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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평창(주왕)지맥(終)

평창(주왕)지맥 제3구간 - 모릿재에서 벽파령까지

by 범여(梵如) 2016. 8. 22.

 

멧돼지와 생존경쟁의 사투를 벌여야 했던 원시림같은 힘들었던 길

 

 

☞ 산행일시: 2016년 8월 21일

산행날씨: 약간 추운 날씨에 비...오후엔 퇴약볕에 맑은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22.5km + 어프로치 3.5km  / 11시간 15분소요

☞ 참석인원: 진권아우와 둘이서

☞ 산행코스: 모릿재-이동통신탑-970봉-980봉-암릉-잠두산-산죽능선-무명봉-신리3리 갈림길-암릉-백석산-1,358봉

                 1,360봉-책바위-영암사갈림길-1,335봉-1,279봉-1,351봉-발내동갈림길-1,243.8봉-1,192봉-지독한 잡목

                 장전리갈림길-1,230봉-갈림길-피늪재-임도삼거리-1,174봉-1,378봉-폐헬기장-주왕산-도치동갈림길-1,235봉

                 1,245봉-1,144.8봉-1,241봉-1,144.8봉-암릉-벽파령-임도차단기-몽골캠프장

 소 재 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대화면 / 정선군 정선읍 

2주전에 견두지맥길 갔다가 너무 고생을 한 탓에 이번주는 쉬고 싶었는데 범여의 몸 속에 꿈틀거리는

지맥길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질 않아 오늘도 베낭을 메고 동서울 터미널로 가서

진권 아우와  조우를 한 다음에 17:35분발 진부를 거쳐 강릉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오늘 구간의 산행지도(박종율 선생 자료인용)

17;35 동서울 터미널→진부행 버스표

집에서 동서울 버스터미널로 향하는데 더워도 너무 탓에 땀이 비오듯 흐른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진권 아우가 먼저 와있다... 조우를 하고 버스에 오르는데

버스가 너무 낡아서 얼마나 덜컥거리는지 금방이라도 도로에 퍼질것 같다

버스는 중부고속도로를 지나 영동고속도로에 접어드는데 생각보다 밀리지 않는다

진부공영 버스정류장(19:45)
해가 많이 짧아진 느낌이다... 오후 8시가 안되었는데 어둠이 깔려있다

진부에는 찜질방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여관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

버스에서 내려 먼저 숙소를 먼저 구해야 하기에 주위의 모텔을 둘러 보는데

마땅한 숙소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이유인즉 평창 동계 올림픽 때문에

도로를 건설하는 노무자들 때문에 숙소 구하기가 어렵단다

터미널 인근에 있는 모텔로 가서 가격을 물었더니만 성수기라서 규정 가격보다

5,000원을 더 달란다... 그런게 어딧냐고 하니... 싫으면 나가라는 투다

울며 겨자먹기로 5,000원을 더 주는데 진권아우가 약이 오르는지 카드로 결제를 한다

 

숙소에 베낭을 내려놓고 근처의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편의점에 생수를 사서

냉동고에 넣어놓고 내일 아침에 찾으러 오겠다고 하고 다시 여관으로 향한다

알프스 모텔(21;10~04;10)

여관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쉬는데 뭔 쿰쿰한 곰팡이 냄새인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지독하다... 샤워를 끝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도 오질않고 하여 박 인비선수의

골프 시합을 보다가 잠자리에 들었다가 03시 40분에 일어나 씻고 여관을 나온다 

어제 저녁에 식사를 부탁한 식당에서 이른 새벽에 육계장으로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빈 도시락에 맨밥 한그릇을 산 다음에 택시 승강장으로 향한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택시를 타고 모릿재로 향하는데 이곳은 약간의 寒氣를 느낄 정도로 춥다

택시가 모릿재 터널입구에서 내려주려 하기에 조금 더 올라가자고 하니까 아무 말씀없이

올라가 산양삼재배지 주택가옆 바리게이트 앞까지 올라온 바람에 10분정도 시간을 번다

모릿재(老毛峙:800m:05:20)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과 대화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정상에서 임도 사거리가 나오고

6.25 전사자 유해발굴지가 있는 고개 윗쪽에는 KT 기지국이 있다... 모릿재의 지명유래는

이 고개를 넘어 가려면 너무 지루하다하여 모로치라 하다가 모릿재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동여지도에는 老毛峙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산행을 시작하는데 아직까지 어둠이 가시지 않아 헤드렌턴을 켜고 들머리로 접어드는데

앞은 보이질 않고 숲은 우거져 초반부터 고역이다...막무가내로 치고 오르니 KT기지국이 나온다

어둠속에 만난 KT 평창 모릿재 이동통신 기지국

KT기지국을 지나 어둠속에서 코가 땅에 닿을만큼 급경사의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초반부터 힘은 부치고... 여명이 밝아오면서 대관령쪽에서 올라오는 해는 구름속에

갇혀 버리고 22분정도 빡세게 치고 오르니 이정표가 있는 970봉 정상에 오른다

970봉(05:42)

