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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변산지맥(終)

변산지맥 제4 -2구간 - 말재에서 격포항까지

by 범여(梵如) 2020. 3. 9.

☞ 산행일자:  2020년 03월 08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엷은 미세먼지...약간 더운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11.8km (갑남산 왕복 1.5km 포함) / 5시간 1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말재-207.7봉-안부-351.6봉-무명봉-갑남산 갈림길-산불감시초소-무명봉-갑남산-도청마을 갈림길

                다시 갈림길-조망바위-안부-290.7봉-안부-306.1봉-갈림길-225.4봉-조망바위-114.7봉-도청경로당

                도청버스 정류장-도청 교차로-상록 배수장-86봉-무명봉-사투봉-159.8봉-이정표-궁항치-봉수대지

                십자안부-월고리 봉수대-봉화봉-변산마실길-쉼터-해넘이 공원-격포항

소 재 지:  전북 부안군 변산면, 진서면

 

올 봄엔 2구간씩 남은 보현(위천)지맥, 내성(문수)지맥을 마치고 남쪽으로 가서 1구간 끝내고 못 간

밀양(비슬)지맥을 끝내려고 산행 계획을 잡아 놨는데 뭔 일인지는 몰라도 지랄같은 역병이 내가

가야할 산길을 가로 막아 버렸다...그러다 보니 경상도 산길은 쳐다도 못 보니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남도지방의 산들이다...지금은 어딜가도 역병(우한 폐렴) 이 극성이나 그래도

남도 지방쪽은 다른 지역보다도 환자수가 훨씬 적어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나처럼 수술 후 기저질환이 있어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폐렴이 오면 그냥 황천길이다

그래도 다리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산에 가지 않을 수가 없어 지난주 쬐끔 걷고 남은 변산지맥

마지막 구간을 마무리 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베낭을 챙겨서 고속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부안행 버스표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20분걸려 센터럴시티 터미널에 도착하니 한참 북적거려야 대합실은

한적하다 못해 적막감만 흐른다...정말 큰일이다, 이러다간 나같은 자영업자는 점빵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다

06시 50분에 출발하는 부안행 버스에 오르니 손님이라곤 달랑 3명뿐이다

마스크를 단단히 고정하고 맨 뒷쪽 좌석으로 가서 잠을 청한다.

집에서 일찍 나온 탓이라 의자에 앉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정안휴게소이다

 안 알밤 휴게소(08:00)

이곳에서 버스는 15분간 정차하기에 화장실을 가기위해 버스에서 내리는데

평소같으면 발디딜 틈도없이 복잡한 휴게소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한가하기만 하다

정안휴게소를 지나 공주~서천간 고속도로를 지나 서해안고속도로롤 들어서니

짙은 안개가 앞이 보이질 않을 정도이다

부안시외버스 터미널(09:35)

부안 터미널에 도착하니 곰소행 버스를 알아보니 10시 15분에 출발하는

직행버스가 있는데 요금이 3,000원이다...시간도 애매하고 요금이 비싸서

터미널을 나와 도로를 건너 부안군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참고로 터미널 안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직행이긴 하지만 15분 늦게 출발하니

큰 시간차는 없고, 요금이 3,000원이지만, 부안군내 버스는 부안 어디를 가던간에

멀고, 가깝고를 따지지 않고, 차비가 무조건 어른은 1,000원이고, 학생은 100원이다

신호등을 건너려는데 짙은 안개가 부안읍내를 뒤덮고 있다

 부안에서 군 어디를 가던간에 버스는 이곳에서 출발하는데 정류장이 200m가 넘는다

곰소가는 버스가 정차하는 곳

곰소가는 버스 시간표

 부안에서 곰소가는 버스는 이곳에서 정각 10시에 출발하여 동네, 동네를 다 들리긴해도

손님이 없으면 무조건 달리기 때문 직행버스나 다름없는데 상서면을 지나고, 보안면

사무소를 지나 줄포라는 곳에 갔다가 줄포버스 정류장에서 10분정도 쉬어간다

손님이라고 부안읍내에서부터  나혼자 밖에 없건만 버스 기사는 이곳에서 담배를 피고

핸드폰으로 한참을 노닥거리다가 다시 버스에 올라 곰소항으로 향한다   

곰소버스 터미널(10:55)

곰소 터미널 버스 시간표

택시를 기다리며 바라본 곰소항(熊淵港) 터미널 근처의 모습

곰소항은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있는 항구로 전라북도에서는 군산항

다음으로 두 번째 큰 어항이다.  줄포항이 토사로 메워져 폐항이 되자 1938년 진서리

앞바다의 곰섬을 중심으로 동쪽의 범섬과 연동, 서쪽의 까치섬과 작도리를 잇는 제방을 쌓아 만든

항만이며 서해어업의 전진기지항인데, 곰소(態淵)라는 말은 곰처럼 생긴 두개의 섬이라는 말과

그 섬 앞바다에 깊은 소(沼)가 있어 생긴 이름이며 ‘곰소 둔벙속같이 깊다.’라는 속담이 있다.

곰소항은 어업과 주변의 염전으로 급격히 발전하고 있으며, 주요어획 물로는 갈치·조기·오징어·병어·

꽃게·아구·새우 등이 있다. 근래에는 김양식이 활발하며 어업무선국·냉동공장·김건조장 등의 시설이

있으며 위도와의 여객선이 운항된다

 

곰소항은 줄포항이 토사로 인해 수심이 점점 낮아지자 그 대안으로 일제가 제방을 축조하여 만들었는데

목적은 이 지역에서 수탈한 각종 농산물과 군수물자 등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서였다.

