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안 된 산행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가르쳐 준 장성봉 대간길
☞ 산행일자: 2017년 8월 19일
☞ 산행날씨: 흐린날씨에 짙은 안개...오후에 비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11km + 어프로치 약 5km + 알바 6km / 10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버리미기재-암봉-장성봉(3)갈림길-무명봉-장성봉 갈림길-옻골재-장성봉(8)갈림길
장성봉(9)갈림길-애기암봉-다시 장성봉 갈림길-절말 이정표-장성봉-이정표
830m봉(막장봉 갈림길)-절말갈림길-막장봉-다시 830m봉(막장봉 갈림길)-안부- 852m봉
안부-827m봉-암봉-안부-지붕바위-780m봉-804m봉-809m봉-787m봉-폐헬기장
악희봉갈림길(왕복)-악희봉-820m봉-안부-722m봉-철계단-암릉지대-은티재-은티마을
☞ 소 재 지: 경북 문경시 가은읍 / 충북 괴산군 연풍면, 칠성면
난 요즘 SNS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글을 잘 올리지도 않고 특별한 사안이 아니면 보지도 않고 지운다
왜냐하면 자꾸만 인간미가 줄어들고 사람들이 휴머니스트가 아닌 인스탄트화가
되어 되어 가는게 너무 싫다...3주전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부탄으로 1주일동안
여행을 갔다와서 느낀바가 너무도 많다
우리나라가 부탄이란 나라에 비해 富는 엄청나게 높을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적인 삶은 아주 피폐하다
우리가 그들보다 월등하게 잘 사는데도 불구하고 모든게 불만족스러운 것은 아마 SNS의 영향도 크리라 생각한다
얼마전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던 육군대장 부부의 갑질사건, 재벌들의 횡포, 그리고 살충제 게란 사건에다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백척간두의 풍전등화 같은 국가 안보 문제에도 다들 왜 그리 태연하고 무심한지...
그런데도 대통령께서는 취임 100일을 맞아 토크쑈를 하는데 민초들의 고단함은 眼中에도 없고 모든게 자화자찬으로
들리니 비단 범여만의 편협한 생각일까?
정치를 하시는 분들 제발 SNS같은 걸로 선동 정치가 아닌 민초들의 고단함을 헤아려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요즘 사무실에 있으면 모든게 답답하기만 하다...어케 살아야 할지...모든걸 털어버리고 산으로나 들어갈까
이런 저런 생각끝에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은 생각에 백두대간의 한 구간인 버리미기재로
가기 위해서 서둘러 베낭을 챙겨서 문경시 가은읍으로 가는 막차를 타기위해 동서울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 가은행 버스표
집에서 출발하여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시간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어 터미널 바깥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가락국수와 김밥한줄로 저녁을 해결하고 18시 10분에 가은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니 어둠속에 어디가 어딘지를 모르겠다... 이 버스는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달리다가 국도로 빠져나와
건국대 충주 캠퍼스, 문경을 거쳐 늦은 저녁 시간에 가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가은 버스 정류장(21:00)
이 버스는 가은이 종점이 아니고 이곳에서 상주시 농암을 거쳐 은척이란 곳이 종점이다
버스정류장 이름이 “가은아자개 장터 버스 정류장”이다
아자개라면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아버지인데 아자개가 가은 출신인 모양이다
하긴 이곳에서 가까운 속리산 아래 하북면에 견훤산성이 있고, 갈령 삼거리 근처에 견훤이
목욕을 했다는 못재, 그 맞은편에 대궐터산이 견훤과 연관이 있으니 이해가 되는구나
이곳에서 내려서 서울에서 출발하면서 예약해둔 둔덕산 가든으로 택시를 타고 간다
둔덕산 가든(21:15)
가든에 도착하여 샤워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 6시에 일어나 간단하게 씻고 내려오니
쥔장 사모님께서 육계장을 맛있게 끓여 주시고, 점심식사로 주먹밥과 물 김치를 싸주신다
쥔장이 스타렉스로 손수 운전하여 버리미기재까지 태워 주시는데 아직까지 국공파는 출근하지 않았다
가든에서 10분정도 차를 타고 올라오니 버리미기재에 도착을 한다
버리미기재(06:35)
경북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칠성면의 경계에 있는 재로서 922번 지방도가 지난다
버리미기재의 지명유래는 옛날 기근이 심할 때 조그만 밭뙤기를 빌어 먹이던 곳이라는 뜻이고
또 ‘보리로 밥을 지어 먹이다’라는 궁벽한 곳이라는 뜻이다
또다른 유래는 ‘빌어 먹이다’라는 경상도 방언에서 유래된 지명이기도 하며 제3의 설은 아홉번 시집을 가서
낳은 자식을 벌어 먹이던 팔자가 쎈 주막집과부가 넘나들던 고개라는 유래도 전해지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대야산 북쪽 영남대로가 통과하는 문경새재가 양반의 길이였다면
대야산 주변의 고개들은 배고프고 지친 民草들의 고개였다고 한다
한편 산경표와 문헌비고에 의하면 희양산과 대야산 사이에 주현(周峴)이라는고개가 있었는데
주의(周衣)를 우리말로 두루마기라고 하는데 이를 미루어 주현을 두루마기 고개라고 하던것을
변음이 되어 버리미기재라 된 것은 아닐지?