물한모금 마시고 백석산 방향으로 향한다

우측의 등로로 따라가는데 좌측 아랫쪽은 벌목지대이다

진부면 마평리 골짜기의 운해는 정말 환상적이다

그러나 날씨가 꾸무리해지는 걸로 봐서는 비가 한줄기 올 듯 싶다

잠깐 사이 雲海는 또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약간의 寒氣를 느낄만큼 춥다

송편버섯

흰노루오줌(꽃말:기약없는 사랑, 연정)

지명은 뿌리에서 노루오줌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불렀다는 설과 노루가

자주오는 물가에 자생한다고 해서 불렀다는 설이 있는데 대부분이

분홍색이나 이곳에는 귀하게 흰색 노루오줌이 보인다 

잠두산으로 오르는 등로는 잡풀로 인해 길은 보이질 않고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가는 참나물...잎이 빗살처럼 갈라지는게 특징이다

멧돼지의 잠자리

바로 앞에 가던 진권아우가 놀란 목소리로 소릴 지른다

행님아!..멧돼지다... 이 넘이 잠에 빠졌다가 내 베낭에서

흘러 나오는 라디오의 노랫소리에 깜짝 놀라 도망을 친 모양이다

참당귀꽃

조그만 봉우리에 올랐다가 다시 능선을 치고 오른다

급경사의 암릉구간을 치고 오르니... 잠두산이 나타난다

잠두산(蠶頭山:1,243m:06:40)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마평리와 대화면 신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의 지세가 근처의

백석산에서 바라보면 누에의 머리처럼 보인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으로  능애머리라고도 부른다

정상 아랫쪽에는 관절에 좋다는 마가목 열매가 벌써부터 익기 시작한다

잠두산 정상 삼각점(△445재설 / 77.6 건설부)

잠두산에서의 인증샷

등로에서 좌측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잠두산에서 물한모금 마시고 길을 나선다

잠두산에서 백석산으로 향하는 길은 산죽이 양탄자를 깔아논 느낌이다

무명봉(06:50)

무명봉에 오르니 주왕지맥을 시작했던 계방산과 오대산이 환상적으로 보인다

약간 우측으로 눈을 돌리니 황병산과 대관령, 고루포기산과 고랭지 채소밭이 보인다

그러더니 갑자기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무명봉을 지나면서 멧돼지들의 횡포(?)로 갑자기 등로가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등로를 찾는데 애를 먹는다 

잃어버린 등로

잡풀이 등로를 점령하는 바람에 산꾼 범여는 길을 찾아 헤맨다

신리3리 갈림길(07:10) 

분홍색 노루오줌

흰진범

흰진교라고도 하며 뿌리가 곧게 뻗고 약간 넓적하며 이리저리 엮어놓은 것 같다.

줄기는 비스듬히 올라가다가 위쪽에서 덩굴이 되며 잔털이 난다.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유사종인 진범과 비슷하지만 진범은 꽃 색깔이 연한 자주색인데 비해 흰진범의 꽃은 흰색이다.

또한 진범의 줄기는 곧게 또는 비스듬히 서지만 흰진범은 비스듬히 자라거나 덩굴로 뻗기도 한다.

관상용·약용으로도 이용되며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산제로 하여 사용한다.

이삭여뀌

가야 물봉선(꽃말: 나를 건드리지 마셔요)

다시 약간의 내리막을 내려서는데 또다시 새끼 멧돼지 2마리가 도망을 친다

우리도 바짝 긴장을 하면서 걷는데 진권아우가 허기가 지는 모양이다

둘이서 쥬스에다 빵 하나를 나눠 먹으면서 5분정도의 휴식을 취한다

이곳은 유난히 멧돼지들이 등로를 많이 파헤쳐 놨다

하지만 꾸미지 않은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널려있어 천상의 화원같은 느낌이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동자꽃은 수심(愁心)이 많아 보인다

암릉(07:30)

계속되는 잡목의 저항

저 가운데가 주왕지맥 등로인데 이걸 치고 나가려니 배로 힘이드는 느낌이다

병조희풀...뭇산꾼을 유혹한 요염한 보라색은 꽃은 지고 내년을 기약하며 이별은 준비한다 

행님은 힘이들어 미치겠구만... 진권아우는 앞에 가다 뒤돌아보면서 나를 보고 웃고 있다
잡목의 거센 저항을 받으면서 올라서니 넓은 헬기장이 있는 백석산 정상이 나타난다

백석산 정상의 헬기장에는 야생화 천국이다

백석산(白石山:1,365m:07:40)

평창군 진부면 화의리와 대화면 신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에 흰바위가

있어서 붙은 지명이라는데 흰바위는 찾을 길이 없고 헬기장에는 야생화 천국이다

정상 남쪽의 말랑치에서 서쪽으로 돌아가면 영암사라는 사찰이 있는데 100여년전

산삼을 캐기 위해 지은 산막이 영암사로 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지형은 동고서저(東高西低)가 일반적인데 이곳 백석산부터 가야할 주왕산까지는

역으로 서고동저(西高東低)의 지형으로 동쪽은 완만한 능선이고 서쪽은 벼랑이라는데 숲이

너무 우거진 여름철이라 그런지 확인할 길은 없다 

백석산 정상에서 바라본 잠두산의 모습

보는 이에 따라서 느낌이야 다르겠지만 마치 누에가 기어가는 모습이다

서북쪽으로 펼쳐지는 한강기맥 능선도 보이고...

