貴人의 도움으로 야생화의 寶庫 점봉산 구간을 걷다
☞산행일자: 2017년 9월 23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약간 추운 느낌에다 박무
☞ 산행거리: 도상거리 24.5km + 어프로치 1.4km / 10시간 55분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진동삼거리(418번 지방도)-임도-갈림길-옛조침령 표시석-조침령
데크목 쉼터-900m봉-공터-943m봉-안부-1,018m봉-962m봉-갈림길
양수발전소 안부-무명봉-1,133m봉-무명봉-쉼터-1,136m봉-샘터 안부
북암령-1,020m봉-882m봉-설피마을 갈림길-단목령-856m봉-진동계곡 갈림길
오색삼거리-쉼터-너른이골 갈림길-쉼터-홍포수 막터-조망봉-점봉산-망대암산
대선봉갈림길-쉼터-십이담계곡 갈림길-UFO바위-1,158m봉-갈림길-안부-암봉
안부-쉼터-갈림길-감시초소-도로-한계령
☞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 인제군 기린면, 인제읍
세상사에 참으로 고마운 인연도 있다.
백두대간 조침령에서 한계령 구간... 대간 산꾼이라면 늘 가슴조이며 죄인의 심정으로 길을 걷는다
그리고 국공파의 횡포(?)로 인해 북진이든 남진이든 거의 다 님진으로 산행을 해야 국공파의 단속에
걸릴 확률이 적은 대신에 한계령에서 망대암산. 점봉산 구간으로 이어지는 남설악의 천하 절경인
십이담계곡, 주전골, 오색, 흘림골, 설악 만물상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는 곳이다
어느 산꾼이나 이 구간은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할텐데 부산에 사시는 서 선생님이 우연히 내 블로그에
오셨다가 합법적으로 이 구간을 지날 수 있겠끔 도와 주시는 바람에 홀로 호젓하게 맘 편히 갈 수 있게 됐다
토욜 조금 일찍 사무실 업무를 마감짓고 부지런히 베낭을 챙긴 다음에 양양을 가기위해 동서울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 양양행 버스표
생각보다 조금 일찍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한 탓에 터미널 바깥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가락국수
한그릇에 김밥한줄, 반주로 소주 한병을 마시고 나니 뱃속이 든든하여 천하에 뭔 꺽정이 있으랴...
여유롭게 버스 타는 곳으로 향한다
동서울에서 18시 40분에 양양으로 향하는 막차에 오르자마자 술기운 탓인지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가 버스가
멈추는 바람에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니 인제 터미널이다... 이 버스는 서울 양양간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가
홍천군 두촌면에서 국도로 빠져나와 인제, 원통, 한계령, 오색을 거쳐 양양에 정차한 다음 속초로 가는 버스이다
양양시외버스 터미널(21:30)
난생 처음으로 양양터미널에 와 본다
서 선생님께서 미리 카톡으로 연락한 숙소를 찾아가니 난생 처음뵌 분인데 마치 고향 친구처럼
살갑게 대해 주시는 바람에 너무나 고마웠다... 나를 위해 산행 허가서와 출입증까지 준비를 해놨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작별 인사를 하고 숙소를 나와 찜질방을 찾고 있는데 아쉽게도 양양읍내에는
찜질방이 없어 부득히 서 선생님이 묵고 있는 모텔 쥔장에게 사정을 해서 숙박료가 40,000원인데
10,000원을 깍아서 투숙 후 새벽 4시에 일어나 샤워를 마친 다음에 숙소를 빠져나와 바로
앞에 있는 기사 식당이 있는 곳으로 가니 문은 열려 있는데 홀에는 불이 꺼져있고 주방에만 불이 켜져있다.
쥔장을 부르니 영업시간이 5시부터라고 하는데 산행을 해야 하기에 사정을 했더니만 백반 한상을
차려 주는데 7,000원 짜리 식사가 반찬이 무려 12가지나 나온다
억지로라도 다 먹어야지 생각하고 이른 새벽에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먹고 택시 타는곳을 향한다
서 선생님! 이 공덕...세세생생 복받을깁니다
양양읍내에서 택시를 타고 25분정도 지난 다음에 진동삼거리에 도착하는데 택시 요금은 25,000원이다
진동삼거리(05:10)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 삼거리는 예전엔 인제군 중에서 최오지로 현리에서 70리나 되는 곳이지만
지금은 인제에서 양양으로 이어지는 418번 지방도가 지나고 천상의 화원이라는 곰배령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찿는 곳으로 진동 계곡이 흐르는 설피마을 입구인데 청정지역이라 소문이 난 탓인지 민박집과 펜션이
많이 보이는데 진동계곡에는 산사람, 귀농인, 은퇴자, 화가, 환경운동가, 공동체생활자, 시인, 소설가,
수행자, 병 치료자, 은둔자 등 온갖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하나둘씩 스며들어 살고 있으며 모두가
‘독립특행(獨立特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다.
이곳은 대관령, 진부령과 함께 대표적인 폭설 지역으로 이곳 출신들은 겨울이면 ‘징그럽게’ 많은 눈이 내린다고
할 정도이며, 4월까지도 잔설이 남아 있다고 하며 설피는 강원도 산간지방에서 깊은 눈에 빠지지 않고 걸을 수 있도록
신발에 덧대 맨 곁신을 말한다. 한번 눈이 내리면 마을이 푹 파묻힐 정도여서 마을 주민들은 식구 숫자대로 설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리사람들은 진동리를 설피밭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시대 협객 武士 백동수가 살던 진동계곡
예전에 TV 드라마에 나왔던 조선시대의 협객 백동수가 살았던 곳이 진동계곡이다.
