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7년 4월 1일
☞ 산행날씨:흐린 날씨에 비는 오락가락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21km + 어프로치 0.7km / 8시간 25분 소요
☞ 참석인원: 한울타리. 수헌아우님과 함께
☞ 산행코스: 한우산 주차장-한우산- 도깨비동산(설화원)-한우산 동봉-제2활공장-제3활공장
749.7봉-제3활공장-임도-561.8봉-양성삼거리-응봉산-매봉산-부자재-병풍바위
575봉-594.9봉-580.1봉-안부-신덕산-무명봉-묘지-무명봉-절티재-421.4봉
김해김씨묘-379.7봉-은율송공묘-구오목재-373.5봉-우봉산-장군당재삼거리
357.8봉-밀성박공묘-막실고개-328.7봉-279봉-유곡농장-318.3봉-334.1봉
307.1봉-임도- 무명봉-오방삼거리-299.3봉-임도-옥녀봉갈림길-임도-310.7봉
하빈이씨 숭조당-달재
☞ 소 재 지: 경남 의령군 대의면, 가례면, 용덕면, 유곡면, 정곡면
오랫동안 우봉지맥을 준비해왔지만 늘 미뤄 왔는데 이번에 후배 산꾼들과 내 고향의 산길인
우봉지맥을 걷기 위해 이른 새벽 5시에 서울을 떠나 대전쯤 지나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걱정이다... 매주 산에...1년에 7~80번 정도를 걷다보니 이젠 어둠속과 비를 맞으면 걷는건
죽기보다 더 싫으니, 나와 같이 다니는 후배들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산행 들머리에 갔어도 비가오면 내 고향 의령의 관광으로 대체하려 했는데
단성 I.C를 빠져나와 33번 국도를 들어선 다음 대의면 신전리로 가는길에 천하장사
이만기 선수의 고향을 지나 강원도길 못지않은 구절양장의 길을 지나 한우산 정상
100m 아래에 있는 한우산 주차장에 도착하니 한치 앞도 안보이는 짙은 안개가
5년만에 고향의 산을 찾은 범여의 애간장을 태우지만 비가 오지않은 것만 다행이
아닌가 하는 위안을 삼으면서 커피한잔을 마신 다음에 간편복으로 한우산으로 오른다
의령(宜寧:우봉지맥:牛峰枝脈)은
진양기맥의 자굴산(897m)과 한우산(835.7m) 사이의 764.7m봉에서 동쪽으로 분기하여
매봉산(597m),신덕산(582m),우봉산(373mn).장군당재,막실고개,달재,왕봉산(262.8m),돌문재,
남재를 지나 남강이 낙동가에 합류하는 기강나루까지 가는 도상거리 약 35km쯤 되는 산줄기로
남강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엄밀하게 강의 수계만을 따진다면 남덕유에서 온 산줄기는 이쪽으로 내려와서 남강의 우측 울타리를 쳐야할 것이나
산세나 길이,가화강의 특성,남강댐등을 고려하여 진양호로 가는바람에 기맥반열에서 지맥반열로 강등된 산줄기다.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 산경표에서는 의령지맥이라고 부른다
의령(우봉)지맥개념도
우리나라 신산경표를 만드신 박성태 선생은 맥을 타는 산꾼들에게는 전설적인 존재이기는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했던가...박 선생님도 신산경표를 만들면서 딱 2곳의 오류 때문에
맥 산행을 전문적으로 하는 산꾼들들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나는 영춘지맥이라 불리는 영월지맥과 춘천지맥... 지금은 대다수의 산꾼들이 영춘지맥이 아닌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산으로님이 만든 “대한산경표”에서는 또 다른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으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또다른 하나는 오늘 내가 걸을려고 준비하는 우봉지맥이다
백두대간 남덕유산에서 갈라져 거창, 함양, 합천, 의령을 거쳐 진주 진양호로 입수하는 진양기맥
이건 누가봐도 합수점이 진주 진양호가 아닌 이곳 한우산 아래(한우산 동봉이라고 칭하기도 함)
갑을정이라는 팔각정에서 좌측으로 갈라져 의령군 가례면과, 용덕, 궁유, 유곡 정곡, 부림을 거쳐서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정면 기강나루에서 끝을 매어야 함이 확실한데 박 선생께서는
왜 진양호로 합수점을 정했는지 이해가 안되고... 그래서 맥산꾼들에게 비판의 빌미를 제공한 건 아닌지?
이 능선을 타다가 보면 산줄기의 우측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는 모두 다 남강으로 흘러 들기에
진양기맥이 아닌 남강기맥으로 불러야 옳을듯 한데... 그거야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오랫만에
고향길을 한번 걸어보려고 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조선시대 여암 신경준 선생이 펴낸 산경표의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칙에 따르면 진양기맥은 낙동강과 남강의 합수점인 기강나루로 떨어지는게 맞다.
그러나 현재의 진양기맥은 의령 한우산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기강나루로 가는게
아니라 우측으로 진행하여 의령의 진산이라는 자굴산을 지나 산청과 진주를 거쳐
진양호로 떨어진다...아마 초창기 기맥 탐사대들이 기맥치고는 너무 싱겁게
끝남을 아쉬워 함인지 진주까지 연장을 한 모양이다
산행 목적은 우봉지맥 산줄기가 찬밥 신세가 된 연유가 무었일까 하는 것입니다.
의령의 진산인 자굴산을 빼놓고 산줄기 가닥을 잡자니 뭔가 허전 했던가?
아니면 입심좋은 그 누군가의 조정으로 진주로 가자고 했던가?
남덕유산 참샘에서 발원한 물길을따라 진양호로 가던 발길을 잠시 멈추고
한우산 동봉에서 성산리 기강나루까지 답사를 마치고 난 지금
진양기맥 명칭과 우봉지맥명칭이 여전히 마음에 안드는건 마찬가지이다
한우산 지도
한우산 주차장(09:20)
서울에서 출발 지 4시간 20분만에 한우산 정상에 도착하니 짙은 안개로 인해 한치앞도 안 보인다
이곳에다 범여의 愛馬를 세워놓고 물 한모금 마신 다음에 간편복으로 한우산으로 향한다
온 천지가 짙은 안개로 인해 모든게 오리무중이다
한우산(寒雨山:766m:09:35)
경남 의령군 가례면 갑을리·궁류면 벽계리·대의면 신전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북쪽으로 산성산,
동쪽·남쪽으로 매봉산·자굴산과 각각 연결되며 산세가 웅장하고 계곡이 깊으며 기암괴석이 많다.
봄에 철쭉이 군락으로 피어나 경관이 아름답고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도 유명하다.
『조선지지자료』(의령)의 대곡면(현재 대의면)에 '냉정산(冷井山)',
이유곡면(현재 궁류면임)에 한천(寒泉)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차가운
우물이 있는 시원한 산이라는 의미에서 한우산(寒雨山)의 옛 지명임을 추정할 수 있다.