진서에는 항구 북쪽에 8ha에 달하는 드넓은 염전이 있어 소금 생산지로도 유명하지만, 근해에서 나는

싱싱한 어패류를 재료로 각종 젓갈을 생산하는 대규모 젓갈 단지가 조성돼 있어 주말이면 젓갈 쇼핑을 겸한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지난주에 탔던 난폭한 택시기사를 만나기 싫어서 다른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는 수 없어 지난주에 탔던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했는데 금방 오겠다는 사람이 10분이 지나서야 온다

가지가지 밉상이다...그런데 또 오셨네요 하면서 반가움을 표하는데, 나는 하나도 반갑지 않다

 말재 밑에 있는 유유배수지 아래서 내린다(택시 요금 15,000원)

말재(馬峙:86m;11:20)

부안군 진서면 운호리와 변산면 마포리 마동마을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마동마을과 관련되어 있으나 자료는 찾을길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736번 지방도가 지나가면, 옹벽위에는 깨진 수준점이 있고 운호리쪽에는 유유배수지가 있다

마포리쪽에는 말재 북쪽 유유 마을(儒遊洞) 골짜기에서 발원하는 유유천에서 북류하며

유유교를 지나 만들어진 유유제(儒遊堤)가 있으며 유유천을 타고 마포리 입구 고사포해수욕장

남쪽에서 서해로 유입하며, 부안 누에타운이 있다

행을 시작하다(11:25)

초반부터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고 잡목의 저항이 심하나 등로는 비교적 뚜렸하다

나무가지 사이의 낙엽속에는 야생란들이 많이 보이고, 노루귀와 현오색이 보인다

분홍 노루귀(꽃말:인내)

털이 돋은 잎이 나오는 모습이 노루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르막길이긴 하나 생각보다도 그리 힘들지는 않은 느낌이다

오르막길에 별것이 다 시비를 걸어되네

산죽지대를 지나고...

뒤돌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부안누에타운이 희미하게 보인다

낙엽속에 현오색도 많이 보이나 아직까지 꽃은 보이지 않는다

 암릉구간을 지난다

국립공원 경계 표시석 말뚝도 보인다

능선에 올라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207.7봉(11:45)

점심시간(11:45~11:58)

일찍 집을 나오면서 아침을 먹지 않았던 탓에 허기가 찾아온다.

오늘 산행 첫 봉우리에서 앙꼬빵 하나에 우유, 과일로 허기를 면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식사를 끝내고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2:00)

넓은 공터를 지나고...

 

들꽃

                                     나태주

   

자세 보아야

 

이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안부를 지나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아래에서 보기보다는 그리 급경사는 아니다

암릉구간으로 올라선다

뒤돌아 보니 지난주에 걸었던 삼신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351.6봉으로 올라간다

351.6봉(12:18)

정상에는 4등삼각점만 있을 뿐 그저 밋밋한 봉우리이다.

351.6봉 4등 삼각점(△부안 422 / 1984 복구)

벤댕이 소갈머리보다 더한 국공파의 횡포 

지난주 대소고개부터 이곳까지 걸어오면서 최근에 지나간 분들의 시그널빼고는 모두 없어졌고

이곳은 나무에 걸려있는 시그널이 이렇게 땅에 떨어져 흉물스럽게 나딩굴고 있는데 이것은

국공파들이 출입금지 구역이라 들어오지 말라는 뜻으로 이렇게 흔적을 없애고 있다.

이곳은 등산객들은 오라고해도 오지않는 오지중의 오지로 맥산꾼 이외는 찾지않는 등로이다

 

맥꾼을 출입을 막으려면 제대로 막던지?... 제발 책상머리에 앉아 탁상공론 벌이지 말고

현장에 나와보소...산꾼의 출입을 금지해야 되는지 안해야 되는지 무조건 막지말고 확인하소

民草들의 祿으로 사는 자들이 세금내서 당신네들 먹여 살리는 민초들에게 갑질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산꾼들을 편하게 다닐수 있게 연구라도 함 해보셔요.

요즘 공직 사회에는 茶山 丁若鏞 같은 목민관(牧民官)은 눈을 씻고봐도 없는가 보다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무명봉(12:20)

잡목을 헤치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갑남산 갈림길(12:21)

맥길에서 떨어져 있는 곳에 갑남산이 있는데 꽤나 떨어진 곳이고 산행을 너무 늦게

시작하여 조금은 망설였지만 내 평생 다시 이곳에 올 일이 없을 것 같아 갔다오기로 한다

갑남산으로 가는 길은 등로가 잘 되어 있다 

갑남산 가는 길에 뒤돌아 보니 조금전에 지나온 351.6봉과 가야할 잠시후에 가야할 306.1봉이 보인다 

지난주에 걸었던 신선봉에서 망포대, 쌍선봉으로 이어지는 부안 십승지 능선도 보인다

부안은 십승지(十勝地) 중 하나로 직소폭포, 기생 이매창(李梅窓 1573~1610),

지포(止浦) 김구(金坵 1211~1278)를 부안삼절(扶安三絶)이라 일컫는다

 

증취객(贈醉客:취한 손님에게 드리다)

 

醉客執羅衫(취객집나삼) 취한 손님이 명주저고리를 잡으니

羅衫隨手裂(나삼수수열) 명주저고리 손길 따라 찢어졌어라

不惜一羅衫(불석일나삼)  명주저고리 하나쯤 아깝지 않지만

但恐恩情絶(단공은정절) 주신 은정까지 찢어졌을까 두렵워라

 

부안 삼절중의 하나인 기생 이매창의 詩

산불감시초소(12:32)

무인 산불감시 카메라가 있는 봉우리로 올라서니 앙증맞은 돌탑과 감시카메라, 헬기장이 있다

헬기장을 지나 갑남산으로 향한다

넓은 공터도 지나고...

