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20년 12월 20일
☞ 산행날씨: 맑은날씨에 간간히 부는 차가운 바람
☞ 산행거리: 도상거리 13.5km(만인산 왕복 0.8km포함) / 6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소라니재-301.5m봉-안부-대정재-무명봉-328.7m봉-만악골재-380.6m봉
임도삼거리-큰고개-무명봉-안부-326.1m봉-안부-서화(장령)지맥 분기점
안부-원형참호-김해김씨 묘-당고개-묘지-305m봉-326.1m봉-묘지-무명봉
무명봉-336.6m봉-갈림길-임도 안부-무명봉-임도 삼거리-갈림길-무명봉
수리넘어 고개-해주오공 묘-288m봉-안부-달기봉-민족자주 통일비
안부-만인산 갈림길-돌탑-만인산-다시 만인산 갈림길-쉼터
만인산휴게소 갈림길-쉼터-안부-무명봉-무명봉-무명봉-추부터널 위
태조대왕 태실
☞ 소 재 지: 충남 금산군 진산면, 금성면, 복수면, 추부면 / 대전직할시 동구
지난 한 주는 내 영혼을 잃어 버린듯한 삶을 살면서 정신없이 멍하게 지내야만 했다.
사연인즉, 시골에서 아홉살에 서울로 데리고와서 대학까지 보낸 막내 처남이
건설회사 중장비 기사로 근무하였는데 지난 10월에 현장에서 사고가 나서 2개월동안
연명 치료를 하다가 지난 월요일 세상을 하직했다.
사실상 나와 나이차가 많아 처남이라기보다는 아들처럼 생각했던 넘이었기에 너무
아쉽다...사람이란 누구나 이 세상에 오면 다시 가기 마련인데, 이제 나이 마흔 여섯이고
늦게 결혼을 해서, 지난 봄에 아파트도 하나 분양을 받아 알콩달콩 사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는데 非命橫死를 하니 너무나 가슴이 아팠고, 내 새끼를 잃은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그래 저 세상에 가서는 사고없는 좋은곳에서 편안하게 잘 살거라...
장례를 치르고 목요일날 사무실에 출근은 했지만 그 넘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영부영하다가 토요일을 맞았고, 날씨도 춥다고하고, 맘이 편치 않았지만 지난주에
추위로 개고생을 하면서 산행을 하여 이번주에는 산행을 쉴까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어나니 새벽 3시경...집에는 아무도 없고 나혼자만이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간단하게 베낭을 꾸려서 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금산행 버스표
버스를 타고 경부고속터미널에 도착하니 06시 10분...표를 예매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코로나의
영향인지 아니면 추위탓인지 터미널은 한산하기만 하다...금산가는 버스에는 40인승 버스에 6명이
타고 금산으로 향한다
금산시외버스 터미널(08:35)
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니 날씨가 상당히 춥다.
터미널 건너편 분식집에서 라면과 김밥 한줄로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옆에있는 떡집에서
점심때 먹을 떡 한팩을 산 다음에 택시로 들머리인 소라니재로 향한다(택시 10,000원)
소라니재(09:18)
금산군 금성면 상가리에서 진산면 만악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68번 도로가 지나가고
교통량이 많으며 고개 정상에는 버스 정류장과 이동통신탑과 민가가 있고, 대화약품 공장이 있다
상가리 원터 서북쪽으로 소라니재라고 부르는 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을 소라니재 또는 송현(松峴)
이라고 부르는데 1894년(고종 31년) 갑오년 3월 8일에 금산군에 거주하는 동학교도 등 5,000여명의
인원이 금산을 습격하여 백성들을 死地로 몰아 넣었을 때, 정숙조 등 유림들이 주동이 되어 창의군(昌義軍)을
조직하여 금산에서 동학을 몰아 내는 등 큰 공을 세웠으나 전국적으로 봉기한 동학을 무찌르기 위해
창의군이 금산을 출발하여 공주쪽으로 향하던 중 이곳에 매복해 있던 동학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창의군이 참패를 당한 悲運의 고개이다
산행을 시작하다(09:20)
2019년 8월 24일 첫구간을 끝내고 2구간을 시작하니 1년 4개월만에 다시 온 셈이다
소라니재에 도착하여 단단하게 중무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추운지 손가락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도로에서 우측으로 올라서니 수확이 끝난 인삼밭 차양막이 맥길을 막아선다
죄측으로 우회하며 맥길을 이어간다
인삼밭을 지나 묵밭으로 올라간다
급경사의 오르막길...초반이라 그런지 숨이 멎을듯한 통증이 밀려온다
수북히 쌓여있는 낙엽에다가 땅밑이 얼었는지 상당히 미끄럽다.
