게

마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야심한 새벽에 주모는 깊은 잠에 빠졌는지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다

옛날에 이곳은 도둑들이 하도 많아 죽령을 넘는 민초들을 무던히도 괴롭혔는데 죽령 고개 아래 용원리에 사는

다자구 할미의 지혜로 도둑들을 퇴치했다는 야그는 전설아닌 무용담으로 전해지는데... 다자구 할매도 깊은 잠에 빠졌나 보다

산행을 시작하다(03:10)

죽령에서 연화봉까지 7km까지는 그냥 도로를 따라서 걸어가야 한다

소백산 국립공원 탐방지원센터(03:13)

탐방지원센터 입구는 문이 굳게 잠게있다.

좌측으로 돌아서 계속되는 시멘트 도로를 걷는데 어둠속에 이름모를 짙은 꽃향기가 코끝을 지극한다

음력 오월초사흘 야심한 새벽에 하늘엔 별만이 초롱초롱하고, 보이는 건 산꾼들의 렌턴 불빛이요

들리는 건 적막을 깨트리는 산꾼들의 숨소리 뿐... 버스에서 내리면 늘 선두로 도망 가버리는 조급증(?)에

걸린 산꾼들은 이미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오늘도 범여는 맨 꼬바리에서 悠悠自適 걸어간다

산은 늘 거기 있는데... 왜 저리들 급하신지?...느림의 美學을 모르시나...

소백산 정상은 기온이 3.3도라는데 바람이 없는 탓인지 생각보다 그리 춥지는 않다

이야기 쉼터 갈림길(03:23)

잣나무 쉼터(03:34)

죽령에서 1.5km를 지난 지점에 오르면서 바람이 불지 않은 탓인지 땀이 조금씩 흐른다

예전의 경험에 의해 여러겹 입었던 옷을 하나 둘 벗어 베낭속에 넣고 조금 편하게 걷는다

혜성 쉼터(03:43)

이곳은 소백산천문대가 있는 관계로 쉼터에는 9개의 혹성의 이름을 따서 쉼터를 만들어 놨다

이곳이 혜성 쉼터이면 명왕성 쉼터는 그냥 지나쳤다는 얘기인가?

바람고개 전망대(03:55)

바람고개에 도착하니 전망대가 나오고 남쪽으로는 풍기읍내의 야경이 한 눈에 보인다

이곳에서 어둠속으로 사라진 선두와 조우를 하고 물 한모금 마시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기읍(豊基邑) 야경

경북 영주의 북편에 붙어 있는 풍기는 한때 조선의 중심을 자처했던 고장이고, 영남 사림파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소수서원이 이곳에 있기 때문인데,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말의 유학자 안향을 제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백운동서원이 바로 소수서원의 시초였다.

 

또한 풍기는 인삼과 인견, 사과로 유명한 곳인데

풍기 인삼의 유래는 조선시대의 유학자 주세붕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후기로 갈수록 지역특산품을

세금으로 바치는 공납제도의 폐해가 심각해졌는데,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산삼의 인공재배를 장려하면서

인삼이 이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삼이라면 산삼만 떠올리던 그 시절 주세붕은 전국의 토양을 조사한 뒤 풍기가 삼을 키우기에 알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이 풍기인삼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풍기군수 주세붕이 풍기에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이 바로 인삼이다.

어둠속에 시멘트 등로 윗쪽으로는 커다란 봉우리가 보이지만 오를 일이 없다

어둠속에서 만난 병꽃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 갈림길(1,297m:04:30)

반경 100km까지 100초 단위로 구름의 강우량을 측정하여 기상관측소와 한강수위 통제소로

보내진다고 하는데 어두워서 카메라 앵글에 잡을 수 없는 아쉬움을 남기고 좌측 도로를

따라서 조금가니 야심한 새벽에 제2연화봉 표시석이 산꾼을 반긴다.

제2연화봉(第2蓮花峰: 1,357m:04:32)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와 충북 단양군 단양읍 사이에 위치한 봉으로 소백산국립공원에 속한다.

『순흥읍지』에서 희방용추를 설명하는 내용에 연화봉(蓮花峰)이 나온다.

또 『조선지형도』에는 현재의 제1연화봉이 해당하는 곳에만

연화봉이 적혀 있고, 일본어로 한글 발음이 병기되어 있다

이런 식의 이름은 전국의 곳곳에 산재한다.

이들 지명은 거의 모두가 연꽃처럼 생긴 산의 생김새에서 유래하고 있다.

 

 제2연화봉에서 비로봉에서 이르는 일대는 아고산(亞高山) 지대로서 키작은 나무와 초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한 육산(陸山)이기 때문에 산세가 완만하고 산의 모양은 둥그스름하다.

그 모습은 못 위에 솟아 있는 연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직전의 모습과 흡사하다.

지명은 풍수지리의 형국론이나 불계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제2연화봉 정상은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에 내어주고 자기 자리도 아닌 엉뚱한 곳에

표시석에 자리를 잡고 있는게 안타깝기만 하다.

제2연화봉 표시석을 돌아 임도를 따르니 넓은 광장이 나오고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저기 보이는 강우레이더 관측소가 대간길이긴 하지만 갈 수 없는 곳이다

전망대(05:00)

광장에서 바라본 연화봉과 비로봉의 모습

저기 보이는 시설물 뒷쪽이 대간길이긴 하지만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없다

날이 밝아지면서 헤드렌턴을 끄고 편하게 연화봉으로 향한다

목성 쉼터(04:58)

오랫만에 만난 산꾼들과 뭔 야그가 그리도 많은지 해도해도 끝이없다

곰바위(1,280m:05:05)
등로 우측으로는 곰바위가 나뭇가지 사이로 빼꼼히 보이나 산꾼들은 다들 무심히 지나간다

소행성 나루(05:10)

쥐오줌풀(꽃말:허풍쟁이)

쥐가 오줌을 눈 풀이라는 이름은 이 식물의 뿌리에서 쥐 오줌 냄새가 나서 붙여졌다.

땅속에서 가는 뿌리줄기가 옆으로 벋으면서 번식하는데, 뿌리는 수염뿌리이다. 쥐오줌풀은 또 숙근성 여러해살이풀이다.

숙근성이란 해마다 묵은 뿌리에서 움이 다시 돋는 식물을 말한다. 곧 가을이 지나 지상 식물부가 모두 사라져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봄이 되면 뿌리에서 싹이 올라오는 식물이다.

 

쥐오줌풀은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지만 비교적 토양이 비옥한 곳과

반그늘 혹은 양지에서 잘 자라며, 키는 40~80㎝이다.

잎은 지상부로 올라오고 난 후에 뿌리에서 나온 잎이 자라지만

개화 때에는 뿌리에서 나온 잎이 없어지고 줄기에서 자란 잎이 나온다.

줄기에서 나온 잎은 5~7개로 갈라지고 톱니가 있다.

 

꽃은 5~7월에 연한 붉은색으로 피는데, 원줄기 끝과 옆 가지에서 둥근 형태로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열매는 8월경에 길이 0.4㎝ 정도로 꽃잎이 붙은 자리에 달린다. 열매에는 짧은 깃털이 있어서 가을의

약한 바람에도 쉽게 떨어져 나가는데, 이는 쥐오줌풀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마타리과에 속하며, 길초, 긴잎쥐오줌, 줄댕가리, 은댕가리, 바구니나물이라고도 한다.

관상용으로도 쓰이며, 어린잎은 식용, 뿌리는 약용으로 쓰인다.

유럽에서도 아주 오랜 옛날부터 뿌리를 약재로 사용했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할린, 타이완, 중국 동북부 등지에 분포한다.

소백산 천문대(05:15)

우리나라 천문대 1호인 소백산천문대는 1978년 준공과 함께 관측활동을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직경 60㎝가 넘는 반사 망원경을 최초로 설치해 우리나라 천문학의 신기원을 연 곳이기도 하다.
소백산 천문대는 대전의 대덕전파 천문대와  영천에 있는 보현산 천문대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천문대이다

대간길은 좌측 임도로 향하는데 호기심이 발동한 범여는 천문대 안쪽으로 향한다

지난 2009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천문의 해다.

