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09 6월 19일~20일
산행구간: 미시령-1318봉-황철봉-저항령-1326봉-마등령-오세암-영시암-백담사-용대리
거리 / 시간: 마루금 8.5km / 날머리 12.5km / 약 10시간 소요
미시령에서 황철봉가는 길
토욜 하루내내 비가 내리다. 저녁에서야 겨우 비가 그쳤다.
새벽 2시경 미시령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바람이었다.
익히 알고 있던 대로 미시령 바람은 여느 곳의 바람과는 다르다.
시인 황동규는
‘미시령 큰바람’에서 “‥‥‥미시령에서 흔들렸다/ ‥‥‥
설악산이 흔들리고/내 등뼈가 흔들리고/
나는 나를 놓칠까봐/나를 품에 안고 나를 허덕였다”라고 말하며,
미시령 고개마루 바람의 위력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황동규가 언급한 ‘내가 품은 나’는 어떤 존재일까?
그저 거추장스럽기만 肉身(육신)일까? 아니면 대중가수 시인과 촌장이
‘가시나무새에서 노래한 ‘헛된 바람’, ‘어쩔 수 없는 어둠’, ‘이길 수 없는 슬픔’ 등의 종류일까.
미시령에서 단속요원들 눈을 피하기 위해 해드렌턴도 끄고 선두대장의 렛츠고 싸인만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아직 한번도 입산허가를 내주지 않은 곳이라
백두대간중 가장 단속이 심한 곳이다. 범여는 벌써 삼림법 위반으로 별이 5개(?)다
범여는 백두대간 코스를 탓을뿐이고 삼림청에서는 입산금지를 단속했을 뿐이고 범여는
운이 좋아 안걸렸을 뿐이고...
미시령 고개마루에 서서 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편견, 오만 등이 모두 씻겨
나가도록 오래 동안 머물고 싶었지만 언제 빨간 모자 아저씨(?)가 나타날지 모르니
발걸음 재촉할 수밖에 없다.
미시령에서 황철봉을 지나 공룡능선과의 연결점인 마등령까지 진행하는 길, 오늘의 산행 구간이다.
시작부터 너덜목이다. 지난 4월 대야산에서 겹질린 발목부위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마루금 총 8km중 약 6.5km를 두발로 것는게 아니라 네발로 기어서 가야하는 너덜길이다
왼쪽 내림길을 잠시 밟으며 간간이 이어지는 암반 길이 예사롭지 않은가 싶더니
곧이어 나타나는 된오름 길에서 맞닥드린 거대한 암석 너덜길은, 칠흑의 어둠
속에서 헤드랜턴의 범위 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보폭을 더욱 좁히고, 제멋대로
뒹굴며 자릴잡은 채 닳지 않은 모서리들 틈에서 내 작은 발 바닥 하나 번갈아 놓으며
골라 디딜 편한 자리 찾기가 쉽질 않아 기어 오르는 바짓자락은 온통 흙 먼지로 채색된다.
간간이 부딪히는 암반 모서리가 얼얼한게 다행이다.
제발 큰 미끄럼만 없어다오..이럴 때 달빛이라도 조금 비쳐 준다면 평형
감각을 유지하고 주변을 살핀다면 한결 쉬울텐데..
오래되지 않은 듯한 가늘은 등로 안내 로프가 야광 막대기로 연결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발 아래에도 별이 반짝인다. 속초시와 앞바다,
새벽 2시, 일행들 모두 머리에 별을 하나씩 이고 나아간다.
머리 위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그믐달과 함께 길을 밝히고 있다.
머리 아래에도 별이 있다. 속초시와 속초 앞바다가 밝혀주는 별이다.
온 천지가 별이다. 그런데 일행들의 넋을 빼앗아가는 별천지를 시샘하는 친구가 있다. 나무들이다.
그래서인가! 나무들은 더욱 강렬한 별을 만들어낸다.
순간적으로 눈앞에 흐르는 은하수 같은 cyber 별이다.
산에 왔으면 나무를 봐야지 웬 별 타령이냐며 항의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새벽 잠을 깨워서
심술을 부리는 것인지‥‥인사하는 방법치고는 아주 고약하지만 별 밭에 또 다른 별을 더하니 밉지만은 않다.
