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설음이 얼마나 힘든가를 확실하게 깨우친 대간길
☞산행일자: 2017년 6 월16일
☞산행날씨: 무더운 날씨에 바람한점이 없고 맑음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우두령-헬기장-질매재 삼거리-호초당산 갈림길-쉼터-삼성산-쉼터-암봉-조망바위-여정봉
바람재-신선봉 갈림길-형제봉-황악산-곤천산 갈림길-돌탑-조망봉-쉼터-백운봉-운수암사거리
직지사갈림길-운수봉-쉼터-여시골-여시골산-괘방령-십자안부-418봉-오리골 안부-무명봉
갈림길-무명봉-헬기장-가성산-안부-장군봉-690봉-폐헬기장-눌의산-헬기장-이정표-무명묘지
임도삼거리-묘지-경부고속도로-경부선 철도-삼거리-추풍령
☞소 재 재: 경북 김천시 구성면, 대항면, 봉산면 / 충북 영동군 상촌면, 매곡면, 추풍령면
예상보다 빨리 여름이 찾아온 느낌이다
요즘 날의 기온이 30도가 웃돌고 거기다 지맥길은 길도 없는데다가 잡목들이 너무 웃자라서
산행을 나서기가 이제 슬슬 겁이나기 시작한다... 당분간 맥길은 접고 짬짬히 시작한 대간길
이번이 14번째 발걸음이다... 일욜날 산행을 해야 하는데 8월초부터 공사를 하기로 한
고객이 담주에 외국을 나가야 하는데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하면서 이번주 일욜 점심때
만나 작업 일정을 조율하자고 하는데 일욜날 산에가니 안 된다고 할 수도 없다
어쨌던간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러자고 약속을 해놓고나니 별 방법이 없더라
가야할 산은 너무나 많은데 세월은 유수같이 빠르니... 하는 수 없이 금욜날 산행을 하기로 하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간단하게 베낭을 챙겨 야심한 새벽 4시 30분에 차량을 끌고 고속도로로 들어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추풍령 주차장(06:45)
이른 새벽이라 고속도로에는 차량이 없으니 슬슬 못된 버릇이 나온다
자동차 핸들만 잡으면 과속을 하고 싶은 욕망이 몸 속에서 꿈틀거린다
그래 달리고 싶을 때 달려보자... 얼마나 엑셀레이터를 밟았는지 200km가
넘는 추풍령 휴게소에 도착하는데 1시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휴게소에 들려 김치찌게에다가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마신 다음
추풍령 I.C를 빠져나와 백두대간 추풍령 날머리 주차장에다가 愛馬를 세웠놓고 들머리인
우두령으로 가기위해 추풍령 택시를 콜하는데 지금 손님을 모시고 김천으로 가는중이라
갈 수 없으니 1시간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하니 조금은 난감하다
그러더니 조금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자기 대신에 황간 택시를 보내주겠다고 하면서
1만원 정도 더 줘야한다고 하는데 일단은 보내 달라고 했다
20여분을 기다린 끝에 택시는 도착하고 택시를 타고 기사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다음에 택시를 이용할테니 명함을 하나 달라고 하면서 내리는데
내가 한 말에 혹해서인지 다음에 이용해 달라고하면서 1만원을 받지 않는다
사실은 다음에 이 택시를 이용할 일이 없다...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택시에서 내린다
우두령(牛頭嶺:720m:07:30)
경북 김천시 구성면과 충북 영동군 상촌면을 연결하는 901번 지방도가 지나는 분수령으로 낙동강과 금강 수계의
발원지이며 지형의 생김새가 ‘소등에 얹는 질매 같아서’질매재라고 부르기도 하며, 소 등을 닮아서 ‘우등’이라
부르다가 변음이 ‘우두(牛頭)’로하여 우두령이라 부른다고 하는데, 고개 위에는 우두령을 상징하는 하얀 소의 동상이 있고
동물이동통로가 있으며 고개너머 김천쪽에는 매일유업 김천농장이 자리를 잡고있다.
산행을 시작하다(07:35)
901번 도로에서 올라서니 대간 산꾼들의 시그널이 즐비한데 아그들이 지나간 흔적도 보인다
산림천이조사구 표지판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헬기장이 보인다
헬기장(07:37)
헬기장앞 이정표와 표지판
나무계단으로 올라선 다음에...
질매재 삼거리(07:40)
우측 아랫쪽으로 구성면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이고...나홀로 호젓하게 대간길을 걷는다
예전에 묘지인듯한 공터도 보인다(07:50)
능선으로 오르니 산꾼들의 시그널이 잔뜩 걸려있는 호초당산 갈림길이 나온다
호초당산 갈림길(870m:07:55)
정상에는 산꾼을 기다리는 벤취하나가 덩그러니 있고 우측으로는 호초당산으로 향하는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쉼터(08:08)
평일이라 그런지 대간길에는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질 않는다
유일한 친구라곤 나홀로 산행때 짐승들을 쫒기위해 가지고 다니는 음악이 나오는 라디오 하나뿐...
미역줄기 가득한 능선을 지나는데 대간길이라 그런지 걷는데는 전혀 문제가 되질 않는다
예전에 없던 쉼터용 의자들이 많이 보인다
가야할 삼성산이 가까이 보이기 시작하고...
저 멀리 보이는 산이 김천시 대항면에 있는 비단산과 진밭산 같은데 너무 흐릿해 확신이 안 선다
4년전 남진길에 없었던 벤취들이 많이 보인다
또 다시 미역줄기 사이로 대간길을 이어가고...
소나무밭 사이의 등로로 올라서니 삼성산 정상이 나온다
삼성산(三聖山:985.6m:08:20)
경북 김천시 대항면 주례리와 충북 영동군 상촌면 흥덕리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영동군 쪽으로
경희대연습림 조림지가 있고 산 정상에는 3등삼각점(△ 영동 314 / 1980 복구)이 있으며
동으로 진밭산, 동구지산, 덕대산 등이 조망되며, 서쪽으로 흥덕리의 깊은 계곡이 펼쳐져 있다.
