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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백두대간 3차 북진(終)

백두대간 제28구간 - 피재에서 댓재까지

by 범여(梵如) 2017. 6. 26.

白頭大幹길 어느 한 곳도 만만한 곳은 없더이다

 

☞ 산행일자:  2017년 6월 24일~25일(무박산행)

☞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비 온후의 높은 습도

산행거리: 도상거리 26.1km / 10시간 45분 소요

☞ 참석인원: 봄.여름.가을.겨울 산악회 24명과 함께

☞ 산행코스: 피재(삼수령)-삼수정-임도-노루메기재-940m봉-961m봉-새목이재-960m봉

              무명묘지-건의령 옛길-건의령(백인교군자당)-902m봉-푯대봉삼거리-푯대봉

              푯대봉 삼거리-947m봉-961m봉-한내령-997m봉-안부-1,017m봉(석희봉)

              안부-1,055m봉-구부시령-1,007m봉-새메기재-덕항산-예수원 갈림길

             환선봉(지각산)-헬기장-무명봉-자암재-1,036m봉-무명봉-귀네미마을 갈림길

             시멘트 도로-1,059m봉-번천국유임도-큰재-1,062m봉-준경묘 갈림길

             1,159m봉-1,105m봉-무명봉-무명봉-삼각점봉-황장산-댓재

소 재 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신기면, 미로면, 하장면

             태백시 창죽동, 상사미동, 하사미동, 조탄동 

 

지난 한 주는 생각보다 뭔 일이 그리도 많은지?... 그 와중에 시골에 계신 큰 형수님께서

별세하시는 바람에 시골까지 왕복 10시간 가량 운전을 한 탓인지 상당한 피로가 축적되어

힘이 들었는데 토욜도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후배들과 다시 대간길을 나서는데 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버스 탑승장소인 사당역에 도착하니 빗줄기가 더 굵어지고 엄청나게 갈등이 생긴다.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雨中산행을 정말 싫어한다

대장이 나를 꼬신다... 형님 강원도는 비가 안 온답니다

사당동을 출발하여 용인 휴게소에 도착하니 비는 거짓말처럼 그치고 그 이후로는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피재(삼수령) 버스가 도착한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피재(935m:02:45)

태백시 삼수동에서 삼척 하장면과 도계읍을 잇는 35번국도가 지나가는 고개로  옛날 난리가 나면

태백으로 피난하던 재라 하여 피재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피재에 떨어진 빗물이 북쪽 으로

흘러 한강 물 따라 서해로 동쪽으로 삼척 오십천 따라 동해로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 따라 남해로

흐르는 분수령이라 하여 삼수령(三水嶺) 이라 부른다 

 

삼수령에서 광동호에 이르는 지역의 행정지명도 사조동에서 삼수동으로 바뀌었는데

본디 삼척시 하장면의 일부였으나, 1994년 태백시에 편입됐다고 한다

피재라는 지명이 붙기전에는 사람의 왕래가 없는 고독한 산이란 뜻에서

고적령(孤跡嶺)이라 했다

태백시내로 이어지는 35번 국도의 야심한 새벽

피재 정상에서 버스에 내려 온도계를 보니 기온이 14도를 가리키고 날씨는

조금 쌀쌀한 듯 하나 바람이 거의없어 추운줄은 모르겠다... 아쉽다면 낮에

비가 온 탓인지 짙은 개스가 자욱하다 

삼수령 조형물

빗물이야 어느 곳으로 떨어지던지 나하고 뭔 상관이람...

시원하게 비가 내려 타들어가는 農心을 좀 편하게 해줬으면 좋으련만(일욜만 빼고...)

올해는 유난히도 비가 오질않아 모든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어둠속의 삼수정

산행을 시작하다(03:05)

피재에서 내려 잠깐 선 채로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사진 몇 컷 찍는 사이에  동료들은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임도(03:12)

짙은 薄霧로 인해 앞은 잘보이질 않고 촉촉히 젖은

나뭇가지 사이를 헤치고 가니 삼수령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난다

한 동안 시멘트 임도를 따르다가... 

적각동 된각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임도를 버리고

좌측 숲으로 접어드는 노루목이 고개에 도착한다

노루메기재(獐項:03:17)

노루가 눈을 들어 산봉우리를 쳐다본다는 주장봉망형지(走杖峰望形地)로 일명

노루목이라고 하고 노루가 많았던 지역에 마을이 생기면서 노루메기라 부르며

마을의 지형도 마치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고 한다.

 

땅 모양이 노루목처럼 생겼다면 노루가 많아서라기보다는 그냥 그 생긴 모양을

따라 노루모가지->노루메기로 변한 건 아닌지 그렇게 해석하는 이도 있지만

한자로는 노루 장(獐) 목덜미 항(項)으로 쓰며 풍수지리상 노루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고 하여 노루메기(노루가 지나다니는 길목 또는 산이 막히는 막다른 곳)라 한다. 

이러한 지명을 전국에 걸쳐 여려 곳이 있으나 대부분의 표기는 “노루목”이나

“노루목이” 또는 장항(獐項) 등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노루메기(이 지방 사투리로 보임)로 표기하고 있다. 

940m봉(03:23)

961m봉(03:36)

어둠속에 만난 961m봉 삼각점(△ 태백423 / 2004복구)

등로 가운데 삼각점이 있는 960m봉에서 내려서니 넓은 平田이 나온다

벌써 2.8km라니...

초반에 등로가 좋은 탓인지 선두에서 엄청난 속도로 어둠속에 내달린다

우측 아랫쪽에는 도계읍쪽에서 지나오는 엄청나게

큰 송전탑들이 있는데 어둠속이라 볼 수가 없다 

새목이재(鳥項:850m:04:05)

새목이재는 넘나드는 고개가 아닌 능선의 V선을 이루는 곳으로 

풍수지리에서 새의 목과 닮은 산세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건의령 3.0km 

→삼수령3.5km의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만에 새목이재에 도착하여 선 채로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어둠속에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이곳 근처가 자작나무 군락지인데 오늘은 깜깜히 산행이다

경.위도 좌표 표지목이 있는 곳을 지나고...(04:25)

960m봉(04:34)

무명묘지(04:45)

건의령 옛길(04:50) 

이 고개는 태백시 상사미 마을 주민들이 백두대간을 넘어 삼척 오십천 상류의

도계나 고사리에 서는 장을 보러 갈때 이용 하던 지름길 이며 내륙과 해안을 이어

주는 고갯길로, 다시 박무가 가득한 길을 걷는데 어둠속에 또다른 무명묘지가

나오고 다시 오름길에 지난 겨울 산불이 난 곳을 지난다

안내판이 있는 이곳에 서면 좌측으로 태백의 상사미 마을과 가덕산이 보이는데

오늘은 짙은 박무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화재의 폐허만 바라 보면서 걷는다

능선으로 내려서니 옛날 산성터의 흔적같은 돌무더기가 있고

그 사이로 건의령으로 내려가는 대간길이 이어진다 

내리막길에 바라본 건의령의 모습

우측으로 내려서면 백인교군자당(百人敎君子堂)이 있다

건의령(巾衣嶺:840m:05:00)

강원도 태백시 상사미마을에서 삼척시 도계읍을 넘는 고개로  상사미마을 사람들이

백두대간을 넘어  오십천 상류에 있는 도계나  고사리에서 서는 장을 보러갈 때

길로 내륙에서 해안으로 연결하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를 보면 고려말 때 삼척 육백산으로

유배 온 공양왕이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의 충신들이 이 고개를 넘으며 고갯마루에

관모와 곤복을 걸어 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겠다고 하며 고개를 넘어 태백산중으로

몸을 숨겼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고개로 두문불출’하던 두문동재와 관련이 있다.