조선의 협객’ 백동수(1742∼1815)는 1771년 무과에 급제했으나 서자 출신이라 좀처럼 벼슬길이 열리지 않았다.
자연히 하루 입에 풀칠하기에도 힘들었던 삶을 살던 백동수는 1773년 미련 없이 늙은 부모를 비롯한 가족을 데리고
강원도 첩첩산중으로 들어갔는데 그가 정착한 곳이 이곳 기린골(현 기린면 진동계곡)이다
단칼에 구차한 ‘한양살이’를 접어버린 것이다.
백동수의 호가 ‘야뇌(野뇌)’로 야뇌란 ‘황야의 굶주린 늑대’ 정도의 뜻으로 풀이하면 될것 같다.
백동수는 그곳에서 10년 동안 ‘송아지를 짊어지고 들어가 키워서 밭을 갈고, 소금 된장이 없는지라 산아가위와
돌배로 장을 담가 먹으며’ 살았다는데 당시 ‘그곳은 큰 산봉우리와 깊은 골짜기로서 나뭇가지를 부여잡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으며 문밖을 나서면 ‘열 손가락에 못이 박인 나무꾼과 봉두난발의 광부들만이 화롯불을 앞에 두고
빙 둘러앉아 있고, 밤이 되면 바람이 쏴아 불어 집을 스쳐 돌아가고, 슬픈 짐승들이 끊임없이 울부짖는 그런 곳’이었다.
백동수의 친구들은 박지원 홍대용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 등 당시 조선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책상머리에서 시나 짓고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먹물이었다.
그렇다고 백동수는 그의 나약한 젊은 벗들을 비웃지 않았으며 껄껄 웃으며 모두 품에 안았다.
젊은 날, 그의 가난뱅이 먹물들이 한양 도성 주위에서 무위도식하며 맴돌 때 백동수는 주저 없이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강원도 산골짜기에 들어가 온몸을 부리며 살았던 것이다.
산행을 시작하다(05:20)
이곳까지 타고온 택시기사는 참으로 친절하다..원래는 이 택시기사분이 아니였고 다른 분이었는데
어제 저녁에 내려오면서 예약한 택시기사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부득히 이 택시를 탔다
어제밤에 서 선생님께서 새벽에 조침령까지 태워 주시겠다는데 너무 미안해서 극구 사양을 했다
택시 기사분에게 혹 이용할지도 몰라 늘 습관처럼 명함을 받고 기사분의 인사를 받으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앞에 보이는 조침령 터널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와 양양군 서면 서림리를 연결하는 터널로 418번 지방도가
지나는 조침령터널(1,145m)을 2007년에 개통하되었고 터널에서 우측으로 올라서면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곰배령으로 연결된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산행을 시작하는데 뭔가 허전하다
아뿔싸 택시에다가 핸드폰을 두고 몸만 내렸으니... 참으로 난감하다
그렀다고 야심한 새벽에 달리 방법이 없다...나중에 전화를 하지 뭐...
진동리의 새벽 하늘에는 별이 금방이라고 쏟아질듯 무수한 별들이 보인다
본격적인 대간길에 접어들다(05:40)
헬기장(05:43)
조침령 옛길(05:44)
조침령은 ‘새도 자고 넘는다는’ 백두대간 고갯마루로 진동리에서 양양 서림까지 통하는 옛길이다.
구룡령에서 설악산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며 새해맞이 장소로 유명하다. 조침령 정상으로 임도가 있는 데,
지금은 양양과 연결된 터널이 완공되어 백두대간 산꾼 이외는 아무도 찾지않는 잊혀진 산길이 되어 버렸다
어둠속에 표지석 아랫부분을 보니 ‘연장 방통 - 서림 21KM, 공사기간:83.6.10 - 84.11.22 시공부대: 3군단 공병여단’
이라고 적혀 있는데 3군단이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가 군단장으로 있었던 부대가 아닌가
옛 표지석을 지나자마자 산림청에서 세운 커다란 조침령 표시석이 나온다
조침령(曺寢嶺:750m:05:46)
조침령(옛길과 현재의 조침령)은 양양군 서면 서림리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조침령은 所冬羅嶺(曺枕嶺兄弟峴) 소동라령(한계령,오색령)과 함께 성종24년 미시령길이 열리기 전
서울로 가던 중요역할을 하였으나 미시령이 개통되면서 오색령(所冬羅嶺,寒溪嶺)과 함께 폐쇄되었다.
曺沈嶺-阻沈嶺-鳥寢嶺(曺沈嶺-阻沈嶺은 옛 조침령을 말하고鳥寢嶺은 군부대가 개설한 도로를 말 하나
그 아래 터널이 뚫려 鳥寢嶺도 옛길이 되고 말았다)등 시대마다 다르게 표기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깊이 있게 들어가 보면 국어로는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나 뜻이 전하는 것이 같은 것 같으면서 전혀 다르다.
산경표에 “曺寢嶺”으로 표기되어 있고 해동지도와 대동여지도 등, 고지도에는 阻沈嶺으로, 현재의
이정표에는 새조(鳥)자를 써 鳥寢嶺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 고개는 예로부터 영서와 영동을 이어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던 고개로 한계령(산경표에는 오색령으로 표기되어 있음)과 함께 중요한 길목으로
여겨 형제현(兄弟峴)이라 하였다. 오색령을 넘어왔던 사람들과 흘리령을 넘어 온 사람들이 만나
내린천을 따라 한양으로 넘나들이 하던 길이었으니 당시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루트였던 것이다.
옛조침령에는 우마차가 지날정도로 넓었던 길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1. 산경표나 중보문헌비고에 나타나는 조침령(曺寢嶺)은 무리조(曺),잘침(寢)재령(嶺)이다.
무리지어 자고 넘는 다는 뜻이고.
