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구 각 동의 지명유래
구미동(九美洞)
조선시대에는 용인군 수지면 죽전동(竹田洞) 일부지역이었는데, 1914년 광주군 낙생면 구미
리(九美里)라 칭하였고, 1971년에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제되었다.
1973년 7월 성남시 구미동(九美洞)으로 개칭되었고 1975년 3월 낙생출장소에 편입, 금곡동
관할이 되었다.
구미동(九美洞)의 동명 유래는 설이 여러 가지가 있으나 어느 설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일설에 의하면 마을 뒷산이 거북이 형국이라 구미(龜尾) 또는, 구산(龜山)이라 한데서 연유
되었다고 한다.
또한 전하는 바에 의하면 김해김씨- 밀양박씨- 문화유씨 등의 아홉 성씨가 각각 아홉 개의
작은 취락을 이루어 살고 있어 구성리(九姓里)로 불렀다. 그런데 9개 성씨가 그 음이 달라서
구음리(九音里)라고 하였고, 그 아홉 성씨가 모두 화목하게 살았고 사람들이 모두 순하기 때
문에 구순(九順)으로 부르다가 아름다운 일이 많다고 하여 구미리(九美里)라 부르게 되었다
고 한다. 또는, 금곡리와 동원리 경계 들판 가운데 있는 산이 거북이 형국이라 거북이 그늘
즉, 구음(龜陰)이라 한데서 나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 불곡산(佛谷山) : 정자동- 구미동과 광주군 삼현리에 걸쳐있는 해발 312.9m의 산으로 정자
동에서는 성덕산이라 부른다.
- 산발채산 : 낭떠러지 마을로 뒷구미 사이의 야산.
- 서배재산 : 앞구미의 주산이다.
- 통미산 : 벌말 서쪽에 있는 산. 옛날 바닷물이 벌말에 들어왔을 때 불곡산 뎃박고개를 가
자면 통나무배를 이용했다고 한다.
- 가운데말고개 : 뒷구미와 가운데말 사이의 고개.
- 넘말고개 : 골안과 넘말사이의 고개.
- 다지개고개 : 앞구미와 오리뜰 사이의 고개
- 뎃박고개 : 벌말과 가운데골 사이의 삼남지방 사람들이 한양을 왕래할 때 다니던 고개.
- 뒷고개 : 앞구미와 가운데말을 왕래하던 고개.
- 태재(台峴) : 골안과 오포면 신현리 사이의 수원장에 갈 때 다니던 고개.
- 가골 : 뒷구미 동쪽에 있는 좁고 길게 생긴 산골.
- 가운데골 : 가골 남쪽에 길게 생긴 산골.
- 고부산골 : 큰골과 부처지골 사이의 산골.
- 기와집골 : 내골과 뒷구미 사이의 기와집이 있었다는 골짜기.
- 바른골 : 불곡산 줄기의 동쪽 산골.
- 부처지골 : 불당골 오른쪽 골짜기.
- 불당골 : 골안사가 있어서 불당골(佛堂谷)이라 한다.
- 원수골 : 넘말에 있는 골짜기.
- 작은절골 : 큰절골 남쪽에 있는 산골짜기.
- 지네골 : 수지면 죽전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골짜기로 지네 형국이다.
- 큰골 : ①골안에서 제일 큰 골짜기 ②뒷구미에서 제일 큰 골짜기.
- 큰절골 : 벌말에서 제일 큰 골짜기.
- 연못둥지 : 불곡산 정상의 50평 크기의 연못.
- 앞냇개 : 용인군 수지면 고기리에서 발원하여 동원동-모내-오리뜰을 경유하여 탄천에 유입
되는 개울을 말한다.
- 웇우물 : 뒷구미 중앙에 있는 우물을 말한다.
- 탄천(炭川)
분당지구내의 최대의 하천으로 용인군 구성면 청덕리 수청동 340고지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풍덕천에서 탄천이 되고, 구미동에서 동막천을 합하여 탄천이라 부른다.탄천에 대한 유
래로는 이지직(李之直 1354년 공민 왕 3~1419년 세종1년)의 호가 탄천(炭川)이라는데 유래
되지 않았나 보아진다. 이지직은 판전교시사(判典校時事) 이집(李集)의 자이며 학자로서 정
몽주(鄭夢周)의 문인이며, 탄천(炭川)에 은거하며 독서를 일삼았는데,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모두 ‘탄천선생'이라 하였다. 탄천선생은 후에 청백리로 영의정에 추증되었다.탄천과 관련
된 전설이「삼천갑자동방삭이」이다.
- 구미교 : 오리뜰 동쪽에 있는 다리. 총연장 48m, 교폭 6m로 1986년 12월 31일에준공.
- 구미교양어장 : 구미교에서 골안쪽으로 있는데 1989년에 개장되었다.
- 국논들 : 뒷구미와 새능안골 사이의 곡창지대.
- 동안들 : 벌말 동쪽에 있으므로 동안들이라 한다.
- 등잔바위 : 봉바위 북쪽 100m지점에 등잔모양의 바위.
- 무릉지들 : 구미동에서 제일 큰 들.
- 물방아거리들 : 웃말 북쪽에 물방아가 있어서 붙여진 지명.
- 수평 : 앞구미 앞을 막아야 마을이 한정된다하여 방풍림을 조성했는데 그 후부터 수평이라
칭한다.
- 오리들속자리 : 오리뜰 남쪽에 오리나무가 많아 그 주변을 오리뜰속자리라 칭한다.
- 준저들 : 벌말에서 제일 큰 들.
- 진밭들 : 머내와 오리들 사이의 비올 때 질펀한 곳.
- 평밭들 : 벌말 남쪽으로 오리들 사이의 비올 때 질펀한 곳
궁내동(宮內洞)
조선시대에는 낙생면 궁내촌(宮內村) 지역이었다가 1914년 광주군 낙생면 궁내리(宮內里)라
칭하고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제되었다.
1973년 7월 성남시 궁내동(宮內洞)으로 개칭되고 1975년 3월 낙생출장소에 편입되어 금곡동
의 관할이 되었다. 궁내동(宮內洞)의 명칭은 조선조 제11대 중종의 다섯째 아들인 덕양군 이
기(李岐)의 묘와 영희군부인 권씨가 묻힌 무덤이 있어, 그 무덤을 관리하기 위한 작은 궁을
지었으므로 궁안 또는, 궁내(宮內)라 부르게 된데서 유래한다.
- 망재 : 궁안 아랫말과 백현동 새말 사이의 산등성이. 왜란때 정자동 이진봉과 금곡동 승주
골에서 군인들이 진을 치고 망(望)을 보던 곳이라 망재라 한다.
- 고재나무골 : 전주이씨 정산으로 덕양군의 묘가 있어「고재나무골」이라 한다.
- 뒷골(後谷) : 중간말 뒤(북)에 있는 골짜기.
- 봉바위골 : 절골 서쪽 봉바위가 있는 산골.
- 서리실골 : 절골에서 북쪽으로 산너머에 있는 골짜기.
- 절골 : 궁안 웃말 서쪽으로 절이 있었다.
- 자두골 : 궁안 웃말 남쪽 산골
- 두레우물 : 아랫말의 식수원으로 물을 푸는 우물이다.
- 샘터 : 망재 아래에 있는데, 이흥객이 약탈로 부자가 되어 살던 곳이다. 맹사성(孟思
誠 :1360~1438)에게 발각되어 죽게 되자 재물을 샘터에 묻었다고 한다.
- 감투바위 : 절골 북쪽에 있는데 감투처럼 생겼다.
- 대사들 : 절골에 살던 스님(대사)이 관리하던 논이라고 한다.
- 동안밭들 : 수리턱벌과 금곡동 사이의 들
- 밤나벌(들) : 장터거리 남쪽에 밤나무가 많았다하여 부르게 되었다.
- 밭터리들 : 궁내동 톨게이트와 밀린동 사이로 디딜방아가 있었다.
- 봉바위 : 부엉이처럼 생긴 큰 바위.
- 산바래기 : 예전에 굿을 할 때 신성시하던 곳.
- 오소리바위 : 감투바위 북쪽 절골에 있다.
- 원수동 : 능안 남쪽들. 옛날 원이 지나다가 마셨다는 큰 우물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명칭.
- 장터거리(장터벌) : 백현동 새말과 궁내동 경계로 장(場)이 섰었다.
- 진늪들 : 지대가 낮아 비만오면 질펀한 곳 「진흙패들」이라고도 한다.
- 큰산바래기 : 궁안 중간말 북쪽 산봉우리. 궁안 주민이 산신제를 지내던 곳이다.
