悲運으로 生을 마감한 고려 우왕의 눈물이련가...대간길에 비는 계속되고...
☞산행일자: 2017년 8월12일~13일(무박산행)
☞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비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9km (GPS 27.1km) / 10시간40분 소요
☞ 참석인원: 봄.여름.가을.겨울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 산행코스: 삽답령-임도-승기봉(862m봉)-들미재-방화선 임도-제3쉼터-이정표-995m봉
독바위봉-석두봉-폐헬기장-쉼터-이정표-쉼터-960m봉-쉼터-큰용수골 갈림길
968.1m봉-1,006m봉-화란봉 갈림길-화란봉-다시 화란봉 갈림길-제9쉼터
전망바위-무명봉-암봉-묘지-닭목이 마을도로-닭목령-고랭지 채소밭-무명봉
목장 임도-목장입구-956m봉-금강송숲-왕산 제1쉼터-암봉-암봉-왕산제2쉼터
NO35송전탑-고루포기산-NO39송전탑-지르메 갈림길-오목골 갈림길-전망대
연리지-쉼터-왕산골 갈림길-샘터-횡계치-무명봉-행운의 돌탑-능경봉-헬기장
쉼터-제왕산 갈림길-새버댕이-영동고속도로 준공기념비-이동통신 공용 기지국
대관령
☞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 강릉시 성산면, 왕산면 / 평창군 대관령면(구 도암면)
모친 기일이라 토요일 절에서 재를 올리고 부지런히 집으로 와서 산행할 준비를 하는데 왠지 좀 그렇다
갈까말까 여러번을 망설이기도 했지만 기왕 시작한 일 빨리 끝내 버리자는 생각에 베낭을
메고 집을 나서는데, 요즘에 여러가지 신경 쓸 일이 많아서 맘이 불편하긴 하지만 모든걸
잊어 버리기에는 산이 가장 좋을듯 하다
여느때 처럼 사당역에 도착하니 동료 산꾼들이 반겨주고,곧이어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대관령이다...다시 잠에 빠졌다가 들머리인 삽답령에 도착하니 강원도라
그런지 날씨가 생각보다 추운데다가 안개비 같은게 내리는듯 하니 갑자기 산행을
하고픈 생각이 없어지는데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갈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삽당령(揷唐嶺:680m:02:40)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과 정선군 임계면을 잇는 35번 국도가 지나는 해발 680m의
고갯마루로 이 고개를 넘을 때 길이 험하여 지팡이를 짚고 넘었으며 정상에 오르면
짚고 왔던 지팡이를 버리고(꽂아 놓고) 갔다 하여 '꽂을 삽(揷)'자를 써 삽답령이
되었다고 전한다.
또 다른 유래는 정상에서 북으로는 대기(大基)로 가는 길과 서쪽으로는 고단(高丹)가는
길로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지창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이 고개는 강희 54년(숙종41년)인 1715년에 개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부(府) 서쪽 60리 정선으로 가는 길’이라 기록되어 있다.
삽당령은 강릉을 적시고 동해로 흘러드는 강릉 남대천, 그리고 남한강 상류인
골지천으로 몸을 섞는 송현천의 발원지기도 하며, 고갯마루에 당집이 있어
당집 사이에 있는 고개란 뜻의 샅당령이 변해서 삽당령이 되었다고도 하는데, 이 곳의
옛이름은 삽운령(揷雲嶺)인 것을 보면 백두대간의 마루금에서 수시로 변하는 기후 때문이 아닌가 싶다
현지 주민들은 삽당령이라 부르지 않고 “삽달령”이라 부르고 있다 한다.
또 다른 유래는 고개에 사당이 있는데 사당령이라 부르던 것을 변음이 되어 삽답령으로 부른단다
버스에서 내리니 야심한 새벽이라 그런지 도로변의 가로등은 졸고 있고 주위에는
고랭지 채소를 실으려고 대기하는 트럭 서너대만 보일뿐 모든게 적막강산이다
길 건너 욕쟁이 할머니 주막집에도 깊은 잠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관악산(638m)보다도 높은 삽답령이라 그런지 날씨는 생각보다 추운게 역시 강원도답다
안개비같은 비가 살짝 내리기 시작하고 날씨가 꾸무리하니 산행하고픈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안 갈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랑하는 진권아우도 왔으니 가야제
단체로 인증샷
산행을 시작하다(03:00)
삽답령에서 임도를 따라서 오르다 산죽길로 들어선다
비에 촉촉히 젖은 산죽길을 따라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는 컴컴한 길
마치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는 야심한 새벽에 뭔 지랄인지?
능선에서 올라...
한숨을 돌리는 사이에 선두는 벌써 불빛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저 만치 가버리고 없다
임도(03:20)
산죽길을 내려서니 넓은 포장도로가 나오고 바리게이트가 처져 있으며
우측에는 어둠속에 SKT 중계기지가 보이고 어둠속에 이정표가 산꾼을 반긴다
오랫만에 같이 산행을 하는 진권아우
각자 산행이 일정이 맞질않아 참으로 오랫만에 같이 산행을 한다
아우는 오는 9월 4일부터 11월 16일까지 희말라야 8500m 고봉인 로체 등반을
나서는데 부디 성공하기를 기원하며...무사 종주를 바라는게 행님의 간절한 소망이다
승기봉(862m:03:30)
지도상 862m봉이고 제2쉼터인 이곳에 예전에 없었던 승기봉이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승기봉에 대한 유래는 알 길이 없고...
승기봉이라 불리우는 862m봉에는 나무로 만든 쉼터를 어둠속에 만난다
승기봉에서 나무계단을 따라서 내려가는데 어둠속에
짙은 안개가 밀려와 안경에 성애가 끼니 상당히 불편하다
안전지대 로프가 나오고...