오늘이 夏至라 새벽 4시 20분경 벌써 동해에서 해는 솟아오르고 - 1318봉에서 아침을 맞이하다
1시간 남짓 어둠을 조심스레 기어 오르고 나서야 잠시 광할했던 너덜이 끊어지며 300여m
고도를 높인 1318.8 안부에서 숨을 고르며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추긴다.
아직도 랜턴 불빛만이 얼굴을 밝히는 칠흑이 이어진다.
비교적 편한 걸음으로 20여분의 작은 오르내림을 거치면서 마루금을 남서로 이어간다.
여명이 밝아오는 설악산의 아침 - 저멀리 보이는 곳이 저항령 계곡이다
황철봉(1381)정상 암릉길에 도착하니 선두조는 이미 정상암봉을 거쳐 하산길에 나선 모양이다.
너덜 길 하산 밟자국을 놓친채 어둠 속에서 길찾기가 쉽질 않아 리본마저 제거한 친절한(?)
국립 관리공단 나으리들 덕분에 조망바위를 오른쪽으로 잘못 우회하며 위험한 곡예를 시작한다.
소문난 황철봉 북서풍이라도 불어 올듯 꽤 세찬 바람에 모자가 날리기 시작하고,너덜 바위에
기대선 채 자켓을 꺼내 걸친다.
10여분 큰 암반의 급경사 너덜길을 헤매며 우회한 뒤에야 붉은 페인트 화살 표시를 발견하고
그나마 숨을 돌리며 동쪽하늘을 향하니 동해바다 깊숙한 곳에서 기지개펴는 일출 여명이 불그레하다.
다시 조심스레 이어지는 큰 수직 암릉 아랫쪽에 표지라기 보다는 이상한 붉은 색이 보여 다가가니
대형사고의 잔영이 지워지지 않은 채 소름이 끼친다.
등로를 막으며 버려둔지 한 두해도 아닌데..
부디 올바른 판단으로 국립공원 등로 관리의 본연의 임무를 자각하여 등산객의
안전을 도모하는 등로시설에 작은 투자라도 관심두기를 간곡히 바래본다.
금지만을 능사로 철조망 친다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고에는 네탓이니 하고
눈감을 수 있을 것인가..멀리 저항령 내림길이 숲길로 이어지며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을 느끼며 반갑게 랜턴을 끄니 왼쪽 동해 하늘이 운무 속에서 일출을 준비한다.
백두대간중 가장 악명높고 안전사고 많이나는 향철봉(해발 1381m) 전과자(?)과 되지 않고는 탈 수없는 코스이다.
운(?)이 좋아 지키는 사람이 순찰이었는지 산악회에서 손을 썻는지는 몰라도 그래도 황철봉을 정복한 이 맛
기분은 짱이다
황철봉에 서니 바람은 구름과 함께 장관을 만들어낸다. 수 分만에 수 차례에 걸쳐 세상의
모든 모습을 만들었다 지웠다한다. 때마침 동해 바다에 태양이 떠오르니
우리나라의 옛 이름이 왜 조선임을 실감한다. “我東‥‥‥朝日鮮明‥‥故曰朝鮮‥‥
(우리나라는 아침 해가 곱고 밝아, 조선이라고 하고‥‥)” 해가 뜨자 이제는 안개까지 나서 조화를 부린다.
브로켄을 만들어 낸다. 신선의 세계가 따로 없다. 여기가 신선의 세계다.
그래서 사람(人)이 山(산)에 가면 신선(仙)이 된다고들 하지 않는가. 참으로 아름다운 대간 길이다
저 멀리 대청봉(좌측 끝쪽)과 용화장성에도 아침은 밝아오고
바람, 별, 나무, 구름, 태양, 안개가 차례로 등장하여 조화를 부리니
또 다른 자연인 바위 또한 그냥 지나가지 않고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낸다.
거대한 바위덩어리(巖塊) 밭인 너덜은 고비 때마다 나타나 진행을 힘들게 하니
가급적 피하고 싶은 존재이다. 황철봉 구간의 너덜이 악명 높다는 것을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런데 오늘 구간에서의 바위라면 울산바위를 빼 놓을 수 없다.
산행을 시작하면서 살짝 살짝 일부만 보여주던 울산바위는 오늘 마루금의
종점인 마등령 직전 1326.7봉에서 마침내 온전하고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저항령(해발 1402m) 기분좋은 아침을 맞이하고
지나온 황철봉 암봉들이 동해의 맑은 햇살을 기다려 하얀 얼굴 을 내밀기 시작한다.