금곡동(金谷洞)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낙생면 금곡동(金谷洞) 지역이었는데, 1914년 광주군 낙생면 금곡리(金
谷里)라 칭하게 되었고, 1971년 경기도 성남시 금곡동(金谷洞)으로 개칭되고, 다시 1975년 3
월 낙생출장소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77년 6월 동명칭 개편시 금곡(金谷)- 궁내(宮內)- 구미(九美)- 동원(東遠)을 통합
관할하게 되었다. 1989년 5월 중원구에 편입되었다가 19991년 9월 분당구에 편입되었다.
금곡동(金谷洞)의 명칭은 쇠(金)가 났다는 쇠골(金谷)의 한자 표기에서 금곡리(金谷里)라 부
르게 되었다. 쇠골(쇳골)은 지금 49번지에서 금을 채취하였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도 마
을에서는 쇠골이라 칭하고 있다.
- 안산 : 진재산의 연봉으로 쇠골 앞에 있다.
- 여사리산 : 진재산의 연봉으로 승주골 남쪽에 있는 산.
- 진재산 : 새터말의 주산(主山)으로 예전에 전란이 있을 때 진을 치고 망을 보던것이라 한
다.
- 통미산 : 금곡동 서남쪽에 있는 산. 통나무처럼 둥글게 생겼다.
- 대장리고개 : 쇠골과 대장리 사이에 있는 고개.
- 머내골고개 : 동원동 머내와 금곡동 샛터말을 왕래하는 고개.
- 가골 : 쇠골 응달말 동쪽의 끝.
- 가마솥골 : 쇠골 소재 산소골 서쪽에 있는데 예전에 그릇을 구웠다고 한다.
- 도장골 : 금곡동 샛터말과 궁내동 경계 지역. - 머나골 : 구미동 뒷구미와 샛터말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일명 머내골이라고도 한다.
- 봉바위골 : 봉바위가 있는 골짜기이다.
- 산막골 : 쇠골과 가맡솥골 사이로 안동 권씨의 묘가 많다.
- 큰적골 : 샛터말 서쪽 제일 큰 골짜기.
- 파래골 : 대장리고개 동쪽 산골짜기.
- 가물치웅덩이 : 금곡동 샛터말과 구미동 뒷구미 사이의 긴웅덩이.
- 동네우물 : 샛터말의 우물. 나라의 큰 변괴시에 변화가 있다.
- 용바위우물 : 진재산 소재 용바위 틈에서 나오는 물로 용바위 약수라고도 한다.
- 중보(中洑) : 탄천 상류의 보로 궁내동과 금곡동의 경계가 된다.
- 찬물웅덩이 : 여름에도 뼈가 시릴만큼 찬 샘물이 나는 웅덩이이다.
- 돌다리 : 금곡동과 궁내동 사이의 다리.
- 물밤나무바위 : 물밤나무바우골 개울가에 있다. 바위 위로 개울물이 흐른다.
- 봉바위 : 부엉이처럼 생긴 작은 바위.
- 설경지 : 쇠골 양달말 초입 산모퉁이.
- 솔개들 : 머내골과 뒷구미 사이의 논들.
- 숯두지 : 가골과 경부고속도로 사이.
- 용바위 : 진재산 정산에 있는 바위. 가뭄 때 마을 주민들이 기우제를 지냈던 곳.
- 점뒤들 : 예전에 그릇을 구웠던 곳.
- 표대발이 : 진재산 전상의 금곡동 측량 기준점.
대장동(大庄洞)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낙생면 대장리(大庄里)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태릉- 장투
리- 무두만이를 병합하여 대장리(大庄里)라 칭하였다. 1971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고, 1973
년 7월 성남시 대장동(大庄洞)으로 개칭되었다가 1975년 3월 낙생출장소에 편입되어 운중동
의 관할이 되었다.
대장동(大庄洞)의 명칭은 태릉(胎陵)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태릉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대장동 남쪽에 무덤 모양의 큰 산이 있는데, 이 봉우리에 인조의 태를 묻
었으므로 그 산을 태봉(胎封)- 태릉(胎陵)과 태장(太庄)으로 변하고, 다시 대장리(大庄里)로
표기하였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마을안에 큰 무덤이 있어서 태릉(太陵)이라 했다고 한다
- 무두만이산 : 태릉 북서쪽에 있는 산.
- 태장산 : 태릉 남쪽에 있는 산. 봉우리(태봉)에 인조의 태를 묻었다고 한다.
- 두리봉 : 태릉서 도장골 넘어가는 고개. 둥그렇게 생겨서 두리봉이라 한다.
- 능고개 : 태릉에서 백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 동막고개 : 태릉에서 용인군 수지면 동천리 동막으로 넘어가는 고개.
- 무두만이 고개 : 무두만이서 태릉을 왕래하는 고개.
- 서울고개 : 무두만이 뒷산고개로 하산운동- 낙생초등학교 다니던 길.
- 아랫고개 : 아랫말에서 장투리로 가는 고개.
- 그시막골 : 태릉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는 절이 있었다.
- 손기천(孫基川) : 손이터 개울이라고도 한다.
- 오목내 : 장토리 앞을 흐르는 개울. 연못처럼 길게 오목하게 파였다. 장수를 잃은 용마가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 가래터들 : 태릉마을 동쪽 들(논).
- 농바위 : 장토리(고기리) 개울 가운데 있는 바위.
- 산신제터 : 두리봉에서 10년 전까지 산신제를 지냈다.
- 숲안창 : 고기리 가는 대장동 남쪽 들(논).
- 태릉 : 큰 무덤이 있었다고 하며 태릉산을 칭하기도 한다.
동원동(東遠洞)
조선시대에는 낙생면 동막동(일명 동원동)- 원천동과 용인군 수지면 원천동 일부 지역이었고
1914년 광주군 낙생면 동원리(東遠里)라 칭하였고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제되었다.
1973년 7월 성남시 동원동(東遠洞)으로 개칭되어 동(東)자와 원천동(遠天洞)의 원자를 취하
여 칭한 것인데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와 관련이 있다. 동막(東幕)이란 동쪽이 막힌 곳, 혹은
동쪽에 막(집)이 있었던 곳에서 비롯된다. 먼내(遠川 : 개울)란 떠나온 고향과 멀다는 뜻의
한자화 표기라 하겠다.
- 섬배산 : 벌판에 마치 섬같이 생긴 산이라 하여 섬배산이라 칭한다.
- 대장동고개 : 동막골과 대장동 사이에 있다.
- 뒷구미고개 : 구미동 귓구미와 금곡동 사이에 있던 고개. 마루터기에 흰 흙이 많아 백토
고개 또는 백두고개라고 한다. 분당지구에 편입되었다.
- 안말고개 : 광주머니와 금곡동 안말 사이에 있는 고개.
- 산소골 : 광주머내 서북쪽 김해김씨 묘가 많은 곳.
- 작은 샘치골 : 큰 샘치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1990년 홍수로 대부분 매몰되었다.
- 큰샘치골 : 안골 동북쪽 산등성이 너머에 있는 골짜기.
- 광주머내개울 : 광교산에서 발원한 동막골 개울과 웃손골 개울이 합류되는 건개울 부근의
하천을 말한다.
- 낙생저수지 : 동막골과 웃말 서쪽에 있는 저수지. 몽리구역은 용인군 수지면 동천리-구미
동-금곡동- 궁내동- 동원동 지역이다.
- 동막골고개 : 광교산에서 발원하여 동막골 웃말과 아랫말을 경유하여 웃손골 개울과 건개
울이 합류되는 하천.
- 동원낚시터 : 1987년 설치된 유료 낚시터. 동막골 아랫말 동남쪽에 있다.
- 동원교 : 용인군 수지면과 연결되는 다리. 총연장 72m, 교폭 8.5m로 1968년 8월 10일에 준
공되었다.
- 서낭댕이 : 동막골 웃말 개울가에 서낭당이 있었는데 낙생저수지로 수몰되었다.
- 섬배산 밑 : 섬배산 남쪽에 있는 들, 분당지구에 편입되었다.
- 양짓말벌(들) : 섬배산 남쪽에 있는 들, 분당지구에 편입되었다.
- 장승배기 : 광주머내 북쪽 지방도 옆에 장승이 있던 곳.
- 장승배기들 : 장승배기 앞(남)에 있는 논들.
백현동(柏峴洞)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낙생면 백현리(柏峴里) 지역이었는데, 1914년 광주군 낙생면 백현리(柏
峴里)로 칭하였고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제되었다.
1973년 7월 성남시 백현동(柏峴洞)으로 개칭되고 1975년 3월 낙생출장소에 편입되어 판교동
의 관할이 되었다. 그 후 1989년 5월 중원구에 편입되었다가 1991년 9월 분당구에 편입되었다.
