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想無念으로 설악산에 오르다
☞산행일자: 2017년 8월 25일~26일(무박산행)
☞산행날씨: 맑은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4km + 어프로치 약 8km / 12시간 10분소요
☞참석인원: 안내 산악회 따라서
☞산행코스: 한계령-설악루-위령비-1,307봉-1,280봉-귀때기청 갈림길-1,334봉-1,474봉
1,432-1,472봉-1,504봉-끝청봉-암봉-한계령갈림길(왕복)-중청대피소-헬기장-대청봉
소청봉-깔딱고개-희운각 대피소-전망대-무너미 고개-신선봉-천화대-암릉안부
1,275봉-쉼터-큰새봉-조망바위-나한봉-마등령 삼거리-마등령-철계단-안부-이정표
약수터-금강문-너덜지대-장군봉-금강굴-비선대탐방지원센터-와선대-군량장-설악교
무명용사비-금강교-통일대불-신흥사 일주문-설악산 소공원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 인제군 북면 / 속초시 설악동
8월 한달내내 주말 산행을 비를 맞으면서 했는데 이번 주말은 맑은 날씨란다
구라청(기상청)을 믿어 말어 생각을 하면서 어디로 틸까 목하 고민중인데 갑자기 설악산이 가고 싶다
설악산은 사실 당일 산행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보니 혼자서 움직이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러면서 산악회 여기저기서 검색을 하다가 보니 설악산과 지리산을 매주말마다 가는 산악회가 있다
일단 신청을 하고 회비(24,400원)를 입금하고 금욜 밤에 탑승 장소인 신사역으로 향한다
이 산악회는 안내 산악회라 지도 한장만 달랑 주고는 설악산 6곳을 들머리로 지정해 주면서 알아서 시간내
도착하라고 하는데 산행하는 사람들도 아주 왕초보에서 고수까지 있지만 나처럼대간을 목적으로 하는 산꾼은
없는듯 하고, 안면있는 사람도 전혀 없다그러다보니 오히려 상당히 편하다는 느낌이 든다
밤 11시 30분에 신사역에서 출발하여 강변역을 경유한 다음 설악산으로 향하는데 버스기사가 초행인지 초보인지는
몰라도 요즘 젊은애들 용어를 빌리자면 졸라 버벅거린 다음에 설악휴게소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간단하게 유부우동
하나를 먹고 다시 설악산으로 향한다
버스는 장수대에서 등산객을 내려주고 그 다음이 한계령인데 난 한계령에서 하차를 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한계령 (寒溪嶺:920m:03:00)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북면과 양양군 서면을 잇는 고개로 대청봉과 그 남쪽의 점봉산을
잇는 설악산 주 능선의 안부이며,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의 분수령을 이룬다.
과거에는 양양군에 해당하는 산을 설악산이라 하고 인제군에 해당하는 산을 한계산이라 했다.
고개의 이름은 한계산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산도둑이 들끓어, 해가 지면 이 고개를 넘지 말라는
뜻으로 고개의 길목인 양양군 서면 오가리의 길 옆 바위에 금표라고 새겨두었다.
지금도 그곳에 바위가 있으며, 한계령에 오르는 길에는 금표교가 있다
일명 재내·와천이라고도 한다. 고개의 동쪽은 동해쪽 사면으로 경사가 급하고,
오색을 거쳐 양양을 지나 동해로 흘러드는 남대천의 계곡으로 이어진다.
서쪽은 북한강의 지류인 소양강 상류에서 동쪽으로 분기하는 북천의 계곡과 연결된다. 따라서,
도로도 이들 양 계곡을 따라 개통되고, 예로부터 인제군을 중심으로 하는영서 중부 지방과 양양군을
중심으로 하는 영동 중부 지방을 연결하였다.
특히, 한계령에서 인제에 이르는 서쪽 사면의 도로는 한계리를 거치는 길 외에 한계령에서
남서 방향의 계곡을 따라 가리봉(加里峰, 1,525m)의 남쪽을 돌아 흑석리를 거쳐가는 두 갈래의 길로 분기된다.
옛날에는 소동라령(所東羅嶺)이라고도 불려 해안 지역과 내륙 지방을 잇는 험한 고개였다.
그러나 1971년 12월에 도로가 확장되고 양양에서 인제까지 도로가 포장, 정비되어 내설악과
외설악을 연결하는 구실뿐 아니라, 설악산국립공원의 관광 자원 개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고개 서쪽 계곡에는 대승폭포·장수대가 있고, 고개를 넘어 남대천의 상류 오색천에 이르면
개울가의 암반에서 솟는 오색약수가 있고, 약수터에서 온정골 쪽으로 2㎞쯤 올라가면 오색온천이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한계령은 동해안의 낙산사·의상대를 거쳐 비선대·비룡폭포·신흥사의 외설악을
잇는 관광 도로의 요충지 구실을 하고 있다. 오색계곡의 한계령 능선상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한계령풀(매자나무과의 2년초, 높이 30∼40㎝, 5월에 황색꽃이 핌.)로 유명하다.
또한, 한계령 위에 돌로 쌓은 둘레 6,287척, 높이 4척인 한계고성(寒溪古城)터가 있는데 지금은 그 문자리만 남아 있다.
