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6년 1월 27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3km / 6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청수장-정릉 매표소-청수천-돌탑-선덕교-상봉사 갈림길-청수폭포-영취천-영취사
형제봉갈림길-일월사 입구-보현봉 갈림길--대성능선-대성문-전망대-보국문-대동문
시단봉-동장대-용암문-용암봉-노적봉-만경대-위문-백운대-오리바위-위문-백운산장
우이계곡-인수산장-하루재-영봉-암봉-코끼리바위 갈림길-벙커봉-육모정-용덕사
신검사 입구-육모정 초소-우이령길-소귀교-우이동 그린파크
☞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강북구
내일이 구정인데 마땅히 갈데가 없다... 나이 먹어 고향 갈 일도 없으니 실향민 아닌 실향민이 되어 버렸다
원래 계획은 서울에서 가까운 지맥 한 구간을 끊을까 했는데 불알 친구들이 오랫만에 산행을 함 하잔다
안 그래도 골프치는 친구들한텐 골프모임에 잘 안어울린다고 왕따(?) 당하고 불알 친구들한테는 일요 모임에
잘 안나온다고 왕따 당하는 신세에 오랫만에 같이 산행 한번 하자는데 또 안 간다고 하면 진짜 왕따가 될 것 같아
오케이하고 친구들하고 산에서 끓여 먹을 떡만두를 준비하여 베낭을 챙겨놓고 있었는데 일기예보에 눈이나
비가 온다고 하니... 이 넘들이 산행을 취소해 버리는게 아닌가
에이 쉬끼들! 갑자기 갈데가 없어져 버린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는 기가 막히게 좋다
그래 오랫만에 북한산이나 한번 갔다와야겠다... 보온병에 양송이 스프와 초코파이 2개만 넣고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고 청수장으로 향한다
북한산(삼각산) 등산지도
순위 | 산이름 | 높이(m) | 위 치 |
1 | 지리산 | 1,915 | 전북 남원시,전남 구례군,경남 하동군,산청군, 함양군 |
2 | 설악산 | 1,708 | 강원도 인제군, 속초시, 양양군 |
3 | 북한산 | 837 | 울특별시 도봉구, 성북구, 종로구, 은평구, 경기도 고양시 |
4 | 덕유산 | 1,614 | 전라북도 무주군, 장수군, 경상남도 거창군, 함양군 |
5 | 가야산 | 1,430 | 경상남도 합천군, 경상북도 성주군 |
6 | 대둔산 | 878 | 충청남도 논산시, 금산군, 전라북도 완주군 |
7 | 소백산 | 1,440 | 경상북도 영주시, 충청북도 단양군 |
8 | 계룡산 | 845 | 대전광역시, 충청남도 공주시, 논산시 |
9 | 관악산 | 632 | 서울특별시 관악구, 금천구, 경기도 안양시, 과천시 |
10 | 속리산 | 1,058 |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
11 | 황매산 | 1,108 |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가회면, 산청군 차황면. |
12 | 월출산 | 809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군서면, 강진군 성전면 |
13 | 마이산 | 686 | 전라북도 진안군 |
14 | 주왕산 | 721 | 경상북도 청송군 |
15 | 청계산 | 615 | 서울특별시 서초구, 경기도 과천시, 성남시 수정구, 의왕시 청계동 |
16 | 도봉산 | 740 | 서울특별시 도봉구, 경기도 의정부시, 양주군 |
17 | 치악산 | 1,282 | 강원도 원주시, 횡성군 |
18 | 월악산 | 1,094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덕산면 |
19 | 오대산 | 1,563 |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진부면, 홍천군 내면 |
20 | 태백산 | 1,567 | 강원도 태백시,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
21 | 강천산 | 584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
22 | 두타산 | 1,353 |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하장면, 동해시 |
23 | 내연산 | 712 | 경상북도 영덕군, 포항시 |
24 | 가지산 | 1,240 | 경상북도 청도군, 경상남도 밀양시, 울산광역시 |
25 | 대야산 | 931 | 경상북도 문경시, 충청북도 괴산군 |
26 | 신불산 | 1,159 |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상북면,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원동면 |
27 | 한라산 | 1,950 | 제주도 제주시, 서귀포시, 북제주군, 남제주군 |
28 | 용문산 | 1,157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1리 |
29 | 사량도지리산 | 398 | 경상남도 통영시 사량면 (사량도) |
30 | 청량산 | 870 |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
31 | 명지산 | 1,267 | 경기도 가평군 북면 |
32 | 민주지산 | 1,241 | 충북 영동군 상촌면, 용화면, 전라북도 무주군,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
33 | 운악산 | 936 | 경기도 가평군 하면, 포천군 화현면 |
34 | 팔공산 | 1,192 | 경상북도 칠곡군, 군위군, 영천시, 경산시, 대구광역시 동구 |
35 | 칠갑산 | 560 |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정산면 |