백현동의 명칭은 잿넘어 마을 뒷고개 마루터기에 큰 잣나무가 있어 그 고개를 잣고개- 재너
머- 백현이라 했는데, 마을이 고개 밑이므로 후에 마을의 명칭이 되었고 1973년 동제가 되면
서 동명(洞名)으로 되었다.
- 능안산 : 새말과 궁내동 능안에 걸쳐있는 산.
- 도장산 : 판교동 너더리와 백현동 잿너머(마을)에 걸쳐있는 산.
- 안산 : 잿너머 웃말과 장터벌 사이에 있는 마을 앞산.
- 앞산 : 새말 동쪽에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얕은 산. 분당지구에 편입되었다.
- 서낭고개 : 백현동 새말과 판교동 너더리 사이에 있다. 수원-판교간 지방도로상에 있다.
- 잿고개 : 판교동 너더리와 잿너머 사이에 있다. 본래는 잣고개이다.
- 우족제 : 남서울컨트리클럽 오른쪽으로 김해김씨 묘역이 있는 곳.
- 관골(貫谷) : 망재에 살던 이흥객이 소(牛)를 잡아 관(貫)으로 팔던 곳.
- 국능골 : 새말 강골 서쪽 골짜기. 분당지구에 편입되었다.
- 아랫뒷내골 : 앞산 뒤(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분당지구에 편입되었다.
- 치아골 : 수평안골 북쪽에 있는 산골이면서 농경지.
- 웇우물 : 국능골 안에 있는데 웇오른데 약효가 크다.
- 가운데들(벌) : 잿너머 가운데 있는 들로 기름지고 수원이 풍부한 들.
- 되링게모퉁이 : 새말 앞(남)에 있는 산 모퉁이. 분당지구에 편입되었다.
- 돌마교 : 정자동과 백현동 사이에 있다 총연장 100m, 교폭 6m, 다리 밑으로 탄천이흐른다.
- 돌무더기들 : 농경지에 돌이 많아 그 돌을 쌓은 돌이 있는 들.
- 면답들(面沓坪) : 백현동- 삼평동- 이매동에 걸쳐있는 들.
- 아랫벌 : 가운데들 아래에 있어 아랫벌이라 칭한다.
- 장터벌 : 돌마교와 궁내동 4통 사이에 장(場)이 섰던 일대를 칭함. 분당지구에 편입되었다.
분당동(盆唐洞)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돌마면 분점리(盆店里)- 당우리(唐隅里) 지역이었는데, 1914년 광주군
돌마면 분당리(盆唐里)라 칭하였고, 1971년 경기도 성남 출장소에 편제되었다.
다시 1973년 7월 성남시 분당동(盆唐洞)으로 개칭되었고 1975년 3월 돌마출장소에 편입되어
분당ㆍ정자ㆍ수내ㆍ율동을 관할하게 되었다. 그 후 1989년 5월 중원구에 편입되었다가 1991
년 9월 분당구에 편입되었다.
분당동(盆唐洞)은 분점리(盆店里)의 분(盆)자와 당우리(唐隅里)의 당(唐)자를 취하여 분당동
이라 칭하게 되었다. 여기서 분점리(盆店里)는 동이를 구웠다는 옹기점(甕器店)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당우리(당모루)에 대하여는 예전에 당(唐)집이 있어서 당모퉁이 동네라고
하던 것이 당모루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ㆍ
- 맹산(孟山): 샛당모루 남쪽에 위치한 산.이 산에는 신창군을 비롯한 맹씨 선조의묘가 있
다.
- 새능산 : 안골 동남쪽에 있다. 전주이씨 효령대군과 후손인 문화공(文化公)의 묘가 있으므
로 새능산이라
- 점골산(店谷山) : 양영실업고등학교 뒤(동)에 있는 산이다. 전주이씨 효령대군과 후손 이
자와 이원철(李元哲, 원주현감) 등의 묘가 있다.
- 청룡오리산 : 태재고개 북쪽에 있는데, 먼 옛날 천지개벽 때 갈매기가 앉을 만큼 남은 봉
우리라 하여 「갈미봉」이라 -
- 바탕골고개 : 샛당모루 상나무골 사이에 가파른 소로 고개이다.
- 생향나무고개 : 상나무골과 바탕골 사이에 있는 소로로 예전에는 큰 향나무가 있었다 하여
상나무고개」라 칭ㆍ
- 새말고개 : 태재(가실)고개 동쪽에 있는 고개로 옛날 분당동 주민들이 광주의 경안장 보러
갈 때 이용하였으나 1937년 태재고개를 새로 개설하면서 폐로가 되었다.
- 태재(泰峴, 台峴, 秋嶺, 楸嶺) : 가실고개라고도 하며 분당동 안말과 광주군 오포면신현리
에 걸쳐있고 분당 신도시 지역내에서는 가장 험준한 고개이다. 이 고개의 명칭은 동국지 승
람과 조선지지자료에는 추령(酋領), 광주읍지와 남한지 및 경주 김씨 상촌공파 세보에는 추
령(秋嶺), 한국지명총람에는 태현(台峴), 일반 지지자료에는 태현(泰峴)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개 마루터기에는 고려 우왕때 현신인 김자수(金子粹)의 묘가 있다.
- 금정골 : 일제강점기 때 금을 채광하였다는 곳으로 검바위가 있다.
- 버머턱골 : 갈미봉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이곳에는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범의 서식처였
다고
- 비끼골 : 새능산 남쪽에 있는 긴 골짜기이다.
- 삼형제골 : 같은 유형의 골짜기가 셋이 있다하여 삼형제골(三兄弟谷)이라 부른다.
- 약사골(藥師谷) : 안당모루 위(남)에 있는 골짜기로 이곳에 약사암이란 절이 있어서 약사
골이라 칭- 구전에 따르면 이곳에 세거해온 맹씨의 선조가 논밭을 갈 때 부처가 출토되어 그
곳에 절을 세웠다고 ㆍ
- 작은범적골 : 큰 범적골 서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전주이씨 양녕대군파의 묘가 있다.
- 큰범적골 : 새능산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예전에 분당동 주민들이 호랑이가 많다하여 접근
을 못했다고 ㆍ
- 오리물 : 안말과 분당저수지 제방 사이에 있던 주민들의 바가지 우물. 물이 잘 나와 흐르
는 물에 오리가 서식했다고 ㆍ
- 추령고개우물 : 태재 정상의 바위틈에서 나오는 옹달우물이다. 우물 위에 김자수의 신도비
가 있다.
- 가실고개길 : 태재고개 밑에 있으며 분당동 361-1, 357-2 논에서 1989년 한양대 박물관 조
사팀에 의해 지석묘 12기가 발견되었다.
- 검바위 : 금정골에 있는데, 일명 금바위라고 칭하다가 검바위로 불리우고 있다.
- 남대문거리 : 예전에 분당동 주민들이 지게 나무짐을 지고 쉬던 곳.
- 동이주점막 : 장터 삼거리 돌마다방(분당동 239-1)이 있는 주막. 서현동과 수내동과 광주
오포면을 잇는 삼각지점이다.
- 두껍능 : 맹산 북쪽으로 약사암 남쪽. 구전에 따르면 옛날 어떤 이가 선조 묘를 쓸려고 광
중을 파는데 암반이 나오자 더 파내렸더니 두꺼비가 나와 명당자리의 효과를 상실여 패가망
신하였다고 ㆍ
- 명문바위 : 새말고개 중턱에 있으며 구전에 의하면 옛날 한 장수가 바위에 앉아 잠시 쉬어
갔는데 장수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어 명문바위라고 ㆍ
- 분당교(盆唐橋) : 돌마파출소와 양영실업고교 사이에 있는 분당동과 서현동을 왕래하는 다
리이다. 총 연장 18m, 폭 8m로 1968년 10월 20일에 준공되었다.다리 밑으로 분당천이 흐른
다.
- 점터들 : 장터와 안말 사이의 제2분당교 앞에 있는 들. 마을에서는 「 뒤지머리」라칭- 질
그릇 조각이 출토되고 있다.
- 제2분당교 : 안말과 장터 사이에 있다. 길이 8m. 폭 8m로 1970년 6월 20일에 준공되다.분
당동과 태재고개를 연결하는 교량이다.
- 횟것모루 : 두껍능 내령으로 안당모루와 수내동과 광주군 도로 사이를 말- 옛날에 비나 눈
이 오면 도깨비(횟것)가 나타났다고 한다
삼평동(三坪洞)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낙생면 삼거리(三街里)·보평리(洑坪里) 지역이었는데, 1914년 광주군 낙생면
삼평리(三坪里)라 칭하고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제되었다.