이 지역은 몽고침입 때 조휘(趙暉)의 모반으로 원나라에 투속되었다가 공민왕 때 탈환된 곳으로서,
‘至正十八年’(1358)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된 바 있다
양양군에서 예전에 있던 오색령 정상석을 없애 버리고 새롭게 커다란 정상석을 세워놨다
뭔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양양군에서는 이곳을 한계령이 아닌 오색령으로 부르고 싶은 모양이다
그리고 지방 재정이 그리 좋지도 않은 양양군에서 군수 私費로 정상석을 바꾸지는 않았을텐데
왜 바꾸었을까?...민초들이 피땀으로 벌어서 낸 세금...자기 쌈지돈 쓰듯 쓰지 말았으면 한다
한계령의 유래는
조선 영조시대 인문 지리학자 이중환 저서 택리지 에서 백두대간 강원도 지역 이름난 嶺 여섯개을
꼽히였는데 함경도 와 강원도경계 철령 그 아래 추가령 금강산 연수령 오색령(한계령 그 아래 대관령
백복령 이였다 그중 으뜸 으로 알려진 곳이 오색령 이다 오색 한계령 점봉산을 이은 삼각형이 한축
이 되는 산마루 고개 이다 원래 오색령 이다
1968년 공병부대가 한계령 도로 공사가 인제군 한계리 에서 시작 1972년에 개통되였고 1978년에
포장은 완공 되였다 공병부대 막사가 한계리 주둔 하여 그 이름을 따서 한계령 이라고 부르게 된다
인재군 북면과 양양 으로 넘어 가는 44국도가 지나 가는 고갯마루 영동과 영서을 가르고
내설악 외설악 분기점 이기도 하다
한계령에 내리니 약간의 바람에 강원도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상당히 춥다
이곳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약간의 스트레칭을 한 다음에 산행을 준비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3:07)
가뿐 숨을 몰아 쉬면서 급경사로 이루어진 108계단을 올라서니 설악루가 나온다
설악루(雪嶽樓:03:10)
인제에서 구절양장의 한계령을 거쳐 양양으로 이어지는 44번 도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가
1968년 군단장으로 있었던 1102 야전 공병단에서 1971년에 이 도로를 완공했는데 그 한계령 도로 완공을
기념하여 108계단 위에 설악루라는 정자옆에 공덕비를 세웠으며 “雪嶽樓” 현판 글씨는 김재규가 직접 썼다고 한다
야심한 새벽에 설악루를 한바퀴 돌아봤으나 공덕비는 보이질 않고 머릿돌에는 2010년 설악루를 다시 세웠다고 한다
설악루를 한바퀴 돌고 나오니 위령비가 나온다
위령비
이 위령비는 한계령 도로 공사를 하다가 희생된 장병들의 위령비라고 한다
설악산 한계령 탐방 지원센터(03:12)
철문이 열려있다... 설악산을 산행을 해도 좋다는 뜻이렸다
철문을 지나 천천히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사람들은 보이질 않는다
오늘 내가 온 산악회는 차비만 받고 지도 한장 달랑 주면서 어느 곳을 오던지 가던지는
상관않고 14시간 30분안에 집결지에 도착하라는데 이곳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그러니 아무런 부담없이 자기 체력에 맞쳐 코스를 타면 된다고 하는데 목적 산행이 아니니
어쩌면 합리적인지도 모르겠다... 누군지도 모르는 서너명이 쏜쌀같이 추월을 해서 간다
가던지 말던지 나하고는 상관 없으니...
첫번째 이정표(03:25)
한계령에서 천천히 오르긴 했지만 어둠속에 급경사의 오르막이라서 그런지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첫번째 이정표를 지나는데 바람이 차갑긴하지만 바람막이 입을정도의 추위는 아니라 그냥 오른다
1,307봉(03:50)
계속해서 오르막이다... 어둠속이라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된다
오르막을 오르다 1,307봉에서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철다리가 나오고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한계령에서 나보다 먼저 총알같이 간 사람들이 숨을
헐떡거리면서 휴식을 취하는데 산행 차림으로 봐서는 산꾼은 아니고 그냥 등산객이다
신발도 등산화가 아니 운동화 차림에다 스틱없이 그냥 뒷동산 산보하러 나온 차림이다
1,280봉(04:10)
이제 나보다 먼저 간 사람은 보이질 않고 어두컴컴한 한계령 능선을 홀로 외로이 걷는다
음력으로 칠월 초닷새날이라 그런지 하늘에는 달은 진작에 저물어버렸고 새벽녘 별만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초롱초롱한데... 들리는 소리라곤 세찬 바람소리 뿐이다
귀때기청봉 갈림길(04:25)
귀때기청봉 갈림길이라고도 불리는 한계령 삼거리 이정표가 있는 서북능선에 올라선다
이곳에 올라오니 일반 등산객 2명이 쪼그리고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나보고 선생님은 어느 방향으로 가시냐고 묻는다... 대청봉쪽이라고 하니까
자기는 귀때기청봉 방향으로 가는데 초행이라 아무도 없고 하여 자신이 없다고 하면서 난감해 한다
나야 목적산행을 하는 사람이니 죽어나 사나 대청봉으로 가야 하기에 대청봉으로 향한다
1,334봉(04:40)
지도상의 1,397봉 자리에 새로운 이정표가 서 있고 구조 이정목에는 1,334봉으로 적혀 있는데 새로 실측한 모양이다
어둠속에 계속되는 암릉길 속도도 나질않고 하니 빨리 갈 수도 없다...
그냥 텅빈 충만을 느끼는 수행자의 심정으로 無念無想의 길을 걷는다
1,474봉(05:10)
1,474봉에 도착하니 날이 밝아 오려는 모양이다
동해바다쪽에서 붉게 물든 모습이 보인다
1,432봉(05:25)
넓은 공터의 쉼터가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걸을만하다
1,432봉 이정표
1,472봉(05:40)
날은 완전히 밝아지고 바닷가가 가까워서 그런지 벌써 해가 떴는지 햇살이 보이는 듯 하다
설악산답지 않게 잠깐이나마 편안한 길을 걸어보는데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1,504봉(06:05)
끝청봉을 향하는 오름길이 시작된다
이곳에는 하얀 투구꽃이 많이 보인다
諸行無想
끝청봉 오르는 길의 멋진 소나무 한그루는 아직도 도도함을 유지한 채 그대로이다
끝청봉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 본 귀때기청봉의 모습
설악산 중청봉에서 시작되어 서쪽 끝의 안산으로 이어지는 설악산에서 능선으로서는 가장 긴 구간인
서북주릉(설악산 서쪽 끝에 있는 안산에서 시작되어 대승령, 귀때기청봉을 지나 중청봉으로 이어지는
약 18km에 이르는 구간)상에 있는 암봉으로 귀때기청봉의 유래 3가지의 유래가 있는데
첫째, 바람이 하도 세게 불어 귀가 떨어질 것 같다는 것에서 유래된 이 있고,
둘째, 설악산은 바위산인데 귀때기청봉만 바위산이 아니기에 바위산인 다른 봉우리들이 바위산도 아닌 것이
우리들과 같이 설악산에 끼었다고 다른 봉우리들로 부터 귀때기를 맞았다고 하여 귀때기청봉이라고 불리 웠는데
귀때기를 맞은 후 같은 바위산이 되기 위해 다른 봉우리 몰래 바위산을 만들다가 들켜서 또다시 귀때기를 맞아
그 바위들이 부서져 양쪽으로 너덜지대가 만들어 졌다고 전해지는 설이 있으며
셋째, 설악산 봉우리들이 높이 경쟁을 하여 서열대로 대청, 중청, 소청, 끝청이 결정 되었는데 나중에 한 봉우리가
나타나 자기가 제일 높다고 우기다가 귀때기를 맞아 지금의 장소로 멀리 쫓겨나 귀때기청봉으로 불리우고 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들이 전해져 온다.
옛 기록인 설화산인 무진자란 사람이 쓴 『오세암사적기(五歲菴事蹟記)』에는 설악산의 주봉을
부르지 않고 봉정(鳳頂)이라 썼다... 그러나 창산 성해응(昌山 成海鷹) 의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서는
멀리서 보면 청색으로 보인다 하여 청봉(靑峰)이라쓴게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외에도 노산(鷺山) 선생은 봉황대(鳳凰臺), 봉정(鳳頂), 청봉(靑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옛 신앙의 근원이었던 「광명(光明)」에서 유래되었다.