로프지대를 지나면서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들미재(810m:04:01)
동쪽 아래에 위치한 ‘들미골’ 마을에서 유래된 들미는 ‘들(野 )의 꼬리(尾)’,
즉 ‘개활지에서 산모퉁이를 돌아 들어가는 외진 곳’이라는 의미다.
들미골과 용수골(대용수동)을 넘나들던 재. 농기구나 그릇 또는
가구의 무늬로 쓰이는 들미나무가 많아 들미재라 부른다
어둠속이라 그런지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될 정도이고 잡풀이 너무많아
주마간산격으로 산행을 시작하는데 그나마 대간길이란 걸 각인 시켜주는건
대간 산꾼들이 걸어둔 시그널이 제대로 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대간길에 잡풀이 많아도 너무 많다...마치 지맥길을 걷는 느낌이다
이곳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방화선 임도인데 임도에 잡풀이 넘 많아 산불을
방지하기 위한 방화선 임도가 아닌 산불을 확산할 시킬 수 임도로 바뀌어 버린 느낌이다
방화선 임도(04:05)
이곳은 방화선 임도가 시작되는 곳이고 조금만 더 지나가면 사랑나무라고
표기해 놓은 연리지(連理枝) 소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있는데 짙은 안개속이라
보이지도 않고 선두를 따라 가느라 아쉽게 놓쳐 버렸다
제3쉼터(04:13)
이곳 맞은편 숲속에는 엉성한 나뭇가지와 잎으로 만든 여인들의 전용 뒷간(화장실)이 있는데
어둠속에 짙은 안개로 인해 그것 또한 놓치는 憂를 범한다... 남진길에 그것을 보고
실소를 금했는데 아쉽기만 하다
이정표(04:17)
방화선 임도를 따르니 어둠속에 안내 표지판이 나오고 다시 오르막을 오르니 995봉이 나온다
995m봉(04:30)
다시 잡풀이 우거진 숲길을 지나는데 이곳은 방화선 임도라서 마치 지맥길을 걷는 기분이다
다시 정신없이 걷다가 보니 멋진 안락의자 2개가 있는 곳이 나오는데 독바위봉이다
독바위봉(978.8m:04:38)
어둠속에 똑닥이 카메라의 한계로 독바위의 그림을 잡을수가 없다
독바위봉의 모습...2013년 7월 28일 남진길 때의 사진
독바위의 모습
독바위봉에서 다시 안전로프를 따라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예전에 없었던 쉼터의 벤취도 보이고 다시 안부로 뚝 떨어졌다가 오르막길로 올라서니...
석두봉으로 이어지는 데크목 계단으로 올라선다
석두봉(石頭峰:982m:05:00)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있는 봉우리로 석두봉 정상은 이름 그대로 바위로 되었고 쌍이다.
동쪽 봉우리 보다 조금 낮은 서쪽 봉우리는 얼룩무늬 바위들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마루금을 축으로 동쪽과 북쪽은 급경사를 이뤘고 남과 서쪽은 해발 800미터의 평평한 분지로
작은터, 가르쟁이, 솜솥밭, 대용수동을 거느리고 있다.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씨감자와 당근을
해갈이 하고 있다
이곳 석두봉을 밝은 날에 지나갈 때는 우리나라 최고의 고랭지 채소밭인 안반데기와
멋진 노추산이 한 눈에 보이는 정말 멋진 곳이건만 어둠속이라 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석두봉에서의 인증샷
석두봉 정상에서 동료산꾼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물 한모금 마시는 사이에 동료들은 도망을 가고...
돌계단을 따라 안부까지 내려 갔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어둠속에 폐헬기장을 만난다
폐헬기장(05:25)
쉼터(05:28)
오늘 따라서 유난히도 쉼터들이 많이 보인다...나홀로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걷는다
이정표(05:35)
이제서야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쉼터(05:45)
멋진 금강송도 보이기 시작하고...
푸르런 산죽길로 올라서니... 쉼터가 나오고 앞서가던 산꾼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쉼터가 있고 예전에 남진길에 없었던 이정표도 보인다
960m봉(05:58)
짙은 안개가 낀 산죽길은 신비로움마저 들 정도로 아름답고 여유롭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길을 올라선다
붉은 싸리버섯
전형적인 특징은 신맛이 나고, 마르면 조직이 분필처럼 부셔진다
준독성으로 위와 장에 영향을 주어 오식하며 설사를 하니 안 먹는게 상책이다
쉼터(06:25)
앞서가던 여성 산꾼 3명과 진권아우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어제 저녁 이후로 아무것도 먹은것이 없어 약간의 허기가 지긴하나 아직까지 견딜만하다
그래도 여기서 베낭을 내리고 가져온 간식(수박,떡)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길을 나선다
그쳤던 빗방울이 다시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큰용수골 갈림길(06:50)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있는 큰용수골로 이어지는 이정표가 있으나 등로는 뚜렸하지 않다
비에 젖은 하늘나리
968.1m봉(06:30)
1,006m봉(07:05)
누룩젓버섯
갓 표면은 초기에 백색이나 점차 옅은 황색 또는 회색을 띠며 불분명한 짙은 색의 환문이 있다.
주름에 상처가 나면 적은 양의 유액이 나오는데, 초기에는 백색이나 곧 청록색으로 변한다
부지런히 길을 걸어 화란봉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산꾼들의 소리가 들리면서 화란봉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선두로 가던 산꾼들이 아침 밥상을 펼치고 있는데 우린 조금전에 떡으로 요기를 한 탓에
닭목령에서 아침을 먹기로 하고 대간길에서 0.2km 떨어진 화란봉으로 향하는데 또다시 비는 오기 시작하고...