힘들게 능선에 올라서니 넓은 공터가 나온다
310.5m봉(09:30)
넓은 공터에 ㅜ 삼거리이다...맥길은 우측 아래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30~40m지점에 삼각점(△금산432/1980재설)이 있는데 공부를
하지않고 왔기도 했지만 날씨가 너무 춥고 정신이 없어 삼각점을 놓치는 憂를 범한다
우측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초반의 내리막 등로는 좋다
안부(09:37)
능선에 올라 봉우리를 지난 다음에...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대정재(09:40)
금산군 금성면 상가리 점촌마을에서 진산면 만악리 만악골로 이어지는
고개로 좌.우로 등로는 뚜렸하나 사람들이 다닌 흔적은 별로 보이질 않는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무명봉(09:45)
내리막길을 따라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서...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328.7m봉(09:50)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좌.우측으로도 등로가 보이나 맥길은 가운데로 이어진다
독도에 조금은 신경쓰야 할 곳이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관리가 되지않은 묘지가 보이고...
등로 좌측 아랫쪽에는 축사가 보인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안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 우측에는 이장한 듯한 묘터의 흔적이 보인다
넓은 임도가 나오고 우측으로 내려가는 뚜렸한 임도가 보이는데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등로가 거친 급경사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만악골재(10:02)
금산군 금성면 두곡리에서 진산면 만악리 만악골의 채석장으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고개에서 빡센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선다
철조망이 맥길을 가로 막는다...좌측으로 우회를 한다
채석장 절개지가 나온다
미끄러운 절개지를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개고생하면서 지나간 선답자들의 흔적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서북쪽을 바라보니 충남의 진산이라는 대둔산을 시원스레 보인다.
절개지 윗쪽을 걸어가다가...
우측 아래로 내려간다
채석장 너머로는 대전방송 중계탑이 있는 380.6m봉을 바라보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내리막길은 음지에 등로가 얼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내리막길로 가다가 녹색 철망을 넘어 좌측으로 올라간다
너무 사랑한 사이인가?
지금은 채굴을 하지 않는 채석장을 좌측에 두고 오르막으로 오른다
우측으로 가니 철조망이 길을 막아서는 바람에 좌측 암릉으로 올라간다
잠자는 고래 바위(?)
절개지 끄트머리에 철망이 뚫려있어 조심스럽게 통과한다
계속되는 오르막길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대전방송국 중계기지탑이 보인다
380.6m봉(10:30)
인삼대장님의 산패도 만나고...
380.6m봉 정상에 있는 대전방송국(TJB) 중계기지
넓은 임도를 버리고 숲길로 내려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상당히 미끄럽다
380.6m봉 정상에서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난다
묘지 좌측의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간다
임도 좌측 아랫쪽으로는 자작나무 조림지가 보인다
임도삼거리(10:38)
잠시후에 가야할 서화(장령)지맥 분기점이 보인다
겨울 산
가슴으로 입는 겨울
눈물 묻어날 듯한
애잔스럼과 슬픔 사이로
보고픔의 강 흐르고
멀리서 들리어나는
두견새 소리에
떠남의 여울
파도되어져 실려들면
시작되는 밤을 위하여
달은 또 다시 떠오르며
깊어진 시름마냥 등잔불
속절 몰라 깜빡이면
추워서
추워서
성큼 다가온 겨울
산 턱만 저리 키우나
등로 좌측에는 SK이동통신탑이 보인다
편안한 도로를 따라서 간다
등로 우측 나무가지 사이로 (주)미라이후손관거라는 공장이 보인다
등로 좌측 아래로 맥길이나 절개지라서 내려갈 수가 없다
임도에서 좌측 아래로 내려간다
묘지쪽으로 내려가니 (주)미라이후손관거 정문이 나오고 좌측 아래로 내려간다
(주)미라이후손관거 회사는 P.V.C 선.봉.관 및 호스 제조업체로 P.VC 상하수도관및
전선 CD관을 제조하는 중소기업체이다
큰고개(10:47)
금산군 금성면 두곡리에서 진산면 만악리로 넘어가는 3번 군도가 지나는 고개이다
주변의 주소는 금산군 금성면 두곡리 산 36-18번지이다
도로 우측의 콘크리트 옹벽위로 올라간다
묵밭이 나오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0:57)
잡목이 너무 무성하여 여름철 산행을 하면 엄청 힘들겠다
등로 우측 아래에는 묘지를 이장한 흔적이 보인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아카시아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안부에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안부(11:00)
잡목의 저항이 상당히 심하다
326.1m봉(11:04)
이경일님께서 이곳이 326.1m봉이라 표기해놨다
좌측으로 내려선다...등로 좌측으로는 채석장이 보인다
안부(11:06)
여기도 묘지를 이장했나보다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채석장을 바라보면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잠시후 가야할 등로의 궤적
채석장 너머로 바라본 금산군 복수면 용진리(龍進里)의 모습
완만한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마을 동쪽에 못골 저수지가
있으며, 남동쪽에 갱이밭골이 있는데 자연마을로는 용나루, 자라밭 마을 등이 있다.