외설악에서 보면 산정인 묏부리가 두 개로 보여 대청, 소청 이렇게 불렀는데 언제부터인지 대청, 중청으로
부르게 되고 내설악에서 보면 또 하나의 작은 봉이 있어서 소청봉이라고 불렀다. 끝청은 세 개의 봉우리 끝에
위치하고 있어 끝청이라고 불리우고, 귀때기청봉은 한쪽 귀때기에 있어서 귀때기청봉이라 불리우고 있다.
귀때기청봉의 따른 유래는 산의 형상이 귀때기를 맞은 형상을 하고 있어서 (대청, 중청, 소청과 높이를 경쟁하다
귀때기를 맞고 밀렸다고들 함) 귀때기청봉으로 불린다는 설도 있다 청봉이라
끝청봉 오름길에는 벌써부터 구절초가 滿開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설악산은 벌써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는데 계절적으로 한달은 빠른듯 하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올라서니 끝청봉이 나온다
귀때기청봉 너머로 가리봉과 주걱봉,삼형제봉이 나란히 보인다
귀때기청봉 너머로 보이는 외설악과 인제군의 산그리메
끝청봉(1,610m:06:15:)
8월달 내내 주말마다 비가 오는 바람에 거의 우중 산행을 했는데 오늘은 참으로 날씨가 좋다
주위의 산그리메가 한 폭의 풍경처럼 멋진 仙景으로 다가온다
대청봉 너머로 해는 벌써 中天으로 올라와 버렸다
대간길에서 바라본 용아장성( 龍牙長城)의 모습
용아장성에 묻혀있는 봉정암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뚜렸하게 들리는 듯 하다
나도 모르게 봉정암 방향으로 향해 선 채로 저두삼배의 예를 올린다
둥글고 오묘한 법(法), 진리의 모습이여
고요뿐 동작없는 삼라의 바탕이여
이름도 꼴도 없고 일체가 다 없거니
아는 이 성인이고 모르는 이 범부라네
묘하고 깊은 현묘한 진성(眞性)이여
의상조사의 법성게(法性偈) 중에서
암봉(06:25)
설악산에는 큰앵초가 이제사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이정표(06:35)
중청봉으로 오르는 길에 이정표가 서 있고 대청봉에서 한계령으로 향하는 등산객을 처음으로 만난다
등산객들은 중청봉으로 오르지 못한다...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기에 사면길을 따라서 대청봉으로 향한다
보라색 투구꽃이 이제사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뒤돌아 본 끝청봉의 모습
자연의 順理에 順應하면서...
오이풀꽃도 이제사 피기 시작한다
구절초(꽃말: 어머니의 사랑, 순수)
구절초의 전설
아주 오랜 옛날 옛적에 옥황상제를 보필하는 어여쁜 선녀가 천상에 살고 있었는데
그 선녀는 꽃을 너무나도 좋아한 나머지 꽃 가꾸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가
옥황상제의 보필을 소홀히한 죄를 물어... 지상으로 쫓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지상에 내려온 선녀는 가난하지만 착한 시인을 만나 나름대로 행복한 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아름다운 선녀의 미색이 입소문을 타고 고을 사또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호색가였던
사또는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 터무니 없는 내기를 제안하였다
만약, 남편이 사또와의 내기에서 지면 선녀를 관비로 사또에게 받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첫 번째 내기는 남편이 일자무식 농부인줄 안 사또의 실수로
시 짓기 내기를 제안했지만 시인인 남편이 간단하게 이겼다
두번째 말을 좀 타본 말타기 내기를 했는데 사또가 탄말이 미친 듯이 날뛰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남편이 이겼다
그러자, 화가난 사또는.. 막무가내로 선녀를 잡아다 옥에 가두고 모진 고문과 회유로 선녀를 유혹하였지만
선녀는 끝까지 절개를 지키며.. 거절을 하였고 죽음 직전에야 이 일이 의금부에 알려지면서 어렵사리 풀려났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 온 선녀는 고문의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생을 다해 옥황상제가 있는
천상으로 돌아갔고 선녀를 너무나도 사랑한 남편은 그녀를 따라서 죽고 말았다.
그런데, 이듬해부터.. 선녀가 천상으로 떠난 9월이 되자 그녀가 살던 집주위에 선녀가
천상에서 그토록 좋아라 했던 어여쁜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였고 이 꽃을 사람들은
9월에 피는 천상의 꽃.. 구절초라 불렀다고 한다.
가야할 대청봉의 모습
한계령 갈림길(06:50)
중청대피소(06:52)
한계령에서 중청대피소까지 3시간 40여분에 걸쳐서 논스톱으로 걸어서 도착했다
대피소에 도착하니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추워도 너무 춥다
이곳에 베낭을 벗어놓고 바람막이를 입은 다음에 대청봉으로 향한다
헬기장(06:55)
대청봉 가는 길엔 눈잣나무 군락지를 만난다
대청봉과 중청 대피소 사이에 서식하고 있는 눈잣나무는 향기와 꽃가루가 천리를 간다고하여 천리송이 부르기도
하며 눈잣나무는 북방계의 희귀식물중 하나로 이곳 설악산이 남방의 한계로 설악산까지만 산다고 한다
키 큰 잣나무와는 달리 누워서 자라며 잣나무와 비슷하지만 기듯이 옆으로 자라는 점이 다르다
눈잣나무는 소나무과 상록침엽수로 누워서 자란다는 뜻의 “누운 잣나무”를 줄여서 “눈잣나무”라고 한다
다섯장의 잎이 뭉쳐진 줄기에 꽃이 암.수 한그루에 피며 마치 융단을 깔아 놓은듯 하다
대청봉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 본 중청봉의 모습
대청봉(大靑峰1,708m:07:10)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과 양양군 서면, 그리고 인제군 북면에 걸쳐있는 봉우리로 상청봉(上靑峰),
청봉(靑峰)이라고도 하는 설악산(雪嶽山)의 주봉이다.
설악산의 가장 높은 최고봉으로 예전에는 청봉(靑峰)을 봉정(鳳頂)이라 했는데 청봉은 창산(昌山)
성해응(成海應)이 지은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봉우리가 푸르게
보인다는 데에서 유래 되었다고도 한다.
공룡릉, 화채릉, 서북릉 등 설악산의 주요 능선의 출발점으로 내설악·외설악의 분기점이 되며,
천불동계곡,가야동계곡 등 설악산에 있는 대부분의 계곡이 이곳에서 발원한다. 인근에 중청봉·소청봉·끝청이 있다.
정상은 일출과 낙조로 유명하며, 기상 변화가 심하고 강한 바람과 낮은 온도 때문에 눈잣나무
군락이 융단처럼 낮게 자라 국립공원 전체와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늦가을부터 늦봄까지 눈으로 덮여있고 6,7월이면 녹음이 어우러진다.
