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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백두대간 3차 북진(終)

백두대간 제13구간 - 큰재에서 지기재까지

by 범여(梵如) 2017. 8. 3.

 


                    낮은 山이 낫다

 

☞산행일자:  2017년 8월 2일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높은 습도...오후에 맑음, 폭염 주의보로 엄청나게 더움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0여km / 6시간 25분소요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큰재-김해김공 묘지-공터-무명묘지-무명봉-무명봉-임도-회룡목장 입구-공터

             옛고개-광골.골가실 갈림길-무명봉-회룡재-서낭당-무명묘지-개터재-무명묘지

             무명봉-512m봉-474m봉-안부-463m봉-윗왕실재-무명봉-무명봉-묘지-477m봉

            산촌체험관 갈림길-성봉산갈림길-백학산-무명봉-대포리 임도-405m봉-안부

            원삼삼거리-복숭아밭-개머리재-무명봉-임도-안심산-지기재

소 재 재: 경북 상주시 공성면, 내서면, 모서면, 모동면


푹푹 찌는 더운 날씨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 내린다

지난주에는 전 세계에서 행복 지수가 제일 높다는 부탄으로 불교성지 순례를 1주일동안 갖다오는 바람에

산행을 못했더니만 계속해서 몸뚱아리가 찌푸둥하고 컨디션이 엉망인데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사무실에

나와봐야 개미새끼 한마리도 보이질 않고 거기다가 울 동네는 부동산 투기지역으로 묶이는 바람에

당분간 밥벌이하기는 상당히 힘들것 같다... 청승맞게 사무실에 앉아 있어봐야 별 소득도 없을 것 같아

이른 아침에 베낭을 메고 백두대간중 가장 쉽다는 상주구간 코스를 한바리 하려고 동서울 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 상주행 버스표

동서울에 도착하니 06시 10분경 버스표를 예매하고 근처 식당에서 비빔밥으로 아침을 해결한 다음에 탑승구로 향한다

동서울에서 06시 40분에 상주로 출발하는 일반버스에 몸을 싣고 상주로 향한다

상주로 가는 버스는 일반버스와 28인승 리무진 버스가 있는데 상당한 가격 차이가 난다

똑같은 코스에 똑같은 시간이 걸리는데 일반 버스는 12,100원이고, 리무진 버스는 17,600원

그런데 일반버스는 승객이 거의 없는 편이다...주머니가 가벼운 산꾼이 비싼 차를 탈 수 있겠나

일반 버스에 오르니 승객이란곤 달랑 7명... 그것도 점촌에서 4명 내리고 3명만 상주로 향한다

상주 버스터미널 앞 택시 정류장(09:00)

상주터미널에 도착하여 큰재를 가기 위해서는 공성면 옥산으로 가야하는데 10분전인 08시 50분에

버스는 떠나 버리고 다음 차는 10시 50분이라고 버스표에 적혀 있는데 조금은 난감하다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오늘 산행구간이 백두대간 능선 중에 가장 편한 코스라곤

하지만 거리가 약 20여km 정도나 되고 폭염 주의보가 내려진 날씨라 상당히 부담스럽다

버스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옥산가는 교통편을 물어봐도 제대로 가리켜 주는 사람이 없다

택시를 타려고 승강장에 갔다가 너무 억울할 것 같아 다시 대합실로 들어와서 매표소 직원에게

물어보니 김천가는 버스를 타고 옥산에서 내리면 된다고 하면서 09시 25분에 출발한단다

 

결론부터 말하면 좌석버스와 상주 시내버스가 있는데 좌석버스는 상주에서 김천, 구미로 운행하고

일반버스는 상주시 관내에서만 운행하는데 버스 운행 시간이 들쭉날쭉 한 편이다

09시 25분발 상주발 → 옥산(공성면)행 버스표

09시 25분에 출발해야 하는 버스가 09시 30분이 되어서야 플렛홈으로 들어온다

버스는 들어오자마자 승객 대여섯명을 싣고 출발하는데 안내 멘트도 없이 두어곳을

들린 다음에 옥산 버스 정류소에서 나를 내려주고는 김천방향으로 가버린다

옥산 버스 정류장(09:55)

버스에서 내려 공성파출소 방향으로 10여분을 걸어 내려오니 택시 승강장이 있고 택시는 한 대도 없다

이곳에서 다시 10여분을 기다린 끝에 택시를 타고 오늘의 들머리인 큰재로 향한다

옥산에서 택시를 타고 15여분 정도 걸려 큰재에 도착한다(택시비 8,000원)

큰재(320m:10:25)

경북 상주시 모동면 신곡리에서 공성면 도곡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예전의 초등학교 자리는