삼성산은 동으로 3개의 산이 조망된다고 해서 삼성산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정상은 조금 넓은 공터가 있긴 하지만 전망은 그리좋질 않은 편이다
삼성산 정상 삼각점(△영동314 / 1980복구)
삼성산 정상에 있는 쉼터의자와 산꾼들의 흔적
삼성산 정상의 이정표
아직도 가야할 황학산이 멀게만 보인다
민백이꽃
삼성산에서 여정봉으로 가는 길엔 산딸기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안 그래도 오늘은 산행 시간을 줄이기 위해 점심도 싸오질 않았다
괘방령에 산장이 있어 음식점 영업을 한다는 기사를 보고 매식을 할 작정이다
엉퀑퀴
엉겅퀴는 국화과의 다년초이다. 흔히 가시나물이라고도 한다.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데 높이 50~100센티미터이고 전체에 흰 털과 더불어 거미줄 같은 털이 있다.
뿌리잎은 꽃필 때까지 남아 있고 줄기잎보다 크다. 줄기잎은 피침상 타원형으로 깃처럼 갈라지고
밑은 원대를 감싸며 갈라진 가장자리가 다시 갈라지고 결각상의 톱니와 더불어 가시가 있다.
6~8월에 피고 자주색에서 적색이다. 연한 식물체를 나물로 하고 성숙한 뿌리를 약용으로 한다.
한국, 일본, 중국 북동부 및 우수리에 분포한다. 잎이 좁고 녹색이며 가시가 다소 많은 것을 좁은잎엉겅퀴,
잎이 다닥다닥 달리고 보다 가시가 많은 것을 가시엉겅퀴, 백색 꽃이 피는 것을 흰가시엉겅퀴라고 한다.
엉겅퀴는 정력을 보강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엉퀑퀴를 우리말로는 조방가새, 약 이름으로는 소계라 하며, 1미터가 넘게 자라는 엉겅퀴를 우리말로는
항가새, 약 이름으로는 대계라고 한다. 두 가지 모두 약으로 쓰지만 주로 약효가 더 좋은 대계를 많이 이용한다.
독은 없으며 맛은 달고 이뇨, 해독, 소염작용이 있으며 열이 혈액의 정상 순환을 방해하지 않도록 다스린다.
지혈작용이 있어 각종 출혈, 예를 들면 토혈, 코피, 잇몸출혈, 대변출혈, 소변출혈, 자궁출혈 등에 응용된다.
쉼터(08:32)
쉼터에 있는 이정표
이곳도 산딸기가 지천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산딸기를 따서 입에 넣기 바쁘다
다시 나무 계단을 따라서 오른다
조팝나무들도 많이 보이고...
로프가 처져있는 난간길을 지난다
남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저 멀리 가야산이 흐릿하게 보이고 그 앞쪽은 지난 겨울에 걸었던 금오지맥 능선이다
기린초(꽃말:기다림, 소녀의 사랑)
기린초는 이름만 들어서는 아주 큰 식물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키는 고작 20~30㎝ 정도이다.
영특하고 뛰어난 아이를 ‘기린아’라고 부르는데, 약초로 이용되는 식물 중 그 기능이 가장 우수하다고 하여 ‘기린초’라고 한다.
키는 작지만 줄기는 기린의 목처럼 곧게 위로 뻗어 있으며,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산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산의 바위틈이나 너무 습하지 않은 곳에서 자생하며, 남쪽 지방에서는 겨울에도 죽지 않고 잘 자랄만큼 생명력이 강한데,
메마른 바위 위에도 뿌리를 내릴 정도이다
잎은 넓은 달걀 모양으로 길이가 3~5㎝, 폭이 3~4㎝ 정도이며, 잎 가장자리에 작은 톱니와 같은 것이 나 있다.
6~8월에 노란색 꽃이 피며, 지름은 5~7㎝이고 상층부 한 줄기에 5~7개 정도 뭉쳐서 피며, 검은색 열매가 9~10월경에
5갈래로 갈라져 달리며, 안에는 갈색으로 된 작은 종자가 먼지처럼 들어 있다.
기린초를 비롯한 다육질의 식물들은 수분 조절을 위해 기온이 낮은 밤에 기공을 열어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잎 조직에
저장해 두었다가, 다음날 낮 동안 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는 특성이 있다.
돌나물과에 속하며 혈산초, 꿩의비름, 비채, 경천삼칠, 넓은잎기린초, 각시기린초라고도 한다. 어린잎은 식용, 뿌리를
포함한 전초는 약용으로 쓰인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할린, 쿠릴 열도, 캄차카와 아무르 강,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북동쪽으로는 영동군 상촌면을 아우르고 있는 각호지맥 능선도 뚜렸이 보인다
능선에서 바라본 영동군 상촌면(上村面)의 모습
충청북도 영동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금강 수계인 고자천(장교천), 물한천, 궁촌천(흥덕천)이
삼도봉, 민주지산,각호산, 삼봉산, 황학산, 등에서 발원하여 북동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고도 1,000m 내외의 높은 산지 사이로 소규모 산간 곡지가 분포하며, 관내에 민주지산, 황학산 등과 물한 계곡이 있다.
황간면과 무주읍으로 연결되는 49번 지방도가 면의 북서부로 지나고 있고 현재 임산리 · 돈대리 · 고자리 · 물한리 · 흥덕리 ·궁촌리 · 상도대리 등 11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면 소재지는 하장리이다.
지명은 조선 후기의 고문헌과 고지도에서도 발견되는 면 지명으로 생성 역사가 길다.
현재의 면은 조선 시대 황간현 상촌면과 매하면 일부 지역이었다.