지명은 산이 깊고 수목이 울창하여 시원한 정도가 겨울에 내리는 '차가운 비[寒雨]'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이에 '찰비산'이라고도 하며 산 아래에 찰비계곡이 있다.
옛날 이 마을에 살던 백정의 딸이 신분을 속이고 재 너머 이진사댁 도련님과 혼인을 했는데
시집가던 날 속인 일이 들통 나고 파혼으로 쫓겨 오게 되자 화가 난 백정은 딸과 가마를
물 속에 밀어 넣고 난 뒤 자기도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그 후 찰비골에는 소(沼)가 여러 곳에 생겨났다. 신부가 빠진 자리가 '각시소', 농(籠)과
가마(駕馬)를 던진 곳이 '농소'와 '가매소', 중신아비와 백정이 죽은 곳이
'장개소'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전망이 멋진 한우산이지만 한 치 앞도 안보이는 한우산에 더 머무를 명분이 없다
서둘러 한우산을 내려와서 차량에서 산행을 준비한다
서울에서 새벽 5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한우산 정상아래 주차장에 도착하니 09시 20분
주위에는 짙은 안개로 인하여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한우산 주차장에는 예전에
없던 상업시설물들이 보이고... 참으로 많이 변해있다
2012년 3월 18일 진양기맥길에 이곳을 지났으니 벌써 5년이란 세월이 지나버렸구나
도깨비 빵집 아줌마가 친절하게 커피 한잔하고 가란다
그래 오늘같이 비가 꾸리하게 내리고 짙은 안개 때문인지 사람들이 없으니 한 잔 사먹자
차를 파킹하고 운동화를 신고 커피 한잔 마신 다음에 한우산으로 향한다
자굴산.한우산 등산안내도
한우정(寒雨亭:764.7m:09:50)
한우산을 한바퀴 돌과 자동차로 되돌아와서 산행 채비를 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한우산 설화원
한우정을 지나 우봉지맥 들머리로 향하는데 5년전에 없었던 도깨비 동산이란게 조성되어 있다
도깨비동산의 이야기
따뜻한 사랑이 느껴지는 곳 '한우산'
아득한 옛날 이 곳 한우산에는 눈부신 금비늘 옷을 입은 한우도령과
곱고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진 응봉낭자가 살고 있었어요.
그들은 서로 평생의 사랑을 맹세한 사이였어요
둘의 아름다운 사랑을 한우산의 정령들과 꽃,나무,산짐승들도 축복해 주었답니다.
이 곳 한우산에는 한우도령과 응봉낭자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사랑의 추억을 간직한 장소가 많이 있답니다.
한우산에 차가운 비가 내리고 철쭉이 많고 바람이 많이 불게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벤치에 잠시 쉬었다가 이들의 이야기속으로 여행을 떠나볼까요?
안개가 자욱한 길을 따라서 우봉지맥 들머리로 향한다
철쭉 설화원(說話園) 갈림길(09:54)
좌측으로 철쭉 숲속으로 도깨비 숲을 만들어 놓고 응봉낭자와 한우도령의 스토리로
도깨비 테마공원 비슷하게 만들어 논 곳이 철쭉 설화원이라고 하는데 갈 길 바쁜
맥산꾼이 거기까지 갈 시간이야 있겠나... 그냥 지나친다
한우산 동봉에 올라서는 길에는 빗물을 머금은 호랑버들 강아지가 피기 시작한다
5년전 진양기맥길에 없었던 시설물과 이정표들이 참으로 많이 보인다
진양기맥과 우봉지맥이 갈라지는 곳에는 홍의승원 사거리 이정표가 세로 세워져 있다
한우산 동봉(764.7m:10:00)
이곳이 진양기맥이냐 남강기맥이냐 운명이 갈린 곳이며 박성태 선생이 결정적으로 오류를
범한 곳이 아니냐는 논쟁을 불러 일으킨 곳이긴 하지만...그러나 이미 산꾼들 사이에서는
진양기맥이라는 지명이 머릿속에 박혀 버린걸 어쩌나... 차후 문제는 후배 산꾼들이 해야 할듯...
갈림길에는 甲乙亭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지명은 바로 아래에 있는 가례면 갑을리에 따온듯 하다
짙은 안개속에 바로 앞에 있는 자굴산도 보이지 않을정도 이지만 비를
안맞고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저 고마울 뿐이다
甲乙亭 옆 소나무에는 얼마전 작고하신 한현우님의 표지기가 걸려있다
우봉지맥을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10:02)
데크목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데 좌.우로는 철쭉 군락지이다
우측으로는 가례동천이라 불리는 호리병처럼 생긴 가례면 갑을리의 멋진 모습은 짙은 안개로 인해 한치앞을 내다볼 수가 없다
가례동천(嘉禮洞天)...2012년 3월 18일 진양기맥때의 사진경남 의령군 가례면 갑을리, 양성리, 개승리 병풍처럼 쳐진 아담한 (갑을)동네는 3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가례동천(嘉禮洞天)이라...
자굴산의 한 줄기가 남쪽으로 힘차게 뻗어 내리다가 문득 멈춘 곳의 넓은 골짜기 사이로 가례면 가례마을이 있다.
가례는 퇴계 이황 선생이 지은 洞名이다 . 퇴계 선생은 경북 안동에서 이곳 의령의 허씨 집안
(허원보의 손서이며 둘째아들 찬의 사위)으로 장가를 들어 처가에 왕래를 하였고, 처고모부인 수성제공의
집을 여러차례 드나들면서 집앞의 돌 벼랑에 예절을 소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고장이라는
가례동천이라는 네 글자를 지어서 남기었다.
밀양 박씨 졸당파보의 수성제공에 관한 기록에 “名其里曰 修誠 其洞曰 嘉禮洞天 載 宜寧郡誌“라 하고
“ 退溪題堂前石面曰 嘉禮洞天 至今 有四字刻”이라 하였다.
가례동천은 우곡동산(牛谷東山)의 서암(西巖)과 덕곡서당(德谷書堂)의 퇴계 암각문(巖刻文)과
함께 퇴계의 유묵선서(遺墨選書)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우산 제2활공장(:689m:10:08)
한우산은 야생 철쭉으로 아주 유명한 곳이라는데 고향이 이곳인 범여는 한번도 와보질 안했다
사실은 사람들 많은 곳은 딱 질색이니... 올 일도 없고...