상주시에서 운영하는 백두대간 생태 체험장이 들어서 있고, 예전에 비해 변해도 너무 변해 버렸다

낙동강과 금강의 발원지로 갈라지는 큰재는 우하재라고 불리기도 하며, 옛날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에 상주에서 한양으로 가기위해 넘어야 할 큰 고개라 해서 큰재라 불리웠다고 한다 

이곳은 군사적 요충지라 임진왜란을 비롯한 각종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기도 한 곳이다

산행을 시작하다(10:30)

예전에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의 모습은 형태도 없이 사라지고 그 대신에 상주시에서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여 건립한 생태교육장에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질 않고 직원인듯한 한.두명만 보인다

교육장을 가로질러 대간길 숲으로 접어든다

김해김공& 경주손씨 묘지(10:33)

최근에 내린 비로 인해서 등로는 촉촉히 젖어있고 아직까지 흐린 날씨로 인해 그리 덥지는 않지만 바람한 점 없다

그런데 스마트폰에서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졌으니 외출을 자제하라는 문자 메세지가 뜬다

등로 가운데로 거미줄이 많아서 상당히 성가시다

공터(10:38)

노란띠끈적버섯

평일이라 그런지 등로는 참으로 호젓하게 걷기는 안성맞춤이다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무명묘지(10:43)

뱀껍질광대버섯

뱀껍질광대버섯은 갓 표면이 갈회색, 암갈색이고 작은 인편이 밀포되어 있으며

성장하면 표면은 크고 작은 인편으로 갈라져 불규칙한 동심원상으로 배열되어 있다.

대기부 구근상 바로위에 흑갈색의 분정상을 띠고 있으며 독성이 강한 버섯이다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각종 버섯들이 우후죽순이 많이 보인다

짙은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후덥지근한 날씨에 바람 한 점이 없으니 오늘 산행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을듯 싶네

일본연지 그물버섯

여름과 가을철에 활엽수림 또는 침엽수림 땅에서 홀로 발생하거나 무리지어 군락을 이루며

균모의 지름은 5~8cm 정도이고 반구형에서 둥근산 모양을 거쳐 편평한 모양이 된다

표면은 매끈하나 다소 울퉁불퉁하며 습기가 있을때는 끈적거리나 나중에 없어지며 자홍색 또는

적갈색으로 식용여부는 불분명하며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양파 광대버섯이다...좌우지간에 버섯은 화려한 넘은 대다수가 맹독성이니 조심하시길...

벽돌깔때기 버섯

봄에서 여름사이 주로 불이난 곳에서 자주 보이는 버섯으로 2~5cm의 편평한

모양에서 차대 가운데가 들어간 깔때기 모양으로 되며 얇고 백색을 띠며

냄새가 강하며 표면은 황색이고 다소 세털이 있으며 식용불가 버섯이다

또다시 무명묘지를 만나 능선으로 오르니 무명봉이 나온다

무명봉(10:50)

한많은 설음을 안고 사는 며느리 밥풀

원추리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흰우산버섯

여룸과 가을 사이에 활엽수와 침엽수림 내에서 자생하며 얇고 부드러우며 식용가능한 버섯이다

무명봉(10:55)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선다...흔히 백두대간 상주 구간을 중화대 지구라고도 하지만 非山非野 구간이라도 한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줄기차게 뻗어내린 대간길은 덕유산을 지나 김천 황학산 거쳐 추풍령으로 떨어지면서

고도를 급격하게 낮춰 이른바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상주구간을 거친 다음에 속리산을로 치고 오르는 형세이다

임도(10:57)

회룡목장으로 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회룡목장 정문이 보이고 대간길은 정문 직전에서 우측 숲으로 접어든다

회룡목장 입구(11:00)

회룡목장 입구 이정표

큰재에서 이곳까지 30분만에 도착했으니 생각보다 상당히 빨리온 느낌이다

하기사 날씨도 무덥고 짙은 안개탓에 뭘 볼게 있어야 산행이 시간이 지체되지...

대간 산꾼들의 산행 후기에 자주 등장하는 회룡목장... 자세히 보니 가축도 없고 가축 분뇨 냄새도 별로 안 난다

대간길이 사바세계가 그리운지 산을 버리고 마을로 내려왔다.

황소끈적 버섯처럼 보이는데...확신이 서질 않는다

공터(11:08)

노란꼭지버섯

여름에서 가을 사이에 혼합림내에서 무리지어 자생하며 전체가 황색을 띠고, 대부분 갓의 중앙 부위에

연필심 모양의 돌기가 있으나 드물게는 떨어져 있으며, 한국과 극동 아시아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버섯이다

옛고개(11:10)

상주시 공성면 우하리와 오광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고개의 형태는 뚜렸하나 잡풀이 무성하다

고개를 지나 나무계단을 따라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선다

비가 오고 난 뒤라서 그런지 높은 습도에다 바람 한 점이 없고 땀은 비오듯 흐른다

그래서 그런지 여름 산행은 참으로 힘이 드나?... 그래도 매주 다녀야 하니... 나도 상당히 맛이 간 느낌이다

철지난 애기똥풀 

광골,골마실 등산로(11:15)

예전에 없었던 표지판이 있고 우측으로 광골, 골가실로 향하는 등산로가 보인다

광골과 골가실은 공성면 봉산리에 있는 마을로서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작은 하천이 흐르며 논농사가 이루어져 있으며 매봉산 밑이 된다 하여 봉산리라 하였다.