바로밑(북서쪽)에 중청봉(中靑峰)이 있고, 그 밑(북쪽)에 소청봉(小靑峰)이 있다.
무진자(無盡子)가지은 《오세암사적(五歲庵事蹟)》에는 청봉(靑峰)을 봉황대(鳳凰臺)라고 했으며,
성해응(成海應)의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는 봉정(鳳頂)으로 기록되어 있다.
「봉황대(鳳凰臺)의 정상인 봉정(鳳頂)은 설악(雪嶽)의 맨 꼭대기이다. (鳳頂卽嶽之極處)」
청봉(靑峰)이란 명칭의 유래에 대하여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는 「멀리서 보면 아득하게 청색으로 보인다.
그런 까닭으로 그 봉우리를 가리켜서 이름을 청봉(靑峰)이라고 하였다.(遠見只標渺而靑故指其絶頂而名日靑峰)」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 은상(李 慇相)은 봉황대(鳳凰臺), 봉정(鳳頂), 청봉(靑峰) 등은 우리 조상들의 옛 신앙의 근원이었던 광명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한다.지금은 정상 부위에 대청봉이라고 새긴 자연석비석과 요산요수(樂山樂水)라고 새긴 비석이 있으나,
이전에는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한다. 제단에는 가운데에 설악상봉국사천왕불신지위(雪嶽上峰國司天王佛神之位),
왼쪽에 팔도산신중도신령(八道山神中道神靈), 오른쪽에 설악산신령(雪嶽山神靈)이라고 쓴 위패가 모셔져 있어
봄,가을로 산신제를 모셨다고 한다.
설악산 정상 1등 삼각점(△ 설악11 / 1987 재설)
대청봉 정상에서의 인증샷
대청봉 정상에서 바라본 천불동 계곡과 화채능선
화채(華彩)란 꽃처럼 고운 빛깔을 수놓은 능선을 일컬음이며 화채능선(華彩綾線)
화채릉은 일명 동북(東北)능선이라고도 하며 자연휴식년제로 오랫동안 등산코스를 개방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보존상태가 뛰어나고 곳곳에 협곡과 절벽으로 인해 일반 등산객들이 개별적으로 산행하기는 위험하다.
설악의 멋진 풍경사진등은 대부분 화채능선에 찍은 사진들이 많은데
화채능선을 찾는 사람은 산꾼보다는 사진작가들이 더 많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만큼
조망이 빼어날 뿐만아니라, 화채능선은 항상 출입이 통제돼 왔던 설악의 성역과도 같은 곳이다.
설악 매니아들 중에서도 화채능선 한번 가보는게 꿈이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천불동 계곡과 속초 앞바다의 모습
설악의 오른쪽 날개, 화채능선 풍수지리상으로는 설악의 산세는 ‘닭이 알을 품고 있는 산세’를
지녔다고 하는데 대청봉이 닭의 머리이자 부리요, 서북능선이 왼쪽 날개, 화채능선이 오른쪽 날개,
그리고 공룡능선이 닭의 몸통이 되는 셈이고, 용아장성이 시작되는 봉정암은 설악의 심장이자 알이다.
풍수지리에 의한 설악의 형상을 보면 화채능선은 닭의 오른쪽 날개이다.
닭의 부리로 쪼아 먹을 수 있는 사정거리에 해당하는 오른쪽 날개 겨드랑이 밑이 죽음의 계곡이다.
그 누가 이곳을 죽음의 계곡이라 명하였는가....
죽음의 계곡은 대청봉에서 희운각으로 곧바로 내려오는 능선의 바로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자주 눈사태가 일어나는 곳으로 이 계곡에서는 설상훈련과 빙폭 훈련을 할 수가 있어서 히말라야
8천 미터급 등정을 위한 해외원정대들이 전지훈련차 많이 찾는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종종 등반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1969년에는 한국산악회원 열 명이 죽음의 계곡에서 해외원정을 위한 훈련을 하다가 눈사태를 만나 목숨을 잃었다.
죽음의 계곡 루트는 1956년 8월 한국산악회원 전감(田堪)씨가 최초로 개척한 이래 아직 뚜렷한 등반로는 없다.
죽음의 계곡은 바로 닭의 목에 해당한다.
대청봉 정상에 잠깐 서 있는 동안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심하고 손이 시릴정도로 추워서
서둘러 중청대피소로 향하는데 ... 대청봉 정상은 산꾼들에게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을 모양이다
다시 중청대피소(07:25)
중청대피소에 내려와도 바람은 여전하다...아직까지 허기는 지지않아 다시 베낭을 메고 희운각으로 향한다
중청 대피소에 있는 우체통
언제 편지를 써본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보낼 사람도 없다...내 자신이 이렇게 인간미를 잃어 가는지...
초등학교 담임을 맡으신 은사님에게 이 기회에 함 써볼까 생각했지만 주소를 모르니...
다시 길을 나선다(07:30)
다시 한계령 갈림길(07:32)
천불동 계곡
천불동(千佛洞)이란 이름은 이 계곡에 그야말로 천의 부처상을 늘어놓은 것처럼 기암봉이 많고
다양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웅장한 기암절벽과 톱날같은 침봉들 사이로 깊게 패인 협곡에
폭포와 소(沼)가 연이어져 있어 설악산의 가장 대표적인 코스이자 우리나라 계곡의 대명사로 꼽히는
천불동계곡은 빼어난 경관 때문에 설악산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천불동계곡은 설악산에 있는 대표적 계곡의 하나로 설악골 계곡이라고도 한다.
비선대(飛仙臺)에서 대청봉(大靑峰)으로 오르는 7 km 코스의 중간 계곡으로 와선대(臥仙臺)를
비롯하여 비선대 ·문수담(文珠潭) ·이호담(二湖潭) ·귀면암(鬼面岩) ·오련폭포(五連瀑布) ·양폭(陽瀑) ·
천당폭포(天堂瀑布) 등 유수한 경관들이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천불동이라는 호칭은 천불폭포에서 딴 것이며, 계곡 일대에 펼쳐지는 천봉만암(千峰萬岩)과
청수옥담(淸水玉潭)의 세계가 마치 ‘천불’의 기관(奇觀)을 구현한 것 같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중청봉 사면길을 따라서 내려가니 데크목 계단이 나오는데 그 너머로 가야할 공룡능선이 보인다
천번을 와도 질리지 않는다는 설악산... 역시 설악산은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구나
설악이 그리워 不遠千里 길을 마다않고 내 그대를 보러 오질 않았던가...
세속의 찌든 때는 찾아볼 수 없으니 설악산을 오를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운이 아닐까.
설악산정에서 내려다보니 저 세속에서 사는 衆生들이 한없이 가여워보이는건 이 범여만의 생각일까?