 

여기서 관모와 관복을 벗어 걸었다고 하여 관모를 뜻하는 건(巾)과 의복을 뜻하는

의(衣)를 합쳐 건의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라고 적혀있다.  건의령의 지명을 살펴보면

5만분의 1 지형도에는 한글로 ‘한의령’ 이라 쓰고 寒衣嶺’이라 적혀 있지만 이 지명은

명백한 오류로 보인다.

 백두대간 족보격인 조선광문회에서 발행한 “산경표”에는 건의령(建儀嶺)으로

기록되어 있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건의령(巾衣嶺)’으로 표기돼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건의령(巾儀嶺)이라고 한다

 

선조들의 가슴아픈 역사의 현장인 건의령 아래로는 도계와 상사미동을 잇는

건의령 터널이 지나가고 있고 우측에는 예전에 백인교군자당으로 쓰였다는 산신각이 있다.

 백인교군자당(百人敎君子堂)...2013년 12월8일 남진때 자료

口傳에 의하면 고려말기 한 재상이 이 고개마루에서 100명의 사람에게 글을

가르쳐 마을 사람들이 그 공덕을 기리고자 백인교군자당을 세웠다고 한다

2000년까지도 사당이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허름한 함석에다가 판자떼기로 만들어진

전각에 山神閣이라 부쳐진 현판에 아마 굿을하는 무당의 소유인지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백인교군자당 옆에 있는 서낭당의 모습

 

서낭당이란?

마을의 터를 지켜 준다고 믿어지는 신으로. 따라서 서낭당이란 서낭신을
모셔두는 집으로, 서낭당의 형태는 돌무더기만 쌓인 것이 있는가 하면
당집이 마련돼 있는 경우, 마을에서 섬기는 신목(神木) 하나만 뎅그러니
서 있는 경우도 있다.
 

전남에선 할미당으로, 경북에선 천왕당(天王堂), 평안도에선 국사당(國師堂),

함경남도에선 국시당으로 불리는데, 강원도에선 경기도 황해도와 함께 주로
서낭당이라 부르는데,마을 사람들은 서낭님께 성공과 바람을 기탁하여 당집에
시루나 흰 실, 혹은 한지를 접어놓거나 비단을 걸어 놓는데, 시루는 풍요로운
생산을, 흰 실타래는 무병장수를, 한지나 비단은 신에게 드리는 예단이다
 

우리의 서낭신이 단지 미신이고 미천한 것으로 치부될 것이 아니라

민초들의 작은 바람과 뜻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구심체 역할을 담당했던

역사적 사실을 이해 했으면 한다.

건의령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푯대봉으로

향하는데 불이난 능선 나뭇가지로 일출이 시작된다

902m봉(05:20)

푯대봉 삼거리(05:30)

이곳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대간길에서 0.1km 떨어진 푯대봉으로 향한다

푯대봉의 모습

푯대봉(1,009.2m:05:33)

삼척시 도계읍과 태백시 상사미동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일제 강점기에 자원수탈을 위해 측량을 하면서 측량 깃발을

표시하여 세웠다고 해서 푯대봉이라고 부르며, 우리가 산행을 하면서

많이 만나는 깃대봉과 같은 개념이라 볼 수 있다.

정상에는 정상석과 산불감시 무인카메라와 표식을 알 수 없는 삼각점이 있다.  

인증샷

인식할 수 없는 푯대봉 삼각점

다시 푯대봉 삼거리(05:37)

베낭을 메고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서는데 동료 산꾼들의 대다수가 대간 능선이

아니라는 이유로 푯대봉을 들리지 않고 가버리는 바람에 또 다시 맨 꼴찌가 되어 버렸다

불탄 지역에도 새 생명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만나는 아픈 상처의 흔적

대간길을 자연보호라는 이유로 원래 능선이 아닌 좌측으로 유도한다... 이정표 뒷쪽이 원 대간길이다

이정표(05:43)

위대한 탄생

당개나무덩굴꽃

일명 미역줄기나무라고도 하며, 주로 고산지대 분포하며 오대산 국립공원에 자생

많이 하며 군락 이루며 분포된 지역에서 날씨 좋으면 벌통에서 4리터의 꿀을 뜰수 있

947m봉(05:52)

커다란 금강송 한그루가 산꾼 범여를 반긴다

동행한 노루님의 말로는 낙동정맥길에서 만난 十指松보다 훨씬 멋지다고 한다

바로옆의 魔에도 해를 입지 않고 꿋꿋한 자세로 대간길을 지키고 있다

평지길을 내려가다가 좌측으로 보니...

푯대봉 아래로 펼쳐지는 하사미동의 목가적인 풍경이 한가롭게만 보인다

 

태백시 하사미동( 下士美洞)은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와 경계를 이루는

덕항산(, 1,071m) 자락의 고지대에 자리 잡은 마을로, 태백시 삼수동의 법정동이다.

 

허목의 <척주지 >에는 현재의 하사미동과 상사미동을‘삼()’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옛날 이 지방에서 삼공(; 인삼을 공물로 상납하는 것)을 주로 하였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

하며, 후에 ‘삼()’은‘사미()’로 변형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생께 또는 샘께라고도 부르는 자연마을인 천포()에서 맑은 샘물이

솟아 나와 이 지역을‘샘()’이라 불렀다가 ‘새미’,‘사미’라는 지명으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원래 사미리()라 부르던 지역이었으나 1842년(헌종 8) 상사미리와 하사미리로 나누어졌고,

후에 상사미동과 하사미동으로 개칭되었는데, 하사미동은 천포(), 무쇠골(), 점촌(),

송촌(), 신밭(), 상촌(), 가리골(), 귀내미골()의 8개 자연마을로 형성된

마을로, 주민들은 주로 고랭지 채소를 경작한다.