제2활공장에는 찰비계곡(벽계계곡)의 도로를 따라서 백학마을로 가는 길이 나있다
제2활공장을 지나 오름길 계단으로 들어선다
찰비계곡에서 한우산 정상으로 오르는 구절양장(九折羊腸(의 도로가 희미하게 보인다
제2활공장을 올라서니 펑퍼짐한 정상이 나오더니 갑자기 예전엔 없던 풍력발전기가 괴물처럼 다가온다
안개속에 갇혀버린 풍력발전기
제3활공장(10:18)
이곳은 옛날에 한우산 제3활공장이었는데 지금은 풍력발전기가 즐비하다
지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나 이곳에서 좌측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삼각점봉으로 향한다
삼각점이 있어야 할 749.7봉은 풍력발전기 설치로 인해 봉우리 거의 다 날아가버리고 삼각점은 온데간데 없다
다시 도로로 내려와서 두리번 거리는데 엉뚱한 곳인 건너편 봉우리에 내팽겨져 있다
푸대접받는 749.7봉 삼각점
다시 왔던길을 되돌아 간다
조금전에 지나온 한우산과 좌측으로 의령의 진산이라는 자굴산은 짙은 안개로 인해 한치앞도 안 보인다
다시 제3활공장(10:26)
의령풍력발전이란 회사가 설치한 풍력발전기 지맥길... 산능선에다 25기의 발전기가 있는데 한놈도 돌아가지 않는다
능선에서 바라본 찰비(벽계)계곡의 모습
짙은 안개가 조금씩 걷히긴 하지만 계곡이 뚜렸이 보이질 않는다
찰비(벽계) 계곡은
의령군 궁류면 벽계리에 위치한 찰비 계곡은 이 마을 사람들은 벽계리에 있는 계곡이라
하여 벽계계곡이라고도 부른다. 찰비란 한우(寒雨)의 순 우리말의 이름으로 한 여름에도
겨울비처럼 차가운 비가 내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병풍처럼 둘러싼 산세에 명경 같이 맑은 물, 그 옛날 아름다운 신랑 신부의 혼례에 얽힌
전설을 간직한 각시소와 농소 그리고 아소, 누구나 시인이라면 저절로 시구가 줄줄 터져
나올 것 같은 비경에 잠시 젖노라면 저만치 흐르는 흰구름이 걸음을 멈춰 서고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 더없이 정겹다.
찰비계곡에는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격전을 벌였을 때 신라 애장왕의 부마가 이곳에서
전사하자 이를 비통하게 여긴 애장왕이 직접 전투에 나와 싸웠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는 능선을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급경사의 능선을 내려오니 도로가 나오고 대다수의 산꾼들이 도로를 따르나 수헌아우님과
둘이서 고집스럽게 원칙을 지켜보려 애를 쓰면서 다시 다 짤려나간 능선으로 오른다
좌측 능선으로 올라서니...
무명묘지 한기가 나오고...
곧 바로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 표시석이 있는 곳에서...
또 다시 시멘트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풍력발전기가 있는 쪽으로 올라선다
다시 풍력발전기 뒷쪽의 능선으로 접어드니...
화사하게 핀 진달래가 고향을 찿은 범여를 반기는 듯 하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소나무가 넘어진 능선은 참으로 거칠다
대단하십니다...편안한 임도를 두고 힘든곳에 올라와서 개고생을 하시는지...
힘들게 능선을 치고 오르니 조금전 헤어졌던 임도를 다시 만나나...임도옆 능선으로 다시 올라선다
지난해의 것이긴 해도 깨끗한 영지버섯 3개를 수확한다
녹색 리번을 달고 가시는 분도 대단해요
아무렇게나 버려진 간벌목으로 인해 초반부터 개고생을 한다
임도로 내려섰다가 다시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올라선다
#18 풍력 발전기 뒷쪽으로 들어서니...
진달래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다
561.8봉(11:00)
나 말고도 독한 산꾼들이 보이는구먼
잡목으로 우거진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선다
양성(陽城) 삼거리(540m:11:05)
예전엔 삼거리였는데 지금은 풍력발전기로 올라가는 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사거리가 되었다.
넓은 임도에는 자굴산.한우산 등산안내도가 있고, 우측엔 풍력발전기를 관리하는 건물이 보인다
이곳에서 우측 임도로 내려가면 가례면 양성리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이 지역사람들은 이곳을 정삼재라고 부른다.
가례면 양성마을은
산자락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양성마을은 옛날「갈골의 양지땀」이라 불렀다고 한다.
큰 산밑 남향받이 동네이니 지형과 좌향에 맞춘 지명이라 할 것이다.
협동으로「굼티말(굼턱말)」과「조마실」이 있는데「조마실」은 조(曺)씨만이 사는
동네라 한때에는 조촌이니 조씨동이라 부르기도 했다가 줄여서 조마실(조마을)이 된 것이다.
이 세뜸을 합해서 양성으로 정했다는데 성(城)은 성벽 또는 잿길이란
뜻 때문에 마을 이름에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다.
마을 뒤로는 긴 세월 민초들의 애환이 묻어 있는 버재(부자재), 정삼재등
아주 높고 험한 산고개 잿길이 있으니 이래저래 썩 어울리는 지명이다.
일제 때 가야광산이란 금채굴광산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경남도내에선
큰 규모의 금굴로서 양질의 황금이 많이 채굴되었다고 한다.
양성 삼거리에 서 있는 등산안내도
산능선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들
풍력발전기가 있는 임도에서 우측 절개지 능선으로 올라선다
등로에서 바라본 의령의 진산인 자굴산(闍崛山)과 쇠목재의 모습
의령군 서쪽 지역에 자리잡고 있으며, 합천군과 경계를 이루며 해발 897m로 의령군의 진산이다.
闍崛山은 한자로는 인도의 기사굴산 耆闍崛山과 연유하였 볼수있다
산이름의 한자 闍는 성의 망루자. 崛은 우뚝 솟을굴. "성문 위의 망루처럼 우뚝 솟은 큰 산"의 의미다.
산 이름은 도굴산. 사굴산의 한자음이 아닌 자굴산이 지방에서 불러온 고유명이다
북서쪽 비탈은 경사가 심하여 합천쪽에서 보면 마치 병풍을 두른 것처럼 보이지만
의령쪽에서 보면 산세가 완만하다. 좌굴산이라고도 한다.
산중턱에는 옛날 신선들이 놀고 갔다는 강선암과 갑을사지(甲乙寺址), 보리사지, 양천사지가
있고, 동쪽 산기슭에는 약 3m 깊이의 동굴과 금지샘이라는 천연 동굴샘이 있다.
금지샘은 병자호란때 청나라 군사가 이곳을 침입하여 말에게 물을 먹이려고 하자 갑자기 물이
말라 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또 조선시대에는 남명조식 선생이 이곳의 황홀한 경관에 홀려서
세월 가는줄 모르고 놀앗다는 명경대도 있다. 조선시대에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뤘던
남명(南冥)조식(曺植)선생이 60세에 지리산 자락에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후학을 양성했지만
28세에 이곳 자굴산 명경대에서 글을 읽고 뜻을 세웠다고 한다.
의령을 의병의 고장이라고 부르게 한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도 15세에 이곳 자굴산 보리사에서
수학했다는 기록이 망우당 전집에 남아있다고 한다
풍력발전기 능선을 치고 오르니 쉼터가 나오고 등산객들이 안 다니는지 먼지만 자욱하다
응봉산(鷹峰山:602.1m:11:15)
의령군 유곡면 상곡리와 가례면 갑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현지인들은 솔비산으로
부르는데 산봉우리가 송골매나 솔개의 대가리처럼 생겼다해서 붙여진 산이름이란다.