화란봉 갈림길(07:17)
화란봉에 도착하니 암릉도 그대로이고...
정상석도 4년전 그대로인데... 나만 변했구료
화란봉(花蘭峰:1069m:07:22)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와 왕산리, 도마리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난초처럼 예쁜
봉우리여서 “화란봉(花蘭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주변을 돌아보아도
평범한 봉우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무 가지에 걸려 있는 희미하게 지워져
가는 작은 표지판이 아니었다면 무명봉 쯤으로 지나쳤을 것 같은 느낌이다.
화란봉은 이름 그대로 꽃모양을 하고 있는 산으로 부채살처럼 펼쳐진 화관이
화란봉을 중심으로 겹겹이 에워싼 형상인데, 이곳은 옛날에 이무기가 하늘로
오르다 힘이 부쳐 떨어진 곳이라 하는데, 지금도 그때 자국이 용수골 너럭바위에
남아 있다고 한다...태백, 신선님이 걸어둔 산패 앙증맞은 정상석을 지나니
폐헬기장이 있고 거기에는 예전에 없었던 정상석과 삼각점이 있다
폐헬기장에 있는 정상석
화란봉 정상 삼각점(△ 405 재설 / 74. 3 건설부)
화란봉에 잠깐 있는 사이에 빗줄기가 굵어져 서둘러 갈림길로 되돌아 온다
다시 화란봉 갈림길(07:27)
빛바랜 안내판...모든게 판독이 잘 안된다
동료산꾼들이 삼거리에서 아침을 먹는 사이에 난 닭목령으로 향한다
넓은 공터를 지나니 다시 쉼터가 나오는데...제9쉼터란다
제9쉼터(07:28)
전망바위(07:30)
비는 오고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멋진 금강송도 간간히 보이고...
무명봉(07:35)
무명봉을 지나면서 예전의 대간길이 엉뚱한 곳으로 나버려서 모든게 헷갈리기만 하다
예전에 없었던 데크목 계단도 생겨버렸고...
변형된 길이 대간길을 엉뚱한 곳으로 안내한다
예전에 있었던 멋쟁이 소나무도 보이질 않고 멋진 조망바위도 보이질 않는다
멋진 소나무 아래에서... 태양대장과 주원아빠(2013년 7월 29일 남진길에서)
암봉(07:35)
안전 로프를 부여잡고 비에 젖은 미끄러운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자작나무 숲을 지나고...
예전에 없었던 잣나무 숲도 지난다
산죽길을 지나니 안부가 나오고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묘지(07:55)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니 다시 잣나무숲이 나오고...
닭목이 마을도로(08:00)
도로를 가로질러 올라선 다음 ...
임도를 따라서 닭목령으로 내려선다이곳은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大基里)로
닭목령에 있는 이 마을은 고랭지 채소만 유명한 게 아니라 씨감자를 생산하는 밭인
채종포(採種圃)가 전국에서 제일 크다고 하며 대기리는 1759년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기록되어 있는 마을로, 1916년 행정구역 개편 때 다른 20개의 자연마을과 합쳐 구정면
대기리가 되었고, 1917년 면제개혁 때 왕산면에 편입되었다.
마을 남쪽에 노추산과 사달산이 있고, 마을 가운데로는 송천이 흐른다.
노추산은 신라의 설총과 조선의 율곡 이이가 공부하며 머물렀다는 산으로, 이곳에서 공부를 하면
노나라의 공자와 추나라의 맹자와 같이 학문에 대성한다는 뜻에서 노추(魯雛)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명은 마을이 고원지대 넓고 평평한 터에 있어 큰터, 한터 등으로 불리다 대기(大基)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 효종 때 밀양 박씨가 마을을 개척했고, 최근에는 고루포기산 중턱을 개간, 경작인구가 증가해 법정리
한 개가 늘어 총 4개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늘막골, 닭목이, 도화목이 등이 있다.
늘막골은 판막동(板幕)으로 적는데, 이곳에 널빤지를 만드는 황정소나무가 많아서 붙은 이름이고,
닭목이와 도화목이는 마을의 생김새가 각각 닭의 목, 복숭아꽃이 떨어지는 모양과 같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대기리는 교통이 편리하고 경지 상태가 좋아 전국적으로 유명한 고랭지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폐교된 대기초등학교를 활용하여 '푸른고원 산촌체험장'을 관광 상품으로 운영하고 있다. 문화재로는
노추산에 있는 이성대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설총과 이이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유림은 매년
음력 4월 제례를 올린다
닭목령(鷄項嶺:706m:08:02~30)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의 닭목(계향동:鷄項洞)에서 왕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강릉과 정선군 임계를 잇는 415번 2차선 지방도로가 이 고개를 지난다.
고갯마루 북쪽의 왕산리엔 닭목골, 남쪽의 대기리엔 ‘닭목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닭과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풍수가들은 여기의 지세를 ‘금계포란형’의
길지로 보았는데, 이 부근이 닭의 목에 해당하기 때문에 닭목이라는 지명을 얻은 것이다.
고갯마루엔 산신각이 세워져 있다
한자 표기로는 계항령(鷄項嶺)이다.
풍수지리상으로 천상에 산다는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지세로
이곳 고갯마루가 천하명당의 길지라고 하는 닭의 목덜미에 해당한다고 하여 “닭목재”라
이름 지었다고 하지만 아마도 산골짜기의 목(길목)이란 뜻으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닭목재란 이름을 낳은 그 고개밑의 닭목마을은 아주 깊은 산골이다.
좁디 좁은 긴 골짜기 안에 푹 파묻힌 마을이다.
강릉에서 왕산길을 지나 계항동(鷄項洞)을 넘나드는 이 고개마루를 예전에는
닭목이, 닭목재라 하였고 요즈음은 닭목령이라 불리어 지며 이곳으로부터
남쪽으로 2.3km 거리에 있는 문바우(門岩)까지를 계항동 즉 닭목마을이라 부른다.