기린초(꽃말: 소녀의 사랑)

영특하고 뛰어난 아이를 ‘기린아’라고 부르는데, 약초로

이용되는 식물 중 그 기능이 가장 우수하다고 하여 ‘기린초’라고 한다

우산나물꽃

토아산(兎兒傘)·삿갓나물이라고도 하며 새순이 올라와 잎이 나올 때 채 벌어지기 전의 모습이

마치 우산을 펼친 듯하여 우산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방에 따라서는 삿갓나물이라고도 하지만 같은 이름의 다른종인 삿갓나물과는 다른 식물로

한자 이름인 토아산(兎兒傘)은 토끼 새끼가 쓰는 우산이라는 뜻으로, 뿌리줄기에 가는 뿌리가

많으며 전체에 털이 없고, 대개 그늘에서 무리 지어 자라는데 줄기는 곧게 서서 자라며

가지를 치지 않고 회청색을 띤다... 우산나물과 비슷한 유사종으로 잎의 뒷면에 흰빛이 돌지 않는

것을 대청우산나물, 잎과 꽃이 다소 작고 두상화가 산방 꽃차례로 달리는 것을 애기우산나물이라

하며, 관상용·식용·약용으로 이용되며,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데 향기와 맛이 참나물과 비슷하고,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여 사용하며, 술을 담가 두고도 쓴다.

961m봉(05:57)

이정표가 나오고...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목장 철조망을 따라서 걷다가 한내령에 도착한다

한내령(汗乃嶺:06:23)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한내리에서 태백시 상사미동 삼밭골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태백쪽에는 굉장히 큰 목장이 들어서 있어 철조망이 처져있고 삼척쪽은 희미한

고개길이 보이지만 고개의 역할은 다끝나 버린 곳이다

 

한내리는 삼척시 도계읍의 서북쪽 험준한 산골에 위치한 마을로 서쪽에는 금대산의 산맥이

내려와 출천곡산 및 소암봉이 있으며 수전()을 이용한 토지는 전혀 없고 산전()을

일궈 보리, 밀, 콩, 팥 등의 잡곡을 생산해낸다.

 

자연 마을로는 본, 시도 마을 등이 있는데 본 마을은 한내리의 본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시도 마을은 본 마을과 이 마을 사이에 서로 혼인이 많아서 사돈 마을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다시 오르막을 치고 오르는데 생각보다 힘이드니 양넘 지갑줏는 코스는 절대 아니다

 

아침을 먹지 않은 탓인지 아님 체력의 저하인지는 모르겠으나 슬슬 지치기 시작한다

지난 구간에 은대봉에서 일본산 흑사탕을 얻어 먹었던 妙齡의 여인과 오늘도 같이

걷게 되었는데 혹 실례일까 망설이다가 흑사탕 하나 얻을 수 없냐고 하니까 흔쾌히

2알을 주는 바람에 맛있게 먹었다...복받을 깁니다

997m봉(06:35)

안부(06:38)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을 치고 오르는데 예전에 없었던 산패가 붙어있는 봉우리를 만난다

석희봉?(1,017m:06:45)

힘들게 능선을 치고 오르니 개념도상의 1,017m봉 정상에 석희봉이란 산패가 붙어있다.

예전에 2번의 대간길에도 없었던 산패인데 해밀 산악회에서 붙여논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이정표(06:49)

우산나물꽃(꽃말: 편히 쉬세요)

오늘 등로에는 예전에 없었던 안전로프가 많이 설치되어 있다

노루오줌(꽃말: 기약없는 사랑)

노루오줌은 노루가 다닐 만한 산에 사는데, 뿌리에서 지린내가 나서 노루오줌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오줌 냄새를 내는 이유는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각처의 산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산지의 숲 아래나 습기와 물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며, 키는 60㎝ 내외이고, 뿌리줄기는 굵고 옆으로 짧게 뻗으며 줄기는 곧게 서고

갈색의 긴 털이 나 있고, 잎은 넓은 타원형으로 끝이 길게 뾰족하며, 잎 가장자리가

깊게 패어 들고 톱니가 있으며 잎은 어긋나고 잎자루가 길며 2~3회에 걸쳐 3장의 작은잎이

나온다.

 

잎의 길이는 2~8㎝이며 꽃은 7~8월에 연한 분홍색으로 피고, 길이는 25~30㎝ 정도이다.

9~10월에 열매가 달리는데 갈색으로 변한 열매 안에는 미세한 종자들이 많이 들어 있다.

범의귀과에 속하며 큰노루오줌, 왕노루오줌, 노루풀이라고도 한다. 어린순은 식용으로,

뿌리를 포함한 전초와 꽃은 약으로 쓰인다.

아직도 15.6km나 남았다네요

오늘 산행구간은 고도차가 그리 크지않아 초반에는 무난하게 잘 가는중...

연잎꿩의 다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예전에 없던 이정목이 많이 보이는데 목표물에 일관성이 없다

고도차가 별로 없는 등로를 걷는데 이른 아침부터 슬슬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금강초롱(꽃말:가련한 마음)

금강초롱의 전설

옛날 금강산에 두 오누이가 살고 있었는데 부모를 여의어 어려서 부터 힘들게 살았지만

형제간의 우애는 누구나 부러워 할 만큼 사이가 좋은 오누이였다. 그런데 어느날 누나가

아파서 눕게 되었다.

 

집이 가난한 그들에게는 약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였고 남동생은 말로만 들었던

약초를 찾아 금강산을 헤매기이 시작했는데 그러던 어느날 꽃들이 남동생에게 속삭였다.

 

그 약초를 구하기 위해서는 달나라 까지 가야한다고. 남동생은 누나를 살리기위해 달나라까지 갔다.

한편 집에서 남동생을 기다리던 누나는 아무리 기다려도 동생이 오지 않자 동생을  찾아 초롱불을 들고

늦은밤 집을 나섰는데 몸이 좋지 않았던 누나는 얼마 걷지도 못해 금강상 한 구석에서 죽고 말았다.

그 누나가 들고 있던 초롱불이 금방 초롱꽃이 되었다고 한다.

꿩의 다리(꽃말: 순간의 행복)

꿩의다리란 이름은 꽃대가 꿩의 다리처럼 날씬한데서 유래 된 이름으로 잎은 어긋나는데

밑동의 잎은 잎자루가 길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짧아져 없어지며 턱잎은 가장자리가

막질이며 밋밋하며, 전체가 삼각형을 이루고 2~3회 깃 모양으로 갈라진다. 작은 잎은

길이 1.5~3.5cm, 나비 1~3cm의 거꿀달걀꼴이고 끝 부분이 얕게 3~4개로 오리발처럼

갈라지는데 끝이 둥글다.