깨진 응봉산의 삼각점(△삼가 427)
바람이 불지 않는 탓인지 풍력발전기는 하나같이 멈춰있다
이곳도 진달래가 봄소식을 알리기 시작한다
응봉산 내리막길에서 바라본 가례면 갑을마을의 모습
가례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이십 리쯤 되는 깊숙한 골안 막바지 마을이다.
옛 촌명은「쇠목」또는 「쇠목촌」으로, 이 마을 바로 뒤쪽에 있는 산고개가
「쇠목재」인데 이 재이름 때문에 촌명도 그렇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자굴산의 우람한 덩치가 소머리고 동남으로 길게 뻗은 산줄기가 몸통으로
큰 황소처럼 생겼고 엉덩이 부분이 용덕의 신덕산(新德山)으로 보는 것이다.
「쇠목재」를 넘으면 대의면 모의골인데 옛날에는 사람들의 내왕이 잦았던 잿길이었다고 한다.
마을 오른쪽으로도 억센 산봉우리가 겹쳐진 청명산(청명산)이 길게 누워있다.
두 산맥사이에 너댓의 뜸이 형성되어 있는 이 골을 옛 문헌에는 「갈골」로 부르면서 「갑을골」이라고 하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에 비슷한 소리의 한자로써 甲乙로 고쳐 쓴 것으로 믿어진다.
마을뒤「목씨묏등」이라는 버덩의 고총 묘갈명에「項村」이라는 지명으로 쓰고 있는바
「목(모가지)」이나 「쇠목」이란 말을 한자로 바꾸어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응봉산에서 내려선 다음 다시 임도를 따라서 걷는다
임도에서 바라본 쇠목재의 모습
의령군 대의면 신전리에서 가례면 갑을리를 잇는 고개로 한우산과 자굴산 사이에 있으며
의령을 감싸고 있는 4대산은 자굴산, 한우산, 응봉산,신덕산으로 산 전체의 형상이 황소를
닮았는데 황소의 목처럼 생긴 고개라 해서 쇠목재(牛項峙)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꼬랑길의 자굴산 관광순환도로가 지나가고 있는 곳이다
임도를 따라서 걷다가 #24 풍력발전기에서 우측 능선으로 오르는데 그 이후엔 발전기가 없다
등로에서 바라본 유곡면 상촌리 계곡의 모습
의령군 유곡면에 있는 상촌리(上村里)는 응봉산자락과 마등산의 사이에 위치하여 대부분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촌천이 흐르고 남곡지가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남산, 오촌, 장곡, 김촌, 최촌, 포촌 등이 있다.
남산은 장곡 서쪽에 있는 마을로 난곡이라고도 하였다. 오촌은 장곡 중앙에 있는 마을이다.
장곡은 오촌 동쪽에 있는 마을로 장군이 날만한 골짜기라 하여 장곡이라 한다.
김촌은 장곡 서족에 있는 마을로 김씨가 많이 산다 하여 짐촌, 김촌이라 하였고, 최촌은 장곡
서쪽에 있는 마을로 최씨가 많이 산다 하여 최촌이라 한다. 포촌은 장곡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지막 풍력발전기 뒷쪽으로 올라서서 능선으로 오르니 매봉산이 나오는데
조금전에 지나온 응봉산은 뭐고 매봉산은 뭐란 말인가?...매 응(鷹)자 써니 같은 뜻일텐데...
매봉산(597m:11:30)
경남 의령군 궁류면 운계리·유곡면 상곡리·가례면 양성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북서쪽은 선암산(528m)·산성산(741m), 서쪽으로는 한우산(766m)과 연결된다
『조선지형도』에는 응봉산(鷹峰山)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조금전에 지나온 산이 응봉산이고 15분 지난곳에 매봉산이 있는데 상당히 헷갈린다
매봉산을 한자화하면 “매 응(鷹)”이니 똑같은 뜻인데 이름은 제각각이니...정리가 필요하다
어째던간에 인증샷은 남긴다
매봉산에는 예전에 헬기장인듯한 넓은 공터에는 상촌리와 마등산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매봉산의 넓은 공터에는 응봉산이라 표기되어 있고 영진 1/50,000지도에는 597봉으로 되어있다
넓은 공터를 내려오니 급경사의 내리막길에는 멋진 조망바위가 있으나
아직까지 안개가 다 걷히지 않아서 조망은 전혀 없는 편이다
꼬불꼬불한 급한 내리막길로 내려서는데 제비꽃들이 산꾼 범여를 반긴다
꼬깔제비꽃
고깔제비꽃은 제비꽃과에 속하며 고깔 오랑캐꽃이라고도 부른다.
어린순은 식용으로 먹을 수가 있으며, 풀 전체는 약재로도 사용된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에 분포한다. 꽃말은 ‘즐거운 생각’이다
보라색 제비꽃
뫼제비꽃인가?... 아리까리하다
제비꽃의 종류가 60여종이나 되니 늘 봐도 헷갈린다
개별꽃(꽃말:즐거운 생각)
고깔제비꽃은 제비꽃과에 속하며 고깔오랑캐꽃이라고도 부른다.
어린순은 식용으로 먹을 수가 있으며, 풀 전체는 약재로도 사용된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에 분포하며 꽃말은 ‘즐거운 생각’이다
생약으로도 사용되며 태자삼(太子蔘) 이라고도 한다
급경사를 내려오니 한창 벌목중인 등로 아래로는 능인상촌 마을이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유곡면 상촌리 능인상촌(能仁上村)
『여지도서』(의령)에 "유곡리(柳谷里)는 예전에는 '미요리(未要里)'라고 불렀다.
관아에서 북쪽으로 30리이며, 사면이 산으로 가로막혀 있다."라는 기사가 있다.
「능인상촌」발음대로「니인상촌」「니인웃말」이다.
그리고 옛날에는 유곡면이「능인」「미요」「정곡(정실)」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지금의 신촌·오복·상촌 등 긴 골짝인 능인촌(면)이었던 것이다.
옛 지명인 '능인'은 상촌리와 상곡리 사이의 골짜기에 위치한 '능인산촌' 마을지명과 관련 있다.
'능인'은 '능인적묵(能仁寂默)' 즉 석가모니를 뜻하는 범어로서 '능히 인(仁)을 행하는 사람'으로 해석되고 있다.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 의병훈련지가 있다
소나무숲길을 따라 걷는데 짙은 안개는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다
무명묘지를 내려서니 서낭당의 흔적이 있는 골짜기가 나오는데 부자재란 표지판이 붙어있다
부자재(467m:11:45)
의령군 가례면 양성마을과 유곡면 상곡리를 넘는 고개로 성황당의 흔적인듯한 돌무더기가 보인다
「버재재」또는「부재재」로 불리는데 옛날 이 골짝엔 사래논밭이 대부분이라서 어려운 민초들은
소작료를 바치러 곡식섬을 지고 이 고개를 자주 넘어 다녀야 했다.
