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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지명 유래

충주시 동량면 지명유래

by 범여(梵如) 2019. 11. 5.

▣ 동량-면(東良面)

【면】츙주시 13개 면의 하나. 본래 충주군의 지역으로서, 대한제국 시대에는 동량곡(東良谷)이라 불렀고,

경술국치(1910년) 이후 동량면(東良面:동량곡)이라 하여 운교(雲矯), 용대(龍垈), 대야(大也), 사천(沙川),

배일(排日), 마흘(馬屹), 황전(黃田), 장선(長善), 모천(毛川), 건지(乾地), 조돈(早遯), 손력(遜力), 탄동(炭洞),

화암(花岩), 지동(紙洞), 만천(萬川), 하곡(荷谷)의 17개 리동을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용교(龍橋), 대전(大田), 조동(早洞), 손동(遜洞), 화암(花岩), 지동(紙洞), 하천(荷川)의 7개리로 개편 관할함.


1987년 1월1일 행정구역 조정으로 제천군 한수면 사기(沙器), 명오(鳴梧), 서운(瑞雲), 포탄(浦灘), 함암(咸岩),

호운(好雲)리가 새로 편입되어 13개 리동을 관할하게 되었음. 1995년 1월 1일 시군통합에 따라 충주시에 편입됨.

남쪽은 목행동(牧杏洞), 서쪽은 금가면(金加面), 북쪽은 산척면(山尺面), 동쪽은 제천시(堤川市) 한수면(寒水面)에 각각 닿음.

 

조동리(早洞里)

⊙ 조-동(早洞)〔조돈, 조돈리〕

【리】동량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의 지역으로서, 조돈(早遯) 또는 조돈리(早遯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관암(冠岩), 모천리(毛川里), 거무땡이, 건지리(乾地里), 장선리(長善里)를

병합하여 조동이라 함. 현재 행정리동으로 장선, 모천, 건자, 탑평, 관암, 조동이 있음

 

* 대모천(大毛川)●대모-천1(大毛川)[대모내]【마을】동량면 조동리 행정리동의 하나. 관암 마을 북쪽에 위치함.

'큰모내'라고도 불림. 1997년 8월 조사시 38호, 116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자연마을로 윗말과 아랫말이 있음.

밭농사가 주이며 고추를 특작함.

●대모-천2(大毛川)[대모내]【하천】대모천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
●대모천-골【골짜기】대모천에 딸린 긴 골짜기. 뒷골, 안막골, 등치락골, 절터골, 대왕재골, 다락골, 주너미들과 연결됨.

●모-천(毛川)[모내]【하천】모천리를 흐르는 하천. 탑거리 동북쪽의 소모천(小毛川)과 그 북쪽의 대모천(大毛川)을 통칭함.
●소모-천1(小毛川)【마을】조동리 행정리동의 하나. 관암 마을 ㎞ 지점의 동편에 위치함.

1997년 8월 조사시 21호, 82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밭농사를 주로하며 고추를 재배함.

●남포-관【골짜기】소모천 마을 입구에서 대모천 마을 입구 사이에 있는 골짜기. 일제때 길을 내며

TNT를 터트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함.

●노비-재【고개】두갈봉을 통하는 고개. 고개가 높아 '노비재'라 했다고 함. 노비재 옆으로 병풍바위가

있었으나 규석광산의 개발로 현재는 없어짐.

●두갈-봉(頭竭峰)[시루봉]

【산】동량면 조동리 소모천 동편에 위치한 산. '시루봉'이라고도 하였고, 떡갈나무가 많았다고 함. 높이가 423m.
●말-골【골짜기】동량역 앞에서 소모천 마을 입구에 이르는 골짜기.

●관암(冠岩)[갓바우]【마을】조동리 행정리동의 하나. 조돈리와 탑평리 사이의 조동천 서편에 위치한 마을.

1997년 조사시 108호, 390명의 주민이 살고 있음. 마을앞 동남쪽에 갓처럼 생긴 갓바위가 있어 마을이름이

되었으며 관내 충북선 동량역이 있음.

●갓-바우2【바위】관암마을 남동쪽에 있는 바위. 그 생김새가 갓과 같아서 갓바우라 함.

1997년 8월 조사시 이곳에 마애불상이 조각되어 있음을 이상복씨 제보로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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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량-교(東良僑)【다리】동량면 조동리 관암마을과 건지마을을 연결하는 조동천 다리.

길이 40m, 폭 8m, 1986년 12월 완공됨.

●수살-고사【제당】산제당 서남쪽에 수살고사를 지내던 곳. 정월 14일에 제를 올렸다고 함.
●조동-천(早洞川)【하천】장선천과 모천이 합류하여 관암마을 앞으로 흐르는 하천. 남한강에 합류함.
●참나무-배기【제당】관암마을 서쪽에 위치한 동제 지내던 곳. 참나무가 많았으며 매년 음력 2월에 동제가 행하여 졌으나 1975년 무렵부터 없어짐.