1973년 7월 성남시 삼평동으로 개칭되었고 1975년 3월 다시 낙생출장소에 편입되었다. 삼평
동의 명칭은 삼거리(三巨里:三街里)의 삼(三)자와 봇들(洑坪:福坪)의 평(坪)자를 취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쉼막산 : 도성고개 동쪽에 있는 창원황씨 종산.
- 안산 : 삼거리 앞에 있어 안산이라 칭한다. 산 정상에는 도당재가 있다.
- 삼태봉 : 성내미 샛골과 장자골 사이에 있는 3개의 봉우리를 삼태봉이라 한다.
- 도성고개 : 독점과 고들동 사이의 393번 지방도로상에 있는 고개. 도선(道詵:827-899)이
지나갔던 고개라 한다.
- 메루리고개 : 성내미 주민들이 하산운동·운중동을 다닐 때 이용하던 소로
- 마듬골고개 : 미듬골과 성내미의 중간에 있는 고개.
- 옛너머고개 : 성내미에서 낙생국민학교로 가는 고개.
- 원너머고개 : 조선시대 원님이 다니던 고개.
- 궁골 : 쉼막산 낙맥에 있는 작은 골짜기. 평산신씨의 사패지.
- 농바위골 : 농바위가 있는 골짜기.
- 더터골 : 어리골 남쪽에 둥글게 생긴 골짜기.
- 뒷골 : 아랫말 뒤(북)에 있는 골짜기.
- 불당골(佛堂谷) : 신선바위 서쪽 예전에 절이 있었던 골짜기.
- 샛골(懇曲) : 장자골과 불당골 사이를 샛골이라 한다.
- 쉼막골 : 도성고개가 높아 길손이 이곳에서 쉬어간다고 하여 쉼막골이라 한다.
- 어리골 : 성내미 건너말 뒤에 있다.
- 음골(陰谷) : 음지에 있는 골짜기. 평산신씨의 사패지이다.
- 장자골(長子谷) : 성내미 웃말 서쪽 옛날 부자가 살던 곳.
- 두레우물 : 봇들 가운데 있던 두레박 우물.
- 동안보 : 한의들보 동쪽 섬벌보 사이에 있다.
- 마른개울 : 화랑보개울 북쪽에 있는 하천. 청계산에서 발원하여 미들골 삼거리 봇들을 경
유하여 탄천에 유입된다.
- 미듬골우물 : 미듬골 중앙에 있던 대동우물. 일명 미동골 우물로 폐정됨.
- 섬벌보 : 동안보에서 북쪽 100m쯤에 있다.
- 한강나드리보(漢江洑) : 건갱이들 동쪽 탄천에 있는 보.
- 한의들보 : 안산 서쪽 화랑보 개울에 있다.
- 화랑보 : 판교동 너더리와 삼평동 삼거리 사이에 있는 화랑보 개울을 막은 보.
- 화랑보개울 : 운중동에서 발원하여 판교동 너더리를 거쳐 삼평동의 삼거리-봇들을 경유 탄
천에 유입된다.
- 건갱이들 : 토질이 메말라 밭으로 되고 분당지구에 편입되었다.
- 고려장터 : 고구려때 늙고 병든 사람을 산채로 장사지냈던 곳.
- 농바위 : 장롱처럼 생긴 바위. 불당골 남쪽에 있다.
- 도당재 : 삼거리안산 정상에 옛날 주민들이 제사 지내던 곳.
- 마당바위 : 마당처럼 넓고 평평한 바위. 성내미 샛골 남쪽에 있다.
- 삼거리주막터 : 삼거리 도로변에 있던 주막집 터.
- 삼평이교(三坪二橋) : 판교주유소 동쪽 약 100m지점에 있는 다리. 총연장 30m, 교폭6m로
1985년 9월에 준공되었다.
- 섬벌들 : 논이 밭으로 변했는데 지대가 높다하여 섬벌들이라 한다.
- 수풍 : 성내미와 경부고속도로 사이인데, 마을(성내미)이 높게 매달려 있는 형국이므로 풍
수상 좋지 않다 하여 남북으로 약 150m에 이르는 곳에 소나무·오리나무전나무·참나무 등을
심어, 숲을 이루고 있다.
- 신선바위 : 마당바위에서 남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있는데 신선이 놀던 바위라 한다.
- 재찬목들 : 물을 많이 대도 버쩍버쩍 스며든다는 들.
- 제일삼평교 : 독점과 미듬골 사이에 있는데 총연장 50m, 폭 10m로 1976년 10월 20일준공
됐다.
- 조산들 : 조사의 산이었던 들.
- 한의들 : 한없이 물이 많아 아무리 가물어도 농사를 짓던 곳. 분당지구에 편입되었다.
- 화랑모래이 : 안산 동쪽 산 모퉁이.
서현동(書峴洞)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돌마면(突馬面) 돈서촌·양현리(陽峴里) 지역이었는데, 1914년 광주군
돌마면 서현리(書峴里)라 칭한 후,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제되었다.
다시 1973년 7월 성남시 서현동으로 개칭되고 1975년 경기도 돌마출장소에 편입되어 이매동
관할이 되었다. 그 후 1992년 5월 1일 시조례 1192호에 의거 재편되었다.
서현동(書峴洞)의 명칭은 돈서촌의 서(書)자와 양현리(陽峴里)의 현(峴)자를 취하여 칭한 이
름이다.
일설에는 3백년 전에 베고개(피고개) 넘어 서당(書堂)이 있었는데 그로 인하여 성당이 있는
고개 즉, 서현(書峴)으로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돌마(突馬)의 지명유래는 병자호란 후에 어느날 서현동에서 주인 없는 수많은 말떼가 발견되
어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나, 1991년 정자동(亭子洞)의 태안군 이방수의 부인 안산김씨(安山
金氏:1523-1579) 무덤을 발굴·이장할 때에 출토된 묘지명(墓地銘)에 보면, 광주 동쪽 토을
마리(吐乙馬里)에 안장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톨마의 한자표기로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
다. 여기서「乙」자는「ㄹ」발음으로 「토」의 받침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1530년 간
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6권 광주목 방면조에 보면 『돌마(突馬) : 남쪽으로 첫머리가
20리요 끝이 30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안구(眼球 : 1417년 장원급제 1441년)의 묘소도
『영장산 돌마방(突馬坊) 율리 구봉하(龜峰下)』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면 「돌마」란
지명의 사용은 조선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 된뫼산 : 된섬말과 아랫말 사이에 있는 산. 일부는 분당지구에 편입되었다.
- 모란봉(牧丹峯) : 서현동 통로골과 율동 서근배미 및 이매동에 걸쳐있다. 산봉이 모란이핀
상이라 한다.
- 이진봉(壬辰峯) : 이매동 안말과 서현동 안골에 걸쳐 있는 산으로 임진왜란때 진(陳)을 쳤
던 것이며, 임진봉이라고도 한다.
- 분당고개 : 분당동 점골과 통로골 사이에 있는 비포장 도로로 은행쟁이에서는 통로골개라
한다.
- 뒷골 : 영장산 동북쪽에 있다. 수내동 웃말 뒤에 있는데, 분당지구로 편입되었다.
- 미근배미골 : 은행쟁이 동북쪽 비탈진 골짜기에 작은 논이 층층으로 있다.
- 모란골(牧丹谷) : 모란봉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들이 서현동·이매동
양민을 학살한 곳이다.
- 밑에골 : 통로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노장군이 마셨다는 약수가 있다.
- 서현저수지 : 통로골 동쪽에 있는데 몽리면적은 24헥타르이고, 몽리구역은 서현동의 통로
골 주변의 농경지이다.
- 고래실들 : 은행쟁이 앞(남)에 있는 비옥한 고래논이다.
- 서현교 : 1972년 5월 30일에 준공된 다리로 총연장 33m, 교폭 9.3m이다.
- 신경들 : 된섬말 서쪽에 있는 넓은 들로 황새의 서식처였다고 한다.
- 황새울들 : 서현교 북쪽에 있는 넓은 들로 황새의 서식처였다고 한다.
석운동(石雲洞)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낙생면 석운리(石雲里)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바라미를 병합하여 석운리(石雲里)라 칭하였다.
그 후 1971년 성남출장소에 편제되고 1973년 7월 성남시에 편입되었고 1975년 낙생출장소에 편입되었으며 운중동 관할이 되었다.
석운동(石雲洞)은 도루니, 되루니, 돌운, 도롤니, 석운, 도륜니(道倫里) 등으로 불리운다.
동명의 유래는 산이 높고 골이 깊어 구름이 자주 끼고 돌이 많아서 석운리(石雲里)라 칭하게
되었다는 설과 예전에 길가던 선비가 해가 저물어 이곳에서 머물러 갔는데, 이로 인하여 일
이 잘못되어 서운하게 되었다고 하여 「서운리」라하던 것이 한자로 표기되면서 석운리가 되
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이경석(李景奭:1596-1671)이 낙향하여 살면서 도륜리(道倫里) 또는,
수신동(修身洞)이란 명칭을 붙였다 하기도 한다.