조선 시대 상촌면은 『여지도서』에 도대리(道大里) · 고목동리(高目洞里) · 토항리(土項里) · 물한리(物閑里) 등 9개 리를,
매하면은 어두운리(魚頭雲里) · 사야동리(沙野洞里) · 물여대리(勿如大里) 등 10개 리를 관할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각 동리마다 관문으로부터의 방향과 거리, 편호, 남녀 인구가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 『해동지도』, 『동여도』, 『1872년지방지도』에도 모두 표기자 변화 없이 상촌면과 매하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구한말의 상촌면은 22개 리를 관할하였고『신구대조』에는 상촌면을 포함해 매하면의 3개 리를 통합해 상촌면이라
명명하고 9개 리로 개편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암봉(08:48)
산꾼들을 위해 설치한 나무계단이 산행을 하는데는 훨씬 불편하다
나홀로 산행... 넘 호젓하고 좋다
조망바위(08:53)
멋진 쉼터의자와 이정표가 서 있고 좌측 바로 아래에는 직지사의 부속 암자인 삼성암이
고즈넉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호초당산이 여인의 젖꼭지처럼 뽕긋하게 보인다
헬기장의 흔적인지 넓은 공터를 지나니 여정봉 정상이 나온다
여정봉(旅程峰:1,030m:08:57)
경북 김천시 대항면과 충북 영동군 상촌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김천의 진산인 황악산과
삼성산 사이에 있는 백두대간의 한 줄기로 직지사 부속 암자인 삼성암 뒷쪽에 위치하고
있으나, 삼성암에서 여정봉으로 오르는 정상적인 루트가 없어서 바람재쪽으로 올라서야 한다
명칭에 대한 특별한 유래는 없으나 “황악산으로 가는 도중의 봉우리” 또는 “여행을 하는 노정 봉우리”
등으로 여정봉(旅程峰)으로 불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있다
여정봉 정상에는 안내판과 이정표 쉼터 의자가 있고 우측으로 90도 급하게 꺽어져 내려서서 대간길을 이어간다
나무 계단을 따라서 급하게 내려서니... 폐헬기장이 나온다
폐헬기장(09:05)
폐헬기장을 지나니 이정표가 나오고 생태복원을 한답시고 막아놓고 좌측으로 우회를 시킨다
예전에 2번의 백두대간 북.남진때는 정통으로 다녔는데 또다시 갈 일이야 있겠나... 착하게 살자
좌측의 내리막길로 향하는데 원래 저곳 정상이 바람재 정상이고 표시석도 있었으며 산림청에서
무인감시탑과 헬기장이 자리잡고 있었던 곳이다
남부지방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무인 감시탑(바람재 정상)
2009년 10월 31일 백두대간 북진길 때의 모습
오늘은 법을 위반하지 않고 착하게 좌측으로 내려간다
목책을 따라서 내려가는데...
뒤돌아 본 바람재 정상의 모습
경북 김천시 대항면서 충북 영동군 상촌면을 넘나드는 고개로 바람이 불 때면 사람이 날아갈듯
많이 분다 해서 바람재라고 하며 아마추어 무선사들이 새로운 무전기의 교신 거리와 성능을
실험하기 위해 종종 찾는 곳이다. 50W 정도의 출력을 내는 무전기로도 일본과 교신이 될 만큼
전파가 잘 터지는 곳인 바람재는 과거 주한미군이 주둔하기도 했다.
자동차 2∼3대가 겨우 올라 설 수 있는 꼭대기까지 길을 낸 것도 그들이었는데 발을 들여놓기
곤란할 만큼 망가진 데다 쓰레기투성이가 된 콘크리트 방카를 유산으로 남겨놓기까지 했다.
그들은 지금도 한 달에 한두 번 산을 올라와 몇 시간씩 머물고 돌아간다고 한다.
특히 미군이 개입하는 국제전쟁이 치러질 때면 봉우리에는 어김없이 미군들의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유고 내전이 한창이던 때에는 아예 며칠씩 상주하기도 했다.
그들의 성능 좋은 무전기로 유럽까지 교신이 가능하다는 소문이 돌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바람재는 아마추어 무선사들만이 아니라 백두대간을 종주해 본 산꾼들에게도 유명한 곳이다.
남으로 우두령에서 북으로 괘방령까지 긴 산길에서 유일하게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인데다
목장까지 있어 산꾼들에게는 좋은 쉼터가 돼 온 탓이다.
해발 870m의 21만여 평의 목장은 1994년에 모습을 갖추었다.
목책을 따라서 좌측으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신선봉과 망봉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능선이 보인다
조망쉼터(09:10)
오르지 못한 바람재 정상을 뒤돌아 본 모습
저 멀리 가야산과 수도산이 아련히 보이고...
가야할 황악산과 형제봉을 바라보면서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지루하게 나무 계단을 따라서 내려서니...
풍.수해 재해 예방 감시탑이 나오면서 짝뚱 바람재가 나온다
바람재(09:23)
백두대간을 처음 시작할 때 진짜 바람재에 있었던 표시석이 언제부터인가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바람재’라 일컫는 곳은 이곳 외에도 전남 장흥에 있는 호남정맥에서 땅끝기맥의 시발점이 바람재이며
무등산의 바람재, 월출산의 바람재, 진해 시루봉의 바람재 등이 있으며, 이들 모두 바람이 세차게 부는
곳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 바람재는 충북 영동군 상촌면에서 경북 김천시 대항면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로서 과거 목장으로 개발되어 나무 한 그루 없는 초원이었으나 지금은 텅빈 벌판에
억새만 우거져 분위기가 스산하다.
바람재에서의 인증샷
예전에 목장터였던 넓은 공터에는 엉퀑퀴, 노루오줌, 눈개승마, 개망초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넓은 공터를 지나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애기 기린초
신선봉 갈림길(09:42)
바람재에서 나무 계단을 따라서 깔딱고개로 올라서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정표와 쉼터 의자가 있고
구급약품함이 있으며 이곳에서 우측으로 1.4km 지점에 신선봉이 있는데 일반 등산객의 띠지가 많이 보인다
일반 등산객들이 망봉, 신선봉, 형제봉, 황악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많이 이용하는 코스이다
형제봉으로 가는 길에는 거적을 깔아놓아 카펫을 밟는 느낌이다
우측 능선 아랫쪽에는 직지사가 흐릿하게 보인다
안부에서 능선인 형제봉중에 동생봉으로 오르는 길엔 추락방지용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동생봉(1,010m:09:47)
형제봉 중에 동생에 해당되는 봉우리이다
오늘 아침 내가 지나온 능선의 모습
형제봉 정상의 모습
형제봉(兄弟峰:1,022m:09:53)
약300m의 거리에 두고 남북으로 우뚝솟은 두개의 봉우리가 마치 우애가 깊은 형제의 모습을 닮아다고 하여
생긴 이름으로 북쪽의 형님 봉우리는 행정구역상 충북 영동군에 속하고 남쪽의동생 봉우리는 경북 김천시에 속해 있다
형제봉을 내려서자마자 우측으로 난 등로에는 상수도보호구역이란 이유로 등로를 폐쇄해놨다
아마도 직지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능여계곡 쪽으로 내려가는 등로인 모양이다
예전에 없었던 안내판들도 보인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올라서니 김천의 진산인 황악산 정상이 나온다
황악산 정상인 비로봉의 모습
황악산 정상 삼각점(△영동 23 /2013 재설)
황악산(黃岳山:1111m:10:10)
경북 김천시 대항면과 충북 영동군 상촌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옛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黃鶴山)이라고 불렀으나
직지사 일주문 현판이나 택리지에 보면 황악산(黃嶽山)으로 되어있다.