소청가는 길엔 예전엔 무심코 지나쳤던 앙증맞은 바위가 보이고 그 너머로 공룡능선이 보이는구나
오르지 못한 중청봉이 아쉽게만 보이는데 왜 그리도 이쁜지...
산과 여인은 멀리서 봐야 이쁜가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소청봉 정상에 도착한다
소청봉(小靑峰:1,550m:07:45)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인 봉정암이 있는 곳이다
봉정암 석가 사리탑 (2015년 10월 8일...사진)
부처의 뇌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하여 ‘불뇌보탑’이라고도 부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인 신흥사의 말사로 대표적 불교성지인
5대적멸보궁 가운데 하나로 불교도들의 순례지로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은 지리산 법계사가 해발 약 1400m로 가장 높고 다음이
봉정암(1244m)이며,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형국의 산세에 정좌하고 있는 봉정암은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가섭봉·아난봉·기린봉·할미봉·독성봉·나한봉·산신봉이 감싸고 있다.
자연암석을 기단부로 삼아 그 위에 바로 오층의 몸체를 얹었다. 이 자연암석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데,
1면에 4엽씩 16엽이 탑을 포개고 있어 부처가 정좌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맨 위에는 연꽃인
듯한 원뿔형 보주가 높이 솟아 있다원효성사와 보조국사 등 여러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으며
지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봉안하여 창건하였다.
소청봉에서 바라본 용아장성(龍牙長城)
용아장성은 뾰족하게 솟은 20여 개의 크고 작은 암석 봉우리들이 용의 송곳니처럼 솟아 성곽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는 데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능선을 이루기 때문에 용아장성릉이라 불리기도 한다.
한국(남한)에서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에 이어 3번째로 높은 산이며, 제2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음력 8월 한가위에 덮이기 시작하는 눈이 하지에 이르러야 녹는다 하여 설악이라 했고, 신성하고 숭고한 산이란
뜻으로 설산(雪山), 설봉산(雪峯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수려하면서도 웅장한 산세, 울산바위를 비롯한 기암괴석,
계곡의 맑은 물과 수많은 폭포 및 숲, 그리고 백담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 등이 조화를 이루어 사찰경관이 뛰어나다.
설악산은 내설악(內雪嶽)과 외설악(外雪嶽)으로 구분되는데, 대청봉을 중심으로 한 북쪽의 미시령(826m)과 남쪽의
점봉산을 잇는 주능선을 경계로 하여 동쪽을 외설악 서쪽을 내설악이라고 부른다
소청봉에서 깔딱고개 방향으로 내려선다
소청봉에서 희운각으로 내려서는 길은 상당히 편하지만 희운각에서 대청봉 오르는 길은 숨이 깔딱 넘어갈만큼 힘드는 곳이다
저 여인 뭔 근심거리가 있을까... 수심이 가득하다
공룡능선을 바라보며 희운각 대피소의 급경사 내리막길로 내려서는데 맑은 날씨 탓인지
마등령 넘어 비탐구간인 저항령과 황철봉을 지나 금강산 자락이 한 눈에 들어오니
과연 설악산을 잘 왔다는 생각이 드는건 이 범여만의 생각일까.
천번을 와도 질리지 않는다는 설악산... 과연 山中美人임에 틀림이 없어렸다
깔딱고개(08:10)
철난간 옆에 멋진 암릉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건만 어느 누구한 눈 길도 안준다
다른 산에서 있으면 멋진 지명 하나가 붙을만하건만 이곳이 설악이라 그냥 무명봉이다
대장장이의 딸의 슬픈 전설이 깃든 쑥부쟁이도 설악산에선 이미 만개하기 시작했다
희운각으로 향하는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철계단을 지나고...
희운각(喜雲閣) 대피소(08:25~45)
천불동(千佛洞)계곡과 가야동(伽倻洞)계곡의 경계인 무너미고개 바로 북쪽에 위치한 대피소로
1971년 한국산악회 최 태묵(崔 泰默)씨가 건립했다. 지금은 그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 됐다.
동쪽으로는 천불동(千佛洞)계곡, 서쪽으로는 가야동(伽倻洞)계곡, 남쪽으로는 대청봉(大靑峰),
북쪽으로는 공룡(恐龍)능선으로 갈라지는 교통의 요지이다.
희운각 안내판
사람을 겁내지 않는 다람쥐
한계령에서 출발하여 서북능선을 거쳐 대청봉, 희운각에 도착하여 5시간 반만에 처음으로 휴식을 취한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리고 가져온 음료에다가 떡 한팩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희운각에서 무너미 고개로 향한다
전망대(08:50)
전망대에서 바라본 설악산의 멋진 선경
전망대에서 바라본 천불동 계곡
전망대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무너미 고개로 향한다
무너미 고개(08:53)
천불동(千佛洞)계곡과 가야동(伽倻洞)계곡의 경계에 위치하여 내 ·외설악(內 ·外雪嶽)을
구분지으며, 고개 바로 북쪽에 희운각(喜雲閣)대피소가 있다.
무너미의 무는 물에서, 너미는 넘는다(건넌다)에서 왔음이 틀림없다.
물을 넘는다(건넌다)란 뜻의 무너미를 한자(漢字)로 수유(水蹂), 수월(水越)이라고도 표기하는데,
이 지명도 전국에 무수히 많이 분포한다
무너미고개를 08시 30분안에 통과해야만 조금 여유가 있는데 시간적으로 조금 빡빡한 느낌이라 맘이 급하다
사면길 등로를 따라서 부지런히 걷는다
山自分水嶺을 거스리며 개울물도 건너고...
로프를 부여잡고 급경사의 암릉으로 올라선다
다시 급경의 오르막을 계속해서 치고 올라선다
힘들게 오르니 신선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신선봉에 있는 안내판
신선봉 안내판
신선봉에서 바라본 오늘 내가 걸어온 길
바로 앞에는 가야동 계곡이 길게 뻗어 있다
신선봉(神仙峰:1,215m:09:15)
신선대라고도 부르는데 공룡능선 조망을 가장 멋지게 볼 수 있는 곳으로 과연
신선이 노닐만큼 풍광이 뛰어나니 신선봉이라 불러도 전혀 하자가 없는 곳인듯 하다
신선봉 정상에 오르니 공룡능선 웅장한 모습으로 시야에 들어 오는데 그야말로 가슴이 뻥 뚤리는 기분이다
신선봉에서 바라본 울산바위와 속초항
해발 873m 이고, 화강암으로 둘레가 4km나 되는 하나로 이루어진 바위산으로서 예전에는 '천후산'
또는 '연화반계산'이라 불리었다 합니다. 이유는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칠때 바위에 반동이 되어
나오는 메아리가 마치 하늘에서 사자가 울부짖는 소리와 흡사하다하여 '천후산'이라 불리었으며,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기후가 접하는 지역이다보니 운해가 자주끼고 이 운해가 바위산 중턱쯤에
끼었을때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연꽃이 반쯤피다만 봉우리와 흡사하다하여 '연화반계산'이라 불리었다 한다.