높은 습도와 바람이 없긴 하지만 대간길에서 가장 낮은 비산비야 구간이라 그런지 마치 트래킹하듯 대간길을 걷는다

그래도 대간길이라 그리 만만하게 볼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산악계에서 여성 산악인중에 전설적인 인물로 꼽으라면 아마 남난희씨 일 것이다

그 분은 스물여섯 어린 나이 나이에 여성 혼자의 몸으로 눈이 펑펑 내리는 한 겨울에 백두대간을

완주했고, 그 후에 다시 그는 여성으로서 세계 최초로 해발 7,455m의 희말라야 강가푸르나봉에 올랐다.

여자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설악산 토왕성 빙벽폭포도 여성 최초로 올랐다고 한다

7~8년전인가 우연히 서점에서 그 분이 쓴 “낮은 산이 아름답다”라는 책을 사보고 오늘 대간길을 걸으면서 많은 걸 느낀다

그 분은 백두대간을 계속 찾은 것은 세상의 어느 산보다도 백두대간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두대간은 끝없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곳이기에 걷다보면 자신의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단련되며 그러기에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시험하고 단련하는 가장 좋은 곳이 대간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던 그 분이 우연히 만난 남자분과 결혼을 하고 아들까지 낳았으나, 남편분은 돌연 출가를 하여 스님이 되어 버리고

아들과 함께 지리산의 끝자락 청학동에서 거주를 하였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최근에 하동에 사는 지인의 소식에 의하면

남난희씨가 아들을 잃고 상당히 힘들어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는데 산꾼으로서 가슴이 많이 아프다

양파광대버섯
양파광대버섯은 비교적 크며 전체가 백색이고, 갓 표면에 피라미드상 돌기가 산재해

있으며 기부는 팽대하여 양파 모양의 구근상을 이루며 맹독성인 광대버섯류에 속한다

나홀로 산행시 지루함을 달래고 동물을 쫒는 역할을 하는 라디오가 나에겐 유일한 동반자이다

나홀로 산행의 유일한 동반자

영지버섯

동양에서는 이 버섯을 매우 영령한 약용버서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불로초, 장수버섯, 천년버섯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버섯은 실제로 불로초로 불릴만큼 실제 항종양에 대한 억제율이 70~80%로 나타났으며

5가지의 맛이 나며 효능은 산삼에 버금간다고 한다

무명봉(11:23)

편한 등로를 따라서 걷는데 비가 온 이후라서 그런지 여려종의 버섯들이 참으로 많이 보인다

덕다리 버섯 종류 같기도 하고...아리까리 하다

회룡재(回龍峙:340m:11:32)

상주시 공성면 봉산리 골가실 마을에서 모동면 회룡리를 거쳐서 상판저수지로

연결하는 고개로 이곳 고개 우측으로는 엄청나게 큰 회룡목장이 자리를 잡고있다.

회룡재의 유래를 보면  풍수에서 재의 형상이 용이 뒤돌아 보는 형세라고 해서

회룡재라고 부르는데  백학산에서 고도를 낮춰 이곳까지 왔다가 큰재를 지나

다음 구간인 국수봉과 용문산에 오르는 용트림의 地勢라 그렇게 부르나? (범여의 생각中에서)

뒤돌아 본 회룡재의 모습

능선을 올라섰다가 곧바로 내려서니...

서낭당(11:38)

상주시 공성면 봉산리 골가실마을에서 회룡마을로 넘어가는 커다란 돌무더기가 있는 서낭당이

있고 회룡마을 쪽으론 커다란 인삼포가 보이는데...예전엔 본 기억이 없는듯 하다

서낭당은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 형태로, 그 곁에는 보통 신목(神木)으로

신성시되는 나무 또는 장승이 세워져 있기도 하며 이곳을 지날 때는 그 위에 돌 세 개를 얹고 세 번 절을

한 다음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신이 있다.

 

서낭당은 서낭신을 모신 신역으로서 신앙의 장소로 이곳을 내왕하는 사람들은 돌·나무·오색 천 등 무엇이든지 놓고 지나다녔다.

물론, 그곳의 물건을 함부로 파거나 헐지 않는 금기가 지켜짐은 말할 나위가 없다.

서낭이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서, 또는 석전(石戰)에 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민간에서의 서낭은 종교적 의미가 농후하다.