무명봉(12:38)

돌계단 같은 곳으로 내려간다

도청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도 보인다

갑남산(甲南山:413.4m:12:41)

부안군의 변산면 도청리와 마포리 · 진서면 운호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무명묘지 1기와

최성식이라는 산꾼이 돌덩어리에 갑남산 435M라고 표기를 해놨는데 높이의 차이는 많이 나지만

이 분이 이마저도 표시를 안 해놨으면 지나치기 좋을만큼 그저 밋밋한 산이다 

갑남산 서쪽으로 채석강, 수성당, 적벽강 등의 비경을 안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곰소만 건너 개이빨산과

마주하고 있는데 산의 서쪽 해안에 격포 · 상록해수욕장이, 남쪽에는 모항해수욕장이 있다.

깃대봉이라고도 하는데, 산세가 갑옷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갑남산 정상에 있는 무명묘지

다시 왔던길로 되돌아 간다

도청마을 갈림길(12:45)

무명봉을 지나고...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다시 갈림길(12:57)

갑남산까지 왕복 약 1.5km 거리를 36분 걸려 갔다가 되돌아와서 다시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급경사의 내리막길

등로는 생각보다 뚜렸하다

활엽수의 군락지에 소나무 2그루가 외롭게 보인다

조망바위(13:03)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조금전에 지나온 산불감시초소

가야할 사투봉과 변산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봉화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변산지맥의 맥이 끝나는 격포항도 보인다 

잠시후에 가야할 능선의 모습

안부(13:05)

안부를 지나자마자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우측의 직진길로 올라간다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간다

 뒤돌아 본 갑남산 능선의 모습

290.7봉(13:09)

가야할 306.1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안부(13:12)

멋진 암릉 하나를 만난다

 나뭇가지 사이로 지난주에 걸었던 삼신산과 그 뒷쪽으로 언젠가 걸어볼 생각이 있는

신선봉-망포대-쌍선봉-남여치로 이어지는 변산 십승지 능선이 뚜렸하게 보인다

여기가 306.1봉 같은데?... 능선은 여기가 훨씬 높은데 306.1봉은 조금 더 가서 있다

 나뭇가지 사이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능선 좌측으로 언포해수욕장과 가야할 사투봉이 보인다

앙증맞은 돌탑도 보이고...

306.1봉(13:23)

306.1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는 아주 뚜렸하다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 다음에...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날씨가  따뜻하여 그런지 이곳은 진달래가 피기 시작한다

갈림길(13:26)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우측 직진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좌측으로 내려서니 선답자의 시그널 몇개가 보인다

조금을 더 내려선 다음에...

갑자기 몸에서 이상 신호를 본내온다.

아무래도 점심 대용으로 먹은 앙꼬빵이 탈이 난 모양이다.

나홀로 산행을 하다보니 산행후에 갈아입을 옷과 기타의 장비들을 챙기려니 베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먹거리를 줄일 수 밖에 없고, 거기다가 수술 후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탓에 무거운 베낭을 메고 다닐수가 없어 빵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먹었더니만

아마도 그게 체한 모양이다.

갑자기 식은 땀이 나고 다리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이 미치겠다.

잠시 베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억지로 볼 일을 보고 소화재 한알을

먹은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서는데도 식은 땀이 계속 흘러 내린다 

225.4봉으로 올라간다

225.4봉(13:40)

좌측의 능선으로 내려간다

갑자기 등로는 사라지고...

조금전에 지나온 갑남산 능선...갑남산 정상은 저 너머에 있어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암릉구간을 따라서 내려가는데 우측으로는 시야가 트인다

이곳 변산쪽은 서해 넘어 중국땅이라 그런지 유난히도 미세먼지가 심하다.

지난주보다는 훨씬 나은 느낌이지만 오늘도 모든 사물이 흐릿하기만 하다.

닭이봉 너머로 위도가 뚜렸이 보여야 하는 곳인데도 미세먼지로 인해 흔적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좌우지간에 가정이고 국가이고 간에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니까...