●조-돈(早遯)【마을】조동리 행정리동의 하나. 목행대교를 건너 19번 국도변의 동성 주유소 앞에서

구19번 도로로 우회전, 26번 군도를 따라 용교리를 거쳐 4㎞ 지점에 형성된 마을. 1997년 조사시 112호,

393명의 주민이 살고 있음. 웃말, 앞말, 안말, 선역 등의 자연마을이 있음. 면사무소 소재지로서 관내

동량초등학교와 보건소, 우체국 등이 소재하며, 흥원산업이 입주해 있음.

●조돈-나루터[早遯津]【나루터】조돈리앞 남한강가에 있었던 나루터. 옛날에는 충주와 제천 사이의 큰 나루였다고 함.
 * 건지(乾地)●건-지(乾地)[공말]【마을】조동리 행정리동의 하나. 관암 마을 동남쪽의 마을. 지등산 등성이에

자리하고 있어 높은 곳에 위치함. '공말'이라고도 함. 1997년 조사당시 34호, 108명의 주민이 살고 있음.

밭농사를 주로 하며 고추를 재배함.

●지등-산(地登山)【산】관암마을 동남쪽에 위치한 산. 높이 534.8m.
* 탑평(塔坪)
●탑-평(塔坪)[탑거리]【마을】조동리 행정리동의 하나. 관암마을 동북편으로 이어진 마을.

탑처럼 생긴 고인돌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함. 1997년 7월 조사시 85호, 262명의 주민이 살고 있음.

과수원과 밭농사를 주로하며, 과일과 고추가 특산물임. 관내 6.25참전기념비가 있어 이곳에서 전사한

100여명의 충혼을 달래주고 있음(1994년 6월 건립). 마을자랑비도 세워져 있음.
.
●말구리-산【산】탑평마을 뒷편 북쪽에 있는 가파른 산. 높이 221.5m.
●물탕-골【골짜기】탑평마을 남쪽 지등산쪽의 골짜기. 현재 탑평리의 상수도원이 되고 있음.

●장-선(長善)【마을】조동리 행정리동의 하나. 탑평마을 동쪽에 위치함. 1997년 조사시 85호, 314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음. 과수원을 주로 하여 사과가 특산물임. 관내 마을자랑비가 세워져 있음.

●장선숲-거리【숲】장선 2교 주변에 자생하는 나무숲. 느티나무, 시무나무, 말채나무 등 30여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고,

면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음.

 

화암리(花岩里)

⊙ 화암-리(花岩里)[꽃바우, 화암]

【리】동량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동량면의 지역으로서 '꽃바우'가 있으므로, 꽃바우 또는 화암(花岩)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포탄(浦灘),낭곡(浪谷), 마의실(麻衣室), 양목(陽木)을 병합하여 화암리라 함.

현재 행정리동으로 화암리가 있음.

 

●화암-리【마을】화암리 행정리동으로 동량면 사무소에서 충주댐을 거쳐 2㎞ 지점부터 남쪽으로 충주댐변을

따라 길게 형성된 마을. 1997년 8월 조사시 23호, 78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자연마을로 양목, 낭골, 마그실,

꽃바우 등의 자연마을이 있음. 밭농사가 주를 이루어 고추를 많이 재배하며, 충주호변을 따라 동남수산,

농고가두리, 정수수산, 덕해수산, 정일수산 등 가두리양식장이 입주해 있음.

●꽃-바우1【마을】낭골 남쪽에 위치한 화암리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꽃바우가 있어 불리운 이름이라 함.

원화암과 하화암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충주댐에 수몰되고 일부만 남아 있음.
●꽃-바우2【바위】꽃바우마을 뒷산에 있는 바위. 꽃이 많이 피어 붙여진 이름.

●낭-곡(浪谷)[낭골, 남골]【마을】충주호 선착장 남쪽 2㎞ 지점에 형성된 마을. 마을회관이 위치해 있음.

●마그-실[마의실, 마기실]【마을】꽃바우 서남쪽 충주호변의 산자락. 현재 마그실 관광농원이 입주해 있음.
●마의-실(麻衣室)[마기실, 마그실1]【마을】꽃바우 서쪽에 있던 마을. 현재는 수몰되고 그 일부만 남아있음.

옛날 서울로 과거보러 가던 과객들이 이 곳에 막을 치고 자고가 불리운 이름이라 함.

●볕남기-고개[덧재]【고개】양목마을에서 손동리로 통하는 고개.