닭목의 한자어는 계항(鷄項)으로 풍수지리설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즉, 이 곳의 산세(山勢)는 천상(天上)에서 산다는 금계(金鷄)가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인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고, 이 고개마루는 금계의 목덜미에 해당한다고
하여 계항 즉 닭목이다.
강릉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내륙으로 가는 큰 고개는 대관령, 닭목령, 삽당령,
그리고 백복령 등이 있는데, 이 중 대관령은 한계령,진부령과 더불어 영동과
영서를 넘는 태백산맥의 3대 태령이고, 삽당령은 강릉시 서쪽 60리에 있는
정선(旌善)으로 가는 721m의 고개이며, 그리고 닭목령은 백두대간 고루포기산과
화란봉 사이의 마루금에 415번 지방도로를 따라 강릉쪽 왕산리에서 대기리를 연결하며
평창군으로 가는 태령이고, 남쪽으로는 정선 아우라지를 연결하는 도로 고갯마루이다.
이 길에서 연결되는 닭목령 일대는 때묻지 않은 숲길과 고랭지 채소밭으로 수놓아진
고산지대의 이색풍광을 눈에 담으며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신선한 충격을 만끽할 수
있으며 길의 초입인 오봉저수지를 지나 왕산교를 건너면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지며
이 지점에서 좌측의 35번 국도를 따라 남하하면, 삽당령을 넘어 정선군 임계면으로 가게 되고,
우측의 9번 군도를 따라 오르면 11km 지점인 닭목재를 넘어 노추산계곡과 고단리로 갈 수 있다.
왕산교-닭목재-고단리 코스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였지만, 고랭지 재배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사방으로 아스팔트길이 열리고 지금은 적설기를 제외하고는 승용차들도
무리가 없게 됐다.
정상에 다가서면 ..."전국최고 감자채종포마을"이라는 입간판이 반겨주고 "마지막으로
남은 청정고랭지 채소마을"이라는 간판도 이곳의 특성을 한마디로 설명해준다.
뿐만 아니라 호젓한 고산지 드라이브코스로도 국내 최고의 경지를 자랑하며 성황당 옆에
세워진 백두대간 제24구간 등산로 안내판을 보면 닭목재를 출발, 고루포기산(해발 1,238m)을
거쳐 능경봉(해발 1,123m)에 오른 다음 대관령 휴게소에 닿기까지의 산행 코스가
그림으로 알기 쉽게 그려져 있고, 이 코스는 총 산행 거리가 12km이며 7시간이 소요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왕산교에서 닭목재로 오르는 구간은 특히 가을철 단풍이 기막히다. 따라서 초여름 신록과
가을철 단풍 또한 제일이라 칭찬할 만하다... 그 밖에 이 길을 달리며 잠시 들러볼 만한
곳으로 왕산리 왕산조형 연구소다. ..본래는 왕산초등학교 왕성분교였지만, 1993년 폐교되면서
그 자리에 왕산조형연구소가 들어섰다. 실내외로 수백점에 이르는 각종 조형물들이 들어서 이 길의
유일한 문화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해마다 9, 10월이면 왕산 국제아트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한다는 곳이다.
닭목령 정상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고랭지 채소밭 천국인 안반덕과 고루포기,
피덕령, 용평리조트로 갈 수 있고, 횡계리로 나가 영동고속도로 횡계IC와 닿는다.
또, 오른쪽은 송천을 따라 노추산계곡, 정선 구절리역, 아우라지로도 이어주면 산골 오지의
신선함을 계속해서 즐길 수 있다
오랫만에 동료들과의 인증샷
닭목령에서 30분간 아침을 겸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을 떠난다
농로옆 베추밭을 지나간다
작은 들꽃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너나 나나 이 세상에선
소유할 것이 하나도 없단다
소유한다는 것은 이미 구속이며
욕심의 시작일 뿐
부자유스러운 부질없는 인간들의 일이란다
넓은 하늘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소유라는 게 있느냐
훌훌 지나가는 바람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애착이라는 게 있느냐
훨훨 떠가는 구름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미련이라는 게 있느냐
다만 서로의 고마운 상봉을 감사하며
다만 서로의 고마운 존재를 축복하며
다만 서로의 고마운 인연을 오래오래
끊어지지 않게 기원하며
이 고운 해후를 따뜻이 해 갈 뿐
실로 고마운 것은 이 인간의 타향에서
내가 이렇게 네 곁에 머물며
존재의 신비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짧은 세상에서
이만하면 행복이잖니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너는 인간들이 울며불며 갖는
고민스러운 소유를 갖지 말아라
번민스러운 애착을 갖지 말아라
고통스러운 고민을 갖지 말아라
하늘이 늘 너와 같이하고 있지 않니
대지가 늘 너와 같이하고 있지 않니
구름이 늘 너와 같이하고 있지 않니
(조병화·시인, 1921-2003)
분홍색 물봉선
귀한 하얀색 물봉선도 산꾼 범여를 반긴다
대기리 배추밭
이곳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의 고랭지 채소밭은 태백 매봉산의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
삼척 숙암리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와 함께 ‘백두대간 3대 고랭지채소재배단지’에 속한다.
그러나 하천 수질 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고랭지 채소밭에서 흘러들어오는 농약과 퇴비, 토사 등... 비내린 후 하천에 고랭지채소밭의 토사가
섞인 흙탕물이 내려와 쌓이면 물고기 알이 호흡을 제대로 못해 썩는다. 그래서 현대판 화전이라 불린다.