황악산의 黃(황)자는 靑(청), 赤(적), 白(백), 黑(흑)의 다섯 방위의 색 가운데 중앙을 상징하는 글자이다.
황악산 아래 직지사를 東國第一伽藍으로 불리었다고 하니 직지사가 나라의 중심부에 있다는 뜻이다.
나라의 중심 직지사의 뒷산 이름에 황(중앙)자가 포함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岳자는? 사실 황악산은 전혀 岳스럽지 않다. 부드러운 육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岳자가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온갖 추측이 난무하다. 그 가운데 추풍령 이후 처음으로 우뚝 솟은
산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 백두산에 시작된 대간은 추풍령에서 키를 크게 낮춘다.
전통지리학자 모씨는 이러한 모습을 수도꼭지에 호수를 꽂아 물을 멀리 보내고자 할 때 손가락을
누르는 형국이라고 한다. 즉 추풍령은 龍(산줄기)을 멀리 뻗도록 하기 위해 준비하는 곳이며,
추풍령에서 터져 나온 氣가 뻗어 가장 먼저 웅장한 자태를 보이고 있는 곳이 여기 직지사 뒷산이기
때문에 ‘岳’자가 포함된 황악산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비록 ‘악(岳)’ 자가 붙었긴 했지만 산세는 지극히 순한 육산이며, 그래서인지 국토지리정보원의 1:50,000
지도에는 황학산(黃鶴山)으로 표기돼 있으며, ‘岳’ 자에 의구심을 가질 만도 하나,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 택리지 같은 문헌에 ‘황악산’으로 적혀 있는 걸 보면 황학산은 분명 오기인 듯하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김천의 진산인 황악산 정상에는 개미새끼 한마리도 안보이고 온전히 산 전체를 전세냈다
이곳에서 셀카로 인증샷을 남기고 물한모금을 마신 다음에 선 채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을 나선다
황악산(黃岳山)은 백두대간 줄기가 추풍령에 이르러 잠시 주춤하다가 다시 솟구치기 시작한 곳에 자리잡은
능선이 길고 우람한 산으로 김천시 대항면과 영동군 매곡면·상촌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黃鶴山)으로도 불렸는데 김천 시내에서 서쪽으로 12㎞쯤 떨어진 곳에 있으며 주봉인 비로봉(1111m)을
중심으로운수봉(740m)·백운봉(770m)과 형제봉(1035m)·신선봉(944m) 등이 양쪽으로 말발굽처럼 이어져 있다.
능선이 완만하고 산괴(山塊)가 커서 웅장한 느낌을 준다.산세는 완만해 암봉이나 절벽이 없고 수목으로 울창하며
해발 1100m가 넘는 산 답게 동쪽으로 능여계곡 등 깊은 골짜기를 파놓아 계곡마다 비경을 감추고 있는 곳이다.
주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봉우리들이 ㄷ자 형태로 연이어 있고 ㄷ자의 열린 곳인 동쪽 산자락에 고찰 직지사가 있고 정상에서 보면 학의 날개처럼 펼쳐진 봉우리들이 동쪽으로 뻗어가면서 협곡을 이룬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418) 아도화상이 창건한 절이다.
곤천산 갈림길
황악산 정상을 내려오자마자 헬기장이 나오고 좌측으로는 영동군 상촌면과 매곡면 경계에 있는
곤천산으로 가는 길이고 대간길은 우측 아래로 내려서는데 이정표에는 직지사로 표시되어 있다
곤천산 지명의 유래에 대하여는 황계지, 황간읍지, 동국여지 승람 등 각종 고서를
조사하여 보아도 정확한 지명의 유래에 대하여는 알 수 없으며 다만 곤천산은 건천 계곡에
위치하며 곤천산 아래 건천계곡에 건천사라는 사찰이 있었다는 각종 문헌 기록이 남아 있어
발음의 유사성을 확인 할 수 있으나. 이것이 곤천과 건천이라는 지명의 관련성에 대하여는 알 수 없다
직지사 방향의 편안한 등로로 내려서니...
좌측으로는 마치 草地를 연상케하는 넓은 공터가 보인다
돌탑(10:20)
편안한 길을 내려오니...
이정표 뒷쪽으로 가서 무명봉을 밟았다가 내려와야 하는데 우측의 편안 길로 대간길을 안내한다
조망바위(10:28)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직지사
예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으로 불리었다는 황악산 정상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백운봉·
신선봉·운수봉이 솟아 있는데 그 가운데 신라땅에 불교가 공인되기도 전에 터를 잡은 직지사가 있다.
직지사는 신라 19대 눌지왕 2년 신라에 불법을 전하러 온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의 경북 구미에 신라 최초의 사찰 도리사를 짓고 나서 손을 들어 서쪽의 산 하나를 ‘곧게’ 가리키며
“저 산 아래도 좋은 절터가 있다”고 했다고 하며, 그 산이 황악산이고, 훗날 그 아래 터를 닦은 절이 직지사인데,
아도 화상의 이 말에서 왔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고려 태조 때 절을 크게 중창한 능여대사가 큰 불사를
만들면서 자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만 가늠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다.
선종의 가르침인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가르침에 기대지 않고 좌선에 의해
사람의 마음을 직관함으로써 부처의 깨달음에 도달함을 이르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는데,
불교의 본질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사찰임은 분명해 보인다.
황악산 정상에서 계속해서 내리막길이다
예전에 있었던 표지판도 새로 바뀌었지만 등로는 그대로다... 내리쬐는 햋빛이 무척이나 따갑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예전에 없던 이정표도 보이고...
119산악 구급함도 보인다
계속되는 내리막길에는 황악산으로 오름길의 표시가 되어 있으나 거리표시는 맞지 앉는듯 하다
예전의 대간길에 없었던 이정표들이 새롭게 보인다
부디 소원이 이루어지시길...
쉼터(10:40)
뭔 지랄인지...?
산길은 산길다워야 하는데 마치 동네 마실길로 만들어 놨다
거기다가 토목의 기본기도 안 갖춰있다... 기본이 물이 흐르는 水路인데
수로도 없이 저렇게 길을 만들어 놓으면 비 한번만 와도 다 쓸려 나갈것 같다
야성미를 잊어버린 대간길... 등골 빠지게 벌어서 세금 냈더니만
고작 하는 짓거리라곤 이렇게 헛돈을 쓰고 지랄이야
산에 안 올 넘은 이보다 더한 아스팔트 포장을 해놔도 안오는데
제발이지 산을 산답게, 자연을 자연답게 그대로 놔주시길...