2. 고지도에 나타나는 조침령(阻沈嶺)은 막힐조(阻),베개침(沈)재(嶺)이다.
험한 고개가 가로막고 있으니 하룻 밤 유숙하여 넘어가는고개라는 뜻
3.정상석에 쓰여 있는 조침령(鳥寢嶺)은 새조(鳥)잘침(寢) 재령(嶺)이다.
고개가 험하여 새(鳥)들도 자고 넘는 다는 뜻이다
본래 1과2는 같은곳에 위치하고 3의 위치는 다른 곳에 위치한다.
1과 2는 쇠나드리에서 윗서림으로 넘어가던 길이었고(이 길은 현재의 조침령에서
구룡령방향1.5km지점에 위치한다)
3.은(김재규의 사단장 재직시 3공수부대원들에 의해 개설되었다고 마을사람들은 증언한다)
현재의 조침령을 말하는 것으로 원래지명은 "반편고개" 또는 "반부득고개((서림에서 조침령으로
넘어가는 중턱에 대략 5만여평 되는 소반처럼 넓은 평지가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라 하였다.
옛 조침령은 九折羊腸 먼 길이라 서림이나 쇠나들이에서 하룻 밤 유숙하여 이른 새벽길 나서야
해질 녁 목적지에 도착했을 험하고도 먼 길이었을 것이다. 쇠나들이 살고 있는 원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쇠나들이” 에 마방이 있었고 소금을 싫은 우마차가 조침령을 넘나들었다고 하니
“쇠나들이”는 소(소를 “쇠”로 발음함)가 넘나들던 고개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어떤 이는 조침령의 바람이 소도 날려 버릴 만큼 거센 바람이 분다하여 "쇠나들이"라 한다고 한다
진동삼거리에서 편안하게 걸었던 임도를 버리고 입산통제 안내판 좌측으로 들어선다
산림청에서 설치한 듯한 예전에 없었던 이정표가 보인다
데크목이 깔린 등로를 지나고...
구조이정목
점봉산까지 이정목이 32개가 설치되어 있고, 거리는 16km라는 뜻이겠지
전망대(05:48)
전망대에서 바라본 미천골은 아직도 야심한 밤중이다
어제(23일)가 추분이다... 오늘부터는 밤이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하니 그만큼 어둠속을 많이 걸어야 한다는 뜻이겠지
900m봉 이정표(06:10)
옛날에 정겨운 나무 이정표는 없어지고 산림청에서 새로 설치한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단목령으로 향하는데 이정표에서 살짝 벗어난 봉우리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는데 무심코 걷다가 보면 3등삼각점을 놓치는 憂를 범할 수 있다
산꾼들은 삼각점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 아무도 찾지 않았는지 낙엽속에 묻혀있다
아무리 갈 길이 바쁘더라도 후답자를 위해서 청소를 한다 ...날은 밝아지기 시작하고...
900m봉 삼각점(△속초 308 / 1992 재설)
공터(06:15)
구조이정목(점봉29 / ←단목령 8.3km, 조침령 1.6km)이 서 있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찰나에 산은 훤히 밝아지고...
잡목길 따라서 등로를 걷는데...
동해쪽에서 일출이 시작되다(06:20)
아랫쪽에는 양양 양수발전소의 하부댐인 영덕호가 희미하게 보인다
943m봉(06:23)
똑같은 곳에 있는 이정표와 구조이정목에 표시된 거리가 조금씩 차이가 난다
좌측으로 꺽어져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06:26)
다시 오르막길...이곳은 뫳돼지의 횡포가 엄청나게 심하다
산꾼들의 시그널이 나무끼는 능선으로 올라선다
잡풀이 무성한 곳을 지나니...
1.018m봉(06:55)
잡목이 너무 우거져 삼각점을 찾을 길이 없다... 그냥가자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걷다보니 어느덧 양양 양수발전소 윗쪽까지 왔다
962m봉(06:50)
옛날 이정표와 양수 발전소 경고판이 있는데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우회를 한다
962m봉 좌측 아랫쪽에 양양 양수발전소 상부댐이 있는데 출입금지란다
하긴 뭐!... 가라고해도 시간이 촉박해서 가고 싶은 생각이 없소이다
962m봉 아래에서는 양양 양수발전소 상부댐(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진동호)으로 통하는 길이 열려 있다.
차량진입로는 조침령 진동삼거리에서 곰배령으로 가다가 진동마을로 해서 들어가고 이쪽은 산행을 겸한 걷기
코스가 있는 모양이다 모양이다.
양양 양수발전소 하부댐은 양양군 서면 영덕리에 있는 영덕호이며,
우리나라 양수발전소는 가평, 무주, 삼랑진, 밀양, 예천, 청송, 산청에 있다.
양양 양수발전소 상부댐의 경고문
양수발전(揚水發電)이란 ‘남는 전기를 사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로 전력소모가 비교적 적은 밤 시간에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잉여전기를 이용해 하부 댐의 물을 상부댐으로 올렸다가 전기의 사용량이 최대로
오르는 낮 시간에 발전을 하는 방식인데 한번 발전을 시작하면 멈추지 못하는 원자력발전소의 잉여전기를
활용하기 위한 방편이 양수발전소인 셈이다.
따라서 허비전력을 저장이 가능한 물리적 에너지 형태로 바꿔 두는 것이어서 일단 건설만 하면
가동비용이 아주 적게 들고 오염물질 배출이 없는 장점이 있으며 이러한 양수발전소 중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발전소가 바로 이곳에 있는 양수발전소로서 전력생산이 100만kw이고,
이는 소양댐(20만kw)의 5배, 원자력 발전기 1기와 맞먹는 규모라고 한다
이정표를 지나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빛내림이 시작되고..
