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인원: 안내 산악회 따라서
☞산행코스: 남설악탐방지원센터(오색약수)-오색제1쉼터-전망대-설악폭포-대청봉-중청대피소-한계령 갈림길올 겨울엔 유난히 눈이 오질않아 深雪 산행을 하지 못해 안달이 났다
설악산 지도
남설악탐방지원센터 오색분소(09:50)
서울에서 07시 20분경에 출발하여 아침은 버스에서 김밥으로 해결하고 쉼없이 버스는 달려
오색약수 입구에 도착하니 09시 50분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이곳은 양지라 그런지 눈은 전혀없다
그러나 서울과는 달리 강원도라 그런지 날씨는 꽤나 쌀쌀한데다 바람마저 세차게 불어온다
쾌청하고 맑은 날씨라 대청봉 정상에서 멋진 설경을 꿈꾸면서 산행을 시작하는데 오늘 리딩을 하는
대장님... 날씨하나는 끝내주게 간택을 잘한다... 공직에 계시는 분이라는데 퇴직하여 탑골공원 앞에
돗자리만 깔면 생계는 걱정이 없을듯 싶다.
산행을 시작하다(10:05)
오색에서 대청봉으로 시작하는 이 코스...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구간이다
설악산 국립공원, 어디인디 안 그러랴마는 유난히도 돌이 많이 깔려있는 곳이다
이정표(10:25)
쾌청한 날씨이지만 역시 강원도라 그런지 아주 차가운 날씨지만 공기하는 정말 상큼하다
나무는 겨울에 제 모습을 더울 선명하게 나타낸다
위 아래 가지는 서로의 길이를 조절하여 바람의 흔들림에 부딪히지
않고 옆 나무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비탈진 경사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기대고, 기대주며 서로를 잡아주고 의지하며
넘어지지 않도록 서로의 가지를 균형있게 길고 짧게 또는 가늘게 굵게 자신을 지킨다
근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은 뭣인가?
매주말 반복되는 한쪽은 촛불시위, 그 반대편 태극기...
서로의 위함이 아닌 반대를 위한 반대... 그리고 또 반대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의지와 배려가 아닌 서로를 쓰러트리려하는 추악함.
시대적으로 구 한말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하고, IMF이후 가장
어렵다는 이 난국에 지도자란 분들은 국가의 안위와 민초들의 민생엔
眼中에도 없고 오직 자기들의 권력욕만 앞세우는... 정말 역겹기만 하다
오색 제1쉼터(10:40)
오색제1쉼터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나무가지 사이로 바라보는 점봉산의 설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백두대간을 남.북 왕복으로 걸어봤지만 저 곳은 늘 단속구간이 어둠속에만 걸었기에 늘 아쉬움이
남는 곳이었기에 조금은 위안이 되는듯한 느낌이다
10여년만에 걸어본 이곳... 생각보단 길이 좋다... 눈이 없다보니 산행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서서히 설악 능선이 보이기 시작하니...첫사랑의 설렘처럼 벅찬 감동이 다가온다
데크목 쉼터를 지나면서 잔설이 보이기 시작하나 예상보다 그리 눈이 많지는 않다
계속되는 오르막... 조금은 지루하고...
사진 몇컷 찍는 잠시동안 맥산꾼들도 아닌 일반 등산객들이 산행 속도를 높인다
설악폭포 다리(11:25)
친구야!
네가 사는 곳에도 눈이 내리니
산위에 바다위에 장독대 위에
하얗게 내려 쌓이는 눈만큼이나
너를 향한 그리움이
눈사람 되어 오는 날
눈처럼 부드러운 네 목소리가
조용히 내리는 것만 같아
눈처럼 깨끗한 네 마음이
하얀 눈송이로 날리는 것만 같아
나는 자꾸만 네 이름을 불러본다
이해인 수녀님의 겨울편지
매주 오르는 산이지만 올때마다 늘 설레는 감정은 나만의 생각인가...
대청봉을 500m정도 남겨놓은 지점부터는 등산화가 묻힐 정도의 눈이 쌓여 있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바람은 더세지기 시작하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대청봉의 나무들
道를 어기면 자기를 따르게 되고
道를 따르면 자기를 버리게 된다
이 뜻을 모르고 마음대로 行하면
그는 애욕의 구렁에 떨어지리라
법구경 중에서
자기를 따른다는 것은 욕망에 충실하다는 말과 같다
도를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버리지 않으면 따를 수 없다
자기를 따르면 욕망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며
도를 따르면 부처의 자리에 이르는 것이다
대청봉 100m 전방... 아직까지 대청봉의 강풍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늘 맘에 안드는 표지판
온 산을 휘집고 다니는 뫳돼지 쉬끼들한테는 찍소리도 못하는 국공파들이
불과 50cm 정도의 좁은 등로를 다니는 산꾼들에겐 왜이리도 甲질인지?