버리머기란?
경상도 말로 ‘벌어먹이다’에서 유래한 사투리이다.
손바닥만한 좁은 땅에 의지하며 가난하게 살아간다는 뜻이다.
‘가난할수록 情은 깊다’는 옛말이 있거늘 오늘의 버리미기재는 전혀 그렇지 않다.
버리미기재에 있는 국공파 초소
대야산에서 내려오는 초소 뒷쪽과 장성봉으로 오르는 등로에는 예전에 개구멍이 있었는데
지금은 철제 휀스로 완벽하게 틀어 막아 놓는 바람에 곧 바로 오를수 있는 방법이 없다
국공파들의 출근 시간이 아직 멀었기에 산장지기 쥔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장비를 점검하고 산행 준비를 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6:40)
예전에 이곳을 2번이나 지나갔지만 서슬퍼런 국공파의 등쌀에 못이겨 2번을 다 밤에 지나갔다
원래 들머리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올라가야 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좌측으로 오른다
좌측 능선으로 오르자마자 우측으로 올라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장성봉으로 향한다
암봉(07:10)
암봉에서 바라본 대야산 방향
버리미기재에서 30분 정도 걸려서 올라오니 갑자기 10m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 짙은 안개가 몰려온다
단속구간이라 가지 말라고 하면서 쏠라 표시등은 뭔가... 세상사 모든게 이율배반적이다
장성봉(3)지점(07:15)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나뭇잎에 묻어있는 빗물에 금방 옷이 다 젖어 버린다
무명봉(07:20)
무명봉 내리막길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조망봉(07:22)
조망봉에는“장성봉 119솔라 표시등-02” 가 있고...
조망봉에서는 짙은 안개로 인해 五里霧中이다
장성봉 갈림길(07:23)
대형 사고를 치다...이곳에서 장성봉으로 가려면 좌측으로 꺽어져 올라서야 하는데 직진을 한 것이다
이곳을 2번이나 지나갔지만 2번다 국공파의 등쌀에 못이겨 컴컴한 밤중에 지나갔고, 지맥길과는 달리
대간길은 뚜렸하고, 더군더나 2번이나 걸었던 경험이 있기에 최근의 대간길은 지도도 안가지고 다닌다
거기다가 좌측으로 오르는 길은 잘 보이질 않고 직진 방향으로 눈에 익은 시그널이 보이길래 아무런
의심도 없이 직진 방향으로 향했다
대간길에서 자주 만나는 시그널
갈수록 안개는 짙어지고...
멋진 암릉들이 연이어 나오고...
어랴! 예감이 이상하다... 하는 수 없이 남원에 사는 젠틀맨님에게 SOS를 친다
이 구간의 지도를 카톡으로 좀 보내달라고 하니 외부에 나왔 있다고 한다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한다... 핸드폰 밧데리를 100% 충전을 해 왔는데 산행을 한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17%밖에 밖에 남지 안았다는 표시가 뜬다... 참으로 난감하네
옻골재(07:50)
이때까지는 여기가 옻골재인지도 알 지못하고 간다
조진대님의 시그널
대한민국 맥길 산행의 대가이신 분의 시그널이 걸려 있으니 추호의 의심도 하지않고 걷는다
그렇다고 이 길이 지맥길도 아닌데...당연히 대간길이겠지
멋진 암봉은 계속되고... 예전에 밤에 지나갔으니 모르고 갔겠지 생각하고...