 

우리 나라에 서낭신앙이 전래된 것은 고려 문종 때 신성진(新城鎭)에 성황사(城隍祠)를 둔 것이 서낭의 시초라 한다.

그 뒤 고려에서는 각 주부현(州府縣)마다 서낭을 두고 이를 극진히 위하였는데, 특히 전주서낭이 유명하였다.

 고려 고종은 침입한 몽고병을 물리치게 된 것이 서낭신의 도움 때문이라 하여 서낭신에게 신호를 가봉하였던 일도 있었다.

회룡마을쪽으로 보이는 인삼포가 보이는데 지금 백두대간을 걷는 것인지 들판에 와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이곳 역시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전형을 띠는 구간으로 비록 백두대간이라 하지만 지대가 워낙 낮아서 등산로엔

넝쿨지대가 많고, 주변에 논과 밭이 자주 나타나며, 무덤이 많이 있으며 그리고 대간보다도 주변 산줄기의 표고가

더 높아서 대간을 압도하는 하는 듯하다... 대간 능선이 오히려 주변의 산줄기의 눈치를 보는 형국이 돼 있다.

무명묘지(11:42)

오늘 산행구간에는 유난히 많은 무덤들이 가까운 시골마을의 창문이라도 들여다 볼듯이 자릴 잡고, 삶과 죽음이

더불어 한가롭다. 잘 단장된 것들과 허물어져 내리는 것들...같은 지맥에도 명당은 다른 법인가.. 

산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무명묘지를 지나 오르막을 오르는데 엄청나게 큰 봉우리 하나가 앞을 가로 막는다

바짝 긴장을 하고 오르는데 천만 다행으로 정상을 오르지 않고 우측 사면길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옆사면길을 이어가니... 이렇게 편한 길...갑자기 양넘 지갑을 줏은 기분이다

너덜길을 지나고...

사면길이 끝나면서 다시 넓은 임도를 따라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털귀신버섯

개터재 내려서기 직전 좌측엔 여산송공과 해주오씨 부부묘가 있는데 잡풀만 무성하다

개터재(380m:11:58)

경북 상주시 모동면 효곡리와 공성면 봉산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길은 뚜렸하나 인적이

드문었던지 아님 사람들이 다니지 않았는지 대간길 이외는 잡초만 무성한 곳이다.

원래 개터재는 이곳에서 공성면 효곡리 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편리상

개터재로 불렀는데 누군가 이곳 이정목에 옛고개라고 메직으로 써놨다.

 

효곡리는 효자와 열녀가 많이 배출되어 마을 이름이 효곡리로 지어졌고,

인심 좋고 범죄없는 마을로도 유명세를 다 하고 있다고 한다.

 

개터재의 유래는 유용하게 식량을 제공한 날짐승들이 많아 개터재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과,

산세가 마치 개들이 모여 살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또한 부근의 봉산마을, 효곡마을, 왕실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라 해서

 봉산재, 효곡재, 왕실재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개터재 이정표

무명묘지(12:00)

무명봉(12:05)

개터재에서 7분정도 오르니 무명봉이 나오고 산꾼들이 걸어논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상주시에서 이런 이정표를 많이 설치해놔서 대간길 걷는데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된다

512m봉(12:10)

마른산그물버섯

여름에서 가을철 사이에 활엽수림 또는 침엽수림 내 지상또는 산길에서 소수

군생하며 갓 표면은 건성이며 생장 초기에 융단상 털이 있으나 성장후에는 소실한다

계속되는 내림막길... 빠른 속도로 산행을 진행한다

흰여로(꽃말:기다림)

백합과 여로속에 속하는 다년생 풀로서 여러속은 다년생 종들로 녹색이 도는 흰빛 또는

갈색이 도는 자줏빛의 꽃이 피는데, 관상용으로 심는데 이들 식물에 들어있는 독은 살충제로 쓰인다.

흰여로는 우리나라 전역 산지에 나는 다년초로 개화시기는 7~8월이며, 꽃의 색은 흰색이고, 뿌리를

약용으로 쓰며 높이 1m정도이고, 줄기 아래 잎은 어긋나며 긴 타원형으로 끝은 뾰조하다.

뿌리 줄기는 짧고 굵으며, 뿌리는 굵은 실 모양이다. 여로속은 산나물로 잘못 알기 쉬운 대표적인 독초이다.

봄나물인 원추리와 유사하나, 여로 잎은 털이 많고 잎맥이 나란하며 깊은 주름이 있어 털과 주름이 없는 원추리와 구별된다.

474m봉(12:45)

아그들의 흔적

안부(12:48)

안부에서 오르니 조그만 무명봉이 보이고...

463m봉(12:55)

간벌된 소나무 숲 사이로 대간길을 이어가고...

계속되는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윗왕실재가 나온다

윗왕실재를 지나가는 동물이동통로가 보이고...