산비장이(꽃말:추억)

산을 지키는 비장(조선시대에 감사를 돕던 벼슬)이라는 뜻으로 붙혀진 이름이며

곧고 높게 자라서 긴 꽃줄기 끝에 한송이씩 아름다운 두상화(頭狀花)가 달려있는

것이 산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보인다 

짚신나물의 전설

옛날에 한 처녀가 살고 있었다 부모도 없이 어여쁘게자라는 고운 꿈만 키우며 자랐답니다
짝지을 때가 되어서 이웃들이 여러 총각을 선보였지만 빙그레 웃으며 처녀는 한 마디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좋은 사람 생기겠지요" 하는말만 하고 이사람도 아니다

저사람도 아니다 하고는 딱지를 놓고는 혼자 살았습니다
시집 가라고 하면 오직 한다는 말이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좋은 사람 생기겠지요"

그러다 그러다 처녀는 혼자서 늙어 죽어 무덤에 묻게 되었는데

그 무덤가에 핀 꽃이 사람만 오면 묻어서 따라가더라는군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풀을 짚신나물이라고 하였답니다

야생화밭에 숨어있는 삼각점(△315재설)

빗물을 머금은 채 새색시처럼 수줍게 산꾼을 맞는 둥근이질풀

백석산 정상의 모습

미역줄기 숲을 헤치고 다시 지맥길을 이어간다

계속 내리는 비로인해 카메라 렌즈에 성애가 끼어 애를 먹는다

1,358봉(07:55)

좌측으로 진부면 화의리 마랑치골로 이어지는 등로가 보이는 곳에서 우측으로 간다

영암사 팻말이 나뭇잎에 가려져 있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등산화와 양말이 젖은 탓인지 발뒷굼치가 까져버려 쓰라리기 시작한다

1,360봉(08:00)

 영암사 팻말을 바라보면 치고 오르니 1,360봉이 나오나 아무것도 볼 게 없어 좌측으로 내려선다

가랑비이긴 하지만 우의를 쓸 정도는 아니라 계속해서 그냥 비를 맞고 간다

1,312봉(08:05)

이곳도 지대가 높은 탓인지 마가목 열매가 보이기 시작한다

1,312봉에서 바라본 평창군 대화면의 산그리메
대화면은 본래 교주 강릉도()에 속하여 태화면()이라 부르다가

조선 중기에 이르러 대화면이라 개칭하였고 1906년 강릉군으로부터 평창군으로 편입되었으며,1934년

방림·운교()·계촌() 등의 3개리를 분할하여 방림면을 신설함으로써 관할구역이 축소되었다.

1983년 신리() 일부가 평창군에 새로 설치되는 용평면에 편입되어 다시 축소되었다.
창강과 대화천의 합류점인 안미리() 일대에 비교적 규모가 큰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금당산(:1,173m)과 거문산(:1,175m) 동쪽 기슭에는 대규모의 산록완사면이 형성되어

농업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는데 찰옥수수와 옥수수엿이 특산물이고, 쌀은 안미리·대화리가 중심 산지이다.

돼지 사육, 홉 재배, 젖소 사육, 잎담배 재배, 양잠이 성하다.

대화리는 교통 중심지로 발달된 가촌()인데, 영동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차량 통행이 감소되어

그 기능이 점차 쇠퇴해 가고 있으며 안미리와 대화리의 석회암 지층에는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되어

광천선굴()이라는 석회암동굴이 있다 (두산백과 자료인용)

 1,312봉 정상에서

대화면은 평창군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대화는 조선시대 중기부터 대화현()이라고 해서

강릉부()에 속해 있었다. 대화면의 주된 산업은 예로부터 농업이었다.

농사도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주를 이루다 보니 옥수수, 마늘, 고추, 콩, 감자 등이 대표적인 산물이다.

대화면은 1975년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만해도 서울과 강릉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상업이 크게 번성하던 곳이다.

조선시대부터 영동지방에서 나는 산물들이 대화를 거쳐 원주와 여주로 이어졌고, 다시

수운()을 통해 이천을 거쳐 광주, 송파나루로 이어졌다. 대화에는 온갖 상인들이 거쳐 가는 곳이었고,

해방 무렵에는 장거리가 객주가로 붐볐다. 따라서 당시 대화면 주민들은 인구에 비해 다른지역보다

시장 경제가 일찍 발달해 경제적으로도 비교적 안정이 되어 있었다.

옛날에는 "서울 동대문 밖에서 대화장을 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대화장이 성시()를 이루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만 해도 대화장은 전국에서 손꼽힐 만큼 큰 장이었다. 『만기요람』 재용편 향시조()에 의하면

전국에서 가장 큰 15개 시장 가운데 강원도에서는 유일하게 대화장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내륙 산간지대에 위치한 대화장이 큰 시장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리적인 이점 때문이기도 하다.