갈참나무 사이로 대길은 이어지고...
잡풀을 헤치면서 편하게 대간길을 이어간다
금강초롱이 이른 아침에 홀로걷는 산꾼 범여를 반기고...
양양 양수발전소 상부댐 안부(06:58)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양수발전소 상부댐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2번이나 갔다 왔는데 또 갈 일 있겠나...예전에 없었던 풍력발전기 2기가 보인다
'상부댐 순찰로 제한적 개방안내' 표시판과 '저수지 내 출입금지' 안내판이 나란히 서 있는데
이런걸 이율배반이라고 하는건 아닌지
참취꽃(꽃말:참맛)
뿌리에서 나오는 잎은 심장 모양으로 길이가 9~24㎝, 너비가 6~18㎝ 정도이고, 잎자루에는 날개가 있다.
잎의 양면에 털이 있고 가장자리에는 이빨 모양의 겹톱니가 있다. 줄기 끝으로 갈수록 잎의 크기는 작고 좁아지며 길어진다.
흰색의 꽃은 지름이 18~24㎜로 8~10월에 산방꽃차례를 이루며 핀다.
총포는 반구형이고 포는 3줄로 배열되며 설상화는 길이 11~15㎜, 너비 3㎜ 정도이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성숙한 것은 이뇨제·보익제로 쓰며 방광염·두통·현기증 치료에 사용한다.
다시 오르막길
예전에 없었던 이정표도 보이고...
간간히 산비장이도 보이고...
우측에 암릉구간을 바라보며 오르막길로 올라선다
예전의 이정표를 지나서...
무명봉(07:18)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신갈나무 군락지
앙증맞은 바위를 지나고...
오늘 산행후 처음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1,133m봉(07:24)
전통적인 육산에 간간히 암릉구간도 보이고...너덜길을 지난다
무명봉(07:30)
다시 나무계단이 나오고...
대간에 소리없이 찾아온 가을의 전령사
쉼터(07:38)
1,136m봉(07:40)
1,136m봉 2등 삼각점(속초24 / 1992 재설)
날이 밝으면서 바람이 꽤나 심하게 불기 시작한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소리를 들으면서 부지런히 단목령으로 걸어간다
투구꽃도 범여를 반기는 듯...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군요
북암령으로 향하는 계속되는 내리막길
멧돼지의 횡포로 난도질 당한 대간길.
대간을 하면서 등산로보다 자연을 더욱 훼손하는 곳을 많이 보아왔다.
금산 및 고모치 부근 채석장이 그렇고 강원도 구간에 빽빽이 들어선 고랭지 채소밭도 그렇다.
관령구간과 닭목령, 그리고 가을쯤 매봉산에서 만날 녹색 버블 풍차도 주범 가운데 하나일 게다.
이들에 비하면 대간 산꾼들은 從犯(종범)도 아닌 잡범(雜犯)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오늘 구간에서 자연 파괴의 주범은 따로 있는 듯하다. 멧돼지들이다.
이들을 욕할 생각은 없지만 이들로 인한 태고의 식생들이 사라질 날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대간꾼들을 무조건 틀어막는 데에만 골몰하지 마라. 어떻게 하면 자연을 제대로 알게하고 나아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보라.
그래야만 자연이 살아나고 대간도 살아날게 아닌가”
숲이 무성한 오늘 구간에 서니 이런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북암령으로 내려선다
북암령(北巖嶺:940m:08:00)
강원도 양양군 서면 북암리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삼거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북암리와 미천골의
선림원지 북쪽에 있는 암자의 이름에서 유래 했으며 다른 이름으로 "북애미"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계적인 희귀식물인 한계령풀의 집단 분포지로 알려진 곳이며 양양의 소금장수들이 들락거리던 길이었다 한다.
북암령은 옛 문헌에 '소동라령(所冬羅嶺)'으로 기록되어 있는 자료도 보인다
간간히 산죽길도 만나고..
1,020m봉(08:12)
斷石
산죽길을 지나고...
882m봉(08:30)
본격적인 설악산 국립공원 구역으로 들어선다
다시 단목령으로 향하는 내리막길
식물자원의 寶庫라는 이 점봉산 구간에 멧돼지의 횡포는 엄청나게 심하다
설피마을 갈림길(08:52)
좌측으로 내려서면 물이 흐르는 계곡이 나오는데 설피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란다
새벽에 산행 출발점인 진동삼거리에 있는 마을이 설피마을이니 거기로 내려가는 길인 모양이다
계곡에서 들려오는 시원한 물소리가 정겹기만 하다
국립공원 팻말이 자주 보인다... 잠시 후 대간 산꾼들에겐 공포의 대상인 단목령 초소가 보인다
단목령(檀木嶺:770m:08:56)
점봉산과 북악령 사이의 안부로 인제군 진동리와 양양군 오색을 넘나들던 고개로
1217년(고려고종4년) 김취려 장군이 거란군을 제천과 원주에서 추격하여 이 곳에서
격퇴한 곳으로 전해 져 오지만 김취려장군이 거란군을 격퇴한 장소는 제천의 박달령으로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박달나무가 많아 "박달령(朴達嶺)"이라
하는 것 같으며 박달나무 단(檀)과 나무 목(木)을 써 단목령이라 지명한 것으로 보인다.
단(檀)이란 이 땅의 시조 단군왕검 이래로 큰 의미를 가진다.
박달-밝은 산-白山-태백산 임금으로 이어지는 큰 의미를 한 글자로 함축한 것이다.
