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말 대한제국 때까지 태현리(台峴里)와 신촌리(新村里)로 2개 마을이었다. 1914년 일제 강점기에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신촌리의 신(新)과 태현리의 현(峴)을 따서 신현리(新峴里)라고 하였다. 4개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동막골(東幕) · 새말(新村) · 태재(台峴) · 퉁점골이다.
예로부터 태현(台峴)은 『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되어 있었는데, 이는 이 고개가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어
고려 말의 충신 김자수(金自粹)가 조선 태종(太宗)의 강제 부름을 받아 경상도 안동(安東)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이 고개에 다다라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주창하며 자결(自決)한 곳이어서 더욱 유명하다.
이 마을은 광주시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마을로 성남시 분당구 율동, 서현동과 접해 있다.
새말에서는 광주시 목동과 새나리 고개를 경계로 하고 있으며, 남으로는 능평리와 접해 있다.
마을의 문화유적
김자수(金自粹)의 묘
태재마을에는 고려말 충신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의 묘가 있다. 신도비와 함께 경기도 기념물 제98호로 지정되어 있다.
김자수는 고려유신(高麗遺臣)으로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를 지냈으나, 조선개국(朝鮮開國) 후 이성계(李成桂)의
출사(出仕) 요청을 거절하고 고향인 안동(安東)에 낙향하여 은거하던 중, 태종(이방원)이 형조판서(刑曹判書)를
제수(除授)하면서 이번에도 출사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울 것을 감지하고, 고려의 망국(亡國)을 비관하며
개경(開京)으로 가던 중 이 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손들이 그의 유언대로 이 곳에 장사지냈으니, 600여 년 전의 일이다.
그의 아들 김 근(金 根)은 평양소윤(平壤少尹)을 지냈는데, 그도 부친 묘역에 묻혀 있다. 김자수의 손자인 김
용유(金永濡)는 성종(成宗)대에 좌리공신(佐理功臣)이며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역임 했는데, 그의 묘도 김자수 묘 맞은편에 있다.
서명형(徐命珩)의 묘
새말에는 조선 영조(英祖)대의 문신(文臣)인 서명형(徐命珩)의 묘가 있는데, 대사간(大司諫), 도승지(都承旨)등을 역임하였다.
동막골(東幕)
이 마을에 아주 옛날 어느 농부가 들어와서 농토(農土)를 만들기 위하여 농경지를 개간하는데, 그 옆에 농막(農幕)을 치고 살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동쪽에 있는 농막이라 하여 동막(東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능평리와 신현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광명초등학교가 이 마을에 있다.
새말(新村)
예전에는 신현리 일대가 첩첩산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도둑이 많았다고 하는데, 웃말에서 살던 사람들이 도둑을
자주 맞으므로 살 수가 없어 새로 촌락을 이루어 옮겨와서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이 마을에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태재(台峴)
분당과 신현리의 경계에 위치한 마을인데, '태재'란 큰 고개라는 뜻인데, 조선시대 『중정남한지』
(重訂南漢志)에도 태재는 군사요새지(軍事要塞地)로서 남한산성을 방어하는데 큰 몫을 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마을에는 고려 말 충신인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의 묘가 있는데, 경기도 기념물 제98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은 웃태재, 아래태재로 두 개의 마을이 되었다.
퉁점골
조선조 말 고종 때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천주교(天主敎) 박해 때에, 천주교인들이 이 곳에 숨어들어
유기그릇을 만들어 생계를 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퉁점' 이라고 붙여졌다고 한다.
나무골고개
신현리의 새말과 광주시 목동을 잇는 고개를 말하는데, 목동이 속칭 '나무골'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새나리고개 라고도 부른다.
능모리
신현리의 광명초등학교의 뒷산을 말하는데, 예전에 장희빈의 묘를 쓰기 위하여 국풍(國風)이 와서 이 곳을 잡으려 하였으나
앞산이 막혀 안 된다고 하며, 문형리의 참바대 마을의 장희빈 묘소가 있던 자리로 옮겨 잡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동막골고개
동막골 마을에서 새말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막터골
동막골 마을 동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머루수골
아래 태재 마을과 새말 중간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못골
동막골 뒤에 있는 골자기를 말하는데, 예전에는 이 곳에 연못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형산
문형리의 뒷산이면서 신현리의 동쪽에 있는 산으로 문형리 · 신현리 · 추자리 · 고산리 · 성남시 율동 등 여러 마을이
이 문형산 자락에 펼쳐져 있다.
부처당골
웃태재에서 성남시 구미동으로 가는 높은 고개 너머에 예전에 부처를 모셨던 당집이 있던 골짜기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상태(웃태재)
태재 마을의 위쪽에 있는 자연부락을 말한다.
설고개
'서울고개'가 변하여 '설고개'가 되었다. 새말에서 분당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이 지역에서 서울을 가려면 이 고개를
넘어야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래태재
태재 마을의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고개
퉁점골 마을과 동막동 마을에서 광주시 목동(나무골)을 거쳐 경안장(京安場)으로 가는 지름길에 있는 고개여서
'장보러 가는 고개'라는 뜻이다.
절터골
새말 뒤에 옛 절터와 우물이 있었고, 심한 가뭄이 오면, 인근 부락의 아낙네들이 이 곳에 우물을 파면, 비가 왔다는 전설이 있다.
질마구비골
목동(나무골)에서 새말로 넘어오는 중간지점으로 내려오는 골을 말한다.
태재고개(台峴)
『여지승람』에는 추현(秋峴)이라고 표기 되어 있고, 『중정남한지』에는 추령(秋嶺)이라고 표기되어있다.
신현리에서 분당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새나리고개
새말에서 목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일명 '나무골 고개'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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