36 | 내장산 | 763 | 전라북도 정읍시, 순창군 복흥면 |
37 | 선운산 | 335 | 전라북도 고창군 시원면, 아산면 |
38 | 용봉산 | 381 |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 예산군 덕산면 |
39 | 천태산 | 715 |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충청남도 금산면 제원면 |
40 | 명성산 | 923 | 경기도 포천군, 철원군 |
41 | 무등산 | 1,187 |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담양군, 화순군 |
42 | 유명산 | 862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양평군 옥천면 |
43 | 변산 | 508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상서면, 진서면 |
44 | 감악산 | 675 | 경기도 양주군 남면, 연천군 전곡읍, 파주시 적성면 |
45 | 수락산 | 640 | 서울특별시 노원구, 경기도 의정부시, 남양주시 |
46 | 비슬산 | 1,083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유가면, 가창면, 청도군 각북면 |
47 | 축령산 | 886 |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가평군 상면 |
48 | 소요산 | 587 | 경기도 동두천시, 포천군 신북면 |
49 | 천관산 | 724 |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대덕 |
50 | 수리산 | 474 | 경기도 안양시, 군포시, 안산시 |
51 | 가리왕산 | 1,561 |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회동리,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북평면 |
52 | 가리산 | 1,051 | 강원도 춘천시, 홍천군 |
53 | 오봉산 | 779 |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화천군 간동면 |
54 | 금수산 | 1,016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단양군 적성면 |
55 | 화왕산 | 758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일대 |
56 | 도락산 | 964 |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대강면 |
57 | 방태산 | 1,444 |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홍천군 상남면 |
58 | 연인산 | 1,068 | 경기도 가평군 |
59 | 백운산 | 1,218 | 전라남도 광양시 봉강면, 옥룡면, 진상면, 다압면 |
60 | 오서산 | 790 |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홍성군 광천읍 |
61 | 팔봉산 | 327 | 강원도 홍천군 서면 팔봉리 |
62 | 두륜산 | 700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현산면 |
63 | 천성산 | 811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응상읍. |
64 | 금오산 | 977 | 경상북도 구미시, 칠곡군 |
65 | 모악산 | 794 | 전라북도 김제시, 전라북도 전주시 완주군 |
66 | 마니산 | 470 |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읍 |
67 | 가야산 | 678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해미면 |
68 | 계방산 | 1,577 | 강원도 홍천군, 평창군 |
69 | 광교산 | 582 | 경기도 수원시 상광교동 |
70 | 남산제일봉 | 1,054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
71 | 달마산 | 489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북평면 |
72 | 삼악산 | 656 | 강원도 춘천시 서면 |
73 | 주흘산 | 1,106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
74 | 백운산 | 903 | 경기도 포천군, 강원도 화천군 |
75 | 선자령 | 1,158 | 강원도 강릉시, 평창군 |
76 | 추월산 | 731 |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
77 | 조령산 | 1,025 |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
78 | 바래봉 | 1,165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산내면 |
79 | 칠보산 | 779 |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장연면 |
80 | 화악산 | 1,468 | 경기도 가평군 북면, 화천군 사내면 |
81 | 검단산 | 658 |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하남시 |
82 | 금정산 | 802 | 부산광역시 금정구 |
83 | 재약산 | 1,108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지내 |
84 | 장안산 | 1,237 |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덕산리 |