장성봉이 나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나타나질 않고...
또 쏠라등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예감이 이상하다
하는 수 없이 수헌아우한테 전화를 하니 지금 야영중이란다
핸드폰 밧데리 다 되어 간다고 경고음이 울리고 하는 수 없이 최악의 경우를 위해 핸드폰을 끈다
그런데 바로앞에 대간길에서 눈에 익은 대전홀산아님의 시그널이 보이길래 의심없이 또 간다
장성봉 7지점 표지판이 나오는데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또 대간길에서 자주 만나는 안동막가님 시그널이 보이는게 아닌가?
안부에 떨어진 다음에 로프를 타고 암릉길을 올라서고...
장성봉(8)지점 이정표(08:10)
쏠라등이 보이는데 설마 대간길이니까 있겠지?
또다시 로프를 타고 오르니...
멋진 암릉들이 보이고...
斷石
장성봉(9)지점 이정표(08:25)
아무래도 예감이 이상하다... 버리미기재에서 장성봉까지 1시간 이내에 오를 수 있는 거리인데
1시간 반이 더 걸렸는데도 장성봉은 나오질 않고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그때마다 대간길에서
자주 만나는 띠지들이 보이니 내가 걸음이 느려서 그렇나?
계속되는 멋진 암봉
안개는 자꾸만 짙어지고...
멋진 금강송도 간간히 보이고...
또 로프지대가 나오고...
암릉구간의 급경사를 올라서니...
이게 뭐야?...정상에 올라서니 앙증맞은 정상석에 애기암봉이라 써있지 않은가?
그때서야 대형 알바를 한 것을 느낀다... 하는 수 없이 핸드폰을 켜서 수헌아우에게
물으니 정반대로 갔다는게 아닌가...그리고 젠틀맨님이 카톡으로 지도를 보내 왔네
갑자기 다리가 풀리기 시작한다...속된말로 엄청나게 김이 세어 버리는 느낌이다
애기암봉(746.6m:09:00)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에 있는 봉우리로
산모양이 장군이 나올만 하다고 하여 애기암봉(애棋岩峰)이라고 칭하였다
그래 내가 언제 애기암봉에 올 일이 있겠나?... 나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다시 장성봉 갈림길(10:40)
2시간 15분에 걸쳐 6km 가까운 알바... 산행 大家로 자처하는 범여로서 치욕적인 하루이다
씨건방지게 지도도 안 가지고 핸드폰 밧데리도 신경 안쓰고 무작정 산에 올랐다가 개고생을 한다
오만과 씨건방지지 말라는 준엄함을 오늘 산에서 또 하나를 배운다
애기암봉에서 장성봉 갈림길까지 되돌아 오니 산행이 배로 힘이드는 느낌이다
이곳까지 와서 다시 우측으로 꺽어져 올라 장성봉으로 향한다
철쭉 군락지를 지나니...
국공파들의 경고판이 보인다
절말 이정표(10:47)
장성봉 정상 직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서 되돌아와서 절말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애기암봉 방향으로 출입금지 팻말이 있다
표식을 알 수 없는 장성봉 정상 삼각점
장성봉(長城峰:915.3m:10:48)
경북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칠성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가은읍 서쪽에서
백두대간을 떠받치고 있는 산으로 거대한 만리장성 일부를 보는듯 하다하여 붙혀진 지명으로
북쪽에서 남진하는 백두대간이 희양산이 서쪽으로 꺽어졌다가 악휘봉을 솟구친 후 다시 직각으로
꺽어 대야산으로 치닫는 중간에 솟아 있으며 이곳 장성봉을 중심으로 시계바늘 방향으로 악휘봉,
구왕봉, 희양산, 암봉, 둔덕산, 대야산, 군자산 등이 원을 그리듯 에워싸고 있는 심산유곡이다.
장성봉 정상에서 맛이간 범여
장성봉 정상 뒷편으로 산꾼들의 띠지가 많이 보인다
그러나 원래 대간길은 되돌아와서 절말 이정표 방향으로 가야 한다
많은 산꾼들이 장성봉 뒷쪽으로 갔다가 계곡으로 다시 올라온 모양이다...띠지들이 많이 보인다
등로에 암릉도 보이고...