용나루 마을은 용이 나온 자리가 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자라밭 마을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전씨(全氏)들이 피난을 와서 차츰 이룩한 마을이라 처음에는 자래전(自來全)이라고
부르다가 변하여 자라전(自羅全), 그리고 자라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절개지를 따라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녹색 그물망 옆으로 올라간다
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
다시 뚜렸한 등로를 만나고...
능선에 올라서 조금을 더 진행하니 묘지가 나온다
묘지 우측 아래로는 금성면 마수리에서 올라오는 뚜렸한 임도가 나오는데 금성산 등로인 듯 하다
우측으로 조금만 가면 금성산이 있지만 이번 겨울 지나기 전에 걸어야 할 서화(장령)지맥길에
통과할 산이기에 선답자들처럼 금성산에 안 들리고 본업(?:갑천(식장)지맥)에만 충실하고자
좌측의 묘지쪽으로 올라간다
묘지 뒷쪽으로 올라간다
서화(장령)지맥 분기점(405m:11:25)
서화(장령)지맥 개념도
서화(장령)지맥은 식장지맥 금성산(438.6m) 에서 시작하여 미륵재, 삽재, 닭이봉분기봉(460m), 민재,
서대산분기봉(560m), 방화봉(放火峰 585m), 국사봉(國師峰 667.5m), 대성산(大聖山 704.8m),
매봉(600m), 장령산(長靈山 장룡산 655m), 도덕봉(407.3m), 함박산(250m), 퇴미산(249m),
돌남산(258.6m), 마성산(馬城山 409.3m), 이슬봉(454.9m), 참나무골산(422m)을 지나
장계관광지 앞의 금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52.2km인 산줄기로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서화천의 좌측 산줄기라하여 서화지맥이라고 부른다
분기점에서 급하게 내려서는데 음지라 상당히 미끄럽다
땅이 얼어서 조심스럽게 내려서다 짧게 한번 미끄러진다
안부(11:26)
다시 능선으로 올라선다
등로 동쪽으로는 충남에서 가장 높다는 서대산(904m)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원형 참호(401m:11:30)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등로가 거칠다가 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
가야할 만인산이 멀게만 보인다
힘들게 내려오니 좌측에는 채석장이 나온다
채석장 윗쪽의 절개지로 걷는다
지나온 380.6m봉 너머로 갑천(식장)지맥 분기점과 인대산 능선이 보인다
어디로 가라는건지?
조금전에 지나온 원형참호봉을 뒤돌아 본다
아! 힘들다
천신만고끝에 뚜렸한 등로로 내려선 다음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는데
짐승들의 피해를 막기위해 묘지를 철조망으로 막아놓아 갈 수가 없다.
묘지를 우회하면서 내려선다
산수유 조림지를 지난다
다시 잡목과의 전쟁(?)
다들 대단하십니다
다시 잡목과의 전쟁은 시작되고...
후답자님들! 여름철에는 절대 하지 마셔요
묘지를 지나고...