대명콘도 앞 수성당이 있는 숲이 보인다

육지에서 산신을 모신 최고의 사당은 대관령 백두대간길에 범일국사(梵日國師)

대관령 국사당이 최고라면 저 곳에 있는 수성당(水聖堂)은 용왕을 모신 海神堂이 있다

수성당(水聖堂: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8호)...사진 모셔옴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에 있는 수성당은 서해를 다스리는 개양할머니와 그의 딸 여덟 자매를 모신

제당으로 조선조 순조1년(1801년)에 처음 세웠다고 하나, 지금 건물은 1996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개양할머니는 서해 바다를 걸어 다니면서 깊은 곳을 메우고, 위험한 곳을 표시하며 어부들을 보호하였고

풍랑을 다스려 고기를 잘 잡히게 한다는 바다의 신으로, 이 지역 어민들은 모두 정성껏 모시고 있다.매년

정월 정초면 이 지역 주민들은 수성당제를 지내는데, 각 어촌이 협의하여 제관을 정하고 정월 초사흘날

정성스럽게 개양할머니에게 치성을 올린다 이 제사는 풍어(豊漁)와 마을의 평안을 비는 마을의 공동 제사였다

(안내판 참조)


수성당은 건평 4평의 단칸 기와집으로 해신(海神)을 모신 신당으로 최초의 건립연대는 19세기 중엽 1864년경으로

추정되지만, 옛 원형은 없어지고 지금의 것은 1972년에 신축한 것이다. 당내에는 무신도가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불타 없어졌다. 이곳에 얽힌 전설은 수백년 전부터 서해를 다스리던 여해신(女海神:개양할머니)이 그의 딸 8자매를

데리고 와서 전국의 각 도에 하나씩 시집을 보내고 난뒤, 오직 막내딸만을 데리고 이 곳 서해에서 깊이를 재고

어부들의 생명을 보호하였다고 전한다.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격포 마을에서는 3가지 색깔의 과실과 술·과일·포

등의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풍어(豊漁)와 무사고를 비는 제사를 정성껏 올린다고 한다.  

조망바위(13:44)

암릉구간에서 도청마을을 바라보면서 내려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할 114.7봉이 보인다

뚜렷한 등로로 맥길은 이어지고...

조망바위에는 부처손이 많이 보인다

도청저수지와 도청마을이 한가롭기만 하다.

지금은 온 나라에 들불처럼 번지는 코로나19인가 뭔가하는 지랄같은

역병 때문에 阿鼻叫喚인데 이곳은 그것과는 무관한 지 평화로운 모습이다 

참! 곱다

114.7봉(13:52)

 이곳은 지대가 낮고 양지바른 곳이라 그런지 진달래들이 많이 피었다

등로는 상당히 거칠고...

목의 저항이 상당히 심하다

가시넝쿨의 저항을 뚫고 내려오니 몸뚱아리가 상처투성이다

잡풀이 무성한 너머로 도청마을이 보인다

우측으로 향한다

안부(14:02)

관리가 안된 묘목 조림지같은 곳을 지난다

이곳을 통과하느라 개고생을 한다

칡넝쿨이 점령한 묵밭을 지난다

선답자의 산행기에 배수장으로 나오는 곳은 칡넝쿨에 점령당해 버렸다

대밭이 나오고 직진으로 가야 맥길인데 막혀버려 좌측으로 내려간다

마사토의 미끄러운 곳을 내려서 주택가 옆으로 내려간다

주택가 담벼락에서 마을 도로를 따라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내려온 길을 뒤돌아 본다

 마을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동네 개쉬키들은 다 나와서 짖어대기 시작한다

부안군 변산면에 있는 도청리(里)는 마을 뒤로 산지가 위치하며 마을 앞으로 서해와 맞닿아 있다.

자연마을로는 각수암, 건네뜸, 뒤목, 상두, 언포 등이 있다. 각수암은 도청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네모진

바위가 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건네뜸은 도청 앞 내 건너에 있는 마을이다. 뒤목은 뒷밭을 개간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상두는 지형이 코끼리의 머리와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언포는 개를 막아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산골농장 팻말도 보이고...

도청경로당(14:12)

도청경로당을 지나 좌측 마을 도로를 따라서 간다

 대숲에 서서

 

대숲으로 간다

대숲으로 간다

한사코 성근 대숲으로 간다

 

자욱한 밤안개에 버레소리 젖어 흐르고

버레소리에 푸른 달빛이 배어 흐르고

 

대숲은 좋드라

성글어 좋드라

한사코 서러워 대숲은 좋드라

 

꽃가루 날리듯 흥건히 드는 달빛에

기척 없이 서서 나도 대같이 살거나

 

부안출신의 시인 신석정의 詩

 

신석정(辛夕汀, 1907~1974)은 1907년 전북 부안의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신석정은

읍내의 보통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하는데, 결혼 뒤 고향의 전원 속에 파묻혀 시인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 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투르게네프와 하이네,

타고르와 노장(老莊) 등의 문학과 철학 서적을 탐독하며 시를 쓰기 시작한다.

1924년 그는 열일곱 살의 나이로 『조선일보』에 「기우는 해」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다.

 

그러나 신석정은 글쓰기를 포기할 생각으로 써놓은 시들을 불사르는 등 한동안 심한 좌절에 빠진다.

일찍 결혼한 까닭에 가난 또한 큰 짐이 되어 그의 발길을 무겁게 한다. 1930년 그는 박한영이 주재하던

조선불교중앙강원에 들어가 불전을 공부한다. 박한영이라면 최남선과 이광수를 비롯해 서정주와 조지훈

등에게도 영향을 미친 불교계의 거목이다. 신석정은 강원에서 불교 공부를 하는 한편 30여 명의 젊은

학도들을 규합해 회람지 『원선』을 만들기도 하나 종교 자체에는 깊이 빠져들지 않는다.