- 된봉산 : 석운동에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으로 가는 뒷산 고개로 매우 가파르다.
- 망산(望山) : 바루산리 뒷산으로 망을 보던 산이라 한다.
- 쇠직이산 : 석운동의 남쪽에 있는 산이다.
- 덕고개 : 석운동에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으로 가는 고개.
- 천왕골고개 : 예전에 석운동 사람들이 안양을 왕래하던 고개.
- 당골 : 석운동 남쪽에 있는 산신제터가 있는 골짜기.
- 뒷골 : 석운동 뒤에 있는 골짜기.
수내동(藪內洞)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돌마면 수내촌(藪內村) 지역이었다가 1914년 광주군 돌마면
수내리(藪內里)라 칭하였고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제되었다.
다시 1973년 7월 성남시 수내동으로 개칭되었고, 1975년 3월 돌마출장소에 편입되어 분당동
의 관할이 되었다.
수내동(藪內洞)은 고려 공민왕 때는 낙계(落溪)라 부르던 곳인데, 조선조 경종때 청백리 이
병태가 숲을 가꾸어 숲안이라 부르다가 한자로 표기되면서 숲안(藪內)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중기에 취락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이곳은 한산이씨 선조 묘와 신도비, 정려(旌閭),
고가(古家), 사당, 지석묘(支石墓), 보호수 등의 문화유적이 있다.
- 영장산(靈長山) : 내동 숲안과 된섬말에 걸쳐 있는 해발 70m의 산으로, 수내동 산1-2번지
에 속한다. 숲 안에서는 마을 뒤에 있는 산이라 「뒷뫼」라 부르기도 하고 임진왜란때 군인
들이 진(陳)을 쳤던 곳이라 이진봉(壬辰峯)이라 칭하기도 한다.또한 복정동, 신흥동, 단대동
에 걸쳐있는 해발 193.6m의 산도 영장산이라고 한다. 그러나, 남한산성 남쪽 성남시내에 걸
쳐있는 일대의 산들이 모두 영장산으로 기록되었음은 각성씨 족보에 기록된 묘의 소재명칭에
서 알 수가 있다.수내동 영장산은 한산이씨 종산으로 이장윤(李長潤), 이증(李增), 이경류
(李慶流) 등의묘가 있다.
- 요골산(龍谷山) : 요골(용골) 마을 뒤에 있는 산인데, 풍수지리서에 의하면 좌청룡(左靑
龍)에 해당된다고 한다. 한산이씨 선대묘는 분당지구 개발에 따라 폐묘되었다.
- 파리봉(發梨峯) : 맹산 서쪽으로 수내동과 분당동에 걸쳐 있다. 구전에 따르면 옛날 천지
개벽할 때 파리가 앉을 만큼 남아 「파리봉」이라 칭했다고 하나 조선지자료에는 발이봉(發
梨峯)으로 기록되어 있다.
- 넘말고개 : 넘말과 역말 사이에 있는 고개로 넘말에서는 역말고개라 칭한다.
- 달기집재 : 영장산 서쪽에 있는 고개인데 현재는 논이다.
- 씨앗고부퉁이 고개 : 역말과 정자동 웃말 사이에 있는 고개인데 수내동 정자동 나무꾼이
다니던 오솔길
- 지령고개 : 역말과 분당동 안당모루 사이의 소로이다. 예전에 이곳에 살던 전주이씨가 부
자로 살면서 손님들이 들끓는 것을 귀찮게 여기던 중 한 스님의 말을 듣고 산의 혈을 끊었더
니 손님도 오지 않고 부자도 망했다는 전설이 있다.
- 당골(堂谷) : 역말과 분당동 안당모루 사이의 집이 한 채 있었으므로 당골이라 부른다.집
이 헐린 후로 농경지로 변했다.
- 문박사골 : 영장산 동쪽 지류로 옛날에 문박사란 절이 있었다고 한다.
- 산수골 : 산소골이라고도 한다. 한산이씨 선조묘가 많았다.
- 삼밭골 : 역말 뒤 정자동과 분당동 사이에 있는 넓은 골짜기로 예전에 삼밭이 있었다고다.
- 탁자뿌리 : 영장산에서 서북쪽으로 길게 뻗은 산 줄기였다.
- 넘말우물 : 넘말 논 가운데 있었다. 옛날 넘말·역말의 대동우물
- 덕고개우물 : 덕고개 아래에 있는 우물로 역말의 대동우물
- 분당천(盆唐川) : 율동 큰매지봉에서 발원하여 서근배미를 거쳐 분당저수지, 안말(분당동)
숲안을 경유하여 탄천에 유입되는 하천이다. 숲안에서는 앞개울, 또는 벌치개울, 안말에서는
뒷개울이라 부른다.
- 광신터들 : 역말과 분당동 안당모루 사이에 있는 들로 일명. 광수터(광시터)라 칭하기도한
다.
- 기우제단터(祈雨祭壇攄) : 숲안, 역말 주민들이 가물 때에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영장산
정상에 있다.
- 넙쩍바위 : 펀던 아래(서부)에 넓적하게 누워있는 바위로 두껍바위라고 칭하면 인물이나
고, 넓적바위라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하여 부근에는 산소를 안쓴다고 한다.
- 마루들 : 돌마교 북쪽으로 이곳의 들이 다른 들보다 높다하여 마루들이라 하는데 천수답이
었다가 탄천 보(권순네보)를 막아 이용하면서 수답이 되었다.
- 말무덤 : 조선조 병조좌랑 이경류(李慶流)가 상주에서 왜병과 싸우다가 전사하자 수내동
윗산에 장사를 치른 후, 상주에서 주인의 피묻은 한삼과 유서를 물고 500리를 왔던 말이 3일
간 죽을 먹지않고 슬퍼하다 3일만에 죽자 주인 무덤앞에 말을 묻었다. 이충절의 말무덤이 아
직도 남아 있다.
- 수내교 : 숲안 아랫말 앞에 있는 다리. 1974년 새마을 사업으로 가설되었는데 길이 20m폭
이4m이다. 다리 밑으로 분당천이 흐른다.
- 숲안교 : 1976년 가설한 다리로 길이 14m, 폭이 4m인데 다리 밑으로 분당천이 흐른다.
- 연당(蓮塘) : 숲안 아랫말 느티나무 옆에 있다. 본래는 홍연(紅蓮)이었는데 어쩌다 백년
(白蓮)이 되면 문중에서 재상이 배출한다는 속설이 있다. 면적은 약 200평이다.
- 장수발작 바위 : 숲안에서 서현동 된섬말 가는 하천가에 있는데 장수의 발자욱이 있
는 바위라 한다.
- 정자터 : 한산이씨 선조들이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서 세운 사당이었던 터
- 펀던 : 산수골과 정자동 웃말 사이로 이곳 일대가 평평하므로 펀던(번던)이라 부른다.
야탑동(野塔洞)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돌마면 오야소동(梧野所洞)·상탑동(上塔洞)·하탑동(下塔洞) 지역이었
는데, 1914년 광주군 돌마면 야탑리(野塔里)라 칭하였고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
었다.
다시 1973년 7월 성남시 야탑동(野塔洞)으로 개칭되고 이매동의 관할이 되었다. 야탑동(野塔
洞)의 동명칭은 오야소(梧野所)의 야(野)자와 상탑·하탑(牀榻·下榻)의 탑(塔)자를 취한 것
이다. 오야소란 원래 앞의 들이 넓고 마을 주위에 오동나무가 많았기 때문에「오동나무 들마
을」이라 하다가 오동나무 열매가 많이 열리는 마을로 변하였고, 그것이 다시 「왜실」로 줄
었다가 한자화 할 때 오야소(梧野所)로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또 상탑(上塔)·중탑(中塔)의 탑은 언제 어떻게 축조되고 해체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구
전에 의하면 약300여 년 전에 탑(塔·토탑土塔)이 있어서 탑골(塔谷)로 불리웠다고 한다
- 안산 : 중탑 양지마을 동쪽에 있는데, 경주이씨 종산(宗山)이다.
- 아랫장구봉 : 웃장구봉 서쪽에 있는데, 예전에 호랑이가 물을 마시던 곳이라 하여 주민들
이 접근을 꺼려했다. 옥돌이 매장되었다고 한다.
- 웃장구봉 : 큰매지붕의 연봉으로 남서울 공원묘지 서남쪽에 있는데 장고처럼 생긴봉우리
다.