두릅밭을 통과한다
김해김씨참판공파 가족묘(11:55)
앞의 능선을 바라보면서 걸어간다
우측의 금성면 용지리쪽에는 공장들이 많이 보인다
밭의 철대문을 힘들게 넘어간다
성황당고개(11:57)
금산군 금성면 용지리 아랫골에서 복수면 다복리 용골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성황당이 있었던 고개인 모양인데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는 않는다
다복리쪽으로 내려가다가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이곳 역시 잡목과의 전쟁으로 통과하기가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다
칡넝쿨을 헤치면서 밭으로 향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추부면 용지리(龍池里)의 모습
용지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동쪽에 추정 저수지가 있으며, 북쪽에 못골 저수지가 위치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못골, 용골, 장바위 마을 등이 있으며 못골 마을은 용지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큰 못이 있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용골 마을은 웃못골 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용이 난 굴이
있다 해서 용골 마을이라 불린다. 장바위 마을은 용골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장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다시 잡목과의 전쟁은 시작되고...
빛바른 선답자의 흔적
아랫골 마을 너머로 서대산이 시원스레 보인다
인삼을 수확하고 난 밭을 지나간다
인삼밭에서 묘지로 올라간다
묘지(12:07)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305m봉(12:10)
305m봉에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맥길을 이어가는데 이곳 역시 잡목의 저항이 상당히 심하다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조그만 무명봉을 지나 내리막길
안부를 지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326.1m봉(12:20)
326.1m봉 정상에는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좌측 사면으로 살짝 우회한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안부를 지나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묘지가 나온다
묘지(12:22)
무명봉(12:24)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무명봉(12:26)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걸어가니...
벌목지대가 나오면서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갑자기 등로가 거칠어지면서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예전에 산불이 났던 곳인 모양이다
끄트머리에 보이는 봉우리가 잠시후에 가야 할 336.6m봉이다
망개나무와 노간주나무 갈참나무들이 외로운 산꾼을 엄청 괴롭힌다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서 본다
아! 테스형 충청도 산길이 왜 이래...
죽을 맛이다
336.6m(12:40)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갈림길(12:43)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좌측의 사면길로 내려간다
사면길로는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많이 보이고...
가야할 만인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임도 안부(12:44)
임도에서 바라본 서대산의 모습
다시 잡목의 저항이 시작된다
무명봉(12:46)
저 앞에 보이는 길에서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져야 한다
잡목의 거친 저항을 받으면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임도 삼거리(12:48~13:05)
추부면 추정리 가래울마을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올라가다가
바람이 없고 양지바른 곳 임도에서 조금 늦은 점심을 먹는다.
점심이래야 금산터미널 앞 떡집에서 산 인절미 한 팩에다가 보온병의 따뜻한 물이다.
지난 한 주동안 멍하니 보내다가 혼자이지만 이렇게 산길을 걸을 수 있다는 자체가
축복받은 인생이 아닐까....
갈림길(13:08)
직진의 뚜렸한 능선을 버리고 좌측의 90도 아래로 꺽어져 내려간다
수리넘어 고개에 있는 공장을 바라보며 내려가는데 아예 등로가 없다
선답자들의 흔적...다들 제 정신이 아니구먼
잡목의 강력한 저항을 받으면서 내려가다가 잠시후에 가야할 만인산을 바라본다
미치겠다....
힘들게 내려서니 희미한 임도가 보이고...
우측으로 조금 가다가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공장 가운데가 맥길인데 갈수가 없어 정림이피 공장을 바라보면서 절개지로 내려간다
쇠사슬을 넘어서 공장을 지나간다
성신금속공업(주)를 지나 우용산업 간판을 끼고 좌회전을 한다
골목안으로 들어간 다음에 대륙체육산업 공장 마당으로 들어간다
대륙체육산업 공장 뒷쪽으로 간다
공장을 빠져나와 좌측 능선으로 간다
좌측으로 내려서니 지저분한 안부가 나온다
마루금 가운데를 점령하고 있는 공장들...
칡넝쿨을 헤치고 내려간 다음에...
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3:25)
공장 가운데가 지맥길인데 두리화장품 공장이 길을 막는다
공장 휀스 아래로 내려가니 빠져나갈 틈이 안보인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와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두리화장품 공장 담벼락을 끼고 간다.
다시 밭으로 내려가니...