책바위(08:13)

바위떡풀(꽃말:변하지 않는 우정)

고산지대의 습한 바위에 붙어 매우 드물게 자라는 바위떡풀은 범의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서 줄기는 없으며 바위에 붙은 뿌리에서 둥근

삼장형의 잎이 동그랗게 톱니처럼 보인다

 

꽃은 7~8월 한 여름에 길게 올라온 줄기끝에 여러송이로 꽃을 피우며

대부분이 흰색이고 붉은색이 감도는 흰색도 가끔은 보인다

꽃잎은 5개이며 위의 3개는 밑의 2개보다 작기 때문에 ‘큰 대(大)’로 보여

대문자초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책바위를 우회하여 내려서니... 

다시 등로가 보이질 않을 정도로 잡풀은 무성하다고 특히 둥근이질풀이 많이 보인다

좌측으로는 전나무 조림지가 보이고... 

폐헬기장처럼 보이는 넓은 공터를 지나니 영암사 갈림길이 나온다 

영암사 갈림길(08:18)   

다시 오르막길이지만 그래도 이곳은 걸을만하다  

1,335봉(08:30) 

배젖버섯

암릉구간을 우회하여...

전나무숲  

또 다시 지독한 잡풀이 길을 막는다... 살짝 우회한다 

동자꽃  

곰취가 지천이다...에공 아까운거... 

고비나물 주위에도 온통 곰취밭 

 투구꽃

다시 길은 험해지고...또 다시 멧돼지를 만나면서 가슴을 쓸어 내린다 

앞서가던 진권아우가 나보고 앞서 가란다...행님은 멧돼지한테 받히면 괜찮냐 하니까

자기는 애가 셋이라나... 뭐라나... 나쁜 X... 그래 내가 먼저가마... 행님은 멧돼지한테 받혀도 괜찮제

엄청나게 큰 참나무 아래를 지나 다시 오르막은 시작되고...

쥐손이과에 속하는 둥근이질풀은 왕이질풀, 참쥐손이풀, 조선노관초,둥근쥐손이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며 꽃의 크기가 약 2cm이며 6~7월에 줄기 윗쪽으로 
분홍색의 꽃이 하늘을 보면서 핀다

잡풀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오르막을 치고 오르는데... 정말 미치겠다

쓰러진 나무를 지나니... 

1,279봉(09:00)

갇혀버린 등로...어디로 가란 말이냐?

셋방살이하는 일엽초

또다시 멧돼지와의 조우

이 넘은 상당히 큰 넘이다... 이곳에서 자다가 음악 소리에 놀라 소리를 지르면서 총알같이 도망간다

곳곳에 파헤쳐진 멧돼지의 횡포로 인해 중간중간 등로를 잊어버린다

뒤돌아 본 1,279봉

저렇게 심한 잡풀을 헤치고 내려온 범여도 독하긴 독한가보다

길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왜그리도 반가운지...

이끼살이버섯같기도 하고...버섯공부는 정말 힘들어...

급경사의 오름길에 오르는데 이곳은 아예 곰취가 밭을 이루고 있다

비는 그쳤고 바람 한 점이 없다...차라리 비를 실컷 맞으면 걷고 싶다

참취꽃... 까실쑥부쟁이와 비슷해 약간은 혼란스럽다 

봉우리 정상을 오르는 곳에 좌측으로는 산비장이가 지천인 천상의 화원이 펼쳐진다

능선을 따라가면 진부면 막동리 상막동 마을로 내려가는 등로인듯 하다

1,351봉(09:40)

정상에는 2등 삼각점이 있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있으나 잡목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1,351봉 삼각점(△ 도암26 / 2005 복구)

잡목을 헤치며 우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간다

지독한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갈참나무 군락지 가운데로 비교적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주름목이버섯인가?...확신이 안선다

연리목(連理木)

맞닿은 두 나무의 세포가 서로 합쳐 하나가 될 때를 연리(連理)라고 부른다.

연리는 두 몸이 한 몸이 된다 하여 흔히 남녀간의 사랑에 비유되며 나아가서 부모와 자식,

가족 사이, 친구 사이의 사랑까지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하나로 이어진 두 나무로 형상화된다.

바로 '사랑나무'다. 나뭇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連理枝),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連理木)이다

등로 옆 나무에 펫트병이 꽂혀있다...약초꾼들의 영역 표시인가?

발내동 갈림길(10:00)

우측으로 뚜렸한 임도가 나오는데 대화리 발내동으로 가는 길이다

발내동 갈림길에서 직진을 하니 등로에는 미역줄기가 엄청나게 괴롭힌다

등로 가운데 치고 나가기엔 역부족이다... 좌측으로 우회하여 지맥길을 이어간다

제법 넓은 공터가 조성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보인다... 화전민의 삶터였나?

산비장이

짚신나물

짚신나물은 이렇게 지혈작용을 비롯해 짚신나물은 지혈·소염·항균·진통·항암·혈당강하·

조혈작용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특히 항암작용이 강한 것으로 확인되어 TV 드라마

대장금 이후 한동안 인기가 치솟았던 약초로 짚신나물은 산길 옆에 널리 퍼져 자라는 풀이다.