윗왕실재(400m:13:10)

상주시 모동면 효곡리 윗왕실 마을과 외남면 소상리를 연결하는 1톤 트럭이

다닐정도의 넓은 임도가 지나가는 고개로 동물이동통로가 새로 설치되어 있다.

윗왕실마을 고개라 해서 윗왕실재라고 하는데 왕실(旺室)이란 사위가 산으로 둘러 쌓여,

마치 구중궁궐처럼 깊숙한 곳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마을 이름으로 산세가 왕이

기거하는 왕궁과 같다 하여 ‘왕재’라 하였으나, 민초들이 함부로 왕을 입에 올리지 못하던

시절이라 뒤에 ‘실’자를 붙여 왕실재가 되었다 한다.

도로 아래에서 바라본 윗왕실재 동물이동통로

윗왕실재 도로에서 바라본 윗왕실마을

윗왕실재 도로에서 능선으로 올라 대간길을 이어가는데 철쭉 군락지를 통과하여 우측으로 꺽어진다

계속되는 철쭉 군락지

바로 앞에 보이는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좌측 사면길로 대간을 이어간다

무명봉(13:25)

연리지인가?

무명봉(13:30)

간벌지역을 지나는데 볕이나기 시작하는데 땅에 올라는 地熱 때문에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묘지(13:37)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조금씩 고도를 높혀 가면서 백학산으로 향한다

477m봉(13:45)

산촌체험관 갈림길(14:05)

상주시 내서면에 있는 산촌체험관으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있으나 등로는 희미하다

하기사 내가 지금 그리로 갈 일이 없다마는...

성봉산 갈림길(14:10)

우측으로는 상주시 내서면 노류리가 내려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나 대간길은 좌측이다

윗왕실재를 지나 짧은 된오름을 맛본 후 그리 높지 않은 477m봉까지 야산 특유의 잡목활엽수와 소나무가

뒤섞인 구릉을 이어가는데 마치 고향 뒷산처럼 푸근한 발걸음에 제각각 마을 뒷산을 들먹이며 모처럼 대간길의

여유로움에 젖는 기분인데 대간길 중에서 가장 낮은 고도를 유지하며 사람과 산이 함께 하는 평화로운 구간이다.

어쩌면 농사일에 찌들은 삶을 기대며 밤을 새운 뒤, 새벽의 긴 연기를 드리우며 하루를 열어가던 우리네 착한

영혼들의 안식처는 모두 다 이러한 새소리가 들리는 야산 아래 같은 그림인지도..

 

여러 개 구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 대간 마루금에는 쓸모없는 구간은 없고, 각 구간마다 서로 보완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으니 인간세상으로 치면 ‘사회적 동물’에 해당한다. 인간이 개인으로서 존재하고 있어도

그 개인이 유일적(唯一的)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은 오늘 큰재-개터재-백학산-지기재 구간이 던져준 화두이다.

설악산이 아름답다는 것도 지리산이 웅장하다는 것도 오늘 구간처럼 확연히 대비되면서도 중요한

구실을 하는 구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일명 장자봉이라고도 하는 백학산은 부드러운 육산이고, 정상의 공터에 세워진 표지석엔

 '백두대간 白鶴山 615m'라 새겨져 있다. 수목에 시야가 가려 전망은 신통치 않으나 북쪽으로

소정리 마을과 함박골이 내려다보이고, 901번 지방도도 보인다. 백학산에서 서쪽을 뻗은 능선은

성봉산(572.1m)으로 이어지고 있다. 

백학산(白鶴山:14:15~35)

경북 상주시 모동면과 내서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장자봉(莊子峰)이라고도 부르고,

 백학산 서쪽 능선은 성봉산(572.1km)으로 이어 진다.

백학산은 세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고, 세번째 봉에 앙증 맞게 생긴 정상석이 서 있다.

산을 하얗게 덮을 정도로 백학이 내려와 앉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정상에서 윗왕실마을을 바라보며 백학산이 마을을 마치 학이 알을 품은 듯 감싸안은 형세라고 한다.

이런 터를 포란지세(包卵之勢)라고 하는데 풍수지리를 하는 사람들이 으뜸으로 치는 명당이란다.

오늘 처음으로 인증샷... 너무 더워서 기진맥진이다

더워도 너무 더워서 먹는것 자체도 귀찮기만 하다

웃통을 벗고 신발도 벗고 아이싱해 온 시원한 캔맥주 한잔 마시는 이 기분... 그 누가 아랴

백학산 정상에서 바라본 상주시 山河

경상도(慶尙道)라는 이름은 경주(慶州)와 상주(尙州)를 함께 부르면서 유래되었다”
"백두대간과 낙동강이 빚어낸 삼백(三白)의 고을 상주는 흰쌀과 누에고치, 곶감의 고장이다

쌀, 누에, 곶감의 공통점은 모두가 하얗다는 것이다.