두리화장품 간판이 있는 수리넘어 고개가 나온다
수리넘어 고개(240m:13:35)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와 복수면 용진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진안에서 대전,
으로 이어지는 17번도로가 지나가는데 대전의 인근이라서 그런지 공장들이 많이 보인다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복수면쪽으로 넘어가다가 협신기업(주) 간판을 바라보면서 올라간다
협신기업 공장안으로 들어가는데 관리인인지 직원인지는 몰라도 산꾼의 길을 막는다
강압적이지 않고 코로나로 인해 출입을 금지한다고 하니 막무가내로 갈 수가 없어서
우측의 묘지 윗쪽으로 올라간다
묘지로 가는 길인지 희미한 길이 보인다
해주오공 묘(13:45)
묘지에서 능선 좌측으로 내려가니 등로는 보이지 않고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마루금에 복귀한다
천신만고 끝에 넓은 공터에 내려서 뒤돌아보니 협신기업이 보인다
2~3분이면 지나올 거리를 20분정도가 더 걸렸다
능선으로 올라간다
정겹기만한 폐TV 안테나...나도 예전에 저걸 달고 살아봤제
능선으로 올라간다
288m봉(14:00)
찢어진 차양막이 보이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는데 집에와서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니
모든 선답자들이 내가온 코스가 아닌 수리넘어재에서 우측의 편안한 능선으로 왔구나.
공부를 안하고 트랙만 보고 가다가 개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원칙대로 걸었으니 위안을 삼아야제
좌측으로 내려가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부(14:05)
또 다시 고역이다.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급경사의 오르막길...등로는 낙엽을 인해 상당히 미끄럽다
오르막길 우측으로는 중부대학교 건물이 보이고 그 너머로 정기봉이 보인다
힘들게 급경사를 올라가는데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능선에 올라서서 완만하게 걸어가니 달기봉이 나온다
달기봉(386.1m:14:25)
금산군 추부면과 복수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봉우리 우측 아래에는 중부대학교가 있다.
금산군의 어느 문헌에도 달기봉의 자료는 찾을수가 없어서 아쉽기만 하다
다른 지역에 있는 달기봉은 ‘산의 모양이 닭 또는 닭의 벼슬처럼 생겼다’ 해서 붙혀진 지명인데
아마도 그것과 같은 것은 아닌지?...(범여의 생각中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니 중부대학교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보인다
민족자주통일비(14:28)
2003넌 5월 8일에 제막된 이 통일비는 높이 220㎝, 너비 80㎝ 크기로 90㎝의 기단 위에 검은 돌로
세워지며 앞에는 `민족자주통일비"를 음각하고, 뒤에는 `7.4남북공동성명 중 조국통일 3대원칙"과
`6.15남북공동선언문 중 5개항"을 담고 있다.
총 2300만원의 제작비가 소요된 이 통일비 건립에는 정효순 범민련 고문 외 나창순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도경호 민자통 의장, 한상열 통일연대 대표, 김원웅 국회의원, 신용관 범민련 대전.충남연합 위원 등이
추진위원으로 참여했다.
정효순 건립위원장은 "외세에 의해 분단된 지 58년이 흐르는 동안 7.4 남북공동성명과 6.15남북공동
선언이야말로 7천만 겨레의 통일의지의 표현이며 통일의 엄중한 지정표임이 확인되고 있다"며
"민족의 의지를 모아 화해하고 단일 민족국가를 세우려는 뜻을 젊은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고려 태조의
태가 봉안됐던 태봉자락에 통일비를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오마이 뉴스 인용)
조국은 하나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북한의 지도층은 남쪽을 발바닥의 때만큼도 안 여기는데 남쪽의 지도자들은
북쪽의 젊은넘에게 짝사랑만 하는게 아닌지?
임도에서 급경사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안부(14:32)
안부를 지나 급경사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코가 땅에 박힐만큼 급경사의 오르막에다 등로에 쌓인 낙엽이 엄청 미끄럽다.
숨이 멈춰버릴것 같은 통증 때문에 미쳐버릴 것만 같다...천신만고끝에 능선에 올라서니...