'울산바위'는 바위산 자체가 설악산을 안쪽에 두고 울타리를 쳐 놓은 형태를 하고 있다하여, 또는 우는 산과
같다하여 '울산바위'라 불리게 되었다하며, 경남 울산의 지명과 같다보니 전설이 나오기를 울산에 있던
바위로서 옛날 태고적에 금강산에 일만이천봉을 모은다는 소문을 듣고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이곳에 쉰다는
것이 영원히 쉬게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산이다.
범봉도 멋진 모습으로 산꾼 범여를 흥분케 만들고...
공룡능선은 이곳 신선봉(대)에서 바라봐야 가장 잘 보이는데 2013년 3월 11일에
명승 제103호로 지정되었는데 백두대간에 자리한 설악산 정상의 북쪽에 있는 마등령에서
시작하여 남쪽 신선암까지 이르는 능선을 가리키며 이 능선은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을 나누는
분기점이 되기도 하는데 인제군 백담사와 속초시 설악동에서 오를 수 있는 공룡능선은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중심 능선으로 이 능선에서 내설악의 가야동계곡, 용아장성은 물론 외설악의
천불동계곡과 동해까지 조망할 수 있다.
지명은 강원도 속초시와 인제군의 경계지점에 연속되어 있는 암석 봉우리들이 마치 공
룡의 등같이 생긴 데서 유래하였으며 공룡릉(恐龍稜)이라고도 불린다
공룡능선에서 바라본 속초
첫째, 속초는 속새(높이 30~60㎝의 상록 양치식물)가 많으므로 황무지, 원야(原野)의 의미로
속새, 또는 한자로 표기하여 속초(束草)라고 불리었는데, 이 두 땅이름이 함께 사용되다가
속초라는 땅이름만 남게 되었다.
둘째, 지금의 영금정 옆에 솔산이 있을 때, 바다에서 이 포구를 들여다보면 그 솔산이 소나무와풀을
묶어서 세워 놓은 것 같은 형태라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셋째, 풍수지리학 상 속초 지형이 와우형(臥牛形)으로 소가 누워서 풀을 먹고 있는 형국이므로,
누워서는 맘대로 풀을 뜯지 못하기 때문에 풀을 묶어서 소가 먹도록 해야 한다는 뜻으로 지었다.
넷째, 울산바위에 관한 전설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설악산에 구경 왔던 울산 고을의 원님이 신흥사 승려에게 울산바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가로
세금을 내라고 하여 해마다 세금을 받아갔는데,어느 해에 신흥사의 동자승이 이제 세금을
주지 못하겠으니 이 바위를 도로 울산 땅으로 가져가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울산 고을의 원님이 이 바위를 재(災)로 꼰 새끼로 묶어 주면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동자승이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 곧 지금의 속초 시가지에 자라고 있는 풀을 새끼로 꼬아 울산바위를
동여 맨 후 불에 태워 재로 꼰 새끼처럼 만들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에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가 한자로 ‘묶을 속(束)’자와 ‘풀 초(草)’자로 적는
속초(束草)로 불리게 되었다. --- 속초문화원 발간 [속초(束草)의 옛 땅이름]에서 인용
등로에서 바라본 천화대((天花臺))
범봉은 천화대의 암봉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설악산에 하늘에서 꽃이 내려와 앉았다는
천화대(天花臺)에 석주길 이라고 하는 릿지코스가 있다.
"천 가지의 꽃이 피어있다" "바위에 피어있는 꽃" "하늘 꽃"이라는
숫한 설을 남긴 천화대는 그 만큼 아름답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천화대는 비선대에서 철 계단을지나 천불동 계곡방향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초입이 시작되며 끝 지점인 공룡능선에서는 비선대 방향으로는 동북쪽으로
연결되어 있고 외설악을 대표하는 30개 이상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야하는 구간이다.
신선봉(대)에서 급하게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공룡능선에 취해 힘든줄 모르고 계속 걷는다...이것도 산에 대한 중독인가?
1,130봉(09:35)
암릉길 사이를 걷는데 예전의 공룡능선에 비해서는 걷기가 훨 수월하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 탓인지 걷기는 훨씬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 뿌리를 헤치고 올라서니...
로프를 부여잡고 낑낑대며 암릉 안부로 올라선다
암릉 안부(09:45)
가야할 마등령은 멀게만 느껴지고...
다시 암릉 계곡을 따라서 급한 내림길이 시작된다
잘 생겼다
공룡의 뿔이라고 불리우는 1,275봉은 점점 가까워지고...
아직 시즌이 아니라서 그런지 공룡능선은 참으로 한가하다...가끔 가다가 등산객만 보일뿐...
憂愁에 젖어있는 며느리밥풀
다시 오르막은 시작되고...
안부(09:55)
어느 조각가가 저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1,275봉... 당겨보니 정말 공룡의 뿔처럼 보인다
이정표(10:05)
로프 지대를 지나서 암릉으로 올라선다
암릉구간을 곡예하듯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1,275봉 오름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1,275봉 오름길에서 만난 촛대바위(범여의 생각 中에서)
지나온 대청봉의 모습
설악산은 ‘한가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여름 하지 때가 되어야 비로소 녹기 때문에 설악이라 불린다’고
옛 기록에 나온다. 우리나라 굴지의 명산으로 남한에서 한라산, 지리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이 산은 지난 1994년 9월 1일 설악산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바 있다.
문화재청은 세계자연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돼 있는 강원도 설악산 지역 내 중요 10경에 대해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18일 밝혔다. 이번에 명승 지정예고된 곳은 설악산내에서 웅장하고 경관이 빼어난 외설악 6곳과 내설악 4곳 등 총 10곳이다. ▲비룡폭포 계곡 일원▲토왕성 폭포▲대승폭포▲십이선녀탕▲수렴동ㆍ구곡담 계곡 일원▲비선대와 천불동 계곡 일원▲용아장성▲공룡능선▲울산바위▲내설악 만경대 등이다.
설악산의 주봉은 대청봉(1708m)으로 태백산맥 북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강원도 인제군과 양양군,고성군 일부와 속초시까지 4개 시·군에 걸쳐있다. 동쪽은 외설악, 서쪽 인제방면을 내설악, 남쪽을 남설악이라 부르는데 외설악은 천불동계곡을 끼고 양쪽에 솟은 기암절벽의 봉우리로 남성적인 절경을 이루는 데 비해, 내설악은 우아한 계곡미로 백담, 수렴, 백운, 가야의 여러 계곡동천으로 갈라져 은은하고 여성적인 경관을 이룬다.