- 덕골(德谷) : 웃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부처바위가 있다. 여기에 치성을 드리면 부처님
으로부터 덕을 받는다하여 덕골(德谷)이라 하며 부처골이라 칭하기도 한다.
- 산소골고개 : 오야소와 중탑 중간지점에서 도촌동 중말을 왕래하는 고개로 이곳 일대에 고
성이씨 선대묘가 있다.
- 똥고개 : 야탑동에 있는 마귀할미가 똥을 누고 간 고개라 한다.
- 불당골 : 능안골 서쪽에 있는데, 사찰이 있었다하여 불당골(佛堂谷)이라 칭한다. 기와 조
각이 출토된다.
- 산소골 : 경주이씨 산소가 많은 양지마을 북쪽 골짜기이다.
- 성지골 : 남서울공원묘지 골기 일대를 말한다.
- 웃골(上谷) : 웃탑골 위(동)에 있어 웃골이라 부른다.
- 큰골 : 야탑동에서 제일 큰 골짜기인데, 큰매지붕 낙맥으로 중탑 응달말 동쪽에 있다.
- 야탑천(野塔川) : 남서울공원묘지 뒤(큰매지봉)에서 발원하여 웃탑골 중탑 오야소를 경유
하여 탄천에 유입된다.
- 앞순내 : 오야소 앞(서)에 있던 하천으로 1960년대 노경지 정리로 폐천되었다.
- 무잡모퉁이 : 야탑양수장 남쪽에 약 50m지점에 큰 웅덩이가 있어 무잡모퉁이라 칭한다.이
곳은 수심이 매우 깊었다고 하며, 예전에는 탄천에 보를 막는데 힘이 미지 못하자 이곳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하여 운여울 모퉁이라 칭하기도 한다.
- 바른고개 번던 : 바른고개에 있는 버덩으로 이곳을 넘으면 광주읍 직리 곧은골에 이른다.
- 부처바위 : 부처골에 있는데, 이곳에 머리 없는 부처가 있어 부처바위라 칭하게 되었다.이
돌부처는 도난을 당하여 주민들이 비슷한 부처를 만들어 놓고 치성을 드린다.
- 안산건너들 : 중탑 양지마을 북쪽에 있는 들로 경주이씨 선대묘가 있다.
- 안테들 : 중탑 안산건너들 안에 있는 들이라 안테들 또는 안티들이라 칭한다.
- 야탑교 : 돌마초등학교 남쪽 100m지점에 있는 다리로 연장 22m 폭이 10m인데 1982년 5월
19일 준공되었다.
- 장승박이 : 돌마초등학교와 중탑 사이로 일제시대까지 장승이 있었으며, 또 하나가 모잡
모퉁이에 있었다고 한다.
- 황새바위 : 사람 형상을 하고 있어 장사바위라 칭하다가 다리가 황새모습을 하고 있다 하
여 황새바위라 하는데, 황새그림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운중동(雲中洞)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낙생면의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중산운리(中山雲
里)와 산운리(山雲里)를 병합하여 운중리(雲中里)라 하였다.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
제되고 1973년 7월 성남시 운중동(雲中洞)으로 개칭되어 운중·하산운·대장·석운동을 관할
하였다. 다시 1975년 3월 낙생출장소에 편입되었고 1977년 6월 동명개정시 운중동으로 통합
개칭하였다. 그 후 1989년 5월 중원구에 편입되고 1991년 9월 분당구에 편제되었다.
운중동(雲中洞)의 명칭은 국사봉(國寺峯) 밑이 됨으로 뫼루니, 뫼룬, 산운리(山雲里)라 하였
는데 계곡이 길고 깊으며, 앞 뒷산에 구름이 많이 끼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골
짜기는 한양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있어서 취락이 형성되었다. 산운리는 상산운리(上山雲里:
윗뫼루니)·중산운리(中山雲里:아랫뫼루니)로 구분된다. 여기서 운(雲)자와 중(中)자를 취하
여 운중동(雲中洞)이라 칭하게 되었다.
- 긴골산 : 진골산이라고도 하며 웃뫼루니 방죽 옆에 위치하여 있다.
- 동녘산 : 중산운리 동쪽에 있는 산.
- 신당게산 : 산신제를 지내던 산으로 청계산 낙맥이며 운중동 뒷산
- 앞절산 : 중산운리 앞 동사무소 아래 절이 있던 산.
- 응달산 : 운중동 북쪽에 있는 산.
- 자지봉 : 운중동 뒷산, 장둥이 자지처럼 하나 뻗었음.
- 청계산 : 운중동 뒷산.
- 하오개산 : 화의고개가 있는 산.
- 뫼루니고개 : 운중동에서 석운동으로 가는 고개.
- 학현(鶴峴) : 화의고개라고 하며 운중동에서 화성군으로 넘어가는 고개.
- 가골 : 운중동 아랫말 남향판의 골짜기.
- 개경주골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후문 옆 골짜기.
- 백당골(柏堂谷) : 석운동으로 가는 고개 좌측 골짜기.
- 서설골 : 문턱이라고도 하며 중간말 위(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돌이 많다.
- 안골 : 석운동 가는 길에 있는 골짜기.
- 앞작골 : 성산운리 앞에 있는 작은 골짜기.
- 윗벌골 : 학현 위에 있는 골짜기.
- 제부골 : 운중동에 있는 골짜기.
- 하나골 : 운중동의 골짜기.
- 개경주들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후문 옆들.
- 귓대바위 : 절터에 있는 바위.
- 동녘논 : 동녘산 밑에 있는 들(논).
- 망수논들 : 동사무소 앞 하천가 동사무소 쪽에 있는 논.
- 쇠실들 : 운중동 동사무소 앞들.
- 양천게 : 예전에 지게질 할 때 쉬던 곳.
- 족두리바위 : 족두리 같이 생긴 바위.
율 동(栗洞)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돌마면 율리(栗里)였는데, 1914년 광주군 돌마면 율리(栗里)로 칭했고,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었다.
다시 1973년 7월 성남시 율동(栗洞)으로 개칭되었고, 1975년 3월 돌마출장소에 편입되어 분
당동 관할이 되었다. 율동(栗洞)의 명칭은 밤의 명산지에서 유래한 것 같다. 서근(三斤)이나
되는 밤이 생산되었다고 풍자할 만큼 밤의 고장이라서 예로부터 취률리(取栗里), 석물을 갖
춘 묘역이 많아서 석인리(石人里)라 했다고 한다. 성남서지에는 조선조 중엽에 「산일리」라
부르기도 했는데, 1915년에 율리(栗里)라고 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기록되었다. 그러
나 안골 순흥안씨 족보에 보면 안침(安琛:1445-1515)등의 묘지가 율리(栗里)로 기록되어 있
고, 영의정 이종성(李宗城:1692-1759)이 지은 대사간 유상재(柳尙載) 묘갈문에도 율리(栗里)
로 표기되었으며, 유상재의 형 유상경(柳尙儆)의 묘갈문에는 율촌(栗村)으로 기록되어 있음
을 볼 때에 1915년 설은 틀린 것이다.
율동에는 순홍안씨, 진주유씨, 청주한씨, 한산이씨 등의 선조묘가 있으며 새마을중앙연수원,
분당저수지 등이 있다.
구전에 따르면 풍수설 또는 정감록에 율동 일대에는 58대장성 10승지지(十勝之地)가 있다하
여 사방에서 풍수가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이를 입증이나 하듯 한국전쟁 당시에도 이 지역은
안전하였으며 분당지구 개발구역에서도 제외되었다.
- 서평능산 : 분당저수지 북쪽에 있는 해발 122.4m의 산인데 서평군(西平君) 한계희의 묘가
있어 서평능산이라 부른다.
- 작은매지봉 : 큰매지봉 남쪽에 있는 산으로 율동과 광주읍 직동리 곧은 골에 걸쳐다.
- 천리봉(千里峯) : 큰말(양지말) 동쪽에 있는 산인데 천리마(千里馬)가 달리는형상이라한
다.
- 큰매지봉 : 옛날 천지개벽때 매가 한 마리 앉을 정도만 남았다 하여 매지봉이라 한다.율동
과 야탑동에 걸쳐 있으며 석회석이 지질을 이루고 있다.
- 아리랑고개 : 서근배미 샛말과 웃말 사이에 있는 비포장 오솔길이다.
- 이매동고개 : 이매동과 서근배미 큰말 사이에 있는 소로로 고개 마루터기에는 서남이 있
다.
- 장고개(長峴·場峴·千鳥長谷) : 율동과 광주읍 직동리 사이에 있는 고개인데, 율동·서현
동·수내동·분당동·이매동 주민들이 광주군과 경안장을 갈 때 이용하던 고개로,일명,천조
장골고개, 곧은 골고개라 칭한다.
