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길 최오지인 삼둔사가리를 滿山紅葉의 秋色에 취해 걷다
☞산행일자: 2017년 10월 14일~15일(무박산행)
☞산행날씨: 맑음...이른 새벽에는 상당히 추움
☞산행거리: 도상거리 21.6m + 어프로치 1.5km / 10시간 05분소요(휴식시간 1시간 20분 포함)
☞참석인원: 봄.여름.가을.겨울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산행코스: 구룡령-데크목 계단-1,100m봉-구룡령 옛길정상-1,121m봉-안부-1,063m봉
갈천약수 갈림길-안부-갈전곡봉-안부-1107.3m봉-1,016m봉-쉼터-무명봉
왕승골 사거리-평해손씨 묘-무명봉-968.1m봉-안부-1,020m봉-연가리골 갈림길
950.9m봉-공터-쉼터-1,059m봉-1,080m봉-쉼터-안부-1,061m봉-바람불이 삼거리
무명봉-황이리 갈림길-830m봉-암봉-안부-720.7m봉-쇠나드리 고개-무명봉-추모비
802m봉-안부- 조침령 삼거리-조침령-진동삼거리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 홍천군 내면 / 인제군 기린면
기나긴 10일간의 추석 연휴동안에 징검다리식으로 4일간 지맥길을 탄 다음...
연휴를 끝내고 시작된 후 현장에서 1주일내내 일꾼들한테 시달렸더니만
심신이 다 지친 상태라 이번주에는 휴식을 취할까생각도 해본다...거기다가
월요일 모임의 월례회를 겸한 골프 라운딩이 있어서 머리가 복잡하다
요즘은 거기 나가면 맨날 내 지갑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이니 이젠 호갱 노릇은 그만하고 싶다
일욜날 하루 쉬면서 연습장이나 갈까 생각을 해보지만 토욜 저녁만 되면 내 몸안에서 꿈틀거리는
산에 대한 욕망 때문에 오늘밤도 베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갑작스런 결정 때문에 준비가 안되어 지맥길은 나서질 못하고 후배들을 따라서 대간길을 나서는데
컴컴한 새벽부터 다니는 것이 싫어 혼자서 한 구간을 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너무 피곤하여 엄두가
나질 않아서 후배들이 다니는 대간길을 울면서 겨자먹기로 따라서 나선다
집을 나서 사당동에 도착하니 조금 이른 시간이라 사당동에서 스크린 골프장을 하는 친구 매장에
들려서 커피 한잔을 얻어 마시고 버스에 올라 오늘의 들머리인 구룡령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양양읍지도(1872조선지도) - 조침령과 구룡령 구간의 옛지도
옛 구룡령 정상석(03:10)
밤 11시에 출발한 버스는 서울 ~ 양양간 고속도로를 따라서 달리다가 내린천 휴게소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서양양 I.C를 빠져 나와 숨을 헐떡거리며 구룡령 고개로 올라와서 버스가 서는데 강원도라 그런지 차에서 내리니
날씨가 꽤나 차갑긴 하지만 산행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인듯 싶다
하늘을 쳐다보니 수많은 새벽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무수하게 많이 보인다
구룡령(九龍嶺:1,013m)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전리에서 홍천군 내면 명개리로 이어지는 고개로 강원도 영동과 영서로 잇는
5개의 嶺(진부령, 미시령, 한계령, 구룡령, 대관령)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세가 험한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보다 산세가 평탄하여 양양, 고성 지방 사람들이 한양을 갈 때 주로 이 길을
이용하였다고 하는데 강원도의 영동과 영서를 잇는 중요한 상품 교역로였고, 양양, 고성 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러 한양으로 갈 때 명칭에서 유래하듯 용의 영험함을 빗대어 과거 급제를 기원하며
넘나들던 길이라 하며, 구룡령이라는 이름은 ‘아홉 마리 용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지쳐서
갈천리 마을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고갯길을 넘어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하고 있다.
이 고갯길이 아홉마리 용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지세(地勢) 때문인데, 그러고 보니 깎아지르듯
험준하지는 않지만, 넘실넘실 구릉이 첩첩이 이어지는 산마루금의 형상이 용이 그려낸 형상과 닮아 있다.
그렇다면 왜 용이 꼭 아홉마리일까.
그건 바로 전설 속에서 용이 한번에 아홉마리의 새끼를 낳는다고 알려진 때문이라고 한다.
용은 아홉마리 새끼를 낳는다. 산이나 폭포에 유독 ‘구룡’이라 이름 붙은 지명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아홉마리 용은 저마다 품성이나 특징이 다르다.