화채능선으로 이어지는 곳에 국공파 단속초소가 있다
언젠가 꼭 한번 가보려고 째려 보는중...
대청봉(大靑峰:1,708m12:55)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과 양양군 서면, 그리고 인제군 북면에 걸쳐있는 봉우리로 상청봉(上靑峰),
또는 청봉(靑峰)이라고도 하는 설악산(雪嶽山)의 주봉이다.
설악산의 가장 높은 최고봉으로 예전에는 청봉(靑峰)을 봉정(鳳頂)이라 했는데 청봉은 창산(昌山)
성해응(成海應)이 지은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봉우리가 푸르게
보인다는 데에서 유래 되었다고도 한다.
공룡릉, 화채릉, 서북릉 등 설악산의 주요 능선의 출발점으로 내설악·외설악의 분기점이 되며,
천불동계곡,가야동계곡 등 설악산에 있는 대부분의 계곡이 이곳에서 발원한다. 인근에 중청봉·소청봉·끝청이 있다.
정상은 일출과 낙조로 유명하며, 기상 변화가 심하고 강한 바람과 낮은 온도 때문에 눈잣나무
군락이 융단처럼 낮게 자라 국립공원 전체와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늦가을부터 늦봄까지 눈으로 덮여있고 6,7월이면 녹음이 어우러진다.
어렵게 인증샷 하나를 건진다
대청봉 정상에서 바라본 천불동 계곡과 화채능선
화채(華彩)란 꽃처럼 고운 빛깔을 수놓은 능선을 일컬음이며 화채능선(華彩綾線)
화채릉은 일명 동북(東北)능선이라고도 하며 자연휴식년제로 오랫동안 등산코스를 개방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보존상태가 뛰어나고 곳곳에 협곡과 절벽으로 인해 일반 등산객들이 개별적으로 산행하기는 위험하다.
설악의 멋진 풍경사진등은 대부분 화채능선에 찍은 사진들이 많은데
화채능선을 찾는 사람은 산꾼보다는 사진작가들이 더 많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만큼
조망이 빼어날 뿐만아니라, 화채능선은 항상 출입이 통제돼 왔던 설악의 성역과도 같은 곳이다.
설악 매니아들 중에서도 화채능선 한번 가보는게 꿈이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설악의 오른쪽 날개, 화채능선 풍수지리상으로는 설악의 산세는 ‘닭이 알을 품고 있는 산세’를
지녔다고 하는데 대청봉이 닭의 머리이자 부리요, 서북능선이 왼쪽 날개, 화채능선이 오른쪽 날개,
그리고 공룡능선이 닭의 몸통이 되는 셈이고, 용아장성이 시작되는 봉정암은 설악의 심장이자 알이다.
풍수지리에 의한 설악의 형상을 보면 화채능선은 닭의 오른쪽 날개이다.
닭의 부리로 쪼아 먹을 수 있는 사정거리에 해당하는 오른쪽 날개 겨드랑이 밑이 죽음의 계곡이다.
그 누가 이곳을 죽음의 계곡이라 명하였는가....
죽음의 계곡은 대청봉에서 희운각으로 곧바로 내려오는 능선의 바로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자주 눈사태가 일어나는 곳으로 이 계곡에서는 설상훈련과 빙폭 훈련을 할 수가 있어서 히말라야
8천 미터급 등정을 위한 해외원정대들이 전지훈련차 많이 찾는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종종 등반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1969년에는 한국산악회원 열 명이 죽음의 계곡에서 해외원정을 위한 훈련을 하다가 눈사태를 만나 목숨을 잃었다.
죽음의 계곡 루트는 1956년 8월 한국산악회원 전감(田堪)씨가 최초로 개척한 이래 아직 뚜렷한 등반로는 없다.
죽음의 계곡은 바로 닭의 목에 해당한다.