●사우랑-산(四雨央山)[사우앙산]【산】꽃바우 서북쪽에 있는 산. 높이 403m.

 

지동리(紙洞里)

⊙ 지동-리(紙洞里)[조이골, 조골]

【리】동량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중원군의 지역으로서 종이를 만들던 곳이라 하여 종이골, 조골 또는 지동(紙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금잠리(金岑里), 만지리(晩知里), 무동리(武洞里), 미라실, 백석(白石), 사방(絲房),

양아리(兩牙里), 흑목리(黑木里)를 병합하여 다시 지동이라 함.

현재 행정리동으로 미라, 양아, 금잠이 있음.

●금-잠(金岑)[쇠잠, 쇠재미]【마을】지동리 행정리동의 하나. 하곡에서 충주호변을 따라 동남쪽으로

약 4.5㎞ 지점에 형성된 마을. 옛날 쇠가 많이 출토되어 붙여진 이름이라 함. 1997년 8월 조사시 17호,

56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밭농사가 주이며 고추를 많이 재배함.

●만-지(晩知)【마을】금잠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사방 남쪽에 형성된 마을. 옛날 토정(土亭) 이지함선생도

늦게 안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 현재 1가구가 거주하고 있음.

●사-방1(絲房)【마을】금잠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차돌백이 남쪽에 위치함. 충주댐으로 수몰되어 그 일부만 남았음.
●사-방2(絲房)【골짜기】사방마을이 발달한 긴 골짜기. 골짜기가 좁아 실같다하여 붙여진 이름.

현재는 충주댐으로 수몰되어 일부만 남아있음.

●쇠재미-고개[시재미고개]【고개】금잠에서 하천리쪽으로 넘어 다니는 고개.

●차돌-메기[차돌백이]【마을】금잠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금잠마을 동쪽 산 너머에 형성된 마을.

●차돌목-고개【고개】지동에서 하천리쪽으로 넘어다니던 고개. 차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
 * 양아

●양-아(兩牙)【마을】지동리 행정리동의 하나. 손동리 탄동 남동쪽에 형성된 마을.

충주댐의 건설로 일부가 수몰됨. 1997년 8월 조사시 10호, 33인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자연마을로 흑목이,

양아가 있음. 밭농사가 주여서 고추를 많이 재배함.

●부대-산(富大山)【산】흑목이 서쪽의 높은 산. 높이 625m.

●주봉-산(珠峰山)【산】흑목이 동쪽의 높은 산. 높이 642.7m.

●흑목-이(黑木)【마을】탄동 두무실의 서남쪽에 형성되었던 마을. 골짜기를 따라 남쪽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거주자가 없음.* 미라곡

●미라-곡(美羅谷)【마을】지동리 행정리동의 하나. 양아 동남쪽 충주호변에 위치한 마을.

마을앞 풍치가 수려하여 붙여진 이름. 현재는 충주댐으로 인하여 옛마을은 모두 수몰되었음.

●미라-실【마을】→ 미라곡.

하천리(荷川里)

⊙ 하천-리(荷川里)

【리】동량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중원군 동량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만천리(萬川里)와 하곡리(荷谷里)를

병합하여 하천리라 함. 현재 행정리동으로 하곡이 있음.

 

●하-곡(荷谷)[하실]【마을】하천리 행정리동의 하나. 동량면 사무소에서 532번 지방도를 따라 손동리 음양지를

지나 하천교 건너 9㎞ 지점에 형성된 마을. 하천리의 주가되는 마을로 '하실'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관할내에

국실, 둔덕말, 하실, 노실 등의 마을이 있었으나, 송평(松坪), 뱃들, 북챙이 등은 수몰되고 기타 마을은 일부가 남아 있음.

고려초 법경대사(法鏡大師)가 이곳에 절을 지으며 발달한 마을이라 함.

●개천-안【지명】옛날 개천사(開天寺.淨土寺)가 있었던 개천산(開天山)을 중심으로 주변의 12개 동을 부르던 명칭.

경치가 빼어난 8개소를 개천 8경(開天八景)이라 하였음.

●고라-실【골짜기】둔덕말 동남쪽의 골짜기. 조선 선조때 토정비결을 지은 토정 이지함의 신위지지(神位之地)로

정했던 곳이었으나, 그 사돈인 황참의(黃參議)에게 넘겨 주었다 함.

●국-실(菊室)[국곡]【마을】하곡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하실 마을 동남쪽에 있음.

●국실-골【골짜기】국실 북쪽으로 발달한 골짜기.

●노-실(老室)【마을】하곡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하천교 동편에 있는 첫 번째 마을.  한국코타가 입주해 있음.