이를 테면 맏이인 비희는 거북같이 생겨 무거운 짐을 잘 져 빗돌을 받치는 거북돌에 새겨지고,
둘째는 바라보기를 좋아해 지붕의 머리에 앉히는 문양으로 새겨지고,
셋째는 울기를 잘하며
넷째는 범과 비슷하며,
다섯째는 먹는 것을 좋아하는 식이다.
이처럼 각각의 특성에 따라 저마다 다르니 다리나 비석, 지붕, 그릇에 새겨진
용이 다 같은 용이 아닌 셈이다...구룡령은 사실 아홉마리가 아니라 90마리가 산다고 해도
믿겨질 정도로 계곡이 크고 또 깊다.
구룡령 정상에는 수준점과 또다른 통합 기준점도 보이고 자동 기상과측소와 홍천 국유림관리소가
운영하는 산림박물관, 그리고 4년전 남진길에는 없었던 생태통로도 새로 생겨 모든게 낯설기만 하다
도로가에는 이 고개를 넘나드는 사람들은 상대로 산나물과 약초를 판매하는 민초들의 좌판들도 어둠속에 보인다
어둠속의 구룡령 정상 이곳은 강원도의 영동과 영서를 잇는
5개(진부령, 미시령, 한계령, 구룡령,대관령)중 가장 높은 고개이다
산행을 시작하다(03:15)
요즘은 해가 짧아서 날이 밝으려면 아침 6시는 되야하니 적어도 3시간 가량은 “장님 문고리 잡듯이 어둠속에 걸어야 한다”
난 이런 산행이 싫어서 늘 혼자 다니다시피 하는데 오늘은 방법이 없다... 앞사람 등산화만 바라보고 걷는다
1,100m봉(03:18)
구룡령에서 데크목 계단을 따라서 올라오니 1,100m봉 이정표가 나오고 이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꺽어진다
바람이 심하게 불긴하나 그리 춥지는 않고 동료산꾼들은 어둠속에 사라져 버려 홀로 묵묵히 걷는다
조그만 무명봉을 지나고...
어둠속에 이런 표지판을 만나지만 별 관심도 없다...3번이나 이 길을 걸었기에...
홀로 묵묵히 걷다가보니 구룡령 옛길 정상이 나오는데 명개리 방향은 우천시 출입금지 팻말이 보인다
구룡령 옛길 정상(03:38)
구룡령 옛길에는 조상들이 어떻게 길을 다녔는지를 보여주는 원형이 남아 있다고 한다.
요즈음 사람들은 영서와 영동을 차로 넘으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백두대간의 험한 지형을 실감한다.
그래서 이런 급경사의 산지에서 말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길을 걸어보면 구룡령 옛길에서 노새와 조랑말 등이 큰 등짐을 지고 다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된다.
그만큼 옛길은 힘겨운 고개를 가장 힘이 덜 드는 형태로 만들어놓았다.
비탈길이어도 최대한 경사를 누인 길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은 누군지도 모를 옛사람들의
지혜가 세월과 함께 쌓인 덕분이다. 어떤 빼어난 등산로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자연 속에
파고드는 절묘한 흐름이 길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옛사람들은 요즘 일부 등산꾼들처럼 싸우는 듯이 산길을 걷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차피 갈 길이니 최대한 여유 있고 천천히 걸음이 이어지도록 길을 냈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숲의 원형이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다니기에 편안한 길이 되었다.
선조의 경험과학이 녹록지 않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구룡령 옛길에는 굽이굽이 민중들의 꿈과 희망, 아픔과 좌절도 녹아 있다.
특히 일제시대 때 숯을 구웠던 재탄장과 함께 철광의 흔적이 남아 있다.
농경사회의 시작과 함께 철기문화가 열리면서 양양 일원으로 공급한 철로
만들어진 농기구의 원재료를 구룡령의 옛길 한쪽에서 생산해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철을 캐던 동굴이 그대로 남아 있다.
광산이 일제 강제수탈의 현장이었던 점도 흔적을 통해 확인된다.
숲으로 펼쳐진 구룡령 옛길의 또 다른 상징은 금강소나무다.
1980년대 말 경복궁 복원 과정에서 많은 금강소나무가 베어진 뒤 국내에는
금강소나무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드물다. 무리를 이룬 200~300년 된
금강소나무들의 붉은 기운이 하늘로 뻗어 있다. 굵은 금강소나무의
표본인 곳이라 해 ‘솔반쟁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젊은 청년 죽은 터는 ‘묘반쟁이’, 장례식의 하관 때 회다짐을 하기 위해 쓰던
횟가루를 생산한 곳이라는 뜻의 ‘횟돌반쟁이’ 등의 지명도 남아 있다.