 

꽃은 7~8월에 지름 1.5cm 정도의 꽃이 흰색 또는 엷은 녹색으로 피는데 줄기 끝에 산방

모양의 큰 꽃차례로 달리는데, 꽃잎은 없고 꽃받침잎은 4~5개이며 타원형인데 꽃이

피기 전에는 붉은빛이 돌기도 하며, 수술은 많고 수술대는 주걱 같으며 꽃밥은 넓은

선형으로서 황백색으로, 금꿩의 다리, 꿩의 다리, 한라꿩의 다리, 산꿩의 다리, 연잎꿩의 다리,

돈잎꿩의 다리, 참꿩의 다리, 자주꿩의 다리, 좀꿩의 다리가 있다

동행한 까치샘님이 꼭 하고초(夏枯草)라 부르는 꿀풀도 간간히 보인다

죽어서도 멋진 모습... 세상사 모든게 폼생폼사인가?

이정표(07:33)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안부(07:35)

안부에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땀깨나

흘리면서 정상에 오르니 먼저간 동료들이 밥상을 펼치고 있다

1,055m봉(07:45)

아침만찬(07:45~08:20)

여유로운 아침만찬을 끝내고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대간길이 살짝 바뀌었다

예전의 대간길은 자연보호란 명목으로 막아놨고 이정표는 새로운 길로 안내하고 있다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돌탑이 보이는 넓은 평지가 나오는데 어느 여인의 박복한 삶이 회자되는 구부시령에 도착한다

구부시령(九夫侍嶺:08:35)

태백시 하사미동(푯대봉 뒤쪽마을) 외나무 골에서 삼척 도계읍 한내리로

넘어 가는 고개로 옛날 한내리 땅에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박복한 여인이

살았는서방만 얻으면  죽고 또 죽어 무려 아홉 서방을 모셨다고 하는데

그래서 구부시령(九夫侍嶺)이라고 한다

 

아홉 지아비를 차례로 섬겨야 했던긴 동쪽 대기리 주막집 여인은 어느 새 사라지고 ,

그 숫자와는 상관없이 이 땅 어두웠던 세대 그늘진 곳에서 恨 많은 삶을 살다간

예쁜 女人을 생각하며 한 점씩돌을 쌓으며 이 길을 쉬어 가던 로맨티스트 방랑객의

낭만이 돋아 나오는데, 그는 아홉중에도 속하지 못했으리라..

바로 옆에 떨어진 돌 한 점 들어 맨 위에 놓아 본다.

빛바랜 구부시령 안내판

새로 설치한 구부시령 이정표

오늘 산행길에서 자주 만나는 노루오줌

1,007m봉(08:45)

1,007m봉에서 급하게 좌측으로 90도 정도 꺽어지며 대간길을 이어간다

새메기재(08:48)

이곳에 대한 자료는 찾을 길이 없으나 새벽에 지나온

새목이재의 유래와 같지 않을까?(범여의 생각 中에서)

새메기재 안내판

일월비비추(꽃말:신비한 사랑)

석회암 지대에 잘 자라는 비비추는 언뜻 들으면 외래어 같지만 순우리말로,

어린잎을 나물로 먹는데 잎에서 거품이 나올 때까지 손으로 비벼서 먹는다고

해서 ‘비비추’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잎이 옥잠화와 비슷하지만 옥잠화는

약간 크면서도 하얀 꽃이 피고, 비비추는 그보다는 좀 작은 보라색 꽃이 핀다

우거진 숲을 헤치고 오르막을 올라서니 덕항산이 나온다

덕항산(德項山:1,072.5m:09:00)

태백시 하사미동과 삼척시 신기면과 경계에 솟아 오른 산으로 옛날에는 덕매기산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산 전체가 석회암으로 되여있고 산 아래 삼척쪽에 유명한 환선굴이

있으며 그 밖에도 동굴이 54개에 이른다고 하며 산의 동쪽은 험한 벼랑이며 서쪽은

완만한 경사로 이루워진 산 이다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 소재한 대이리군립공원에 소재하고 있으며 약 12km

길이의 무릉천이 덕항산에서 동으로 계곡을 따라 흘러 五十川에 합친다.

 

산세가 수려하고 동남으로 펼쳐지는 병풍암,거대한 암벽,칼로 벤 듯한 암면,우뚝 솟은

촛대봉 등 특이한 절경을 이루며 덕항산은 산보다도 '환선굴'로 더 유명하다.

 

덕항산은 능선으로 지각산과 나란히 하고 있으며 이 2산의 가운데 해발 840m에

환선굴이 있으며 5억3천만년 전부터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종유석의 아름다움

보다도 큐모가 크고 웅대하고 총연장 6.5km, 높이 30m , 폭 100m로 동양 최대를

자랑한다.

 

환선굴은 97년 10월에 일반인에게 개방되었으며 총연장 6.5km 주굴 3.2km로 6개의

동굴군중 가장 규모가 큰 굴로 내부에는 기암괴석이 항아리,소,사람 등 다양한 형태의

석순와 종유석이 형성돼 있어 석회동굴의 아름다움을 고루 간직하고 있는데  그러나

동굴내 지형지물과 동,식물 집단 서식지의 보호를 위해 전체 6.5km중 1.6km만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다.

 

원래 이름은 '덕메기()'이었다고 하는데, " 너머에 화전하기 좋은 더기(고원)

있는 "라는 뜻이고, 그것이 '덕목이' 변하고 덕항산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 삼척사람들이 화전밭을 일구기 위해  태백(하사미)으로 넘어 오던 산이라 하여  

 "덕메기산"으로 불렸으나  이두문자 표기로 덕항산(메기=목덜미(項)으로 바뀌었다.

 

화전민들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전해지는 이름이다.

 

화전민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라도 하려는 덕항산은 수려한 산세를 자랑한다.

경동지(傾動地傀) 표본을 이루는 곳으로 환선봉과 나란히 하여 양쪽사면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데, 삼척방향 동쪽의 대이리 방향은 깎아지른 석회암 사면으로 촛대봉,

사다리 바위, 나한봉, 수리봉, 금강, 미륵봉 같은 기암들이 즐비하고, 계곡의 초입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굴(환선굴,관음굴,사다리바위굴, 양터목세굴,덕밭세굴,큰재세굴)등이 있다

 

태백서쪽은 1000m 전후의 화전을 일구어도 될만한 고위평탄면을 이룬다.

아홉마리 용이 아홉 늪에서 놀고 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으로 꼽히기도 한 곳이다

덕항산 정상 삼각점(△삼척 23 / 1995복구)

덕항산이 3년반전에 비해서 많이 많이 바뀌어서 상당히 헷갈린다

예전에 있었던 앙증맞은 정상석과 거리 표시석은 온데간데 없고 이정표, 빛바랜 덕항산 안내판,

백두대간에 대한 안내판, 그리고 건의령에서 댓재까지의 지도와 거리까지만 표시된 안내판이 있다

이 지도의 내용으로 봐선 피재(삼수령)에서가 아닌 건의령에서 시작점을 한 걸로 삼척시에서

설치한 듯 한데 그러면 정상석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동행한 노루아우님의 말로는 어떤 넘들이

술이 취해서 정상석을 산 아래로 굴려 버렸다고 하는데 정말 그랬다면 감빵을 보내야 할 넘이네

 

노파심이긴 하지만 태백시와 삼척시의 이기적인 갈등으로 없어지진 않았겠지.