뽕나무 버섯부치
활엽수의 고사목이나 그루터기 또는 생목의 뿌리 주위에 군생하며
뽕나무 버섯과 유사하나 갓이 작고 다발로 발생하며 대의 턱받이가 없다
1,275봉 이정표
1,275봉(10:35)
멀리서 보면 공룡의 뿔처럼 상당히 뾰족한데 카메라로 줌인해서 보니 아주 부드럽다
아쉽게도 정상으로 올라갈 자신이 없어 그냥 쳐다만 보고 다시 길을 나선다
가야할 큰새봉과 나한봉의 모습
1,275봉에서 다시 급한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마등령 삼거리가 1.7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아직도 1시간 이상 남았다는 얘기다
암릉 옆길로 올라선다
우측에 뾰족한 봉우리가 큰새봉이란다...예전엔 큰새봉이란 지명이 없었는데...
쉼터(11:00)
이곳에서 홀로 베낭을 내려놓고 10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뒤돌아 본 공룡능선의 모습
누에바위도 오늘 따라서 더욱 멋지게 보이고...
다시 급한 오름길은 시작되고...
큰새봉 오름길에서 만난 이정표
큰새봉(11:40)
로프에 몸뚱아리를 의지한 채 큰새봉에 오르니 산객들이 무리지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나홀로 산행의 습성 탓인지 왠지 사람들이 많은 곳은 엄청 불편하다... 서둘러 이곳을 빠져 나간다
뒤돌아 본 큰새봉의 모습
가야동 계곡의 모습
자연에 순응하며 살고...
조망바위(11:55)
나한봉은 지척이다
나한봉 정상으로 올라선다
나한봉(羅漢峰:1,298m:12:00)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속초시 설악동 경계에 있는 공룡능선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공룡 능선(恐龍稜線)에 있는 봉우리
중의 하나. 마등령(馬登嶺)과 1,275m봉 사이에 있으며, 불교의 수호신인 나한(羅漢)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나한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은 성자를 가리킨다.
불교에서는 누구나 불성이 있기 때문에 ‘부처’ ‘보살’ ‘나한’ 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각자(覺者)라는 점에서는 같다. 나한은 불교가 발달하면서 변화의 과정을 겪는다. 처음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 뿐이었다.
그 뒤 부처님이 성도한 뒤 최초의 제자가 된 교진여 등다섯 비구가 아라한과의 경지를 얻었다.
이어 야사와 그의 친구 54인, 가섭과 그의 제자 등 당시는깨달은 사람은 모두 나한이라고 생각했다. 그
런데 대승불교가 나타나면서 나한은 소승의 성자로 격하됐다.이타를 강조하는 보살에 비해 자신의 해탈을
추구한다는 이유에서 나한의 의미가 낮게 평가된 것이다. 나한은 중국으로 건너가면서 신앙의 대상으로 전환한다.
나한은 그 수가 16, 500, 1200 등 다양하지만 보통 16나한과 500나한을 이르는 말이라 한다.
늘 대간 산꾼들에겐 범죄자의 낙인이 찍히면서 걸어야 했던 황철봉과 마등봉이 보인다
너덜길을 지나서 마등령삼거리로 향한다
세존봉(世尊峰)과 속초시내의 모습
세존봉(世尊峰)은 마등령(馬登領) 밑(동쪽) 금강문(金剛門) 바로 위(북동쪽)에 있는 봉우리로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존칭인 석가세존(釋迦世尊)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천화대 너머로 천불동 계곡 그 너머로 화채능선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마등령 삼거리(12:10)
좌측으로는 오세암, 영시암을 지나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인데 산사태로 인해 출입금지란다
마등령 삼거리에서 1.4km 떨어진 오세암은 동자승의 슬픈 전설이 있는 암자이다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내설악 백담사에서 10km 쯤 떨어진 해발 1,200m고지에 오세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옛날 매월대사가 두 살 된 자기 조카를 동자로 데리고 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암자를 짓고 매월암이라 하였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어느 해 늦은 겨울, 대사는 암자의 식량이 떨어지자 당시 4살 된 동자에게 식량을 구하러
양양 큰 절에 가서 3일 간 있다가 올터이니 기다리라 하고 떠났다.
대사는 3일분 식량만 남겨 놓은 채 길을 떠났으나 양양에서 식량을 구해 가지고 돌아올 무렵 공교롭게도 큰 눈이
내려 다섯 자나 넘게 쌓였고 겨울이 다 지날 때까지 눈이 녹지 않아 비통 속에서 해를 넘기고 이듬해 3월에야
절로 돌아오게 되었다.대사가 암자 못미쳐 망원대에 올라 바라보니 신기하게도 암자에서 목탁소리가 들려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급히 달려가 보니 동자가 불상 앞에 앉아 목탁을 치고 있는데, 몸은 오래 전에 이미 죽었으나 가느다란
목소리로 계속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대사는 지난 겨을 식량을 구하러 절을 떠나기 전에 동자에게
너의 어머니는 관세음보살이니라 하고 일러 주었었다.
대사는 다섯 살 된 동자가 견성득도한 것을 보고 암자의 이름을 오세암으로 고쳤다고 한다.
서둘러 마등령으로 향한다
지나온 공룡능선을 멋진 모습으로 다시한번 뒤돌아 보고...
마등령(馬登領)에서 희운각(喜雲閣) 못미쳐 바로 북쪽 신선암(神仙岩)까지의 바위 능선으로 바위가 뾰족하여
마치 공룡(恐龍)의 등같이 생겼다하여 붙혀진 이름으로 나한봉(羅漢峰), 1,275m봉, 노인봉(老人峰),
1,184m봉이 위치하고 있다. 1963년 겨울 선우중옥, 정규현, 채태웅 팀이 처음으로 공룡(恐龍)능선을 주파하였다고 한다
잠시후에 마등령에 도착한다
마등령(馬登領:12:20)
내 ·외설악(內 ·外雪嶽)을 연결하는 고개 중의 하나로 동으로 금강굴(金剛窟), 비선대(飛仙臺), 서로는 오세암(五歲庵),
백담사(百潭寺), 남으로 공룡(恐龍)능선, 대청봉(大靑峰), 북으로는 저항령(低項領), 황철봉(黃鐵峰), 미시령(彌矢領)으로 연결된다.
지금은 등산객들만이 넘어 다니나, 예전 도보시대에는 행상인, 민간인들이 동·서를 넘어 다닐 때이용한 옛길 중의 하나였다.
말 등처럼 생겼다고 하여 마등령(馬登領)이라고 하였다 한다. 현재는 대부분 마등령(馬登領)으로 표기하나,
옛 기록에는 모두 마등령(馬等領)으로 되어 있다.또 《설악(雪嶽)의 뿌리》에는 마등령(摩登嶺)으로 표기하여,
산이 험준하여 손으로 기어올라가야 한데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마등령에서 철계단으로 내려서면서 비선대로 향한다
안부(12:35)
너덜길도 지나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천불동 계곡
이정표(12:40)
계속되는 내리막길... 도가니에 통증이 조금씩 시작되고...