구룡령 옛길 정상은 한동안 잊힌 이름, 구룡령이 다시 주목을 받은 건 '구룡령 옛길'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재가 된 다음부터로 문화재청은 2007년 12월 구룡령 옛길 2.76㎞ 구간을 명승 29호로 지정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구룡령 옛길을 포함해 죽령·토끼비리·문경새재·하늘재·대관령 옛길 등
6개 문화재 길이 있는데, 이 중에서 구룡령 옛길이 가장 먼저 문화재로 지정됐으며
이 일대는 심마니가 특히 많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구룡령 옛길 정상 이정표
좌측으로는 홍천군 내면 명개리로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양양군 서면 갈천리로 향하는 길이다
홍천군에 있는 명개리(明開里)는 해발 600m이상의 고지대에 있으며, 우리나라 읍, 면 중에서 면적이 가장 넓다.
자연마을로는 아침갈이 등이 있다. 명개리는 본래 메밀앗골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옛날 이곳에 어떤 사람이
메밀 아홉 이랑을 심어 아홉섬을 수확 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명칭이며,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고랭지
채소와 감자, 풋고추 등을 재배한다. 또 명개리는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 물고기인 열목어의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명개리의 열목어 서식지는 강원도 내에서 열목어 서식환경이 가장 잘 갖추어진 곳으로, 기념물로 지정되여 보호받고 있다.
1,121m봉(03:40)
구룡령 옛길 정상에서 조금 올라오니 1,121m봉이 나온다
그리고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서는데 구룡령에서 힘들게 올라온 걸 다 까먹는 기분이다
안부 (03:46)
1,100m봉에서 안부까진 극락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기분이다
다시 어둠속에 오르막을 치고 오르는데 어디가 어딘지 알지도 못하고 묵묵히 걷기만 한다
안부에서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을 올라오니 쉼터 의자가 있는 1,121m봉 정상에 도착한다
1,063m봉(04:00)
1,063m봉에 오르니 바람은 드세게 불긴하나 그리 춥다는 느낌은 없다
잠깐 서면 춥지만 계속 걸으니 땀도 나질 않고 정말 산행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이다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서는데 오늘 산행 구간은 백두대간 능선에 있는 봉우리 중
지명이 있는 봉우리는 갈전곡봉 하나 뿐이고 나머지는 숫자로만 표기된 무명봉이다
거기다가 백두대간 구간중에 가장 오지에 속한다는 홍천.인제에 있는 삼둔사가리를 지나는 구간이다
1,063m봉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니 수많은 대간 산꾼들의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이곳이 삼둔사가리가 있는 우리나라 최오지에 속하는 곳인데 어둠속이라 어디가 어딘지 알 길이 없다
삼둔사가리중에 사가리는 인제군 기린면에 있지만 삼둔(三屯)은 홍천군
내면에 있는데 이곳 내면의 면적은 어찌나 큰지 왠만한 郡의 전체 면적과 맞먹는다.
'삼둔'은 홍천군 내면의 살(생)둔, 월둔, 달둔으로
살둔(生屯) : 홍천군 내면 율전2리. 원당초등학교 생둔분교(폐교 후 수련원)
월둔(月屯) : 홍천군 내면 광원2리. 내린천 상류와 자운천 하류가 만나는 합수부
달둔(達屯) : 홍천군 내면 광원1리. (계방산 북쪽 소대산에서 내려온 계곡)
‘살둔’이란 이름은 “이곳에 오면 산다”라는 뜻으로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당시에도 난리를
겪지 않을 정도로 오지(奧地)여서 단 한사람의 희생자도 없었다는데서 유래했으며
조선시대 세조집권을 반대하며 단종 복위에 가담했던 사람의 일부가 훗날을 기약하면서
내린천을 거슬러 올라 이곳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우측 절개지쪽은 추락주의 표지판이 보이고 등로 아랫쪽은 갈천리 마을의 불빛들이 보인다
후미에 처졌다가 부지런히 걸어서 앞서가는 동료산꾼들의 꼬랑지를 잡았다
갈천약수터 갈림길(04:30)
이곳에서 좌측으로 2.32km만 가면 갈전약수가 나온다는 이정표가 나온다.
오늘 구간 주변에는 유명한 약수가 유난히도 많은 곳이다
갈천약수에서 흘러내린 물은 동해바다로 들어가지만 삼봉약수와 방동약수에서
흘러내린 물은 내린천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러니까 서울에 사는 사람이나 홍천 ․ 인제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물(氵)을 같이(同) 사용하는 한동(洞)네 이웃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행정단위의 洞 또한 여기서 유래하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을 해본다.