대청봉에서 바라본 공룡능선
대청봉에 올라서니 바람이 초속 30여m 정도는 되는갑다
사진 몇컷을 찍는데 몸뚱아리가 바람에 흔들려 중심을 잡을수가 없구나
산악회에서 같이온 여성분은 바람에 날려 바위에 부딪히는데 안 다쳤는지 모르겠다.
기상청의 발표에 의하며 대청봉의 낮 기온이 -13도... 체감온도는 적어도 -30도는 되는듯 하다
잠깐 사이에 카메라 베터리가 얼어서 카메라가 작동이 안되어 세컨드 카메라 몇 컷을 더 찍는데
금새 손가락이 얼어 버린다... 역시 대청봉은 아무한테나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다
엄청난 강풍과 매서운 한파로 인해 더 이상 정상에 머물러 있다간 사고가 날 것 같아 서둘러 중청 대피소로
내려가는데 내려가는 길도 엄청난 강풍으로 인해 그리 쉽지만은 않지만 조망만은 정말 굿이다
남쪽으로는 망대암산과 점봉산, 동쪽으론 화채능선 넘어로 속초시와 동해바다가 손에 잡힐듯 가깝게 보인다
또 북쪽으로 어떤가... 금강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서북쪽으론 백두대간 산꾼들이 가고싶어 하는 향로봉
정상의 군부대가 하얀 눈 속에 덮혀있다
화채능선 넘어로 보이는 속초시와 동해바다
중청대피소 건물은 마치 성냥갑처럼 보이고 중청 정상의 군 시설물은 마치 공을 2개 갖다논듯...
그너머로 설악산 서북능선인 귀때기청이 요염한 자태로 산꾼 범여를 유혹하는 느낌이다
움직이기조차 힘든 발걸음
대청봉 정상의 강풍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는 사이에 안면이 마비가 올 정도의 추위는 계속된다
세컨드 카메라마저 베터리는 스톱되고...
대청봉에서 닭이 알을 품듯이 옷속에 품었던 카메라를 꺼내니 다시 작동이 되고...
중청대피소로 향하는 고난의 길
중청대피소로 향하는 길에서 강풍과 눈보라로 인해 2번이나 쳐박히고...
쥔장이 흔들리니 카메라도 흔들리고...천신만고 끝에 중청대피소로 내려온다
중청 대피소 향하는 등로 옆에는 누워서 자란다는 눈잣나무들이
보이지만 너무 춥고, 바람이 드세어 카메라를 들이댈 힘조차 없다
이 엄청난 강풍에 눈잣나무가 누워서 살아가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지혜... 그래서 산은 인간의 영원한 스승이 아닐까?
중청대피소(13:30~14:10)
중청대피소 취사장에서 몸을 녹인 다음에 가져온 떡라면을 끓여서 든든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일행보다 조금 먼저 길을 나선다...혹 걸음이 느려 남에게 민폐를 끼칠까 싶어서...
칼바람 눈밭에서도
나무는 당당하다
꽃을 피워내며 몸을 낮추고
잎을 거느리며 가지를 늘어뜨리고
열매를 키우며 몸을 숙이던
나무는
잎도 열매도 모두 내려놓고
겨울날부터
차가운 바람
살이 터지는 추위에도
더욱 몸을 꼿꼿이 세우고
어찌 당당히 맞설 수 있는지
욕심도 버리고
빈 몸이 되면
떳떳할 수 있다는 걸
침묵으로 말한다
유창섭님의 裸木
한계령 갈림길(14:15)
천번을 와도 질리지 않는다는 설악산... 역시 설악산은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구나
설악의 深雪을 보러 왔지만 유난히도 올 겨울엔 눈이 적게 온 탓이라 정상에도 눈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 대신 온 사방이 다 보이는 그야말로 一望無際의 이 광경
설악이 그리워 不遠千里 길을 마다않고 내 그대를 보러 오질 않았던가...
세속의 찌든 때는 찾아볼 수 없으니 설악산을 오를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운이 아닐까.
설악산정에서 내려다보니 저 세속에서 사는 衆生들이 한없이 가여워보이는건 이 범여만의 생각일까?
어지러운 이 난국에 민초들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고, 권력에만 집착하는 지도자라는 자들...