지나온 남덕유산 구간에 있었던 서봉 정상석이 사라진 것처럼...

서봉의 정상석이 사라진 연유는 서봉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라북도 장수군에 속하며

장수 사람들은 서봉이라 부르지 않고 장수 덕유산이라 불렀는데, 장수군과 경계에 있는

함양군에서 서봉이란 정상석을 세운데 불만을 품고 없애 버렸다고 한다(들은 얘기에 의하면...)

덕항산 정상의 이정표와 표시석

2013년 12월 8일 남진때의 사진

덕항산에서 내려다 본 환선굴의 모습

예수원 갈림길(09:13)

예수원은 구부시령 입구에 ‘토지는 하나님의 것’ 이라고 믿는 수도 공동체

태백 예수원은 1965년도 설립되었다고 하며 2002년 84세로 영면에 든 대천득

성공회 신부(본명: 뢰벤아처 토리3세)가 세운 예수원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공동체이다.

 

지난구간 매봉산에서 피재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삼수령 목장도 예수원 소유라고 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로 내려가는 철계단이 나온다

신기면 대이리로 내려가는 철계단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골말 일대는 6·25 한국전쟁 조차 모르고 살았다고 하며 주변에는 너와집,

굴피집, 통방아 등 많은 민속유물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모두 강원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전통가옥이라곤 기와집이나 초가 정도만 봐왔던 사람들은 너와집이나 굴피집의
여기저기

물 샐 것 같은 지붕과 바람 드나드는 허술한 판자벽을 보곤 의아해 한다.
그러나 맑은 날 조금씩 틈이 벌어져 있던 지붕은 습기를 머금게 되면 부풀어서

물샐 틈 없는 완벽한 지붕이 되고, 겨울엔 눈이 덮이면서 그 무게에 눌려 틈이 없어진다.

허술한 판자벽도 겨울철엔 땔감으로 쓰는 장작을 뱅 돌아가며 쌓아놓으니 걱정할 게 없다.
굴참나무 껍질을 지붕에 차례로 포갠 굴피집은 물이 잘 빠지고 건조가 잘 되거니와 

보기와 달리 수명이 길어 흔히 ‘굴피 천년’이라 하는데 보통 굴피는 더위가 한풀 꺾이는

처서 전에 벗긴 그 이후엔 나무의 수분이 말라서 잘 벗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붕을 덮은 후 몇 년 지나면 거꾸로 뒤집어서 다시 쓴다.

보통 3년 주기로 썩은 조각들을 교체한다. (자료 - 펌)

가아할 지각산과 고랭지 채소밭의 모습

환선봉 가는길

우측으로는 천길 낭떨어지이다...예전에 없던 안전로프가 많이 보인다

넓은 공터를 지나 지각산(환선봉)으로 향한다

두루미 천남성

두루미가 날개를 편 듯한 두루미천남성은 독특한 이름만큼이나 꽃도 특이하고 열매도

독특하다...두루미를 닮은 천남성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데, 식물체를 보면 마치

두루미처럼 날개를 펴고 긴 목을 올리고 고고하게 서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데

대표종인 천남성 역시 아주 독특한 야생화다.

 

꽃이 녹색으로 삐죽 나는데, 끝 부분이 ㄱ자로 굽어지며 녹색이라서 언뜻 보면 잎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는데, 여기에 열매가 달리면 더욱 기이해지고, 빨갛게 익은 열매들이 마치

곤봉처럼 끝 부분에 뭉치는 것이다

 

천남성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만주 등지에 분포한다.

구근은 독성이 강하며 약재로 쓰인다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지각산이라 부른는 환선봉으로 올라선다

환선봉(幻仙峰:1,180m:09:50)

강원도 태백시 하시미동과 삼척시 신기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일명 `찌걱산'이라

불리는 지각산(환선봉)은 산 동쪽 깎아지른 절벽에는 설패바위, 촛대바위,금강문 등

수많은 기암이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 선경을 이루는 별유천지로  건너편 미륵봉

밑에는 천연기념물 178호로 지정된 환선동굴이 있으며

황금색 종유석, 석순 폭포 등 기묘한 현상으로 감탄을 금치 못한다.  

 

幻仙峰(지각산:地角山)은 공식적으로는 지도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무명봉으로

이 지역에서는 지각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오다가, 1990년대에 이 봉우리 아래의

환선굴(幻仙窟)이 관광명소로 개발되면서 이를 둘러싼 산줄기의 중양부에 가장 높게

솟구친 점을 감안하여 삼척시에서 임의로 환선봉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봉우리인데,

능선에서 바라보는 환선굴 입구의 대이리 협곡 풍광은 가히 경이롭다 할 수 있을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환선봉(지각산)이라 부르는 이유는 아래 환선굴이 있어 환선봉이라

한 것 같다.

환선봉에 도착하니 산행 대장이 제물을 차려놓고 山王大神을 모셔 예를 올린 다음이다

나 역시 제배의 예를 올리고 음복으로 소주 한잔을 마신다

지각산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삼척시 하장면 광동댐 부근엔 또 하나의

지각산(904m)이 있는데 이 산 이름은 원래 ‘찌걱산’이었던 것이 한자화하면서

지각산이 됐다.

 

‘찌걱’이란 삼척 지방 사투리로 남녀가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나타내는

의성어인데, 지각산 자락이 Y자로 벌어져 있고, 그 계곡에서 남녀가

우연히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둘 사이에 꼭 사단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산 이름을 찌걱산이라 했다는데, 속된 이름인 찌걱산을

한자화하면서 고상하게 지각산이라 하게 됐다.

 

이곳 지각산(환선봉) 아래의 Y자 계곡도 보는 이에 따라서 그와 비슷하다

이곳의 지각산 역시 원래는 찌걱산이었던 것이 고상한 이름의

지각산이 됐고, 이후 더욱 근사한 환선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환선봉 정상에서 동료산꾼들과 인증샷을 남긴다

날에는 지각산이라 불렀는데 환선굴이 발견 이후 개명 환선봉 이라 부른다고 한다

옛날 한 스님이 산 아래 있는 동굴에 수도을 위해 동굴에 들어 갔는데

나오는것을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 사람들은 스님이 신선이 되였다고 믿고는

이 스님을 환선이라 불렀으며 동굴 이름을 환선굴 이라 한다

 

환선봉 아래 환선굴은 천연기념물178호로 지정 동굴규모가 10.000여평으로

최대 천정높이30m이루며 길이는 6.9km 동양최대 동굴로써 동굴안에서 나오는

물은 입구에 폭포를 이루며 쏟아지고 동굴안에는 3000명 모을 수 있는 넓은 광장과

각양각색 종유석이 신비스런 모습을 하고 있으며 동굴온도는 17c유지하며

지층은 고생대 것으로 4~5억전에 이루어진것으로 추정 하고 있다

환선봉에서 다시 급한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이정표를 따라서 곧바로 내려서지 않고 빙빙 돌아서 자암재 방향으로 향한다

멋진 고비나물도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등로 좌.우로는 줄기 딸기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딸기밭과 리기다소나무가 어우러진 대간길을 걷는다 

헬기장(10:14)

헬기장은 온통 쑥대밭으로 변해 버렸다

등로 우측 환선굴이 있는 삼척쪽은 설악산 용화장성을 연상케 할만큼 멋지다.