안부(04:40)
갈천약수터 갈림길에서 또 다시 급경사의 내림길...한없이 내려선다
10분을 넘게 내려온 안부 다시 갈전곡봉을 힘든 오름길이 시작된다
힘들게 올라서니 앞서가던 동료산꾼들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오늘 산행중 유일한 지명이 있는 갈전곡봉으로 오른다
갈전곡봉(葛田谷峯:1,240m:04:55)
강원도 양양군 서면과 인제군 기린면 그리고 홍천군 내면에 3郡과 3面이
만나는 봉우리로 원래 지명은 “치밭골봉“이며 "치밭“은 ”칡밭”의 변음으로
이두문자인 갈전(葛田)으로 표기하고 “谷“은 골짜기를 말하고 ”溪”로 나타낸다
소양강의 지류인 방대천(芳臺川)을 비롯하여 계방천(桂芳川), 내린천(內麟川)
등의 발원지이기도 한 봉우리로 이 지역사람들은 ‘치밭골’이라 부르는데
아마도 예전에 이곳에 칡이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 산행 코스중 가장 높은 봉우리이면서 유일하게 이름이 붙은 봉우리이다.
그리고 산 이름이 하나도 없는 코스가 오늘 대간길이다.
정상에는 갈전곡봉 안내판 이정목이 서있고 나무로 만든 의자가 산꾼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능선으로 좌측으로는 가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있고 그 끝에는 방태산이 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는 구룡령에서부터 갈전곡봉까지 같이 걸었던 홍천군 내면과 이별을
고하고 새로운 인제군 기린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갈전곡봉 이정표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방태산이 나오는데 방태산보다는 그 아래로 흐르는 내린천(內麟川)이 더 유명하다.
남한 지역에 오염되지 않은 청정계곡 제1순위로 꼽히면서 여름철에는 가히 북새통을 이룬다.
점봉산에서 시작한 방태천이 북에서 내려오고, 오대산에서 발원한 계방천과 자운천이
남쪽을 휘감으며 서로 합하여 북류하다가 마침내 소양강이 된다.
“내린천”이란 이름은 홍천군 내면의 ‘내(內)’자와 인제군 기린면의 ‘린(麟)’자를 합쳐 지어졌으며
옛날 이 물길로 벌목된 나무들이 뗏목으로 만들어져 마포나루까지 운영되었다고 하는데
그 물길은 우리같은 마루금 산꾼들에게는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내린천의 물줄기는 소양강이 되고, 다시 북한강으로 흘러들어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비로소 한강이 된다
선달아우님이 찍어준 인증샷
돌로 만든 예전의 갈전곡봉 표시석
갈전곡봉 정상에서 13분정도 인증샷을 남기면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을 떠난다
로프가 처져있는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나무로 만든 계단을 따라서 내려선다
안부(05:13)
다시 어둠속에 오르막길... 조금전에 지나온 길만큼 오르막은 아니다
앞선 산꾼들은 어둠속으로 이미 사라졌고 후미는 따라오지 않아 호젓하게 홀로 걷는데 참으로 좋다
나는 체질적으로 독립군 스타일인 모양이다
어둠속에 아무것도 모르고 걷는데 바람에 흩날리는 산꾼들의 시그널이 대간길임을 알려준다
1,107.3m봉(05:28)
예전에 서 있던 이정표의 팻말은 사라지고 기둥만 남이 있는데 누군가 옥남봉이라 써놨다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1,016m봉(05:42)
1,016m봉 삼각점(△현리 426 / 2005재설)
쉼터(05:55)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동해쪽에는 일출이 시작되려는지 구름사이로 벌겋게 물들기 시작한다
또다른 쉼터를 지나니...
무명봉(06:15)
선 채로 약간의 휴식을 취하는데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고...
왕승골 갈림길로 향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왕승골 사거리(06:38)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천리 왕승골과 인제군 기린면 조경동을 잇는 고개이다.
왕승골은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지역으로 농촌경제가 향상되지 못하였을 때
화전민의 생활이란 극히 궁한면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춘궁기에는 갈근(칡뿌리)으로 근근이 호구하여 오는 실정에서
전천이 갈분일색이었다고 하는데서 갈천 또는 속칭 “치래”라고도 한다.
왕승골 사거리 이정표
이곳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조경동은 인제 4가리에 속하는 지역인데
4가리란
아침가리 :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조경동(朝耕洞)
명지가리 :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구룡덕봉 남동쪽 기슭이며 아침가리 물길 최상단부다.
적가리 :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방태산 자연휴양림이 있는 곳. 곁가리라 하기도 한다.