배추밭을 삥돌아 대간길을 이어간다
배추밭 너머로 보이는 노추산(魯鄒山:1322.0m)의 모습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과 정선군 북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중국 노나라의 공자와
추나라 맹자의 기상이 서려 있다 하여 노추산(魯鄒山)이라 불리워진다.
신라 때의 설총과 조선조 때의 율곡 이이선생이 학문을 쌓아 대성하였고, 산 중턱에는
그 설총과 율곡 선생의 위패를 모신 이성대(二聖臺)가 있다
고랭지 채소밭을 지나 우측 능선으로 들어서니 다시 산죽길이 나오고...(08:45)
아름들이 금강송도 간간히 보인다
무명봉(09:00)
맹덕목장 도로(09:05)
목장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걷다가...
맹덕목장 입구(09:07)
목장 입구에서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꽃말이 “원망”인 며느리밥풀도 비에 촉촉히 젖은채 얼굴을 내민다
금마타리도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맹덕목장의 좌측 능선을 따라서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까실 쑥부쟁이인가?
등로에서 바라본 맹덕농장의 모습
956m봉(09:22)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등로에서 바라본 안반데기의 모습
4년전 남진길에는 아주 멋진 모습으로 우리곁을 다가 왔었는데 오늘은 여름철의
녹음과 짙은 안개로 인해 안반데기 끄트머리만 겨우 보이는 정도라 아쉽기만 하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수하리와 왕산면 대기리의 경계로 안반데기는 안반덕(더기)의
강원도 사투리로, 험준한 백두대간 줄기에 떡메로 떡을칠 때 안반처럼 운푹 들어갔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란다.
안반데기(해발1,100m)는 국내에서 주민이 거주하는 가장 높은 지역이다.
피득령을 중심으로 옥녀봉과 고루포기산을 좌,우측에 두고 198만㎡의 농경지가
독수리 날개처럼 펼처져 있다.
안반데기는 1965년 국유지 개간을 허가하여 화전민에게 임대해 오다가 1986년 경작자에게
매각하였으며 현재 20여 농가가 거주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이며,
그러나 이곳은 경사가 심해 기계농이 불가능한 농경지가 대부분이며, 경작을 거의 소에
의존하고 있는 편이며, 이곳은 또한 배추밭의 풍경이 너무 멋져 찍사들의 출사지역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등로에서 바라본 가야할 고루포기산의 모습
좌측으로는 멋진 금강송들이 많이 보이고 ...
금강송 숲(09:35)
당나라 시인 寒山은 ‘微風吹幽松 近聽聲愈好(미풍취유송, 근청성유호 : 소나무에 미풍이
불어와 가까이서 들을수록 더욱 아름답게 들린다)라고 설파했는데, 인간이 미풍과
소나무의 기를 받아 이들과 하나로 된다는 뜻이다.
또 미국판 법정스님이라고 불리는 데이비드 소로 “내 가슴은 나무들 속에서 수런거리는
바람소리에 전율한다...어제까지만 해도 지리멸렬한 삶에 지쳐있던 내가 돌연 그 소리를
통해 나의 힘과 정신성을 발견한다”고 했다.
말인즉 두 사람 모두 숲은 인간에게 氣를 불어넣어 주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자연(숲)을 인간은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왕산 제1쉼터(09:37)
동료들과 이곳에서 잠시동안 휴식을 취하는데 쉼터 옆에는 불에 탄 금강송이 보인다
왕산 제1쉼터 옆에는 산불의 흉터가 있는 금강송이 꿋꿋이 자라고 있다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산불 피해를 입었던 금강송
몇년전 산불로 검게탄 木質부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여전히 원기 왕성한
푸르름을 유지 고난을 이겨낸 고목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길을 걷다 보면 내속을 돌고 있는 깨끗하지 못한 피가
수액처럼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그런 숲이다.
걸어가다 발걸음을 멈추고 아무 생각없이 숲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
료하지 않으면서도 넉넉한 느낌이 드는 그런 숲이다.
특히 군데군데 형성된 금강송 숲은 단연 압권이다.
묵묵히 금강송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자신도 한 그루 정정한 금강송이 되는 기분이다.
이 구간의 숲은 나를 정화시키고 나에게 氣를 불어주는 숲이라는 것이다
왕산 제1쉼터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에 또다시 고루포기를 향한 걸음은 시작되고...
계속되는 오르막길...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예전에 없던 알미늄 벤취도 보이고...
암봉(10:05)
능선 좌측 아랫쪽엔 물소리가 요란스럽다
암봉(10:13)
비에젖은 미끄러운 등로를 조심스럽게 걸어가니...
제2왕산 쉼터가 보인다
제2왕산 쉼터(10:20)
이곳에서 또 다시 휴식을 취하고...
낙타나무(?)
고루포기산을 향한 마지막 오름길이 시작된다
NO35 송전탑(10:35)
송전탑을 오르니 편안한 임도가 나오고...
까치수염... 아직도 뭔 미련이 남았다고...
완만한 임도를 따라서 내려 오다가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벤취도 만나고...
다발방패버섯
가을에 침엽수림및 소나무숲의 지상에서 발생하며, 전체가 황백색이고, 여러개의 갓이 맥관연락하여
집단으로 성장하며, 조직은 백색을 띠고 두껍고 유연하나, 건조하며 단단해지며, 맛은 약간 쓰고,
냄새는 일반적인 버섯향이다
동자꽃도 많이 보이고...
비가오니 모든게 귀찮기만 하다...NO를 확인하지 않은 송전탑도 지난다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또다시 우측으로 꺽어진다
아무도 찾지않는 벤취는 비에 젖어있고...