 

영남지방의 큰 고을이었던 상주(尙州)는 예부터 이 세 가지로 유명해 상주를 흔히 ‘삼백(三白)의 고을’이라고 불렀다.

우선 ‘삼백미’로 불리는 상주쌀은 경기미와 어깨를 견줄 정도로 질이 좋았고, 임금의 수랏상에도 오르던 진상품이었다.

게다가 생산량도 많아 한때 상주에서 생산되는 쌀의 양은 강원도 전 지역에서 생산되는 그것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됐다고 한다.


 그 다음은 누에.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누에치기를 시작한 지는 4,000년쯤 되었는데,

상주 함창읍은 신라시대부터 명주 산지로 이름난 곳이었다. 하지만 한때는 산기슭을 온통 차지했을

뽕밭은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고, 양잠농가도 더불어 사라져 예전 명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요즘도 함창 장날엔 명주장이 설 정도로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은척면 두곡리에 은척뽕나무로 불리는 350년쯤 된 늙은 토종 뽕나무가 있는 것도

이 고장의 누에치기가 아주 오래됐음을 알려준다.

 

상주는 시내 가로수는 물론이요,, 마을 길가에도 온통 감나무다.

그래서 가을엔 주민들이 감을 따는 광경을 쉽게 만날 수 있고, 가을에서 겨울

사이엔 어딜 가나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이 익어가는 건조장을 쉽게 볼 수 있다.

요즘 곶감은 분명히 말간 빛이 도는 주황색인데 왜 ‘삼백’에 속할까? 사정은 이렇다.

타래에 그대로 건 곶감에서는 하얀 분가루가 생기지 않고 사람이 손으로 만지작거려야만 분이 생겨난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곶감을 걸어놓고 손으로 만지며 모양을 만들었기에 하얀 분이 나와 곶감을 감쌌던 것이다.

이렇게 해야 곶감을 오래 보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기술이 발달 하얀 분이 나오지 않아도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고 한다.

 

‘삼백의 고을’로 유명한 상주는 영남지방에선 확고한 권위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우선 영남의 행정명인 경상도(慶尙道)는 신라의 천년 고도인 경주(慶州)와 상주(尙州)고을의

첫 글짜를 하나씩 따온 것이며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은 삼한시대에 상주 벌판에 자리 잡았던

사벌국(沙伐國)의 도읍이던 낙양(洛陽)에서 유래했는데, ‘낙양의 동쪽에 와서야 강다운 면모를

갖추고 흐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 하니 상주가 대단한 곳임을 이해할 만하다.

 

상주는 낙동강 주변의 기름지고 널찍한 들녘이 펼쳐져 있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으며 곡창지대 뿐만 아니라 천혜의 방어막인 백두대간에 금과 철을 비롯한 지하자원을

품고있어 옛날부터 전략적 요충였다고 한다

 

화북면 속리산 자락에 있는 견훤산성과 모동면 백화산에 있는 금돌산성이 그 좋은 예다.

그래서 신라는 상주를 북방 경영의 전초기지로 삼았고, 삼국을 통일한 뒤에는 이곳을 제2의 도읍으로

일컬을 만큼 소중하게 여겼다. 이런 상주의 위상은 고려를 지나 조선까지 이어졌고 세종 때에는

경상도 감영이 설치되기도 했던 상주의 전성시대는 임진왜란 중인 1593년(선조 26) 경상도 감영이

대구로 옮겨가면서 기울기 시작했다.

백학산 정상에서 캔맥주와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하며 20분간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백학산을 내려서자 곧이어 우측의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나무 계단의 급경사로 내려서니...

잠시 후 편안길이 나오고 곧이어 무명봉으로 올라선다

무명봉(14:48)

대포리(大浦里) 임도(400m:14:50)

상주시 공성면 효곡리에서 내서면 대포리로 연결하는 임도가 나오는데 소형 차량이 다닐 정도이다

상주시 모서면에 있는 대포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소규모의 경지가

분포하여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며 작은 하천이 흐르며 자연마을로는 함박골, 노산, 들안마을 등이 있다.

함박골마을은 대표리가 시작된 마을로, 백학산 밑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노산마을은 함박골 북쪽에 있는 마을로, 갈대가 많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들안마을은 들이 넓게

펼쳐진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이곳 이정표에 ‘지기재 2.8km(약 1시간 00분)’이라고 써놨는데 엉터리 이정표다

이곳에서 지기재까지는 적어도 약 7km가까운 거리가 남아 있는 곳이다

임도를 따라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임도를 따라서 1분정도 내려오다가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들어선다

산꾼들의 시그널이 잔뜩 걸려있는 능선으로 올라선 다음에... 

405m봉(14:53)

정상적인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사면길을 따라서 걷는다

안부(15:00)

편안한 대간길을 걷다가 보니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서니...

무명묘지가 나오고...