단단하기로 이름난 박달나무에 그 이름을 붙인 것은 이 땅의 강인한 영혼을 접목한 것이 아닐까
오늘은 인제국유림 관리사무소에서 점봉산 생태조사 허가를 받아 당당하게 출입금지 구역을
넘어서 급경사의 능선으로 올라서니4등 삼각점이 자리를 잡고있는 856봉 정상에 오른다
856m봉(09:10)
856m봉 4등 삼각점(△설악458 / 2005 복구)
안부(09:15)
뫳돼지가 난도질한 곳에 뭘하려는지... 쇠꼬챙이를 박아놨다
구조 이정목을 지나고...
갈림길(09:25)
우측의 희미한 등로가 나오는데 오색약수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대간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오늘 산행후 처음으로 이곳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하며 떡 한팩으로 허기를 면한다
이정표(09:45)
진동계곡 갈림길에서 다시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점봉산으로 향한다
넓은 공터(09:53)
날씨는 좋으나 숲에 가로막혀 있어 아무것도 보지 못한체 마냥 걸어간다
점봉산이 가까워질수록 단풍이 보이기 시작한다
넓은 공터에는 뫳돼지들이 난도질을 해놨다
무명봉(10:15)
무명봉 아랫쪽엔 인식할 수 없는 삼각점인지 지적도근점인지 알 수 없는 삼각점이 보인다
진동계곡 갈림길(10:22)
서서히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혹부리 영감처럼 생긴 노거수도 만나고...
너른이골과 오색리 갈림길(10:40)
오색리는 지금의 성국사 옛터 절에 다섯 가지 색깔의 꽃이 피는 나무가 있었다고 하여
'五色寺'라고 불렀다고 하며 지금의 오색리라는 마을명도 이곳에서 유래 하였다고 하며
다른 전설에는 주전골에 햇살이 비치면 바위의 색갈이 다섯 가지로 비춘다고 하여
오색이라고 하였으며 약수의 맛이 다섯 가지라고 하여 오색이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오색리 갈림길 이정표
다소곳한 금강초롱
철쭉은 벌써 겨우사리 준비를 하는듯...
삼각점은 아닌듯 하고 지적도근점 같다
점봉산으로 오르는 본격적인 오르막길
안내판을 보면서 오르막길을 걷는데 그리 힘들지는 않다
쉼터(11:02)
뫳돼지의 횡포
홍포수막터(11:00)
옛날 홍씨 성을 가진 사냥꾼이 살았다고 하여 홍포수막터로 불리고 있으나, 실제로는
포수의 수발을 들던 수하가 홍포수 행세를 하며 마을에 들락거리자 사람들이 그를 포수로
착각하여 "홍포수"라고 부른데서 연유되었다고 전해져 온다.
단목령에서 점봉산 오르는 길은 부드러운 육산(土山)으로 이루어져 있고
오랜 풍상을 겪은 노거수들의 널부러진 모습에서 노련한 완숙미를
엿보며 안개을 배경으로 단풍빛 침엽수의 강인함 마저 느낀다.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소청, 중청, 대청봉이 보이는데 단풍으로 빨갛게 물들고 있다
너덜길을 지나니...
주목 한그루가 산꾼을 반기고 조망봉 정상에 오른다
조망봉(11:35)
조망봉에서 바라본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의 모습
조망봉 옆에 있는 마가목도 조금 수확을 한다
마가목
옛날 속담에 ‘마가목 지팡이만 짚고 다녀도 신경통이 낳는다’라고 할 정도로 신경통에 특효인
마가목은 말의 이빨처럼 힘차게 돋는 새순을 가지고 있어 마아목이라 불리다가 변음이 된
마가목은 옛날부터 풀 중에는 산삼이 제일이고, 나무중에서 마가목이 제일이라고 한다
효능은 호흡기 질환을 다스리며 기관지염, 폐결핵, 이뇨작용으로 부기제거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점봉산이 가까워질수록 단풍색깔이 곱고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한다
좌측으론 여인의 乳頭처럼 생긴 귀때기청봉도 뚜렸하게 보인다
내가 오늘 걸어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
점봉산 정상에 오른다
점봉산 정상에 오르자 가장 먼저 산꾼을 반겨주는건 이정표이다
점봉산 정상석 뒷면의 모습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숲으로 선정된 곳이라고 한다
점봉산(點峰山:1,420m:11:50)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과 양양군 서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조선시대에 산골짜기에서
어떤 사람이 몰래 엽전을 만들다가 들켰다고 하는데, 지금도 이 근처에서는 꽹과리 소리를 가리켜
‘덤붕산 돈 닷 돈, 덤붕산 돈 닷 돈’ 한다고 한다.
한자로는 점봉산(點峰山)이라고 하지만, 원래 둠 계통의 산이름인 덤붕이다.
아마도 다른 산에 비해 그리 험하지 않고 산머리가 둥글게 보여 이런 이름이 나왔으리라고 본다.
즉, 점봉산은 둥금(圓)의 뜻인 둠을 취했음을 그 산세를 보아서도 잘 알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선인지 덤붕산이나 둠붕산이란 이름이 그 산모습에 아주 잘 어울린다. 누군가는 말했다.
“설악이 화려한 재주와 마력을 두루 갖춘 대부쯤 된다고 보면 점봉은 속 깊고 온화한 여인의
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굳이 국어 학자가 아니라도 덤붕산이 한자로 점봉산으로
소리 옮김되었을 것이라는 데는 그리 어려움이 따르지 않는다.덤+붕(蜂) = 덤붕 > 점붕(+산) →
점봉산ㄷ의 음은 ㅈ으로 잘 변한다.
말에서뿐만 아니라 지명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개 구개음화(口蓋音化)에 의한 것이다.
덤붕산의 남서쪽 비탈 기슭에 있는 마을인 인제읍 귀둔리 역시 둠 계열의 이름이다.