고루포기산(1,238m:10:55)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와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 고루포기(안반데기)를 잇는
이 길이 왕산면 대기리 주민들이 횡계로 넘나들 때 이용했던 길이라고 하며,
다복솔이 많아 고루포기산이라 이름 지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고로쇠 나무가 많이 서식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고로쇠나무와 고루포기는
같은 의미라고도 한다.<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에서‘소은백이산 (所隱栢伊山)’이라 하여
65자로 설명해 놓았는데 단국대 동양학 연구소 김윤우님의 말에 의하면
“산 아래 소은백이(所隱栢伊)라는 골에서 유래 된 듯 보이는데 소(所)의 훈은 ”곳“으로
보고 곶은백이산에서 고른포기산-골포기산-고루포기산으로 변음 된 것으로 추측한다고 했다.
이산 기슭에는 아직도 만인의 피난지지라는 5덕(五德)의 지명이 남아 있다.
괴비데기(고비고사리가 많은 언덕), 안반데기(떡을 칠 때 쓰는 나무판처럼 넓고 평평한 지형),
장두데기(길고 긴 언덕), 황정데기(황장 소나무가 서식하는 언덕), 황철데기(황철나무가 많이 서식하는 곳)가 그곳이다.
이정표 옆 안내판에는 산 이름에 대해 '다복솔'이 많아 그로 인해 고루포기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되어 있으나,
'다복솔'이란 가지가 탐스럽고 소복하게 많이 퍼진 어린 소나무를 이름인데 이는 잘못인듯 하다.
이곳 고루포기산 이름은 산 아래 남쪽 기슭의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고루포기 마을' 이름이 어원임이 정확할 것 같다.
고루포기란 '골짜기'의 사투리인 '골패기' 혹은 '골팍'에서 그 어원이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골짜기'라는 말에서 '골패기 마을', '골패기산'이 '고루포기산'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루포기산 정상 2등삼각점(△도암24 / 1991복구)
고루포기산인가? 골폭산인가?
1961년4월 22일 평창군에서는 이 산 넘어 명주군 왕산면에 고루포기라는 마을이 있어 산이름을
고루포기산이라고 하는데 강릉시에서는 예전에 골폭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 뒤에 위치한 산이라
골폭산이라 불렸다 한다.
국립지리원의 영문 지명에는 같은 경도와 위도에 똑같이 고루포기산과 골폭산이 기재되어 있어
국립지리원의 잘못이 분명 한데 유래를 보면 산 이름은 마을에서 따왔고 그 마을은 강릉시 왕산면에 있다.
일제 강점기때 만들어진 1:5만 지형도에는 남.북한 합쳐 약 5,000개의 산이름이 한자로 기재 되어 있고
일본어(카타카나)로 그 음을 나란히 기재했다 여기서 음은 한자 발음이 아니고 그 산을 부르는 말이다.
그런데 단 3개의 산이름은 한자 표기 없이 일본어로만 ?다. 그중 하나가 고루포기산인데
마을 이름을 딴 산이름이 분명 하고 마을이 속한 강릉시는 현지 조사를 통해서
골폭산으로 이름을 정하고 마을과 관련이 없는 평창군은 현지조사도 하지 않고 지도에 표기된
일본 글자의 발음대로 고루포기산으로 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는 지형도 대부분에 고루포기산으로 한다.
그래도 되는걸까?
출처: 다음 블로그 신기루님의 글에서 인용
빗줄기는 점점 강해지기 시작하여 서둘러 고루포기산을 내려온다
NO39 송전탑(11:00)
지르메 마을 갈림길(11:03)
지르메 마을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에 있는 마을로 황태덕장으로도 유명하며
우리나라 스키의 발상지로 이 마을에서 시작되는 송천강은 남한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오목골 갈림길(11:08)
돌탑이 하나있고 좌측으로 대관령면 용산리 오목골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스키장인 용평 스키장이 있는 곳이다
이제 비를 맞으면 걸으니 시원한 게 아니라 寒氣가 들 정도로 춥다
지난주만 해도 더워서 산행하기가 힘이 들었는데 입추와 말복이 지나니 확연히 다르다
그러고 보면 절기를 만든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느낌이다
자주졸각버섯인지 청버섯인지 헷갈린다
전망대(11:18)
이곳에서 동료산꾼들과 마지막 남은 캔맥주를 꺼내 나눠 마시며 베낭털이를 하는데
생각보다 비가 너무 오고 전망은 전혀 없기에 서둘러 길을 나선다... 전망대에서 아무것도 안보이니 아쉽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모든게 하얀 여백이다
이곳에서 맑은날 바라보면 설악산과 금강산이 한 눈에 보이는 곳인데 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자꾸만 빗줄기가 굵어지기에 서둘러 베낭털이를 마치고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향한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에는 커다란 갈참나무 연리지 한 그루가 있다
연리지(連理枝:11:35)
부부간의 사랑을 비유하는 말에 '비익연리(比翼連理)'라는 말이 있다.
비익조(比翼鳥)라는 새와 연리지(連理枝)라는 나무를 합친 말이다.
당나라 현종은 양귀비를 사랑했으나 안록산의 난으로 양귀비를 잃게되자.
시인 백낙천에게 양귀비를 위한 시를 부탁한다.
백낙천은 "장한가(長恨歌)"라는 시에서 "하늘에서는 비익조, 땅에서는 연리지"라고 노래한다.
비익조(比翼鳥)는 날개와 눈이 하나뿐인 전설속의 새를 말한다.
금슬좋은 부부처럼 암수가 붙어야 좌우 양쪽을 다 보며 날 수 있다고 한다.
저 연리지는 우리 일행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본디 너와 나라는 구별은 무의미하니 아쉬워 마라’, 나아가 ‘자연 속에서 인간은 모두 같은 존재다’
뭐 이런 생각이 아닐까 싶다.