85 | 천마산 | 812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면 |
86 | 팔영산 | 609 |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성기리 |
87 | 황악산 | 1,111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
88 | 경주남산 | 494 |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배동, 내남면 |
89 | 조계산 | 887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 송광면 |
90 | 남덕유산 | 1,507 | 경상남도 거창군, 함양군 |
91 | 운문산 | 1,188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
92 | 민둥산 | 1,119 | 강원도 정선군 남면, 동면 |
93 | 금산 | 705 |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삼동면 |
94 | 불암산 | 508 | 서울특별시 노원구, 경기도 남양주시 |
95 | 남한산 | 522 |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
96 | 구병산 | 877 | 경상북도 상주시 화남면 평온리, 보은군 마로면 적암리, 외속리면 구병리 |
97 | 미륵산 | 461 |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면 |
98 | 서대산 | 903 | 충청남도 금산군 |
99 | 덕숭산 | 495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
100 | 응봉산 | 999 | 강원도 삼척시, 경상북도 울진군 |
100대 명산 인기 순위(조사 기관마다 조금씩 차이가 남)
청수장 입구
성신여대 역에서 내려 143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 도착한 다음에 조금을 더 오르니 청수장이 나온다
청수장(淸水莊)이란 정릉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맑아 청수동이란 마을 이름에서 붙여진 별장이다,
정릉유원지 깊숙한 곳에 위치한 청수장은 삼각산 남록(南麓)의 깊은 계곡의 맑은 물과 부근의
산수가 조화를 이룬 곳에 위치한 청수장은 장안의 부호(富豪)들이 즐겨 찾던 장소였다고 한다,
이는 일제시대 일본인의 별장으로 이용되어 오다가 해방이 되면서 민간인에게 넘어가고 6, 25 전쟁 때는
특수부대 훈련을 위한 강의실 및 숙소로 쓰이기도 했다
정릉탐방지원센터
정릉(貞陵)이란 지명은 북한산(北漢山) 남장대(南將臺) 일대에 위치한 곳으로 이성계(李成桂)의 계비(繼妃)
강씨(康氏)의 정릉이 있으므로 동명이 유래되었다,
원래 정릉동의 처음 지명은 사을한리(沙乙閑里)를 줄여서 사아리(沙阿里)로 칭(稱)하기도 했다,
이곳은 조선 초부터 한성부에 속했던 것은 정릉동 408번지 청수장(淸水莊) 유원지(遊園地) 입구에
성저오리(城底五里)(사적 제110호)가 세워져 있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지금은 경복궁(景福宮)
근정전(勤政殿) 회낭(廻廊)에 옮겨져 있다) 조선말 고종 4년 (1867년)에 발간된 육전조례에는 한성부
동부 숭인방(성외) 정릉계로 나타나고 갑오개혁 때에는 한성부 동부 숭신방(성외) 동소문외계의
소정릉(小貞陵) 청수동(淸水洞) 손가정(孫哥亭) 지역으로 칭했다,
북한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갈림길에서 보국문 방향으로 향한다
청수천 약수터에서 시원한 물한모금 마시고...
돌탑을 지나니 선덕교가 나온다
선덕교
북한산에서 만난 지인
나하고는 2003년도 라이온스 회장을 같이하신 분인데 이 분 역시 실향민인 모양이다
고등학교 동기들과 산행중이란다... 지금 매달 한번씩 회장동우회 모임의 멤머이시다
상봉사 갈림길
대성문으로 오르는 대성능선길 아랫쪽은 양지라 그런지 누은 별로 없으나 날씨는 생각보다 춥다
이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붙어 형제봉 능선을 타보기로 맘을 먹었는데 이곳은 국공파들이 출입금지
구간으로 못박아놔서 등로 넘어로 가기에는 조금 망설여진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범법 행위를 하다 국공파에게 10만원 보태줄 일있나...가고싶은 맘은 굴뚝 갔지만 착하게 살아야제
청수폭포
영취천
이곳 약수터는 겨울 갈수기라 그런지 물이 안나오는지 자물쇠로 잠가놨다
영취사 가는 길
영취사 대웅전
영취사는 청수장에서 대성문으로 오르는 대성능선에 있는 사찰로 등산로가 절마당 가운데로 지나간다
영취사는 1962년 독림운동가였는 신현상 선생의 딸이였고, 백범 김구 선생의 수양녀이기도 했던
신정옥 보살이 창건한 절로 절이라기보다는 소담한 가정집처럼 느껴지는 편안한 사찰이다.
마당에는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고 가운데는 고즈늑한 5층 석탑이 하나 서 있다.
이 석탑은 고려 후기또는 조선 초기에 조성된 이형 석탑으로 여러 돌로 대석의 높이를
다진 다음 그 위에 이중의 기단과 5층의 탑신을 올렸다.
머리 장식은 근대에 올려 놓은 것으로 석탑을 떠받치고 있는 대석이 지나치게 크며
탑신과 기단은 너무 작다...이곳은 옛 절터가 있었다는 기록이 없는걸로 보아 다른데서 옮겨온 듯 하다
(대석과 탑신부 맨 꼭대기 부분은 영취사에선 만든 것으로 원래 석탑과는 관련이 없다)
영취사 대웅전 삼존불
삼성각
절 마당을 빠져나와 다시 대성능선으로 복귀한다
형제봉 갈림길
아까 비법정탑방로 들어섰다면 이곳으로 나왔을 것이다
우측으로 꺽어져 대성문으로 향한다
북한산 주능선이 보이기 시작하고...