백운봉 오름길(770m:10:45)
경북 김천시 대항면과 충북 영동군 매곡면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황악산의 동봉(東峰)이자
직지사 백련암의 배후에 자리하며, 황악산의 일봉이지 독립 봉우리는 아니고, 경승지인 능여계곡이
가장 잘 관찰되는 위치에 있으며
이곳에서의 '백운'은 일반명사에 가까운 고유명사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직진을 해야 백운봉인데 하도 속이 상해서 2번이나 올랐던 백운봉을 그냥 가버린다
운수암 갈림길(10:48)
이정표에는 직지사 갈림길이라 해놨으나 직지사의 부속암자인 운수암으로 가는 길이다
운수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직할에 있는 다섯 암자중에 하나로
황악산 중앙에는 명적암(明寂庵)과 중암(中庵)이 있고 우측엔 백련암(白蓮庵)과
운수암(雲水庵) 그리고 좌측엔 은선암(隱僊庵)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직지사 갈림길(10:53)
직지사는 각종 이야기와 전설을 품고 있다. 창건자 아도화상, 사명대사, 왕건 등등...
이 가운데 관심을 끄는 대목은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신라 경애왕 4년, 고려 태조 10년에 후백제왕 견훤이 서라벌을 함락하고 경애왕을 살해하자
왕건이 이를 구하러 갔다가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대패한다.
그리고는 황악산 아래 숨어든다. 왜 왕건이 황악산 아래 숨어들었을까?
직지사(直指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본사이며 신라 418년에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신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선산 도리사(挑利寺)를 개창할 때 함께 지었던 사찰이라고 한다
국보와 보물이 수도없이 많으며 사명대사가 득도(得道)한 절로도 유명하다
직지사 대웅전(보물 제 1576호)
직지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조선 전기에는 대웅대광명전이란 건물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에 불타버려 선조 35년(1602)에
대웅전을 새로 지었으며, 이후 인조 27년(1649)에 중영(重營)이 있었고 영조 11년(1735)에 다시 중창하였다.
건물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3칸이며 지붕 형식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직지사의 중심 법당답게 크고 짜임새가 있으며, 높은 천장에 화려하면서
절제된 장식은 종교적인 장엄함을 더한다.
삼존불을 모신 수미단은 효종2년(1651)에 조성된 것으로 용, 물고기, 개구리
연꽃 등 여러 무늬들을 소박하게 조각하였다.
폭 9m에 이르는 후불벽 뒤에는 활달한 필치로 그린 관음도가 있으며
다름 벽면도 화려한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김천은 예로부터 물좋고 산이좋아 三山二水의 고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전국 5대 시장의 하나였으며 嶺南의 관문이자 교통의 요충지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김천은 아름다운 비경과 청아함을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직지사 일주문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본사인 직지사는 직지사는 예로부터 해동(海東)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으뜸가는 가람이라는 뜻에서 동국제일가람(東國第一伽藍)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본사(本寺)의 초창(草創)은 신라 눌지왕(訥祗王) 2년(418) 아도 화상(阿道和尙)에 의하여
도리사(桃李寺)와 함께 개창(開創)되었으며, 그 사명(寺名)을 직지(直指)라 함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禪宗)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었다 하며, 또 일설에는
창건주(創建主) 아도 화상이 일선군(一善郡, 善山) 냉산(冷山)에 도리사를 건립하고 멀리 김천의
가리키면서 저 산 아래도 절을 지을 길상지지(吉祥之地)가 있다고 하였으므로 하여 직지사(直指寺)라
이름했다는 전설(傳說)도 있다. 또는 고려의 능여 화상이 직지사를 중창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지(測地)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다.
조선 후기의 시인인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金炳淵)이고, 호는 난고(蘭皐)이다.
선천부사 김익순(金益淳)의 손자인데 홍경래(洪景來)난에 조부가 항복하여 가문이 몰락하였다.
자신이 과거시험에서 할아버지를 모르고 욕한 것을 후회하며,
벼슬을 단념하고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고(그래서 세상에서 김삿갓이라 부름) 방랑생활을 하면서
풍자와 해학으로 퇴폐하는 사회를 개탄, 저주, 조소하는 기발한 시를 많이 지었다.
아래 시는 제목에서 말해주듯이,
직지사의 스님과 글짓기 내기를 하여 진 사람의 이빨을 뽑기로 하고 지었다는데,
결국 김삿갓이 이겨서 직지사 스님의 이빨을 뽑았다고 한다.
拔齒直指僧
金烏橒積烏頭白 금오(검은 까마귀)라 했는데, 눈이 쌓여 까마귀 머리가 희구나
黃岳花開鶴頭紅 황악(누른 바위 산)이라 하는데, 꽃이 피어 학 머리가 붉구나
秋風嶺上春花怪 추풍(가을 단풍)이라는데, 고개 위의 봄 꽃은 괴이하고나
直指由中路曲何 직지(곧게 가르침)라 했는데, 산 중 굽은 길은 어찐 것인가?
직지사 갈림길을 지나 나무 계단으로 오르니...
김천시에서 설치한 재해 방지 시스템이 보이고...
운수봉 정상의 모습
운수봉(雲水峰:680m:11:00)
김천시 대항면과 영동군 매곡면 경계 능선에 있는 직지사의 부속 암자인 운수암의 북쪽 봉우리다.
직지사가 있는 능여계곡의 행정구역이 대항면 운수리이므로 마을 이름과 관련되어 있어 보이며
황악산 자락에 딸려 있는 조그만 봉우리인데 각종 이름에 차용된 것이 의아스럽다.
산 이름에 '물 수(水)'자를 쓰는 특이한 곳이다. 정상은 암장이다.
운수봉(雲水峰)은 언제나 구름이 머물고 골짜기에 물이 흐르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운수봉에서 내려서니 좌측으로 뚜렸한 길이 나오고 우측으론 희미한 등로가 있는데 띠지들이 우측으로
많이 걸려있고, 좌측의 뚜렸한 곳은 띠지들이 하나도 안보이는데 북진하는 대간꾼들은 조금은 조심해야 할 듯하다
편안한 등로를 따르는데 이른 새벽에 운전을 했던 탓인지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4년전 남진길에 없었던 쉼터가 있는 안부가 보이고...
아그들이 지나간 흔적
쉼터(11:10)
여시골(11:13)
여시굴의 유래
여시굴의 모습
다시 편안한 능선으로 걸어가는데...