갈릴레이가 목성의 위성을 발견한 지  400년이 된 해를 기념하는 것이다. 

천문은 인간이 자연과 만나는 통로이자 문명을 이끄는 첨병이었다. 우리 민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신라와 고구려에 이미 첨성대가 있었고 일본에서 7세기까지 활약한 천문가의 상당수는 백제인이었다.

이런 전통은 고려의 서운관과 조선의 관상감으로 면면히 이어져왔다.

오늘날 1만원권 지폐에 새겨진 혼천의와 천체망원경은 천문인들의 자부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의 천문학은 과거의 영화를 떠올리기 민망할 만큼 뒤처져 있다.

소백산 천문대는 한국 천문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유물이기도 하다.

1978년 준공된 이 천문대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최대였던 주경 61㎝

 크기의 천체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미국·이탈리아·스페인·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망원경이 10m를 넘어선 지금까지도 한국 천문인들은

이 골동품으로 밤하늘의 별을 찾고 있다.

천문대 초입에 들어서니 우측으로는 첨성대 모양의 조형물이 보인다

천문대는 지금 한밤중인지 쥐 죽은듯이 조용하고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아줌마만 분주해 보인다

자물쇠로 잠가둔 목책을 무단으로 넘어서 연화봉으로 향한다

연화봉 가는길

조금전에 헤어진 산꾼들과 다시 조우를 한다

연화봉(蓮花峰:1,394m:05:25)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 단양읍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단양군이 1987년 5월 31일 제5회 소백산 철쭉제를 기념하며 세운 표시석이

어둠속에서 산꾼을 반긴다. 저 아래의 풍기읍내의 불빛은 아직도 밤을 알리고

세차게 불어오는 北風寒雪은 몸을 가누기가 힘이 들 정도이다.

 

연화(蓮花)란 불교의 연화장 세계에서 가져온 용어로 

연꽃에서 태어난 세계 또는 연꽃 속에 담겨 있는 세계라는 뜻으로,

연화장 세계를 일러 화장세계, 연화장장엄세계라고도 부른다.

비로자나불이 있는 세계이며, 한량없는 공덕과 광대장엄을 갖춘 불국토이다.

『화엄경』에서는 연화장 세계가 삼신불, 그 가운데서도 노사나불의 서원과 수행에 의하여

현출된 이상적인 세계라 정의하고 있다.


이 세계의 가장 밑바닥에 풍륜이 있고 그 위에 향수해가 있으며, 이 향수의 바다 속에

한 송이의 큰 연꽃이 있는데, 이 연꽃 속에 있는 세계를 일러 연화장 세계라 한다. 

이곳을 연화봉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곳이 소백산 철쭉을 유명한 곳인데

철쭉이 피었을 때 봉우리가 연꽃을 닮았다하여 연화봉으로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연화봉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우측으로 내려서면 희방사와 풍기 십승지의 중심인 금계촌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풍기 십승지 지도

십승지란 천지 대개벽이 일어날 때 재앙을 피하기에 좋은 10군데의 지역을 말한다.

정감록이나 격암유록에따르면 가까운 미래에 엄청난 천재지변이 일어나 인간은 끔찍한 질병과 굶주림,

추위와 더위, 공포에 시달리게 되고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함으로서 인류는 절멸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십승지에 들어가는 사람은 이러한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목숨을

보전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으며 자손이 끊기지 않고 후세에까지 보존될 것이라고 하여

재난을 피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십승지에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십승지를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라 하여

흉년, 전염병, 전쟁이 들어 올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십승지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등 명산에 자리잡고 있으며, 산이 높고 험하여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되어 있는 곳이다.

 

십승지는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통로가 대개 한 곳 밖에 없는데 물이 빠져나가는 곳으로 험한 계곡과

협곡으로 되어 있다. 또 산이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공간에 수량이 풍부한 평야가

있어서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하여1년 농사지어 3년을 먹고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대개 십승지는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으로 가치가 별로 없는 곳으로 발전이 없으며 전쟁이

일어나도 적들의 접근이 전혀 없다. 결론적으로 십승지는 발전보다는 미래에 다가올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피난과 자손 보존의 땅이다. 따라서 한때 난리를 피하기는 좋은

곳일지는 모르지만 여러 대를 살면서 번창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한 곳이다.


이러한 십승지가 있다고 하는 곳은 다음 열 곳이다.

1. 영월 정동 상류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연하리 일대)
2. 봉화 춘양 일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일대)
3. 보은 속리 난증항 일대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 화남리 일대)
4. 공주 유구 마곡 두 강 사이 (충남 공주시 유구읍 사곡면 일대)
5. 풍기 차암 금계촌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일대)
6. 예천 금당동 북쪽 (경북 예천군 용궁면 일대)
7. 합천 가야산 남쪽 만수동 일대 (경북 합천군 가야면 일대)
8. 무주 무풍 북쪽 덕유산 아래 방음 (전북 무주군 무풍면 일대)
9. 부안 변산 동쪽 호암 아래 (전북 부안군 변산면 일대)
10. 남원 운봉 두류산 아래 동점촌 (전북 남원시 운봉읍 일대)

희방사 대웅보전(2015년 11월 01일 풍기십승지 때의 사진)

희방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로서

신라 선덕 여왕 12년(643)에 두운대사(杜雲大師)가 창건했다고 한다

희방사는 누구에게 쉽게 모습을 나타나지 않는 외진 곳에 숨어 있다.
병풍처럼 깍아지른 듯한 절벽에 자연과의 균형을 거스르지 않을 정도의 규모로 짓고,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햇빛만 잠깐 받아들일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희방사 창건 설화

“ 두운 대사는 태백산 심원암(深源庵)에서 소백산 연화봉 아래로 와서 동굴을 집 삼아

수행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어느 겨울밤 갑자기 호랑이가 굴 안으로 뛰어 들어와 고개를

흔들며 고통을 호소하였다.

대사가 가만히 살펴보니 목에 비녀가 꽂혀 있었다. 불쌍히 여겨 비녀를 뽑아 주었다.

이런 일이 있은 며칠 뒤, 굴 앞에 인기척이 있어 나가보니,

웬 여인이 호랑이 옆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정성껏 보살피니 곧 정신이 들었다. 사연을 들으니

여인은 호장(戶長) 유석(留石)이라는 사람의 무남독녀로서 혼인을 치르고

신방에 들었는데 별안간 눈앞에 불이번쩍한 뒤로 의식을 잃었다고 하였다.

 

영물인 호랑이가 지난번 자기를 살려준 데 대한 은혜를 이렇게 갚고자 했던 것이다.

때는 한겨울이라 깊은 산중이 눈에 덮여 길조차 막혀 있었다.

여인을 귀가시키려면 겨울이 지나야만 했다.

 

대사는 동굴 안에 싸리나무로 울타리를 치고 함께 겨울을 지낸 뒤 여인을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여인의 아버지는 실종된 딸이 멀쩡히 살아 돌아오자,

기뻐하면서 대사의 은혜를 갚고자 동굴 앞에 전각을 짓고 농토를 희사하였다.

또한 계곡에 무쇠로 다리를 놓아 대사의 수행에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해 주었다.

오늘날 절이 위치한 행정구역인 수철리(水鐵里)는 곧 이 다리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희방사라는 절 이름은 은혜를 갚게 되어 기쁘다는 뜻의 ‘희(喜)’와

두운 대사의 참선방이라는 의미의 ‘방(方)’을 합친 것이라고 한다.”

가야할 비로봉은 어느새 우리곁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해는 어느새 저만큼 올라와 버렸다

지나온 능선의 모습

연화봉에서 15분정도 머물다가 비로봉을 향한 발걸음을 옮긴다

영혼이 자유로운 저 산꾼은 모든걸 잊어버리고 깊은 잠에 빠져있다.  