쉼터(11:36)
계속되는 내리막길
왕산골 갈림길 (11:45)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 마을은, 삽당령, 닭목령, 대관령 등 백두대간 바로 아래에 위치한 수려한 자연경관을
간직한 해발 300m 이상의 준산간마을로 계곡전체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맑은 물과 청정계곡을 자랑
하는 환경친화마을로 왕산골8경은 강릉시 시책사업인 참살기좋은 마을 가꾸기 사업으로 마을의 예전부터
전해 내려온 왕산골 8경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주민들이 힘을 모아 마을의 명소를 널리 외부에 널리
알리기 위하여. 마을 중심에 8경을 새겨넣은 큼직한 돌 조형물과 종합안내도를 설치한 공원도 만들었고,표지도
세워 8경을 아름답게 가꾸어 놓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또다시 선 채로 휴식을 취하는데 태양아우가 아침에 먹은 햄버거가 문제가 있었는지 컨디션이 굉장히 않좋아 보인다
샘터(12:00)
횡계치(橫溪峙:12:05)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왕산골과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 큰골을 넘는 고개로
횡계리쪽은 용평스키장과 대관령 목장있고 겨울에는 마을마다 즐비한 황태덕장
그리고 여름에는 고랭지 채소 덕분에 잘사는 동네가 되어버린 횡계리가 있고
반대편 강릉시 왕산면쪽은 희미한 옛고개이지만 民草들이 넘나든 흔적이 남아있다.
동쪽 경사면 아래에는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제1터널의 불빛이 보이고 조금 더
멀리로는 닭목재에서 왕산천으로 연결되는 137번 지방도와 왕산리 농가 불빛이 보인다.
이곳 농가들은 버섯재배로 유명한 곳이며 지금 내가 서있는 아래로는 대관령 터널이 지나간다.
횡계치 아랫쪽엔 고속도로 차량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망가진 자연을 복원하기 위해서 대간길 등산로를 살짝 바꾸어 놓았다
무명봉(12:25)
넓은 공터를 지난 다음에...
다시 오르막을 올라선다
무명봉을 지나 살짝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비비추 군락지에 이정표가 서 있고...
행운의 돌탑이 0.6km 남았다고 하는데 갑자기 허기가 지기 시작한다
넓은 공터를 지나 올라서니 행운의 돌탑이 나온다
행운의 돌탑(12:55)
커다란 돌탑이 있고 상단은 무너져 있고데크목 전망대가
있는데 행운의 돌탑이라는 표지판을 만난다.
“험한 산길을 지나던 우리 선조들이 길에 흩어진 돌탑을 줍고 쌓아 길도 닦고 자연스레 돌탑을 만들어
여행길의 안녕과 복을 빌며 마음으로 위안을 받던 풍습을 되살리고자 백두대간 상에 만든 것”이란 설명이 붙어 있다
행운의 돌탑에 도착하니 먼저 와 있는 솜다리님이 빵을 먹고 있기에 빵 2조각을 얻어먹고 능경봉으로 올라선다
능경봉 가는 길
너덜길을 지나 드디어 능경봉 정상에 올라선다
능경봉 정상 이정표
능경봉(陵京峰:1,123.2m:13:05)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와 성산면 오봉리,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백두대간이 동해를 끼고 설악산(1,708)과 오대산(1,563),황병산(1,407)을 일으키고,
선자령을 지나 대관령에서 몸을 낮췄다가 다시 솟구친 산으로 대관령 남쪽에서제일 높은 봉우리이며,
제왕산의 모산이기도 하다.
山頂에 영천(靈泉)이 있어 기우제를 지냈고 맑은 날엔 이 봉에서 울릉도가 조망된다 하며
대관령이나 강릉에서 바라보면 산세가 큰 왕릉이나 활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능정봉(陵頂峰)
또는 소궁음산(所弓音山)이라고도 한다.
여지도서(與地圖書)강릉부 산천조에는 소우음산(所于音山)부의 서쪽 팔십리에
있는데 산중에 샘이 있어 가물면 비를 빌어 영험이 있다고 기록이 되어있다.
능정(凌頂)이 능경(凌頃)으로 변음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능경봉 정상에서의 인증샷
빗줄기는 조금 가늘어졌으나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헬기장(13:08)
잔대(꽃말:은혜)
잔대는 사삼(沙蔘)이라고 해서 예로부터 인삼, 현삼, 단삼, 고삼과 함께 5가지 삼 중 하나로
꼽을 만큼 귀한 민간 약재로 사용되어온 식물로 ‘백 가지 독을 풀 수 있는 것은 오직 잔대뿐’이라는
기록까지 있을 정도로 뛰어난 약재로 래땅에서 잘 자라 사삼이라고 하며 산삼 못지않게 오래 사는 식물로,
산삼처럼 수백 년 묵은 것도 가끔 발견된다.
잔대는 우리나라 각처의 산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물 빠짐이 좋은 반그늘 혹은 양지에서 자라며,
키는 40~120㎝이고, 뿌리가 도라지처럼 희고 굵다. 잎은 긴 타원형 또는 달걀형으로 양끝에는 날카로운 톱니가 있다.
7~9월에 보라색 꽃이 피는데 길이는 1.5~2㎝이고, 종 모양으로 생겼으며 줄기 끝에 달린다. 열매는 10월경에 맺고,
갈색으로 된 씨방에는 먼지와 같은 작은 종자들이 많이 들어 있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양넘 지갑줏는 느낌으로 대관령으로 향한다
쉼터(13:12)
야생화 군락지 지역을 내려서니...
질척거리는 등로...상당히 성가시다
잔나비걸상 버섯인가?
제왕산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새버댕이에 도착한다
새버댕이(13:25)
영동고속도로 준공비에서 출발하여 용천수를 지나 초소가 나오면서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이 새버댕이라는 곳인데 지명의 연유를 알지 못하겠다.