그 서쪽 하추리의 더디밋재 역시 같은 계열의 땅이름이다. (출처: 배우리 한국 땅 이름 학회 명예회장)
점봉산 정상에서 바람을 피해 인증샷을 남긴다...졸음은 밀려오고...
점봉산 정상 2등 삼각점(△설악26 / 04재설)
점봉산 정상은 서서히 단풍으로 물들어 가고 있고 바람은 엄청나게 세다
점봉산에서 바라본 오늘 걸었던 등로의 모습
귀한 용담꽃도 보이고...
이곳 점봉산은 식물자원의 보고로서, 자생식물이 850 ~ 950여종이나 된다고 하며
우리나라 전체 식물종수의 20여%나 된다고 하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보존구역이다.
2026년까지 통행이 금지된구역으로 이름모를 야생화와 풀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점봉산에서 바라본 곰배령과 작은 점봉산의 모습
곰배령은 점봉산에 있는 해발 1164m 높이의 고개로 ‘곰이 배를 벌떡 뒤집고 누워 있는 모습’이라서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
퉁퉁한 아빠곰 뱃살처럼 평평하고 완만하며 옛날 인제 사람들은 이 고개를 넘어 동해안의 양양시장을 오갔다.
인제의 산채 약초 감자 등을 그곳에서 쌀 소금 미역으로 바꿔 돌아왔다.
봄여름 가을1652.90m² (500여 평) 넓이의 둔덕에 850여 종의 온갖 들꽃이 피었다가 진다.
곰배령이란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천상의 화원’이라고 불릴 만큼 지천에 가득한 야생화다.
곰배령은 산이 깊은 탓에 다른 곳보다 꽃이 늦게 피는데, 겨울을 지나 봄이 시작되는 4월부터 복수초를
시작으로 얼레지, 한계령풀, 홀아비바람꽃이 피고, 5월 들어서는 매발톱, 노루오줌, 미나리아재비 등이 핀다.
여름이 되면 동자꽃과 물봉선이, 가을에는 쑥부쟁이, 용암, 투구 등이 피며 산 아래부터 야생화가 피고 지면서
곰배령은 겨울을 제외하곤 늘 야생화로 뒤덮인다.
점봉산 정상에서 남동향 곰배령을 중심으로 희귀 야생화 및 산약초, 산채류 등이 다량 분포되어 있으며,
1987년부터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고시하여 입산통제하여 관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야생화의 20%정도가 이곳에 있다고 한다
점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설악산 정상의 대청봉과 만물상의 모습
점봉산은 설악산 권역 한계령 이남에서 최고봉으로 사방 멀찌감치 산자락을 드리워 서북능선, 귀떼기청, 대청, 가
리봉, 가칠봉 등 눈에 걸거침이 없는 조망을 갖고 있으며 노약자도 오른다는 작은 점봉산, 곰배령은 빤히 보이고
오색 자락에는 십이담계곡(십이폭포), 주전골(주전폭포), 홀림골(여심폭포), 칠형제봉 능선, 등선대가 보석처럼 숨어있다.
점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망대암산의 모습
단풍이 물들어 가는 망대암산 너머 북쪽으로 보이는 설악산 '서북능선'이 보이는데 좌측부터 '1408봉' '귀때기청봉'
'끝청' '중청' '대청봉'... 그 앞의 능선은 남설악의 만물상인 '등선대'와 '흘림골' '주전골'의 협곡이고
그 우측으로는 이번에 45년 만에 개방했다는 '망경대'가 아련히 보인다.
점봉산 정상을 전세내어 35여분간을 감상하고 망대암산으로 향한다(12:25)
이 호사를 누리게 해주신 서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世世生生 복받을깁니다
망대암산으로 향하는 등로는 철쭉 군락지이다
숲속으로 들어서니...
생각보다 등로는 뚜렸하다...조금을 더 진행하니 좌측으로 망대암산으로 오르지 않고 좌측 사면길이 있다
암릉구간으로 올라서니 망대암산이 나온다
망대암산(望對巖山:1236m:12:50)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과 양양군 서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조선시대 이곳 주전골에서 엽전을
위조하여 만드는 이들의 소굴이었는데 작업을 할때마다 관가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망을 보는것이
유래가 되어 망대암산이라 불렀다고 하며 또한 망대암산(望對巖山)은 설악산의 봉우리들과 한계령
주위에 있는 바위들을 조망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인 모양인데, 한자의 뜻이 '바위산을 마주하고
바라본다'는 뜻 이라고 한다
뒤돌아 본 점봉산의 모습
망대암산 장군바위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설악 주릉선과 만물상의 모습
대청봉과 주전골의 모습
주전골이라는 지명은 이곳 골짜기의 바위들이 마치 동전을 쌓아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주전골이라 불리어 졌다는 설이 있고,주전골 동굴은 조선 중기 승려를 가장한 도적들이 몰래
가짜 엽전을 만들었던 곳으로 당시 '쨍그렁' 소리 때문에 발각돼 붙잡혔다는 일화가 있다.
이 때문에 계곡 이름도 만들 주(鑄) 화폐 전(錢)으로 주전鑄錢골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망대암산 정상의 암릉들
망대암산에서 바라본 용수골 계곡과 대선봉(待仙峰:1,168m)의 모습
지도상에는 그냥 1,168봉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인제군에서는 “신선을 기다리는 산”라고 해서
대선봉(待仙峰)이라 부르는데 망대암산에서 좌측 능선으로 이어져 있고 능선의 2/3는 설악산권에
속해 있으며 일반 산객들은 찾지않고 약초꾼들이 주로 찾는 산이라고 한다
암릉구간 아래로 내려선다
아래서 바라본 장군바위의 모습
대선봉 갈림길(13:05)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등로 윗쪽으로는 계속해서 멋진 암릉구간이 보이고...