비로봉 가는길

풀솜대(꽃말: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솜이 잔뜩 묻어 있는 것처럼 꽃이 피는 옛날 춘궁기 때 산과 들에서 나는 나물은 요긴한 식량이었다.

풀솜대는 구황식물로 이용되었는데, 특히 절에서 죽을 쑤어 먹곤 했다고 하며 그래서 중생들을 구제하는

풀이라는 뜻으로 풀솜대를 ‘지장보살’이라고도 불렀으며,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운 위대한 보살이니, 작은 풀꽃에 붙인 별칭으로 최고의 이름이 아닐 수 없다.

 

풀솜대란 솜대에 ‘풀’을 붙인 이름인데, 솜대는 어릴 때에 흰 가루로 덮여 있는 것이 솜이 묻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부르는 이름으로 본래 솜대는 벼과에 속하는 품종으로 키가 무려 10m에 이르는 큰 식물이다.

이 솜대와 비슷하다고 풀솜대라고 했지만 키는 아주 작아서 20~50㎝에 불과하다. 한편 왕솜대도 있는데,

 ‘왕’ 자 때문에 솜대보다 훨씬 클 것 같지만 풀솜대보다 잎이 훨씬 길다고 해서 왕솜대로 불리는 것뿐이다.

소백산에서 유일하게 걷는 돌계단으로 따라서 가는데 앞서가던 대장이 시원한

수박을 건네는데 참으로 맛있게 먹는다...늘 받아 먹기만 하는데... 아우님 복받을 겨

귀한 흰색 철쭉도 만나고...

출입금지 표지판이 보이는데 다행히 탐방로는 제외란다

홀아비 바람꽃(꽃말: 비밀스러운 사랑)

전설에 의하면 고려 충선왕 때 김해 무점 지방에 김태은이라는 청년이 살았는데,

열심히 공부해 과거에 합격하고 논실마을 이씨 집안 처녀와 결혼했다.

하지만 3년 뒤 부인은 병에 걸려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부인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으면 이 하얀 모시저고리를 안고 주무세요. 그러다 새로 여자를 얻으면 이 저고리를 땅에 묻어주세요.”

몇 년 뒤 남편은 이웃동네 처녀에게 반해 결혼을 하게 되자 아내의 유언에 따라 흰 모시저고리를

서잿골 금령천 약수터 옆에 묻어주었는데, 이듬해 그곳에서 하얗고 가녀린 꽃 한 송이가 피어 진한

향을 내니 사람들은 그 꽃을 홀아비바람꽃이라고 불렀다.

 

바람꽃 중에는 이 꽃 말고도 꽃대가 하나만 자라는 것이 있는데, 바로 외대바람꽃이다.

비슷한 처지임에도 하나는 홀아비, 하나는 외대로 불리는데, 외대가 홀아비보다 꽃이 조금 커서 지름은 약 4㎝이다.

이에 비해 홀아비바람꽃의 꽃 지름은 1.2㎝밖에 안 된다.

소백산 철쭉 군락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폐헬기장(06:00)

제1 연화봉 오르는 등로는 철쭉이 흐드르지게 피어있다

아직도 백두대간을 태백산맥이라 부르는 이들이 있다고 하는데...

제1연화봉으로 오르는 길

 

 

부처를 찾아
山寺를 찾았더니

찾아간 부처님
법당엔 아니 계시고

돌덩이 가슴 안고
돌아 내려 오는길

봄 산
소나무 숲

지나던 한줄 바람
내 귓가에 속삭이네

버리거라
내려 놓아라

묶은잎 떨구는
저 솔잎처럼

그러고
돌아간 자리

부처는 그 자리에
먼저가서 기다릴지니.

전망대(06:10)

전망대에서 바라본 제1연화봉의 모습

연분홍 철쭉꽃(꽃말:사랑의 즐거움)

철쭉은 한자로 척촉(躑躅)이라고 하는데 꽃이 너무나 아름다워 지나가던 나그네가

자꾸 걸음을 멈추어 이런 이름이 붙어졌다고 하며, 소백산 철쭉꽃은 연분홍색을

내는데 이는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

아고산 지대의 낮은 기온과 강한 바람으로 인해 5월 중순 이후부터 피기 시작한다고 한다

 

철쭉꽃은 진달래와 비슷하게 생겨서 혼돈하기 쉬운데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지만

철쭉은 잎과 꽃이 함께 피는게 특징이며, 진달래는 참꽃이라 해서 식용이 가능하지만

철쭉은 독성이 강해 개꽃이라하여 먹을 수가 없다

백두대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식물인 신갈나무와 철쭉 중에 소백산 철쭉은 그중 으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월 말~6월 초의 늦봄에 연화봉~비로봉~국망봉 일대의 광활한 초원지대는 그야말로 연분홍 철쭉꽃이 만발하면서

천상화원으로 변하는데 그 명성은 조선시대 퇴계 선생의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에 그대로 나타난다.

이 일대 철쭉꽃 화원은 조선시대부터 유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후미 산꾼들은 철쭉의 향기에 취해 아직도 전망대에서 비로봉으로 갈 생각도 않한다

제1연화봉(06:18)

졸방제비꽃(꽃말:순진무구한 사랑)

졸방제비꽃은 꽃들이 올망졸망 피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경상도에서는 올망졸망을

올방졸방이라고 하는데, 작고 조그만 꽃들이 고르지 않게 벌어져 있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또 강원도와 경상도에서는 조리를 졸방이라고도 하는데 꽃과 화경이 조리를 닮긴 했다.

 

졸방제비꽃은 우리나라 각처의 산과 들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양지 혹은 반그늘에서 잘 자라며, 키는 20~40㎝이다.

제비꽃 중에는 드물게 줄기가 곧게 서고, 잎은 길이가 2.5~4㎝, 폭이 0.3~0.5㎝로 어긋난다.

줄기 윗부분의 잎은 폭이 길이보다 짧고 끝이 뾰족해지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턱잎은 긴 타원형으로 빗살 모양의 톱니가 있다.

꽃은 5~6월에 백색 또는 연한 자줏빛으로 원줄기 윗부분의 잎자루에서 옆을 향해 달리는데, 길이가

5~10㎝의  꽃줄기가 나오며, 열매는 7~8월경에 달리며, 타원형으로 길이는 0.8~1㎝이다

데크목 계단을 따라서 우회를 하면서 오르니 1,382봉이 나온다

1,382m봉(06:30)

제1연화봉을 거쳐 비로봉으로 가는 길은 유럽의 평원을 연상시킬만큼

멋진 광경의 철쭉 군락이이 연출되는데 이곳은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아고산대

식물들이 펼쳐져 있고 좌우로 단양과 풍기 땅을 시원하게 굽어볼 수 있다.

흔히 소백산을 가리켜 남성성이 강한 산으로 평하는데, 이 능선에 서면 그 이유를 체감할 수 있다.

등로에서 우측으로 내려다보니 풍기 십승지의 금계촌 마을에 있는 금계 저수지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원적봉과 그 너머로 아자산이 아련히 보이는데 2015년 가을에 풍기 금계촌십승지를

나홀로 걸어면서 선답자들의 자료가 없어서 마치 보물 찿기하듯 걷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요즘 소백산 능선에는 연분홍 철쭉과 함께 쥐오줌풀, 풀솜대, 벌깨덩굴이 대세이다 

1,333m봉(06:35)

고인돌처럼 암릉구간을 지나니...