무명봉(10:23)

등로 옆에 있는 요염한 땅나리

부드러운 陸山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니 자암재에 도착한다

자암재(10:30)

강원도 태백시 조탄동 귀네미 마을과 환선굴로 유명한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장암재라고도 부르는데 환선굴이 있는 대이리가 있는 곳에

장암목이 마을이 있어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환선굴이 위치한 대이리 일대에는 석회석 동굴뿐만 아니라

너와집, 굴피 집 그리고 통방아 등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일부는 아직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지만 조만간 기능은 다하게(死) 될 것이다.

그러나 주거 민속의 연구 대상과 관광자원으로서의 역할(生)은 지속하게 된다.

 

즉 너와집 굴피집 통방아 등은 죽음과 삶을 동시에 영위하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대간은 “죽음은 곧 삶이며 삶이 곧 죽음이다”는 동양철학의 일부를

강조하려 한듯 한데,生由於死 死由於生(삶은 죽음에서 그리고 죽음은 삶에서 시작된다)

불경(佛經)에 나오는 말이다.

자암재에 도착하여 약간의 휴식을 취하며 음료와 과일로 원기를 보충하는데

우측의 환선굴 방향으로 등산객들의 시그널이 잔뜩 걸려있어 대간 산꾼들이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곳에서 가까운 덕항산이 100대 명산이라 환선굴에서 덕항산으로 오르는 등산객들과

백두대간 당일 산행을 하는 산꾼들이 이곳에서 끊는 경우가 많아서 시그널이 많은 모양이다

 

환선굴의 유래와 전설

먼 옛날, 대이리 마을의 촛대바위 근처에 폭포와 소가 있어 아름다운 한 여인이

나타나 멱을 감곤하였는데, 어느날 마을 사람들이 쫓아가자 지금의 환선굴 부근에서

천둥번개와 함께 커다란 바위더미 들이 쏟아져 나오고 여인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여인을 선녀가 환생한 것이라 하여 바위가 쏟아져 나온 곳을 환선굴이라

이름 짓고 제를 올려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게 되었다.

여인이 사라진후 촛대바위 근처의 폭포는 물이 마르고 환선굴에서 물이 넘쳐나와 선녀폭포를 이루었다.

쏟아져 나온 바위는 지금의 환선굴 가는 길목에 남아있고 바위더미 위에는 산신당이 지어져 있다.

 

또다른 설은 한 스님이 도를 닦기 위해 환선굴로 들어갔으나 되돌아 나오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사람들은 이 스님 또한 환선이라 하였다.

스님이 짚고 왔던 지팡이를 산싱당앞에 꽂아 두었는데 지금의 엄나무가 바로 그것이라고

전하며 환선굴내에는 스님이 기거하던 온돌터와 아궁이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자암재에서 직진으로 가니 넓은 초지가 있는 곳을 지나 오름길로 들어선다

1,036m봉(10:55)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하직을 준비하는 원추리

1.036m봉을 내려서니 고랭지 채소밭이 나오고 맞은편엔 귀네미 마을이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귀네미(牛耳谷) 마을

태백시 하사미동 귀네미마을의 유래는 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형세가

소의 귀를 닮았다하여 우이령(牛耳嶺)이라 부르는 데서 연루한 이름이며, 이 마을의 형성은

1985년 광동댐 건설로 수몰 실향민이 된 주민들이 산을 개간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귀네미마을의 30여만 평(坪)에 조성된 고랭지 배추밭은,  태백시 매봉산 고랭지 배추밭,

강릉 안반덕, 평창 600마지기에 이은 우리나라 4대 고랭지 배추밭으로 해마다

8월이면 이곳에서만 약 230만여 포기의 배추가  출하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예언서 중에서 <정감록>의 피난지로 알려진 곳으로 한 때는

이북 사람들이 <정감록>을 믿고 이곳으로 집단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해서

살다가 해방 전후 다른 곳으로 떠나 빈터로 남아 있었는데 1988년부터

광동 댐 수몰지역인 숙암리, 광동리,조탕리 사람들 37가구가 집단이주하여

현재의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우이(牛耳)는 '소귀'로 이두표기 이기에 우귀 곧 '어귀'의 한자표기다.

이상향 무릉도원으로 가는 어귀에 있는 고개이자 골짜기라는 뜻이다.

 

 '귀넘이'가 '귀네미'로 부르게 되는데 이 골짜기에는 과거 조선조 말엽부터

이상향을 찾아 이북 사람들이 이주하여 와서 살다가 떠나가곤 하였다.

귀네미 마을(牛耳谷)은 태백시로 부터 2007년도 대표모델 마을로 추천받은

고랭지 배추, 쌈채의 마을로써 주요농산물인 고랭지채소, 산더덕, 산나물

(곰취, 곤드레, 나물취, 참나물, 산도라지, 산약초)등을 재배하고 있다.

 

귀네미마을은 해발 1100미터의 고산으로 유명한데 중국과 티벳을 연결하는 험한

산길인 '차마고도'를 패러디한 '배추고도'로 2008년 9월에 방영한 KBS 1박2일에

방영된 이후 유명세를 타고 있다. 태백 매봉산, 강릉 안반덕, 평창 육백마지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고랭지 배추밭으로 꼽히는 귀네미 마을의 정상은

태백시와 삼척시 경계에 솟은 삿갓봉(1185m)으로 해돋이 명소로도 유명 하다.

고랭지 채소밭 옆으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이정표를 따라서 걷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무명봉(11:08)

다시 내려서니...

귀네미마을 갈림길(11:13)

이정표가 나오고 시멘트 농로를 따라서 대간길을 이어간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좌측으로 보이는 곳으로 가야한다

시멘트 농로를 버리고 우측의 숲으로 접어든다

날씨가 가물어서 큰일이다

좁은 숲길로 접어드니...

선달아우님의 시그널도 만나고...아우님의 고향이 대전인가?

흐린 날씨이나 높은 습도에 바람 한 점없는 탓인지 체력의 저하가 시작된다

꼭지점에서 좌측으로 꺽어진 다음에...