花無十一紅요 權不十年이라 했소... 제발 정신들 차리시요
중청에서 소청으로 내려서는 철계단에 서니 전면에는 공룡능선이요
좌측으로는 적멸보궁 봉정암을 품고있는 용아장성...그 너머로는 금강산이니
이 멋진 조망... 20번도 넘게 오른 이곳이지만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남한)에서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에 이어 3번째로 높은 산이며, 제2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음력 8월 한가위에 덮이기 시작하는 눈이 하지에 이르러야 녹는다 하여 설악이라 했고, 신성하고 숭고한 산이란
뜻으로 설산(雪山), 설봉산(雪峯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수려하면서도 웅장한 산세, 울산바위를 비롯한 기암괴석,
계곡의 맑은 물과 수많은 폭포 및 숲, 그리고 백담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 등이 조화를 이루어 사찰경관이 뛰어나다.
설악산은 내설악(內雪嶽)과 외설악(外雪嶽)으로 구분되는데, 대청봉을 중심으로 한 북쪽의 미시령(826m)과 남쪽의
점봉산을 잇는 주능선을 경계로 하여 동쪽을 외설악 서쪽을 내설악이라고 부른다
중청에서 소청으로 내려가는 길에 눈은 더 많이 쌓여있다
설악산에서 길을 잃었다.
청봉에서 화채봉으로 빠지는 길길은 그날 하늘 속에 있었다.
(중략)
십년여 산을 들어도 길을 잃은 일은 없었다.
깊은 골짜기 함께 쓰러져산과 내가 상처를 나누어 갖지는 못했다.
짐승 사이로 별 사이로 가듯길을 잃었어야 했다.
누구나 정상에선 길을 잃는 것을앞서 가면 가끔은 길을 잃는 것을
무엇이 두려워 그토록아래로만 고개를 내밀고 우왕좌왕했을까.
이젠 길을 잃어라 낙엽 속에 웅크려 자듯별 사이로 헤매어 떨듯
더 크게 길을 잃어라.-이성선 <길을 잃어라>
천불동 계곡
천불동(千佛洞)이란 이름은 이 계곡에 그야말로 천의 부처상을 늘어놓은 것처럼 기암봉이 많고
다양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웅장한 기암절벽과 톱날같은 침봉들 사이로 깊게 패인 협곡에
폭포와 소(沼)가 연이어져 있어 설악산의 가장 대표적인 코스이자 우리나라 계곡의 대명사로 꼽히는
천불동계곡은 빼어난 경관 때문에 설악산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천불동계곡은 설악산에 있는 대표적 계곡의 하나로 설악골 계곡이라고도 한다.
비선대(飛仙臺)에서 대청봉(大靑峰)으로 오르는 7 km 코스의 중간 계곡으로 와선대(臥仙臺)를
비롯하여 비선대 ·문수담(文珠潭) ·이호담(二湖潭) ·귀면암(鬼面岩) ·오련폭포(五連瀑布) ·양폭(陽瀑) ·
천당폭포(天堂瀑布) 등 유수한 경관들이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천불동이라는 호칭은 천불폭포에서 딴 것이며, 계곡 일대에 펼쳐지는 천봉만암(千峰萬岩)과
청수옥담(淸水玉潭)의 세계가 마치 ‘천불’의 기관(奇觀)을 구현한 것 같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소청봉(14:30)
소청봉 정상에서
소청봉에서 희운각으로 내려가는 길은 적설량도 많고 상당히 미끄럽다
같이온 山友들은 신이 났다
공룡능선 너머로 마등령과 황철봉이 한 눈에 들어오고 앞쪽으론 범봉이 보인다
범봉은 천화대의 암봉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설악산에 하늘에서 꽃이 내려와 앉았다는
천화대(天花臺)에 석주길 이라고 하는 릿지코스가 있다.
"천 가지의 꽃이 피어있다" "바위에 피어있는 꽃" "하늘 꽃"이라는
숫한 설을 남긴 천화대는 그 만큼 아름답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천화대는 비선대에서 철 계단을지나 천불동 계곡방향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초입이 시작되며 끝 지점인 공룡능선에서는 비선대 방향으로는 동북쪽으로
연결되어 있고 외설악을 대표하는 30개 이상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야하는 구간이다.