연가리 :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4년전인 남진길에 이 구간에 비를 맞으면서 이정표에 붙혀논 코팅지가 지금은
이정표 교체작업을 하면서 우리가 붙혀논 코팅지는 거의 다 없어졌는데
이곳 왕승골 사거리 이정표에만 살아 있어(?) 반갑기만 하다
그 당시 엄청난 장마비를 맞으면서 개고생한 기억이 생생한데 그 당시 대장이었던
우 대장은 희말리야 로체에 가있고 코팅지를 제작해준 원일 어르신은 요즘 龍顔을
뵙기조차 힘들고, 하늘마음님만 같이 걷는다
아침식사(06:40~07:25
왕승골 사거리에서 아침상을 펼치는데 오랫만에 무박산행을 하다보니 힘이들고 밥맛이 없다
그러나 장거리 산행은 먹는만큼 걷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오징어 국물에다가 밥을 말아
억지로 먹는데, 산악회에서 가장 연장자인 노바님께서 주시는 술 한잔을 얻어 마신다
45분간의 아침 만찬을 끝내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날이 밝으면서 온 산은 萬山紅葉으로 물들어 있다
평해손씨지묘(07:35)
오르막에 오르니 유인 평해손씨지묘가 보이는데 아마 이 할머니도 전생에는 대간 산꾼이었던 모양이다
묘지를 지나서 살짝 좌측으로 이어진다
암릉구간을 지나니...
무명봉(07:42)
아그들의 흔적
등로에서 바라본 왕승골의 모습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산죽길이 이어지고...
968.1m봉(07:57)
좌측으로 조경동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보이나 대간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잡목을 헤치고 숲속으로 들어서니...
잡목속에 숨어있는 삼각점...판독을 할 수가 없다
안부(08:00)
갈참나무 군락지에서 만난 소나무
지난 8월에 허벌나게 비를 맞으면서 걸었던 약수산도 보인다
넓은 공터를 지나서 약간 우측으로 내려선다
다시 산죽길
나무 계단을 내려서니 예전에 이정표가 서 있던 나무 말뚝이 보인다
안부(08:15)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선다
떨어지는 순간은
길어야 십여초
그 다음은 스스로의 일조차 아닌 것을
무엇이 두려워
매달린 채 밤낮 떨었을까
애착을 놓으면서부터 물드는 노을빛 아름다움
마침내 그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죽음에 눈을 맞추는
저
찬란한
투
신.
복효근·시인의 낙엽
1,020m봉(08:25)
에전에 헬기장이었는데 지금은 잡풀만 무성한 폐헬기장이 돼버렸다
또 다시 내리막길
낙타처럼 생긴 나무도 만난다
너덜길을 지나는데...
혼이 나갈 정도로 단풍은 멋있다
연가리골 샘터 갈림길(08:50)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연가리골로 이어지는 갈림길에 쉼터가 있다
인제 4가리중에 하나인 연가리 계곡은 백두대간인 조침령과 갈전곡봉 중간에 위치한 오지의 작은 계곡으로
옛날 정감록에 방태산 남부 홍천 쪽 내린천을 따라 ‘난을 피해 편히 살만한 곳’으로 3둔 4가리를 꼽았는데
‘둔’은 펑퍼짐한 둔덕, ‘가리’는 경작지가 있는 땅을 일컫는다고 하는데 3둔은 살둔, 월둔, 달둔이고 4가리는
아침가리, 연가리, 적가리, 명지가리를 말하는 것으로 실제로 이 지역들은 6·25 전쟁 때도 군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전쟁이 난 줄도 모르고 지냈다고 한다
동행한 솜낭자와 교수님 셋이서 베낭을 내리고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산까치 아우는 도망을 가버린다
다시 오르막길
950.9m봉(09:05)
956m봉 정상에 있는 군삼각점(333FOB)
이곳은 방태환종주 구간이도 한 곳이다
방태천환주도 지도
삼둔사갈(三屯四耕)이란 조선시대의 예언서인 정감록에 “난리를 피해 숨을 만한 비장의 피난처로
지칭한 ‘삼둔사가리’를 일컫는 말로, 둔이란 강(江)이나 내(川)등물이 있는 곳의 가장자리, 물가의
둔덕진 곳(둔치)을 말하며, 가리(갈)란 사람이 살만한 터, 다시 말해 밭을 일굴 만한 평평한 산기슭의 터를 의미한다.
정감록에는 살둔이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 즉 물, 불, 바람. 달리 표현하면
흉년, 전염병, 전쟁의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복된 땅이라고 한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높고 깊은 산세처럼 울창한 숲에서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를
만들어주니 전염병이 돌리 없고, 깊은 골짜기로 끊이지 않고 흐르는 물은 가뭄을 없애며,
산은 첩첩하고 골은 겹겹하여 들머리는 좁고 그 안은 넓어져 외부의 접근도 어려우니
피병지(避病地)라 아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좋게 말해 삼재가 들지 않는 복
된 땅이라고는 하지만 한번 들어가면 쉽게 돌아 나올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삼둔이 홍천군 내면 쪽에 위치해 있는 반면 사갈은 인제군 기린면에 위치해 있다.