그는 금강산으로 입산 수도를 떠나자는 동료들의 청을 뿌리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1970년 그는 ‘한국시인협회’에서 시집 『대바람 소리』를 출간하고, 1972년 10월 『문학사상』

창간호에 시 「오한(惡寒)」과 산문 「시 정신과 참여의 방향」 등을 발표한다. 1972년 문화 포장을

받은 데 이어, 1973년 그는 한국 예술 문학상을 받는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전북 문화상 심사를 하던

자리에서 고혈압으로 쓰러져 투병 생활에 들어간다.

신석정은 병석에서도 시 「가슴에 지는 낙화 소리」와 산문 「병상 수필」을 쓰지만,

1974년 7월 6일 예순일곱의 나이로 삶을 마감하는데 부안에는 석정문학관이 있다

마을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도청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도청 버스 정류장(14:18)

도로 우측에는 성산교회도 보인다

뒤돌아 본 도청마을의 모습

도청 교차로(14:19)

곰소항에서 변산으로 가는 30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다

도청교차로 지하를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체기가 가시지 않아 힘이든다

도로가에 베낭을 내려놓고 베낭을 베개삼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좌측으로 간 다음에...

우측의 절개지가 맥길이나 올라갈 자신이 없다

조금을 더 진행한 다음에 우측의 공터로 향한다

시멘트 도로 우측 능선이 맥길이나 그냥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자꾸만 걸음은 느려지고 식은 땀이 나면서 힘이든다

하는 수 없어 소화재 한 알을 더 먹고 아카시아 가시로 손을 따보지만 별효험이 없다

상록배수지(14:35)

다시 마루금으로 복귀하는데 마루금 한가운데 상록배수장이 있다

배수장 휀스 옆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능선으로 올라가는데 맥길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뒤돌아 보니 배수장 너머로 내가 오늘 걸었던 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대명콘도와 수성당(빨간 건물앞 숲)을 당겨본다

벌목지 능선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86봉(14:45)

86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사투봉의 모습

생강나무도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사투봉으로 가는 길은 정말 힘들다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면서 잡목과 가시나무들과의 전쟁중이다

千辛萬苦 끝에 잡목지대를 벗어난다

산죽지대를 벗어나 능선으로 올라선다

무명봉(14:56)

이곳도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좌측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보인다

가시나무 사이에 핀 길마가지나무에 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향기가 너무 진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길마가지나무꽃(꽃말:소박함)

길마가지란 향기가 너무 진해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고 길을 막았다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인동과에 속하는 길마가지나무는 양지바른 산기슭에서 자라는 낙엽관목으로 3m 정도 자란다

봄에 가장 먼저 피는 나무꽃으로 알려진 생강나무꽃보다 훨씬 더 빨리 핀다   

잡목의 강렬한 저항을 받으며 임도로 빠져 나온다

임도를 따라서 사투봉으로 올라간다

사투봉으로 오르는 등로 우측으로는 간벌지대이다

언포해수욕장 너머에 있는 곰소항은 미세먼지로 인해 흐릿하기만 하다

변산면 도청리 언포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 년 전 조선조 중엽 인조(仁祖) 때 최(崔)씨

일가가 처음 이곳에 터를 잡으니 산과 바다가 접하고 있어 어염시초(漁鹽柴草)가 풍성(豊盛)하므로

사람 살기가 좋아 찾아드는 사람이 늘어 마을을 이루고 소금을 굽는 가마터에서 소금을 만들었다

하여 염포(鹽浦)라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바닷물의 자연현상으로 모래 등이 갯벌을 막았다 하여 둑 언(堰) 자 개 포(浦) 자를 써서

언포(堰浦)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일제강점기에 제방시설로 농경지가 조성되면서

마을이 번창하여 한때는 목화(木花) 및 연초(煙草) 공판장을 운영하였다고 한다  

능선으로 올라간다

현오색(꽃말: 보물주머니)

사투봉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격포항의 모습

등로에서 바라본 부안영상테마파크의 모습

부안영상테마파크는 KBS와 부안군이 공동으로 출자하고 별도의 회사가 운영, 관리하는데

16.5㏊에 이르는 그 규모도 대단하지만 반영구적인 시설 활용을 위한 세트장의 사실적 고증과 웅장함이 놀랍다.

경복궁과 창덕궁의 주요 전각들이 복원된 왕궁 시설을 중심으로 양반가와 서원, 일반 백성의 가옥과 장터,

성터 등 다양한 건축물들이 성곽으로 둘러싸인 넓은 터를 따라 자리하는 모습은 마치 조선시대의 한양을

재현해 놓은듯 하다

사투봉 정상에 올라선다

사투봉(死鬪峰:169.2m:15:12)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와 도청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폐초소와

예전에 있었던 KBS 도청 중계소는 철거된 채 없고 그 흔적만 보인다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지만 사투봉의 유래는 격포항 옆 닭이봉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닭이봉 아래에 있는 격포마을의 형국이 지네형국이라 마을의 재앙  끊이지 않자

닭과 지네가 상극이란 것을 이용하여 맞은편에 있는 이곳에 족제비상을 세워 닭이봉과

마주보게 하였더니만 마을의 재앙이 물러갔다고 전해지면서 이곳을 사투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정표가 보이고 맥길은 등산로 출구방향으로 이어진다

쉼터 의자도 나오고...

등로 좌측 아래 상록해수욕장변에는 NH생명 연수원이 있다 

쉼터 의자를 지나고... 

159.8봉으로 올라간다

159.8봉(15:20)

등산로 출구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제도권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가야할 변산지맥 마지막 봉우리인 봉화봉이 보이고...