계속되는 멋진 암릉
비탐구간 치고는 등로가 상당히 뚜렸하다
쉼터(13:15)
간이 큰 산꾼들이 걸어둔 시그널이 반갑기만 하다
제 철도 모르고 피어있는 산괴불주머니
호젓하게 나홀로 산죽에 묻혀버린 등로를 걷는다
흘림골. 십이담계곡 갈림길(13:35)
점봉산에서 발원한 물이 12폭의 비단폭처럼 굽이쳐 흐른다는 십이폭포(十二瀑布)가 있고, 그 아래로 주전골이 이어진다.
와폭으로서 전체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는 없지만, 탐방로를 따라 굽이쳐 흐르는 각 부분의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오색약수터에서 금강문을 지나 갈림길에 이르러 왼쪽으로 가면 십이폭포, 오른쪽으로 가면 용소폭포에 이른다.
용소폭포(龍沼瀑布)는 주전골에 있는 폭포로 높이 10m, 소(沼)의 깊이 7m이다.
옛날 소에서 살던 천년 묵은 암수 이무기 2마리가 용이 되어 승천하려 하다가, 수놈만 승천하고 암놈은
미처 준비가 안 되어 굳어져 바위와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우측의 십이담계곡 방향으로는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있다...나야 갈 일도 없소이다
십이담계곡 갈림길을 지나면서는 산죽들이 모두 다 죽어있다
UFO 바위(13:50)
UFO바위에서 20분 정도 휴식을 취하면서 떡과 쥬스로 허기를 면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1,158m봉으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힘이든다
천연보호구역 표시석도 간간히 보이고...
등로에서 살짝 벗어난 1,158m봉 무심코 걷다보면 놓치기 쉬운 봉우리이다
1,158m봉(14:35)
1,158m봉 정상 삼각점
1,158m봉에서 바라본 설악산 대청봉(우측) 중청(좌측)
설악산 흘림골의 모습
남설악 자락에 있는 흘림골은 폭포와 기암, 소(沼) 등 천혜의 비경이 산수화처럼 펼쳐지는 곳으로
누구나 이곳에 들면 정신이 홀린다고 해서 홀림골로 부르다가 흘림골로 비뀌었다고 한다
암릉구간 좌측으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갈림길(14:40)
이곳에서 좌측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이는데 무심코 가다간 알바하기 딱 좋은 코스이다
이곳에서 우측 암봉으로 오르는 곳에 산꾼들의 시그널이 몇개 보이나 봉우리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암봉을 끼고 좌측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본격적인 암릉구간에 접어 들기에
이곳에서 스틱을 접어 베낭에 묶고 두 손과 두 발로 산행 채비를 갖춘다
계속되는 암릉구간
귀때기청봉과 서북능선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오고...
암릉 사면길로 가다가 다시 오르막...
암릉으로 오르는 길과 우측 사면길이 있으나 암릉 정상으로 오르면 설악산 정상의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사면길... 심장이 약하신 분은 우측 사면길로 가는게 좋을듯 하다
로프줄이 있어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남설악 구간도 설악산 어느곳 못지않게 멋진 곳인데 앞서 대간길엔 2번을 어둠속에 걸었다
毫釐有差(호리유차 ) 터럭 끝만치 작은 차이에
天地懸隔 (천지현격 ) 하늘과 땅처럼 간격이 생겨나니
欲得現前(욕득현전 ) 이것이 눈앞에 나타날듯 하려거든
莫存順逆(막존순역 ) 맞느니 틀리느니 말지어다
違順相爭(위순상쟁 ) 틀리느니 맞느니 다투는 건
是僞心病(시위심병 ) 이것이 마음의 큰 병통이라
不識玄旨(불식현지 ) 현묘한 이치를 알지 못하면
徒勞念靜(도로염정) 생각을 고요히 함도 헛수고니라
圓同太虛(원동태허 ) 뚜렷함이 창공과 같아서
無缺無餘(무결무여 ) 모자람도 남음도 없건만
良由取捨(양유취사 ) 취하고 버리는 분별심으로 말미암아
所以不如(소이불여 ) 그래서 실상과 같지 않도다.
승찬대사의 信心銘 中에서
오이풀은 이별을 준비하고...
계속되는 암릉구간의 오르막 내리막
奇巖
암릉사이 개구멍 빠져 나가느라 개고생이다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갔다가...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롤러코스트를 타는 기분이다
안부(14:55)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
개코같은 바위도 지나고...
비탐구간에 대간 산꾼이 설치한 자일에 몸뚱아리를 의지한 채 힘들게 능선으로 오른다
암릉 구간을 오르니 안부가 나오고...
안부에서 암릉구간을 오르지 못하고 우측으로 우회를 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한계령에서 양양으로 이어지는 44번 국도가 보이기 시작하고...
늦가을에 바위취도 보이고...
다시 암릉 구간으로 올라서는데...
쑥부쟁이는 내년을 기약하며 이별을 준비한다
암봉(15:10)
암봉에서 바라본 귀때기청봉과 한계령휴계소
로프를 부여잡고 암릉을 끼고 돈다
천길 낭떠러지의 급경사 암릉구간
이 구간은 바짝 신경을 쓰면서 걸어야 할 구간이다...상딩히 위험한 구간이다
멋지게 범여의 눈 앞으로 다가오는 칠형제봉의 능선... 그 아랫쪽으론 오색약수터가 보인다
오색약수(五色藥水) - 사진 펌 강원도 양양군 서면(西面) 오색리(五色里)에 있는 약수터로 조선 중기인
1500년경 성국사(城國寺)의 승려가 반석에서 용출하는 천맥을 발견하여 약수로 판명되었고,
오색약수라는 이름은 당시 성국사 후원에 특이한 오색화가 있어 명명한 것이라 한다.