원삼 삼거리(15:35)

작은 언덕같은 구릉 길을 30여분 밟아 내리니,효곡리와 함박골을 잇는 원삼삼거리에 내려선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남쪽 성봉산 아래로 부터 내려오는 포장 길을 살피니 지나온 대간길까지 이어진다

 성봉산을 안고 도는 서진(西進)을 끝내고 북쪽으로 향해 작은 언덕을 올라서서 잘 가꾸어진 묘를

,10여분만에 405봉을 넘어 원소정마을과 함박골을 잇는 개머리재(소정재)로 이어지는 곳이다.

왼쪽으로 넓은 과수원 포도밭이 펼쳐져 있고 개머리 모양의 지형은 아무리 둘러봐도 쉽게 보이질

않는다.

 

여러 개 구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 대간 마루금에는 쓸모없는 구간은 없고, 각 구간마다

 서로 보완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으니 인간세상으로 치면 ‘사회적 동물’에 해당한다. 인간이

개인으로서 존재하고 있어도 그 개인이 유일적(唯一的)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은 오늘 큰재-개터재-백학산-지기재 구간이 던져준 화두이다.

설악산이 아름답다는 것도 지리산이 웅장하다는 것도 오늘 구간처럼 확연히 대비되면서도

 중요한 구실을 하는 구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좌측으로 논과 인삼포가 보이고 상주시 모동면 덕곡리로 이어지는 농로가 보인다

임도에서 다시 대간길 능선으로 들어선다

상주시에서는 애매한 곳에다 이런 표지판을 설치해놔서 알바할 일은 전혀없다

대간 산꾼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 고맙다

다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복숭아밭이 나온다

복숭아밭(15:50)

또 다시 우측 칡넝쿨 숲으로 들어선 다음에...

능선으로 올라서...

임도로 내려선 다음 좌측으로 내려간다

포도밭 너머로  개머리재로 지나가는 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개머리재로 내려서니 2차선 포장도로 좌.우가 전부 포도밭이다

개머리재(犬頭峙:290m:15:58)

상주시 모서면 소정동과 대포리(일명 함박골)를 잇는 도로로, 개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포도나무밭 사이로 농로인 포장도로가 나 있으며 이곳 사람들은 소정재((召井峙)라고도 부른다.

소정동은 산 중복에 위치하여 식수를 길어 올려야 했기 때문에 우물을 길어 올린다는 뜻의 소정(召井),

대포리(大杓里)는 이곳 지세가 북두칠성의 자루인 두 병이 능히 될 수 있다는 뜻에서 부른 것이라 한다.

개머리재 도로로 내려선 다음에 우측으로 갔다가 포도밭을 끼고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흔히들 하늘길이라고 불리는 백두대간이 마을 가운데까지 내려왔다.

이곳은 포도밭과 사과밭 그리고 농사들 짓는 민가들도 보인다.

산이 내려와 물끄러미 인간세상을 바라본다.

뭣이 그리도 궁금한 지?  궁금할 것 하나도 없소이다.

오직 사바세계의 苦行만 있을 뿐...

 

산이 아니 높고 낮음은 백두대간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것 같다.

백두대간은 하나의 산줄기이며 그 산줄기 자체가 하나의 산이다.

높고 낮음,오름과 내림, 들어감과 나감이 모두 하나였다. 높은 산이나 낮은 산,

오르막이나 내리막, 산으로 들어가는 일과 나오는 일 등이 모두 한가지였다.

그 모든 것이 이루어져 하나의 산, 하나의 산줄기를 이루는 것이다.
  
  '옛 선조들이 백두대간을 하나의 산줄기로 인식한 것은 조화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조화를 이루어야 숲이 되고, 산이 되고,자연이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동통신탑을 지나고 포도밭이 있는 포장도로에서 우측 능선으로 들어선다

오르막에는 무명 묘지 2기가 보이고...

잠시 후 임도를 만나고...

임도를 따라서 편안한 길을 걷는다

약간 휘어지는 임도를 따라서 걷는데 조망이 있는 곳에서 뒤돌아보니 지난 구간의 국수봉(웅이산)이 살짝 보인다

통일신라 9주의 하나로 경주와 더불어 경상도를 대표하던 상주 땅이 꽤 넓긴 넓은 모양이다.

비록 추풍령 덕분에 김천에 발전이 뒤졌지만,골골이 마을들을 이어주는 여러 고갯길을 거치며

2000여리 대간 마루금 중에서 175리(약 70여km)길을 경계없이 안고 차지하니 그 세가 만만치 않다.