일월사 갈림길
대성문은 얼마 남지 않았다
돌계단으로 올라선 다음에 우측으로 바라보니...
칼바위 능선이 시원스럽게 보이고...
좌측으로 올라서면 보현봉으로 가는 길인데...
이곳 역시 국공파들이 가지 말란다... 뭐 이리 하지 말라는게 많은지?
산허리를 가로질러 편하게 오르니 대성문이 나오고...
대성문(大城門)
북한산성의 동남쪽에 있는 성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37년)에 지어졌다
문의 형식이나 규모는 대남문과 같고, 형제봉 능선을 타고 서울의 북쪽 평창동과
정릉동으로 연결되는 주요 관문으로 성문 하부는 홍예 모양으로 통로를 내고 성문을
여닫을 수 있도록 했으며,상부 단층의 문루는 우진각 지붕의 형태인데, 이는 지붕 내면이
모두에서 불화살 공격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 문루는 소실되었던 것을 1992년 새로 복원한 것이다
대성문 이정표
뒤에서 본 대성문
대성문에서 올라선 다음 성곽을 따라서 백운대 방향으로 향한다
북한산성은 조선시대 19대 임금인 숙종(1711년)때 쌓은 석성(石城)이다
숙종은 지난 전란때 두 선왕, 인조와 선조가 당한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 두번다시 수모를 받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병자호란(1636)때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할려다 이미 적에 함락됐다는 말에 허겁지겁 남한산성(1624-26 축성)으로 들어갔는데,
추위와 식량이 모자라 끝내 못버티고 삼전도에 나와 수항단(受降檀)에서 청 태종에 무릅을 꿁고 항복하는 치욕을 당했다.
청은 당시의 승전을 한문과 몽고어로 큰 비석에 담아 삼전도 현장에 세웠는데, 지금도 송파구 삼전동 주택가 어린이
놀이터에 있어 그때의 치욕을 증언해주고 있다. 임진 왜란(1592-98)때는 왜군이 하루만에 동래성을 함락한뒤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와 보름만인 4월말에 입경(入京)한다. 선조는 왜적을 피해 의주까지 피란가는 수모를 겪어야했다.
이 두 치욕을 생각하며, 숙종은 백제때 토성이었던 자리에 석성을 축조후 이 곳에 올라 왔을 때, 남다른 감회를 가졌으리라.
우리는 역사속에서 교훈을 얻고 항상 미래를 대비해야할 것이다.
전망봉
보현.문수봉으로 이어지는 의상능선의 모습
내가 조금전에 걸었던 대성능선 너머로 보현봉과 형제봉의 모습도 보이고...
보국문 내려가는 길에서 만난 전망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주봉의 모습
보국문(輔國門:567m)
보국문은 북한산의 동남쪽에 있는 암문으로 산성이 축성되어 있는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37년)에 지어졌다
소동문 또는 동암문이라고도 부르며, 암문은 평상시에는 백성들의 출입문으로 이용되었으며 전쟁시에는 비밀통로로
사용한 문으로 암문은 돌로 만들었지만 홍예 형태가 아닌 방형의 평문 형식이며 상부에 문루가 없는것이 특징이다
1993년에 보국문 상부의 여장을 복원하였고 부분적으로 수리를 하였다
보국문 이정표
칼바위 능선 갈림길
칼바위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성 탐방로
대동문으로 내려서는 길도 상당히 미끄럽다
대동문(大東門)
북한산성 동쪽에 있는 성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37년)에 지어졌다.
서울의 동북쪽 수유동과 우이동을 연결하는 관문으로 문의 형식과 모습은 대남문과 대동문과 같다
그러나 홍예문은 대동문이 가장 크며, 하부의 홍예문은 통로로 사용되었고, 상부의 단층 문루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문루는 소실되었던 것을 1993년에 새로이 복원하였는데 이때에
상부의 여장도 함께 복원하였는데 문루 바깥쪽에 낮은 담장 형식으로 쌓은 여장은 아군이 몸을
숨기고활이나 총을 쓸 수 있도록 설치한 군사시설이다
미끄러운 성곽을 내려서니 대동문에 도착한다
대동문을 둘러본 뒤에 다시 성곽을 따라서 올라오니 시단봉이 나온다
시단봉(柴丹峰:610m)
북한산 대동문에서 산성주능선을 타고 용암봉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봉우리로서
행정구역상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에 속한다. 정상에 옛날 장수들의 지휘소로 사용되었던
동장대(東將臺)가 있으며, 봉우리 사이로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없어 해돋이 장소로 유명하다.