●둔덕-말【마을】하실 남쪽 하실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만-천[만내]【마을】하천교 북쪽의 마을. 안말, 통막골, 벌말, 진소, 치랏 등이 속하였으나

거의 대부분의 지역이 충주댐에 수몰되었음.

●며느리-산【산】→ 부산.

●부-산(婦山)[면위산(勉危山), 며느리산]【산】하실 동북쪽 산척면과의 접경에 있는 산. 원래 '면위산'이라

불리던 것이 '며느리산'으로 오기되었다함. 높이 782m.

●옥녀-봉(玉女峰)【산】하실 북쪽 산척면과의 접경에 있는 산. 높이 710.5m.

●이적-효열각(李績孝烈閣, 全州李氏孝烈四旌閭)【정문】조선 숙종 3년에 명정된 정려(旌閭) 장령(掌令)

이유양(李有養)의 처 풍산홍씨와 그의 장남인 이적(李績), 5남인 이서(李緖)와 그의 처인 파평윤씨 등

일문이대(一門二代)에 걸친 효행을 찬양하기 위하여 건립한 효자정문. 국실에 있음.

●정토사 법경대사자등탑-비(淨土寺 法鏡大師慈等塔碑)【비】동량면 하천리 하곡마을 앞에 있는 고려초의

고승 법경대사의 비. 그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하여 고려태조 26년 최언위(崔彦僞)가 글을 짓고 수흥문감

구족달(具足達)이 왕명에 의하여 글을 썼다함. 보물17호로 보존상태는 양호하나 6.25때의 탄흔이 40여 곳

남아있어 비문이 훼손됨. 충주댐의 건설로 정토사지가 수몰되어 현재의 위치로 이전됨.

●하천대-교(荷川大橋)【다리】손동리(遜洞里)와 하천리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 충주댐의 건설로 가설되었음. 

1985년 5월 28일 준공. 길이300m, 폭이 7.5m.

●한국-코타[충주호리조트]【휴양시설】노실에 있는 콘도. 20여만평의 종합 레저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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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리 (遜洞里)

⊙ 손동-리(遜洞里)[소녁골, 손력동]

【리】동량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동량면의 지역으로서 소녁골 또는 손력동(遜力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탄동(炭洞), 두무실, 마실, 발락동을 병합하여 손동이라 함.

현재 행정리동으로 음양지, 탄동이 있음.

 

●음양-지(陰陽地)【마을】손동리 행정리동의 하나. 동량면 사무소 앞에서 532번 도로를 따라 장선고개를

넘어 5㎞ 지점에 형성된 마을. 북으로 인등산(人登山)과 남으로 관모봉(冠某峰) 사이에 위치해 있음.

1997년 8월 조사시 59호, 220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마실, 양지, 음지 등의 자연마을이 있음.

전.답이 반반이며, 밭농사로는 담배, 고추를 재배함. 충주댐으로 방앗간거리 등 일부 지역이 수몰되었음.

●관모-봉(冠某峰)【산】음양지 남쪽 화암리와 접경에 있는 산. 높이 637.5m.

●국수통-골【골짜기】마실 마을에서 동쪽으로 뻗은 골짜기.

●권수암-산소(權遂菴山所)【묘】속실 동쪽산에 있는 조선조 숙종 때의 학자 수암(遂菴) 권상하(權商夏)의 묘.

●마-실【마을】마실골 중간 부근에 형성된 마을로 음양지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옛날에 마소를 맸던 곳이라 함.

상마실과 하마실 마을이 있음.

●산지당-골[산지댕이골]【골짜기】양지마을 북쪽으로 뻗은 골짜기중 북서쪽으로 발달한 골짜기.

●속-실【마을】음양지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였음. 양지마을 북쪽의 속실골에 위치하나 현재 거주자가 없음.

●양-지【마을】음양지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마을회관이 있는 남향의 마을.
●음-지【마을】음양지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양지 마을 동남쪽에 있어 북향한 마을.

●인등-산(人登山)【산】음양지 북쪽으로 산척면과 접경에 있는 산. 높이 666.5m.

* 탄동(炭洞)

 

●탄-동(炭洞)[숯돈]【마을】손동리 행정리동의 하나. 음양지 남동쪽에 발달한 마을. '숯돈'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근처의 흙이 검은 빛을 띠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양질은 못되나 석탄이 출토되고 있음.

1997년 8월 조사시 39호, 149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오얏골, 탄동, 독지, 두무실 등의 자연마을이 있음.

밭농사가 주를 이루며 고추를 많이 재배함. 충주댐으로 인하여 주막거리, 바락골은 전부 수몰되었고,

그외 지역도 일부가 수몰되었음.

●독-지(獨知)【마을】탄동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탄동 남쪽 고개 넘어 첫 번째 마을.
●독지-고개[獨知峴]【고개】탄동에서 양아리로 넘어가는 고개.