15분정도 능선길을 걸어가니 여시굴산이 나온다
여시골산(620m:11:28)
경북 김천시 대항면 향천리와 충북 영동군 매곡면 어촌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예부터
여우가 많이 살아서 여시골이라 불린 골짜기 배후에 있는 산이어서 붙인 이름으로 여겨진다.
여시는 여우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향천리 묘내마을에서 서쪽으로 약 1.5㎞,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어촌리 윗어둔이마을에서
남동쪽으로 약 1.7㎞ 떨어진 곳에 있는 백두대간 줄기로 김천시와 영동군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 능선은 여시골산 일대를 중심으로 추풍령과 괘방령이 있는 북쪽 지역에서는
700~800m 이하의 비교적 낮은 능선을 이루고, 여시골산 남쪽으로 황악산(黃岳山)·형제봉(兄弟峰)
삼도봉(三道峰)을 지나는 지역에서는 1,000m 이상의 고봉과 800~1,000m 높이의 능선을 이룬다.
그런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오른쪽 가지줄기의 385.4m를 여시골산이라 표기하고 있다.
현지 조사를 통해 진위가 가려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시골산 서쪽 비탈면에서 발원한 하천은 어촌천(漁村川)을 만나 초강(草江)을 거쳐 서해로
흘러드는 금강 수계를 이루고, 동쪽 비탈면에서 발원한 하천은 백운천(白雲川)을 만나
직지천(直指川)에 합류하여 남해로 흘러드는 낙동강 수계를 이룬다.
경부고속철도가 여시골산 북쪽에서 지하 터널 형식으로 산지 아래를 통과하여 영동군에서 김천시로 이어진다.
여시골산 정상에서 인증샷
무명묘지(11:32)
밋밋한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급경사의 내리막길에 새로 나무 계단을 설치해놨다
이정표(11:48)
괘방령 770m 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이고 임도를 따라서 괘방령으로 향한다
임도를 따라서 걷는데 무더운 날씨탓인지 햋빛이 무척이나 따갑다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형태 있는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
'나도 꼭 죽는다' 라고 인정하고 세상을 살아라.
죽음을 감지하는 속도는 나이 별로 다르다고 한다.
청년은 죽음을 설마한다...
자기 일 아니라고 팔짱을 끼지만
노인에게 죽음은 버스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림과 같나니
하늘. 부모. 남편. 아내라 할지라도
그 길을 막아주지 못하고 대신 가지 못하고
함께 가지 못한다.
하루하루, 촌음을 아끼고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외길이다.
잠시후에 가야할 가성산이 보이고...
군 원형 벙커도 보인다
호젓한 등로를 따르는데 차량소리가 많이 들리고...
괘방령으로 내려선다
괘방령(掛榜嶺:311m:12:03)
충북 영동군 매곡면과 경북 김천시 대항면을 잇는 906번 지방도로 위에 있는 고갯길로
이곳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괘방령이라 불리고 있었으며
조선시대 때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 가면 급제를 알리는 방에 붙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인근의 추풍령이 국가업무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관로(官路)였다면
괘방령은 과거시험 보러 다니던 선비들이 즐겨 넘던 과거길이며 한성과 호서에서
영남을 왕래하는 장사꾼들이
관원들의 간섭을 피해 다니던 상로(商路)로서 추풍령 못지않은 큰 길이었다.
특히 과거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추풍낙엽(秋風落葉)'을 연상시키는 추풍령보다는 급제자들의
이름을 거는 '괘방(掛榜)'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 고개를 지나 다녔다고 한다.
인근 고을에 부임하던 관리들까지도 한사코 이 고개를 넘어 다녔다고 하는데...
그러나 이런 추측도 후대의 의미 부여이기가 쉽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괘방(卦方)'으로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지명 표기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掛榜이든 卦方이든 한글 표기는 '괘방'이어야 하는데 '궤방'으로 적혀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오기로 보인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 때 박이룡 장군이 왜군을 상대로 격렬한 전투를 벌여 승전을
거둔 격전지로서 북쪽으로 1km 떨어진 도로변에는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지은
황의사라는 사당이 있다. 비록 이곳이 해발 300m의 낮은 고개이지만 민족정기의
상징인 백두대간의 정기가 잠시 숨을 고르다 황학산으로 다시 힘차게 뻗어 오르는 곳이며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기도 하여 북쪽으로 흐르면 금강,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영동군 매곡면에서 각 부락의 이름을 넣어서 만든 돌탑
괘방령의 유래 안내판
야속한 괘방령 산장
산꾼들의 산행기에 보니 이곳에서 영업을 한다고 해서 베낭의 무게를 줄일겸 가볍게 베낭을 메고와
산장에서 매식으로 점심을 해결하려고, 점심도 싸오질 않았고, 식수도 이곳에서 보충할 생각으로
물도 3L정도밖에 가져 오질 않았는데, 야속하게도 문은 굳게 잠겨있고, 아무리 두드려도 영업을 하지 않네
참으로 난감하다...베낭에 먹을거라곤 쥬스 하나에 양갱 2개뿐이다... 먹을건 고사하고 식수가 문제이다
근데 도로에는 식당 영업의 메뉴가 걸려있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이곳이 아니라 직지사쪽의 식당들이다
거기까지 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오면 귀경 시간이 문제일 것 같고... 쉼터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면서
한참동안을 고민을 한다... 추풍령까지 산행을 할 것인가... 아님 이곳에서 산행을 접을 것인가?
그러나 먼 곳까지 차를 가지고와서 이곳에서 산행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억울하다
근데 배고픔은 어찌해서 견딜수 있다손 치더라도 이 더운 날씨에 식수가 문제이다
산장을 아무리 둘러봐도 식수를 보충할 길이 없다...근데 窮하면 通한다고 했던가
바로 옆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농부가 보인다... 먹는 물을 좀 얻을수가 없냐고 하니까
1.8L짜리 커다란 물통을 하나 주는게 아닌가!..이런 부처님의 가피가...감사하다는 인사를 연발하면서
용기를 얻어 벗었던 신발을 다시 신고 추풍령으로 향한다
괘방령 김천방면의 모습
추풍령과 괘방령은 옛날 과거 보러갈 때 괘방령으로 넘어가면 장원급제 방이 내걸렸고
추풍령으로 넘어간 벼슬아치는 추풍낙엽처럼 벼슬자리 떨어졌다는 설이 전해져 오는
괘방령과 추풍령.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추풍령으로 쳐들어갔다가 괘방령으로 쫓겨났고,
한국내전 때는 북한군이 추풍령으로 남진했다가 괘방령으로 퇴각했다는 역사가 전해져 오는
이 두 고개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 순간에 수많은 차량들이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추풍령에 비하면 괘방령은 한적하다.