성곽을 따라서 잠깜 내려섰다가 올라서니 동장대가 나온다
동장대(東將臺)
북한산 동쪽에 있는 장대로 1712년(숙종 38년에 지어졌으며 장대는 장대는 장군의 지휘소롤
북한산성에는 동장대 이외에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으며 현재는 동장대만 남아있다
동장대는 최고 지휘관이 사용하던 곳으로 장대중에서도 가장 중요시 되었다.
장대의 평면은 정방형이며, 중층 구조로 아랫쪽은 벽 없이 트여 있어서 지휘하기에
편리하도록 했으며, 윗층은 창으로 막아 방을 만들어 사용했다.
장대의 구성이나 모습은 수원 화성의 서장대와 거의 같으며 이 장대는 소실되었던것을 1996년에 복원한 것이다
동장대에서 서 있는 이정표
좌측 아랫쪽의 북한산장이 있는 곳이 아닌 성곽을 따라서 올라서니 양지라 눈이 보이질 않는다
멋진 소나무가 있는 곳이 나오고...
의상봉 능선에 자리잡고 있는 나한봉과 나월봉의 모습
바로 앞쪽으로는 가야할 능선들이 보인다
인수봉(우측)과 용암봉... 노적봉(좌측)의 모습
용암문(龍岩門)
북한산성의 대동문 북쪽에 있는 암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조선 숙종37년)에 지어졌다
용암봉 아래에 있어 용암봉 암문이라고도 부르며 우이동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암문은 일반 성문과는 달리 은밀한 곳에 만들어져 전쟁 때에는 비밀통로로 사용하였다
그 모양이 홍예가 아닌 병행이라는 것이 특징이며 상부에 문루도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용암문은 보국문과는 달리 성 내부쪽을 홍예행으로 만들었다.
용암문 상부의 여장은 무녀졌던 것을 1996년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용암문앞 넓은 쉼터에는 추운 날씨탓인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그리 많지않다... 백운대 방향으로 향한다
노적봉(露積峰:716m)
만경대 서쪽 아래에 있는 봉우리로 북한산에서 두 번째로 큰 암장(巖嶂)이다.
명칭은 봉우리 모양이 노적가리를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졌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에 속하며 임진왜란 때 백제관전투에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위기에 처하였는데, 밥할머니가 꾀를 내어 이 봉우리에
볏짚을 쌓고 창릉천에 쌀 씻은 물처럼 보이도록 석회를 뿌리게 함으로써 왜적으로
하여금 버틸 만한 군량이 충분한 것으로 판단하게 하여 물러가도록 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노적봉 오르는 길은 비법정 탐방로라 국공파의 단속구간이다
3년여년전에 노적봉 정상에 몰래 올라 똥구바위 아래서 꿀잠을 잤던 기억이 아련하다
백운대 가는 길
오랫만에 왔더니만 계단을 많이 설치해놔서 예전에 비해서 북한산은 야성 많이 잃어 버린듯하다
백운대 가는 길에서 바라본 염초봉(우측)과 원효봉의 모습
원효봉(元曉峰:505m)은 봉우리 아래에 있는 원효암에서 유래한 것으로,
원효암은 신라시대 원효(元曉) 대사가 수도하였던 토굴이다.
원효봉 능선은 북문~염초봉으로 이어져 백운대로 향한다.
조금전에 지나온 노적봉(좌측)과 원효봉의 모습
그 아래쪽으로 태고암이 보이는데 북한산이 품고있는 유서깊은 사찰은 참으로 많다
신라의 고승 원효성사와 의상대사 수도를 하였던 곳이라 하여 원효봉과 의상봉이 있고
원효봉과 의상봉은 대서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이는 위치이다.
원효성사는 상운사와 삼천사를 창건하고, 이어서 승가사와 도선사가 창건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이 중흥사를 창건, 8대 현종은 북한산에서 한때 승려 생활하였는데
이때 진관 스님의 은공을 기려 그를 국사로 봉하고 1011년 진관사를 창건하였다
거란족이 침입했을 당시에 북한산성의 계곡 중흥동에서 피난 생활을 했다.
1109년(고려 예종) 탄연이 문수사를 창건,현재 대남문 옆에 있는 사찰이다.