●두무-실【마을】독지 남쪽에 있는 탄동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무당-골【골짜기】무당바위가 있는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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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돈【마을】→ 탄동.

●오얏-골【마을】탄동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덤바위골에 형성된 마을로 옛날 오야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 함.

 

용교리(龍橋里)

⊙ 용교-리(龍橋里)

【리】동량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동량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용대리(龍坮里)와 운교리를 병합하여

용대와 운교의 이름을 따서 용교리라 함. 현재 행정리동으로 용대, 운교 1리, 운교 2리가 있음.

 

* 용대

●용-대(龍坮)【마을】용교리 행정리동의 하나. 운교(雲橋)마을 동쪽 강가에 위치한 큰 마을.

구목행대교 동편의 강가를 따라 자연마을이 형성되어 있음. 지형이 용처럼 생겨 부른 이름.

1997년 8월 조사시 214호, 757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자연마을으로 달미, 무너미, 뒷담, 새마을,

아랫말, 중간말, 족족골, 학송정, 감나무골 등이 있음. 논농사를 주로함.


●가래소-들【마을】감나무골 남쪽 남한강가의 들.

●달-미(達尾)【마을】용대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목행대교를 건너 구 19번 도로로 우회전하여 길 북쪽으로 형성된 마을. 지형이 용의 꼬리같아 불리운 이름이라 함.

●뒷-담【마을】용대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달미 동남쪽의 군부대 옆에 형성된 마을.

●딴-봉【산】감나무골 남동쪽, 즉 가래소들 동쪽으로 남한강가까지 이어진 산봉우리. 높이 108m.

●목행-대교(牧杏大橋)【다리】동량면 용교리와 충주시 목행동을 통하는 19번 국도상의 남한강 위에 놓은 다리. 길이700.88m, 폭20.5m, 1996년 12월 30일 완공함.

●무-너미【마을】용대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달미 동북쪽에 있는 마을. 북서쪽으로 금가면 사담리와 접합.

●새-마을[새말]【마을】용대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뒷담 동쪽에 위치함.

●신철-미【마을】용대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였으나, 지금은 19번 국도의 확장과 함께 없어짐.

●아랫-말【마을】용대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뒷담 남쪽 남한강가에 형성된 큰 마을.

●용대-나루터【나루터】용대마을에서 충주시 목행동 역전으로 건너던 나루터. 지금은 쓰이지 않음.

●용두-범【들】하들 남쪽 아랫말에 이르는 남한강가의 넓은 들판.

●족족-골【마을】용대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새마을 동쪽에 위치한 마을.
●중간-말【마을】용대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족족골 남쪽 남한강가에 형성된 마을.

●하-들【들】달미마을 앞의 들판.

●학송-정【마을】용대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중간말 동쪽에 위치함.

 

●운교1-구(雲橋一區)【마을】용교리 행정리동의 하나. 목행대교를 건너 공군비행장 입구로 좌회전 하여

군비행장 정문을 통하는 큰 도로변 남북으로 나누어진 마을.
자연마을로 속담, 북편, 거려골이 있음. 논, 밭농사가 반반이며, 벼, 고추를 주로 재배함.

●거려-골1【마을】북편마을 북쪽에 있는 운교1구에 속한 자연마을.

●북-편【마을】운교 1구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속담 북편 공군비행장으로 통하는 길 북쪽에 위치한 마을.

●속-담【마을】운교 1구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공군 비행장으로 통하는 길 남쪽에 위치한 마을.
 

 

* 운교 2구(雲橋二區)

●운교2-구(雲橋二區)【마을】용교리 행정리동의 하나. 구 목행대교 주변에 발달한 큰 마을. 운교 1구 남서쪽에 위치함.

1997년 8월 조사시 110호, 384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피나무골, 남편, 삼촌동 등의 자연마을이 있음.

논농사가 주여서 벼를 주로 경작함.

●구목행-대교(舊牧杏大橋)【다리】운교 2구와 충주시 목행동을 연결하던 구19번 도로상의 다리.

19번도로의 4차선 확장으로 동북편 위쪽으로 새다리를 건설 하였음. 단기 4293년(1960) 3월 준공.

●깨묵-고개【고개】삼지샘개골로 이어져 용교리에서 금가면 문산리로 통하던 고개. 근처의 흙이 깨묵 같아 붙여진 이름.

●남-편【마을】삼촌동 서북쪽의 운교 2구에 속한 자연마을. 6.25이후 충주와 원주 사이의

19번 도로를 낸 뒤 형성된 마을이라 함.

●삼촌-동【마을】운교 2구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구목행대교 건너 19번 국도변에 발달한 노변마을 서쪽으로 이어진 마을.