이정표(11:20)

1,059m봉 오르기 직전에 시멘트 도로에서 남은 막걸리와 빵, 과일로 원기를 보충하며 휴식을 취한다

숲속에서 만난 엉퀑퀴

귀네미골 고랭지 채소밭

넓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진 고랭지 채소밭이 펼쳐지는데

능선에 올라서면 건너편 산사면 일대까지 귀네미골 35만평의

고랭지채소밭이 펼쳐져서 장관을 이루는 이 귀네미골(牛耳谷)은 삼척시 하장면의

광동댐을 만들 때 수몰지구에 살던 사람들을 이주시켜 정착시킨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 거주민들은 고랭지 채소 재배가 생계를 유지하는 방편이지만 고랭지 채소밭은 현대판

화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연 훼손 및 환경 오염을 가져온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귀네미 고랭지 채소밭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선다(11:38)

대간길답지 않게 잡풀이 상당히 성가시다

1,059m봉(11:42)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큰뱀무(꽃말:만족한 사랑)

뱀이 자주 다니는 길에 무 같은 잎을 가진 풀이라고 하는 설이 있지만 뱀과 직접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표준 식물에 비해 모양이 떨어지거나 다르다는 뜻을 의미한다고 보면 될 듯 하다

예를 들어 개망초의 ‘개’ 나 ‘아재비’처럼... 큰뱀무는 뱀무중에 꽃잎과키가 좀 크다고 하여 붙혀진

이름으로 뱀무와의 차이점은 줄기에 털이 있으면 줄기에 털이 있으면 큰뱀무이고 없으면 뱀무이다

1,059m봉에서 내려서 가야할 대간길의 궤적

수몰지구 이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귀네미마을 고랭지 채소밭 

 

1985년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에 광동댐이 만들어 지면서 광동리-조탄리-숙암리에

살던 37가구 주민들이 이주하여 집단으로 마을을 형성한 곳이 

고랭지 배추가 주산물인 귀네미마을이다.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산골로 이주하여 일군 민초들의 역경을 극복한 질긴 삶의 현장이다.

그들은 팍팍하고 가파른 산비알을 개간하여 전국 제일의 고랭지 배추밭을 일구는데 성공하였다.

그들에게는 천혜의 행운도 따랐다고 한다.

그들이 성공하기까지는 자연조건도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습기를 함유한 안개 상습지역이고 바람까지 거센 지역이라

고랭지 채소를 경작하기에는 좋은 조건을 가진 곳이란다.

멋진 노거수 한그루가 산꾼을 반긴다(11:50)

이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올라야 하는데 대장이 좌측의 임도로 계속 향한다

그런데 딱히 말을 할수가 없다... 후미팀 대원들이 6명이나 있는데 내가 그쪽이

아니야 하면 대장의 체면을 구길것 같아 조금씩 넓은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한참을 가더니 대장도 이상한 모양이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금강초롱(꽃말: 각시와 신랑)

금강산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금강산에서 자라는 초롱꽃이라는 뜻에서 금강초롱이라고 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초롱꽃같이 생겼으나 꽃밥이 붙어 있고 잎에 털이 없으며 윤채가 있는 것이 다르다

 

높이는 30∼90㎝ 정도이고 근경은 굵으며 갈라진다. 줄기의 밑부분에는 비늘 같은 잎이 있다.

보통 4∼6개의 잎이 호생하지만, 윗부분의 것은 마디 사이가 짧기 때문에 총생(叢生)한 것같이 보인다.

잎은 긴 난상타원형이며 끝이 뾰족하고 밑이 둥글며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엽병은 길이 2∼6㎝이며 밑의 것일수록 길다.

꽃은 8, 9월에 피며 길이 4.5∼4.8㎝, 지름 3㎝ 내외로 짙은 자주색이며 윤채가 있다.

 

꽃이 순백색인 것을 흰금강초롱, 흰바탕에 자주빛이 도는 것은 설악초롱, 붉은빛이 도는 것은 오색금강초롱,

붉은빛이 도는 자주빛인 것은 붉은금강초롱이라고 하는데 이 가운데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것은 설악초롱이며,

화채봉 능선을 따라 대청봉으로 오르는 능선상에서 흔히 자라고 있다.

번천국유임도(12:20)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여성 산꾼들은 귀네미마을로 강제로

축출(?)하고 베낭을 바짝 조인 다음에 마라톤하듯 날머리인 댓재로 향한다

임도로 내려오니 바리게이트가 처져있고...

2009년 북진길에는 임도가 없어서 좌측 능선으로 걸었는데 그 이후 풍력발전기가 생기면서 임도가 생겼다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지니 큰재가 나온다

큰재(大峙:12:30)

삼척시 하장면 속암리에서  태백시 조탄동 귀네미골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대치재 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댓재까지 5km라나 남았다고 하는데 30여분간 헛짓거리 하느라 맘이 바빠진다

가장 연장자인 노바님!... 저 연세에 참으로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리기다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을 지나니...

이정표가 나오면서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댓재로 향한다

숲이 우거지긴 했으나 지맥길과는 달리 등로는 뚜렸하다

1,062m봉(12:43)

1,062m봉에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서니...

삼척시에서 설치한 듯한 예전에 없었던 백두대간 안내판이 보이고...

우측으로 꺽어서 가니 준경묘 갈림길이 나온다

준경묘 갈림길(12:50)

준경묘는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 성계의 5대조이며 목조의 아버지인 양무장군의 묘이다.

조선개국을 합리화한 용비어천가 첫장에 등장 하는(목조.익조 도조 환조  태조 태종)

중에서 목조 이안사는 전주에 살았다가 전주 산성별감과 기생을

사이에 두고 다투어 사이가 나빠 처가인 강원도 삼척으로 피해 왔다

 

목조 이안사는 부친이 죽자 이곳에서 장사 지냈고 모친이 죽자 동산리에 장사 지냈다

그후 별감이 다시 삼척 으로 부임 한다기에 함경도로 이주 해 여진에서 벼슬을 했다 한다

고종 광무 3년(1899)에 묘소를 수축하고 제각과 비각을 건축하였다.

 

이 일대는 울창한 송림으로 되어 있어 원시림의 경관을 구경할 수 있는 산자수려한 곳이다.

이 곳의 낙락장송인 황장목들은 경복궁 중수 때 자재로 쓰였다고 한다.

목조가 한 도승의 예언대로 백우금관으로 양친을 안장한 뒤, 5대에 이르러 조선을 창업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에서 4㎞ 떨어진 곳에 목조의 어머니 이씨의 묘인 영경묘(강원도 기념물 제43호)가 있다.

준경묘(濬慶墓:강원도 기념물 제43호)

 

준경묘에 얽힌 조선의 개국 설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 이안사가 전주를 떠나 삼척으로 왔는데,

삼척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 양무장군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묘 자리를 찾고 있던 중 산 속에서 한 도승이 동자승에게 하는 애기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이 곳에서 장사를 지내면 5대 안에 한 나라를 개국하는 그런 인물이 태어날 것이다.