고려 말 우왕 1388년 최영장군은 중흥성(북한산성)을 축조하여 군대를 주둔.
원증국사(圓證國師) 보우가 중흥사를 중건하고 그 옆에 태고암을 새로 지었다.
백운대 가는 길에서
북한산 등로 구간에서 가장 위험한 등로인 염초봉 구간
북한산에서 사고 헬기가 떳다면 50%는 저 쪽 방향이란다
추운 날씨탓인지 백운대 정상에는 등산객들이 별로 보이질 않는다
아쉬워서 셀카로 한번 더 인증샷을 남기고...
줌으로 한번 더 당겨보고...다시 계단을 따라서 올라서니 위문이 나온다
백운봉 암문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 8개 암문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고 일제강점기부터는 위문으로 불렸다 한다.암문(暗門)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구원병의 비상출입로 이기도 하다.백운봉 암문은 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적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고개마루나 능선에 설치했다백운동 암문은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상부 문루는 마련하지 않았다성문 양쪽으로 장대석으로 쌓고 그 위의 천정 부분은 장대석 여러개를 걸쳐 만들었다. 이런 모양의 성문은 아치모양의 홍예석과 구분하여 평지식이라 부른다원래 문짝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문짝을 달았던 지도릿돌과 일반문의 빗장에해당되는 장군목에 걸었던 방형 구멍이 남아있다
백운동 암문을 빠져 나오니 만경대 오름길에는 예전에 없었던 국공파의 초소가 보인다
아마도 만경대로 오르는 등산객들의 통제하는 초소인듯 하다
백운대 가는 길에서 바라본 만경대(萬景臺)
만경(萬景)의 이름에 담고 있는 뜻과 같이 만경봉이란 전망이 좋은 봉우리로 국망봉이란 이름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백제시대 온조, 고려 말 무학대사가 도읍을 정하기 위해 올랐다는 봉우리가 만경봉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고려시대에 오순(吳旬)은 “공중에 높이솟은 세송이의 푸른 연꽃, 아득한 구름 안개 몇만겹이던가”라고 노래했고
이존오(李存吾)라는 분은 “세송이의 기이한 봉우리 멀리 하늘에 닿았는데, 아득한 대기에 구름 연기 쌓였네
쳐다보니 날카로운 모습, 긴 칼이 꽃혔는데, 가로보니 비슷비슷 푸른 연꽃 솟았네”라고 했다
이는 백운대와 만경대, 인수봉의 세 봉우리가 날카롭고 아름답게 솟아있는 상태를 서정적으로 노래한 것이다
인수봉(仁壽峰:810m)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은 북한산 같은 아름다운 산을 지척에 두고 있는 수도는 전세계에서 서울뿐이라고 찬탄을 금치 못한다.
북한산은 단위 면적당 사람들이 가장 많은 찾는 산(연평균 500만 명)으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인수봉(仁壽峰) 또한 암벽이 노출된 경승으로, 논어에 나오는 ‘인자요산 인자수(仁者樂山 仁者壽)’에서 붙인 이름이라 하며 인수봉 옆에는 조그만 돌덩어리가 하나 튀어나와 있다. 어머니가 마치 아이를 업고 있는 듯해서 예전엔 북한산을 ‘부아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암벽등반 봉우리이다.
백운대 정상 오르는 길
백운대(白雲臺 :836m)
북한산의 주봉의 만경대와 인수봉으로 구성되어 옛부터 삼각산으로 불리웠다
고려의 수도인 개경(지금의 개성)에서 볼 때 이 봉우리들이 마치 세개의 뿔처럼
보인다고 해서 삼각산(三角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의 왕자였던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으로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정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때의 부아악이 삼각산을 말한다
삼각산 봉우리는 쥐라기(1억 8천만년~1억 3천5백만년 전)말에 형성된 대보화강암, 흑운모화강암
또는 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서로의 형성을 달리하는 반구형 형태를 보이며, 산사면의 경사는
대체적으로 70도 이상에 달한다
주봉인 백운대 정상에는 약 500㎡의 평탄한 공간이 있어 수백명의 산객들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백운대 동쪽에 서 있는 인수봉은 뿔 모양의 바위 하나가 우뚝 솟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암벽장소로 유명하다
동남쪽에 자라잡은 만경대는 국망봉이라고 부렀다.