●안-산【마을】운교 2구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삼촌동 동북쪽 19번 도로변에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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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무-골2【마을】토목골에 있는 마을. 골짜기 이름이 마을 명칭이 됨.

 

대전리(大田里)

⊙ 대전-리(大田里)〔한밭, 황밭, 대전, 황전〕

【리】동량면 법정리동의 하나.

본래 충주군 동량면의 지역으로 큰 밭이 있으므로 한밭, 황밭, 또는

대전(大田), 황전(黃田)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야리(大也里), 사천리(沙川里),

배일리(排日里), 마흘리(馬屹里), 황전리(黃田里)를 병합하여  대야와 황전의 이름을 따서 대전리라 함.

현재 행정리동으로 수회, 내동, 마흘, 배일, 황전, 사천, 대미가 있음.

 

●수회(水回)[수녹골]【마을】대전리 행정리동의 하나. 목행대교를 건너 19번 도로를 따라가다가 2㎞ 지점인

대미에서 우회전, 25번 군도를 따라 동쪽으로 2㎞ 지점 황전 입구에서 좌회전하여 동북쪽 2㎞ 지점에 형성된 마을.

골마을 동남쪽 삼거리에 위치함. 1997년 8월 조사시 28호, 98명의 주민이 살고 있고 되터, 웃말, 건너말 등의

자연마을이 있음. 대전천(大田川)이 마을 앞을 돌아서 흐름.

●딴-산【산】수회마을 서편에 있는 산, 웃말 앞쪽에 있음.

●청대-골【골짜기】광대목골 윗쪽의 골짜기. * 내동(內洞, 안골)
●내-동(內洞)[안골]【마을】대전리 행정리동의 하나. 수회 마을 북서쪽 0.6㎞ 지점에 위치함. 마흘(멀미) 동쪽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 1997년 8월 조사시 29호, 119명의 주민이 살고 있고, 자연마을로 양지말과 음지말이 있음.

옛날에 관청이 있었다고 함. 논·밭농사를 주로하며 밭농사로는 고추를 주로 재배함.

●절-골【골짜기】안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가늠골 동쪽에 있음. '대전사'라는 절이 있었다 함.

●충주-영모사【사묘】충주 최씨 사묘. 충주 최씨 시조인 최승(崔陞) 등 선조 8위의 위패를 모시고 배향하고 있음.

1922년 후손들에 의하여 창건됨,

●풍무-골[품무골]【골짜기】안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바람이 없어서 '풍무골'이라 했다 함.

* 마흘(馬屹, 멀미)
●마-흘[말흘, 멀미, 흘살]【마을】대전리 행정리동의 하나. 내동에서 서쪽으로 0.5㎞ 지점에 형성된 마을.

수회 서쪽에 있는 배일과 내동 사이에 위치함. 1997년 조사시 42호, 138명의 주민이 살고 있고,

동녘말과 서녘말 등의 자연마을이 있음. 이곳이 대전리에서 가장 높은 지대임. 논농사와 밭농사를

주로하며 밭농사로는 고추를 많이 재배함.

* 배일(排日)

●배-일(排日)[뱀골]【마을】대전리 행정리동의 하나. 목행대교를 건너 19번 도로를 따라가다가 금가면 도촌리 괴정 마을에서 우회전, 동쪽으로 0.5㎞ 지점에 형성된 마을. 마흘 서쪽에 위치함. 1997년 8월 조사시 39호, 130명이 살고 있음. 원명칭은 '뱀골'이었고, 일제시대에는 '배일(拜日)'이라고 기록하다가 해방후에는 '배일(背日)'로 기록하기도 했음. 이에 딸린 마을로 건너말, 웃말, 샘터, 학골, 아랫말, 장고개 등이 있음. 밭농사가 주를 이루며 고추를 주로 재배함.

●샘-터【마을】배일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학골 동쪽에 위치함.
●아랫-말【마을】배일에 딸린 자연마을의 하나. 19번 도로에서 동쪽으로 배일을 향해 0.3㎞ 지점에 위치한 첫번째 마을.
●웃-말【마을】배일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샘터 동쪽에 위치함.
●장-고개【마을】배일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금가면 도촌리 괴정마을 웃구라니 동편에 위치함.
●학-골【마을】배일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아랫말 동쪽에 위치함.
* 황전(黃田, 황밭)
●황전(黃田)[황밭]【마을】대전리 행정리동의 하나. 대미에서 24번군도를 따라 2㎞ 지점에서 좌회전하여 북쪽 0.5㎞ 지점에 형성된 마을. 모래내 동북쪽에 위치함. 1997년 8월 조사시 67호, 234명의 주민이 살고 있음. 자연마을로 모내고개, 안말, 만호실 등이 있음.  