1249.5봉까지의 북릉 암릉 봉우리들이 대간길 설악 구간의 첫걸음을 디딘 손님에게
반가운 첫 인사를 나눈다.
내설악은 아침은 고요하기만 하고
30여분 지그재그 너덜길을 기어 오르지만 지난 새벽의 칠흑 밤길을 오르내리던 황철봉 구간 보다는 한결여유롭다.
단지 암반의 크기가 꽤 크고,직벽 오름이 더욱 곧추서니 짧은 다리가 찢어진다.
안간힘을 쓰며 북릉 상봉 전망바위를 넘어서니 용아장성을 타고 내리는 가야동 계곡이 화려하게 단장을 시작한다.
곰골 주황색 산마루가 아침 햇살을 받아 내설악의 색상을 자랑하며 넘나드는 능선 길을 한 동안 안쪽으로 잡아든다.
10여분을 북릉 암봉 아랫자락을 오른쪽 내설악으로 감아 돌아내리다가 작은 길섶에 모여 아침식사를 즐기며
느긋한 휴식을 취한다.
갑작스런 스케쥴 변경이라 다소 지체되더라도 여유 있는 시간 계획을 잡아 마지막 회식을 즐기기로 한다.
내가 막 지나온 저항령을 배경으로
대간 산꾼들에겐 가장 악명높고 산꾼들을 괴롭히는 곳이지만 가장 동경의 대상인 황철봉을 배경으로
심신이 고달픈 산꾼들에게 진한 향기를 내 뿜어며 희망을 불어주고
마루금 8.5km중 7km가 너덜길로 되어있어 7km 걷는데 6시간이나 소요되고
네발로 걷다시피 하다보니 다리는 온통 피멍으로 얼룩져있고...
설악산에서나 마실 수 있는 이 신선한 공기, 이 맛에 백두대간을 환호하는 거겠지. 외설악의 아침풍경
울산바위의 본명(?)은 籬山이라고 한다. 울타리처럼 길게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울타리가 한자음 ‘蔚’을 빌어 사용하면서 蔚山바위로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籬山이 蔚山으로 변했으니 울산과 관련되는 전설도 있게 마련. 조물주가 지금의 금강산에
봉우리가 1만 2,000이나 되는 명산을 만들려고 천하 명산들 다 모이라고 했다.
이때 울산에 있던 울산바위도 금강산으로 날아가다가 몸집이 무거워 지금의 자리에 서 쉬고 있는데
이미 1만 2,000봉이 다 차서 포기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금강산에 가긴 했는데 미모에서 밀렸으며,
그렇다고 해서 울산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고 해서 여기 설악에 머무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등령가는 너덜길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 캐논DSLR D50 카메라 20배줌으로 촬영한 울산바위
후세 호사가들이 지어낸 이야기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이야기에 더욱 정감이 간다.
금강산에서 잘난 봉우리들 틈바구니에서 왕따로 지내니 설악산에서 왕노릇을 하겠다는 것 아닌가.
중국 전국시대에 秦나라가 商鞅法 등 개혁을 통해 힘을 키워나가자 인접 국가들은, 일치감치
진나라에 붙어서 지내느냐(連衡 : 연횡), 아니면 인접 국가들이 서로 힘을 합쳐 진나라에
대항(合從 : 합종)하느냐를 두고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 때 인접 국가들을 설득해 합종을
성사시킨 인물이 소진(蘇秦)이다. 합종을 주장하면서
그가 내세운 말이 “寧爲鷄口, 勿爲牛後”이다.
즉 닭대가리가 될 지 언정 소 엉덩이는 되지 말자는 뜻이다.
울산바위는 이러한 成語(鷄口牛後)를 닮았다. 능력이 미치지도 않는 곳에 무리하게
끼어들어 일을 망치지(龍頭蛇尾) 말고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의미(鷄口牛後)이겠다.
오늘 대간은 龍頭蛇尾보다 鷄口牛後를 더 기억하자고 울산바위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마등령 직전 1326.7봉에서는 울산바위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방금 지나온 황철봉 능선을 비롯하여 대청-중청-귀청-안산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
화채봉-화채봉으로 연결되는 화채능선, 소청에서 가지를 친 용아장성능 그리고 지난
구간의 마루금인 공룡능선 등 설악의 모두를 볼 수 있다. 특히 공룡능선은 雲海와 水海를
뚫고 일어나 넘실대면서 승천을 준비하고 있다. 마치 “내게는 蛇尾는 없고 오로지 龍頭만
있을 뿐이다”라고 강변하는 듯하다. ‥‥황철봉 정상에 이은 또 다른 선경이다.