만경대는 무학대사와 얽힌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태조 이성계와 왕사인 무학대사가 조선의 수도 후보지를 찾으러 순례할 때 백우대로부터 맥을 밟아
만경대에 이르러 서남 방향으로가 비봉에 이르렀다고 한다
거기엔 석비가 서 있는데 “무학이 길을 잘못들어 여기에 이른다”라고 적혀 있어서 길을 바꾸어
내려가 궁성터(오늘의 경복궁)를 정했다고 한다
백운대 정상의 통일서원 표시석
백운대 정상에 새겨진 3.1운동 암각문은 눈에 묻혀 잘 보이질 않는다
백운대 정상에서 인증샷
백운대 정상에서 바라본 숨은벽과 염초봉 그리고 원효봉의 모습
백운대에서 바라본 북한산 주능선의 모습
높은 삼각산 봉우리 하늘을 찌를 듯
그 위에 오르면 북두칠성도 딸 수 있어
비구름 불러 일으키는 저 봉우리
왕실을 만세토록 평안케 하리다
매월당 김시습의 「매월당속집」에서
이성계(李成桂)의 등백운봉(登白雲峰)
引手攀蘿上碧峰(인수반라상벽봉) : 댕댕이 휘어잡고 상상봉 올라가니
一庵高臥白雲中(일암고와백운중) : 조용한 암자 한 채 구름 속에 누워 있네
若將眼界爲吾土(약장안계위오토) : 눈 앞 아래 펼쳐진 땅 내 것이 될 양이면
楚越江南豈不容(초월강남기불용) : 초월강남 먼 곳인들 어이 아니 안기리.
백운대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인수봉 너머로 상장능선과 도봉산이 보이고...
상장능선 너머로는 한북정맥에서 갈라지는 감악지맥 능선들이 쫘~~~악
고양이 부부...등산객들을 무서워 하지도 않는다
북한산의 명물인 오리바위
백운대에서 내려와 밤골방향으로 가서 숨은벽쪽으로 가려했는데 아무도 가지
않았고 눈이 녹아 빙판이 되어있어 포기하고 다시 위문방향으로 내려간다
하지 말라는게 왜 이리도 많은지?
예전에 없었던 국공파의 초소
아마도 만경대로 오르는 등산객들을 단속하려는 모양이다
백운산장(白雲山莊)
백운산장에 도착하니 명절 전이기도 하고, 조금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곳에서 점심 대용으로 집에서 가져온 양송이 스프로 점심을 대신하고, 산장 매점에서 막걸리
한병을 사서 마시려 했는데, 산장에서는 요즘 술을 팔지 않는 모양이다... 없다고 한다
白雲山莊 현판
백운산장 현판은 일제시대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우승한 故 손 기정옹의 친필이다
백운 산장의 충혼비
충혼비의 碑文
백운산장에 잠깐 앉아 있는 사이에 추위가 엄습해온다
다시 베낭을 멧고 내려서는데 산장 뒤에 있는 백운암은 들리지 않고 그냥 비문능선으로 려선다
백운산장에서 인수산장으로 내려서는 이 계곡을 일명 비문능선(碑文陵線)이라 부른다
1970~80년대만 해도 인수봉의 암벽 등반을 하다가 숨진 젊은 청춘들을 추모하는
비석들이 많아 비문능선이라 불렀는데 지금은 대부분 철거되어 碑를 보기가 힘들다
미끄러운 눈길을 내려오니 데크목 계단을 설치해놔서 편하게 걷는다
인수산장 화장실 너머로 보이는 인수봉의 모습
인수봉(仁壽峰)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형 비류(와 함께 올라 도읍을 정했다고 전해지는 이곳은 산 전체의
형상이 마치 어린 아이를 업은듯하다 하여 부아산(負兒山) 또는 부아악(負兒岳)이라 불린다
특히 대포알을 바로 세워 놓은듯 약 20여m 의 화강암 봉우리는 전문 산악인들의 암벽 등반
훈련장으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인수대피소 경찰산악 구조대
신라시대때부터 부아악(負兒岳)으로 불렸던 인수봉
이는 남성의 성기를 닮은 불두덩에 기원한 것이라고한국의 명산기에 적혀있다.