그럴려면 반드시 개토제(開土祭)때 100마리 소를 제물로 바쳐야 하고,

금으로 만든 관을 사용해야 한다"

 

이에 목조는 궁리 끝에 100마리의 소(百牛)는 흰 소(白牛)로 대신하고,

금으로 만든 관(金棺)은 황금빛이나는 귀릿짚으로 대체했다.

그렇게 해서 예언대로 이성계가 태어나게 됐다는 이야기다.

백우(百牛)를 흰소(白牛)로 대신하여 천년 갈 조선이 5백년만 유지 됐다고도 하고,

준경묘 사방 5봉이 산 수명이 각각 1백년이라 조선왕조의 수명이 500년이였다고도 한다.

준경묘의 풍수지리 - 백우금관형(百牛金棺形)

100마리의 소를 잡아 피를 뿌리고,  금으로 관을 만들라는 도승의 말에 따라, 근처에서 흰색 소 즉, 白牛로 百마리

소를 대신하고,귀리의 짚이 황금빛이라 귀리짚을 금으로 만든 관으로 대신해서 안장했다는 전설로   

우리나라 최고의 묘자리라는 풍수지리 이론가들의 평이라고 한다.

좌청룡 우백호에 좌우로 수로가 있고 습지며 좌우 물길이 시야 끝에서 합쳐지고, 앞에는 낮은 산이 펼쳐 있고 최고의

우리나라 소나무(황장목) 숲이 넓게 펼쳐진, 명당 중의 명당 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고 한다. (사진.글 - 펌)

준경묘를 지나면서 내가 선두로 서서 죽기 살기로 걸어면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한다

1,159m봉(12:58)

 1,159m봉 삼각점((△ 삼척310 / 2005 재설)

어제 내린 비로 인해 습도가 높고 바람이 전혀없어 생각보다 산행이 상당히 힘이든다

이정표(13:05)

1,105m봉(13:13)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서는데 생각보다 고도차가 그리 크지는 않아 산행 속력을 낼 수 있다

무명봉(13:19)

산죽길을 따라서 완만한 능선으로 오르니 개념도상에 없는 무명봉이 나온다

무명봉(13:23)

다시 능선을 치고 오르는데 얼마나 달렸는지 땀이 물흐르듯 흐른다

이정표의 거리가 많이 틀린듯 하다

황장산(?:13:35)

삼각점이 있는 이곳이 분명히 황장산 정상인데 정상석과 표지판은 조금 더 가야 있다

황장상 정상 삼각점((△삼척440 / 2005복구)

준경묘 갈림길에서 이곳까지 내가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다보니 대장과 노바님보다 먼저 도착한다

이곳에서 물한모금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두 분이 도착하여 음료수 한 잔을 마시고 다시 길을 떠난다 

황장산(黃腸山:1,059m:13:40)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과 미로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황장목을 쓰기위해 왕실에서

일체의 벌목과 개간을 금하는봉산(封山)으로 정하면서 부터 황장산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왕실의 관곽(棺槨)재와 궁궐 건축에 쓰일 황장목(黃腸木)을 확보하기 위해 지정한

황장봉산(黃腸封山)이라는 보통명사가 ‘황장산’(黃腸山)으로 고유명사화한 것이다.

이곳 강원도 삼척의 黃腸山은 산림청 선정 100명산인 문경의 황장산과 同名異山인데,

이름의 유래가 옛날에 황장목이라는 질 좋은 소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점과 함께

현재에는 황장목은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점까지도 공통점이 있지만,

문경의 황장산이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릴 만큼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는 반면에

이곳 삼척의 황장산은 북쪽의 두타산과 남쪽의 덕항산이라는 두 곳의 100대 명산

사이에 낀 그저 평범하고 순하기 이를 데 없는 산봉우리라는 점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질좋은 소나무를 적송 또는 금강송이라 하는데 이들은 주로 강원도나

경북 북부지방에서 자라며 잔가지가 적고 곧게 자라서 중요한 목재로 활용하였다.

그런데 한때 이런 적송(赤松)이 외지로 반출되는 집산지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춘양역이었기에 춘양목이라는 별칭이 있다.

 

그런 적송이 오래되어 300년 이상 고목이 되면 속에 송진이 배어들어 누렇게 되므로

황장목(黃腸木)이라 하며  잘 썩지않아 적송중에서도 적송중에서도 최고로 질이좋은

소나무로 분류되었고 황장목이 생산되는 산을 황장산(黃腸山)이라 불렀다.

황장산 정상에는 표시석과 이정표 대간 안내도가 있는데

범여의 생각으론 조금전 삼각점 있는곳이 정상이 맞다

부지런히 산죽길을 따라서 내려가니 댓재가 나온다

댓재(810m:13:50)

두타산과 덕항산을 잇는 백두대간 마루금에 있는 댓재는 삼척시 미로면과 하장면을

연결하는 고개로 예로부터 삼척지방에서 하장,정선을 거쳐 서울로 가는 주요 고갯길이었다.

꼬불 꼬불 급경사의 15km에 이르는 도로를 차로 오르는데도 현기증이  날만큼

위험한 해발 810m의 고갯길이다. 대나무가 많다는 뜻에서 유래된 댓재는 일명

죽현(竹峴), 죽치령(竹峙련嶺)이라고도 한다. 오늘날은 4,5km 이르는 댓재 옛길이

복원되어 또다른 산행길의 멋을 더해준다.

1984년 10월 지금의 도로가 개통되기까지는 영동(강릉지방)과 영서(원주지방)를 넘나들던

옛 고갯길로서 보행자들의 수많은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다.

댓재 표지석 뒤에 있는 詩

정일남 시인은 삼척시 미로면 출신이라서 미로에서 하장으로 넘는 댓재의 시가 의미 있다.

댓재 정상의 모습

댓재개통 기념비

가장 늦게 도착하였는데도 선두에 도착하신 분들이 반갑게 맞아 주면서

션한 맥주를 건네는데 연거푸 2잔을 쿨하게 마시고 나니 정신이 번쩍든다

나는 이곳에서 정식 대간꾼도 아닌 왔다리 갔다리인데도 반겨주니 그저 고마울 뿐...

이곳에서 지난 구간에 들렸던 태백 시내로 향하는 버스에서 잠깐 사이에 깊은 잠에 빠진다

태백시내에 도착하여 지난 구간에 들렸던 목욕탕에서 깔끔하게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은 다음에

식당은 복권가게 사장인 친구가 소개해 준 황부자 닭갈비집에 들려서 거나하게 한잔을 하고 나오는데

친구인 복권장사 박사장이 오늘은 박카스가 아닌 비타500 3박스를 자진 상납(?)한다

내가 너무 갑질하는건 아닌지?...이 넘아 너무 아부 떨지마라

태백에서 시작되는 지맥길이 두위, 금대, 노목, 육백지맥 등 너한테 신세질 일이 너무 많은데

요런 잔챙이로 입 닦으려고... 암튼 잘 먹을께... 기쁜 맘으로 귀경길 버스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