한자로는 새싹이 나올 때의 모양이 용의 이빨과 같다고 하여 용아초(龍牙草)라고 하며,

약명으로는 선학초(仙鶴草)라고 한다

 

짚신나물은 거의 독성이 없으면서도 현저한 항암효과가 있는 약초이다.
북한의 <동의학사전>, <약초의 성분과 이용>이란 문헌에는 간암·위암·식도암·

자궁암·방광암·대장암에 쓰고 있으며, 일본에서 발행된 <암을 자른다고 낫는가>란

 책에는 짚신나물에 항암치료에 탁월한 특수 성분이 함유돼 짚신나물뿌리에서

뽑아낸 11가지의 성분이 대부분 항암활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있다고 밝히고 있다.
예로부터 종기를 다스리는 약초로 알려져 왔다.

1,243.8봉(10:30)

1,243.8봉(△정선 401 / 2004 재설)

잠깐동안 등로는 유순해지고...

화전민의 집터인지...헬기장인지, 잡풀이 너무 많이 자라서 알 길이 없다

광대버섯아재비

1,192봉(10:50)

키 작은 잡풀에다 벌목한 나무들이 방치되어 있는 등로인데 우측으로는 하일산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임도가 보이나 좌측으로 이어지는 지맥길은 잘 보이지도 않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은 전혀 없다... 지도를 확인하면서 좌측 내리막길로 향한다

희미한 등로로 찾아 가는데 길이 보이질 않아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다

둥근이질풀(꽃말:새색시)

오늘 등로에는 둥근 이질풀이 대세를 이룰 정도로 온 천지가 둥근이질풀이다

정면으로 돌파하기엔 잡목의 저항이 심해 약간 좌측으로 향하는데...

이 대장의 시그널이 제대로 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보기는 쉬워 보이나 땅바닥엔 간벌하여 마구 버려진 나무 때문에 몇번을 넘어진다

얼굴이 할퀴고 바지가 찢어지고 한참동안 수난을 당한 뒤에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에도 숲이 우거지기는 마찬가지다

장전리(長田里) 갈림길(11:05)

진부면 장전리는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를 이루며 거주민은 불과 몇십 가옥에 불과하다.

마을 북쪽으로 작은 하천이 흐르는데 가리왕산과 중왕산에서 흘러내리 하천이 계곡을 이루며

약 3km를 내려와 오대천과 합류하고 이곳을 장전계곡이라 하며 여름철에 찾는 사람들이 많다.

계곡 근처에 약간의 평야가 발달해있지만 미미하다. 자연마을로 대궐터, 상장전, 하장전, 쑥밭모둠, 탑자리 등이 있다.

대궐터는 맥국의 가리왕이 예국의 침입을 받아 이곳에 대궐을 짓고 머물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상장전은 장전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고 하장전은 장전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쑥밭모둠은 움집을 짓고 산삼을 캤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탑자리는 돌로 쌓은 탑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장전리에서 정선군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의 목을 닮았다 하여 말목재, 마항치라 부른다.

조선시대에 산삼채취를 금지했던 삼산봉표가 이곳에 있다.

임도로 걸어가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임도에서 우측 능선으로 오르면 1,230봉이 있는데 올라가는 길도 없고

올라가서 2분이내 다시 임도로 내려와야 하기에 그냥 임도길로 걸어간다

배초향(꽃말:향수)

우리나라 토종 허브식물로 냄새를 물리친다고 해서 ‘물리칠 배(排) 초(草) 향(香)’을 써서

배초향이라 불렀다고 하며 경상도나 전라도 지방에서는 방아잎, 또는 방아풀이라고 하여

텃밭에 심어 향신료로 이용하기도 하며 매운탕이나 추어탕 등 생선요리 때 넣으면 비린내를

없애주는 역할도 한다

한방에서는 곽향(藿香)이라 하여 소화불량, 설사등 소화기 계통의 약재로도 쓰이며

잎을 그늘에 말려 차(茶)로도 마실 수가 있다

개망초(꽃말:화해)

왜풀 · 넓은잎잔꽃풀 · 개망풀이라고도 불리는 국화과의 두해살이풀 개망초는 원산지가 북아메리카로

전세계 온대지방에 널리 분포하며, 우리나라 전국 각지의 길가나 빈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꽃색깔은 흰색과 연분홍색이 있으며 줄기에 거친 털이 있고 가지가 많이 갈라지는 특징이 있다.

꽃 이름을 모르는 아이들이 계란처럼 생겼다고 하여 흔히 '계란꽃'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개망초'는 역사적으로 1910년대 일제치하에 들어가면서 우리 나라에 유입되어 엄청난

번식력으로 들녘에 퍼져 나갔고 당시 사람들은 나라를 잃은 후, 여기저기 사방에서 피어나는

처음 보는 꽃을 보고 나라를 망하게 한 풀이라고 여겨 '망국초'라고 불렀으며, 본이름 앞에

'무엇 보다 못하다'는 '개' 자를 붙여 망할 놈의 '개망초'가 되었다고 한다.

개망초는 또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미국으로 끌려와 오랫동안 비참한 노예생활로 고향을 잊지

못하는 아프리카 노예들의 기구한 운명을 상징하는 흑인들의 꽃으로도 유명하다.