이정표(11:00)
막장봉 갈림길(11:10)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막장봉으로 곧바로 가는 길이다
830m봉(11:12)
출입금지 팻말이 있다...오늘 산행의 최종 목적은 배너미평전까지 목표로 잡았는데 2시간 이상을
훨씬 넘게 헛짓거리를 하는 바람에 아무래도 배너미 평전까지는 무리일 듯 싶다
그럴바에는 오랫만에 막장봉에라도 갔다와야 되겠다 싶어서 이곳에서 막장봉으로 향한다
막장봉 방향으로는 일반 산악회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절말(雙溪里) 갈림길(11:20)
이곳에서 우측으로는 괴산 칠성면 쌍곡리 절말로 내려가는 계곡으로
시모살이골이라 부르는데 멋진 청정계곡이라 그런지 안내산악회의 띠지가 많이 보인다
절말(雙溪里)이란 서당말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옛날 절(寺)이 있었던 마을이며 살구나무골
내(川)와수청 바위골 내(川)가 마을 앞에서 합수(合水)되므로 쌍계리(雙溪里)라 부른다
옛날 부모가 돌아가니 후 수년동안 시모살이를 한 효부가 이 골짜기에 있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란다.
로프가 있는 급경사를 올라서 막장봉으로 향한다
막장봉 정상 이정표
좌측으론 재수리재 방향인데 그쪽에서 일반 등산객들이 많이 올라온다
재수리재는 괴산군 청천면과 칠성면의 경계에 위치하여 이 고개에서 남으로 흐르는
물은 청천면으로 북으로 흐르는 물은 칠성면으로 나뉘어 흐른다하여 재수리재라 한다
막장봉(幕場峰:868m:11:30)
문경시 가은읍과 괴산군 칠성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살구나무골에서 갈라지는 시모살이골이
협곡을 이루어 탄광의갱도처럼 생겨 그 마지막에 있는 봉우리라하여 막장봉이라 부른다
막장봉 정상에서 셀카로 인증샷
막장봉에서 내려와 다시 대간길로 향한다
되돌아 온 대간길(11:45)
대간길인 830m봉으로 되돌아 와서 출입금지 팻말 너머로 월담을 한다
조금전 막장봉과는 달리 아무도 다니지 않는 호젓한 등로를 나홀로 걷는다
852m봉(11:50)
조금전에 대형 알바 탓에 시그널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
852m봉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서니...
안부(11:55)
족필(足筆)
노숙자 아니고선 함부로
저 풀꽃을 넘볼 수 없으리
바람 불면
투명한 바람의 이불을 덮고
꽃이 피면 파르르
꽃잎 위에 무정처의 숙박계를 쓰는
세상 도처의 저 꽃들은
슬픈 나의 여인숙
걸어서
만 리 길을 가본 자만이
겨우 알 수 있으리
발바닥이 곧 날개이자
한 자루 필생의 붓이었다는 것을
(이원규·시인, 1962-)
안부에서 다시 827m봉으로 오르는 길은 암릉구간으로 힘이 부친다
산행을 해 본 산꾼들은 잘 알겠지만 알바를 하고나면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속된 말로 김이 완전히 세는 기분이다)
오늘은 나도 나 자신을 모르겠다...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처럼...
암릉구간을 오르는데 조금 넓은 바위에 바람이 살짝 불어온다
힘도 들고 허기도 지고 이곳에서 베낭을 내리고 점심 밥상을 푼다
일단 웃도리를 벗어 스틱에다 말리고...
점심식사겸 午寢(12:00~12:50)
산장 쥔장이 싸준 주먹밥으로 점심 요기를 하고나니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어차피 오늘 산행은 배너미평전까지 가기는 틀린것 같고 은티재에서 마감을 지으려 하니
오히려 맘이 편해진다... 그러기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에서 베낭을 베개삼아 잠을 청한다
밥을 먹고 잠깐 눈을 붙인다는게 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보니 30분정도 잠을 잔듯 싶다
다시 일어나 서둘러 베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조금전 내가 걸어온 등로의 궤적
암릉구간을 계속 올라간다
희양산이 보이고... 오늘 저 구간을 넘어서야 하는데 아무래도 힘들듯 하다
827m봉(12:53)
암봉(12:55)
암릉구간을 지나 우측으로 살짝 꺽어서 내려서니...