다시 길을 나서다(12:30)
괘방령을 올라서서 길을 걷는데 무더운 더위가 숲속으로 들어오니 조금은 나은듯 하다
우측 대항면 방면으로 조그만 갈림길이 보이고...
십자 안부(12:37)
다시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니...
나리꽃이 지친 산꾼을 반긴다
418봉(12:47)
괘방령에서 올라온 대간길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튼다
오리골 안부(12:55)
충북 영동군 매곡면 공수리에 있는 오리실을 내려가는 등로가 좌측으로 보이나
우측의 대항면쪽의 길은 잘 보이질 않는데 예전에 민초들이 넘었던 고개처럼 보인다
오리골(梧里谷)은 옛날에 오동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그 설렘임이 사람을 죽이더군요... 8년을 넘게 이렇게 헤매고 있으니...
계속해서 고도를 높이면서 능선으로 올라서니...등로는 우측으로 꺽어지는데...
엄청나게 잠이 쏟아지는데 산행이 끝난 후에 서울까지 차를 가지고 가야 하기에 에~라 모르겠다
이곳에서 땀에 젖은 옷을 스틱에 걸어놓고 베낭을 베개삼아 등로에 누워 10분정도 꿀잠을 잔다
오늘이 평일이라 그런지 우두령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 산꾼들을 한명도 만나지 못했다
무명봉(13:20)
무명봉을 내려서는데 배가 고파도 너무 고프다... 산수갑산을 갈깝세 방법이 없다
하는 수 없어 마지막 남은 쥬스와 양갱을 먹어 버린다
갈림길(13:30)
예전에 만났던 무명묘지도 그대로인데... 나만 머리가 희끗희끗 쉬니...세상사 모든게 諸行無常이로구나
앙증맞은 암릉도 다 귀찮기만 하다
무명봉(13:45)
점점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누워있는 소나무 사이로 경부고속도로와 김천시내가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대한민국 민족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京釜高速道路)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근대화의 상징이자경제개발의 꿈을 실현시킬 신앙(信仰)과도 같은 존재였다. 19964년 12월에 독일의 아우토반(Autoban)을 달리며 첫 구상을 한 뒤 귀국해서도틈만 나면 인터체인지 선형을 직접 그려가며 꿈을 가다듬었다.
1967년 4월에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건설계획이 발표되자 아직 고속도로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때 야당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비등했다. “재정파탄이 날 것이다” “부유층의 유람로가 될 것이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육군의 3개 공병단을 투입하며 공사를 강행했다. 정식 기공일자는 1968년 2월 1일이지만 이미 서울∼오산 간 공사를 3개월 전부터 진행할 정도로 설계와 공사를 병행해가며 서둘렀다. 이 때문에 428㎞의 도로는 2년5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밀어붙이기식 공사로 77명이나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토지 헐값 매수로 재산권 침해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1970년 7월 7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경부고속도로가 마침내 개통됐다.박 대통령은 준공식에서 “가장 싼 값으로 가장 빨리 이룩한 대 예술작품”이라며 감회에 젖었다.
1970.7.7. 경부고속도로 완공 테이프를 자르는 박대통령 내외
경부고속도로에 대한 박대통령의 집념은 조국근대화와 맞물려 직접 챙기고 공사를 독려하였다.
헬기장이 나오고... 가성산 정상에 오른다
가성산(枷城山:716m:14:05)
경북 김천시 봉산면 신암리와 충북 영동군 매곡면 공수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은 산은 아니지만 독립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동북쪽 경사면에 김천시립공원묘원이 있는데 규모가 꽤 크다.
동쪽 발아래로 고속도로와 철도가 경쾌하게 뻗어 있다.
동쪽의 가성마을과 외가성마을에서 유래하는 봉우리로서 '가성(枷城)'은
화령권의 '작점'이나 '사기점'처럼 소규모의 진지가 있었던 곳이다.
가성산 정상에는 사각으로 만든 넓은 시멘트 바닥이 있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급한 내리막길로
내려서면서 대간길을 이어가는데 배고 너무 고픈 탓인지 가야할 눌의산이 너무나 멀게만 보인다
곳곳에 산꾼들의 시그널이 보이건만 모든게 귀찮기만 하다
등로에는 동물이동추적장치도 보이고...
등로 좌측으로는 안부가 보이는데 영동군 매곡면 옥전리 안녕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안니이라 불리는 안녕(安寧마을은 안녕사라는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현오님! 언제 지나가셨어요?
장군봉(長君峰:625m:14:50)
장군봉은 무사(武士) 장군(將軍)이 아니라 장가 성씨의 총각 '長君'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유난히도 신갈나무 무성한 부드러운 육산이라는 설이 있다.
암릉구간을 지나니...
690봉(15:15)
암릉구간의 급한 오르막을 오르니...
폐헬기장(15:35)
주린 배를 움켜잡고 폐헬기장을 지나 조금으로 오르니 표시석과 삼각점이 있는 눌의산 정상이 나온다
눌의산(訥誼山743.3m:04:20)
경북 김천시 봉산면과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 능선에 있는 산이지만 그리 알려진 산이 아니라 추풍령 뒤쪽에
자리잡은 산으로 등산인들의 발길이 뜸하여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 산의 이름인 `눌의(訥誼)'는 한자어로 정의가 눌하다 혹은 더디다는 뜻이니 추풍령
영마루를 사이하는 충청도와 경상도의 양쪽 인정의 교류가 뜸하다는 것을 뜻한다.
말씨는 친절해도 더듬거린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단어이다
정상에 봉수대가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주변 조망이 뛰어나다.
또한 옛날에는 요긴한 거점구실을 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나라에 긴급을 다투거나 외적이 침범했을 때 활활 타는 봉화를 피워올려
제몫의 역할을 다했을 눌의산의 늠름함이 살아 있다.
봉산면 관내에서는 최고봉으로 일본인들이 민족정기 말살을
위하여 박아놓은 쇠말뚝이 발견되어 제거하기도 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황간)에 "눌이항산봉수(訥伊項山烽燧)는 고을 동쪽 20리에 있다.