비로봉을 바라보면서 소백산 아고산지대를 걷는다

이곳은 해발1300m이상인 소백산의 아고산지대로 바람이 세고 비와 눈이 자주 내린 곳 으로

습기가많고 키가 큰나무가 잘 자랄수가 없는지대이다 아고라 지대는 아한대 기후지대로

신갈나무 철쭉 등,바람과 추위을 잘,이겨내는 야생식물이 자연과 균형을이루며 살고있다

등로에서 바라본 단양읍은 짙은 미세 먼지로 인해 모든게 흐릿하기만 하다

전망대(06:45)

사람이 그리워 대간길을 왔더니만 산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

그 악명높은 소백산의 칼바람은 쥐죽은 듯 조용하고 후배 산꾼들과 꽃길에 취해

비몽사몽으로 걷는 이 길도 걸을만하다... 지맥길은 늘 외로움과 고독을 즐기면서 걸어야 하니...

금계저수지 너머 풍기읍도 미세먼지로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마귀할멈처럼 생긴 노거수

조팝나무(꽃말:노련하다)

꽃핀 모양이 튀긴 좁쌀을 붙여놓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조팝나무라고 한다.

키는 1m 정도이고, 전국의 산기슭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며 흰색의 꽃이 4월 초순에 촘촘한 우산살 모양으로

무리져 피며 꽃이 진 뒤에 나오는 난형의 잎은 어긋나는데 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에는 잔톱니가 있다.

열매는 9월에 익는데 익은 후 벌어진다.

백두대간은 강원도 아랫쪽서 부터는 우락부락한 악산(嶽山)에서

완연히 높이를 낮추는 육산(陸産)으로 확연히 변한다.

소백산의 가장 큰 특징은 지리산의 세석평전과 덕유산의 덕유평전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는 산릉이 광활하게 펼쳐진다는 점이다.

이것이 일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藤 文次郞)가 지형에 따라

한반도의 산지체계를 분류한 산맥 개념이 나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암봉(06:50)

1,405m봉(06:52)

주목 한그루가 산꾼 범여를 반긴다

벌깨덩굴(꽃말:순결,존엄)

꽃의 잎 모양이 깻잎을 닮았으며 꿀이 많아 벌들이 많이 모여 들어서 벌깨라고 하며

벌깨덩굴꽃이 지고 나면 윗 부분 줄기 끝이 덩굴로 뻗어나가는 모습에서 덩굴이

붙었는데 이 벌깨와 덩굴을 합하여 벌깨덩굴 이라고 한다 

벌깨덩굴꽃의 다른 말로는 벌깨나물, 강한화(姜漢花), 미한화(美漢花), 지마화(芝麻花),

벌개덩굴 등으로도 불리며 벌깨덩굴꽃은 꼭 한 방향으로만 핀다는 특징이 있

천동리(泉洞里)갈림길(07:05)

단양군 단양읍에 있는 천동리는 마을 복판에 있는 굴에 샘이 있어서 장유수를 이루었으므로

샘골이라 한데서 천동이라는 명칭이 생겼고  자연마을로는 샘골, 달밭, 순도골 등이 있다.

달밭은 샘골 동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달이 많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순도골은 전에 어느 도승이 도를 닦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용담이라는 소(沼)가 있는데

깊고 맑은 물에 옛날에 용이 있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

지나온 1,405m봉의 모습

전통지리에서 이 땅의 등뼈가 되는 대간 길을 정할 때 마루금이 남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길을 선택하느냐 (지금의 태백시 북쪽 피재 부근에서 낙동정맥으로 연결되는 선) 아니면

지리산 쪽으로 방향을 틀게 하느냐를 두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지금의 대간 즉 지리산 쪽으로 방향을 틀도록 한 데에는 속리산과 더불어

소백산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이 땅의 대간이 '山太極(산태극) 水太極(수태극)', '음양이론',

'대간과 10대강의 발원지' 그리고 '산자분수령' 등의 철학과 원칙을 견지하며

아름답게 자리잡는 데에는 소백산이 크게 기여한 셈이다.

 

그 이름이 小白山이다. 그런데 누가 보아도 소백산이란 이름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上白山 혹은 主白山으로 불려지는 것이 옳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작을 小(소)를 앞세운 소백산이라 불려지는 것은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는 군자의 모습에 다름이 아니다.

이처럼 소백산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겸손을 가르치고 있다.

“달은 수줍음을 타는 듯 자주 구름 속에 숨는다.
수행하는 사람도 달처럼 수줍어하며 마음을 낮추고 겸손하라”

‘나를 드러내려 하지 말고, 뽐내려 하지 말고, 한없이 낮추고 또 낮추라’는 뜻으로서

불교경전「잡아함경(雜阿含經)」에 나오는 말이지만 바로 오늘 소백산의 모습이다.

우리 전통의 산지 체계인 백두대간은 산의 흐름, 즉 능선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진 산줄기로 나눠 이름 붙였지만 산맥은 지형지질에 따라 체계를 달리했다.

지질이 유사한 지형을 산맥이라는 이름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그래서 산맥은 산줄기가 사라진 강으로도 연결돼 산의 맥이 가끔 끊어지기도 하는데

소백산도 그중의 하나인 것이다. 

 

중부권의 대표적인 육산인 소백산은 지형적으로는 온화한 평원을 이루고 있지만

바람과 눈(雪)에 있어선 어느 산보다 세차고 적설량이 많다.

이는 소백산이 위치한 지세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는 겨울철 시베리아에서 발원한 북서계절풍이 불어온다.

이때 내륙 깊숙이 진입한 대기는 소백산맥의 높은 장벽에 부딪혀 강제 상승한다.

수증기를 머금은 대기는 산사면을 타고 오르면서 단열팽창으로 냉각돼 눈으로 변해 내린다.

바로 동서로 길게 소백산 줄기가 바람을 가로 막으며 커다란

장벽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눈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세찬 바람에 휘몰아치는 눈은 그래서 생기는 것이다. 일종의 ‘푄(Föhn)현상’이다.

소백산이 설악산과 함께 우리나라의 제일 설경(雪景) 명산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로 인해 소백산의 북쪽인 단양·제천은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차갑고

강한 바람이 부는 데 반해 남쪽의 영주 지방은 기온이 더 높게 나타난다.

반면 여름철의 경우 기온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동서로 가로지르는 소백산이 날씨와 기온조절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백산 주목 군락지

비로봉 바로 아래는 천념기념물 제244호인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일반인 통제구역이다.

옛날 통제하지 않던 196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국망봉과 비로봉~연화봉 능선을 따라

3만여 그루가 분포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이곳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안내판에 적어 놓았다.

주목뿐만 아니라 왜솜다리, 모데미풀 등 희귀식물도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목은 한국, 중국 북동부, 일본 등이 원산지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소백산, 태백산, 오대산,

설악산 등 높은 산악지대나 추운 지방에서 주로 자란다.

 '주목(朱木)'이란 이름은 나무의 껍질이 붉은 색을 띠고 목재도 붉은색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나이가 오래가고,

목재가 단단하고 잘 썩지 않는 나무로 잘 알려져 있다.

소백산의 주목군락은 소백산의 정상인 비로봉과 제1연화봉 사이에

주목 3,798그루(2007년 기준)가 군락을 이루어 자생하고 있는 곳으로,

 특히 비로봉 아래쪽 주목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곳을 울타리를 설치해 보호하고 있다.

소백산의 주목은 고지대의 입지 특성 때문에 강한 바람과 겨울철 강설(强雪)로 인해서

대부분의 줄기가 비틀리고, 가지가 휘어져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대부분 나무의 높이는

 7m 정도이고, 둘레는 일정치 않으나 2m 정도에서 밑으로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있다.

소백산 아고산 지대 초지의 모습

소백산 아고산 지대에 조성된 초지는 아한대성 기후 특성및 소백산 지질 형성 과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소백산의 지층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화강암질 편마암이

오랫동안 수평 침식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비슷한 표고를 가지는 능선자락과 해발 고도

1,300m 이상의 지대에 평탄지점을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아고산 지대에 아한대성 기후인 강한 바람, 낮은 기온 그리고 물의 배수가

원활하여 초본류가 주를 이루게 되었으며, 꽃밭처럼 야생화가 피는 초지가 형성되었다

비로봉(毘盧峰:1,439m:07:20~08:10)

충북 단양군 가곡면과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순흥면의 경계에 있는

소백산의 최정상에 있는 봉우리로 비로봉은 부처를 의미하는 산이다.