재를 넘어오는 손님도 부잣집 일보는 마름과 지주들이 고갯길을 뻔질나게 넘어 다녀야만 소출을
조금 이나마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니 부잣고개로 이름 붙인 것이다. 버재(부자)」를 넘으면 유곡이다.
옛날 유곡에 살던 남(南). 강(姜), 이(李)씨 등 큰 부자들 때문에 생긴 재이름이다
부자재 정상에는 민초들의 애환이 서린 성황당의 흔적이 보인다
급한 오름길이다... 이른 아침에 해물 순두부로 아침을 먹은지 오래라 슬슬 허기가 지기 시작한다
병풍바위(11:50)
코가 땅에 닿을만큼 급경사의 오르막을 치고 오르는데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진다
575봉(11:58)
다시 편안한 능선을 따른다
얼레지(꽃말:바람난 여인)
올 봄에도 뭇 남성들의 얼마나 홀리려고 요염한 자태로...
나무 계단을 따라서 고도를 높이는데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기 시작한다
고려시대에 개경에서 요염한 자태로 뭇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했던 황진이만큼이나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얼레지
나무 계단을 올라서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594.9봉(12:07)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있는 지나니...
벌목지 너머로 가야할 신덕산이 보인다
내 고향집
냇가 옆 대나무 밭에서
햇살이 숨바꼭질하면
마당에선 장작 꼬개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오면서 저녁을 맞이 한다.
호롱불로 밝힌 방안에는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그윽하고
웟목에서는
점심 한끼를 채워주는 고구마가
요밀요밀하게 있다.
내일 아침을 위해
부뚜막에 운동화가 미소짖고
아궁이에 사랑이 타오르며
천장에선 생쥐가 드럼을 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고이 잠든
아 그리워라
그 곳...
유영인님의 詩
580.1봉(12:15)
이 대장! 이 친구는 언제 지나간거야?
안부(12:22)
신덕산(神德山:582m:12:25)
의령군 가례면 개승리와 용덕면 이목리, 유곡면 상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여기서부터 우봉지맥 분기점에서부터 같이해 온 가례면과는 아쉬운 작별을 한다
용덕면 이목마을 앞뒷산이 모두 신던산(옛문헌상 德山 또는 神德山)의 줄기이며
남동쪽만 빠끔히 열어 놓았을 뿐 두루 산이 에워싸고 있다. 산골 논이지만 군내서는
가장 값비싼 땅이라 이목 논 한마지기 팔면 의령 들논 두마지기를 살 정도였다고 한다.
일꾼들을 불러놓고 우리 「진배미(긴배미)」논서마지기를 아침나절에 다갈아 뒤비거나(뒤집다),
두룸(논두렁)다 바르기만 하면 내 사위로 삼겠다는 내기를 걸었던 유명한「진논배기」가 있다
신덕산 정상에서의 점심식사(12:25~13:05)
오늘은 당일 산행에다가 10시 가까운 시간에 출발한 탓에 끓여서 먹는 걸 포기하고 시간을
줄이기 위해 행동식으로 빵조각에다 우유로 대신하고, 소+맥 말아서 2잔씩을 나눠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예상했던 시간보다 꽤나 많은 시간이 흘러 버렸다
신덕산 정상에서의 인증샷
수도사 전경 (사진 - 펌)
수도사는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 이목리에 위치한 사찰로서 신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사찰로
절의 경내에는 대웅전 대신에 극락전이 있으며, 그 뒤에 칠성각과 동서 양편에 요사채가 있다.
또 축대의 계단위에는 높다랗게 누락을 올려서 만세루라 이름지어 놓았다.
662년 신라시대 문무왕 2년에 고승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그 뒤 송운대사 유정이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해지는 말로는 절의 뒷산에 흡사 병풍처럼
둘러선 바위가 있어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병풍바위라 하는데 당시 원효대사는 이곳에서 백여명의 불제자와
함께 수도를 하였다고 하며 이 때문에 절의 이름을 수도사(修道寺)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신덕산에서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완만한 내리막을 내려서는데 서서히 등로가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거친 잡목과의 부딪힘은 계속되지만 3월에 개고생한 연비지맥의 학습효과 때문에 견딜만하다
무명봉(13:15)
급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원추리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고...
길찾아 가기가 難解하다... 좌측으로 꺽어지면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묘지(13:20)
계속되는 잡목의 태클
무명봉(13:32)
산행을 하는건지 허들 경기를 하는건지...
멧돼지가 마구 파헤쳐진 묘지를 내려서니 임도가 보인다
나도 내일은 부모님 산소를 가는데 우리 부모님 산소는 저렇게 해놓진 안 했겠지
절티재(344m:13:35)
의령군 용덕면 이목리에서 유곡면 산곡리를 넘는 고개로 유서 깊은 고찰 수도사(修道寺)로
통하는 산고개잿길이「절티재」인데 절(寺)과 티에 재(峴)란 말이 겹쳐진 말이다
이목(마을의 지명유래는「절티재」밑 번덕에 아주 큰 돌배나무가 있었고 그 곳이 원래 마을터였다고 한다.
그러니 자연생 돌배나무(산돌배나무)가 마을의 상징이 되었고 또한 촌명이된 것이다.
배(梨)와 木에 村의 합성어인 셈이다. 마을 뒤로 높은 재가 있고 논밭길도 멀었을 뿐 아니라
화적떼가 자주 출몰해 괴롭혀 지금의 마을터로 이주했다고 하는데 고개먼당에 큰길이 있어서
「절티재」인데 그 재를 넘으면 능인상촌(지금의 유곡상촌)에 닿고 아랫등을 넘으면 갑을 양성으로
이어지는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로 변해있다
절티재(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오른다... 임도파들은 여기서 조심해야 한다
무작정 임도를 따라서 가면 지맥길과는 자꾸만 멀어진다
오르막길에서 만난 보춘화(報春化:꽃말...소박한 마음)
봄을 알리는 꽃이라는 뜻에서 보춘화(報春化)라고 하며 춘란이라고도 부르며 난은 사군자의
하나로 고결함과 청초함을 상징하고 있으며 향기도 진하여 많은 수묵화의 소재가 되고 있는 꽃이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꼿꼿함을 유지하기에 변함없는 절개와 지조의 상징으로 여져지고 있는데
그 중의 대표적인 난이 보춘화인데 남부 지역, 특히 바닷가 근처 산에서 주로 자라고 있으나 최근에는
남획으로 인해 개체수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맨발님... 한번도 뵙진 못했지만 꽤나 깐깐하신분 같다
421.4봉(13:47)
유인 김해김씨 묘지(13:57)
어디가 등로인지 구분이 안된다... 길은 전혀없고... 오랜 경험에 의한 감각으로 길을 이어간다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은 왜 그리도 반가운지...