묘지를 지나고...

등산객들이 많은 모양인데 오늘 산에서는 개미새끼 한마리도 못봤다

이정표(15:27)

내려가는 길에 궁항으로 향하는 도로가 보인다

궁항치로 내려간

변산마실길 등산안내도가 서 있다

궁항치(弓項峙:15:30)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격상마을에서 궁항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고개너머 조그만 항구가 있는 궁항마을에는 KBS 대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촬영한

전라좌수영세트장이 있고, 관광객이 많은지 펜션들이 많이 보이고, 개섬(犬島)도 보인다.

맥길은 우측의 절개지로 올라서야 하지만 조금을 더 가서 바다풍경펜션 쪽으로 향한다

전라좌수영 세트장 주차장으로 가는길을 따르다가...

우측 능선으로 올라서니 이장을 한 듯한 묘지터가 보이고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오른다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본 궁항마을의 모습

변산면 격포리에 있는 궁항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삼백여 년 전 조선조 중엽(朝鮮調中葉) 명종(明宗)때

한 선비가 이곳저곳 떠돌아 이곳의 절경을 보고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뒤로는 반월(半月) 모양을 한 산이 둘러 있고 마을 앞 바다에는 견도(犬島) 일명 개섬이 1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서쪽 해안에 도당금(濤堂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도당금은 옛날에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한 장사(壯士)가 이곳에서 무술을 연마하여 장수(將帥)가

되고자 해안의 돌을 옮겨서 석당(石堂)을 지어 살게 되었는데, 어느 날 천둥 번개가 치며 폭풍이

일어나 석당이 무너지며 장사도 죽었다. 그런데 폭풍이 잔잔해지자 장사 시체는 간 곳이 없고

바다에 섬이 생겼다고 한다. 그 후 이 섬을 중심으로 어장(漁場)이 형성되니 어부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게 되었으며 장사(壯士)가 죽어서 개가 되었다 하여 견도(犬島) 일명

개섬이라 하였다. 견도(犬島)에서 바라보면 마을 형국이 활 모양이며 견도(犬島)는 활촉으로

개섬과 마을 사이에 100m의 목이 있다 하여 활 궁(弓), 목 항(項), 일명 활목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산자고(菰:꽃말:가녀린 미소)

산자고는 금등룡(金燈龍)이라고 부르는 백합과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양지바른 풀밭에서 자란다.

비늘줄기 난상 원형이고 길이 3~4 센티미터이며, 비늘 조각 한쪽 갈색 털이 빽빽이 난다.

선형이, 4~5월에 30센티미터 정도 꽃줄기 달리며, 열매 세모지고 둥글다.

비늘줄기 소종이나 종양 치료제 사용한다. 우리나라 제주, 전남, 전북 일본, 중국 등지 분포한다

급경사로 올라서는데...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힘들게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봉수대지(121m:15:48)

예전에 봉수대가 있었던 터에 봉수대는 없어지고 쥐똥나무를 심어놨다

등로에서 바라본 변산면 도청리 두포마을의 모습

두포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조선조 중엽 인조 때 소금장수가 이곳을 지나다가

소금 굽는 가마터가 있어 그곳에서 일하며 살게 되었다는데 해수가 하루에 두 번씩 왕래하는

목에다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으며 이곳에 처음 정착하게 되었다.

그 후 안(安)씨, 박(朴)씨, 김(金)씨, 전(田)씨들이 정착하면서 마을을 이루니 바닷물이 오간다 하여

통할 통(通) 자 개 포(浦) 자를 써서 통포(通浦)라 부르게 되었으며 통포(通浦) 높은 곳에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루니 윗머리골 일며 상두동(上頭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통포(通浦)는 언포에 속하고 상두동은 도청에 속하였으나 1972년에 행정구역(行政區域) 조정으로

통포(通浦)와 상두동(上頭洞)을 합하여 행정리로 분리하면서 마을 책임자와 마을 어른들이 의논하여

상두동(上頭洞)의 두(頭) 자와 통포(通浦)의 포(浦) 자를 따서 두포(頭浦)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쉼터도 보인다

잠시후에 가야할 월고리 봉수대가 보인다

등로 좌측 아래에는 전라좌수영 세트장과 소리섬이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전라좌수영 세트장

궁항마을 전라좌수영 세트장은 2005년 방영된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에 힘입어 궁항마을엔 

약 70만 명의 관광객들이 다녀갔고 지금도 사극촬영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아름다운 풍광을 

보려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부안은 영상의 메카로 불려도 좋을 만큼 곳곳에 

촬영지가 널려 있다.

봉수대 가는 길

격포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봉수대로 가는 길인데 소화제의 효과가 있었는지 컨디션은 좀 좋아진 느낌이다

십자임도(15:53)

십자임도를 가로질러 숲속으로 들어선다

반가워요

능선으로 올라간다

암릉구간을 치고 올라서니...