사갈 가운데 연가리는 진동리에 있고, 적가리와 아침가리, 명지가리는 모두 방동리에 속한다.
이 가운데 현재 사람이 사는 마을은 살둔, 월둔, 연가리, 아침가리 정도다.
삼둔 사가리의 전해오는 유래
강원 인제 땅에는 독특한 지명이 있다. 기린면이다. 말 그대로 기린(麒麟)이다.
기린이 우리 땅에 들어온 것은 일제시대 때 창경궁을 동물원인 창경원으로 만들면서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명이 기린일까.
현지 향토사학자들은 진짜 기린이 아니라 사슴을 형용한 지명이라고 풀이한다.
지금은 찾을 수 없지만 인제에는 사슴이 많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사람의 흉한 손길을 피해 사슴들이 몸을 피한 곳이다. 워낙 골이 깊고 산이 험하기 때문이다.
사슴 뿐 아니라 사람도 피했다. 기린면 인근의 방태산, 구룡덕봉 등에는 삼둔 오가리라는 땅이 있다.
정감록에는 나라에 난리가 나도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곳으로 기록돼있다.
예로부터 왕을 저버렸거나, 왕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들이 숨어 들어 살았다.
삼둔: 살둔(생둔), 월둔(달둔), 귀둔.
사가리: 아침가리,명지가리,연가리,곁가리.
여기서 둔이란 "둔덕"을 말하며 "가리"란 "거리"의 구개음화 현상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산천- 자료인용
등로 사이로 또 다른 연가리골로 이어지는 능선을 바라보면서...
나무 계단을 따라서 내려서는데 등로가 조금 지루한 탓인지 졸음이 밀려온다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멋진 단풍길
공터(08:17)
부드러운 산죽길
멋쟁이 나무...산행기에 자주 등장하는 스타나무이다
쉼터(09:30)
등로에서 바라본 구룡령과 약수산의 모습
다시 오르막길
1,059m봉(10:00)
그네처럼 생긴 나무를 지나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1,080m봉(10:10)
이곳부터 조침령으로 향하는 길은 참으로 편안하다
이곳 능선에서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연가리골로 향하는 능선이다
이곳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후에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이곳부터 조침령까지는 편안하게 등로가 이어진다
秋色을 닮은 女人 - 솜낭자
호젓한 등로를 걸어가는데...
이곳은 단풍 군락지로 어느 산 못지않게 단풍이 멋인긴 하지만 오지의 산이라 명성이 덜 알려졌을 뿐이다
산죽과 어루러진 단풍군락지
秋色이 완연한 등로를 따라서 걷다보면 누구나 시인이 되는듯 ...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안부를 만나고 다시 산죽길로 올라선다
쉼터(10:30)
나무계단을 따라서 걸어가는 저 여인은 秋色에 빠져 힘든줄 모르고 걸어가는 듯...
안부(10:44)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靑山自然自然 綠水自然自然)
산도 절로 물도 절로하니 산수간 나도 절로
(山自然水自然 山水間亦自然)
아마도 절로 생긴 인생 절로 절로 늙사오리
(已矣哉自然生來人生自然與然老)
하서(河西)김인후(金麟厚) 선생의 “자연가”
1,061m봉(11:00)
다시 나무 계단을 따라서 내리막 능선으로 내려선다
바람불이 삼거리(11:08)
노거수가 있는 넓은 공터에 백두대간에 대한 안내 표지판이 있다
안부에는 산꾼들의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선다
오르막길 등로 좌측으로는 잘 관리된 묘지가 보인다
무명봉(11:15)
황이리(黃耳里)갈림길(11:18)
이곳에서 좌측으로 양양군 서면 황이리로 내려가는 길인데 양양군 서면에 있는 오지마을로 농사짓기가 어려운
마을이라 흉년이 들면 곡식이 누렇게 황(黃)이 들어 귀(耳)처럼 오그라 든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한다
다시 오르막길 오늘은 하루종일 단풍에 취해서 걷는다
잡목이 거칠게 저항을 하지만 그래도 대간길이라 걸을만 하다
등로의 나뭇가지 사이로 지지난주에 홀로 걸었던 점봉산과 그 아래로 곰배령이 보이기 시작한다
830m봉(11:38)
830m봉 정상에는 쉼터용 나무의자가 있고 이곳에서 대간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830m봉을 내려오니 뭔 공사를 하려는지 공사자재가 어지럽게 널려있다
암봉(12:00)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2:10)
720.7m봉(12:15)
720.7m봉 등로 가운데 군 삼각점이 보인다
다시 내리막길
쇠나드리 고개(12:18)
강원도 양양군 서면 서림리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이곳을
요즘은 옛 조침령(鳥寢嶺)이라 부르는데 이곳이 오리지널 조침령이다
옛 조침령은 九折羊腸 먼 길이라 서림이나 쇠나들이에서 하룻 밤 유숙하여
이른 새벽길 나서야 해질 녁 목적지에 도착했을 험하고도 먼 길이었을 것이다.