등로에서 바라본 오늘 내가 걸어온 길
안부(12:45)
약수터(12:55)
약수터인지 흐르는 샘물인지는 모르겠으나 물 한모금 마시고 비선대로 향한다
샘터에 서 있는 이정표
사망사고 발생지점 이정표도 지나고...
2번째 너덜길을 만나고...
이정표(13:15)
계속되는 암릉길을 쉬지않고 걸었더니만 도가니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잠깐 휴식을 취한다
금강문(13:25)
비선대가는 길에서 바라본 천불동
마치 千佛을 봉안해 놓은듯한 암릉이 장관을 이루는데 설악산의 백미가 아닌가 싶다
계속되는 돌계단... 그러나 어쩌랴 피해갈 수가 없으니... 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지
당겨본 세존봉의 모습
급경사의 철계단으로 내려선다
신흥사 건너편 계조암 윗쪽에 있는 흔들바위도 당겨보고...
이정표(13:55)
금강굴(금강암)이 있는 장군봉의 모습
오세암쪽에 산사태가 나서 출입을 금지한단다
금강굴 갈림길(14:10)
금강굴은 강원도 속초시의 서쪽 외설악 미륵봉 중턱에 위치한 동굴로 경사가 급하여 곳곳에
설치된 부교와 계단을 이용해야 오를 수 있는데 금강굴에서 내려다보이는 천불동계곡이 매우 아름답다.
굴의 넓이는 23평방미터이고 길이가 18미터인 자연석굴로 일찍이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했고 금강이란
이름은 원효대사의 金剛三昧經論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며 금은 신흥사의 부속 암자이다. 금강굴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는 물론 삼국유사나 조선시대 지리지와 고지도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민속학자 황호근 등이 설악의 기이한 자연현상인 8奇를 정하였을 때 金剛有穴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석산인 미륵봉에 금강굴 같은 큰 구멍이 있는 것이 신기롭고 기이하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금강굴의 모습(사진 - 펌)
금강굴에 들려 참배를 하려고 했으나 버스 시간이 촉박하여 선 채로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비선대로 향한다
드디어 지루한 설악산 암릉길을 끝내고 천불동 계곡에서 내려오는 길이 만나는 비선대탐방센터에 도착한다
금강굴의 안내 표지판도 보이고...
비선대탐방지원센터(14:25)
비선대탐방지원센터 다리에서 바라본 양폭계곡의 모습
계곡에서 바라본 비선대(飛仙臺)의 모습
좌측이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일명:미륵봉), 가운데가 형제봉, 우측이 선녀봉인데
외설악 지구의 천불동계곡 들머리에 있는 커다란 암반(巖盤)으로 마고선(麻姑仙)
이라는 신선이 이곳에 와서 놀다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계곡길을 따라서 설악산 소공원으로 향한다
계곡에는 뜻모를 글자들이 음각되어 있다
와선대(臥仙臺:14:35)
옛날 마고선(麻姑仙)이라는 신선이 바둑과 거문고를 즐기며 아름다운 경치를
너럭바위(넓고 평평한 바위)에 누워서 감상하였다고 하여 와선대라고 불렀단다
숲이 울창하고 기이한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가히 절경이라 하였는데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너럭버위 흔적은 사라지고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군량장 표석(14:40)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군량미를 저장해 두었던 터를 알리는 군량장이란다
설악교(14:43)
설악교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능선의 저항령
이정표를 지나니...
이름모를 자유용사의 비(14:50)
이름모를 자유용사의 비를 지나면서 금강송 숲을 호젓하게 지나간다
금강교(15:02)
좌측으로 가면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본사인 신흥사이지만
늦은 시간이라 참배는 다로 미루고 일주문 방향으로 향한다
금강교에서 바라본 권금성(權金城)의 모습
아주 오랜 옛날 한 마을에 권씨 성의 장사와 김씨 성의 장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이 쳐들어오자 산세가 험한 곳으로 피난하였다. 그곳이 지금의 권금성 자리이다.
적이 오자 방어할 길이 없어 서로 의논하였다. 그래서 두 장사가 그곳에 성을 쌓기로 하였다.
“적병이 오기 전에 성을 쌓아야 할 텐데...”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안에 성을 만들어야 화를 면할 것이오.”
하지만 성을 쌓는 다는 것이 결코 생각 처럼 쉽지 않았다. 의논 끝에 돌을 날라다가 이곳에 성을 쌓기로 하였다.
하지만 먼 거리에서 돌을 날라다가 성을 쌓는 다면 몇 달이 걸릴 것 같았다.
두 장사가 궁리 끝에 “이렇게 합시다. 돌을 날라서는 성을 쌓을 수 없으니
내가 강에 내려가 돌을 던질 테니 당신은 여기서 받아서 성을 쌓으시오,
그래야만 하루 밤에 성을 다 쌓을 수 있을 것이요.” “좋습니다.” 그래서 권장사가
강으로 내려가 돌을 주어서 던졌고 그러면 김장사는 그 위에서 돌을 받아가지고
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힘들면 서로 교대로 김장사가 강으로 내려가 돌을 던지고 권장사는 위에서 돌을
받아 성을 쌓았다. 이렇게 권장사와 김장사가 만든 성이라 권금성(權金城)이라고 부른다.
신흥사 통일대불(15:05)
통일대불의 불전함에 보시하고 고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일주문으로 향한다
신흥사 일주문(15:08)
신흥사는 신라 진덕여왕 6년(652)에 자장ㅇ듈사가 세워 처음에는 향성사라 불렀고, 그 후 여러차레 불에 탄 것을
조선 16대 인조22년(1644)에 영서(靈瑞), 연옥(蓮玉), 혜원(惠元) 세 스님이 똑 같은 꿈을 현몽하여 지금의 자리에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신의 계시를 받고 세웠다 하여 신흥사라 했다.
창건 당시 주조한 1400여년 된 범종과 조선 순조께서 하사하신 청동 시루, 극락보전(지방문화제 14호),
경판(지방문화재 15호), 보제루(지방문화재 104호), 향성사지 3층 석탑 및 삼불상, 명부전, 선제루, 칠성각 등이 남아 있다.
설악산 소공원(15:17)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7번 버스를 타고 설악산 C 주차장으로 가니 버스가 있다
산악회에서 추천하는 식당에 가니 무료 사워시설이 있어 사워를 마치고 산채 비빔밥에
맥주 2병을 마시고 약간의 휴식을 취하는데도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
산악회 버스는 얄짤없이 16시 30분에 출발을 하여 용대리와 남교리에 들려서 등산객을
태우는데 시간내에 오지 못한 등산객 12명은 개별적으로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야 한단다
산악회 운영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난 좀처럼 이해가 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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