비로(毘盧)란 범어의 '바이로차나(Vairocana)'의 음역이며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준말이다.

본래의 뜻은 '몸의 빛, 지혜의 빛이 법계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것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의미하는 말이다.

비로자나불은 법(法)이 세상에 몸을 입어(身) 드러난 법신불(法身佛)로

'공(空)의 인격화된 존재'이다. 그러하기에 비로자나불은 우주의 만물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 존재로, 연화장 세계의 교주로 받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비로봉은 그 이름만으로도 부처의 산이다.  

우리나라의 산에는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들이 많다.

주로 큰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들이 이 이름을 지니고 있다.

금강산 비로봉(1638m), 오대산 비로봉(1563m), 치악산 비로봉(1288m),

속리산 비로봉(1057m)과 소백산의 비로봉이다. 모두 부처의 산이다.

부처의 법을 드러내어 사방팔방으로 온 누리에 퍼지게 하는 산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름이 '비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리의 빛이 막힘없이 온 세상에 퍼지게 하는 산이니 말이다.

산봉우리를 영험하게 여겨 불교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보인다.

 

비로봉 정상에는 이정표와 표지석, 산행객들이 쌓아놓은 돌탑,

그리고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들이 놓여 있다.

표지석 뒤에는 조선시대 대학자인 서거정(徐居正)의 시 한편이 새겨져 있다.

小白山連太白山 (소백산연태백산): 소백산 태백산에 이어져
逶迤百里揷雲間 (위이백리삽운간): 구불구불 백리길 구름사이 솟았네.
分明劃盡東南界 (분명획진동남계): 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
地設天成鬼破慳 (지설천성귀파간): 하늘 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 

소백산 정상 삼각점(△단양425 / 2003 재설)

소백산 정상에서 동료산꾼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50여분간의 아침만찬을 즐긴다 

비로봉 정상에 있는 돌탑에 돌 하나를 올려놓고 다시 길을 나선다

오늘은 참으로 운이 좋은 날이다... 10번도 더오른 비로봉이지만

바람을 피해본 정도는 한두번에 불과한데 오늘의 소백산 비로봉은 더없이 유순하다

바람한 점 없이...

 

소백산에서의 바람은 일종의 붙박이다. 사시사철 불어댄다.

그러다가 억세게 운이 좋은 날이면 바람이 자는 날 소백산을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로봉에서의 바람은 절대 쉬어가는 법이 없다.

몸무게가 가벼운 사람은 한여름에라도 비로봉에는 가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바람과 스킨십을 하고 있는 비로봉을 보면

待人春風 持己秋霜(대인춘풍, 지기추상)이라는 성어가 생각난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대하고,

스스로를 대할 때에는 가을 서리처럼 엄정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자의 논어에서도 이와 유사한 가르침이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책망은 엄하게 하고 남에 대한 책망은 가볍게 하면(躬自厚而薄責於人)

원망은 멀어진다(則遠怨矣)라고 하고...군자는 자기에게서 구하고(君子求諸己)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小人求諸人)라고도 했다.

비로봉에게 칼바람은 가을 서리와 같은 존재라면,

비로봉은 군자 같은 모습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평하면서도 자기 잘못에

대해서는 전후사정을 사정을 내세워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자기 사정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타인의 사정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경향은 시정되어야 한다.

적어도 최소한의 형평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

엄격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오늘 비로봉을 비롯한 소백산은 겸손을 가르치고 있지만

비로봉이 몸소 보여주는 ‘待人春風 持己秋霜’이 더욱 당면한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

작은 백산에서 유래한 소백산

소백산의 ‘백산’은 ‘희다’, ‘높다’, ‘거룩하다’ 등을 뜻하는 ‘



’에서 유래한 것인데,

소백산은 여러 백산 가운데 작은 백산이라는 의미다.

예로부터 신성시되어온 산으로 삼국시대에는 신라ㆍ백제ㆍ고구려 3국의

국경을 이루어 수많은 역사적 애환과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다.

 

“허리 위로는 돌이 없고, 멀리서 보면 웅대하면서도 살기가 없으며,

떠가는 구름과 같고 흐르는 물과 같아서 아무런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형상이라서 많은 사람을 살릴 산이다.

 

” 조선 중종 때의 천문지리학자인 남사고가 이렇게 말한 소백산(小白山)은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과 경상북도 영풍군 순흥면 사이에 있는 산이다.

태백산(1568미터) 부근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은 백두대간에 위치한 이 산은

해발 1440미터에 이르며, 북동쪽에 국망봉(1421미터)이 있어 험준한 연봉을 이룬다.

북서쪽으로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여 이른바 고위평탄면을 이루며,

그 위를 국망천이 흘러 남한강에 유입된다. 동남쪽으로는 비교적 경사가 급하다.

낙동강 상류의 지류인 죽계천이 발원한다.

비로봉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충절의 고장으로 알려진 순흥면이다.

안향 선생의 후손으로 알려진 순흥 안씨 문중은 1454년 단종의 복위를 모의하다

수양대군과 한명회에게 몰살당하는 운명을 맞았다. 당시 단종은 인근 영월에,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은 이곳 순흥에 유배돼 있었는데,

 순흥 안씨의 사대부들은 둘 사이를 오가며 거사를 준비했던 것이다.

 

소백산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줄기가 개울을 이루는 순흥 청다리

밑에서 하루 수십 명씩 사대부들의 목이 잘려나갔다고 한다.

피비린내 속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사람들도 오랜 세월 안씨 성을 버리고 숨어 살아야 했다.

핏물은 죽계천 물을 따라 흘러 20리 밖에서야 멈췄으니 그 마을 이름이 ‘피끝’이다.

피끝마을 사람들은 논바닥에 우뚝 선 소나무 밑에 형 수양에게

죽임을 당한 동생 금성의 주검이 묻혀 있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순흥 안씨 문중은 음력 10월 초하루면 그때 그 자리에 모여 제를 올린다.

조망바위(08:16)

어의곡리(於依谷里) 갈림길(08:18)

단양군 가곡면에 있는 어이곡리는 큰 골짜기이므로 엉어실 또는 어의곡()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멍기리, 한드미 등이 있는데  멍기리는 명기리, 명길리라고도 부르며 산천이 좋아서

장수하는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한드미는 한디미라고도 부르며 어의곡리의 중심마을이다.

한가하고 조용한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소백산 일대는 예로부터 산삼을 비롯하여 많은 약초가 자라 지금도 약초 채취가 활발하며,

풍기는 이들 약초의 집산지이자 풍기 인삼으로 이름난 곳이다.

 

소백산 일대는 웅장한 산악 경관과 천연의 삼림, 사찰, 폭포가 많으며 주변에

부석사나 온달산성 등의 명승고적이 많아 1987년 12월에 소백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공원 면적이 320.5제곱킬로미터로 경상북도 영주시ㆍ봉화군, 충청북도 단양군에 걸쳐 있다.

공원 내에는 희방사ㆍ부석사ㆍ보국사ㆍ초암사ㆍ구인사ㆍ비로사ㆍ성혈사 등 여러 사찰과 암자가 있다.

특히 나라 안에 제일가는 절로 평가받는 부석사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산재하고,

소백산 기슭에 자리한 희방폭포는 소백산의 정봉인 비로봉으로 등정하는 길목에 위치한다.

높이 28미터로 내륙에서는 가장 큰 규모인 희방폭포가 떨어지는 계곡에는 숲과 그늘과

 괴암이 한데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폭포 바로 위에는 선덕여왕 12년에 두운대사이

 창건한 희방사가 자리한다.