암릉구간이 나오고...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버섯들이 많이 보인다
다발방패버섯
전체가 황백색이고, 여러개의 갓이 맥관연락하여 집단으로 성장한다
조직은 백색을 띠고, 뚜껍고 유연하나 건조하면 단단해지며, 맛은 약간 쓰고
냄새는 일반적인 버섯향이다
꽃흰목이 버섯
고사목에서 주로 자생하며 흰목이 버섯처럼 일반적으로 나무의 수피가 갈라진 곳에서 나온다
자살체 전체가 갈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안부(13:00)
다시 오르막길 ...멋진 바위가 보이고...
전망바위가 나오고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선다
지붕바위(13:05)
범여의 생각 中에서
또 다시 안부를 만나고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780m봉(13:10)
지나온 장성봉과 막장봉은 조금씩 멀어지고...
등로에서 바라본 봉암계곡
조망바위(13:12)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조령산과 신선봉의 모습
다시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니...
계속해서 암릉구간이 나오고 오늘따라 라디오까지 가져오지 못한 바람에 참으로 외롭게 걷는다
804m봉(13:20)
등로에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809m봉(13:35)
멋진 소나무도 예전 그대로인데 자꾸만 나만 변하는거 같구료
능선을 지나는데 갑자기 등산객 한명을 만나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사실 산에서는 갑자기 만나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
이 분은 나를 만나더니 악휘봉 갈려면 멀었냐고 물어본다
악휘봉을 한참 지나왔다고 하니 난감해 한다
내가 악휘봉까지 같이 갈테니 걱정말라고 하니 그때서야 안심하고 내 뒤를 따라서 온다
조금씩 다리가 무디어지면서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787m봉(13:42)
암릉구간을 지나 부드러운 등로를 걷는데 갑자기 칠점사 한마리가 지나가는데 얼마나 놀랬는지...
칠점사란 놈은 뱀 중에서도 가장 독이 강해 이 뱀한테 물리면 일곱걸음을 걷지 못하고 죽는다는 뱀이다
그리고 공격성이 강하여 산꾼들에겐 아주 경계의 대상인데 얼마나 빠른지 카메라로 잡질 못했다
공터를 지나 내려서니 폐헬기장이 나온다
폐헬기장(13:53)
헬기장에서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또다시 花蛇 한마리가 지나간다
요즘 산에서 좀처럼 뱀을 만나기 힘드는데 오늘은 벌써 2마리나 만난다
국립공원 말뚝이 보이고...
안부(14:10)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악희봉 갈림길로 올라선다
악휘봉 갈림길(821m:14:20)
악휘봉으로 가는 갈림길인데 예전에 있었던 이정표는 망가져 버렸고 띠지만 어지럽게 걸려있다
그리고 표식을 알 수 없는 삼각점만 갈림길 정상을 지키고 있다
조금전에 등산객이 이곳을 놓치고 무작정 편한 길을 걸어왔다고 하면서 선생님 아니면
무작정 갈뻔 했다고 무척이나 고마워 한다
표식을 알 수 없는 악휘봉 갈림길 삼각점
악희봉 갈림길 정상 아래에 베낭을 벗어놓고 악휘봉으로 향한다
선바위(14:25)
악휘봉 오르는 벼랑위에 4m 높이의 입석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촛대바위 또는 선바위(立石)라고 부르는데 아마 이 바위 때문에악휘봉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이다
악휘봉의 정상부근은 온통 기암괴석과 노송, 고사목으로 이루어져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하는데
인근의 희양산에 비하여 바위의 덩치가 작을뿐 모양이나 기묘한 형상은 더없이 아기자기하며 아름답다.
정상에서의 조망 역시 뛰어나 북에서 동으로 월악산에서부터 신선봉, 조령산, 주흘산,
이화령이 조망되고, 동쪽으로 구왕봉, 희양산, 이만봉.. 서쪽으로 덕가산, 칠보산, 군자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다시 급경사 암릉으로 올라 악휘봉 정상에 올라선다
선바위 정상석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악휘봉 정상으로 오른다
선바위에서 바라본 오늘 내가 걸어왔던 대간길
악휘봉(樂熹峰:845m:14:32)
악휘봉은 괴산군 연풍면과 칠성면에 자리하고 있으며 기암과 짝을
이룬 소나무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산이다.