희운각 가는길
늘 밀려드는 등산객들로 인해 돗대기 시장을 방불케하는 희운각 대피소는 적막강산이다
희운각 대피소
희운 최태문 선생이 1969년 2월 천불동 계곡의 최상류인 죽음의 계곡에서 해외원정 등반훈련
도중 젊은 산악인 10명이 눈사태로 사망한 사건을 게기로 (설악산 10동지 조난사건) 1969년
당시 사재 100만원을 털어서 만들었고 자신의 호인 희운(喜雲)을 따서 대피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대청봉이 물끄러미 하산하는 범여를 내려다보고 있다
잘 있으시요... 미치도록 보고 싶을때 또다시 오리다
무너미고개
무너미고개에서 공룡능선가는 길은 막혀있다... 나야 오늘 그리 갈일도 없지마는...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선다
무너미의 무는 물에서, 너미는 넘는다(건넌다)에서 왔다. 물을 넘는다(건넌다)란 뜻의
무너미를 한자로 수유(水蹂), 수월(水越)이라고도 표기하는데, 이 땅이름도 전국에 많이 분포한다.
범봉에서 비선대로 이어지는 천화대 구간의 암릉
천불동 계곡을 내려서면서 또다시 카메라 베터리가 속을 썩인다
그것도 카메라 2대가 동시에...하는 수 없이 기록을 포기하고 소형카메라를 가슴속에 품는다
다시 카메라를 꺼내니 작동은 되지만 됐다 안됐다... 자꾸만 쥔장의 쏙을 썩인다
천당폭포(16:15)
천불동 계곡에 있는 폭포로서 예전에 TV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 중에 강호동이란
친구가 왔다 갔다고해서 유명세를 치른 곳이라 하는데 그 덕분인지 포토존까지 있다
지명의 유래는 속세에서 온갖 고난을 겪다가 이곳에 이르면 마치 천당에 온 것
같다고 하여 천당폭포라 부른다고 한다
낙석사고가 많은곳이라 그런지 예전에 없던 시설물이 많이 보인다
양폭포((陽瀑布:16:20)
양폭포(陽瀑布)에서 떨어지는 떨어지는 물줄기가 두갈래로 갈라지는데
우측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양폭이고, 좌측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음폭이라고 한다
양폭산장(16:23)
양폭산장을 지나면서 해는 저물고 카메라는 쏙을 썩이고, 동료산우들은 보이질 않고 하여 카메라를
베낭에 집어넣고 부지런히 걷다보니 오련폭포를 비롯한 멋진 소(沼)를 다 놓치는 우(憂)를 범한다
귀면암(鬼面巖:16:50)
설악산 천불동계곡의 비선대와 양폭포(陽瀑布) 사이에 있는 커다란 바위로
명칭은 바위 생김새가 무시무시한 귀신의 얼굴을 닮은 데서 유래한 것으로,
금강산의 귀면암에서 따왔다고 하나 원래의 명칭은 천불동계곡의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한다는 뜻에서 '겉문다지' 또는 '겉문당'이라 불렀다고 하며,
귀면암이라는 명칭은 나중에 붙여졌다고 한다
천불동 계곡의 수호신처럼 버티고 있는 귀면암 앞에는 철계단 오름길이 있다.
이곳을 오르고 나면 다시 천불동 계곡에 있는 문수담(文殊潭)을 비록한 멋진
계곡들이 이어지지만 어둡기 전에 신흥사까지 가야 겠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걷는다
금강굴(金剛窟)갈림길(17:15)
좌측으로 오르면 동굴법당 형태를 띠고 있는 금강굴이 나오고 마등령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금강굴은 자연동굴로 1,300여년전 신라시대에 원효대사(617~666)가 수행처로 삼았던
곳으로 원효대사의 대표적인 저서인 “금강삼매경론”을 따서 금강굴이라 불렀다고 한다
금강굴은 길이가 18m의 자연석굴로 지금은 신흥사의 부속 암자로 되어 있다.
그 이외에도 금강굴이 위치한 미륵봉에서 보면 설악산의 산악미를 한데 모은듯한
경승지인 토막골, 망경대, 죽음의 계곡, 칠형제봉, 형제폭포, 유선대, 소청, 중청,
대청봉이 한 눈에 보이며, 봉우리 곳곳이 부처의 형상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계곡에서 바라본 비선대(飛仙臺 )의 모습
좌측이 금강굴이 있는 미륵봉(일명:장군봉), 가운데가 형제봉, 우측이 선녀봉인데
외설악 지구의 천불동계곡 들머리에 있는 커다란 암반(巖盤)으로 마고선(麻姑仙)
이라는 신선이 이곳에 와서 놀다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비선대는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많이 찾아오던 곳이라 沼 주변의 암반에
많은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오늘도 시간이 바빠서 그냥 패~~~스
금강굴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우측에 있던 빈대떡집은 철거되고 없다
예전에 이곳을 지날때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간 법없듯이 꼭 한잔한 곳인데 아쉽다
2015년 10월 9일 설악산 종주때의 매점 사진
와선대(臥仙臺:17:30)
옛날 마고선(麻姑仙)이라는 신선이 바둑과 거문고를 즐기며 아름다운 경치를
너럭바위(넓고 평평한 바위)에 누워서 감상하였다고 하여 와선대라고 불렀단다
숲이 울창하고 기이한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가히 절경이라 하였는데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너럭버위 흔적은 사라지고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군량장 표석(17:35)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군량미를 저장해 두었던 터를 알리는 군량장이란다
하산길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능선의 저항령
설악교(17:40)
이름모를 자유용사의 비(17:50)
금강송 숲길을 지나면서....