비로봉을 내려서서 아고산 지대를 지나면서 국망봉 향하는 길에 숲이 나오기 시작한다

앵초(꽃말:행복의 열쇠)

앵두나무 꽃처럼 생겼다고 해서 앵초라고 부르며, 우취란화, 깨풀, 연앵초라고도 한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어린순은 식용, 뿌리를 포함한 전초는 약용으로 쓰이며,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동북부, 시베리아 동부에 분포하고, 일본에서는 앵초의 자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품종이다 

 

앵초는 오랜 옛날부터 약초와 향신료로 다양하게 사용되어 별칭도 많다.

영국에서는 ‘베드로의 꽃’, 스웨덴에서는 ‘오월의 열쇠’, 프랑스에서는 ‘첫 장미’, 독일에서는 ‘열쇠 꽃’,

이탈리아에서는 ‘봄에 피우는 첫 꽃’이라고 한다. 또 영어로는 ‘카우스립’으로 소똥이란 뜻인데,

이는 소가 똥을 눈 곳에서 잘 피기 때문에 붙여졌다.

피나물(꽃말:봄나비)

연한 줄기와 잎을 꺾으면 피(血)와 비슷한 적황색의 유액이 나와 피나물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식물체 전체에 약한 독성이 있지만 어린 것은 삶아서 나물로 먹고, 한방에서는 뿌리를 하청화근이라 하여

외상을 입은 부위에 붙이거나 환약으로 만들어 복용하여 신경통·관절염 등을 치료한다.

국망봉 가는 길도 연분홍 철쭉의 산상화원이다

암릉구간을 지나는데 2013년 12월 15일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걸어면서

동고동락을 같이했던 주원아빠란 젋은 친구가 갑자기 보고 싶어진다

내 아들뻘쯤 되는 젊은 친구가 백두대간 탄다는 자체가 나에겐 너무나 기특해 보였는데...

주원아빠가 대간 대장을 한다면 그땐 내가 꼭 후미대장 함 하고 싶은데... 잘 사는지 모르겠다

로프구간을 내려서니...

비로봉과 국망봉의 중간 지점이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달밭폭포가 있는 월전계곡이건만 등로는 희미하다

앵초가 산꾼 범여를 유혹하는듯...

소백산성 터(08:45)

연영초(延齡草: 꽃말:그윽한 마음)

수명을 연장해 준다고 해서 연영초라고 하며, 학명 트릴리움(trillium)은 꽃잎과 잎이 모두 세 장인 데에서 유래한다.

경상북도 특히 울릉도와 강원, 경기 이북의 산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백합과에 속하며, 연령초, 왕삿갓나물, 큰꽃삿갓풀, 큰연영초, 큰연령초, 연령초라고도 한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식용, 약용으로도 사용된다.

우리나라와 중국 북동부, 시베리아 동부, 일본, 캄차카에 분포한다

 

한방에서는 우아칠(芋兒七)이라 하여 뿌리줄기를 약용으로 쓰이는데,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풍을 다스리며 혈압을 낮추는 효능이 있어 심혈관계 약재로 쓰이며 독성이 강해 함부로 남용하면 안된다

맞은편에 멋진 암릉이 보이는데 우측 아래는  석륜암 사지(寺地)가 있지만 등로는 없다

등로 우측으로는 풍기 금계촌 십승지로 이어지는 원적봉이 보이고 달밭재와 밀목재가 보인다

암릉구간을 바라보며 넓은 공터로 올라서니 초암사 갈림길이 나온다

초암사 갈림길(09:12)

넓은 공터 비상구급함이 있고 우측으로는 돼지바위와 초암사로 가는 길이다

2013년 12월 백두대간 남진길에 엄청난 적설량 때문에  이곳에서 초암사로 달출했던 기억이 새롭다

초암사 갈림길의 모습

은방울꽃(꽃말:섬세함, 순애)

은방울꽃이라는 이름은 꽃 모양이 앙증맞은 방울처럼 생긴 데에서 유래한다.

5월의 봄바람이 불 때 살살 흔들리는 꽃을 바라보면 금세라도 종소리가 들릴 것 같지만 종소리 대신 향긋한

냄새가 주변에 퍼지며 사과나 레몬 향이 아주 일품이나 꽃 속에 독성을 감추고 있어 따 먹으면 안 된다.

 

유럽에서는 은방울꽃으로 만든 꽃다발이 행운을 준다고 하여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관습이 있다.

이 꽃이 서양에서 더욱 사랑받는 이유는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 아래에서 흘린 눈물에서 피어난 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의 눈물’이라는 별명도 있으며, 서양화가들이 성모 마리아를 그릴 때 함께 그리곤 했다.

이러한 유래 때문에 은방울꽃은 선과 악, 신앙과 이교 등 서로 반대되는 개념에서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하는 쪽을

가리킨다고 한다.

지나온 소백산 정상 비로봉의 모습

이곳은 추운 날씨 탓인지 아직도 할미꽃이 보인다

초암사 갈림길에서 국망봉을 향해서 걷는데 이곳이 소백산 철쭉중에 가장 화려해 보인다

솜밤망이꽃

솜으로 만든 방망이 같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으로 식물 전체에 마치 거미줄처럼 하얀 털이 많이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른 봄 잎이 올라올 때는 잎 전체가 잔털로 덮여 있지만 자라면서 잔털은 많이 없어진다.

양지바른 들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비교적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지만 부엽질이 많은 양지바른 곳에서 군락을 이룬다.

특히 무덤가에서 잘 자란다. 키는 20~60㎝ 정도로 큰 편이라서 방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국화과에 속하며, 들솜쟁이, 구설초, 산방망이, 소곰쟁이라고도 한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어린순은 식용한다.

꽃을 포함한 모든 부분이 약용으로 쓰이며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타이완 등지에 분포한다.

국망봉(國望峰·1,420.8m:09:25)

충북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와 경북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신라의 마지막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왕건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허사로 끝나자 엄동설한에 베옷 한 벌만을 걸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개골산으로 들어갔다 한다.

개골산(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이곳에 올라 멀리 옛 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 국망봉이라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또 하나는 조선 선조(宣祖)때 무쇠장이(水鐵匠) 배순(裵純)이라는 사람이 왕이 승하하자 3년 동안

이 봉우리에 올라와서 왕성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며 통곡하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나라에서 그

를 표창하고 무쇠점을 하사하여 배점(裵店)이라 한 것이 배점리라는 지명이 생긴 유래이다

국망봉에서 산행대장인 태양아우가 마의태자의 恨을 달래려는지 정상석 앞에 간단한 제물을

놓고 여법하게 예를 올리고 있는데 정성이 하도 지극해 나 역시 이곳에서 再拜의 예를 올리고

술 한잔을 음복하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을 나선다

국망봉에서 꽃길을 따라서 상월봉으로 향한다

상월봉으로 가는 길도 산상화원이다... 마치 무릉도원을 걷는 느낌인데

오늘따라 그 악명높은 바람한 점이 없으니 그야말로 천상의 세계에 온 기분이다

당겨본 상월봉

철쭉 터널을 지나니...

상월봉 갈림길 이정표

상월봉 갈림길(09:38)

대부분의 동료산꾼들은 상월봉으로 오르지 않고 편한 좌측길로 가버린다

그래도 명색이 정통 산꾼이 상월봉을 그냥 지나칠 순 없지 않은가...

상월봉(上月峰:1394m:09:42)

 

경북 영주시 순흥면과 충북 단양군 가곡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소백산

 

 

봉우리중에 3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지명의 유래는 한국 천태종을 개창한

 

상월원각대조사의 지명을 따서 상월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곳은 천태종 총본산인 구인사가 있는데서 소백산 방향으로  9개의 봉우리와

8개 골짜기를 일컫는 것으로 골짜기라는 지형적 특성에다

법문에 이르는 8개 문이라는 종교적 의미가 덧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구봉팔문’을 지형적 입장에서 정리하면 소백산맥의 주요 봉오리 가운데

국망봉(해발 1420.8m)에서 출발할 수 있는데 국망봉 바로 옆에는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상월봉(1394m)이 있으며 구봉팔문은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상월봉에서 소백산맥을 뛰쳐나온 산맥 한 줄기가 남한강 방향으로 길을 내며

신선봉(1376m)~민봉(1361.7m)∼표대봉(1313m)의 지맥을 펼친다.