- 통로골고개 : 서현동 통로골과 율동 서근배미 큰말에 걸쳐있는 고개, 1983년 새마을 중앙
연수원이 설립되면서 확장·포장되었다.
- 거북안골 : 서근배미와 새마을중앙연수원 사이에 있는 골짜기,일명 거북능안골이라 칭한
다.
- 동막골 : 양지마을 동쪽에 있는 산골로 돌이 많다.
- 부처중골 : 응달말 동쪽에 있는 작은 산골로 예전에 부처가 있었다하여 칭하게 되었다.
- 북당골 : 불당골이라고도 하는데 응달말 뒤(동)에 있다.
- 서편능안골 : 분당저수지 북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한계희 등의 묘가 있다.
- 절골 : 새마을중앙연수원 동쪽인데 예전에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 큰능안골 : 전주이씨 세대의 묘가 있었으므로 큰능안골이라 칭한다.
- 검은바위 : 부처중골 하천 길가에 있는 바위로 1970년대 새마을 사업 때 바위 일부가 파괴
되었다.
- 아랫장주리 : 옛부터 천하 명당터가 있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도랫말 동쪽다랑치논을말한
다.
- 안씨터 : 안침 묘 아래의 좌측으로 안호(安瑚)의 기와집터.
- 웃장주리 : 아랫장주리 위(동남)를 말하는데, 현재 농경지(논)로 명당자리가 있다고 한다.
- 율동교(栗洞橋) : 성남시에 의해 1983년 5월 말경 준공된 총연장 7.5m의 다리이다.
이매동(二梅洞)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돌마면 이매동(二梅洞)이었다가 1914년 광주군 돌마면 이매리(二梅里)
라 칭하였고,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었다.
다시 1973년 성남시 이매동(二梅洞)으로 개칭되었고 행정동으로서 서현동·야탑동 등을 관할
하였다. 1975년 3월 돌마출장소에 편입되고, 1977년 6월 이매동(二梅洞)으로 통합개칭되었
다. 그 후 1989년 5월 중원구에 편입되었다가 1991년 9월 분당구에 편입되었다.
이매동의 명칭은 이매동사무소(이매동 96)와 탄천 사이에 있는 들을 「이무슬들」이라하여
이곳의 지세가 매화꽃이 떨어지는 형국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약 200년전에 순
흥안씨가 입주하여 마을을 이루고 「임의 술」이라 부르다가 이매동(二梅洞) 또는 임의곡(任
意谷)으로 기록되어 있다.
- 구진버리산 : 큰매지봉 서쪽으로 이매동 안말과 군부대 사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외탁굴산 : 물방앗거리 동쪽에 있는 산으로 조선시대에 절이 있었다고만 전해진다.
- 종지봉 : 천지개벽 때 종지만큼 남았다는 산으로 물방앗거리 동쪽에 있다.
- 갓골고개 : 갓골과 안말 사이에 있는 비포장의 소로길. 일명 안말고개이다.
- 막으내미고개 : 서현동 은행쟁이와 안말 사이에 있는 고개로 서현동·율동 어린이들이 돌
마초등학교 다닐 때 이용하던 고개였다.
- 박석고개 : 율동 서근배미와 이매동 안말 사이에 있는데 고개 마루턱에 서낭이 있었다.군
부대에 편입되었다.
- 탁굴고개 : 이매동에서 야탑동 턱굴로 넘어가는 고개.
- 통로골고개 : 서현동 통로골과 안말 사이에 있는 비포장 소로인데 1970년대 말경 군부대
설치로 폐로가 되었다.
- 파래골고개 : 물방앗거리 웃말과 야탑동 탁굴로 넘어가는 고개.
- 혜매기고개 : 갓골 동북쪽으로 갓골과 물방앗거리에 걸쳐있는 소로.
- 구진버리골 : 안말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토질이 비옥하다.
- 덜벙걸 : 좁고 긴 골짜기로 구지넙리산 북쪽에 있다.
- 삼천병마골(三千兵馬谷) : 이진봉 서쪽으로 안말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병자호란때의 정
세규(鄭世規:1583-1661) 장군의 격전지로 유명하다. 충청도 관찰사였던 정세규는 군사를 이
끌고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구하러 올라오다 용인에서 패하였고,남은 군졸을 이끌고 광주땅인
지금의 성남지역으로 와서 다시 싸우다가 크게 패전하였다. 45일만에 조선의 굴복으로 호란
이 끝난후 어느날 이매동(또는 서현동) 산골짜기에서 수많은 말떼가 발견되었는데, 주인을
잃은 정세규 군졸의 말이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이곳의 지명이 돌마면(突馬面)이 되었고
말떼가 발견된 곳이 삼펀병마골이 된 것이다.(서현동 참고)
- 조고리골 : 물방앗거리 동쪽에 위치하는데 골짜기에 돌이 많아 토박하고 곡식이 잘 안된다.
- 파대골 : 외탁굴산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후미진 곳이라 산적의 득실거림으로 있던 민가가
외지로 이주하여 폐동되었다.
- 혜매기골 : 이무술에 있는 골짜기로 예 전에 큰부자가 살았다. 그 부자집에 손님이 많이
찾아왔는데 이를 귀찮게 여긴 주인은 시주하러 온 스님이 일러준대로 물방앗거리와 야탑동과
중탑 사이의 산허리를 끊었다. 그 후 손님도 오지아 부자가 망했다는 전설이 있다.
- 서가산우물(徐家山井) : 안말 개울에 있던 우물로 1960년대 말까지 안말의 대동식수였다.
- 앞개울 : 종지봉과 안말뒤(똥고개)에서 발원하여 물방아거리 앞을 거쳐 탄천에 합류되는
하천이다.
- 웇우물 : 웇 오를 때 마시면 효험이 있다는 우물.
- 이매저수지 : 갓골 앞에 있는 저수지로 몽리면적 22헥타아르인데 탄천과 385번 지방도 사
이의 농경지 농업용수로 이용되며 낚시꾼들의 낚시터로 한 몫을 차지한다.
- 큰보(大洑) : 탄천에 있는 보로 조선조 말기에 설치했다고 한다.
- 구레들 : 이무술들 남쪽에 있는 들로 분당지구 개발구역에 편입되었으며 분당역이 있다.
- 굴바위 : 종지봉 정상 부근에 있는데 바위 밑에 굴이 있다. 예전에는 금수의 서식처였다.
- 도랑터(都堂攄) : 이매동 주민들이 음력 9월 초에 마을의 안정과 풍년을 기원하는 산신제
단을 말한다.
- 마루들 : 탄천과 이무술 사이의 들인데 들이 높으므로 마루들이라 한다.
- 병풍바위 : 굴바위 서쪽에 있는 병풍을 친 형상의 큰 바위이다.
- 이매교(二梅橋) : 이매동사무소 북쪽 20m 지점에 있는 다리. 총연장 11m, 교폭 10m로 1982
년 5월 19일 준공되었다. 1988년에 다리에 인도교가 가설되었다.
- 이무슬들 : 마루들과 385번 지방도 사이에 있다. 판교와 사송동 일대에서는 「거지들이라
한다. 풍수지리설로 매화꽃이 떨어지는 형국이라고 한다.
- 탄천교(炭川橋) : 물방앗거리 서쪽 250m 지점에 있는 다리. 총연장 160m, 교폭20m로 1985
년 12월 31일 준공되었다.
- 토끼바위 : 굴바위 남쪽에 있는 바위로 토끼가 앉아있는 형상이다. 이 일대가 토끼의 서식
처라고 한다.
정자동(亭子洞)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돌마면 정자동(亭子洞)이었다가 1914년 광주군 돌마면 정자리(亭子里)
라 칭한 후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었다.
다시 1973년 7월 성남시 정자동(亭子洞)으로 개칭되고, 1975년 3월 돌마출장소에 편입되어
분당동의 관할이 되었다.
정자동(亭子洞)의 명칭은 조선 중기에 이천부사겸 광주병마진관 등을 역임한 이경인(李敬
仁:1575-1642)이 이곳 탄천 상류에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는데, 그 후 정자가 있는 마
을이라 정자리(亭子里)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정자리는 전주이씨의 집성촌인데, 성종(成宗)
의 아들 무산군(茂山君)의 5남인 태안군이 유람하던 곳으로 400여 년 전 그의 증손인 이경인
이 정자를 지었는데 그의 아호가 또한 정촌(亭村)으로 이 일대를 정자리(亭子里)라 한다.
이곳에는 전주이씨 선현의 묘와 묘비, 지석묘, 봉수지 등의 문화유적이 소재하고 있다. 정자
동 일부는 분당지구개발 계획에 따라 그 구역에 편입되었다.
-동그란산 : 능골 앞(남)에 있는 산으로 동그랗게 생겼다. 전주이씨 선대 묘역이 있었다.