금강교(17:57)
좌측으로 가면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본사인 신흥사이지만
늦은 시간이라 참배는 다음으로 미루고 일주문 방향으로 향한다
설악동소공원에서 바라본 권금성(權金城)의 모습
아주 오랜 옛날 한 마을에 권씨 성의 장사와 김씨 성의 장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이 쳐들어오자 산세가 험한 곳으로 피난하였다. 그곳이 지금의 권금성 자리이다.
적이 오자 방어할 길이 없어 서로 의논하였다. 그래서 두 장사가 그곳에 성을 쌓기로 하였다.
“적병이 오기 전에 성을 쌓아야 할 텐데...”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안에 성을 만들어야 화를 면할 것이오.”
하지만 성을 쌓는 다는 것이 결코 생각 처럼 쉽지 않았다. 의논 끝에 돌을 날라다가 이곳에 성을 쌓기로 하였다.
하지만 먼 거리에서 돌을 날라다가 성을 쌓는 다면 몇 달이 걸릴 것 같았다.
두 장사가 궁리 끝에 “이렇게 합시다. 돌을 날라서는 성을 쌓을 수 없으니
내가 강에 내려가 돌을 던질 테니 당신은 여기서 받아서 성을 쌓으시오,
그래야만 하루 밤에 성을 다 쌓을 수 있을 것이요.” “좋습니다.” 그래서 권장사가
강으로 내려가 돌을 주어서 던졌고 그러면 김장사는 그 위에서 돌을 받아가지고
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힘들면 서로 교대로 김장사가 강으로 내려가 돌을 던지고 권장사는 위에서 돌을
받아 성을 쌓았다. 이렇게 권장사와 김장사가 만든 성이라 권금성(權金城)이라고 부른다.
신흥사 통일대불(18:00)
신흥사는 신라 진덕여왕 6년(652)에 자장ㅇ듈사가 세워 처음에는 향성사라 불렀고, 그 후 여러차레 불에 탄 것을
조선 16대 인조22년(1644)에 영서(靈瑞), 연옥(蓮玉), 혜원(惠元) 세 스님이 똑 같은 꿈을 현몽하여 지금의 자리에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신의 계시를 받고 세웠다 하여 신흥사라 했다.
창건 당시 주조한 1400여년 된 범종과 조선 순조께서 하사하신 청동 시루, 극락보전(지방문화제 14호),
경판(지방문화재 15호), 보제루(지방문화재 104호), 향성사지 3층 석탑 및 삼불상, 명부전, 선제루, 칠성각 등이 남아 있다.
신흥사 일주문을 나서면서 신흥사를 향해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올 한해도 무탈하게 산행을 하게 해달라고 기원을 한다
절 집앞 마당에 왠 패스트푸드점... 언밸런스 아닌감?
소공원 이정표를 지나고...
산행을 종료하다(18:05)
설악산 심설이 미치도록 그리워 찾아 왔건만 눈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날씨 하나는 정말 끝내줬다...모든걸 다 바라면 그건 집착이고 탐욕이겠지
부처님께선 늘 貪, 嗔, 恥 삼독심을 버리라고 하질 않았던가
렌턴을 켜지않고 무탈하고 산행을 종료한 것에 정말 감사드리며,
오랫만에 일반 산행을 하면서 같이 걸었던 山友들에게도 늘 존일만 있으시길...
'♣ 일반산행 ♣ > 100대名山 山行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산 (0) | 2017.01.28 |
---|---|
過猶不及이란 단어를 확실히 깨우친 겨울 함백산 (0) | 2017.01.22 |
속리산 (0) | 2016.09.26 |
관악산 (0) | 2016.09.15 |
강원도 백운산 (0) | 2016.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