가곡면 새밭에서 영춘면 백자리 사이에 펼쳐진 신비의 9개 봉우리는

새밭·귀·배골·곰절·덕평·뒤시랭이·여의생·밤실·아곡문봉이 이어지고 있다.

9개의 봉우리 사이에는 새밭·귀기·배골·곰절·덕평·여의생·밤실·아곡문안 등

8개의 골짜기가 인간의 접촉을 꺼리고 있다. 

 소백산 구봉팔문의 지도

구인사가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불제자가 오르지 못한 법문을 상월스님이

올랐으며 국망봉과 신선봉 사이의 봉오리에 올라 상월이라 새겨 상월봉이 됐다고 한다.

 

또 9개의 봉우리는 법문의 단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각각의

수행단계를 거쳐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구봉팔문(법월팔문)은 수행의 해석까지 덧붙어 늘 신비의 대상이 돼 왔다

 

"소백산 줄기들이 어우러져 봉우리 아홉개를 형성하고 그 골짜기들이 모여 생긴

여덟개의 문을 보고 있노라면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예전에 부처가 이곳을 법문로 잘못알고 오르려 했다는 이야기에서 "법월팔문"으로 불리기도 한다.
구봉팔문의4번째 봉우리로 우뚝 솟은 영주봉(수리봉) 정상에는

구인사의 최초 큰스님이었던 삼월원각대조사의 무덤인 적멸궁이 있다.

적멸은 불교의 세계에서 해탈의 경지를 뜻하며 이는 풍수지리학적으로 세

마리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을 띠고 있다.

상월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국망봉의 모습

상월봉에서 바라본 구인사로 이어지는 9봉의 모습

고치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다간의 줄기...저 너머로 2주전에 걸었던 구룡산이 아련히 보인다

상월봉에서 내려오니 조금전에 헤어졌던 우회길을 다시 만나고...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노란 피나물꽃이 산꾼을 반긴다

편안한 등로가 나오면서 늘 버릇인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意志

1,100m봉(09:55)

음지라 그런지 이곳은 이제사 나뭇잎이 나기 시작한다

나에겐 늘 부러움의 대상인 비박산꾼

무명봉에 올랐다가 내려서니...

편안한 길을 내려서니...

늦은맥이재(10:05~15)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서 충북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 율전으로 내려가는 고개로

 

정상에는 데크목 쉼터 탐방로 안내판 그리고 이정표가 있으며 단양쪽은 등로가 뚜렸하다

 

늦은맥이의 지명유래를 찾아봤으나 아무데도 없어서 조금은 아쉽기만 하다

늦은맥이재 이정표

비로봉 정상에서 조급증에 걸린 공작산 아우님을 비롯한 선두조는 진작 도망을 가버리고

후미조들은 유유자적거리며 베낭을 내려놓고 먹거리를 나누면서 휴식을 취한다

늦은맥이재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오르막을 오르는데  3년전 남진길에 없었던

목책이 보이는데 이곳에서 여우를 방사했으니 출입을 금한다는 팻말이 있다

능선에 오른 다음 편하게 등로를 걷다보니 삼거리가 나온다 

신선봉 갈림길(1,265m:10:30)

 

충북 단양군 영춘면과 가곡면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소백산 신선봉은 그 이름에 걸맞는

 

인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봉우리다...누가 선을 그었으며 누가 바둑을 두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화강암에 각인된 바둑판을 신선봉에서 만날 수 있다.

 

신선노름에 도끼자루 썩는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소백산 신선봉에서 유래된 것이 아닐까?

 

 

신선봉에 오르면 대한민국 내륙의 국토가 빗어내는 장엄한 자연의 힘과 믿음직스러운

 

우리땅의 장엄함을 느낄 수 있는 봉우리가 신선봉이다. 신선봉은 소백산(小白山) 비로봉

 

북쪽으로 국망봉을 지나 상월봉을 만나고 계속 북쪽으로 진행하다 육산의 단조로움에

 

파격(破格)의 미(美)를 보여주기 위하여 솟아 난 바위산이 신선봉이다.

 

예전에는 이정표가 있었는데 오늘은 눈을 씻고봐도 이정표는 보이질 않는다

헬기장(10:45~55)

헬기장에서 또다시 산꾼들이 모여서 휴식을 취하며 과일을 나눠 먹는다

능선 좌측 아래로 강우량 중계소라는 팻말도 보이는데 시설물은 보이질 않는다

탐방로 아님이란 팻말을 보면서 능선으로 올라선다

1,060,6m봉(11:07)

연화동(蓮花洞) 갈림길(11:17)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 있는 마을로 지명의 유래는 풍수지리적으로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마을로

연꽃이 물 위에 떠있는 형상을 말하는데 옛날 이곳에 한 선달(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이 있었는데

자손들이 외지에 나가서 너무나 잘 되어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수많은 기념비를 세웠는데

그 이후 부터는 자손들이 모두다 폭삭 망했다고 하는데 그 연유는 물에 떠 있는 연꽃 위에

돌(비석)을 세웠으니 무거워 연꽃이 갈아 앉으니 망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정표 우측으로 연화동으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헬기장(11:20)

이곳은 이제서야 둥굴레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1,243m봉(11:24)

이정표를 지나면서 오르막 길이 시작되는데...

우측의 봉우리로 올라야 하는데 탐방로 금지’라는 팻말이 있고 좌측 사면길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산함박꽃(꽃말:수줍음)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목련류 식물 중 하나로 잎이 성숙하기 전에 꽃이 피는 목련과 달리 잎이

완전히 발달한 후 꽃이 피는 낙엽 작은키나무로 우리나라의 목련속 식물 가운데 유일하게 꽃이

위를 향하지 않고 옆 또는 아래를 향하므로 구분된다. 꽃받침잎은 3장으로, 꽃잎보다 작고 짧다.

한방에서 복통과 위장염에 약으로 쓰인다.

높이는 6-10m이며 겨울눈에 누운 털이 많고, 잎은 어긋나며 타원형이다.

꽃은 5-6월 잎이 난 후에 옆 또는 밑을 향해 피며 흰색이고 향기가 난다.

꽃받침잎은 3장, 난형이며, 꽃잎보다 작으며 꽃잎은 6-9장이며 도란형이다.

‘산에 자라는 목련’이라는 뜻으로 ‘산목련’이라고도 부른다.

북한에서는 ‘목란’이라 부르며, 국화(國花)로 지정하고 있다.

1,002m봉(11:35)

여기서부터 산행은 상당히 루즈해지기 시작하고 지맥길에 비해 등로는 고속도로이나

가도가도 산행거리는 줄어들지 않는 느낌이고 졸음이 몰려오는데 미칠 지경이다

간간히 만나는 대간 산꾼들의 시그널

연화동 갈림길(11:50)

2번째 만나는 연화동 갈림길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단산면 좌석리 연화동으로 내려가는 길이나

등로는 별로 뚜렸하지 않고 세워져 있는 이정표는 망가진 채 누워있다

이곳에서 약간의 빡센 오르길로 올라서는데 피로가 몰려 오면서 발걸음은 무거워 진다

994m봉(11:58)

1,031.6m봉(12:02)

이곳에서 북쪽으로는 단양군 영춘면 태산골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이정표가 있으나 가끔은 누군가 알바를 하는지 산악회의 표지기가 땅바닥에 깔려있다

저 표지기를 깔았으면 후미대장이 회수할 것이지... 지저분하게 저게 뭐여

3년전 남진길에는 소백산 등로에는 이정표가 아주 많았었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졌다

1,000m봉(12:05)

등로는 아주 편하다...계속되는 내림길...가끔은 마사토 지역이라 상당히 미끄럽다

겨울에는 상당히 조심해야 할 구간인듯...