쇠나들이 살고 있는 원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쇠나들이” 에 마방이 있었고 소금을
실은 우마차가 조침령을 넘나들었다고 하니 “쇠나들이”는 소(소를 “쇠”로 발음함)가
넘나들던 고개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소 풀이 많아서 그 풀을 뜯어먹기 위해 소가 나들이 나간다"는 뜻에서 ‘쇠나들이’로 부른다"고도 하며,
“높고 깊은 골짜기를 넘는 바람소리가 쇳소리가 나서 쇠나드리라고 한다” 하며, “강풍에 먼나들이를
떠나듯 황소(牛)도 바람에 날아 간다”는 뜻의 쇠나드리. 또는 새나드리, 바람불이, 우탄동(牛灘洞)으로도
불리는 쇠나드리는 가을날의 억새가 장관이라고 하는데 오늘은 바빠서 구경도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무명봉(12:20)
미역줄기 군락지를 지나는데 뒤따르던 솜낭자가 얼마만 가면 조침령이냐고 묻길래 저 고개만
넘어면 된다고 하니 부지런히 쫒아오는데... 참으로 순진하긴... 산꾼들 말 너무 믿지 마셔요
다시 오르막을 오르는데 늦게나마 체력저하가 오기 시작한다
추모비(12:35)
오르막길에 예전에 없던 추모비가 보이는데 한창 산을 탈 나이에 하직을 하셨군요
부디 왕생극락히시길 발원합니다
802m봉(12:38)
다시 미역줄기 능선을 휘돌아 대간길을 이어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미천골(米川谷)의 모습
양양군 서면 황이리에 있는 미천골은 설악
산국립공원 남쪽 미천골자연휴양림 안에 있는8㎞에 이르는 계곡으로 사람의 발길이 적어
아직까지도 산천어 등 희귀한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
미천골 계곡에는 통일신라시대 법흥왕 때 창건했다는 선림원이라는 옛 절터가 있는데
한창 융성했던 시절에는 끼니 때마다 쌀뜨물이 내를 이루며 골짜기로 흘러 내렸다고 하며
미천골의 미천(米川)이라는 명칭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림원은 지금은 흔적만이 있을 뿐이며 선림원지에는 높이 5m의
선림원지삼층석탑(보물 제444호)을 비롯해 선림원지석등(보물 제445호),
선림원지홍각선사탑비(보물 제446호), 선림원지부도(보물 제447호) 등 4개의 보물을 만날 수 있다.
미천골 자연휴양림에서 임도를 따라 약 4.8㎞를 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지에 위치해 있다는
불바라기 약수터도 가볼만한 명소로 꼽힌다.
안부(12:45)
796m봉(12:48)
오늘 산행중 마지막 봉우리인 796m봉을 내려선다
구룡령에서 조침령까지 번듯한 이름을 가진 봉우리는 갈전곡봉이 유일하고
나머지는 전부 무명봉인데 백두대간길 중에 가장 오지이며 청정지역임을 말해준다
40여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면서 이제 마지막 봉우리를 지나 조침령으로 향한다
거 참 희한하네
등로 나뭇가지 사이로 곰배령과 작은 점봉산이 얼굴을 내민다
데크목 계단이 나오면 산행 날머리가 다되었다는 느낌이렸다
조침령 삼거리(12:55)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진동삼거리로 하산해야 하는데 조침령
표시석으로 향한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곳을 반평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조침령(曺寢嶺:750m:13:00)
조침령(옛길과 현재의 조침령)은 양양군 서면 서림리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조침령은 所冬羅嶺(曺枕嶺兄弟峴) 소동라령(한계령,오색령)과 함께 성종24년 미시령길이 열리기 전
서울로 가던 중요역할을 하였으나 미시령이 개통되면서 오색령(所冬羅嶺,寒溪嶺)과 함께 폐쇄되었다.
曺沈嶺-阻沈嶺-鳥寢嶺(曺沈嶺-阻沈嶺은 옛 조침령을 말하고鳥寢嶺은 군부대가 개설한 도로를 말 하나
그 아래 터널이 뚫려 鳥寢嶺도 옛길이 되고 말았다)등 시대마다 다르게 표기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깊이 있게 들어가 보면 국어로는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나 뜻이 전하는 것이 같은 것 같으면서 전혀 다르다.