만인산 5호라는 긴급구조 표지판이 보인다
만인산 갈림길(14:46)
지맥길에서 좌측으로 0.4km 정도 떨어져 있는 만인산으로 향한다
만인산가는 길
돌탑(14:52)
대전의 산꾼들이 즐겨걷는 보만식계(보문산, 만인산, 식장산, 계족산)의 제도권 등로라
그런지 꽃길(?)이다...오늘은 산행 시작부터 달기봉 아래까지 개고생을 했는데 보상받는 느낌이다
구조표지판도 자주 보인다...등산객이 많은 모양인데 오늘은 개미새끼 한마리 안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정기봉
저 봉우리를 지나야 하는데 아무래도 서울가는 차편 때문에 저기까지 가기는 힘들겠다
만인산(萬仞山:537.8m:14:57~15:00)
충청남도금산군 추부면과 복수면 대전광역시 동구 일대에 걸쳐있는 산으로 고조선 때부터 정상에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태실(胎室)이 있는 산이라고 해서
태실산(胎室山), 또는 태봉산으로도 부른다. 원래 태조의 태실은 함경도에 있었으나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만인산의 터가 명당이라 이곳으로 옮겨왔는데, 태조 이성계의 태실은 일제강점기 때 파괴되었다가
복원되어 만인산 동남쪽 자락에 위치 지명의 유래는 산봉우리의 모양이 만발한 연꽃 모양을 닮았다고
유래된 지명이다.
숲과 계곡이 아름다운 곳으로 등산로와 숲속 자연탐방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만인산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고 동쪽 능선에 만인루(萬仞樓)가 있으며 주변 일대가 조망되며 남쪽 기슭에는
중부대학교가 자리하고, 동쪽에는 금산군 추부면이 위치한다. 대전천이 만인산 계곡에서 발원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진산)에 "군의 동쪽 20리에 있다. 성봉(星峯)이 있는데 땅이 두텁고 물이 깊으며
봉우리가 기이하고 빼어나게 우뚝 솟아 모양이 마치 연꽃같이 생겼다. 우리 태조의 태를 묻었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그만큼 산이 깊고 높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산으로, 일설에는
수많은 골짜기가 모여 산을 이루어서 그렇게 불렸다고도 전해진다.
『여지도서』(진산)에는 "태실산(胎室山)은 군 동쪽 30리에 있다."고 하여 태조 이성계의 태실이 안치되어
있던 만인산을 '태실산'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1872년지방지도』(진산)에는 만인산 아래 태조대왕태실로
표기된 석실이 그려져 있으며 하소동에서 금산군 추부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태봉재라 한 것도
이에 연유한 것이다
만인산 정상 2등 삼각점(△금산22/2003재설)
인증샷
오늘 산행을 하면서 만인산 정상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나 인증샷을 남긴다
만인산 정상에서 바라본 금산군 추부면소재지
추부면은 충청남도 금산군의 북쪽에 위치한 면으로 충청남도의 최고봉인 서대산과 태조 이성계의
태실이 있으며 현재 용지리 · 마전리 · 장대리 · 요광리 등 10개 동리를 관할하고 있다.
추부라는 지명은 동일면의 소재지인 추동과 동이면의 소재지인 자부리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합친 것이라고 하며 본래 조선 시대 진산군 동일면(東一面)과 동이면(東二面) 지역이었다.
『호구총수』에서 장대(場垈) · 마전(馬田) · 며삭(旀朔) · 요광원(要光院) · 서대리 · 자부리 등 다수의
동리 명칭이 확인되며 1895년 지방관제 개편 때 공주부 진산군에 그리고 1896년 전라북도 진산군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동일면의 추동(秋洞) · 상마전리(上馬田里) · 미삭리(彌朔里) 등 9개 동리와 동이면의 비례리(備禮里) ·
자부리(自富里) · 서대리(西臺里) 등 14개 동리를 합하여 추부면으로 하여 금산군에 편입되어 9개 동리를
관할하게 하였으며 1963년 군이 전라북도에서 충청남도로 이관됨에 따라 도의 금산군 추부면으로 되었고,
1973년 용지리를 복수면으로부터 편입하여 10개 동리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만인산 정상에 있는 안내판
예전에 봉화터가 있었던 모양이나 지금은 어디있는지 모르겠다
만인산에서 바라본 중부대학교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 및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으로
1984년 2월 중부신학교(中部神學校) 설립인가를 받아 신학과 40명을 선발·개교하였다.