379.7봉(14:05)
등로가 없는 길을 헤매면서 한참동안이나 개고생을 한 다음에야 뚜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석축을 쌓은 특이한 형태의 묘지가 보인다
후손들이 찾지 않은지 멧돼지가 묘지 자체를 작살을 내놨다...우리 부모님 묘소도 걱정이다
아예 봉분이 보이지도 않는 묘지를 지나니, 아주 관리가 잘되어 있는 묘지가 나온다
묘지에서 바라본 가야할 우봉산의 모습
은율송공 묘지(14:15)
묘지를 따라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우측으로는 수도사가 있는 이목리 골짜기가 보인다
매화 한그루가 흐드르지게 꽃을 피우고 있다
산 속에 농가 한채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유곡면 구오목 마을이 보인다
의령군 유곡면에 있는 오목리(烏木里)는 남쪽으로 낮은 산지가 펼쳐져 있어 대부분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으로 상곡천이 흐르며 자연마을로는 구오목, 평촌이 있다.
구오목은 오목리의 옛 마을로 지형이 오목하므로 오목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평촌은 오목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신오목이라고도 하며 비교적
평탄한 곳에 있다 하여 평촌이라 한다.
구오목재(舊烏木峴:14:20)
의령군 용덕면 이목리에서 유곡면 오목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2차선 포장도로에
고개 정상에는 이동통신탑이 고개를 지키고 있으며 좌측으로는 구오목마을 보인다
구오목은 오목리의 옛 마을로 지형이 오목하므로 오목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산불조심 팻말이 걸려있고...
이동통신탑이 있는 능선으로 올라 우봉지맥길을 이어간다
비교적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올라서니...
관리가 되지 않은 순창설씨의 묘지가 보인다
진달래가 만개한 편안한 등로를 지나니...
등로는 거칠어지기 시작하고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올라선다
373.5봉(14:40)
조그만 봉우리에 올라섰다가 내려서니...
봉분이 없는 없는 무명묘지 2기를 지나 우봉산으로 올라선다
우봉산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좌굴산과 응봉산의 모습
우봉산 정상에 오르니 주위는 시원스럽게 보이도록 벌목을 해놔서 시야는 확보가 되나
박무로 인해 모든게 흐리기만 하고 덩그러니 서있는 산불감시초소는 비가온 탓인지 감시원은 없다
우봉산 정상 삼각점(△남지 312)
우봉지맥 능선에 있는 삼각점은 한결같이 깨져있다
우봉산(牛峰山:372.3m:14:50)
경남 의령군 용덕면 용소리와 유곡면 오목리 정곡면 죽전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서
이곳 의령은 가야시대 이전에 남강의 문화권을 배경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한 왕국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지명 총람에 조사된 우두봉으로 한자로는 우두봉(牛頭峰)이지만 우리말로는
소머리 즉 우두머리를 표현하는 땅이름이다.
자굴산 너머 칠곡에는 가야 이전에도 우두머리가 통치하는 곳으로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었던 곳이다.
가야 시대 교통과 방어에 적합한 의령 지역으로 도읍지를 이전하였음을 알 수 있는
의령읍 북쪽의 우봉산 지명이다.
독자적인 세력권이 오랫동안 연결되어온 터전임을 밝히고 있으며, 즉 가야시대의 왕국이
형성될 수 있는 기반 세력이 칠곡에 있었음을 선돌 유적과 함께 땅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대부분 소, 서, 사 의 발음으로 우리말 ‘소’ 가 한자가 유입되면서 ‘우(牛)’자로 변하면서
우봉산이 된 것으로 보여지며 우리말 소머리 산을 한자로 우두머리 산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이 우봉산도 도읍지와 관련된 산 이름으로 밝혀지고 있다. 산 정상은 하늘과 통하는
길이라 하여 신성시 하였으며 특히 왕도의 동서남북 방향에 있는 산은 정기가 통하는
산으로 제사처를 정한 것이 여러 다른 왕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봉산 정상에서...
우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미타산과 천황산, 국사봉의 모습
아련히 보이는 저 곳이 범여가 태어나서 20년간 살았던 곳이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 교가에도 나오는 저 미타산은 서방정토에 있는 아미타불을 상징하는
산으로 산 아래에는 중학교 때에 자주 소풍을 다녔던 유학사라는 천년고찰이 있는 곳이다
칼로 일어섰다 결국 칼에 맞은 고려의 이의민, 조선 건국을 도운 무학대사. 모두가 미타산과 인연이 있다
우봉산 정상에는 무명묘지 한 기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가까운 중교리에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회장 생가가 있는 곳이다
풍수지리석으로 재벌이 난다는 소문 때문에 몰래 묘지를 쓰고 가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남쪽으로 저 멀리 보이는 능선이 낙남정맥 길인 역린의 산이라는 여항산과 서북산이 아련히 보인다
우봉산 정상에서 4시 방향으로 내려서는데 잡풀이 많다... 여름 산행시 고생을 많이할 듯 싶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선 다음 조금을 더 가니...
비교적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사람들의 다닌 흔적이 거의 보이질 않는 능선을 따라 내려가니...
벽진 이공의 묘지와...
유인 진양강씨의 묘지로 내려서니
임도가 나오는데 장군당재 삼거리이다
장군당재 삼거리(270m:15:18)
의령군 유곡면 오목리 신촌마을에서 용덕면 용솔리를 넘는 고개로 장군당재에는 영험이 있는
당산나무와 조산이 있었고 그 밑에 수구대장군(水口大將軍) 건륭46년(乾隆 46年) 안국서(安國瑞)라
새겨진 큰돌비가 서 있다는 기록이 있지만 임도를 만들면서 없어졌는지 실제로 찾을 길은 없다
풍수지리설에 있는 수구장문(水口藏門) 즉 골짜기 물이 멀리 돌아서 흘러가 저 밑 하류가
보이지 않게된 땅의 형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흔히 수구막이 또는 수구대장군이라는 글을
장승에 써서 세우거나 돌에 새겨 세우는 풍습에 결국 피재(避災)와 발복(發福)의 염원과
함께 허한지기를 비보하는 민속신앙의 한 가지라 할 것이다
장군당재 삼거리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서니 무명묘지 한 기가 나온다
이 분은 생전에 백화수복만 마셨던 모양이다... 묘지에는 정종병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생강나무가 꽃을 틔우기 시작한다
재선충으로 인해 벌목한 소나무 무덤을 지나니...
다시 거친 잡목의 저항은 시작되고...
357.8봉(15:35)
이장한듯한 묘지 옆에는 멧돼지의 목욕탕이 있다
밀성박공 묘지(15:39)
소나무 숲을 따라서 내려가니...
기독교인인 창녕성공과 부인 함안조씨의 묘지가 보인다
나뭇가지 사이로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막실고개를 지나가는 도로를 내려서기 직전에 서낭당 돌무더기가 보인다
막실고개(182m:15:50)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유곡면 신촌리를 넘는 고개로 사람들 왕래가 빈번했던 길로 막실음달재라고 한다
「막실(막곡)」로 돼 있는데 어느 세월 어떤 연유로「두곡(말실)」이 된 것인지 아는 이가 없다.