마등령 정상에서
마등령 상봉(1326.8) 조망처가 보이는 북사면 오름길에 주목 몇그루가 짙은 녹음을 뽐내는가 싶더니
다시금 시작되는 너덜길 초입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발아래 저항령 계곡을 향해서니 운무에
휩싸인 황철봉이 외설악 자락으로 손을 내밀며 다시 오라 손짓한다.
"다시 가나 봐라....밤에는..." 돌아 서서 오르는 너덜길이 다행히도 비교적 작은 크기의
너덜 암반에 짧은 구간이라 된오름에도 불구하고 쉽게 고스락에 이어지는 관목 숲에 발을 옮긴다.
마등령 쉼터에서 바라본 공룡능선
마등령에서 오세암-백담사 방향으로 날머리를 잡는다.
하산 도중 오세암 맞은 편 망경대에 오른다. “‥‥감히 말하지만 설악산에서
여기보다 나은 眺望處는 없다! ‥‥‥” 수렴동 및 백담사 계곡을 끼면서 하산한다.
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계곡을 가로질러간다. 자연의 잔치에 물(水)이 빠질 수야 없지 않는가.
모든 자연이 조화를 부리는 곳, 이곳이 바로 설악이다. 이곳이 바로 대간이다.
마등령 쉼터에 있던 독수리는 언넘이 치워버리고 울 독수리 형제들이 울매나 섭해할까
불자들이 가장 동경의 대상인 봉정암 가는 길
아름다운 이 땅을 멀리서 지켜만 보기에는 너무나도 가까운 곳에 있기에..
매주 주말을 이용하여 밤길을 나서는 산꾼들의 엄숙함에도 종교적 신성함이 깃들 수있으리라..
그것은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을 얻어 갈 수 있는 유일한 샘물일지도..
소위 대간병이라 일컬었던가..내설악 곰골을 타고 오르는 백담사의 아침 연기에 회한의 역사가
피어오르고 부처님 곁으로 다가 앉아 영혼을 세탁하는 중생들을 독려하는 목탁소리가 실려 오른다.
백담사에서 한껏 폼도 함 잡아보고
모래(6월 23일)이 음력 윤오월 초하루 님(산행)도 보고 뽕(삼사순례: 오세암, 영시암, 백담사)도
따고 모든 인연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와불사도 하나하고
토요일 하루종일 서울은 비가 쏟아지며 그칠줄을 모르네 자꾸만 사무실 밖 하늘만 쳐다본다.
저녁 7시경 비는 그치기 시작 갑자기 맘이 즐거워지고. 저녁 11시에 미시령으로 향해 출발
새벽 2시에 도착 내리니 역시 강원도라 바람에 날씨가 추워 장난이 아니다.
도둑(?)산행이다 보니 미시령 휴게소 300m 전방에서 하차하여 렌턴도
끄고 칠흑같은 그믐날의 어둠을 헤치고 미시령 대간길 도착 선두 탐색조가
감시요원 없다는 싸인을 보내와 대간길으로 신속하게 침투하여 산행을 시작.
이 곳은 한번도 개방한 적이 없어 합법적으로 산행을 할 수 없는곳이다
그러다 보니 숲이 우거져 길도 잘 안보이고 그 흔한 리번 하나도 없다.
앞을 나가는데 시간이 배로 걸렸다.
약 20분정도 산행후에 너덜길이 나왔다. 일반적인 너덜이 아니라 아예 집채만한
바위가 대다수...왜 황철봉 코스인가 이해가 간다.
미시령에서 마등령까지 마루금 총8.5km중 7km가 너덜길 소요시간 6시간
걸어가는게 아니라 전날 내리비로 인해 바위가 미끄러워 기어가다보니
무릎과 다리는 온통 피멍으로 도배가 되었있고...
미시령-1318봉-황철봉-저항령-1326봉-마등령-오세암-영시암-백담사-용대리
마루금8,5km 날머리12km 총20,5km 약 10시간정도 소요가 됐다.
이렇게 힘들고도 기분좋은 산행 처음이다.
백담사에서 용대리행 버스를 타니 잠이 쏟아진다.
아마 범여는 백두대간이란 이 단어에 중독이 되어가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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