예전부터 불려진 이름이 ‘악희봉’인지 ‘악휘봉’인지는 분명치 않다.
악휘봉 아래 마을인 연풍면 적석리 일대에 장구목과 거문고를 탔다는
금대, 무등실 등 풍류와 관계되는 지명들이 많아 풍류 ‘악’자와 논다는 뜻의
‘희’자를 써 ‘풍류하며 논다’는 뜻의 ‘악희봉’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지간에 입석리마을 자랑비에는 악휘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북쪽에서 악휘봉을 보면 평범한 산 같지만 산에 올라보면 아슬아슬한 암벽지대와
군데군데 서 있는 고목이 중첩돼 있어 사방을 둘러보아도 조망이 어디 허한 곳 없이 가득하다.
악휘봉 정상에서 인증샷
악휘봉 정상에서 바라본 희양산과 구왕봉의 모습
악휘봉 정상에서 바라본 괴산군 연풍면 적석리 입석마을의 모습
괴산에서 34번 국도를 따르다보면 군자산, 보배산이 있는 쌍곡계곡이 나온다.
그 다음 나타나는 계곡이 덕가산과 칠보산으로 들어가는 각연사계곡이며
그 다음이 악휘봉 산행 기점이 되는 반계정이 있는 입석마을이다.
입석마을 자랑비에 따르면 입석이라는 마을 이름은 악휘봉의 선바위에서 유래되었으며,
서남간의 덕가산을 기봉으로 하여 악휘봉(새봉)이 있으며 동북으로 노적봉(백미산)과
서북으로 송시봉으로 이어지는 봉황의 깃안에 약 400여 년 전에 터전을 잡은 마을이라 한다.
마을 골골이 전설과 유래가 있어 붙여진 애잿날, 장고목, 동막골, 샘골, 장수번던, 마당바우,
말바우, 감투바우, 우제바우, 신선바우, 집바우, 촛대바우, 병풍바우, 장바우의 반계정 등
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 많이 남아 있다.
마을에서는 입석고개의 큰소나무, 덕가산 아래의 당송, 국사당골의 노송, 입구의
관송 등에서 매년 시월 보름 동재를 지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한다.
고색창연한 반계정은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장암 정호가 말년을 보낸 정자로 2층 누각이다.
갈금다리를 지나 만나는 장바위마을도 정호의 호인 장암을 딴 것이라 한다
악휘봉에서 바라본 마분봉(馬糞峰:776m)
충북 괴산군의 연풍면 주진리의 은티마을과 종산마을에 위치한 산으로 봉우리가 뾰족해 말똥을
닮았다 하여 말똥바위라 부르며, 마분봉으로도 불리며 괴산군에서 뽑은 괴산 명산 35곳 중 하나라고 한다
다시 돌아온 악휘봉 갈림길(14:45)
악휘봉을 갔다오는데 뒤따라 오는 등산객이 지꾸만 뒤처진다
많이 지친 모양이다... 간단하게 올라 왔다가 은티마을 내려와서 점심을 먹을거라고
가져온 것이라곤 비스켙과 물 밖에 없다고 하기에 빵과 쥬스를 줬더니만 빵은 먹지않고
음료수만 마시는데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는데 걱정이다
820m봉(14:52)
이곳에는 출입금지 표지판과 독버섯 구별하는 방법 안내판이 서 있고
좌측으로는 입석리로 향하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시그널도 많이 달려 있다
820m봉 정상의 모습
같이 따라오던 산꾼은 좌측 입석리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데 내가 대간길로 가니까 망설인다
그리가도 은티마을로 갈 수 있냐고 하기에 그렇다고 하니까 내 뒤를 따라서 온다
안부(14:56)
힘든 와중에서도 튼실한 싸리버섯 하나를 수확한다
암릉구간을 힘들게 올라서고...
등산객이 힘들어 하기에 앞세우고 내가 뒤를 따라서 간다
갑자기 우리 둘이 아닌 또 다른 곳에서 사람솔리가 들린다.
또 한번 놀라는데 자세히 보니 봉암사에서 올라오신 스님 두 분을 만난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갈 길을 간다
712m봉(15:05)
암봉(15:17)
철계단(15:20)
뒤따라 오는 등산객이 도저히 못가겠다면서 조금만 쉬어가자고 하기에 계단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계속해서 암릉구간이 나오고...