오색천(양양남대천의 지류) 개울가의 한 너럭바위 암반에서 약수가 솟는다.
3개의 구멍에서 솟는데, 위쪽의 약수는 철분이 많고 아래쪽 2개의 구멍은 탄산질이 많다.
하루 용출량은 1,500ℓ 정도이고, 수량과 수온이 항상 일정하다고 한다. 물맛이 특이한 것으로
계속되는 위험한 암릉구간
또다시 암릉구간을 오르지 않고 우측으로 우회한다
안부(15:20)
다시 가느다란 로프가 있는 우측의 암봉으로 올라선다
슬랩구간을 지나니...
암릉의 마지막 구간이 나오고...
이곳도 숏다리인 범여로서는 그리만만한 코스는 아니다
한계령 휴게소와 인제에서 한계령으로 이어지는 10번 군도가 보인다
대간길은 앞에 보이는 1,044봉으로 올라가서 한계령 휴게소로 내려서야 하나
오르는 곳도 철제 휀스로 가려져 있어 힘들고 한계령 휴게소로 내려오는 곳도
철조망으로 막혀있어 대부분의 산꾼들이 생략하는 코스이다
한계령에서 오색약수로 이어지는 44번 국도가 보인다
로프를 부여잡고 마지막 암릉구간을 내려서니...
용담과...
금강초롱이 범여를 반긴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오니 쉼터가 나온다
쉼터(15:45)
도토리 채집시설이 보이고...
갈림길(15:52)
이곳에서 직진으로 가면 국공파를 피하는 우회길이고 우측으로 90도 꺽어지면 감시초소가 있는 길이다
직진으로는 누군가 나무 막대기로 대간길을 막아놨지만 많은 산꾼들이 국공파의 등쌀에 못이겨 직진으로
간 흔적들이 보이나 난 오늘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대간길을 걷기에 당당하게 우측으로 갈 것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서 선생님에게 고마울뿐이다
무명봉(15:53)
갈림길 바로앞에 있는 무명봉으로 올랐다가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 온다
무명봉에서 바라본 내가 조금전에 지나온 암릉구간
감시초소(15:57)
초소에는 국공파들이 없다... 나야 있어도 상관이 없지만...
절개지로 내려와서 도로로 내려선다...지나는 사람에게 전화를 빌려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한다
아침에 두고 내린 전화기를 한계령으로 좀 갖다 달라고...
한계령으로 향하는 길
알겠습니다
도로를 따라서 15분정도 걸어서 한계령 정상에 도착하여 택시 기사분에게 핸드폰을
넘겨 받고 휴게소 앞 화장실에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 입은 다음에 캔맥주 하나를 마신다
'오색령'의 지명은 주전골 안에 있는 옛 '성국사(城國寺)'터에 다섯 가지 색의 꽃이 피었다 해서 붙여진 명칭이라고 한다
그래서 성국사를 '오색석사(五色石寺)'라고 부르기도 하며. 또 오색약수도 이 절의 승려가 발견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오색리'라는 마을 지명도 그로 인해 생겼다고 하며 그 위에 있는 고개라서 '오색령'이라고 불리우는데 몇 년 전까지
'옛 오색령'이라고 표시되어 있던 작은 정상석이 있었지만 '백두대간 오색령'으로 양양군에서 새로 오색령은
'한계령(寒溪嶺)'이라는 지명과 함께 사용되고 있는데 산꾼들에게는 한계령이 더 익숙한 지명이다
한계령이란 지명은 인제군에 있는 한계리에서 따온 지명이다 그러나 옛 문헌에는 '오색령'으로 표기되던 곳이었고
1960년대에 정부에서 행정지명으로 '한계령'으로 바꿨다고 하는데 한계령의 지명은 옛 지도에 나와있는
'한계산(안산)'에서 따온 지명이라고 하며 실제로 한계령의 위치가 지금의 위치가 아니라는 점이 옛 문헌을
조사한 학자에 의해서 밝혀지고 있다고 한다.
한계령은 일제의 잔재로 알려진 지명이고 옛 문헌에는 '오색령'으로 표기된 곳이 많았고
그 이전에는 '소솔령(所率嶺)'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계령(漢溪嶺:920m:16:15)
한계령이란 문헌상 최초의 지명은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에 소등라령이고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바드라재로 부르다가 그 뒤 조선 후기에는 오색령으로 부르다 현재는 한계령으로 불리고 있다.
이문구의 소설 "매월당 김시습"에 등장하는 양양고을 관기(官妓)의 성명이 "所東羅"였다고 한다.
그런데 소동라는 지나온 북암령도 소동라라 불리운다고 해서 조금은 헷갈리는 곳이다
한계령은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가 3공수여단장으로 있었던 부대가 한계령
도로공사를 하면서부터 한계리의 이름을 따 한계령이라 하였다고 한다.
망가진 한계령 정상 수준점
한계령 버스 요금에 대한 유감
어제 양양으로 내려올 때 동서울 터미널에서 이곳 한계령을 지나 오색. 양양까지 가는 버스 요금이 11,000원인데
양양보다 훨씬 가까운 한계령 버스 요금이 16,500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버스 회사도 똑같고 코스도 똑같은데 1,000원도 아닌 5,500원이나 비싼 이유가 뭐냐고 매표원에게 따지니
자기는 잘 모르겠으니 버스회사에 전화하라고 퉁명스럽게 하는데 기분이 졸라 나쁘다
버스는 예정시간보다 10분정도 늦게 도착하여 원통을 거친 다음에
서울로 향하는데 얼마나 깊은 잠에 빠졌던지 일어나니 서울이다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 > 백두대간 3차 북진(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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