암봉(12:10)

암봉을 지나 급한 내리막을 내려서니 잡목이 무성한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마당치이다

마당치(12:22~37)

경북 영주시 단산면과 충북 단양군 영춘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상당히 넓은 공터가 있는데

예전에 이곳에 대궐을 짓기위에 터를 닦았지만 대궐은 짓지 못했다고 하며 넓은 마당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며 지금도 이곳 주위에는 대궐을 짓기위해 갖다논 청기와

파편들이 가끔 출토되기도 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후미 산꾼들과 마지막 베낭털이를 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기구한 삶

암릉구간을 우회한 다음에...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좌측으로 출입금지 지역이 나온다

형제봉 갈림길(12;55)

이곳에서 북쪽으로는 단양군 춘양면에 있는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인데 출입금지 지역이다

오름길에 올랐다가 봉우리로 오르지 않고 좌측 사면길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대간길이 많이 변형되어 있다... 식생대 보호구역이란 핑계(?)로 가지 못하는 곳이 많다

순백색이 아름다운 민백이꽃(꽃말: 그대곁에 머물고 싶어요)

이름 앞에 ‘개’나 ‘민’ 자가 들어가는 것들은 본래의 종보다 다소 못하다는 뜻을 지닌다.

예를 들어 살구보다 개살구는 맛이 덜하다. 민백미꽃은 백미꽃에 비해 꽃이 약간 뒤쳐진다.

백미꽃은 짙은 자주색 빛깔이 아름다운데, 민백미꽃은 그냥 흰색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흰색이 더 예쁘지만 백미꽃처럼 빛깔이 없으니 민백미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보는 사람의 입장일 뿐 꽃 자체에는 비교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헬기장(13:05)

계속되는 내리막길

863m봉(13:25)

863m봉을 지나면서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고치령이 보이기 시작한다

고치령(古峙嶺760m:13:35)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서 마락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좌석리에서

고치령까지는  1톤 정도로는 차량이 다닐 수 있으나 고치령에서

마락리 방면으로는 비포장 도로로 차량이 다닐 수 없는 고개이다

마락리(馬落里)라는 지명유래는 큰 바위로 된 절벽이 있는데

죽령 다음으로 영남과 충북, 강원, 서울 등지로 통하는 주요 통로였다.

상인이 말에 짐을 싣고 이곳을 지나는데 갑자기 광풍으로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게 되었는데 말이 죽지 않았다 하여 말굴이라는 한자어인

마락((馬落)이라고 하였고, 조선시대 금성대군과 단종사이에 왕래하던

밀사가 말에서 떨어진 곳이라 하여 마락이라고 하였다는 설도 있다.

 

경북 영주시에서 충북 단양군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크게 3개로 나뉘는데

첫 번째가 죽령이요, 죽령에서 동쪽으로 조금 더 이동을 하면 두 번째 고치령

그리고 세 번째 가장 동쪽에 위치한 고개가 마구령이다.

 

조선 초기 정유재란 이후 정축지변(순흥땅의 단종 복위사건)이 나기 전에

이곳의 순흥부사(이 보흠)와 금성대군이 영월땅으로 유폐된 단종을 만나기

위해 밀사로 넘던 곳이 이곳 고치령이다

 

오늘은 산령각에서 굿을 하는지 젊은 무당 둘이서 한참 기도중이다

막걸리 한잔이 생각나서 주변을 기웃거리는데도 막걸리 한 잔 줄 생각을 안한다

단종(端宗) 복위의 애환서린 한 많은 고치령

고치령에는 국망봉 11.1km, 마구령 8km의 이정표와 함께 공터의 좌측 소백산 방향에는 백호모양의

수마석과 표지석이 있고 소백지장(小白地將) 장승을 가운데 두고 포도대장군과 단산대장군 장승이 서있다.

우측 태백산 방향 공터 위에는 조금 앙증맞은 산령각(山靈閣)과 태백천장(太白天將)가운데 두고 양백대장과

항락 장승이 서 있는데  흔히들 장승하면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을 연상하는데 포도대장군소백지장

태백지장등은 생경하다.

 

고치령은 단순히 보부상들이 물류를 위해 넘던 고개가 아니다.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단종애사'의 슬픔을 간직한 한() 많은 길이며,

또한 태백산과 소백산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고개라고 한다.

 

영주사람들은 북쪽 영월에서 죽은 단종은 '태백산 신령이 되었다'고 믿고,

세종의 여섯째 아들로 단종복위를 꽤하다 남쪽 순흥으로 유배되어 안동에서 죽은

금성대군(錦城大君 1426~1457)'소백산 신령이 되었다'고 믿어왔다.

그들 조카와 삼촌 사이에는 죽어서야 만날 수 있었던, 육신은 넘을 수 없었던 고개 고치령이 있는 것이다.

 

산령각은 태백산 산신인 단종과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세조에 죽임을 당한 금성대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금성대군은 소백산 산신으로 화했다고 한다. 태백의 산신인 단종과 소백의 산신인 금성대군을 모셨으니,

이곳 산령각은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영험하기로 이름났다고 한다.

 

 “원통한 새가 되어 궁궐에서 나오니(一自怨禽出帝宮)
짝 잃은 외로운 몸 깊은 산중에 있구나(孤身雙影碧山中)
밤마다 잠들려도 그럴 겨를이 없으니(暇眠夜夜眠無假)
수없이 해가 가도 끝없을 이 한이여(窮限年年恨不窮)
자규 소리 멎은 새벽 뫼엔 조각달만 밝은데(聲斷曉岑殘月白)
피눈물나는 봄 골짜기엔 낙화만 붉었구나(血淚春谷落花紅)
하늘도 귀가 먹어 슬픈 사연 못 듣는데(天聾尙未聞哀訴)
어찌하여 수심 많은 사람의 귀에만 홀로 밝게 들리는가(何柰愁人耳獨聰)”

고치령(760m)은 백두대간 상에서 태백산과 소백산을 이어주는 고갯길로 이른바 양백지간(兩白之間)으로

양백지간 일대는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 침입이 없는 명당으로 알려진 곳으로  영월, 영주 일대가

이에 해당하며 이곳은 의풍 십승지 중의 한 곳이기도 하다... 산행을 마무리하다 

산행을 마무리하고 조금을 기다리니 좌석리 이장이 트럭을 가지고 우리를 데리러 온다

이 양반!... 한달만에 다시 만나는구먼...트럭을 타고 좌석리까지 내려온다

좌석리(座石里)마을(경북 영주시 단산면 소재)

 

마을 한 중간 논 바닥에 "앉은 바위"라는 넓직한 바위가 있어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대간꾼들에게는 참으로 낮 익은 마을이다.

, 하산시 고치령까지 접속구간이 만만치 않아 대 부분 이곳에서 트럭을 이용한다.  

이곳은 6-7가구가 살고 있는 새거리 이고계곡건너 상/하좌석리를 합치면 20여 가구가 된다고 한다.

조금 더 상류 지점 계곡 속에는 연화동이 있고 그곳까지 합해서 행정 구역상 좌석리라고 한다

 

좌석리에 도착하여 이곳에서 가까운 좌석리 저수지 앞에서 3년전에 서울에서 자기 고향으로 귀촌한

30년지기 운산농장 쥔장 雲山에게 전화를 하여 조금은 갑질하여 20년도 더된 더덕술 한병을 강탈한다

이 친구는 서울에서 인테리어업을 하면서 심마니와 약초꾼으로 더 유명하며 매스컴에도 자주 나오는

친구인데 3년전 자기 고향인 이곳 좌석리에서 포도농장을 운영한다

친구와 작별을 하고 영주시내로 나와 목욕탕에서 깔끔하게 씻고 식당에서 맛있게 밥을 먹는데

술 생각이 간절하지만 낼 새벽에 골프약속 땜에 입맛만 다시면서 서울가는 버스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