백두대간을 지나는 33여개 지자체중에 문경(116km) 다음으로 대간길이 많이 지나가고 있는 곳이다

다시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숲속으로 접어든다

친절하게도 이정표는 계속되고...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람 한 점이 없다... 급한 오르막에 들어서니 힘이 부치기 시작한다

중간에서 베낭을 내리고 웃통을 벗은 다음에 물 한모금 마시면서 10여분의 휴식을 취한다

검은색 목이버섯

목이버섯은 사람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며 주로 중국 요리에 쓰이는데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맛과 검은 색깔로 시각적인 면에서 즐길 수 있는 인기 버섯이며, 목이 버섯은 흰색과

검은색이 있으며  중국에서는 흰색 목이버섯을 장수불로 하게 한다는 귀한 버서으로 여긴다 

목책이 쳐진 등로를 따라서 올라가니...

무명봉(16:25)

무명봉을 내려서니 또다시 넓은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따라서 2분정도 가다가...

곧이어 임도를 버리고 이정표를 따라서 좌측 능선을 따라서 오른 다음 편안 길을 걷는데 지도상 안심산이 나온다

안심산(429m:16:30)

상주시 모서면 소정리와 대포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이곳이 정상은 아니고 조금을 더가야 하는데

트랭글 앱과 지도에는 이곳을 안심산이라고 하는데 대간길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선다

대간꾼들이 쉬어갈 수 있는 커다란 평상 2개가 외롭게 산꾼을 기다리고 있다

16시 50분에 지기재에서 상주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부지런히 걷는다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나무 계단으로 된 내리막길이 나오고...

리기다 소나무 숲을 지나서 뛰다시피 하는데 아무래도 버스를 타기가 힘들것 같다

등로가 바뀌어 버렸다... 예전엔 이곳에서 직진으로 갔는데 이정표와 등로는 좌측으로 나있다

새로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드디어 오늘의 들머리인 지기재가 보이고 그 너머로 지난번에 걸었던 대간길과 모서면 석산리가 보인다

복숭아밭에는 落果들이 많이 보이고...

대간길이 바뀐 이유를 알겠다

원래 대간길에는 새로 조성된 인삼밭이 대간길 쥔장 노릇을 하고 있다

인삼밭을 지나는데 얼마나 더운지 살갗이 익는 느낌이다

지기재가 보이는데 간발의 차이로 버스는 지나가 버린다... 아마 저 차가 오늘 마지막 차일텐데

도롯가 버스 정류장 맞은편에서 모서면의 상징물이 지기재를 지키고 있다.

이곳 역시 상주 포도가 유명한 모양인지 지난구간 신의터재와 마찬가지로 포도를 상징물로

내세우는 걸 보아서는 모동면과 모서면 지대 포도 주생산지인 모양이다.

무더운 날씨에 힘들게 대간 한 구간을 끝내고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지기재(260m:16:55)

경북 상주시 모서면 석산리에서 대포를 잇는 고개로 901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이다.

지기재의 유래는 옛날 동네 뒷산에 도둑이 많이 나왔다고 하여 적기(賊起)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마을 이름을 따 지기재라고 고쳐 부르고 있다고 한다.

백두대간 중화 지구대인 이곳 상주지역은 고개마다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 표지판이 있다.

동쪽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는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서쪽으로 떨어지면 금강으로 흘러든다.

자연은 이렇게 양보하고 배려하며 정말 멋지게 살고 있는데 우리 인간들은 탐욕과 집착으로

만물의 영장 역할을 하지 못하고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구나.

 

지기재 버스 정류장 건너편에 자릴잡고 잘 가꾸어진 좌승지 성진항(창녕성씨) 유적비가 있고 

길섶에 세워진 대간 분수령 표지판이 유난히 튀어 보인다.

차라리 어느 스님들의 선문답 전설처럼 느티나무 한그루 길게 자릴 잡았으면..

 

"東으로 가십니까.."     "아니오..."  "그럼,西로 가십니까.."  "아니오.." 

 "녜, 그냥 쉬고 있는 것이구려..."   "그렇소..."   그들의 지팡이는 훗날 느티나무로 자라겠지...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살아 가고 있는 것인가...살아 오고 있는 것인가..그냥 쉬고 있는 것인가...

버스는 놓쳐 버리고 기왕에 늦은거 건너편 집으로 가서 양해를 구하고 수도가에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지나가는 차량을 상대로 앵벌이(히치)를 시도하는데 10분을 넘어도 누구하나 태워주지 않으니 야속하기만 하다

택시를 부를까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빈 택시가 한 대 오는게 아닌가... 손을 드니 태워주고  20분만에

상주터미널에 도착하는데 요금이 지그만치 24,000원이라... 에공 아까운거

상주터미널(17:45)

터미널에 도착하여 서울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고 닭꼬치 3개와 베낭에 남은 캔맥주 하나로 허기를 면하고 플렛홈으로 향한다 

서울가는 버스에 올라 점촌을 거쳐서 중부내륙고속도로에 들어선 버스는 얼마나 속력을 내는지 불안하다

그 와중에서도 쪽잠을 자다가 일어나 보니 어느새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한다(2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