격포항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나 월고리 봉수대로 향한다

월고리 봉수대(175.2m:16:08)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에 있는 봉수대로 정상에는 봉수대와 2등 삼각점이 있다

변산면 격포리와 격상 마을[웃컽] 서남쪽에 있는 산으로 조선 시대 봉화를 올렸던 곳이어서

유래한 지명으로, 산 정상에 봉대가 있어 봉대산()이라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부안)에 "월고리산 봉수는 현의 서쪽 75리에 있는데, 남쪽으로

무장 소응포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점방산에 응한다."라고 하고, 『동국여지지』(부안)에는

"격포 봉수는 격포 뒷산에 있는데 예전에 월고리라 불렀던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부안)에 "봉화가 3곳이니, 현의 서쪽 월고이()는 남쪽으로 무장

소응포에 응하고, 북쪽으로 점방산에 응한다."라고 하여 월고리산이 '월고이'로 불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광여도』(부안)에 '월고리봉'이, 『해동지도』(부안)에 격포진 위에 '월고리봉대'가 표시되어 있다

월고리 봉수대지 안내판

월고리(月古里) 봉수대는 격포의 닭이봉 건너편의 봉화산을 말하는데 이곳 정상에 오르면

섬과 좌우의 해안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한간에서 부르고 있는 격포리

봉수대를 호리산 봉수대와 월고리 봉수대 두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월고리 봉수대는

문헌상의 이름이고, 호리산 봉수대는 민가들에 구전으로 전해오는 명칭이다.

 

월고리 봉수대 기록은「동국여지승람」34권에 있고, 「조선보물 고적조사 자료집」에 담겨져 있다.

격포는 일찍이 수군의 요새지로 수군의 별장이나 첨사(僉使:이조 때 각 진영에 속했던 무관직)가

주둔했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전라우수영 관할의 격포진이 있었던 곳으로 봉수대 역할이 컸다.

봉수대에 있는 2등 삼각점(위도 23 / 1997재설)

내가 오늘 걸었던 갑남산 구간을 뒤돌아 본다

변산지맥의 끝지점인 격포항이 보이고 그 너머에 있는 위도는 미세먼지로 보이지 않는다

월고리 봉수대지를 지나 봉화봉으로 향한다

봉화봉(烽火峯:171.9m:16:15)

월고리 봉수대에서 조금을 더 내려오니 예전에 모형 봉수대가 있었 곳에

지금은 철거되고 공터만 남아 있는데 지도에는 이곳을 봉화봉이라 해놨다

봉화봉을 예전에는 봉두산이라 했다 (봉두산(峯頭山:격포의 머리산이란 뜻)

다시 월고리 봉수대 쪽으로 되돌아 간다

 아쉬워서 베낭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봉수대 좌측으로 간 다음에... 

우측 능선 아래로 내려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

산꾼들이 지나간 흔적은 보이질 않는다

 한참을 내려가니...

우측에 월고리 봉수대에서 내려오는 임도를 만난다

동백나무가 있는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격포항 0.7km, →궁항(이순신 세트장) 2.7km, 라고 써있는 변산 마실길 이정표가 있다

변산마실길(16:27)

변산마실길 3코스 (적벽강 ▷ 격포해수욕장) II [부안 1209]변산마실길 안내도

부안군 변산반도국립공원은 우리나라 유일의 반도형 국립공원이다. 반도이기 때문에 바다와 육지가

어우러져 산, 들, 바다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명승지, 관광지가 많다. 변산은 오래전부터 한국의 8경으로 꼽혔다.

마실은 '마을'의 사투리로, 마실길은 옆집 놀러 가듯 걷는 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변산반도 서북쪽인
새만금 방조제 남쪽 끝 지점에서 시작해 변산반도 남동쪽인 줄포만갯벌생태공원까지 해안을 따라 나 있는
마실길은 1코스에서 8코스까지 8개 코스로 나눠지며,총 길이는 66㎞ 정도다.
변산 해안의 길이는 약 99㎞이며, 새만금 방조제 길이가 약 33㎞이고, 변산 해안의 약 3분의 2, 새만금 방조제
길이의 약 2배가 마실길로 조성된 셈이다

변산마실길 사거리에서 직진으로 향한다

동백나무 숲 가운데로 맥길은 이어진다

운동기구들이 보이고...

조금을 더 가니...

또 다른 운동시설물이 보인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쉼터(16:31)

격포항 너머 닭이봉을 바라보면서 해넘이공원으로 내려간다

해넘이 공원(16:35)

격포항에 꾸면진 해넘이 공원에는 예전에 비행기와 미사일이 전시된 안보전시관은

철거되어 버렸고 변산 마실길을 비롯한 이정표들만 즐비하다 

해넘이 공원에 있는 채석강 절경 노래비

변산마실길이란 걸 만들어 놨는데 바닷가 데크목으로 만든 다리가 펼쳐지고 있다.

이곳은 예전에 라이온스 클럽에서 수련회 왔던 기억으로 20년이 더 된 탓인지 지금은 기억도 없다

오늘은 여행이 아닌 맥산행을 왔기에 本分에 충실하고자 한다...격포항으로 향한다

고기를 말리고 있는데 바닷가 출신이 아니라 고기에 대한 상식은 제로에 가깝다

참으로 큰일이다

한참 바빠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바빠야 할 횟집에는 손님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횟집 쥔장들만 멍하니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코로난가 지랄인가 하는 역병이 빨리 지나가 민초들의 웃음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격포항(16:40)

드디어 격포항에 도착한 변산지맥의 맥은 서해바다로 입수하면서 범여도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호남정맥 순창새재에 갈라진 영산기맥을 타고 오다가 장성갈재 윗쪽 쓰리봉에서 분기한 변산지맥 56.5km를

이곳에서 마무리 짓는 범여...쥔장 잘못만나 고생하는 두 다리(足)에게 늘 고맙고 미안하다

변산지맥 종주를 자축하는 인증샷

격포항 여객터미널에서는 위도로 가는 여객선이 출발하려는지 뱃고동을 울리고 있다.