이 길은 동쪽의 제왕산 아래에 만들어진 도암수조 작업장 가는 길이다
이 길은 백두대간 서쪽의 도암천 물을 고루포기산, 능경봉, 제왕산 아래로 15.6킬로미
터의 구멍을 뚫어 640여 미터의 낙차를 이용하여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 강동수력발전소
(1991년 준공) 건설 때 만든 것으로, 횡계에서 중웨이(제왕산·840.7m) 정상 동쪽 헬기장 아래 도암 수조작업장까지 이어진다.
이로 인해 자연을 거슬러 물길을 바꿔 놓아 예기치 못한
기현상이 일어나고, 강릉의 남대천 물은 강릉시민의 식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제왕산(帝王山:840m) - 2012.7.15 산행사진
이곳 새버댕이에서 동쪽 으로 2.0km가면 고려말 우왕이 쫓겨온 곳 이라는 제왕산 이다
고려 말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는 정권을 장악한 후 고려 32대 왕인 우왕을 강릉으로 귀양 보낸다.
공민왕이 신돈의 시녀 반야로 부터 얻은 아들인 우왕은 공민왕이 세상을 뜨자
10세 나이로 즉위 하였으나 공민왕의 자식이 아니고 신돈의 자식 이라는 이성계 주장에왕위에
쫓겨 나고 강화도에 피했다가 강릉 으로 옮겨온 후 이성계의 군사들에게 피살 되고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에 폐왕이 살았던 곳이라 하여 왕산 이란 이름과 제왕산 유래 이다
새버댕이를 지키고 있는 산불감시초소
넓은 임도를 따라서 대관령으로 향한다
용천수(13:27)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이정표를 지나니...
산수국이 산꾼 범여를 반긴다
양탄자를 깔은듯한 편안 등로가 나오고...
박 정희 대통령이 세운 영동, 동해 고속도로비(13:35)
영동고속도로는1975년10월1일 개통 되면서 기념비로 세운"민족의 대동맥 영동 고속도로
준공비"하고 새겨져 있고 100톤 무게에 100m 높이에 거대 하고 웅장 하게 서 있다
준공비 비석 뒷면에는 “박정희 대통령 영단으로 경인, 경부, 호남, 남해노선을 완공하였고
오늘로서 영동및 동해노선을 완공하여...” 라는 長文의 문구가 적혀있는데 1975년 10월 1일
개통한 이 고속도로는 지금 이 아래로 지나가는 대관령 터널에 옛 영화를 빼앗기고
지금은 나같은 대간산꾼이나 양떼목장을 찾는 탐방객이나 들리는 잊혀진 고개가 되버렸다.
도로개통 기념비 뒷쪽에 있는 신사임당의 詩
大關嶺의 유래는 아흔 아홉 험준한 고개를 오르 내리며 대굴 대굴
굴러 대굴령이라 하였으나 음절이 되어 대관령이라 부른단다.
碑石 뒤에 기록된 신사임당 思親 詩가 가슴에 와 닿구나
늙으신 어머님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 길을 가는 이 마음
돌아오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고속도로 개통비에서 바라본 주차장
다시 대관령 고갯길로 향한다
이동통신 공용기지국(13:39)
대관령(大關嶺::832m:13:40)
아흔아홉 험준한 고개를 오르내리며 대굴대굴 굴러 대굴 령이라 하였으나
음절 되어 대관령이라, 또한 영서-영동 영동-영서를 넘나드는 큰관문이라
대관령이라 불리게 된 이곳은 삼국시대 부터 지명이 史書에 기록 된 곳으로
오래 전부터 영동과 영서을 잇는 교역 이자 교통로써 관문이였다
삼국유사에는 대령(大嶺)이라 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굴령(堀嶺), 조선 중기 이후부터
대관령(大關嶺)이라 칭했다고 한다. 총 길이가 13km나 되는 고개로 원읍현(員泣峴):원울이재,
반정(半程:반쟁이) 등 많은 유래가 전해지며 강릉출신인 신사임당과 허균 등의
여러 詩文이 지어진 고개이기도 하다.
대관령을 넘는 대관령옛길을 예전부터 아흔아홉구비라 부르는데, 여기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율곡 이이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면서 출출할 때 먹을 심산으로 곳감 100개를 바랑에 지고 길을 나섰는데
그 옛날 고을원이 강릉부사로 발령을 받고 길을 나선 후 쉬면서 울었다고해서 이름 붙여진 "원울이재(員泣峴)"에서
부터 대관령옛길을 따라 한 구비를 돌때마다 곳감을 하나씩 먹었는데 정상에 다다르니 곳감이 한개 밖에 남지않았다 한다.
대관령 정상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인증샷을 남긴다
대관령에서 바라본 강릉은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강릉의 지명유래를 보면 강릉(江陵)의 순우리말
이름은 “아스라”라고 하는데 까마득한 넓은 땅을 가리키는 순수 우리말이란다.
현대 한국어에 “아스라하다”라는 말의 어원에 해당되며 삼국시대에는 아스라, 하슬라, 아슬라는
발음만 약간 다를뿐 뜻이 같은이름으로 그 소리나는 것을 그대로 한자에 빌려 표기한 음차표기인데그
뜻을 빌려서 표기한 방식으로 훈차표기가 있다.
아주 넓은 땅을 의미하는 아스라를 훈차표기한 이름으로는 강릉(江陵)과명주(溟州)가 있는데
강릉과 명주는 높은곳에 위치한 평평하고 넓은 땅을 의미한다
대관령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버스가 있는 주차장으로 와서 근처에 있는 횡계에서 목욕을 하고
예전에 알펜시아 골프장으로 라운딩 올 때 자주 들렸던 황태회관에서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서울가는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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