 

이 꽃이 망초(亡草)라고 불려진 이유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가 한일합방

무렵이었는데 나라가 망할 때 들어와서 피는 꽃이라 해서 붙혀진 이름이란다

(참고 : 네이버 지식백과)

갈림길(11:20)

잡풀이 무성한 방화선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전나무숲으로 들어간다

간벌후 마구 버려져 있는 등로를 걷는게 너무 힘이든다

가지치기한 전나무 사이를 곡예하듯 걷는다

갈색느타리 버섯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온다...평창군 관계들은 뭣들하는 짓거리인지...

계속되는 왕짜증

전나무숲을 힘들게 지나오니 넓은 공터와 임도가 보이는 피늪재로 내려선다

피늪재(1,034m:11:40)

개쑥부쟁이

 기름나물인가...아리까리하다

벌개미취(꽃말:너를 잊지 않으리,  숨겨진 사랑)

국화과에 참취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라 한번 심어놓으면 해면마다 꽃이 피며

한자로 벌개미취를 자원(紫苑) 이라고 하며 벌판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다하여

벌개미취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며 봄에 어린순은 나물로 먹거나 국을 끓여 먹는다.
뿌리 부분은 대장균 콜레라균 등의 항균작용을 한다고 한다

피늪재의 공터에는 평창국유림 관리소에서 설치한 가리왕산 대단위 조림지 표지판과 망가진

이동식 화장실이 있고 공터에는 금마타리, 참취꽃, 쑥부쟁이를 비롯한 야생화 천국이다 

임도를 따라서 걸어간다

임도삼거리(11:45)

이정표(← 모릿재 46.9km ↖ 마항치 6.9km  ↗ 하안미리 7.8km 이정표가 서 있다

좌측의 이정표에 표기된 마항치(馬項峙)는 말의 목덜미처럼 생긴 고개로 가리왕산과

주왕산(중왕산) 사이에 있는 고개인데 예부터 산삼의 주산지로 널리 알려져 왔는데,

얼마 전엔 조선시대에 세운 산삼봉표석(山蔘封標石,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13호)이

마항치(말목치)에 고개 정상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산삼봉표석은 조선시대 산삼 주산지였던 가리왕산 일대에 일반인들이

채삼을 금지하는 구역으로 표시한 표석이라고 한다

임도 삼거리에 서 있는 표지판

임도 삼거리에서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있는 곳으로 치고 오르는데 길은 전혀없고...

미역줄기 나무와 산딸기 등 온갖 잡목이 태클을 거는 바람에 갑자기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더 이상하기도 전진하기가 어려워 작전상 후퇴를 하고 다시 임도를 내려온다

점심식사(11:55~12:10)

다시 임도로 내려오니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고 발뒷굼치가 쓰라려 오기 시작한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 참에 휴식을 취할 겸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식사라 해봐야 집에서 가져온 밑반찬 하나와 풋고추 3개... 새벽에 식당에 산 맨밥에

물 말아서 후루룩 마시듯 간편하게 식사를 끝낸다...진권아우는 김밥 한줄로 때우고...

다시 전투대오(?)를 갖추고 얼굴을 할키면서 치고 오르니 임도처럼 보이는 희미한 등로가 나온다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참당귀꽃술

이곳에는 참당귀를 비롯해 곰취, 참취 등 산나물과 약초들이 지천으로 널려있

희미하고 넓은 임도에는 어디가 임도이고 어디가 숲인지 구분이 안되는 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져야 주왕지맥길인데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길이 아예없는 구간을 치고 오르니 반가운 시그널이 보이건만 등로는 아예없다

비비추

꽃이지고 씨방만 보이는데... 세상사가 다 그런 모양이다

조금을 더 치고 오르니 비교적 뚜려한 등로가 나오고 좌측 능선으로 향한다

1,174봉(12:35)

정상에는 숲이 우거져 아무것도 안보인다... 삼각점만 외로이 정상을 지키고 있고...

1,174봉 삼각점(△정선403 / 2004재설)

정상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주왕산으로 오른다

주왕지맥의 주봉으로 오르는 길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계속되는 된비알

그래도 간간이 보이는 선답자의 시그널 때문에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다

작년에 피었던 삽주꽃... 아직도 사바세계의 뭔 미련이 남아 있는지...

1,378봉(13:10)

지금부터 슬슬 체력의 저하가 시작된다...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5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폐헬기장처럼 보이는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잡풀이 우거져 뭐가뭔지 구분이 안된다

꼬부라진 나무를 지나고...

또 멧돼지와 조우...  이젠 겁도 안난다... 먼저 그 넘이 도망을 가니까

폐헬기장(13:20)

안부(13:28)

드디어 주왕산 정상으로 오르는데 주위에 빙둘러 미역줄기 나무가 점령하고 있어

접근하기가 힘이 든다... 정면으로 돌파하여 정상에 오르니 맑은 날씨에 파란 하늘이

가을을 연상케하지만 이곳도 덥기는 마찬가지이다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고 충북 986 산악회에서 설치한 주왕산 팻말이 있다

주왕산 정상의 헬기장

주왕지맥의 주봉 치고는 한없이 초라하다.