동쪽으로는 경상도 금산군 고성산에 호응하고 서쪽으로는 소이산에 호응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황간)에도 "눌이항봉대는 현 동쪽 25리에 있다."로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황간), 『대동여지도』(황간), 『1872년지방지도』(황간) 등의 옛 지도에도
'눌이항봉대', '눌이항' 혹은 '눌이항산봉대'로 표기하고 있다. 20세기 초반 문헌인
『조선지지자료』(황간)에도 '항(項)'이 빠진 '눌이산(訥伊山)'으로 기록하고 있다.
언제부터 '이(伊)'가 '의(誼)'로 표기가 바뀌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에는
눌의산이 기록되어 있고, 다른 이름으로 눌이항산 · 누리산 · 느릅산 · 선개산이 기록되어 있다.
눌의산 정상 삼각점(△영동22 / 1981 재설)
눌의산 정상 나뭇가지 사이로 본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의 모습
눌이산 정상에 도착하니 비로소 긴장이 풀린다
이곳에서 추풍령까지야 계속되는 내리막길이기에 배고픔을 참을수야 있지 않겠나
허기진 배를 아끼고 아꼈던 물로 배를 채우고 내리막로 가는 데 폐헬기장이 나오고
곧이어 헬기장을 만난다
헬기장(15:28)
급경사의 내리막길
앙증맞은 암릉도 등로에서 만나고...
이정표(15:35)
1km 이상을 급한 내리막길로 내려 와서야 비교적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걷는다
무명묘지(15:47)
좌측으로 골짜기가 보이는데 이곳에도 동물이동통로 추적기가 보인다
우측으로 감나무를 심은 밭이 보이고...
넓은 농로를 따라서 걷는데...
아침에 愛馬를 세워놨던 날머리 너머로 다음구간 대간길인 금산과 우측으로 난함산이 보인다
등로 주위에는 밤나무가 많아 밤꽃 향기가 진동을 하는데... 이 밤꽃 향기는 여인들이 가장 좋아한단다
임도 삼거리(15:57)
임도 삼거리에는 추풍령, 눌의산 등산 안내도가 있고 우측의 임도를 따른다
매실밭을 지나고...
농장에도 산꾼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호도나무도 많이 보인다
묘지(16:10)
묘지 가운데로 가로질러 우측으로 내려서니...
잡풀이 가득한 사과밭이 보이고...
경부고속도로 암거(16:15)
추풍령 안내판도 보인다
경부고속도로 지하를 빠져나오니...
고속도로 암거를 빠져나와 좌측으로 올라서니 유명한 영동 포도밭이 나온다
탐스럽게 익어가는 포도밭 가운데로 지나간다
경부선 철도가 보이고...
경부선 철도 지하로 내려가는데...
경부선 철도 화물열차가 지나간다
경부선 철도 지하차도(16:25)
경부선 철도 가까운 곳에 추풍령역 급수탑이 있다
1939년 건축된 방형의 급수탑으로 기계실 안에 당시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워싱턴 펌프와 급수에
필요한 물을 끌어들인 연못 및 배관시설 등 급수시설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상태이며, 6.25동란시
총탄 흔적이 있어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어 2006년 12월 4일 등록문화재 제 47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추풍령 급수탑 안내판
ㅏ자형 지하차도에서 우측으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주)추풍청과와 연하식당이 보이는 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니...
추풍령 삼거리가 보이고 주차장에는 범여의 愛馬가 쥔장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추풍령삼거리는 본래 죽령, 조령과 함께 영남지방과 기호지방을 잇는 중요한 고갯길이었다.
일반적으로 추풍령은 영남과 한양을 잇는 고갯길 중에 가장 작은 고개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인구 변동에 따른 큰 변화가 시작된다.
조선 초기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경상도 각 읍의 인구수를 성주-경주-김해-안동-진주-밀양-
선산-예천-창원이라 기록 했으나 18세기 후반의 자료인 '호구총수'의 기록에 따르면
경주-상주-진주-대구-성주-밀양-안동-선산-고성-의령의 순으로 인구서열이 변한다.
전반적으로 교통이 편리한 읍의 인구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의 교통체제가 초기에는 죽령-계립령 선에서 서남진하여 추풍령으로 이동한다.
이는 조령의 높이가 약 400m인데 반해 우회로긴 하지만 추풍령은 200m여서 수레교통이
가능하고 충청도의 삼남대로와 연결된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결과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 북서내륙의 교통이 쇠하고 대구와 김천이 상업도시로써
발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대한제국 말엽에 경부선 철도가 가설되고 이후 4번 국도와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는 명실상부한 나라의 고갯길이 되었다.
고개를 구분하여 말할 때 주로 '영'(嶺), '현'(峴), '치'(峙)로 구분한다.
엄밀하게 나누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으나 대체적으로 '영'은 큰 고개를 부를 때 사용하고,
'현'은 '영'보다 작고, '치'는 '현'보다 더 작은 고개를 의미할 때 사용한다.
헌데 추풍령에는 '영'(嶺)자가 붙어 있으니 꽤 큰 고개이다.
그렇게 고개는 크면서 고도는 낮은 탓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금강과 낙동강을 가르는 백두대간 마루금 상에 있는 추풍령에는 사람 사는
분주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정감어린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11년동안 범여의 발이 되어준 愛馬
추풍령(秋風嶺:221m:16:35)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추풍령리 당마루에서 경북 김천시 봉산면 황천리 죽막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현재 추풍령은 낙동강 유역과 금강 유역의 분수령으로 충청권과 영남권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추풍령리에 1904년에 개설된 추풍령역과 3 · 8일에 개시되는 추풍장 등이 분포하며 지명은 조선 후기의
지리지와 고지도에 다수 등재되어 있는데 『해동지도』(황간)의 금산(金山)과의 경계에 '추풍령'이 기록되어
해당 지명이 처음 등장하며『여지도서』에는 "추풍령은 산맥이 조령으로부터 상주목을 지나 본 현 동쪽 경계에서
끊겨 평탄한 땅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같은 문헌에 황악산 세주(細註)에 추풍령이 등장한다.
이후 추풍령이란 지명은 표기자의 변화 없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데『대동여지도』에 '추풍령(秋風岺)'과
'추풍역(秋風驛)'이, 『조선지지자료』(황간)에도 "추풍령역(秋風嶺驛)이 황금소면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행을 마감하다
이곳에서 스틱을 접고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I.C를 지나자마자 추풍령 휴게소에 들려서 얼큰한 김치찌게로
주린 배를 채운 다음에 커피까지 한잔 마시고,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서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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