중국과 가까워서 그런지 격포항 앞 바다에서 자세히 보여야 할 위도는 미세먼지에

갇혀버려 흔적조차 보이지 않으니 아쉽기만 하다

격포항 여객터미널 너머로 보이는 닭이봉(鷄峰:85.7m)과 그 아래 채석강의 모습

격포항 맞은편에 있는 닭이봉(鷄峰)은 채석강을 우산처럼 받치고 있으며 산 아래에

있는 격포마을의 지세가 지네형국으로 되어 있어, 마을의 재앙을 끊이지 않자, 지네와

닭이 상극이라는 것을 어느 지사에게 알아낸 다음, 마을 사람들은 이를 제압할 수 있는

족제비상을 만들어 사투봉에 세워 닭이 봉을 마주 보도록 하였더니 재앙이 물러 갔다고

하는데 이러한 전설에 의해 산 이름을 닭이 봉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닭이 봉 아래에 격포해변이 끝나는 곳에 해식애(海蝕崖)에 이루어진 채석강(採石江)이 있다.

채석강은 변산팔경중의 제6경인 채석범주(彩石帆舟)로 기이한 바위와 함께 빼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는데, 중국의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배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졌다는 채석강과 흡사하다고 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격포 버스 정류장(16:50)

격포항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부안가는 버스는 직행과 좌석버스, 완행버스가 있는데 직행버스는 버스 요금이 4,100원이고

좌석버스와 완행 버스는 부안까지 무조건 1,000원이다.

시외버스 터미널은 격포항에서 한참을 가야 하지만 좌석과 완행 버스는 격포항 바로 옆에 있다

이곳에서 17시에 출발하는 좌석버스를 타고, 고사포와, 변산해수욕장, 새만금 방조재, 비득치를 거쳐

부안 읍내에 도착하는데 40분이 채 안걸렸다

부안읍내(17:39)   

부안(扶安)은 김제평야와 인접한 곡창지대로 또한 바다가 가깝고 변산(邊山)이라는

좋은 산이 이웃에 있어서 예로부터 ‘생거부안(生居扶安)’ 이라 하였다.

충청도의 진천이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는 말을 진천군의 브랜드로 사용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진천군은 효자 아들이 재가한 어머니를 살아 계실동안 모시라는 말에서 유래됐지만

실제로 생거의 땅은 부안의 전매 특허였다.  

부안군은 지금의 부안읍인 부령현(扶寧縣)과 보안현(保安縣)을 조선조 들어 합하면서

이 두 현(縣)의 지명 한 글짜씩을 따서 붙인 지명으로, 부령은 백제시대에 개화현(皆火懸)에

속했다가 신라 경덕왕때 부령(扶寧)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별호는 부풍(扶風)이다.

보안(保安)은 백제시대 흔량매현(欣良買縣:지금의 부안군 보안면·줄포면·주산면 일대)이었던

것을 희안(喜安)으로 개명했고, 이어 고려시대에 들어 보안(保安)으로 부르던 것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는데 다른 지명으로 낭주(浪州)라고 부르고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터미널에 들어서니 매표소는 문을 닫아 버렸고, 버스표 판매는 무인판매기가 대신한다

서울가는 버스표를 알아보니 17시 50분에 출발하는 28인승 우등 버스는 표가 4장밖에 없다.

다닥다닥 붙어가는 건 나로서는 조금 불안하여 50분 늦은 18시 40분에 출발하는 일반 버스를

예매하고는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부안터미널 버스 시간표

부안이라는 곳은 혼자서는 밥을 먹기 힘든 곳이다.

터미널 근처의 식당으로 가니 일요일이라 문을 닫은 곳이 많다

체기가 있었던 속도 풀 겸 뜨끈한 국물이 먹고싶어 국밥집을 찾았는데

한 곳을 갔더니만 1인분은 안 판다고 한다...내가 돼지냐?...2인분 시키게...

하는 수 없어 터미널에서 좀 먼곳으로 가니 국밥집이 있는데 들어가서

혼자인데 식사가 가능하냐고 하니까...몰골을 보더니만 들어 오라고 한다.

일단 들어가서 뜨끈한 내장탕 한 그릇을 주문하고 화장실에 가니 따뜻한 물이 나온다

문을 잠근 다음에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니 살 것만 같다 

 10,000원짜리 국밥 한 그릇으로 변산지맥 졸업을 축하하는데 술이 빠졌다

예전같으면 소주 2~3병은 간단하게 해치웠는데 아~ 무심한 세월이여!

식사를 끝내고 터미널로 되돌아 오니 버스 출발 5분전이다

부안발 → 서울행 버스표

 50분전에 출발한 우등고속버스는 거의 만차 수준이었는데 일반고속버스는 손님이라곤

달랑 5명뿐이다... 이 버스를 탄 건 정말 탁월한 신의 한 수였다

어차피 늦게 집에가서 밥을 달라면 눈치가 보여 저녁도 해결했고, 사람이 적어 다행이다

부안을 출발한 버스는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차가 없는 탓인지 엄청나게 빨리왔고

정안휴게소에서 15분 휴식을 취하는데도 밖에도 안 나갔다.

2시간 25분만에 서울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