다만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일제정리 때 어감상 좋지 않은 「막」자를 「말 두(斗)」자로 바꾸었다고 봐서 옳은 것 같다.
동남쪽만 열리고 두루 산인데다 서북쪽은 높은 산줄기가 가로 막은 채 길고도 험한 산고갯길인
「막실재」(물론 요즘은「두곡재」라 부르기도 한다)가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옛 어른들은 제법 넓으면서 깊숙하고
초목만 울창한 골짜기인데다가 큰 재가 앞을 막고 있는 지형 즉 큰골이면서 막다른 골짜기이라서「막실(막골)」로
작명했던 것이며 굳이 한자로 적자니 막(莫)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유곡에서 정곡으로 이어지는 1011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정곡면 중교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우리나라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호암생가 뒷산 용미를 따라가면 유곡면 경계 막실재 좌우에는 마두(馬頭)란 동네 뒷산과
소뿔 같다하여 우봉산(牛峯山)이 있고 이 산은 두곡, 담안 마을까지 아우르며 정곡초등학교 앞까지
내려와 월현천에 머리를 잠그고 있는 잠용으로 호암생가는 용반산세에 용미혈에 위치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중다리(中橋)는 순수 우리말로 표현하면 ‘가운데다리’다. 남자의 상징이면서도 인체에 가장 신묘한 부분이다.
양반고을 선비의 점잖은 표현으로 중교 또는 중다리라 했지만 ‘가운데다리’에 대한 이 지역 민속적 이야기는 많다.
호암은 1910년 유학을 숭상하던 집안에서 출생, 1031년 일본화세다대학 유학, 1938년 대구에서
쌀 장사인 삼성회사를 설립, 1953년 제일제당 설립, 1954년 제일모집 설립, 1958년 안국화재 인수,
1961년 전경련 초대회장, 1963 동방생명과 신세계 백화점 인수, 1965년 삼성문화재단 설립 및 중앙일보사 설립,
1969년 삼성전자 설립, 1975년 용인자연농원개장, 1982 삼성라이온스 창단하는 한편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여
오늘의 세계적 삼성전자가 있게끔 터를 딱았다. 사업보국(事業報國) 인재제일(人才第一) 합리추구(合理追求)의
경영철학을 견지했다고 한다.
치밀한 재정관리와 인사관리로 오늘날 삼성그룹의 놀라운 조직력을 다진 기업인이며, 미래지향적인
사업확장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며 특히 1960년대말 20세기 후반의 첨단산업으로 부각되었던
전자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이 분야에 이미 진출해 있던 럭키금성그룹과 불화를 일으킬 만큼 기업의 발전을 위
해 비정한 측면도 있었다. 1960년대 중반 한국비료공장 밀수사건과 관련하여 한때 삼성그룹 내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은퇴한 적이 있었으나 곧 복귀했다. 이때 그룹을 이끌어가던 맏아들 맹희와 경영이념상의 차이를 보였는데
끝내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셋째 아들 건희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었다.
한국의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과 세계적으로 우수한 경영자에게 수여되는 세계최고경영인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우리가 잘 사는 길〉과 자서전 〈호암자전 湖巖自傳〉이 있다.(다음 백과사전 인용)
호암 이병철회장 생가터
풍수에 따르면 곡식을 쌓아 놓은 노적가리 형상을 하고 있어 주변 산의 기가 이곳에 혈(穴)이 되어 모인다고 했다.
이밖에도 남강의 기운과 우물로 상징화 된 용이 등장한다. 호암이 한국의 대재벌이 되었기에 이런 해석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 자산이 축적되어 있었고, 배움이 있었고, 정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이집은 호암의 천석지기 조부가 1851년 지은 것으로 증개축을 통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건축양식은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전형적인 일자배치 형식이다. 남서향의 사랑채와 안채가 있고 곳간과
우물 두 개가 있는 소담한 형태의 배치인데. 어쨌든 이 집터는 풍수지리에 몸 담은 이들이 말하기를 명당 중에
명당이라 칭송하는 곳이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은 배산임수(背山臨水) 전착후광(前窄後廣 ) 전저후고(前低後高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된 곳인데 다 갖춘 곳이란다. 일반적으로 좋은 집터는 바람이 없고 온화하고 안정된 기운이 서린 곳이라 했다
(사진& 글....펌)
막실재를 건너 시멘트 도로로 올라선다
시멘트 도로로 올라선 다음에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군부대의 벙커를 지나고...
체력이 슬슬 바닥나기 시작하더니 앞서가는 후배들과의 거리도 멀어지기 시작한다
다시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328.7봉(16:20~30)
삼각점은 판독이 안 되고...
328.7봉 삼각점 안내판
328.7봉에서 오늘 산행에 동참하기로 했다가 하지 못한 현오님이 보시한
소보르빵과 우유를 먹으면서 10분정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328.7봉에서 조금 앞으로 갔다가 우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간다
등로가 거칠기는 하나 산행을 못할 정도는 아니다
279봉(16:42)
279봉 가운데는 가선대부를 지낸 평산신공의 묘비가 잡초속에 묻혀있고 직진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이는데 이병철 회장의 생가 뒷산으로 이어지는 숯골산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지맥길은 좌측으로 반원형을 그리며 내려선다
279봉 정상에 있는 평산신공의 묘비
봉분이 거의 없는 무명묘지로 내려서니 막실고개 위에서 헤어졌던 임도가 나온다
임도로 내려서니 좌측에는 가건물 형태의 유곡농장이 나오는데...
유곡농장(16:45)
농장은 안보이고 쓰레기같은 잡동사니만 잔뜩 갖다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겁박하고 있다
유곡농장을 지나서 다시 좌측 임도로 올라선다
뭘하는지 한참 공사중이라 그런지 등로는 아주좋다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들어서는데 잡목들의 태클이 하도 심해서 미칠 지경이다
갈 길은 먼데 잡목들의 태클은 심해지고...
조그만 능선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318.3봉(16:56)
334.1봉(17:02)
유순한 등로를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307.1봉(17:08)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임도가 나오고...
임도(17:12)
임도에서 내려섰다가 다시 등로로 올라선다
무명봉(17:15)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니 임도가 나오는데 오방삼거리이다
오방삼거리(260m:17:18)
의령군 정곡면 오방리와 유곡면 마두리의 경계에 있는 곳인데 뒷측으로는 막실고개,
우측으로는 세간마을, 좌측으로는 옥녀봉으로 간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지명의 유래는 이 임도 우측 아래에 있는 오방마을에서 따온듯 하다
오방마을은 정곡면 소재지에서 신반쪽 오리길 남짓한데 쏙 들어앉은 마을로 유곡면과 경계를 긋는 달재
바로 밑에 위치해 있는 마을로 보통 정곡「오뱅이」라 부르며 먼저 철성 이씨(고성 이씨) 집성고촌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큰 인물이 많이 배출된 동네다. 마을 어귀의 논두렁 밑에 자연석 표석이 있는데
오방(五榜)이라 새겨져 있다.