같은 해 12월 중부사회산업학교(中部社會産業學校)로 교명을 변경하면서 원예학과와 낙농학과를
증설하였으며, 1985년 1월 4년제대학 학력인정학교로 지정되었으며, 1986년 12월 학과의 증설을
승인받아 인삼재배학과·임산학과·지역개발학과가 증설되었다.
1992년 11월 4년제 정규대학으로 개편되었고, 1993년 3월중부대학(中部大學), 1994년 9월 중부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고 한다
다시 되돌아온 만인산 갈림길(15:10)
쉼터(15:11)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데크목 계단으로 내려간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가는데 이곳은 만인산 휴양림이 있는 모양이다
만인산 휴계소 갈림길(15:16)
지맥길은 학습원, 태실쪽으로 이어진다
휴게소로 내려가는 샛길도 보인다
쉼터(15:19)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나무계단으로 내려간다
안부(15:21)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5:23)
다시 등로로 복귀한다
무명봉(15:25)
이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내려가면 한일레미콘 공장으로 가는 길이다
맥길은 정상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완만한 내리막길
119 산악구급함도 보인다
갈림길이 나오고 사면길을 버리고 직진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5:30)
추부터널 위(15:38)
이 능선 아래로 대전시 동구 하소동에서 금산군 추부로 이어지는 17번 국도가 지나는 추부터널 위이다
만인산 학습원에 있는 출렁다리를 만난다
맥산행을 하면서 이런 출렁다리를 지나는 행운을 누린다
산행을 종료하다(15:40)
산행을 종료하고 우측으로 내려가니...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태실이 있는 곳이 나온다
태조대왕 태실(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31호:15:41)
태조대왕 태실은 조선조 제 1대 왕인 태조 이성계의 태(胎)를 봉안한 석실이다.
조선 태조 5년에 건축 되었으며 태조 이성계의 태를 처음에는 함경도 본궁의 용연(龍淵)에
안치하였다가 무학대사의 지시로 금산군 추부면 만인산에 옮겨 안치하고, 태실비를 세웠다.
1928년 조선 총독부에서 태 항아리를 창경원으로 옮겨간 후 석비와 석조물만이 남아 원형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손 및 산재되어 있었으나, 1993년 현 위치인 추부면 마전리 산 1-66번지에 복원하였다
태조대왕 태실 안내판
태실은 팔각형으로 돌 난간을 두른 정역(淨域)을 만들고, 그안에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의
태실 구조로 되어 있으며 그 앞에는 구부(龜趺) 위에 태실비가 있으며, 전면에는 '태조대왕 태실'이라는
비문이 음각되어 있다.
태실비 귀부(龜趺: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
태를 봉안한 후 만인산을 태봉산으로 부르게 되었고,
현재는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자료 제13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간단하게 태실을 둘러보고...
중부대학교로 이어지는 임도로 내려간다
팔각정(15:47)
운동기구들이 있고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 열심히 운동을 하고있다.
팔각정 좌측 아래로 내려간다
태조대왕 태실 주차장(15:52)
주차장앞에는 웬 넘의 사랑의 보금자리(?)가 많은지...
주차장에서 스틱을 접고 베낭을 정리하는데 조금전 팔각정에서 운동하고 있는
여인이 자동차로 와서 시동을 걸려고 한다...다가가서 추부에 가서 서울가는
버스를 타야하는데 좀 태워주면 안 되겠느냐고 하니까 타라고 한다
자동차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편하게 왔다...고맙소...복받을기요
추부 버스정류장(16:05)
맘씨좋은(?) 여인 덕분에 편하게 와서 버스표를 예매하고 하고나니 1시간정도 여유가 있다
편의점 밖의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너무 춥고 젖은 옷을 갈아입을 곳도 없다.
하는 수 없이 맞은편에 있는 추부파출소로 가서 경찰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더운물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고나니 좀 살것만 같다.
기왕이면 너무 추워서 그러니 커피 한잔만 달라고 하니 커피까지 주는 바람에
커피 한잔을 마시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내고 파출소를 나온다.
추부발 → 서울행 버스표
금산과 추부(마전)는 10분 거리에 있는데 왜 요금이 같은거야.
17시 10분에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데 얼마나 피곤했던지 잠에서 깨어나니
버스는 신갈I.C를 지나가고 있다...생각보다 조금 일찍 서울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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