날씨는 청명하나... 나무에 가려 주의의 멋진 선경을 감상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주왕산(住王山:1381m:13:40)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과 대화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중왕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중왕산이라는 이름의 근거나 유래는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대동여지도에 주왕산(住王山)으로 표기되었으나 일제시대 이후

일본식 표기인 日本을 뜻하는 ‘日’변을 ‘王’字에 붙여 ‘旺’字로 바꾸고,

‘住’字를 ‘中’으로 바꿔 본래의 음이나 뜻이 변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住王山, 中旺山

지명이 종전의 중왕산(中旺山)에서 2003.3.8. 주왕산(住王山)으로 변경고시 되었다.

이는 당시 모 환경단체에서 거국적(?)으로 벌린 “일제에 빼앗긴 우리 산이름 되찾기” 운동의 결과다.

인왕산, 발왕산을 비롯하여 바로 옆에 있는 가리왕산 역시 마찬가지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명상세보기)

행정구역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장전리 / 대화면 하안미리

지명종류

고시일자

2003-03-08

고시지명

주왕산

한 자

住王山

유래

대동여지도에 ‘住王山’으로 표기되었으나, 일제 때 ‘王’자가 일본식 ‘旺’자로 변하고 ‘住’자도 中‘으로 바뀐 것을 원래의 지명으로 환원함

인왕산 지명변경 이후 발왕산, 중왕산, 가리왕산의 旺자도 일제잔재란 이유로 發王山, 住王山,

加里王山이 되었다(2002년, 2003년3월). 아직 旺자가 붙어있는 산은 金旺山, 火旺山, 烈旺山이다.

 

 

일제시대에 발행된 지도(大正4년=1915, 정선)를 보면 中旺山(1376.1)로

표기가 되어 있고, 대동여지도에는 住王山이다.

 인왕산과 달리 그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주장에 딱 들어맞는다.

(인왕산은 거꾸로 일제 지형도에는 仁王山이고 후에 우리정부가 발행한 지형도에 仁旺山이다)

대동여지도를 자세히 짚어보면 현재의 주왕지맥. 즉, 평창강과 남한강의

합수점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서 주왕산은 옆으로 비껴나 있다.

대동여지도의 주왕산이 있는 산줄기는 합수점으로 가는 주맥의 동쪽 건너편 산줄기인 것이다.

물론 대동여지도를 현재의 지형도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는게 사실이나,

어디에서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주장에다 비슷한 모든걸 끌어 맞춘다.

 

 

그 주장이 “분명히 잘못된” 주장이 아닐 경우, 그 목소리는 그대로 힘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일제잔재”를 털어 낸다는데 누가 감히 반대할 것인가.

그렇더라도 개정의 근거로 대동여지도를 내세웠으면, 바로 옆의 가리왕산은

 “가리산(加里山)”이 되어야 하는것인데 이는 또 그냥 넘어갔다.

오로지 그들의 타겟트는 “일본왕 = 旺”이었다.

 

“旺 = 日+王” 일본의 왕을 뜻한다는 논리. 참으로 어리석고 무지한 해석이다.

 

 어느 백성이 자기의 왕을 “왕”이라 칭하는가.

우리 조선사람들이 우리의 임금을 “조선왕”이라 불렀는가

. “일본왕”이란 우리 조선사람들이나 중국에서 일본의 왕을 비하해 부르는 호칭이다.

그들의 천황을 그들 스스로 “일본왕”이라 칭할 수 있다고 보는가. 구족을 멸하고도 남을 일이다.

 

 

어찌되었든,

 

일제가 그랬는지 아닌지는 물려두고라도, 그렇게 어렵사리 찾은 민족정기가 어찌하여 그때뿐 인지가 궁금하다.

지리정보원의 고시변경만 그러할 뿐, 오늘현재 강원도나 평창군의 어디를 찾아봐도 중왕산은 있는데 주왕산은 없다.

현지 정상에도 중왕산으로 적혀있던 양철판에 중자의 받침 ‘ㅇ' 을 지운 낙서판 같은 정상표지판이 바닥에 나뒹굴 뿐이다.

 

행정절차가 마무리 되었다면 의당 제대로 된 정상석 하나 놓고 변경이 된 안내문도 걸고,

군이나 도의 관련자료들도 정비를 해야 모든 백성이 그런줄로 알 것 아닌가.

 

법절차 완료하고 메스컴에 한건 올린것으로 그들의 성과는 달성되었음인지 그걸로 끝이다.

애초 시작부터 제대로 된 고증도 없이 벌린 일이라 더 이상의 딴소리 나오기 전에 얼른

마무리 짓고 말았는지도 모를 일이다만, 어쨌거나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국가에서

고시를 했으니 "주왕산"으로 가기는 한다마는 씁쓰레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조은산님의 블로그 자료인용

 

주왕산에서 바라본 고랭지 채소밭...백두대간 안반데기가 아닌지 조금은 헷갈린다

주왕산 정상에서는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충북 986 산악회에서 걸어둔 표지판쪽으로는 시그널이 많이 걸려있고

뚜렸한 등로가 나 있는데 이곳으로 가면 가리왕산으로 가는 등로이다

벽파령으로 향하는 주왕지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에는 시그널도

안 보이고 길도 보이질 않아 독도에 아주 신경써야 할 구간이다

내리막길에 내려서니 지나온 구간과는 달리 비교적 등로가 뚜렸하고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인다

공터를 지나 내려서니...