「다섯 방문(榜文)」글(여러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 써 붙이는 글, 벽보같은 것)이란 뜻이다.
큰 인물과 관련되는 지명이며 흔치 않은 지명의 유래인데, 지금 쓰는 오방(五方)은 일제 때 쉽고
편리한 글자로 바뀌면서 소리(음)는 같지만 뜻은 엉뚱하게 변해졌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오방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
임도에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면 임도와 등로를 숨바꼭질하면서 걷는다
299.3봉(17:28)
299.3봉 맞은편에는 무인산불감시초소가 있는 303봉이 보이는데 비가 오려는지
날씨가 어둑해지기 시작하니 후배 산꾼들이 내 성격을 아는지라...
‘선배님 달재까지 가려면 아직도 가야할 거리가 많이 남았는데 좌측 임도로 빠지시죠?’
하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하여 내가 양보를 하여 좌측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17:34)
임도에서 우측의 303봉을 바라보니 오르지 못한게 두고두고 아쉽기만하다
임도 바리게이트(17:40)
옥녀봉으로 오르는 길은 바리게이트로 막혀있다
임도 우측의 낮은 능선이 우봉지맥 길이다
옥녀봉갈림길(17:42)
이곳에서 옥녀봉까지의 거리는 왕복 2km 남짓 아무리 임도로 걷는다해도 30여분은 족히
걸릴듯 하고 그렇다고 지맥길 능선도 아니라 이번에는 내가 과감하게 포기를 하고 달재로 향한다
능선으로 들어서니 오래된 묘지가 나오고 묘지를 치고 오르니 잡목의 저항이 엄청 심하다
310.7봉(17:50)
310.7봉을 내려서면서 고향에서 개인택시를 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18시 30분까지 날머리인 달재까지 와 달라고...
무명묘지를 따라서 등로 아래로 내려서니...
임도가 보이고...
능선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옥녀봉이 아쉬운 듯 물끄러미 산꾼 범여를 바라본다
옥녀봉(玉女峰)은 유곡면 덕천리 앞산으로 옛날 옥녀가 거기에서 놀았다 하여 옥녀봉이라 한다고들 한다.
옛날 옥녀가 시집을 갈 때, 말을 타고 갔는데, 지금의「마두」는 옥녀가 타고 간 말머리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마두」라 하며 지금의 신촌은 말꼬리에 해당되는 곳으로 옛날은「말미」인데 줄여서 「메미(끝)」이라 한다고 한다.
옥녀는 얼굴도 아름다웠지만 길쌈도 잘 하였는데 덕천 뒷산에「가락등」,「물레등」이
있다고 하며 옥녀가 시집갈 때 농을 가지고 갔는데, 지금 마두 근처에「농덤(농바위)」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세간 뒷산을 옥녀가 놀았다고 하여「꽃밭등」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봉수면 서득리에서 유곡면으로 넘어가는 재가 「직금재」인데, 본래 옥녀가 직금마을에서
비단(명주)을 짰는데,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서 옥녀와 같이 놀다가 하늘로 올라가곤 하였다고 하는데,
옥녀가 「직금(織錦)」즉 비단을 짠 곳이라 하여 그곳을 「직금마을」이라 하고 마을 뒤에 있는 재를
「직금재」라 부른다고 한다. 너실앞으로 흘러내려 오는 개울물이 굽이치는 곳에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 위에 강씨 문중의 장암정이 있다. 옛날 그 장암정 밑의 소에 옥녀가 와서 발을 씻고 놀았다고 한다.
본래 그 내는 지금 도로가 나 있는 옥녀봉 산밑으로 흘러서 세간 쪽으로 갔다고 하는데, 표씨 선조의 묘를
쓴 곳이 옥녀의 발등이라고 하는데, 그 묘를 쓴 이후부터는 내가 덕천마을 쪽으로 흘러가게 되었다고 한다
임도(17:57)
시간을 줄이기 위해 표고점이 없는 봉우리라 후배들이 그냥 임도로 가잔다
조금은 찜찜한데 여태껏 참았던 빗줄기가 제법 굵게 쏟아지기 시작한다
임도를 따라 오다가 다시 능선으로 들어선다
봉분이 땅바닥에 붙어버린 무명묘지를 내려서니...
급경사인데다가 비가 온 탓인지 상당히 미끄럽다
하빈이씨 숭조당(16:05)
통정대부를 지낸 하빈이씨 숭조당이 나온다
50여년전에 내가 의령으로 다니던 시절에 도로로 내려선다
그 아래로 새로 생긴 내 고향 신반에서 의령읍내 이어지는 20번 국도가 지난다
달재로 내려서는 무모한 길
이곳에서 좌측으로 200m 정도 가면 편안하게 내려오는 길이 있었는데 내려온 다음에야 알았다
달재(月峴:16:15)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정곡면 오방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0번 국도가 지난다
달재 달재(다래재, 월현(月峴), 월나현(月羅峴)이라 쓰기도 한다) 바로 밑에 오방마을이 위치해 있다.
보통 정곡「오뱅이」라 부르며 먼저 철성 이씨(고성 이씨) 집성고촌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큰 인물이 많이 배출된 동네라고 하며 이곳에서 10분이 채 안걸리는 거리에 이병철 회장의 생가가 있다
옛 문헌에도 월라현하세간원유(月羅峴下世干院有)라는 기록으로 보아서 달재를 넘어서 세간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세간이란 지명은 오래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니차이(미찬이)」로 부르게된 연유를 알 수 없다
도로가에 있는 쇠뜨기
약간의 비가 내리고 짙은 안개로 인해 조망권은 별로였지만 그래도 내 고향길을
걷는 범여로서는 가슴이 뿌듯하다... 그리고 같이 걸어준 후배 산꾼들이 참으로 고맙다
약속한 시간에 친구가 택시를 가지고 와서 궁류면 일붕사를 거치고 찰비계곡의
구절양장 도로를 따라서 40여분간 택시를 타고 한우산 정상아래 주차장에
도착하니 어둠이 쫙 깔리고 나의 愛馬만이 쥔장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친구와 작별을 하고 나의 애마로 쇠목재를 지나 가례면소재지를 거친 다음에 의령읍내에
도착하여 숙소를 정하고 샤워를 마친 다음에 의령 한우로 유명한 경복궁 식당에서 소.맥으로
찐하게 말아서 거하게 한잔을 한 다음에 숙소로 향한다
'의령(우봉)지맥(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령(우봉)지맥 제2구간 - 달재에서 기강나루 합수점까지 (0) | 2017.04.03 |
---|---|
의령(宜寧:우봉지맥:牛峰枝脈)와 지도 (0) | 2012.08.18 |
의령(우봉)지맥의 개요 (0) | 2012.01.20 |
의령(우봉)지맥의 지도및 고도표 (0) | 2012.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