조금전에 지나온 등로를 뒤돌아 보고...
악휘봉 정상에서 바라본 문경시 가은읍의 산그리메
악희봉은 대간 마루금에서 비켜있는 산이다.
대간 찾기가 붐으로 대두되기 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산이었지만
백두대간의 열풍이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악희봉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악희봉은 아무리 메마른 감정을 가진 대간꾼이라도 일단
오르게 되면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 그런 산이다.
백두대간은 마루금이 아니라 영역개념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영역으로 파악해야 水系와 土系를 통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며
나아가 환경관리도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악희봉 역시 백두대간상의 영역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희봉은 마루금상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일부 대간꾼들에 의해 무시당하고 있다.
대간의 전반적인 관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먼저 깃대를 꼽거나 밟으면 대간을 다 이해한 것으로
착각하는 대간꾼(물론 여기에는 나도 포함된다)들이 특히 그러하다.
악희봉은 주변 온 산을 밝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정작 자신은 다소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망바위(15:37)
조망바위를 지나면서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기상청의 예보에는 오후 3시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구라를 치지 않고 기막히게 잘 맞힌다
오늘 산행중의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선다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첫번째 암릉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2번째 암릉 내리막길(15:50)
오늘 희양산 너머 배너미평전까지 갔어야 다음 구간이 훨씬 편한데...초반에 대형알바로 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마지막 암릉 구간을 내려서니 은티재가 보인다
은티재(銀峙:520m:16:05)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오봉정에서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은티재 또는
오봉정 고개라고도 부르며 은티(銀峙)마을은 조선시대에 의인촌리(義仁村里)라는 동네 이름이
일제 강점기에 인재의 출현을 막기위해 은티(銀峙)라고 개명을 하였으며 이곳에 은광(銀鑛) 탄광이 있었다고 한다.
재의 정상에서 좌측 은티마을쪽은 길이 뚜렸하나 우측 문경쪽은 봉암사 때문에길이 막혀있고
고개 정상에는 서낭당의 흔적인지 돌무덤이 보인다
은티재에서 봉암 계곡으로 이어지는 곳에는 봉암사에서 막아논 듯한 목책이 있고 서낭당 흔적이 보인다
은티재 정상에서 우측 봉암사쪽의 모습
은티재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은티마을 쪽으로 내려선다
은티마을로 가는 길에 있는 집채만한 바위도 예전 그대로이다
임도를 따라서 내려가는데 길건너에 4년전 대간길에 만났던 김포대님의 해병대 동기분이 보인다
임도에서 아는척 하면서 소리를 쳤더니만 내려와서 맥주 한잔을 하고 가란다...빗줄기는 거세지고...
김포대님 해병대 동기분이 맥주 3병을 내오는데 같이 내려온 이쁘장한 등산객은 차를 가져 왔다고 하면서
맥주 한잔만 마시고 나머지 3병을 나혼자 게눈 감추듯이 먹어 치우고 나니 이제서야 조금은 살 것만 같다
이 분에게 담에 올 때 맥주를 꼭 사오리라 약속을 하고 비를 피할 겸 25분간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김포대님 친구분의 농장을 내려오니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기 시작하고...
예전에 없었던 염소 농장도 보이고...
사과밭을 지키는 경찰 마네킹도 보이고...
사과밭 가운데 농로를 따라서 은티마을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같이온 등산객이 “선생님 어디로 가실건가요?”
하기에 은티마을 주차장에서 18시 55분 버스를 타고 연풍이나 괴산에 내려 동서울로 갈 생각이라고 하니
제가 집이 청주인데 증평을 거쳐서 가니까 증평까지 모시겠단다... 갑자기 양넘 지갑 줏은 느낌이다
사과가 참으로 탐스럽게 익어 있다
최근에 은티주막 쥔장이 바뀌었단다
은티 주막집(17:00)
예전에 여시(여우)노릇을 하면서 산꾼들의 호주머니를 털든 쥔장이 다른
사람에게 가게를 넘겠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주막집은 조용하기만 하다
은티마을 남근석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에 위치한 은티마을은 희양산과 악휘봉에서 흘러 내려오는 개울이 만나는 합곡점에 있다.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개울 때문에 가끔 수해를 보는데 그 개울 줄기가 여인네의 오줌 줄기 같다 해서 수해의
방패막이로 마을 앞에 남근석을 세워 놓고 끔찍이도 위하고 있다.