도치동 갈림길(14:00)

직진의 지맥길은 등로가 잘 보이질 않고 우측 대화면 하안미리 도치동 방향은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이는데 우린 벽파령까지 가야하기에 계속 직진한다

1,235봉(14:20)

중간중간 암릉구간을 자주 만나는데 갑자기 내리막길에 나무에 걸리면서 앞으로 꼭 고꾸라진다

앞 가슴이 암릉에 부딪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릴 정도로 통증이 심한데 뒤에서

따라오는 진권아우가 ‘산꾼이 챙피하게 넘어지기는...약을 올린다’... 한 대 쥐어박어 말어...

고비나물

계속되는 암릉구간

1,245봉(14:45)

암봉위에 오르니 모든곳이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암봉에서 바라본 평창군 대화면 하안미리 전경

다음 구간에 가야할 청옥산의 모습

1,241봉(15;10)

자꾸만 다리가 무거워진다... 조금전에 부딪힌 곳에 통증이 심해진다

내가 통증을 호소하니 진권아우가 119를 부르자고 한다

근데 나중에 알고보니 나를 걱정하는게 아니라 자기가 차를 타고 편하게 오고 싶어 그랬단다...이런 고얀...

계속되는 암릉구간

1,144.8봉(15:30)

정상을 오르지 않고 좌측 옆사면길로 내려섰다

집에와서 자료를 보니 정상에는 삼각점(정선 404 / 2004 재설)이

있었는데 무심코 지나왔으니 후회 스럽다

암릉(15:40)

암릉구간을 지나니 무릎의 통증이 너무 심하다... 휴식을 겸하면서 초코렛 하나로 허기를 달랜다

벽파령(碧波嶺:993m:16:00)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과 대화면 정선군 북면에 우치한 고개로 산이 높아서 산상에서 주위를 바라보면 크고

작은 산들이 중중첩첩하여 마치 푸른 파도와 같다는 뜻으로 벽파령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대화면 하안미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팔도지도」에는 벽파산으로

「대동여지도」에는 벽파령으로나오며,「동여도」, 「팔도분도」에는 벽파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전에 평창과 정선의 상거래가 활발해 많은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개 였는데 지금이 아무런

표식도 없고 돌무더기 하나만 있는데 별팻재라 부르기도 했단다

 

별팻재는 임진왜란때 왜군이 이곳에서 전멸된데서 생겨난 지명이라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그래서 벼슬하는 사람이 이 고개를 패한다는 이야기도 전하며 수통매기재라고도 부른다

이곳에는 청쟁이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 가토요키요마사(加藤清正) 휘하의

부대가 이곳에 진을 쳤던 곳이라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벽파령에서 맥산행을 종료하고 접속구간으로 내려서는데 대분분의 선답자들이 이곳으로 내려갔는지 띠지들이

많이 보이고 S형태의 임도를 따라서 내려가는데 또 다시 멧돼지2마리가 숲속으로 도망을 간다...

급경의 내리막길에서는 무릎이 더 아프다

노란띠 끈적버섯

임도 차단기(16:20)

임도를 따라서 하안미리 방향으로 향한다

포장도로... 산행이 끝났다는 생각으로 긴장이 풀리니 무릎 통증은 더 심해지고...

 가야물봉선

물봉선은 백색,빨강, 노랑색 등 2종류가 있는데 흰색 물봉선을 가야 물봉선라고 부르는데

가야물봉선보다 꽃이 작고 색은 더 짙고, 꽃자루에는 갈색털이 더 많아 보이며 한국 특산종이다

몽골 캠프촌 입구(16:35)

몽골 캠프촌을 지나니 벌목 작업을 하고 내려오는 트럭 한대를 만나는데

무조건 차를 가로막고 지금 다리를 다쳐서 걷기가 힘들다고 하니

처음에는 짐이 많아서 태워주기 곤란하다고 하더니만 안쓰러워 보였던지

타라고 한다... 베낭은 적재함에 싣고 무조건 올라타서 버스 타는데 까지

태워 달라고 하니 어차피 대화면소재지까지 간다고 하면서 버스정류장까지 태워준다

대화면 버스 정류장(17:00)

트럭을  태워준 고마운 분에게 인사를 하고 터미널로 가서 서울가는 버스표를 달라고 하니

서울가는 막차가 5분전에 출발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장평으로 향한다

장평버스 정류장(17:30)

장평터미널로 와서 근처에 있는 목욕탕에 들려 깔끔하게 목욕을 한 다음 옷을 갈아입고

저녁을 먹으려니 시간이 15분 밖에 여유가 없어 저녁을 포기하고 18시 08분 버스에 오른다

저녁도 먹지 못하고 버스에 오르니 배에 꼬르륵 소리가 난다

문막 휴게소에 들려서 오뎅국물로 허기를 달래고 잠에 빠졌는데 덜컥거리는

버스 소음에 잠을 깨니 곤지암 부근이다...밤 9시가 넘어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한다

멍으로 얼룩진 범여의 몸뚱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