●만호-실【마을】황전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황전 온수지 남쪽에 위치한 마을.
* 사천(沙川, 모래내)
●사-천1(沙川)[모래내]【마을】대전리 행정리동의 하나. 대미에서 25번 군도를 따라 동쪽으로 1㎞ 지점에 남북으로 형성된 마을. 황전 서남쪽에 위치함. 1997년 8월 조사시 151호, 498명의 주민이 살고 있음. 자연마을로 양지말, 음지말, 웃말, 새터, 뒷말, 분터말 등이 있음. 논·밭농사를 주로하며 고추를 특작함.

●날가지-산【산】분터말 동쪽의 산. 높이 135m.

●분터-골【골짜기】분터말 북쪽으로 이어진 골짜기. 당뒤고개로 이어짐.
분터-말【마을】사천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모래내 북쪽에 있음.
* 대미(大美, 대야)●대-미(大美)[대야(大也)]【마을】대전리 행정리동의 하나. 목행대교를 건너 19번 국도를 따라 2㎞ 지점 동편에 있는 마을. 동쪽으로 사천마을과 접함. 1997년 8월 조사시 69호, 264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본동, 숲거리 등의 자연마을이 있음. 논농사를 주로하며 밭농사로는 고추, 참깨를 주작물로 함. 관내 중원중학교와 대미초등학교가 있음.

●숲-거리【마을】대미에 속한 자연마을의 하나. 옛날에는 숲이 아름답고 주막이 있어 과거 응시자들의 쉼터가 되었다고 함. 1960년대까지도 가게와 집이 많았으나 19번 도로의 확장으로 집이 철거되어 현재는 몇 채 없음.

●진등-산【산】대미마을 뒷골과 사천 신구실골 사이에 있는 산. 높이 127m.

●풍무-골[풀무골]【마을】숲거리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금가면 도촌리 경촌마을 앞쪽에 있는 마을. 골짜기 이름을 마을 이름으로 씀.

 

서운리(瑞雲里)

⊙ 서운-리(瑞雲里)

【리】동량면 법정리동의 하나.

 

한수면 북쪽에 위치하며 청풍군(淸風郡) 수하면(水下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서론, 서룬, 서운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운리라 하여 제천군 수하면에 편입되었다가, 1929년 10월14일 한수면(寒水面)에

편입되었던 곳. 고구려때는 사열이현(沙熱伊縣, 淸風郡)의 현청 소재지였다함. 충주댐 담수로 1987년 중원군

동량면에 편입되었음. 현재 행정구역으로 서운리만 있음.

* 서운
●서-운(瑞雲)【마을】서운리의 행정리동. 화암리 동남쪽의 충주호변에 형성된 마을. 대부분 충주댐에 수몰되고

그 일부만 남아있음. 1997년 8월 조사시 35호, 115명의 주민이 살고있으며 밭농사가 주이며 담배·고추를 많이 재배함.

●고-봉(高峰)【산】능골 동북쪽의 지동과 호운리의 접경에 있는 산. 높이 498.5m.

●능-골(陵谷)【마을】뒷골 동북쪽에 형성된 서운리에 속한 자연마을. 고령박씨로 이조판서 벼슬을 한 분의

묘소가 있어 붙여진 이름. 이 마을에 서운분교가 있음.

●버섯-재【마을】능골 북쪽의 동량면 지동리로 통하는 고개. 수리재와 새목재 사이에 있음.

●수리-재【고개】능골 북쪽 동량면 지동으로 넘는 고개. 임진왜란 때 이대수(李大遂)가 의병을 일으켜 이곳에서 왜적을 무찌르다 그의 아들 여수(汝守)와 더불어 전사하자, 그의 처 한양조씨(漢陽趙氏)와 맏며느리 전의이씨(全義李氏)도 순절하였다 함.

●신선말-달니【버덩】서운 북서쪽 주봉산 중허리에 있는 버덩. 신선이 말 달리던 곳이라 함.

●흑목-골(黑木谷)[흥목골]【마을】능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지동리의 흑목이로 가는 길 어귀에 형성된 자연마을.

 

사기리(沙器里)

 

⊙ 사기-리(沙里器)

【리】동량면 법정리동의 하나.

한수면 북쪽에 위치하며 청풍군 수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사기를 만들던 사기막이 있었으므로 사그막,

사기막, 사기막기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기리(沙器里)라 하여 제천군 수하면(堤川郡 水下面)에 편입되었다가 1929년 10월14일 한수면(寒水面)에 편입된 곳임. 그후 1987년 1월1일 행정구역 조정으로 동량면(東良面)에 편입되었음.

현재는 충주댐의 건설로 대부분 수몰되어 그 일부만 남고 거주자가 없으나, 수몰전에는 60여호, 약 300여명의 주민이 살았다 함.