날카롭게 솟아있는 인수봉의 최초 등반인은 1926년 영국인 아처와 일본인 하야시라고 한다
하루재 가는 길에서 바라본 영봉의 모습
하루재
하루재에서 도선사 방향으로 내려서질 않고 영봉으로 오른다
영봉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맞은편의 수락산과 불암산이 시원스레 보인다
영봉에서 바라본 인수봉과 백운대의 모습
하루재에서 오르막을 200m정도 올라서니 영봉이 나온다
영봉 (靈峯:604m)
도봉구 우이동에 있는 영봉의 지명유래는 북한산 등반 중에 죽은 산악인들을 추모하는 비석들이 인수봉을 향해
세워져 있어서 영봉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비석을 하나도 보이질 않고 인수봉만 환상적인 모습이다
영봉에서 바라본 도봉산의 모습
영봉에서 바라본 상장능선의 모습
예전에 나홀로 한북정맥을 걸어면서 비법정 탐방로인 상장능선을
걸어면서 가슴 조였던 생각을 하니 지금은 웃음밖에 안 나온다
모든걸 하지 말란다... 제도권 산행의 불편함
다시 이정표로 내려와서 좌측으로 꺽어지니...
이곳도 출입금지 구역이다
암봉으로 올라선다
암봉
암봉에서 바라본 상장능선
상장능선이란 북한산의 북쪽 솔고개에서 육모정까지의 능선을 말한다
상장(上長)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능선이 길고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서울쪽으로 향하는 산이니 산 중에서 으뜸이 된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북한산의 능선중에 유일하게 한북정맥에 포함된 능선으로 또 다른 설은 `상장`이란 이름도 6.25이후 북한산에 군부대가 많이 주둔하면서 장수`將`字를 갖다붙였다는 설이 있는데 명확치가 않다.
암봉으로 내려서는 길은 빙판으로 바뀌어 있어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미끄러운 등로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걸어가니...
조망바위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서울의 강북지역
벙커봉 갈림길
벙커봉
벙커봉에서 Zoom in해본 도봉산 오봉의 모습
벙커봉 정상에 올랐다가...
미끄러운 빙판길을 따라서 내려서니 육모정이 나온다
육모정
사기막계곡 쪽에서 넘어오는 길에 있는 백마유격장 내에 정자 터가 있고 육모정이라는 글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육모정고개라는 이름의 유래는 육모정으로 넘어가는 고개라서 지어진 이름이다
육모정은 도봉산과 북한산을 이어주는 상장능선이 있는데 이곳은 비법정 탐방로이다
육모정 아래에는 우이령이 있는데 소의 귀처럼 길게 늘어져 있는 모습에서 소귀고개[쇠귀고개],
즉 우이령(牛耳嶺)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오봉과 상장봉 사이에 있는 이 소귀고개를 아래 응달말에서
올려다보면 두 봉우리가 마치 소의 귀처럼 보이는 데서 유래되었다.
6·25 전쟁 이전 이 우이령길은 양주와 서울을 연결하는 소로였으나, 6·25 전쟁 당시 미군 공병대가 작전
도로로 만들면서 차량 통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6·25 전쟁 때 양주와 파주 지역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서
피난을 갔다고 하는데 지금도 고갯마루에는 냉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탱크 저지용 장애물이 놓여 있다.
육모정에서 상장능선으로 이어지는 능선 위에는 국공파들의 감시초소가 있다
우측으로 꺽어져서 계단으로 내려선다
개구리 입처럼 생긴 바위도 만나고...
집채만한 암릉 앞에는 넓은 공터가 보이고...
휀스가 있는 계곡길을 따라서 내려가니...
암릉 속으로 굴법당이 있는데 용덕사 산신각이란다
용덕사
용덕사는 용의 입에 해당하는 입지와 형국을 하고 있어 용덕사라고 하는데 좋은
기도처라 알려져 있어 기도객들이 많이 찾아 온다고 하며, 마애약사여래 입상이 있다
용덕사 마애약사여래불입상
1910년경에 조각 되었으며 높이가 5.12m로 자세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마애불은 동자가 밝은 빛을 비추는 것을 보고 조각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는 여성 약사불로 인근의 도선사 남성 약사불과 함께 부부약사불로 불리운다
이외도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등부재 등도 있다.
현재의 산신각인 자연동굴을 용의 입으로 보고, 그 앞의 큰 바위를 여의주라 여겨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또한 해마다 산신 하강일인 음력 3월 16일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대표 제주(祭主)로
뽑아 삼각산의 산신제를 봉행하던 명당으로 원하는 소원을 속독성취하는 산신 기도도량이다
용덕사를 내려오니 신검사로 가는 입구가 나오고...
육모정 공원지킴센터
북한산 둘레길로 내려선다
우이령으로 이어지는 북한산 둘레길
수유리 그린파크쪽으로 한참을 걸어간다
소귀교
수유리 버스 정류장
점심을 먹지 않았던 탓인지 배가 고파온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호프집에서 치킨 반마리에 생명주 1,000cc 2잔을 마시고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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