산경표에 “曺寢嶺”으로 표기되어 있고 해동지도와 대동여지도 등, 고지도에는 阻沈嶺으로, 현재의
이정표에는 새조(鳥)자를 써 鳥寢嶺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 고개는 예로부터 영서와 영동을 이어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던 고개로 한계령(산경표에는 오색령으로 표기되어 있음)과 함께 중요한 길목으로
여겨 형제현(兄弟峴)이라 하였다. 오색령을 넘어왔던 사람들과 흘리령을 넘어 온 사람들이 만나
내림천을 따라 한양으로 넘나들이 하던 길이었으니 당시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루트였던 것이다.
옛조침령에는 우마차가 지날정도로 넓었던 길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조침령 정상석에 서 있는데 단목령에서 내려오는 산꾼들이 나를 보고는 아는척을 한다
자세히 보니 성남에 있는 기분죤산악회 회원들인데 나와는 2010년도에 낙동정맥을 걸었던
동지들이다... 저 곳도 예전에 나와 같이 걸었던 분들은 대부분 은퇴를 했는지 보이질 않고
젊은 친구들로 완벽하고 물갈이(?)를 했는데 그 중에서 나와 동갑내기 친구였던 고물산꾼
2명이 보이는데 어찌나 반가웠던지 함께 인증샷을 남기고 산악회가 달라 아쉬운 작별을 한다
이보시게! 친구들 참으로 반가웠네그려
다시 조침령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약 1.5km 비포장 도로를 따라서 내려오니 타고온 버스가 보인다
진동삼거리(13:20)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 삼거리는 예전엔 인제군 중에서 최오지로 현리에서 70리나 되는 곳이지만
지금은 인제에서 양양으로 이어지는 418번 지방도가 지나고 천상의 화원이라는 곰배령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찿는 곳으로 진동 계곡이 흐르는 설피마을 입구인데 청정지역이라 소문이 난 탓인지 민박집과 펜션이
많이 보이는데 진동계곡에는 산사람, 귀농인, 은퇴자, 화가, 환경운동가, 공동체생활자, 시인, 소설가,
수행자, 병 치료자, 은둔자 등 온갖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하나둘씩 스며들어 살고 있으며 모두가
‘독립특행(獨立特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다.
이곳은 대관령, 진부령과 함께 대표적인 폭설 지역으로 이곳 출신들은 겨울이면 ‘징그럽게’ 많은
눈이 내린다고 할 정도이며, 4월까지도 잔설이 남아 있다고 하며 설피는 강원도 산간지방에서
깊은 눈에 빠지지 않고 걸을 수 있도록 신발에 덧대 맨 곁신을 말한다.
한번 눈이 내리면 마을이 푹 파묻힐 정도여서 마을 주민들은 식구 숫자대로 설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리사람들은 진동리를 설피밭이라 불렀다고 한다.
곰배령 표지판이 있는 진동계곡
진동계곡은 점봉산의 단목령, 북암령, 가칠봉의 수많은 계곡에서 암반과 수목사이를 이리휘고
저리휘고 흘러내리다 설피밭을 지나 진동리로 흘러내리는 20여km의 아름다운 계곡을 일컫는다
조침령과 점봉산 곰배령에서 진동계곡으로 흘러내리던 맑고 청량한 물이 방태산의 조경동(아침가리골),
적가리골, 대록, 골안골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합쳐져 현리에서 내린천과 합류하게 되면 소양호로 굽이굽이
흘러내려 방동약수를 건너거나 진동리 농촌체험학교에서 방태천을 건너면 나오는 아침가리골(조경동)과
방태산의 적가리골(방태계곡)은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에 난리를 피해 숨기 좋은 곳으로 나올 정도로
심심산천에 자리잡은 요지중의 요지였다.
오늘도 여기저기 궁금한 곳이 많아 둘러보다 보니 맨 꼴찌로 내려온다
다들 미안하이... 이제 범여도 대간길 한 구간밖에 안 남았으니 같이
산행할 일도 없을것 같네그려...
이곳에서 양양으로 이동하여 목욕탕에서 깔끔하게 씻고 의관정제를 한 다음에
양양에서 유명하다는 토종닭백숙으로 점심을 하는데 동료산꾼들과 같이 주거니
받거니 하던 술은 오늘 많이 지제를 한다... 낼 새벽에 골프 라운딩이 잡혀 있어서...
오랫만에 조신하게 식사를 끝내고나니 많이 서운하다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 > 백두대간 3차 북진(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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