 

●창-내(昌內)【마을】사기리의 첫 마을로 남한강의 합류지점에 발달했던 마을. 웃창내와 아래창내가 있었음.

구석기시대의 집터와 뗀석기가 출토되기도 하였음.

 

명오리(鳴梧里)

⊙ 명오-리(鳴梧里)

【리】동량면 법정리동의 하나.

한수면 북쪽에 위치하며 청풍군 수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매우재 또는 명오(鳴梧), 명오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명오리라 하여 제천군 수하면에 편입 되었다가 1929년 10월14일 한수면(寒水面)에 편입된 곳임. 오동나무가 많은 탓으로 오래전부터 새들이 많이 날아와 울던 곳이라 하여 명오리라 했다함.

수몰 전에는 73여호, 45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으나, 현재는 충주댐에 거의 수몰되고 거주자가 없으며 그 일부가

1987년 1월1일 행정구역 조정으로 동량면(東良面)에 편입되었음.* 수몰된 지역으로는 다음과 같은 지명이 있다.

●능상-골【마을】새터 서쪽에 형성됐던 마을.
●배오개-재【고개】능상골 서쪽에서 충주로 통하던 고개.
●상-명오(上鳴梧)【마을】명오리에 해다하던 자연마을의 하나. 명오리 위쪽에 형성됐던 마을.
●상명오-나루터【나루터】상명오마을 앞 남한강을 건너던 나루.
●새-터[큰길가, 하명오]【마을】'큰길가' 또는 '하명오(下鳴梧)'라고도 하였으며 큰 길가 서쪽에 새로 생겼던 마을.
●소삼-재【고개】안골 북쪽에서 사기리로 넘는 고개.
●안-골【마을】상명오 북쪽 골짜기 안에 있었던 마을.
●오동-골【마을】큰길가 남쪽에 있던 마을로 오동나무가 많았다 함.
●죽방-재(竹方峴)【고개】풀무골 북쪽에 있었던 고개로 옛날 황강역에서 청풍현과 제천현으로 질러가는

길이었는데 고개가 높고 가파라서 죽을 먹고는 넘을 수 없었다 함.
●큰길-가【마을】→ 새터.
●풀무-골【마을】큰길가 북쪽에 있던 마을로 옛날 풀무를 놓았었다고 함.
●하-명오【마을】→ 새터. 명오 아랫쪽에 있었던 마을.

 

포탄리(浦灘里)

⊙ 포탄-리(浦灘里)

【리】동량면 법정리동의 하나.

한수면 서북쪽에 위치했었으며 청풍군 수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개(浦)앞에 여울이 있었으므로 개여울,

가여울 또는 포탄(浦灘)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포탄리(浦灘里)라하고 제천군

수하면(堤川郡 水下面)지역이 되었다가 1929년 10월14일 한수면에 편입되었던 곳임. 수몰전 44여호

24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으나 현재는 거의 대부분 충주댐에 수몰되고 거주자가 없으며, 그 일부만 남아

1987년 1월1일 행정구역 조정으로 동량면에 편입되었음.* 수몰된 지역으로는 다음과 같은 지명이 있다.

●서운-고개【고개】포탄 동북쪽에서 서운리로 통하던 고개.
●포탄-나루터【나루터】포탄 동쪽에서 살미면 목벌리로 건너던 나루.

 

함암리(咸岩里)

⊙ 함암-리(咸岩里)

【리】동량면 법정리동의 하나.

한수면 북서쪽에 위치하며 청풍군 수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한바우 옆이 되므로 한바우 또는 함암(咸岩)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초전리를 병합하여 함암리라 하고, 1929년 10월14일 한수면에 편입되었던 곳.

수몰전 86호 48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거의 대부분 충주댐에 수몰되어 거주자가 없으며

그 일부만 남아 1987년 1월1일 행정구역 조정으로 동량면에 편입되었음.* 수몰된 지역으로는 다음과 같은 지명이 있다.

●서낭-댕이【마을】안골 서북쪽에 있던 마을. 마을에 서낭당이 있어 붙여진 이름.
●안-골【마을】한바우 북서쪽 골짜기 안에 있었던 마을.
●오초전-리【마을】→ 웃추앗.
●웃추-앗[오초전리]【마을】한바우 복판에 있던 마을로 옛날 100년전에 오씨가 터를 잡았다 함.
●한-바우[咸岩]【바위】함암리 앞 강가에 너럭바위가 많아 붙여진 이름. 칠성바위라고도 불리웠음.

모두가 고인돌(지석묘)이었음이 발굴결과 밝혀졌음.
●함암-나루터
【나루터】한바우 동쪽에 있던 나루터. 함암에서 남한강 건너 황강리로 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