약 50cm정도의 작은 비석처럼 생긴 돌인데 은티마을이 자궁혈의 형상을 띠어 살기 좋지만 여자들의 기가 너무세다
입구에 소나무숲을 만들고 남근석을 세워 남녀 기를 조화시켜 놨는데 남자가 기도를 올리면 구구팔팔 복상사
여자가 남근석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원하는 아들을 낳는다 마을에서는 매년 동고제를 지낸다
남근석 앞에 서 있는 동고제(洞告祭)의 유래판
은티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초이튿날에 남근석에서 동고제를 올리는 풍습이 있다
옛날에는 제의식을 엄격하게 준수하여제관으로 선출되신 분은 보름전부터 대문에
금기줄을 쳐놓고 바깥 출입도 삼가하고 부부생활도 금기하고 불경스러운 것도 보지않고
동고제 아침에는 계곡에서 찬물로 몸을 딲고 제를 주관하는 의식이전해 왔는데 최근에는
젊은층이 많이 없어지고 고령화되다가 보니 약식으로 진행하는 경향이 짙다고 한다
은티마을 유래비와 노송
은티마을은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周榛里)의 마을로 산꾼들에게 있어 주진리 보다 더 유명하다.
희양산,구왕산,마분봉,악휘봉 등을 산행하기 위해서는 이 마을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은티마을 초입에는 기풍있는 노송들이 사열하듯이 즐비하게 서 있으며, 계곡을 중심으로 발달한 산골마을이다.
은티마을 입구의 유래비에서는 계곡의 형세가 마치 여성의 성기와 같은 여근곡(女根谷)으로 이를
여궁혈(女宮穴)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쌘 음기를 막기위한 풍수의 하나로 남근석과 소나무등를 심어 놓았다 한다.
조선 초기 연풍현 당시 현내면 연지동에 속해 있었으며 1812년에 작성된 동절목(洞節目)에는
인지동 의인촌리로 기록되어 있고 일제 시대에 일본인들이 의인義仁이라는 동리명이 한국의
민족 정신이 함유 되었다고 하여 은치(銀峙)로 개칭하였다.
1914년 일제 때 행정구역 통 폐합 시 주진리라 하였으며 8.15이후 행정구역 세분화 작업 시
이곳은 다시 주민들에 의해 “은티”라고 하였으며 풍수 지리설에 의하면 이곳은 여궁혈(女宮穴)로서
동리 입구에 남근을 상징하는 물건을 세워야 마을이 번창하고 주민들이 아들딸을 많이 낳을 수
있다고 하여 입구 송림에 남근석을 세우게 되었다. 1996.6.20 은티마을 동민 일동
은티마을 주차장(17:05)
이곳에서 청주에서 왔다는 등산객의 차량에 편승하여 50여km 떨어진 증평까지 편하게 온다
증평 터미널 앞(17:50)
청주에서 오신 등산객이 증평 터미널에 내려주고 청주로 향한다
난생 처음 증평읍내에 와보는 행운을 누린다
덕분에 얼마나 편하게 왔는지... 복받을깁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증평군
증평군은 2003년 8월30일 괴산군에서 분리해 읍에서 군으로 승격됐으며 면적 81.84㎦, 인구 3만3472명,
1읍1면으로 된 초미니 군으로 동해바다에 떠 있는 울릉군을 제외하고는 전국에서 가장 작은 군이다
군이래봐야 증평읍 하나만 달랑 있는곳에 난생 처음 와본다
그런데 아파트만 봐서는 도시라는 느낌이 드는데 청주 인근에 있다가 보니 이곳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증평터미널(17:52)
증평터미널에서 표를 예매하고나니 30여분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
터미널안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깔끔하게 씻고 비에 젖은 옷을 새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한결 개운한 느낌이다
베낭을 정리하고 매점에서 캔맥주 하나를 마시고 버스 타는 곳으로 향한다
18시 20분발 버스에 오르니 좌석이 꽉차는데 이곳 근처에 있는 중원대학교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알바탓에 다음 구간을 어떻게 나눠야 할 지 복잡한 생각을 안고 서울로 향한다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 > 백두대간 3차 북진(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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