--성덕산(聖德山) : 웃말 동쪽에 위치한 산으로 광주군 오포면 신현리와 웃말 구미동에 걸쳐
있는 해발 340m의 산이다. 광복 직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이 산신제(山神祭)를 지내던 곳이다.
산 중턱 큰절골과 작은절골에 절터가 있어서 불곡산(佛谷山)이라 칭하기도 한다.
- 장자골산(長子谷山):성덕산(불곡산) 지류로 장자골 남쪽에 있는 해발 79m의 작은산이다.
- 태밑산 :웃말과 중산말에 걸쳐있다.태재고개 밑에 있어서 태밑산이라 한다.임진왜란 때 군
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으므로 임진봉(壬陳峯) 또는 이진봉으로 칭하기도 한다.
- 덕고개(德峴) : 웃말과 수내동 역말 사이에 있다. 고개가 크므로 덕고개라 하며 고개마루
터기에 서낭이 있다.
- 봉우재 : 웃말 서남쪽에 있는데 정자동 주민들이 구미동을 왕래할 때에 이용했던 해발
09.1m의 고개이다.
- 붉은고개 : 중간말과 능골 사이에 고개길인데 황토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 새우고개(新峴) : 정자동 주민들이 구미동과 왕래하기 위하여 새로 고개길을 닦고 다녔는
데 샛고개(間峴) 또는, 새고개(新峴)라 불리다가 후대에 새우개, 새우고개등으로 칭하게 되
었다.
- 뒷골(後谷) : 웃말 뒤(북)에 있는 작은 골짜기이다.
- 모퉁밖 : 웃말과 성덕산 사이 산모퉁이로 정자동 나무꾼들이 쉬던 곳이다.
- 작은절골 : 성덕산 줄기로 큰 절골에서 동북으로 약 1m 지점의 골짜기. 예전에 사찰이 있
었는데 빈대 때문에 폐사되었다. 기와조각 주춧돌이 출토된다.
- 장자골(長子谷) : 수내동 역말과 능골사이의 골짜기로 조선시대에 큰 부자가 살았다.1989
년 한양대 박물관조사팀에 의해 지석묘 7기가 확인되었다.
- 큰절골 : 웃말 동쪽 성덕산 초입인데 큰 절이 있었다고 하며 와편들이 출토되고 있다.
- 칠성당우물(七星堂井) : 중간말 중앙에 있는 대동 우물로, 일제시대 이희춘(李喜春)이 자
손을 위해 치성 드리기 위하여 팠다고 한다.
- 가내들 : 들이 좁고 가늘므로 가내들 또는, 가느들이라 한다.
- 무쇠말잔등 : 큰절골에서 태밑산을 거쳐 병풍바위에 이르는 지역. 이곳은 일제 인들이 큰
인물이 나지 않도록 쇠말뚝으로 혈(穴)을 끊었다고 한다.
- 병풍바위 : 정자보 앞에 있는데 병풍처럼 생긴 바위로 절벽을 이루고 바위 옆이 깊어서 명
주실 한타래를 다 풀어도 끝이 닿지 않는다고 한다.
- 소금장 : 장터거리 지늪들 안에 있었는데 지대가 낮아 비만 오면 탄천이 범람하여 폐장 되
었다고 한다. 소금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분당지구 개발 후 정자역(亭子驛)이 들어섰다.
- 수평(樹坪) : 평평한 곳에 나무가 많아 숲을 이룬 곳이라 수평이라 부른다.
- 정자보(亭子洑) : 능골과 구미동 사이 탄천에 있는 보를 칭한다.
- 지늪들 : 탄천 서쪽에 있는 들로「진입께」라 부르며 지대가 얕아 비가 조금만 와도 질펀
한 곳이다
초림동(草林洞)
초림동은 1992년 5월 1일 성남시조례 제1192호에 의거 새로 정해진 동명이다. 초림동은 성남
시 수내, 정자, 궁내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동명을 정한 것이다.
판교동(板橋洞)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낙생면(樂生面) 판교(板橋)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너분배를 병합하여 판교리라 하였다.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고 1973년 7월 성남
시 판교동(板橋洞)으로 성남시에 편입되었고, 1975년 3월 낙생출장소에 편입되어 판교·삼평
·백현의 3개 동을 관할하다가 그후 1989년 5월 중원구에 편입되었다가 1991년 9월 분당구로
편입되었다.
판교동(板橋洞)의 명칭은 서출동류(西出東流)하여 판교 앞을 흐르는 운중천에 널판지로 다리
를 놓고 다녀서 「널다리」라고 부르다가 「너더리」로 변했다. 이것이 한자로 판교(板橋)라
고 표기된 것이라고 한다. 1530년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광주목 역원군에 판교원(板
橋院) : 주 남쪽 4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판교라는 지명의 사용은 조선초기
까지로 추측할 수 있다. 낙생면(樂生面)의 낙생(樂生)의 지명은 백현동 앞에 낙성시장(落城
市場)이 낙성(落城)으로 다시 낙생(樂生)으로 변했다고 하는 설과, 병자호란 때에 충주병사
정세규(鄭世規)가 남한산성을 지키기 위하여 북진하여 오다 판교에서 패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왕이 항복하였기 때문에 낙성(落城)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신증동국
여지승람≫ 광주목(廣州牧)에 보면 고려 충정왕(忠定王) 때의 이곡의 기문(記文)에 1349년 4
월 고향가는 길에 낙생역에 이르니, 광주목사 백화부(白和父)가 운운하였으니, 낙생이란 지
명은 고려 때부터였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느리고개 : 판교 남쪽에 있는 고개. 삼남지방에서 판교쪽으로 들어오는 고개.
- 원너머고개 : 판교 북쪽에 있는 서울로 가는 고개.
- 더터골 : 판교 북쪽의 전답과 산야로 이루어진 골로 더터골이라고도 칭한다.
- 비석골 : 일명 비성골이라 하는데 연안 이씨 묘의 비석이 있어 부르게 된 지명이라고 한
다.
- 운중천 : 판교 앞을 흐르는 개울.
- 가내바닥들 : 판교 2통 앞들, 공장, 양계단지가 들어섰다.
- 너븐바위 : 판교 2통에 있는 바위인데, 바위 위에 집을 지어 도로에서는 일부만 보인다.
- 뉘에머리끝 : 판교 2통 하산운동과 판교동의 경계를 이루는 누에처럼 뻗은 산 끝.
- 느티나무게 : 판교 2통 연안이씨 선대가 심었다는 수 백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곳.
- 망곡터(望哭攄) : 예전에 국상(國喪)이 났을 때 예의를 하던 곳, 소방서 옆으로 일부가 도로에 편입되었다.
- 도당터(산신제터) : 판교 동쪽 약 500m 지점의 마을제사를 지내던 곳 .
- 물방앗거리 : 판교 동북간 300m 지점으로 예전에 물방아가 있던 곳.
- 수용소 : 6.25 당시 피난민이 임시 거주했던 곳.
- 의식곡(衣食谷) : 뉘에머리산 못미처 연산이씨가 살던 곳.
- 이문(里門) : 마을 문으로 입구문과 출구가 각각 있었다.
- 장터거리 : 판교에서 분당으로 가는 길 약112m 지점에 옛날 장이 섰던 곳.
- 초적재(草績載) : 낙생중학교 옆들.
- 화랑모게 : 판교 제일 아래 산너머에 주막이 있었는데, 주모가 죽어서 묻은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하산운동(下山雲洞)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낙생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두밀(杜密)을 병합
하여 하산운리(下山雲里)라 하였다.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7월
성남시에 편입되었고, 1975년 3월 낙생 출장소에 편입되어 운중동의 관할이 되었다.하산운동
의 명칭은 하산운리(下山雲里)를 살려서 동명화(洞名化)한 것이다.
-수루너머산 : 현대사회연구소에서 금토동으로 가는 산. 고개를 수루너머 고개라 한다.
- 성내미고개 : 하산운동에서 삼평동으로 가는 고개.
- 거무래골 : 아랫뫼루니 남쪽으로 현 남서울골프장이 위치한 곳.
- 두물(두밀) : 하산운 서남쪽 현 판교농원 뒤 쓰레기 메운 골짜기. 그 일대 산을 두밀산이
라 한다.
- 앞작골 : 두밀 앞 중간말과 아랫뫼루니 경계를 이루는 지역.
- 서리실 : 남성골프장이 자리 잡은 산.
- 말무덤(길) : 하산운동과 운중동의 중간, 한절에 말무덤이 있었다.
- 한절 : 옛날에 절이 있던 곳이다.
- 한절하천 : 청계산에서 발원하여 판교를 경유하여 송파로 흐르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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